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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카타콤베(아랍서 지중해까지:18)

    ◎기독교도 숨던 지하무덤… 미로수백㎞/「쿼바디스」의 아피아가도 주변에 산재… 땅굴 곳곳 교인들 수난 흔적 길 모퉁이에 있는 작은 가게를 구경하다 깜박 카메라를 놓고 나왔는데 두어 블록이나 걷고 있을때 『시뇨레! 시뇨레!』하면서 주인이 쫓아왔다.베네치아에서 만들어와 판다는 세라믹 액세서리들의 그 담백한 아름다움에 잠깐 정신을 놓았었던 것 같다.자리까지 비운 채 여기까지 유실물을 갖다주러 오다니 싶어 얼굴이 붉어진 것은 비단 그 가게주인이 예쁜 아가씨였던 때문만은 아니다.잊은 물건 으레 찾으러 들이닥치겠지 싶어 필자 같았으면 오불관언 그냥 버티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아무 것도 아닌 이런 사소한 일이 실은 한 나라의 민도랄까 문화적 수준을 제풀에 측정케 만들고 절감케 한다.이탈리아 사람들은 너무 친절해서 모르는 것도 아는 척 곧잘 나서기 때문에 골탕을 먹는 수가 있다고도 하지만(하긴 필자도 그 때문에 엉뚱한 길을 헤맨 적이 한번 있기는 하다),이 아가씨의 친절은 여태까지도 쉬이 잊혀지지가 않는다.남의 얼굴에다 제 얼굴 디미는 간판들이나 판을 치는 대도시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미덕이요 소양이다.피곤한 신경으로 거리를 걷다보면 간판들의 그런 번잡스러움 같은 것까지가 그 나라의 수준을 금세 헤아리게 만든다. ○친절한 시민 인상적 소위 앞서간다는 나라들의 그것은 대체로 그저 눈에 뛸 정도의 글씨로 숨듯이 얌전한 반면 후진 나랄수록 그 요란함과 새치기는 극성스럽다.TV나 신문·잡지의 광고 역시 예외일 리가 없다.잠자리에 들기전 하다못해 잠깐이라도 TV를 켜는 새버릇이 이번 여행중에 붙은 것도 순전히 그 탓이었을 것이다.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책광고·상품광고 같은 것이 우리처럼 허풍스럽고 요란한 나라가 또 있을 것 같지 않아 겸연쩍고 창피했다.2등은 쓰레기처럼 잊혀지는 존재므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제1이어야 한다느니,「정복할 것이냐 당할 것이냐」하는 따위 히틀러의 발악이 무색할 지경의 광고까지 태연히 횡행하는 사회이니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로마 국립공원 뜰은 장식삼아 여기저기 놓인 세계 유명인사들의 대리석 흉상들로도유명한데 관광온 이쪽의 원로 하나가 이승만 대통령의 흉상도 있을지 모른다는 농담을 듣고 열심히 그것을 찾아다녔다는 얘기가 있다.결국 찾지 못하자 귀국해서는 그 얘기를 글로까지 썼다는 것이다.이런 얘기의 우스꽝스러움은 「유명인사」라는 그 개념상의 차질에 있다.독재를 했건 뭘 했건 유명하기만 하면 「문화적 인물」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이 원로는 착각을 한 것이다.인도의 간디수상도 신청을 했다가 거절을 당했는데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일까보냐는 개탄이 나올 법도 하다.이 얘기를 해준 것은 60년대에 이주해서 30여년째 로마에서 살고있는 H씨이다.문청(문청)시절 어울려 다니던 친구로 이번에는 10여년 만의 해후인데 불혹의 연치가 완연한데도 그 유머러스하고 직재적인 사고방식은 여일했다.그 무렵의 친구들이 모르는 새 모두 소원해졌는데도 이 H씨만은 예 그대로 와락 반가운 느낌부터 앞선 것도 그 탓이었을 것이다.끝내 로마에다 뼈를 묻을 작정이냐는 농담에,집과 차와 가재도구를 다 정리해 귀국해봤자 강남에서 몇달이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되레 역습이다.자녀들이 장성하자 사위만은 모국청년으로 골라야겠다 싶어 몇 차례나 기회를 만들었으나 돈 타령,땅타령,줄리어드다 하버드다 하고 외국유학 얘기만 나오다 대화가 끊겨 끝내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사돈될 사람들 간에도,당사자들 새에서도 대화가 그 모양으로 단절돼 내심으로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데이트 몇번하면 으레 제 소유물로 알고 자질이야 있건 없건 유학물 먹은 일이나 자랑삼으면서 연애 따로,결혼 따로를 당연한 듯이 생각하는 이쪽 젊은이들의 그런 사고방식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근교의 아파트단지 식당에서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모처럼 배불리 먹여주고 그녀가 차로 데겨간 곳은 카타콤베 앞이었다.로마에 와서 뭘 봤느냐는 물음에 실은 아무 것도 보고싶지 않았다는 필자의 동문서답이 마음에 걸려서 였을까.카타콤베는 옛 로마 서민들의 지하무덤이다.왜 아무 것도 보고싶지 않았느냐고 이번에는 그녀도 묻지 않았다.숙소에서 확인한 TV채널만도 20여개가 넘고 인근 지방의 유선방송까지 합하면 천여 채널이 넘는다는 각종 정보홍수에 에워싸여 살다보면 문명이니 문화적인 혜택이니 하고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그런 온갖 빤히 눈에 보이는 세계가 되레 지겨워질 나이에 그녀 역시 이르른 것같다.정부 각 기관과 문화관과 대기업의 본사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로마의 신시가지 에우르 구역을 도중에 거치면서 필자는 과천을 제풀에 연상하고 있었는데,카타콤베들은 그 너머 구아피아가도 인근에 흩어져 있었다. ○10만명 매장된 곳도 로마제국 때 닦여진 길이다.붉은 언덕과 짙은 색깔의 나무들이 갑자기 사방을 에워싸면서 차량마저 끊기다시피해 한적한 시골을 연상시키는 이 가도는 아닌게 아니라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속담을 역으로 연상시켰다.지금은 관광자원이 돼버린 옛 제국의 영화가 하층민들의 무덤까지도 그냥 버려두고 있지 않는 것이다.물론 이 무덤들이 특별히 유명해진 것은 박해를 받던 그 무렵 기독교도들의 지하 은신처요 포교활동의 근거지였다는 까닭이 더 크다.도망을 치던 베드로가 예수의 환영을 만나 저 유명한 대사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읊조리던 데가 아피아가도였고 그때 남은 예수의 발자국모형이 보존된 도미네 쿼 바디스교회가 이 인근에 있다.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쿼 바디스」나 「성의」 같은 것에도 물론 카타콤베가 나온다.지하 2·3층,어떤 것은 5층까지 파내려간 이 부근의 수십기 카타콤베들은 복잡한 미로와도 같아서 혼자서는 들어갈 수가 없고,10만여명이나 매장된 곳도 있으며,그 길이를 합하면 수백㎞에 이른다고 한다. 입구에서는 각국 언어별의 가이드들이 여남은명씩 되는 관광객들의 조를 짜고 있었다.어쩌다 네덜란드어 가이드를 무심코 따라들어가 설명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나 구태여 그런 것이 필요한 것같지도 않았다.사람 하나가 간신히 비집고 들어갈만한 흙벽의 좁다란 통로와 역시 흙으로 된 계단을 몇번이나 꼬부라지며 내려갔는지 알 수가 없다.가이드의 랜턴불빛에 기괴하고 참담한 낙서와 그림들이 홀연히 벽에서 나타나는가 하자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모를 샛길들이 곁으로 불쑥불쑥 들이닥치곤 했다. 이런지하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돼버린다는 제풀의 상상은 기묘한 것이었다.나는 왜 여기 있는가,이번 여행은 뭐땜에 떠나왔는가 하는 따위 상투적인 의문들이 그제야 근거를 찾고 입지를 얻은 듯한 느낌이랄까,갑자기 천지가 막막했다.초기 기독교도들의 그것뿐 아니라 중세의 여러 종교적인 박해에도 이곳은 피난처가 됐던 모양으로 지상으로 올라오는 중간중간의 작은 방들에는 그 수난의 표상들과 기념물들이 흔적이나 조각들로 새겨지거나 놓여 있거나 했다.화살에 목이 꿰인 성 아무개,칼로 순교당한 누구 하는 식의 그런 전시물들 역시 숭엄한 분위기이기는 해도 청량한 느낌은 아니다.로마시내에는 4천여 승려들의 해골을 수백년에 걸쳐 모아놓은 해골사원이라는 으스스한 곳도 있지만,이런데를 특별히 찾는 사람들 역시 일반적인 심성의 그런 관광객들은 아닐 것도 같다. ○중세에도 피난처로 겨우 한시간 남짓이나 머물다 나온 지하에서 로마라는 한 도시의 허상을 통째로 별견한 듯한 느낌이었다고 하면 아마 과장일 것이다.사람사는 세상에는 으레 있게 마련인 그 말할 수 없이 구질구질한 거래와 아귀다툼들이 이를테면 로마라 해서 어떻게 이런 지하세계 같은데로 깨끗이 모두 매몰될 수가 있겠는가.필자가 카타콤베 속에서 저절로 떠올린 로마의 그 허상이란 것도 실은 숙소근처의 가게에서 사흘째 눈독을 들이고 있던 싸구려 골동품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우리 돈으로 2만여원쯤 되는 그 놋쇠물병은 연륜이랄 것도 쓸모도 별로 없어 보이는 얄팍한 물건 같았으나 이탈리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어떤 곡선형태라는 그 한가지 점만으로도 어딘가 정답고 신선하게 느껴져 값을 깎자느니 안된다느니 하고 며칠째 줄다리기를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도무지 무뚝뚝해 보이기만 하는 가게의 뚱보주인은 필자가 들를 때마다 『적당하고 좋은 값』이라면서 배짱을 부리고 있었다.이쪽 역시 기어이 에누리를 해서 그것을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집념에 들떠 있었다는 것도 아니다.구태여 따지기라도 한다면 한계가 빤한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눈곱 정도로나 허용된 소위 그 「자유」라는 명제나 「자유스럽고 싶다」는 감정을 두고 필자도,그도 사실은 줄다리기흉내를 즐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고개:상(서울 6백년 만상:59)

    ◎남태령/여우고래로 불리다 정조때 개명/춘향전서도 언급… 서울∼사남 잇는 길목/산적 많아 행인들 넘을때 월치전 준비 『전라도로 내려갈제 청파역졸 분부하고 숭례문밖 내다라서…동자기(지금의 동작동)밧비 건너 승방들(승방뜰)·남태령·과천·인덕원 중화(점심)하고…』­소설 「춘향전」의 주인공 이몽룡이 전라도로 내려가는 대목에서 알수 있듯 남태령은 서울과 삼남을 잇는 길목이었다.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승방뜰(승방평)과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을 잇는 남태령은 그 길이가 무려 3.3㎞에 이른다.지난 63년 서울로 편입되면서 2.2㎞는 서울에,나머지 1.1㎞는 경기도 땅으로 남아있다.관악산의 북동쪽 능선을 가로지르는 고개의 남서쪽에는 관악산 정상이,북동쪽에는 우면산 정상이 각각 자리하고 있다. 남태령의 이름이 아직 「여우고개」로 불리고 있을 때 정조는 이고개를 넘어 수원에 있는 부친 사도세자의 능을 자주 참배했다고 한다.정조는 당시 배로 한강을 건너 남태령과 과천,사그내(현재의 의왕시)를 지나 수원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어느날 임금의 행차가 남태령 고갯마루에서 쉬고 있을 때 정조는 수행하는 시종들에게 고개이름을 물었다.이때 과천현 이방은 「남태령」이라고 선뜻 대답했다.「여우고개」라고 알고 있던 임금은 『왜 남태령이라고 했느냐』고 되물었다.그는 『임금께 요망스런 짐승 이름을 댈 수가 없어 서울 남쪽의 가장 큰 고개라는 뜻으로 「남태령」이라 둘러댔다』고 아뢰었다.정조는 그의 뜻을 가상히 여겨 거짓고함을 책망하지 않고 남태령으로 부르도록 해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됐다고 전해진다. 미아리고개등 서울의 대표적인 고개가 다 그렇듯 남태령 역시 많은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고개가 험준해 옛날에는 관아에서 젊은이들을 고용해 여러사람이 모인뒤에야 행인들을 호송,고개를 넘도록 했다.행인들은 고용된 젊은이들의 요구에 따라 월치전(고개넘잇돈)을 준비해야만 했다.돈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혼자 고갯길을 넘어야 했고 그때마다 산적들에게 약탈을 당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땔감장수들 가운데서도 험준한 관악산에서 나무를 해다 파는 사람이 많아 지게나 소의 바소쿠리에 장작을 가득얹어 남태령을 넘는 과천나무장수들의 모습은 서울 사람들의 눈에 익은 풍물의 하나이기도 했다. 6·25때는 격전지로 바뀌기도 했다.관악산을 장악한 인민군과 북상하는 국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과천부터 긴다』는 옛말이 있다.이는 어떤일을 앞두고 미리 겁부터 먹는 사람을 비아냥거릴 때 쓰던 말이다.서울나들이에 나선 순박한 시골사람들이 각박스럽고 사나운 장안인심이 겁나 가파른 남태령을 기어넘듯 과천에서 부터 몸을 사렸다는데서 유래된 말이다. 과천 안양 시흥등 도시들이 집중 개발되면서 남태령은 출퇴근 시간은 물론 거의 하루종일 몰려드는 차량들로 홍수를 이뤄 남태령을 기어 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기존 4차선도로가 8차선으로 넓혀졌고 최근에는 고개밑으로 지하철 과천선이 통과해 사정은 전보다 조금은 나아졌다.그러나 평촌·산본신도시를 비롯,과천정부종합청사,서울대공원,서울경마장을 드나드는 차량이 하루 3만여대에 이르는등 이용차량이 갈수록 늘어 서울에서 교통체증이 가장 심한 곳중 하나가 됐다.
  • 제2사정의 결연한 의지(사설)

    부정과 비리를 도려내기 위한 전정부적 의지가 총력경주되고 있다.인천시장을 포함한 6명의 시·도지사의 경질을 놓고 김영삼대통령은 이번 인사가 단순한 자리메움이 아니라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새롭게 분위기를 쇄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함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세금횡령사건이 던진 국가적 충격은 엄청나다.그만큼 개혁의 욕구도 더욱 증폭되고 있다.혈세를 도둑질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은 국민들에게 비통보다는 부패를 이땅에서 기어이 추방시켜야 한다는 공통인식을 강하게 심어주고 있다. 부정부패 척결을 절대절명의 목표로 하여 출범한 문민정부는 다시 사정의 신발끈을 조여매고 정화야말로 우리가 쉼없이 이어갈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추구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정부는 내달부터 세무 건축 소방 수사 병무등 10대 대민행정 취약분야의 부처별 부정행위에 대한 일제 단속에 착수해 적발되는 공직자는 법령상 최고 처벌의 기준을 적용한다는 엄벌원칙을 확정했다. 감사원이 뒤늦었지만 징수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개원이래 최대인원을 동원하고 나선 사실은 정부의 비리척결 의지와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낸 것이다.인천의 세금횡령과 같은 지방세뿐 아니라 국세와 관세는 물론 공공기관에서 거두는 모든 형태의 세금징수비리까지 감사는 대폭 확대되고 있다.그 대상도 세무서 세관과 정부투자기관 사업소 한전 철도청 담배인삼공사등 공공사업 기관의 수입금 착복여부에까지 이르고 있어 국민이 궁금해하는 각종 비리의 유무와 규모등이 상당부분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의 다각적이고 포괄적인 제2의 개혁의지는 공직부패 근절을 위한 법령개정 착수에서도 확인된다.공직자재산등록 범위의 확대,금융계좌 추적요건 완화,부정부패이익 환수를 위한 법령개정등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정부는 공직사회 종사자의 의식개혁이 선행되어야 함을 제대로 인식하고 안되면 강제적으로라도 새로운 의식을 갖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아울러 강조되는 것은 이에 참여하는 시민정신의 발현이다.국민의 감시 감독과 적극적인 고발이 그것이다.부정비리의 원인제공자되기를 거부하는 용기는 물론 영수증 보관으로 2중 고지서 발부등 부정을 획책하려는 기도를 끝까지 추적해 시민의 손실을 스스로 막아내는 적극적인 실천행동이 요청된다. 감사와 수사,제도마련과 처리가 정부의 몫이라면 부정부패행태를 거부하는 고발과 감시는 국민의 책무이다.시민참여없는 정부개혁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해둔다.
  • 로마/광장과 분수들(아랍서 지중해까지:17)

    ◎빼어난 조각 트레비분주 “압권”/저마다 소원빌며 샘에다 동전 던지는 모습은 진지하기만… 로마의 아침을 보려고 5시쯤에다 시간을 맞춘다. 바로크풍의 둔중한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에는 간밤의 불빛들이 아직 명멸하고 있어도 사방을 에워싸고 다가들던 그 거창한 명소나 유물들은 채 잠이 깨지 않았는지 희뿌연 모습들인 채 산책을 방해하는 것같지가 않다. 숙소근처를 두어블록 걷자 골목에서 새벽장이 서고 있다.인근 농장에서 직접 왔는지 캡을 쓰고 멜빵바지차림으로 웃고 있는 주인들 곁의 열어젖뜨려진 소형트럭과 좌판위에 늘어놓인 갖가지 야채와 이름모를 과일들이 싱싱하다.여기 오렌지는 쪼개면 핏빛으로 넘치는 즙과 함께 톡 쏘는 단맛이 유난스럽다.정말로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이런 사소하고 일상적인 현실의 풍경이어서 지리멸렬한 여독이 어느새 가시고 있다. ○하찮은 것도 소중히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무리 보잘 것 없고 하찮은 것이라도 그럴듯한 이름을 거기 붙이기를 좋아하고 또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재주가 있는 것같다.구멍가게나 문방구에서 파는 작은 기념품,펜대 하나의 모양새가 그렇고 별의별 이름을 다 붙여놓은 거리들이 그렇다.별 두개짜리 속소인 「셀렉트」호텔만 해도 우리식으로는 장급여관수준밖에는 안돼 보였으나 주위공간을 하도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아 좁다는 불평을 할 수가 없다.정갈한 욕조,앙증맞은 비누곽,출입문과 바로 이어지는 통로를 간결한 탁자와 꽃들로 장식해 아늑한 공동정원으로 꾸며놓고 있다.거기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올려다보노라니 서울 필동의 어느 후진 곳을 연상시키는 그 뒤쪽의 낡은 건물이 오히려 고소를 자아낸다. 좁아터졌으나 역시 아늑하기 짝이 없는 지하식당에서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시내나 한바퀴 둘러보자고 나선 길에 운좋게도 산 피에트로광장에서 교황을 만난다.운좋게라고는 하지만 카톨릭신자가 아니므로 그저 먼빛으로 구경이나 한 셈이 되어버린 이 수요일 오전의 알현은 필자에게는 사실 뜻밖이었다. 바티칸시국은 64번 버스종점으로 테르미니역과는 반대편끝이다.산 피에트로사원은 카톨릭미술의 보고인 바티칸박물관,라파엘로관,기타 미술관들과 미켈란젤로의 저 유명한 「천지창조」가 천장화로 장식된 시스티나예배당으로 바로 이어진다.높이 25m가 넘는 장대한 오벨리스크와 분수와 1백40인의 성인상이 주위의 열주지붕위에 버티고 선 더 넓은 광장에는 세계 도처에서 모여든 듯한 수천명의 신자들이 웅성거리고,사원정면 계단 아래쪽에 차양을 치고 마련된 대좌 위의 요한 바오로2세는 시종 웃음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각 나라말로 한마디씩 은총을 내리는 모양으로 그때마다 해당되는 나라의 신자들이 환호하며 몸들을 일으켰다. 뭐라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물론 우리말의 은총도 환호도 있었다.조말의 병인사옥이라든가 서강쪽의 절두산 같은 것이 제풀에 생각나 감개가 없을 수 없다. ○광장서 교황 만나 테베레강을 건너 베네치아광장으로 빠지는 길목에서 버스를 버리고 걷는다.로마는 웬만한 길들이 그대로 모두 쇼핑타운이 되어 있어 은근한 디자인과 태깔의 그런 길가 가게들 모습은 유별나다.무드를 연출하고 집중적인 포인트로 상품을 진열해놓는 품새부터가 그렇고,묘하게 접혀서 제자리에 걸려 있는 그저 그런 옷가지 하나가 무슨 첨단디자인의 최고제품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필자의 눈에까지 그 지경이라면 입성에다 목을 매다는 여성들의 눈에는 오죽하겠는가.사심없는 눈요기야말로 하나의 풍경의 중심에 도달하는 첩경이고 일종의 쾌락에 가까운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는데,그래서 그런지 가게로 들어간 일행 두사람이 좀처럼 나올 염을 않고 있다. 천사가 모는 사두마차의 지붕 좌우끝머리 조각과 중앙의 기마상이 인상적으로 금방 눈에 들어오는 에마누엘레2세기념관의 베네치아광장은 사통팔달로 연결되는 주위의 한다 하는 로마명소나 유명한 분수들의 그 중앙통쯤 되는 지점이 된다.트레비분수는 그 바로 다음인 콜로나광장에 있다.로마근교의 미남 홀아비 로사노 브리지가 관광온 미국처녀를 죽어라 쫓아다니는 얘기인 왕년의 영화 「애천」이 생각나서도 그렇지만,이 분수는 그 웅장한 규모로나,바로크양식의 걸출한 조각으로나,사철 거기 몰려 와글대는 사람들로나 역시 이곳 볼거리의한 압권이랄 수밖에 없다. 샘 주위는 그대로 온갖 피부색 인종들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고,그런 격의없는 꿈의 무슨 도피처로도 보인다.사뭇 진지하게 소원을 빌면서 저마다 한번씩 샘에다 등뒤로 동전을 던져보고 있대서가 아니라 그 소박하고 치기어린 제스처가 또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빨리 통일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지고한 소망보다는 한푼이라도 돈을 더 벌게 해줍시사 하는 현실적인 소원이,그래서 여기서는 더 비현실적인 뉘앙스를 띠면서 제대로 먹혀들 것도 같다.권태와 욕구불만에 고주망태가 된 글래머 스타 애니타 에그버그가 심야에 이 분수에 뛰어들어 난동을 부리는 장면이 있는 예의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생활」이 떠오른다. 기적이라고까지 불린 이탈리아의 눈부신 경제성장이 시작되던 60년대를 배경으로 소위 로마 상류층의 무위와 타락한 일상을 신랄하게 비꼬면서 고발하고 있는 이 필름은 스페인광장 저쪽의 베네토거리가 로케이션의 주무대였던 걸로 알고 있으나 트래비분수를 슬쩍 삽입한 예의 장면의 효과는일탈한 것이었다. 펠리니는 이 관광명소의 또다른 상징적 의미를 거기서 끌어내고 싶었을지 모른다.배는 불러도 삶의 공허를 어쩔 도리가 없어 카페에서 남녀가 말타기놀음까지 벌이는 유한계급의 그런 지리멸렬한 속성이나 같은 이유로 그들의 스캔들이나 고작 뒤쫓고 팔아먹으면서 파행을 자초하는 어떤 잡지사 기자의 행각이 이 작품에서는 스토리가 되고 있다. 펠리니도,「길」에서 젤소미나역을 절묘하게 해내던 그 부인 줄리에타 마시나도,단발머리로 이이스크림을 빨면서 계단을 깡충거리고 내려오던 왕녀 오드리 헵번도 얼마전에 모두 타계했다.윌리엄 와일러의 「로마의 휴일」로 더 유명해지고 지금도 여일하게 그대로인 그 스페인광장의 계단은 그래서 새삼 감회를 자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낱 스크린속의 선남선녀들이 벌이던 그런 운명의 무상감 때문이 아니라 화면에서는 그렇게도 정답고 낯이 익던 공간이 실제로는 도무지 현실감으로 오지 않는 그 생뚱함 때문일 것이다. 이 스페인광장의 끝에서부터는 구치니,발렌티노니,페라가모니 하는 소위 유명상표의 가게들과 부티크타운의 콘도티거리가 바로 이어지지만 별볼일이 없는 것같아 그냥 지나친다.동행과도 헤어져 어디를 어떻게 해맸는지 알 수가 없다. ○요상한 청년들 배회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고대로마의 건축물인 만신전 「판테온」앞을 어설렁거리다 나보나광장으로 다시 빠져나와서야 맥이 쭉 빠졌다.뭘 보려고 헤맨다는 것이 사실은 한 뼘의 쉴 장소를 찾으려고 여태 긴장해온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마실 것을 갖다놓은 야외카페 탁자위로 겁도 없이 비둘기 서너마리가 날아 앉는다. 차가 들어올 수 없는 이 광장에는 「사대강」 「무어인」 「넵튠」의 이름이 붙은 유명한 세개의 분수가 있다.도리없이 또 필자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그런 축조물 주위에 앉거나 아무렇게 드러누워버린 요상한 차림의 젊은이들이다.로마건 어디에서건 가장 흔하게 보아오던 비슷비슷한 무리들인데,어디서 왔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베낭족들도 있고 어설픈 인디언 목걸이니 열쇠고리니 하는 것을 팔면서 움직이는 젊은이들도 있다.60년대의 히피즘이 다시 도래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눈여겨봤으나 행색만 비슷할뿐 그것도 아닌 것같다.기타를 끼고 있는 녀석도,헝겊으로 이마를 묵은 녀석도,민대머리도 있다. 왜 이들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가고 새삼 생각한다.우선 그들은 이념적인 색채가 전혀 없어 보인다.항문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해는 보이지만 돈의 위력쯤 똥으로도 안 여기는 눈치들 같기도 하다.집도 절도 냉장고도 지니고 있지 않아 거칠어는 보여도 그만큼 어딘가가 탁 틔어 있다. 21세기는 아마 그들의 몫일 것이다.
  • 백악관대변인 교체 “불발”/마이어스 “연말까지 근무”…클린턴 승락

    ◎매커리 국무부대변인 내정했다 취소 백악관의 「입」인 대변인의 교체가 발표직전에 무산,일단 연말까지로 미뤄졌다. 리언 파네타백악관비서실장은 22일 디 디 마이어스대변인을 2선으로 물러앉게하고 대신 현재 국무부대변인을 맡고있는 마이크 매커리를 기용하려고 했으나 일단 무위에 그쳤다. 이날 하오 새로운 백악관대변인의 임명발표가 거의 공개된 일정으로 알려졌으나 이같은 일정은 마이어스대변인의 제동으로 취소되었다. 23일 워싱턴 포스트지에 따르면 올해 33세의 독신여성인 마이어스는 22일 저녁 클린턴대통령을 면담,금년말까지는 계속 이 자리에 머물도록 내락을 받았다. 파네타비서실장의 인사복안은 마이어스를 대변인직에서 빼내 외형적으로 한 등급 격상시킨 대통령정책담당보좌관으로 전보시키고 대신 대변인직을 대통령의 보좌관급으로 지금보다 격상시켜 이 자리에 매커리국무부대변인을 임명한다는 것이었다. 백악관대변인의 교체는 지난 6월 파네타 당시 백악관예산국장이 비서실장으로 임명되면서부터 제기되었다.파네타비서실장은클린턴대통령이 언론으로부터 「부당한」공격을 받는 이유가운데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바로 백악관대변인이 백악관출입기자들의 정보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데서 기인하고있다고 진단해왔다.대변인은 대통령의 정책결정과 관련한 핵심서클에 언제나 접근할수있어야 하나 현재의 직급과 인물로는 불가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역대 백악관대변인들은 대통령의 측근 보좌관의 한 사람으로 사실상 핵심서클의 일원이었으나 현재는 그렇지가 못한 실정이다.클린턴대통령의 공보분야는 현재 마크 기어런공보국장이 장악하고있고 일일 브리핑은 마이어스대변인이 담당하고있다.기어런은 클린턴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백악관비서실차장으로 들어왔으나 클린턴의 언론과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인사조치의 하나로 약 1년전 이 자리로 옮겼던 것이다. 후임자까지 사실상 결정된 마당에 과연 마이어스대변인이 앞으로 3개월 더 이 자리에 머물지는 두고봐야할것같다.
  • “컴퓨터 바이러스 예방”/「터보백신」 개발

    ◎컴퓨터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안양전문대 임형택군/대가 안철수의 「V3」 성능을 능가/「암살자」 등 9종 신종 바이러스도 퇴치 국내 컴퓨터 바이러스 분야의 대가인 안철수씨의 뒤를 이을 만한 「귀재」가 나타났다.화제의 주인공은 이제 갓 스무살이 넘은 임형택군(안양전문대 전산학과2). 임군은 최근 신종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터보백신」을 개발,컴퓨터 사용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신종 바이러스들은 그동안 컴퓨터 바이러스에 관한 한 만병통치약으로 통해온 안철수씨의 「V3」도 잡지 못한 것들.따라서 그가 만든 「터보백신」은 컴퓨터 바이러스 예방백신의 성능을 한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얼마전 집에서 쓰던 컴퓨터가 「예루살렘 바이러스」에 감염됐습니다.속이상해 백신 프로그램을 꼭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기존 외국바이러스 퇴치프로그램이나 V3 등으로 감염을 해결했으나 날이 갈수록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들이 나타나 이를 퇴치할 백신을 기어이 혼자 힘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임군이 컴퓨터를 처음 대한 것은 겨우 2년 남짓.입시공부에 시달리면서도 컴퓨터에 취미를 붙여 틈틈이 공부했다.결국 진학도 전산학과로 하게 됐다.취미가 전공으로 바뀐 셈이다. 그동안 꾸준히 백신프로그램을 개발해온 임군이 최근 통신망에 띄운 것은 「터보백신­예방용 TVres9」이라는 프로그램.이 백신은 컴퓨터파일 등에 치명적 상처를 주어 시스템 전반의 작동을 멈추게 하는 「암살자바이러스」「북두칠성바이러스」「넥스트바이러스」 등 기존 백신으로는 예방할 수 없었던 9종의 신종 바이러스를 막아준다. 임군은 『바이러스는 치료도 중요하지만 철저한 예방이 훨씬 더 중요하다』며『그러나 너무 백신에만 의존하지 말고 자료를 될 수 있는 한 자주 플로피디스크에 옮겨 보관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이어 『컴퓨터에 바이러스를 침투시키는 해커들은 자신들의 컴퓨터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조금의 죄의식도 없이 일을 저지른다』면서『정보화사회가 진전되면서 우리도 이제는 컴퓨터 사용에 대한 윤리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명함관리프로그램인 「바둑이」,전화요금계산프로그램 「셈돌이」등 컴퓨터 사용자라면 익히 알고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보급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지금은 윈도즈용 백신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도 계속 백신연구와 함께 미개척 분야를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거나 신종바이러스를 발견한 사람은 하이텔 「HTLim」이나 나우콤 「hello」로 편지를 띄우면 상세한 도움말도 얻을 수 있다.
  • 클린턴의 세가지 소원(특파원수첩)

    19일 하오 1시30분 백악관에선 클린턴미대통령의 쿠바난민정책 전환에 관한 기자회견이 있었다.근 30년동안 유지해온 쿠바 해상탈출자에 대한 정치적 난민지위 자동허용조치를 1백80도 전환,입국을 일체불허키로 한다는 내용이었다.TV로 생중계된 이날 회견 분위기는 딱딱하고 엄숙한 것이었다. 그러나 회견말미에 한 여기자가 이날 만48세가 되는 생일을 맞은 소감과 함께 「생일소원 세가지」를 말해달라고 하자 장내분위기는 일순 가볍고 밝아졌다. 클린턴은 소원 3가지를 하나하나 열거해나갔다. 첫째 소원은 「범죄방지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장내에 까르르 웃음이 일었다.둘째는 서로가 마음의 문을 열고 당리당략을 조금만 떠나면 의료개혁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지난주 여당인 민주당소속의원 58명의 반란표(?)로 무참히 부결된 범죄방지법안을 다시 수정하여 재상정하려는 클린턴대통령이 반격작전의 성공을 비는 소원인 것이다. 취임후 18개월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챙겨오다시피한 의료개혁법안이 아직논란속에 정식 상정이 되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범죄방지법안이나 의료개혁법안은 클린턴대통령의 최대 선거공약이자 내정현안 제1·2호로 치부되고 있지만 의회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때문에 「진짜 소원」일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이 셋째 소원을 말했을때 장내는 축제분위기처럼 일렁거렸다.그는 『이번 여름휴가를 포기하지 않아도 됐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다.왜냐하면 나이 50이 되기 전에 골프 스코어 80대를 깨는 것이 꿈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대통령 클린턴」이 아니라 「인간 클린턴」의 「진짜 소원」이 나오자 분위기는 『해피 버스데이 투 유』로 바뀌었다. 사실 클린턴대통령의 생일을 우리 식으로 풀면 8월 복더위의 개(견)띠 팔자니 두들겨 맞아도 한창 두들겨 맞아야할 괘다.그래서 그런지 범죄방지법 부결로 클린턴의 내정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대두되기도 했다. 그러나 클린턴이 생일소감을 얘기하면서 『나는 불굴의 투혼을 좋아한다』고 밝혔듯이 그는 한판승부를 가리다 안되면 「원칙을 손상하지 않는 타협」을 통해서라도 끝까지 목적을 달성하는 스타일이다.드라이브 샷을 2백75야드나 날리는 「장타 골프광 대통령」의 공인핸디캡은 80대 중반을 치는 16정도인데 임기말(50세가 되는 96년)전에 기어코 싱글이 되보겠다는 그의 집요한 인간적 체취가 왠지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 북태평양 오징어잡이/내년 채낚기방식 재개

    지난 92년부터 중단되고 있는 북태평양 공해상에서의 오징어잡이가 어획방식을 달리해 재개될 전망이다. 수산청은 17일 지난달 22일부터 연근해 오징어채낚기어선 16척이 북태평양 공해어장에서 채낚기방식에 의한 시험조업을 하고 있으며 척당 하루평균 어획량이 2t이나 돼 상업적인 조업전망이 밝다고 밝혔다.오는 10월말까지 시험조업을 계속한뒤 이같은 어획량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내년부터 원양어선뿐 아니라 연근해어선도 진출을 허용할 계획이다. 채낚기어업은 중간 중간에 낚시가 달린 30∼50m의 낚싯줄로 조업하는 것으로 동해안 등의 연근해에서만 이뤄지고 있다.북태평양 공해어장에서 그물로 조업하는 유자망어업은 지난 91년 유엔이 어족을 보호하기 위해 중지키로 해 92년부터 조업이 중단되고 있다.
  • “95년 연방제통일 이루자” 선동/북­주사파 「팩스교신」내용 분석

    ◎범청학련 6명이 베를린서 연락책/전남대­김책공대 결연… 공투 선언 「한총련」산하 일부 대학 총학생회가 북한 대학들과 전화 및 팩시밀리등으로 전달받은 내용의 대부분은 북한의 「연방제통일방안」을 적극 찬성하는등 순수한 학생운동교류차원을 넘어선 정치투쟁 「교시」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검찰이 22일 92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38차례에 걸쳐 남북대학생이 교류한 내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북측은 우리 대학가들의 이슈를 교묘히 이용,학생들을 선동하거나 국론분열의 기미를 보이는 사안을 골라 대규모 시위등을 일으키도록 유도하는등 통신교류를 대남혁명지시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통신교류가 수사당국에 적발된 것은 빙산의 일각이며 운동권 학생들이 은밀히 접촉한 통신교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통신매개장소로는 베를린에서 92년 결성된 「범청학련」해외본부 사무국이 주로 이용됐다.이 사무국에는 남측에서 파견된 최정남공동사묵국장을 비롯,성용승·박성희,북측에서 파견된 조선학생위원회대표 최경철,조총련에서 파견된 조선오·황영치등 6명이 상주하면서 한국·북한·조총련의 연락을 각각 맡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범청학련」해외본부의 팩시밀리등 통신교류 방식은 「한총련→베를린범청학련 사무실→평양」과 역순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검찰은 분석하고 있다.남측의 각 대학에서 「문건」을 만들어 「한총련」에 보내면 이를 베를린 공동사무국에 보내 그곳에서 전화 또는 팩시밀리로 북측에 전달하는 수법을 써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5월29일 고려대에서 열린 「범청학련」공동의장단 회의에서는 이같은 방법으로 회의가 진행돼 평양에서 녹음한 「범민련」사무총장 인민식의 육성이 유선을 통해 남측에 전달되기도 했다. 당시 인민식은 『한총련의 출범을 뜨거운 마음으로 축하한다.범청학련을 기반으로 통일열기를 확산·고조시키고 이를 통해 통일기반을 완성하자』고 남측학생들을 선동했었다. 이에 대해 남측대표인 「한총련」1기 의장 김재용군(구속)은 『한총련으로 강화된 백만학도의 조직으로서 통일열기를 최고조로확산시켜 통일의 목표를 달성하자.이북·해외에서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분들께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7천만이 대화합해서 통일을 이룩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또 해외대표인 「재일한국청년동맹위원장」김창호도 『우리 같은 세대로서 90년대에 통일을 이루어 내도록 노력하자』고 북한의 선전선동술에 동참하고 있다. 북측은 이밖에 북송된 이인모 노인의 편지를 인민식이 대독한 육성을 녹음,전화기에 대고 『김일성 최고 주석이 직접 방문하여 훈장과 노동당원증을 수여해 너무너무 행복하다.남과 북·해외 청년학생들의 연대투쟁으로 조국통일 실현하자』는 등의 내용을 틀어주며 북체제의 우월성을 늘어놨다. 당시 회의에서는 이뿐만 아니라 「범청학련 총회를 통해 연방제 통일방안 확정하자」는 등의 공동결의문을 채택,북측 노선을 강력히 지지하고 나서 주위를 놀라게 했었다. 지난 5월 서로 교환환 전남대 총학생회와 북한 김책공대 학생위원회·재일본 조선대학 학생위원회의 3자 결연선언문에도 『민족의 대단결과 95년 연방제통일 실현의 길을 기어이 열어 제끼고야 말 뜨거운 결실을 피끓는 심장의 외침으로 내외에 선포한다』고 북한의 연방제통일방안을 그대로 신봉하고 있다. 김책공대가 이달초 전남대 총학생회에 보낸 문건에서는 ▲핵사찰반대 ▲팀스피리트 합동군사훈련 무조건 중지 ▲미사일과 각종 군사장비 반입반대 ▲쌀시장개방 결사반대등 민감한 사안을 집중거론하며 이를 위해 남측의 학생들이 궐기할 것을 강력히 촉구,북측이 과연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김일성종합대 학생위원회가 92년 3월 서울대총학생회에 보낸 팩시밀리는 『북과 남의 청년들이 북남합의서가 개최됐다고 해서 마음을 늦추거나 투쟁의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하며 통일의 마지막 장애인 미군과 핵무기를 철폐할 수 있으며 반통일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통일애국인사를 석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해 10월 단국대 총학생회가 평양외국어대 학생위원회 앞으로 보낸 서신에는 『외세의 간섭과 압력에 굽힘이 없이 조선청년의 기개로 싸워나가는 학우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 투쟁의 길이 분명 조국통일과 해방을 향한 길임을 믿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 김일성이 스탈린에 보낸 친서(50.9.29)

    ◎“미의 인천상륙으로 인민군 고전”/무기·식량 공급 못받아 소련지원 필요 존경하는 이·브·쓰딸린 동지에게 조선해방의 은인이시며 전세계 근노인민의 수령이신 당신께서는 자기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하야 싸우는 우리조선인민을 항상고무격려하여주시며 우리의게 배려를 베푸러주시며 각방면으로 원조를 주시는데 대하야 조선로동당을 대표하야 우리는 충심으로부터의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미국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우리인민의 해방전쟁의 금일정황에 대하야 당신에게 간단히 말슴드리려고 합니다.미침략군이 인천에 상육하기 전에는 우리의 형편이 좋지않었다고 볼수없었슴니다.적들은 패전에 패전을 거듭하야 남조선의 최남부의 협소한 지역에 몰리어드러가게되어 최후결전에서 우리가 승리할 가능성이 많었고 미군의 위신은 여지없이 추락되였던것임니다. 이에 미국군은 자기의 위신을 만회하며 조선을 자기의 군사기지화하려는 본래목적을 기어히 달성하기위한 대책으로 태평양방면의 미국 육해공군의 거위 전부를 동원하야 구월십육일에 대병력을인천에 상육시켜 서울시에 침입하야 시가전을 진행하고 있읍니다.전황은 참으로 엄중하게 되었읍니다.우리인민군부대들은 상육침입한 미국군진공에 대항하야 용감히 싸우고 있읍니다. 그러나 전선에는 참으로 우리의게 불리한 조건이 있다는것을 말슴드립니다.적들은 약천대의 각종항공기를 매일주야를 구분하지않고 출동하야 전선과 후방할것없이 마음대로 폭격을 불절히 감행하고있읍니다.그러나 우리편으로부터는 대항할 항공기가 없는 조건하에서 적들은 참으로 공군의 위력을 충분히 발휘하고있는것입니다.각전선에서는 백여대편성의 항공부대의 엄호하에서 적의 기계화부대들은 활동하며 또한 특히 우리부대들을 저공비행으로서 다수살상합니다.후방에서 적의 항공기들은 교통·운수·통신기대들과 기타 시설들을 마음대로 파괴하며 적군들의 기동력이 최대한도로 발휘되는 반면에 우리인민군부대들의 기동력은 약화마비되고 있읍니다 는것은 각전선에서 우리가 체험한바입니다. 적들은 우리군부대들의 교통·운수·연락망을 차단하고 진격하야 인천방면으로서 상육한 부대들과 남부전선에서 진공하던 부대들이 연결함으로서 서울을 점령할수있는 현실적가능성을 가지게되고 남반부에 있는 우리인민군부대들은 북반부로부터 차단되고 남부전선에 있는 부대들도 여러토막으로 차단되였읍니다.그리하야 우리 군부대들은 무기·탄약과 식양등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몃개부대들은 상호분산되어 있으며 그중일부는 적의게 포위되어있는 형편에 처하였읍니다. 서울시가 완전점령된다면 적은 삼팔도선을 넘어 북조선을 침공할겄입니다.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금일과 같은 불리한 조건을 계속하야가지고 있게되면 적의 침입은 결국성공할겄이라고 우리는 봄니다. 우리의 운수공급문제를 해결하고 기동력을 보장하자면 무었보다도 이에 해당한 공군력을 가저야 하겠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미 준비된 비행사들이없읍니다. 친애하는 이요시프 비싸리요노비치 시여! 우리는 여하한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면서 조선을 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와 군사기지로 내놓지않을겄입니다.우리의 독립·민주와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는 최후의 피한방울까지도 아끼지않고 싸울겄을 우리는 굳게 결심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전력을 다하야 새 사단들을 많이 조직훈연하며 남반부에 있는 십여만의 인민군부대들을 작전상유리한 일정한 지역에로 수습집결하며 또한 전인민을 총무장하여서까지 장기전을 계속할 모든 대책들을 강구실시합니다. 그러나 적들이 금일 우리가 처하고 있는 엄중하고 위급한 형편을 이용하야 우리의게 시간여유를 주지않고 게속 진공하야 삼팔도이북을 침공하게 되는 때에는 우리 자체의 힘으로서는 이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읍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수 없게 됩니다.즉 적군이 삼팔도선이북을 침공할 때에는 쏘련군대의 직접적출동이 절대로 필요하게 됩니다.만일 그것이 여하한 이유로써 불가능하게되는 때에는 우리의 투쟁을 원조하기 위하야 중국과 기타 민주주의국가들의 국제의용군을 조직하야 출동하도록 원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과 같은 우리의 의견을 당신에게 감히 제의하오니 이에 대한 당신의 지시가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 김일성 박헌영 일구오○·구·이구일
  • 한대서 「북방송지령문」 적발/경찰,한총련본부 수색

    ◎「구국의 소리」 2건 압수/13개대에 김일성추도현수막/시위용품등 백점 수거… 집회 강제해산 경찰은 김일성장례식날인 19일 한양대 한총련본부에서 대남 지하방송인 「구국의 소리」방송을 녹취해 작성한 「방송안내문」과 「지령문」등 2건의 문건을 적발,수사에 나서는 한편 이날 부산대등 전국 18개 대학에 내걸린 김일성사망 애도 플래카드와 대자보등 41개를 즉시 제거하고 학생들의 집회를 강제해산시켰다. 서울경찰청은 이날 새벽 한양대 구내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학생회관 5층 총학생회사무실 캐비닛에서 18절지 용지에 양면복사돼 있는 「구국의 소리」방송 청취안내문과 「구국의 소리」 방송지령문등 2건의 비밀문건을 압수했다. 경찰은 이 문건들이 한총련 배후 조직인 「정책국」이나 「조통위」의 「구국의 소리」방송청취팀이 북한방송 지령문을 녹취한 뒤 각 대학 총학생회에 보낸 것으로 보고 현재 구속수사중인 한총련 간부들을 상대로 대학내 「주사파」에 대한 본격수사를 펴고 있다. 경찰은 문제의 문건에 「쌀시장 개방반대투쟁은 민족의 생명선을 살리고…」「여러분들은 우루과이라운드 이행계획서를 국회에서 강행통과시키려는 정부의 책동을 기여코 분쇄하고…」등의 내용이 게재돼 있는 점으로 미루어 이 문건이 한총련의 투쟁지침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구국의 소리」방송은 북한 평양에서 보내는 대남공작방송으로 북한은 이를 남한의 지하당조직인 「한국민족민주전선」에서 자체적으로 보내는 방송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압수수색에서 김일성애도 플래카드와 유인물등 1백여점을 찾아내고 학생 39명을 연행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전국 각 대학의 집회 현장에서 서울시립대 심우일군(24·제어계측 4년)등 대학생 30여명을 붙잡아 조사중이며 적극 가담자의 경우 국가보안법상의 이적동조혐의등을 적용,전원 사법처리키로 했다. 경찰은 또 김일성추모식이 끝나는 20일이후 운동권 서클이 있는 각 대학에 공권력을 일제히 투입,압수수색에 나서는 한편 철저한 수배자 검거활동을 펴고 앞으로 국기를 흔들고 국론을 분열시킬 우려가 있는 각종 운동권의 집회및 시위에 대해서는 국기확립차원에서 초기에 강력대응키로 했다. 이날 ▲부산대·경성대·창원대등 부산·경남지역 6개 대학 ▲서울시립대·명지대등 서울지역 2개 대학 ▲강원대·한림대등 강원지역 2개 대학 ▲한양대 안산분교등 전국 11개 대학에서 김일성사망 애도 플래카드 16개를 내걸었다. 이밖에 김일성사망을 애도하는 대자보는 고려대·연세대·한양대·경상대등 7개대학에서 18개가 나붙어 학교측이 자체 철거했으나 경상대의 경우 경찰이 들어가 제거했으며 대학생 3명과 시민 1명등 4명을 현장에서 붙잡아 조사중이다. 한총련은 이날 하오 6시 연세대등 전국 8개 대학에서 동시에 「국보법 철폐및 공안정국 분쇄 결의대회」를 가졌으나 경찰의 봉쇄로 참가학생이 적어 별다른 충돌없이 끝났다.그러나 경찰은 연세대에서 학생 5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집회를 강제해산하는 과정에서 교내 도서관안에 사과탄을 던져 공부중이던 학생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한편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과 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연합(남총련)산하 전남·조선대등 23개 대학은 이날 김일성장례식과 관련,일체의 조의표시를 하지않는다고 발표했다. 서총련은 이날 하오2시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 불필요한 오해와 탄압의 빌미를 줄 수 있는 일체의 김일성 조문·추모행사를 갖지 않겠다』고 밝혔다. ◎경찰압수 북지령문 녹취내용/쌀개방 반대투쟁으로 현정부 타도/보안법 철폐·안기부 해체 가열차게 북한 구국의 소리 지령문 녹취문구는 다음과 같다. ­정세를 더욱 긴장시키고 전쟁접경에로 몰아가면서 이북을 압살하기 위해 광분하는 김영삼정권의 호전적인 책동을 분쇄하기 위한 투쟁을 세차게 벌여나가야 할 겁니다. ­쌀시장개방 반대투쟁은 민족의 생명선을 살리고 김영삼 역적의 목을 조이는 투쟁이라고 봅니다. 여러분들은 당면해서 우루과이라운드 이행계획서를 국회에서 강압통과시키려는 김영삼 역도의 책동을 기어코 분쇄하고 쌀시장개방반대투쟁의 파고를 계속 높여나감으로써 김영삼정권의 파멸을 위기에 몰아넣고 우리 농촌,우리 쌀을 지켜내야 할 겁니다.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파쇼악법과 안기부,기무사를 비롯한 파쇼폭압기구 철폐투쟁은 김영삼 문민파시스트의 수족을 얽어매는 투쟁입니다. 청년학생들은 국가보안법과 일체의 반민주악법들을 철폐하고 안기부·기무사를 비롯한 파쇼폭압기구를 해체하기 위한 투쟁을 더 세차게 벌여 파쇼악법과 폭압기구를 휘둘러 자주·민주·통일운동을 탄압하는 김영삼 역도의 통치기반을 허물어 버려야 할 겁니다. ­청년학생 여러분들은 이 모든 투쟁을 김영삼 타도투쟁으로 지향시켜 나감으로써 김영삼 역도의 파멸을 촉진시켜야 할 겁니다.
  • 김일성 노선 고수/평양방송 보도

    【내외】 북한은 18일 「우리식 사회주의」 및 전민족대단결 10개강령추진 등 김일성노선을 계속 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이날 평양방송을 통해 김일성 혁명위업계승의 근본요구가 『우리식 사회주의를 빛내어 나가는 것』 이라면서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우리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높이 발현시키기 위한 총진군운동을 다그쳐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방송은 이어 통일문제에 언급,『자주·평화·민족대단결 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높이 받들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기어이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김일성시대에 제시되었던 모든 「혁명위업」들이 김정일에 의해 계승 완성될 것이라고 강조함으로써 김정일체제하에서 북한의 통일방안 등 대내외정책노선에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 한국산 특수강재 닛산차,수입계획

    【도쿄 교도 연합】 일본의 닛산(일산)자동차사는 한국으로부터 자동차 부품 제조에 사용되는 특수 강재를 수입할 계획이라고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닛산 자동차가 오는 10월부터 기어,샤프트를 비롯,기타 부품제작을 위해 일본산 제품보다 15%에서 20% 가격이 저렴한 한국산 특수 강재를 수입할 것이라고 전하고 수입량은 한달에 1천t정도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또 마쓰다 자동차사도 한국산 특수 강재 수입을 검토중이라고 전하면서 국내에서 자재를 조달해오던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경비 절감을 위해 한국산 냉연강판 샘플을 수입할 움직임이라고 덧붙였다.
  • 원로 깍듯이 모시는 YS(청와대)

    제헌의원 출신인 윤치영옹은 올해 97세다.고령으로 시력·청력 모두가 좋지 않은 윤옹은 대통령이 입장하자 지팡이로 몸을 가누면서 의자에서 일어섰다. 대통령이 손을 잡으면서 『그냥 앉아 계시지요』하고 말렸다.윤옹은 그러나 기어코 일어서서 90도 가까이 몸을 숙이면서 『각하,초청해주셔서 영광입니다』하고 고마움을 표현했다.김영삼대통령이 14일 생존해 있는 제헌의원들을 위해 마련한 청와대 오찬장에서의 일이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지금까지 청와대에서 많은 행사를 치렀지만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의 지극함이 이만한 때도 드물었다』고 말했다.참석자들은 『격동의 시기에 잘 영도해주셔셔 감사하다』 『어려운 때인만큼 대통령의 신변안전에 특별히 신경을 써달라』고 덕담과 당부를 잊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윤옹에게 『3년만 있으면 백세가 되십니다.꼭 백세를 넘기시도록 하십시오』라고 축수를 했다.윤옹은 고령으로 주 2∼3회 건강체크를 받으면서 새벽에는 자동차를 이용해 가벼운 산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재욱옹(84)은 김대통령과 호형호제하던 사이다.지금도 영등포에서 치과병원을 개업하고 있다.윤옹의 차례가 되자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김대통령이 『지금도 치과를 운영하십니까』하고 물었다.윤옹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김대통령은 『참 환자가 불쌍하다.그런 연세로 어떻게 남의 이를 고친단 말입니까』하고 말을 받아 웃음이 일었다.다시 윤옹이 『얼굴보러 오는 사람들이지 병고치러 오는 사람들 같지는 않더라』고 하자 김대통령이 『그러면 그렇겠지요』라고 해 또 한차례 웃음이 일고 오찬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계속됐다. 이석주(91·이철승전의원의 작은아버지)·이상돈(83·와세다대 한국동창회장)·원장길(82·제헌동지회장)·김인식(81·제헌국회 보안법발의자)·정준(80·MRA한국본부장)·박상영옹(76·서예가)등은 젊은이 못지 않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학생파출소습격문제·남북정상회담추진·통일문제등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박옹은 이자리에서 「적벽부」를 적은 병풍을 김대통령에게 선물했다. 김대통령은 집안어른을 모시듯 깍듯한 예우를 아끼지 않았다.김대통령은 거동이 불편한 윤치영·이석주옹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손수 의자를 뒤로 물려 일어나기 쉽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정치원로들을 잘 모시기 위해 이날 청와대는 두가지 파격을 했다. 하나는 본관의 비상용 엘리베이터를 공개한 것이다.청와대는 외국원수들에게도 1층에서 2층 정상회담장으로 올라갈 때는 계단을 이용하게 하고 있다.비상용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것은 청와대비서관들도 잘 모른다.청와대측은 원로들에게 보통출입문처럼 치장돼 있는 이 비상엘리베이터를 제공했다. 김대통령은 제헌의원들에게 거마비도 내놨다.「3공」때부터 이어져온 제헌절관례에 따른 것이었다.다른 관례가 다 없어진 것을 생각하면 이 역시 파격이다.제헌의원들은 「한푼도 받지 않는 대통령」의 촌지가 궁금하고 소중한 듯 그자리에서 봉투를 풀어보고는 그대로 다시 싸서 안주머니에 넣었다. 원로가 많은 사회는 여유가 있고 안정되게 마련이다.청와대의 이날 파격은 원로가 대접받기를 바라는 김대통령의 평소 희망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었다. 지금까지우리나라에 생존해 있는 제헌의원은 모두 12명.이 가운데 노환으로 중대병원에 1년 넘게 입원중인 안순상옹(97),중풍에 걸려 위독한 조규갑옹(90),당뇨로 성야병원에 입원중인 조한백옹(87),호흡기질환으로 제주도에서 요양중인 민경식옹(75)은 이날 오찬에 참석하지 못해 청와대를 안타깝게 했다.
  • 북의 대외정책(김일성 사후:3)

    ◎중국식개방·대미­일 수교 주력할듯/지도체제 「단일」·「집단」 따라 정책 변화/내부동요 우려,당분간은 “현상유지” 김일성의 사망은 폐쇄와 고립으로 상징되는 북한의 대외정책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전기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다만 변화의 방향과 속도는 앞으로 북한의 권력구조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절대권력자의 공백에 따른 사회혼란을 막기 위해 북한은 우선 새로운 대외정책을 추구하기 보다는 대외관계의 안정을 통해 내부의 동요를 막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이를 위해 북한은 김일성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러 그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북한사회가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할 것으로 관측된다.또 활발한 초청·방문외교활동을 추진하면서 김정일체제에 대한 국제적 승인을 유도할 것에 틀림 없다.남북정상회담및 북·미고위급회담에 집착하는 것도 실질적인 성과보다는 체제안정의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조치는 체제안정을 위한 긴급처방의 성격이 짙다.장기적으로 북한이 어떤 대외정책을 추진할 것인지는 향후 권력체제의 향배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치열하게 전개될 권력투쟁과정에서 김정일이 절대권력을 장악하는데 성공,단일지도체제를 세우게 된다면 북한은 평화·자주·친선이라는 주체외교노선의 기본이념 아래 김일성의 외교노선을 지속하면서 점진적인 대외관계 개선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과의 협력강화를 최대당면과제로 삼아 적극적인 관계개선에 나설게 확실하다.국제사회의 유일한 후견인인 데다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절대적인 존재여서 중국과의 관계강화는 북한권력의 장래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중국 역시 시장경제확대를 위해서는 한반도의 안정이 긴요한 만큼 대북지원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중국이 재빨리 김정일체제를 승인하고 나선 것도 북한의 혼란이 중국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다만 김정일체제에서의 북·중관계는 과거 김일성과 등소평사이에 이뤄진 인간적 우호관계에 이르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권력기반의 안정을 위해다소 불편해진 러시아와의 관계개선도 서두를 전망이다. 대미관계에 있어서도 진행중인 북·미고위급회담을 통해 핵문제를 적절히 활용,미국과의 수교를 앞당기려 할 것으로 분석된다.즉 김정일체제가 확고히 구축될 때까지 핵개발의혹을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협상을 지속시켜 인권문제등을 거론않는 상태에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끌어내려 할 것이다.아울러 무산된 남북정상회담을 조속히 재개해 남북관계를 정상화한 뒤 미국과의 정상회담도 서둘러 추진하려 할 공산이 크다. 일본과의 관계개선은 미국과의 협상진척상황과 보조를 맞춰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일본 사회당 정권의 출범을 북·일관계개선의 호기로 삼아 조총련등을 적극 활용,일본과의 수교회담을 추진할 가능성도 높다. 한편 김정일의 지배체제가 확고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강경파와 온건파가 공존하는 집단지도체제가 형성된다면 북한의 대외정책은 상당한 혼란이 따를 것으로 분석된다.특히 강경론자들이 득세하거나 집권하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대외개방정책이 후퇴할 가능성마저 배제하기어렵다.김정일이 최고권력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집단지도체제가 구성된다면 강경파의 원칙론을 의식,명분을 앞세운 대서방외교정책을 전개,국제사회에서 경직된 자세를 보일 수도 있다.게다가 핵개발을 가속화 함으로써 국제적인 압력에 정면대처하려는 움직임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유학파 출신의 테크노크라트들이 권력의 핵심에 대거 포진하게 된다면 북한의 개혁·개방속도는 가일층 빨라질 수 있을 전망이다.이들 온건·개방주의자들이 실권을 장악하는 단계에 이른다면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북한의 대외정책노선이 완전히 수정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포기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앞으로 몇년동안 북한의 대외정책은 불안전한 권력구조 때문에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다만 장기적으로 볼 때 폐쇄체제에서 오는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개방정책을 추진하지 않을수 없으리라는 것이 관계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 “구한말∼일제 농촌 변화과정 생생”

    ◎구례 지주 유씨가의 일기 농촌경제연서 분석/할아버지와 손자가 85년간 쓴 농업일기/당시 작목구조·농사방식 연구에 큰 도움 구한말에서 일제시대에 이르는 기간 우리 농촌경제의 변동과정이 할아버지와 손자에 걸쳐 쓰여진 85년 동안의 일기를 통해 연구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두순 부연구위원과 박석두 책임연구원은 「한말·일제하 양반 소지주가의 농업경영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동의 지주인 유씨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일기와 각종 문서를 이용해 당시의 경제적 상황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이다. 연구에 이용된 일기는 유제양(1846∼1922년)이 1851년부터 1922년까지 모두 72년 동안 쓴 「시언」과 그의 손자인 유형업(1886∼1944년)이 할아버지의 권유로 13살 때부터 1936년까지 쓴 「기어」.또 금전출납부인 「당용록」과 연도별 소작료 수취부인 「추수책」,노동력 사역부인 「전가일기」 및 「농가일기」,식량소비를 기재한 「양미책」 등 농가경영요소가 망라된 가전문서들이 분석됐다. 연구에 따르면 유씨가는 17 93년쯤 논·밭을 합쳐 8백83두락(22만3천4백여평)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1백년뒤에는 분할상속과 매각 등으로 1백62두락(2만5천평) 정도로 줄어들었다.이후 19 00년에는 1백두 미만으로 축소됐는데 직접적인 원인은 친족의 방탕이나 횡령 질병등으로 인한 매각 때문이었다. 당시는 조선이 일제의 강제농정에 휩쓸린 시기였다.일제는 조선을 일본이 필요로 하는 식량 및 원료농산물의 생산기지로 만들려 농업 방식을 일본식으로 바꿀 것을 강요했다.이에따라 유씨가의 작목구조와 농사방식도 크게 바뀌었다.「군청에서 양뽕나무 150그루를 보내 1백10그루를 뒷 채소밭에 심었다」(1911년 3월25일)는 일기에서 보듯 일본산 뽕나무로 종자를 개량했고 이어 재래면의 재배를 금지함에 따라 면화재배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조선총독부는 일본 쌀시장에서 인기높은 품종을 강압적으로 보급했다.미곡증산사업의 목표가 일본으로 가져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신품종이라는 미모의 종자가 여러 군데에서 얼어 죽었다」(1931년)는 기록처럼 일본품종은병해와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재래종보다 휠씬 심했다. 농사환경의 변화에 따라 유씨가가 화학비료를 처음 구입한 것은 1930년이다.일본 괭이와 왜낫을 산 것은 1912년이었으며 1916년에는 탈곡기구를 샀다.또 1937년부터 벼를 도정할 때는 물레방아 대신 동력 정미기를 썼다. 유씨가는 한해 2백∼4백50명의 노동력을 외부에서 조달했다.노동력 조달 방법은 호역와 매고·머슴의 세가지로 크게 구분됐다.호역은 농토를 빌려주고 지대로 춘추 각 4일의 노동을 제공받는 것이며 매고는 호역으로 충당되지 못한 노동력을 현금 또는 현물을 주고 쓰는 것이다.유씨가는 1900년대 초에는 호역으로 대부분의 농사일을 하고 부족노동력을 매고로 보충했으나 1920년쯤에는 소작으로 전환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이 연구에 쓰여진 유씨가의 문서를 이용해 앞으로 「류씨가의 수입지출구조 및 생활실태」「토지소유 및 지세의 변화에 관한 연구」「오미동의 사회구조와 사회조직」 등을 연차적으로 연구해 갈 계획이다.
  • 장애걸인 월수 평균 2백여만원(조약돌)

    ◎동업자에 3년간 7천만원 뜯겨 ○…서울 구로경찰서는 30일 자신도 장애인이면서 자신보다 장애정도가 심한 또다른 장애인에게 구걸을 시키며 한달 1백60만∼1백80만원씩 3년동안 7천여만원을 가로챈 손영무씨(36·경기도 부천시 원미동 122)를 상습갈취 혐의로 구속. 경찰조사결과 오른쪽 다리를 저는 손씨는 91년 7월 뇌성마비로 하반신을 못쓰는 유모씨(40)를 충남 논산에서 데려와 부천에 있는 여관에서 잠을 재우고 자신의 승용차로 서울 오류역이나 인천·부평역등 「근무지」로 구걸을 하도록 출퇴근시켜주는 대가로 유씨의 한달 수입 2백여만원중 여관비·식비 20만∼4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부당하게 챙겨왔다는 것. 경찰수사는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한 시민이 『오류역 부근에서 스피커를 틀어놓고 길바닥을 기어다니며 구걸하는 뇌성마비 장애인이 아침·저녁으로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닌다』는 내용을 경찰에 알려온 뒤 시작. 지난달 28일 밤 손씨를 연행한 경찰은 29일 상오 비상연락망을 통해 경찰서로 모여든 「대한성인장애인복지회」 소속 장애인 30여명으로부터 형사반장이 손을 물어뜯기는등 한동안 곤욕을 치르기도. 손씨가 구속되자 정작 피해자인 유씨는 『사실 손씨가 나를 괴롭히긴 했지만 그사람이 없으면 나도 움직일수가 없는데…』라며 오히려 안타까운 표정.
  • 채명신장군이 말하는 「우리를 지키는 길」

    ◎“국민 깨어있어야 불행 막는다”/“유사시 나부터 희생” 각오로 뭉쳐야/군에 따뜻한 애정과 격려 절실한 때/탄광속 학살 등 공산군의 잔학행위 지금도 생생… 북 평화손짓 늘 경계를 최근 북한핵문제로 한반도 정세가 극히 미묘해 지면서 올해 6·25는 예년과 달리 새로운 의미로 다가서고 있다.6·25와 월남전에 참전한 「국군의 산 역사」 채명신 전주월한국군사령관(69·예비역중장)역시 이번 6·25를 맞아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나 않을까 며칠째 밤잠을 설치고 있다.채장군은 황해 곡산 출신으로 46년「같이 일하자」는 김일성의 권유를 뿌리치고 공산치하에서 1년반만에 남하,47년 소위로 임관(육사5기)한뒤 야전을 누빈 맹장.6·25 44돌을 앞두고 자그마한 정원이 깔끔하게 가꿔져 있는 용산구 후암동55 자택에서 채장군을 만났다. ­6·25 개전 당시 상황을 말씀해주십시오. ▲당시 북한병력은 20만여명으로 한국의 2배에 이르렀습니다.공산군은 일요일 새벽 4시 주공격 방면을 의정부·개성일대로 삼고 최신형 T34전차 1백50여대를 집중시켜 남침에 나섰습니다.한국은 이 지역을 7사단이 맡고 있었으나 예하 1개연대는 온양에 위치해 2개연대만이 방어를 하고 있었습니다.더욱이 5월이후 비상경계상태에 있던 군은 전쟁발발 며칠전 경계령을 해제,농촌병사들은 농번기일손돕기를 위한 휴가중이어서 전후방 병력은 평소 절반수준이었습니다.또 연대장 이상급 장교들은 24일 저녁 서울 육군본부 장교클럽 낙성식 축하 댄스파티에 참석,새벽녘까지 술을 마시고 취해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댄스파티에 만취 특히 전방에서 새벽 6시쯤 국방장관에게 전화로 비상을 알리려 했으나 보좌관이 『장관님은 일요일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전화를 연결시켜 주지 않았으며 육군총장집에서도 『주무시고 있어 깨울 수 없다』고 전화를 끊는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병사들의 사기등 의식은 어땠는지요. ▲전쟁초기 북한군의 사기가 남한에 비해 훨씬 높았습니다.그러나 대한민국의 운이 좋아 미국이 전쟁발발 한달여만에 조속히 참전하게 됐으며 북한이 3일만인 28일 서울을 점령한뒤 이상하게 7월3일까지 더이상 남하하지않고 시간을 허송세월해 아직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 남아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미군의 참전이후 국군도 사기가 충천해 북한을 다시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6·25당시 소대장과 중대장·대대장으로 직접 전투를 벌였는데 공산군에 대해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공산군은 참으로 잔혹했습니다.국군이나 민간인은 물론 동료전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북한군에 밀리다 반격에 나설 당시 대대장으로 죽령점령을 위해 전투를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치열한 격전끝에 죽령을 확보했는데 죽령터널안에서 시꺼먼 연기가 치솟으며 악귀형상을 한 사람들이 엉금엉금 기어나오고 있었어요.처참한 전쟁에 단련된 부대원들도 이들을 진짜 귀신으로 생각하고 깜짝 놀랐습니다.가까이 다가가 확인해보니 이들은 북한군 부상병들이었습니다.터널을 야전병원 겸 유류저장창고로 사용하던 북한군이 후퇴하기 직전 부상병이 잔뜩 있는 그 곳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터널 입구에 있던 부상병들이 살겠다는 의지로 화상을 입고 피범벅이 된채 간신히 기어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전장병들은 통곡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때 북진이 늦어지면 그만큼 동포들이 흘리는 피가 많아진다고 말하던 일이 생각납니다.탄광등에 갇혀 떼죽음을 당한 동포들도 엄청났습니다. ○역사교훈 배워야 ­최근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는데 전쟁을 막기 위해 국민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될까요. ▲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는 영세중립국 스위스를 침공하려 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스위스 국민들은 일치단결해 전쟁이 나면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울 것임을 행동으로 히틀러에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한마디로 스위스 국민들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화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경험으로 보아 장병정신무장의 지름길이 무엇입니까. ▲장병들이 의식은 몇시간의 정훈교육이나 높은 계급자의 훈시로 절대 전환되지 않습니다.경험을 얘기하면 4·3폭동때 처음 일선 소대장으로 제주에 부임하자 모든 소대원의 눈빛이 적대감으로 가득 차있었고 중대장은 이미 나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였습니다.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 밤새 기도하다 새벽녘에 『좋다.그들사이로 뛰어들자』고 결심하고 숙소를 소대막사로 옮겼습니다.아픈 병사를 보면 죽을 끓여다 주며 간호하고 잠자다 모포를 걷어차는 사람은 모포를 덮어주고 해서 친동생처럼 병사들을 대했습니다. ○「골육지정」 필요 그 결과 일주일만에 병사들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당시 중대장이 저격병을 보냈으나 몰래 신변보호를 해주던 소대원들이 그들을 먼저 쏴 목숨을 건진 일도 있었습니다.그때 부대통솔은 골육지정임을 깨달았습니다.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전쟁은 병사들이 하는 것이고 병사들은 소대장·중대장을 위해 싸웁니다.그 것이 전력입니다.여순사건을 일으킨 반란군 3천명도 모두 빨갱이는 아니었습니다.주동자들이 그렇게 이끌었습니다.그러나 전제조건이 하나 있습니다.전쟁에서 다친 사람들을 돌봐줘야 합니다.월남전 고엽제후유증환자들이 보상을 받으려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을 냉대하면 누가 전쟁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겠습니까.다치면 나만손해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북한의 핵이 걱정이 아니라 위기때 전방 소·중대장과 병사들이 얼마나 싸워줄 것인가를 염려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김영삼대통령과 김일성주석간의 정상회담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주십시오. ▲며칠전만해도 김영삼대통령에게 험담을 퍼붓던 김일성이 태도를 하루아침에 바꾼 것은 놀랄만한 일입니다.만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입니다.그러나 지금까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해온 김일성이 회담을 갑자기 제의해온 것은 유엔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평화제스처로서 미국으로부터 호의적 반응을 얻어내자는 속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앞으로 진전될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경계를 흩뜨리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채장군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우리 민족은 모두 망하게 된다』며 국민이 단결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거듭 말했다.또한 요즘 군을 나쁜 존재로 보는 시각에 대해 0.01%만이 잘못된 사람이라면서 언론의 바른 역사인식이 전쟁을 막는데 중요하다고 몇차례씩 강조했다.노장군이 제시한 전쟁방지의길은 로마의 격언이었다.『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 북 「28일 예비접촉」 수용 정부 반응

    ◎신중한 환영… “낙관은 이르다”/문장 정중하고 담백… 징조 좋다/청와대/안보회의 즉각 소집… 빠른 대응/통일원/“전폭수용 뜻밖”… 예상의제 점검/외무부 정부 관련 부처들은 22일 북한측이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에 우리제안 그대로 응해오자 일제히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북한의 진의는 더 두고 보아야 한다는 신중한 자세이다. ▷청와대◁ ○…청와대는 북한의 답신이 관례보다 빠르고,문장이 정중하면서도 담백하다는 점을 들어 좋은 징조로 해석. 청와대측이 답신의 도착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물은 것은 『내용이 긴가,짧은가』였다.관례상 내용이 길면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면서 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포함된 것이고,짧다면 수락일 때가 많은 탓.이번 답신은 유난히 짧은 문체로 실무회담에 호응. 청와대의 한 당국자는 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에 대해 『가능성이 커졌다』고 풀이.동시에 이날 답신의 분위기에 비추어 실무접촉도 몇차례 끌지 않고 28일 단한번 만남으로 정상회담이 결정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판단하는 눈치.물론 여전히더 지켜봐야 한다는 경계심은 풀지 않은 상태. 청와대는 이번의 응답이 아직 북한의진의를 읽게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정상회담을 할 생각이 없더라도 일단은 카터전미국대통령을 통한 일이었으므로 초기에는 긍정반응을 보일 것으로 봤기 때문. 청와대의 다른 당국자는 만약 북한주석 김일성이 정상회담을 할 뜻을 갖고 있다면 북한군부의 움직임이 하나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관측.한국과의 화해로 입지가 좁아지는 북한군부가 회담 성사를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총리실·외무부◁ ○…송영대통일원차관이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보고한대로 이번주 안에 북한측의 답신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지는 몰랐다는 반응. 또 날짜를 바꿔 수정제의하던 지금까지의 행태에서 벗어나 우리측이 제시한 28일 실무접촉을 그대로 수용한데 대해 뜻밖이라는 표정들. 김시형행정조정실장은 전통문 접수 즉시 화력발전소 준공식 참석차 충남 보령에 내려간 이영덕국무총리에게 이같은 사실을 보고하는 한편 통일원등과 고위전략회의 개최등을 협의. ○…외무부는 북한의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 수락사실이 알려지자 북한핵문제등 예비회담에서 논의될 예상 의제들을 점검하느라 분주. 외무부측은 남북정상회담과 미국·북한의 3단계회담을 별개로 진행시킨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방침이라고 밝히면서도 미국과 북한의 논의가 남북정상회담의 진전사항을 앞서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 ▷통일원◁ ○…통일원은 22일 하오 북측으로부터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에 나오겠다는 전화통지문을 받자 이홍구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이 23일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를 소집키로 하는 등 발빠른 대응. 이부총리는 이날 낮 시내 모음식점에서 과거 남북대화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전현직 인사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의견을 수렴하다 보고를 받고 즉시 송영대차관에게 예비접촉 대책준비를 지시. 이부총리는 예비접촉이 성공적으로 끝날 것인가라는 물음에 『북한의 최고위측이 먼저 만나자고 나선 것 아니냐』며 『만나는 것을 거부할 이유도 없고 기분 나쁘게 생각할 필요도없다』고만 언급. 송차관은 북측이 보낸 전통문과 관련한 배경설명을 통해 『우리측 제의에 대한 북측의 회신내용으로 보아 이번에는 북측도 정상회담을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일단 긍정 평가. ◎예비접촉 북대표 누가 될까/김정일측근인 김용순 포함 유력/황장엽·안병수·박춘길 등 「대남전문가」 거명 북한이 22일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28일 예비접촉에 응해옴으로써 북측 예비접촉 대표가 누가 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왜냐하면 북측 대표진용이 어떻게 짜여지느냐에 따라 정상회담에 대한 북측의 실천의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측은 이날 부총리급을 수석대표로 하는 3명의 대표단으로 예비접촉을 갖자는 우리측 제안을 수락했다. 따라서 우리식 정치·행정체제로 보면 수석대표는 정무원 부총리 중에 외교부장을 겸하고 있는 김영남이 맡을 가능성이 크다.김달현부총리가 지난해 경제실패의 책임을 지고 좌천됨에 따라 정무원내 대남및 외교통을 달리 찾기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기본적으로 「정」보다는 「당」우위 사회라는 점과 과거의 관례를 감안할 경우 당쪽의 인물이 낙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이런 관점에서 당비서 중에서 김용순·윤기복·황장엽·최태복 등이 거명되고 있다. 과거 오랜기간 대남 총책을 역임했으나 활동이 뜸해진 윤기복 당비서겸 경제정책위원장과 주체사상의 대표적 이론가로 국제담당비서인 황장엽은 김일성의 신임이 두텁다는 점에서 발탁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이다.현재 대남 비서인 김용순은 김정일의 핵심측근으로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장을 겸임하고 있어 수석대표가 아닐 경우에도 3명의 대표 가운데는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또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이나 고위급회담 등에서 보여준 과거의 관행으로 볼 때 노동당의 전위조직인 조평통 부위원장들이 대표로 나올 가능성이 많다.예컨대 북한은 지난해부터 올3월까지 계속된 특사교환을 위한 판문점접촉에 우리측 송영대 통일원차관의 카운터파트로 박영수 조평통서기국 부국장을 내보낸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배경으로 보면 임춘길·안병수·전금철·한시해 등이 후보로 꼽힌다.임춘길은 현재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으로 있고,안병수는 고위급회담 대변인을 역임했다는 점을 감안해 3명의 대표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다만 오랫동안 대남사업에 종사했던 전금철과 한시해는 지난해 김부자의 눈밖에 나는 바람에 근신중이라는 설도 있어 일단 회의적이다. 이밖에 남북대화의 산파역이었던 김영주부주석과 지난해 일약 부주석으로 발탁된 김병식도 대표반열에 올려 볼 수 있으나 고령에다 우리측 대표들과의 격을 고려할 때 그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 바그다드·암만/고도 바그다드(아랍서 지중해까지:4)

    ◎라시드가엔 압바스왕조 체취 “물씬”/“세계최초 대학” 무스탄시리아 흑벽돌 건물은 정적속에 잠자는듯 「한번 티그리스 강물을 마신 사람은 다시 티그리스로 돌아오게 된다」 바그다드에는 이런 속설이 있다.이것은 그동안 이 도시를 침탈한 많은 정복자들이 자신들의 권토중래를 호언하는 뜻으로 퍼뜨린 말인지,혹은 단순히 바그다드의 매력만을 강조한 말인지 알 수가 없다.바그다드에는 많은 침입자들의 발자국이 남아있다.1258년 몽골군의 침략으로 압바스왕조의 화려했던 수도 바그다드는 모조리 불타버렸고 1393년엔 다시 티무르 세력에 의해,1534년엔 오스만 터키군단에 의해 파괴당한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바그다드에 와서 압바스왕조의 화려한 문화를 고스란히 만나겠다는 사람은 분명 실망할 것이다.그러나 바그다드 중심부에 자리잡은 라시드거리에 가보면 압바스시대의 다양한 흔적을 만날수가 있다. 라시드거리는 압바스시대의 건물들과 풍물이 비교적 잘 보존된 유일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1359년 건축된 대상숙(대상숙)칸 마르잔,세계최초의대학이라 일컬어지는 무스탄시리아대학건물,구리 주전자등 전통 생활용품을 직접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몰려있는 바자,그밖에 민속박물관과 14세기에 건축된 모스크도 있다. ○침입자들에 파손 대상숙 칸 마르잔은 1935년 복구되어 한때 박물관으로 쓰였으나 지금은 고급레스토랑으로 일반에게 개방되고 있었다.마침 점심때라 이왕이면 유서깊은 식당의 분위기와 맛을 음미하자는 생각으로 칸 마르잔을 찾아 들어갔다.침침한 계단을 내려가니 거대한 극장같은 홀 내부가 나왔다.마치 오늘의 극장식당 같은 구조를 갖고 있었다.식탁은 많은데 손님은 두세팀 뿐이고 머리에 하얀 캡을 쓴 종업원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메뉴를 청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그러나 종업원은 친절했고 인내심있게 기다려 주문을 받아갔다.이 식당은 바그다드 명물로 알려져 고위층들사이에는 외국의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곳으로도 이용되는 모양이다.그런데 식탁에 오른 까밥과 코르사,채소 샐러드의 맛에는 심오한 역사의 풍취같은 것은 없고 서민들 식당에서맛본 음식들과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다만 식당내부의 풍경에는 볼거리가 많았다.캐러밴의 숙소이자 거래처로 사용되던 시절에는 1층에 방이 스물두개,2층에 스물세개나 있었다고 한다.악사들이 연주하는 무대도 별도로 있는데 지금도 큰 연회가 있을때에는 음악이 연주된다.이 건물의 역사를 보관하고 알려주는 방이 한쪽 구석에 두개 마련되어 있는데 그곳에 대상들이 사용하던 카펫,구리로 만든 촛대와 주전자,복장등이 진열되어 있었다.그러나 대부분 복제품이 분명했다. ○음식점으로 사용 식사를 끝내고 종업원들의 정중한 전송을 받으며 밖으로 나왔는데 햇빛이 유난히 뜨거웠다.칸 마르잔에서는 아마 그곳을 찾아오는 모든 손님에게 귀빈대우를 해주는 모양이다.어쨌거나 기분은 좋았다.식당에서 몇걸음 걷지않았는데 검은 차드르를 둘러 쓴 노파가 앞길을 막고 앉아 두손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이런 모습을 처음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중심가의 큰거리에서는 볼수 없지만 시장골목에서는 구걸하는 사람과 흔히 마주치곤 했다.대부분 여인들이다.이들은 차드르를 썼지만 형식일 뿐 얼굴을 모두 드러내고 있다.처음에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구걸이 허용되나하는 의문을 느꼈다.그러나 차츰 생각이 바뀌었다.그래도 구걸의 자유가 허용되는걸 보면 아직 이 사회에는 따뜻한 구석이 있다는 걸 알수 있었다.상오에 호텔에서 나올때 아리따운 가이드 아가씨가 시내관광에 동행하겠다고 나섰다.여행사 가이드가 아니고 물론 문화부소속 직원이다. 『보여줘야 할 곳과 보여줄 수 없는 곳』이 그들에겐 분명있는 모양이다.보여줄 수 없는 것이 뭘까? 그런 궁금증을 느꼈는데 그 의문 한가지가 풀린 것 같았다.그 아가씨는 차에 좌석이 모자라 동행을 포기하고 말았었다. 시장골목에서 슈하다 다리쪽으로 걸어나오면 유명한 무스탄시리아대학 건물이 있다.입구에는 터번을 쓴 노인이 책상 하나를 놓고 지키고 있었다.이곳은 유료관람으로 입장권을 팔았다.그러나 넓지 않은 뜰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고 아치형 출입구가 유난히 많은 흙벽돌건물은 정적속에 잠자고 있었다.이 대학은 압바스왕조 37대 칼리프인 알 무스탄시르 빌라(1226∼1242년)에 의해 세워졌는데 당시엔 코란을 강의하는 신학대학이었으나 지금은 같은 이름으로 이라크 제일의 종합대학이 되어있다.건물도 물론 별도로 지어 사용하고 이곳은 다만 유적으로 남겨놓았을 뿐이었다.바그다드에 처음 왔을때 호텔에서 만났던 전직 주한대사 가잘씨는 동행했던 딸 로라가 바로 유서깊은 무스탄시리아 대학생이라고 우리에게 자랑했다.로라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준 아가씨였다.그녀는 예쁘고 특히 머리가 우수했는데 내가봤던 누구보다 로라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라시드거리의 시장에는 없는 물건이 없었다.시장은 넓은 구역을 차지하고 있고 현대식 전자제품 가게에서 전통 향료 가게까지 그 구색도 아주 다양했다.곡물가게에는 쌀과 밀이 가득 쌓여있고 특히 대추야자 열매를 비롯,이름도 알수 없는 여러종류의 열매를 팔고 있는게 흥미로웠다. ○상점엔 손님없어 구두가게의 구두들은 하나같이 검은색 뿐인데 품질은 썩 좋지 않았다.옷가게에 걸린 옷들도 가짓수는 많지만 여행자의 눈을 끌만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그러나 일차 생활용품들이 비교적 풍부하게 있다는 사실은 조금은 뜻밖이었다.황금사원이 있는 바그다드 북부지역 거리에는 금은방과 고급 잡화점들이 즐비하다.거기에도 금과 은,각종 가죽제품과 안경,의류들이 풍부하게 있었다.특히 금이 많았고 가격도 싼 편이었다.이라크 관리들은 경제봉쇄 4년째 접어들어 경제가 말이 아니라고 침통하게 말했었다.그것은 외교용 엄살이었을까? 시장에 가득 쌓인 곡식과 잡화를 보고 이런 의문을 느꼈다.그러나 자세히 보면 가게와 상인은 많은데 손님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걸 알 수가 있다.검은옷과 차드르를 두른 여인들이 드문드문 가게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물건을 흥정하거나 사는 모습은 보기어렵다.돈이 없는 것이다.이라크는 인플레가 한창인데 그렇다면 그많은 돈은 어디로 갔을까? 그걸 당장 알수 없지만 서민들의 주머니가 비어있다는 증거는 여러곳에서 확인되었다.바빌론 가는 길에 우리를 안내했던 카셉은 자기봉급이 4백20디나르라고 말해줬다.이것은 1달러 조금 넘는 돈이다. 그런가하면 마수르호텔의 나이트클럽에는 3달러짜리 입장권을 여러장 사서 친구와 걸프랜드까지 데려와 1달러짜리 맥주를 맘껏 마셔가며 새벽까지 춤을 추는 젊은이들도 있었다.그들의 거침없고 분방한 행동은 자본주의 사회의 부유한 자제들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었다.계급은 어디에나 있다는걸 여기서도 실감할수 있었다. ○이교도 입장 막아 황금사원은 바그다드에 많이 남아있는 여러 모스크가운데서도 독특한 건축양식과 두명의 이맘(회교 고승)이 묻힌 시아파의 성지로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바그다드 북부에 있는 이 사원의 금빛 찬란한 두개의 돔과 네개의 첨탑은 멀리서도 잘 바라다보인다.1515년에 세워진 이 사원에는 무사 알 가딤과 무하마드 알 자와드,이 두명의 이맘의 무덤을 찾는 참배객이 늘 그치지 않는다.우리가 찾아갔던 저녁나절에도 사원입구가 있는 광장에는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입장전에 입구 땅바닥에 입을 맞추고 들어가는 열성파도 눈에 띄었다.아무나 들어가는줄만 알고 입구로 다가서는데 흰 터번을 쓴 건장한 중년이 널찍한 손바닥으로 가슴을 막아버린다.이런저런 시비끝에 이교도는 입장사절이란 취지를 전달받았다.회교,특히 시아파가 매우 배타적이란 말은 들었지만 막상 입구에서 거절당하자 그들과 우리사이에 건너 뛸수 없는 높은벽이 가로놓여 있는걸 실감했다.바그다드 주요 일간지인 줄부리아신문의 기자는 호텔로 와서 인터뷰를 청하면서 다짜고짜 물었었다.『바그다드에 오신 목적이 뭡니까?』라고.그때 답변이 궁해 한참 망설였던 기억이 떠올랐다.종교적 일체감을 확인하기 위해? 정치적 동지의 투쟁에 동참하기 위해? 다만 관광만을 즐기려는 목적으로? 그 어느쪽도 물론 아니다.답변은 자연 길어지고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입장을 거부당하고 황금사원을 떠나면서 내 마음은 다시 그때처럼 착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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