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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386)-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2)

    儒林(386)-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2)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2) 맹자가 태어난 것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기원전 372년경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372년은 공자가 죽은 107년 후. 맹자의 고향은 사기에 기록된 대로 추(鄒). 오늘날 산둥성 퉈저우부( 州府) 쩌우현(鄒縣)이란 곳이다. 맹자의 생애는 공자와 달리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사마천도 사기에서 공자에 대해서는 ‘공자세가’를 통해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지만, 왠지 맹자에 대해서는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맹자의 저서를 읽고 양 혜왕이 맹자에게 ‘어떤 수단으로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소.’하고 물은 대답에 접할 때마다 무심코 책을 놓고 ‘아, 그렇구나. 이득이란 실로 난(亂)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하고 탄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자(夫子:공자)가 거의 ‘이(利:이득)’에 관하여 말하지 않은 것도 항상 난의 근원을 막으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한다. ‘이득을 보이려 일을 하면 원한이 많다.’ 위는 천자에서 아래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이득을 좋아하는 폐단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사마천의 기록은 바로 맹자의 첫 장에 나오는 ‘양혜왕장구상(梁惠王章句上)’의 내용을 인용한 말 . 예로부터 이를 얻기보다는 먼저 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자신의 저서 첫 장에 올려놓은 맹자의 태도에 대해 사마천은 이처럼 탄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사마천은 맹자에 대해 다만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맹가는 추나라 사람.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인에 나아가 배웠다. 제 선왕(齊宣王)을 섬기려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양나라로 갔다. 양 혜왕은 맹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를 친견해 보니 하는 말들이 의미가 너무 멀어서 현실사정에 어둡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당시에 진(秦)나라는 상군(商君)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에 힘쓰고, 초(楚)와 위(魏)나라는 오기(吳起)를 등용하여 싸움에 이기어 적을 꺾고, 또 제 선왕은 손자(孫子)와 전기(田忌) 등을 등용하여 제후를 동으로 하여 제나라에 조공을 바치게 하는 등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연횡(合從連衡)에 미쳐 날뛰어 전쟁하고 공격하는 것을 현명한 일로 생각하던 난세였다. 그런데 맹가는 오로지 요순의 태평시대와 삼대(夏,殷,周)의 제왕의 덕을 부르짖어 시세의 요구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 말을 하여도 용납되지 않았다. 물러와서 제자 만장(萬章) 등과 함께 시경(詩經), 서경(書經) 등을 강술하고 중니(仲尼:공자)의 뜻한 것을 펴서 맹자(孟子) 7편을 저술하였다.” 이상이 사마천이 기록한 맹자에 대한 전문의 내용이다.‘공자세가’에 기록된 공자의 생애에 비하면 형편없이 짧은 단편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음인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을 통해 유추해 보면 맹자 역시 공자와 매우 비슷한 생애를 보냈음을 알 수가 있다.
  •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 / 줄기세포와 생명윤리(상)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 / 줄기세포와 생명윤리(상)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가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획기적인 연구성과를 내놓자 생명윤리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황 교수는 줄기세포 배양에 반대하고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와 지난 달 15일 만났다.‘생명윤리’를 주제로 한 학계와 종교계의 첫 만남이다. 정 주교는 황 교수에게 “배아줄기세포 활용보다는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하는 게 윤리·도덕적으로 낫다는 점을 유념해 달라.”고 말했다. 수정은 인간 생명의 시작인데 배아 파괴는 인간 파괴이며, 황 교수의 줄기세포를 인간배아로 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게 천주교측의 논리다. 그러나 황 교수는 “난치환자로부터 얻은 피부세포를 체세포 핵이식이라는 기술로 유도한 줄기세포는 수정의 과정을 일절 거치지 않았고 착상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정 주교에게 설명했다.●줄기세포란 무엇? 세포는 생물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다. 세포 기관 중 유전정보를 가진 중요한 기관이 핵이다. 핵에는 염색체가 있는데 염색체에는 유전정보를 가진 DNA가 들어 있다. 미토콘드리아라도 DNA를 가지고 있다. 세포는 체세포와 생식세포로 나눌 수 있다. 체세포는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이고 정자와 난자가 생식세포다. 줄기세포(Stem Cell)는 간이나 심장 등 장기를 형성하기 직전 단계의 세포다. 커다란 나무줄기가 잔가지를 뻗어내듯이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로 분화될 수 있는 세포라는 뜻에서 줄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면 수정란이 되는데 14일이 안된 배아기의 줄기세포를 배아줄기세포라고 한다. 이는 모든 신체 장기로 분화해 성장하는 ‘만능세포’다.1개의 세포에서 210종의 인체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뼈와 간·혈액 등 장기의 세포로 분화되기 직전의 원시세포는 성체줄기세포라 한다. 제대혈(탯줄 혈액)이나 어른의 골수와 혈액, 태반에 들어있다.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이미 성장한 조직에서 추출하기 때문에 윤리논쟁을 피할 수 있다. ●생식세포 복제, 체세포 복제 생식세포 복제란 난자와 정자가 결합된 수정란의 분할과정에 있는 난세포(할구)를 공여핵세포로 이용하는 복제방법이다. 현재 있는 생명체를 복제하는 것은 아니고 태어날 생명체를 복제하는 것이다. 수정란이 8세포로 분열하였을 때 세포를 감싸고 있는 막을 단백질 분해 효소로 녹여서 세포를 각각 분리한다. 분리된 세포를 핵을 제거한 다른 난자에 넣는 핵치환을 한다. 이렇게 해서 8개의 새 수정란을 얻어 염색체가 동일한 8개의 생물을 복제할 수 있다. 체세포 복제는 생식세포인 난자의 핵을 제거하고 피부 등 다른 체세포의 핵을 분리한 뒤 난자에 넣어 배양하는 방법으로 유전정보가 똑같은 생물로 복제할 수 있다. 복제 양 돌리를 탄생시킨 것이 이 방법이다. 체세포 복제 수정란을 배반포기 단계(보통 4∼5일)까지 배양, 세포덩어리를 떼어내 배아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 사람의 복제수정란을 자궁에 이식하면 인간이 복제된다. 과학자들은 인간복제는 물론 허용해서는 안되지만 배아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얻기 위한 치료용 인간 체세포복제(배아복제)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제부터 인간인가 수정란은 두배수씩 세포분열을 해 둘, 넷, 여덟개로 세포가 늘어난다. 한번 더 분열을 해 16할구 세포가 되면 딸기 모양이 된다. 이때가 14일쯤 되는 시점으로 이후 각각의 세포는 구체적인 신체기관으로 성장하게 된다. 즉,14일이 안된 배아기의 만능세포가 줄기세포이어서 14일이 인간 개체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기준시점이 된다고 과학자들은 주장한다. 과학자들이 14일 이전 단계의 세포들을 조작해 원하는 장기로 발육시켜 치료에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수정란은 수정된 즉시 한 영혼을 가진 생명으로서 태아로 간주한다.‘인간이 될 것은 이미 인간’이라는 논리다. 이것이 생명윤리 논쟁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복제와 줄기세포 연구과정 동물의 태아를 이용한 복제는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1902년 스위스의 스페만은 도롱뇽의 수정란이 두개의 세포로 분리되는 순간 갓난 아기의 머리카락으로 갈라놓아 유전적으로 똑같은 두 도롱뇽으로 길러냈다.50년 뒤인 1952년 미국의 브릭스와 킹이 개구리 수정난의 핵을 제거하고 개구리 태아에서 추출한 핵을 넣어 올챙이로 성장시켰다.1962년 영국의 거든은 개구리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다른 올챙이 창자 세포의 핵을 이식해 다수의 복제 개구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포유류가 아닌 동물에서 체세포복제에 성공한 첫 사례다. 포유류에서는 성공하지 못하다가 미세 조작 기술을 이용한 배아 세포의 분리, 핵 제거 및 치환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생식세포 복제가 가능해졌다. 수정란을 나눠 배양해 대리모의 자궁을 빌려 복제 동물을 출산하는 기술은 생쥐(1981년), 면양(1986년), 토끼(1988년), 소와 돼지(1989년) 등에서 성공했다. 1996년 7월 5일, 영국의 윌머트와 캠벨이 체세포 유전자를 이용해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켰다. 세계 최초의 생식세포가 아닌 체세포를 이용한 포유동물 복제다. 윌머트 박사는 6년생 암 양의 유방 세포에서 핵을 꺼내 다른 양의 미 수정란에 있는 핵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넣었다. 이를 대리모의 자궁에 이식해 태어난 게 돌리다. 하지만 난자를 제공한 양과 체세포를 제공한 양이 달라 각기 다른 미토콘드리아 DNA가 혼합돼 엄밀한 의미의 ‘완전 복제’로 볼 수 없다. 이후 미국에서는 생쥐를, 일본과 뉴질랜드에서는 소를 복제했다. 우리나라 황우석 교수도 1999년 세계 5번째로 복제 송아지 영롱이를 탄생시켰다. 황 교수는 2002년에는 형질전환 복제돼지를 국내 최초로 탄생시켰고 2003년에는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소’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냈다. 인간의 배아복제가 시도된 것은 1993년이다. 조지 워싱턴 대학의 홀 교수팀은 17개의 배자를 인공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48개로 복제해 냈다.1998년 세계 최초로 위스콘신대 톰슨 박사팀이 인공수정을 하고 남은 배아에서, 존스홉킨스대의 기어하트 교수팀이 유산된 태아의 성체세포에서 각각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해 냈다. ●황우석 교수의 잇단 개가 2000년 8월 9일 황 교수는 한국인 남성에게서 채취한 체세포로 복제실험을 해 배반포 단계까지 배양하는데 성공, 세계 15개국에 국제특허를 출원했다. 황 교수는 2004년 2월 세계 최초로 수정되지 않은 여성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여성의 난자 주변에 붙어 있는 난구(卵丘)세포 핵을 옮겨 심는 방법으로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미토콘드리아 DNA까지 동일한 완전복제다. 2005년 5월에는 척수신경 마비, 당뇨병, 면역 결핍 등의 질환이 있는 환자 11명에게서 피부세포를 떼어내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어떤 여성이 제공한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환자들의 피부세포 핵을 넣어 환자의 세포를 복제한 것이다. 언젠가 이렇게 만들어진 줄기세포를 당뇨병, 파킨슨씨병, 알츠하이머병 등을 앓고 있는 환자의 손상된 조직에 이식,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손성진 기자 sonsj@seoul.co.kr
  • [길섶에서] 귀향/양승현 경영기획실장

    귀향(歸鄕)을 보는 동·서양의 이미지가 조금은 다른 것 같다. 진짜 남편이냐, 아니냐는 인간 내면의 본질적 갈등을 영상화한 ‘마틴 기어의 귀향’이나 베트남전의 후유증을 그린 제인 폰다의 ‘귀향’이나, 우리네 탯자리의 정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우리에겐 수구초심(首丘初心)이 주는 의미가 더 살갑다. 대대로 한 곳에서 오순도순 살아온, 정착이 불가피한 농경문화 인자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도 귀향이 마음 한구석에만 살아있을 뿐, 조금씩 낯설어지고 있다. 어머니에 곧잘 비유되는 고향은 익숙함이다. 넉넉하고 편함이다. 학교를 졸업한 뒤 20년 넘게 기사를 쓰며 살아온 기자라는 직업도 어찌보면 내겐 고향이나 매한가지다. 업무 쪽으로 자리를 옮긴 지 1년4개월만에 다시 글을 써보면서 잠시 감회에 젖어 귀향을 떠올려본다. 하나,‘사오정’이 보편화되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제2의 직업’이라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 요즈음이다. 어쩌다 우리는 안팎으로 고향을 지키고 살기도 힘든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지…. 양승현 경영기획실장 yangbak@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 발없는 도둑 50m간다

    대형 금고를 털던 40대 절도범이 2층에서 뛰어내려 도망치려다 두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덜미를 잡혔다. 지난 26일 새벽 3시쯤 백모(47)씨는 전북 정읍시 하북동 D물류회사 2층 사무실에 침입해 100㎏짜리 철제 금고를 노루발 못뽑이(일명 빠루)를 이용해 열고 있었다. 신중하게 작업을 하던 백씨는 아무리 힘을 써도 금고 문이 열리지 않자 화가 나 힘을 주면서 커다란 마찰음을 냈다.1층에서 숙직을 하던 A(37)씨는 수상한 소리를 듣고 경찰에 신고했다. 작업을 계속하던 백씨는 건물 아래 쪽에서 여러 사람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 경찰이 온 것을 직감했다. 곧바로 백씨는 호기 좋게 창문 아래 5m 바닥으로 뛰어내렸지만 충격으로 두 다리가 모두 부러졌다. 백씨는 50여m 떨어진 풀밭까지 기어가 몸을 숨겼지만 결국 경찰에게 붙잡혀 쇠고랑을 찼다. 경찰 조사결과 지난해까지 이 사무실에 근무하던 백씨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 돈이 궁하게 되자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전치 14주 진단을 받은 백씨가 퇴원하는 대로 절도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1600㎞ 오프로드 몽골일주

    1600㎞ 오프로드 몽골일주

    말을 왕처럼 떠받드는 나라, 그래서 몽골은 ‘호스 킹 컨트리’라 불린다. 또 하늘은 얼마나 청명한가.‘영원한 푸른 하늘’이란 말은 곧 몽골의 동의어다. 그러나 몽골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칭기즈칸의 나라로 남아있다. 스스로를 ‘푸른 늑대’라 부른 칭기즈칸. 그는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몽골 어디에나 존재한다. 호텔에도 클럽에도 보드카와 맥주 상표에도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최고로 통한다. 그야말로 세계가 인정한 ‘밀레니엄 퍼슨(millennium person)’인 것이다. 몽골의 초원을 달리며 칭기즈칸을 느껴보는 데는 단연 오프로딩이 최고다. 굳이 지프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4륜구동 자동차를 직접 몰고 허허벌판과 사막, 험준한 산악을 누벼보는 것은 뜻깊은 체험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신문사와 한국4×4자동차협회가 공동 주최한 ‘2005 코리아 4×4 챌린저’대회는 그런 몽골체험의 진수를 제공한다. 올해로 3회를 맞은 이 행사는 8월29일까지 모두 10차례로 나눠 4박6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기자는 지난 18일 1차로 그 여정에 참여, 울란바토르∼엘승타사르하이∼오로홍∼쳉헤르∼카라코룸∼바얀고비∼울란바토르에 이르는 1600㎞의 몽골대장정을 마쳤다. 글 사진 몽골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18일 밤 11시30분.3시간 남짓 비행 끝에 도착한 몽골 울란바토르 보얀트 오하 국제공항은 한산했다. 간간이 45인승 프로펠러 비행기의 굉음이 하늘을 갈랐고, 몽골 전통가옥 게르에서 새어나온 듯한 장작 때는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공항에서 수도 울란바토르 시내까지는 25㎞ 정도. 미리 준비한 4×4챌린지 차량으로 20여분 달리니 저 멀리 숙소인 콘티넨털 호텔이 보인다. 시설은 퍽이나 소박했지만 울란바토르시에 네 개밖에 없는 별 네개짜리 호텔이란다. 내일의 대장정을 위해 일행은 별다른 신고식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포장도로 아닌 포장도로 19일, 일행은 3인 1조로 각자 4×4자동차에 나눠 탔다.GPS(전지구 위치파악 시스템)는 이미 작동중. 오늘의 이동거리는 450여㎞다. 서울서 부산 거리지만 길이 좋지 않아 시간은 두서너 배쯤 더 걸린다. 본격적인 몽골 대장정의 출발은 울란바토르에서 250㎞쯤 떨어진 엘승타사르하이에서부터. 몽골어로 ‘사막이 갈라진 곳’이라는 뜻을 지닌 이곳까지는 포장도로다. 몽골에선 유일하게 이 도로와 울란바토르에서 러시아 바이칼로 향하는 길이 포장돼 있다. 그러나 말이 포장도로지 곳곳에 파인 웅덩이가 많아 자칫 잘못하면 차가 뒤집히기 십상이다. 때문에 평균시속은 50㎞를 넘지 못한다. 몇시간쯤 달렸을까. 마침내 ‘반가운’ 오프로드가 나타났다. 목적지인 오르홍 폭포까지는 아직도 100㎞ 이상 남았다. 비포장길에서는 아무리 속도를 내도 평균시속 20㎞를 넘기지 못했다. 차는 먼지바람 때문에 적어도 500m는 거리를 두고 달려야 한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초원에는 말과 양, 소, 염소 등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통역을 맡은 몽골청년 바이사(23·몽골국립대 한국어과)는 몽골에서는 이들 동물에 낙타를 보태 ‘오성(五星) 동물’이라 부른다고 귀띔한다. 그만큼 몽골인의 생활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라는 얘기다. 몽골사람들을 ‘파이브 애니멀 피플(five animal people)’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만했다. 푸른 하늘엔 육식을 즐기는 말똥가리가 날고 초원엔 청설모를 닮은 땅쥐가 달음박질친다. 망망대해 같은 벌판은 멀미가 날 지경이다. 내리 쬐는 햇살에 눈꺼풀이 감겨온다. 눈치 빠른 몽골인 드라이버가 몽골 최고 여가수 아리오나의 ‘더기 바이가 비즈(제법이지!)’와 ‘자로나스(청춘)’를 귀청이 터져라 틀어 놓는다. 강한 비트의 몽골 팝에 빠져 있는 사이 어느덧 오르홍 지역에 다다랐다. 해발 1840m의 고지대. 그러나 허위단심으로 찾아온 오르홍 폭포는 아쉽게도 물이 말랐다. ●몽골의 여름은 백야(白夜) 어느새 10시. 하지만 아직도 해는 넘어가지 않았다. 몽골의 여름은 ‘준(準)백야’다. 밤 11시는 돼야 완전히 어두워진다. 오늘은 게르에서 묵을 참이다. 책이나 영화에서나 보던 게르를 직접 체험하게 되니 약간의 설렘이 앞섰다. 게르는 3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몽골인의 전통 주거 형태다. 둥그스름한 모양의 게르는 몽골의 기후와 유목생활에 딱 들어맞게 설계돼 있다. 게르는 광활한 스텝을 휩쓰는 바람을 막기엔 안성맞춤. 손쉽게 해체할 수 있고, 다시 세우는 데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게르 천장 한가운데엔 난로 기둥을 뽑을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 있다. 오늘은 땔감이 준비되지 않았나 보다. 캐시미어 침낭 속에서 번데기처럼 구부리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20일,4시면 벌써 해가 중천에 뜨는 몽골의 ‘고약한’ 풍토 탓에 오늘도 일찍 눈을 떴다. 물을 한 쪽박 떠 고양이 세수하듯 ‘몽골식’으로 얼굴만 겨우 훔쳤다. 몽골은 정말 물이 귀하다. 신성시하기까지 한다. 고인 물이나 샘에 손을 담그지 말고, 물은 반드시 그릇으로 떠 마시라는 칭기즈칸의 가르침은 아직도 살아있는 듯했다. ●협동정신은 오프로딩의 핵심 오늘은 초원과 타이가 숲, 그리고 온천으로 유명한 쳉헤르로 가야 한다. 오르홍에서 쳉헤르까지는 120㎞,4시간은 족히 달려야 한다. 오늘이라고 초원이 뭐 달라질 게 있을까. 아니 그런데 이게 뭔가. 차의 하체가 몽땅 잘라크(웅덩이)에 빠지고 만 것이다.“머플러에 물 들어가면 끝이야. 견인 로프로 묶어 끌어.”“누가 후진기어 넣어줘요.” 차는 결국 온 대원이 밀고 끌어 가까스로 건져냈다. 오프로드 탐험의 진수인 협동심을 맘껏 발휘했으니 모두들 후회는 없다는 표정이다. 몽골 오프로드 탐험의 대장격인 최명기(43) 한국4×4자동차협회 사무처장은 “몽골 초원에선 나무가 드물어 윈치가 있어도 별 쓸모가 없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곳은 쳉헤르 지구르. 파란 날개라는 뜻의 게르 리조트다. 게르에 들어서려는데 누군가 양을 잡으니 빨리 와서 보라고 한다. 몽골 사람들은 양을 잡을 때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물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양의 명치 윗부분을 잘 드는 칼로 5㎝쯤 째고 손을 집어넣어 심장동맥을 눌러 즉사하게 만든다. 오늘의 요리는 양고기를 토막내 뜨겁게 달군 검은 돌에 삶아낸 허르헉. 이 몽골식 양찜은 서양의 양고기 요리보다 오히려 노린내가 덜 나 구미가 당겼다. 우유나 마유 등을 탄 수테차와 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아이락(마유주,馬乳酒) 같은 몽골 전통음식도 맛봤다. 수테차는 소금으로 간이 돼 있어 짭짤하며 젖 종류가 들어가 있어 좀 텁텁하다.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는 아이락은 꼭 우리나라의 막걸리처럼 생겼다. 약간 시큼하면서 비릿한 맛이 난다. ●엇박자로 걷는 몽골말 쳉헤르 초원에서는 말을 탈 수 있다. 한낮에는 파리떼가 달라붙기 때문에 석양 무렵 타는 게 좋다. 몽골말은 서양 말과 달리 엇박자로 걸어 한결 타기 편하다. 말등자만 깊숙이 밟지 않으면 누구나 별 어려움 없이 탈 수 있다. 요금은 1시간에 4달러. 말의 나이는 보통 7∼8세다. 말 한 살을 사람 나이 열살로 치면 70이 넘은 노마(老馬)를 타는 셈이다. 삽상한 바람에 으스름 달빛까지 받쳐주니 운치가 넘치는 건 물론.“추, 추”하고 추어주니 말은 신이 나 더욱 잘 달린다. 나는 나의 착한 갈색말에게 무려 10달러(몽골돈 1만 1000여 투그릭)의 팁을 꽂아 줬다. 쳉헤르 리조트에서는 밤하늘 은하수를 바라보며 남녀가 함께 노천욕도 즐길 수 있다. 철분과 유황이 녹아든 청정 자연수가 손님을 기다린다. 몽골에서 탕 형태의 온천은 이곳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1일, 오늘은 13세기 몽골제국의 두번째 수도였던 카라코룸으로 이동해야 한다. 길가엔 도처에 ‘오보’가 조성돼 있어 이방의 객을 맞았다. 오보는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것으로, 몽골의 민간신앙 대상이다. 오보에는 지폐도 꽂혀 있고 술병과 음식찌꺼기 등도 어지럽게 널려 있다. 몽골인들은 손을 모은 채 오른쪽으로 세 바퀴씩 돌며 소원을 빈다. 마치 우리의 옛 서낭당 같아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몽골인은 환대의 화신 가는 길에 유목민의 게르 살림집을 들렀다. 게르 지붕 위에 널어 놓은 아롤(건조한 우유)이 따가운 햇살에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다. 게르에서는 아롤과 비슷하지만 좀 작은 에즈기와 몽골 천연 요구르트인 타라크를 대접받았다. 몽골인 특유의 친절함이 묻어나는 주인장 락와수랭(43)씨는 “아침 8∼9시 양과 염소의 젖을 짜고 방목한 뒤 해가 지면 거둬들이는 게 유목민의 일상”이라며 “5∼6년 전부터 독일·프랑스 등 유럽의 관광객들이 부쩍 많이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마침내 카라코룸. 하르호린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곳은 1586년에 세워진 몽골 최초의 불교사원인 에르덴조 사원으로 유명하다.108개의 하얀 스투파(불탑)로 둘러싸인 에르덴조 사원은 1937년 공산주의 돌격대에 의해 무참히 파괴돼 현재 18개의 건물만 남아 있다. 에르덴조는 1965년 뮤지엄으로 돼 지금은 몽골에서 가장 큰 박물관의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 ●“연말이면 낙타를 사자” 이제 몽골대장정도 막바지다.22일 바얀고비 사막체험을 하고 나면 오프로딩은 사실상 끝난다. 에르덴조에서 200㎞,3시간을 내달리니 멀리 바얀고비 투어리스트 캠프가 보인다. 바얀고비는 초원과 모래언덕이 동시에 형성돼 있는 이색 지대. 울란바토르시까지 80여㎞에 걸쳐 띠모양으로 이어져 있다. 성수기가 아니어서 낙타는 만날 수 없었다. 이제 언제 다시 몽골의 초원과 산악, 사막을 밟아볼 수 있을까. 순간 어느 여가수가 부른 노랫말이 떠올랐다.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는, 그리고 사막으로 떠나자는…. 한국4×4자동차협회가 계획하고 있는 10월의 ‘몽골 늑대사냥’ 대회가 더욱 기다려진다. ●문의:한국4×4자동차협회(02-2263-0098). 접수는 K4챌린지조직위www.k4challenge.com ■ 울란바토르 통째로 구경하기 간단사(Gandan Monastery) 울란바토르시 북서쪽에 있는 몽골에서 가장 큰 라마교 사원.1911년에 처음 건립된 이 사원에는 높이 33m의 부처님 금동상이 있다.1996년 온 국민의 성금으로 조성한 이 부처님은 모든 방향으로 굽어보는 자비의 부처인 ‘믹짓 진라이식’. 간단사는 과거 공산정권하에서도 유일하게 종교활동을 보장받았던 곳이다. 수흐바타르광장 몽골 건국의 아버지인 수흐바타르의 가마상이 우뚝 서 있는 울란바토르의 중심지. 이 광장을 중심으로 국회의사당과 정부청사, 국립도서관, 극장 등이 줄지어 있다. 자이산 전승탑 러시아와 몽골이 공산혁명에서 승리한 것을 기리기 위해 만든 승전 기념탑. 톨강이 유유히 흐르는 울란바토르 시내와 주변의 광활한 초원지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서울의 남산과 같은 곳. 가족 혹은 연인들의 휴식처로도 인기가 높다. 쓰기(月)하우스 울란바토르 시내 서울거리에 있는 몽골 전통음악과 무용 공연장. 몽골의 ‘국민악기’인 모린 호르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끝이 말 머리 모양으로 생겨 마두금(馬頭琴)으로도 불리는 모린 호르는 줄이 두개밖에 없지만 어느 악기보다 다양하고 독특한 소리를 낼 수 있다. 목구멍으로 부르는 노래인 몽골 특유의 ‘호미(khoomii)’와 가면극 등도 감상할 수 있다. 입장료는 6달러.
  • [눈에 띄네~ 이 얼굴] ‘분홍신’의 박연아

    30일 개봉하는 영화 ‘분홍신’에서 죽음의 매개체인 분홍신이 전달하는 일차적 스펙트럼은 유아적 감수성과 동화적 순수함. 이면에 내재된 이차적 스펙트럼은 여성이 지닌 욕망과 집착이다. 그런면에서 극중 엄마(김혜수)가 주워 온 분홍신에 집착하는 꼬마 주인공 태수 역을 맡아 순수하면서도 비범한 이중적 감성을 보여준 아역 배우 박연아의 연기는 영화 내내 시선을 끈다. 공포 영화보다는 동화에 어울릴 법한 해맑은 얼굴이지만, 아이답지 않는 대담함으로 김혜수와 세대를 넘어선 한판 연기 대결을 펼쳤다. 특히 무표정한 얼굴 위로 흐르는 섬뜩하면서도 독기어린 표정 연기는 영화가 끝나도 진한 잔상으로 남는다. 김혜수가 “TV 화면에 익숙한 예쁜 아역 배우들과 달리 정형화되지 않은, 상황에 따라 본능적으로 대처하는 ‘날것’의 연기를 한다. 프로 배우인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다.”며 극찬할 정도. 현재 초등학교 1학년인 박연아는 충무로에서 공포영화 이야기를 ‘집필’하는 꼬마로도 유명하다. 안 본 공포영화가 거의 없을 정도로 공포 영화 광인 박연아는 비록 짧지만 나름대로 공포스러운 설정으로 이야기를 써서 촬영장 스태프들을 즐겁게 한다는 후문.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
  • 한나라 지역화합특위 1돌 정의화위원장 술회

    한나라 지역화합특위 1돌 정의화위원장 술회

    “‘호남 끌어안기’가 아니라 ‘호남에 끌어안기기’가 돼야 합니다.” 한나라당 지역화합발전특위가 최근 ‘한 돌’을 맞았다. 광주와 전·남북 예산정책 간담회와 남해개발 세미나 등 다양한 아이디어로 특위를 이끌어 온 정의화 위원장을 27일 국회에서 만났다. 지난 24일 전북지역 예산정책 간담회에 이어 28일 광주·전남지역 간담회를 앞둔 그는 1년 활동을 ‘화합’과 ‘발전’의 징검다리로 설명했다. 먼저 “진정한 화합을 위해선 정치적 레토릭(수사·修辭)으로서의 ‘서진(西進) 정책’이 아니라 국민들 마음 속에 드리운 지역감정이라는 ‘검은 그림자’를 없애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영남당·호남당·충청당 등 후진적 정당구조로는 선진국 도약이 불가능하고 탈(脫)지역정당화를 이뤄야 하는데 이를 위해 지역갈등 해소는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달팽이 기듯 가더라도 호남에 꼭 안길것” 그는 “최근 호남지역에서 당 지지도가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박 대표 지지도가 50%를 넘어선 것은 고무적이지만 이런 현상에 만족해서는 안된다.”라며 “진정한 지역화합은 의석 1∼2석을 늘리는 게 아니다.”고 덧붙였다. 정 의원은 10여명의 특위관계자들과 광주시, 전남·북 등을 방문, 예산 관련 고충을 듣고 증액에 노력했고 일부 분야는 정부 예산안보다 더 늘렸다. 섬진강을 기반으로 한 사천·남해·통영·고성·하동 등 경남권 도시와 여수·광양·순천·고흥·보성 등 전남권 도시를 묶는 ‘지역화합특별구역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곧 제출해 지역화합·발전을 이루는 ‘상징적 거점’을 형성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호남 다가서기’가 쉽지는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특위 위원들이 지난해 8월 한나라당, 더 거슬러 올라가 신한국당 등 전신 정당 국회의원으로선 처음으로 전남대를 방문했을 때 얘기다. 한 특위 위원은 “달팽이가 기어 오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렸다.”고 의미를 한껏 부여했지만 ‘계란 세례’를 받기도 했다. 그는 “당시 전남대 총장 등과 ‘지방 대학 육성방안’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국가보안법 철폐’‘한나라당 해체’ 등의 피켓을 든 학생 70여명이 길을 막았다.”며 “뒷문으로 나가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즉석 토론을 제안, 당 입장을 설명하고 설득하면서 박수를 받기도 했다.”고 일화를 들려주었다. ●“YS-DJ 화해 추진도” 지역화합을 향한 정 위원장의 열정은 국회 차원으로 넓어졌다.‘민족대통합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을 만든 뒤 ‘김영삼(YS)-김대중(DJ) 재평가’작업에 들어섰다. “지난 15일 총론 성격의 세미나에 이어 각론격으로 9월 광주에서 ‘DJ 평가’와 11월 부산에서 ‘YS 평가’ 세미나를 각각 연다. 그 결과를 책으로 만든 뒤 연말에 증정식 형식으로 두 분의 화해를 모색하는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정 의원의 ‘호남 애정’은 체험에서 비롯한다.“전북 전주에서 전공의, 김제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하면서 이전에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소문에서 비롯된 선입견이 확 바뀌었다.”면서 “그곳 주민들은 순박하고 풍부한 예술적 소양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때 트기 시작한 ‘지역 화합 열정’의 싹은 전남 낙도지역 초등학생 수학여행 초청, 봉생문화재단 결성뒤 광주 지역과 문화교류 등을 거쳐 94년 ‘영호남민간인교류위원회’발족, 특위구성 제의로 쑥쑥 자랐다. 특위가 보여준 가능성을 기폭제로 한나라당 수요모임, 국민생각 등의 의원모임과 사무처 직원들의 ‘호남 러시’가 뒤따랐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무더위를 날려주마” 동·서양 스릴러 대격돌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 버릴 공포 영화 2편이 다음주 관객들을 찾아간다. 각각 ‘머리카락과 물’,‘피묻은 살점과 도끼’라는 전형적인 동·서양의 공포 코드로 무장한 두 영화는 모두 ‘일상성’을 무기로 했다. 주변에서 떠도는 익숙한 얘기나 실화를 소재로 더욱 피부에 와닿는 공포를 만들어낸다. ●‘셔터’(Shutter) 30일 개봉하는 팍품 웡품·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태국 영화 ‘셔터’는 친숙하면서도 지루하게 무섭다. 누구나 한번 쯤 들어봤을 ‘카메라에 찍힌 혼령’ 얘기를 기본 얼개로 익숙한 공포를 전한다. 영화속 귀신은 전혀 세련되지 않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피를 흘리며 땅바닥을 기어 쫓아오는 모습에서는 “내 다리 내 놔∼.”라며 다가오던 ‘전설의 고향’속 여자 귀신을 연상케 한다. 목과 어깨가 뻐근해 고생하는 사람이 지나는 아이로부터 “아저씨는 왜 항상 여자를 등에 업고 다녀요?”라는 말을 듣는다는, 우리가 무서운 얘기로 곧잘 써먹는 설정도 담겨 있다. 재밌는 것은 관객들이 귀신이 나올 타이밍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 귀신이 나오기 전 주인공의 공포에 질린 모습이 먼저 보이면서 관객들은 ‘도대체 어떤 귀신이기에?’라는 생각에 더 소름이 돋고 공포스러움을 느낀다. 영화 상영 내내 쉼 없이 튀어나오는 긴장감, 불안감은 좀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반면 줄거리는 무척 단순하며, 그 밀도와 연관성도 무척 성글다. 사진작가 턴(아난다 에버링햄)과 연인 제인(나타웨라누크 통미)은 차를 타고 밤거리를 가다 뺑소니를 낸다. 이후 턴이 찍은 사진에는 귀신의 얼굴 형상이 나타나고, 턴의 옛 여자친구와 관련이 있는 대학 동창들이 하나, 둘씩 자살을 하게 된다. 턴은 죽음을 직감하며 제인과 구천을 떠도는 사진 속 귀신이 품은 원한이 무엇인지 쫓는다. 영화는 후반부에 턴의 끔찍한 과거 실체를 보여주면서 무서운 반전으로 이어진다.15세 이상 관람. ●‘아미티빌 호러’(The Amityville Horror) 새달 1일 개봉하는 앤드루 더글러스 감독의 ‘아미티빌 호러’는 ‘나쁜 녀석들’‘더 록’,‘진주만’,‘아마겟돈’ 등을 감독한 흥행의 귀재 마이클 베이가 제작을 맡은 작품이다. 1974년 실제 미국 롱아일랜드 지역 한 저택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관객들은 실화에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 현실 속에서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느낄 때 공포는 한층 가중된다.”고 마이클 베이는 말하지만, 영화 속 공포는 그리 극적이지 않다. 아마도 실화에서 오는 한계인 듯. 영화는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주류를 이뤄 온 ‘슬래셔 무비’의 원칙을 따르기보다 인물의 심리 변화를 공포의 원천으로 이용한다. 팔과 다리가 잘리는 모습 등 특수효과는 없지만, 갑자기 나타나 놀라게 하는 끔찍한 장면 등이 충분한 공포감으로 다가온다. 미국 북동부의 작은 마을 아미티빌. 집안에서 일가족이 모두 총에 맞아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죽이라고 시켰다.”고 말하는 큰 아들. 그로부터 1년 뒤, 이 집으로 세 아이를 둔 여자 캐시(멜리사 조지)와 그녀의 새 남편 조지(라이언 레이놀즈)가 이사를 온다. 그러던 중 이들 앞에 죽은 사람이 나타나고 악령의 소리가 들리는 등 과거 살인 사건 때와 유사한 일들이 발생한다. 딸 ‘첼시’의 눈엔 ‘조디’라는 아이 귀신이 보이고, 사람 좋던 조지는 점점 광기에 휩싸여 간다.15세 관람.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2005상반기 소비자만족 히트상품] 오리엔트골프 ‘야마하 인프레스 D 드라이버’

    ‘야마하 인프레스 D 드라이버´는 비거리를 결정하는 반발계수가 0.875를 넘는다. 반발계수란 1의 힘을 주었을 때 볼에 전달되는 힘의 크기로 1에 가까울수록 반발력이 크기 때문에 비거리가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페이스 두께가 2.4mm로 얇고 ‘핀포인트´ 레이저 용접으로 용접 자국이 거의 없어 높은 반발계수가 가능한 것. 헤드 속에 길이 5cm, 무게 10g의 헤드턴 기어가 샤프트와 일직선으로 연결돼 있어 임팩트시 헤드 회전력을 높여 페이스가 빨리 닫힘으로써 슬라이스를 억제해 강한 드로성 구질을 얻을 수 있다. 야마하는 1887년 오르간 생산을 시작으로 현재 피아노, 골프, 오토바이, 신시사이저, 오디오, 반도체 등을 생산한다. 120년 역사의 야마하 기술연구소가 다양한 사업에서 얻은 지식과 노하우를 인프레스 개발에 투입하고 있다.
  • [마광수의 섹스토리] ④’슬픈사라’를 쓴 죄

    [마광수의 섹스토리] ④’슬픈사라’를 쓴 죄

    나는 마광수라는 작자가 쓴 ‘즐거운 사라’를 읽고나서 분개했다. 아다시피 ‘즐거운 사라’는 ‘사라’라는 대학생년이 프리섹스를 즐기다가 그중의 한 놈을 사랑하게 되고, 그 놈한테서 버림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년은 다시금 새로운 ‘사랑의 먹잇감’을 찾아 ‘즐겁게’ 거리로 나선다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여자년이 함부로 바람을 피워? 그것도 ‘즐겁게?’ 나는 사라라는 년이 몹시도 괘씸하고 그런 소설을 쓴 마광수라는 작자가 몹시도 패악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새로 ‘슬픈 사라’라는 소설을 썼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라’는 ‘즐거운 사라’에 나오는 ‘사라’와 마찬가지로 섹스에 활달하고 적극적인 여자로서, 특히 ‘변태섹스’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개방적이다. 자신의 질(膣)속에 땅콩을 집어넣고 다니질 않나, 자기가 배우는 대학교수와 변태적인 섹스를 하지 않나, 분명 ‘여한 여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내가 쓴 소설 속에서의 그녀의 말로는 참담했다. 주위의 사람들이 그녀의 행동을 알게 되고 사실이 점점 부풀려져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지게 된다. 학교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그녀는 결국 자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녀와 붙어 먹었던 대학교수도 기어이 학교를 쫓겨나게 된다. 그 소설을 발표하고 난 지 얼마후, 나는 불현듯 저승사자에게 잡혀 갔다. 저승사자는 나를 하느님 앞으로 끌고 가 무릎꿇렸다. 하느님은 꼭 ‘게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남성도 여성도 아닌 양성(兩性)이었다. 아마 섹스를 할 때도 양성애(bi-sexual)를 할 것 같았다. 하느님은 지엄한 목소리로 나르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선량한 대중들을 선동하여 금욕생활을 부추기니 너의 죄는 중하도다!” 그래서 나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하느님,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저는 성욕은, 특히 변태성욕은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관계는 음양의 조화를 위해서도 필요한 행동이다. 또 변태성욕은 성의 마지막 종착점인 ‘권태’를 예방해 주는 역할을 한다. 너는 아주 못된 서양 중세기의 종교판관과 같은 놈이구나. 네가 쓴 소설 ‘슬픈 사라’는 흡사 ‘마녀사냥’을 연상시켜 주었다.” “하지만….” “네 놈이 쓴 책은 아주 불손한 책이니라. 신성한 성, 그리고 특별히 맛있는 성인 변태성욕을 감히 폄하하고 비하시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로다. 너의 죄는 아주 중하도다.” “하느님, 아무리 생각해도 저의 생각이 옳습니다.” “네 이놈!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구나. 너는 지옥으로 보내져야 마땅하다.” 나는 ‘지옥’이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공포스러워졌다. 그래서 하느님께 머리를 조아리며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 저도 차차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에게도 한번 재생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러자 하느님은 대뜸 인자한 음성으로 음색을 바꿔 이렇게 대답했다. “좋다. 네놈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한번 거듭날 기회를 주겠다.” 하느님의 말이 떨어지자 무섭게 한 저승사자가 나를 하느님 앞에서 끌고 나가 다시 이 세상에 내던졌다. 한참 후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있는 곳은 홍익대학교 앞에 있는 ‘YAHDI YAHADA’라는 클럽 안이었다. 나는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물결을 헤치고 바(bar)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한 여자가 바에 앉아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흡사 마광수가 ‘즐거운 사라’에서 묘사한 ‘사라’ 같은 이미지의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몸에 착 달라붙는 스판덱스 옷감으로 된 쫄쫄이 초미니 원피스(그것도 검은 색이라 기막히게 섹시해 보였다.)에다가 위에는 밍크코트를 느슨하게 걸치고 있었다. 다리를 보니 빨강색 그물스타킹을 신고 있어 더 야하고 음란하게 보였다.   뒷굽이 15㎝ 정도 되어 보이는 검은색 하이힐을 신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밍크 코트를 풀어헤치고 있어서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의 미묘한 부분의 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지나가는 취객들이 그녀의 요염무쌍한 자태를 보고 다들 한마디씩 얘기를 붙인다. 그래서 나도 큰 맘 먹고 그 여자 앞에 자리를 잡았다. 술잔을 쥐고 있는 하얗고 긴 손을 보니 손톱의 길이가 무려 15㎝쯤 되어 보였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을 붙였다. “저… 저를 좀 도와 주시겠습니까?…사실 저는 야한 실습을 하지 않으면 지옥으로 떨어질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빙긋이 웃으며 내 말에 대답을 해주는 것이었다. 말을 할 때 그녀의 입 속을 보니 혓바닥 맨 끝에 커다란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무슨 말씀인진 잘 모르겠지만 당신의 얼굴 표정을 보니 무척이나 구슬프게 보이는군요. 뭐든지 도와달라는 대로 도와드릴 게요.” 말을 끝내자마자 여자는 거두절미하고 내 바지 지퍼를 길디긴 손톱이 매달려 있는 손으로 아슬아슬하게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네 페니스를 꺼내어 긴 손톱끝으로 슬근슬근 긁어내리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황당하여 좌우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조명이 원체 어둡고, 또 연인들 쌍쌍이 다들 뒤얽혀 있는 분위기라서 우리를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태연함을 가장하며 그녀의 행동에 내 몸을 맡겨버리기로 했다. 여자는 머리를 숙여 내 페니스를 입 안에 머금었다. 머리 길이가 자그마치 2m는 되어 보였다. 그것도 아주 광택나게 염색한 금발 머리였다. 내 페니스는 그녀의 입안에서 본능적으로 작동해 주었다. 내 이성이 아무리 제지해도 그놈은 스스로의 순발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녀가 한 30분쯤 펠라치오를 해주자 나도 모르게 정액이 터져 나왔다. 마치 신경질적으로 내뿜는 분수와도 같았다. 그녀는 내 정액을 꿀꺽꿀꺽 잘도 받아 마셨다. 그러더니 그녀는 내 페니스를 손으로 잡고서, 나를 플로어로 이끌었다. 음악은 마침 리타 쿨리지가 부르는 ‘We are all alone’이었다. 흐느적거리는 음악에 맞춰 그녀는 한손으로는 내 페니스를, 그리고 다른 한손으로는 내 목을 끌어안고 춤을 추었다. 아까 한번 사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페니스는 이성의 명령을 거역한 채 빳빳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그녀는 춤추는 중간에도 내 페니스를 그녀의 길고 뾰족한 손톱으로 꼭꼭 찔러대고 있었다. 그래서 내 페니스는 더욱 발칙하게 성을 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귓불을 핥고 있었고, 그녀의 젖가슴을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그녀와 그윽한 디프 키스(Deep Kiss)를 했다. 여자는 더욱 대담해져 원피스를 위에서 아래로 끌어내려 빵빵한 유방을 드러내 보였다. 자세히 바라보니 유두엔 빨간색 립스틱이 칠해져 있었고, 두 개 다 커다란 피어싱 고리가 꿰어져 있었다. …아아아아앗…! 나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가 오르가슴에 겨워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녀가 내 페니스를 쥐고 계속 피스톤운동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른다. 여자는 클럽에서 나를 이끌고 나와 ‘장미여관’으로 갔고, 거기서 나는 푹신푹신한 물침대 위에 누워 그녀와 함께 긴 헤비 페팅의 시간을 가졌다. 나도 모르게 피곤에 지쳐 잠이 들고 보니, 나는 어느새 하느님 앞에 다시 끌려나와 있었다. 하느님은 인자한 안색을 해가지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 관능의 맛이 어떻더냐?” 나는 조금 계면쩍은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꿀맛’이었습니다.” “그럼 이제 네 죄를 네가 알겠지? ‘슬픈 사라’를 쓴 죄를 말이다.” “네, 정말 잘 알겠습니다. 한번만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느님은 껄껄 웃으며 나를 다시 지상으로 내려보내셨다. 그래서 나는 과거의 죄를 뉘우치고 지금은 ‘호스트 바’에서 일하고 있다. ■마광수는 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
  • ‘무죄’ 송영길 의원 “檢 여론 눈치 무리한 기소”

    ‘무죄’ 송영길 의원 “檢 여론 눈치 무리한 기소”

    박주선 전 민주당 의원,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에 이어 최근 이인제(자민련)·유시민(열린우리당) 의원이 잇따라 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아내자 정치권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24일 선거법 위반혐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송영길 의원은 2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검찰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송 의원은 “검찰이 연예인처럼 여론에 흔들리면서 인민재판에 영합할 때 무리한 기소와 무죄판결이 난다.”며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는 엄정한 자기원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이 청와대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어느 정도 달성이 됐지만 언론과 여론으로부터 독립은 아직 요원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검찰에 대한 원망엔 한목소리를 냈지만 이인제 의원은 이를 현 정권과 결부시켰다. 이 의원은 이번 사건을 자신을 파멸시키려는 독기어린 노무현 정권의 조작이라고 규정한 뒤 “진실을 억압하는 권력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열린세상] 거품과 풍선,악마적 경제시스템/김진석 인하대 철학 교수

    부동산값 때문에 사람들이 부글부글 끓는다. 좋아서 끓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훨씬 많은 사람들은 울화로 끓는다. 이 광기어린 경제 앞에서 정작 경제학자·관료·정치지도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아니라 꿀 먹은 지도층답게 묵묵부답이다. 그러나 다수가 끓는다는 것은 대체 무슨 소린가? 증오와 분노로 그들의 가슴이 끓는다는 말이지만, 여기에 이상한 점이 있다. 부글부글 끓는 강렬함만 보면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사실 충분히 그럴 만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아직 거기에까지는 이르지 않고 있다. 끓는 사람들도 무작정 혹은 무한정으로 끓다가는 건강을 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니 태평으로 계속 끓을 수도 없다. 여기에 울화의 경제가 개입한다. 경제 때문에 울화가 생기지만, 그렇다고 그 감정이 극단으로 들끓게 내버려두기도 힘들다. 개인들은 자신의 경제를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자신의 감정을 ‘경제적으로’ 관리해야 할 벽에 부딪힌다. 그렇지 않으면 돈도 잃고 건강도 잃을 판이다. 부동산 광증 속에서 경제적으로 보장되지 못한 개인들은 이차적으로 자신의 울분에 대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지경에 처하다니 얼마나 우스운가. 이런 비슷한 상황 앞에 서면 나는 카프카가 생각나곤 한다. 보험회사에 다니던 소설가는 벌써 오래 전에 보험시스템의 끔찍한 냉정함에 놀랐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는 것에도 놀랐다. 따지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경제 시스템은 우리의 울화를 부추기지만 동시에 그 울화를 마음대로 터뜨리지 말라고 부추기니까. 경제는 울화의 축이다. 최근에 대통령은 ‘공동체의 통합’이 중요하다고 말했고 ‘우리 사회의 증오와 분노를 해소하는 것이 숙제’라고 천명했다. 지도자로서 마땅히 신경써야 할 과제이기는 하지만, 그 말은 현재의 부동산 대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왠지 무력하게 들린다. 분당 사람들이 정부 지지자가 되었다는 만평이 횡행할 때, 웃어야 하나? 이 상황에서 정부는 어설프게 국민통합을 외치기보다는 차라리 솔직하게 양극화된 정서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이 양극화에 대해 대응하는 상이한 방식이 다시 양극화되어 있다는 데 주의하자. 서민층을 보호하자는 관점은 주로 서민층을 위한 공급을 늘리자며 혼란을 투기꾼들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껏해야 절반의 진리다. 서민을 위한 공급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큰 이유는 서민과 중산층은 소유하는 것이 아예 없거나 혹은 그들이 소유한 부동산가격은 바닥에서 긴다는 데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극단적인 거품 가능성만 경고하는 경고성 발언들의 뼈아픈 역설이 있다. 그것만 믿고 투기꾼들만 비난하다 보면 질주하는 부동산 시스템에서 맥없이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이 점에서 시장에 무작정 거스르지 말자는 말이 중요하지만, 이 말도 함정이 있다. 지금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이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투자와 투기가 구분되지 않는 극도로 혼란스러운 카지노 자본주의 상태이다. 그런 미친 시장에 우리를 무작정 내맡기는 일도 미친 짓일 터. 따라서 시장에 맡길 것은 맡기고 나머지는 공공성으로 해결하자는 말이 옳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악마와의 거래일 만큼 위험하다. 토지개발공사나 주공 같은 공공기관이 부동산가격을 올려놓은 후 그 수익으로 서민들의 주거를 지원한다는 정책은 이 악마적 악순환의 교묘한 작품이었다. 거품이 문제니 펑펑 터지는 것이 좋겠지만, 터지는 거품 속에서 정작 피해를 보는 자들은 약자들이다. 바로 그 점에서 경제시스템의 악마성이 삐쭉 드러난다. 홧김에, 거품아 터져버려라고 말하는 사람도 그 저주의 실현이 정말 달콤할 리는 없다. 울화병이 극단으로 도져서 터지지 않는 한 그럴 것이다. 여기서 거품을 ‘터지지 않는 풍선’으로 만드는 고난도의, 가히 악마적인 기술이 경제로 등장한다. 그러나 빈 거품이 누구나 여기저기서 눌러대는 풍선으로 계속 부푸는 한, 사람들은 우울과 울화에 처절하게 시달릴 것이다. 건전한 투자와 투기가 구분되지 않는 곳에서 경제는 도박이니까.   김진석 인하대 철학 교수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2)-2세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2)-2세경영

    손길승 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쌍두 체제’로 포스트 재벌을 향해 순항중이었던 SK그룹은 2003년 2월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소위 ‘SK사태’로 불리는 일련의 악재로 오너가(家)인 최 회장이 전격 구속됐기 때문이다.2세 체제의 성공적인 착근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비상벨’이 울린 것이다. 그러나 ‘카운터 펀치’는 이것이 다는 아니었다. 투기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경영권 탈취를 목적으로 그룹의 지주회사인 SK㈜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결국 ‘보스’의 부재와 채권단의 압박, 소버린의 흔들기는 ‘SK호’의 최대 위기를 가져왔다. 한 임원은 긴박했던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시민단체의 공격과 채권단의 위협, 소버린의 가세는 그야말로 내부 구성원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시중에는 그룹 해체설까지 나돌았습니다. 또 소버린의 지분 매입 의도는 최 회장이 보석으로 나온 뒤에나 대책이 세워질 정도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할까. 산전수전 다겪은 최 회장은 ‘뉴SK’ 기치를 내걸고, 난제를 정공법으로 하나씩 헤쳐나가고 있다. 포스트 재벌을 지향한 지배구조 개선은 경영투명성과 윤리경영을 핵심으로 강도를 더 하고 있다. 최 회장이 지난해 10월 SK㈜ 창립 42돌에서 밝힌 내용이다.“나는 재벌이라는 말이 싫습니다. 그룹이라는 말도 재벌이라는 지배구조에서 나온 것인데 그런 지배구조가 과거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기업을 이끄는 시스템입니다. 누가 주식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독립된 각 기업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일을 추진하는 시스템을 가졌느냐는 것입니다.” ●경영 ‘대표선수’ 패밀리 4인방 “내 아들은 5명이다. 경영능력이 있는 대주주는 경영인으로 키울 것이다. 적임자라고 판단되면 아들이든, 조카든 가리지 않고 경영을 맡기겠다. 나는 자식들 누구에게나 밥상(경영권 승계 후보)을 차려주겠지만 먹은 것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최종현 회장) 최씨가에서 현재 SK 경영에 참여하는 인물은 최신원(53) SKC 회장과 최태원(45) SK㈜ 회장, 최재원(42) SK엔론 부회장, 최창원(41) SK케미칼 부사장 등이다. 최씨가의 장남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2000년 8월 지병으로 별세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그룹 승계자로 확정된 것은 1998년 8월 가족회의에서다. 최종현 회장이 별세하자 최씨가의 차세대 5인방인 사촌 형제들이 모여 당시 최태원 SK㈜ 부사장을 그룹의 경영권 승계자로 합의했다. ‘패밀리 5인방’이 별다른 갈등없이 신속하게 후계구도에 합의한 것은 고 최종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지분이 많지 않아 ‘뭉쳐야 산다’는 묵계가 있었기 때문.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과 기원씨는 아예 상속포기 각서를 썼을 정도였다. 또 연장자인 최윤원·신원 형제가 경영권에 욕심을 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맏이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최태원 회장이 가족대표로 경영권을 승계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적극 유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 회장은 가족회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룹 회장에 오르지 않았다. 그는 훗날 “대주주라는 이유만으로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경영인으로서 능력과 자질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SK그룹은 98년 9월 계열사 사장단회의격인 수펙스(SUPEX·슈퍼 엑셀런트의 준말)추구협의회에서 손길승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선임하고, 최 회장은 SK㈜ 회장직을 맡았다. 국내 재벌가에서 보기 드문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파트너십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최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토론해서 분석하고, 협의해서 합의한다.’로 요약된다. 합리적이며,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고려대 물리학과를 거쳐,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최재원 SK엔론 부회장은 ‘파이낸싱’의 귀재로 통한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일본계 증권사에서 18개월가량 근무한 경력도 있지만 그의 진면목을 드러낸 것은 2000년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에서였다. 당시 신세기통신의 최대주주는 27.6%의 지분을 보유한 포항제철(현 포스코).SK가 이를 매입하려면 1조 7000억원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최 부회장은 이를 SK텔레콤 지분 6.5%와 포철의 신세기통신 지분을 교환하는 방식의 스와핑(주식 맞교환)으로 해결했다. 최 부회장은 미국 브라운대 물리학과, 스탠퍼드대 재료공학과 석사, 하버드대 경제학 석사 출신이다.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은 94년 선경(현 SK)그룹 경영기획실로 첫 발을 내디뎠다.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에 뛰어나다는 평이다. 특히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계열사를 일부러 찾아다니며,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그가 96년 선경인더스트리(현 SK케미칼) 기획관리실장으로 있을 때는 국내 최초로 명예퇴직제를 도입했으며, 쉐라톤워커힐호텔과 SK상사에서도 잇따라 명퇴를 통한 감량 경영 바람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그는 ‘구조조정 리베로’라고 불렸다. 특히 최 부사장이 계열사로 내려온다는 소문이 들리면 해당 임직원들은 긴장했다고 한다. 서울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90년대부터 ‘나는 경영에 자질이 없다.’며 경영일선에서 한발짝 비켜섰었다.SK케미칼 회장 때는 아예 회장 결재란을 없애고,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일임했다. 사교와 대외활동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그룹의 원로 경영인들을 많이 챙겼다고 한다. 우석대와 미국 엘론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고 최종현 회장의 2세 교육 “선친은 자식들이 결코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유학시절엔 용돈이 항상 부족해 가정교사로 뛰고, 학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한번은 중고차를 샀는 데, 이것도 어떻게 구입했는지 일일이 현지 지사장으로부터 자금 출처(?)를 확인 받기까지 했죠. 그리고 집도 제일 싼 곳에서 살아 일주일에 쥐를 40마리까지 잡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쥐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을지 연구까지 했답니다.” 차남인 최 부회장은 남들처럼 어렵게 공부했던 미국 유학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고 최종현 회장의 자식 교육이 얼마나 엄격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 최 회장은 자식들과 토론을 즐겼다. 주제는 사회·경제가 아닌 과학 분야. 가끔은 난센스 퀴즈와 같은 질문을 들이대, 자식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최 부회장은 “부친이 살아계셨으면 최근의 토론 주제는 아마도 황우석 서울대 교수와 관련됐을 것”이라며 “그 만큼 과학을 중시했다.”고 설명했다. ‘화학도’인 고 최 회장은 아들들은 모두 이과 전공을 권했다. 최종현 회장은 장남이 진학 문제로 고민할 때 “자신의 진로는 자신이 선택해라. 하지만 어떤 직업을 갖든 합리적 논리를 펼 수 있는 객관적 지식을 갖춰야 한다. 경제의 기본원칙은 ‘합리(合理)’다. 경제를 잘 알려면 ‘리(理)’와 관련된 분야로 물리나 화학, 생물 가운데 하나를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장남인 최 회장은 문과 지망생이었지만 선친의 뜻에 따라 물리학을 전공하게 됐다. 최 부회장도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고 최 회장은 또 자식들에게 최종 학력만큼은 최고를 주문했다. 최 부회장은 “선친은 최고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학은 아무 곳에서 졸업해도 괜찮지만 최종 졸업장은 최고 수준의 ‘학벌’이 필요하다.”면서 “그래야 최고가 뭔지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SK가 3세들은 ‘공부 중’ 최씨가의 2세들은 대부분 연애 결혼했다. 최 회장은 미국 시카고대에서 노소영(44)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만났다. 최 회장의 설명이다. “대학 테니스 동호회에 선수가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와이프를 적극 끌어들였죠.”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가 진척될수록 SK가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노 관장의 부친이 당시 여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 체육부 장관으로 정경 유착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친인 고 박계희 여사가 미국에 건너가 맏며느리감인 노 관장을 직접 살펴봤으며, 고 최 회장도 미국 출장중에 노 관장을 면담했다. 고 최 회장은 사돈인 노 장관이 대통령이 되자 임직원을 모아놓고 “이제부터 SK는 해외에서 사업을 벌일 생각을 해야 한다.”면서 “조금이라도 정경유착이라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경영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주위의 이목속에 결혼한 탓일까. 부부간 ‘애정 전선’은 세간의 이목 이상으로 견고하다는 평이다. 한 지인의 얘기다.“최 회장이 2003년 ‘SK글로벌’ 사태로 구속 수감됐을 때입니다. 노 관장은 공판 때마다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1주일에도 세 차례씩 면회를 꼭 갔었어요. 당시 수감중인 최 회장은 노 관장의 생일에 사람을 통해 장미꽃을 전달하기도 했고요.” 최 회장과 노소영씨는 장녀 윤정(16)양과 차녀 민정(14)양, 장남 인근(10)군 등 1남 2녀를 두고 있다. 차남인 최 부회장과 채서영(41) 서강대 영문과 교수의 인연은 누이동생인 최기원씨 소개로 맺어졌다. 채 교수와 기원씨는 친구 사이다. 자녀는 2남1녀. 장남 성근(14)군과 장녀 원정(8)양, 차남 동근(6)군이다. 고 최윤원 회장과 김채헌(51)씨는 슬하에 1남3녀를 두었다. 장녀 서희(28)씨는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으며, 지난해 7월 평범한 집안 출신인 최성훈씨와 결혼했다. 최씨는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에서 근무하고 있다. 차녀 은진(22)씨와 3녀 현진(20)씨, 장남 영근(18)씨는 모두 학생이다. 최신원 SKC 회장은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 유진(27)씨는 미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마치고, 현재 한국에 머물고 있다. 차녀 영진(25)씨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장남 성환(24)씨는 중국 복단대에서 학업을 하고 있다.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과 최유경(38)씨는 장녀 경진(8)양과 장남 민근(7)군을 두고 있다. 모두 초등학생이다. ●‘SK호’ 이끄는 전문경영인 조정남(64) SK텔레콤 부회장은 SK텔레콤의 기술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은 ‘산파’로 통한다. 또 ‘CDMA 전도사’라 불린다. 조 부회장이 밝힌 1995년 CDMA(부호분할다중접속)의 개발 성공 일화다.“당시 손길승 부회장이 저에게 지속적으로 CDMA 성공 여부를 물어오셨지만 답답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수천명이 동시에 통화를 시도할 수 있는 상업화 규모의 투자를 결심해야 하는 판국에 몰렸습니다. 그때 제가 손 부회장에게 ‘제게 400억원을 주십시오. 항상 물으시던 CDMA 성공 여부에 대해 확실한 답을 드리겠습니다.’고 했습니다. 손 부회장은 과감한 지원을 약속했고, 결국 세계 최초의 CDMA 상용화라는 신화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조 부회장은 외모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친근감이 넘친다. 자칭 ’리버럴리스트’로 말한다. 전북 전주 출신으로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왔다. 김창근(55) SK케미칼 부회장의 별명은 ‘마징가’다. 매일 서너 시간만 잠자며, 일에 매달리는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으며 업무를 했다고 한다. 일처리와 관련,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 후계자로 불릴 정도다. 그는 마지막 구조본부장으로서 1974년 ‘경영기획실’로 출범한 SK 구조조정본부를 30년 만에 직접 ‘간판’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1974년 입사 이후 SK케미칼 외환과장·자금부장·재무담당 상무를 거쳤고,1997년에는 그룹 구조본 재무팀장을 맡는 등 SK를 대표하는 재무전문가다. 서울 출신으로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USC(남가주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신헌철(60) SK㈜ 사장은 소탈한 외모와는 달리 일처리가 꼼꼼하다는 평과 함께 노력형 CEO(최고경영자)로 불린다. 상고 출신으로 주판알만 튀기던 그가 이효석의 단편 소설 ‘메밀꽃 필 무렵’ 때문에 대학 입시에 떨어지자, 아예 작품을 통째로 암기해 버릴 정도다. 그는 지금도 기분이 좋아지면 ‘메밀꽃 필 무렵’을 술술 읊어댄다. 신 사장은 본인을 ‘운 좋은’ CEO라고 평가한다.SK㈜ 사장도 운 때가 맞아 떨어진 것이지, 능력으로 뽑았다면 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고 겸손해한다. 신 사장의 얘기다.“최 회장으로부터 SK㈜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능력도 부족한 내가 맡아서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그러나 최 회장이 지금의 SK㈜는 ‘아버지’ 같은 CEO보다 상처를 보듬아주고, 이것 저것 챙겨줄 수 있는 ‘어머니’ 같은 CEO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CEO를 맡을)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그러나 ‘능력없다.’는 말과 달리 SK㈜는 신 사장이 CEO로 취임한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매출과 수출, 순이익 면에서 역대 실적들을 갈아치우고 있다. 신 사장의 운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 신 사장이 1998년 5월 SK텔레콤 수도권본부장으로 일할 때다. 당시 서정욱 사장은 국제전화 식별번호 추첨식에 참가할 SK텔레콤 제비뽑기 ‘대표선수’로 신 본부장을 선택했다. 가서 모든 경쟁사가 희망하는 ‘00700’ 번호를 뽑아오라는 특명과 함께. 그런데 이 업무는 신 본부장의 직무와 전혀 상관없는 무선사업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임직원이 염원했던 대로 기어이 ‘00700’번호를 뽑아내는 기염을 연출해냈다. 신 사장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부산상고와 부산대 경영학과, 연세대 경영학과 대학원을 나왔다. 김신배(51) SK텔레콤 사장은 논리적이며 날카롭다는 인상을 주지만, 의외로 가사를 외운 팝송이 100여곡에 이를 정도로 감성적인 면도 적지 않다. 또 순탄하게 CEO까지 오른 듯 보이지만 이공계 출신의 기획통 CEO로서 만년 하위권이던 수도권영업을 SK텔레콤 지사 중 1위로 올려 놓을 정도로 ‘야전 경험’도 많다. 그는 당시 현장 직원과 친해지기 위해, 또 바닥권이던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매일 ‘술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그는 사석에서 “평소에 즐겨하지 않던 술이었지만 그때 마셨던 술이 그 전 동안 마셨던 술보다 더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신세기통신과의 통합작업을 2년간 잡음없이 해 낼 정도로 사업 조정 및 대인 관계에도 능수능란하다는 평이다. 그는 애창곡으로 분위기를 띄울 때에는 ‘오늘같은 밤’(이광조)이나 ‘골목길’(신촌블루스)을, 분위기를 탈 땐 ‘사랑이 지나가면’(이문세)이나 ‘사랑일 뿐이야’(김민우)를 부른다고 했다. 학창시절엔 팝송 100곡 정도는 가사를 안보고 부를 정도였다고. 김 사장은 충남 부여 출신으로 경기고,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정만원(53) SK네트웍스 사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표적인 CEO다.2003년 그룹이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사태로 위기를 맞았을 때 SK글로벌 정상화추진본부장으로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이같은 활약 덕분에 SK네트웍스 사장으로 취임, 채권단 조기 졸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 사장은 21회 행시 수석 출신으로 1994년 통산산업부 과장에서 ‘SK맨’으로 변신했다. 그는 사령장을 받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관련 서적 40권을 구입했다고 전한다.95년부터 OK캐쉬백 사이트의 원형인 쇼핑몰을 구상했으며,OK캐쉬백과 그 사이트를 기획해 SK에서 입지를 다졌다. 그는 서울 출신으로 중앙고,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박장석(50) SKC 사장은 오너가(고 최종건 회장의 둘째 사위)의 일원이지만 전문경영인으로 불리기를 더 좋아한다. 솔직함과 친근감을 바탕으로 강한 추진력과 빈틈없는 일처리 능력을 보유한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CEO라는 평이다. 그는 1979년 ㈜선경 미주본부로 입사, 경영지원본부장, 관리총괄 부사장을 거치며, 방송·통신 장비업체인 SK텔레시스 인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서울고와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미국 스티븐스대 경영학 석사 출신이다. golders@seoul.co.kr ● ‘맏형’ 최신원 SKC회장 “분가요?시기상조입니다. 여건도 성숙치 않았는 데 무슨 분가입니까. 지금은 형제간에 서로 협력해서 SK를 더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훗날 때가 됐다고 판단되면 제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것입니다.” 최신원(53) SKC 회장은 최근 재계의 이슈로 떠오른 ‘SK분가설’을 이렇게 일축했다. 이어 “형님(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이 돌아가신 이후 최씨가(家)의 맏이로서 형제간의 협력과 우애를 돈독히 하는 것이 저의 책무”라며 “이를 위해 형제간에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모임을 자주 갖는다.”고 말했다. 밖에서는 ‘패밀리 미팅’으로 알려진 형제간 모임은 실상 집안 제사 행사인 경우가 많다. 또 해외 출장을 빼곤 형제들 모두 참석하는 것이 최씨가의 오랜 전통이다. 최 회장은 ‘음지’에서 동생들을 지원하는 소리없는 ‘카리스마’로 유명하다. 지난해 ‘소버린사태’로 경영권을 위협받았을 때 SK㈜의 대주주인 SK케미칼 지분을 확대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형은 형답게, 동생은 동생답게 행동하면 불협화음이 나올 수 없어요. 사업이야 다들 알아서 잘 하니까. 또 어려운 일이 닥치면 서로 뭉치면 되고요. 선친과 숙부께서 상호신뢰 속에서 그룹을 키워오신 것처럼 우리 2세 형제들도 서로 협력해 SK그룹을 세계적인 그룹으로 키울 것입니다.” 최 회장은 또 “몸은 부실해도 부친을 닮아 통뼈”라며 선친인 고 최종건 회장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선친은 언제나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사실 죽으면 돈 갖고 갑니까. 살아있을 때 좋은 일을 많이 해야죠.” 그는 앞으로 무엇이 되기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은 듯했다.“제 소박한 꿈은 이렇습니다. 재단법인 ‘선경 최종건 재단’의 장학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입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한국에 영국의 ‘이튼스쿨’과 같은 명문 사립학교를 설립하고, 전문 기술학교를 세워 선친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최 회장은 “선친은 평소 교육에 열정이 대단했지만 일찍 돌아가신 탓에 실천에 옮기지 못하셨다.”면서 “선친의 이름으로 재산을 지속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국내 재벌가에서 보기 드문 해병대 출신이다. 부친이 그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해병대 입대를 권유했기 때문. 그는 이런 경험을 살려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었던 회사의 임직원은 반드시 해병대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직원들 사이에서 ‘해병대 CEO’로 불린다.CEO(최고경영자)로 나선 지 8년째인 최 회장은 신속하면서도 과감한 업무 추진력, 강한 리더십을 가졌다는 평이다. 이는 위기관리 능력으로 이어져 SKC 회장에 취임한 이후 한계사업의 과감한 철수와 정보통신 관련 사업 진출 등 적극적인 ‘턴어라운드’ 작업을 통해 SKC를 우량기업으로 변신시키고 있다. golders@seoul ● 최씨가 며느리·딸 ‘경영불참 불문율’ 국내 재벌가에서 며느리들을 경영에 참여시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SK가(家)는 이보다 한 술 더 떠 딸들까지 아예 배제한다. 한 임원의 얘기다 “최종현 회장이 한번은 가족 회의를 열고 최씨가의 여성은 딸이든, 며느리든 경영 참여는 안된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남자만 경영에 참여시키기로 한 거죠. 그래서 큰 집(최종건가)과 작은 집(최종현가)의 5남 5녀 가운데 ‘대표선수’ 5명(윤원, 신원, 창원, 태원, 재원)만 경영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런 불문율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고요.” 큰 집 조카들까지 포함해 10남매의 가장 역할을 했던 고 최종현 회장(그는 생전에 형의 3남 4녀와 자신의 2남 1녀를 합한 ‘5남 5녀의 아버지’로 자처했음)이 기업 경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며느리와 딸들을 경영진에 참여시키지 않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일화 한토막. 최 회장이 병마와 막바지 씨름할 때였다. 하루는 저녁 식탁에 앉았는 데 큰 아들(최태원 SK㈜ 회장)이 보이지 않자, 큰 며느리(노소영 관장)에게 “오늘도 못 온대.”라고 물었다. 노 관장은 시아버지에게 어리광 부리듯 “네∼”라고 답했다. 이어 “요새 그 사람 얼굴 보기도 어려워요.” 그러자 최 회장은 무뚝뚝하게 “사업을 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니. 사업이란 장난이 아니다. 전력투구해야 한다. 사업을 위해서 희생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최씨가의 맏며느리인 김채헌(51·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부인)씨는 최씨 2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집안 안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항상 소리 안나게 일을 처리한다는 평이다. 시동생 얘기다.“집안을 화목하게 하는 데 형수님으로서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하는 일은 없지만 애들도 어느 정도 커서 이제는 뭔가 해 보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시동생의 평은 이렇다 “워낙 말이 없고, 착하기만 합니다. 마음도 대단히 여리고요.” 노소영(44)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최씨가의 며느리 가운데 가장 활동적인 편이며,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긴다. 국제적인 감각이 뛰어나고 예술쪽에 관심이 많다. 최태원 회장도 노 관장의 바깥 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 지인은 “최 회장과 성격이 비슷한 데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해서인지 대단히 합리적인 분”이라며 “서로 바쁘기는 해도 주말에는 같이 시간을 보내며, 테니스를 치거나 요리를 하는 등 부부 금슬이 대단히 좋다.”고 설명했다. 시아버지인 최종현 회장은 큰 며느리를 어떻게 봤을까. “저래도 아이들 교육은 잘 시킨단 말이야. 제 시어머니(고 박계희 여사)를 닮은 데도 많고….”고 최 회장과 50년 지기인 언론인 홍사중씨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겉으로는 제법 쌀쌀하면서도 조금도 표리가 없고, 야무지게 집안 살림을 꾸려나간다는 뜻으로 최 회장이 며느리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고. 최재원 SK엔론 부회장 부인인 채서영(41)씨는 야무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서강대 영문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집 사람이 좀 바쁘죠. 그래서 저는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가능한 한 골프를 치지 않으려고 해요. 집안 일은 좀 거드는 편인데…. 와이프 눈에는 많이 부족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만 쓰는 주방용 칼이 있으면 된 것 아닙니까.”라며 웃는다.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 부인 최유경(38)씨는 치과의사다. 개업을 않고 가끔씩 지인들 병원에서 일손을 거들고 있다. golders@seoul.co.kr .co.kr
  • [열린세상] 무너진 마을 공동체 살려내자/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북한산 자락의 세검정 골짜기로 이사를 온 지 십년이 지났다. 가파른 산언덕을 오르내리는 일이 때로 고역스럽기도 하다. 겨울에는 엉금엉금 기어 눈길을 내려가고, 여름에는 땀에 젖어 언덕길을 올라와야 한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펼쳐지는 산등성의 아름다움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생각조차 못하고 산다. 어둠이 걷힐 무렵 드러나는 산허리는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으로 눈부시다. 이따금 구름 사이로 두 마리씩 새가 날기도 한다. 이곳으로 이사를 온 후 누리는 가장 큰 기쁨은 따로 있다. 동네 아이들과 주말마다 축구를 하는 것이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누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나를 기다린다. 편을 나눠 몇 시간 뜀박질을 한 후, 기껏해야 우유와 빵 한 조각씩을 사주는 것이 전부지만 그것으로 아이들은 함박웃음을 짓는다. 생각해 보면, 공동체라는 것이 무너지고 마을이 해체된 오늘에 와서 아이들은 동네에서 축구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마루에 가방을 집어던지고 밖으로 뛰어나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던 것은 옛날 일 이다. 어른들이 서로 뉘 집 아이인지를 알아보고 보호하는 속에서,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놀이를 결정하고 참여할 수 있었다. 공동체가 살아있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공동체가 무너진 오늘날의 풍경은 전혀 다르다. 축구 하나만 해도 그렇다. 체능이라는 과외에 돈을 주고 별도로 가입하지 않으면, 동네 운동장에 나와 축구팀 하나도 구성하고 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아이들과 어울리며, 무너진 공동체가 우리 사회에 요구하는 또 다른 비용이 과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외라는 것이 자기 자식을 천재로 착각한 대한민국의 맹렬 주부들이 만든 기현상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대문 밖으로 자유롭게 나가 놀 수 없는 어린이들을 어른들이 귀가할 때까지 그냥 ‘돌리는’ 것이었다. 천재수업 혹은 선행학습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원을 빙빙 돌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빠른 사회변동을 경험하여 왔고, 그 사이 공동체라는 것이 얼마나 유지되기 어려웠는지는 높은 이사율이 말해준다. 읍면동의 경계를 넘어 거주지를 옮기는 이사율이 매년 20% 내외로 기록되고 있다. 일본의 5%, 유럽의 2% 수준에 비해 볼 때, 대단히 높은 비율이다. 옮기고, 올라가고, 넓히는 것이 개발연대 발빠른 사람들의 지표였고 자랑이었다. 그 변화의 와중에 어떤 지속성이 있는 인간관계, 안정된 마을가꾸기 같은 것에 마음을 쏟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옛날 시골마을의 공동체와 동네에 대한 추억이 있는 세대는 노래방에 가서 ‘강촌에 살고싶네’라는 노래를 조릴 뿐, 현실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공동체를 회복하고 마을을 만드는 일은 단순히 어린아이들의 축구 문제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규범도, 삶의 질도,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어렵다. 이것이 요즈음 얘기하는 사회자본이론의 핵심이다. 사회자본이론에 따르면, 국가 안에 동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 안에 국가도 있고 동네 안에 경제도 있다. 단순한 지리적 단위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공동체 속의 신뢰와 규범, 질서로 인해 경제발전이 결정되고 국가의 흥망이 좌우된다. 필자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지방자치에서도 그러한 측면이 발견된다.1991년 이후 우리가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하였지만, 일정 수준 분권화에는 성공을 이룬데 반해 아래로부터의 자치는 발아되지 않고 있다. 마을과 동네 단위의 공동체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공동의 어울림이나 동네일에 관심없던 사람이 어느날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참여에 앞장 설 리 만무하다. 공동체와 마을이 무너져갈수록,‘뿌리 뽑힌 자’들의 허탈한 가치관은 도를 더해간다. 공동체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얘기는 옛 추억을 그리는 복고풍 타령이 아니다.21세기를 열어가야 하는 우리사회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공동체를 살리고 마을을 만드는 일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주말마다 동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함께 하는 아이들이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가기를 나는 소망하게 된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 [공연포커스] 죄수들의 코믹한 베이스

    이탈리아 출신 더블베이스 주자 네명으로 구성된 언터테인먼트 퓨전밴드 ‘베이스 갱’이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지난 2002년 12월 결성된 이들은 ‘베이스 갱스터’ 라는 장난기어린 이름이 말해주듯 죄수복을 입고 코믹한 제스처로 더블베이스 현을 손으로 뜯고, 악기 몸통을 신나게 두드리고, 함성도 지르는 등 익살맞은 연주를 들려준다. 클래식에서 재즈, 팝, 록에 이르기까지 장르는 물론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멤버 모두가 정통 클래식을 전공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17일(오후 8시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엄)과 18일(오후 5시 광진구 나루아트센터) 이틀간 펼쳐질 이번 공연에서는 스윙으로 변주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피아졸라 ‘더블베이스 전주곡’, 베르디의 ‘리골레토 4중창 변주’, 레이 파커 주니어의 ‘고스트 버스터즈’ 등을 준비했다.3만∼7만원.(02)599-5743.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폐광지역에 대규모 풍력단지

    동해안과 폐광지역에 민·외자 1억달러가 투입돼 중대규모의 풍력단지가 조성된다. 독일을 방문중인 김진선 강원도 지사는 14일 함부르크에 소재한 P&T사의 젠 피터스 및 볼프강 트루셀 공동 대표와 투자상담을 갖고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P&T사는 풍력개발 및 대체에너지 프로젝트 개발관리를 전문으로 하고 있으며, 이미 2003년 강원도를 찾아 사업부지 조사를 마친 상태이다. 또 지난달 P&T사 주요 관계자가 도를 방문해 투자의향을 밝혀 조만간 사업추진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P&T사는 동해안과 폐광지역에 5000만달러 이상을 직접 투자하고, 나머지 5000만달러는 독일 현지자본과 국내 민간자본을 참여시키기로 했다. P&T사는 당초 3000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이었으나 국내 현지조사를 마친 결과 사업성이 양호하다며 5000만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현행법상 외자 3000만달러 이상 유치되면 외국인 투자지역 지정이 가능해 각종 세제혜택 등이 주어진다. 특히 동해안과 폐광지역이 외국인 투자유치 활성화 지역으로 발전돼 풍력단지뿐만 아니라 첨단산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 지사는 “P&T사가 동해안과 폐광지역의 현지 실사를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사업추진이 조기에 가시화될 것”이라며 “외국인투자 지역 지정 등 구체적인 실무를 지원해 이르면 내년 초에는 착공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젠 피터스 P&T 회장은 “유럽의 풍력시장은 정체됐으나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인도 등 아시아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강원도의 풍력시장 입지요건이 가장 높은 것으로 판단돼 조만간 타당성 조사를 거쳐 착공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그는 또 “이미 중국에 풍력단지를 개발하고 있는 만큼 강원도에도 신기술 특허인 ‘기어없는 발전터빈’을 활용해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지사는 이날 함부르크 방문을 마치고 오후 베를린에 들러 추가 투자유치 활동을 펼쳤으며 15일에도 뒤셀도르프에서 투자유치 설명회를 가졌다.베를린 조한종특파원bell21@seoul.co.kr
  • 드라마 ‘패션70s’의 이요원

    드라마 ‘패션70s’의 이요원

    해가 뉘엿뉘엿 지려 하는 느즈막한 12일 오후 진도 읍내로 꾸며져 있는 수원 드라마 야외 세트장. 디자이너를 꿈꾸는 더미(이요원)는 자신의 미래를 찾아 집을 떠나려 한다. 양어머니 양자(송옥숙)는 정신 차리라며 실강이를 벌이지만, 더미는 기어이 그 손길을 뿌리친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SBS 특별기획 드라마 ‘패션70s’의 한 장면.60분짜리 드라마 한 회 가운데 채 5분도 되지 않는 분량이다. 촬영은 이미 한 시간을 훌쩍 넘었다. 특별히 NG가 나서가 아니다. 카메라 위치를 바꿔서 찍고, 느낌이 오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다시. 2003년 1월 SBS 대하사극 ‘대망’이 끝난 뒤 정말 오랜만에 안방 무대를 두드리고 있는 이요원(25). “대사를 한 번도 틀리지 않네요.”라며 슬쩍 말을 붙여봤다.“웬걸요,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를 찍을 때는 한 장면에 10번이나 실수했는 걸요.” 다시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지고 있다며 쑥스러운 듯 미소를 흘렸다. “정말 힘들어 이재규 PD님이 원망스럽기도 해요.”라고 혀를 내두르다가도 “하지만 찍힌 화면을 보면 너무 마음에 들어 오히려 감사하죠.‘다모’에서처럼 각 캐릭터의 개성도 모두 살려주시니까 극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도 없어요.”라며 흡족해 한다. 2년 전 연기 활동을 잠시 접었을 때나 지금이나 앳되고 청순한 모습은 변함이 없지만, 무엇인가 달라진 점이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여유와 책임감’이라는 다소 상반된 이야기를 꺼냈다. “언제나 즐겁게 연기하려 해요. 이전보다 현장에서 여유가 생긴 것도 같고요. 반면 결혼 전에는 이번에 못해도 다음에 잘하면 된다는 자세였다면 지금은 한 장면 장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카메라 앞에 서요.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 있다는 책임감 때문이죠.” 살아보지 못한 시대에 대해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시대극을 좋아한다는 그는 “특히 ‘패션70s’은 여자들의 일과 삶을 다루기 때문에 좋다.”고 말한다. 또 “남성 주인공을 앞세우거나 멜로 중심의 트렌디 드라마, 영화보다 이런 종류의 드라마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지난주 방영분에서 드디어 이요원 김민정 주진모 천정명 등 성인 연기자들이 아역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덕인지 시청률은 20% 중반으로 치솟았다. 복귀작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조금은 털어낸 셈이다. “연기하는 것은 너무나 좋은데, 내가 연예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이요원은 연예인이 아니라, 연기자로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다. 때문에 인터뷰도 꺼리는 편이다. 일부에서는 신비주의 전략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지만,“카메라 앞을 떠난 삶은 너무나 평범해 드러내 놓고 말할 게 없어요.”라며 손사래를 친다. 때문에 복귀 이후 자신의 결혼 생활에 관심이 쏠리는 게 부담스럽다. 오로지 연기로만 평가받았으면 하는 바람. 밀려오는 CF 제의도 마다하고 드라마에 매달리는 것도 그래서다. “어느 역을 맡아도 맛깔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는 연기자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자신을 기다리는 촬영장으로 다시 발길을 돌리며 그렇게 말했다.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친환경 해결사 지렁이

    친환경 해결사 지렁이

    흙과 뒤엉켜 꿈틀거리는 징그러운 지렁이가 난지 하수처리장에서는 ‘부지런한 일꾼’이다. 지렁이는 사람의 분뇨를 야금야금 먹으면서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까닭에 오물처리 비용이 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지렁이가 뱉어내는 분뇨인 분변토는 영양분이 풍부해 비료로 팔리기까지 한다. 지렁이를 낚시 미끼 정도로만 여겼다면 이제부터는 생각을 바꿔야 할 때다. ●분뇨를 먹는 고마운 지렁이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난지하수처리장에 조성된 8400평의 밭이 바로 지렁이의 일터다. 멀리서 보면 여느 농가의 밭과 다름없지만, 밭과 가까워질수록 예상대로 분뇨 냄새가 코를 찌른다. 냄새는 그렇다치고 막대기로 땅을 파헤치니 땅과 뒤엉켜 꿈틀거리는 뻘건 지렁이가 딸려 나온다. 가로 3m, 세로 30m짜리 밭 40이랑에 모두 50t의 지렁이가 살고 있다. 지렁이의 먹이는 바로 ‘분뇨 케이크’. 이름이 생소하지만,‘분뇨 덩어리’로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배설한 분뇨가 집안 정화조에 머물러 있다가 운반차에 실려 난지하수처리장으로 오면 ‘특별한 변신’을 위해 몇가지 공정을 거친다.‘투입조’에 들어가 분뇨와 함께 실려온 침사물을 우선 걸러낸 뒤 순수한 분뇨를 남긴다. 이후 ‘탈수기’에서 수분을 75% 정도 뺀 다음 남게 되는 찌꺼기는 덩어리 형태로 만들어지는데, 이게 바로 분뇨 케이크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분뇨 케이크를 밭 위에 2㎜ 두께로 덮어두면 밭 속 20㎝ 아래에 있던 지렁이들이 기어올라와 이를 먹어치운다. 색깔이 검은색에 가까울수록 분뇨 케이크가 최근 뿌려진 곳이고, 황토색일수록 지렁이가 분뇨 케이크를 다 먹어치운 곳이다. 밭에 세로로 걸쳐 있는 수도관은 딱딱한 분뇨 케이크를 물렁물렁하게 해주기 위해 물을 뿜어낸다. ●“지렁이가 돈을 낳네”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난지하수처리장에서 지렁이가 이 방식으로 먹어치운 분뇨 케이크는 모두 3만 4729t이다. 해양 투기, 직매립, 소각 등으로 분뇨 케이크를 처리할 때 3만원 안팎의 비용이 들지만 지렁이가 분뇨케이크를 먹어치운 것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덕분에 지렁이가 분뇨 케이크를 먹는 것만으로도 10억 3600만원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여기에다 난지하수처리장은 비료판매업체인 ‘한국녹색환경’에 지렁이의 분변토 4702t을 팔아 1억 5900만원의 수입을 올려 모두 11억 9500만원의 수익을 거뒀다. 특히 분변토는 친환경적인 알짜배기 수익원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분변토는 0.2∼2㎜의 동글동글한 흙알갱이다. 공극률(암석이나 토양의 입자와 입자 사이에 있는 빈틈이 차지하는 비율)이 적당해 공기가 잘 통해 악취 제거 능력이 있다. 또 식물성장에 필요한 유·무기질 성분, 항생물질 분비균인 바실러스균이 함유돼 병원균·곰팡이 차단효과도 있다. 골프장·정원 잔디의 비료, 탈취제 원료로 쓰인다. ●지렁이밭 토마토의 비밀 지렁이가 먹은 분뇨가 분변토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자연의 순환’이라면 지렁이밭 자체도 이같은 순환 현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바로 지렁이밭에 푸릇푸릇 돋아나는 새싹들이다. 오이·토마토·수박부터 이름 모를 잡초까지 다양하다. 잡초는 풀씨가 날아와서 생긴 것이지만, 과일·채소들은 분뇨 케이크에서 나온다. 사람의 분뇨에 섞인 과일·채소씨들이 살아남아서 다시 자라는 것이다. 난지하수처리장 이점호 팀장은 “한번은 토마토 열매가 열려서 먹어봤더니 맛이 기막혔다.”면서 “영양분이 풍부한 분변토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렁이를 나타내는 라틴어 ‘Lumbricus’가 대지의 장(腸)이라는 뜻을 지녔듯 지렁이는 땅 속에서 숨쉬며 흙을 비옥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친환경적인 농사꾼’으로 대표되는 지렁이를 이용한 분뇨 처리법도 친환경 농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분뇨 케이크를 매립할 때에는 매립가스·침출수로 인한 환경오염이 발생하는데, 특히 가스 가운데 60%를 차지하는 메탄가스는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주범이다. 해양투기와 소각 등도 역시 해양·공기오염 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음식쓰레기 해결도 척척 화분 활용하면 일거양득 “지렁이는 음식물 쓰레기 해결사” 지렁이는 분뇨 케이크뿐만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도 잘먹는다. 올해부터 음식물 쓰레기 매립이 금지된 뒤로 지렁이를 이용한 음식물 쓰레기 처리법이 주부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화분에 흙·지렁이·음식물 쓰레기를 넣으면 지렁이가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치우는 방식이다. 다만 지렁이는 어두운 곳을 선호하기 때문에 뚜껑 역할을 하는 맨 위의 화분에는 식물을 키우고, 두번째·세번째 화분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한다. 지렁이의 분변토는 맨 위 화분 식물의 비료로 활용할 수 있다. 서울 YWCA 허수진 간사는 “음식물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가정에서 음식물을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싶거나 자녀에게 생물 관찰을 통한 학습의 기회도 제공하려는 가정에는 지렁이 화분을 권장한다.”면서 “예쁜 토분으로 집안 분위기를 띄울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렁이 화분은 에코붓다,YWCA 등에서 부정기적으로 분양하지만 집에서 스스로 만들어볼 수도 있다. 지렁이 화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높이 30㎝의 항아리형 토분 2개와 넓적한 토분 1개, 지렁이, 분변토를 준비한다. 지렁이가 사는 집인 화분은 습도 유지를 위해 토분이 가장 좋다. 두 개의 항아리형 화분에는 분변토와 지렁이를 넣고, 맨 위 넓적한 식물을 심어 올려둔다. 흙은 분변토와 일반 흙을 1대 1 비율로 하면 된다. 흙과 지렁이의 비율은 2대 1이나 3대 1이 적당하다. 지렁이를 화분에 넣었으면 물뿌리개로 물을 뿌려준 다음 화분이나 덮개로 빛을 가려줘야 한다. 단, 지렁이가 새로운 집에 적응할 수 있도록 2∼3일 동안은 음식물을 넣지 않고 기다려 준다. 먹이를 잘게 썰어 넣어 주면 지렁이가 더 잘 먹는다. 하지만 상한 음식물은 넣으면 가스가 발생해 지렁이가 죽을 수도 있다. 화분의 흙은 촉촉한 상태나 약간 부슬부슬한 상태(습도는 60∼70%)로 유지시켜야 한다. 너무 건조하면 활력이 떨어지고 수분이 너무 많으면 공기가 통하지 않아 숨을 쉴 수가 없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해양배출 60.4%·재활용 0.5% 지난해 서울시에서 처리된 분뇨는 모두 2만 8286t. 이는 2.5t짜리 청소트럭 1만 1314대와 맞먹는 분량으로, 차량을 일렬로 세워놓으면 58.832㎞나 된다. 일단 서울시내 각 가정의 분뇨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현천동의 난지 하수처리사업소, 서울시 성동구 송정동 중랑하수처리사업소,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 서남환경 등 3곳으로 보내진다. 처리장에서 휴지, 기저귀, 생리대 등을 걸러내고 물을 빼는 등의 공정을 거쳐 분뇨 케이크가 만들어지면 하수처리장의 하수 케이크와 함께 처리된다. 일명 ‘오니(汚泥) 케이크’로 모두 67만 3232t이다. 오니 케이크는 ▲해양배출 40만 6866t(60.4%) ▲소각 10만 7270t(15.9%) ▲고형화 8만 530t(11.9%) ▲건조 5만 6801t(8.4%) ▲경기도 김포 수도권 매립지에 직매립 1만 6116t(2.3%) ▲재활용 3649t(0.5%) 등의 형태로 처리된다. 해양배출의 경우 인천 앞바다에서 250㎞, 군산 앞바다에서 200㎞ 떨어진 공해상이다. 해양오염방지법상 ‘서해 병(丙) 해역’이라 불리는 곳이다. 해양 배출로 가장 많이 처리되는 것은 t당 처리 비용이 2만 8000원으로 저렴할 뿐만 아니라 공기오염 등의 민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양 오염을 방지하는 ‘런던협약’의 발효로 해양투기 양도 점차 줄어들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고형화 처리법의 경우 수도권 매립지에서 오니 케이크 쓰레기가 쌓이면 덮는 흙으로 쓰게 된다. 오니 케이크를 건조시키거나 소각한 뒤 남은 물질은 시멘트 회사에서 점토 성분 대용의 연료로 이용된다. 또 오니 케이크에는 유기물이 들어 있어 불이 붙기 때문에 불을 때는 물질로도 쓰인다. 재활용 처리법에 의한 오니 케이크도 대부분 시멘트 회사로 보내지거나 도로에 까는 원료로 쓰이고 있으며 지렁이를 이용한 처리법은 1000t 정도로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이 주일의 어린이 책] 책벌레도 좋은 말을 사랑해요

    ‘노란 똥 책벌레’(이상교 글, 이경희 그림, 작은책방 펴냄)는 책 읽는 기쁨을 간지럼 피우듯 즐겁게 전해주는 그림동화책이다. 책 읽기를 너무 싫어하는 꼬마 친구 결이. 그런 결이에게 책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리 없다. 징검다리 장난감이 되질 않나, 낮잠 잘 때 눌러 베는 베개가 되질 않나…. 그런 어느날 책갈피에서 꼬물꼬물 기어나온 송충이 모양의 초록색 벌레 한 마리. 사각사각 책의 글자를 잘도 갉아먹는다 싶더니 글자가 사라진 자리에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똥을 싸놓는 거다! “옳아, 때는 이때다!” 평소 읽기 싫었던 책들에다 국어사전까지 몽땅 책벌레에게 갖다 줘버린 결이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밖에서 놀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데…. 한참 뒤 어떤 일이 벌어질까. 큰일 났다. 냉장고에 꽁꽁 숨겨뒀던 아이스크림, 변신 로봇, 장난감 블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벌레가 글자를 갉아먹은 물건들은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결이는 그만 깜빡 잊고 있었던 거다. 나쁜 말을 갉아먹으면 까맣게 흉한 색깔로 변해버리거나, 책을 읽을수록 향기로운 똥을 누는 책벌레. 자잘한 아이디어들이 어느새 아이들에겐 풍성한 메시지로 다가간다.4세 이상.8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길섶에서] 연탄가스/심재억 문화부 차장

    무슨 조화였는지는 모르지만 열다섯 한참 잠 많은 내가 자다가 문득 눈을 떴습니다. 까닭없이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아파서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어찌어찌 몸을 뒤집어서는 무릎으로 버겨 일어났으나 그만 픽,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이게 무슨 조환가 싶어 옆에 누워 자는 형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밤새 새어든 연탄가스가 집 떠나 자취하는 두 형제를 잡아가려 한 것입니다. 그나마 나는 움직일 수나 있었지, 형은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뭉기적거리며 기어가 방문부터 열어 젖혔는데, 그 다음엔 뭘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란 발을 꼼직여 형의 굳은 몸을 툭, 툭 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천우신조로 집주인이 화장실엘 가려다 그 광경을 보고는 놀라 찬물에 씻기고, 동치미 국물을 마시게 해 죽다가 살아났는데, 그 시절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해 허구한 날 신문, 방송에 이런 기사가 아예 한 자리 깔고 있었던 때였지요. 지금이야 구경하기도 힘든 연탄, 그 연탄가스 때문에 참 많은 생이 결단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닙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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