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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 영화]

    ●오늘부터 시작이야(EBS 토요일 밤 11시) 다니엘 르페브르는 프랑스 북부의 한 폐광도시에 위치한 유치원에서 원장이자 교사로 헌신적으로 일하는 40대 남성이다. 주민들의 높은 실업률과 낙후된 환경에 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 경종을 울리는 일이 일어난다. 알코올 중독자인 앙리 부인이 다섯 살 난 딸 래티시아와 갓난아기를 데리고 유치원 운동장에 있던 중 갑자기 쓰러지고, 잠시 후 깨어나서는 아이들을 놔둔 채 도망을 친 것이다. 다니엘은 우여곡절 끝에 이들을 집까지 데려다 주게 된다. 하지만 그곳의 열악한 상태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이를 계기로 부모들의 실업 문제와 그것이 생활환경과 자녀 교육에 미치는 악영향에 경각심을 갖게 된 다니엘은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 그러나 모두들 교육자가 주제넘게 사회복지사 역할을 하려 든다며 핀잔만 준다. 하나같이 복지부동 상태를 고수할 뿐 아니라 기관 간에 전혀 조율이 되지 않고 중구난방식으로 가동되는 사회 시스템에 다니엘은 실망하고 분노하고 만다. ●나의 발리우드 신부(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소설가 지망생, 알렉스는 어느 날 캘리포니아에 휴가를 온 인도 미인, 리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리나와 몇 번 데이트를 즐기는 동안, 리나는 알렉스에게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자신의 운명을 따라 사는 것이 순리라고 말해 준다. 리나 또한 알렉스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인도 가정의 가치와 의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알렉스에게 말 한마디 남기지 않은 채 인도로 돌아가 버린다. 리나가 떠난 후, 그녀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알렉스는 리나의 말처럼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녀를 찾아 무작정 인도로 향한다. 아는 것은 오로지 ‘리나’라는 이름뿐. 인도에서 만난 릭샤 운전사의 도움으로 리나를 찾은 알렉스는 그녀가 인도의 발리우드에서 초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대스타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아임 낫 데어(OBS 일요일 밤 11시 15분) 전설적인 포크록 가수 밥 딜런 특유의 시적인 가사를 줄기 삼아 그의 7가지 서로 다른 자아의 이미지와 이야기들을 연달아 진행시키며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렬한 아이콘의 생동감 있는 초상을 완성한다. 음악적 변신으로 비난받는 뮤지션 쥬드(케이트 블란챗), 저항음악으로 사랑받는 포크 가수 잭(크리스찬 베일), 회심한 가스펠 가수 존(크리스찬 베일)이 대중에게 주목받는 뮤지션으로서의 밥 딜런의 실제 삶을 보여준다면, 영화 속 영화에서 잭을 연기하는 배우인 로비(히스 레저)는 밥 딜런이 아니면서도 어딘가 그를 닮은 미묘한 인상을 남긴다. 은퇴한 총잡이 빌리(리처드 기어)와 시인 아서(벤 위쇼). 그리고 음악적 스승 우디는 밥 딜런의 문화적 배경과 영감의 원천을 상징하며 아이덴티티를 농밀하게 완성해내는데….
  • 눈물 나는 생존전략…가시덮힌 선인장 위 보브캣

    눈물 나는 생존전략…가시덮힌 선인장 위 보브캣

    정말 눈물 나는 생존전략이다. 붉은스라소니로 알려진 보브캣 한 마리가 살기 위해 가시로 뒤덮인 선인장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1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파코 에스피노자가 멕시코 소노라 주 나보조아에서 촬영한 보브캣 사진을 소개했다. 공개된 사진에서 보브캣 한 마리는 사나운 사냥개 무리를 피해 가장 높은 사와로 선인장 위에 올라가 경계를 취하고 있다. 당시 보브캣은 10마리의 사냥개를 피해 4.5m 높이의 높은 선인장에 올라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을 공개한 에스피노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선인장에 난 많은 가시 때문에 보브캣이 상당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라면서 “아버지와 함께 돌을 던져 사냥개들을 쫓아냈다.”고 전했다. 한편 보브캣은 자신의 영역 내에 혼자 사는 습성을 지니고 있으며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줄곧 선인장에 기어 올라가 안전할 때까지 있다가 내려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텔레그래프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기어다니고 걸어다니는 日 ‘아기 로봇’ 화제

    기어다니고 걸어다니는 日 ‘아기 로봇’ 화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의 인공지봇 로봇 데이비드가 현실화 될 수 있을까? ‘로봇왕국’ 일본에서 최근 2개의 아기 로봇이 선보였다. 오사카 대학 호소다 연구실은 아기 로봇 ‘Pneuborn-7ll’ 와 ‘Pneuborn-13’ 을 각각 개발해 언론에 공개했다. Pneuborn-7ll는 생후 7개월 정도의 아기를 상정한 기어다니는 로봇으로, 몸무게는 5.4kg, 신장은 80cm 정도다. 완전한 자율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이 로봇은 공기압으로 움직이며 인공관절과 척추도 가지고 있다. 특히 이 로봇은 CPGs(central pattern generators)를 기반으로 하는 알고리즘으로 구성돼 고성능센서나 인공지능 없이도 스스로 움직이도록 최적화 되어 있다. Pneuborn-13은 생후 13개월 아기를 상정한 로봇으로 2다리 보행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 졌으며 키는 75cm, 무게는3.9kg으로 Pneuborn-7ll 보다 가볍다. 이 로봇 역시 Pneuborn-7ll와 기능은 유사하나 아쉽게도 이 아기 로봇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동영상은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특파원 칼럼] 미국은 무서운 나라다/김상연 워싱턴특파원

    [특파원 칼럼] 미국은 무서운 나라다/김상연 워싱턴특파원

    미국은 무서운 나라다. 테러를 저지르고 가뭇없이 사라진 범인을 10년 만에 기어이 찾아낸 정보력이 섬뜩하고, 전광석화처럼 작전을 뚝딱 해치운 군사력이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이 ‘할리우드적 스펙터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미국이 오사마 빈라덴의 시신을 처리한 방식이다. 그들은 시신을 물로 씻기고 하얀 천으로 감싼 뒤 이슬람식으로 장례를 치러줬다. 정말 그렇게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 했다고 밝힌 게 중요하다. 3000여명의 국민을 죽인 ‘나라의 원수’라면 능지처참해도 분이 안 풀리는 게 인지상정일 텐데, 미국은 망자에 대한 예를 갖췄음을 애써 부각시켰다. 람보의 덩치를 가진 나라의 이런 소심한 뒤처리는 반미 감정을 최소화하려는 계산에서 나왔을 것이다. 피가 거꾸로 치솟는 그 감성의 상황에서 어쩌면 그토록 ‘드라이한’ 이성적 계산을 할 수 있는지, 나는 미국이란 나라가 소름 끼친다. 어떤 나라의 의사결정이 이성과 감성의 배합으로 이뤄진다고 할 때,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이성의 비율이 큰 판단구조를 갖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의 참혹한 시신 사진이 이슬람권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사진을 (승리의)트로피로 내세우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정말 그런 나라가 아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토머스 윌슨 대통령은 “승리 없는 평화”를 주장한다. 미국은 연합군의 승리에 큰 기여를 했으면서도 후환을 우려해 패전국을 가혹하게 징벌하는 데는 반대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성적 판단은 다른 승전국들에 의해 무시됐고, 이는 결국 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됐다. 미국은 1848년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등을 빼앗을 때도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방식을 구사한다. 전승국이라면 그냥 눈을 부라리며 새 땅을 꿀꺽하면 될 텐데 굳이 멕시코에 돈을 주고 구매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후환의 싹을 잘라 버린 셈이다. 미국은 판단을 내릴 때 머릿속에서 희로애락은 사라지고 딱딱한 계산기만 남는 것 같다. 미국의 ‘이성으로 판단하기’는 역설적으로 지금껏 북한 정권의 생존에 도움을 줘 왔다. 만약 미국이 조금만 더 감정적인 나라였다면 판문점에서 미군이 북한군의 도끼에 맞아 죽었을 때 평양을 폭격했거나, 그보다 앞서 한국전쟁에 중공군이 참전했을 때 베이징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머릿속에 북한 침공은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게임이다. 북한은 석유가 나는 금싸라기 땅도 아닌 데다 중국이라는 거구의 후견인이 뒤에 버티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북한은 미국의 ‘이성으로 판단하기’로 인해 치명적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때문이다. 최근 미군 수뇌부는 “북한은 5년 안에 미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미사일 개발이 가능하다. 북한은 점점 미국에 직접적 위협이 되고 있다.”는 우려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성으로 사고하는 미국의 이런 우려를 허풍이나 과장, 엄살과 같은 감성적 언어로 해석하면 오산이다. 북한이 핵과 단거리 미사일로 동북아에서 장난치는 것과 미 본토를 위협하는 ICBM을 개발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는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다. 미국이 감성적인 국가라면 ‘설마 북한이 우리한테 쏘겠어. 허풍이겠지.’라면서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성적 판단을 하는 미국은 단 1%의 확률이라도 미 본토로 미사일이 날아올 것이라는 계산을 내리면 북한을 반드시 손보려 할 것이다. 그때는 중국이건, 어떤 나라건 아무리 반발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미국의 전쟁사는 웅변하고 있다. 벼랑끝 전술은 ‘고위험 고수익’의 매력이 있지만, 단 한번의 아차하는 실수로 파국을 맞는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치명적이다. 이 위험성을 무시했다가 미국한테 사담 후세인도 당했고, 오사마 빈라덴도 당했다. carlos@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십년 후/김형수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십년 후/김형수

    십년 후/김형수 십년째 안 거르고 개똥꽃 핀 자리 밟힐수록 기어이 고개 세우는 꽃잎 위로 숱한 그림자는 스쳐가고 이슬 속 그리움 한두 알 영글어 오월 눈부신 햇살 머금네 쉬어가는 새도 그날을 울고 가는 담장 밖 바람소리 쫓겨가는 발자국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0) 남해 난곡사 느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0) 남해 난곡사 느티나무

    봄바람에 실려 온 편지 한 장 달랑 들고 먼 길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이 마치 조상 모시듯 정성으로 보호하는 나무’라며 할아버지 댁이 있는 시골의 정자나무를 소개한 제자의 편지다. ‘송글송글’이라는 유쾌한 이름의 여(女)제자는 편지에서 “마을 사람들은 농사가 잘될지 아닐지까지도 나무를 보고 짐작한다.”며 나무가 농사를 비롯한 모든 살림을 관장하는 큰 어른 같은 대상이라고 했다. 송양은 여러 각도에서 손수 촬영한 사진까지 첨부했다. 나무가 있는 곳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 은진 송씨 집성촌인 경남 남해군 난음리 난음마을이다. ●女제자가 보낸 편지 속의 느티나무 송양이 편지에서 그려낸 것처럼 느티나무는 마을 앞의 너른 논을 거느리는 듯한 마을 수호목의 융융한 위용을 가졌다. 나무의 풍광을 더 근사하게 하는 건 나무 곁에 서 있는 ‘난곡사’라는 한 채의 아담한 사당 건물이다. 난곡사는 고려 후기에 성리학의 체계를 완성한 유학자 백이정(1247∼1323)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지역 유림들이 세운 사당이다. 난곡사와 느티나무, 그리고 그 앞으로 넓게 펼쳐진 들녘은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난음마을이 정신과 물질 모두의 풍요를 누리는 아름다운 마을임을 짐작게 한다. 송양은 편지에 마을 사람들이 “느티나무의 잎이 예쁘게 잘 돋아나면 풍년이 들고, 잎이 잘 나지 않으면 흉년이 들 것”을 예측한다고 썼다. 오랜 경험을 통해 이뤄진 믿음이겠지만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느티나무에 잎이 나는 계절은 농사를 시작하는 때다. 곡물의 씨앗이 뿌리를 내려야 하는 이 즈음의 날씨는 한 해 농사를 쥐락펴락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느티나무의 잎이 무성하게 돋아난다는 건 곡식의 씨앗이 뿌리를 튼튼하게 내릴 수 있을 만큼 날씨가 좋다는 이야기다. 풍년을 예감할 수 있는 기미다. 그래서 이 같은 이야기는 난음마을뿐 아니라 큰 나무가 서 있는 농촌 마을에서라면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내내 나무를 바라보며 그 그늘 아래서 산다고 해도 되지요. 농사일이 바빠지면 모두 저 나무 앞에 모여들지요. 한여름에는 나무 그늘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선답니다.” 마침 느티나무 앞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노인이 나무 전체에 푸른 잎이 골고루 돋아나는 느티나무를, 풍년을 예감하듯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젊은 시절 대처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사는 송동우(77) 노인이다. ●마을 생활의 중심인 정자나무 농사일과는 무관했을 송양도 마을을 생각할 때마다 맨 먼저 나무가 떠오른다고 했다. “어릴 때 할아버지 댁에만 가면 사촌 형제들과 나무 곁에 나와서 놀았어요. 나무에 기대어 숨바꼭질도 하고 기어오르기도 했지요.” 마을 어귀는 사람들의 모든 들고 남이 스쳐 지나는 곳이다. 나무는 아침저녁으로 들녘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마을을 찾아온 어린 아이까지 긴 세월 내내 모두를 품어 안았다. 느티나무보다 ‘정자나무’로 더 많이 불리는 나무는 얼핏 보아도 난음마을의 중심이자 가장 상쾌한 쉼터임을 알 수 있다. 크고 듬직해서만이 아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 놓은 평상은 여느 마을의 평상과 달리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담겼다. 무성하게 펼친 느티나무 가지를 지붕 삼아 공 들여 지은 정자다. 평상 앞에는 은진 송씨의 조상인 우암 송시열의 흉상이 자존심처럼 꼿꼿하게 세웠다. 얼핏 보아도 이 자리가 마을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 “대전 인근에 살던 조상들이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곳곳을 다니다가 여기까지 내려온 거죠. 이곳에 터를 잡은 게 700년은 됩니다.” 송 노인은 느티나무가 마을이 처음 이뤄졌을 때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나무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군청에서 세운 보호수 표석에는 나무를 650살로 표시했지만 실제 나이는 그보다 더 오래됐다는 이야기다. 700년이라는 긴 세월은 나무 밑동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정성껏 충전재로 메운 커다란 구멍이 나무가 지내 온 긴 세월의 풍상을 짐작하게 한다. 더 안타까운 건 나무 줄기의 윗부분이 부러졌다는 것이다. 하릴없이 나무는 더 이상 키를 키우지 못하고 옆으로만 널찍하게 가지를 펼쳤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담겨 편지에서 송양은 “할아버지는 옛날에 이 나무의 뿌리를 타고 개울을 건너서 이웃 마을로 마실 다녔다고 하셨다.”고 썼다. 물론 송양의 할아버지가 타고 넘었다는 나무 뿌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여느 느티나무 못지않게 큰 나무를 놓고 누구라도 보탤 수 있는 말이지 싶다. 옛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나무는 무척 크다. 가지는 사방으로 20m쯤 펼쳐져 있고 키는 19m, 가슴 높이에서 잰 줄기 둘레는 6m나 된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나무는 실제 크기보다 더 커 보인다. 700살 된 느티나무 곁에 200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는 까닭이다. 마치 한 뿌리에서 솟아나온 것처럼 붙어서 자라는 두 그루는 한 그루의 풍성한 나무처럼 보인다. 두 그루의 나무가 가까이에서 자라는 게 생육에 좋을 리 없다. 그러나 700년의 삶이 지어 낸 넉넉한 품은 젊은 나무를 너그러이 품어 안았다. 두 그루가 전혀 다툼 없이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를 이뤘다. 나무를 한참 바라보자니 송양의 편지에 담긴 속뜻이 살아 오르는 듯하다.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마다 맨 앞자리에 떠오르는 나무의 존재감을 되새기면서 송양은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를 짚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가슴에 품은 젊은 여제자의 편지에서 느티나무 잎새의 연초록 향기가 알싸하게 차올랐다. 글 사진 남해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세상을 뒤흔든 불편한 사진 73장

    세상을 뒤흔든 불편한 사진 73장

    1993년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던 아프리카 수단. 카메라를 목에 건 당신 앞에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비쩍 마른 여자아이가 보급품을 받기 위해 급식센터를 향해 네발짐승처럼 기어가고 있고, 그 뒤로 ‘초원의 청소부’ 독수리 한 마리가 서 있다. 독수리의 눈초리는 노골적이다. 얼른 소녀가 기력을 잃고 쓰러지길 바라는 포식자의 시선이다. 게걸스러운 독수리는 소녀와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줄곧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뒤를 밟고 있다. 꼭 보도사진가가 아니더라도 사진을 찍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 봤을 곤혹스러운 광경이 펼쳐진 셈이다. 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쩌면 평생 만나기 어려운 극적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을 것인가, 아니면 소녀의 안위를 위해 독수리를 멀리 쫓아 버릴 것인가. 당시 이 같은 극적인 순간과 마주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청년 사진가 케빈 카터는 사진을 선택했다. 수단이 겪고 있는 고통과 참상을 극적으로 상징하는 순간을 사진에 담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극심한 갈등 속에서도 셔터를 눌렀고, 이후 독수리를 쫓아 버린 뒤 자신도 마을에서 멀리 도망쳤다. 카터가 찍은 사진은 미국의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반향은 대단했다. 소녀의 안위를 걱정하는 수많은 독자들의 편지가 신문사로 폭주했다. 이듬해 카터가 퓰리처상을 받으며 사진의 성가는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사진가에 대한 비난의 크기 또한 그와 똑같이 커졌다. 그는 왜 사진만 찍고 소녀를 돕지 않았을까. 독수리 맞은편에서 비슷한 눈높이를 한 채 쪼그리고 있었을 카터 또한 독수리와 다를 바 없는 모리배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심한 압박감에 시달리던 카터는 결국 퓰리처상을 받은 지 두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다니엘 지라르댕·크리스티앙 피르케르 지음, 정진국 옮김, 미메시스 펴냄)는 이처럼 사진사(史)에서 논란이 된 사진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정리한 책이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파 병사가 적의 총탄에 쓰러지는 장면을 담은 로버트 카파의 사진, 1969년 닐 암스트롱과 함께 달에 착륙한 버즈 올드린의 사진, 1997년 달리는 차 안에서 파파라치의 렌즈를 피해 몸을 돌린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의 마지막 사진 등 논쟁거리가 된 사진 73장이 수록됐다. 책에 등장하는 사진들에 평범한 순간이란 없다. 전쟁의 광기와 학대, 참혹한 죽음, 도착적 성욕 등이 시종 독자의 상식과 참을성을 시험하고 도발한다. 컴퓨터 그래픽(CG)과 ‘뽀샵질’ 탓에 사진(寫眞)이 ‘진실의 매체’로서 가치를 잃기 이전의 것들이어서 더욱 충격적이다. 3만 9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지금&여기] 야구선수가 어머니를 기리는 방법/박창규 체육부 기자

    [지금&여기] 야구선수가 어머니를 기리는 방법/박창규 체육부 기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 아들은 웃고 있었다. 동료들과 얼싸안고 손뼉쳤다. 오랜만에 경험한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연장 10회 말 7-6, 1점차 승리. 그것도 상대가 리그 1위 SK였다. 기분이 들뜰 수밖에 없었다. 프로야구 롯데 외야수 이인구, 그 순간을 즐긴 뒤 라커룸으로 돌아왔다. 구단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구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경기 중이라 말을 못 전했다.” 30세 아들은 아이처럼 울었다. 웃음이 울음으로 변했다. 지난 2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였다. 장례식장은 서울의 한 병원이었다. 이인구는 마지막 기차를 타고 혼자 서울로 향했다. “엄마…, 엄마….” 황망한 죽음이었다. 어머니는 57세. 아직 젊었다. 아들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쳤다. 키 크고 마른 아들은 어릴 적부터 잘 뛰고 잘 굴렀다. 운동선수가 제격이었다. 야구를 선택했고 선수생활을 즐거워했다. 그러나 운동선수 부모 노릇하기는 쉬운 게 아니다. 다치지는 않을까. 내가 못 먹여서 성적이 안 나오는 게 아닐까. 어머니는 항상 노심초사했다. “인구야, 안 다치게 조심조심해라.” 어머니가 임종 직전 남긴 마지막 문자였다. 어머니는 지난해 폐암 판정을 받았다. 회복 가능성이 없었다. 다만 손자가 태어날 7월까지만 버텨주길 바랄 뿐이었다. 자기 몸도 성치 않은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아들 걱정을 했다. 그런 어머니가 갔다. 아들은 울 수밖에 없었다. 26일 발인이었다. 이인구는 장례 절차가 끝나자마자 부산으로 돌아왔다. 3일 동안 못 자고 못 먹었다. 가슴속엔 마른 바람이 부는 듯했다. 정상 컨디션일 리가 없다. 구단에선 “일주일 정도 쉬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도 기어코 야구장으로 향했다. 이유가 있다. “어머니는 제가 야구하는 모습을 보는 걸 제일 좋아했으니까요. 그걸 보여 드리려고….” 이인구는 말끝을 흐렸다. 28일 이인구는 사직 LG전에서 5타수 4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펄펄 날았다. 6회 말 중전 안타를 친 뒤 1루에 서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머니 보고 있지요?” 야구하는 아들이 어머니를 기리는 방법이다. nada@seoul.co.kr
  • 40대 여자, 4층에서 떨어진 아기 받아내 ‘기적’

    40대 여자, 4층에서 떨어진 아기 받아내 ‘기적’

    4층에서 떨어지는 아기를 40대 여자가 잽싸게 달려가 받아낸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기는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목숨을 건졌다.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 있는 호텔 이코놀러지에서 최근 일어난 일이다. 구사일생 목숨을 건진 천운의 아기는 1년 3개월 된 아프로 아메리칸(흑인)계 여자아기다. 엄마의 부탁을 받고 아기를 돌보던 친구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사고가 났다. 아기는 4층방 호텔 발코니로 엉금엉금 기어 나가 놀다 그만 난간 사이에 걸렸다. 몸이 밖으로 빠져 나온 채 대롱대롱 난간에 걸려 있는 아찔한 장면을 목격한 건 호텔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던 44세 영국인 여자관광객. 아기가 떨어질 걸 직감한 여자는 쏜살같이 수영장에서 달려나갔다. 아슬아슬하게 난간에 걸려있던 아기가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쯤이다. 여자는 기적처럼 아기를 받아냈지만 4층에서 떨어지면서 속도가 붙은 아기는 여자의 팔에서 튕겨나가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달려간 여자가 앞으로 길게 뻗은 팔은 완충 역할을 했다. 아기는 바닥에 떨어졌지만 다친 곳이 전혀 없었다. 현지 언론은 “아기가 병원으로 옮겨져 검사를 받았지만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 멀쩡한 몸으로 퇴원했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치유되더라…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치유되더라…

    문학은 간절한 구원의 몸짓이다. 상처가 없이는 문학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느냐, 비스듬히 비켜서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는 개인에게도, 집단에도 마찬가지다. 소설가 이남희와 김별아가 나란히 책을 냈다. 소설 또는 수필로 형식은 달리했지만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치열하게 구원의 글쓰기, 치유의 글쓰기를 펼쳐낸 점은 한 가지 모습이다. [친구와 그 옆 사람] 이남희 지음 실천문학 펴냄 모든 문학은 ‘치유하는 글쓰기’의 과정이자 결과물이다. 쉬 극복하지 못한 채 쌓이고 쌓여 왔던 콤플렉스는 역설적으로 열등감과 결핍감을 메워주는 무한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또 몸과 마음에 남겨진 상처는 대충 반창고로 가려두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피고름의 끝이 어디인지 아예 손가락 집어넣어 후벼파는 것으로 치유의 방법을 삼을 수도 있다. ●페미니즘 영 역서 새 소설 세계 구축 중견소설가 이남희(53)의 새 소설집 ‘친구와 그 옆 사람’(실천문학 펴냄)은 과감히 상처를 직면하고 헤집는 편을 택하고 있다. 한 편의 중편과 여섯 편의 단편으로 이뤄진 소설집은 1980~1990년대 리얼리즘으로 세상과 맞서던 이남희가 페미니즘의 영역 안에서 새롭게 자신의 소설 세계를 구축하고 있음을 증명시킨다. 모든 작품의 화자는 여성이다. 표제작인 중편소설 ‘친구와 그 옆 사람’은 이남희 소설 세계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징검다리와 같은 작품이다. 리얼리즘을 틀어쥐고 소설과 대면해 오던 이남희는 이제 실체조차 의심되는, 상실된 1980년대 혁명의 꿈을 되새기는 한편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그려봤던 소박한 행복, 붙잡을 수 없는 사랑의 부질없음을 혼자 사는 여자 ‘영우’를 통해 발화하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연하남 김환에게 사랑을 구걸하듯 얽매이는 처지는 20세기와 21세기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남희의 모습과 다름없다. ●불안·혼돈의 심리 세밀하게 묘사 단편에서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세 번째 여자’의 은정이, ‘낯선 이들의 집’의 정남이, ‘빛의 제국’의 그녀 등은 모두 이혼한 채 새로운 사랑을 갈구하지만 다양한 이유의 상처로 인해 거듭 배신당하고, 더 큰 상처를 안은 채 스스로 갈무리짓고 만다. 유년 시절 아버지, 이웃의 남자 등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폭력은 ‘어두운 층계 위’나 ‘거미집’에서 정밀히 묘사된다. 읽는 이, 아니 그보다 쓰는 이의 불편함이 더욱 크겠지만 고개를 외로 돌리지 않는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 ‘낯선 이들의 집’ 등을 통해 남녀의 우정 또는 동성애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관계의 또 다른 형태를 모색한다. 꿈을 잃어버린, 깊은 상처를 가진 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에는 자잘한 곳까지 마음 쓰는 이남희의 문체와 언어가 제격이다. 규정짓기 어려운 불안과 혼돈의 심리도, 스쳐 지날 법한 찰나의 상황조차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다만 숨이 막힐 정도로 스스로를 가둬놓는 여리고 섬세한 언어나, 전편에 걸쳐 태연한 표정으로 상처를 헤집고 다니는 인물들의 상황들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허나 어쩌랴. 그것 또한 치유의 방법이니 말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이또한 지나가리라!] 김별아 지음 에코의서재 펴냄 학창시절 10년 동안 줄곧 반장을 지내는 등 모두가 부러워하는 ‘엄친딸’이었지만 사실 일기장에는 ‘죽음과 죽임’만을 반복해서 적었던 ‘소아 우울증’이었음을 뒤늦게 확인하고 고백한다. 또한 살과 피와 뼈를 내줬고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아이를 길러줬건만 ‘감히’ 대들거나 숫제 투명인간 취급받기 일쑤인 어미임을 아파한다. 늘 지혜롭고 완벽하기를 추구했던 성격은 또 다른 결핍과 욕망을 불러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평지형 인간’의 백두대간 산행기 ‘평지형 인간’을 자처하는 소설가 김별아(42)가 쓴 산문집 ‘이 또한 지나가리라’(에코의서재 펴냄)는 굳이 분류하자면 일종의 산행기다. 아들이 다니는 대안학교의 아이들, 학부모들과 함께 백두대간 동아리에 들어가 격주로 백두대간의 한 구간씩 오르내리며 느끼고 겪은 부분을 기록한 글이다. 한번 산을 타면 열 시간 안팎의 시간에 15~20㎞씩 가야 한다. 이렇게 무려 40곳을 지나야 비로소 백두대간 완주가 된다. 지난해 3월 13일 전북 남원에서 대간꾼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뒤 모두 열여섯 구간을 진행한 김별아가 남긴 중간보고서 격의 산행기다. 암벽을 네발로 기어오르며 말로만 떠들던 죽음의 공포를 실제로 느끼기도 하고, 헤드 랜턴 불빛 하나에 의지해 강풍에 후들거리며 마루금을 걷고, 쏟아지는 비에 쫄딱 젖어가며 산을 오르는 얘기는 함께 주먹을 꽉 쥐게 만들고 허벅지 근육을 팽팽하게 만든다. 하지만 김별아가 정작 하고자 하는 얘기는 ‘상처의 치유’에 있다. 그는 산을 타는 이야기만큼이나, 그보다 훨씬 공을 들여 오랜 시간 자신 안에 품어왔던 상처와 콤플렉스를 털어놓는다. 산을 타기 전에 자신 안에 쌓여 있고 자신을 움직였던 에너지의 원천이 분노와 집착, 증오, 결백임을 확인하는 순간 치유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진배없다. ●진정한 사랑에 터잡은 구원·치유의 글 김별아는 “이 책은 산으로부터 받은 위로의 이야기”라고 적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서 받은 상처는 결국 자연이 치유해 준다.”고 덧붙였다. 문득 괜한 걱정이 든다. 김별아가 너무 편안해지는 것은 아닌가. 김별아 안의 결핍과 상처, 불안, 긴장, 슬픔, 질투, 증오, 이런 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닌가. 과연 내면의 불 같은 갈등이 없이도 소설이 터져나올 수 있을까. 너그러운 표정을 지으며 온화하게 나를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착한 소설’만 쏟아지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진정한 이해와 사랑에 터를 잡으면 치유의 글쓰기도, 문학을 통한 또 다른 구원도 나올 터다. 접어야 할 쓸데없는 걱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프로야구] 이용규 없어서 KIA 울고

    [프로야구] 이용규 없어서 KIA 울고

    프로야구 LG가 ‘이기는 습관’을 터득하고 있다. KIA와 올 시즌 첫 대결에서 기분 좋게 1승을 추가했다. 단독 3위로 올라섰다. KIA는 나지완, 이용규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이빨 빠진 호랑이’로 주저앉았다. 22일 잠실에서 열린 프로야구 홈경기에서 LG는 6회 말 잇따라 터진 정의윤과 조인성의 안타에 힘입어 KIA를 2-1로 누르고 10승째를 거뒀다. 6회초 이범호(KIA)의 적시타로 1점을 먼저 내줬지만 곧바로 흐름을 뒤집었다. 박경수의 공이 컸다. 6회말 선두타자로 나온 박경수는 파울을 다섯 개나 때려내며 상대 선발투수 트레비스의 신경을 긁었다. 볼넷으로 기어이 출루를 했다. 박경수의 페이스에 말린 트레비스는 뒤이어 나온 이택근에게 중견수 오른쪽을 가로지르는 1루타를 허용했다. 무사 1, 3루. 여기서 4번타자 정의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시타를 때려냈다. 3루에 있던 박경수가 홈을 밟았다. 6번타자 조인성도 안타. 이택근까지 홈인하며 순식간에 2점을 만들어냈다. LG 선발투수 김광삼도 잘 던졌다. 김광삼은 6과 3분의2이닝 동안 안타 4개만 내주고 1실점 호투했다. 김광삼은 지난 2005년 9월 8일 이후 KIA를 상대로 5연승 행진이다. 목동에선 넥센이 삼성을 3-2로 이기고 3연패 사슬을 끊었다. 1회초부터 박석민(삼성)에게 2점짜리 홈런을 얻어맞았지만 3회말 1점을 내고 7회말 2점을 추가했다. 7회말 삼성의 결정적인 실책이 나왔다. 1사 1·3루에서 김민성의 평범한 땅볼을 2루수 신명철이 놓쳤다. 병살을 생각하다 마음이 급했다. 3루주자가 홈을 밟아 2-2 동점. 이어 4번 강정호가 2사 2루에서 우전 안타를 때렸다. 3-2 역전. 결국 넥센이 승리했다. 롯데-SK(사직), 한화-두산(대전) 경기는 비 때문에 취소됐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지옥에서 온 도마뱀…세계 초희귀 동물들

    지옥에서 온 도마뱀…세계 초희귀 동물들

    육중한 몸으로 참새를 잡아먹는 거대 거미, 외계인 요다를 빼닮은 박쥐 등 지난 20년 간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특이한 동물들이 최근 공개됐다. 1990년 활동을 시작한 비영리 동물보호단체(CI)의 프로젝트 연구팀(RAP)은 처음 발견되거나 매우 희귀한 동물 가운데 사람들을 가장 깜짝 놀라게 한 어류, 조류, 곤충류, 파충류 등 20종을 선정해 발표했다. 순위에는 공상과학 영화 ‘스타워즈’ 캐릭터 요다(Yoda)를 연상케 하는 신종박쥐도 포함됐다. 지난해 파푸아 뉴기니의 외딴 숲에서 발견된 박쥐는 지금껏 학계에 한 번도 보고되지 않은 초 희귀종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새를 잡아먹는 등 육식을 주로 하는 거대 거미 역시 20년 동안 발견된 가장 충격적인 동물로 이름을 올렸다. 남아프리카 가이아나에서 발견된 이 거미는 다리 길이가 무려 30cm나 되며 몸무게가 170g에 달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거미’로 회자됐다. 희귀어류 3종 역시 이 순위에 포함됐다. 이 가운데서도 2006년 인도네시아에서 잡힌 일명 ‘걸어 다니는 상어’는 매우 특이한 동물로 손꼽혔다. 상어는 지느러미를 이용해서 바다의 바닥을 기어 다니지만 먼 거리를 이동할 때는 헤엄을 치기도 한다. 이밖에도 마다가스카에서 1998년 발견된 지옥에서 온듯한 악마의 얼굴을 한 도마뱀, 2005년 수리남에서 발견된 강력한 흡입력을 가진 메기, 인도네시아 산에서 발견된 피노키오 개구리와 꿀을 먹고 사는 새, 2009년 에콰도르에서 발견된 빨판으로 산을 오르는 일명 ‘ET 도롱뇽’ 등이 순위에 포함됐다. RAP의 리안느 알롱소 연구원은 “오지를 탐험하며 새로운 동물 1300여 종을 발견했다.”면서 “이 사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신비함과 위대함을 깨닫고 희귀동물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합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새달말 시범구간 개방 ‘태안 해변길’ 현장 가보니

    새달말 시범구간 개방 ‘태안 해변길’ 현장 가보니

    전국 해안국립공원 구역의 69개 해수욕장 명칭이 해변으로 바뀌었다. 해수욕장은 여름 한 철만 이용한다는 이미지 때문에 국립공원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사계절 이용할 수 있는 자연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태안 해안국립공원의 경우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해변길을 조성할 계획이다. 다음달 말까지 25㎞의 시범구간 조성을 끝내 일반에 개방한다. 지난 주말 해변길 조성이 한창인 태안 해안국립공원을 다녀왔다. ●2013년까지 5개 테마길 120㎞ 조성 태안은 ‘2007년 서해안 원유 유출’로 아픔을 겪었던 곳이다. 2007년 12월 7일 태안 앞바다에서 인천대교 공사를 마친 크레인을 예인선이 경남 거제로 끌고가다 줄이 끊어지면서 정박해 있던 홍콩 선적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와 충돌했다. 이로 인해 유조선 탱크에 있던 1만 2547㎘(7만 8918배럴)의 원유가 인근 해역으로 유출됐다. 이 사건으로 태안군과 서산시 양식장·어장 등 8000여㏊가 원유에 오염돼 어폐류가 폐사했다. 짙은 기름띠는 만리포·천리포·모항·안흥항과 가로림만·천수만·안면도까지 유입됐다. 유출사고 후 40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상채기가 다 아물지 않은 상황이다. 지역 상인들은 관광객들이 줄어들어 예전만 못하다고 하소연한다. 국립공원공단은 지역 경제 활성화와 해상공원 탐방 문화 확산을 위해 해변길 조성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태안 해안국립공원의 김웅식 소장과 함께 해안길 조성 현장을 찾았다. 태안읍에서 국도 77호선을 따라 20여분 가다 보면 탁 트인 서해바다가 펼쳐진다. 몽산포 해변이다. 해안가에는 마침 연수를 온 대학생들이 한데 어울려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봄볕과 함께 끝없이 펼쳐진 몽산포 앞바다는 주변 해안과 더불어 한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태안 해변길은 학암포에서 안면도 영목항까지 120㎞로 각 지역의 특징에 따라 바라길, 유람길, 솔모랫길, 노을길, 샛별바람길 등 5개 구간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몽산포에서 드르니항에 이르는 솔모랫길(13㎞)과 드르니항에서 꽃지까지의 노을길(12㎞)은 5월 말 개통된다. 김 소장은 “바라길(학암포~만리포) 28㎞와 유람길(만리포~몽산포) 38㎞는 2012년에, 꽃지에서 영목항까지의 샛별바람길 29㎞는 2013년까지 조성해 개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만리포에서 몽산포에 이르는 유람길은 모항항에서 출발해 신진도항과 몽대항을 잇는 38㎞의 바닷길로 유람선 운항을 추진할 계획이다. ●바다내음과 곰솔 향기 가득한 솔모랫길 해변길 조성이 한창인 몽산포 해변 곰솔밭길 탐방에 나섰다. 이곳에 펼쳐진 곰솔 군락은 1950년대에 만들어졌다. 탐방로 주변 숲에는 곰솔잎들이 떨어져 융단처럼 깔려 있다. 탐방로 역시 나뭇잎이 깔려 있어 푹신함이 느껴진다. 딱딱한 아스팔트 길과 달리 발끝에 닿는 촉감이 좋아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곰솔밭을 지나는 동안 습지와 쉬어 갈 수 있는 의자와 화장실 등 편의시설 설치 작업도 한창 진행 중이었다. 5월 말 개통되는 솔모랫길과 노을길은 해변길이 지나는 몽대항과 백사장항, 방포항을 중심으로 수산물 판매장을 끼고 있다. 이곳에서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도 있다. 주변 마을에서는 백합꽃 축제를 비롯, 별주부마을 어살문화 축제 등도 열린다. 태안군 남면 별주부마을은 ‘용새골’, ‘묘샘’, ‘노루재미’, ‘자라바위’ 등 주변 지명이 흥미롭다. 별주부마을은 원래 원청리로 불렸다. 몇년 전 지역발전 계획을 세우면서 ‘별주부마을’로 개명했다. 주변 지명들은 조선 후기 우화소설인 ‘별주부전’에 등장하는 지명과 똑같다. ‘용새골’은 자라가 용왕의 명을 받고 토끼의 생간을 구하기 위해 처음 육지에 올라온 곳이다. 또 ‘묘샘’은 토끼가 자라의 등에 업혀 수궁으로 들어간 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간을 떼어 두고 온 장소다. ‘노루재미’는 구사일생으로 육지에 돌아온 토끼가 별주부(자라)를 놀린 뒤 사라진 곳으로 전해진다. ●체력·일정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 가능 ‘매력’ 별주부마을을 대표하는 것은 원청리 해변의 ‘자라바위’다. 지난해 농수산부 직원 7명의 목숨을 앗아간 곳이기도 하다. 해변과 이어진 자라바위는 자라가 뭍으로 기어오르는 모양을 하고 있다. 곰솔밭길은 해변을 끼고 나 있는데 어떤 곳은 해변 사구를 지나기도 하고, 마을로 나 있는 숲속 농로를 만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해변길을 걷는 동안 낮은 구릉과 곰솔 군락, 염전, 새우양식장, 사구, 해넘이 등을 관찰할 수 있다. 해변길은 오르막길이 없어 체력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 개인별 체력과 일정에 따라 구간을 선택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김 소장은 “태안 해안국립공원은 아름다운 경관이 산재돼 있고 접근성이 좋은데도 여름철 해수욕 중심으로 편중된 이용에 그치고 있다.”면서 “해변길이 조성되면 탐방객들이 해안사구 등 해안 생태계를 사계절 모두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유 유출사고 이후 침체된 태안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동생 구하려고” 개와 혈투벌인 6살 소년

    “동생 구하려고” 개와 혈투벌인 6살 소년

    달려드는 개에 온몸으로 맞서 동생을 구한 6살 소년이 ‘어린 영웅’으로 미국에서 회자되고 있다. 플로리다 주 홈스터드에 사는 소년 티모 테레즈는 지난 6일(현지시간) 집 뒷마당에서 남동생 카를로스(4)와 이웃집 4세 소년과 놀다가 끔찍한 일을 당했다. 근처 공장에서 전날 도망친 셰퍼드 경비견이 갑자기 이들에게 달려든 것. 세 사람 가운데 가장 맏형이었던 티모는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낸 개가 두려웠지만 침착하게 대처했다. 티모는 동생들에게 트럭 밑으로 기어들어가라고 말한 뒤 온몸으로 개를 막아섰다. 흥분한 개가 티모의 머리와 팔, 어깨 등을 물어뜯었지만 티모는 동생들을 막은 손을 내리지 않았다. 소년들의 비명을 듣고 집에서 뛰어나온 티모의 아버지 덕에 개는 공격한 지 몇 분만에 도망쳤다. 이미 피투성이가 될정도로 상처가 심했던 티모는 그 때야 울음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티모는 곧바로 마이애미 어린이병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였지만 머리와 목 등에는 사건 당시의 끔찍함을 떠올리게 하는 큰 상처들이 여럿 남았다. 동생을 구하려는 티모의 용기 있는 행동이 알려지면서 미국의 많은 신문과 방송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등 티모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퇴원해 집에서 회복 중인 티모는 “동생이 다치는 걸 원치 않았다. 하지만 개에게 물릴 때는 정말 아팠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리기도 했다. 한편 홈스터드 동물관리 당국은 문제의 개가 사건 다음날인 7일 사살됐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twitter.com/newsluv) 
  • 일본 MK택시 수석졸업...현지인들 감탄시킨 ‘쏘나타 택시’ 정태성씨

    일본 MK택시 수석졸업...현지인들 감탄시킨 ‘쏘나타 택시’ 정태성씨

    ‘세계 최고의 기사’가 되겠다는 포부에 비해 택시 모양새는 영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지난 5일 오전 10시쯤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정태성(47·서울 월계동) 씨의 쏘나타 개인택시에 올랐다.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벚꽃축제 개막 사흘을 앞둔 윤중로를 달렸는데 그랬다. 노량진역 근처에서 첫 손님으로 택시에 오른 김진수(34·회사원)씨는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가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말을 걸어줘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정씨가 손님에게 던진 질문은 “지금 온도 괜찮습니까?” “급한 일 있으시면 좀 빨리 갈까요?” 등이었다. 예약 손님에게 다가갈 때 그의 본색(?)이 드러난다. 차에서 내려 왼손으로 뒷문을 열고, 오른손을 뒷문 윗부분에 갖다대 손님의 머리를 보호한다. ‘뭐 이렇게 황송하게까지?’하며 당황하던 손님들도 마음을 다한 친절에 고개를 끄덕인다. 유하나(28·회사원)씨는 “이런 경험은 처음인데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정말 친절해서 또 이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택시 안에는 정씨가 직접 만든 33개의 ‘친절 매뉴얼’이 있다. 여러 상황에 맞춘 고객 응대법이 망라돼 있다. 비상약품 키트도 준비돼 있다. 셔츠도 매일 갈아 입고 넥타이와 어울리는지도 꼼꼼히 살핀다. 올해로 15년째 택시 핸들을 잡는 정씨는 여러 모로 남다르다. 1997년부터 법인택시, 2000년부터 개인택시를 했다. 부친은 육사 14기 출신으로 준장까지 지낸 정헌택(2002년 작고) 씨이고 형은 미국 벨연구소를 거쳐 조지아주립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정태철(49)씨다. 이른바 ´좋은 집안´ 출신. 하지만 군부독재 시절, 장군의 아들이란 점을 고민하던 그는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명지고 2학년을 중퇴했다. “작가가 되려면 광부, 농부, 원양어선 선원, 택시기사 등 어렵고 힘든 일을 해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이삿짐센터, 공장, 홀서빙등 50개가 넘는 일들을 경험한 뒤 1993년부터 2년여 운영하던 광고 사업이 부도를 맞고 친인척들을 빚쟁이로 만들었다. 딸까지 참담하게 잃은 그는 잠실대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다. 하지만 난간에서 “아빠”라고 부르는 딸의 환청이 들렸다. 죽을 용기로 세상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장사를 해볼까 했지만 자금이 없었다. 그 즈음 어릴 적 꿈이었던 택시기사가 그의 마음에 들어왔다. 택시일을 하겠다고 하자 부인의 만류가 심했다. 주위 시선도 그렇고, 더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보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하지만 정씨는 흔들리지 않았다. 비좁은 공간이지만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나 경치도 즐기고 일한 만큼 보상받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2002년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며 “난 세계 최고의 장군이 될 수 없었지만 넌 세계 최고의 택시기사가 될 수 있다.”는 유언을 남긴 것이 큰 힘이 됐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의 스승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택시 1700여대를 보유한 일본 최대 업체 MK에 들어가 일을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답답해진 정씨는 청와대, 주한 일본대사관, 서울시, 대기업들에 추천서를 써달라는 편지를 보냈고 대기업 두 군데에서 추천해줘 MK의 문을 다시 두드렸으나 여전히 답이 오지 않았다. “자기네 직원이 아니면 연수를 하지 않는 것이 방침이라고 하더군요.” 포기할 즈음, 국내에도 잘 알려진 유봉식(73) MK그룹 회장의 동생인 유태식(72) 부회장이 우리 국회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 그는 무작정 국회 본관으로 달려갔다. 일이 되려고 했는지 유 부회장은 그의 편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며칠 뒤 MK에서 기숙사 비용을 받지 않을 테니 연수에 참가하라는 연락이 왔다. 이제 언어가 걸림돌이었다. 2년여 ‘주운야독’(晝運夜讀)을 이어갔다. 일본인 기사보다 늘 앞장섰다. 이방인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일본인들도 그의 열심에 마음을 열었다. 2009년 5월부터 두달의 연수를 끝낸 정씨는 3.0 만점으로 수석 졸업했다. 함께 연수한 일본인 기사 중에 최고 점수가 2.0이었다. MK 최초이자 마지막 외국인 수료생에 축하를 보내던 유 부회장에게 “택시 기사의 친절은 단지 돈 버는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이유”라고 밝히자 유 부회장의 눈가가 붉어졌다. 유 부회장은 김포공항에서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종업원이 컵을 탁~ 하고 성의 없이 내려놓더란 것. 유 부회장의 당부가 이어졌다. “한국의 서비스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서비스 산업 발전을 위해 고국에 돌아가 열심히 일해 달라.” 정씨의 노력은 예서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수동 기어를 고집하는 그는 절약되는 한달 연료비 20만원을 자기계발에 쓰고 있다. 1983년 고졸 검정고시를 거친 그는 일하는 틈틈이 사이버 대학을 다녔고 지난 2월 서울 광운대학 서비스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미지 컨설팅 교육까지 받았는데 그의 멘토 격인 컨설팅 업체 ‘예라고’의 허은아 대표는 “택시 하는 분들이 바쁘기 때문에 결석이 잦을까 걱정했는데 한번도 결석을 안하고 함께 수업을 듣는 이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 웃음 치료사, 서비스경영 최고관리자 등의 자격증을 땄고 논술 지도사, 독서 지도사 자격증 등 화려한 스펙을 자랑한다. 2009년 8월부터 서비스 관련 강의를 시작했고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인 솜씨가 소문 나 섭외가 줄을 잇고 있다. 집에 가져가는 돈은 한달에 200만원이 되지 않는다. 강연료를 챙기지만 지방을 오가며 교통비로 거의 다 쓴다. 봉사활동 삼아 많이 하지만 가계에 보탬이 되지 않는 일. 동료들은 업계의 열악한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 한 헛고생을 한다고 비웃는단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 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대목이 많지만 내가 조금 변하면서 택시 서비스가 조금 올라갔으면 좋겠다.” 정씨는 “항공대학, 철도대학은 있지만 택시대학은 없지 않느냐?”고 되묻고 “10년 뒤에 택시대학이 만들어지면 총장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예술계 고교를 다니는 외아들에게 자기 직업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그는 결혼 19주년 기념일이라며 작은 케이크를 들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남들이 우습게 여기는 택시 일을 위해 9년을 준비하고 3년을 갈고 닦은 그는 이미 ‘세계 최고’다. 글 사진 영상콘텐츠부 성민수PD globalsms@seoul.co.kr ●15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 방영
  • 택시대학 총장을 꿈꾸는 기사 정태성 씨

    택시대학 총장을 꿈꾸는 기사 정태성 씨

     ’세계 최고의 기사’가 되겠다는 포부에 택시 모양새는 영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지난 5일 오전 10시쯤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정태성(47·서울 월계동) 씨의 쏘나타 개인택시에 올랐다.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벚꽃축제 개막 사흘을 앞둔 윤중로를 달렸는데 그랬다.  노량진역 근처에서 첫 손님으로 택시에 오른 김진수(34·회사원)씨는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가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말을 걸어줘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정씨가 손님에게 던진 질문은 “지금 온도 괜찮습니까?” “급한 일 있으시면 좀 빨리 갈까요?” 등이었다.  예약 손님에게 다가갈 때 그의 본색(?)이 드러난다. 차에서 내려 왼손으로 뒷문을 열고, 오른손을 뒷문 윗부분에 갖다대 손님의 머리를 보호한다. ‘뭐 이렇게 황송하게까지?’ 하며 당황하던 손님들도 진지한 그의 마음을 다한 친절에 고개를 끄덕인다.  유하나(28·회사원)씨는 “이런 경험은 처음인데 대접 받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정말 친절해서 또 이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택시 안에는 정씨가 직접 만든 33개의 ‘친절 매뉴얼’이 있다. 여러 상황에 맞춘 고객 응대법이 망라돼 있다. 비상약품 키트도 준비돼 있다. 셔츠도 매일 갈아 입고 넥타이와 어울리는지도 꼼꼼히 살핀다.    ●어렵고 힘든 일 해보는 게 꿈이었다  올해로 15년째 택시 핸들을 잡는 정씨는 여러 모로 남다르다. 1997년부터 법인택시, 2000년부터 개인택시를 했다. 부친은 육사 14기 출신으로 준장까지 지낸 정헌택(2002년 작고) 씨이고 형은 미국 벨연구소를 거쳐 조지아주립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정태철(49)씨다. 이른바 ‘좋은 집안’ 출신. 하지만 군부독재 시절, 장군의 아들이란 점을 고민하던 그는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명지고 2학년을 중퇴했다.  “작가가 되려면 광부, 농부, 원양어선 선원, 택시기사 등 어렵고 힘든 일을 해보겠다고 생각했다.”  이삿짐센터, 공장, 홀서빙등 50개가 넘는 일들을 경험한 뒤 1993년부터 2년여 운영하던 광고 사업이 부도를 맞고 친인척들을 빚쟁이로 만들었다. 딸까지 참담하게 잃은 그는 잠실대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다. 하지만 난간에서 “아빠”라고 부르는 딸의 환청이 들렸다. 죽을 용기로 세상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장사를 해볼까 했지만 자금이 없었다. 그 즈음 어릴 적 꿈이었던 택시기사가 그의 마음에 들어왔다.    ●세계 최고의 택시기사가 되거라  택시일을 하겠다고 하자 부인의 만류가 심했다. 주위 시선도 그렇고, 더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보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하지만 정씨는 흔들리지 않았다. 비좁은 공간이지만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나 경치도 즐기고 일한 만큼 보상받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2002년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며 “난 세계 최고의 장군이 될 수 없었지만 넌 세계 최고의 택시기사가 될 수 있다.”는 유언을 남긴 것이 큰 힘이 됐다.    ●일본의 그 유명한 MK를 가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의 스승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택시 1700여대를 보유한 일본 최대 업체 MK에 들어가 일을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답답해진 정씨는 청와대, 주한 일본대사관, 서울시, 대기업들에 추천서를 써달라는 편지를 보냈고 대기업 두 군데에서 추천해줘 MK의 문을 다시 두드렸으나 여전히 답이 오지 않았다. “자기네 직원이 아니면 연수를 하지 않는 것이 방침이라고 하더군요.”  포기할 즈음, 국내에도 잘 알려진 유봉식(73) MK그룹 회장의 동생인 유태식(72) 부회장이 우리 국회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 그는 무작정 국회 본관으로 달려갔다. 일이 되려고 했는지 유 부회장은 그의 편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며칠 뒤 MK에서 기숙사 비용을 받지 않을테니 연수에 참가하라는 연락이 왔다.    ●서비스의 대부를 울리다  이제 언어가 걸림돌이었다. 2년여 ‘주운야독(晝運夜讀)’을 이어갔다. 일본인 기사보다 늘 앞장 섰다. 이방인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일본인들도 그의 열심에 마음을 열었다. 2009년 5월부터 두달의 연수를 끝낸 정씨는 3.0 만점으로 수석 졸업했다. 함께 연수한 일본인 기사 중에 최고 점수가 2.0이었다. MK 최초이자 마지막 외국인 수료생에 축하를 보내던 유 부회장에게 “택시 기사의 친절은 단지 돈 버는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이유”라고 밝히자 유 부회장의 눈가가 붉어졌다. 유 부회장은 김포공항에서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종업원이 컵을 탁~ 하고 성의 없이 내려놓더란 것. 유 부회장의 당부가 이어졌다. “한국의 서비스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서비스 산업 발전을 위해 고국에 돌아가 열심히 일해 주세요.”    ●정말 화려한 스펙 쌓기  정씨의 노력은 예서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수동 기어를 고집하는 그는 절약되는 한달 연료비 20만원을 자기계발에 쓰고 있다. 1983년 고졸 검정고시를 거친 그는 일하는 틈틈이 사이버 대학을 다녔고 지난 2월 서울 광운대학 서비스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미지 컨설팅 교육까지 받았는데 그의 멘토 격인 컨설팅 업체 ‘예라고’의 허은아 대표는 “택시 하는 분들이 바쁘기 때문에 결석이 잦을까 걱정했는데 한 번도 결석을 안하고 함께 수업을 듣는 이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 웃음 치료사, 서비스경영 최고관리자 등의 자격증을 땄고 논술 지도사, 독서 지도사 자격증 등 화려한 스펙을 자랑한다. 2009년 8월부터 서비스 관련 강의를 시작했고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인 솜씨가 소문 나 섭외가 줄을 잇고 있다.    ●택시대학 총장을 꿈꾸다  집에 가져가는 돈은 한달에 200만원이 되지 않는다. 강연료를 챙기지만 지방을 오가며 교통비로 거의 쓴다.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것도 가계에 보탬이 되지 않는 일.  동료들은 업계의 열악한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 한 헛고생을 한다고 비웃는단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 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부족한 대목이 많지만 내가 조금 변하면서 택시 서비스가 조금 올라갔으면 좋겠다.”  정씨는 “항공대학, 철도대학은 있지만 택시대학은 없지 않느냐?”고 되묻고 “10년 뒤에 택시대학이 만들어지면 총장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예술계 고교를 다니는 외아들에게 자기 직업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그는 결혼 19주년 기념일이라며 작은 케이크를 들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남들이 우습게 여기는 택시 일을 위해 9년을 준비하고 3년을 갈고 닦은 그는 이미 ‘세계 최고’다.  글·사진 영상콘텐츠부 성민수PD globalsms@seoul.co.kr  ●15일 오후 7시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의 ‘TV 쏙 서울신문’ 방영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똥파리/이재무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똥파리/이재무

    너는 욕망의 암벽 기어올라 마침내 정상 등극에 성공하여 날개 달게 되었다 바야흐로 너는 구질구질한 바닥을 버리고 수직 상승하게 되었다 그러나 똥파리여, 너는 끝내 천출 벗지 못하였다 붕붕, 부산한 몸짓으로 진동하는 부패에 생활의 빨대 꽂고 있구나 지하철 칸칸마다 들어찬, 벽 기어오르고 있는 구더기들이여
  • “슈마허보다 빠른 사나이 될것”

    “슈마허보다 빠른 사나이 될것”

    귓가로 바람이 찢어진다.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다. 손과 귀엔 감각이 없어졌다. 그리웠다. 한달 만에 느끼는 고통이었다. 이 짜릿한 고통 때문에 머신에 오른다. 포뮬러 머신 연습주행 한 바퀴째. 기록은 그리 좋지 않았다. 뒤에 선 선수보다 앞을 달리는 머신이 더 많다. “괜찮아. 이제 시작이니까. 더 달려 보자.” 드라이버 서주원은 이를 악물었다. 8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서팡 F1 경기장이었다. 두 바퀴째. 18대 머신 가운데 16등을 달렸다. 당장 순위는 그리 상관없었다. 지금은 자기 기록을 줄여 나가는 게 중요하다. 속도를 더 올렸다. 기록은 2분 14초대를 찍었다. 선두권과는 2초 정도 차이가 났다. 그래도 지난달 생전 처음 이 경기장에서 포뮬러 머신에 올랐을 때보다는 1초가량 기록을 단축했다. 매번 레이싱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기록을 향상시키는 건 좋은 드라이버의 자질 가운데 하나다. 더구나 서주원은 처음 머신을 타 본 뒤, 지난 한달 내내 연습 주행을 한번도 못해 봤다. 한국에선 머신으로 연습할 공간이 없다. 세 바퀴째 돌입했다. 속도가 좀 더 올라갔다. 레이싱은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안압이 오르고 구토가 몰려 왔다. 등수는 그대로지만 선두권과의 격차가 미세하게 줄었다. “됐다. 좀 더 줄일 수 있겠다.” 기대가 생긴 그 순간. 머신에 이상 신호가 왔다. 기어가 터졌다. 갑자기 올라간 속도를 기계가 못 버텨 냈다. 서주원은 일단 연습 주행을 포기했다. ‘JK 레이싱 아시안 시리즈’ 첫날 연습은 이걸로 끝이다. 한국 F1 드라이버 유망주 서주원. 올해 16살, 고등학교 2학년이다. 미성년자라 운전 면허도 없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가장 차를 잘 모는 남자 가운데 하나다. 역대 이 대회에 참가한 한국인 드라이버 가운데 최연소다. 2005년 출전했던 안석원보다 15개월 정도 빠른 기록이다. 지난해 이 대회를 뛰고 올해부터 F2에 나선 문성학보다는 3년 가까이 빠르다. 참가하기 쉽지 않은 무대다. JK 레이싱은 이날부터 10일까지 치러지는 F1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의 서포트 대회다. 전 세계에서 20명이 참가한다. F1에 진출하기 위한 전전 단계다. 지난해 F1 월드챔피언 세바스티앙 베텔은 2004년 이 대회 총 20라운드 가운데 18승을 거뒀었다. 그런 뒤 F3를 거쳐 F1에 진출했다. 서주원도 지금 그런 경로를 노리고 있다. 서주원이 처음 레이싱을 시작한 건 2008년이다. 중학생 시절 캐나다에서 처음 F1 경기를 텔레비전으로 봤다. 가슴이 뛰었다. “머신의 굉음을 들으면서 저게 내가 갈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머신을 타기 전 단계인 카트 운전대를 잡았다. 평가가 좋았다. 레이싱 전문가들은 “전투적이고 직선적인 드라이버다. 대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시작한 지 2년 만인 지난해 코리아 카트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지난달 JK 레이싱 테스트를 통과했고, 드디어 포뮬러 머신을 타게 됐다. 아직 이룬 건 없고 갈 길도 멀다. 그러나 꿈이 크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될 겁니다. 슈마허보다도… 베텔보다도….” 운전대를 잡은 손이 단단했다. 쿠알라룸푸르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백두산 화산 연구 20년 윤성효 교수 
 “백두산 폭발땐 아이슬란드 1500배 위력”

    백두산 화산 연구 20년 윤성효 교수 “백두산 폭발땐 아이슬란드 1500배 위력”

    애국가 첫 소절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이는 동해물이 마르지도 않을뿐더러 백두산 또한 없어지지 않기에 영원히 우리나라를 사랑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활화산인 백두산이 대폭발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될까. 애국가를 손질해야 하나.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 폭발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요즘 백두산 화산 문제가 자주 화제에 오르내리고 있다. 북한에서 이례적으로 남측 학자들과 백두산 화산 연구를 하자고 제의해 올 정도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관심은 크게 세 가지다.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느냐는 것과 만약 한다면 언제 어느 정도의 폭발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모든 것이 불명확하다. 하여 백두산 신령한테 몇 가지만 물어보자. “신령님, 백두산이 폭발하는가요.” “그럼, 하지.” “왜요.” “산 밑이 점점 뜨거워지는데 안 할 수가 없어.” “언제가 될까요.” “학자들은 화산학적으로 100년 이내라고 하는 것 같아.” “폭발하면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요.” “그건 옛날의 기록을 한번 뒤져 봐.”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668년과 1702년에 함경도 경성, 부령 지역에 화산재가 비처럼 내려 3㎝ 정도 쌓였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20년 동안 백두산 화산연구에만 몰두해 온 부산대 윤성효(54·지구과학교육과) 교수를 만나 들어봤다. “당시 기록을 보면 그 분화의 양이 ‘화산폭발 지수 5’에 해당하는 규모로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폭발 지수보다 10배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이 정도면 천지의 20억t 물이 쏟아져 항공대란은 물론 강진으로 인해 제주도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지요. 또 역사상 최대의 화산 분화사건으로 기록되는 1000년 전의 폭발적인 대분화(100~150㎦ 정도. 화산폭발 지수 7 이상)가 다시 발생하면 아이슬란드의 화산폭발의 1000~1500배에 해당하며 이때에는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거 백두산 화산폭발로 생긴 분출물의 일부가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지요.” 대폭발의 경우 양강도와 함경도 지역은 화산재가 수m 두께로 쌓일 것이며 지역 대부분이 초토화될 것으로 윤 교수는 예상했다. 또한 식수 오염(산성비), 식생 파괴, 식생 고사 등은 물론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화산 이류(泥流)가 발생해 제방을 파괴하고 강 주변의 경작지 및 주택가를 황폐화시킬 것이 불보듯 뻔하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현재 백두산의 상태는 어느 정도일까. 윤 교수는 “백두산은 활동적인 활화산으로 언젠가는 분화할 것이 확실하다. 지하 마그마방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분화 가능성의 징후를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첫째, 최근 들어 천지 바로 지하 2~5㎞ 하부의 화산 지진 증가(2003년 월 250회). 둘째, 백두산 천지 주변 외륜산 일부 암반 붕괴와 균열 발생(2003년). 셋째, 백두산 천지 칼데라 주변의 암석 절리(틈새)를 따라 화산 가스 분출로 주변 일부 수목이 고사. 넷째, 2002년 8월부터 2003년 8월까지 위성위치정보시스템(GPS)을 이용해 백두산 천지 주변 지형의 연간 이동 속도를 관측한 결과 약 45~50㎜로 활발. 다섯째, 천지 주변 온천수의 수온(최대 섭씨 83도)과 가스 성분(헬륨, 수소 등) 증가. 여섯째, 지진파토모그래피에 의해 천지 지하 10~12㎞ 지점에 규장질 마그마방 존재 확인 등이다. “백두산은 현재 지구상에서 존재하는 가장 위협적인 화산 중의 하나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특히 천지 지하 규장질 마그마방 내에는 엄청난 양의 용존 고압가스가 있으며, 이 마그마가 지표로 상승해 깊이가 얕아지고 임계조건을 넘으면 일시에 대폭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우려됩니다. 게다가 천지에 담긴 20억t의 물이 지하 암반 틈새를 따라 지하 마그마와 만나는 경우 수증기와 화산재를 뿜어내는 초대형 화산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지요.” 윤 교수는 또한 이럴 경우 백두산 반경 약 100㎞ 내에는 산사태와 대규모의 산불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발해의 멸망도 화산활동에 기인했을까. “발해의 멸망은 926년이고, 백두산 화산폭발은 936년의 일이니까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요. 다만 폭발 이전부터 이미 분화 전조 현상 등 화산활동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에 따른 지각변동이 생기면서 재해가 발생하니까 백성들의 마음이 떠났겠지요. 아무튼 그 무렵 발해 유민들이 고려에 대거 유입되면서 요나라가 무혈입성한 것이 아닙니까.” 그 다음 궁금증. 백두산 화산활동으로 인해 주변의 수많은 나무가 고사했고 뱀 떼가 출현했다는 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뱀 떼 출현은 2010년 봄과 가을에 두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 만주 쪽에 사는 청나라 후손들이 중국 남방에서 사육된 뱀을 사다가 누르하치가 태어난 백두산 북서쪽에 일시에 방생한 것입니다. 당시 방생한 뱀들이 야생에 적응하지 못해 먹을 것을 찾아 도로 쪽으로 기어나온 것이 관광객들에게 발견됐고 국내 한 언론이 화산의 전조현상이 아니냐고 추측보도하면서 그런 얘기가 확 퍼졌습니다.” 우리나라 불교인들은 방생할 때 주로 물고기로 하지만 중국인들은 뱀을 용처럼 여겨 방생하는 관습이 있다. 중국인들 중에서도 특히 청나라의 후손들은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부르며 민족의 영산으로 여겨 방생지로 자주 선택하는 데서 발생한 해프닝이라는 설명이다. 나무가 고사한 것과 관련해 윤 교수는 “2004년에 천지 주변의 많은 나무가 말라죽었는데 처음에는 병충해를 원인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분석해 보니 당시 단층 절리를 따라 흘러나온 화산가스(이산화탄소)에 의해 질식사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말했다. 백두산의 높이를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2744m가 아닌 2750m라고 주장한다는 것에 대해 윤 교수는 “만주지역의 지각변동과 화산활동으로 산이 융기돼 어느정도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화산폭발은 언제쯤 일어나게 될까. 일부 언론에서는 2014년에 폭발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 보도는 잘못됐습니다. 기상청 세미나에서 한 질문자가 ‘2014년에 백두산 화산이 폭발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제게 물어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화산학적으로 봤을 때 100년 이내의 가까운 장래라고 대답했는데 그렇게 보도가 나가더군요. 화산폭발이 꼭 언제다 하고 못 박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과학적으로 접근하면서 계속 모니터링을 하고, 최소 일주일 전에 예측이 가능하도록 해 대피명령을 내리고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관건이지요. 남북한이 공동으로 계속 연구해 나가면 예측의 가능성은 좀 더 정확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한의 공동연구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한 국가 안보적 차원뿐만 아니라 백두산의 지질, 자연환경, 생태계 연구와 같은 학문적 차원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한 고구려, 발해역사 왜곡을 막아 백두대간을 올바로 세우는 민족정립의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백두산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를 위해 지질, 생물, 역사, 물리탐사공학 등을 포함하는 최정예 학술연구단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화산 전문가 양성 또한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당장 연구할 과제는 천지 지하의 마그마 양을 파악하고, 마그마의 이동 방향과 속도, 깊이 등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윤 교수는 말했다. 그가 백두산 화산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년 전. 부산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교수로 임용된 지 얼마 안 된 1990년이었다. 이 무렵에 논문 ‘화산구조 칼데라’를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독일에서 국제 화산학회가 열렸는데, 백두산에 대한 논문이 하나 있더라고요. 그런데 논문을 쓴 사람이 일본학자였어요. 우리 민족의 영산으로 여겨지는 백두산 논문을 일본인이 썼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좀 상했습니다.” 이때부터 백두산 화산연구로 방향을 잡은 윤 교수는 이듬해 옌볜의 지질학자와 함께 백두산에 처음 올랐다. “산에 오르는 순간 살아 있는 화산임을 단번에 알았습니다. 분화구를 보면서 여러번 화산활동을 했구나 하는 점과 과거에 폭발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알게 됐지요. 지진이 끊임없이 일어난 흔적도 있었고 온천물도 계속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도 직접 느꼈습니다.” 이후 매년 시간만 나면 백두산에 갔다. 1996년에는 중국에 교환 연구원으로 가서 백두산에서 아예 살다시피 했다. 그는 연구하면 할수록 ‘백두산은 1만년 전부터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젊은 화산’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중국인들은 처음에 ‘백두산이 활화산’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1996년 당시 중국에서 국제지질학회 회의가 열렸고 서양 학자들도 백두산을 답사했지요. 그들이 위험한 화산이라고 하자 그때서야 중국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중국은 1999년 ‘천지화산관측소’를 세우는 등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1000년 전의 백두산 대폭발이 인간이 역사를 기록한 이래 최대였다는 점도 밝혀졌다. 그 이전까지 유사 이래 최대 화산 폭발은 1815년의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폭발로 화산재가 지구 전체를 떠돌아 유럽에 미니 빙하기와 대기근을 몰고 오기도 했다. 그는 백두산과 천지에 대한 연구 열의로 한때 중국에서 간첩이란 오해를 받아 일주일 동안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고초가 그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일본과 뉴질랜드 등을 다니면서 칼데라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백두산에 대해서는 국제 공동연구가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다시 말하지만 대폭발이 일어나면 북한 함경도는 화산재로, 백두산의 중국 쪽은 홍수로 초토화되며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에는 화산재가 함박눈처럼 내리게 됩니다. 분화 경험이 풍부하고 첨단 연구실적을 가진 일본의 도호쿠대학, 실제적으로 ‘천지화산관측소’를 운영하는 중국 국가지진국 활화산연구센터, 그리고 러시아와 북한의 핵심연구자들과 함께 협력교류를 통한 백두산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윤성효 교수는 경남 함안 출생인 그는 1976년 부산 중앙고를 나와 부산대 사범대를 졸업(1980년)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1982)와 박사(1987년) 과정을 마쳤다. 1989년 부터 지금까지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로 몸담고 있다. 현재 사단법인 제주화산학연구소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백두산 대폭발의 날’(해맞이, 2010년) 등이 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6) 영암 월곡리 느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6) 영암 월곡리 느티나무

    신새벽 바람에서도 꽃향기가 완연히 느껴지는 봄이다. 봄 소식 재우치는 마음이 깊어서인지, 이 즈음엔 후각보다 시각이 먼저 봄이 왔음을 알아챈다. 길가에 늘어선 개나리가 드러낸 노란 꽃잎은 물론이고, 겨우내 덮여 있던 뽀얀 솜털의 껍데기를 젖히고 순백의 빛깔을 드러낸 목련 꽃의 속살을 바라볼라치면 몸도 마음도 어느새 화창한 봄이 된다. 나무에도 연초록의 새잎이 앙증맞게 돋아났다. 언제 겨울이었는가 싶을 만큼 봄은 화들짝 다가온다. 더구나 지난겨울의 혹독한 시련 뒤에 맞이하는 봄이어서 더 갑작스럽고 반갑다. ●지난겨울부터 천천히 봄마중 준비 그러나 나무는 봄을 화들짝 불러오지 않았다. 겨울부터 나무는 꽃봉오리를 피웠고, 이른 봄 꽃샘바람이 사나워도 물을 끌어올려 가지 끝까지 수굿이 실어 날랐다. 나무가 차근차근 흘려보내 온 시간의 흐름을 사람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나무의 시간은 대관절 얼마나 느린 걸까. 수백, 수천년을 살아가는 나무의 시간을 고작 100년도 살지 못하는 사람이 알아채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지 모른다. 같은 종류의 나무라 해도 나이에 따라,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시간의 속도가 현저하게 다르다. 늙고 오래된 나무를 스쳐가는 시간은 유난히 느리다. 가을에 드는 단풍의 속도가 늦을 뿐 아니라, 봄에 새잎 나고 꽃 피는 시기도 더디기만 하다. 작은 나무들이 지어내는 봄의 아우성과 달리 큰 나무들에 머무는 침묵은 여전히 겨울처럼 견고하다. 전남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느티나무도 아직 새잎을 피워내지 않았다. 뿌리 부근의 땅에는 이미 이름 모를 작은 풀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돋아나, 초록 카펫을 이뤘지만 나무 줄기와 가지는 여전히 잿빛 겨울이다. 물 오른 나무 줄기의 빛깔만 어렴풋이 바뀌었을 뿐이다. 면사무소 옆 도로변에 우뚝 서 있는 월곡리 느티나무는 키가 23m나 되는 매우 큰 나무다. 아파트 건물 한층의 높이를 대략 3m 쯤으로 볼 때, 무려 8층에 가까운 높이다. 펼쳐진 가지는 그보다 더 크다. 남북으로 25m, 동서 방향으로는 무려 29m나 된다. 굵직한 줄기는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부분에서 11개의 크고 작은 가지로 나눠지며 넓게 뻗었다. 동쪽으로 뻗은 굵직한 줄기들은 아예 땅으로 내려앉을 기세다. 지지대를 받쳤지만, 굵은 가지 하나는 세월에 지친 몸을 땅바닥에 살그머니 내려놓았다. 이만큼 육중한 몸으로 새잎을 피워 올리려면, 아직 더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시간이 남긴 상처를 온몸으로 껴안아 500년 넘게 살았으리라 짐작되는 이 나무는 줄기 곳곳에 세월의 상처를 여실히 새겨두었다. 가운데에서 솟구쳐 오른 줄기는 오래전에 썩어 문드러져서, 더 썩지 않도록 충전재로 옛 모습을 만들어 세웠다. 부러진 줄기의 흔적도 여러 곳이다. 또 뿌리와 맞닿은 줄기에도 충전재로 메운 커다란 구멍이 눈에 들어온다. 시간이 할퀴어 낸 상처를 나무는 느릿느릿 스스로 치유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사람들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먼저 치료해 주었다. 줄기에는 금줄이 둘러쳐져 있고, 그 앞에는 ‘당산제단’이라는 한자 글씨가 선명한 제단이 놓여 있다. 사람의 극진한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이 나무는 마을에 평화와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목이자 당산목이라는 증거다. 월곡리 느티나무는 마을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으며, 마을의 대소사를 상의하기 위해 모이던 마을의 정자였다. 1982년에 천연기념물 제283호로 지정되면서 나무 주변에 울타리를 쳐서 옛날처럼 개구쟁이들이 함부로 기어오를 수는 없게 됐지만, 여전히 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쉼터이자 마을의 중심이다. 면사무소가 바로 옆에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람과 나무 사이에 흐르는 시간의 차이 서성이며, 느릿하게 흘러가는 나무의 시간을 가늠하던 즈음,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빠르게 달리던 오토바이 한대가 나무 옆 등나무 쉼터로 들어와 멈췄다. 나무의 규모에 놀란 표정으로 가지 끝에 눈길을 고정한 채 헬멧을 벗어 핸들 위에 걸쳐 놓고, 서른 즈음의 젊은 사내가 나무 곁으로 다가섰다. “서울에서 오는 중이에요. 지나가다가 큰 나무가 눈에 띄길래 잠시 멈춘 거죠. 이 나무 정말 크네요. 대체 몇년이나 살아야 이만큼 크나 모르겠네요. 정말 대단하군요.”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가는 중이라는 사내도 거대한 크기의 나무에 스쳐가는 시간의 흐름이 궁금했던 게다. 조금이라도 더 빠른 시간을 즐기려는 오토바이의 사내와 더없이 느린 시간을 살아가는 나무의 해후다. 묘한 조화다. 체코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소설 ‘느림’에서 오토바이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은 오직 현재의 순간에만 집중할 뿐이라며 그는 “과거와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의 시간에 매달린다.”고 했다. 연속되는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다는 이야기다. 이른 아침부터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의 조각에 매달려 온 오토바이의 사내는 모든 시간의 흔적을 몸 안에 박아넣고 500년을 살아온 나무 앞에서 일상적 시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늙은 느티나무 곁을 흐르는 느린 시간의 흐름 위에 자신이 끄집어낸 시간의 조각들을 하나 둘 끼워 맞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참을 머물던 사내가 다시 오토바이의 굉음을 울리며 떠났다. 그는 다시 나무의 느릿한 시간에서 벗어나 한 조각의 빠른 시간에 매달렸다. 느티나무의 시간은 여전히 봄날 오후처럼 나른하게 흐른다. 오토바이가 떠나고 다시 고요해진 느티나무 그늘에 들어섰다. 사람의 마을에 평화를 지켜주는 시간의 속도는 얼마쯤이어야 할지를 느티나무에게 물었다. 대답 없는 나무는 천천히 봄 바람만 살랑 불러왔다. 글 사진 영암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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