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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작권위, 대학생 저작권기자단 25명 선발…오는 11월까지 활동

    저작권위, 대학생 저작권기자단 25명 선발…오는 11월까지 활동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오는 11월까지 활동할 저작권 기자단 25명을 선발했다. 이들은 이 기간 동안 저작권 교육과 창작현장 탐방, 전문가 멘토링·저작권 캠페인 참여·기자단 미션 등을 수행한다. 저작권기자단은 지난 2012년 처음 꾸려져 올해 선발된 인원들이 다섯 번째 기수다. 작년까지 기자단 활동을 벌인 인원들은 100여 명으로 젊고 역동적인 에너지와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콘텐츠를 제작하여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한 홍보활동을 벌여왔다. 올해 선발된 인원들 역시 제작 콘텐츠가 눈에 띈다. 카드뉴스‧동영상‧인포그래픽 등 모바일에 맞춤한 시각화 콘텐츠를 앞세워 저작권 침해와 보호에 대한 정보를 알기 쉽게 전하고 있다. 저작권기자단은 오는 11월까지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지원 아래 저작권 교육 및 제도소개 등의 소양교육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며, 저작권 교육 및 창작 현장을 탐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또한 언론사 출신의 콘텐츠 제작 전문가로 구성된 멘토단의 도움을 받아 기자로서의 소양도 쌓아갈 예정이다. 활동 종료시점에는 성적 우수 인원들에 한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여하고, 해외탐방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에 선발된 저작권기자단 이가영(여주대 실용음악과, 21세)씨는 “직접 제작한 음원에 대해 저작권 침해를 당한 적 있는데, 그때 사람들이 저작권에 대해 잘 모른다고 느꼈다. 창작자 입장에서 저작권을 바로 알고, 주위에 널리 알리고자 기자단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며 “저작권이 법률적인 내용이 많아 어려울 수 있어, 최대한 쉽고 재밌게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향후 활동계획을 밝혔다. 저작권기자단은 매월 다채로운 저작권의 정보와 저작권 브랜드 ‘반듯Ⓒ’ 캠페인의 의미를 기사·영상·웹툰 등의 콘텐츠로 제작하여 SNS를 통해 전파할 예정이다. 이들의 기사는 한국저작권위원회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만날 수 있다. 한편 한국저작권위원회는 다변화되는 디지털 사회에서 저작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저작권을 조금 더 쉽게 알아갈 수 있는 브랜드 ‘반듯Ⓒ’를 개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올림픽 칠레 기수 맡은 마라토너, “목사 계부 12년간 성폭행”

    올림픽 칠레 기수 맡은 마라토너, “목사 계부 12년간 성폭행”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칠레기수로 선정된 여자 마라토너가 "의붓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칠레 검찰이 사건을 수사하겠다고 나서자 의붓아버지는 부랴부랴 안데스산맥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도주했다. 칠레의 여자마라토너 에리카 올리베라(40)는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피해사실을 폭로하고 의붓아버지를 검찰에 고발했다. 칠레 올림픽선수단 기수로 선정된 지 이틀 만이다. 올리베라는 "5살부터 17살까지 12년간 의붓아버지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면서 경찰에 의붓아버지를 고발했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한 잡지의 인터뷰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인터뷰에서 올리베라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꼭 의붓아버지가 죄의 대가를 치렀으면 한다"며 고발 사실을 확인했다. 1999년 토론토 팬아메리칸게임에서 금메달, 2003년 산토도밍고 팬아메리칸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칠레 여자육상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올리베라의 폭로와 고발에 칠레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최종적으론 법원이 판단할 문제"라면서 사건을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칠레를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칠레 언론은 검찰 소식통을 인용해 "잡지가 발간되자 바로 다음 날 의붓아버지가 아르헨티나로 넘어갔다"고 보도했다. 칠레 검찰은 아버지의 신병을 확보하는 방법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뷰 내용은 충격적이다. 개신교 목사인 의붓아버지는 올리베라가 5살이었을 때부터 성폭행을 시작했다. 특히 엄마가 교회 일로 집을 비우는 월요일은 악몽과 같은 요일이었다. 올리베라는 "당시엔 저항도 못하고 의붓아버지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2살 때 올리베라는 엄마에게 의붓아버지의 성폭행 사실을 털어놨다. 하지만 "거짓말을 했다고 하라"라는 의붓아버지의 협박에 결국 말을 바꿔야 했다. 올리베라는 "말을 듣지 않으면 의붓아버지가 집에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추행이 끝난 건 올리베라가 17살 때였다. 올리베라는 이복형제들이 있는 자리에서 성폭행사실을 폭로하고 "사실을 인정하라"고 의붓아버지를 다그쳤다. 올리베라는 "4번을 다그쳐 묻자 의붓아버지가 결국 시인을 했다"면서 "그후 의붓아버지는 엄마와 이복동생들을 데리고 떠났다"고 말했다. 올리베라는 이후 엄마를 본 적이 없다. 그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누구든 죄를 지었으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 뒤늦게 사건을 고발했다"고 말했다. 사진=라테르세라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대표적 공안통… 진경준의 연수원 한 기수 선배

    파이시티 비리때 정권실세 수사 역대 4번째… 그랜저 검사때 도입 검찰의 ‘특임검사’ 임명은 이번이 네 번째다. 검찰총장은 검사의 범죄 혐의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 이를 담당할 특임검사를 지명할 수 있다. 특임검사 제도는 2010년 ‘그랜저 검사’ 사건을 통해 처음 도입됐다. 강찬우(사법연수원 18기) 대검 선임염구관이 특임검사로 임명돼 건설업자로부터 그랜저 등 4600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정모 부장검사를 구속 기소했다. 다음해엔 ‘벤츠 여검사’ 사건 규명을 위해 이창재(연수원 19기) 안산지청장이 특임검사로 지명됐다. 이모 여검사가 한 변호사로부터 사건 관련 청탁과 함께 벤츠 승용차 등을 받았다는 혐의였으나 지난해 대법원이 ‘벤츠는 사랑의 정표’였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012년에는 김모 부장검사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측으로부터 수사 무마 청탁과 함께 10억원대 뇌물을 받은 의혹이 제기돼 김수창(연수원 19기) 당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특임검사로 나섰다. 김 부장검사는 뇌물 4억원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유죄가 인정됐다. 특임검사는 검찰총장이 지정한 사건에 대한 수사와 공소제기, 수사팀 구성 등 관련된 직무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 직무 독립 원칙에 따라 검찰총장 등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수사 결과만 보고하도록 돼 있다. 다만 감찰위원회에 수사상황을 보고하고, 감찰위가 이를 검토해 필요한 조치를 권고할 수 있다. 검사장급 간부로는 최초로 특임검사를 맡은 이금로(51·사법연수원 20기) 인천지검장은 진 검사장보다 연수원 한 기수 위로,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알려져 있다. 법무부 공공형사과장과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 대검 수사기획관, 중앙지검 2차장 등을 지냈다. 특히 대검 수사기획관 재직 당시엔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와 관련, 정권 실세들에 대한 수사를 펼치며 특수수사에도 역량을 발휘했다. 이 지검장은 합리적인 수사와 상황판단 능력으로 검찰 내부의 신망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韓스텔스기vs日스텔스기, 결과는? ‘한국 참패’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韓스텔스기vs日스텔스기, 결과는? ‘한국 참패’

    흔히 우리나라를 ‘일본을 우습게 보는 세계에서 유일한 민족’이라고들 한다. 일본은 GDP 순위 세계 3위로 세계 경제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일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국력이 우리나라를 크게 앞서는 나라지만, 이러한 객관적인 지표의 열세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들은 일본을 ‘무시’, ‘괄시’, ‘멸시’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은 평상시에 제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거두더라도 한일전에서 패하면 사퇴를 각오해야 하고, 각종 지표나 통계에서 일본에 뒤처지는 결과가 나왔다는 뉴스가 보도되면 분통을 터트리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우리나라가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단군 이래 최대의 국방 사업’이라고 불리는 한국형 전투기(KFX) 체계 개발에 들어가자 일본은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기술실증기의 시험 비행을 실시하고, 최근 차세대 전투기 개발 본격화를 위한 기술공개 접수를 마감하면서 본격적인 전투기 개발에 들어갔다. 韓 KFX vs 日 F-3 우리나라의 KFX와 일본의 F-3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할 전투기지만, 그 성능 면에서는 ‘하늘과 땅’에 가까울 만큼의 차이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사시 독도 상공에서 KFX로 F-3에 덤비는 것은 무모한 자살행위에 가깝다. 2026년부터 실전 배치되는 KFX는 4.5세대 전투기를 표방하고 있다. 라팔이나 유로파이터와 같은 4.5세대 전투기들이 2000년대 초반부터 등장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등장 자체가 경쟁 기종들보다 20년 이상 늦었다는 이야기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들은 이미 5세대 전투기를 실전에 배치하고 있고, KFX가 한창 양산될 2030년대 출시를 목표로 6세대 전투기에 대한 개념 연구 단계에 들어가 있다. F-16보다 조금 더 큰 24.5톤의 최대 이륙중량에 쌍발엔진, 마하 1.8 수준의 최대속도를 갖춘 KFX는 현재 기준에서는 상당히 우수한 전투기지만, 5세대 전투기 보급이 일반화되는 202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성능 면에서 주변국 주력 전투기보다 상당한 열세에 처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KFX는 블록(Block) 개념을 도입해 단계적으로 성능을 향상시킬 계획이지만, 기체 크기의 한계 때문에 개량형인 블록 II나 블록 III에서도 충분한 용적의 내부 무장창이나 항공전자장비를 갖추기 어려워 주변국 대비 성능 열세는 극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이 준비하고 있는 F-3는 목표 성능치가 KFX와는 ‘클래스’가 다르다. 일본은 F-3의 목표 성능을 현존 최강의 전투기라는 미국의 F-22A 랩터(Raptor)와 동등 이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F-3에는 스텔스기를 원거리에서 탐지할 수 있는 고성능 AESA(Active Electronically Scanned Array) 레이더와 전자전 장비, 적외선 탐색추적장비(IRST) 등을 통합한 선진통합센서는 물론, 기체 표면에 붙여 사각지대를 없애주는 레이더인 스마트 스킨(Smart skin),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6발 이상을 수납할 수 있는 넓은 내부 무장창과 30톤급 이상의 대형 전투기를 마하 1.5 이상으로 초음속 순항시킬 수 있는 고성능 엔진, 그리고 고기동을 위한 비행제어시스템이 구현될 예정이다. 일본은 지난 4월과 5월에 시험 비행을 실시한 기술실증기 X-2에서 F-3에 탑재될 통합센서와 엔진의 선행 개발 제품들의 기술 테스트를 실시했을 정도로 관련 연구를 상당 수준 진척시켰다. 이 때문에 오는 2028년까지 F-22A와 동등 이상의 성능을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전투기를 개발한다는 일본의 목표는 어렵지 않게 달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방위성은 F-3 전투기를 F-2 지원 전투기의 후계로 100여 대 이상 전력화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지만, 지난해 11월 방위장비청 기술 심포지엄에서 공개된 F-3의 요구 성능 중 공중전 능력과 장거리 작전 능력, 내부 무장 능력 등이 대단히 높게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전투기는 F-2보다는 F-15의 후계에 가깝다. 즉 장거리 항속 능력과 우수한 공중전 성능을 바탕으로 주변국에 대한 공세적 항공 작전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며, 이는 유사시 독도 상공에서 우리 KFX가 이 전투기를 상대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공개된 제원을 비교하면 KFX는 레이더와 항공전자장비 성능, 무장 능력과 공중 기동 능력 등 모든 능력에서 F-3에 열세다. 여기에 공중조기경보통제기와 이지스함 등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자위대의 네트워크 교전 능력까지 감안한다면 KFX로 F-3에 대적하는 것은 자살 행위가 될 우려도 있다. 분통이 터질 일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양국의 전투기들이 이렇게까지 심각한 성능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난 수십여 년 간 항공산업을 바라보는 양국 정부의 시각차 때문이었다. 파격 투자 일본과 최저가 한국 장중하고 맑은 종소리로 유명한 국보 제29호 선덕대왕 신종은 본명보다 ‘에밀레종’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종을 완성시키기 위해 쇳물에 어린 아이를 던져 넣었는데 이 때문에 종소리에서 ‘에밀레(어미 때문에)’라는 소리가 들린다는 전설 때문이다. 이 종이 완성된 것은 통일신라 선덕왕 재위 기간 중이었는데 무엇인가를 만들 때 사람을 희생시켜 물건을 완성시키는 전통(?)은 에밀레종 이후 1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계에는 ‘공밀레’라는 말이 있다. 과학자나 기술자들을 비하하는 표현인 ‘공돌이’라는 단어에 에밀레종의 ‘밀레’를 합성해 탄생한 단어로 어떤 제품이나 물건을 개발하거나 만들 때 인력을 혹사시키는 연구개발 풍토를 비꼬는 말이다. 이러한 풍토는 산업계 전반에 만연해 있지만 무기 개발 분야에서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형 명품 무기’는 최저가 낙찰제를 통해 결정된 부족한 연구개발비를 가지고 지정된 기간 내에 개발을 완료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탄생한다. 정해진 기간 내에 납품하지 못하면 하루하루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지체보상금을 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연구원들의 피와 땀,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이 한국형 명품무기 탄생의 댓가로 지불되고 있다. 실제로 T-50 고등훈련기 개발 과정에서 2명, K-9 자주포 개발 과정에서 1명의 연구원이 과로로 순직했다. 문제는 연구개발 기간 중 과로에 시달리던 연구원들도 막상 무기체계의 개발 프로젝트가 끝나면 갈 곳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같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연구소는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민간업체들에 근무하는 연구원들은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끝나면 당장 다음 달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뛰어난 능력과 잠재력을 가진 전문 인력들은 생계를 위해 타 업종으로 전환하거나 해외 업체의 러브콜을 받아 우리나라를 떠나기 일쑤다. 이러한 문제는 연구개발 인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민간업체들은 항공기나 장갑차 등 군에서 주문한 물량에 대한 납품이 끝나면 후속 물량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설치한 생산라인을 뜯어내고 이 생산라인에서 근무했던 근로자들을 정리 해고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가령 항공기 생산 업체의 사례를 들어보자. 국산 고등훈련기와 전투기를 생산하는 K업체는 현재 우리 공군과 필리핀, 이라크 등에 인도될 항공기들을 생산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현재 수주 물량은 내년 연말까지 모두 인도되기 때문에 추가 수출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내년부터 KFX 양산 개시 시점인 2026년까지 약 9년간 이 업체는 고정익 항공기 생산라인 유지가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항공기 생산은 일반적인 자동차 생산과 다르기 때문에 현장의 말단 인력도 수개월 이상의 전문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현장 관리자들은 이름만 생산직일 뿐 석·박사 학위를 소지한 고급인력들이 필요하다. 생산 물량이 없어 항공기 생산라인을 접는다면 항공기의 개발과 관리, 생산 업무에 종사했던 수백여 명 이상이 국내 타 업종 또는 해외 동일 업체로 이직해야만 한다. 항공산업의 맥이 끊어진다는 이야기다. 흔히들 항공산업을 미래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신성장동력으로 언급한다. 대당 수백억 원을 훌쩍 넘는 항공기 1대를 수출하면 중형차 수천 대를 수출하는 것과 같은 경제적 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항공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또 항공산업을 육성해 제반 기술 기반을 닦아 놓으면, 해외에서 항공기를 구매할 때 바가지 쓸 일도 없다.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살 때 사고자 하는 물건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소위 말하는 ‘호갱님’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때문에 항공산업 육성은 정부 차원에서 반드시 해야하는 과제이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항공산업은 그 맥이 끊길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13년 전에도 있었다. 2002년 KF-16 120대 면허생산이 종료되면서 2005년 T-50 양산 개시 이전까지 2년간 생산라인 가동 중단 위기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참여정부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군 전력증강 계획에 없었던 KF-16 20대 추가생산 카드를 꺼내들었고, 공군은 FX 사업 예산이 전용될 우려가 있다며 강력 반발했다. 하지만 정부가 1조 2천억 원에 달하는 KF-16 추가 생산 비용을 공군 예산이 아닌 산업자원부 예산을 쓰기로 결정하면서 공군 전력공백 방지와 항공기 생산라인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향후 9년간의 항공기 생산라인 가동 중단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대비책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문제는 멀쩡한 이 생산라인이 개점휴업하고 있을 9년의 기간 중 우리 공군의 전투기 전력공백이 최고조에 달할 것이라는 점이다. 공군은 노후 정도가 극심해 비행이 위험한 수준까지 와 있는 F-4E 40대와 F-5E/F 120대 등 160여 대의 전투기를 2019년까지 퇴역시킬 예정이지만, 이 시기에 도입되는 전투기는 F-35A 40대가 전부로 2019년부터 2030년까지 약 10여 년간 우리 공군은 100~120대의 전투기가 부족한 사상 최악의 전력 공백 사태를 겪게 된다. 항공산업 위기와 전력공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국내에 있는 생산라인을 이용해 전투기를 추가 생산하는 것이 그것이다. FA-50이 전투기 전력을 대체하기 위한 기체로 부족하다면 KF-16의 성능 개량형을 추가 생산하는 방법도 있고, 일본처럼 F-35를 면허생산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방안에 대해 정부와 군에서는 회의적인 분위기다. 정부 입장에서는 수 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F-16 전투기 면허생산 비용은 대당 600~800억 원 선이고, 옵션에 따라 차이가 큰 편이지만 일본의 사례를 보자면 F-35 면허생산 비용은 1700~2000억 원을 넘어간다. 이러한 전투기들을 매년 10대 안팎씩 9년간 생산한다면 적게는 5.4조에서 많게는 18조원의 돈이 들어간다. 부정적인 것은 군도 마찬가지다. 계획에 없던 전투기 추가 양산이 결정되면 다른 전력증강사업 예산이 타격을 입게 된다. 가뜩이나 복지비 부담이 큰 상황에서 선거 때 표로 연결되지 않는 국방예산은 지출을 꺼리는 것이 예산당국의 일관된 입장이기 때문에 전투기 추가 양산을 한다는 결정이 내려지면 기존의 국방예산을 전용하라는 압박이 강할 것이라는 것이 군의 걱정이다. 또한 공군의 전투기 보유 정수는 430대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중기계획에 없는 F-16이나 F-35 면허생산 카드를 꺼내게 되면 다른 전투기 도입 수량, 즉 KFX 도입 수량이 줄어들어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군의 이러한 경직된 사고는 일본의 사례와 너무도 대조적이다. 일본의 항공산업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군용기 생산을 계기로 시작되었지만, 그 전개 과정은 우리나라와 너무도 상이했다. 요컨대 일본의 전투기 생산라인은 지난 반세기 동안 멈춘 적이 거의 없었다. 일본정부는 1955년부터 1960년까지 300대의 F-86 전투기를 면허생산하고, 이 사업이 끝나기도 전에 F-104 전투기 면허생산 계약을 체결, 1967년까지 230대의 F-104를 생산해 생산라인을 유지시켰다. 잠시 숨을 고른 뒤 1969년에는 F-4D/E 전투기 140대 면허생산 계약을 체결해 1981년까지 생산했고, 그 직후 F-15CJ/DJ 전투기 100대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F-15 전투기가 생산되던 당시 항공자위대는 F-104와 F-4 등의 전투기를 300대 넘게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F-15 전투기는 당초 항공자위대가 요구한 100대면 충분했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F-15 전투기 100대의 생산이 종료되면 차세대 독자개발 전투기인 F-2의 생산이 시작되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항공산업이 침체기에 접어들 것을 우려해 3차례에 걸쳐 각각 55대, 32대, 36대 추가 생산을 결정했다. 당초 군이 요구한 100대에 무려 123대를 더 얹어준 것이다. 이러한 기조는 21세기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일본은 F-3 양산이 시작되는 2028년 이후까지 자국의 전투기 생산라인 유지를 위해 F-35 면허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계약된 것은 42대지만, 지속적인 생산라인 유지를 위해 F-35 도입 대수를 100대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F-35는 일본 자국기업이 생산한 부품 비중이 40%에 육박하는데, 이 때문에 도입 가격이 타국의 F-35보다 50% 가량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가 기존 소요 대비 2배 이상 추가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단순한 군비증강이 아닌 항공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다. 이러한 투자 덕분에 일본은 완성기 생산뿐만 아니라 항공전자, 항공엔진, 소재 기술 등 항공과학기술 전반에 걸쳐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F-2 전투기 개발 이후 세계 각국으로부터 공동개발과 기술이전 등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현재는 이러한 기술력 기반 위에 4500억 원에 달하는 R&D 예산을 투자, X-2라는 5세대 스텔스 전투기 기술실증기를 완성하기도 했다. 요컨대 한국은 전투기 생산을 단순히 소모성 국방사업이라고 생각해 정부 차원의 투자를 꺼렸고, 일본은 전투기 생산을 항공산업 명맥 유지와 발전을 위한 투자라고 인식했다. 수십 년간 지속된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한일 양국 간 항공산업 수준의 격차를 천지차이로 벌려 놓았다. 이제 15년 후면 우리나라는 북한을 제외하면 동북아에서 질적·양적으로 가장 떨어지는 공군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고, 일본은 질적으로 미 공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최정상급 공군력을 가지고 동북아시아 하늘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물론 아직 시간은 있다. 정부가 미래 대한민국 안보를 걱정한다면, 또 항공산업을 미래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범정부차원의 공세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공돌이’를 쥐어짜면 “안되면 되게하라”가 가능했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산업을 육성하자는데 1000년전 에밀레종 만드는 스타일로 덤벼들 수는 없지 않은가?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센카쿠서 ‘공격 동작’… 中·日 전투기 전투 직전까지 갔다

    센카쿠서 ‘공격 동작’… 中·日 전투기 전투 직전까지 갔다

    중국과 일본 전투기가 영유권 분쟁지역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상공에서 단순 위협 비행이 아닌 전투 직전의 ‘공격 동작’을 취하며 아찔한 대결을 펼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국방부 신문국은 지난 4일 “일본이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며 지난달 17일 센카쿠 상공에서 벌어진 양국 전투기의 대치 상황을 이례적으로 발표했다. 중국군 주장에 따르면 중국 전투기 SU30 2대가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에서 순찰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일본의 F15 전투기 2대가 고속으로 접근하며 ‘공격 동작’을 취하며 도발해 왔다는 것이다. 일본 전투기는 중국 전투기를 향해 화력통제레이더(FCR·표적을 탐색·추적해 적절한 타격 지점을 산출하는 시스템)까지 쐈다고 중국 측은 주장했다. 중국 국방부는 “중국 전투기가 전투태세를 갖추고 ‘과감한 대응조치’를 취하자 일본 전투기는 적외선 재밍탄(jamming·전파교란탄)을 쏘며 달아났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대치 상황을 공개한 것은 일본 내에서 중국 전투기의 ‘공격 동작’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직 항공자위대 항공지원집단사령관 출신인 오리타 구니오는 지난달 29일 “중국 전투기가 최근 동중국해 상공에 긴급 발진한 자위대기에 공격 동작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국군 전투기가 미군과 자위대 정찰기에 대해 위협 비행을 여러 번 해 왔지만, 긴급 발진한 전투기에 대해서는 억제된 행동을 취해 왔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부대변인인 하기우다 고이치 관방 부장관은 “중국 전투기가 남하해 자위대기가 긴급 발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격 동작’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그러자 오리타는 “중국 전투기가 후방에서 따라오는 자위대기를 향해 기수를 갑자기 돌려 정면으로 마주보는 자세를 취했다”면서 “이는 언제든지 미사일을 쏠 수 있는 전투태세로 사실상 공격 동작”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한편, 일본 자위대 최고지휘관인 가와노 가쓰토시 통합막료장은 최근 “올 4~6월 영공 침범 우려가 있는 항공기에 대한 자위대기의 긴급발진 횟수가 전년 동기 대비 90회 이상 늘었다”면서 “특히 중국군 전투기에 대한 발진은 80회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2013년 11월 일본이 실효지배 중인 센카쿠 열도 상공을 포함하는 동중국해 일대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뒤 해당 구역을 통과하는 외국 항공기에 대해 자신들에게 사전 통보할 것을 요구해 오고 있다. 이에 맞서 일본은 중국 군용기가 센카쿠 쪽으로 접근하면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켜 대응하고 있다. 중국이 최근 센카쿠 열도 주변에 군함과 전투기를 보내 일본을 자극하는 것은 일본이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벌이는 남중국해 영유권 다툼에서 노골적으로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의 편을 드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 정부는 오는 12일로 예정된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한 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이 중국에 불리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되자 재판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주요 7개국(G7) 공동 성명을 준비하는 등 미국과 함께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5일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에 돌입했다. 12일까지 열리는 이번 훈련은 중재재판의 ‘무효’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남중국해를 담당하는 남해함대뿐만 아니라 북해함대와 동해함대의 미사일 구축함과 호위함·잠수함 등 3대 함대의 대표적 전함 수십척이 동원됐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中, 年 34억弗 묻지마 원조… 아프리카 지도자 뒷돈으로 유입

    中, 年 34억弗 묻지마 원조… 아프리카 지도자 뒷돈으로 유입

    아프리카 대륙 남동부에 있는 말라위는 인구 1700만명의 소국이다. 인근 잠비아와 탄자니아에 비해 작은 이 나라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이 만연한 가난한 곳이다. 201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40억 달러(약 4조 6900억원)에 불과한 말라위는 그렇지만 영국을 비롯해 미국 등이 대외원조를 많이 하는 곳 중에 하나였다. 실제로 서방국가가 말라위에 제공하는 대외원조는 2012년 한 해에만 11억 70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는 말라위 국내총소득(GNI)의 28%에 해당하는 액수다. GNI가 생산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국민이 지출하는 실질구매력의 척도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 조이스 반다 말라위 대통령은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환영받는 인사였다. 하지만 최근 말라위는 서방 국가로로부터 대외원조 대상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나라다. 부패한 행정과 정치인, 무능한 관리로 인해 해마다 최소 3000만 달러 이상의 대외원조가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가난한 국가를 돕기 위해 서방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대외원조가 정작 필요한 곳으로 가지 않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생하는 등 불균형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외원조는 자금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정부개발원조(ODA)와 수출신용·해외투자금융, 비영리단체 증여 등 3가지로 분류된다. 기술지원이나 차관 등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이뤄지는 대외원조는 한 해에만 대략 1300억 달러(약 152조 6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상당액은 독일과 일본,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이 부담하고 있다. 이 밖에도 노르웨이나 스웨덴 등도 많은 대외원조를 하고 있다. 대외원조의 20% 이상은 주로 세계은행(WB)이나 유엔 등을 통해 집행되는데 지원 분야도 다양해 의료, 보건 등에 사용됐다. 최근에는 난민 문제에 관심이 쏠리면서 지난해 대외원조 지원액의 9%가량이 난민문제에 사용됐다. 지난해 아프리카계 주민이 대거 유럽으로 이주한 데 따른 것으로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문제는 이 같은 적지 않은 대외원조에도 불구하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대외원조에도 발생한다는 점이다. 하루 1.9달러 이하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빈곤층이 2억 7500만명에 달하는 인도의 경우 2014년 대외원조로 48억 달러(약 5조 6300억원)를 지원받았다. 한 사람에 대략 17달러에 달하는 액수다. 그러나 인도보다 인구가 훨씬 적은 베트남 역시 2014년 48억 달러의 대외원조를 받았다. 빈곤층이 상대적으로 인도에 비해 적은 베트남은 국민당 1658달러의 혜택을 볼 수 있다. 특히 베트남은 2015년 1인당 국민소득이 2109달러에 달했다. 이렇듯 대외원조가 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최근에는 급진 이슬람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대외원조를 활용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터키 등에 대외원조가 늘고 있는 것은 이런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이슬람국가(IS)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시리아와 인접한 터키의 경우 2014년 대외원조 지원액이 34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10년 전인 2004년에 비해 10배 이상 늘어난 액수다. 유럽연합(EU)도 최근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의 이민문제 해결을 위한 추가 대외원조를 약속했다. 대외원조 전문가인 대런 호킨스는 “대외원조 지원국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정책을 실행하는 국가에 보상차원에서 지원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서방 선진국이 대외원조를 과거 식민지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지원했던 것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대외원조를 대외정책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싱크탱크인 ‘센터 포 글로벌 디벨롭먼트’의 오웬 바더 연구원은 “대외원조를 정책도구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외원조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지원대상 국가의 무능력도 원인이 됐다. 말라위의 경우만 해도 2014년 9억 3000만 달러의 대외원조를 받았지만 지원국들은 말라위 정부에 현금이 들어가는 것을 최대한 막고 있다. 일부에서는 대외원조로 인해 시장경제가 왜곡되거나 빼돌려진 대외원조 금액이 독재정권의 정권 유지와 연장을 돕는 모순이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어쩔 수 없이 지원국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행정이 안정된 국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윌리엄 어스터리 뉴욕대 교수는 “원조는 조직적으로 정부를 통해 이뤄져야 효율성이 높아지는데 최빈국의 경우 조직적인 원조를 방해하는 요소가 많아 결국 일정부분 행정력을 갖춘 국가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원조가 독재자에게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업규모를 축소하고 다자협력을 통해 지원하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대외원조 싱크탱크인 에이드데이터에 따르면 2013년 대외원조 프로젝트에 따른 평균 자금 투입규모는 190만 달러였다. 2000년 530만 달러에 비해 줄어든 것이다. 실제로 모잠비크에서 이뤄지는 대외원조 사업의 경우 벨기에와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스웨덴 등 무려 2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이 지원하고 있는 액수는 모두 100만 달러 이하의 소규모다. 프로젝트 규모가 줄어들다 보니 지원을 받는 국가 역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누수를 막기 위한 끊임없는 문서작업은 지원국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불만도 고조되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은 민주주의 정착을 대외원조의 조건으로 내거는 등 각종 까다로운 요구를 하고 있는 반면 중국의 경우는 독재자에게 아무런 조건도 내세우지 않고 지원을 하고 있어 선진국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이 말라위에 대한 대외원조 규모를 지속적으로 축소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기아해소를 위해 지난달 6500톤의 식량을 무상으로 지원했다. 또 100대의 경찰차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왕스팅 말라위 주재 중국대사는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을 위해 중국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34억 달러에 달하는 대외원조를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패한 독재자에게 중국의 대외원조는 달콤한 유혹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대외원조의 조건으로 내세우지도 않을 뿐더러 쓸데없는 대형 프로젝트에 대외원조 기금을 사용해도 좀처럼 반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돈을 빼먹는 것도 쉽다. 중국의 대 아프리카 대외원조 중 상당액이 지도자의 고향으로 흘러간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지만 지원국들은 더이상 직접 예산지원을 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영국의 대외원조를 담당하는 국제개발부(DFID)도 지난해 직접 예산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각국의 대외원조를 모니터링하는 전문가들도 대외원조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행정력이 안정된 국가에 대외원조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민주주의 진전이 이뤄질 경우 오히려 대외원조가 줄어드는 모순도 나타난다. 미국은 오랜 독재를 청산하고 민주화가 이뤄지고 있는 페루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다. 에이드데이터의 브래드 파크 연구원은 “저개발국가 중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달성한 페루에는 대외원조가 줄어들었다”며 “이는 일종의 벌칙”이라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인간의 ‘식스센스’ 찾았다…”자기장 감지 능력 있어” (美연구)

    인간의 ‘식스센스’ 찾았다…”자기장 감지 능력 있어” (美연구)

    인간은 본래 자기장을 감지하는 ‘식스센스’(여섯번째 감각, 또는 육감)를 가졌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의 조 커슈빙크 박사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동물이나 곤충과 마찬가지로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하는 식스센스를 가졌으며, 현재에도 잠재적으로 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커슈빙크 박사 연구진은 외부 정전기 차단을 위해 기계 장치 주위에 두르는 금속 판인 ‘패러데이 케이지’(faraday cage)와 뇌전도(EEG)모니터 등을 이용해, 인간의 뇌파 중 알파파의 변화를 관찰했다. 뇌파의 진동수에 따라 구분되는 뇌파의 형태 중 하나인 알파파(진동수 9~14Hz)는 주로 명상을 하거나 쉴 때, 일을 마치고 조용히 휴식을 취할 때의 상태다. 연구진은 매우 얇은 알루미늄을 이용해 만든 페러데이 케이지 내부를 암전 상태로 조성한 뒤 실험 참가자를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다양한 주변 사물에서 오는 자기장을 차단하고 오로지 연구진이 의도한 대로 순수한 지구 자기장을 모방한 회전자기장에만 노출되게 했다. 총 24명의 실험참가자에게 같은 실험을 실시하고 이들의 뇌전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회전 자기장이 시계 방향으로 회전할 때에 알파파에 변동이 생기면서 뇌파의 진동수가 낮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커슈빙크 박사는 "이러한 현상은 실험참가자들의 뇌가 자기장을 감지했기 때문에 나타난 변화이며, 동시에 뇌의 신경반응이 수 천 분의 1초 정도 느리게 반응하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방향, 고도, 위치를 인지하기 위해 자기장을 감지하는 능력인 자기수용(magnetoreception)은 인간이 가진 태초의 여섯 번 째 감각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편 자기장을 감지하는 능력은 조류나 곤충, 혹은 일부 포유류 동물 등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능력을 이용해 하늘에서도 길을 찾거나 주변 완경을 인지할 수 있으며, 여우나 곰 등도 청색광을 인지해서 생체리듬을 포함한 다양한 기능을 조절하는 눈의 크립토크롬을 이용해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기도 했다. 사진= ⓒVasily Merkushev/ 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윔블던 테니스대회] 前 세계 1위 보즈니아키 메이저 1회전 또 탈락

    여자프로테니스(WTA) 전 세계 랭킹 1위 캐럴라인 보즈니아키(45위·덴마크)가 윔블던 테니스대회 1회전에서 탈락했다. 보즈니아키는 29일 영국 윔블던의 올잉글랜드 클럽에서 열린 대회 여자단식 1회전에서 스베틀라나 쿠즈네초바(14위·러시아)에게 0-2(5-7 4-6)로 졌다. 보즈니아키는 2010년 세계 1위까지 올랐지만 메이저대회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세계 1위였을 때도 ‘메이저 우승이 없다’는 비난에 시달렸던 보즈니아키는 윔블던에서 16강이 개인 최고 성적이다. 메이저대회를 통틀어도 US오픈에서 두 차례 준우승이 전부다. 오는 8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개막식에서 자국 선수단 기수로 내정된 보즈니아키는 최근 발목 부상 때문에 프랑스오픈에 불참했다. 앞서 호주오픈에서도 1회전에서 탈락하는 등 부진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남자단식에서는 2013년 대회 챔피언 앤디 머리(2위·영국)가 1회전을 가볍게 통과했다. 자국 동료 리엄 브로디(235위)를 3-0(6-2 6-3 6-4)으로 완파하고 64강에 올랐다. 머리는 2회전에서 루옌쉰(76위·대만)을 상대하는데 공교롭게도 둘은 2013년 윔블던 정상에 오를 때도 2회전에서 만난 적이 있다. 상대 전적은 3승1패로 머리가 우세하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설렘보다 편안함, 내 생애 첫 베트남①천년 고도의 도시 하노이Ha Noi

    설렘보다 편안함, 내 생애 첫 베트남①천년 고도의 도시 하노이Ha Noi

    설렘보다 편안함내 생애 첫 베트남 이제껏 베트남에 큰 관심이 없었다. 수도가 하노이인지 호치민인지 헷갈릴 만큼. 왜 그랬을까? 일생에 한 번뿐일 거라 생각했던 이번 베트남 여행. 그러나 벌써 두 번째를 기약 중이다. 베트남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기내식 한 번 먹고 수다 좀 떨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베트남 하늘이다. 인천을 떠난 것이 5시간 전. 꽤 시간이 걸릴 것이라 여겼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가까웠다. 아마도 물리적인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훨씬 더 멀었던 모양이다. 흐린 상공을 날던 비행기가 서서히 바퀴를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활주로에 미끄러지듯 내려섰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왠지 모르게 친숙하다. 드문드문 눈에 띄는 베트남어만 없으면 얼핏 보기에 한국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낯선 곳에 닿았다는 설렘보다 편안한 느낌이 먼저 다가왔다.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Ha Noi의 관문은 작년 초 신축 건물로 자리를 옮긴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Noi Bai International Airport이다. 매끄럽게 이어진 활주로만큼 신 청사는 쾌적함과 편리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 예전 베트남을 여행했던 누군가로부터 공항 시설이 열악하더란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이젠 다 옛말이 되어 버렸다. 신 청사가 문을 연 후 여행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구 청사는 국내선 전용으로 역할을 바꿨다. 최근 공항과 하노이 시내 간 연결된 도로까지 개선되면서 교통 환경은 물론 경제 성장을 위한 동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달리며 뉴스로만 접해 왔던 베트남 경제의 성장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천년 고도의 도시하노이Ha Noi 1010년 리Ly 왕조가 열었던 다이비엣Dai Viet 시대부터 지금까지.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97년 만에 주인을 찾은 나라 도시의 북동면을 따라 흐르는 홍강 안쪽에 하노이 시내가 자리한다. 하노이는 이런 지형에서 기인한 이름이다. 베트남어로 ‘하Ha’는 ‘강’을, ‘노이Noi’는 ‘안쪽’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둘을 합쳐 ‘하노이’, 즉 ‘강 안쪽에 세워진 도시’란 뜻을 담은 이름이 탄생했다. 오랜 역사와 문화적 요소들이 겹겹이 쌓인 옛 도시 위로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문명이 계속 덧칠되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베트남의 발전상에 놀라는 동안 시내를 가로질러 달리던 버스가 바딘Ba Dinh 광장에 멈춰 섰다. 바딘 광장은 1945년 9월2일 호치민 초대 주석이 독립 선언문을 읽고 베트남 민주 공화국 건립을 공표한 의미 깊은 장소다. 유럽이 식민지 개척에 한창 열을 올리던 때 베트남은 1858년부터 1945년까지 97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우리와 같은, 이들의 아픈 역사가 나도 모르는 새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일까. 식민지 시대 종결과 더불어 남북으로 갈려 민족간 이념 전쟁을 치른 역사도 다르지 않다. 베트남과의 첫 조우에서 왠지 모를 친숙함이 들었던 건 우연이 아니었나 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베트남은 20여 년에 걸친 이념 전쟁 끝에 1976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통일된 것이다. 베트남의 근현대사가 응축되어 있는 바딘 광장 주변으로 호치민 유적지가 있는 주석궁과 국회의사당, 호치민 묘와 박물관 등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샛노란 빛깔에 유럽식 건축 양식이 두드러지는 주석궁은 식민지 시절 프랑스 총독 관저로 지어졌다. 첫눈에 반할 만큼 아름다운 건축물이지만 그 이면에는 베트남인들의 고통과 눈물이 가득 배어 있다. 그렇기에 독립 이후 호치민 주석은 주석궁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하고 그 옆 전기수리공이 살던 집에 기거하며 검소하게 생활했다고 한다. 주석궁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은 집이지만 그곳이 더 빛나고 품격 있어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절대 권력자의 집무실과 침실이 어찌 그리 소박한지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겨지지가 않았다. 한평생 독신으로 살며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호치민은 오랜 세월에도 변함없이 전 국민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죽은 후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국민들의 추앙심이 워낙 높았던 탓에 사망(1969년) 후 그의 시신은 방부 처리되어 묘소 안 유리관에 안치됐다. 호치민 영묘 앞은 그에게 헌화하기 위한 사람들로 아침마다 긴 줄이 이어진다. 호치민이 살아 있다면 이 광경을 어떻게 바라볼까. 그런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그 줄에 서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영묘는 오전에만 개방되기 때문에 문 앞에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덕분에 하노이를 다시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생겨 버렸다. 하노이 여행의 필수 코스 하노이의 명물인 수상 인형극은 매 공연마다 전 좌석이 매진될 만큼 인기가 높다. 리 왕조 때부터 전해 내려온 수상 인형극은 독특하게도 무대가 물 위다. 즉석 연주에 맞춰 꼭두각시 인형들이 물 위를 자유롭게 누비며 전통적인 베트남의 생활 풍습과 환검 호수에 얽힌 전설을 들려준다. 베트남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인형들의 몸짓이 충분히 재미나다. 탕롱 수상 인형극 공연장Thanglong Water Puppet Theatre 57b Dinh Tien Hoang Str., Hanoi, Vietnam www.thanglongwaterpuppet.org 글·사진 Travie writer 정은주 에디터 고서령 기자 취재협조 비엣젯항공 www.vietjetair.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성공 위한 유망프랜차이즈 창업아이템 키포인트? 제품의 경쟁력!

    성공 위한 유망프랜차이즈 창업아이템 키포인트? 제품의 경쟁력!

    소비자들이 커피를 즐기고 하나의 문화로 받아드리게 되면서, 카페를 창업하고자 희망하는 창업자 수는 물론 커피전문점의 수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커피’라는 아이템은 현재 흔한 아이템으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되면서 그 경쟁력이 비교적 낮아진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페창업시장에 뛰어드는 잠재창업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창업자들은 폐업하기 쉬운 카페창업을 왜 그토록 고집하는 걸까? 카페창업은 소비자의 접근성이 뛰어나다. 현대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카페를 찾는다. 만남, 공부 등을 카페에서 해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만큼 마케팅을 잘만 하면 소비자의 유입을 활발하게 해 성공창업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유망 프랜차이즈 창업아이템이다. 또한 특별한 기술력을 요하지 않는 창업아이템 중 하나다. 창업자들이 카페창업을 희망하는 이유 중 하나로 운영의 편리함을 꼽는다. 바리스타 자격증 있는 매니저를 뽑으면 되고, 식재료는 업체로부터 납품 받으면 된다. 관리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기면 되며 점주는 전체적으로 매장과 매출 관리만 하면 된다. 하지만 카페 성공창업을 이루고자 하는 창업자라면, 유망프랜차이즈 창업아이템 중 반드시 따져 봐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제품의 경쟁력이다. 창업 전문가들은 커피가 흔해진 이 시점서 커피가 아닌 디저트나 과일 음료 등의 다른 메뉴에서 비롯된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용량 생과일 주스 브랜드 ‘A사’의 경우 흔한 커피전문점 사이에서 생과일을 갈아 만든 주스라는 특색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대표 메뉴로는 수박쥬스, 딸기바나나 쥬스, 초코바나나 쥬스 등이 있다. A사는 생과일 주스라는 제품 경쟁력도 돋보이지만, 철저하고 투명한 유통과정으로 인해 창업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필리핀, 미국 등 현지에서 재배한 A급 과일을 엄선해 수입한 뒤, 과일 신선도를 위한 체계적인 물류시스템을 거쳐 매장에 각각의 과일을 배송하고 있다. A사는 제품의 특색,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가맹점과 함께 동반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합리적인 가격과 과일의 신선함으로 소비자에게 사랑 받는 프랜차이즈 창업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 프랜차이즈 대표 컨설팅협회에서 투표한 결과 유망프랜차이즈 창업 아이템 1위로 뽑힌 바 있는 DESSERT39의 경우 세계 각지의 유명 디저트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단기간 높은 성공창업 가능성은 보인 소자본 창업 브랜드다. 이 브랜드는 대한민국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해외 디저트라는 특색을 경쟁력 삼아 소비자들의 유입을 이끌어내고 있다. 대표 메뉴로는 일본에서 대유행을 이끌면 현지인과 관광객을 매료시킨 오리지널 도쿄롤, 초코크로, 크로칸슈 등이 있다. 또한 본사가 구축한 탄탄한 인프라가 제품의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어 창업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 인프라는 바로 디저트 자체 생산 시스템이다. 본사 제과센터에서 직접 디저트를 연구하고 개발,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디저트의 퀄리티는 물론, 타 업체의 모방이 어려워 경쟁브랜드가 없는 것이 이 브랜드의 가장 큰 특장점이다. DESSERT39는 가맹사업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250여 개의 가맹계약이 이뤄졌으며, 가맹점 수익을 위한 상권보호와 서비스 질을 위해서 한 달에 10개 매장만 오픈하는 정책을 두고 있다. 이는 본사와 가맹점이 동등한 관계에서 상생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검찰, 조희팔 수사결과 오늘 공개…사망 발표 재확인할 듯

    희대의 유사수신 사기범 조희팔 생사에 대한 검찰의 결론이 28일 나온다. 대구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김주필)는 이날 오후 2시 조희팔 사건 재수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발표한다. 논란이 된 조희팔 생사에 결론도 내린다. 검찰이 경찰과 마찬가지로 조희팔이 죽었다는 쪽으로 결론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조희팔 측은 그가 2011년 12월 19일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 한 가라오케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해 왔다. 경찰도 2012년 5월 조희팔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당시 함께 있던 인물들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조씨 장례식 동영상 등을 근거로 그가 사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조씨 시신이나 DNA를 통해 사망 사실이 100% 확인되지 않은 데다 목격설도 끊이지 않아 논란이 됐다. 검찰은 조희팔 비호세력, 은닉 범죄수익금 행방, 사기 피해 규모 등도 밝힌다. 검찰과 경찰은 조희팔 사건과 관련해 지금까지 전·현직 검찰·경찰 공무원 8명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계좌추적 등으로 고철사업 투자금 760억 원을 포함해 부동산 투자금 등 모두 1천200억 원대의 조희팔 은닉자금 흐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대구지검은 2014년 7월 말 대구고검에서 조희팔 고철사업 투자금이 은닉자금인지를 다시 조사하라는 재기수사 명령을 받고 조희팔 사건 전면 재수사에 착수했다. 조희팔은 2004년 10월부터 2008년 10월 사이 의료기기 대여업 등으로 고수익을 낸다며 투자자 7만여 명을 상대로 5조715억원을 끌어모으는 등 유사수신 사기 행각을 벌였다. 조희팔은 경찰이 수사를 본격화하자 2008년 12월 밀항해 중국으로 달아났다. 연합뉴스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청계천 물길 끊긴 자리 시장이 아파트를 낳았네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청계천 물길 끊긴 자리 시장이 아파트를 낳았네

    # 건물에도 ‘호적’이 있다 사람에게 호적이 있다면 건물에는 건축물 관리대장이 있다. 호적에 양친 부모 이름이 나오는 것처럼 건축물 관리대장에는 건축주, 설계자, 감리자, 시공자 등의 이름을 적는 칸이 있다. 허가일, 착공일, 사용승인일 등 건물의 탄생 과정과 관련된 중요한 날짜뿐 아니라 주차장, 승강기, 심지어 건축물 에너지 소비 정보에 기타 인증 정보까지 모두 적게 되어 있다. 1992년 ‘건축물대장의기재및관리등에관한규칙’이 개정된 이후는 여기에 건축물 현황도면까지 첨부하게 되어 있다. 즉 이 문서만 보면 한 건물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항상 불완전하다. 제도는 제도일 뿐, 그 영향이 모든 건물에 다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건물의 경우 건축물 관리대장의 여기저기에 공백이 있는 경우가 흔하다. 기록만으로 보면 ‘아버지 어머니도 없는’ 건물이 부지기수다. 심지어 생일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으로 치면 천애고아다. 물론 난리를 많이 겪은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그러나 때로는 단순히 행정력이 못 미친 결과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효자아파트가 바로 그런 경우다. 1960년 말이나 1970년대 초의 건물일 것이라고 짐작은 했다. 그런데 관련 자료 어디에도 믿을 만한 건립 연대가 나와 있지 않았다. 심지어 건축물 관리대장은, 과장해서 말하자면, 채워진 칸보다 빈칸이 더 많아서 텅 빈 벌판 같았다. 호기심 있는 독자들을 위해 이런 경우에 취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을 제시한다. 바로 구가옥대장을 열람하는 것이다. 구가옥대장은 건축물 관리대장의 전신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현행 건축물 관리대장에 모두 기재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건축물 관리대장은 전산화되어 어디서나 쉽게 인터넷으로 열람할 수 있지만 구가옥대장은 그렇지 않다. 직접 해당 관청을 방문해서 열람신청을 해야 한다. 오래된 서류이므로 관청에서도 매우 신중을 기해서 다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관청 직원과 함께 오래되어 색이 바랜 서류를 하나하나 뒤지는 것은 매우 독특한 아날로그적 경험이다. 이렇게 해서 어렵게 알아낸 효자아파트, 즉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인동 자하문로변 ‘점포 및 아파트’ 집합건축물의 완공일은 1969년 11월 15일이다. 이 연재에서 얼마 전에 다뤘던 낙원빌딩(상가+아파트), 일부분만 남은 청계천변 삼일아파트, 완전히 사라져 윤동주 언덕에 자리를 내준 청운아파트 등과 동갑이다.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주상복합 건축으로 종종 거론되는 세운상가보다는 단 1년이 늦을 뿐이다. 2016년 현재 기준으로 40대 후반의 건물이다. # 백운동천과 자하문로 이와 맞물린 또 다른 하나의 중요한 기록이 있다. 바로 다름 아닌 효자아파트 앞길, 즉 자하문로에 대한 것이다. 지금의 자하문로는 폭이 25~30m에 달하고 왕복 4~6차선인 넓은 도로다. 하지만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우선 청운동에서 시작한 하천이 이 도로의 현재 서쪽 변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이른바 백운동천(白雲洞川)이다. 청계천의 본류이므로 지금도 공사 표지판 등에 ‘청계천 좌안상수’(左岸上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 물길과 지금의 자하문길 동측 사이에는 길게 연결된 수많은 필지들이 있었다. 백운동천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쯤에 복개되었다. 그리고 나란히 늘어선 여러 집들이 철거되면서 현재의 자하문로가 된 것이 1978년의 일이다. 효자아파트가 건립되고 9년 만의 일이다. 이 과정에서 효자아파트가 잘려 나갔을까? 마치 1979년 충정로가 확장되면서 충정아파트의 앞부분이 심하게 훼손되었듯이. 지도를 통해 전후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과 대한민국 시대인 1993년의 지도를 비교해 보면 현재의 자하문로는 길 양옆의 건물들을 잘라내면서 만들어진 도로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백운동천의 복개와 띠처럼 연속된 여러 필지의 멸실이 결과적으로 현재의 도로폭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효자아파트의 현재 모습을 봐도 별다른 변형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측면이 평활한 벽인데 반해서 전면에는 콘크리트 보와 기둥이 이루는 프레임이 돌출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으나, 이것은 조형 언어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 시장과 한 몸을 이룬 본격적인 상가아파트 효자아파트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본격적인 상가아파트라는 것이다. 심지어 바로 옆의 통인시장과 아예 한몸을 이루고 있다. 이 연재에서 다룰 예정인 홍제동의 원일아파트가 인왕시장과 한몸을 이루고 있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효자아파트와 통인시장은 어떤 관계일까. 간단히 정리하자면 통인시장이 효자아파트를 낳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인시장은 종종 ‘사대문 안의 유일한 지역형 전통 시장’으로 불린다. 이렇게만 들으면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을 것 같지만, 사실 그 기원은 일제 강점기다. 오늘날의 서촌 일대는 일본인들이 가장 빨리 정착한 곳이기도 했다. 통의동 일대의 동양척식회사 사택이 이미 경술국치 다음해인 1911년에 들어섰을 정도다. 이후 총독부와 총독 관저 등이 이 지역으로 옮겨오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통인시장은 결국 이들 식민 지배자와 그 가족을 위한 시설이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1941년 6월 ‘제2 공설시장’으로 개설되었다. 당시 단층의 시장 건물이 있던 자리가 바로 현재의 효자아파트다. 이렇게 시장에 기원을 두고 있는 탓에 효자아파트는 지상 5층 건물이지만 주거 부분은 3개 층에 불과하다. 1층과 2층, 그리고 지하층이 모두 상가다. 건물 전체로 보면 상가와 주거의 비중이 같은 것이다. 아마도 이 연재를 통틀어 세운상가를 제외하고는 가장 상가 비중이 높은 사례일 것이다. 게다가 이 상가는 모두 통인시장의 일부로서 기능한다. 특히 1층은 통인시장과 완벽하게 통합되어 있다. 이 연재에서 소개하는 오래된 아파트들의 공통점은 완공 당시의 인기가 대단했다는 것이다. 특히 연예인, 방송인 등 유명인들의 이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미 소개한 서소문아파트가 그렇고 앞으로 소개할 안산맨션이나 세운상가가 또한 그렇다. 효자아파트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멀지 않은 청와대의 직원들도 여기 거주했었다고 전한다. 통인시장 동쪽 입구 바로 오른쪽에 효자아파트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통인시장은 이전부터 생선회로 유명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금도 이 지하에 생선 가게가 있다. 계단실은 자하문로에 면한 건물의 코너 부분과 건물의 다른 쪽 끝인 통인시장 안쪽, 이렇게 두 군데가 있다. 특이하게도 지하 한쪽에는 광화문 검도장이, 2층에는 합기도보존연구회가 있어 자못 무(武)의 기상이 넘치는 건물이기도 하다. TV 프로그램 ‘비정상 회담’의 독일인 출연자 다니엘 린데만이 이 합기도장을 다니는 탓에 종종 거리에서 그를 목격하는 즐거움이 있기도 하다. 통인시장 안쪽 계단으로 내려가 보면 ‘통인시장 DIY 목공방 & 잡도리 쉼터’라는 공간이 있는데 60년대 말에 지어진 건물치고는 지하실의 층고가 상당히 여유롭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지하를 개발한 이유는 역시 시장과 인접한 건물로서 그 기능의 일부를 수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두 계단 모두 도로나 시장에서의 접근이 쉬워서 그냥 ‘쓱’ 들어가면 된다. 그리고 걸어 올라가면 바로 아파트다. 계단실마다 경비실, 혹은 관리사무실이 있지만 그나마 통인시장 안쪽은 사용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지금 같으면 상가와 주거의 동선을 철저하게 분리했을 것이다. 적어도 이 당시에는 주거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생각이 지금과 많이 달랐음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건물의 동남쪽 코너에 있는 자하문로 변 계단은 특이하게도 평면이 삼각형이다. 그래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피자 조각 같은 구성이 재미있다. 다만 목재 난간이 다소 낮아서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무서운 느낌이 든다. 물론 낙하물 방지를 위한 망이 중간에 설치되어 있다. 두 개의 계단실을 연결하는 복도가 건물 중앙을 가로지르며 이를 중심으로 크게 북향과 남향으로 나뉜다. 다만 자하문로 쪽에 일부 동향 가구가 있고 반대쪽에는 서향 가구도 있다. 코너에 있는 가구는 상당히 개방감이 좋을 것으로 짐작된다. 건물의 모든 방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3층의 경우 남향 가구의 출입구보다 북향 가구의 출입구가 더 높은데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건물의 북쪽 지역은 마침 인접한 건물들이 높지 않다. 게다가 인왕산과 북악산이 지척이라 경관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하지만 남쪽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2005년 설치된 통인시장 아케이드가 3층 일부를 가리고 인근에 건물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답답함을 일거에 날려 주는 곳이 있으니 바로 옥상이다. 이 일대에서는 5층인 효자아파트가 비교적 높은 건물에 속한다. 따라서 그 옥상에 오르면 그야말로 주변의 풍광이 감싸듯이 펼쳐진다. 서쪽을 보면 인왕산이요 고개를 돌리면 북악산이다. 게다가 주민들 간에 어떤 약속이 있는지 옥상이 매우 청결하게 유지되고 있다. 장독, 에어컨 실외기 이외에는 이렇다 할 물건들이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시원하게 탁 트인 널찍한 공간이 아파트 위에 있는 것이다. 무지개떡 건축 이론에 의하면 이런 옥상은 마땅히 생활공간의 일부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다만 도시형 상가아파트라는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면 거의 백지 같은 지금의 상황이 갖는 설득력도 있을 것이다. 하여간 이 옥상 덕분에 효자아파트는 아주 근사한 전망대를 거느린 건물이 되었다. 특히 해질 무렵 여기서 바라보는 서촌 일대의 풍경은 서울 구도심이 갖는 매력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효자아파트는 정동아파트, 회현아파트 등과 더불어 사대문 안에 아직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유서 깊은 아파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2012년에 ‘아트게이트’라는 이름으로 통인시장의 여러 입구를 설계했다. 그중 시장의 얼굴로서 가장 비중이 높은 동쪽 입구가 효자아파트와 바로 인접하고 있다. 한옥의 구조를 응용한 구조물로서 그해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을 받았다. 설계 당시에는 효자아파트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 못했으나 이번 연재를 준비하면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유서 깊은 장소를 대상으로 공공의 영역에서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던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 [오늘의 눈] 국보 2호를 아시나요?/김승훈 문화부 기자

    [오늘의 눈] 국보 2호를 아시나요?/김승훈 문화부 기자

    이달 초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았다. 내리쬐는 뙤약볕에 숨이 막혔다. 공원 안쪽, 하늘로 곧게 솟아오른 탑 하나가 유리관에 갇혀 있었다. 비좁은 유리관 속에서 열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수많은 부처, 보살상, 구름, 용, 사자, 모란, 연꽃 등 층층이 새겨진 유려하고 정교한 조각은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듯했고, 독특하고 이국적인 정취는 퇴색하고 있었다. 높이 12m에 달하는 위용이 오히려 안타까움을 더했다. 조선시대 석탑으론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세련된 석탑인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현주소다. 유리관은 서울시에서 1999년 말 비둘기 배설물로부터 탑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국보 1호는?”하고 물으면 즉각 숭례문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렇다면 국보 2호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국보 2호는 앞서 말한 원각사지 10층 석탑이다. 한 문화재 관계자는 “국보 2호의 보존·관리 상태를 보면 깜짝 놀란다”며 “유리관 속 열기로 탑 표면 상태는 말도 아니고 관리도 엉망”이라고 탄식했다. 국보 1호 교체 논란이 뜨겁다. 국보 1호를 숭례문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바꿔야 한다는 측과 그래서는 안 된다는 측의 설전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인 1996년 이래 20년째 거듭돼 왔다. 급기야 문화재제자리찾기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31일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 1호로 지정하자는 청원까지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같은 논쟁은 ‘문화재 지정 번호’로 인해 촉발된 면이 크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지정 번호는 관리와 행정 편의를 위해 부여된 것일 뿐 우열을 가리는 게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1호, 2호, 3호 같은 숫자는 곧 문화재 서열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사람들도 중요 순위로 받아들여 1호만 기억한다. 예전 ‘1등은 기억하지만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광고 문구처럼 1호는 알지만 2호는 관심조차 없다. 한 문화재 관계자는 “국보 1호 논란만 뜨겁지 국보 2호가 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관계자는 “국보 1호를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바꾸면 1위에 집착하는 우리나라 정서상 숭례문은 현재의 국보 2호와 같은 처지가 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두 문화재 지정 번호가 초래한 폐단을 꼬집은 것이다. 현재 문화재 지정 번호를 사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북한뿐이다. 국보 1호 교체 논란을 종식하기 위해선 지정 번호를 폐지해야 한다. 국보 숭례문, 국보 경천사지 10층 석탑 같은 식으로 표기해야 한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서 번호가 필요하다면 문화재청 데이터베이스에만 기록해 두면 된다. 국보는 국보다. 모든 국보는 소중히 보존하고 관리해 후세에 물려줘야 한다는 뜻이다. 일각에선 지정번호를 폐지하면 간판 교체 등 경제적 비용이 초래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문화재 관계자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방안으로 추진됐던 가변형 임시 물막이의 투명 물막이판 실험에 사용된 28억원을 고려하면 비용적인 측면은 크게 걱정할 부분이 안 된다”고 했다.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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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급(이사관) 전보△서울특별시선관위 사무처장 문병길△대구광역시선관위 사무처장 박태섭◇3급(부이사관) 승진△중앙선관위 홍보과장 김재원△서울특별시선관위 관리과장 김철△부산광역시선관위 지도과장 탁덕균△대구광역시선관위 관리과장 윤재현△전라북도선관위 지도과장 마상호◇3급(부이사관) 전보△인천광역시선관위 사무처장 연광흠△경기도선관위 사무처장 손광윤△강원도선관위 사무처장 김영철△충청북도선관위 사무처장 박찬진△경상북도선관위 사무처장 최호길△서울특별시선관위 지도과장 신민◇4급(서기관) 승진△중앙선관위 감사과 김오택△중앙선관위 정당과 차재호△중앙선관위 선거1과 홍명조△중앙선관위 정보센터 정승곤△남구(부산)선관위 사무국장 이환규△사상구선관위 사무국장 이영이△중구(울산)선관위 사무국장 이광인△남구(울산)선관위 사무국장 김관중△동구(울산)선관위 사무국장 김이열△울주군선관위 사무국장 방성수△청주시흥덕구선관위 사무국장 엽정남△음성군선관위 사무국장 심재권△홍성군선관위 사무국장 김종부△군산시선관위 사무국장 고형진△목포시선관위 사무국장 이해영△장흥군선관위 사무국장 김병삼△포항시북구선관위 사무국장 조대현△문경시선관위 사무과장 권기종△창원시진해구선관위 사무국장 문종주△통영시선관위 사무국장 신대철△제주특별자치도선관위 행정과장 김성일△A-WEB(세계선거기관협의회) 사무처 파견 문남의◇4급(서기관) 전보△중앙선관위 선거1과장 김진묵△중앙선관위 재외선거과장 원준희△선거연수원 시민교육부장 이종수△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사무국장 이주현△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사무국장 이종호 (이상 7월 1일자) ■산업통상자원부 ◇과장급 전보△감사담당관 전제구△세계무역기구과장 박성진△자유무역협정무역규범과장 고상미◇서기관 승진△기획재정담당관실 송충섭△정보보호담당관실 김용완△무역정책과 김홍찬△해외투자과 김민혜△기후변화산업환경과 김철종△기계로봇과 주원석△자동차항공과 이상은△전자전기과 김헌태△창의산업정책과 우성훈△유통물류과 정홍곤△지역경제총괄과 김상곤△산업기술개발과 최정식△구주통상과 박다정△자유무역협정정책기획과 이정주△통상법무과 조은정△에너지자원정책과 임채욱△자원개발전략과 윤선영△석유산업과 김양지△전력산업과 조영제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위기소통담당관 박기수 ■고용노동부 ◇고위공무원 전보△국제협력관 정민오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장급 전보△기획조정관 양진영△식품안전정책국장 윤형주 ■코트라 △아비장무역관장 신정수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춘천대첩을 아시나요?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춘천대첩을 아시나요?

    공식 집계만 50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터전을 잡기 시작한 이래 가장 치열했고 가장 처참했던 전쟁이었다. 미·소 냉전 구도 속에서 김일성의 야욕과 이승만의 오판이 불러온 이 전쟁은 삼천리금수강산을 잿더미로 만들고 막대한 사상자를 냈지만, 66년이 흐른 오늘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북한은 개전 초기 있었던 어떤 한 사건만 없었다면 계획대로 수도권 일대에서 국군의 주력부대를 전멸시키고 파죽지세로 남하해서 UN군이 개입하기 전에 부산을 점령해 전쟁을 끝낼 수도 있었다. 그만큼 전쟁 발발 당시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는 대단히 컸고, 서부전선에서 국군 방어선의 붕괴 속도는 김일성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 그러나 북한군은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뒤 서울에 무려 3일이나 틀어 박혀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이 3일이라는 시간 동안 국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후퇴하여 방어선을 다시 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북한은 부산 점령에 실패하고 다 이겨놓은 전쟁을 망치고 말았다. 그렇다면 개전 초기 북한군의 발목을 잡았던 그 사건이란 무엇일까? 준비된 北, 방심한 南 전쟁 발발 하루 전인 6월 24일 북한군 전 부대에 하달된 ‘조선인민군 전투명령 제1호’에는 북한의 남침 작전 계획이 소상히 기재되어 있는데, 이 작전의 요지는 ‘남조선 괴뢰군’을 포위해서 섬멸한다는 것이었다. 서부전선을 맡은 제1군단이 개성-동두천-포천 일대에서 38선을 돌파해 공격을 개시하면, 중부전선의 제2군단이 춘천을 통해 밀고 내려와 그대로 이천-용인-수원 일대까지 진출해 제1군단에 쫓겨 후퇴하는 ‘남조선 괴뢰군’을 포위해 섬멸시키고 그 이후 사실상 무주공산이 되는 남한 전역을 신속하게 점령해서 일찌감치 전쟁을 끝내겠다는 것이 김일성의 구상이었다. 이 작전은 강력한 화력과 우수한 기동력이 생명이었는데, 김일성은 이를 위해 소련에 대량의 화포와 전차, 그리고 전투기를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고, 스탈린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소련은 전쟁 직전까지 북한에 대량의 무기를 제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최고의 걸작전차라 불렸던 T-34/85 전차 242대와 YAK-9 전투기 200여 대, 각종 화포 1,100문 등이 그것이었다. 당시 북한군은 너무도 막강했다. 당시 북한군에는 중국 공산당 팔로군에 소속되어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고 돌아온 병력도 많았고, 해방 직후 소련군에게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무기와 장비의 수준도 훌륭했다. 반면 우리 국군은 너무도 보잘 것 없었다. 실전 경험이 있는 장병도 드물었고, 체계적인 훈련도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변변한 무기도 없었다. 당시 미국은 북진 통일을 부르짖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반감과 불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남한에게 제대로 된 무기 제공을 상당히 꺼렸다.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242대의 전차와 1,100문이 넘는 화포를 제공 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수 만대의 전차가 잉여 물자로 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단 1대의 전차도 주지 않았다. 수백만정의 소총과 권총 재고가 있었음에도 이를 남한에 제공하는 것을 꺼려했다. 이 때문에 M1 소총 등 미국제 장비로 무장한 부대는 전방 일부 부대에 불과했고, 후방 부대들은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버리고 간 총기와 탄약, 장비들을 쓰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을 정도로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는 극심했다. 사실 소련의 대규모 원조와 북한의 전쟁 준비 사실을 우리 정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북한의 기습 남침에 어느 정도 대응할 기회는 있었다. 1949년 육군본부 정보국은 북한이 1950년 봄 대대적인 남침 전쟁을 기획하고 있다는 정보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고, 당시 소령 계급을 달고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장을 맡고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북한군이 38선 일대에 집결을 완료했고, 남침이 임박했으니 대비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전쟁 하루 전날 작성해 군 수뇌부에 보고하는 등 북한군의 남침 준비 사실을 소규모 병력 이동까지 세세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 수뇌부는 전쟁 발발 하루 전 비상경계를 해제했고, 사단장급 지휘관들을 육군본부 주최 파티에 초대하는가 하면, 전체 병력의 반 이상을 농번기 대민지원에 내보내는 등 스스로 사실상 무장해제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이렇듯 6.25 전쟁은 시작 전부터 북한이 이길 수밖에 없는 ‘다 이겨놓은’ 전쟁이었다. 청성부대의 춘천대첩 6월 25일 새벽 4시, 38선을 넘어 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은 김일성이 하달한 ‘작전명령 제1호’에 따라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북한군은 대량의 화포와 강력한 T-34 전차를 앞세워 남한의 방어선을 유린했고, 수도권 북부 지역을 방어하던 우리 국군 부대들은 처절하리만치 온 힘을 다해 저항했으나,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전선은 무너졌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우리 국군 부대들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며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한강 이남으로 패퇴했다. 이때 만약 ‘작전명령 제1호’에 따라 북한군 제1군단이 한강을 건너 남진을 계속하고 중부전선에서 춘천을 관통한 북한군 제2군단이 이천-용인-수원 방면을 통해 서울 남쪽에 나타났다면 우리 국군은 완전히 포위되어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 남쪽에 북한군 제2군단은 나타나지 않았고, 일찌감치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제1군단은 작전계획에 따라 제2군단을 기다리느라 한강 이북에서 무려 3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이 3일 동안 우리 국군은 패퇴한 부대들을 모아 전력을 재정비한 뒤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고, 결국 이로 인해 북한의 속전속결 전략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북한군 제2군단이 포위망을 만들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 춘천 일대를 방어하고 있던 국군 제6사단 청성부대에게 사실상 패배나 다름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주춤하며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중부전선 철원 일대를 철통방어하고 있는 청성부대는 당시 국군 모든 부대 가운데 가장 전투준비가 잘 되어 있는 부대였다. 특히 전쟁 발발 2주 전 사단장으로 부임한 김종오 대령은 대단히 유능한 명장(名將)이었고, 예하 7연대장을 맡고 있었던 임부택 중령 역시 매우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특히 임부택 중령은 전쟁 발발 1년 전부터 38선 정면의 적 2군단이 남침할 경우 춘천-가평 일대를 주요 공격 루트로 활용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 일대의 주요 고지와 능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는데 주력했다. 임 중령은 육군본부에 방어진지 구축에 필요한 예산과 자재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춘천 시민들과 학생들을 설득해 이들의 도움으로 전쟁 발발 1개월 전에 완벽한 방어진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새로 부임한 김종오 대령 역시 전쟁이 임박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단의 모든 포병전력을 북한군이 주력 침투로로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춘천 일대에 배치하는 한편, 이 일대에서 북한군의 파상 공세를 상정한 방어 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이러한 훈련이 실시되던 6월 초·중순은 농번기였고, 육군본부에서도 장병들의 외출·외박을 지시하고 있었으나 김 대령은 사단장 직권으로 외출·외박을 취소하고 대부분의 사단 병력을 영내에 대기시키며 임박한 전쟁에 대비했다. 6월 25일 새벽, 북한군 제2군단은 압도적인 병력 우위를 앞세워 춘천 일대로 밀고 들어왔다. 북한군은 큰 무리 없이 춘천을 점령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첫 전투였던 춘천-홍천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대패했다. 당시 춘천으로 밀고 내려온 제2군단은 제2사단, 제12사단, 제15사단 등 3개의 보병사단과 T-34/85 전차와 SU-76 대전차자주포 등으로 무장한 제603모터사이클연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병력은 청성부대의 3배가 훨씬 넘었고, 전차는 물론 강력한 포병의 지원까지 받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군은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2군단의 선봉으로 투입된 제2사단은 SU-76 대전차자주포를 앞세워 임부택 중령이 이끄는 제7연대 정면으로 파상 공세를 가했다. 그러나 7연대는 청성부대 예하 부대 중에서도 가장 전투준비가 잘 되어 있는 부대였고, 청성부대는 7연대 작전지역에 사단의 모든 포병화력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전투준비가 되어 있기는 춘천 시민들과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들과 학생들은 빗발치는 적 포탄과 총탄을 뚫고 청성부대 장병들에게 포탄과 식량을 날라다 주었다. 민·군이 합심하여 필사적으로 저항한 결과, 기세 좋게 쳐들어온 북한군 제2사단은 7연대를 상대로 졸전을 거듭하며 하루 만에 전체 전투력의 40%를 상실하고 패퇴하며 사실상 부대가 사라졌다. 당황한 북한군 제2군단장 김광협 중장은 인제 방면으로 진격해 들어가던 제12사단을 춘천에 투입했다. 북한군 제12사단 전면에는 함병선 대령이 이끄는 제2연대가 있었는데, 김종오 사단장은 제12사단 병력이 움직이자 민병권 중령의 제19연대를 투입, 제2연대와 함께 북한군 제12사단에 맞서게 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제2연대를 집중 공격했지만, 제2연대는 압도적인 우위의 적과 맞서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북한군에 역습을 가하며 치고 빠지는 공격을 반복해 북한군의 진을 빼놓았다. 춘천 일대에서 벌어진 3일간의 전투에서 청성부대는 407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북한군 제2군단은 6,900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당초 제2군단은 일찌감치 춘천을 돌파해 이천-용인-수원을 거쳐 서울 이남에서 국군 주력부대를 포위해 궤멸시키는 것이 핵심 임무였지만, 춘천에서 3일간 발이 묶인 것은 물론, 주력부대가 사실상 궤멸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제2군단의 패전 소식에 김일성은 격분했다. 김일성은 즉각 제2군단장, 제2사단장, 제12사단장을 해임 및 숙청하고, 전투력을 집중해 춘천을 점령할 것을 지시했지만, 춘천을 방어하던 청성부대를 후퇴시킨 것은 북한군이 아니라 육군본부였다. 육군본부는 서울 함락 직후 김종오 사단장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모든 부대가 후퇴한 마당에 청성부대 혼자 고립되어 춘천 일대에 남아 있으면 적에게 포위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북한군 제2군단은 후퇴하는 청성부대를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청성부대는 전력을 온전히 보존하며 피난민들까지 보호하면서 안전하게 후방으로 후퇴했다. 흔히들 6.25 전쟁의 흐름을 뒤바꾼 전투는 맥아더 장군과 UN군의 인천상륙작전이었다고들 평가한다. 지금도 9월이 되면 곳곳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열리며, 작전을 지휘했던 맥아더 장군을 영웅으로 기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개전 초기 압도적인 전투력 열세 속에서도 청성부대가 거둔 ‘춘천대첩’이 없었다면 국군은 궤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고 UN군이 증원 오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 인천상륙작전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개전 초기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구한 이 ‘춘천대첩’에 대해 이제는 재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승부조작·불법 마주 ‘비리 경마장’

    2011년 7월 23일 제주경마 소속 기수 A(30)씨는 제주 경마장에서 열린 경주에 나섰다. 그가 탄 말은 인기 순위 1위였지만 실제 경주에서는 6위에 그쳤다. A씨의 기술이 부족해서도, 말의 상태가 안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A씨가 경주 도중 말의 고삐를 당겨 말이 제대로 달릴 수 없도록 조작했기 때문이다. 조직폭력배 출신 브로커 등이 주도한 승부조작에 가담한 A씨는 대가로 1200만원을 챙겼다. 제주와 과천, 부산 등 전국 경마장에서 기수가 승부를 조작하거나 조교사가 불법으로 소유한 말을 경주에 내보내는 등 ‘경마 비리’가 여전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이용일)는 승부조작 등을 통해 부당이득을 취한 전·현직 기수 8명 등 총 15명을 마사회법 위반 등으로 구속 기소하고 18명은 불구속 기소, 6명은 기소중지했다고 22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불구속 기소된 A씨는 2010~2011년 총 5200만원을 받고 11차례에 걸쳐 승부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다른 기수 3명도 150만~4900만원을 받고 경기 결과를 조작했다. 이들은 동료 기수 B(34)씨의 제안으로 승부조작에 나섰다. B씨는 사설경마장 운영자 C(54)씨, 폭력조직 부두목 브로커 D(46)씨의 제안으로 동료들을 조작에 끌어들이고 자신도 조작에 가담했다. 이들이 조작한 경주는 총 18건으로 조사됐다. 한 경주당 매출액은 20억~30억원대에 이른다. 과천경마장 소속 조교사 E(48)씨는 모자업체 대표를 대리마주로 등록해 2014년부터 상금 약 3400만원을 챙기고, 자신이 관리하는 경주마 30필의 상태 등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마사회법상 조교사는 마주로 등록할 수 없다. E씨의 대리마주는 E씨가 제공한 정보로 사설경마에 참여했다. 검찰은 사설경마장 운영 업자 등 관련자 9명도 구속 기소하고, 3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경마 비리의 원인으로 지적됐던 불법 마주와 대리마주 등의 존재를 밝혀 형사처벌한 사례”라며 “이들이 거둔 범죄 수익은 철저히 환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위례신도시 등 4곳에 정부-지자체 합동투기단속반 투입

     주택 투기거래가 많은 곳으로 지적되고 있는 위례 신도시 등 4곳에 21일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 합동 투기단속반이 투입됐다. 중점 단속 대상은 불법전매, 청약통장 거래, 다운계약서 작성, 떴다방 영업 등이다. 국토부는 청약시장에서 불법적인 투기수요 증가를 억제하고 실수요자의 청약기회가 박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택시장 교란행위를 집중 단속한다고 이날 밝혔다. 4개 지역에 투입된 단속반은 국토부와 지자체 공무원 50명 정도로 구성됐다.  전매제한 기간은 공공아파트는 1년, 민간 아파트는 수도권에 한해 6개월을 적용하고 있다. 청약통장은 거래가 금지됐고, 임시 사무실 등에서 불법으로 중개하는 행위도 청약시장을 교란하는 불법행위다. 집중점검 결과 불법행위가 적발되면 수사기관 고발조치, 등록취소 및 업무정지 등 관련법령에 따른 벌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최근 서울 및 수도권 신도시 일부 지역과 지방 대도시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다운계약서 작성을 근절시키기 위해 현재 월 1회 실시되고 있는 모니터링을 매일 실시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이번 집중점검 이후 대상지역 등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 단속기한을 정하지 않고 현장 상황에 맞춰 결정하기로 했다. 분양권 프리미엄이 높게 형성되고 거래가 많은 지역을 ‘실거래신고 모니터링 강화지역’으로 선정하고 매일 모니터링을 실시한 다음 허위신고 의심사례는 지자체에 즉시 통보해 정밀조사를 벌인다. 지자체에 매월 통보하는 정밀조사 대상 분양권 거래도 한 달 100∼200건에서 500∼700건으로 크게 늘릴 계획이다.  박선호 주택토지실장은 “이번 실태점검은 주택시장 불법행위 실태를 파악해 필요한 추가 조치를 하기 위한 일차적인 것”이라며 “분양권 불법전매 등에 관한 신고포상제를 활성화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왜? 그래서?… 자소서, 나만의 경험을 정리하라

    왜? 그래서?… 자소서, 나만의 경험을 정리하라

    대입 수시모집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함께 제출하는 자기소개서(자소서)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교사가 작성하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와 달리 자소서는 지원자가 직접 작성하기 때문에 자신의 개성과 희망 전공에 대한 열정 등을 보여줄 수 있다. 교사들은 학생부가 미처 보여주지 못하는 고교 활동에 대해 동기와 과정, 성과를 자소서에 잘 드러나도록 서술하라고 조언했다. 이를 통해 다른 경쟁자들과 차별화되는 점을 강조하란 뜻이다.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이 지난 15일 개최한 설명회에서 발표를 한 현직 교사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자소서 작성 방법을 알아봤다. 김진훈 숭의여고 교사는 “자소서는 자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학의 평가자에게 자신을 소개해 설득시키고 이해시키는 글”이라고 정의했다. 유능한 입학사정관이라도 자소서에 언급조차 안 된 내용을 가지고 지원자를 평가할 수는 없다. 지원자의 특징, 장단점, 잠재력, 열정, 발전가능성, 학업 능력을 자소서 안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김 교사는 자소서 쓰는 일을 ‘구슬을 꿰어 보배를 만드는 작업’에 비유했다. 자신이 한 의미 있는 경험을 구슬이라 하면, 이를 꿰어내는 접착제는 바로 ‘왜?’, ‘그래서?’라는 질문이다. 김 교사는 이를 위해 우선 고등학교 기간을 돌이켜 보며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했다. 자신이 그동안 열정을 쏟아 왔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우선 정리해 보란 뜻이다. 또 자소서를 쓸 때는 단순 나열이 아닌, 활동 과정에서 느낀 점과 자신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 많은 학생이 학생부에 기록된 내용을 자소서에 그대로 옮겨 적는다. 특히 학생부에 있는 수상경력을 대회명, 수상 일시, 수상 등급 정도로 적는 일도 부지기수다. 만약 비슷한 수상 실적을 가진 학생이 동시에 지원했다면 차별점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특별히 노력한 과정, 혹은 어떻게 그 대회를 준비하며 공부해 왔는지, 그리고 그런 경험이 어째서 자신에게 의미가 있었는지를 서술해야 한다. 대학에서는 학생부의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는 지원자의 숨은 특성, 자질, 노력 등을 자소서를 통해 확인하고 싶어 한다. 막연한 내용을 기술하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쓰도록 한다. 예를 들어 교내 임원으로 참여했던 일이나 동아리 활동 등이 중요한 경험이라는 것은 모두 공감하지만 단순한 경력을 적어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활동을 하게 된 계기나 동기, 이를 통해 나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도록 하자. 예컨대 수학경시반 활동을 했다고 하자. “학교에서 수학경시반 활동을 했습니다. 교내 수학 경시대회에서 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라는 기술이 나을까. 아니면 “수학 과목이 좋아 2학년 때부터 친구들 6명이 수학경시반을 만들어 활동했습니다. 3학년 때는 부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주제를 정해 매주 토요일 오후에 모여서 서로 토론도 하고 문제를 풀기도 했습니다. 수학경시반 활동은 문제 풀이보다는 수학의 원리와 기본 개념을 스스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고, 이런 노력이 교내 수학 경시대회 은상으로 이어졌습니다”라는 기술이 나을까. 김용택 광영고 교사는 자소서를 작성할 때 학생부와 교사 추천서가 서로 상호 보완하도록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자소서에는 교내 영어경시대회, 사회경시대회에서 수상했다고 적혀 있는데, 학생부 내신 성적이 영어 3등급, 사회 4등급이면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교사 추천서에도 이와 상관없는 내용만 적혀 있으면, 자신에게는 값진 경험이었다고 주장해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자소서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학생부와 추천서에도 이런 내용이 함께 드러나야 더 빛을 발한다는 뜻이다. 김 교사는 이와 관련해 자소서를 작성할 때 ▲학생부 평가요소 추출 ▲추출한 자료를 한 장에 모으기 ▲우수한 활동에 대해 개요 짜기 ▲개요 짜기를 완성해 ‘자소서 작성의 4단계 방법’을 제안했다. 기존 자소서는 대학들이 각기 다양한 질문을 요구하고 분량도 제각각이었지만, 최근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공통 양식에 따라 대부분 대학이 3개 공통문항을 사용하고, 추가로 1개 정도 대학별 자율문항을 활용하는 추세다. 공통문항은 ▲고교 재학 기간에 학업에 기울인 노력과 학습 경험 ▲자신이 의미를 두고 노력했던 교내 활동(학교장의 허락을 받은 교외 활동 포함) ▲학교 생활 중 배려·나눔·협력·갈등 관리 등을 실천한 사례와 과정 등이다. 김 교사는 대학별 자율문항에 특히 주목해서 자소서를 쓰라고 강조했다. 대학이 자율문항으로 내는 것은 대학이 그만큼 집중해서 평가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대학별 자율문항은 주로 지원 동기나 졸업 후 진로계획이 담긴다”며 “이 문항에 대한 자소서의 답변이 성패를 가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상하 한성과학고 교사는 학과에 지원하는 동기를 잘 드러내고 자소서 전체의 ‘스토리’가 지원 학과와 연관되도록 구성하라고 조언했다. 여러 학과 가운데 왜 해당 학과에 지원하는지가 잘 드러나야 설득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주 교사는 또 “자소서에 나타난 지원 동기가 일관적으로 설득력이 있는가, 전공에 대한 열정이 있는가, 인터넷 검색 결과를 그대로 인용하지는 않았는가, 글 전체의 느낌이 건방지거나 자랑하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가 등을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소서 완성 뒤 컨설팅을 받는 일도 중요하다. 교육부가 만든 ‘꿀맛닷컴’(kkulmat.com)에서는 현직 교사들이 자소서를 무료로 컨설팅해 주고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사설] 與 중진·원로 뒷방서 나와 수습 힘써야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탈당파들의 복당 승인 과정을 둘러싼 새누리당 내홍 사태가 어제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과 정진석 원내대표의 만남을 계기로 일단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김 위원장이 정 원내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여 칩거 사흘 만인 20일 당무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권성동 사무총장은 교체하기로 했다. 민생 등 산적한 현안을 제쳐 둔 채 집안싸움에만 골몰해 국민을 크게 실망시킨 새누리당은 하루속히 혼돈에서 벗어나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여당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친박계와 비박계 모두 자숙·자중해야만 한다. 총선 참패 이후에도 계속되는 계파 갈등은 새누리당에 내재된 위기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 준다. 친박계와 비박계 모두 내심 “결국 갈라설 것”이라는 극단적 결심을 굳히지 않고서야 이렇듯 사생결단 싸우겠는가. 김 위원장은 어제 정 원내대표를 만나 작심한 듯 새누리당의 실상을 비판했다. 애당심은커녕 동지애도 없고, 신뢰·윤리·기강조차 무너져 내린 엉망진창 상태라는 것이다.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갈라서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뜻 아니고 무엇인가. 당의 혁신을 위해 외부에서 모셔 온 김 위원장의 진단을 내부 구성원들은 뼈아프게 반성해야만 한다. 이번 사태가 진정된다 해도 계파 정치를 청산하지 않는 한 새누리당 위기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동지애도 없는 상황에서 언제라도 계파 갈등은 재연될 수 있다. 특히 당 대표를 뽑는 8월 전당대회는 ‘예고된 전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자칫하다가는 진짜 당이 쪼개지는 파국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진즉 20대 국회가 개원했지만 진흙탕 집안싸움에만 매몰돼 국정을 팽개치고 있는 여당에 국민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당내 화합과 혁신도 못 하면서 어떻게 국민 통합과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단 말인가. 새누리당에는 복당 의원 2명을 제외하고도 4선 이상 중진 의원이 19명이나 된다. 한때 지도부를 맡았던 원로들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번 사태 과정에서 이들 중진과 원로들의 중재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소장 강경파들의 격한 전투적 언어만 난무했다. 중진들은 당내 세력 판도의 주판알을 튕기며 뒷방에 숨었고, 원로들은 당내 역학 구도에서 뒷전으로 밀려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래선 안 된다. 중진과 원로, 특히 계파를 이끄는 최경환·김무성 의원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당을 수습해야 한다. 언제까지 국민이 집권 여당의 지겨운 집안싸움을 지켜봐야 한단 말인가.
  • [주말 하이라이트]

    ■오!마이 베이비(SBS 토요일 오후 4시 50분) 정태우의 아들 하린이가 깜찍한 꼬마 기수로 변신했다. 사극 전문 배우 정태우네 가족이 승마장으로 떠났다. 평소 사극 드라마에서 수준급의 말 타는 실력을 보인 정태우가 실제로 그렇게 말을 잘 타는지 궁금해하는 가족들에게 직접 말 타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승마장에 간 것. 둘째 아들 하린이는 난생처음 만난 당나귀와 금방 교감하기 시작했다. ‘스캔 베이비’답게 처음엔 아빠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당나귀를 쓰다듬고 먹이를 줬다. 형 하준이가 멋지게 당나귀 타기 시범을 보이자 또 유심히 스캔하던 하린이는 형과 함께 겁 없이 당나귀 타기에 도전했다.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토요일 오전 9시 40분) 설원이 만들어 낸 거대한 성벽, 일본의 알프스라 불리는 다테야마. 만년설로 뒤덮인 그곳에서 지상의 계절을 초월하는 자연의 힘을 느껴 보자. 한여름에 만나는 설국, 도야마로 떠나는 여정을 소개한다.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MBC 일요일 오전 8시) 1997년 그룹 ‘더더’의 보컬로 데뷔해 수많은 히트곡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가수 박혜경. 그녀가 중국에서 플로리스트로 제2의 인생을 살아온 소식을 전했는데…. 한국으로 돌아와 지인이 빌려준 작은 스튜디오에 자리잡은 박혜경. 그녀의 일과는 이른 새벽 꽃시장을 찾으며 시작된다. 플로리스트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박혜경의 일상을 만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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