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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중 작가회의에서 만난 문학적 동지 장웨이·이현수

    한·중 작가회의에서 만난 문학적 동지 장웨이·이현수

    “이 선생 작품 번역 원고 출력해서 오늘 갖고 왔는데, 참 면밀하고 섬세하게 쓰여졌어요. 담담하고 애잔한 느낌이 좋았어요. 그런데 문체가 약간 밋밋하더라고요.”(소설가 장웨이) “어, 그렇게 솔직히 말씀하시다니…(웃음). 제 작품이 중국에 잘 번역, 소개될 수 있도록 늘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저랑 장 선생은 서로 메일 주고받으며 작품 읽어주고 평가했죠.”(소설가 이현수) 한국의 소설가 이현수(52)가 중국의 소설가 장웨이(張煒·55·산둥성작가협회 주석)와 반갑게 손을 마주잡았다. 꼬박 4년 만이다. 요란스레 손을 흔들거나 껴안지 않았다. 목소리를 높여서 부러 반가운 척하지도 않았다. 그저 낮은 목소리의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서로 부끄러운 듯 애써 눈빛을 피했지만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현수는 “5년 전 한·중작가회의 하기 전에 번역됐던 장웨이 선생의 작품을 감명깊게 읽었는데, 실제로 만나 보니 더욱 반갑더라고요.”라면서 인연의 묵은 기억을 끄집어냈다. 장웨이의 대표작품 중 하나인 장편소설 ‘구촨’(古船·국내 번역본 제목 ‘새벽강은 아침을 기다린다’) 얘기였다. ‘구촨’은 중국 평론가들이 뽑은 ‘100년 동안의 100편 소설’에 뽑혔고, 세계 여러 나라에 번역 소개됐다. 장웨이는 “사실 그 작품이 한국에 번역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저와는 아무 얘기도 없이 번역된 불법 해적판이었거든요.”라고 답했다. 그는 “사정이야 어쨌든 부랴부랴 번역본 내용을 확인해 봤어요. 그런데 번역 과정에서 많이 삭제되거나 문단을 통째로 바꾸는 등 문제가 많았고, 번역 자체가 참신하지 않았어요.”라고 덧붙였다. 얼굴 붉혀야 할 민감한 얘기를 아무 일 아니란 듯 풀어냈다. 다행히도 올해 안에 문학과지성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의 하나로 ‘구추안’이 완역돼 나오는 덕분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이현수의 도움이 컸다. 게다가 장웨이의 산문집도 국내에서 추가로 번역 출간된다. 장웨이는 제나라 문화 얘기는 물론 한국에 대한 얘기도 흥미롭게 소개된다고 살짝 언급했다. 1991년 충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현수는 최근 중국 내 한국드라마 중 시청률 1위를 놓지 않고 있는 ‘신기생전’의 원작자다. 한류의 또 다른 주역인 셈이다. 그 역시 장웨이의 도움을 받아 소설집 ‘토란’을 중국에 번역 출간했다. 조만간 또 번역 소개되는 단편소설 ‘장미나무 식기장’에 대한 장웨이의 관심은 이현수 못지 않게 지대하다. 둘은 2007년 처음으로 열린 ‘한·중 작가회의’에서 만나 서로를 문학적 벗으로 삼았다. 굳이 얼굴 마주하지 않아도, 남녀의 차이도, 언어의 불편함도 문인의 사귐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4년 동안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작품 보여주고, 양쪽 문단과 독자들에게 소개될 수 있도록 발벗고 애썼다. 이메일만으로 풀 수 없었던, 정이 뚝뚝 묻어나는 얘기는 계속됐다. 이현수가 주로 묻고, 장웨이는 대답하는 식이었다. 비슷한 50대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1975년 시인으로 등단하고, 1980년부터 소설을 써온 장웨이가 한참 선배인 셈이다. 이현수가 “그런데 방언을 작품에 쓰는 경우가 있는 것 같은데 즐겨 쓰시는지, 혹시 다른 지역 독자들에게 거부감 같은 것은 없는지 궁금하네요.”라고 물었다. 장웨이는 “그때그때 다르죠. 예컨대 ‘구촨’은 방언을 거의 쓰지 않았어요. 대신 ‘축행과 낭만’에서는 방언을 많이 썼죠. 독특하고 미묘한 맛을 품은 방언을 소설 속에 쓰는 것은 작가의 또 다른 번역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방언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 있고,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죠.”라고 대답했다. 이현수는 “작품 창작 과정에서 고민스러운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라고 다시 물었다. 21년 차 소설가가 던진 겸손하면서도 근원적인 질문이다. 장웨이는 “50대가 되면서 사실 마음이 급해지는 것을 느껴요. 문학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반성해야 할 것들을 절감하고, 긴박하다는 느낌도 받지요. 이제부터 다시 새로운 문학세계를 개척하려 하죠.”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일반 단행본 39권 분량의 대하장편소설 ‘당신이 고원에 있다’를 탈고했다. 무려 22년 동안 진행해 왔던 대역사(大役事)를 마무리했기에 ‘제2의 문학인생’에 대한 희망을 가꿔올 수 있는 터다. 5년 차로 접어드는 한·중 작가들의 만남이 맺은, 작지만 소중한 결실이다. 문학이 보여준 언어의 차이와 국경을 무색하게 만드는 또 다른 힘이기도 하다. 시안(중국)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속죄양/주병철 논설위원

    속죄양(scapegoat)은 고대 유대에서 종교적인 의미로 속죄일(贖罪日)에 많은 사람의 죄를 씌워 황야로 내쫓던 양을 일컫는다. 정치적으로는 남의 죄를 대신 지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말할 때 인용한다. 나치 치하의 유대인이나 미국의 흑인 등이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속죄양을 교묘히 악용한 사람 중 한명이 아돌프 히틀러였다. 탁월한 대중연설가인 히틀러의 연설은 대부분 유대인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유대인과 그들을 돕는자를 없애야 한다며 1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의 속죄양’을 찾던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고 꿈을 이루려 했다. 동양에도 속죄양과 비슷한 고사성어가 있다. 삼국지의 마속편에 나오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이다. 나쁜 의미보다는 좋은 의미로 더 자주 사용돼 왔다. 중국 촉(蜀)나라의 제갈량(諸葛亮)이 마속의 재능을 아껴 유비(劉備)의 유언을 무시하고 중용하였으나 자신의 지시를 어기고 전투하다 참패한 마속의 목을 베어 군의 본보기로 삼았다는 얘기다.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엄정하게 법을 지켜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는 현대판 ‘공명정대’쯤 된다. 우리나라에선 신라 김유신의 고사가 이에 해당된다. 한창 나이 때 천관녀라는 기생한테 빠진 김유신이 어느날 술에 취해 말 위에서 잠이 들었는데 말이 천관녀가 있는 기생집 앞에 멈춰 서 있는 것을 보고 말의 목을 벤 뒤 천관녀를 다시는 찾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에는 제갈량과 김유신의 처신에 대해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아랫사람 혹은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사례로 해석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저축은행 부실대출 문제를 계기로 금융감독원의 낙하산 감사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그제 이석근 전 금감원 부원장보가 신한은행 감사 내정자에서 사퇴하면서 “내가 낙하산 감사 문제의 ‘속죄양’이면 좋겠다.”는 심경을 밝혔다. 대신증권 감사 임명 절차가 진행 중인 윤석남 전 금감원 국장도 감사직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무슨 일이 터져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속죄양이 나타나 두들겨 맞는 ‘마녀사냥’의 전형적인 패러다임을 다시 보는 것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하지만 금감원 전직 간부 1~2명이 무릇 속죄양을 자처한다고 해서 금융당국의 원죄가 씻어질 수는 없는 일. 속죄양은 죄가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쓸 때 통용되는 얘기다. 굳이 따진다면 죄를 지은 사람이 제대로 죗값을 치르도록 하는 게 속죄양의 본뜻이 아닐까 싶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선데이 시리즈] 사연따라 연예 반세기(演藝 半世紀)…그 시절 그 노래①

    [선데이 시리즈] 사연따라 연예 반세기(演藝 半世紀)…그 시절 그 노래①

     작사자(作詞者)도 작곡자(作曲者)도 모른채 설움 싣고  나라 뺏긴 슬픔 노래하던 창가(唱歌)의 시절  가수도 없었다. 노래를 전파시킬「레코드」도「라디오」도 나오기 전, 그래도 유행가는 있었다. 누가 가사를 만들고 누가 작곡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노래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입에서 입으로 전파됐다. 대중 가요의 요람기로 꼽는 1910년대-.    [學徒歌 전후]  ①청산 속에 묻힌 옥도/갈아야만 빛이 나네/낙락장송 큰나무도/깎아야만 동량되네  ②공부하는 청년들아/너의 직분 잊지 마라/새벽 달은 넘어가도/동천조일 비쳐온다  ③유신문화 벽두초에/선도자의 책임 중코/사회진보 깃대 앞에/개량자된 임무로다  ④농상공업 왕성하면/국태민안 여기있네/가급인족 하고보니/국가부영 이 아닌가    최초의 대중 가요로 꼽는「학도가(學徒歌)」가사다.  요즘 말로 대중가요지 그때는 특정한 지칭이 없었다. 창가(唱歌)라고도 하고 신민요(新民謠)라고도 했다.「창가」는 1904년에 처음으로 소학교 교과 과정에 끼였다.  1910년에 처음으로 소학교 교과서로서「보통교육 창가집 제1집(普通敎育 唱歌集 第一輯)」이 발간된 것을 미루어 보아 10년대를 전후해서 신식노래인「창가」가 생겨난 것 같다.  신민요는 우리 고유 민요와 구분해서 붙인 명칭이다.  「유행가(流行歌)」는 훨씬 뒤에 붙여진 이름이다. 신민요가 기생들 사회에서 주로 불려졌다면 창가는 학생층에서 불려졌다.  이때 창가집에는 군가, 양악, 지금의 대중 가요조 노래가 뚜렷한 구별없이 수록되었다. 나중에야 대중 가요조의 노래는 창가(唱歌)에 新자 하나를 더 붙인 신창가집(新唱歌集)에 구분해 실었다.  『학도가』는 신창가집(新唱歌集)에 수록되었다고 한다(형석기·刑奭基씨 말). 최초의 소학교 음악 교과서인「창가집(唱歌集)」에도 수록됐다는 사람이 있었으나 이 책자는 그 행방을 감춰 확인할 수가 없다.  따라서 작사, 작곡자도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평양 숭실(崇實)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김인식(金仁湜)씨가 작곡했다는 설이 있고 그때 일본 사람들의『철도가(鐵道歌)』(철도개통 기념가) 곡을 따온 것이란 설이 있다.  소위 신식 노래라고 하는 것을 한국인 자신이 작곡하여 부른 것은 극히 적고 대개가 외국 곡조에다가 가사를 붙여 불렀다는 점에서 볼때「철도가」쪽의 가능성이 크다.(황문평·黃文平씨 말)  가사는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선생이 평양에 대성(大成)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에게 부르게 했다는 말이 있다. 또 다른 설은 윤치호(尹致昊)씨가 만들었다는 주장. 윤치호(尹致昊)씨는 그때 개성 송도(松都)중학교 교장이었다.  이 노래가 처음 개성쪽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김수린·金壽麟씨 말)는 의견을 뒷받침하는 것이 된다.  어쨌든 이 교훈적인 노래는 학생 층에서 시작하여 전 국민에게 굉장한 전파력으로 유행했다.  당시 동경(東京)유학생들이 방학을 끝내고 일본(日本)땅으로 건너갈때 동대문(南大門)역(지금 서울역)「플래트 폼」에서 곧잘 이 노래를 합창했다 한다. 엄격히 따져서 요즘 말하는 대중가요와는 퍽 다른 점이 있지만 대중들 사이에 널리 유행한 신식 노래임은 틀림없다.  이『학도가』는 나중에 한국 최초의 직업가수 채규엽(蔡奎燁)이「레코드」에 취입했다. 따라서 채규엽(蔡奎燁)은 한국 최초의「레코드」가수다. 그는『오너라 동무야, 강산에 다시 되돌아 꽃은 피고, 새는 이 봄을 노래하자, 강산에 동무들아 모두 다 모여라, 춤을 추며 노래 부르자』하는『봄노래』와『희망가(希望歌)』를 불러「레코드」시대의 여명기를 장식했다.  『희망가(希望歌)』의 가사는『이 풍진 세상을 만나면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1절)라는 것으로『희망』이기보다 자포자기적인 내용이다.  나라를 빼앗긴 젊은이들이 암담한 장래를 생각하며 화풀이도 제대로 못하는 울분을 가락에 실은 것이라 할까? 이 노래 역시『학도가』와 비슷한 시기인 1910년대 전후해서 유행한 것으로 작사, 작곡자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중가요가 지나치게 비탄 절망적인 내용이라는 비판은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직업가수가 생기기 이전의 구전(口傳) 노래부터 이 비탄조는 한국 대중가요의 속성이요 운명이었다.  교훈적인『학도가』『권농가』와 종교 계통의『불어라 봄바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눈물, 탄식, 향수를 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게 유랑(流浪)의 노래들이다.『피 식은 젊은이 눈물에 젖어, 낭만과 설움에 병든 몸으로 북국한설「오로라」로 끝없이 가는, 애달픈 이 가슴 누가 알거냐』(『유랑자(放浪者)의 노래』, 작사·작곡자 미상),『흘러가는 이 신세 물에 뜬 버들잎, 흐르고 흘러서 어디로 가나, 정든 고향집이 차마 그리워 해 다 지고 저문 길 눈물이 아득하네』(『유랑인(流浪人)의 노래』, 김서정(金曙汀) 작사·작곡), 나라를 잃은 젊은이들이 낯선 만주땅, 산해관(山海關), 연해주(沿海州)로 정처없이 떠나는 모습들이 담겼다. 그야말로 희망도 장래도 없는「피 식은 젊은이」들의 넋두리다.  우리나라 처음의 무대가수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노래가 연극 공연의 중간에 불려져 막간가수란 말이 전해 온다.  1922년에 최초의 연극단체인「토월회(土月會)」가 조직되었는데 이 토월회(土月會)가 연극 공연 막간에 노래를 불렀다. 토월회(土月會)는 당시 동경(東京)에 유학, 신교육을 받은 박승희(朴勝喜)가 조직한 학술평론회였다. 여기의 멤버는 김기진(金基鎭), 이서구(李瑞求), 김을한(金乙漢), 김복진(金復鎭), 김기창(金基昶), 안석주(安碩柱), 이백수(李白水), 복혜숙(卜惠淑), 이승만(李承萬), 이정숙(李貞淑), 윤수선(尹水仙), 연학연(延鶴年), 이덕경(李悳卿) 등 이었다. 24년 7월에 조선극장(서울 인사동에 있었음)에서 신극을 공연하면서 막간에『아리랑』을 불렀다는 것. <계속>  <趙 觀 熙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1월1일 제6권 1호 통권 제221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홍도서 실종된 전 경기소방본부장 시신 136일만에 발견

     전남 홍도에 관광을 갔다가 실종된 박권섭(59) 전 경기소방본부장의 시신이 실종 136일 만에 발견됐다.  5일 전남도 소방본부와 목포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40분쯤 신안군 흑산면 홍도 양산봉 아래 해안가 인근 계곡에서 등산객 이모(50)씨가 박씨의 시신을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박씨는 지난 해 12월18일 홍도를 찾았다가 아침 등산을 나간 뒤 다음 날 휴대전화로 가족과 119에 계곡에서 미끄러져 허리를 다쳤다고 말하고 나서 소식이 끊겼다.  이후 119구조대와 경찰 등이 2주 가까이 해안가 사고 위험 지역을 대상으로 수색 작업을 벌였으나 박씨를 찾지 못하고 철수했다.  경찰은 시신의 상태와 당시 상황으로 미뤄 박씨가 실족사한 것으로 보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소방간부 후보 1기생인 박씨는 2004년부터 1년여간 경기소방본부장을 지냈고 퇴임 후 ㈔한국소방공사협회 부회장으로 재직하다 변을 당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식사 하면서 말을 잘 하지 않으면 탈북주민”

    “식사 하면서 말을 잘 하지 않으면 탈북주민”

    “한데 모여 살긴 해도 모이지는 않습니다.” 북한이탈주민(새터민) 2만명 시대다. 국내 최대의 새터민 거주지인 인천시 남동구 논현2택지 개발지구 주공아파트 5, 12, 14단지. 탈북자 사회의 ‘축소판’처럼 새터민 타운이 형성돼 있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은 사람부터 갓 하나원(탈북자 정착 지원시설)을 나온 이까지 연령, 직업, 출신지가 가지각색인 새터민을 죄다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5월 현재 인천 남동구에 거주하는 새터민은 모두 1212명(남 322명·여 890명). 전국 230개 기초자치단체(시·군·구) 중에서 가장 많다. 90%가량이 논현택지지구에 살고 있다. 이들을 이곳에 끌어들인 건 단지 내 국민임대아파트와 인근 남동공단 일자리였다. 그러나 이들은 모이는 법이 없다. 생사의 고비를 넘어 남한에 정착한, 특유의 유대감이 형성돼 있을 것 같지만 그 흔한 친목모임조차 없다. 다정하게 지내는 경우에도 속마음은 별개다. 그게 이곳 정서다. 새터민 김정순(48)씨는 “정착 2∼3년이 지나면 교류의 폭을 조금씩 넓혀 가지만 하는 일을 중심으로 한 제한된 만남”이라며 “간첩을 경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새터민 이정화(53)씨는 “설사 위장 탈북했더라도 이 좋은 사회에서 마음이 변하지 않겠느냐.”면서 “뜬소문일 뿐 스파이는 없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보다 설득력 있는 해석도 있다. 성씨조차 밝히지 않은 또 다른 탈북 주민은 “통제가 심한 북한의 단체생활에 질렸던 터라 여기에서만큼은 간섭받지 않고 살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말을 트는 건 하나원에서 함께 정착교육을 받은 동기생들이다. 그래서 “탈북자 최대 인맥은 하나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 탈북자는 “고향이나 학교, 과거 직업 등을 물으면 꺼리는 사람이 많다. 쉽고 편하게 묻는 게 ‘하나원 몇기세요?’라는 질문”이라고 했다. 때문에 이곳에서 북한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새터민 최대 밀집지라지만 북한음식을 구경하기도 힘들다. 북한식 찰떡, 순대, 두부밥 등을 집에서 만들어 알음알음으로 파는 게 전부다. 인근 음식점주인 조모(56)씨는 “식사를 하면서 말을 잘 하지 않는 일행은 탈북 주민으로 보면 된다.”면서 “북한 출신인 걸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래를 향한 이들의 열정은 남한 주민에 뒤지지 않는다. 민간 사회복지기관 관계자는 “자격증을 따면 정착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낮에 일을 하고 밤에는 요리·미용·컴퓨터학원 등을 다니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수년 전부터 자식과 함께 탈북한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자녀교육 열기도 상당하다고 한다. 새터민 여성이 남성보다 3배가량 많은 것도 특이하다. 최미란(45)씨는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중국 등을 오가며 장사를 하다 탈출한 여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때 새터민 부부싸움은 요란하기로 소문났다. 12단지 경비원 변모(72)씨는 “새터민 여성이 남편에게 폭행당하는 일이 잦아 일주일에 두세 번씩 경찰이 출동하곤 했는데 최근엔 그런 일은 드물다.”고 했다. 경찰 지구대 직원은 “새터민 관련 112신고는 일반 주민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이건 그들이 우리 사회에 적응돼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바다 최강 포식자 ‘모사사우루스’ 화석서 단백질 검출

    바다 최강 포식자 ‘모사사우루스’ 화석서 단백질 검출

    몸길이가 무려 14m에 달하는 육중한 몸으로 백악기 시대 바다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공룡의 화석에서 최근 단백질이 검출돼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요한 린드그렌 박사를 포함한 스웨덴 고생물학 연구진은 거대한 해룡 ‘모사사우루스’의 화석에서 초기생물학적 요소를 발견했다고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했다. 모사사우루스는 백악기말기(1만~6500만 년 전)에 바다에서 서식했던 공룡으로 생김새는 도마뱀과 물고기를 섞어놓은 것 같다. 큰 입을 가졌으며 이빨이 날카로워 암모나이트, 물고기, 오징어, 작은 어룡 등을 잡아먹었다. 연구진은 최신식 분석기를 이용해서 화석에서 7000만년 전 해룡의 단백질 분자를 검출했으며, 함께 발견된 다른 작은 해양생물에게서도 비슷한 단백질 구조를 발견했다. 과학자들은 “이번에 찾아낸 단백질 분자는 후기 박테리아에 오염된 것이 아닌 초기 생물학적 요소로 백악기 말기의 해양환경을 유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어떤 도전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 생겨”

    “어떤 도전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 생겨”

    “어떤 도전이든지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해병대의 힘든 기본 훈련을 견뎌낸 배우 현빈(29·본명 김태평)이 4박 5일의 첫 휴가를 마치고 29일 복무지인 백령도에 도착했다. 해병대 6여단에 배치된 현빈은 오전 8시 30분 함께 훈련을 받은 1137기 동기생 60여명과 함께 버스편으로 인천 중구 항동 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여객터미널 개찰구를 통해 탑승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현빈 일행은 화물 집하장이 있는 야외 통로로 들어가 잔교를 지나 여객선까지 이동했다. 빨간색의 명찰과 함께 ‘김태평’이라고 적힌 군장을 멘 현빈은 일반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듯 시종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걸었다. 얼굴은 검게 그을렸고 다소 마른 듯했다. 훈련 기간 내내 평균 수면 시간 4시간에 절반으로 줄어든 식사량, 강도 높은 훈련 등 전시 상황을 극대화한 극기 주로 접어들면 훈련병들의 체력이 바닥나기 때문이다. 이날 취재진 30여명이 몰리고 해양경찰 120여명이 배치됐으나 별도의 인터뷰나 포토타임은 없었다. 현빈의 팬들은 그가 부담스러워할 것을 우려해 현장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몇 명의 팬들만 떠나는 모습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해병 현빈은 전입 동기들과 함께 여객선 2층에 올랐고 여객선은 오전 8시 50분 백령도를 향해 출발했다. 제대는 2012년 12월 6일이다. 한편 KBS-2TV ‘다큐멘터리 3일’은 새달 1일 밤 10시 25분 ‘청춘의 선택-해병대 교육훈련단’을 통해 현빈의 모습을 보여준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새 장편 ‘꺼져라 비둘기’ 낸 작가 김도언

    새 장편 ‘꺼져라 비둘기’ 낸 작가 김도언

    소년은 늘상 불안과 고독, 욕망과 공포를 붙들고 소설을 썼다. 그의 집착 대상은 찰나의 감정이면서도 인간의 삶에서 결코 털어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소년은 질투, 폭력, 파괴, 치정, 섹스, 살인 등 자극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앞세워 읽는 이를 불편하게 했다. 소년은 형식이건, 내용이건 기존의 것들을 해체하고 파괴하는 것을 통해 소설가로서 자신만의 미학을 쌓아 올리고자 했다. 1998년 등단한 이후 세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을 내놓는 동안 늘 그렇게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러다가 소년은 문득 파괴와 불안으로 순정하게 뭉쳐진 옷을 벗고, 고전적인 소설 문법, 그리고 거기에서 구사하는 전통적인 문체, 문장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고래(古來)의 것을 갖고 또 다른 파괴와 뒤틀림을 실험해보리라 마음먹는다. 소년은 나이를 먹어가며 ‘더욱 순정한 소년’이 되어간다. ●‘순정한 소년’ 티 벗고 도발적 문제 제기 ‘순정한 소년’ 김도언(39)이 새롭게 내놓은 장편소설 ‘꺼져라 비둘기’(문학과지성 펴냄)는 그렇게 쓰여졌다. 소설은 ‘선악의 기원과 구조에 대한 사적 견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부제를 달고 있다. 그런데 소설이 묘하다. 마치 희곡인듯 ‘주요 등장인물 소개’로 소설은 시작한다. 또한 소설의 중간과 마지막에 ‘소설 밖에서 모인 사람들’이라는 부분을 집어넣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소설가 자신과 함께 한 자리에서 대담을 나누며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각자의 모습과 소설 작품 자체에 대해 발화할 수 있게 한다. 소설의 서사는 지극히 단순하고 평면적이다. 촉망받던 씨름 선수 ‘이산’과 젊은 시인 ‘영만’, 영만과 순결한 사랑을 나누는 젊고 예쁜 유실래, 그리고 한의사 고붕, 이산의 어머니와 아버지 등은 토담리라는 마을에 사는 한없이 착한 사람들이다. 반면 타이어 공장이 들어선 뒤 토담리로 들어온 이산의 새어머니, 세탁소 박씨, 오토바이 상회 계씨 형제, 목욕탕 주씨 등은 탐욕스럽고 무례한 악인들이다. 식탐을 부리며 매일 사람들 머리 위에 똥만 갈겨대는 비둘기처럼, 악인들은 착한 사람들을 쉴 새 없이 괴롭힌다. ●어설픔과 낯선 느낌의 권선징악 전반부와 후반부의 화자는 이산과 영만으로 크게 나뉜다. 이산과 영만 등 늘 당하고만 살던 힘없고 착한 사람들은 의지를 꺾지 않고 힘을 하나로 모아 결국 악인들을 마을에서 쫓아내는 데 성공한다. 기승전결이 딱딱 들어맞고, 권선징악이 분명하다. 김도언은 이를 계속 반복해서 강조한다. 의도적인 어설픔이 느껴진다. 김도언의 의도가 비로소 짐작된다. 읽는 이들이 선악의 기본적 대립에 대해 낯설게 느끼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등장인물 소개’나 ‘소설 밖에서 모인 사람들’과 같은 비소설적 장치를 내세움으로써 일종의 메타소설적 기능을 하게 함은 물론, 선과 악, 또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전형화-마치 고전소설의 권선징악적 구성처럼-시킨 것에 대한 또다른 전복을 꾀하는 역설인 것이다. ●근대적 가치에 대한 관대함·조롱 일반적으로 ‘평화의 상징’이라 일컬어지는 비둘기가 실제로는 탐욕과 게으름, 지저분함을 품고 있는 인간의 기생자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김도언은 마지막까지 이를 감추며 의뭉을 떤다. 그는 ‘작가의 말’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쉽고 친절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이 시대가 선과 악, 도덕과 부도덕, 정의와 불의, 왼쪽과 오른쪽이 마구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게 이 소설 구상의 출발점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혐의는 더욱 짙어진다. 소설 텍스트 자체뿐 아니라 등장인물 소개, 등장인물의 소설 밖 발언, 심지어 ‘작가의 말’까지 모두 소설의 한 부분임이 점점 명확해진다. 소설은 이처럼 불필요할 정도로 관대하고, 친절함이 이어진다. 너무도 ‘반(反) 김도언스러운’ 단순명쾌함이기에 오히려 무람없이 선악을 구분지으려는 근대적 가치에 대한 김도언의 조롱으로 읽혀진다. 다음 작품에서 그의 의도는 더욱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더 분명한 사실 하나. 문학을 마주하며 사는 김도언의 실험과 파격, 해체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매일유업 ‘포르말린 사료’ 우유 판매 파문

    매일유업이 포르말린이 첨가된 조제사료를 젖소에 먹이고 여기서 생산된 원유로 우유 제품인 ‘앱솔루트 W’를 만들어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포르말린은 살균제나 방부제에 사용되는 독극물로 발암성 물질이다. 이들은 해당 사료를 사용하지 말라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수차례 권고도 무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제품은 판매 중지됐다. 28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매일유업은 포르말린이 첨가된 혼합사료를 수입해 젖소에 먹이지 말라는 정부의 권고를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5개월간 무시해 왔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11월 2일 매일유업의 사료에 포르말린이 섞여 있다는 민원인의 제보를 받았다. 하지만 사료에 대한 포르말린의 함유 기준이 없어 사용 중단을 권고했다. 이후 수차례의 구두 경고에도 매일유업은 해당 사료를 계속 사용했다. 매일유업 측은 포르말린 함유 사료가 호주에서 적법한 절차로 수입됐고 젖소가 섭취한 포르말린이 소변·대변으로 다 배출되고 원유로는 배출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매일유업은 한국식품공업협회가 운영하는 한국식품연구소에 검사를 의뢰해 ‘포르말린 사료’를 기반으로 생산한 우유제품이나 일반 우유제품 모두 우유에 포함된 포르말린 양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매일유업은 포르말린이 포함된 혼합사료를 먹인 젖소에서 생산된 원유로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하루 10t 정도의 유아와 어린이용 우유 ‘앱솔루트 W’를 생산·판매해 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정부가 권고 조치를 내렸던 지난해 11월 2일 다소 억울한 면이 있더라도 즉각 사료 사용을 중단한 뒤 안전성을 입증하는 게 적절한 조치였을 것”이라면서 “정부도 시급히 포르말린에 대한 규정을 만들기 위해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조만간 관련 제품에 대한 안정성 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포르말린은 메틸알코올을 산화해 만든 포름알데히드의 37% 전후 수용액을 일컫는 의약품으로 소독제, 살균제, 방부제, 방충제, 살충제 등으로 사용되는 독극물인 것은 물론 발암성 물질이어서 식품에 첨가할 수 없다. 몇년 전 양식업자들이 횟감으로 쓰이는 광어 등에 생기는 기생충을 없애기 위해 포르말린을 사용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한편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는 이날부터 매일유업의 ‘앱솔루트W’ 제품을 전 매장에서 철수하고 일시적으로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매일유업의 최동욱 사장을 비롯한 임원 48명은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박상숙·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예비사무관들 왕자병 ‘중증’…中企실습·후진국 봉사부터”

    “예비사무관들 왕자병 ‘중증’…中企실습·후진국 봉사부터”

    ‘공무원이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 공무원 교육이 나라 운명을 바꾼다.’ 중앙공무원교육원 61년 역사상 최초의 민간인 출신 원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지난해 5월 13일 취임한 윤은기 원장의 지론이다. 윤 원장은 시(時)테크, 골드컬러 같은 단어를 대히트시키며 컨설팅 전문가이자 강사, 방송 진행자로 이름을 날리던 최고 혁신 전문가다. 하지만 한국의 공무원 교육을 총괄하는 중공교 원장이란 타이틀은 그에게도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왔을 터다. 취임 1주년을 앞두고 26일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윤 원장은 “교육이 운명을 바꾼다. 재스민 혁명 같은 민주화도 교육받은 국민이 없다면 어림없다.”면서 “더 나아가 국가의 운명을 바꾸는 건 바로 공무원 교육”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이 행복하려면 먼저 공무원이 행복해야 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다음은 일문일답. ●“공무원 성질나면 국민만 피곤” →민간 출신 원장의 시각에서 볼 때 그간 공무원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었나. -제가 오자마자 각종 격려사에서 드린 말씀이 “공무원도 인간입니다.”였다. 공무원도 희로애락이 있다는 뜻이다. 여기는 엄숙주의가 지나치더라. 수십년간 강의하러 이곳저곳 누볐는데 공직 사회처럼 안 웃고 박수 안 치고 표정 없는 집단이 없었다. 웃는 것도 눈치를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공무원 문화가 잘못된 게 아니라 저변이 잘못된 거였다. 감정이 통하는 교육을 해야 유연한 사고, 창의력이 나온다. 그 다음 내세운 슬로건이 “공무원이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해진다.”였다. “어디 공무원만 좋으면 다냐.”고 욕하실 분들이 계실 거다. 하지만 국민총행복지수의 시대 아닌가. 막말로 공무원이 성질나면 국민만 피곤해진다. 공무원이 여기(중공교) 와서만이라도 본인들의 가치를 느끼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무원이 행복한 교육을 위해 어떤 게 바뀌었나. -작은 것부터 말씀드리면 강의 휴식시간을 10분에서 20분으로 늘렸다.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이 아니라 ‘포토앤드토크’(Photo&Talk) 타임이다. 교육원 특성상 여러 부처가 섞이는 교육이 많다. 쉬는 시간에 평소 만나기 힘든 다른 부처 동기생도 보고 업무 협의도 하고 사진도 찍어서 벽에 붙여 놓으면 다음 휴식시간에 바로 떼어 갈 수 있다. 사진이 소통의 도구인 셈이다. ●“민관 CEO 정책포럼 첫 시도” 매주 토요일 중앙부처 국실장 150여명이 참석하는 국가전략세미나는 고위 공무원들이 부처 이기주의를 넘어 국가 최고정책을 논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사로 청와대 수석, 부처 장차관 등 으뜸 전문가를 섭외한다. 지난해 5월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토요일에 쉬지 못하게 한다는 불만들이 목까지 차올랐는데 1년이 다 된 지금은 교육생 강의 만족도가 97%나 된다. 고위 공직자와 민간 CEO들이 한자리에서 정책 토론,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민관합동 CEO 정책포럼’은 공무원교육기관 중에선 처음으로 시도됐다. →공무원도 속도가 중요한가. -당연하다. 항상 ‘화살표를 배워라’, 즉 빨리 새것을 배워서 활용하라고 강조한다. 민간에선 이를 통해 성과를 내라고 주문하는데 우리(공무원 조직)는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해놓고선 아무도 책임을 안 진다. 예컨대 공정사회가 국가적 과제라면 묵은 걸 하루빨리 털고 새것을 배워 써먹어야 한다. 저희 교육원에서 FTA 전문 교육을 도입한 게 대표적 예다. 늘어나는 FTA가 국민과 그 외 생산주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니 공무원이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게, 행복한 혁신을 해야 한다. 원래 개혁이 혁명보다 중요하다. →3월 5일 이명박 대통령이 중공교 1일 강사로 나서 화제가 됐었다. -어느 조직이건 동력의 센터는 교육하는 곳이다. 최고책임자가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을 때만 그 조직이 살아난다. 어떤 공무원이 “20년 넘게 중앙부처에서 일했는데 CEO 격인 대통령에게선 말 한마디 직접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매일 누군가와는 오찬하며 얘기를 나누지 않나.”라고 내게 직접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세계 최고 인재사관학교로 불리는 다국적 기업 GE의 뉴욕 크로톤빌 연수원에 출장가 보니 이멜트 회장이 교육에 직접 참여하더라. 이를 벤치마킹해서 대통령께도 직접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중앙부처 주무 과장 150여명을 대상으로 70분 강의를 했는데 박수가 20여 차례 나왔다. 하반기에 다시 요청했는데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청와대 답변이 왔다. 강의 자체보다 1년에 두 번 정도는 대통령이 공직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창구가 있다는 게 중요하다. ●“무단결석 땐 바로 퇴소조치” →올해부터 신임 5급 사무관 교육이 많이 바뀐다던데. -지난해 교육을 보고 정말 실망했다. 성적과 임명부처가 미리 정해지니 교육 후반부엔 무단결석도 많고 강의 때도 대놓고 자더라. 학칙은 생명이다.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해 한번 적발되면 바로 퇴소조치한다. 왕자병, 공주병 같은 귀족주의도 문제다. 엘리트 의식은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안 된다. 나라의 리더는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해야 한다. 중소기업 현장 실습을 시키고 후진국 자원봉사도 나갈 예정이다. 국가관 함양을 위한 한국사 교육은 내년부터 2배 이상 늘리겠다. 글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윤은기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은… ▲1951년 충남 당진 출생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인하대 경영학 박사▲2007년 서울과학종합대학교 총장 ▲2009년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글로벌시민분과위원장 ▲2010년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차관급) ▲KBS1 라디오 ‘생방송 오늘’ 등 다수 프로그램 진행 ▲저서 ‘時테크-시간창조의 기술’ 외 20여권
  • 기생·왈짜… 조선 ‘한양 뒷골목’ 탐방

    기생·왈짜… 조선 ‘한양 뒷골목’ 탐방

    조선시대에도 파티플래너와 연예기획자가 있었다? 25일부터 27일까지 밤 9시 50분 방영되는 EBS ‘다큐프라임’의 주제는 ‘한양의 뒷골목’이다. 고고한 양반들의 삶보다 검계, 기녀, 왈짜, 거지 등 뒷골목의 세계를 탐험해 보자는 것이다. 18세기에 시장경제의 발달과 함께 생겨난 도시의 저잣거리 문화가 탐방대상이다. 실제 국문학자들이 보는 자료 가운데 ‘한양가’(漢陽歌)란 가사가 있다. 1848년쯤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가사에는 온갖 놀이 문화가 다 등장한다. 이 놀음을 주관하는 이는 바로 ‘대전별감’. 지금으로 치면 파티플래너쯤 된다. 연회 행사장을 꾸미고, 기생을 불러 가무를 제공하는 등 행사에 참석한 이들이 모두 흥겹게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들은 기생들에게 가장 큰 권력적인 존재였고, 이들이 벌이는 놀이판 ‘승전놀음’은 당대의 이름있는 기생, 명창, 악공이 총출동하는 최고의 놀음으로 꼽혔다. 기생의 패션도 눈길을 끈다. 요즘 연예인들 트렌드가 하의실종이라면, 조선 기생들의 트렌드는 ‘하의풍만’쪽이었다. 저고리는 최대한 작게 입고 치마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요즘처럼 대놓고 노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름대로 섹시한 느낌을 주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다. 그런데 이게 인기를 끌어서 그만 여염집 아낙들도 이런 패션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이를 본 실학자 이덕무는 “저고리가 워낙 작아 가슴에 피도 안 통할 지경”이라고 개탄했다. 번창하는 유흥가엔 조폭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마련. 조선에도 ‘검계’(劍契)와 ‘왈짜’라는 게 있었다. 거의 군사조직 수준의 규율을 갖춘 검계나 왈짜는 몸에 칼자국이 없으면 가입할 수 없었다. 삿갓을 푹 눌러쓴 채 뚫어 놓은 구멍으로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이들은 도박장이나 기생들을 관리했고, 이 권리를 두고 싸움질을 일삼았다. 재밌는 건 이들이 호가(豪家·잘살거나 이름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라 관에서도 함부로 손대지 못했다는 것이다. 도박장 풍경도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 정약용마저도 ‘목민심서’에다 재상이나 승지에까지 이른 자들이 ‘바둑, 장기, 쌍륙, 투패, 강패, 척사’ 같은 노름에 미쳐 있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실제 18세기 투전판 최고의 ‘타짜’로 꼽히는 자로 원인손이 있었는데, 그는 효종의 딸 경숙옹주의 손자이자 병조·이조판서를 지낸 원경하의 아들이었다. 모두 3부로 구성된 ‘한양의 뒷골목’은 이런 얘기들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드라마화했다. 한양의 뒷골목을 어슬렁대는 검객 표철주, 그리고 조선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포도대장 장붕익의 대결로 그려 낸 것. 또 시대 배경을 풀어주는 내레이션도 판소리로 만들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우리 노인 심정 인형에 담았슈”

    “우리 노인 심정 인형에 담았슈”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에이 쯔쯧~ 당신, 서울 사는 애들이 보고 싶은 모양이오.” 21일 동대문구 청량리동 서울시립노인종합복지관에 자리한 한국노인인권센터. 허리가 굽고 흰머리가 성성한 어르신들이 검은 막 뒤에서 음향에 맞춰 장대인형을 들고 손놀림에 분주했다. “어쩌면 나이도 지긋한 어르신들이 저리도 자유자재로 움직일까.”하는 생각에 주변 사람들 눈이 커졌다. 연극이 끝나자 휠체어에 앉아 관람하던 요양원 어르신들에게서 환호가 터졌다. 65~86세 어르신 9명으로 구성된 노인인권센터 인권지킴이 ‘무지개 인형극단’의 무대였다. ●65~86세 어르신 9명으로 구성 이들은 지난주에도 인천 동암동 노블슈요양원 어르신들과 보호사 30여명 앞에서 현대판 고려장을 그린 ‘황혼의 언덕’ 인형극을 선보였다. 연락도 끊긴 자식들 탓에 기초생활수급도 받지 못하는 한국 노인들의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황혼의 언덕’은 다음 달 열리는 경남 거창군 실버연극제에 초청됐다. 무지개 인형극단은 2009년 4월 인형극을 통해 어르신들이 직접 노인인권에 대해 보다 쉽게 알도록 하기 위해 창단됐다. 3년간 지하철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노인인권 보호를 위한 공연을 펼쳤다. 현재까지 48개 사회복지관과 요양원, 노인대학에서 관람객 3700여명을 모으는 성과를 거뒀다. 노인들의 심정을 대변한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올해도 6월까지 예약이 꽉 찼다. 일주일에 한번 공연을 펼치는데, 19곳에서 요청했으니 인기를 실감할 만하다. ●6월까지 예약 차… 2기생도 모집 단원들은 모두 1인 다역에 충실하다. 대나무, 스티로폼을 이용해 장대인형 모형을 만들고 옷도 직접 뜨는 등 무대연출을 위한 사소한 소품까지도 일일이 제작한다. 더욱이 장대인형극이라 어깨가 빠질 정도로 아플 때도 많지만 다역을 훌륭히 해낸다고 주변에서 혀를 내두른다. 심지어 무대연출에 필요한 소품을 싣는 차량이 1대뿐이라 지하철로 이동하며 공연하지만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소원인(75) 단장은 “경기·인천에서도 공연요청이 쇄도하다 보니 지하철역을 찾아 더러 헤매기도 하지만 동병상련에 처한 노인들로부터 환호를 받으면 자신감이 솟구친다.”며 웃었다. 인기가 하늘을 찌르다 보니 2기생도 모집해 황혼기의 사랑을 그린 ‘고목나무에도 사랑의 꽃은 피어나다’란 인형극을 맹연습 중이다. 2기 작품은 5월 8일 어버이날 노인인권센터 무대에 올린다. 강혜수 노인인권센터 실장은 “무지개인형극단은 노인들의, 노인들에 의한, 노인들을 위한 인권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며 “공연이 끝나면 노인인권 교육을 비롯, 학대사례 발굴 상담과 감시활동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철원 “돼지 대신 말”

    구제역으로 강원도내 최대 축산 지역인 철원 축산업이 붕괴 직전에 놓인 가운데 자치단체가 나서서 ‘말(馬)산업’을 집중 육성하기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철원군은 19일 군내 축산농가들이 구제역이 발생한 후 지역에서 사육하던 돼지 가운데 95%에 이르는 약 15만 마리를 살처분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군은 청정 환경에 맞는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말산업을 집중 육성하기로 하고 군비 5000만원을 들여 관련 종합계획을 수립 중이다. 말 산업은 레저용 및 소득증대 산업으로 경쟁력뿐 아니라 지역 재정기여도도 높다. 최근 정부의 말산업 육성법 제정도 사업 추진에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군은 용역결과가 나오는 대로 올해부터 2016년까지 5년 동안 말산업 특구 지정을 비롯해 목장 및 승마장 조성, 고기생산 및 부산물 가공 등을 종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철원 지역의 말산업은 조선시대 3대 임금인 태종 이방원이 사냥과 군사훈련을 겸했던 강무장(講武場)으로 지정한 이후 정종, 세종 등 역대 임금들이 50여 차례 사냥을 위해 다녀간 곳이어서 더욱 뜻깊다는 여론이다. 정호조 철원군수는 “국내 말 사육 농가는 전체 축산농가의 1.8%에 불과하지만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잘 활용해 육성할 경우 부가가치가 클 것으로 보인다.”면서 “무엇보다 말산업이 육성되면 재활승마센터, 사육·조련시설 등 고용 효과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원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저커버그, 아이디어 도용 추가배상 소송 승리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며 추가 배상을 요구한 타일러, 캐머론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와의 소송에서 11일(현지시간) 승소했다. 저커버그의 하버드대 동기생인 윙클보스 형제는 2008년 저커버그로부터 6500만 달러 상당의 현금과 페이스북 주식 일부를 양도받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형제는 합의금 산정 당시 회사가 정보를 숨겨 페이스북 주식 가치가 저평가됐다며 지난해 12월 추가 배상 소송을 냈다. 비상장기업인 페이스북의 현재 기업가치는 500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날 샌프란시스코 제9순회항소법원 재판부는 윙클보스 형제가 2008년 소송을 끝내기로 합의했을 때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추가 배상을 요구할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형제의 변호인인 제롬 포크 주니어는 재판부의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며 자신의 의뢰인들이 재심리를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 옵션은 대법원 항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춤 인생 80년만에 첫 화보집… 승무·살풀이 ‘國舞’ 
무형문화재 이매방 선생

    춤 인생 80년만에 첫 화보집… 승무·살풀이 ‘國舞’ 무형문화재 이매방 선생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춤을 추다 쓰러질 사람이다. 몹쓸 병에 의사의 집도를 받고는 체중이 헌 짚신짝만큼이나 줄어들었을 때도 무대에 올라서면 굽은 등이 펴지고 까치 걸음이 날렵해지고 어깨춤이 절로 나는 나 자신을 보았다. 못된 제자를 만나 피를 토하는 모욕과 배신과 울분에 사나이 눈물을 깨밀다가도 장단 소리만 나면 생기가 돌았으니 천생 나는 춤을 추다가 갈 사람이다. -우봉 이매방춤 전수관 홈페이지에서 집 안에 들어섰을 때 그는 한복 저고리에 동정을 달고 있었다. 저녁 공연 때 처(妻)가 입을 한복이라고 했다. 그의 바느질은 유명한 얘기이지만 짐짓 모른 척하고 물었다. “잉. 지금도 이쁜 것(제자)들은 내가 직접 옷 지어 줘.” 처가 예쁜 모양이다. 그런데 그는 왜 지금도 무대에 입고 올라갈 옷을 손수 지을까. “의상도 작품이거든. 요샛것들은 바느질 못혀. 바늘귀도 못 꿰는 게 무신 춤꾼이여.” 우봉(宇峰) 이매방(85). 국내 몇 안 되는 두 종목(승무·살풀이춤) 무형문화재다. 평생 춤만 춰 왔다. 그런데 이제서야 생애 첫 책을 갖게 됐다. 제자 부부(이병옥·김영란)가 귀한 사진자료를 곁들여 낸 두툼한 화보집이다. 출판기념회를 하루 앞둔 6일 서울 양재동 자택에서 선생을 만났다. →‘국무’(國舞), 요즘 말로 하면 국민춤꾼이신데 생애 첫 책이라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잉. 화보집은 첨이여. 그때는 그냥 춤만 췄제. 누가 (자기 자신을) 선전하고 그랬간디. 예술하는 사람들은 머리 굴리면 안 돼. →머리 굴리는 사람도 있다는 지청구로 들립니다. -예술은 정직하고 깨끗해야 혀. 그런데 요즘엔 춤이고 대중가요고 다들 돈 벌어 먹을라고 머리 굴리고 지랄 염병들이여. 언제 나오나 싶어 조마조마했는데 초장부터 터졌다. 선생의 별명은 ‘욕쟁이’다. 질펀한 전라도 사투리에 육두문자가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요샛것들이 많이 마음에 안 드시나 봅니다. -내가 수많은 제자와 문하생을 길러냈지만 맘에 드는 년은 딱 한명이여. 그냥 (기사에는) 재미무용가라고 해 둬. 다른 것들은 지들이 공연할 때면 내 이름 (공연 책자에) 올리려고 앞다퉈 찾아와서 이빨 드러내고 웃으며 온갖 애교를 떨어. 그러고는 그만이지. →제자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습니다. -섭섭해도 할 수 없어. 나는 쬐깐했을 때부터 어머니 경대(거울 달린 화장대) 앞에서 춤을 췄어. 머스마가 초랭이처럼 춤을 잘 춰 옆집 살던 나이든 기생(함국향)에게 춤을 배웠지. 그때 내 나이 일곱살이었어. 그 뒤 초등학교 6년 내내 춤을 배웠지. (춤)냄새를 쪼끔 맡은 거여. 그런데 요샛것들은 춤 쪼깨 배우고는 어디 가서 ‘이매방 춤입네’ 지랄들을 혀. →뭐가 그리 못마땅하신가요. -내 춤을 변형 변질시키니까 하는 말 아니여. 이수증만 따고 나면 (내 춤에) 딴 가락을 넣고 지들 춤을 집어넣어. 내 춤은 멀리 하늘로 보내버려 놓고는 이매방 춤이라고 혀. 한마디로 사기제. 춤추는 사람은 정직하고 마음이 고와야 혀. 마음이 고와야 춤도 고와. →선생님 춤의 원형은 무엇인가요. -춤은 무겁게 춰야 혀. 우리 춤의 핵심은 정중동(靜中動)이여. 중심은 배꼽이제. 그라니깬 요염하고 아름다운 건 배꼽 아래에서 나오고, 명랑하고 활발한 건 배꼽 위에서 나와. 물이 들면 다시 나가고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음양 이치가 있는 게 바로 우리 춤이여. →한국춤의 매력은 찌르르하고 요염하고 이상야릇하다고 말씀하신 게 이 뜻이군요. -그라제. 발레나 현대무용은 동만 있고 정이 없어. 양복 깃처럼 직선이지. 요즘 사람들은 그런 서양춤에 환장들을 혀. 하지만 한국춤은 정과 동이 다 있어. 버선, 기와, 전부 곡선이잖어. (외국 것만 좋아하는) 국민들도 반성해야 혀. →작고하신 한영숙 선생과도 정중동 논쟁이 있었지요. -1980년대인가, 영국의 세계적인 무용가 마고트 폰테인 앞에서 우리 두 사람이 춤을 췄어. 춤을 보고 나서 폰테인이 말하기를, 한영숙은 개량화된 현대 춤이고 이매방은 흙 냄새 나는 전통춤이다. 이게 기사화됐는데, 한영숙씨가 ‘이매방이 기자들을 구워삶았다’며 난리쳤어. →한영숙 춤은 남성적이고 선생님 춤은 여성적이라고 합니다. -한영숙 춤은 정이 멀어지고 동이 부각된 신무용이야. 한마디로 박력 있지. (요즘 탄생 100년이라고 떠들썩한) 최승희 춤도 마찬가지여. 그에 반해 내 춤은 요염하고 곡선미가 있어. 어찌 보면 징그럽제. 여자 같고…. →여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선생님의 성(性) 정체성을 의심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내가 곱게 화장하고 여자 옷 입고 춤추니까 그라제. 지금도 내가 호모, 그라니깬 동성애자인 줄 아는 사람이 많어. 근데 아니여. 곁에서 듣고 있던 부인 김명자(68)씨가 웃는다. 두 사람은 열일곱살 차이가 난다. →(이매방 선생을 향해) 생전에 무형문화재 후계자를 정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암만. 그래도 내 춤을 변형 변질 안 시키고 끝까지 지키는 사람은 내 처하고 내 딸밖에 없어. →외람된 말씀이지만 집안끼리 다 해먹는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집안 사람이어도 머리 굴리고 내 춤을 변형시키면 그걸 왜 시켜. 바로 바꿔야제. 김명자씨는 승무와 살풀이춤 전수교육 보조자다. 외동딸 현주(37)씨는 현대무용을 전공(한성여대 무용과)했으나 지금은 한국무용으로 바꿔 한양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현주씨는 7일 오후 6시 서울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리는 출판기념회에서 아버지의 살풀이춤을 재연한다. →어려서 아버지한테 많이 맞으셨다던데 춤이 그렇게 좋던가요. -울 아버지가 나이 쉰에 나를 봤는디(낳았다는 뜻) 쉰둥이라고 그렇게 이뻐하셨지. 그런데 가시내처럼 춤을 춰대니 몽둥이 들고 무대까지 쫓아오셨어. 그런데도 그렇게 춤이 좋더라고. 어린 나이에 내가 돈맛을 알았겄어, 춤맛을 알았겄어. 그냥 좋았던 거여. →지금도 무대가 무서우신가요. -그라제. 무대는 정직해야 혀. 옛것을 찾아내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여. 내 맘대로 해도 되면 뭐가 무섭겄어. 그래서 난 지금도 무대가 무서워. →춤인생 80년 기념공연 계획은 없으신지요. -없어. 그래도 올가을이나 겨울쯤 무형문화재 공개 행사는 할 거여. 인자는 기력이 달려 완판(완막 공연)은 힘들어. 부분(춤사위)만 해 보여야제. →건강 관리 비결이 따로 있으신가요. -없어. 소식(小食)하는 것 말고는. 그때 부인이 끼어들었다. “하고 싶은 소리 다 하고, 욕을 저렇게 많이 해대는데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느냐.”고. “춤만 성숙해졌지, 지금도 애기 같다.”며 눈치를 준다. 고집이 너무 세서 타협이 잘 안 된다며, 그래서 제자들도 많이 힘들어한다고도 했다. 불리한 얘기가 나오니 선생이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그래도 이 말은 잊지 않았다. “출판기념회에 꼭 와. 박지원(민주당 원내대표)도 온당께. 고향(목포) 사람이거든. 유인촌도 불렀는디 외국 가 있어서 못 온대.” 정리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대담 안미현 문화부장 ■ 이매방 선생은 ▲1926년 전남 목포생(호적에는 1927년생) ▲1933년 일곱살 때 목포 권번(기생조합)서 처음 무용 배움 ▲19 34~1939년 큰누나가 있던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당대 유명 경극배우 매란방에게 춤 배움. 매란방에게 매료돼 예명도 ‘매방’(본명 규태)이라 지음 ▲1941년 목포역전 임방울 공연 때 ‘승무’ 맡았던 박봉선 대타로 첫 무대 데뷔 ▲1943 목포공업학교 졸업 ▲1973년 결혼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보유자 지정 ▲1990년 중요무형문화재 97호 살풀이춤 보유자 지정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수훈 ▲20 08년 한민족문화예술대상
  • ‘공룡의 포악한 성격’ 원인 알고보니…

    ‘공룡의 포악한 성격’ 원인 알고보니…

    공룡이 사납고 포악한 성격을 가지게 된 원인을 밝혀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케빈 존슨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 교수는 최근 연구에서 공룡화석에서 뽑아낸 DNA를 조사한 결과 6500만 년 전 이(louse·사람이나 동물의 몸에서 피를 빨아먹으며 기생하는 곤충)를 발견했다. 존슨 박사는 공룡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몸을 숙주로 삼은 이와 싸우며 스스로를 긁어대는데 보냈을 것이며, 이로 인해 성격이 포악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는 이가 공룡이 멸종한 뒤 나타난 고대 포유동물과 조류 등에 처음 기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상 훨씬 이전부터 서식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존슨 박사는 “이번 연구결과는 이가 최초에 조류 등에게 어떻게 전파됐는지, 특히 공룡이 서식하던 훨씬 이전부터 서식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공동 연구한 빈센트 스미스 자연역사박물관 소속 박사는 “이는 살아있는 화석과도 같다.”면서 “과거의 기록은 이 기생충들에 의해 써졌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진화를 연구함으로서 이들의 조상에 대해 더 심층적인 자료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금까지는 공룡이 멸종한 이후 새와 포유동물의 종이 다양해지는 시기에 이가 서식했다고 여겨졌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이의 최초 숙주가 공룡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많은 과학자들은 조류가 공룡의 후예라고 여기고 있으며, 현 조류에게서 주로 발견되는 이는 공룡으로부터 ‘상속받은 유품’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진순선생 연극 ‘갈매기’ 다시 난다

    이진순선생 연극 ‘갈매기’ 다시 난다

    이해랑, 이원경 등과 함께 한국 근대극 연출 3대 거목으로 꼽히는 지촌(芝村) 이진순(1916~1984) 선생. 생전 그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후배 연극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헌정 공연으로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선보인다. 지촌은 ‘갈매기’를 1966년 처음 연출한 뒤 1983년까지 모두 4차례나 무대에 올렸다. 그는 체호프의 작품 세계를 한국 관객에게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연극인이다. 고인이 연출한 1966년판 ‘갈매기’에 젊은 ‘니나’ 역으로 출연했던 김금지가 45년이 지나 여자 주인공 ‘아르까지나’(‘니나’의 남자 친구 어머니) 역을 맡은 점이 가장 눈에 띈다. 김금지는 “국립극장 부설 연기인 양성소 1기생이었을 당시, 지촌이 담당 교수님이었다.”면서 “가장 존경하는 이진순 선생의 헌정 공연에 출연할 수 있어 뜻 깊고 감회가 깊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인의 유작이 된 1983년판 ‘갈매기’에 출연했던 송승환도 남자 주인공 ‘뜨리고린’ 역을 맡아 오랜만에 관객 앞에 선다. 송승환은 아역 배우로 활동하던 중 이진순 연출의 ‘학마을 사람들’에서 봉남 역으로 처음 연극 무대에 데뷔했다. 서주희, 박지일, 김수현 등의 연기파 배우들도 가세한다. 삼각관계로 얽힌 예술가들의 욕망과 고뇌, 주변인들과의 갈등을 섬세하게 펼쳐낼 예정이다. 연출은 전 서울시극단장이었던 김석만 연출가가 맡았다. 국립극장장을 지낸 신선희가 무대 디자인, 박항치가 의상 디자인, 김의경이 예술감독을 각각 맡아 19세기 말 러시아 분위기를 무대 위에 재현한다. 김석만 연출은 “이진순 선생님은 마음속에 남아 있는 커다란 선배”라면서 “헌정 공연을 맡게 돼 영광이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갈매기’는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다양한 인간관계를 충실히 그린 연극으로, 흘러간 것들, 지나간 것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담고 있다.”면서 “예술가들의 사랑과 꿈, 좌절을 줄거리로 다룬 작품이어서 이진순 선생이 보여줬던 지극한 연극 사랑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 달 14일부터 5월 8일까지 명동예술극장. 2만~5만원.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폭설에 밀렵에… 야생동물의 수난

    폭설에 밀렵에… 야생동물의 수난

    #장면 1. 눈 덮인 산속에서 굶주린 고라니 부부가 먹이를 찾아 민가까지 내려온다. 민가에서도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 결국 고라니 부부는 마을 근처에서 탈진해 쓰러진다. 주민들이 고라니를 살리려고 수액 치료까지 했지만 결국 암놈은 죽고 만다. #장면 2. 밀렵감시단이 올무에 걸려 고통받는 노루를 발견한다. 노루의 허리를 조이는 올무는 발버둥칠수록 깊이 파고들어 큰 상처와 고통을 남긴다. 밀렵감시단이 발견 즉시 올무를 제거하고 놓아 주지만 일어서지 못한다. 가축병원으로 데려갔지만 극심한 스트레스와 올무로 척추신경까지 다쳐 일어설 수 없게 됐다. 결국 수의사는 마지막 처방인 안락사 주사를 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지난겨울 강원도 야생동물들은 최악의 위험에 처했다. 폭설 탓에 먹이를 찾지 못해 굶어 죽거나 올무 등 불법 사냥도구에 희생되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EBS는 10일 밤 11시 10분 ‘하나뿐인 지구-야생동물들의 눈물겨운 겨울나기’를 통해 100년 만에 강원도를 덮친 기록적인 폭설과 밀렵으로 야생동물이 고통받는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겨울엔 어느 계절보다 밀렵이 극성이다. 밀렵꾼들은 쌓인 눈 위로 흔적이 남아 야생동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또 야생동물은 먹이를 찾기 힘든 겨울 산에서 먹이가 놓인 창애에 더욱 쉽게 유인당해 걸려든다. 강원도 산속에서 불법 사냥도구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설치된 올무 하나에는 언젠가 야생동물이 걸려들기 때문에 올무 수만큼 야생동물의 개체 수는 줄어들게 된다. 야생동물이 몸보신에 좋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야생동물들을 위험으로 몰고 있다. 수요가 있기에 밀렵 행위는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효능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고, 외려 기생충 감염 같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미 한반도의 많은 동물이 인간에 의해 멸종당했다. 이제는 공존을 생각해야 할 때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제 목소리 봉사, 작지만 큰 도움 되길”[동영상]

    “제 목소리 봉사, 작지만 큰 도움 되길”[동영상]

    “안녕하세요. 이덕홥니다.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에 전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좀 이상하죠? 마음에 안 드는데, 다른 톤으로 한번 더 합시다.” 지난달 24일 서울 동교동의 한 녹음실에서 귀에 익숙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국민탤런트’ 이덕화씨. 보건복지부의 독거노인 안부전화 사업인 ‘사랑잇는 전화’에 ‘목소리 봉사’로 기꺼이 참여하는 이씨를 만나 봉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고령화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들어봤다. “부탁해요~.” 이덕화 이름 석 자를 들으면 그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귓전에 울린다. 이씨가 이날 녹음실을 찾은 이유는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콜센터의 안내멘트를 녹음하기 위해서다. 콜센터(1661-2129)로 전화를 걸어오는 노인들은 친숙한 그의 목소리와 함께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받게 된다. 이씨는 스스로를 “봉사라는 개념조차 몰랐던 사람”이라며 “내가 가진 작은 재능(목소리)을 나누는 것뿐”이라고 한껏 자신을 낮췄다. “연예인 봉사단체인 ‘100인 이사회’가 지난해 출범했는데, 그 무렵 최수종씨가 여기에 같이 동참하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해왔어요. 솔직히 봉사의 참뜻도 모르고, 남의 일에 시선을 돌릴 경황도 없이 살아왔지만 봉사라는 게 굳이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눔행사에 제가 못 나갈 때는 다른 사람이 나가면 되고, 사람이 없으면 또 제가 하면 되고…. 독거노인 사업도 큰 부담감이나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봉사하고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사)좋은사회를 위한 100인 이사회는 대중문화예술인들이 주축이 된 연예인 나눔봉사단체다. 소외계층에 대한 봉사뿐만 아니라 공연 기부, 예술인 지원 등의 활동도 벌인다. 복지부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의 후원단체이기도 하다. 인터뷰에 앞서 100인 이사회는 이씨가 이번 독거노인사랑잇기 사업의 홍보대사로 참여하는 것이 아님을 재차 강조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을 홍보대사로 ‘모시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연예인이 ‘얼굴마담’으로만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한사코 이를 거절했다. “나눔의 의미도 모른다.”며 애써 자신을 낮췄지만 이번 ‘목소리 봉사’의 배경에는 노인세대를 바라보는 이씨의 애틋한 마음이 있었다. 30년 전, 자신이 타고 가던 오토바이가 버스와 충돌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해 그가 생과 사의 고통을 겪었던 일은 잘 알려진 사실. 그 사고 때문에 전신이 망가져 무려 3년여 동안 병실에 누워 지내던 그는 당시 옆 병실에 입원 중이던 부친인 영화배우 고(故) 이예춘 옹의 임종을 바로 곁에서 지켜봐야 했다. 당시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를 여유도, 능력도 없던 그에게 물심양면의 도움을 줬던 이들이 바로 선배 배우들이었다. “2년 전부터 한국 영화배우협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전임인 배우 안성기씨만큼 제가 잘할 수 있을지도 고민스럽고, 부담도 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노인이 된 선배들에게 선친의 장례식 때 진 큰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일이라고 생각해 회장직을 맡았죠. 제가 부상으로 몸도 움직일 수 없을 때 선배들이 합심해서 장례를 치러 줬습니다. 그분들이 이제 다 노인이 되신 거죠. 요새 드라마 촬영장엘 가면 제가 최고령인데, 배우협회에 가면 제가 제일 어려요. 한국영화 초창기부터 활약했던 분들이 70세가 넘었는데, 이런 분들이 200여명이나 됩니다. 그분들 뵈면 한분, 한분 인사하느라 머리를 들 수가 없죠. 이런 모습이 고령화 사회의 한 단면 아니겠습니까.” 부친 세대 연기자들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에 안타까움이 배어났다. 그런 그의 안타까움이 자연스레 노인들을 위한 봉사로 이어졌겠다 싶었다. “그런데 선배님들 생활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습니다. 이 분들 때문에 지금 한국영화가 있고, 드라마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겉보기에 화려한 배우들의 노년이 이렇게 어려운데 다른 일반 노인들의 삶은 어떻겠습니까.” 선배 배우들의 소외된 현실을 털어놓으며 이씨는 “속이 상한다.”며 더욱 안타까워했다. 사실이 그랬다. 은막에서, 브라운관에서 화려한 모습만 보여줬지만 정작 자신들의 미래에는 투자할 수 없는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사회가 그랬고, 풍조 또한 그런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우리 선배 배우들은 자기 건강을 잘 안 돌봐서 그런지 단명하신 분이 꽤 많습니다. 그분들 보면 억울하고 속이 상합니다. 어떤 분은 배우협회에서 회비 얘기를 꺼내면 ‘10년 동안 출연 한번 한 영화가 없는데 어떻게 회비를 내냐.’고도 하십니다. 우리 선배들 중에는 가난한 독거노인과 생활이 크게 다르지 않은 분들도 많아요. 이렇게 어렵게 살다 돌아가신 분들 소식을 들으면 죄책감까지 느낍니다.” 선배 배우이자 부친인 이예춘 옹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도 재차 전했다. ‘피아골’, ‘단종애사’, ‘살인마’ 등 3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이 옹은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성격파 배우로 당대를 풍미했다. “아버지는 제 옆 병실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병실에 같이 앉아 있다가 들어가서 자겠다며 나가셨는데 갑자기 이상이 생기셨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그때 저는 걸을 수 없어서 벽을 짚고 아버지 병실까지 갔죠. 결국 돌아가셨지만 저는 당시 큰절로 아버지를 보내드리지도 못할 만큼 부상이 심각했습니다.” 그는 젊은 세대가 고령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젊은 배우들에게 ‘흔적도 없이 앞서 살아온 분들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고 늘 강조한다.”면서 “혼자 살다가 고독사하는 노인들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씨가 독거노인사랑잇기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던 또다른 이유는 바로 ‘목소리’ 때문이기도 하다. 중후함과 익살스러움을 동시에 가진 그만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연유한 걸까. “제 아버지 목소리는 저보다 더 이상했어요(웃음). 외모도 변변치 않은 할리우드 배우들 중에는 스크린으로 보면 오히려 무게감이 있고 커 보이는 이들이 있어요. 이들의 공통점이 바로 목소리입니다. 저도 체격이 크진 않고, 인물도 뭐 별로지만 항상 목소리를 염두에 두고 연기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렇게 목소리 녹음도 하게 됐고요.” 이제 앞으로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에 전화하는 전국의 노인들은 매일 이씨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이씨는 다시 한번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꼼꼼히 살펴 들은 후 녹음실을 나섰다. 그는 작은 봉사라고 했지만 그 울림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작은 참여지만 이 사업에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응원하며 예의 호방한 웃음을 웃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이용원칼럼] 밥그릇 싸움, 장관의 딸, 공정사회

    [이용원칼럼] 밥그릇 싸움, 장관의 딸, 공정사회

    사법연수원생들이 ‘밥그릇 싸움’을 하느라 ‘집단행동’을 했대서 연일 시끄럽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새로 연수원에 들어간 42기생 974명 가운데 520여명이 지난 2일 열린 임명식에 불참한 데 이어 3일에는 844명이 성명서를 낸 데 따른 것이다. 신임 연수원생들만 나선 게 아니다. 41기생들 역시 따로 성명을 발표했다. 이처럼 사법연수원생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까닭은 법무부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 가운데 일부를 로스쿨원장에게서 추천받아 미리 검사로 임용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로스쿨생들을 검사로 지명하면 연수원 졸업생들에게 돌아갈 검사 자리가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에 밥그릇 싸움 같은 성격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밥그릇 싸움이란 말에는 이기심·비열함 같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묻어 있기에, 이 사태를 일단 밥그릇 싸움으로 규정하면 도덕적 측면의 비판만이 가능할 뿐 본질은 흐려진다. 본질은 어디까지나 로스쿨생을 검사로 입도선매(立稻先賣)하는 게 옳으냐 그르냐이다. 사법연수원생과 로스쿨생은 과거(선발 과정) 현재(신분) 미래(법조계 진출)가 전혀 다르다. 연수원생은 건국 이래 국가가 시행한 고시에서 합격한, 능력을 검증받은 인재들이다. 반면 로스쿨생은 가능성을 믿고 (전문)대학원에 입학한 법조인 지망생에 불과하다. 현재 신분도 현격하게 차이 난다. 연수원생은 세금에서 월급을 받는 별정직 공무원이다. 그러나 로스쿨생은-이름은 거창하게 들릴지 몰라도-그냥 학생이다.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 연수원생은 연수를 마치면 판사·검사 등을 지원해 성적에 따라 선발된다. 로스쿨생은 학업을 마치고도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 비로소 법조인 자격을 갖추게 된다. 나라에서 돈들여 키우는 연수원생도 성적에서 밀리면 검사가 되지 못하는데, 학생 신분인 로스쿨생을 검사로 미리 점찍어 놓는다고? 이쯤 되면 지난해 늦여름 우리 사회를 더욱 뜨겁게 달군 ‘장관의 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유명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딸을 특채하려고 시험위원 선정·심사 과정, 응시 요건, 자격 공고 등 전 과정에서 법령을 위반하거나 관행을 어겼다. 이후 중앙정부와 지자체·공공기관 등에서 벌어진 특채 비리가 잇달아 드러났고 결국 행정고시를 대신하는 5급 공무원 채용에서 각계 전문가를 절반까지 뽑으려던 행시 개편안이 물 건너 갔다. ‘장관의 딸’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비리 노출에서 기득권층이 신분 세습에 얼마나 집요한지를 우리 국민은 실감했다. 그러하기에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 가지 않는 이번 ‘로스쿨생 사전 검사 임용’ 계획을 또 하나의 ‘현대판 음서(蔭敍)’ 제도로 여기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하반기의 국정 목표로 ‘공정 사회’를 제시했다.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려면 각 분야에서 절차의 투명성, 평가의 객관성, 기회의 균등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가 현재 나아가는 방향은 정반대이다. 로스쿨원장 추천을 받아 학생을 검사로 사전 점지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투명성, 객관성, 기회 균등 어느 것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법무부 주장처럼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려는 차원이라면 관계 법령을 제정·개정해 정당성을 갖춰야 한다.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현실에서 가난한 집 자녀는 갈 수 없는 로스쿨 출신을 우대하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아울러 연수원생들의 집단행동에 관해서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절대왕권이 존재하던 조선시대에도 성균관 유생들은 잘못된 일에 권당(捲堂·출석 점검에 나가지 않음, 단식투쟁을 겸함), 공관(空館·대자보를 붙이고 성균관에서 철수)등의 집단행동을 했다. 하물며 이 시대에 연수원생들이 임명식에 참석하지 않은 게 뭐 그리 대수인가. 그런데도 ‘징계’ 운운하는 발언이야말로, 앞으로 이 사회의 법과 정의를 지켜 나가야 할 예비 법조인들을 말 잘 듣는 ‘어린 양’으로 순치하려는 건 아닌지 따져 볼 일이다. ywy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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