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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한국인의 사회적 DNA’ 시험…사회적 지위의 세습은 아닐까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한국인의 사회적 DNA’ 시험…사회적 지위의 세습은 아닐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 2일 2018학년도 수능 성적 평가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자료에 따르면, 여학생과 재수생이 강세였다. 대도시 학교, 그중 사립 학교들의 강세도 여전했다. 그러고 보니 2019학년도 수능이 채 50일도 남지 않았다.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조바심은 말할 것도 없고, 학부모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숨죽이며 살고 있다. 수능은 대표선수일 뿐 대한민국은 각종 시험으로 점철된 공간이다. 어려서부터 각종 시험을 거쳐야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었기에 한국인들에게 시험은 일상이었다. ‘시험국민의 탄생’의 저자 이경숙은 시험이 “한국인의 사회적 DNA”라고 강조한다. 때론 시험에서 인생의 희망을 찾았고, 그 희망이 좌절로 바뀌는 경험도 해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불공정한 세상에서 시험을 통해 그나마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에는 간혹 이런 일이 있었지만, 이젠 이런 일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적 불평등이 가속화되면서 시험마저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 고려 광종이 과거제를 도입할 때만 해도, 가문의 배경 없는 신진 세력을 등용하기 위한 개혁 정책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중심으로 하나의 교육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시험이 응시자들의 사고를 통일시키는 지름길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모든 답이 유학 경전으로만 수렴되었다. 과거는 신분제를 공고히 하는 기제였고, 유학사상의 한계 속에 스스로와 사회를 가둘 뿐이었다. 과거는 느슨하지만 강력한 통치 방식이었다. 외세의 영향을 비교적 많이 받았던 만큼 각종 외국어는 이 땅에서 권력의 핵심에 들어가는, 아니 권력에 기생하는 훌륭한 장치였다. 일제시대에는 일어, 해방 후에는 영어 만능시대였다. 미군정이 시작되고 영어는 ‘시대정신’이 되었는데, 새롭고 개방적이고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정신으로까지 칭송받았다. 무엇보다 출세의 정신이기도 했다. 오늘날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영어야말로 우리 시대의 최고 경쟁력이라는 믿음만큼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시험은 서열주의를 강화한다. 서열주의를 정당화하는 논리의 바탕에는 ‘능력주의’가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이 출세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능력주의와 결합한 서열은 개인에게 무한대의 투자와 노력을 강요한다. 어렵게 획득한 서열인 만큼 서열 붕괴에 대한 두려움도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이 대목이 저자가 왜 우리 사회가 시험에 이토록 집착하는지 묻는 이유 중 하나다. 책은 딱딱한 사회적 함의만 나열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도 커닝이 있었다는 사실, 그 명칭이 ‘방망이질’이라는 이야기, 1930년대부터 객관식 시험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성적표 조작이 동서고금의 흔한 일이라는 것도 알려준다.저자는 시험이 한 개인의 진로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얼개를 만들고 바꿔왔다”고 말한다. 좋은 것도 많지만 ‘사회적 지위의 세습’과 같은 나쁜 것들도 제법 많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배우고자 하는 이들은 원하는 곳에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정의를 위해서, 선발이 부의 대물림 통로가 되지 않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시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다면, 고쳐 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험국민의 탄생’에서 그 몇 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어 보인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 美서 ‘뇌 먹는 아메바’ 사망자 2년만에 발생…리조트 폐쇄

    美서 ‘뇌 먹는 아메바’ 사망자 2년만에 발생…리조트 폐쇄

    이른바 ‘뇌 먹는 아메바’로 알려진 기생충에 의한 사망 사례가 미국에서 또다시 발생해 관계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CNN 등 현지언론은 3일(현지시간) 텍사스주(州)에 있는 한 리조트를 방문했던 20대 남성이 ‘뇌 먹는 아메바’에 감염돼 사망한 것으로 밝혀져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뇌 먹는 아메바’ 파울러 자유아메바(Naegleria fowleri)에 감염돼 사망한 남성은 뉴저지주(州) 벤토너에서 사는 파브리치오 스타빌(29)이다. 그는 지난달 8일 텍사스 와코에 있는 리조트 BSR 케이블파크를 방문했으며 6일 뒤인 14일 증상을 보였다. 가족과 친구 등 지인에 따르면, 이날 스타빌은 잔디를 깎던 중에 심한 두통을 호소했다. 이후 그는 약을 먹고 잠들었지만 오히려 다음날이 되자 상태가 악화됐다. 말을 할 수 없고 스스로 일어날 수도 없어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각종 검사가 진행됐고 의료진은 그의 뇌척수액에서 파울러 자유아메바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단이 너무 늦어진 탓에 그는 마땅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이틀 만에 숨을 거뒀다. 이에 따라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감염 장소를 찾기 위해 해당 리조트의 다양한 곳에서 표본을 채취하며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현지 보건당국과 협력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리조트 측은 당국에 협조하기 위해 당분간 시설을 폐쇄 조치했다. CDC에 따르면 파울러 자유아메바는 호수나 온천 등 따뜻한 민물에서 주로 번식하며 사람의 코로 들어가면 뇌까지 침투할 수 있다. 환자는 원발성 아메바 수막뇌염을 일으키며 대부분 죽음에 이른다. 그렇다고 해서 생존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3년 아칸소주(州)의 12세 소녀는 확진 이후 항진균제인 암포테리신B를 투약받은 뒤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텍사스주에서는 2005년 이후 원발성 아메바 수막뇌염 발병 사례가 지금까지 9건 보고됐다. CDC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1960년대 이후 연간 0건에서 8건이 보고됐다. 2016년에는 5건, 지난해에는 0건으로 없었지만 올해에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파울러자유아메바 감염 사례는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만·파키스탄·타이완·일본 등 우리나라와 인접국가에서 아메바성 뇌척수막염 감염사례가 보고되고 있어 우리나라 역시 경각심을 갖고 실태조사를 벌일 필요가 있다고 질병관리본부가 지적한 바 있다. 사진=고펀드미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가을의 짙은 풍미를 담은 이탈리아 포르치니 버섯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가을의 짙은 풍미를 담은 이탈리아 포르치니 버섯

    한번 상상해 보자. 날짜와 시간을 알리는 달력도 시계도 없던 시절,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어떻게 인식했을까. 가장 직감적인 건 피부로 느껴지는 공기의 온도다. 따스함과 싸늘함 사이에서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변했다는 걸 알 수 있었으리라. 무성한 풀잎과 꽃이 피고 지는 동안 바뀌는 풍경 또한 계절을 알리는 신호다. 촉각과 시각 말고도 계절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바로 식탁 위, 입안에서다. 가을은 미식가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계절이다. 다른 계절에서는 쉬이 느끼기 힘든 진하고 깊은 풍미를 가진 재료들을 맛볼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이탈리아 식탁에서 느낄 수 있는 가을의 전령은 뭐니 뭐니 해도 포르치니 버섯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자연산 송이쯤 되는 위상이랄까. 몸통은 통통하고 갓 부분은 마치 햄버거 빵의 윗부분처럼 도톰하다. 날씬한 다른 버섯과 달리 푸짐한 모양새 덕에 ‘돼지 버섯’ 즉, ‘풍기 포르치니’란 이름을 얻었다. 이탈리아의 포르치니와 한국의 송이버섯은 각각 그물버섯목과 주름버섯목으로 종류는 엄연히 다르지만 유사한 점이 꽤 있다. 먼저 둘 다 인공재배가 힘들다. 버섯은 크게 살아 있는 나무에 기생해 양분을 공유하며 자라는 버섯과, 죽은 식물이나 퇴비의 영양분을 흡수해 자라는 버섯으로 구분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환경만 조성해 주면 대량 재배가 가능하지만 전자는 아직 쉽지 않다. 숲을 누벼야 하는 채집에 의존하니 값이 비싼 건 당연지사. 송이버섯이 비싸게 팔리는 것처럼 포르치니도 이탈리아에서 트러플로 불리는 송로버섯 다음으로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 송이버섯은 대개 소나무 근처에서 자란다. 포르치니 버섯도 마찬가지다. 주로 소나무 주변에서 자라는데 가끔 밤나무나 가문비나무 근처에서도 발견된다. 가을이 야생버섯의 제철인 이유는 버섯의 생육주기와 관련이 있다. 소나무 뿌리에 자리잡은 버섯균이 봄여름 내내 양분을 한껏 모아두었다가 9월이 되면 포자를 퍼뜨리기 위해 땅 위로 솟아 모습을 드러낸다. 땅에서 갓 따낸 두 버섯에선 마치 진한 소나무향 향수를 입안에 뿌린 것만 같은 날카로운 숲 내음을 느낄 수 있다.지역마다 시차는 있지만 선선한 바람이 부는 9월에서 10월이면 포르치니의 계절이 시작된다. 시장 매대에 신선한 포르치니 버섯이 주연으로 떠오르는 시기다. 가끔 품질 좋은 포르치니가 담긴 상자를 든 방문 판매원이 식당에 찾아오기도 한다. 이쯤 되면 거의 모든 식당에서 포르치니 메뉴가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르치니를 넣은 파스타부터 포르치니로 속을 채운 이태리식 만두 라비올리, 스테이크와 곁들여 나오는 구운 포르치니, 그리고 포르치니 향을 머금은 리조토까지. 원래 있던 요리에 포르치니 버섯만 넣으면 훌륭한 제철 메뉴로 변한다. 항상 새로운 메뉴를 고민하는 요리사들에게 포르치니 버섯은 가을 한철이나마 메뉴개발 걱정을 덜어 주는 반가운 존재이기도 한 셈이다. 가을에 수확한 포르치니는 1년 내내 사용할 수 있도록 대부분 말린 형태로 유통된다. 이탈리아를 방문한 여행자들이 양손에 하나씩 사 오는 건조 포르치니가 그것이다. 바짝 말린 포르치니는 신선한 포르치니와는 또 다른 맛의 뉘앙스를 갖고 있다. 좀더 부드럽고 짙은 감칠맛을 낸다. 마치 말린 표고버섯의 인상과 닮았다. 말린 포르치니는 따뜻한 물에 불려 사용하는데 생포르치니에 비해 그 사용처가 무궁무진하다. 포르치니를 불린 물은 짙은 감칠맛을 온전히 담고 있어 그 자체로 육수나 소스에 쓰기도 한다. 버섯은 오랜 시간 끓여도 조직이 뭉개지지 않는 유일한 식재료이기에 장시간 조리하는 스튜에도 많이 사용된다. 버섯이 가진 식재료적 위치는 독특하다. 대부분의 식재료가 동식물인데 버섯은 이도 저도 아닌 균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식물도 동물도 아니면서 조리하면 깊은 감칠맛을 내는 기특한 식재료이기도 하다. 버섯의 80~90%는 수분이다. 이는 수분 함량을 조절하면 다양한 방식의 맛과 질감을 낼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신선한 포르치니 버섯을 기름 두르지 않은 마른 열에 천천히 익히면 원래의 날카로운 향은 반감되지만 감칠맛이 더욱 도드라진다. 얼마나 열을 가해 수분을 증발시키냐에 따라 식감도 달라진다. 살짝 익혀 부드럽게 먹을 수 있고, 바짝 익히면 마치 고기를 씹는 질감을 줄 수도 있다. 다른 식재료도 마찬가지이지만 버섯 조리에 ‘가장 맛있게 먹는 법’ 같은 모범답안은 없다. 의도와 목적에 따라 조리방식이 취사선택될 뿐이다.
  • [영화 리뷰] 주연이 된 스파이더맨 조연 캐릭터

    [영화 리뷰] 주연이 된 스파이더맨 조연 캐릭터

    이질감 없는 CG·격투신 탄성 30여분 무리한 편집은 아쉬워3일 개봉한 루벤 프레셔 감독의 영화 ‘베놈’은 스파이더맨에 등장하는 조연 캐릭터 베놈(톰 하디 분)의 탄생을 다룬 일종의 ‘파생 영화’(스핀오프)다. 베놈은 앞서 2007년 영화 ‘스파이더맨 3’에 등장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아예 주인공으로 나선다. 영화는 거대 제약회사인 라이프 파운데이션 창립자 칼튼 드레이크(리즈 아메드)가 외계에서 발견한 생명체 ‘심비오트’를 가져오다 사고가 나면서부터 시작한다. 심비오트 가운데 하나인 ‘베놈’이 기자인 에디 브록(톰 하디 분) 몸에 들어간다. 심비오트는 동물을 숙주로 삼는 기생 생명체다. 지능이 있으며 강력한 운동 능력과 변형 능력을 지녔다. 심비오트가 들어간 브록은 위기 상황이면 2m가 넘는 근육질 괴물로 변한다. 동공 없는 커다란 흰 눈, 수십개의 날카로운 이빨과 날름거리는 긴 혀를 가진 공포스러운 모습으로, 인간의 머리를 통째 뜯어 먹기를 즐긴다. 영화는 베놈의 강력한 신체 능력을 탁월하게 표현한다. 범고래처럼 번들거리는 피부는 컴퓨터그래픽(CG)으로 이질감 없이 처리했다. 검정 고무 같은 수백개 촉수가 브록의 몸을 감싸고, 팔다리가 고무처럼 쭉쭉 늘어나면서 적을 공격하는 격투신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다. 베놈이 들짐승처럼 빌딩을 내달리는 장면을 비롯해 오토바이와 자동차 추격신 등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다만, 브록이 칼튼 드레이크를 인터뷰한 뒤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그 과정에서 베놈과 공생하며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이야기 구조가 다소 아쉽다. 원작 만화에서 베놈은 선을 상징하는 스파이더맨과 연쇄살인범 클리터스 캐서디의 몸에 심비오트가 들어가 만들어진 절대 악 ‘카니지’의 중간에 위치하는 캐릭터다. 선과 악의 경계를 오가며 스파이더맨을 돕거나 배신하는 게 바로 베놈의 매력이다. 그러나 브록의 성격 묘사가 산만해 베놈에게도 무게가 제대로 실리지 못한다. 베놈이 정의감 넘치는 브록에게 감화되는 과정을 치열하게 풀어내지 못해, 베놈이 선한 쪽으로 돌아서는 장면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긴장감이 풀리는 느낌이 드는 이유다. 관람 등급을 낮추려 30여분을 무리하게 잘라냈는데, 그 때문일 수 있다. 앞서 스파이더맨이 영화에 카메오로 등장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지만, 이번 편에 아예 등장하지 않는 점도 아쉽다. 스파이더맨은 마블코믹스의 캐릭터 가운데 하나지만, 판권은 소니픽처스가 갖고 있다. 과거 마블코믹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때 스파이더맨의 판권을 소니픽처스에 팔았기 때문이다. 마블스튜디오는 지난 10년 동안 스파이더맨 없이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헐크’ 등을 주축으로 삼아 나름의 ‘세계관’(영화 속 인물들이 시·공간적 설정을 공유하고, 각 스토리가 차기작에도 영향을 끼치는 이야기 구조)을 탄탄히 구축했다. 베놈 제작사인 소니픽처스는 ‘스파이더맨만의 세계관’을 구축해야 한다. 여기에 베놈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그 활약은 결국 속편에서나 확인할 수 있겠다. 107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베일 드러낸 ‘베놈’…스파이더맨 시리즈 이끌어갈 수 있을까

    베일 드러낸 ‘베놈’…스파이더맨 시리즈 이끌어갈 수 있을까

    3일 개봉한 루벤 프레셔 감독의 영화 ‘베놈’은 스파이더맨에 등장하는 조연 캐릭터 베놈(톰 하디 분)의 탄생을 다룬 일종의 ‘파생 영화(스핀오프)’다. 베놈은 앞서 2007년 영화 ‘스파이더맨 3’에 등장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아예 주인공으로 나선다. 영화는 거대 제약회사인 라이프 파운데이션 창립자 칼튼 드레이크(리즈 아메드 분)가 외계에서 발견한 생명체 ‘심비오트’를 가져오다 사고가 나면서부터 시작한다. 심비오트 가운데 하나인 ‘베놈’이 기자인 에디 브록(톰 하디 분) 몸에 들어간다. 심비오트는 동물을 숙주로 삼는 기생 생명체다. 지능이 있으며 강력한 운동 능력과 변형 능력을 지녔다. 심비오트가 들어간 브록은 이에 따라 위기 상황이면 2m가 넘는 근육질 괴물로 변한다. 동공 없는 커다란 흰 눈, 수십 개의 날카로운 이빨과 날름거리는 긴 혀를 가진 공포스런 모습으로, 인간의 머리를 통째로 뜯어 먹기를 즐긴다. 영화는 베놈의 강력한 신체 능력을 탁월하게 표현한다. 범고래처럼 번들거리는 피부는 CG(컴퓨터그래픽)로 이질감 없이 잘 처리했다. 검정 고무 같은 수백 개 촉수가 브록의 몸을 감싸고, 팔다리가 고무처럼 쭉쭉 늘어나면서 적을 공격하는 격투신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다. 베놈이 들짐승처럼 빌딩을 내달리는 장면을 비롯해 오토바이와 자동차 추격신 등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다만, 브록이 칼튼 드레이크를 인터뷰한 뒤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그 과정에서 베놈과 공생하며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이야기 구조가 다소 아쉽다는 느낌을 준다. 원작 만화에서 베놈은 선을 상징하는 스파이더맨과 연쇄살인범 클루투스의 몸에 심비오트가 들어가 만들어진 절대 악 ‘카니지’의 중간에 위치하는 캐릭터다. 선과 악의 경계를 오가며 스파이더맨을 돕거나 배신하는 게 바로 베놈의 매력이다. 그러나 브록의 성격 묘사가 산만해 베놈에게도 무게가 제대로 실리지 못한다. 베놈이 정의감 넘치는 브록에게 감화되는 과정을 풀어내는 과정이 다소 치열하지 못해, 베놈이 선한 쪽으로 돌아서는 장면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영화 클라이막스에서 영화의 긴장감이 풀리는 느낌이 드는 이유다. 관람 등급을 낮추려 30여분을 무리하게 잘라냈는데, 그 때문일 수 있다. 앞서 스파이더맨이 영화에 카메오로 등장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지만, 이번 편에 아예 등장하지 않는 점도 아쉽다. 스파이더맨은 마블코믹스의 캐릭터 가운데 하나지만, 마블스튜디오가 아닌 소니픽처스가 판권을 가지고 있다. 과거 마블코믹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때 스파이더맨의 판권을 소니픽처스에 팔았기 때문이다.마블스튜디오는 지난 10년 동안 스파이더맨 없이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헐크’ 등을 주축으로 삼아 나름의 ‘세계관’(영화 속 인물들이 시·공간적 설정을 공유하고, 각 스토리가 차기작에도 영향을 끼치는 이야기 구조)을 탄탄히 구축했다. 베놈 제작사인 소니픽처스는 ‘스파이더맨만의 세계관’을 구축해야 한다. 여기에 베놈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그 활약은 결국 속편에서나 확인할 수 있겠다. 107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2018 노벨생리의학상은 ‘면역항암치료법’ 개발한 美日 과학자에게

    2018 노벨생리의학상은 ‘면역항암치료법’ 개발한 美日 과학자에게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면역 항암제 개발의 기틀을 마련한 미국과 일본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노벨위원회는 1일(현지시간)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제임스 앨리슨(70) 미국 텍사스대 MD앤더슨 암센터 교수와 혼조 타스쿠(76·本庶 佑)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가 선정됐다고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이들 2명의 과학자는 면역세포의 작동을 막는 생체 내 제동장치를 제거해 면역세포로 암 조직을 공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류와 암과의 싸움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했다. 앨리슨 교수는 2015년에 ‘예비 노벨상’으로 알려진 래스커상 임상의학부문에서 수상했으며 2016년에는 학술정보 서비스 기업인 톰슨로이터(현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에서 선정한 노벨 생리의학상 유력후보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일본은 혼조 교수의 이번 수상으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23명으로 늘어나 기초과학 강국의 면모를 다시 한 번 과시했다. 앨리슨 교수는 인체 면역세포 중 하나인 T세포에 붙어있는 ‘CTLA-4’라는 단백질이 면역세포의 활성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CTLA-4를 억제하는 ‘안티 CTLA-4’를 만들어 T세포를 이용한 암 살상력을 증강시키는 방법을 찾았다. 혼조 교수는 면역 활동을 억제하는 ‘PD-1’이라는 단백질을 발견하고 PD-1 활동을 억제함으로써 인체 면역시스템을 활성화시켜 암을 치료하는 면역 항암 치료법을 개발했다. 이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면역 항암제인 ‘옵디보’와 ‘여보이’는 다양한 암 치료에서 단짝처럼 병행사용되고 있다.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이대호 교수는 “앨리슨과 혼조 교수가 발견한 면역관문수용체와 이를 이용한 면역 항암제는 기존 암치료법들보다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장기간 지속돼 암의 완치나 장기생존을 바라볼 수 있게 함으로써 인류의 건강에 크게 기여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에게는 상금 900만 스웨덴크로나(11억 2491만원)가 주어지는데 각각 450만 스웨덴크로나씩을 나눠 갖게된다. 노벨위원회는 2일 물리학상, 3일 화학상, 5일 평화상, 8일 경제학상 수상자를 차례로 발표한다. 시상식은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기생 시인의 겨울사랑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기생 시인의 겨울사랑

    - 기생 시인 매창(梅窓)의 '겨울 사랑' 우리 옛시조 중 가장 동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시조 중 하나가 매창의 다음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 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이화는 배꽃이다. 배꽃은 갈래꽃이다. 변덕스런 봄바람이 한바탕 불어제끼면 낱낱이 떨어진 흰 꽃잎들이 마치 빗낟처럼 난분분 허공을 비산한다. 그래서 이화우라 한다. 이처럼 이화우, 추풍낙엽 같은 동적인 소재, 그리고 봄에서 가을로 건너뛰는 장면 바뀜 등으로 위의 시조는 마치 한 편의 동영상을 우리 앞에 펼쳐 보여주는 듯한 절창이다. 그래서 예전엔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매창은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직업은 기생이었다. 그 아비가 부안현의 아전이었는데, 매창은 그마나도 첩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갈데없는 천출이다. 하지만 자질이 영특했다. 어릴 때부터 한문을 배웠고, 거문고 타기를 즐겨 상당한 기량의 연주 솜씨를 지니기에 이르렀다. 시재(詩才)는 일찍 드러났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떴다. 시 잘 짓고 거문고 잘 타는 천출 처녀가 아버지마저 일찍 여의었으니 갈 길은 대강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기적에 이름을 올리고 기생이 되었다. 나이 16살 때였다. 거문고 연주가 빼어날뿐더러 시재까지 출중한 이런 조합이 그리 흔치는 않다. 명기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이런 소문을 듣고 멀리서 시인묵객, 한량들이 찾아왔다. 때로는 손님 중 술이 거나해지면 집적대는 이들이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매창은 아무에게나 몸을 맡기는 여인은 아니었다. 다음 '증취객(贈醉客)' 제목의 오언절구를 보면 그녀의 시재와 마음자리까지 오롯이 드러난다. 醉客執羅衫 취하신 님 사정없이 날 끌어단 羅衫隨手裂 끝내는 비단적삼 찢어놓았지 不惜一羅衫 적삼 하날 아껴서 그러는 게 아니야 但恐恩情絶 맺힌 정 끊어질까 두려워 그러지 (신석정 역) 하지만, 험한 세파에 일찍 몸을 실었으니, 인생의 쓴 맛도 일찍 찾아왔다. 현감에게 수청을 들었으나 버림받고 말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렇게 빼어난 미색은 아니었다 한다. 이런 매창에게도 첫사랑이 찾아왔다. 임진란이 일어나기 1년 전 선조 24년(1591) 18살 때였다. 그런데 그 상대는 28살이나 연상인 유부남으로, 한양에서 이미 문명을 날리는 시인인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이었다. 부안에 놀러왔다가 매창을 찾아온 것이다. 매창과 마찬가지로 유희경 역시 천민 출신으로, 같은 천출 시인인 백대붕과 함께 유 · 백으로 일컬어지며 문단을 주름잡고 있었다. 매창이 유희경을 처음 만났을 때 한양에서 온 시객(詩客)이란 말을 듣자, '유희경과 백대붕 가운데 뉘신지요?' 물었다고 한다. 그만큼 촌은의 문명이 멀리 부안에까지 알려져 있었던 터이다. 두 사람은 28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깊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같은 천민이라 더욱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유희경은 묘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다. 상례에 아주 밝아 국상이나 사대부가의 상(喪)에 집례하는 것으로 이름이 났다. 또한 화담 서경덕계의 문인으로 기녀를 멀리하고 반듯한 선비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지만, 이때 매창을 만나 지족선사가 되고 말았다. 평생 처음으로 ‘파계’를 했던 것이다. 얼마 후 유희경이 한양으로 돌아가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통에 이들의 재회는 기약 없게 되었다. 유희경은 의병을 일으켜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화우' 시조는 이 무렵 첫사랑 유희경을 떠나보내고 난 후에 지은 것이다. 봄바람에 날리는 하얀 꽃잎처럼 그들의 사랑도 덧없고 아름다웠으리라. 이 무렵 그들이 사랑을 주고받은 많은 시들이 전한다. 이 고장 출신의 '촛불' 시인 신석정은 이매창, 유희경, 직소폭포를 가리켜 부안삼절(扶安三絶)이라 하였다.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를 일컫는 송도삼절을 본딴 모양이다. 어쨌든 유희경과의 첫사랑은 매창의 영혼에 깊은 각인을 남겼다. 그녀는 천리 밖 정인을 모질도록 그리워했고, 그것은 나중에 서러움과 한으로 응어리지기까지 했다. 한양의 유희경 역시 매창을 그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은 좀 다르지만, 다음의 시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娘家在浪州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我家住京口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相思不相見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 보고 腸斷梧桐雨 오동나무에 비 뿌릴 젠 애가 끊겨라 (懷癸娘, 허경진 역) 이처럼 독한 사랑이었지만, 시절은 그네들의 편이 아니었다. 7년 전쟁의 불길이 조선땅을 온통 휩쓸고 갔으며, 전후에도 세상이 어수선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구러 10년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줄곧 유희경만을 그리며 살던 매창에게 두 번째 남자가 나타났다. 이웃 고을 김제에 군수로 내려온 이귀(李貴)였다. 그는 율곡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절의가 곧아 나중에 인조반정에 앞장서 공신이 된 인물이다. 이런 인물에게 매창이 마음이 끌려 그의 정인이 되었던 것이다. 10년 동안 첫사랑 유희경으로 가슴앓이를 하던 매창에게 두 번째 정인으로 이귀를 만났으나, 그 만남 역시 오래 가지는 못했다. 환해(宦海)를 떠도는 이귀의 입장에서 매창을 수습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 남자마저 떠나보낸 매창은 사랑의 덧없음, 인생사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깊이 받아들였던 듯하다. 그 뒤 매창의 행로를 더터보면 그런 짐작을 아니 할 수가 없다. 매창에게 깊은 흔적을 남긴 유희경과의 두 번째 만남은 15년 만에 이루어졌다. 매창을 잊지 못한 유희경이 다시 부안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재회는 잠깐의 만남으로 끝났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뒤로 영원히 만나지 못했다. 짐작컨대, 15년의 세월이 이미 두 사람의 얼굴을 크게 바꿔놓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오랜 옛사랑은 다시 찾을 것이 못된다. 그냥 마음속 깊이 간직함만 못하다는 걸 여기서도 확인하게 된다. 이 재회 후 매창은 3년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37살의 한창 나이였다. 이승의 삶에서 더 이상 붙잡을 것이 없음에 깊이 절망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매창은 죽어서 부안읍 남쪽에 있는 봉덕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유언에 따라, 평생을 끌어안고 살며 고락을 같이했던 자기 거문고를 안은 채 묻혔다고 한다. 누구도 오래 머물지 않았던 매창의 옆에 거문고가 끝까지 함께했던 것이다. 그것만이 자신의 소유였던 모양이다. 그 뒤 사람들은 이곳을 매창이뜸이라고 부른다. 매창이 죽은 지 45년 만에 매창을 잊지 못하는 부안 사람들이 그녀의 무덤 앞에 빗돌 하나를 세웠다. 그로부터 다시 13년 뒤에 부안의 아전들이 중심이 되어 그녀가 남긴 시 중에서 구전되는 58편의 작품을 목판에 새겨 인근 사찰 개암사에서 <매창집>을 펴냈다. 시집이 나오자 하도 많은 사람들이 시집을 찍어달라 하여 개암사의 절 살림이 어려울 지경이었다는 말도 전한다. 허균의 누이인 허난설헌과 황진이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여류 시인으로 꼽히는 매창의 시는 "가늘고 약한 선으로 자신의 숙명을 여성적인 정서로 섬세하게 읊으며, 자유자재로 시어를 구사하는 데에 있다"는 평을 받는다. 세월이 한참 지나 매창 빗돌의 글씨들이 이지러진 1917년, 부안 시인들의 모임인 부풍시사(扶風詩社)에서 높이 4척의 비석을 다시 세우고 '명원이매창지묘(名媛李梅窓之墓)'라고 새겼다. 그전까지는 마을 나뭇꾼들이 벌초하며 무덤을 돌보았다고 한다. 가극단이나 유랑극단이 부안 읍내에 들어와 공연할 때도 먼저 매창 무덤을 찾아 한바탕 굿을 벌이며 시인을 기렸다. 바로 곁에는 명창 이중선의 묘가 있다. 지금도 음력 4월이면 부안 사람들은 매창의 제사를 모신다. 매창이 간 지 360여 년이 지난 1974년 어느 날, 매창뜸을 찾아온 시조 시인 가람 이병기가 그녀를 추모하며 다음과 같은 시조를 올렸다. 돌비는 낡아지고 금잔디 새로워라 덧없이 비와 바람 오고가고 하지마는 한 줌의 향기로운 이 흙 헐리지를 않는다 이화우 부르다가 거문고 비껴두고 등 아래 홀로 앉아 누구를 생각는지 두 뺨에 젖은 눈물이 흐르는 듯하구나 나빈상(羅衫裳) 손에 잡혀 몇 번이나 찢었으리 그리던 운우(雲雨)도 스러진 꿈이 되고 그 고운 글발 그대로 정은 살아 남았다 ('매창뜸' 전문) 한편, 매창의 첫사랑 유희경은 대시인으로 문명을 날리며 91살까지 천수를 누렸다. 그의 집은 경복궁 뒷담 너머 개울 가에 있었다. 가끔 궁궐 사람들이 담 너머로 그의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하얗게 늙은 모습이 마치 신선 같았다고 한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정유재란, 포연 속 목숨 걸고 싸운 ‘백성’ 1만명이 있었다

    정유재란, 포연 속 목숨 걸고 싸운 ‘백성’ 1만명이 있었다

    남원성/고형권 지음/구름바다/290쪽/1만 5000원 임진왜란은 알아도 정유재란은 잘 모른다. 남한산성에서 청과의 화친을 놓고 다퉜다는 김상헌과 최명길은 익숙하지만 남원성에서 6만여 왜적과 싸우다 죽어간 민중 1만여명은 모른다.소설 ‘남원성’은 후세가 잘 모르는 보통 사람들의 전쟁 이야기를 부지런히 좇았다. 정유재란은 임진왜란 중 화의 교섭이 결렬돼 1597년(선조 30년)에 일어난 두 번째 왜란이다. ‘명나라를 치기 위해 길을 빌린다’는 구실을 앞세웠던 임진왜란과 달리 정유재란은 ‘조선 정벌’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집중 포화를 맞은 호남, 그곳의 주요 거점이 남원성이었다. 저자에서 ‘대장’, ‘장군’으로 불리는 주인공 한물은 실상 대장도 장군도 아니다. 본디 승려였으나 전투에 참여한 이래 환속한 의병이다. 그의 친부는 무술도장을 운영하다 정여립 역모 사건에 연루돼 처형됐고, 이후 그는 ‘거상’ 윤 객주의 도움으로 아버지가 운영하던 도장의 사범이 된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왜장 고니시의 부하 ‘검은 야차’를 죽여 왜군들에게는 두려움으로, 저자에서는 칭송을 받는 인물로 떠오른다. 소설은 ‘비겁한 양반님네’들과 삶의 터전을 지키는 백성들을 대비해 보여 준다. ‘사농공상’의 끄트머리인 윤 객주는 전투의 근간이 되는 조직과 물자를 대는 든든한 ‘뒷배’다. 전투에 참가해 활을 쏘고 화포를 나르는 이들은 광대, 백정의 아들, 농군, 기생의 딸이다. 반면 ‘반상의 법도’ 운운하던 고 진사는 살 길을 찾아 제일 먼저 내빼는 인물이다. 조선의 ‘상것’으로 태어나 왜적 길잡이 노릇을 하는 강대길의 말이 뼈를 때린다(?). “조선의 양반들은 왜군보다 역적을 더 걱정합니다. 조선 왕도 왜군보다 상감 자리를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책에는 전투 장면에 대한 묘사가 길다. 작가는 ‘(의병들이) 맨주먹 붉은 피로 승리했다’는 사서의 기술에 의문을 품고, 조선의 화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러나 다양한 화포와 화차가 등장하지만 각각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지 않아 눈앞에 그림은 잘 안 그려진다. 왜적은 일종의 전리품으로 죽은 조선인들의 코를 베어 갔다고 한다. 책의 부제가 ‘코 없는 만인의 무덤’인 까닭이다. 이들 원혼을 ‘만인의총’으로 되돌리려면 이들을 기억하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기억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되기에.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열린세상] 교토 우지, 윤동주 시비를 찾아서/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열린세상] 교토 우지, 윤동주 시비를 찾아서/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일본 교토부 우지시(宇治市)는 우지차와 겐지 이야기(源氏物語)로 유명한 곳이다. 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우지 강변에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뵤도인(平等院)이 있다. 오사카 출장차 이곳을 들른 것은 태양이 작열하던 지난여름이었다. 역에 내리자 곤타니 노부코(紺谷延子) 부부가 밀집모자를 건네며 반갑게 맞이했다. 곤타니는 시인 윤동주 기념비건립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주부다. 우리 외교부의 도움으로 센다이에 김기림 기념비 건립이 결정돼 공부가 필요했다. 일본 기자의 소개로 곤타니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시비 건립의 긴 경위를 두어 줄에 요약한 회신 메일이 금방 왔다. 역경을 이겨 내고 시민의 손으로 건립한 자부심이 묻어났다.이곳에 시민의 손으로 윤동주 기념비를 세운다는 계획이 만들어진 것은 2005년이었다. 2002년에 발족한 ‘시인 윤동주를 기리는 교토의 모임’을 중심으로 기념비건립위원회가 설립되면서다. 기념비의 이름은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 평화학자 안자이 이쿠로(安齋育?)의 글씨로 새겼다. 그 안에도 인권을 옹호하는 활동을 통해 화해에 이르고자 하는 시비 건립운동의 정신이 담겼다. 기본적 인권을 부정당한 청년 윤동주를 기억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평화요, 화해에 이르는 출발점이었다. 곤타니는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에 참가해 그가 체포되기 두 달 전에 도시샤(同志社)대학의 동기생들과 우지 강변에 소풍을 다녀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이후로 그때 찍은 사진의 배경을 찾아 그의 마지막 행적을 기리는 것이 곤타니의 숙제가 됐다. 치안유지법에 희생된 윤동주를 기리는 것이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본에서 일어나지 않게 하는 길이라는 믿음에서였다. 우지 강변에는 야마센(山宣)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야마모토 센지(山本宣治)의 묘가 있다. 역시 치안유지법에 반대하다가 우익에 희생당했다. 우지에는 우토로 마을도 있다. 인권침해에 민감하게 반응해 저항하는 정신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윤동주의 생애 마지막 소풍지였다는 사실이 우지 시민을 움직였다. 역에서 택시로 5분 정도 달려 시비가 있는 우지 강변 신핫코다리(新白虹橋)에 도착했다. 지역 신문 기자들도 도착했다. 마침 일본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패전으로 이어지는 기간이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이 미흡한 한계가 있으나 전쟁에 대한 반성이 이 시기 일본 신문들의 주조를 이룬다. 지방 신문의 취재에 ‘올해 시작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일본이 적극 합류하는 것이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과오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시비 건립운동은 건립위원회 발족 후 2년 만에 시비가 제작될 때까지 순조로웠다. 교토의 조각가 다무라 다카시(田村隆)의 작품이다. 한국에서 날라 온 석판과 일본에서 채취한 석판을 나란히 세우고, 두 석판을 윤동주를 표상한 원기둥이 잇고 있다. 두 석판에는 각각 우리말과 일본어로 ‘새로운 길’을 새겨 넣었다. 윤동주의 대표시 ‘서시’의 일본어 번역이 일으킨 논란을 피한 것이나, 그 선택은 탁월했다. 그가 걷고자 했던 새로운 길에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상처가 더 선명히 드러난다. 기념비가 제작된 뒤 때마침 불기 시작한 혐한류의 광풍이 우지시에도 미쳐 어려움을 겪었다. 건립 부지를 제공할 교토부 당국은 윤동주와 우지시의 연고를 증명하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이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념비 제작을 위한 모임은 건립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운동 조직으로 바뀌었다. 교토부 지방검찰청에서 윤동주와 그의 사촌 송몽규의 판결문을 새로 발견한 것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모금 활동을 통해 형성된 네트워크를 모태로 건립위원회는 연구와 서명 활동을 전개했다. 과거를 지우려는 일본 우익의 준동 속에서 숨을 죽이는 일본인들이 있는 반면, 우지 시민처럼 과오의 기억을 새롭게 새기며 인권과 평화의 의지를 단련시키는 일본인도 있다. 기념비건립위 발족부터 12년, 2017년 10월 시비는 건립됐다. 체포되기 직전 25세의 청년 윤동주가 우지 강변을 배경 삼아 수줍게 웃는 사진을 보니 시비에 새긴 윤동주의 글귀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 조덕제 최종 유죄…피해자 반민정 “연기 빙자한 성폭력 사라져야”

    조덕제 최종 유죄…피해자 반민정 “연기 빙자한 성폭력 사라져야”

    영화 촬영 중 사전 합의 없이 여배우의 신체를 만진 혐의로 재판을 받은 배우 조덕제(50·본명 조득제)에게 최종 유죄가 선고됐다. 피해자인 배우 반민정은 4년간 법정공방이 끝난 13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기를 빙자한 성폭력 관행이 영화계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조덕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지만 존중할 수 없다”며 “스스로 떳떳하고 연기생활을 계속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이날 강제추행치상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덕제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조씨는 2015년 4월 영화 촬영 중 사전에 합의하지 않은 채 상대 여배우의 바지에 손을 넣어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강제로 추행한 혐의로 같은 해 12월 재판에 넘겨졌다. 문제가 된 장면은 조씨가 극중 배우자인 피해자를 때리고 성폭행하는 내용이었다.1심은 “피해자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수위가 높은 폭력과 성폭행 연기에 대해 감독과 조씨가 충분히 사과하지 않자 억울한 마음을 다소 과장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은 피해자인 여성 배우의 증언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다. 피해자가 사건 직후 촬영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요구하자 조씨가 잘못을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못한 점, 이 일로 조씨가 영화에서 중도 하차한 점 등이 판단 근거가 됐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피해자인 반민정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 그는 조덕제의 유죄 판결에 대해 “‘관행’이라는 이름의 폭력은 없어져야 하고 ‘연기를 빙자한 성폭력’은 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민정은 “이번 판결이 한 개인의 성폭력 사건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 영화계의 관행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좋은 선례로 남기를 바란다”며 “조덕제의 행위,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이라고 강조했다. 조덕제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더이상 법의 테두리에서 무죄를 소명할 기회가 없지만 스스로를 강제 추행범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스스로에게 떳떳한 만큼 본업인 연기생활을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신간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태화관의 드라마같은 부침도 조명

    신간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태화관의 드라마같은 부침도 조명

    전깃불이 들어온 거리에는 전차가 다니고, 일반인도 궁중요리를 맛볼 수 있다. 곳곳에 병원과 신문사와 여학교가 세워지고, 백정과 기생들도 서양인의 교회에 다닌다. 열강의 각축장이 된 암울한 현실 속에서 독립과 자주를 외치지만 신문물은 거침없이 쏟아지는 곳, 한성의 풍경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인 20세기 초 옛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전국역사지도사모임 지음·유씨북스 펴냄)가 나왔다. 이는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의 시리즈 2탄 격으로 120여년 전의 서울의 모습을 보여준다. 1부 ‘근대국가로의 시대적 요구’에서는, 고종의 근대화 프로젝트 중 하나인 ‘전기/전화/전차’를 시작으로 서양의학, 중등교육, 언론(신문), 여성교육 등 근대국가와 근대사회의 체제를 갖추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의 시대상뿐 아니라 조선의 제도와 비교하여 어떻게 다르고 새로운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모해가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어서 근대도시 한성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강몽 길’에서는, 동아시아 최초의 전기인 경복궁의 전기등소와 근대적 의미의 전기 사업인 전차, 김구의 살인사건과 사면과 관련한 고종의 전화 이야기를 소개한다. ‘서양의학 길’에서는,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를 조선의 의료제도에서 시작하여 국내외 정세와 맞물려 미국과 일본의 의료법과 제도가 들어와 어떻게 안착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중등교육 길’에서는, 시대의 혁명가 성삼문과 김옥균의 집 터에 어떻게 근대식 중등교육인 중학교와 고등보통학교가 세워졌는지 소개한다. ‘신문사 길’에서는, 개화와 근대화가 시작되며 열강의 각축장이 된 상황에서 언론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대두되어 등장한 근대 신문들을 소개하고 일제가 자행한 언론 탄압도 설명한다. ‘여학교 길’에서는, 왕후의 공간이 우연치 않게 어떻게 여성들을 위한 교육 현장으로 바뀌는지 소개한다. 갑신정변이 삼일천하로 끝나고,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조선은 더욱 위태로워졌다. 이에 고종은 구본신참 부국강병 자주독립을 꿈꿨고, 백성들도 신문물을 받아들이며 강해지고자 노력했다. 20세기 초 한성에서 볼 수 있는 개화와 근대화의 풍경은 열강의 압력도 있었지만 그에 맞서 자주독립을 위해 조선이 택한 길이었다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2부 ‘개화와 근대화의 한성 풍경’에서는, 요릿집이 된 순화궁을 시작으로 용산이 남의 땅이 된 사연, 파계 득도한 근대 지성인 만해, 육의전이 몰락한 자리에 세워진 근대 유통시설인 백화점의 등장, 조선 최고의 학촌 등 대화와 근대화의 한성 풍경을 담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소개한다. ‘태화관 길’에서는, 기생이 시중드는 요릿집에서 3·1독립선언을 했다고 논란이 된 태화관이 원래는 궁궐이었다가 이완용의 별장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말한다. 또한 당시 기생은 섹슈얼리티의 접대부가 아닌 지금의 만능 엔터테이너 아이돌이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용산 길’에서는 교통과 통신의 요충지인 청파역과 용산에 어떻게 일본인 거주지와 조선주둔군 부대 등이 들어서 남의 땅이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심우장 길’에서는, 계를 파하고 글로써 총을 대신한 만해를 통해 당시 지성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백화점 길’에서는, 조선 최고의 상권 육의전이 왜 몰락하게 되었는지, 그 자리에 최초의 근대적 민족 백화점이 들어서서 일본 백화점들과 어떻게 경쟁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대학로 길’에서는 조선의 대학로 반촌 이야기를 하면서 일제가 왜 대학로에 경성제국대학을 세웠고, 김창숙은 왜 목숨 걸고 성균관을 지켰는지 이야기한다. 격동의 시대 한성에는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와 병원과 교회에서 근대정신이 싹텄고, 서구 문물과 제도의 도입으로 사회 다방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대한제국을 전후한 개화와 근대화의 한성 풍경을 담은 이 책을 통해 당시 사회상과 근대화 초기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6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6

    서울신문은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호머 허버트(1863~1949), 노골적 친일 행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슨(1851-1908),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모두 등장합니다. 최근에야 국내외에 알려진 고종의 연해주 망명 시도 등 극비 내용도 담겨 있어 학계에 관심을 모읍니다. 서울신문은 이 소설 가운데 하나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12월 출간, 원제 : The cat and the king, 부제 : Billy and Bethell)를 번역해 연재 형태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6회>소녀는 하기와라(훗날 2대 조선총독이 되는 하기와라 슈이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그녀는 뭔가 비밀스런 내용을 말해주겠다는 듯 부드러운 눈길로 그를 끌어당겼다. 나는 곁눈질로 그들을 쳐다봤다. 소녀는 파리 스타일의 하늘거리는 실크 가운을 입고 멋진 모습으로 서 있었다. 윤이 나는 머리에 꽂은 새털 장식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그녀는 머리를 살짝 구부려 하기와라의 귀 가까이에 입술을 가져갔다. 이는 분명 친밀함의 표시이자 존경, 그리고 유혹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하기와라에게 잘 보이려는 듯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곧이어 은쟁반에 구슬이 굴러 가는 듯한 그녀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좋아~좋아~” 하기와라는 그녀에게 온 신경을 다 집중하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권력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중화전(왕의 업무공간) 쪽으로 가자고 손짓했다. 소녀는 나를 지나치며 살짝 웃어보였다. 우리가 꾸민 계획이 잘 풀려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중화전에는 황제(고종)가 있었다. 그는 대한제국이 망해 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발 아래 놓인 여러 올가미들에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노인이 된 황제는 오로지 낡은 것밖에 남지 않은 이 궁 안에서 소녀의 매력이 주는 신선함에 꽤 놀란 눈치였다. 그는 특이하게 누빈 자주빛 비단옷(곤룡포·왕이 평상시 집무할 때 입는 옷)을 입고 말총으로 된 왕관도 썼다. 신하들이 용상(임금의 업무용 책상) 아래에 모여 우리를 보며 웅성거렸다. 양의 눈을 한 대신들과 무당, 지관들이 마치 숙주에 기생하는 거머리처럼 왕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황제의 뒤편에는 달빛이 비추는 산들과 비늘로 덮인 용이 긴 꼬리를 멋지게 늘어뜨린 옛 중국스타일 그림(일월오봉도)가 놓여 있었다. 힘을 잃어 가는 나라의 그늘진 궁과 적당히 잘 어울리는 배경이기는 했다.(편집자주:원래 조선시대 일월오봉도에는 봉황 조각물이 있었지만 대한제국 시절에는 자주국임을 천명하고자 용으로 교체했습니다. 이 소설에는 당시 이런 상황이 잘 묘사돼 있습니다.) 붉은 빛이 감도는 금색 매듭과 흰색 깃털이 있는 왕관을 쓴 그의 눈은 매우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소녀를 보자 잠시나마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소녀는 중화전 계단 앞에서 잠깐 멈춰 왕에게 경의를 표했다. 소녀는 눈빛에 존경심을 가득 담아 군주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봤다. 황제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미모에 놀랐는지 잠깐 앓는 소리를 냈다. 버선 신은 발을 살짝 동동거리더니 곧바로 안정을 되찾고 우아한 손 동작으로 내관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녀의 등장은 경운궁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듯 했다. 신하들은 황제의 등 뒤에서 흥분된 어조로 떠들어대며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무당과 점쟁이는 이국의 소녀에게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속삭였다. 왕 옆에 경직된 자세로 서 있던 하기와라는 이들이 ‘자신의 여자’에게 지나치게 과도한 관심을 갖는 모습에 적쟎이 화가 난 표정이었다. 왕가의 일원이자 시종무관(임금을 호위하던 무관)인 민영환(1861∼1905)은 소녀와 황제 사이에서 통역을 맡았다. 그는 변치 않는 충성심을 가진 몇 안 되는 인물이자 이 혼란스러운 궁 안에서 정확히 사리 판단을 할 줄 알던 거의 유일한 현자였다. 황제는 소녀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듯 아름다운 말로 그녀를 칭찬하며 위엄을 뽐냈다. 그는 “신께서 친절하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방 여인을 보내줘 무척 고마울 따름”이라고 경탄했다.겸손한 초상화가를 연기하던 소녀가 말했다. “폐하, 저는 미국인이며 과거 중국에서 황후의 초상화를 화폭에 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대한제국 황제의 위엄은 멀리 미국에서도 여러차례 전해 들었습니다. 황제의 용안을 초상화에 담지 못하면 제 인생에 큰 회한이 될 것입니다.” 소녀는 동양의 격식을 갖춰 겸손하게 얘기했다. 둘 간 주고 받는 대화 속에 은유가 풍부해서인지 왕의 품위가 한 층 더 돋보였다. 왕은 이 소녀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감시자인 하기와라를 걱정스럽게 바라본 뒤 “고문관과 상의해 그대의 청에 대해 답을 주겠노라”고 대답했다. 7회로 이어집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밤에도 에너지 만드는 태양전지 나왔다

    밤에도 에너지 만드는 태양전지 나왔다

    태양광 에너지는 현재까지 나온 신재생에너지 중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연구가 많이 되고 있다. 햇빛을 에너지원으로 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광 에너지의 장점은 다른 신재생에너지보다 에너지 전환효율이 높지만 밤에는 전기를 생산해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국내 연구진이 밟거나 누르는 압력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전환하는 압전 기술을 태양전지와 접목시켜 밤에도 에너지를 만든는 방법을 찾아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광전소재연구단 송진동 박사와 연세대 물리학과 조만호 교수 공동연구팀은 태양전지에서 사용되는 나노선 구조 반도체의 원자 구조 배열을 압전현상이 발생하는 구조 배열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에너지 분야 국제학술지 ‘나노 에너지’ 최신호에 실렸다. 이번 기술을 활용하면 햇빛 뿐만 아니라 물리적 진동이나 압력에 의한 전기 생산이 가능해 낮에는 햇빛으로 밤에는 바람이나 진동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어 햇빛이 없는 밤에도 활용이 가능한 태양전지가 나올 수 있게 됐다. 기존 태양전지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실리콘 기반 반도체 물질은 태양광 흡수에는 적절하지만 물리적 진동에 의한 전기생산은 어렵다. 연구팀은 차세대 반도체 물질로 주목받고 있는 인듐갈륨비소(InGaAs)를 활용한 저차원 나노구조를 개발해 빛은 물론 진동으로도 전기를 만들 수 있는 에너지 수확장치를 개발했다.이를 통해 햇빛은 물론 사람의 움직임, 바람에 의한 흔들림 같은 물리적 진동을 흡수해 전기를 만들 수 있게 돼 낮에는 태양전지로 사용하고 밤에는 압전방식으로 에너지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송진동 KIST 박사는 “이번 연구결과는 다양한 형태의 웨어러블 장비에 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낮에는 태양광으로 밤에는 움직임으로 전기를 만들어 센서를 작동시킬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와우! 과학] 물고기도 자아인식 가능…두 살 아이만큼 똑똑

    [와우! 과학] 물고기도 자아인식 가능…두 살 아이만큼 똑똑

    사람의 손가락 크기 정도 되는 작은 물고기가 예상외의 지능을 가졌다는 사실이 최초로 밝혀졌다. 일본 오사카사립대학 연구진은 청소놀래기(cleaner wrasse)로 불리는 물고기의 지능을 테스트하기 위한 실험을 실시했다. 연구진이 실험에 이용한 청소놀래기는 다른 물고기의 피부나 입 속의 찌꺼기, 기생충 등을 먹고 산다. 연구진은 야생 청소놀래기 10마리를 거울로 둘러싸인 개별 수조에 넣은 뒤, 자아인식을 할 수 있는지 테스트 했다. 그 결과 10마리 중 7마리는 처음 며칠 동안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를 공격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수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침입자라고 착각한 탓이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매우 자연스럽게 행동하기 시작했으며, 연구진은 이러한 행동 변화가 거울 속 모습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실험에서 연구진은 청소놀래기의 머리에 색이 있는 젤을 묻힌 뒤 역시 거울로 이 모습을 보게했다. 그러자 8마리 중 7마리가 오랜 시간 거울 앞에 머물며 색으로 물든 자신의 머리를 보려 하는 등 자신의 모습을 인지했다. 이러한 실험은 학계에서 MSR 테스트(자아인지실험) 이라고 부른다. 거울실험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신으로 인식하는 것이 동물에게 자의식이 있다는 증거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이용된다. 일반적으로 생후 9~18개월 된 영아들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타인의 것처럼 대한다. 하지만 두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은 거울이나 사진 속 자기 모습을 인식할 줄 아며 이것은 곧 인지능력의 정도나 성장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이번 실험은 물고기가 포유류나 조류를 제외한 척추동물 중 최초로 자아인지실험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면서 “자아인지 능력이 있다는 것은 사회적 능력과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고기가 이러한 자아인지실험을 통과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코끼리와 돌고래, 비둘기 등의 동물이 이 테스트를 통과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지난달 30일 영국에서 발행되는 과학매거진인 뉴사이언티스트에 실렸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체육 특기생 합격대가 5000만원 받은 부산의 모 대학 체육종목 감독 수사

    부산지역의 한 대학교 체육교육학과 감독이 체육특기생 입학을 명목으로 돈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부산 금정경찰서는 배임수재 혐의로 부산의 한 대학 체육교육학과의 한 감독인 A(52)씨를 수사하고 있다고 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17년 9월쯤 대구의 한 학부모로부터 아들을 체육학과 특기생 모집 때 합격시켜 주는 대가로 2차례에 걸쳐 5000만원을 계좌로 송금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A씨에게 돈을 준 학부모는 아들의 진로 변경을 이유로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돈을 받지 못하자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단순히 돈을 빌린 것일 뿐이라며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A씨는 5000만원 중 400만원만 학부모에게 돌려준 상태라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A씨 은행계좌를 분석하는 한편 이 대학 체육교육학과의 5년 치 특기생 선발 서류를 확보해 여죄를 수사하고 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커야 하는 까닭은?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커야 하는 까닭은?

    “크면 클수록 좋다.” 세계적인 풍력발전기 제조업체들이 거대한 풍력발전기 만들기 경쟁에 돌입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와 독일 지멘스 AG, 덴마크 MHI 베스타스 등 글로벌 풍력발전기 제조업체들이 난바다(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 초고층 높이의 풍력발전기 제작 경쟁에 돌입했다.글로벌 업체들이 풍력발전기 크기 경쟁에 뛰어든 것은 지난 10년 간 미국 등 각지에서 석유 이외의 신재생에너지원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풍력발전 수요도 증가한 덕분이다. 전 세계 난바다 풍력발전 생산량은 2007년만 해도 1.1기가와트(GW)에 불과했지만 10년이 지난 2017년에는 18.7GW로 급증했다. 풍력 발전기의 가장 큰 특징은 날개의 크기가 거대할수록 발전량이 늘어나면서 생산효율이 극대화된다. 이 때문에 풍력발전 사업이 성장하면서 발전기 크기도 자연스레 커졌다. 1991년 설치된 최초의 난바다 풍력발전기는 높이 52.5m에 생산 발전량은 450킬로와트(kW)였다. 현존하는 가장 큰 풍력발전기는 높이가 187m, 생산가능 발전량은 9.5MW다. 글로벌 업체들의 현재 목표는 10MW의 벽을 넘을 수 있는 풍력발전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10MW를 넘어서는 발전기는 크기가 너무나 커져 설치 및 운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독일 풍력발전기 제조업체 센비온 SA가 지난해 이를 만들겠다고 밝히며 글로벌 풍력발전기 시장에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 3월에는 GE가 오는 2021년까지 전력 12MW를 생산하는 높이 260m에 이르는 ‘할리아데-X’ 발전기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하며 크기 경쟁이 가속화됐다. 할리아데-X는 프랑스 파리 개선문보다 5배(50m)나 크고 서울 남산(265m)와 비슷한 높이다. 날개가 돌아가는 공간은 축구장 7개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다. WSJ는 “높이 경쟁에서 승리한 회사가 수십억 달러 규모의 난바다 풍력발전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미국의 경우 대서양 쪽 난바다가 풍력발전에 이상적인 장소로 꼽히면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지난해 매사추세츠 인근 난바다에서 18개 풍력발전소의 설립을 승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글로벌 에너지 제조업체들이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지만 매우 큰 크기의 날개를 가진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일은 여전히 극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고층 빌딩을 더 높이 쌓는 것과 거대한 날개가 계속 돌아가는 풍력 발전기를 더 큰 크기로 짓는 것은 다른 탓이다. 당장 엄청난 크기의 날개 및 기둥을 먼 바다로 옮기는 일조차 쉽지 않아 난관이 예상된다. 제롬 페크레세 GE 신재생에너지 부문 최고경영자(CEO)는 “할리아데X를 구상하면서 어떤 날을 사용하고, 발전기 설치에 어떤 운송수단을 이용할지 고민했다”며 “풍력발전 제어시스템 역시 효율적인 전기생산에 중요한 까닭에 그 부분도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반려독 반려캣] 술취한 엄마가 버린 영양실조 아이에 젖먹인 유기견

    [반려독 반려캣] 술취한 엄마가 버린 영양실조 아이에 젖먹인 유기견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에 취해 사는 엄마는 어린 아들을 돌보지 않았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에게 젖을 물린 건 암컷 유기견이었다. 인간의 무책임과 유기견의 본능적 모성이 묘하게 교차하는 사건이 칠레에서 최근 벌어졌다. 29일(현지시간) 엘시우다다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건은 벌어진 곳은 칠레 북부 아리카라는 지역에 있는 한 폐차장이다. 아리카 경찰은 "외곽에 있는 한 폐차장에 엄마가 돌보지 않는 아이가 있다"는 제보 전화를 받고 긴급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폐차장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충격적인 장면과 마주쳤다. 아직은 2~3살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옆으로 누워 있는 개의 배 밑으로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개는 평안해 보였지만 갑자기 놀라 화를 내거나 덤벼든다면 아이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조심스럽게 개에게 접근한 경찰은 아이를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아이는 개의 젖을 물고 있었다. 개의 젖을 물고 있는 아이로부터 멀지 않은 곳엔 여자 한 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침시간이었지만 여자는 이미 잔뜩 술을 마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경찰은 급히 구급차를 불러 여자와 아이를 인근 병원으로 후송하고 개를 유기견보호센터로 옮겼다. 사건의 전말은 그제야 드러났다. 여자는 페루에서 칠레로 넘어간 이주민으로 아이는 여자의 아들이었다. 아이는 이제 겨우 2살로 엄마의 돌봄이 꼭 필요한 나이였지만 심각한 알코올중독자인 여자는 하루하루를 술로 보냈다. 먹을 것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아 아들은 이미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였다. 그런 아이를 먹인 건 폐차장 주변에 사는 유기견이었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유기견의 젖을 찾았고, 유기견은 그런 아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덕분에 아이는 생명을 건졌지만 방치 상태가 계속됐다면 건강을 해칠 수 있었다. 수의사 레네 오소리오는 "개의 모유는 사람의 모유보다 단백질이 많지만 기생충도 많아 사람이 오랫동안 개의 젖을 먹는다면 질병에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칠레 당국은 이번 사건을 "비인간적이고 비난을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규정하고 여자로부터 아이의 양육권을 박탈할 예정이다. 현지 언론은 "법원이 내달 22일 여자의 양육권에 대한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진=칠레 경찰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영진전문대 공군부사관학군단 입단식

    영진전문대학교(총장 최재영)는 30일 오후 제4기 공군 부사관학군단(RNTC) 입단식을 개최했다. 이 대학 글로벌캠퍼스(칠곡) 국제세미나실에서 개최된 이날 행사에는 경남 진주 공군교육사령부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남학생 31명, 여학생 4명이 참석해 입단 신고를 했다. 2015년 전국 전문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공군 부사관학군단을 창설한 영진전문대는 공군 정비부사관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제4기로 입단한 후보생 35명은 이번 학기부터 군사학, 항공정비학 등 항공정비사가 되기 위한 전공과목을 수강한다. 또한 항공산업기사 자격증 취득 및 정비 일선부대 실무경험 등을 익혀 최고의 항공정비 전문가로 성장해 나갈 계획이다. 최재영 총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우리 대학 학군단이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학군단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다 하겠다”고 말하고 “4기로 선발된 후보생들은 투철한 국가관을 바탕으로 최정예 정비부사관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영진전문대는 1,2기 후보생 61명이 공군하사로 임관해 각 전투비행부대에서 근무 중이며 이날 입단한 4기 후보생은 2020년 임관할 예정이다. 이날 입단한 고병건(부사관계열 1년)후보생은 “독일에서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지만 공군 부사관으로 근무 중인 아버지처럼 국가와 공군을 위해 보람된 일을 하고 싶었다”고 지원 동기를 밝혔다. 96년생으로 늦깎이 지원생인 최윤선(여, 부사관계열 1년)후보생은 “올해 유난히 더웠던 날씨 속에 기초군사훈련에 참여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동기들이 서로 힘이 돼줘 무사히 수료했다”고 했다. 이인서(여·전자정보통신계열 1년) 후보생은 “2주간의 기초군사훈련 병영생활이 힘이 들어 중도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동기생들이 ‘같이 임관하자’라는 구호에 끝까지 할 수 있었고 소중한 경험이 됐다”고 전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고창근 작가 신작, 서사시집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 발간

    고창근 작가 신작, 서사시집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 발간

    어우동을 재해석한 고창근 작가의 신간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이 발간됐다. 작가는 역사서를 보면 어우동에게 불리한 내용이 많다고 말한다. 남성이자 권력자들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의 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동안 알려졌던 것과 다른 점이 많이 느껴진다. 양반가의 딸로 태어나 왕실종친에게 시집을 갔으나 기생에게 빠진 남편의 모함으로 친정으로 쫓겨 온 어우동. 오히려 이 사건으로 어우동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기회를 잡는다. 어머니에게 유산을 물려받아 분가한 어우동은 남성중심의 유교사회였던 조선의 법도를 무시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성에 대해서도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였다. 뭇 남성들의 성노리개가 아니라 당당하게 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남존여비 삼종지도라는 남녀차별의 굴레를 벗어나 몸의 해방을 통해 삶의 해방을 추구했던 여인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나 생명보다 왕권강화와 권력유지가 더 소중했던 성종은 어우동에게 사형을 내렸다. 작가는 “남성중심의 차별의 굴레를 벗어나 조선법도를 거부하고 주체적인 성을 향유했으나, 음행이라 하여 사형당했던 여인이 어우동”이라며 “여자의 욕망은 죄라 사랑하다 죽은 여인의 뜻을 이제야 기린다”고 말했다. 한편 고창근 작가의 신간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은 지난 8월 25일부터 온·오프라인 서점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전쟁엔 무능·권력엔 교활…유재흥·김종원 등 ‘똥별 뿌리’ 출세가도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전쟁엔 무능·권력엔 교활…유재흥·김종원 등 ‘똥별 뿌리’ 출세가도

    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전시내각을 이끈 조르주 클레망소는 말했다. “전쟁은 군인들에게 맡겨 놓기엔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전쟁에는 무능하고 권력에는 교활한 지휘관들에 대해 클레망소가 진저리치며 한 말이었다. 한국의 장군들에게도 흔히 적용되는 경구다. 조갑제씨가 쓴 전기 ‘박정희’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순사건 때 반란군으로 체포되자 남로당원이라며 200여명의 명단을 건네 처형을 면한 뒤 육군본부 정보국에 근무하던 박정희가 1951년 4월 중공군의 공세에 직면한 육군 9사단 참모장으로 있을 때의 일화다.9사단은 3군단(사령관 유재흥 중장)에 배속돼 3사단과 함께 강원 인제군 현리 일대를 관할하고 있었다. 중공군은 서울 점령을 위한 5차 공세(춘계공세)에 실패한 후 중동부 전선으로 병력을 이동시켰다. 현리에서 북쪽으로 12㎞ 떨어진 소양강 건너엔 대규모의 중공군이 집결해 있었다. 4월 27일 9사단 신임 사단장이 부임했다. 일본군 소위 출신으로 불과 5년 만에 장군이 된 최석이었다. 최석은 부임하자마자 심지어 ‘뽀마드’까지 상납을 요구하며 참모들을 들들 볶았다. 참모부는 사단장파와 참모장파로 나뉘어 암투했다. 다음은 정훈부장 이용상의 목격담. “당시 헌병대장 김시진은 최석의 ‘밥’이었다. 어느 날 최석의 입에서 ‘살아 있는 싱싱한 것…’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김시진은 그제야 무릎을 치며 강릉으로 차를 몰아 싱싱한 생선회 두어 접시와 초장을 푸짐하게 장만해 사단장 막사로 들어갔다. 잠시 후 헌병대장이 얼굴에 초장을 뒤집어쓰고 나왔다. ‘야, 이 새끼야, 내가 살아 있는 생선 먹고 싶다고 했지, 죽은 생선 먹고 싶다고 했나. 눈치도 없는 놈이 헌병 한다고….’ 군대 안에선 유명한 ‘생선 사건’이다.” 며칠 뒤 박정희는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출근하지 않더니 사단 의무부장으로부터 진단서를 끊어와 대구 집으로 정양을 가겠다고 우겨 9사단을 떠났다. 일촉즉발의 전투부대가 아니라 개그무대의 봉숭아학당이었다. 그로부터 10여일 뒤인 5월 16일 오후 4시 중공군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오후 5시 30분 소양강을 도하한 중공군 선발대가 오마치(오미재)에 도착하고 대대 병력이 주변을 장악한 것은 17일 새벽 5시였다. 오마치는 상남리, 방내리, 율전, 창촌, 하진부로 이어지는 7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이자 유사시 퇴각로였다. 군단장 유재흥의 주재로 이날 오후에야 열린 작전회의는 간단히 끝났다. 하진부로 ‘퇴각’. 유재흥은 정작 중요한 오마치 탈환 및 철수 작전은 사단장들에게 맡긴 채 급히 경비행기를 타고 하진부로 ‘탈출’했다. 3군단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최석은 오마치 탈환을 포기했다. 모든 중화기와 운송장비 등을 파괴하고 방태산 너머로 퇴각했다. 부득이 3사단도 그 뒤를 따랐다. 다음은 9사단 군수참모 김재춘이 회고한 ‘7군단의 패주 장면’. “최석은 아예 제복도 벗어버리고 앞장서 튀었다. 주변에서 총소리만 나면 꽁지 빠진 닭처럼 혼비백산했다.” 장교들도 계급장을 떼거나 겉옷을 벗어버린 채 도망쳤고 사병들은 공용화기는 물론 개인화기, 무전기까지 버렸다. 19일까지 방태산을 넘어 창촌 광원리 을수재를 거쳐 집결지인 하진부에 도착한 병력은 3사단 34%, 9사단 40%에 불과했다. 밴 플리트 미 8군사령관은 25일 7군단을 해체했다. 유재흥에게는 ‘다른 보직을 찾으라’며 전선에서 내쫓았다.해체된 유재흥의 부대는 3군단만이 아니었다. 개전 초 유재흥의 7사단은 덕정, 의정부, 창동 등 서울로 이어지는 축선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사흘 만에 북한군에 내주고 궤멸했다. 이승만은 그런 유재흥을 2군단장으로 영전시켰다. 미8군에 배속되어 북진했던 2군단은 미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내달려 2연대와 7연대 일부 병력이 압록강변의 벽동, 초산까지 진출했다. 당시 선봉 2연대 연대장은 일본군 지원병 출신으로 제주 4·3사건의 민간인 학살자로 유명한 함병선 준장이었다. 2군단의 허장성세는 딱 거기까지였다. 이미 덕천 영원의 산악지역에 매복해 있던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 2연대를 시작으로 7연대, 6사단, 8사단이 차례로 무너졌다. 7군단 전체 병력의 60%가 사망, 실종, 포로가 되었다. 연대장 3명이 생포되고 1명이 전사했다. 군단은 해체됐다. 하지만 유재흥은 육군참모차장 등을 거쳐 1957년엔 합참의장이 됐다. 그의 군 생활은 4·19혁명과 함께 끝나지만, 5·16쿠데타와 함께 그의 인생 2막은 화려하게 펼쳐졌다. 태국·스웨덴·이탈리아 대사,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거쳐 국방부 장관이 되었다. 만주군관학교 예과를 이수하고 일본육군사관학교로 편입한 박정희는 일본육사 3년 선배인 유재흥을 끔찍하게 챙겼다. 이승만은 광복군은 배제하고 일본군 출신을 중용했다. 재임 중 육군참모총장은 모두 일본군 출신이고 백선엽(일제 만주군관학교)과 송요찬(일본군 지원병)을 제외하면 모두 일본 육사 출신이었다. 그러나 역시 모두 비전투병과여서 전장 경험이 없고 전투에는 무능했다. 대표적인 게 참모총장 채병덕이었다. 도발 가능성을 번번이 묵살했던 채병덕은 남침 당일, 새벽 2시까지 술에 절어 있었다. 미국 관리들이 이승만에게 “왜 저렇게 뚱뚱하고 둔한 장군을 총장에 임명했소”라고 물으면 이승만은 “나의 채 장군은 날씬한 장군이 가지지 못한 기민함이 있다오”라고 대답했다. 채병덕은 일본 육사 27기로 일본군 출신 최고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경찰 인사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임명한 치안국장(지금의 경찰청장) 15명은 모두 일제의 검사, 경찰 간부, 일본군 출신이었다. 홍순봉과 문봉제는 간도특설대 출신이고 김종원(오장), 이성우(대위)는 헌병 출신이었다. 1960년 3·15 마산의거 때 ‘배후는 공산당’이라고 발표했던 치안국장 이강학은 일본군 소위 출신이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 김종원이었다. 일본군 자원입대자로, 해방 후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여순사건 때부터 잔혹한 민간인 도살자로 악명을 떨쳤다. 빨치산 토벌대였던 23연대장 시절 그의 부대가 지나간 자리엔 빨치산이 아니라 민간인의 주검이 널려 있었다. 그런 김종원을 이승만은 총애했고 김종원은 충성을 다했다. 거창양민학살사건 때 그는 예하 부대를 공비로 위장시켜 국회의 합동조사단을 습격하도록 했다. 그가 군법회의에서 3년형을 선고받자 이승만은 특사로 3개월여 만에 석방했다. 이후 경찰로 옮긴 김종원은 전북, 경남, 경북, 전남 경찰국장을 거쳐 1956년 정부통령선거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치안국장이 되어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을 일으켜 이승만의 은혜에 보답했다. 이승만은 김종원을 이렇게 평가했다. “김종원은 애국 충정이 대단한 사람으로서 충무공 이순신과 견줄 만하다.” 육사 8기생들의 평가도 있다. “학살에는 귀신, 전투에는 등신!”(‘노병들의 증언’ 중에서) 미 군사고문단 보고서는 좀더 구체적이다. “부하에게는 가혹했고 전투에는 비겁했다. 전술적 두뇌가 없었고 부하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했다.” 전투에선 무능하고 권력에는 교활하던 ‘똥별’들, 그 연면한 전통은 지금도 군사주권 환수엔 반대하며 자주국방은 외면하고, 골방에서 댓글 공작이나 지휘하고, 내란 수준의 계엄령이나 모의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발본해야겠지만 이들은 수구언론, 수구정치권과 함께 여전히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룬다. 날은 어두워지고, 갈 길은 멀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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