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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나온 고양이들에게 인간이 감사해야 하는 이유

    집나온 고양이들에게 인간이 감사해야 하는 이유

     호랑이, 사자, 표범은 물론이고 평범한 집고양이들조차 고양이과들은 깊은 눈빛과 누구에게도 얽매이기 싫어하는 당당함을 지녔다. 애묘가(愛猫家)들은 그 매력에 이끌려 고양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고양이를 싫어한다.  이렇게 고양이는 인간에게 사랑과 미움이 교차돼 왔다. 그 중에서 길고양이는 쥐를 잡는 본연의 임무가 콘크리트 속으로 사라지면서 일자리를 잃고 천덕꾸러기로 내몰리게 됐다. 개들 같으면 그런 상황에서 죽이든 살리든 끝까지 주인에게 매달렸겠지만, 자존심 강한 고양이들은 마음대로 하라는 식이다.  주인의 애정이 식으면 제가 걸어서 집을 나가면 그만일 뿐이다. 고양이들은 그런 가출에 이미 태생적으로 길들여져 있기에 아무 두려움이 없다. 버림받은 고양이들이 점점 도심 주변에 늘어가고 있다. 그들은 특유의 적응력으로 인간사회와 자연의 변두리에서 나름대로 확고한 위치를 잡아가고 있다. 아파트 주차장이나 공원의 한 귀퉁이에서 길고양이를 만나는 일은 일상사가 되었다. 아이들도 야생동물하면 아마도 길고양이들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우린 주변에는 초라한 길고양이마저 못 보겠단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염병을 옮긴다느니, 기생충을 배출한다느니 갖은 핑계거리를 동원하여 기어이 그들을 없애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곤 하는 인간들의 행태에 대해 사실은 고양이 측에서 더 불만이 많을 법하다. 개들은 버림받아 야생화가 되면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양이가 사람을 공격했다는 소린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또 개의 몸속에 있던 회충이 사람 눈에 들어가 아주 드물지만 실명을 일으킬 수는 있어도, 고양이 해충이 그랬다는 소리 또한 들어보지 못했다.  인간의 회충이 개에게 질병을 일으키기 힘든 것처럼 개나 고양이의 회충도 그 만큼 숙주가 다른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킬 확률이 적은데도, 놀이터에서 개 회충 알이 발견되면 온갖 호들갑을 떨어댄다. 스스로가 만든 공포심, 고고한 것에 대한 질투심 등을 빼면 지금의 길고양이들은 인간에게 그리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함부로 내다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것, 밤중에 애 우는 소리를 내는 생리적인 행동들이 약간 생활의 불편함을 초래할 수는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육상의 포식자들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우리나라도 겨우 너구리나 족제비, 작은 뱀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마저 자취를 감춘다면 정말 생태계의 교란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만일 설치류나 조류들만 설쳐대는 세상이 온다면, 히치콕의 영화 ‘새’처럼 새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들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생태계가 유지되려면 계층구조가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런 상황에 억지로 내몰린 길고양이들이 혹시 그런 역할을 알게 모르게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종욱 광주우치동물원 수의사 lovnat@hanmail.net............................................................................................................. 서울신문은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의 열띤 호응 속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광주광역시 우치동물원의 최종욱 수의사와 서울신문 유영규 기자가 함께 꾸미는 지면입니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동물들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은밀한 비밀 등 다채롭고 흥미있는 이야기들이 매주 1차례씩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금까지 연재됐던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른들의 동물원] (1) ‘크누트’의 돌연사 왜 어미곰은 새끼를 포기했을까? [어른들의 동물원] (2) 외로운 ‘블랙스완’ 대량학살의 슬픈 역사 간직한 그들. [어른들의 동물원] (3) 동물들의 사랑 몸짓(상) 고슴도치들은 어떻게 교미를 할까? [어른들의 동물원] (4) 동물들의 사랑 몸짓(하) 수컷뱀 성기 2개로 5시간 짝짓기 [어른들의 동물원] (5) 동물의 심리학 개장수 나타나면 동네 개들 조용해지는 이유 [어른들의 동물원] (6) ‘고리롱’ 박제논란(상) 숨진 로랜드고릴라를 어떻게 해야 하나 [어른들의 동물원] (7) 우리나라 최초 코끼리 600년전 일본에서 실려와 비운의 삶 [어른들의 동물원] (8) ‘고리롱’ 박제논란(하) 서울동물원, 독자의견 따라 박제 않기로 [어른들의 동물원] (9) 잘못 알려진 진실들 백조는 물속에서도 발짓을 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동물원] (10) 동물들도 자살을 하나? 1주일 만에 새끼 잃은 어미원숭이의 선택 [어른들의 동물원] (11) 술 취한 원숭이들 먹던 과일 씹다 두면 발효돼 자연의 밀주로 [어른들의 동물원] (12) 더위 절대강자 낙타의 비밀 무릎 같은 발목이 하이힐 역할 [어른들의 동물원] (13) 원숭이와 눈 마주치지 마라 동물원 사팔뜨기 안경의 비밀 [어른들의 동물원] (14) 불법포획 돌고래의 고백 사자도 공작도 과거를 숨기는지 몰라요 [어른들의 동물원] (15) 살모사는 무서운 뱀?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해
  • “119 신고 때 위치파악 표지판 있었으면…”

    “119 신고 때 위치파악 표지판 있었으면…”

    당신은 지금 집에서 멀리 떠나 이름도 모르는 조용한 강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며 유유자적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은 물장구치며 모처럼 아빠와 함께하는 가족여행의 기쁨을 한껏 누리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의 짧은 쇳소리가 연거푸 이어진다. 놀러 온 대학생들이 입수금지구역의 물살에 휩쓸렸다. 급히 119에 전화를 했으나 이 지역 자체가 낯선 곳. 사고 위치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답답하기만 하다. 이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강원도 태백시에 사는 윤진희(왼쪽·45)씨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긴급 구조 위험 안내 표지판에 신고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지명과 표지판의 지점별 관리 번호를 표기하자고 제안했다. 이 아이디어는 11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11 중앙우수제안 심사’ 국민 제안 부문에서 금상을 받았다. 기상청에서 일하는 우남철(오른쪽·40) 주무관은 공무원 부문 우수제안 심사에서 금상을 받았다. 지진·해일 경보 시스템에 간조·만조의 천문 효과와 태풍이나 저기압으로 인한 해수면 상승 예측 정보 등 기상정보를 융합해 예측 정확도를 높이자는 제안이다. 우 주무관은 “이 아이디어는 정책으로 채택돼 기상청에서는 2012년까지 기상정보와 지진정보를 연계하는 모듈을 개발할 방침이다. 이미 있는 시스템을 상호 연계하는 것으로,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고 예산도 3000만원 정도”라면서 “기상 분야에 비해 지진연구 분야는 취약한 만큼 지진연구센터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질 좋은 씨감자 재배를 고비용의 유리온실이 아닌 9평 컨테이너에 설치하도록 해 비용을 10분의1로 확 줄일 수 있는 농촌진흥청 공무원들의 아이디어, 장애인 복지카드 뒷면에 재진단 시기를 표기해 갑자기 당황하지 않도록 하자는 가호현(34)씨의 아이디어 등이 각각 은상을 받았다. 우수제안 심사는 1973년부터 시작했다. 올해는 공무원 제안 10만건, 국민 제안 15만건 등 모두 25만여건이 접수됐다. 중앙부처와 지자체 등의 1차 심사를 거쳐 행정안전부 중앙우수제안심사위로 올라온 것은 모두 176건(국민 제안 35건, 공무원 제안 141건)이었다. 분야별 서면 심사, 면접, 종합심사 등 3단계 심사를 거쳐 금상 2건, 은상 8건, 동상 28건, 장려상 54건 등 모두 92건을 뽑았다. 금상은 부상금 500만원에 특별승진, 승급 등 인사 특전이 있다. 하지만 올해 국민 제안 금상으로 뽑힌 윤진희씨는 태백소방서 소방장이다. 국민 제안 부문까지 공무원이 차지한 셈이다. 김주이 제도총괄과장은 “국민 제안은 따로 면접 과정이 없는 데다 신청서에 직업란을 따로 적게 돼 있지 않아 선정할 때까지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서 “국민 제안으로 뽑혔기 때문에 공무원 제안과 달리 부상금 외에 특별 승진·승급 등의 특전은 없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加공장 직원들, 해고 당일 ‘76억 복권당첨’ 횡재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것일까. 캐나다의 한 전자제품 제조공장에서 실직한 근로자들이 당일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는 기막힌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 캐나다 캘거리에 본사를 둔 제조업체 ‘스마트 테크놀로지’(SMART Technologies)의 오타와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 18명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복권 ‘로또6/49’에 당첨, 공동으로 약 700만 달러(한화 76억 4000만원)을 거머쥐었다고 캐나다 CBC뉴스가 보도했다. 이 공장 근로자들의 행운이 놀라운 이유는 당첨 당일이 이들의 최악의 날이었기 때문. 회사 측은 이날 재정적 문제로 한 조립공정에 일하는 근로자 300명 가운데 무려 200명을 해고하겠다는 인력감축안을 발표, 수년씩 일하던 근로자들 대부분이 실직하게 된 날이었다. 실제로 이번에 복권에 당첨된 근로자 18명 가운데 10명은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돼 매우 낙심한 상황이었다. 해고의 충격과 막막한 현실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근로자들은 뜻밖의 행운을 거머쥔 사실을 알게 되자 공장 앞에서 춤을 추는 등 기쁨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윌러드는 “7년 간 다니던 회사를 하루아침에 그만두려니 막막했는데, 이런 행운이 찾아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으리만큼 기쁘다.”면서 “인생의 최악의 순간에 찾아온 기쁨이라서 더욱 행복하다.”고 벅찬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첨자들은 복권 당첨금을 수령할 겸 단체로 토론토로 여행을 할 계획이다. 이들은 “해고의 슬픔을 가진 동료들도 있지만, 인생 일대의 행운을 거머쥔 만큼 토론토에서 파티를 열어 기쁨을 함께 나눌 것”이라고 계획을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최동호 새벽을 열며] 황병기 명인과 한국의 달항아리

    [최동호 새벽을 열며] 황병기 명인과 한국의 달항아리

    지난 7일 밤 해운대 달맞이 언덕에서 거행된 ‘달맞이 축제’에 다녀왔다. 젊은 연주자들이 ‘한국의 소리’를 개막 공연으로 시연했는데 푸르고 싱싱한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바이올린을 연상시키는 해금의 소리는 대금과 피리 그리고 피아노와 어우러져 독특한 음색으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기서 깊이와 울림을 생각하며 과연 한국의 소리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어, 지난달 중순 황병기 명인의 창작 국악 50주년 기념 ‘가야금 콘서트 달항아리’를 떠올려 보았다. 당일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내는 만석이었다. 공연은 다섯 단락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이 모두가 황 명인의 창작곡들이라는 점에서 한국 음악은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곡 ‘밤의 소리’는 안윤식의 그림 ‘성재수간도’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고 한다. 나무들 사이를 바라보며 행여 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시적인 이미지를 소리로 표현한 ‘밤의 소리’는 간절함이 배어 있으면서 여백의 공간을 거느린 작품이었다. 다음 곡 ‘소엽산방’은 야사 ‘패림’에 기록된 내용을 소재로 한 것으로서 ‘낙엽을 쓰는 산방’, 다시 말하면 은자의 유유자적을 거문고 소리로 표현한 곡이다. 장중하면서도 쓸쓸하고 초연한 은자의 마음이 거칠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거문고 줄에 실려 오동나무 결의 여음을 느끼게 했다. 세 번째 곡 ‘하마단’은 비단길 저 편에 있는 이상향을 그리는 마음을 표현했는데, 이국적인 정서를 불어넣어 비단결처럼 고운 소리로 울려나왔다. ‘추천사’는 서정주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서 강권순의 목소리로 가창되었는데, 서양의 가곡을 듣는 것과는 다르게 가깝고도 애절한 노래 소리는 악기 소리를 뛰어넘는 절절함이 녹아 있었다. 그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을 장식한 곡 ‘미궁’과 ‘침향무’였다. 황 명인이 가야금을 직접 연주한 ‘미궁’은 여창자 윤인숙의 극적인 목소리를 통해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소리이자 가장 원초적인 소리를 들려주었다. ‘미궁’은 죽음의 나락에 처한 인간의 소리이자 절규이기도 했다. 마지막 ‘침향무’는 ‘미궁’과 대조적으로 밝고 명상적이고 그러면서도 무엇인가 깊은 사유를 유발하는 곡이었다. 널리 알려져 있어 쉬울 것 같지만 오히려 그런 까닭에 제대로 연주하기도 힘들고 제대로 듣기도 어려운 곡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침향무’는 가야금의 소리를 소리로 즐길 수 있는 여백이 많이 있어 청중에게는 일종의 쇄락한 기쁨을 느끼게 하는 곡이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미궁’의 아우성치는 곡소리가 등 뒤를 따라왔다. 음산하고 귀기 서린 높은 소리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며칠 지나자 ‘침향무’의 가야금 소리가 불러일으키는 여음이 잔잔하게 되살아나면서 ‘밤의 소리’에서 시작된 유현한 가락이 가슴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소리이며 비어 있으면서도 가득 차 있는 소리였다. 공연 당일 무대 전면을 차지하고 있던 달항아리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렇구나. 그날의 공연을 기획한 황 명인의 의도가 여기에 있구나. 황 명인이 콘서트의 표제를 ‘달항아리’라고 정한 이유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서양화가 김환기도 “나의 모든 예술은 조선의 달항아리에서 나왔다.”고 했다. 한국의 소리가 바로 달항아리에 있다고 한다면 성급한 일일까. 최근 우리 주변에 범람하는 모든 소리들이 빈 달항아리를 채우고 다시 이를 비우면서 창조적 울림을 전할 때 한국의 소리가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음악이 될 것이며 이를 예견하도록 만들어 준 것이 황병기 명인의 연주회였다. ‘달맞이 축제’에서는 물론 앞으로 누군가 한국 소리의 근원을 찾고자 한다면 이 달항아리 소리를 지향하고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닐까 한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1)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1)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

    몸을 가진 생명이 모두 그렇다.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또 생명이 거쳐야 할 세월에는 어김없이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가 담긴다. 나무도 그렇다. “내게 큰 아픔이 있는 이유는 내가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도덕경 제13장)이라는 노자의 이야기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오히려 살아야 할 세월이 장구한 까닭에 나무의 몸 깊이 새겨지는 생로병사의 자취는 사람보다 깊을 수밖에 없다. 살아 있는 세월 동안 나무의 몸에 새겨진 고통의 자취를 바라보면 나무에게도 그만의 운명이 있으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무가 짊어진 운명도 사람의 운명처럼 고통의 깊이는 천차만별이다. ●병인박해 때 가톨릭 교인의 순교대로 우리나라의 나무 가운데에는 형장의 교수대가 되어 수천의 목숨을 앗아간 얄궂은 운명의 나무가 있다. 몸 가진 생명들이 모두 고통을 겪어야 한다지만, 하필이면 죽음을 눈앞에서 바라보아야 할 운명을 가진 나무라니…. 감옥 앞에 높지거니 서 있는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 회화나무의 운명은 말로 되지 않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살아 있는 생명으로서 겪기 힘든 극심한 통증이 수피 곳곳에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박힌 건 145년 전인 1866년이다. 당시 해미읍성에는 가톨릭 교인들을 가두는 감옥이 있었다. 외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조정에서는 교인들에게 배교를 강요했다. 그러나 종교 안에서 삶의 위안을 얻으려 했던 신도들은 선선히 응하지 않았다. 가톨릭 신도는 곧 죄인이어야 했다. 감옥에 갇힌 그들은 아침마다 한 사람씩 감옥 바깥으로 끌려 나왔다. 재갈을 물리고, 오랏줄에 묶인 그들 앞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회화나무다. 죄인이 된 교인들은 나무 앞에 꿇어 앉은 채, 얼이 빠질 만큼 두들겨 맞았다. 그래도 신앙은 버리지 않았다. 선뜻 이해되지 않을 만큼 강한 믿음이었다. 큰 나무 꼭대기에 미리 달아 둔 철사 줄에 매달려야 했던 건 종교적 믿음과 바꾼 대가였다. 머리채를 묶여 매달린 지친 몸뚱어리로서는 이겨낼 수 없는 고통이 이어졌다. 뼛속 깊이 박힌 고통을 못 이겨 온몸을 축 늘어뜨리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몸 가진 사람이 허공에 매달린 채로는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할 한 많은 죽음이었다. 나무는 자신의 몸에 매달려 참혹하게 생명의 끈을 놓아야 했던 사람들을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무려 1000명이 나무의 몸에 매달렸고, 천천히 죽어갔다. 잔혹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때의 처참한 고통을 병인박해라고 부른다. ●삶과 죽음의 아우성이 깊이 배어나 시인 나희덕은 절창 ‘해미읍성에 가시거든’에서 “아직 서 있으나 시커멓게 말라버린 그 나무에는/밧줄과 사슬의 흔적 깊이 남아 있고/수천의 비명이 크고 작은 옹이로 박혀 있을 것”이라고 썼다. 회화나무는 전체적인 생김새가 아름다운 나무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기개 있는 가지펼침이 학문의 길을 닮아 ‘학자수’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해미읍성 회화나무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기괴하다. 삶과 죽음의 아우성이 깊이 배어든 나뭇결과 울퉁불퉁 튀어나온 옹이는 여느 회화나무와 다르다. 나무가 사람의 마을에 베푼 것이 삶을 앗아가는 일이었던 까닭이다. 서산 지역의 지방말로 ‘호야나무’라고 부르는 해미읍성 회화나무는 300살 쯤 됐다. 평범하게 자랐다면 넉넉하게 펼쳤어야 할 나뭇가지들은 대부분 부러져 빈약하다.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들던 사람들의 애달픈 한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스스로 가지를 덜어냈을지 모른다. 오로지 사람보다 높이 솟아오른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짊어져야 했던 고통을 붙들어 안고 나무는 한 많은 세월을 보냈다. 세월이 흘러 가톨릭 순교의 피가 흐르던 해미읍성의 고통은 사라졌다. 볼 만한 문화재로, 혹은 수도권에서 가까운 관광지로 거듭나기 위해 스러진 옛 건물들을 다시 고쳐 짓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흔적도 없이 무너졌던 감옥도 새로 지었다. 주말이면 여느 마을 공원처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해미읍성 공터에 모여들어 뛰논다. 생명의 숨결을 가진 어느 몸에서도 고통의 흔적은 드러나지 않는다. 자연스레 나무의 옹이마다 새겨진 고통의 흔적을 탐색하는 눈길도 많지 않다. 그냥 스쳐 지나며 바라보는 ‘이상한 나무’일 뿐이다. ●나무가 보여주는 고통과 환희의 두 얼굴 회화나무 건너편으로 내다보이는 동헌 건물은 옛 영화를 간직한 채 울긋불긋 화려하다. 그 앞에는 가지를 넓게 펼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시인 나희덕이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고요히 걸어 들어가” 찾아보라고 했던 두 그루의 나무 중 하나다. 당대의 권세가들과 함께 부귀영화를 누렸던 것처럼 동헌 앞 느티나무는 회화나무와 달리 풍요롭고 온화한 자태를 지녔다. 속내야 어찌됐든 여유롭고 행복했던 권세가들에게 그늘을 드리우던 느티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아름답다. 회화나무와의 거리는 고작 몇 걸음 안 되지만, 시인의 말대로 천천히 걸으면 두 나무 사이에 배어 있는 삶의 아득한 거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필경 나무 스스로가 원한 건 아니었을 텐데, 형틀의 운명을 띤 나무와 풍요로운 정자의 운명을 띤 나무가 이토록 다른 모습으로 살아 남았다는 게 얄궂기만 하다. 몸 가진 것들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통의 운명이 어찌 이리 극단적으로 갈라질 수 있을까. 나무가 보여주는 고통과 환희의 두 얼굴이다. 글 사진 서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길섶에서] 할머니 운전기사/최광숙 논설위원

    고령화 시대가 실감나는 것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나이 드신 어른들을 종종 만날 때다. 최근 삼청동 가는 길에 택시를 탔다가 깜짝 놀랐다. 65세 할머니 운전기사다. 핸들을 잡은 지 3년 됐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남들은 퇴직할 나이가 지나서 시작한 운전이다. 목표는 70세까지 운전대를 잡는 거란다. 아프지 않고 일하니까 자식들이 좋아한다며 집에서 놀면 뭐하냐고 반문한다. 경제력이 있으니 가끔 자식들에게 용돈을 주는 기쁨도 있다고 한다. 그 전에 만난 70세 할아버지 운전기사도 기억에 남는다. 2~3년 전에 암 수술을 하시고도 거뜬히 택시기사로 일하는 ‘젊은 기사’였다. 일하지 않으면 오히려 아프다는 그들. 노인에게 일은 단순한 노동의 의미를 뛰어 넘는다. 삶에 활력을 주고, 몸과 마음의 건강까지 챙겨준다. 그들이 행복한 노년을 지내도록 일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다가온다. 활기차게 사는 ‘젊은’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안현정 별세 전 트위터글 ‘20대 때 난 식비를’에 눈물이

    안현정 별세 전 트위터글 ‘20대 때 난 식비를’에 눈물이

    극작가 안현정씨가 35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기 전 트위터에 남긴 글이 뒤늦게 알려져 애절함을 더했다. 안현정 작가는 별세 전 충수암 투병생활을 해오던 지난 6월 27일 트위터에 “20대 때 난 식비를 아껴가며 글을 썼고 그래서 작가가 되었지만 건강을 돌보지 못했다”고 밝혀 작가가 되기까지의 궁핍했던 생활과 작가가 된 이후에도 건강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음을 시사했다. 이어 “그런데 작가에게 여전히 그런 희생을 강요하는 세상을 보니 몸과 마음이 다 아프다. 불꽃처럼 타오르다 죽어간 수많은 예술가들이 생각나는 밤이다”라는 글을 남겨 여전히 작가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안 작가는 또 “하긴 우린 정말 미친 바보들.. 그 열악한 대우를 받고 공연 무산되고 작품료 못받고를 반복하면서도 작품 만들 때는 엄청난 희열 속에서 모든 고통을 잊고 꿈을 꾸니까” 라며 어려움 속에서도 느끼는 창작의 희열을 그리고 그 일하는 기쁨을 전해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지난해부터 충수암 투병생활을 해왔던 안현정 작가는 지난 4일 오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서울 서초구 반포동 )에서 별세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15) 살모사는 무서운 뱀?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15) 살모사는 무서운 뱀?

    대표적인 독사류 ‘살모사’는 한자로 ‘殺母蛇’라고 쓴다. 그래서인지 어미를 죽이는 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근거 없는 얘기다.살모사로서는 억울할 법한 이런 루머가 생긴 것은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인지 모른다. 살모사는 ‘난태생’(卵胎生)이다. 배 안에서 알을 낳고 부화시켜 대여섯 마리의 새끼 뱀으로 키운 후 세상에 내보내는 독특한 출산법이다. 작고 차가운 몸으로 알을 품을 수도 없고, 땅을 파거나 흙을 덮을 능력도 없으니 이런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몸속에서 새끼를 키우다 보니 자식들이 태어날 때가 되면 어미는 상당히 수척해진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어미가 죽지는 않는다. ●이름 때문에 어미 죽이는 뱀 오해 동물원에 있다 보면 해외토픽에 실릴 법한 희한한 사고나 해프닝을 접할 때가 있다. 산에서 일어난 살모사에 관한 일이다. 어떤 가족이 자동차로 산에 올랐다. 정상에 최대한 가까이 가려다가 차 바퀴가 살모사들의 터전을 침범했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뒷좌석에서 놀고 있는 사이 살모사가 차 바닥의 뚫린 곳을 통해 실내로 들어왔다. 기겁을 한 아이들이 밖에 있던 부모에게 달려갔고, 아버지는 작대기로 살모사를 차 안에서 몰아내려 했다. 하지만 살모사는 운전대 사이에 뚫린 빈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무리 아래를 쳐다보고 기다려 봐도 살모사는 나오지 않았다. 그 후 어찌어찌 하여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모든 빈틈을 막고서 공포 속에 운전을 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아직 차 안에 있을 게 분명한 살모사를 몰아내기 위해 하루 종일 자동차 히터를 틀어 놓기도 하고 바닥에 밀가루를 뿌려 보기도 했다. 카센터에 가서 차를 거의 분해하다시피 뜯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살모사의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일은 싱겁게 해결됐다. 어느 날 집 앞에 살모사 한 마리가 능글맞게 똬리를 틀고 있는 게 아닌가. 분명 산에서 들어온 그 뱀이었을 것이다. ●독의 강도는 작은 쥐 겨우 죽일 정도 그런데 살모사가 정말 그렇게 공포에 떨 만큼 위험한가. 전문가들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사실 뱀에 물려 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개인적으로는 한명도 못 봤다. 우리 동물원 파충류 사육사도 살모사에 물린 적이 있었지만 그 부위가 약간 짜릿하다 말았다. 전신 증상은 전혀 없었다. 살모사는 쥐를 잡아먹는 60㎝ 미만의 작은 뱀이다.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로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사람을 매우 두려워한다. 독의 강도도 작은 쥐를 겨우 죽일 정도다. 맹독성 코브라도 사람을 무는 순간에 독을 분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뱀같이 극에너지 보존 시스템을 갖춘 동물들은 생존에 필요한 수준 이상의 것을 생산하거나 소비하지 않는다고 한다. 안분지족을 아는 군자의 풍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글 사진 최종욱(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lovenet@hanmail.net ............................................................................................................. 서울신문은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의 열띤 호응 속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광주광역시 우치동물원의 최종욱 수의사와 서울신문 유영규 기자가 함께 꾸미는 지면입니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동물들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은밀한 비밀 등 다채롭고 흥미있는 이야기들이 매주 1차례씩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금까지 연재됐던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른들의 동물원] (1) ‘크누트’의 돌연사 왜 어미곰은 새끼를 포기했을까? [어른들의 동물원] (2) 외로운 ‘블랙스완’ 대량학살의 슬픈 역사 간직한 그들. [어른들의 동물원] (3) 동물들의 사랑 몸짓(상) 고슴도치들은 어떻게 교미를 할까? [어른들의 동물원] (4) 동물들의 사랑 몸짓(하) 수컷뱀 성기 2개로 5시간 짝짓기 [어른들의 동물원] (5) 동물의 심리학 개장수 나타나면 동네 개들 조용해지는 이유 [어른들의 동물원] (6) ‘고리롱’ 박제논란(상) 숨진 로랜드고릴라를 어떻게 해야 하나 [어른들의 동물원] (7) 우리나라 최초 코끼리 600년전 일본에서 실려와 비운의 삶 [어른들의 동물원] (8) ‘고리롱’ 박제논란(하) 서울동물원, 독자의견 따라 박제 않기로 [어른들의 동물원] (9) 잘못 알려진 진실들 백조는 물속에서도 발짓을 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동물원] (10) 동물들도 자살을 하나? 1주일 만에 새끼 잃은 어미원숭이의 선택 [어른들의 동물원] (11) 술 취한 원숭이들 먹던 과일 씹다 두면 발효돼 자연의 밀주로 [어른들의 동물원] (12) 더위 절대강자 낙타의 비밀 무릎 같은 발목이 하이힐 역할 [어른들의 동물원] (13) 원숭이와 눈 마주치지 마라 동물원 사팔뜨기 안경의 비밀 [어른들의 동물원] (14) 불법포획 돌고래의 고백 사자도 공작도 과거를 숨기는지 몰라요
  • [열린세상] 평창 유치 이후 해야 할 일/박양우 중앙대 예술경영학과 교수

    [열린세상] 평창 유치 이후 해야 할 일/박양우 중앙대 예술경영학과 교수

    2018 동계올림픽 후보지 결정을 일주일쯤 남긴 6월 말 특강이 있어 평창을 찾았을 때 겪은 일로 내 마음은 영 편하질 못하다. 나는 어느 도시를 갈 경우 열차나 버스를 이용해 그곳에 도착해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주변을 들러 본다. 그런 뒤 최종 목적지까지는 대체로 택시를 이용한다. 그리고 택시는 청결한지, 기사는 친절하고 또 지역문화에 대해 얼마나 잘 설명하는지를 탐색하는 버릇이 있다. 아마도 문화관광부 관광국장을 한 전력이 있어 그런 것 같다. 이날도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만에 평창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겠다고 세번이나 도전하는 도시라고 하기엔 버스터미널이 너무 허름한 데 놀랐다.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탔다. 습관대로 택시를 타며 “안녕하세요, 기사님.”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대답이 없다. 좀 머쓱한 심정으로 읍내 외곽에 위치한 감자꽃스튜디오로 가자고 했더니 그는 무덤덤하게 핸들을 잡았다. 가는 도중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다음 주 평창이 잘되어야 할 텐데요.”라고 말을 건네자 그제야 그는 “이번에도 평창이 안 되면 부동산 값 죽 쑤는데….”라고 중얼거렸다. 평창의 문화와 관광지에 관해서는 감히 물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되고 딱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했던 인사 몇 분이 유명 스타가 되었고, 매스컴은 연일 유치 성공 무용담으로 가득했다. 어떻든 우리는 이겼고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이제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성공적인 행사가 되도록 준비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선,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외래 손님을 맞이할 마음과 자세를 갖추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일을 먼저 시작하면 좋겠다. 평창을 찾는 국내외 손님들이 훈훈한 평창의 인심, 강원도의 인심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경기장과 시설을 갖추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둘째, 기본적인 손님맞이 목록을 작성하여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가면 좋겠다. 음식점 위생은 물론이고 식단표 비치, 두루마리 화장지 대신 식당용 휴지 준비, 화장실 정비, 안내판 설치 등 관광객이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작은 것들부터 세심하게 챙길 필요가 있다. 셋째, 위의 일들은 기본적으로 지역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웬만한 일은 정부에서 해주겠지 하는 의식들이 있는데, 자기 사업과 지역이 잘되는 일에 주민이 솔선수범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물론 평창군에서 지역주민들의 자치활동을 격려하고 지원하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넷째, 너무 거창한 하드웨어 건설을 지양하고 내실 있는 대회가 되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유념해야 할 것이다. 대규모 스포츠 행사의 긍정적 효과는 이미 많이 알려졌다. 지역 개발과 고용 증진이라는 직접적인 경제효과는 물론 관광객 유치, 이미지 개선 및 브랜드 효과 제고, 주민의 자긍심 고양 등 유·무형의 이익이 많다. 그러나 일부 연구기관에서 65조원의 경제효과가 있다고 발표했지만, 연구기관마다 경제효과 산정이 다를 뿐만 아니라 고려해야 할 변수도 만만치 않아 그렇게 낙관할 일만은 아니다. 이미 1976년 몬트리올 하계올림픽,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처럼 지방정부에 잔뜩 부채만 떠넘긴 사례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다섯째, 대회 후의 시설운영 및 관리 계획도 미리미리 세워야 한다. 사전 건설계획 단계부터 이 점은 꼭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멀리 갈 것 도 없이 우리나라 10개 월드컵 경기장 중 재정자립을 이루고 있는 경기장이 거의 없는 현실을 직접 보고 있지 않은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분명 빅뉴스다. 그러나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알차고 찰진 행사가 될 수 있도록 기존의 계획들을 다시 한번 검토하고, 행사 후의 시설관리와 국토관리 문제도 미리미리 대비해 두어야겠다. 지역주민들의 손님맞이 의식 변화와 적극적 참여야말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을 이끄는 관건이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 차분하고 꼼꼼하게 준비할 때다.
  • [김문이 만난사람] ‘한민족사 대학’ 추진 ‘라이파이’ 만화가 김산호 화백

    [김문이 만난사람] ‘한민족사 대학’ 추진 ‘라이파이’ 만화가 김산호 화백

    만화 ‘라이파이’를 아시나요. 검은 테의 안경을 쓰고 머리에 ‘ㄹ’자가 새겨진 반달 모양의 두건을 썼다. 날씬한 몸매에 멋진 옷을 입었다. 태백산맥의 깊은 산속 동굴에 비밀기지를 두고 윤박사가 설계한 멋진 비행선 제비호를 타고 아름다운 제비양과 세계 각국을 돌아 다닌다. 그러면서 세계 평화를 깨뜨리는 악당들과 용감하게 싸우고, 광선총과 긴 밧줄로 모험을 벌이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특히 ‘한국산 전사’였기에 대리만족의 통쾌함까지 느껴져 그 열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피너3세와 라이파이’ ‘녹의 여왕 라이파이’ ‘십자성의 신비와 라이파이’ 등 1959년부터 1962년까지 4부작 총 32권이나 발간됐으니 말이다. 이 만화는 한국 최초의 SF 만화라는 데 큰 의의를 담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의 향수를 일으키는 대작으로 꼽힌다. 얼마 전에는 한 TV프로그램 ‘진품명품’에 잠시 소개돼 그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SICAF 코믹어워드 수상자로 선정 ‘라이파이’의 작가 김산호(72) 화백. 지난달 20~2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의 만화·애니메이션 축제 ‘제15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의 코믹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돼 다시 한번 추억의 팬들과 반갑게 만났다. 수상 소식을 듣고 김 화백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해왔다.”면서 “그동안 벌였던 사업은 모두 접었으며 우리 한민족사를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하여 경기 용인에 위치한 작업실로 찾아갔다. ‘아파트 몇동 몇호’라는 말을 듣고 작업실 앞에 서자 한옥의 대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아파트를 이렇게!’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파트 한층을 개조해 마치 한옥같이 꾸며놓았던 것. 역시 상상력이 풍부한 만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콘크리트의 아파트에서도 속세를 잊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 점이 특이해 자꾸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다. 작업실 겸 자택이었다. 안에는 ‘민족사학’과 관련된 많은 책들과 그림들이 진열돼 있었다. 인사를 하면서 김 화백의 명함을 슬쩍 봤더니 ‘만몽 김산호 주신대학교 총장’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만몽(卍夢)은 만가지 꿈을 꾼다는 뜻의 아호. 그렇다면 ‘주신대학교’는 은 무엇일까. 그는 이미 ‘대주신제국사’를 펴낸 바 있다. ‘주신’은 ‘고조선’에서 ‘조선’(朝鮮)의 이두음으로 풀이한다. 그는 ‘대주신제국사’에서 “바른 역사를 아는 것은 자긍심을 높이고,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약속이다. 우리 역사는 그간 너무 많이 왜곡돼 왔다.”면서 “이제 올바른 역사를 통해 자존심을 회복하고, 조국과 민족, 이웃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느껴보자.”고 말하고 있다. 주신대학교가 어떤 곳인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쉽게 설명을 덧붙인다. “예전부터 ‘한민족사’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려는 뜻을 갖고 있었습니다. 교포 사회에서도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일이라는 점에서 대부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지요. 지난 4월 캘리포니아 주정부로부터 대학원 대학교 설립인가를 받아냈습니다. 현재 여러 학자와 임원들이 참여 준비를 하고 있으며 오는 10월 로스엔젤레스(LA) 에서 정식 출범하게 됩니다.” “우리 민족은 어디에 있든 같은 민족이다. 러시아, 일본, 미국 등에 있는 모든 한민족을 껴안아야 한다. 이제 그 역사를 가르칠 때가 왔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던 그다. 이런 노력이 이번에 결실을 맺게 된 셈이다. 국내외에서 ‘한민족사 대학교’를 설립하는 것 자체가 최초의 일이라는 점에서 일단 주목을 끈다. 내년 봄학기 개강을 앞두고 있다는 그는 “이제 남은 것은 한민족사관을 가르칠 교과서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교과서로 쓸 만한 것이 있는지 여러 차례 살폈으나 대부분 국사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데다 민족사학도 제각각으로 통일이 안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김 화백이 앞장서서 ‘민족사 편찬위원회’를 만들고 현재 교과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범한민족사’(PAN KOREAN)란 제목으로 분량이 1500페이지에 달한다. 김 화백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국에는 도서관이 4만 6000여 곳에 달하지만 한국에 관한 역사책이 없습니다. 적어도 미국의 각 주마다 한 권씩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고가 완성되면 영문판을 먼저 발간할 예정입니다.” 또 그는 “30년 이상 우리 한민족에 관심을 두고 작품활동과 그 중요성을 이야기해 왔다.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역량을 이번 교과서 만드는 데 쏟아붓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국사를 가르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민족사의 내용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란 글에서 ‘한’이 진정한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것을 아느냐고 반문한다. ‘한’은 애국가에서 ‘동해물과 백두산, 하느님’을 뜻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한’은 곧 ‘천손족’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범위를 신시(神市), 단군조선에 뿌리를 둔 모든 종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 즉, 부여, 고구려, 예맥, 옥저, 동예, 말갈, 여진, 만주족은 물론 훈족, 몽골, 거란족 등 우랄·알타이어계 모든 종족을 포함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북만주와 몽골지역을 다녀보면 이런 역사가 보인다.”면서 “우리는 신의 자손들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만큼 강력한 자긍심을 가진 나라는 없다. 중국을 올려다볼 것이 아니라 내려다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에서의 사업을 접고 한국에 다시 나올 때의 주목적은 우리 역사가 왜곡돼 있다는 것을 알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였습니다. 1978년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중국 역사의 모든 비밀을 간직한 자금성에 걸려 있던 간판들을 보게 됐습니다. 왼쪽에는 한문표기로, 오른쪽에는 만주 글로 쓰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수년이 지나 다시 방문했을 때에는 정복자 만주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주의 모든 역사와 문화를 중국으로 흡수하려는 것이지요. 동북공정도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민족사의 교육을 강조했다. 그런 까닭을 다시 물었더니 “우리 한민족사가 잊혀지고 있다. 누군가가 제자리에 갖다놔야 한다. 알고도 못하면 죄악이 아니냐.”고 단호하게 말했다. ●군사독재시절 창작의 자유 찾아 미국행 화제를 바꿨다. ‘라이파이’는 어떻게 해서 태어났으며 미국에는 왜 갔는지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는 6·25전쟁 때 부산 피란시절 대신동 인근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만화에 빠졌다. 당시 일본만화 ‘밀림의 왕자’도 즐겨 보면서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 중학교 다닐 적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극장에서 그림을 그려 학비를 벌었다. 이후 만화잡지 ‘만화세계’에 투고했고 게재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1957년 독립군 이야기를 그린 ‘황혼에 빛난 별’로 정식 데뷔를 했다. 이듬해에는 ‘전쟁과 평화’ ‘템페스트’ 등 세계 고전을 만화로 그렸다. 무엇이든 소재가 되면 작품화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라이파이를 상상해냈다. 미국에는 슈퍼맨, 일본에는 아톰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들과 비견되는 것이 왜 없을까 하는 점에서 출발했다. 또한 1950년대의 우울하고 처참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를 지키는 자랑스러운 수호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라이파이는 전쟁의 실의에 빠진 독자들에게 희망과 꿈의 상징처럼 다가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책이 나오는 날이면 독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당시 정확한 판매부수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성경책보다 더 많이 팔렸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1966년 김 화백은 일본에서 출판제의를 받게 되면서 해외진출을 생각했고 기왕이면 자유롭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미국행을 택했다. 때마침 군사독재 정권의 서슬퍼런 ‘검열’ 또한 국내에서의 작품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터였다. 이후 ‘산호’라는 필명을 김산호로 바꿨다. 만화작가 전문 출판사인 찰튼 코믹스의 전속작가로도 활동한 그는 미국에서 700여편의 작품을 그렸으며 특히 초기 서부활극을 그린 ‘샤이언 키드’는 많은 인기를 얻었다. ‘유령이야기’ ‘용녀’ 등 한국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려 해외에 내놓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아지자 1988년부터 만주를 비롯한 고대사의 무대들을 직접 답사하며 한민족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고 우리 민족의 중심에서 세계를 보는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민족사에 대해 만화와 회화를 넘나들었다. 그의 화실에 이런 소재의 그림이 많은 까닭이다. 2003년 ‘라이파이 동호회’와 팬카페가 생겨나면서 ‘라이파이’도 요즘 다시 살아나고 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김산호 화백은…]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나 1957년 ‘황혼에 빛난 별’로 데뷔했다. 이후 ‘전쟁과 평화’ ‘템페스트’ 등 세계 고전을 만화작품으로 내놓았으며 1959년부터 1962년까지 한국 최초의 장편 SF만화 ‘라이파이’ 전 4부작 32권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십자가에 핀 꽃’ ‘모비딕’ ‘유리천사’ ‘검은 박쥐’ ‘해뜨는 나라’ ‘청동마왕’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만화계에 동양풍의 만화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뉴욕 ‘찰스 코믹스’ 만화출판사에서 전속작가 등으로 활동했다. 미국에서는 ‘샤이안 키드’ 등 700여편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1974년 산호그룹 CEO에 취임해 사업가로도 활동했다. 1993년 한민족 역사 다큐만화인 ‘대주신제국사’ 1~3권을 발간한 뒤 2년후 완결편(4~5권)을 펴냈다. 이후 회화극본 ‘두만강’(1996), ‘한국 105대 천왕존영집’(2002), ‘백제, 일본, 그리고 왜’(2003), ‘단군조선’(2005), ‘부여사’(2007) 등 수십 권을 발간했다. 현재 주신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으며 이 대학에서 교재로 쓰일 ‘범한민족사’(PAN KOREAN)를 집필하고 있다.
  • “61년전 생이별 부친 명예회복 이제 시작”

    “61년전 생이별 부친 명예회복 이제 시작”

    “여든이 다 된 노인이 백주대낮에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길거리에서 엉엉 울었어요. 제가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아 다행이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61년 전 생이별한 아버지가 정부로부터 납북자로 인정받은 날, 어느덧 80세의 나이를 바라보는 아들은 벅차오르는 기쁨과 복받치는 회한에 말을 잇지 못했다. ●“5년전 평양 묘지에 안장 확인” 6·25 전쟁 중 납북자로 인정받은 김상덕(1891~?) 전 제헌국회의원의 아들 김정륙(76) 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은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납북 경위와 그간 납북자의 자식으로서 처절하게 살아야 했던 지난날을 털어놓았다. 세파의 고초를 겪은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지만, 아버지가 북으로 끌려가던 1950년 7월의 그날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쟁이 터지자 이 박사(이승만 전 대통령)는 라디오를 통해 ‘우리가 곧 반격하니 도망가지 말라. 서울을 사수하고 나도 여기 있겠다.’고 말했어요. 이 박사의 안심하라는 말만 믿고 아버지와 저는 서울에 남아 있었죠. 반민특위 위원장을 지낸 아버지는 납북을 피해 돈화문 근처 친척집으로 피신했어요. 안심하라던 이 박사는 이미 남쪽으로 피한 뒤였죠.” 그렇게 집에서 숨어 지낸 지 20여일이 지난 7월 초순, 비극이 시작됐다.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김 전 의원이 필동 자택을 찾은 것.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이내 인민군이 집으로 쳐들어왔고 그렇게 아버지와 이별했다. 인민군은 “남쪽에서 훌륭한 사업(반민특위)을 하신 어른이시니 걱정말라. 조금 있다가 돌아오실거다.”고 했지만 김 전 의원은 돌아오지 않았다. 2006년 남북교류를 통해 평양을 방문한 아들은 아버지가 평양 외곽의 한 묘지에 묻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영전에 무궁화훈장 바쳤으면…” “아버지는 분명히 북한에 강제로 잡혀갔음에도 과거 정부로부터 이적행위자 취급을 받았어요.” 김 전 의원은 1990년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김 부회장의 소원은 두 가지다. 다른 제헌의원들처럼 무궁화 훈장을 받아 아버지 영전에 바치고, 아버지가 못다 이룬 친일을 청산하는 것. 그는 “납북자의 명예회복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면서 “정확한 사인을 밝히고 추가 납북자 규명을 위해 남북관계부터 정상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박찬호 “절망·배신·죽음과 싸웠다”

    메이저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일본프로로야구 오릭스에서 뛰는 박찬호(38)가 “인간으로서 삶을 배우는 중”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박찬호는 올 시즌 7경기에 출장해 1승 5패와 평균자책점 4.29의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거뒀다. 허벅지 근육통까지 겹쳐 여전히 1군 무대에 얼굴을 내밀지 못하는 실정이다. 박찬호는 2일 공식홈페이지에 올린 ‘행복은 성적이 아닌 노력순’이라는 글을 통해 최근 심경을 털어놓았다. 박찬호는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했지만 성적을 낼 때마다 기쁨은 잠시였다.”면서 “선수인 내게 좋은 성적이 목표가 아닐 수는 없으나 완전한 행복은 성적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이어 지난달 생을 마감한 일본인 투수 이라부 히데키를 거론한 박찬호는 “그의 죽음을 보며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고 덧붙였다. 박찬호는 “나도 절망과 배신, 분노, 자책, 미움, 죽음 등과 싸운 적이 있었다.”면서 “내 안을 관찰하며 그것들을 바꿀 희망을 안고 다시 맞설 용기를 찾았다.”고 적었다. 박찬호는 “고통스러운 시련도 내려놓으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지며 ‘아무것도 아닌 나’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다.”고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설파했다. 그러면서 “현재 선수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살고 있다. 지금도 선수로서의 기술보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배우고 있다.”고도 했다. 박찬호는 “여전히 끊임없이 노력하고 인내하며 도전한다.”면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 노력순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친다.”는 다짐을 전했다. 그는 ‘현재에 집중하는 찬호로부터’라고 글을 마무리했다.그러나 박찬호는 이날 올린 글에서 한국 진출과 관련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열린세상] 교육에 희망을 거는 사회/이현청 상명대 총장

    [열린세상] 교육에 희망을 거는 사회/이현청 상명대 총장

    우리 국민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교육적으로 열정을 가진 민족이다. 이스라엘 민족보다 더 교육열이 강한 민족이다. 부모들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교육을 통해 자녀들의 사회적 계층 상승 이동을 추구하려 한다. 아이스링크에 가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김연아 키즈’와 부모들로 북적이고, 골프연습장에 가면 ‘2세대 박세리 키즈’가 넘치며, 수영장에 가면 ‘박태환 키즈’가 가득하다. 요즘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는 ‘K팝’ 아이돌스타처럼 되고자 땀을 흘리는 청소년과 이를 뒷바라지하는 학부모들도 많다. 방송매체에서도 영국의 폴 포츠와 같은 성악가를 배출하듯이 숨은 잠재력을 개발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앞다투어 방영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민족은 교육만큼은 계층과 성별, 지역을 초월하여 모두가 올인하고 있다. 물론 ‘고3 가족’이나 ‘기러기 가족’ 등 과열·과잉경쟁 현상에는 걱정할 부분도 없지 않지만 결코 비판적 시각으로 볼 일만은 아니다. 자녀 교육에 헌신하는 21세기형 어머니들이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우리나라의 장래는 어둡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육이 진정 세계 제일이 되려면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첫째로, 이제는 반복된 훈련을 넘어 창의적이면서 세계적 눈높이에 맞는 교육의 결과로 세계와 승부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인재들이 세계적으로 큰 성과를 얻고 있는 것은 반복 훈련학습의 결과다. 스포츠 부분이나 일부 음악 부분, 심지어 ‘K팝’ 역시도 반복된 훈련의 결과에 의해 얻어진 것들이다. 이제 가장 한국적 소재로 선진국의 방법론을 원용하는 창의적 연구나 첨단 과학, 예술문화콘텐츠 그리고 삶의 진수를 다루는 창작들로 세계 으뜸이 되어야 한다. 둘째, 아픔을 알고 기쁨을 알며, 이웃의 고통을 아는 감성교육이 필요하다. 감성 없는 지성은 마른 지성이요, 지성 없는 감성은 격한 감성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월드컵의 열기 때처럼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서로 나라를 생각하고 벽을 허물 수 있는, 더불어 사는 교육이 필요하다. 월드컵 때 온 국민이 이웃 간의 벽을 허물고 골 하나 넣을 때마다 전국이 환성으로 가득차고 서로 얼싸안고 환호하듯 이웃의 아이도 내 아이처럼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이웃과 함께할 수 있는 교육열이 이 땅에 심어져야 한다. 셋째로, 국민들의 ‘교육 눈높이’를 낮추는 일이 필요하다. 무조건 대학 진학만을 고집하는 교육 눈높이를 조정해야 한다. 현재 대학졸업연수 평균이 6.2년이나 되고 졸업 후 최소 11개월은 직업 없이 공백 기간을 경험해야 하며 청년층 비정년 인구가 102만명, 그리고 청년 실업자가 36만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부모들은 자녀의 학력 눈높이를 낮추고 기업들도 고졸자와 대졸자 간의 학력 격차보다 능력을 감안하면서 고졸 취업할당제를 도입하는 것도 문제 해결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고졸자들이 언제든 대학 진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면 교육 눈높이 조정은 가능할 것이다. 참된 교육의 눈으로 보면, 교육을 알면 알수록 교육이 값지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교육에 투자할수록 인생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교육은 100m 경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며 자기를 다시 그려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모든 교육 현장에서 부모는 부모의 자리에서, 교사는 교사의 자리에서 그리고 정부나 정치인들은 정치인의 자리에서 교육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눈으로 교육을 볼 때 사랑할 수 있는 입과 귀가 열리는 교육의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 교육열은 뜨겁지 않으나 꺼지지 않고, 희생하지 않으나 희생 못지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교육열이 높다는 점을 탓할 일은 아니지만 너무 뜨거워지면 교육에 취한 사회, 시험에 취한 학생, 사교육에 취한 부모의 모습을 벗어날 수 없다. 제대로 가르치는 교육시스템과 올바른 교육열을 가질 때 교육은 희망이 되고 희망은 결실이 될 것이다.
  • [2014 월드컵 3차 예선 쿠웨이트·UAE·레바논과 한 조] 중동은 없다

    중동의 모래바람을 뚫어야 브라질에 갈 수 있다. 한국은 31일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대륙별 예선 조추첨 결과 아시아지역 3차 예선에서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레바논 등 중동 3국과 B조에 편성됐다. 이에 따라 한국은 장거리 이동과 낯선 환경의 부담을 안고 오는 9월부터 내년 2월까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최종 예선 진출을 위한 3차 예선전을 치르게 됐다. 한국은 9월 2일 레바논과 홈에서 1차전을 치르고, 나흘 뒤인 6일 쿠웨이트와 원정 경기로 2차전을 벌인다. 한 달여의 휴식기인 10월 7일 국내에서 한 차례 평가전을 가지고, 10월 11일 UAE와 홈에서 3차전, 11월 11일 UAE와 원정 4차전을 한다. 연이어 11월 15일 레바논과 5차전 원정경기를 치르고 나서 내년 2월 29일 쿠웨이트를 홈으로 불러들여 3차 예선 최종전을 벌인다. 쿠웨이트(95위)는 역대 A매치 전적 8승3무8패로 한국과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단 1990년대 중반까지만이었다. 한국은 2004년부터 치른 쿠웨이트와의 세 차례 A매치에서 3연승(10골·무실점)을 거두면서 한 수 위의 전력을 자랑하고 있다. 또 2005년 6월에 치러진 쿠웨이트와의 2006년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5차전에서 무려 4골을 넣어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UAE(109위)도 역대 전적 9승5무2패로 한국의 일방적 우세다. 한국은 2009년 6월 UAE와의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원정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며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대기록을 달성한 좋은 추억도 가지고 있다. 한국은 레바논(159위)에도 역대전적 5승1무의 압도적 우위다. FIFA 랭킹 상대전적도 한국(28위)이 우위인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안심할 수만은 없는 여건이다. 장거리 원정경기에 따른 피로감과 중동의 기후와 분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홈 앤드 어웨이라 해도 쿠웨이트, UAE, 레바논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어 자기들끼리의 이동 거리가 얼마 되지 않지만, 한국은 원정길을 떠나면 왕복 비행시간만 24시간이다. 게다가 한국은 유럽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기에 경기에 앞서 호흡을 맞출 시간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대표팀 조광래 감독은 “최근 중동축구의 전력이 평준화되고 있어 FIFA 랭킹만으로 상대의 실력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면서 “중동 원정에 따른 선수들의 체력적인 부담을 줄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중동 원정에 맞춰 해외파 소집 일정은 물론 최단 거리 이동을 위한 항공권 예약과 최고의 숙소 선정 등 선수들의 체력을 지켜낼 다양한 방법을 짜내겠다.”고 덧붙였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프로야구] 갈매기 공동 4위 날다

    [프로야구] 갈매기 공동 4위 날다

    31일 프로야구 롯데 팬들은 참 생소한 광경을 목격했다. 사직에서 열린 두산-롯데전이었다. 이날 경기를 한번 되짚어 보자. 롯데 선발 크리스 부첵은 4와3분의2이닝을 던진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 시점 스코어는 3-2 롯데 1점차 리드. 부실한 롯데 불펜을 생각하면 중·후반 경기 흐름이 좋지 않았다. 더구나 불펜 핵심 임경완-김사율이 지난 사흘 연속 등판한 상태다. 부첵 뒤에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이재곤이었다. 47일 만에 오른 1군 마운드. 롯데 벤치에 불안한 기운이 돌았지만 이재곤은 1과3분의1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7회에는 다시 강영식 등장. 오재원을 삼진으로 잡은 뒤 김현수에게 안타를 내줬다. 투수를 바꿔야 할 시점이다. 여기가 이날 경기의 승부처였다. 그러면 롯데 양승호 감독의 선택은? 다시 임경완이었다. 4일 연속 구원 등판이다. 일단 불을 껐다. 김동주와 최준석을 범타로 잡았다. 그러나 8회 초 다시 위기가 왔다. 연속 4안타를 맞고 2실점. 스코어가 7-6이 됐다. 다시 양 감독에게 선택의 순간이 왔다. 누구를 마운드에 올릴 것인가. 결국 김사율마저 1사 1루 상황에 경기에 나섰다. 이종욱-오재원을 잡고 일단 이닝을 마감했다. 그러는 사이 롯데 타선은 8회 말 1점을 보탰다. 8-6 롯데 2점차 리드. 마지막 9회 초 김사율은 김현수를 볼넷으로 내보내고 김동주를 중견수 뜬공으로 잡았다. 이후 최준석-이원석에게 연속 안타를 맞아 스코어 8-7. 1점차 승부. 1사 주자는 1·2루였다.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이원석과 용덕한을 잘 잡았다. 결국 롯데가 8-7로 이겼다. 그러면 롯데 팬들이 목격한 생소한 광경은 뭘까. 롯데는 이날까지 4일 연속 세이브로 경기를 마감했다. 선발이 아닌 구원진이 경기를 매조지했다는 얘기다. 10년 만이다. 지난 2001년 8월 26일에서 9월 1일까지 4경기 연속 세이브를 기록한 뒤 롯데 불펜은 단 한 번도 이 같은 기록을 못 만들었었다. 롯데는 이날 승리로 4위 LG와 공동 4위가 되는 기쁨도 누렸다. 대전에선 한화가 SK에 5-2로 이겼다. 광주에선 넥센이 KIA를 9-4로 눌렀다. LG-삼성 경기는 우천으로 취소됐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8) ‘마담 보바리’ 작가 플로베르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8) ‘마담 보바리’ 작가 플로베르

    1856년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 보바리라는 여인의 불륜을 다룬 소설이 발표되었다. 작품은 즉각 가족주의와 금욕적 도덕관을 내세우는 신흥 부르주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다음 해, 제2제국의 권위주의적 재판부는 풍기 문란과 종교 모독이라는 죄목으로 이 작품을 기소한다. 유부녀가 노골적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불륜을 저지른 여인의 종부성사를 장님의 상스러운 노랫소리가 화답하는 등 작품 전체가 간통을 미화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마지못해 문학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변호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렇게 ‘마담 보바리’와 작가 플로베르는 예술 창작을 암암리에 규제해 오던 부르주아적 도덕의 허위를 폭로했다. ●아버지, 나는 부르주아가 싫어요 플로베르는 1821년 소도시 루앙의 외과의사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장력 있던 조숙한 소년은 자신의 재능이 문학으로 꽃필 것을 꿈꾸었다. 하지만 지방 부르주아였던 닥터 플로베르가 보기에 이 똑똑한 아들이 해야 할 일은 딴 데 있었다. 파리의 법대에 들어가 입신출세하고 부와 명예를 얻는 것! 1820년 왕정복고시대에 태어난 플로베르는 1880년 죽을 때까지 왕정, 공화정, 제정이라는 각종 정치 체제의 변혁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어떤 체제가 되었든, 사회의 주인공은 부르주아였다. 온갖 정치적 변혁의 한가운데에서 이 계급은 금융과 산업을 주도하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갔다. 소년 플로베르는 루앙의 시민들이 각자의 이권과 보신을 위해 질투에 찬 중상모략을 일삼는 것을 지켜보았다. 겉으로는 다들 온순하고 근면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비정한 야욕이 도시에 넘쳐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부르주아거나, 부르주아를 지향하는 프롤레타리아트거나. 청년 플로베르는 부르주아라는 말을 특정한 계층에만 국한해서 쓸 수는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돈이 없고 지위가 낮은 하층계급 안에서도 의사나 변호사 같은 번듯한 직업을 갖고, 돈 있는 가문과 결혼하고, 사교계에 나가 출세할 수 있으리라는 부르주아의 삶이 하나의 꿈으로 확실히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란 재정상태가 아니라 정신상태의 이름이어야 했다. 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부르주아에 대한 증오는 미덕의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부르주아’라는 말에는 프록코트를 입은 부르주아와 마찬가지로 작업복을 입은 부르주아들도 포함되어 있다.”라고 써 보냈다. 플로베르는 1843년과 1844년 연이어 일어난 치명적인 신경발작을 겪었다. 그때부터 자신의 건강을 위해 아예 부르주아적 삶과 인연을 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법대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포기하고 문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학계 안에서도 부르주아적 태도가 판 치고 있었다. 작가들은 기존의 문학잡지나 아카데미를 부와 명예를 향한 도약대로 삼아 그 안에서 자족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치의 격변기마다 부화뇌동하면서 사회문제, 대중의 교화, 진보, 민주주의 같은 판에 박힌 소리만 되풀이했다. 사실주의를 내세우면서 서민들의 대변자로 자처하고 하층민들을 동정할 뿐이었다. 플로베르는 이들을 보며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줄 수 있는 문학을 꿈꾸기 시작했다. 자신의 길은 분명했다. 부르주아적 세계관을 버릴 것!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창조할 것! 플로베르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오직 문학에 자신의 삶을 다 바치기로 했다. 나중에 카프카는 이런 플로베르를 자신의 정신적 지주로 모시며 평생 그의 작품을 가까이 했다. ●“나는 보바리다”-자살 장면 쓰면서 구토 플로베르는 본격적인 첫 작품을 구상하면서 안토니우스라는 성인에게 끌렸다. 안토니우스는 250년 무렵 이집트 북부에서 태어난 기독교 초기의 성자다. 그는 사막에서 고행하며 각종 이교도의 신들과 자기 안의 탐욕, 질투, 회의에 맞서 신앙을 지켜냈다. 플로베르는 이 성인의 삶에서 자신의 운명을 보았다. 끊임없이 유혹을 마주하면서 수도해야 하는 성인처럼, 그 자신도 계속해서 부르주아적 태도와 취향을 마주하며 글을 써야 했다. 문학에 인생을 건다는 것은 그런 적극적 대결이 필요한 일이었다. “진주는 조개의 병에서 생기는 것이라지만 문체는 아마 그보다 더 깊은 고통을 통해 나오는 것일 거요. 예술가의 삶, 아니 예술 작품의 완성도 그렇지 않겠소? 거대한 산을 오르는 일처럼 말이오. 얼마나 집요한 의지가 필요하겠소! 그 산 정상은 창공 속에서 순수함으로 빛나고, 그 엄청난 높이는 공포를 가져다주지. 우리는 더듬더듬 바위에 손톱들을 찢겨가면서, 외로움 속에 눈물을 흘리며 계속 걸어가지. 우리는 욕망의 백색 고통 속에서 소멸하는 거요. 정신의 격류가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얼굴을 태양으로 향한 채!”(편지, 1853년 9월 16일) 제목은 ‘성 앙투안의 유혹’. 그는 3년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그의 이야기는 서정, 인물의 움직임, 구성 어느 것도 새롭지 않았다. 초고를 본 친구들은 상투적인 반복과 무질서한 구도에 진저리를 쳤다. 플로베르는 성 앙투안을 쓴다면서 결국 자신의 의식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자신도 타인의 삶, 다른 존재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한 여느 부르주아들과 다를 바 없었다. 플로베르는 작가의 개성과 정념이 지배하는 문학은 예술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플로베르는 예술이 제2의 자연과 같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불가해한 것. 숲 속에 살아 있는 수많은 나뭇잎과 초록의 속삭임처럼 무한하면서도 준엄하게 존재하는 것. 그래서 아름다운 것. 작가란 자신의 경험과 정념을 지움으로써 이 제2의 자연을 창조하는 존재여야 했다. 플로베르는 인물의 말과 행동을 기술하는 글쓰기, 그것이 바로 작가 주체를 소멸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는 나밖에 모를 거요. 주제, 인물, 효과 등등 모든 것이 나의 바깥에 있거든. 우리가 쓰는 글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오. 예술과 예술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편지, 1852년 7월 26일) 그렇게 해서 플로베르는 자신과는 출신도, 성(性)도, 교육 배경도 완전히 다른 시골 유부녀 에마 보바리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그는 에마와 그녀 이웃들의 속물주의가 주는 혐오감을 견디며, 작품 속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도록 6년 동안 쉬지 않고 세상을 관찰하고 연구했다. 에마가 비소를 먹고 자살하는 장면을 쓰다가 구토를 하기도 했다. 플로베르는 종종 “나는 에마 보바리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수도승처럼 철저히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소멸시키고 에마 보바리라는 또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시대의 허위와 대결 생애 마지막에 플로베르가 도전한 것은 두 명의 필경사 이야기다. 최신의 근대 학문을 다 섭렵해 보기로 한 부바르와 페퀴셰. 하지만 저명하다는 원예학, 지질학, 의학, 고고학, 심리학, 교육학 안에는 논리적 모순이 너무나도 많았다. 게다가 각각의 지식들은 현실에 적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정보를 추상적으로 나열하고 있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근대 지식의 한계에 대항하면서 진리와 미,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 작품의 부제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백과전서’다. 플로베르는 이 작품을 위해 1500권이 넘는 학술서들을 철저히 검토했다. 근대적 학문에 맹종하면서 인류의 진보를 신봉하는 부르주아의 어리석음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자 한 것이다. 부바르와 페퀴셰의 인생에는 그 어떤 극적 드라마도, 감동적인 사건도 없다. 오직 실험과 논증이 백과사전처럼 한없이 펼쳐진다. 오락으로 읽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논리적인 대화의 연속이었다. 한가한 부르주아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역사소설, 연애소설과 같은 소설의 전통적 구분은 이 작품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어리석음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플로베르는 미완으로 붙이게 된 뒷부분 개요에서 서술 방법과 작품 분석을 소개하기도 했다. 소설 안에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해석하다니! 상상물인 소설과 현실의 작가가 뒤섞여 버린 것이다. 이렇게 플로베르는 19세기 문학의 온갖 관습을 무너뜨려 버렸다. 이 최후의 싸움은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플로베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면서 근대 학문의 어리석음과 부르주아 문학의 허위와 대결했다. 오선민(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타고르 고향서 만난 시간의 향기

    인생은 떠날 때 아름답다고 했다. 삶이 지치면, 연애하던 연인과 헤어지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거기에서 굳이 ‘뭔가 찾을 일’도 없겠지만 마음의 무게를 가벼이 하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2009년 9월 시인 곽재구는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의 시 강의를 멈추고 타고르의 고향인 산티니케탄으로 떠난다. 여기에서 540일 동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한다. 왜 그랬을까.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사평역에서’의 당선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시인 곽재구는 ‘서울 세노야’ ‘참 맑은 물살’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포구기행’ 등으로 독자들과 친하게 가까이했다. 그가 9년 만에 에세이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문학동네 펴냄)을 펴냈다. 여기에서 그는 “여행의 시작은 타고르의 시편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벵골 사람들 속에 함께 살면서 타고르의 모국어의 벵골어를 익혀 타고르의 시편들을 한국어로 직접 번역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타고르의 꿈과 이상이 고스란히 남은 산티니케탄에서 벵골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은 기쁨 이상이었다.”고 덧붙인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 산티니케탄에서 만난 시간의 향기를 노래하고 있다. 아울러 책의 출간에 대한 아무런 의식도 없이 ‘필연적으로 쓰여진’ 글들을 묶었다고 시인은 토로한다. 그저 ‘오래 묵힌 마음의 여행’이라는 것이다. 책의 첫 대목부터 인상 깊다. ‘하루 24시간 8만 6400초를 기억하고 싶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스무 살 때였지요. 내게 다가오는 8만 6400초의 모든 1초들을 다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1초는 무슨 빛깔의 몸을 지녔는지, 어떤 1초는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1초는 지금 누구와 사랑에 빠졌는지, 어떤 1초는 왜 깊은 한숨을 쉬는지 다 느끼고 기억하고 싶었지요. 그런 다음에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인생 고백 글도 눈길을 끈다. 1970년대 중반이었고 삶의 현실이 척박했고, 정치적 피폐함이 극에 이른 시간들 속에서 읽는 타고르의 시편들은 솜사탕 같았고 작은 천국이라고 말한다. 시인이 묘사하는 산티니케탄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 농촌과 비슷한 풍경이다. 초가집들, 뙤약볕 아래 논에서 일하는 농부들, 물을 긷는 아낙네, 흙먼지 이는 시골길 위로 자전거 타고 가는 아가씨 등등. 시인은 이를 ‘별’이라고 표현한다. 하여 그 별과의 인연을 씨날로 흥미진진하게 엮어 나간다. 바람과 나무와 꽃향기가 폴폴하다. 1만 38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이제는 공공외교다] “원조된 돈 75% 공여국으로… 자생력 키워줘야”

    [이제는 공공외교다] “원조된 돈 75% 공여국으로… 자생력 키워줘야”

    “원조는 결국 비즈니스다.” 지난 6월 11일 방글라데시 다카 사무실에서 만난 아흐메드 쇼판 무하마드 보이스(Voice·원조 효과를 감시하는 시민단체) 대표는 선진국·한국 공적개발원조(ODA)에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는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한국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개도국에 대한 원조는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자국 이익을 위해 원조 제도를 운영한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우리가 원조로 받는 돈의 75%가 다른 형태로 공여국으로 다시 빠져나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수백개의 원조 프로젝트가 개도국에 쏟아져도 선진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쓰이면서 자생력을 키워주기보다 오히려 망치고 있다. →원조가 결국 ‘주는 나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인가. -원조가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경우가 있다. 원조 자금으로 대규모 댐을 건설하면 지역 주민들은 고향을, 아이들은 학교를 떠나야 한다. 생활이 파괴되고 인권을 침해받아도 아무도 배려해 주지 않는다. 미국이 전체 원조액의 50%를 이스라엘에 주는 것도 선진국의 원조가 본질적으로 ‘비즈니스’라는 것을 보여준다. →대안은 무엇인가. -받는 나라 국민들을 국가 발전 전략에 참여시키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올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원조를 명목으로 수원국의 정책을 바꾸는 조건을 강요하는 등 주권을 해쳐선 안 된다. →한국의 원조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점은. -원조를 줄 때 자국 용역과 물품을 고집하는 ‘구속성 원조’(Tied Aid)가 문제다. 한국의 원조기관과 사용·관리·유지하는 지역사회 간 소통도 없었다. 유상원조는 공여국인 한국 국민이나 수원국인 방글라데시 국민 모두가 내는 세금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양쪽 국민 모두 돈의 흐름과 효과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주는 나라에서 받는 나라’가 된 한국의 원조는 개도국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나. -한국은 원조 역사에서 흥미로운 사례다. 받는 원조, 주는 원조 모두 경험했기 때문에 받는 나라 사람들이 느낄 고통과 기쁨을 누구보다 잘 안다. 오는 11월 세계개발원조총회(HLF-4)가 한국 부산에서 열리는 만큼 이번에 도출될 전략이 세계 원조 담론에 새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 게임비 마련위해 3명의 자식 판 파렴치 부부

    게임비 마련위해 3명의 자식 판 파렴치 부부

    온라인 게임에 빠진 젊은 부부가 PC방 출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세명의 자식을 팔아버린 파렴치한 일이 벌어졌다. 중국 지방지 상샹두스바오는 최근 “21세 동갑 부부인 리린과 리주안이 세명의 자식을 모두 팔아치워 게임 비용에 썼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들 부부가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한 PC방. 온라인 게임에 빠져있던 두 사람은 결혼해 1년 후 첫 사내 아이를 낳았다. 아이 출산의 기쁨도 잠시, 온라인 게임에 빠져있던 부부는 또다시 아이를 홀로 방치하고 30km나 떨어진 PC방을 다니기 시작했다. 2009년 둘째 아이를 출산한 부부는 생업을 멀리 해 PC방을 다닐 돈이 없었다. 그 즉시 부부는 둘째인 딸 아이를 팔 것을 결심하고 3000위안(약 49만원)에 팔았다. 자식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PC방을 다니던 부부는 금새 돈을 다써버리자 이번엔 첫째 아들에 마수를 뻗쳤고 곧 3만위안(약 490만원)에 파는데 성공했다. 이들 부부의 파렴치한 행각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갓 출산한 3번째 아기마저 팔아 치운 것. 이 사건은 남편 리린의 어머니 신고로 결국 현지 공안에 구속됐다. 두사람은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아이를 파는 일이 불법적인지 몰랐다.” 며 “애초 아이를 양육할 생각이 없었다. 우리는 돈이 필요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사진=자료사진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코파아메리카] 우루과이, 15번째 웃었다

    우루과이가 남미 축구 최정상을 가리는 코파 아메리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우루과이는 25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파라과이와의 결승에서 전반 11분 루이스 수아레스, 전반 41분과 후반 45분 디에고 포를란의 골에 힘입어 3-0 완승을 거두고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1995년 이후 16년 만에 통산 15번째 우승을 차지한 우루과이는 대회 최다 우승국이 되는 기쁨도 함께 누렸다. 대회 최우수 선수(MVP)는 수아레스가 차지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8위로 지난해 남아공월드컵에서 4강까지 오르는 저력을 보여줬던 우루과이의 우승이 새삼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 대회 개막 전에는 홈팀인 아르헨티나(10위)나 남미 최상위 브라질(5위)이 우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두 팀은 약속이나 한 듯 조별리그를 간신히 통과한 뒤 8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떨어졌다. 이런 이변의 원인은 약한 조직력이다. 세대교체 중인 브라질도, 리오넬 메시와 곤살로 이과인 등 유럽 프로축구 최고의 공격수들이 즐비한 스타 군단 아르헨티나도 ‘강한 팀’을 이루지 못했다. 남아공월드컵 뒤 교체된 감독들은 선수 개개인의 기량만 믿고 전술적 고민을 깊이 하지 않았다. ‘경기를 하다 보면 좋아진다.’는 믿음이 강했다. 이 때문에 경기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드리블과 날카로운 패스는 일품이었지만 경기 전체를 지배하며 끊임없이 상대 골문을 두드리는 강팀의 면모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우루과이도 2무 뒤 1승으로 조별 리그를 힘겹게 통과했다. 그러나 8강에서 아르헨티나를 승부차기 끝에 꺾은 뒤 상승세를 이어가 우승컵의 주인공이 됐다. 선수단 자체가 남아공 때와 똑같았다. 월드컵 출전 선수 23명 가운데 20명이 이번 대회에 나왔고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도 그대로였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수비 조직력이 좋아졌고 공격도 날카로워졌다. 우루과이는 별다른 준비 없이도 ‘잘 준비된 팀’이었고 강한 팀이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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