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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기밀해제 문서 공개“닉슨, 베트남전때 비밀 核경보”

    (워싱턴 AP 연합)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소련을 위협,북베트남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1969년 10월쯤 전세계에 비밀 핵경보를 발령했던 것으로 최근 기밀해제된 문서들이 밝혔다. 그러나 ‘광인(狂人)전략’으로 명명된 미국의 이런 조치에 대해 소련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으며,그 이유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아마 (이 조치가)닉슨이 믿었던 것보다 영향력이 적었거나 전세계의 대다수국가들처럼 소련이 경보 발령 자체를 눈치채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다. 닉슨 정부가 추진한 ‘광인전략’은 북베트남에 군사압력을 가중시켜 궁극적으로 파리평화협상 테이블에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이 전략이 북베트남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획득,결과적으로는 북베트남이 숙적인 남베트남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던 것으로 문서들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압력에도 불구하고 파리평화협상이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닉슨 행정부는 1969년 여름부터 핵경보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 美軍 예천서도 양민 살상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19일 경북 예천군 보문면산성리에서 미 공군의 오폭으로 민간인이 대량 살상됐다는내용의 미 국방부 공식문서가 나왔다.미 국방부 서류에 의해 미군의 양민 학살이 확인된 것은 노근리 사건에 이어 두 번째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는 5일 오전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기밀해제된 미 8군 공식문서 ‘AG 333.5 KIG’에 따르면 당시오폭으로 민간인 136명이 사상 또는 실종됐다.”며 문서 사본을 공개했다. 미 8군 사령부가 한국내 미 군사고문단에 보낸 이 문서에따르면 당시 미 전투기 4대가 산성리 마을을 폭격,주민 34명이 숨지고 72명이 부상,30명이 실종됐으며,가옥 62채가 불타고 7채가 파괴됐다. 문서에는 또 당시 미 8군 사령부가 경북 안동군 북후면 신전리(좌표 DR 6257)를 폭격하도록 요청했지만 실제로 폭격한 곳은 예천군 산성리(좌표 DR 6358)였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오폭으로 민간인이 무고하게 희생된 것이다.이 문서에도 “한국군 2사단의 조사결과,사상자중 적군(북한군)은 없었다. ”고 적혀 있다. 이 문서의 공개로 지난해 경상북도 의회가 자체 조사한 ‘산성리 양민학살 사건 결과 보고서’가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유족회는 이날 “이번 문서는 지금까지 발표된 미군 폭격 관련 문서 가운데 정확하게 지명이 언급된 것”이라고 밝혔다.전국유족회는 “오폭으로 인한 민간인 사상이 명백해진 만큼 미 정부와 국방부가 노근리 사건을 비롯,한국전 당시민간인 학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MBC ‘이제는‘ 25일부터 재편성

    지난해 가을 화제 속에 방송됐던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25일부터매주 일요일 다시 방송된다.역사의 질곡 속에 숨겨져 왔던 진실들이 지난해방송된 13편으로 끝나지 않았음에 대한 인식이다.제작진은 ‘이제는 말할 수있다’의 주된 화자는 억눌린 상황에서 말 못했던 당시 피해자들임을 당당히밝힌다. 기획·연출을 맡은 정길화 PD는 “프로그램에서 다룰 사안의 성격상 매스미디어나 역사 속에서 승자나 강자의 이야기만 부각돼 왔다는 역사성을 인식해야 한다.지금까지 누적돼 왔던 역사적 편파성에서 벗어나 균형을 맞추는 셈”이라고 밝혔다.물론 제작진은 피해자의 하소연에만 의존할 경우 진실을 추구하는 다큐의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목소리도 담았다. 피해자들의 폭로와 고발에 가해자들의 변명과 사과,때론 ‘모르쇠’ 등을 만날 수 있다.여기에 목격자들의 증언과 확인,연구자나 전문가의 진단이 이어진다. 지난해 9월 12일부터 12월 26일까지 방송됐던 13편에는 제주 4·3사건,동백림사건,인혁당사건 등이 있었다.25일부터오는 10월 1일까지 방송될 내용은크게 한국전쟁 재조명,남북관계,한미·한일 등 대외관계,인권과 사회 정의등으로 나눠진다. 한국전쟁의 재조명은 6·25가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데서 출발한다.양민학살,미국의 세균전 등이 이 범주다.25일 방송될 ‘양민학살’편에서는 지금까지잘 알려지지 않았던 51년 2월21일 자행된 경남 산청 양민학살 현장이 소개된다.‘의혹! 미국의 세균전’에서는 최근 기밀해제된 미국의 비밀문서를 중심으로 미국의 세균전 의혹에 대해 파헤친다.남북관계에는 ‘94년 전쟁위기론’,‘간첩 황태성사건’등이 있다.전쟁위기론은 94년 북한 영변 핵시설을 둘러싼 북미간 갈등이 주내용이다.당시 미국은 북한의 의심나는 핵시설에 대한폭격까지 염두에 뒀다고 한다.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준 이 상황을 짚어본다. 대외관계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망언(妄言)의 뿌리,일본의 친한파들’이 있다.마지막으로 인권과 사회정의에서는 올해로 분신 30주년을 맞는 ‘전태일 열사 사건’,80년대 초‘녹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졌던강제징집과 군 의문사 사건 등이 방송된다. 정PD는 “현재 진행형의 역사라고 입을 다물면 언제 말하겠는가”라며 “그때그때의 성과를 끌어안고 조금씩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경하기자 lark3@
  • [대한광장] 맥아더 음모설

    내년은 6·25 전쟁 발발 50주년이 되는 해이다.그래서 맥아더 기념관에서는 다채로운 행사가 착착 준비되고 있다.맥아더는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었으며 그 나름대로 한국인을 좋아했고 또 당연히 한국인이 자신을 좋아할 것으로믿었다. 그런데 필자는 15년전 발표한 논문에서 맥아더의 정보기관이 6·25의 발발을 미리 알고도 방치한 것이 아닌가하는 문제를 제기했으며 나의 글을 건네받은 일본인 기자가 이를 자기 나름대로 계승한 일이 있으며, 요즘에는 맥아더의 중공군 개입 예지·방치설이 심심치 않게 돌고 있다. 나는 다시 이 문제를 재검토하기 위해 맥아더 사령부의 방문자 일일방명록을 보려고 여행을 떠났다.방명록을 통해 정말로 맥아더가 1951년 3월중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대사들을 만났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1982년에 출판된 굴든의 ‘한국전쟁비사’에는 ‘맥아더가 파면된 진정한 이유’라는 것이 나온다.맥아더는 이들 외국대사에게 “지금이 중국이 강대국이 되기 전에 전면전으로 때려 눕힐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워싱턴을 유도해 장개석의 재집권을 돕겠다”는 결심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대사들은 곧암호전문을 본국에 치고 해독전문을 본 트루먼은 면종복배하는 맥아더의 불충함에 격노했다는 것이다. 굴든에게 이 기밀사항을 흘린 장본인은 국무부 거물이던 닛체가 아니면 마셜인 것 같다.우선 닛체가 1989년에 나온 회고록에 약간 흘렸고,이 책을 본마셜이 상세하게 흘렸다.마셜기록의 존재는 정신문화연구원 정용욱교수가 귀띔을 해줬다. 그런데 1996년 나온 ‘정일권회고록’을 보면 맥아더가 웨이크섬으로 트루먼을 만나러 가기 전 이승만대통령은 그에게 편지를 써서 중공군이 개입할것이 확실한데 북진통일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트루먼에게 그 가능성을 긍정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이에 대해 맥아더는 10월 13일자 회신에서 “중공군은 반드시 개입할 것입니다.그러나 이 가능성을 아는체 할 수는 없습니다….나는 이것을 전혀 모르는 사실로 할 것입니다.…지금이야말로 중공의 잠재적인 군사력을 때릴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극비중의 극비문서는 굴든이 발굴한 위의 얘기와 통한다.그런데 이 ‘맥아더서한’의 발송날짜가 맥아더가 트루먼을 만나 중공군의 개입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15일로부터 이틀전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같은 달 3일 도쿄주재 영국외교관 개스콘이 맥아더와 면담한 후 본국에 보고한바에 따르면 중공군이 개입만 한다면 만주는 물론 베이징까지 맹폭격할 것이라고 맥아더는 장담했고 영국정부는 이것을 크게 우려했다는 기록도 있으니상황적으론 정일권증언을 나무랄 수 없다. 이 서한의 존재여부에 대해선 몇 갈래로 생각할 수 있다.하나는 정일권씨의 얘기는 굴든 비화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추측이다.이것을 정일권씨가 가공(加工)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회고록의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다.또 정일권씨의 회고록이 그가 1994년 작고후 가필된 것이 아닌가 의심해 볼 수도 있다.그렇다고 쳐도 만의 하나 서한이 나타나기만 한다면 세계적인 특종이 될 것이다.이화장이나 정부기록보존소 등에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으나 외교통상부나 정보기관에서 문서를 인수했을 가능성을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 국립공문서관에 기밀해제되지 않은 이승만과 미정부간의 왕래 극비문서들이 수두룩한 것을 감안한다면 4·19의 소용돌이중에 미 정보기관이 뽑아가지 않았을까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이 설에 대한 사실규명은 6·25의발발연구에,또 허구의 정설화 문제에 지대하게 공헌할 것이기 때문에 연구자나 기자 및 일반인들의 주의를 환기해본다. 方 善 柱한림대 객원교수 재미사학자
  • “미,80년 광주 군투입계획 승인”/미지,정부비밀문건 인용 보도

    ◎“사태악화땐 직접개입 검토” 정부는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군 투입 계획을 승인』했으며 『80년 5월22일(이하 미국시간)소집된 백악관의 한 회의에서는 사태가 통제불능으로 악화될 령우 미국이 직접군사적으로 개입하는 방안도 협의됐다』고 미국의 저널 오브 커머스 지가 27일 「기밀해제된 미국정부 비밀문건(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은 한국의 진압을 알고있었다』는 제목으로 광주 문제에 관한 장문의 기사를 쓴 커머스지의 콤셔록 기자는 27일 『미국정보공개법에 의거해 지난 90년부터 시도한 결과 지난해말 등에 미 국무부와 국방정보국(DIA)의 관련 비밀문건(들)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 2백억원 금괴 수송선 잔해 발견

    ◎일 잠함 Ⅰ52호… 44년 미 해군에 피격/미 탐사가 5년간 추적끝 대서양서 2차대전 당시 독일에 공급할 금괴 2t을 싣고 가다 대서양에서 미해군의 폭격으로 침몰됐던 일본 잠수함 I52호의 잔해가 최근 한 민간 해양탐사가에 의해 발견됐다고 뉴욕타임스지가 18일 보도. 아프리카 서안 케이프 베르데에서 서쪽으로 2천㎞ 떨어진 대서양 한복판의 5㎞ 해저에 가라 앉았던 I52호를 찾아낸 사람은 미국의 폴 티드웰씨. 90년 미국립문서보관소에서 이 금괴의 행방을 추적하던 중 우연히 새로 기밀해제된 I52호의 자료를 입수한 그는 미국과 옛 소련이 보유했던 로봇과 감지기·잠수장치 등 최신 군사장비를 시장에서 구입해 탐사에 나선 끝에 마침내 지난 5월5일 I52호의 잔해 위치를 찾아 내는데 성공했다. I52호가 격침된 날짜는 나치점령 하의 프랑스 로리앵항으로 가기 위해 일본을 출발한 지 3개월이 지난 44년 6월23일.당시 I52호에는 독일에 제공할 2t의 금괴를 넣은 49개의 철제보관함이 실려 있었다. 한편 I52호에 보관중인 금괴는 시가 2천5백만달러(약 2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티드웰씨는 I52호를 성공적으로 인양하면 돈방석에 올라앉게 됐다.
  • 「조소해운주식회사」 관련문서 발굴 의미

    ◎북 3개항 조차/소의 트루먼독트린 대응조치/북 47년 6월이전 단정체제 확립 입증/“미소공위 결렬로 분단” 종전인식 뒤집어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체계를 정립함에 필요한 각종 사료의 조사·수집·보존·편찬및 발간 등을 통해 국사연구의 심화와 체계적인 발전에 기여해 왔다.「조소해운주식회사」관련자료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국외사료조사위원 방선주박사가 최근 기밀해제시켜 보내준 비할 데 없이 가치가 높은 사료다. 이들 사료를 포함한 「북한필사문서」들은 국사편찬위원회가 계속 간행중인 「북한관계사료집」에 넣어 연구자들이 이용하도록 배려할 것이다.본격적인 정리 분석에 앞서 「조소해운주식회사」관련 극비문서의 발굴을 통해 검증할 수 있게 된 몇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새사실 검증 단초로 「조소해운주식회사 창립에 관한 협정서」에 의하면 북한의 인민위원회는 소련의 무역부와 1947년3월25일 조소해운주식회사 창립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그 주된 내용은 청진·나진·웅기의 세 항구를 30년간 양도한다는 것이다.이미 북한의 인민위원회는 1948년9월9일 북한정권의 공식 수립 이전부터 「단독정부」로서 활동하였던 것이다. ○행정체계 확립 확인 「북조선위 지시 제74호」를 통해서는 1947년6월28일 이전에 북조선인민위원회와 지방 인민위원회간에 실질적인 행정체계와 계통이 확립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또 소련군정과의 관계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1946년 초까지도 북한사회를 좌지우지하던 소련군정의 직접 개입의 흔적이 이들 문서에서는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 소련점령군은 이 시기에 벌써 북한지역에 「단독정부」를 이식시키고 이들을 앞세워 전체 한반도의 소비에트화를 위해 배후에서 활동했다는 점을 검증할 수 있다. 둘째 미국과 소련의 대한반도 정책이 크게 변화하는 1947년의 시점에서 소련의 한반도정책의 목표가 본질적으로 무엇이었나를 확인시켜 준다.지금까지 연구자들은 1945년 말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이 나온 이래 1947년 제2차 미소공위가 진행되던 시기까지를 냉전 분위기가형성되고 있었지만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문제에 대해 협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던 것으로 인식하였다.1947년10월18일 공위 제62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제2차 미소공위가 결렬되면서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정책을 바꾸었고,그것이 한반도의 분열상태를 영구화하는 쪽으로 나아갔다고 보았던 것이다. ○자유체제 유지 역점 그러나 「조소해운주식회사」관련 극비문서의 발굴을 통해 드러났듯이,소련은 1947년3월25일 청진·나진·웅기등 세 항구를 새로운 방식으로 「조차」하고 있다.이것은 1947년3월12일에 발표된 미국의 「트루만독트린」에 대한 소련측의 직접 대응이었던 것이다. 미국 외교사에서 『혁명적인 사건』으로 불린 「트루만독트린」의 주요 내용은 공산화될 위험에 처해 있는 지역에 경제군사지원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또 세계 각국에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나라들에게 경제군사지원을 하여 소련의 팽창주의를 봉쇄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부동항획득 서둘러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의 연합동맹국이었던 소련에 대해서 정면대결을 명백히 선언하자,소련은 제정러시아 때부터 추구해 온 한반도에서의 부동항 획득을 서둘렀다.김일성은 극동지역에서 정치경제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세 항구의 양도를 1947년10월7일에 최종 비준하였다. 이날 소련공산당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공산당 대표들은 바르샤바에서 모임을 갖고 「코민포름」을 결성하고 있었다.이때부터 대립적인 동서 양블록이 체제화 되었다. 그 결과 자주적인 힘만으로 민족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우리민족의 처지에서는 미·소 양국의 극단적 대치의 영향을 그대로 받을 수 밖에 없었고,한반도는 양 진영의 이데올로기 각축장이 되었다.
  • 일 진주만공격 선전포고/대사관실수로 전달지연

    ◎일 기밀해제 문서공개로 드러나/주미공관서 본국지시사항 경시/「긴급」 이행않고 직원송별연 참석 일본은 2차대전 당시 하와이 진주만 공격에 앞서 미국에 선전포고문을 전달할 예정이었으나 사전연락을 받지 못한 워싱턴의 주미 일본대사관 직원들이 자리를 비워 제시각에 전달하지 못한 것으로 20일 기밀해제된 문서에서 드러났다. 이문서는 대사관 직원들이 다음날 상오중에 공격시한을 알리는 긴급전문과 선전포고문의 마지막 부분을 발견했으나 타이핑이 늦었던데다 교정을 보느라 공격 개시 한시간 뒤에야 미국측에 전달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항공모함의 비행기를 이용,41년 12월 7일 진주만에 기습공격을 감행,비행기 1백20대와 전함 19척을 파괴시키고 2천4백명을 숨지게해 미국이 2차 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일본 외무성의 야부나카 미소지씨는 이문서와 관련 지금까지 워싱턴의 대사관 직원들의 사무착오때문에 협상의 공식중단을 알리는 통지문의 전달이 지연된 것으로 알려져왔다면서 이문서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이들뿐만 아니라 일본 외무성과 당시 주워싱턴 대사관측간에 이해차가 있었음이 드러났기때문에 외무성 전체가 이문제에 책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기밀에서 해제된 이문서들은 당시 대사관 직원들이 전후에 작성한 회고록들로 구성돼 있다.일부 문서간에는 모순되는 점이 있지만 외무성 관리들은 이번에 공개한 문서들이 진주만 공격직전 최후의 시각에 워싱턴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유일한 정부의 공식기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문서들은 21일중으로 일반에게 공개된다. 이문서들은 협상을 중단하는 선전포고문의 대부분의 암호가 해독된 뒤에도 「긴급사항」을 지시하지 않아 대사관 직원전원은 고별파티를 하기위해 중국식당에 참석했다고 기록했다.호리우치 마사나 당시 공보관은 『우리 모두는 비상사태에 우리가 대비할 수있게끔 경보전보가 올줄 알았다』고 쓰고 있어 사전에 일본 본국과 대사관측간에 진주만 공격에 대해 연락이 취해지지 않았음을 내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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