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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청교육 6만명 자의적 검거 인권유린”피해자 명예회복·보상 권고

    80년대 신군부에 의한 대표적 인권 침해 사례인 삼청교육대 사건의 진상이 국가기관에 의해 처음 드러났다. 의문사진상규명위(위원장 韓相範)는 지난 1981년 육군5사단 삼청교육감호대대에서 경계병들의 사격으로 숨진 전정배(당시 30세)씨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국방부,기무사,법무부,경찰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를 1일 발표했다. ◆삼청교육 실태-신군부는 불량배 소탕계획인 ‘삼청계획 5호’에 따라 80년 7월29일부터 5일 동안 체포영장도 없이 교육 대상자 6만 755명을 검거했다.이어 법적 요건을 갖추기 위해 8월4일 ‘계엄포고령 제13호’를 사후 발동했다.검거된 사람들은 A,B,C,D급으로 분류됐다.‘극악무도한 흉악범’으로 지목된 A급은 형사재판에 회부됐고,D급은 훈방조치됐다.B·C급인 4만 347명이 삼청교육 대상자로 분류,전국 25개 군부대에 분산 수용돼 인권을 유린당하고 혹독한 노역에 시달렸다.같은해 12월18일 법무부는 사회보호법을 제정,삼청교육대 교육생 7578명을 재판 절차 없이 청송보호감호소에 입감시켰다. 기무사,국방부 등이 규명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삼청교육을 받다 사망한 사람은 50명이며,이 중 8명이 구타로 사망했다.규명위는 “삼청교육 피해자들은 사망자가 1000명이 넘는다고 주장하지만 정확한 사망자 수는 지난달16일 규명위의 조사활동이 끝나 파악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삼청교육 대상자로 검거된 사람 가운데 20세 이하의 청소년이 4만 1196명으로 가장 많았다.10대 소년도 24.8%나 됐다.최고령자는 73세,최연소자는 14세였다.국졸이 2만 3678명으로 가장 많았다.전과가 없는 사람이 2만 1869명으로 35.9%였다.규명위 조사결과 경찰은 89년까지 삼청교육대 관련자들을 전과자처럼 전산관리했으며,당시 내무부는 각 도에 ‘순화교육 이수 귀가자 사후관리 지침’을 내려 보내 철저한 관리를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자의적 검거기준과 인권유린-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장 全斗煥)가 정한 소탕대상 기준은 ‘주민의 지탄을 받는 자’와 ‘불건전한 생활 영위자’였다.이같은 자의적 기준 때문에 지역주민 사이에 여론이 좋지 않은사람들이 무더기로 붙잡혔다.이모(46)씨는 이웃 주민과 축사 폐수 문제로 언쟁을 벌였다는 이유로 체포됐으며,임모(48)씨는 예비군 중대장의 비리를 경찰에 진정했다는 이유로 끌려갔다. 영문도 모른 채 군부대로 잡혀간 피해자들은 혹독한 구타와 기합에 시달렸다.부대내 식탁에는 ‘돼지보다 못하면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으며,식사 시간이 ‘1초’인 경우가 허다했다.식사 후 음료 대신 구정물을 먹기도 했다.아픈 사람은 연병장 구석에 따로 모아 구타하고,머리털을 강제로 뽑았다.삼청교육을 받은 뒤 사회로 나온 사람 가운데 친구와 싸운 뒤 또다시 끌려갈 것이 두려워 자살한 사례도 있다. ◆규명위 권고-지난 88년 당시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삼청교육대 피해보상 계획을 발표했다.이어 국방부가 3226명의 피해자 신고를 받아 보상계획을 수립했지만 아직 어떠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규명위는 정부 해당 부처와 국회에 삼청교육대 입안·실행과정의 책임 규명과 진상조사,피해자 명예회복,배상 등을 권고키로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오늘의 국감

    ◆법사위 법제처(오전10시·국회) ◆정무위 국민고충처리위·비상기획위·청소년보호위·경제사회연구회 및 소관연구기관·인문사회연구회 및 소관연구기관(오전10시·국회) ◆재경위 국민경제자문회의·통계청·소비자보호원(오전10시·국회) ◆통외통위 주중대사관(아주반·오전10시·주중대사관),주미대사관(미주반·오전10시·주미대사관) ◆국방위 국방부·합동참모본부·기무사·정보사·의무사·5679부대·국방연구원·군사편찬연구소(오전10시·국방부) ◆행자위 새마을운동중앙회·한국자유총연맹·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한국지방행정연구원·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오전10시·국회) ◆교육위 서울시교육청(오전10시·서울시교육청) ◆과기정통위 기상청(오전10시·기상청) ◆문광위 방송위원회·방송문화진흥회(오전10시·방송회관) ◆농해수위 해양수산부(오전10시·국회) ◆산자위 중소기업청(오전10시·중소기업청) ◆보건복지위 식품의약품안전청(국립독성연구원 포함·오전10시·식약청)◆환노위 노동부(오전10시·노동부) ◆건교위 인천국제공항공사·한국공항공사(오전10시·인천국제공항공사)
  • 오늘의 국감

    ◇법사위 헌법재판소(오전10시·헌재) ◇정무위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오전10시·정부중앙청사) ◇재경위 재경부(오전10시·재경부) ◇국방위 국방부·합동참모본부·기무사·정보사·의무사·5679부대·국방연구원·군사편찬연구소(오전10시·국방부) ◇행자위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경찰공제회·한국소방검정공사·대한소방공제회·한국소방안전협회(오전10시·국회) ◇교육위 교육인적자원부(오전10시·교육인적자원부) ◇과기정통위 정보통신부(오전10시·정통부) ◇문광위 문화관광부(오전10시·문광부) ◇농해수위 농림부(오전10시·국회) ◇산자위 산업자원부(오전10시·산자부) ◇보건복지위 보건복지부(오전10시·보건복지부) ◇환노위 환경부·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국립환경연구원(오전10시·환경부) ◇건교위 한국도로공사(오전10시·도로공사)
  • [열린세상] 시민 중심의 부패 통제체제를

    부패가 없는 맑은 사회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제 오늘 강조된 것이 아니지만,6·13지방선거와 8·8재보궐 선거를 통해 부패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시대적 명제로 확실히,그것도 거듭해서 확인이 되었다. 정권을 유지하거나 획득하기 위해서는 각 정당이 ‘부패청산’에 관한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일반시민’들이 분명하게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부패를 줄이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사정기구들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때로는 부패의 중심에 위치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 문제다.각종 게이트에 청와대·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금융감독원·국회의원 등의 고위 공직자가 연루된 것으로 특별검사의 수사결과 드러났으며,병역비리에는 기무사 등의 개입과 은폐의혹이 보도되고 있다.아울러 부패방지위원회는 조사권 등 권한의 부족으로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따라서 사정기구들의 위상과 기능에 관한 개혁 조치들이 다양하게 요구되고 있다.사정기관장의 인사청문회 실시,비리조사처의 신설 또는 부패방지위원회의 조사권 강화등의 개혁조치들이 이루어지면 사정기구들은 지금보다 진일보한 역할 수행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조치들이 쉽게 이루어질지 의문이며,설사 사정기구들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이 기구들이 기관의 이익보다 주인인 시민들의 이익을 더 우선시할 것인지,사정기관간 상호견제와 균형 장치가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그리고 또 이들 기구가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인력과 예산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패를 다 통제할 수는 없다.바로 이런 여러 가지 까닭으로 4500만 시민 모두가 상호 감시자가 되고 통제자가 되는 시민중심의 부패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시민중심 부패통제의 첫번째 길은 부패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는 사람들이 손해를 본다는 것을 인지하게 하고 이 손해를 스스로 구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드는 것이다.작금의 각종 게이트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보물선이나 인수후개발(A&D)사건 등과 같은주가조작,허위부실공시로 인해 상당수의 소액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으며,이로 인해 코스닥시장을 비롯한 증권시장의 신뢰성이 떨어져 유망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졌다.또한 부실대출 등과 같은 비리로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도산하게 되어 그 뒤처리를 위해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또 이 공적자금 투입과정의 비리로 인한 국민 부담이 막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해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고 인지하는 경우에도 집단소송제도와 같은 소액·다수의 피해를 효율적으로 구제해 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 납세자인 시민이 직접 행정기관을 대신하여 공공재정에 손해를 끼친 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주민소송제도도 확보되어 있지 않다. 시민중심 부패통제의 두번째 길은 감시자를 보호하고 이에 대한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부패방지법은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신고자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보상금의 상한은 2억원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보상금 사냥꾼이라는 언어의 유희를 통해 신고자를 매도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미국에서 일찍부터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했지만 고발자가 많지 않자 도입된 제도가 예산 부정의 신고 및 그 보상에 관한 규정이다.그런데 우리는 조직에 대한 충성과 직장 동료간의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조직문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내부고발이 더욱 어렵고 따라서 보상을 통해서라도 신고자를 장려해야지 이를 부정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밖에도 국민감사청구제,검찰심사회나 배심원 제도,청렴서약제 등 다양한 시민 중심 부패통제 방법이 있는데 이들을 제도화 또는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김병섭 서울대 교수 행정학
  • [젊은이 광장] 의문사규명위 강력한 권한부여를

    내 얘기부터 꺼내야 할 것 같다.지난 1학기부터 대학신문사 편집국이라는 조직의 장(長)을 맡아 오면서 한 조직을 꾸려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고 있다. 무엇보다 주어진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구성원들에게 ‘강경책’을 사용해야할 때 가장 고민이 많았다.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같은 목표 아래 공동생활을 하는 조직의 특성상 ‘강요’가 필요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현실적으로 아무런 강제수단 없이 제각각 개성이 다른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얻어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예로 지난 여름방학 기간에 우리 대학신문사 구성원들은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한 고육책으로 지각을 하는 당사자에게 10분에 벌금 2000원씩을 물리기로 결정했다.모든 구성원의 합의를 거쳐 출근시간을 정했는 데도 학생 신분으로서 적지 않은 벌금을 강제로 걷어야만 비로소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긴장감이 돌았던 것이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도 이처럼 강제성 있는 강력한 권한이 필요한 조직이 있다. 의문사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라 오는 16일 활동을 마감하도록 돼 있는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그것이다.법이 정한 시한을 열흘 정도 앞둔 규명위는 83건의 접수 사건 가운데 30건만 종결했다고 한다. 지난해 1월 본격 활동에 나선 규명위의 성과가 미진한 것은 20∼30년전 일어난 의문사의 진상을 밝히는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국가 기관이나 당사자들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 강제 징집한 대학생들에게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 이른바 ‘녹화사업’과 관련,지난 4일 규명위의 동행명령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불응한 것에서 이같은 문제점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규명위는 동행명령을 거부한 두 전직 대통령에게 각각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한다.규명위의 시한을 연장하고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규명위의 존재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왜곡되고 일그러진 우리의 현대사를 바로 세우고,억울하게 죽어간 고인(故人)들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점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압수수색권과 계좌추적권,강제구인권 등 효율적인 조사에 반드시 필요한 권한이 부여되지 않은 현재의 규명위는 자칫 허울만 좋은 형식적인 기구에 그칠 수 있다.국정원,기무사,검·경 등 막강한 국가 기관을 상대해야 하고,오랜 기간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은폐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태료 1000만원 정도의 ‘강경책’으로는 국가기관의 협조나 원활한 조사 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유가족과 관련 단체들의 오랜 투쟁 끝에 힘겹게 발족한 규명위가 이제라도 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한을 연장하고 권한을 강화하도록 의문사진상규명 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이를 위해 정치권은 권력투쟁과 당리당략에만 매달리지 말고 지금 당장 민의의 장(場)인 국회에서 법 개정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강력한 권한이 없으면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씁쓸하긴 하지만,그렇다고 굴곡된시대의 아픔을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고의적 범죄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제윤아/ 서울여대신문사 편집장
  • 92년 한신대 박태순씨 열차사망 “기무사 알고 있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韓相範)는 92년 8월 시흥역 선로에서 열차에 치여 숨진 뒤 신원불명자로 처리됐다 지난해 규명위 조사에서 신원이 확인된 박태순(당시 25세·한신대 철학과 2년 중퇴)씨가 91년 8월부터 열차사고로 숨지기 직전까지 기무사의 사찰을 받았던 사실이 당시 기무사 군무원 이모씨 등의 진술을 통해 확인됐다고 5일 밝혔다. 규명위는 “당시 군무원 이모씨로부터 박씨의 내사 담당자였던 기무사 중사 추모씨가 92년 9월 ‘내사대상자였던 박태순이 전철역에서 죽었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박씨의 죽음에 기무사가 연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기무사는 “서울 기무부대가 91년 방위병 이모씨를 내사하면서 박씨의 신원기록을 열람한 것은 사실이지만 민간인 신분이 확인되자 내사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세영기자 sylee@
  • “유명인사 자제·운동선수 213명 99년 병역면제 명단 작성”국방부 대변인 확인

    국방부 검찰부가 1999년 3월 병역면제를 받은 유명인사 자제 55명의 명단을 작성한데 이어,99년 6월 모두 213명의 유명인사 자제의 병역면제자 명단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새롭게 확인된 213명의 병역면제자 명단은 1∼154번은 운동선수이며,나머지 59명은 4∼5명이 이미 밝혀진 55명 명단과 중복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새로운 사람들인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황의돈 국방부 대변인은 4일 “99년 3월에 작성된 병역면제 유명인사 자제 55명의 명단이 있음을 2주전 확인한 뒤 국방부 검찰단에서 기록실을 조사한결과 유명인사 213명의 명단이 나왔다.”면서 “작성시기는 99년 6월로 현재 누가 작성했는지를 파악중”이라고 밝혔다.황 대변인은 “그러나 이 명단에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장남 정연(正淵)씨의 이름은 나타나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사실은 국방부가 지난 8월29일 국회 국방위 소속 한나라당 박세환(朴世煥) 의원에게 보낸 답변서를 통해 먼저 밝혀졌으며,이준(李俊) 국방장관은 이를 전혀 보고받지 못했고 직속상관인 김창해 법무관리관 역시 “보고받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부는 그동안 명단 자체가 없다는 태도를 취하다 지난달 20일 55명에 대한 리스트의 존재를 시인하고,이날 다시 200여명 명단을 확인하는 등 일관성 없는 태도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서울지검 특수1부(부장 朴榮琯)는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 아들 정연씨 병역비리 의혹사건과 관련,김길부(金吉夫) 전 병무청장과 여춘욱 전병무청 징모국장을 5일 소환해 병역비리 은폐대책회의 개최 여부 등에 대해 조사키로 했다.또 전태준(全泰俊) 전 의무사령관과 김 전 청장의 수행비서김모·박모씨도 같은날 불러 대책회의가 있었는지를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날 지난 99년 군검 병무비리 합동수사 당시 군검찰부장이었던 고석 대령을 불러 군 검찰이 99년 정연씨 병역비리 의혹에 대해 내사를 했는지 여부와 관련 기록을 보관해 왔는지,기무사와 헌병 등이 관련된 수사자료를 수사팀에서 압수했는지 등을 캐물었다. 이지운 조태성기자 jj@
  • 활동종료 앞둔 한상범 의문사규명위원장 - “진실규명 막는 惡의 세력 있다”

    “여전히 진실을 감추고 왜곡하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한상범(韓相範·68)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나 “과거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거나 권력에 기생해 부와 권세를 누렸던 ‘악의 세력’이 진실 규명을 막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64년 한일협정반대 교수단 서명을 주도한 이래 40년 가까이 법학자와 불교인권운동가로서 사회 참여에 앞장 섰다.지난 4월 양승규(梁承圭)위원장의 뒤를 이어 2대 위원장을 맡은 그는 “각계 인사를 만나 규명위 기한연장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한연장이 왜 필요한가. 기한 내에 모든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의문사처럼 중대한 사안을 미결로 방치하는 것은 의문사 특별법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조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보통 살인사건 하나가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3년이 걸린다.1년 9개월 동안 85건의 사건을 처리하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규명위에 접수된 사건들은발생한 지 상당한 기간이 경과했거나 발생당시 국가기관들이 은폐한 사건들이다.여건을 감안하면 그동안 30건을 해결한 것도 실망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국가기관의 비협조도 문제지만,더 심각한 것은 국민의 의식이다.진실규명이 우선이고 화해와 용서는 그 다음이다.하지만 우리 국민은 권력자가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너무 쉽게 잊는다.‘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그 시절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상황논리를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인다.규명위조사를 거부하는 세력은 이같은 맹점을 잘 알고 있다.규명위의 조사시한까지만 버티면 영원히 진실을 묻어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허원근 일병 사건 관련 규명위의 발표내용을 부인하는 진술이 일부 언론에 실리고 있는데.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출현과 유지에 협력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사회 각 부문의 요직에 남아 과거청산을 방해하고 있다.이들은 과거 자신들이 비호했던 권력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규명위가 고사(枯死)하기를 바란다.하지만 규명위가 200여명의 참고인들을 대상으로 1년 넘게 조사한 사건을 불과 며칠 동안의 취재로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의문사특별법이 개정된다면 방향은. 3가지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첫째,규명위를 해체한 뒤 인권위법을 개정,인권위 안에 의문사 문제를 다루는 기구를 신설,조사를 맡도록 하는 것이다.둘째,의문사뿐 아니라 이에 준하는 모든 미결사건을 조사하는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셋째,규명위를 존속시키되 압수수색이나 강제소환을 가능케 하는 등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이 있다. ◆의문사 규명의 역사적 의의는. 권위주의 정권의 치부를 청산하고 역사의 왜곡된 물길을 바로잡는 것이다.여기에 반발이 없을 리 없다.‘악의 세력’까지도 만족시키는 객관적 잣대란 없기 때문이다.악의 세력과의 비타협적 싸움은 계속돼야 한다. 이세영기자 sylee@ ■의문사규명위 활동 성과 - 故최종길교수 간첩누명 벗어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지난해 1월 공식 출범한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금까지 85건의 의문사 사건을 접수,이 가운데 30건을 마무리지었다. 규명위는 그동안 최종길·김준배 사건 등 베일에 싸였던 사건의 진상을 밝혀냈지만 유족단체와의 마찰,내부의 불협화음 등으로 위원장과 임원들이 교체되는 진통도 겪었다. 규명위는 전국 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와 추모단체 연대회의 등이 지난 98년 11월부터 420여일 동안 의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국회 앞 천막 농성을 벌이는 등 오랜 산고를 거친 끝에 출범했다. 하지만 규명위 조사는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다.검·경을 비롯한 국가기관들이 “보존연한이 지나 자료가 폐기됐다.”,“국가기밀과 관련된 사항이다.”며 관련자료 제출과 참고인 조사에 불응했기 때문이다.강제구인과 압수수색등 강제 수사권이 없는 규명위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조사기간이 짧은 점도 계속 문제로 지적됐다.당초 의문사특별법이 규정한 조사기간은 불과 9개월.수사기관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은폐됐고,오래전에 발생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기엔 터무니 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조사가 난관에 봉착하자 일부 유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불만을 드러냈다.규명위의 위상 등을 둘러싸고 정부 파견 조사관들과 갈등을 빚던 민간 출신 조사관들이 잇따라 사표를 내는 등 불협화음도 표면화됐다.이로 인해 초대 양승규(梁承圭)위원장 등 일부 위원과 조사관이 교체됐고,조사기간도 두 차례 법개정을 통해 올해 9월까지 연장됐다. 한편 지금까지 종결 처리된 30건 가운데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인정된 것은 박영두·최종길·김준배 사건 등 6건이다.지난 73년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다 숨진 최종길 전 서울대 교수 사건과 97년 한총련 투쟁국장으로 경찰에 쫓기다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진 김준배씨 사건은 규명위가 당초 조사결과를 뒤집고 사건의 전모를 밝혀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달 중간발표에서 군 당국의 자살결론을 뒤집은 허원근(許元根) 일병 사건도 군 의문사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새롭게 한 계기로 인정받고 있다.현재 조사가 진행중인 55건 가운데조사결과 보고가 끝난 것은 최석기·박융서사건 등 23건,보강조사중인 것은 허원근 사건 등 12건이다.그러나 장준하·이내창·박창수 사건 등 18건에 대해서는 관계기관의 비협조 등으로 아직 1차보고 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세영기자 ■민변등 의문사법 개정 촉구 - “권한 강화·활동기한 늘려야” 오는 16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시한을 앞두고 조사기간 연장과 위원회의 권한 강화를 요구하는 각계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규명위에 접수된 85건의 의문사 가운데 55건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이른바 ‘의문사 빅 5’가운데 장준하·이내창·이철규·박창수 사건은 국정원과 검·경의 협조거부로 진상규명 작업이 지지부진하다. 지난달 관련 자료가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규명위 위원과 조사관들이 잇따라 국정원과 기무사를 상대로 실지조사를 시도했지만 이들 기관의 완강한 거부로 조사가 무산됐다. 규명위 관계자는 “현행 의문사특별법이 규명위에 압수수색권,계좌추적권,강제구인권 등을 부여하지 않아 조사에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과태료 1000만원을 부과할 수는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상범(韓相範)위원장은 최근 국회 공청회에서 “현재 진행 상황으로는 기한 내에 사건을 마무리지을 수 없다.”며 기한연장과 권한강화를 위한 3차 법개정을 촉구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덕우(李德雨)변호사도 위원회의 활동기한 삭제와 특별검사 조항 신설,재심청구 허용과 과태료 인상 등을 담은 의문사법 개정안 시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유가족 및 시민·사회단체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민주화운동 정신계승 국민연대와 의문사 유가족 대책위,민주노총 등은 지난달 20일 성명을 통해 의문사법 3차 개정을 요구했다. 박형규(朴炯圭)목사와 김삼웅(金三雄) 전 대한매일 주필 등 규명위 자문위원들도 최근 전체회의를 열어 기간연장과 권한강화,반(反)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배제 등을 담은 건의문을 대통령과 정당 지도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정작 정치권에서는 김원웅(金元雄)·이창복(李昌馥) 국회의원 등이 긍정적인의사를 밝혔을 뿐,뚜렷한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이세영기자
  • 김현성 前검찰관 문답/ “”정연씨 진술서 본적은 없어 고대령이 수사자료 가져가””

    이정연씨 병역비리에 대해 들었고,유관석 소령에게 보고했다고 김현성 전군검찰관(현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이 28일 발언함에 따라 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정연씨의 병역비리를 군검찰이 내사를 했으며 어느 정도 확인했을 수 있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김 판사는 그러나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유 소령에게 보고하긴 했지만 단지 첩보 수준일 뿐 구체적으로 확인된 내용은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다.다음은 김 판사와의 문답 요지. ◇정연씨 병역비리에 대해 언제 들었나. 지난 99년 4월 병역비리 합동수사부의 수사결과 발표 직후였다. ◇유관석 소령에게는 언제 보고했나. 그해 여름에서 가을 사이다. ◇정연씨와 관련된 진술서나 자술서를 직접 봤나. 직접 본 것은 아니다.김대업씨에게 들은 것도 아니다.누구에게 들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당시 수사팀 내부에서는 그런 얘기가 계속 돌았고,액수도 지금 나온 것과 비슷하다. ◇고석 대령은 계속 부인하는데. 고석 대령은 상급자이다 보니 고려할 것이 많았을 것이다.당시 고 대령이 기무사 눈치를 본다는 소문이 있었고,고 대령은 수사보안만 강조했다.이명현 중령이나 유관석 소령은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또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다. ◇고 대령이 캐비닛을 부수고 병역비리 관련 자료를 가졌다는 의혹이 있는데. 고 대령이 가져간 것은 사실이다.그때 잠깐 지켜봤다.캐비닛을 부순 것은 당시 이모 해군 부사관이 잘 알 것이다. ◇김도술 자술서라는 것은 뭔가. 김대업이 ‘아는 것 다 불어라.’라고 구슬리는 과정에서 받은 것으로 보인다.간이 진술서로 보면 되는데 정확한 것은 아니다. 김 판사는 사시 37회에 합격,98년 4월 해군 법무관으로 임관해 병역비리 합동수사부에서 근무했다.지난해 4월 판사로 임용됐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법사위 표정/ 제각각 증언… 혼돈의 兵風

    98·99년 군 검찰의 병역비리 수사에 참여했던 고석(국방부 법무관리관) 대령과 이명현(연합사 법무실장) 중령,유관석(1군사령부 법송과장) 소령 등 군 검찰관 3명이 28일 열린 국회 법사위에서 서로 엇갈린 증언을 해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실체에 접근하지도 못한 채 입씨름만 벌였다. 민주당 신기남(辛基南)의원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의 부인 한인옥(韓仁玉)씨가 병역면제 사례금으로 2000만원을 주었다.’는 김도술씨의 자백이 담긴 녹취록이 있느냐.”고 질문하자 이 중령은 “기무사·헌병대 관련 내사자료는 있었으나 한씨의 돈 부분은 못들었다.”고 말했다.고 대령은 “검찰부장인 내가 모르는 자료는 없다.”고 단정지었다. 유 소령은 “김대업씨가 김도술씨로부터 받아낸 간이진술서 1쪽에 이회창·이정연씨의 이름과 청탁금액(2000만∼3000만원으로 추정),비리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면서 “고 대령이 박선기 법무관리관의 말을 빌려 ‘공소시효가 지나 수사할 필요가 없다.’며 내사 중단을 지시했다.”고 말했다.이 중령도 “기무사 고위층과 친분이 있던 고 대령이 기무사 요원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자 중단시켰다.”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 고 대령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거듭 부인했다. 서울지검은 지난 27일 이들 3명에 대한 소환조사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
  • 99년 병역비리수사 참여 현직판사 “정연씨 청탁첩보 있었다”

    지난 99년 군검 병무비리 합동수사에 군검찰관으로 참여했던 현직판사가 당시 이정연씨의 병역비리에 대한 수사첩보가 있었음을 인정해 파문이 일고 있다. 군검 합동수사 1차수사팀장이었던 유관석 소령(현 1군사령부 법송과장)은 28일 국회 법사위 증인으로 나와 “합수부의 조사를 받았던 의무부사관 김도술씨가 작성한 간이진술서에 (한나라당 대선후보인)이회창씨,(아들)이정연씨의 이름과 청탁 금액이 적혀 있었다.”고 밝혔다.유 소령은 ‘김도술 진술서’의 실재 여부를 묻는 민주당 이종걸(李鍾杰)의원의 질문에 “99년 3월 이전 A4용지 한장에 문답식 자필로 작성된 진술서에는 두사람의 이름과 병역비리 내용,청탁금액 등이 적혀 있었는데 금액은 2000만∼3000만원으로 기억한다.”고 진술했다. 진술서를 확인한 시점에 대해선 “김대업씨가 당시 국방부 검찰부장인 고석(高奭·현 국방부 법무과장)대령에게 사본을 보고하기 직전 보여주었고,이후 고 대령의 방에서도 보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당시 군검찰관이었던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김현성(金賢星·31)판사는 “99년 여름에서 가을 사이 유관석 소령에게 정연씨 병역면제 관련첩보에 대해 보고했다.”고 밝혔다.김 판사는 “당시 수사팀 내부에서는 그런 얘기가 계속 돌았고,(정연씨의 면제청탁으로 건넸다는) 액수도 지금 나온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 대령은 “정연씨와 관련된 김도술 진술서를 본 적도 없고 기무사 결탁도 사실무근”이라면서 “진술서는 김대업씨가 꾸민 것으로 김씨에 대한 병역비리 내사 보고서는 서울지검이 보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서울지검 특수1부(부장 朴榮琯)는 이날 정연씨의 병적기록표 오기와 직인 누락 등과 관련한 병무청 등 담당 직원 3명을 불러 조사했다.검찰은 병적기록표상 지난 87년 정연씨의 유학 연기와 관련된 직인이 누락되거나 83년 5월 입영연기 조치와 관련한 직인이 담당 직원의 것이 아니라는 진술 등이 나옴에 따라 병적기록표를 둘러싼 의혹을 캐는데 주력하고 있다. 김경운 강충식기자 kkwoon@
  • 병역비리 그 실체는/ 벗길수록 오리무중 허상만 맴맴

    이정연씨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달째 접어들고 있다. 왜 검찰이 빨리 결론을 내지 못하는지 궁금해하는 국민들의 심정과는 달리 수사는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조사 대상 기간이 20년에 걸쳐 있고 확실한 물증이 없어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상태에서 정치권의 공세만 거세다. 김대업씨가 제출한 녹취록의 진위,병적기록표에서 드러난 각종 의혹들,은폐 대책회의와 군검찰 내사중단 압력설 등을 둘러싸고 관련 인사들의 주장은 크게 엇갈린다.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검찰의 수사 상황과 이번 사건의 쟁점을 살펴본다. ■4대 쟁점과 공방 이정연씨 병역비리 의혹은 ▲병적기록표의 의문점 ▲군검찰 내사 여부 ▲김대업씨가 제출한 녹음테이프 진위 ▲은폐대책회의 여부 등 4가지 방향에서 전개되고 있다. ◇의문점 투성이인 병적기록표- 정연씨 병적기록표에 유독 실수가 많이 발견돼 의혹 확산의 원인이 됐다.실제로 정연씨의 한자이름이 잘못 기재됐다 고쳐져 있다.주민등록번호는 뒷자리가 잘못됐다.사진과 철인도 없다.이름과 주민번호의 오기는 정연씨가 고위공직자 자제의 병역 특별관리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의심을 받는 대목이다.김대업씨는 병적기록표의 바꿔치기 의혹마저 제기했다.이에 한나라당측은 단순한 행정착오이고 이같은 실수는 얼마든지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병적기록표 필적이나 도장 모양 등도 석연치 않다.정연씨의 병적기록표가 81년 10월 처음 작성돼 91년 2월 면제처분을 받을 때까지 작성된 것을 감안하면 최소 10여명의 필적이 있어야 하고 여러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하지만 병적기록표에는 동일한 필적이 여러개 발견된다.또 84년 5월4일자 유학 직인이 90년 이후에 사용된 것이라는 의혹뿐만 아니라 정연씨의 87∼88년 병역 연기가 84∼87년 연기보다 앞서 기록돼 있는 것도 의심스럽다.물론 한나라당측은 행정착오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군검찰 내사 여부- 김대업씨가 98∼99년 병역비리 합동수사팀장인 이명현소령이나 유관석 소령 등은 이정연씨 병역비리에 대해 내사를 진행했고,이에 대한 기록이 군검찰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일관된 주장을 펴고 있다.그러나 공소시효가 지난데다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에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현 팀장에 이어 병역비리 합동수사팀을 이끌었던 고석 대령이나 당시 김인종 정책보좌관,국방부 등은 정연씨 내사기록은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당시 55명에 대한 사회지도층 인사 자제들에 대한 내사자료를 만들기는 했지만 정연씨 관련 부분은 없다는 것이다. 기무사의 압력으로 군기관비리 수사팀이 해체됐다는 주장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불거졌다.김대업씨 등은 고석 대령이나 김인종 정책보좌관 등이 수사에 비협조적이었고 압력을 넣어 기관비리 수사팀을 해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고 대령 등은 수사 성과가 없어서 수사팀을 해체했을 뿐 군기관 비리 수사는 최대한 협조했다고 반박하고 있다.이와 관련,이 소령을 중심으로 한 당시 수사팀이 고 대령 등을 상대로 한 집단행동 조짐마저 일고 있다. ◇김대업 녹음테이프 진위는- 김대업씨는 99년 3∼4월 김도술씨로부터 한인옥씨가 정연씨의 병역면제 과정에 대한 진술을 녹음했다면서 녹음테이프 사본을 검찰에 제출했다.대검 과학수사과의 감정 결과 테이프의 목소리 주인공이 김도술씨의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테이프의 음질이 나쁘고 녹음내용이 적다는 이유다.검찰은 김대업씨로부터 원본을 제출받아 재감정을 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이르면 1∼2주안에 최종 감정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측은 녹음테이프가 조작됐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김도술씨는 지난 99년 3∼4월에는 구치소에서 병역비리 합동수사반으로 이감된 기록이 없기 때문에 김대업씨가 김도술씨를 만나 이같은 내용을 녹음할 수 없다는 반박이다.김도술씨도 얼마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테이프의 목소리가 내 것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면 조작된 것이다.”라고 일축했다. ◇은폐대책회의 여부는- 김길부 전 병무청장과 전태준 의무사령관,고흥길·정형근 의원 등이 지난 97년 7∼8월 정연씨의 병역비리를 숨기기 위해 은폐대책회의를 열었다는 것이 김대업씨의 주장이다.김 전 청장이 지난 1월 초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이같은 내용을 진술했다는 것이다.하지만 김 전 청장은 “김대업씨가 지난 1월 조사에서 ‘은폐대책회의가 있었느냐.’고 물어와 ‘그런 게 어디있냐.’고 진술했을 뿐”이라면서 은폐대책회의 주장을 일축했다.전 의무사령관은 지난 97년 자신이 정연씨 신검부표 폐기를 공모했다고 주장한 김대업씨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병역비리 전말/ 97년대선 앞서 천용택의원 첫 제기 이정연씨의 병역비리 의혹은 97년 7월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천용택 의원의 문제 제기로 불거졌다.천 의원의 주장은 정연씨가 병역면제 당시 키 179㎝에 몸무게 45㎏이었는데 그 키에 그 몸무게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그뒤 병무청 직원이었던 이재왕씨가 “91년 정연씨 입영전에 병역면제에 대해 상담했다.”고 폭로했다. 63년생인 정연씨의 병적기록표가 최초로 작성된 것은 81년 10월로 당시 정연씨가 고3일 때였다.정연씨는 83년 해외유학을 염두에 두고 서울대를 중퇴한 뒤 같은해 3월 병무청에서 신검을받았다.키 180㎝에 몸무게 55㎏으로 현역판정을 받은 정연씨는 곧 출국,몇차례 병역연기 끝에 군미필자 유학 나이제한인 28세를 앞둔 90년 12월 귀국했다. 당시 병역법은 재신검 등 아주 특별한 사유가 아닌 이상 신검판정을 바꿀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 현역판정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정연씨는 이에 따라 재신검을 받기 위해 이미 90년 6월 당시 서울대병원 내과과장이었던 김정룡 박사에게서 ‘지나친 저체중의 원인에 대한 검사가 필요하다.’는 소견서가 붙은 병사용진단서를 받아 병무청에 제출했으나 재신검은 거부당했다. 정연씨는 91년 2월11일 102보충대에 입영했으나 정밀신검 대상자로 분류돼 다음날인 12일 국군춘천병원으로 옮겨진 뒤 체중 45㎏인 저체중자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이 과정에서 김대업씨는 ‘이회창 후보 부인 한인옥 여사→병무청 유학담당직원→전 국군수도통합병원 부사관 김도술씨→변 실장→국군춘천병원 관계자’로 이어지는 병역면제 청탁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연씨 병역비리에 대한 은폐 대책회의가 실재한다면97년 7월쯤으로 추측된다.당시 대선을 앞두고 정연씨 병역면제 과정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되자 김길부 병무청장,전태준 의무사령관,이회창후보의 고흥길 특보,이회창 후보의 동생 회성씨 등이 모여 관련 자료를 폐기하고 정연씨의 병적기록표를 통째로 위·변조했다는 것이 김대업씨 주장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 ■수사 왜 부진한가/ 대선 향배 가를 변수로 부담 이정연씨의 병역비리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좀체 돌파구를 찾지 못해 시간을 끌고 있다. 의무부사관 출신 김대업씨가 제출한 녹음테이프 성문(聲紋)분석 결과도 판정 불능으로 나와 원점으로 돌아온 상태다.게다가 핵심 참고인 조사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당장 핵심 참고인 소환 조사부터 걸림돌이다.김대업씨가 정연씨 병역비리를 진술했다고 주장한 전 국군수도병원 부사관 김도술씨의 조사가 이뤄질지 불투명하다.현재 미국에 체류중인 김도술씨는 피의자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강제 귀국시켜 조사를 할 방법도 없다.연락마저 끊긴 상태다. 정치적인 민감성도 수사를 더디게 하고 있다.현재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번 사건이 대선의 중대 변수임을 감안,정치공세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특히 한나라당의 방어는 필사적이다.이명재 검찰총장을 항의 방문했고 박영관 서울지검 특수1부장 등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검찰로서는 딱 떨어지는 물증이 확보되지 않는 한 이 후보의 핵심측근을 소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자칫 편파수사라는 오해와 함께 검찰이 정치적 공방에 휘말릴 수 있다. 지금까지 제기된 정연씨 병적기록표 관련 의혹은 숱하게 많지만 정연씨의 병역비리나 은폐대책 회의 등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검찰은 부담이다. 강충식기자
  • 軍 병역수사 중단 외압논란

    기무사 등에 의한 병역비리 수사중단 압력 의혹과 관련,김인종(金仁鐘·57·예비역 대장) 전 국방부 정책보좌관이 “외압은 없었다.”고 밝힌 데 대해 1998∼99년 군·검 병무비리 합동수사본부 수석군검찰관으로 수사를 이끌었던 이명현(李明鉉·40·현 연합사 법무실장·당시 소령) 중령은 26일 “당시 수사중단 압력은 분명히 있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특히 이 중령은 ‘집단행동’ 가능성까지 비쳐 당시 군검찰수사 외압의혹은 그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중령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기무·헌병으로부터 외압이 끊이지 않아,이에 따라 기무·헌병 관련자들을 수사할 특별수사팀까지 꾸려졌었다.”고 주장했다. 이 중령은 김인종 전 정책보좌관의 지난 23일 기자회견과 관련,“회견 내용이 거짓으로 점철됐으며,당시 수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격분했다.”면서 조만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당시 수사팀원들과 함께 집단행동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중령은 “김 전 정책보좌관은 당시 공식회의 석상에서는 수사팀 지원을 약속했지만,실제로는 방해만 일삼았다.”면서 “‘수사실적이 없어 팀을 해체시켰다.’는 말은 당시 수사팀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인종 전 정책보좌관은 “당시 기무사 관련 인사들에게 압력전화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재반박했다.그는 이어 “수사에 별 성과가 없어 소수 핵심 요원들로 별도 팀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수사한다는 방침에 따라 수사팀을 해체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오석영기자 palbati@
  • 김대업 “테이프 원본 곧 제출”, 김길부 前병무청장 금주중 소환

    서울지검 특수1부(부장 朴榮琯)는 25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 아들 정연(正淵)씨의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있는 김길부(金吉夫) 전 병무청장과 면제청탁과 관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육군 헌병 준위 출신 변모씨 등을 이번주 중 차례로 불러 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의무부사관 출신 김대업(金大業)씨가 제출한 녹음테이프의 감정결과,음질 불량 등으로 판정하기 어려워 김대업씨 동생이 갖고 있는 녹음테이프 원본을 제출받아 재감정키로 했다.김대업씨는 “동생이 캐나다에서 원본을 갖고 귀국하는 이번 주초쯤 검찰에 제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또 대검 과학수사과가 정연씨 병적기록표에 나오는 필체와 병적기록표 최초 작성자인 서울 종로구청 박모씨의 필적이 다르다는 감정결과를 통보함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해 보강 수사를 하고 있다.이와 함께 지난 98∼99년병역비리 수사 당시 국군기무사령부의 병역비리 개입과 수사 중단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를 집중하고 있다.검찰은 김대업씨 녹음테이프 감정결과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검뿐만 아니라 외국 전문기관 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에도 감정을 의뢰,결과를 비교해보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검찰은 98∼99년 군검찰 병역비리 수사를 맡았던 이명현·유관석 소령에 이어 고석 대령도 소환할 방침이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병무비리 수사 중단’ 외압 공방

    98∼99년 군·검 병무비리 합수부의 수사진행 과정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연씨 등 사회지도층 인사에 대한 군검찰의 내사가 수사팀 내부 이견으로 중지됐다는 주장에 이어 99년 병무비리 수사 당시 육군 중장으로 국방부 정책보좌관이었던 김인종(金仁鐘·57·대장예편)씨가 기무·헌병 등 기관비리에 대한 수사를 중단시켰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대업씨는 22일 “기무·헌병 기관비리 수십건을 적발,관련자 22명에 대한 리스트까지 작성했지만 김인종씨의 방해로 수사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주장했다.또 “2000년 초 수사팀에 복귀했을 때 관련 자료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수사중단 압력 의혹은 물론,관련자료 고의은폐 의혹까지 제기한 것이다. 98년 12월 발족한 군·검 병무비리합수부는 광범위한 수사 끝에 기무사와 헌병 등이 연루된 비리를 발견했다.합수부는 이들이 ‘손대기 어려운’ 군내 ‘파워’기관임을 감안,기관 비리에 대한 별도 수사팀 구성을 요구했다.이에 따라 별도 수사팀이 99년 7∼8월 운영됐으나 곧 해체됐다.이 과정에서 비리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기무사와 헌병 쪽의 조직적인 수사방해가 있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실제 합수부 수석군검찰관이었던 이명현 소령은 99년 7월 국방부장관에게 “외압을 막아 달라.”는 내용의 글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인종씨는 “기무·헌병쪽에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동은 하지말라.’도 경고한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면서 강력히 반박했다.기관비리수사팀 해체에 대해서도 “당시 뚜렷한 수사 성과가 없는데다 수사팀내 알력이 심각하다고 판단,새 수사팀을 구성하는 것이 낫겠다고 보고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수사진행 상황에 대해 수사팀에 문의하자 ‘왜 그런 것까지 알려고 하느냐.’는 수사팀의 반발이 있어 더 이상 수사내용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고 말해 수사팀내 알력은 물론 자신과 수사팀 사이에서도 갈등이 있었다는 점을 사실상 시인했다. 이처럼 군검찰의 수사 중단을 둘러싼 의혹은 증폭되고 있지만 검찰은 군검찰이 다뤄야 할 문제인 만큼 사실 규명에 소극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그러나 김인종씨가 김대업씨를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할 뜻을 밝히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검찰이 수사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태성기자 cho1904@
  • [사설] 의문사규명위 시한 연장해야

    18년 만에 진실이 밝혀진 허원근 일병의 타살사건은 오는 9월16일로 끝나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기간 연장의 필요성을 확인해 주었다.2000년 10월,9개월이라는 한시적 기구로 출범한 ‘의문사위’는 지난해 7월과 올 3월두 차례에 걸쳐 기간을 연장하면서 활동했으나 접수된 83건중 24건만이 종결을 보았다.국정원·기무사·국방부 등 핵심자료를 갖고 있을 법한 기관의 비협조와 참고 인물들의 증언거부 때문이다. 허원근 일병 사건은 다수의 목격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수 차례에 걸친 재조사에서도 밝혀지지 않았다.더구나 사건 당시 위장을 지시한 상사의 명령에 의해 죽은 전우에게 2발의 총을 더 쏘았다는 보도도 말문이 막힌다.그러나 이런 일들이 지금 시점에서 믿기지 않을 뿐,당시에는 ‘죽은 사람은 어차피 죽었으니 부대장이 문책을 받고 진급에서 누락되게 할 필요가있느냐.’는 인정론이 통하던 시절이다.그만큼 우리 사회의 생명·인권의식이 척박했던 것이다. 우리가 지난 시대의 의문사들을 규명하는 것은 과거 정권이나 특정 개인을 심판하고 처벌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그보다는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과그 가족의 상처를 씻어주고 명예를 회복해 주는 일이다.더 중요한 것은 인권에 대한 우리사회의 경각심을 높이고 이처럼 미개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일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의 활동시한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특별법이 허용하는 시한연장도 다 사용했으므로 법개정이 없는 한 여기서 손을 놓아야한다.그렇다면 손도 대지 못한 나머지 사건은 어떻게 되는가. ‘의문사위’가 요구한 시한 폐지 혹은 연장은 불가피해 보인다.아울러 ‘의문사위’권한도 강화돼야 한다.의문사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를 비롯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증언을 거부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현 특별법의 한계다.진상규명을 위한 시한연장이라면 참고인,증인 등의 강제구인과 위증,증언거부에 대한 처벌이 가능해야 한다.그래야 특별법의 실효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 ‘허일병’ 연대·사단 간부 조사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는 군 부대 내에서 술에 취한 상관의 총에 맞아 숨진 사실이 18년 만에 드러난 허원근(許元根) 일병 사망사건과관련,사건 은폐 과정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조만간 당시 허 일병의 소속 연대와 사단급 간부까지 조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규명위 관계자는 21일 “군부대의 지휘계통을 감안할 때,독립된 전투단을구성하는 연대급에서 소속 중대에서 일어난 일을 몰랐을 리 없다.”면서 “대대장뿐만 아니라 연대장까지도 사건 은폐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당시 헌병대 수사과정에 사단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사단급 지휘관과 참모선도 조사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앞서 규명위는 사건의 은폐조작을 위해 허 일병 사망 직후 대대급 간부까지 참여한 대책회의가 열렸고,현장을 목격한 사병들에게 ‘알리바이 조작’을 위한 특별교육까지 실시했다고 밝혔다. 당시 사망 현장에는 회식에 참여한 중대 간부 외에도 중대본부 주변에 있던 8명의 사병 등 모두 11명의목격자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허 일병을 쏜 것으로 알려진 하사관은 사건 직후 아무 징계도 당하지 않고 사단내 다른 중대로 전보된 뒤 승진해 90년초 상사로 예편했고,최근 위원회조사에서 “술에 만취해 총을 잡은 것까지는 기억나지만 총을 쐈는지는 모르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준곤 상임위원 등 규명위 관계자 7명은 5공화국 시절 강제징집과 녹화사업 관련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군기무사령부를 방문했으나 기무사측의 거부로 조사가 무산됐다. 기무사측은 “강제 징집제도는 정부부처 주도로 실시됐으며 84년 9월 제도가 폐지되면서 보안사 담당부서도 해체되고 녹화사업 관련자료도 대부분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이세영기자 sylee@
  • 정연씨 병적기록표 새 의혹/ 면제판정 11일 신검결과 12일 뒤바뀐 날짜

    이정연씨가 정밀신검 결과를 받기도 전에 병무청으로부터 최종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는 의혹이 새로이 제기돼 정연씨 병역면제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뒤바뀐 신검판정 날짜와 최종 병역면제 처분 날짜- 정연씨의 병적기록표만으로 보자면 정연씨가 102보충대와 국군춘천병원에서 신검을 받은 날짜는 각각 91년 2월11일과 12일이다.그러나 병무청이 정연씨에 대해 최종 병역면제처분을 내린 날짜는 ‘91년 2월11일’로 돼 있다.정밀신검 결과가 나오기도전에 병무청에서 병역면제 처분을 받은 셈이다. 검찰은 이 때문에 병적기록표 위·변조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정연씨 병적기록표 작성에 관련된 당시 병무청 직원 등을 상대로 집중 조사하고 있다.또 비슷한 시기에 병역면제 처분을 받은 사람들의 병적기록표도 입수해 대조해 보고 있다.검찰 관계자는 그러나 “병무청의 판정은 행정절차에 불과해 담당 직원이 착오를 일으켰을 수도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녹음테이프 진위 논란- 김대업씨가 제출한 녹음테이프에는전 국군수도통합병원 부사관 김도술씨와의 대화가 담겨 있다. 김도술씨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업씨에게 조사받은 적이 전혀없다.”면서 “테이프에 나오는 목소리와 군사법정에서 한 최후진술의 목소리와 비교하면 거짓임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그러나 지난 98년 당시 병무비리 책임자였던 이명현 소령은 “김도술씨처럼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는 피의자는 김대업씨가 조사를 맡았다.”면서 “김대업씨는 기무사조사에 대비해 관련 피의자들의 진술을 녹음해 왔다.”고 말했다. 검찰은 대검에 의뢰한 녹음테이프의 성문(聲紋) 분석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김대업씨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검찰 수사는 탄력을 받겠지만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정치적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책회의 관련 증인 또 있나- 민주당 천용택(千容宅) 의원은 이날 “지난 97년 병역비리 대책회의를 입증할 수 있는 추가 증인이 있다.”고 말했다.천의원은 “그 사람은 대책회의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대책회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서 “(당시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인물의) 운전기사 등이 있을수 있다.”고 설명했다.민주당은 검찰 수사 상황을 봐가며 관련 증인을 추가로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병풍/누구 말이 맞나/ 김대업 “”대책회의 진술했다 번복””

    이정연씨 병역비리 의혹을 둘러싼 고소사건 당사자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여기에 의무부사관 출신 김대업씨가 수감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에 참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적법성 시비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건 전말- 이정연씨 병역비리 의혹 사건이 다시 불거진 시점은 올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정연씨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에 참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길부 전 병무청장은 지난 1월4일 뇌물수수 혐의로 서울지검 조사실에 소환됐다.당시 김대업씨는 검·군 병역비리 합동수사반에 합류한 상태였다.비록 김씨는 사기 혐의로 구속수감된 상태였지만 병무비리에 해박한 지식 때문에 지난해 6월부터 지난 2월 말까지 검찰에서 병역비리 관련자 조사나 서류분류 등을 맡고 있었다. 김씨는 올 초 김 전 청장을 조사하면서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하지만 김 전 청장은 나중에 진술을 번복했다는 것이다.김 전 청장은 1월23일 부하직원들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44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한편 김씨는 구치소와 검찰 조사실을 오가며 검·군 합동조사반에서 활약하다 지난 4월 출소했다.김씨는 출소 뒤 시민단체를 찾았다.자신이 지난해 구속되는 데는 기무사가 관련됐고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가 있었다는 의혹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서였다.애초 5월 중순쯤 기자회견을 할 계획이었지만 시민단체의 사정으로 연기됐고,한 인터넷신문이 5월21일과 28일 이같은 의혹을 보도했다. 이후 병역비리 문제가 정치권의 쟁점이 되자 한나라당은 김씨가 전과자로서 민주당의 사주를 받은 인물이라고 주장했다.이에 김씨는 지난달 31일 서울지검 기자실에서 회견을 갖고 한나라당 의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이로써 병역비리 사건이 검찰로 넘어오게 됐다. ◇대책회의가 있었다는 진술 여부- 김씨는 “김 전 청장이 지난 1월 검찰수사에서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 등을 진술했으나 변호사 등이 왔다간 뒤 번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김 전 청장은 김씨가 조사 말미에 “대책회의가 있었느냐.”면서 유도성 질문을 했고,이에 “그런 사실없다.”고 부인했다.검찰은 현재 대책회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신속히 밝힌다는 입장이다. ◇김씨의 수사관 행세 여부- 김씨는 또 김 전 청장을 조사할 때 자신이 수사관 행사를 했다는 의혹과 관련,“상의는 수감복안에 입는 회색티를,하의는 코르덴 청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김 전 청장이 나를 수사관으로 착각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하지만 김 전 청장은 “김씨가 사복을 입고 있어 수사관인줄 알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검찰은 “김씨가 수사관 자격으로 병역비리 관련자를 조사한 적은 없다.”면서 “특히 김씨가 단독으로 제3자를 조사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그러나 한나라당은 수감자 신분인 김씨가 수사보조요원으로 조사에 참여,신문을 한 것은 직권남용과 공무원 자격사칭 교사에 해당한다며 박영관(朴榮琯) 서울지검 특수1부장 등을 고소한 상태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오늘의 눈] 문화부와 문화공간

    명색이 문화부 기자라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겠지만,요즘은 가히 ‘문화의 시대’를 넘어 ‘문화의 횡포’시대인 것 같다.특히 광화문에 모여 있는 공직자들에게 이른바 문화계 인사들은 ‘눈엣가시’같은 존재로 비칠 것이다. 며칠전에도 한 문화 관련 시민단체가 신경을 건드렸다.‘붉은악마’의 거리응원 열기를 재빠르게 자신들의 ‘꿈’과 연결시켜,광화문에 모여 있는 정부 건물은 모조리 헐어버리고 시민들이 모이는 광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심지어 경복궁 너머에 있는 청와대도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아무리 문화계 인사들이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 모여 “광화문을 문화의 거리로 만들자.”고 외친들 정부중앙청사 안에서는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더구나 경복궁 너머에선 웅웅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중앙청사가 아무리 위압적이고,새로 짓는 별관 또한 그 축소판이라고 해도 문화계 인사들의 주장은 무리한 것인지도 모른다.진정한 문화적 공간이되려면 역사성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조선시대 육조거리로 위세를 누린 광화문 일대에 정부청사들이 줄지어 있는 것은 하등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앙청사에 들어 있는 국무총리실이나 외교통상부·통일부·행정자치부 등이 적당한 이유를 들어 광화문을 고수하겠다고 한다면 수긍할 용의가 없는 것도 아니다.그러나 같은 주장을 길 건너편에 있는 문화관광부가 펴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문화부가 광화문에서 지척인 북촌 일대를 문화지대로 가꾼다며 경복궁 동쪽 기무사 부지를 탐낸 것이 오래된 일도 아니다.기무사가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느냐는 비판과는 또 다른 문제로,정부 내부의 시각에서 보면 문화부가 번듯한 자기 땅은 놔두고 다른 기관의 땅을 넘보는 꼴에 다름 아니었다. 문화부가 문화공간을 마련할 공간이 없어 고심한다면 제 청사부터 되돌아보라고 권하고 싶다.기무사 부지에 만들고자 했던 국립현대미술관 분관도 좋고,시민단체 주장처럼 시민광장도 좋다.국민 모두에게 사랑받을 새로운 문화공간을,제 자리를 양보해 만들어 낸다면 이보다 훌륭한 문화정책이 어디 있을까. 서동철 문화팀 차장dc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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