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기록유산
    2026-04-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23
  • 문 대통령 만난 오사카 동포들 “한일 관계는 사활이 걸린 문제”

    문 대통령 만난 오사카 동포들 “한일 관계는 사활이 걸린 문제”

    “한일관계는 우리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 오사카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시내 뉴오타니 호텔에서 주최한 동포 만찬 간담회에서 악화 일로인 한일관계에 대한 재일동포들의 우려가 쏟아졌다.오용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의 오사카 단장은 환영사에서 “최근 한일관계는 결코 양호한 관계라 할 수 없다”며 “양국 관계가 악화하면 재일동포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재일동포 사회의 발전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일부터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관계가 크게 개선되고 미래를 함께하는 동반자로서의 양국 신뢰 관계가 회복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오 단장은 “저희는 일본이라는 땅에서 먹고 자는 것보다 대한민국이 곤경에 처했을 때 사재를 털어 희생해 오늘날까지 살아왔다”며 “문 대통령과 함께 새로운 동포사회, 새로운 한일관계,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여건이 민단 중앙본부 단장은 건배사에서 “지금 한일관계가 너무 어렵다”며 “대통령께서도 많이 고생하시는 것은 잘 알지만, 한일관계는 우리에겐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토로했다. 여 단장은 “일본과 한국은 긴 역사가 있다”며 “가까운 나라여서 좋은 시절도, 나쁜 시절도 있지만, 내일을 향해 할 수 없이 미래로 갈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한국과 일본은 1500년간 문화와 역사를 교류해 온 가까운 이웃이자 오래된 친구”라며 “우리는 이미 우호·신뢰에 기반한 교류가 양국의 문화를 꽃피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7년 10월 양국 시민단체가 함께 노력해 ‘조선통신사’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며 “양국 국민 간 교류·만남, 이해·협력은 한일 양국이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고 있다”고 역설했다. 또 “내년 도쿄에서 하계 올림픽이 개최된다”며 “가까운 이웃인 일본이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도록 성의껏 협력하겠다”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재일동포 1세대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면면히 조국 문화를 지켜왔기에 일본에서 한류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며 “정부도 여러분이 해오신 것처럼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한일 우호 협력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자 좌중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날 간담회장에 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들어서자 일부 참석자들이 ‘사랑합니다’를 외쳤고, 곳곳에서 휴대전화로 대통령 모습을 담기도 했다.문 대통령은 조선 도공 심당길의 후손인 제15대 심수관(본명 오사코 가즈데루) 선생으로부터 특별 제작한 흰색 도기인 ‘사츠미 난화도 접시’를 선물받았다. 간담회에서 동포들은 재일동포로 활동하면서 느낀 소회를 밝혔다. 홍성익 도큐야마 물산 대표는 “코리아타운 내 이쿠노에는 한국문화와 한류를 접하려는 젊은 일본인들로 북적인다”며 “한국 정부가 코리아타운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차봉근 MTM JAPAN 대표는 젊은 재일동포 청년들의 창업 지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부탁했고, 김미화 몽쉐르 대표는 재일동포 후손에 대한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 윤기 마음의 가족 이사장은 아버지와 결혼한 일본인 어머니 얘기를 들며 “재일동포 1세대의 역사를 기억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사 때문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 있지만 양국 정부가 지혜를 모아 나가며 극복해 가야한다”고 답했다고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귀향’의 주연배우 강하나 씨와 감바 오사카에서 활약 중인 황의조 선수를 소개하기도 했다. 축하 공연에서 가수 정수라씨가 ‘난 너에게’, ‘환희’를 열창했고, 오사카 건국중·고등학교 전통예술부 학생들은 사물놀이와 사자춤을 춰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간담회에는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과 한국인 연합회 등 동포단체 관계자를 비롯, 6·25 참전유공자, 경제·문화예술인 등 동포 370여 명이 참석했다.  오사카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새로 발견된 ‘조선왕조실록’ 96책 국보 지정

    새로 발견된 ‘조선왕조실록’ 96책 국보 지정

    문화재청은 25일 새로 발견한 ‘조선왕조실록’ 일부를 국보로 추가 지정하고, 그동안 보물이었던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국보로 승격했다고 밝혔다. 국보로 추가된 조선왕조실록 96책은 정족산 사고본 누락본 7책, 적상산 사고본 4책, 오대산 사고본 1책, 봉모당본 6책, 낙질 및 산엽본 78책 등이다. 적상산 사고본은 조선 4대 사고(史庫)인 정족산, 오대산, 적상산, 태백산 사고 실록 현황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자료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북으로 반출한 것으로 알려졌다가 국립중앙박물관(1책)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3책)에 나눠 보관하고 있었던 게 확인됐다. 역대 국왕과 왕비들의 생애와 행적을 기록한 일대기인 봉모당본 6책은 조선 후기에 따로 제작한 어람용 실록으로서 가치가 있다. 낙질은 사고에서 제외한 추가 중간본 실록이 다수이며, 산엽본은 정족산 사고본 실록 낙장을 모은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부터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 역사를 연월일 순으로 정리한 책으로, 1973년 국보 제151호로 지정됐다.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됐다. 문화재청이 2017~2018년 소재지 일괄 파악에 나서 추가 발견했다. 이에 따라 국보 제151호 1~6호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2219책으로 늘었다.국보 제327호로 승격한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현존 우리나라 사리기 중 가장 오래됐다. 사리기는 부처나 승려의 몸속에 생긴 구슬 모양 유골(사리)을 보관하는 용기다. 왕흥사지 사리기는 청동제사리합, 은제사리호, 금제사리병 3가지 용기로 구성됐다. 청동제사리합 겉면에 새겨진 글귀로 사리기가 577년 백제 위덕왕이 죽은 왕자의 명복을 빌고자 만들도록 한 왕실 공예품임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 측은 “역사적·예술적 가치,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절대 연대(명확한 연대)를 가진 작품이라는 희소성 등 그 위상이 매우 높다”고 승격 이유를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위안부’ 기록, 유네스코 등재 촉구하는 해외 한인들

    ‘위안부’ 기록, 유네스코 등재 촉구하는 해외 한인들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 건립에 앞장섰던 북가주 한인들과 중국, 필리핀 등 13개 커뮤니티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의 아픔과 일제 잔악상을 기록한 위안부 자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도록 촉구하는 청원운동을 펼치고 있다. 세계적 청원 사이트인 체인지(change.org)에는 지난 4월 6일 ‘위안부’ 자료 유네스코 등재를 촉구하는 청원글이 게시됐다. 이 청원은 2500명의 지지자를 목표로 진행 중이며, 현재(한국시간 18일 오전 9시 기준) 1847명이 서명을 진행했다. 청원인은 “유네스코는 이미 2016년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 대만 등 9개 국가가 공동으로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에 대한 등재를 보류했다”며 “미국 다음으로 분담금을 많이 내고 있는 일본은 이를 무기로 유네스코에 위안부 기록물 등재를 방해하는 로비를 펼쳤고, 끝내 무산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은 일제 잔악상을 상세히 기록한 총 2744개 건으로 이뤄졌다. 피해자들의 증언과 진료기록, 각국 위안부 피해자 조사자료, 위안부 관련 사진이나 그림 등 피해자가 생산한 기록물과 일본정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운영했던 위안소 사료들이 포함돼 있다. 2017년 10월, 유네스코는 기록물 등재를 보류한 바 있다. 당시 등재 보류 결정은 미국이 유네스코 탈퇴 선언을 한 상황에 일본 정부가 분담금을 무기로 압박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청원인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보류됐던 ‘위안부 기록물’은 오는 9월 유네스코에서 다시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며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덮으려고만 하는 일본의 태도를 그냥 바라만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북가주 한인들은 물론 모든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한마음으로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일에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이라며 “위안부 기록물이 등재되고 일본이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달라”고 부탁했다.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촉구하는 해외 한인들의 청원 소식을 접한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지난 정부까지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문제에 있어 정치나 언론 쪽에서 많이 언급되었지만, 현재는 관심에서 멀어진 경향이 있다”며 “한인들의 지지소식을 들으니 활동단체나 할머니들에게 큰 힘이 된다”며 감사를 표했다. 청원서명은 체인지(http://cwunesco.org)에서 할 수 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5·18전도사 재미교포 서유진씨 5·18구묘역 안장

    아시아와 미주 등 전 세계인을 상대로 5·18정신을 전파한 서유진 전 아시아인권위원회 특별대사가 5·18구묘역에 안장된다. 5·18민주화운동 39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16일 미국에서 숨을 거둔 서씨는 평생을 5·18을 알리는데 바치면서 ‘5·18 전도사’로 불린다. 23일 광주시에 따르면 시와 5·18기념재단, 5·18 3개 단체, 광주시민단체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5·18구묘역 안장심의위원회’는 서유진씨의 5·18구묘역 안장을 만장일치 결정했다. 5·18 사적 24호로 지정된 5·18구묘역은 5·18 당시 희생자들이 처음 묻혔던 곳이다. 안장심의위는 서씨가 1980년 직후부터 5·18의 진실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알리는 다양한 활동을 해 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안장을 의결했다. 고인을 추모하는 광주지역 인사들이 구성한 ‘서유진 선생을 추모하는 사람들’은 이번 결정에 따라 유족과 협의 후 조만간 서씨의 유골을 항공편으로 옮겨 안장할 예정이다. 서씨는 전북 완주군 삼례 출신으로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해 광주와 직접적인 인연은 없다. 하지만 5·18 이후 광주 오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1982년부터 미주 민주회복통일연합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며 국외에서 ‘5·18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 특히 신군부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던 고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에서 망명하던 시절 지근거리에서 함께하며 투쟁했다. 1992년에는 귀국해 1994년부터 광주시민연대에서 활동했다. 5·18정신을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1998년부터는 홍콩에 본부를 둔 아시아인권위원회(AHRC)의 특별대사로 활동하면서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미얀마, 캄보디아 등 아시아 각국 현장에서 인권 증진 활동을 펼쳐왔다.서씨는 5·18 광주정신 세계화 및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등에 기여한 공로로 2018년 오월 어머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씨는 최근까지 광주에 머물다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간 지 이틀만에 세상을 떠났다. 서씨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바실 페르난도(2001년 광주인권상 수상자) 아시아인권위 전 대표는 추도 성명을 내고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이틀 전, 한국 군사독재를 물리치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서유진 선생이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셨다”면서 “서유진 선생과 같은 분들이 있었기에 광주가 민주주의로의 길을 열어 세계적인 인권도시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추모했다. 유가족으로는 부인 유남점씨와 두 자녀가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고(古)천문서 한글로 바꿔주는 ‘천문 번역기’ 나온다

    고(古)천문서 한글로 바꿔주는 ‘천문 번역기’ 나온다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많은 고문서에는 다양한 천문관측기록이 있다. 문제는 한문으로 돼 있어서 일반인들은 제대로 읽거나 원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와 한국고전번역원이 손 잡고 구글 번역기나 네이버의 ‘파파고’와 같은 천문고전 속 한문 원본을 한글로 자동번역해주는 인공지능 번역기 개발에 착수했다고 16일 밝혔다. 지금까지 천문고전분야는 고(古)천문학자나 고전번역가들이 번역하지 않으면 한문에 익숙치 않은 일반인들이 접하기 쉽지 않다. 이에 따라 번역기 개발에 나서는 두 기관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제가역상집, 서운관지, 의기집설, 천동상위고 등 천문분야 고문헌 데이터베이스를 한문 원문-한글 번역문 형태로 매칭시켜 번역기에 적용하게 된다. 한글로 자동번역될 경우 번역의 질을 높이기 위해 천문분야 언어를 집합시킨 빅데이터를 모으기 위한 작업이다. 이를 바탕으로 개발되는 고천문 번역기는 인공지능(AI) 기계학습 기술에 따라 한문 원본을 자동으로 한글로 번역해준다. 이번에 착수한 천문고전분야 번역기는 오는 12월에 개발이 완료되고 2020년부터 일반인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웹이나 모바일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될 계획이다. 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 김상혁 센터장은 “천문분야 고문헌 특화 자동번역모델 개발은 방대한 고천문 자료를 빠르게 한글로 바꿔줌으로써 국민이 직접 고천문 연구에 참여해 전문가들이 간과하고 지나간 부분에 대한 성과를 도출 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시민참여 과학과 오픈사이언스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형목 천문연구원장은 지난해 취임 직후 국내에 남아있는 고천문서적들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고천문학연구를 활성화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한일 선린우호교류의 장,‘조선통신사 축제‘ 내달 3일 개막

    한일 선린우호교류의 장,‘조선통신사 축제‘ 내달 3일 개막

    한일 친선교류의 상징인 조선통신사 축제가 새당 3일부터 6일까지 부산 용두산공원과 광복로 일대에서 열린다.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은 부산 용두산 공원 및 광복로, 부산항만공사 행사장(옛 연안여객터미널) 등에서 조선통신사 축제를 개최한다고 29일 밝혔다. 조선통신사 축제는 ‘과거를 통해 미래로’라는 주제로 조선통신사재현선 출항, 동래부사 접영 등 역사 속 통신사 콘텐츠를 조명하고 어린이날을 맞아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올해 축제에서는 ‘조선통신사 행렬재현’과 ‘조선통신사 재현선’이 등장한다. 조선통신사 재현 행렬은 내달 4일 오후 2시 용두산공원에서 출발해 광복로를 거쳐 부산항 연안여객터미널까지 2㎞ 구간에 열린다. 옛 조선통신사 모습을 본뜬 전통 의상을 입은 1500명이 행진하는 장관이 연출된다. 또 동래부사가 3사(정사, 부사, 종사관)를 맞이하는 의식인 접영식도 함께 진행된다. 조선통신사 재현선은 지난해 조선통신사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해 광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진수한 이후 부산에서는 처음 공개된다. 조선통신사 행렬과 연계한 출항식을 하고 선상 박물관도 운영한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는 매일 3차례씩 모두 9회에 걸쳐 승선체험 기회를 제공한다.승선체험자는 사전 신청을 받아 360명을 선정했다. 새달 3일 국립부산국악원에서는 조선통신사 사행길에 함께한 동래 화가 변박의 여정을 그린 장편소설 ‘유마도’(강남주 작)를 테마로 한 공연이 열린다. 일본의 대표적인 거리예술인 ‘다이도우게이’와 부산을 대표하는 거리예술가 공연도 용두산공원 무대에서 펼쳐진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열린세상] 한반도의 길과 신한반도 체제/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열린세상] 한반도의 길과 신한반도 체제/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2014년 여름 이름도 생소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도착해 예상치 못한 행사 인파 속에 갇힌 적이 있다. 가이드로부터 ‘발트의 길’이란 행사에 대해 설명을 듣고 감동과 탄식을 쏟았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탈린에 도착한 8월 23일은 1939년 히틀러와 스탈린에 의해 비밀리에 ‘독소 불가침 조약’이 맺어진 날이다. 이 조약으로 인해 ‘발트 3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소련에 편입됐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989년 8월 23일 세 나라의 국민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를 거쳐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이르는 600㎞ 넘는 도로로 몰려나와 손에 손을 잡고 독립과 자유를 외쳤다. 당시 3국의 총인구 600여만명 중 200만명이 거리에 나와 손을 잡았다. 결국 1990년 리투아니아를 시작으로 1991년에는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잃어버렸던 나라를 되찾은 것이다. 이 사건은 인간이 만든 가장 긴 띠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독소 불가침 조약이 맺어진 지 70년 그리고 인간띠를 만든 지 20년이 지난 2009년에는 ‘발트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올해는 30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반도도 발트 3국처럼 외세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졌다. 분단의 역사는 이미 19세기 중엽부터 한반도가 강대국들 간의 충돌과 대립의 공간이었을 때부터 시작됐다. 한반도는 열강의 침탈과 일제 강점, 전쟁과 분단, 그리고 냉전을 오랜 기간 타자에 의해 경험하고 강요당한 고난의 산물이자 집합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스스로 이 땅의 소중함을 잊고 한반도가 중심이 아닌 주변부라는 지정학적 편견과 지리적 숙명성에 매몰돼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해 본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은 지정학적 전략을 고수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 왔다. 지금도 여전히 한반도 미래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강대국 손에 달려 있다는 우려와 서글픔이 여전하다. 한반도 미래를 제약하는 미중을 비롯한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를 극복하려면 발트 3국이 함께 손을 잡은 것처럼 무엇보다 분단을 넘어 남북이 손을 잡고 중심이 돼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사람이 중심인 새로운 한반도의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2019년은 3ㆍ1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가 주도하는 100년의 질서로 ‘신(新)한반도 체제’를 제시했다. 지금까지 제시한 다양한 정책을 포괄해 새로운 100년을 통해 만들고 지속해 갈 ‘평화·번영의 통일 한반도’의 청사진을 제시한 국가 통치철학이자 국가 비전의 최상위 개념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신한반도 체제’는 분단 체제를 해체하고 남이 아닌 우리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고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한반도의 길임에는 분명하다. 27일은 판문점 선언 1주년 되는 날이다. 이날 인천 강화에서 강원 고성까지 비무장지대(DMZ) 인근 500㎞를 인간띠로 잇는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또 고성 지역의 비무장지대(DMZ) 내 평화 둘레길이 열려 일반 국민에게 개방된다. 비록 남북이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작은 발걸음을 통해 70년 동안 철조망에 갇힌 분단의 공간이자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처로 남아 있는 소외된 접경지역 DMZ와 그 인근이 개방된 통합의 공간이자 평화의 성지로 탈바꿈하길 기대해 본다. 남북의 미래이자 희망인 소년 소녀가 판문점에서 손을 이어 잡고 부산에서 신의주, 한라에서 백두까지 남북이 함께하는 한반도의 길이 연결돼 ‘발트의 길’ 기네스 기록을 경신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 본다. 남과 북이 진정으로 두 손을 맞잡는 그날이 오면 미국도 중국도 그 어떠한 외세도 더이상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갈라 놓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어려움에도 남북이 어렵게 잡은 손을 놓지 않을 용기를 가지고 남과 북의 사람이 DMZ를 넘나들 수 있다면 앞으로의 새로운 100년으로 나아갈 신한반도 체제는 결코 한국몽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
  • “4·19 역사적 가치 재조명·미래 세대에 의미 전달하는 데 중점 둘 것”

    “4·19혁명 정신을 되새기는 것을 넘어 더 성숙한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한 디딤돌로 삼는 열정을 모으는 게 목표입니다.” 박겸수 서울 강북구청장은 지난 15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4·19야말로 ‘자랑스런’ 나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한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 사회에서 4·19의 가치는. “민주주의에 찬란히 빛나는 별이다. 국가발전 중심에 민주주의가 있다. 민주주의의 뿌리가 바로 4·19다. 식민 지배와 분단과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견딘 시민 열망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으로 터져 나왔다. 4·19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성숙한 민주시민사회의 기본 토대다.” -강북구청장으로서 4·19는 어떤 의미인가. “4·19를 통해 표출됐던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시민 열망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내게 4·19는 과거를 되새기며 미래를 그려 보는 이정표다. 강북구 우이동에는 혁명 횃불을 밝힌 주역들이 잠들어 있다. 역사문화관광벨트 사업을 비롯해 강북구 사업 다수가 국립묘지와 연계됐다. 묘역을 찾을 때마다 4·19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사명이 더욱 선명해진다.” -올해 4·19 국민문화제에서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4·19정신을 기리고 후대에 계승한다는 목적을 최대한 살릴 것이다. 4·19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미래 세대에 의미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다. 4·19가 기록하는 역사와 함께 기억하려는 역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 책으로 읽는 역사와 눈으로 마주한 역사는 분명히 다르다. 좀더 명료하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실존하는 사건들이 지금도 우리 역사 속에 살아 숨쉬는 4·19를 말하게 될 것이다. 다양한 전시를 비롯해 거리 재현 퍼레이드, 4·19 소재 연극, 민주묘지 정화 활동 등 체험활동 위주로 한 프로그램도 다수 준비했다. 이제 미래 세대에 잘 전해 민주주의 발전의 맥을 잇도록 해야 한다.” -4·19를 더 알리기 위한 향후 계획은. “4·19 기록물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게 최우선 목표다. 공문서와 민간 기록물 등 1449점을 포괄한다. 강북구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 및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조직했다. 문화재청에선 신청 대상으로 선정되는 결실을 맺었다. 17일 열리는 국제학술회의 역시 4·19를 세계에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준비했다. 학술자료집 영문판을 발간해 세계 유수 대학과 도서관에 보급하는 사업도 계속한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200년간 이어진 한일의 ‘성·신 외교’

    200년간 이어진 한일의 ‘성·신 외교’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幕府) 장군(쇼군)에게 파견되었던 공식적인 외교사절’. 사전에서 찾을 수 있는 조선통신사의 설명이다. 그 통신사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전기 8번, 후기 12번 등 20차례 파견됐다. 사절단이 가는 곳마다 문화 교류가 성대했으며 그 내용은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런데 국내에서 통신사에 대한 연구는 일천하다. 이 책은 1607~1811년 200여년간 파견된 조선 후기 통신사 궤적을 촘촘하게 훑어 눈길을 끈다. 서인범 동국대 교수가 그 경유지 58곳을 직접 찾아 생생하게 되살려 냈다. 통신사는 ‘믿음을 통하는 사신’으로 정의된다. 책은 그 통신사가 에도 막부의 초대 장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요청으로 시작됐음을 짚으면서 시작된다. “나는 관동에 있었기 때문에 임진년의 일을 미리 알지 못했소. 지금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잘못을 바로잡았소. 진실로 조선과 나와는 원한이 없소. 화친하기를 바라오.” 조정에서 파견한 사명 대사에게 이에야스가 전한 말이다. 이에야스는 권력 유지를 위해 조선과의 교린을 중시했다. 여기에 조선과의 친선이 절실한 쓰시마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정례화된 것이다. 막부 장군의 명을 받은 쓰시마 번주가 통신사 파견을 요청하면 조선의 조정에서는 중앙관리 3인 이하로 정사·부사·서장관을 임명하고 300~500명으로 구성되는 사절단을 편성했다. 사절단은 한양을 출발해 부산까지는 육로로 간 뒤, 부산에서부터는 쓰시마 번주의 안내를 받아 해로를 이용해 쓰시마를 거쳐 일본 각번의 향응을 받으며 오사카의 요도우라(淀浦)에 상륙했다. 이후부터는 다시 육로를 이용해 교토로 들어갔다. 조선 전기에는 이곳에 장군이 있었기 때문에 교토가 종점이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장군이 도쿄에 있었기 때문에 목적지가 도쿄가 됐다. 막부 장군에게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기까지는 대개 6개월~1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일본 막부의 환대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실제로 1617년 오사카에 체류하고 있던 영국인 리처드 콕스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장군은 그들(통신사절)이 통과하는 모든 장소에서 정중히 대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모든 지역에서 그들을 영접하기 위해 새로운 객관을 지었다. 해상에서는 그들을 운반하기 위해 배를 갖추었고, 육상에서는 말과 교자를 준비했다. 장군의 돈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시모노세키 시립역사박물관에서 발굴한 ‘조선통신사등성행렬도’에서도 그 지극한 환대가 읽힌다. 그림에 붙인 글에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요리사들은 조선인의 입맛에 맞게 조리하려 노력했다. 조선인이 좋아하는 해산물을 듬뿍 썼음은 물론이고 조선의 육식 문화를 고려해 돼지, 사슴, 토끼 고기도 준비했다. 통신사 수행원 중에 소를 잡는 도우장이 포함됐을 정도였다.”‘외교사절’이란 표현대로 통신사 파견의 주 목적은 정치·외교적인 것이었다. 국서의 내용만 보더라도 대개 전쟁 상태 종결을 위한 강화 교섭, 전쟁 중 끌려간 조선인 귀환, 국정 탐색, 막부 장군의 습직 축하로 요약된다. 하지만 사절단의 경유지마다 문화 교류가 성대했다. 통신사는 찾아온 일본인 서생들과 새벽까지 대화하고 글을 써 주었다. 찾아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신발이 산을 이루었다고 한다. 저자가 통신사의 궤적을 훑던 중 새롭게 밝혀낸 사실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답사 도중 김성일의 ‘해사록’, 유성룡의 ‘징비록’, 강항의 ‘간양록’처럼 양국의 비밀을 기록한 책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역관들이 밀무역을 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물이다. 저자는 “적을 정탐한 사실을 적에게 알린 꼴이나 마찬가지”라며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에 인물이 없다고 여겼을까봐 기분이 나빠졌다”고 쓰고 있다. 저자는 책 말미에 이런 글을 남겼다. “통신사 조엄이 쓰시마 번주와 작별하면서 ‘양국의 교린에 귀한 것은 성(誠)과 신(信)이다’라는 글을 써 주었다. 이 말은 조선과의 교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선의 정서와 그 정세를 아는 것이라 일갈했던 쓰시마 번주의 외교참모 아메 노모리 호슈의 역설과 일맥상통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절실히 요구되는 교훈이 아닐까.”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北 반출됐다던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 국내서 찾았다

    北 반출됐다던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 국내서 찾았다

    96책 추가로 확인… 국보 지정 예고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반출돼 국내에 없다고 알려졌던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 실록 일부가 국내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문화재청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고(史庫) 중 하나인 전북 무주 적상산사고에 있던 적상산사고본 4책을 비롯해 오대산사고본 1책, 정족산사고본의 누락본 7책, 어람용(御覽用) 실록인 봉모당본 6책, 낙질 및 산엽본(낱장으로 떨어져 흩어진 자료) 78책 등 조선왕조실록 96책을 추가로 파악해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26일 밝혔다. 조선 왕실은 조선왕조실록을 전쟁과 화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여러 곳에 조성한 사고에 나누어 보관했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태백산·정족산·적상산·오대산의 사고에 남아 있던 실록이 현재까지 전한다. 문화재청은 2016년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의 일부가 1973년 국보로 지정될 당시부터 누락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2년간의 작업 끝에 여러 권의 실록을 찾아냈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한 실록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85책)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9책), 국립중앙박물관(1책), 국립고궁박물관(1책)에 소장돼 있었다. 1973년 국보 지정 때 누락됐던 것도 있고 국보 지정 이후에 환수하거나 별도로 구입한 것도 있다. 특히 국내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던 적상산사고본 실록(4책)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1책은 ‘광해군일기’로 첫 면에 ‘이왕가도서지장’과 ‘무주적산상사고소장 조선총독부기증본’ 등의 인장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무주 적상산사고에 보관돼 있다가 일제강점기에 이왕가도서로 편입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연월일 순의 편년식으로 정리한 조선왕조실록은 1973년 국보 제151호로 지정된 뒤 국제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역사단체들 “‘반민특위 망언’ 나경원 등 징계하라” 규탄 성명

    역사단체들 “‘반민특위 망언’ 나경원 등 징계하라” 규탄 성명

    역사단체들이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활동으로 국론이 분열됐다”고 말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5·18 망언’ 3인방(김순례·김진태·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을 국회가 징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여성사학회, 역사문제연구소 등 29개 역사단체는 19일 공동성명을 통해 “5·18과 반민특위에 대한 망언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라면서 “우리 역사학자들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정쟁의 도구로 삼고자 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단체들은 “우리가 누리는 자유, 평화, 민주주의, 어느 하나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의 희생에 빚지지 않은 것이 없다. 5·18이 “폭동”이며 그 유공자가 “괴물집단”이라고 주장하는 자의 비루한 ‘표현의 자유’조차 5·18 광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면서 “5·18을 부인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반민특위가 좌초되고 반민족행위자 처벌이 무산된 것을 국민 대다수는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친일 부역자들이 오래도록 권력자로 군림하며 우리 사회를 민주적 공동체로 다시 세우려는 노력을 욕보였기 때문”이라면서 “그런데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켰다고 주장하는 자가 속한 나라는 과연 어디란 말인가. 반민특위를 부인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단체들은 “민주주의를 부정한 정치인은 국민에게 사과하라”면서 “국회는 망언을 내뱉은 정치인을 징계하라”고 촉구했다.아래는 성명 전문.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는 정치인”에 대한 역사학계의 규탄 성명 5·18과 반민특위에 대한 망언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다 우리 역사학자들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정쟁의 도구로 삼고자 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얼마 전 자유한국당의 공식 행사에서 몇몇 의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폭동”이고 5·18 유공자가 “괴물집단”이라고 매도하였다. 그뿐인가. 이번에는 해방 후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켰다고 한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한 공적 발언이라는 점이 우리를 아연실색케 한다. 공공선에 봉사해야 할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략을 추구하기 위해 민주적 공동체의 근간을 부정하는 발언을 일삼는 상황에 참담함을 느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무엇인가. 전두환과 신군부의 5·17 쿠데타에 반대하여 피로써 민주주의를 지킨 광주 시민의 일대 항쟁이었다. 2011년 5·18 관련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유네스코는 5·18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인권의 전환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들의 민주화를 이루는 데 기여하였으며, 나아가 냉전 체제를 종식시키는 데 일조하였다고 평가하였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 평화, 민주주의, 어느 하나 광주 시민의 희생에 빚지지 않은 것이 없다. 5·18이 “폭동”이며 그 유공자가 “괴물집단”이라고 주장하는 자의 비루한 ‘표현의 자유’조차 5·18 광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5·18을 부인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무엇인가. 제헌의회가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반민족행위를 조사·처벌하기 위해 만든 헌법 기구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에 부역하고 우리 민족의 독립과 평화를 위한 노력을 저버린 행위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죄를 묻기 위한 기구였다.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반민특위가 좌초되고 반민족행위자 처벌이 무산된 것을 국민 대다수는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친일 부역자들이 오래도록 권력자로 군림하며 우리 사회를 민주적 공동체로 다시 세우려는 노력을 욕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켰다고 주장하는 자가 속한 나라는 과연 어디란 말인가. 반민특위를 부인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학자들은 정치인들의 망언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어 민주적 공동체의 이름으로 이를 규탄한다. 5·18의 의의와 반민특위의 노력에 대한 부인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며, 우리 사회의 역사적 경험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정확하게 기록하여 민주적 공동체의 자산으로 삼고자 하는 역사학의 존립 근거를 허무는 일이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도 우리 민족은 두려움 없이 독립과 민주주의를 외쳤다. 정치인들은 정략에 눈먼 망발을 거두고 역사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자들이여, 100년 전 전국을 가득 메웠던 만세 소리가 두렵지 않은가! 모두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세상을 밝힌 수백만 촛불이 두렵지 않은가! 우리 역사학자들은 온갖 고난을 헤쳐내고 희망의 역사를 열어온 우리 사회의 힘을 믿으며 정치인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1.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거나 부정하지 말라1. 민주주의를 부정한 정치인은 국민에게 사과하라.1. 국회는 망언을 내뱉은 정치인을 징계하라. 2019년 3월 19일 경제사학회, 고구려발해학회, 고려사학회, 대구사학회, 도시사학회, 민족문제연구소, 백제학회, 부산경남사학회, 역사교육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일본사학회, 전국역사교사모임, 한국고고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교육사학회,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미술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사학사학회, 한국상고사학회, 한국서양사학회, 한국여성사학회,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민속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중세사학회, 호남사학회(가나다순)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북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공동 추진

    북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공동 추진

    대구시는 북한 국립연구기관인 사회과학원, 중국 옌볜대, 원광대 등과 북한에 있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 등재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를 위해 시는 오는 10월 평양에서 이들 기관·대학들과 국제세미나를 열기로 했다. 이어 북한에 있는 국채보상운동 관련 사료를 공동 발굴·전시하는 등 유네스코 공동 등재를 위한 발판을 마련할 계획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지난 1월 중국 옌볜대에서 열린 학술행사에서 이들 기관·대학들과 공동 등재 노력에 합의했다”면서 “세미나를 계기로 국가 간 학술 연구가 원만히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우리 국민이 나랏빚을 갚기 위해 일어선 국채보상운동은 발달과 전개 과정을 적은 수기(手記), 언론 보도 등 국내 기록물 2472건이 2017년 10월 세계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김영록 전남지사, “5·18 망언, 국민 앞에 사죄해야”

    김영록 전라남도지사는 10일 “극우단체와 일부 정치인들이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자행한 5·18 민주화운동 폄하 발언과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200만 전남 도민과 함께 강력히 규탄하고 사죄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일본을 방문 중인 김 지사는 이날 ‘5·18 공청회 망언’ 규탄 성명서를 통해 “5·18 민주화운동은 이미 역사적 평가를 통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고, 관련 기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등 그 숭고함과 역사적 의의가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가 인정하는 민중항쟁”이라고 평가했다. 김 지사는 “지만원을 비롯한 극우단체와 일부 국회의원들은 5·18의 가치를 훼손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망언을 서슴지 않고 쏟아냈다”면서 “이는 거룩한 피와 희생으로 이룩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헌법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는 “아직 아픔이 아물지 않은 5·18 영령들과 유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시대착오적 만행이다”고 지적했다. 김 지사는 이어 “신군부에서 자행된 역사적 과오에 대해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구시대적 이념분쟁으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억지주장에 불과하다”며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날조한 지만원과 일부 국회의원은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밝혔다. 공청회를 방치한 자유한국당에도 강한 유감을 표했다. “공당으로서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각성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김 지사는 “구시대의 낡은 정치행태와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워 밝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은 시대적 사명이요 국민의 염원”이라면서 “더 이상의 소모적 정치논쟁을 청산하고,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규명해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정치권과 국회가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삼국유사 테마파크’ 알리기 나선 경북 군위군

    경북 군위군이 올해 하반기 시범 운영을 앞둔 ‘삼국유사 테마파크’ 띄우기에 나섰다. 군위군은 ‘삼국유사 테마파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BI)와 캐릭터 상표 출원을 마쳤다고 24일 밝혔다. 삼국유사 테마파크는 의흥면 이지리 일대 72만㎡ 터에 국비 등 1119억원을 들여 만들어졌으며 삼국유사 속 설화, 문학작품, 인물 등을 각종 전시회나 체험 행사로 만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내년 정식 개장에 앞서 오는 8월부터 시범 운영한다. 군은 삼국유사 테마파크 이미지와 정체성을 살리고 대내외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BI와 캐릭터를 개발했다. BI는 삼국유사를 집필한 승려 일연과 그가 입적한 인각사를 상징화하고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 브랜드와 연계해 삼국유사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디자인했다. 캐릭터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신화의 단군, 곰, 호랑이를 비롯해 만파식적 등 6가지로 남녀노소 누구나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이미지로 고안했다. 군은 또 경북도 및 대구시 교육청을 방문, 학생 등 단체 관광객 유치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유튜브,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삼국유사 테마파크 알리기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5~7월에는 전국 여행사·학교 관계자 120여명을 대상으로 팸투어를 실시하고, 현재 국보(제306호)로 지정된 삼국유사를 아시아태평양지역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할 예정이다. 시범 운영이 시작될 8월에는 전국 규모의 삼국유사 테마파크 축제와 백일장전 등을 실시할 계획이다. 군위는 일연(1206∼1289) 스님이 1284년부터 입적할 때까지 5년 동안 고로면 인각사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이다. 김영만 군위군수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사상을 함축한 삼국유사 테마파크가 전국적 명성을 얻어 많은 관광객이 찾을 수 있도록 랜드마크로 키워 내겠다”고 말했다. 군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씨줄날줄] 세계 민중사 바꾼 3·1운동/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세계 민중사 바꾼 3·1운동/박록삼 논설위원

    명월관은 고급 요릿집이었다. 궁중 음식을 책임지던 안순환이 지금의 광화문 사거리에 만들었다. 1909년이었으니 일제의 강제 병합인 경술국치 바로 그해였다. 조선의 국권이 완전히 일제로 넘어가던 때 임금의 요리사가 저잣거리로 나온 셈이니 그 씁쓸한 상징성 또한 컸다. 가야금과 창가에 능한 미색의 기생들이 있어 당대 고관대작들이 무시로 드나들며 풍류를 즐겼다. 우리가 역사책 속에서 봐왔던 3·1운동의 시발이 된 역사적 장소 태화관은 바로 이 명월관의 별관이다. 민족 대표 33인은 1919년 3월 1일 오후 1시 남짓 태화관에 모여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독립선언문을 낭독 없이 채택한 뒤 총독부에 그 사실을 알렸다. 민족 대표들은 체포를 위해 인력거를 가져온 헌병들에게 자동차를 가져오라고 돌려보냈고 택시 일곱 대에 나눠 타고서야 경무 총감부로 붙잡혀 갔다거나, 학생 대표들이 찾아와 거세게 항의했지만 탑골공원 앞에서 낭독하기 어렵다는 민족 대표들의 뜻을 바꾸지 못했다는 등 ‘몇몇 소소한 사실관계’는 많은 이들에게 3·1운동의 무기력함, 자조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3·1운동은 폄훼될 대상이거나 교과서 속에 박제될 사안이 결코 아니다. 이날 비슷한 시간, 오지 않는 민족 대표를 기다리던 수십만의 학생, 노동자, 농민, 상인 등 각계각층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외친 ‘조선독립만세’를 시작으로 3~4월 사이 일제 헌병과 기마부대의 폭력적 진압 속에서도 수천 회의 만세 시위가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혈사’에 따르면 3·1운동에 참여한 인원은 200여만명이며, 7509명이 숨졌고 1만 5850명이 다쳤다. 체포된 이 또한 4만 5306명에 이른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몇몇 지도자 혹은 조직된 단체 주도가 아니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떨쳐 일어난 전민항쟁에 가까운 성과였다. 나아가 군주제를 극복하고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임시정부의 정치적 토대를 쌓는 계기가 됐다. 3·1운동이 아닌 ‘3·1혁명’이라는 위상이 더욱 걸맞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3·1 운동은 당시 뉴욕타임스, AP통신, 민국일보 등 주요 외신을 통해 세계에 타전됐고, 식민통치에 신음하는 해외 민중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됐다. 인도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의 모체가 됐고,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었던 중국 민중들이 5·4운동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됐다. 국가보훈처가 지난 14일 3·1운동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만시지탄이지만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일이다.
  • 삼국유사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경북 군위군·4개 기관 MOU 체결

    삼국유사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경북 군위군·4개 기관 MOU 체결

    국보 제306호인 삼국유사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관련 기관들이 힘을 뭉친다.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군은 9일 군청 대회의실에서 서울대, 연세대, 부산 범어사, 한국국학진흥원과 삼국유사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협약에 따라 삼국유사 소장 기관인 서울대와 연세대, 범어사는 등재 추진기관인 군위군과 한국국학진흥원에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 등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김영만 군수는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와 정기를 담고 있는 삼국유사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나섰다”면서 “이번 협약이 기록유산 등재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군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열린세상] 내 생의 역사를 자서전으로 남기자/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열린세상] 내 생의 역사를 자서전으로 남기자/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개인이나 집안이나 국가나 모두 과거가 있다. 그러나 과거 자체를 역사라고 하지 않는다. 과거의 사건과 경험에 의미를 부여해 기록할 때 비로소 역사가 된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나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가 없었다면 이분들이 오늘날 이토록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자기 생의 역사를 스스로 기록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흔히 자서전은 유명한 사람만 남기는 것처럼 인식돼 왔다. 이는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아무리 하찮고 평범하게 산 사람이라도 삶의 경험은 단 하나밖에 없기에 소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80세가 넘은 한 어르신의 말에 관악구가 7년 전 전국 최초로 시작한 어르신 자서전 출간 사업의 의미가 들어 있다. 아무리 큰 강물도 수만 수천 갈래의 시냇물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처럼 역사의 강물 역시 민초의 삶이 모여서 도도히 흘러가는 것이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의 인생도 자서전이 되고 역사가 된다. 누구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의 역사를 갖고 있다. 자신의 역사는 자신만이 기록할 수 있다. 언뜻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도 지나온 인생행로를 더듬어 보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일제 치하와 8·15해방, 분단과 6·25전쟁, 4·19혁명과 5·16쿠데타, 베트남 참전과 중동 건설 참여, 오일 쇼크와 IMF 외환위기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평범한 사람의 삶에 녹아 있다. 발에 차이는 돌덩이 하나에도 지구의 역사가 담겨 있다. 마찬가지로 보통 사람의 삶도 한국 현대사의 훌륭한 단면이 된다. 자서전을 쓰면서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는 것도 값진 경험이다.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어 자서전을 쓴 어르신은 “나의 과거를 찬찬히 돌이켜보니 내 인생도 생각보다는 훨씬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자손들에게 일일이 말할 수 없었던 굴곡진 인생 궤적을 한 권의 책으로 남기니 가슴이 굉장히 뿌듯해요”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결정적 순간이 있다. 그 순간에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판단으로 어떤 결단을 내렸는가. 이는 사람의 인생 행로를 확 바꾼다. 유네스코 기록유산만 기록유산이 아니다. 자신만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면 기록유산이 된다. 팔순 잔치 때 수건 대신 자서전을 돌렸더니 가족 친지 친구들의 대접이 달라지더라는 후일담은 공통점이다. 한마디로 참여자의 만족도가 대단히 높음을 알 수 있다. 해방 후 부부가 빨치산 활동을 하다 남편은 죽고 자신은 체포돼 파란만장한 생을 이어 온 박정덕(86) 할머니. 반면 빨치산 토벌작전에 동원됐던 김관영(87) 할아버지. 치열한 역사의 현장에서 대척점에 섰던 이분들은 같은 동네 주민으로 한날한시 한 장소에서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서 손을 맞잡았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감동으로 승화시키는 순간 참석자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박 할머니는 “나도 젊은 시절 꿈이 있었는데, 죽은 뒤 이 세상에 왔다 간 흔적도 없을 뻔했어요. 그런데 내 인생의 자취를 남기게 돼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구귀순(71) 할머니는 맏며느리로 병든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딸만 일곱을 낳아 길렀는데, 아들 선호 분위기에서 딸들을 눈물로 훌륭하게 길러 낸 사연을 ‘일곱 개의 보석’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으로 남기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흥남 부두 피난민으로 천신만고 끝에 자수성가한 이야기도 흔한 것 같지만, 그 집안의 역사로는 훌륭하기 그지없다. 부인과 사별하고 자서전 집필에 들어가 책이 나오자 조촐한 가족 출판기념회를 가진 후 바로 생을 마감한 분도 있다. 매우 애석한 일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자손들에게 마지막 선물로 자서전을 남긴 셈이니 아름다운 마무리라 말할 수 있겠다. 자서전 사업은 구청에서 비용의 절반 정도를 지원하고, 전문 사회적기업인 희망사업단에서 주인공의 구술을 토대로 집필을 도와주거나 대필을 해 준다. 두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지금은 여러 시·군·구로 확산되는 중이다. 출간된 자서전은 지역 도서관에 영구 소장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똑같은 인생은 없다. 의미 없는 인생도 없다. 누구나 자서전을 남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직지 소재 첫 영화 나왔다

    직지 소재 첫 영화 나왔다

    현존하는 금속활자본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지를 소재로 한 영화가 처음으로 제작됐다. 직지를 다룬 연극이나 다큐멘터리는 있었지만 극영화는 최초다. 화제작은 채승훈(52)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우리’다. 21일 롯데시네마 청주에서 시사회를 갖는다.이 영화는 극작가이자 장애인인 주인공이 직지에 대한 글을 쓰면서 직지가 만들어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판타지 멜로 드라마다. 직지가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것 처럼 이 영화 역시 대부분 청주에서 촬영됐다. 주요 배우들은 청주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들이다. 채 감독과 촬영감독을 맡은 김영철(52)씨는 청주대 연극영화과 동문이다. 실제 장애인이며 주인공 ‘우리’역을 맡은 조우리(36)씨는 청주의 충북대를 졸업했다.2015년 12월 크랭크인 된 영화는 열악한 재정상황과 싸우며 3년만에 완성됐다. 관내 대학과 병원, 기업체 등의 지원과 배우들 재능기부가 있었기에 촬영을 끝낼수 있었다. 청주의 자랑인 직지를 세계에 알리기위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문이 나자 모두가 선뜻 나섰다. 채 감독은 “모두가 평등하게 공유할수 있는 금속활자처럼 영화도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보며 직지를 이해할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해외 영화제 출품을 통해 직지 하권이 프랑스에 있는 안타까운 상황을 세계에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화 속에서 남녀 주인공이 서로 만나 상처를 회복한다”며 “직지 역시 분실된 상권이 찾아지고 하권이 돌아와 서로 만나기를 희망해본다”고 덧붙엿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직지는 2001년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포로의 눈에 비친 전쟁… 평화의 이유 곱씹게 합니다”

    “포로의 눈에 비친 전쟁… 평화의 이유 곱씹게 합니다”

    美·英 등 세계 곳곳서 기록물 발굴 내년 1월 17일까지 100여점 전시 거제시,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전쟁포로 기록을 들여다보면 왜 전쟁이 아닌 평화를 선택해야 하는지 곱씹게 되지요.”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한 ‘정전’ 상태가 65년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북한 비핵화 협상과 더불어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전쟁 상태를 끝내자는 ‘종전’ 선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6·25전쟁 포로 아카이브 자료 공개 전시회 ‘전쟁포로, 평화를 말하다’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내년 1월 17일까지다.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가 있었던 수용소 유적이 남아 있는 경남 거제시의 의뢰를 받아 최근 3년가량 자료를 발굴해 온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ISPDR) 팀의 공동연구원 김민환 한신대 교수는 12일 “이번 전시회가 마지막 냉전의 땅인 한반도의 통일과 세계 평화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6·25전쟁은 1년여 만에 전선이 고착화됐지만 빨리 종결되지 못하고 2년 가까이 더 이어졌습니다. 전쟁포로를 둘러싼 여러 쟁점 때문입니다. 전쟁 후반은 사실상 포로들을 놓고 벌인 전쟁에 다름 아니었죠.”수용소 등에 대한 사진과 영상, 문서 자료 100여점을 전시회 현장과 도록을 통해 접할 수 있다. 대부분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자료들이다. 국내 육군기록정보관리단, 국토지리원을 비롯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영국 왕실 전쟁박물관, 네덜란드 국립기록관(NAN), 국제적십자위원회 등에서 수집한 6만여쪽에서 추렸다. 정규군 외에 비정규군인 빨치산, 심지어 일부 피난민까지 포로가 됐던 사연, 수용소에서의 삶, 어느 곳으로 돌아갈 것인지를 정하기 위한 ‘자발적이지만 강요된’ 포로들의 선택, 최종 선택지에서 발생한 차별 및 억압까지 조망할 수 있다. 포로수용소를 짓기 위해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살던 곳에서 쫓겨나 또 다른 수용소에서 살아야 했던 지역민들의 이야기도 곁들여진다. “미국은 체제 경쟁에 대한 자신감에 인도주의를 내세워 포로 스스로 원하는 곳으로 가게 하자는 자원 송환 원칙을 세웠지만 포로 모두에게 폭력적인 결과를 낳았죠. 북한군 포로가 반공포로로 남쪽에 남아도 의심의 눈초리는 지워지지 않았고 북으로 돌아갔어도 경계 대상이 됐습니다. 그것은 남으로 돌아온 국군포로와 미국, 영국, 중국, 대만 등으로 돌아간 그 나라 포로들도 마찬가지였죠. 포로들에겐 눈에 보이지 않은 전쟁이 계속된 셈이죠.” 거제시는 이번 자료 발굴을 바탕으로 아카이브 센터를 구축하는 등 포로수용소 유적 공원을 재정비할 계획이다. 또 6·25전쟁 포로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있다. “1949년 체결된 전쟁포로의 대우에 관한 제네바 협약이 처음 적용된 게 6·25전쟁이고, 당시 포로수용소는 다국적 공간이었죠. 국내에 국한된 게 아니라 국제적인 보편성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 나라에 남아 있는 자료들을 보태며 힘을 모으면 등재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글 사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종이보다 질기고 튼튼”… 한지로 다빈치 작품 복원한다

    한지로 원본 감싸 작품 손상 최소화 이탈리아에서 내년에 서거 500주년을 맞는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년)의 귀중한 작품을 복원하는 데 우리 종이 한지가 사용된다. 로마에 있는 세계적 지류복원 전문기관인 이탈리아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ICPAL)는 11일(현지시간) 다빈치가 1505년 창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새의 비행에 관한 코덱스’의 복원에 한지를 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왕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는 이 작품은 다빈치가 새를 관찰하면서 발견한 항공공학 법칙 등을 스케치와 함께 기술한 18쪽짜리 자필 노트로, 시대를 앞선 다빈치의 혜안이 잘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ICPAL은 ‘레오나르도와 그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10~11일 로마 ICPAL 본부에서 지난 2년에 걸쳐 진행해 온 ‘자화상’ 등 다빈치의 작품 일부에 대한 복원 사업에 대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날 발표자 중 한 명으로 나선 ICPAL 복원 전문가 루칠라 누체텔리는 “작품이 제작된 지 오랜 세월이 흐른 데다 여러 군데를 옮겨 다니며 전시된 터라 곰팡이 등으로 심하게 오염돼 있었다”면서 “복원한 작품의 보다 철저한 보호를 위해 한지로 원본을 감싸는 작업을 거쳐 복원을 마무리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누체텔리는 이어 “한지로 작품을 보호하는 커버를 만들어 덧대는 방식으로 복원된 작품의 세월에 따른 손상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라며 “일반 종이보다 훨씬 질기고 튼튼한 한지의 특성이 고려됐다”고 강조했다. 복원 작업에 쓰일 한지는 경남 의령 신현세 한지공방에서 제작한 한지가 쓰일 것으로 알려졌다. 신현세 공방에서 제작된 한지 3종은 2016년과 올해 ICPAL에서 문화재 복원에 적합하다는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