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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의 위상 추락 대형교회 공동 책임”

    “기독교의 위상 추락 대형교회 공동 책임”

    최근 한국 종교계의 온갖 추문의 진원지는 기독교계다. 개별 교회에서는 교회 운영권을 둘러싸고 각종 고소·고발과 폭력이 횡행하고, 대표적 개신교단체는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한치의 물러섬 없이 갈등이 이어지며 두 동강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여기에 이웃종교의 성지에 들어가 ‘땅밟기’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보는 등 오만과 무례도 서슴지 않았다. 교회 내부에서 성찰의 목소리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앞세워 교회의 성찰과 혁신을 촉구한 ‘2010 생명평화선언’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기독교 생명평화운동의 주요 의제를 놓고 토론하는 ‘생명평화포럼’으로 정례화된다. 매달 두 번째 화요일 저녁 서울 충정로2가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열린다. 포럼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독교계 인터넷 언론인 ‘에큐메니안’(www.ecumenian.com)으로도 생중계된다. 8일 열린 첫 번째 포럼에서는 ‘생명평화마당을 출범하며-생명평화신앙을 통한 기독교의 정체성 재확립’이 주제였다. 발제를 맡은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삭개오 작은교회 목사는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이웃종교에 대한 비상식적인 개신교인들의 폄하 행태, 전철이나 역 광장에서 공공적 사회윤리성을 무시하는 전도 행각, 일부 문란한 성직자들의 탈선과 수준 이하의 공중파 설교, 집단이기주의 행태마저 보이는 개신교 평신도들의 기복신앙 등에 대해 ‘내가 목회하는 교회와 관계없으니 난 책임 없다’는 식으로 방관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사회와 역사는 기독교 전체 위상과 한국 개신교의 공동책임을 묻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 교회는 수치와 조롱도 함께 받고, 칭찬과 영광도 함께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대형 교회 지도자들은 오늘의 한국 개신교 위상 타락에 대한 무한 공동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며, 개별 교회 중심의 성장 선교신학이 비복음적인 것임을 알고 하루속히 청산해야 한다.”며 대형교회의 각성을 촉구했다. 아울러 김 목사는 “한때 전쟁불사론까지 함부로 입에 올렸던 무책임한 정치지도자들이나 반공주의 극우파 집단들의 발언은 생각할수록 모골이 송연한 일”이라며 이념의 틀에 갇혀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에 동조하는 일부 개신교의 행태를 지적하는 한편, “정부의 4대강 개발사업처럼 학계와 종교계, 시민단체 등이 줄기차게 (정부 정책에)반대해온 사례가 없을 것이며, 동시에 지난 2년간 이명박 정부만큼 국민과의 소통에 귀를 꼭 막은 정부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토론자로 나선 조석민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신학적 활동과 교회 운동의 시작은 성서의 가르침에서 출발해 현재의 상황을 점검 분석한 뒤, 성서적 대안을 모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담론의 시작이 현재의 사회적 현상에서 출발한 점은 아쉽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조 교수는 또 “생명과 평화, 그리고 정의 개념과 역사성 역시 성서 속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토론자인 김준우 한국기독교연구소장은 “교회가 한국 사회에 대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반지성주의, 권위주의, 배타주의, 우월주의만이 아니라 무한경쟁에서의 성공과 번영을 조장하고 탈정치성을 세뇌시킴으로써 세상의 위기에 대해 외면하고 침묵하도록 만드는 등 권력과 자본의 시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면서 “내세 구원 중심이 아니라 지구공동체 중심으로, 교리 중심이 아니라 실천 중심으로, 돈과 양적 성장 중심이 아니라 생명과 평화중심으로, 경제 중심의 성공과 번영이 아니라 생태계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전통 신학과 교회의 역할에 대해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며 김 목사의 발제에 동의하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달 8일 열리는 두 번째 포럼의 토론 의제는 ‘장로 이명박 정권에 대한 기독교의 교회적, 성서적, 신학적 평가’로, 현 정부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 더욱 구체적이고 전면적으로 접근할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52)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고전 톡톡 다시 읽기](52)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버트런드 러셀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대해, 중세 기독교에 끼친 지대한 영향 외에는 그다지 진지하게 다룰 필요가 없는 책이라고 말했다. 러셀이 보기에 ‘티마이오스’는 과학이나 철학이기보다는 종교에 가까웠다. 그런가 하면 어린 시절의 하이젠베르크는 신학 학교 지붕 위 따뜻한 햇살 속에서 ‘티마이오스’를 읽으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양자 역학으로 현대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하이젠베르크지만, 만일 ‘티마이오스’가 없었다면 그에게 노벨 물리학상의 영광을 안겨준 ‘불확정성의 원리’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종교와 과학 사이에 놓이는 책, 아니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종교와 과학을 중첩되도록 만드는 책!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는 이곳에 존재한다. ●과학으로서 ‘티마이오스’ ‘티마이오스’는 우주의 발생과 구성 원리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서 제시되는 우주 구성의 근본 물질은 불, 흙, 물, 공기. 이 4원소는 당시 자연철학자들의 사유를 이어받은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은 4원소의 내적 구조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하학적 형식으로 그것들을 정의한다. 이에 따라 4원소는 기하학적 입자로서 설명되고, 우주의 생성은 순수한 형식의 세계로 펼쳐진다. 플라톤은 또한 우주의 생성 원리에 관해서도 기존의 자연철학자들과 결별한다. 그는 자연철학자들이 ‘사랑’과 ‘투쟁’ 따위의 모호한 표현으로 우주의 발생을 말하던 방식과 달리, 수(數)의 비례 관계를 자신의 근거로 삼는다. 수와 기하학적 질서 위에 구축된 우주! ‘티마이오스’는 오늘날 과학이 우주를 다루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책이 종교적인 차원에서 읽힐 여지가 있는 것은 우주 발생의 순간에 등장하는 ‘데미우르고스’라는 신 때문이다. 하지만 데미우르고스는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주 원리를 담은 형상(形相)과 우주의 재료가 되는 질료가 신에 앞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데미우르고스는 자신의 마음대로 우주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주의 원리를 담고 있는 형상들을 본(本, paradeigma)으로 삼아 제작할 뿐이다. 질료 역시 재료로 쓰기 위해서는 설득을 해야 하는 것이 신의 운명이다. 그러므로 한쪽으로는 설계도를 따르려 애쓰면서, 다른 쪽으로는 재료들과 씨름하는 장인(匠人)의 모습이 데미우르고스라는 신이다. 신조차도 따라야 하는 우주의 원리가 있고, 그 원리들을 수와 기하학의 세계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티마이오스’는 과학에 가깝다. ●종교로서 ‘티마이오스’ ‘티마이오스’의 시간 배경은 플라톤의 대표작인 ‘국가’ 속의 이야기들이 오고간 다음 날로 설정되어 있다. 실제로 ‘티마이오스’가 ‘국가’의 후속편인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플라톤 스스로가 ‘티마이오스’를 ‘국가’의 연장선상에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때 플라톤의 근본적인 고민은 인간의 정의로운 삶이었다. 그에게 정의로움이란 훌륭한 삶의 지표였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플라톤은 정의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삶은 어떻게 가능한지를 모색하고자 했다. 하지만 누군가 ‘왜’ 정의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 묻는다면? ‘인간이면 누구나 그래야 한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면 될까. 플라톤은 이런 명령 대신 우주를 가지고 들어온다. 즉 훌륭한 삶에 관한 플라톤의 논의는 인간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다시 우주로 확장됨으로써 완성된다. 하여 플라톤은 우주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에 앞서 ‘왜’ 만들어졌는지를 묻는다. 생각해 보면 데미우르고스라는 신이 형상을 보았다고 해서 꼭 우주를 만드는 수고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여기에는 신의 ‘선견과 배려’가 있다. 신은 훌륭한 이이고, 그는 자신이 훌륭한 만큼 “모든 것이 최대한으로 자기 자신과 비슷한 상태에 있기를 바”란다는 것! 이것이 우주가 만들어진 이유이자, 인간이 존재하게 된 이유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물이 훌륭하게 되기를 바랐던 신의 마음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다. 우주에는 우리 삶을 이끄는 섭리가 담겨 있고, 우주의 일부분으로서 인간은 그 섭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 플라톤에게 우주는 인간을 이루는 물질적 원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편으로 인간의 삶을 훌륭하게 이끄는 원인이다. 인간의 물질적 바탕을 넘어 삶의 근거로서 우주. 플라톤의 이러한 목적으로서의 우주가 중세 기독교의 세계관과 맞닿게 된다. ●우주, 삶의 새로운 상상력 우리는 ‘티마이오스’를 통해 과학으로 풀어진 섭리를 만난다. 이 때문에 ‘티마이오스’는 신학자와 과학자 모두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책이 된다. ‘티마이오스’ 속의 독특한 우주는 세계를 바라보는 플라톤의 시선에서 기인한다. 그에게 ‘자연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곧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풀어줄 열쇠였다. 플라톤이 우주를 수학적으로 해석한 피타고라스 학파에 그토록 심취한 이유도, 삶의 윤리를 정초할 새로운 세계를 만났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하늘 속에 담긴 땅의 모습을 보았고, 땅 위에 펼쳐진 하늘의 원리를 읽었다. 오늘날의 과학은 플라톤의 이런 시선이 옳았음을 증명해 준다. 지구상의 동물, 식물, 벌레 심지어 물방울까지 똑같은 사전의 코드를 이해하고 있다. 효모 세포는 인간의 유전정보를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바다와 인간이 가진 염과 광물질의 비율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또한 우리 몸이 허용할 수 있는 원소의 양은 지각에 존재하는 원소의 양과 직접적으로 비례한다. 그러니 우주를 본다는 것은 인간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뿐만이 아니라 과학은 우주가 얼마나 다채롭고 생기로운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플라톤이 말했던 수적 비례와 기하학적 질서를 넘어서는 질적 다양체의 세계. 과학은 우리를 그 세계들과 이어주는 다리다. 그러니 사회가 규정해 놓은 획일화된 가치 속에서 답답함을 느낀다면 과학이 펼쳐놓은 우주로 들어가 보자. 과학의 다리를 건너는 약간의 수고로움만 들인다면 다채로운 우주 속에 존재하는 우리 삶의 무한한 가능성들과 통로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삶의 윤리를 창안할 수 있는 우주적 상상력!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과학으로부터 받게 된 최대의 선물이 아닐까. 신근영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문화계 블로그] 권력화된 교회의 부끄러운 속살

    그냥 교회가 아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잡은, 등록 교인만 7만명이 넘는 대형 교회다. 61명의 시무장로가 있고, 그중 한 사람이 현직 대통령이다. ‘고(려대)·소(망교회)·영(남) 정부’라는 신조어를 낳았을 정도로 정부 안팎의 시선이 집중된 곳이기도 하다. 소망교회다. 지난 2일 발생한 폭력 사태가 더 유감스러운 까닭이기도 하다. 김지철 담임목사와 전·현직 부목사가 새해 첫 주일 오전 교회 안에서 얼굴뼈가 함몰될 정도의 난투극을 벌였다. 소망교회의 주먹다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장로와 집사가 격하게 맞붙어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폭력사태만 벌써 세 번째다. 업무상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주고받은 고소·고발은 열 건이 넘는다. 소망교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또 다른 대형 교회인 서울 청파동 삼일교회의 스타목사 전병욱 목사는 지난해 11월 여자 신도를 성추행하려다 교회에서 ‘잠시’ 쫓겨나기까지 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송구영신 예배를 보던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는 담임 목사를 비난하는 유인물을 돌리던 다른 교회 목사들과 실랑이가 벌어지는 등 명예훼손 송사에 휘말린 상태다. 부끄러움이나 바깥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이익집단의 모습 그대로다. 교인들조차 “권력화된 교회의 부끄러운 속살”이라며 고개를 떨구고 있다. 오죽했으면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주먹’이라는 비아냥이 교회 게시판에 올랐겠는가. 이는 교회를 목사 사유물로 여기는 교계의 오랜 관행이 빚어낸 부정적 산물이다. 목사가 바뀌면 ‘내 사람’을 심거나 자르려 하고, 그 과정에서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소망교회 사태도 따지고 보면 신·구 목사 세력 간의 알력에서 비롯됐다. 일각에서는 그 원인을 20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 찾기도 한다. 1970~1980년대 군부독재 정권 시절 주류 개신교계는 정·교 분리 원칙을 앞세워 사회현실에 개입하기를 꺼렸다. 그랬던 교단이 민주화가 이뤄지자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사회를 향해 발언하기 시작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는 ‘기독교인 대통령 만들기’에 열성적이었고, 성공했다. 남오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은 5일 “소망교회 사태는 목사들의 윤리, 도덕성 수준이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못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고 개탄한 뒤 “교단 제도를 정비하고 신앙공동체를 회복하지 않으면 이 같은 사태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소망교회는 전날 “하나님과 국민 여러분 앞에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고 사과 성명을 냈다. 이름값에 걸맞은 통렬한 반성과 성찰이 절실한 순간이다. 그래서 ‘낮은 데로 임하며’ 묵묵히 세상과 교감하는 목회자들과 마주쳤을 때, 더는 부끄럽지 않기를 주문해 본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울광장] 다른 종교의 포용에 관한 대통령령/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다른 종교의 포용에 관한 대통령령/함혜리 논설위원

    기원전 3세기 경 인도 마우리아 제국에 아소카(Asoka)라는 왕이 있었다. 용맹스러웠던 그는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영토를 넓혀 인도 최초로 통일 국가를 이뤘다. 왕위에 오른 지 8년째 되던 해 칼링가국 정복에 나선 아소카 왕은 피비린내 나는 정복전을 치르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깊이 느끼고 무력에 의한 정복을 그만두었다. 대신 불교를 믿으며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와 법에 의한 통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불교를 융성하게 하는 데도 힘을 쏟았지만 동시에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항상 강조했다. 종교로 인한 갈등이 얼마나 큰 불행을 초래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기둥에 새겨진 아소카 왕의 칙령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누구나 자신의 종교만을 숭앙하고 다른 종교를 저주해서는 안 된다. 다른 종교도 존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종교에 무덤을 파는 것이며 다른 종교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해하는 것이 좋다. 경청하라. 다른 종교의 가르침이나 교의에도 귀를 기울이라.” 23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 우리나라에 이런 내용의 칙령을 선포하면 어떨까. 군주나 황제가 없으니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그 주체가 된 ‘다른 종교의 포용에 관한 대통령령’이라면 적당할 듯하다. 템플스테이 예산문제로 확대된 불교차별 논란, ‘봉은사 땅밟기’와 같은 일부 개신교도들의 불교 비방과 폄훼 등 우리 사회에서 점점 심화되는 종교 갈등을 보면서 해 본 생각이다. 불가능하겠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아소카왕이 그랬던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이 모든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대통령령을 제정해 선포한다면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 대통령은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있듯이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이 법령을 공표한다면 대통령 자신과 현 정부의 종교를 둘러싼 여러 소모적 논란이나 오해들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법령의 목적은 종교인들이 배타성과 오만에서 벗어나 한층 더 성숙해지도록 독려하고 종교가 사랑과 평화, 자비의 실천이라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큰 자랑거리 중 하나가 많은 종교가 상호간 차이로 인한 테러나 폭력, 차별 없이 공존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의 종교적 갈등과 분쟁은 위험 수위를 향해 치닫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현 정부 들어 종교갈등이 유난히 심각해졌으며 이는 개신교 신자인 대통령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 집권초기 소망교회 인맥을 요직에 등용해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고 청와대에 목사를 초빙해 예배를 드린다는 얘기도 간혹 흘러나온다. 공무원들이 기독교 신자인 대통령과 기독교 신자인 기관장을 의식해 정책을 집행한다는 오해를 받기 일쑤다. 어떤 이유에서든 대통령이 종교 편향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대통령은 종교 갈등과 관련해 좀 더 분명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대통령령 같은 것을 제정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국민 앞에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을 재천명하고 다른 종교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당부해야 한다. 공직자들에게는 국민 통합을 저해할 수 있는 어떠한 편향된 정책도 불허하며, 만약 그럴 경우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 대통령에게도 신앙의 자유는 있다. 자유롭게 종교 활동을 할 수는 있지만 여러가지 종교를 화합하도록 하는 것 또한 다종교 사회를 안정되게 이끌어 나가야 하는 대통령의 중요한 의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치우침 없는 중도의 시각으로 종교를 화합하게 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것은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의 큰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이기도 하다. 종교가 서로 관용하고 화합해야 나라와 국민이 평안한 법이다. lotus@seoul.co.kr
  • “종교·神… 좌파의 새로운 지적 자원”

    “종교·神… 좌파의 새로운 지적 자원”

    6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67) 영국 랭커스터대 교수의 방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글턴은 고려대, 교보문고, 전남대, 영남대 등에서 강연한 뒤 출국할 예정이다. 이글턴을 이해하려면 미국의 마이클 무어를 떠올리면 된다. 무어가 ‘볼링 포 콜럼바인’, ‘화씨 9/11’, ‘식코’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미국의 치부를 통쾌하게 꼬집어 줬다면, 급진적 마르크스주의자인 이글턴은 위트 넘치는 글솜씨로 ‘우익들의 멍청함’을 마음껏 조롱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정치적 패배주의로 규정하는 마르크스주의자다운 행보다. 덕분에 주류층에서 받는 대접도 비슷하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무어에게 “제대로 된 직업을 찾으라.”고 비아냥댔고, 영국의 찰스 왕세자는 이글턴 이름 앞에다 ‘끔찍한’(dreadful)이라는 형용사를 붙였다. 좌파학자임에도 이글턴은 신을 옹호하는 입장에 서 있다. 얼마 전 ‘신을 옹호하다’라는 책이 번역됐다. 사실 신을 옹호하되 다른 방식으로 옹호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을 통해 집요하게 문제제기했던 ‘창조론’과 ‘구약성경’ 문제에 대해 그는 “연대기는 중요하지 않다.”거나 “마조히즘이라는 인간 본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쿨하게 넘겨 버린다. 그에게 종교란 혁명가적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도킨스류의 무신론을 비판하는 지점은 지금 사회는 살 만한 곳이고 앞으로도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사회공학적 자유주의 사상’이다. 가난한 아일랜드 노동자 집안에 태어났다는 이력을 생각해 보면 천주교, 아일랜드, IRA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다. 미국식 복음주의에 기반한 반공주의로 무장한 우리 기독교와 달리 사회주의적 성향이 짙은 유럽의 종교지형도 감안해야 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글턴의 화법은 여전했다. 인사말을 부탁하자 그는 “난 급진적인 사람이다. 여기 이 자리에 보수적인 신문사도 있다고 들었다. 이름은 말하지 않겠다. 다만, 물어볼 게 있으면 손가락질까지 해가면서 질문해 달라.”고 농담을 던졌다. →마르크스주의자가 신을 옹호한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 책의 한국어판 번역이 잘못된 듯하다(원제는 ‘Reason, Faith, and Revolution’, 한국어판은 ‘신을 옹호하다 - 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 ‘옹호’라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제목이다. 무신론은 좀 더 정교해지고, 신학적 논의를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호킹은 우주가 스스로 창조됐으니 신을 버리라고 하는데, 이미 오래전 토마스 아퀴나스는 창조론을 틀렸다고 했다. 과학이 뭐라 하건 말건 신학 입장에서 우주의 기원 따윈 없다는 것이다. →현실 기독교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기독교의 문제는 너무 일찍 국가 이념화됐다는 데 있다.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던 종교가 너무 일찍 국가의 가진 자들 편에 선 이념으로 바뀌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물질적으로 번영한 미국에 기독교 원리주의가 왜 있겠나. 미국인들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두고 놀란 척하지만, 미국에는 그보다 더한 원리주의가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정의와 윤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종교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나. -진보의 쇠락과 관련 있다. 정치경제적 힘이 없어지니 근원적 가치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권력 싸움 하느라 정신없었고. 좌파의 쇠락이 철학적 질문을 불러오는 것이다. 종교, 신념, 윤리 같은 것이 새로운 정치적 자원이다. 좌파의 사고를 더욱 풍부하게 해 주는 것이다. →신에 대한 좌파의 관심은 보편적인가. -당연하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예전에 발터 베냐민, 마르크 블로흐는 물론 남미의 해방신학이 그랬다. 마르크스의 사상 역시 유대교적인 배경 아래 이해돼야 한다. 최근에는 알랭 바디우, 자크 데리다, 조지오 아감벤, 슬라보예 지제크 같은 이들도 신에 대해 논의한다. 종교나 신의 문제는 좌파의 새로운 지적 자원이다. →좌파가 종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이다. 정치영역에서 사랑이란 인기 없는 단어다. 더구나 서구에서 사랑이라면 개인적이고 낭만적이고 성적인 것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정치적 사랑을, 종교를 되살리자는 게 나의 주장이다. 마르크스 역시 광의의 사랑이 이상적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얘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제동 걸린 美 줄기세포 연구

    제동 걸린 美 줄기세포 연구

    미국 워싱턴 연방지방법원은 23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적극 추진해온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기금지원을 잠정적으로 중단하도록 명령했다. 이로써 줄기세포 연구정책에 급제동이 걸림에 따라 생명윤리 논란이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또 법원의 결정에 위반되지 않도록 정부 지침을 수정할 경우, 연구에도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로이스 램버스 지법 판사는 오바마 행정부의 줄기세포 연구 예산 지원에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의 소송에 대해 “이유있다.”며 본안 판결이 날 때까지 정부지원을 잠정 중단하도록 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램버스 판사는 결정문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분명히 배아를 파괴시키는 연구”라면서 “연구를 위해서는 줄기세포들이 배아로부터 분리돼야 하지만 세포 분리과정에서 배아의 파괴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인간 배아의 파괴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비영리단체인 ‘나이트라이트 기독교 입양’은 지난 6월 줄기세포연구가 인간 배아를 파괴하기 때문에 연방정부의 예산지원은 중지돼야 한다며 국립보건원(NIH)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줄기세포는 재생 의료에 획기적인 발판을 마련하고 있지만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배아를 생명의 싹이라는 기독교 우파의 입장을 수용, 연방정부의 예산지출을 제한했다. 이후 미 상원과 하원에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 기금지원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때문에 미국의 줄기세포 연구는 8년간의 부시 행정부에서는 별다른 진전 없이 정체돼 있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공약대로 지난해 3월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허용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서명에 앞서 “줄기세포 연구가 제공하는 잠재력은 엄청나며, 적절한 지침과 엄격한 감독이 이뤄진다면 위험은 피할 수 있다.”며 줄기세포 연구의 활성화 방침을 밝혔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교회의 계층화·세습 등 주류 패러다임 바꿔야”

    “교회의 계층화·세습 등 주류 패러다임 바꿔야”

    “1980년대 이후 개신교는 강남을 기반으로 한 부의 형성, 축적의 과정과 맞물려서 성장했습니다. 현재 기독교계의 주류와 그 가치가 형성되던 즈음이죠.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부를 쌓아가고, 개인적 성취를 이루는 것이 ‘좋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식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주류 교계 비판하는 전통적 복음주의자 양희송(42) 청어람아카데미 대표는 주류 개신교계를 비판하는 대표적 인물 중 하나다. ‘좌파’니 ‘자유주의자’니 하는 개신교의 비아냥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그가 제기하는 비판의 언설은 진중하면서도 거침이 없다. 1987년 대학(서울대 전자공학과)에 들어간 뒤 서울대기독인연합을 만들고 학원복음화협회, 기독교 저널 ‘복음과 상황’ 등 여러 단체를 거치는 동안 한 차례도 ‘전통적 복음주의 활동’ 바깥으로 벗어난 적이 없다는 자부가 당당한 비판의 배경에 배어 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명동 청어람아카데미에서 만난 양 대표는 “1960~70년대만 해도 한국 교회는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낮은 곳에 있는 이들과 함께하며 봉사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흐름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 그전까지 존재하던 정치권력과 긴장관계도 해소되고, 사회 참여의 부담도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여의도에 있는 대형 교회에서는 과거 가난한 이도 장로, 집사를 했습니다. 계층을 떠나 함께 어울리곤 했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이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포스트 2007 시대’의 준비다. 이는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과정의 공헌, 그로 인한 친권력성의 노골화, 공격적 해외선교 등으로 상징되는 외형적 성장의 패러다임이 2007년을 정점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양 대표는 내처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교회의 계층화, 대형교회 세습, 목회자의 윤리 문제 등 많은 무리수를 보면 몰락과 붕괴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독교 자체의 몰락이 아니라 현재 주류 패러다임의 몰락이 될 것입니다.” 그가 택한 것은 기독교 지성운동이다. 청어람아카데미(www.bluelog.kr)는 양 대표가 2005년 가을 설립했다. 기독교 사상과 인문학의 결합을 통해 기독교의 대중적 지성운동을 꾀하기 위한 거점이다. 궁극적 목적은 새로운 기독교적 담론의 형성이다. 그 방법으로는 기독교 사상에 대한 지성적 이해를 위한 활동과 함께 시민사회와 폭넓은 연대 활동을 첫손에 꼽고 있다. ●인문학으로 새로운 기독교 담론 형성 지난달 젊은 인문학자들의 연구모임인 ‘카이로스’, 인문학과 기독교 사상의 결합을 추구하는 ‘인문학과 성서를 사랑하는 모임’과 함께 ‘연구공간 공명’을 만든 것은 그 공식적 출발점이자 몇 년간 공들여온 노력의 결과물이다. ‘연구공간 공명’은 12일 제1회 지식수련회를 시작했다. 총론 격이라 할 수 있는 강영안 교수(서강대 철학과)의 ‘기독인문학’ 강연을 비롯해 알랭 바디유의 ‘사도 바울’, 손화철의 ‘토플러와 엘륄’ ‘마테오 리치 강독회’ 등 인문학과 기독교 사상을 통섭적으로 종횡무진 넘나드는 세미나, 강연 등이 16일까지 이어진다. 최소한의 학문적 호기심을 갖추고 있다면 기독교 믿음 여부를 떠나 일반 대중들도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다. 실제 세계사적 지성의 흐름으로 볼 때도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시작해 르네상스, 종교개혁 등 일련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신학과 인문학은 불가분의 상호보완 관계를 이뤄왔다. 그는 개신교 내에서 여전히 비주류지만 자신만만하다. “이제는 개신교의 변화를 준비할 때입니다. 아직은 소수에 불과해 보이지만 변화를 원하는 다음 세대의 요구는 분명하며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다음 세대가 준비해야 할 발판은 지성운동이라는 사실도 명확하고요. 스스로 왜 믿고, 어떻게 믿고 있는지 납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생명의 窓] 기도 세리머니/박광서 서강대 물리학 교수

    [생명의 窓] 기도 세리머니/박광서 서강대 물리학 교수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원정 16강에 진입했다. 가슴을 졸이고 밤잠을 설치며 응원한 국민들은 우리 선수들의 자랑스러운 활약에 피로를 잊은 듯했고, 내친김에 8강, 4강까지 가자며 한껏 들뜬 기분이다. 그러나 옥에 티랄까, 일부 선수들의 기도 세리머니가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한국 선수들의 기도행위는 유별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박주영 선수는 프리킥 골 직후 운동장에 무릎 꿇고 앉아 자신의 신에게 보고를 드렸고, 경기가 끝나 16강이 확정되면서 기독교 선수들은 따로 둥글게 모여 기도를 했다. 그 옆을 어색하게 지나가는 팀동료들이나 그 장면을 지켜보아야 하는 국민들이 느끼는 이질감과 박탈감은 안중에 없는 듯했다. 환희심을 반감시키는 부적절한 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골을 넣거나 승리가 확정되었을 때 기쁨에 들떠 외치거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종교적 표현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극적 심리상태를 두고 각박하게 따지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더구나 “패한 사람이나 팀에, 또는 자책골을 넣었을 때는 신이 잠시 외면하거나 저주했단 말이냐?”며 유치하고 까다로운 논리를 들이대고 싶지도 않다. 다만 순수한 스포츠를 종교로 오염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공인이란 신분을 잊지 말고 온 국민과 함께 기뻐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얼마 전 인터넷 여론조사에서도 “공인으로서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과 “신앙의 자유가 있으니 개인문제다.”로 팽팽하게 나뉘었다. 지극히 공적인 상황에서 지극히 사적인 행동을 하는 데 대해 국민의 상당수가 불편해하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지구촌의 화합과 축제의 마당인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적인 스포츠행사에 종교 같은 신념체계가 개입되는 것은 금물이다. 유럽국가에서는 역사상 ‘인종 = 종교’의 의미로 이해해 왔기 때문에 인종적 차별·반감 행위 금지 조항만으로 종교차별도 함께 금기시해 왔다. 그러나 2006년부터 국제축구연맹(FIFA) 윤리규정은 ‘자신의 지위나 역할을 사적 목적이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물론, 민족·인종·피부색·문화·언어·종교·성에 있어서 타인에게 불쾌하거나 차별적인 언행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경기장에서 노골적인 기도행위가 사라지지 않자 급기야 구체적으로 ‘종교 금지’를 삽입한 것이다. 최근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이 월드컵의 종교오염에 대해 우려하면서 이례적으로 기도 세리머니의 자제를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정서적 소외감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공인인 국가대표의 자기중심적 행위로 인한 무례와 불쾌감이다. 국가대표는 선발되는 순간부터 국가예산으로 관리·운영되며, 우수한 성적을 올릴 경우 포상금·연금·병역면제 등의 혜택을 주고, 그 일거수일투족이 공중파 방송을 타며 전 국민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공무원은 아니지만 국민의 대표로서 공무를 수행하는 공인이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만을 위해 종교의식을 하는 것은 오만과 독선으로 비쳐진다. 국제윤리규정과 국민을 무시하면서까지 기도와 선교행위를 고집하며 ‘패거리문화’를 조장하는 선수가 국가대표일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하지만 누구라도 종교라는 이름만 걸면 어디서든지 무슨 짓을 해도 사회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음속으로 믿는 소극적 신앙의 자유는 무제한이지만, 밖으로 나타내는 적극적 종교행위는 타인의 종교자유가 침해되지 않을 권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마치 담배를 싫어할 권리가 담배를 피울 권리보다 우선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나, 개인의 종교선택의 자유가 종교사립학교의 종교교육의 자유보다 더 본질적인 자유라는 대법원의 판결처럼. “공인의 공적 마당에서 이뤄지는 공적 행위가 공적 모럴의 제약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종교과잉으로 인한 피로감의 누적에 대해 지적한 이 같은 말을 곱씹어 볼 때다.
  • 30년만에 부활 목소리… 왜 다시 민중신학인가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는 한국 사회를 뜨겁게 한 불꽃 하나가 피어올랐다. 피복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자살. 이 사건은 사회 곳곳에 크나큰 충격과 함께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들을 가져다 주었다.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건을 접한 신학자 안병무(1922~1996)는 전태일의 희생 속에서 남을 구원하고자 하는 민중적인 메시아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예수는 민중 속에서 끝없이 부활한다.”고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민중신학’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민중신학은 1970~80년대 한국에서 유행했던 기독교의 진보적 사회운동 이론이다. 이는 정치적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민중들의 고난과 저항 속에서 신학적 의미를 찾자는 실천운동이었다. 민중신학은 당시 제3세계 신학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받았고, 지금도 한국 기독교 하면 이것부터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후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민중신학은 시들한 역사 속 단어가 됐다. 최근 이 민중신학을 다시 복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 민중신학회는 최근 학회 발표 논문들을 모아 ‘다시, 민중신학이다’(동연 펴냄)로 엮어 내고 민중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 해외 신학자들이 한국 민중신학에 대해 평가한 논문을 모은 ‘민중신학, 세계 신학과 대화하다’(동연 펴냄)도 잇따라 나와 이런 분위기에 동조하고 있다. ‘다시 민중신학이다’는 한국민중신학회 소속 국내 신학자 12명의 글을 모은 것이다. 이들 신학자는 1970년대와는 확연히 달라진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민중신학이 필요한 이유와 갈 길에 대해 나름의 답을 모색하고 있다. 처음 촉발될 당시 민중신학이 폭압적 산업화나 독재를 대척점에 세웠다면, 이들이 주장하는 현 시대의 민중신학은 ‘신자유적 세계화’나 재물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회와 교회의 타락’을 주된 안건으로 본다. ‘한국 교회의 세계화 신학을 위하여’라는 글을 쓴 새민족교회 김영철 목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제3세계 국가들이 당면한 세계화의 부정적 현실 앞에서 교회는 목회적, 윤리적, 신학적, 나아가 영적인 도전을 받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기독교 시민사회운동의 활성화, 세계 시민사회와의 협력 등을 그 해법으로 제시한다. ‘다문화 사회’도 새로운 민중신학의 주제다. 류장현 한신대 교수는 이주 외국인을 ‘떠돌이 민중’이라 정의하면서 “한국 교회가 다문화 신앙공동체를 꾸릴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할 때”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책에는 민중신학 관점에서 바라본 구약 민중종교, 반제국주의 운동에 대한 글도 실렸다. 한편 미국에서 활동했던 이정용(1935~1996) 전 드루대학교 교수가 엮은 ‘민중신학, 세계 신학과 대화하다’는 해외 신학자 11명이 한국의 민중신학에 대해 쓴 글을 모았다. 이들은 미국의 ‘흑인신학’과 한국의 민중신학의 공통점을 분석하기도 하고, 자신의 신학 전통 안에서 나름대로 한국 민중신학이 갈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새로이 민중신학이 주목받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필요성과 생명력을 이유로 꼽는다. 권진관 성공회대 교수는 “민중신학은 닫힌 이론 체계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을 설명해 내고 대안적 현실을 보여줄 수 있는 예언자적인 신학”이라며 “한국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는 데 제대로 공헌하기 위해 민중신학은 계속 모색돼야 한다.”고 했다. 연규홍 한신대 교수는 “자본주의적 제국화로 전세계 3분의2에 해당하는 민중이 고난을 받는 지금, 민중신학은 한국이란 공간적 상황과 1970년대라는 시간적 한계를 넘어 오늘 지구화 시대에 고난받는 세계 민중의 삶의 자유로까지 확장된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사이비·이단 인식 사회·종교 입장 분리 필요”

    “사이비·이단 인식 사회·종교 입장 분리 필요”

    ‘여호와의 증인’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시작된 개신교 종파다. 이들은 모든 세속적 권력을 부정하는데, 그 때문에 병역을 포함한 국가에 대한 의무도 거부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들의 ‘양심적 병역 거부’는 큰 논란이 됐다. 이 문제를 보는 개신교의 반응은 다양하다. 일방적으로 ‘이단 종파의 삿된 짓’이라고 비판할 것 같지만, 2004년 법원이 여호와의 증인 신자에 대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했을 때 반응은 엇갈렸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우려’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환영’했다. 이른바 ‘이단·사이비’로 치부되는 종파의 일을 두고 어떻게 정반대의 논평이 나올 수 있을까.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에 따르면 이는 이단·사이비 종파에 대한 교회의 인식 속에 ‘사회윤리적 입장’과 ‘교리신학적 입장’이 혼재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서울교회에서 열린 제37차 목회자신학세미나 강사로 나선 탁 교수는 “이단·사이비 종파에 대한 인식은 이 두 입장을 분명히 분리해야 한다.”면서 “안 그러면 장기적으로 교회 공동체 분열과 사회적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탁 교수는 약 석 달간 계속된 이번 세미나의 마지막 순서를 맡아 ‘이단·사이비 종파 문제’에 대해 강의했다. 여기서 그는 500여명의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국내 종파 현황 및 여호와의 증인,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일명 모르몬교)의 역사와 교리를 소개했다. 그는 강의에서 “여호와의 증인 병역 문제는 양심의 자유, 인권 등 사회윤리적 입장에서 옹호할 수 있다 하더라도 교리신학상 정통 개신교와 차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탁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어느 곳보다 많은 소수 종파들이 활동하고 있다. 본래 여러 교파가 각기 발전을 거듭한 미국 개신교의 전통을 전해 받은 것도 한 이유이지만, 식민지·전쟁 등 사회 혼란을 겪으며 작은 종파들이 수시로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런 작업은 더욱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그는 “사회윤리적 입장에서만 이런 종파를 다루고 인정하게 될 경우 기독교 자체의 신앙적 가치가 흔들리게 된다.”면서 “그렇게 되면 교회와 일반 비기독교 시민단체들과의 차별성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미나는 ‘다원사회 속에서 타종교와 이단·사이비 종파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주제로 지난 3월부터 이어졌다. 10여명의 강사들이 돌아가며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원불교 등 다른 종교와 종파에 대해 강의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글로벌 나눔 바이러스 2010] 지구촌 참사때마다 앞장… 교리 초월한 사랑실천

    [글로벌 나눔 바이러스 2010] 지구촌 참사때마다 앞장… 교리 초월한 사랑실천

    아이티 대지진이 났을 때 참혹한 현장으로 가장 먼저 날아간 사람들은 누구일까. 유엔 평화유지군이나 정부의 구호지원단일까. 아니다. 바로 종교인들이다. 이들은 교통편만 마련되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우선 혈혈단신 현장으로 떠난다. 재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는 빵과 물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먼저 상처 받고 지친 마음을 보듬어줄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종교는 교리를 불문하고 항상 글로벌 나눔의 가장 앞줄에 서 있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등 국내 주요 교단들은 각자 교단 차원에서 글로벌 나눔을 위한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의 신자들이 모아준 힘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의 글로벌 나눔 현장에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고 있다. 우선 천주교는 한국카리타스(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안명옥 주교)를 통해 해외 원조 및 복지, 국제연대 활동 역량을 집결하고 있다. 한국카리타스는 1985년부터 조금씩 활동을 하다 1992년 주교회의로부터 공식 해외원조 기구로 위임받으면서 본격 사업을 벌였다.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등 세계 각지에 515개 사업, 총 201억 9132만원(2008년 말 기준)을 지원했다. 한국카리타스는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활발한 나눔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사업을 위한 원조 금액도 전체 64%가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최근 아시아에 지진, 쓰나미 등 대형 자연재해가 많았기 때문이다. 카리타스는 자체적인 사업보다 지원이 필요한 현안이 발생할 때 심의를 거쳐 구호 활동을 펼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카리타스는 지진과 쓰나미, 사이클론, 홍수, 가뭄 등으로 고통받는 미얀마, 방글라데시, 인도 등에서 긴급구호활동을 펴는 한편 무료 병원, 학교 건립을 지원하고 있다. 이번 아이티와 칠레 지진 때도 전국적인 모금 활동을 벌여 40만 달러(약 4억 5000만원)를 구호 현장에 지원했다. 천주교의 글로벌 나눔 활동은 한국카리타스뿐 아니라 16개 교구와 본당, 수도회, 사도직 단체 등에서도 개별적으로 이뤄진다. 지난해 한국카리타스의 통계에 따르면 2008년 한 해 천주교 전체가 펼친 글로벌 나눔 규모는 100억 9249만원에 달했다고 한다. 이 중 60%가 각 성당 모금을 통해 신자들이 내놓은 후원금으로, 이는 천주교 내에 글로벌 나눔의 열기가 널리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불교는 다른 교단에 비해 글로벌 나눔 활동의 출발이 늦은 편이다. 조계종 차원에서는 공식적으로 공익법인 ‘아름다운동행’(이사장 자승 스님)을 세워 나눔 업무를 진행하고 있으나, 해외 원조 사업은 아직 미미한 단계다. 하지만 올해 아이티 지진 등을 계기로 국제긴급구호활동을 벌이며 나눔의 폭을 해외로까지 넓혀가고 있다. 조계종은 아이티 지진 직후 대한불교조계종의료구호단을 파견해 현장에서 의료 구호 활동을 펼쳤고, ‘아름다운동행’도 모금활동을 통해 총 10억 8000여만원을 아이티 현장에 지원했다. 박찬정 아름다운동행 사무국장은 “현재는 주로 국내 소외 계층과 다문화 가정 지원에 힘을 쏟고 있지만, 앞으로는 교계 단체 및 비정부기구(NGO) 지원을 통해 해외 원조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불교계는 재가 단체에서도 활발한 글로벌 나눔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산하 로터스월드(이사장 성관 스님) 등이 일찌감치 나눔 활동에 뛰어들었다. 로터스월드는 캄보디아에서 ‘아름다운 세상(BWC)’ 프로젝트를 벌여 학교를 짓고 현지 아이들의 자립을 위한 교육사업을 벌이는 한편, 의료 구호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한편 개신교는 교회별로 글로벌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어 통계를 잡기가 쉽지 않다. 최근 아이티 지진 이후에는 개신교 최대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힘을 합쳐 글로벌 나눔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 교회’라는 이름으로 약 150억원의 후원금을 모아 현지로 보냈다. 하지만 개신교 글로벌 나눔의 저력은 이런 교회 연합체나 개별 교회 활동으로만 다 말할 수 없다. 사실 개신교는 교단 차원의 활동보다 개신교 정신을 토대로 설립된 수많은 NGO단체가 바로 글로벌 나눔의 핵심이라 볼 수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지난 1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해외원조단체협의회 소속 단체 47개 중 전체 36.2%인 17개가 개신교 계통이었다. 반면 원불교는 3개(6.4%), 불교는 2개(4.2%), 천주교는 1개(2.1%)였다.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컴패션, 굿피플 등 세계적인 구호 NGO단체들도 모두 개신교 정신에 입각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중 6·25전쟁 고아의 양육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컴패션은 글로벌 나눔에 있어 한국의 위상 변화를 잘 보여주는 예다. 한국은 1993년 수혜국 지위를 벗어났고, 현재는 세계 네번째 규모의 지원국으로 탈바꿈했다. 컴패션은 수혜국 어린이와 지원국 후원자를 일대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양육을 지원한다. 한국컴패션은 지난해에 결연 어린이 7만명을 돌파했다. 나눔의 손을 뻗는 데는 교리의 경계도 없다. 교단별 글로벌 나눔 활동뿐 아니라, 국내의 종교단체들은 서로 합친 연합 단체를 통해 해외 원조에 나서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각 종단의 여성 수도자들이 종교의 벽을 허물고 모여 만든 삼소회(三笑會)다. 천주교 수녀, 불교 비구니 스님, 개신교 언님(여성 독신 목회자), 원불교 정녀(여자 교무) 들이 모인 삼소회는 올해부터 에티오피아 소녀·여성 돕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향후 3년 동안 10억원을 모아 염소 5만마리를 에티오피아 소녀 가정에 보낼 계획이다. 현재 전시회 등 각종 행사를 통해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동양철학, 그 속에서 길을 찾다] 2500년전 ‘토론의 달인’ 다 모였다

    [동양철학, 그 속에서 길을 찾다] 2500년전 ‘토론의 달인’ 다 모였다

    현대의 지식인들은 수천년 전 지식인의 고민, 갈등, 지혜의 길을 되밟는다. 또한 서구 문명은 동양 철학의 원류에서 또 다른 인류의 대안을 찾는다. 고전(古典)에 담긴 동양 사상이 ‘오래된 미래’로서 21세기에 다시 조명받고 있다. 물질 문명이 풍요로워질수록 상실되어지는 인간 존재의 본원을 꿰뚫을 수 있는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자아(自我)를 찾고 타자(他者)와 연대할 수 있는 답 또한 알려주기 때문이다. 동양과 철학을 다룬 책들을 모아봤다. 뭐라고 해야 할까. 요즘으로 치면 유시민, 노회찬, 진중권 등과도 같은 ‘토론의 달인’이라고 부르면 될까. 아니면 칼 마르크스, 링컨, 마오쩌둥, 고르바초프 등과 같은 ‘일찍이 변화를 꿈꾼 정치인’ 정도로 자리매김될까. 2500년도 넘게 훌쩍 뒤로 돌아간 춘추전국시대. 기원전 8세기부터 500년 남짓 동안 중국 대륙에서는 2000여 차례 전쟁이 벌어졌다. 크고 작은 열국이 많을 때는 100개에 이르기도 했으니 자고 일어나면 어느 나라가 없어지고 새로운 나라가 들어서기 일쑤인 시대였다. 계급 질서는 재편됐고, 철학자·이론가 등 새로운 질서를 꿈꾸는 지식인들의 공간은 그만큼 넓어졌다. 내로라하는 사상가들은 세상을 다스리는 철학, 제도는 물론 경제, 문화,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본원적 성정 등 여러 주제를 앞다퉈 논의한다. 바로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이다. ‘중국의 에라스무스’이자 중국 고전 대중화의 전도사인 이중톈(易中天·63) 샤먼(廈門)대학교 인문대학원 교수가 쓴 ‘백가쟁명’(심규호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 원제 先秦諸子百家爭鳴)은 춘추시대부터 전국시대에 걸친 300년 동안 위대한 사상가들이 벌인 사상과 학술, 경세 등에 대한 오랜 토론과 변론, 공격과 방어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21세기 중국은 물론, 아시아의 동양철학과 사상의 학술적 밑그림은 이때 거의 다 그려졌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전제정치의 차이와 장단점을 논했고, 반전과 평등·생명의 가치가 터져나왔고, 공동체가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이 처절한 토론·논의 속에서 형성됐다. 이 교수는 서양 문명의 가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 르네상스를 거치며 헬레니즘(그리스·로마의 인간중심 사고)과 헤브라이즘(기독교적 가치)으로 정리된다면, 동양 문명은 사상의 화려한 향연장이었던 백가쟁명에서 잉태됐다고 강조한다. 그는 특히 논쟁의 핵심에 있던 유가(儒家), 묵가(墨家), 도가(道家), 법가(法家)의 같고 다른 점, 장단점을 꼼꼼히 소개하고 있다. 논쟁의 대표선수들은 익히 잘 알고 있는 이들이다. 일단 유가의 에이스, 공자(孔子)다. 설명이 필요없다. 백가쟁명을 300년 동안 지속시킨 중심 토론자다. 이름은 구(丘).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 기원전 479년에 죽었다. 유가의 두 번째 대표선수 맹자(孟子)는 공자를 계승한 명실상부한 아성(亞聖)이다. 호방한 성품으로 세계와 인류에 대한 곧은 의협심이 온화한 성격의 공자와 대비되기도 한다. 이름은 가(軻). 기원전 372년에 태어나 기원전 289년에 죽었다. 공자의 건너편 자리에는 묵자(墨子)가 앉았다. 그는 노동하는 민중의 편에 서서 평등, 반전, 평화를 외쳤던 ‘인류 최초의 사회운동가’다. 의도적으로 공자의 이론에 숱한 펀치를 날려 비틀거리게 만든 당대의 호전적 토론 스타였다. 최근들어 그의 선각적 철학이 더욱 부각되며 지지자를 불려나가고 있다. 이름은 적(翟). 공자 이후에 활약했다. 생졸(生卒)은 기원전 468~기원전 376년으로 추정될 뿐이다. 유가의 이론을 공격한 대가로 맹자에게서 호되게 공격받는다. 양주(楊朱)는 노장(莊)에 가려 있었지만 도가(道家)의 1세대 대표선수이며 철학자로서 묵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열자(列子)’, ‘맹자’ 등에 그의 사상과 철학의 일부가 담겨져 있다. “털 한 올을 뽑아 천하가 이로워져도 주지 않겠다.”는 어록은 후대에 ‘일모불발(一毛不拔)’이라는 말로 몹시 인색하고 이기적인 내용인듯 희화화됐지만 도가 무위(無爲) 사상의 터를 닦았다. 법가 역시 맹자와 동시대 인물이던 상앙(商?·기원전 390~330)과 한비(韓非·기원전 280~233)를 내세워 한치의 물러섬 없이 치열하게 토론에 참가했다. 엄격한 법 적용을 강조했던 것이 부메랑이 되어 둘 다 쉰도 되기 전에 자신들이 만든 형벌에 죽고 만다. 2500년 전 토론의 사회자 역할을 맡은 이중톈 교수는 3세기에 걸친 논쟁을 다분히 실용적으로 접근하며 ‘발전적 계승’을 주장한다. 묵자의 겸애(兼愛) 사상과 평등 사상을 주 내용으로 삼고, 정치 철학으로서는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고 주권재민의 가치를 설파한 맹자를, 법제도는 만인이 평등함을 주장한 법가에서 골라서 따오자는 것이다. 727쪽의 두꺼운 책이지만 고리타분함과는 거리가 멀다. 소설 읽듯 다음 장이 궁금해질 정도로 쑥쑥 읽힌다. 2만 95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문화계 블로그] 자비·생명나눔의 불교 장기기증 왜 미미할까

    [문화계 블로그] 자비·생명나눔의 불교 장기기증 왜 미미할까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후 장기 기증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나눔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장기 기증 급증 속에서도 종교 간 온도차는 상당히 큰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교리와 실제 기증자 수의 불일치가 두드러진다. 교리상 장기 기증과 가장 가까운 불교는 정작 기증에 소극적이고, 거부감이 있을 법한 기독교는 오히려 기증 서약이 가장 많다. 왜일까. ●장기기증 등록자 80% 개신교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금껏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장기 기증 등록을 희망한 종교 신자 중 80%는 개신교도로 23만 4000여명에 이르렀다. 반면 불교신자는 11%, 천주교신자는 9%가 고작이었다. 천주교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해 자체 장기 기증 지원활동을 벌이는데 지난 한 해 3만여명이 새로 서약을 했다. 불교 역시 생명나눔실천본부가 있지만 지난해 서약자는 2020명에 그쳤다. 많은 신자 수에도 불구하고 불교계의 장기 기증이 턱없이 미미한 이유는 뭘까. 스님들은 “교리로 보면 사실 불교가 장기 기증을 가장 많이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석가모니 부처의 전생을 그린 전생담(前生譚)만 봐도 중생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이야기가 수없이 나온다. 얼마전 장기 기증을 서약한 혜국(전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스님은 “스님들의 몸은 누군가에게서 빌려와 쓰는 것으로 잘 돌려줘야 한다.”면서 “수계 때 의무적으로 기증 서약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교식 생각 지닌 불교신자 많아 그럼에도 신자들의 참여는 뜨뜻미지근하다. 실무자들은 ‘유교와의 습합(習合·사상이 절충됨)’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오랜 기간 습합 과정을 거친 한국 불교의 특성상 신자 중에는 불교식이 아닌 유교식 생각을 가진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일면(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스님은 “불교 교리로 보면 다른 생명을 위한 자비의 마음으로 기꺼이 장기 기증을 해야 하겠지만, 부모가 준 신체를 훼손할 수 없다는 유교식 발상을 가진 신자들이 종단에 많은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교단 소속감 부족에서 원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김윤성 한신대 종교학과 교수는 “조직 특성상 불교는 사회적 현안에 대해 체계적인 계몽과 활동이 쉽지 않다.”며 “교리상으로는 오히려 ‘육체 부활 사상’을 가진 기독교가 거부감을 가져야 하겠지만 기독교는 이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해 장기 기증에 대한 거부감을 없앴다.”고 풀이했다. 다른 종교에 비해 홍보가 부족하다는 실무적 문제점도 지적된다. 이에 생명나눔실천본부는 올해 혜국 스님을 시작으로 불교계 명사들의 장기 기증 서약을 받는 ‘장기기증 희망등록 릴레이 캠페인’을 벌인다. 이를 통해 장기 기증에 대한 안팎 홍보를 활성화하고, 불교신자들의 기증 참여도 활성화시킨다는 복안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경전이 아닌 인문학으로 읽는 성서이야기

    경전이 아닌 인문학으로 읽는 성서이야기

    인류 출판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무엇일까. 1930여개 언어로 출간됐으니 지구상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됐다고 볼 수 있다. 한 해 평균 4000만권이 팔려나가는 초대형 베스트셀러이자, 수 천년 동안 꾸준히 출간되는 최장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바로 성경(聖經)이다. ●서구의 역사·정치·문학 등 이해위한 필독서 그중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세 종교의 근본 경전이 구약성서다. 대략적으로 유대교도가 1700만명, 그리스도교도가 15억명, 이슬람교도가 10억명 정도 되니 세계 인구의 40%가 구약 성서의 가르침 아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종교적 믿음 아래 당연히 읽어야하는 경전인 셈이다. 허나 성경(聖經)을 기독교의 경전으로만 알고 외면하거나, 경전 자체만으로 읽는 것은 그 함의(含意)의 절반 이상을 놓치는 셈이다. 서구의 문화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으로 이뤄져있다. 그 중 헤브라이즘의 고갱이가 바로 구약성서에 있다. 오랜 시간을 거쳐 인류에 전해져온 모든 동·서 고전(古典)이 그러하듯 성경 역시 오늘의 문제, 내일의 비전을 연구, 탐구하도록 하는 역할을 떠맡고 있다. 이는 종교적 믿음을 떠나 서구의 역사, 정치, 윤리, 예술, 문학, 생활 습속 등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구약성서를 읽어야함을 의미한다. ‘하룻밤에 읽는 구약성서’(이쿠다 사토시 지음, 오근영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는 신학이나 종교학의 관점이 아닌 인문학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당대 역사 배경 영웅들 중심으로 풀어내 구약성서는 5권의 율법서, 12권의 역사서, 5권의 시가(詩歌), 5권의 대예언서, 12권의 소예언서 등 39권으로 구성돼있다. 이 책은 당대의 역사를 배경으로 인물들과 영웅들을 중심으로 구약성서를 풀어나간다. 히브리어 성서는 이를 5권의 율법서(토라·모세 5경), 8권의 예언서(네비임), 시편, 욥기 등 기타 11권(케스빔) 등 24권으로 정리했다. 이 책의 미덕은 사람 냄새 나는 성서로 이해를 높였다는 점이다. 성서 속 짧은 한 두 줄로만 남은 박제화된 인물이 아닌 풍성한 스토리가 함께 설명된다. 각 장 끄트머리에는 ‘성서메모’를 남겨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 재미있는 성서 읽기 상식이 덧붙여졌다. 복잡한 가계를 정리하는 계보도, 사건을 정리한 도표, 역사적 사건을 생생히 보여주는 성화 등이 이해를 돕는다. ●풍성한 스토리·성화·도표로 이해 도와 또한 구약 시대의 역사적, 정치적, 지리적 배경 등을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성경이 인문학 서적의 반열에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저자 이쿠다 사토시 역시 종교인의 입장이 아닌, 과학자로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는 일본 도쿄대 의대를 졸업하고, 분자생물학을 연구한 의학박사로서 ‘유전자 기술과 클론’, ‘암과 DNA’ 등 유전자 연구 분야에 주요 저서를 갖고 있는 과학자다. ‘구약성서’와 함께 같은 저자가 쓴 ‘하룻밤에 읽는 신약성서’도 나왔다. 막달라 마리아가 전직 매춘부로 잘못 해석됐음을 지적하며 막달라 마리아를 명예회복시켜주고, 배신자로 악명높은 가리옷 유다를 새롭게 바라본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은 예수는, 유다의 배신 행위가 있어서 가능하다는 역설적 해석이다. 두 책 모두 제목과 달리 하룻밤에 읽어버리기에는 약간 버겁거나 아깝다. 꼭꼭 씹어서 읽을만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 “公心·信心·願力으로 투명성 높이겠다”

    “공심(公心), 신심(信心), 원력(願力)을 가지고 종단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겠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종단 운영의 투명성 제고를 강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30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취임 이후 기자들과 처음 만난 스님은 “최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발표한 종교신뢰도 조사에서 불교가 꼴찌를 한 것을 종단 스님들은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제33대 총무원은 ‘투명성’을 제1의 모토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복지 활동 적극 펼칠 계획” 스님은 “6개월 전부터 종단의 원로·중진 스님들을 찾아뵈었더니 공심·신심·원력을 가장 많이 강조했다.”면서 “이를 실천하면 종단 투명성 제고는 물론 종교 신뢰도 1위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심·원심·원력의 실천은 사소한 행동에서부터 나온다.”고 덧붙였다. 종단 신뢰도 제고와 공심 등의 실천을 위해 스님이 특히 강조한 것은 사회복지다. 취임 이후 꾸준히 ‘동체자비(同體慈悲·서로를 한몸으로 여기는 상태에서 나오는 자비)’ 실천을 얘기한 스님은 “우리 사회에 가장 어려운 현장을 보겠다.”면서 취임 직후 서울 용산참사 현장을 찾기도 했다. 스님은 “최근 천주교 요셉의원을 보니 우리 종단에서도 할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앞으로 종단의 복지재단을 통해 사회복지 활동을 적극 펼칠 계획”이라고 했다. 스님은 종단 사업뿐 아니라 스스로도 한 달에 두 번씩 자원봉사를 나가려 노력하는 등 복지사업에 열심이다. ●종단 운영 로드맵 새해 초 발표 스님은 이날 지난 총무원과 현 정부 간의 갈등 관계에 대한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전 총무원과 정부의 관계는 꼭 나쁘다고 하기보다는 그간 산재해 있던 불만이 한꺼번에 분출되며 오히려 서로 교감을 이룬 계기로 볼 수 있다.”면서 “그간 불거진 종교 편향은 정부 차원이 아니라 공직자 개인의 문제로 이해하겠다.”고 했다. 지난 10월22일 실시된 선거에서 91.5%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된 자승 스님은 이날 총무원 각 국실의 업무보고를 모두 받았다. 스님은 이를 바탕으로 해외교구 설치, 복지 사업 등 4년간의 구체적인 종단 운영 로드맵을 작성해 새해 초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다윈 ‘종의 기원’ 출간 1859년 세계문명 대혁신의 해

    인생을 회고하다 보면 사람들은 환골탈태라고 할 만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이전과 달리 사물의 이치가 머릿속으로 속속 들어오고, 날밤을 새며 활동해도 육체적으로 끄떡없다. 우연하게도 주변 환경도 대단히 우호적이라 의도하는 바를 다 이룰 수 있는 상황 말이다. 사람에 따라서 그 시기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 또는 직장 초년병 시절 등에도 나타날 수 있다. 그 시기를 통과한 사람들은 이전의 자신과 비교할 수가 없다. 점진적 발전이 아닌 도약과 비약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인생의 한 시점에서도 그렇듯 인류의 역사에는 환골탈태라고 부를 만한 비약적인 발전의 시점들이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철학과 과학의 발전과 15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 16세기 초 대항해의 시대, 18세기 프랑스 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 그리고 19세기 중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출간 등을 손꼽을 수 있겠다. 이러한 발전들은 지구를 점점 공동의 가치와 방법, 개념들로 하나로 묶으면서 동떨어져 있던 세계를 점점 가깝게 하나로 묶어나갔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발전이 서양정치·사회·경제 등에 미친 영향 ‘다윈은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을까’(피터 매시니스 지음, 석기용 옮김, 부키 펴냄)는 1859년이란 시점을 고정해놓고, 서양 과학기술의 발전 수준과 그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정치·사회·경제·문화에 끼친 영향을 시시콜콜 다룬 책이다. 동양에서 종의 기원은 생물학적으로 인류가 진화됐다는 과학적 의미로 한정되지만, 서양에서 종의 기원은 기독교 사회의 붕괴를 가져오는 것으로 그 파장은 과학에 한정되지 않았다. 유럽에서 경제학이 급속히 확산되고 발전했던 이유로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믿음의 체계를 잃어버린 서양인들이 이를 대체할 학문과 철학, 윤리의식으로서 경제학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종의 기원이 나오기 전까지 서양에서는 인류의 역사가 6000년에 불과하다고 알고 있었다. 구약성서에 나와 있는 선지자들의 나이를 다 합쳐서 만들어낸, 비교적 과학적(?)인 가공의 역사다. 그러나 종의 기원이 나올 무렵 공룡의 뼈 등 화석을 발굴해내던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역사를 46억년 전으로 끌고 올라간다. 지질학은 진화론과 맞물려 지구와 인간, 신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호주 시드니에서 활동하는 과학 저술가인 저자 피터 매시니스는 종의 기원 발간을, 자리표는 있지만 자리 배치도를 마련해 놓지 않은 엉성한 결혼피로연에서 몇몇 하객이 먼저 자리를 차지함에 따라 나머지 하객들이 쉽게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뒤에 피로연장을 찾는 하객들은 미리 자리 잡은 배우자나 동료, 친구들의 손짓을 따라가면 쉽게 자리를 찾고, 자리를 채우는 속도는 점차 빨라진다는 것이다. 즉 종의 기원의 발간은 지금까지 자리를 못 찾고 우왕좌왕하던 각종 과학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고, 통신과 교통, 무역, 지성, 언론 등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발전을 폭포처럼 연쇄적으로 이끌어낸 해라고 말한다. 물론 종의 기원이 그 일을 이끌어내기도 했지만, 그 책의 발간 역시 시대적 산물이자 변화의 증상이라는 지적을 저자는 잊지 않는다. ●교통·통신·무역·언론 등 연쇄발전 그럼 1859년에는 또는 1859년을 전후로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1859년 4월에 수에즈 운하가 착공됐고, 그 해 한해 동안 많은 전신선이 부설됐다. 속도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존 브라운이 노예제 폐지운동을 벌이며 무력행동을 하다가 교수대에서 처형을 당했다. 그해 에이브러햄 링컨은 대통령 캠페인에 들어갔고, 1861년 미국의 대통령이 된 링컨은 노예제 폐지를 두고 전쟁을 벌인다. 루이 파스퇴르는 정밀한 실험을 통해 생명체는 자연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세균설’이 등장할 무대를 만들어줬다. 1854년에는 영국 존 스노가 콜레라 창궐지역을 지도로 찍어내 ‘물속의 무언가’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전염병 확산의 명확한 패턴을 밝혀주었다. 이제 과학은 분화돼 과학자들도 전공이 아니면 모르게 됐다. 도시에는 가스등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최초의 전등이 실험됐다. 미국 에드윈 드레이크는 최초의 유정을 시추하기도 했다. 이산화탄소의 증가에 따른 지구온난화를 예측한 스반테 아레니우스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그해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독일로 시집간 딸이 베를린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몇 분 만에 전보로 전해들었고, 1859년에 태어난 그 손자는 빌헬름 2세로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을 통치했다. 빌헬름 2세는 당대의 기술발전을 통해 가공할 만한 군비개량을 이뤄나가기도 했다. 동인도에서 구타페르카라는 고무와 비슷한 형질의 신물질이 1859년에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해저케이블의 피복으로, 충치치료제로, 소방호스의 피복 등으로 널리 이용됐다. 알루미늄은 당시 금보다 더 비싼 신물질이었다.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됐다. 또 노동계급들의 열악한 노동여건의 개선과 여가의 확보 등은 인쇄매체 등 읽을거리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면서 면직물 넝마가 아니라 목재 펄프로 종이를 만들기도 한다. 미국과 호주에서는 골드러시가 있고, 영국 런던에서 발행된 신문은 해저케이블 등의 발달로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서도 2주 만에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세계는 좁아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 참! 1857년에서 1859년 사이에 인플루엔자가 크게 유행해 태평양 지역을 강타한 것도 잊지 말자. 1859년은 그저 150년 전의 어느 한 해가 아니었다. 그리고 1859년과 닮은꼴처럼 보이는 2009년도 그저 그렇게 평범한 한 해가 아니었다고 나중에 술회할지도 모르겠다. 1만 6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원불교는 정보사회 걸맞은 애니콜사상”

    “원불교는 정보사회 걸맞은 애니콜사상”

    “원불교는 세계 보편원리를 만들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겁니다.” 원불교의 중앙 행정수반인 이성택(66) 교정원장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새달 9일로 3년 임기를 마치고 원광학원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이 원장은 지난 26일 교단이 운영하는 실버타운인 서울 용산 하이윈빌리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원불교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생활불교 표방… 시간 장소 구애 안받아 그는 “한국 사회는 불교·유교·기독교 등 각 문화의 핵심을 정착시켜 이를 바탕으로 보편윤리를 만들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 중 앞으로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원불교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원불교는 충돌 가능성을 내재한 교조 신앙이 아니라 진리 자체를 모시기에 문화간 화합이 쉽다는 설명이었다. 원불교는 1916년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가 창종한 민족종교. 여기서는 교조나 부처를 모시는 게 아니라 우주의 근본원리를 도상화한 ‘일원상’(一圓相·○모양)을 신앙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있다. 또 원불교는 ‘생활불교’를 표방해 수행에도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않는다. 이를 두고 이 원장은 “원불교는 지식정보사회에 걸맞은 ‘애니콜(Anycall)’ 사상”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을 말하는 원불교는 언제·어디서든 수행이 가능합니다. 또 모든 것이 부처라는 생각에서 나온 상생(相生) 이념은 물질만 윤택해지고 정신이 아둔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그는 이 애니콜의 콜(call)을 “사람을 부르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모든 부처 중 제일은 사람 이며, 지식정보사회에서도 인간 존중의 사상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는 이 원장은 원불교의 미래도 바로 사람에 달렸다고 한다. 그는 “원불교는 100년이란 짧은 역사에서 아직 초창기에 있는 종교지만, 이념적 바탕은 불교·유교·기독교를 나란히 할 만큼 단단히 자리 잡았다.”면서 “이제는 사람을 키워야 할 때”라고 했다. ●새달 9일 원광학교 이사장으로 자리 옮겨 그가 교정원을 떠나 새로 맡게 될 원광학원 이사장이 바로 그런 자리. 그는 아직 아무런 업무 파악이 안 된 상태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대학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법들을 여러 가지로 고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며 이 원장은 정부에 대한 쓴소리도 꺼냈다. 그는 “정권교체 이후 특히 남북 분위기 변화가 가장 아쉽다.”면서 “최근 물밑 접촉 등으로 이 정부도 새로운 방향을 잡아 가는 것 같다.”고 남북화해 무드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그러면서 원불교도 10여년 전부터 평양에 국수공장을 세우고 밀가루를 생산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절대 감사가 우리사회 위한 상생 실천 오래전부터 ‘절대 감사’를 좌우명으로 살고 있는 이 원장. ‘절대 감사’가 우리 사회를 위한 ‘상생의 실천’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한다. “잘해 주면 감사하는 게 당연하지요.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비운 뒤에 찾아오는 그런 감사가 바로 상생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한편 이 원장의 후임 교정원장으로는 중앙종도훈련원 김주원 원장으로 결정됐다. 원불교 교정원장은 교단 최고 지도자인 종법사가 지명하고 의회 격인 수위단회(首位團會)에서 이를 추대해 결정한다. 글 사진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존엄사’ →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용어 통일… 사회적 합의 9개항 첫 도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첫번째 사회적 합의가 도출됐다. 그러나 일부 논란의 여지를 남긴 데다 보건당국이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관련 법안 제정 논의는 빨라야 2~3개월 이후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지난 10일부터 법조·종교·의료계 및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 전문가 22명과 3차례의 토론을 거쳐 9개항의 연명치료 중단 기본원칙을 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연구원은 우선 ▲회생 가능성 없는 말기 환자의 경우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가능 ▲안락사 및 의사의 협력에 의한 자살은 불허 ▲사회보장제도 강화, 호스피스-완화의료제도에 대한 지원 등 사회·경제적 지원 확대라는 3가지 기본원칙을 내놨다. 논란이 있었던 공식 용어는 ‘존엄사’ 대신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으로 통일했다. ‘의사의 조력자살’을 의미할 수 있는 등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해서는 ▲의사는 말기환자에게 완화의료 선택과 사전의료지시서에 대해 설명할 것 ▲영양·수액공급과 통증조절 등 기본 의료행위는 유지할 것 ▲환자가 사전의료지시서를 통해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에 대한 거부의사를 밝힐 경우 중단할 것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외 연명치료에 대해서도 사전의료지시서를 통해 본인의사를 피력하게 할 것 등 4가지 사항을 규정했다. 다만 김할머니와 같이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식물상태 환자를 치료중단 대상에 포함시킬지 여부와 의식이 없는 환자 의사를 추정해서 확인하는 절차 등은 의견이 엇갈려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연구원은 다음달 말까지 최종보고서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이번 합의도출에도 불구하고 세부사항에 대해 사회적 합의절차가 더 필요하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사회적 논란이 많은 만큼 국민 의견을 더 많이 취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재희 장관은 “제출된 의견을 토대로 공청회 등을 거쳐 충분히 논의해 여건이 성숙해지면 법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9개항의 합의안에 대해 45개 기관에 의견을 요청한 결과 대한변호사협회, 대한의학회,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한국의료법학회 등 12개 기관에서 찬성의견을 밝혔다. 가톨릭단체와 장애인단체, 시민사회단체 등은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기업 살아남으려면 유교윤리로 무장해야”

    “기업 살아남으려면 유교윤리로 무장해야”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업은 유교 윤리로 무장해야 합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의 에드워드 로마르(61·비교경영윤리) 교수는 지난달 28일 두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지난달 29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에서 열리는 국제하계대학(서머스쿨)에서 ‘세계화의 윤리’를 주제로 강의하기 위해서다. 16년 동안 IBM사의 마케팅 담당자였던 로마르 교수는 동양윤리사상과 경영학의 접목을 주장해왔다. ●관계지향적 유교윤리가 조직 화합 일궈 로메르 교수는 14일 성대 명륜캠퍼스 국제관에서 기자와 만나 “현대기업들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교적 윤리관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마르 교수는 유교철학이 가진 특유의 관계 지향성에 주목하면서 이 때문에 유학사상이 기업윤리로 적합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자어 중 부모(父母), 형제(兄弟) 등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유독 많은데 이는 동양인들이 인간관계를 중시한다는 증거”라면서 “관계지향적인 유교윤리를 기업의 도덕규범으로 활용할 경우 개인주의적 성향을 극복할 수 있고 조직 화합을 일궈낼 수 있다.”고 말했다. 기독교윤리를 비롯한 서양철학은 절대자의 기준에서 선악을 구분해 악을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관계를 중시하는 유교 윤리관은 개인을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지 않아 개인과 조직 갈등을 쉽게 풀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 로마르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학습을 통한 지식습득을 강조하고 있는 유교적 가치관에도 주목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논어구절을 인용한 그는 “기업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선 구성원들이 직무지식과 도덕지식을 끊임없이 재교육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일했던 IBM사의 3대 지향점이 ‘지식’, ‘존경’, ‘인간에 대한 서비스’였다고 소개하면서 “서양기업이지만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조직을 운영하다보니 조직원간의 융화가 잘 이뤄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람에 대한 탐구없이 좋은 경영자 못돼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 학생들이 실용학문에만 관심을 쏟고 인문학은 쓸모없는 학문이라고 여긴다고 들어 매우 안타깝다.”면서 “‘경영은 인간에 관한 것’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사람에 대한 탐구 없이는 좋은 경영자가 될 수 없다.”고 충고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행방불명 소동’ 美주지사 밀월여행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워싱턴 정가에 잇단 섹스 스캔들로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닷새 동안 행방불명됐던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마크 샌퍼드(49) 주지사가 애인과 함께 아르헨티나에 밀월여행을 다녀 왔다며 혼외정사를 시인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 때 탄핵을 주도하며 윤리적 강경론자로 불렸던 네바다주의 존 엔자인 상원의원이 혼외정사 문제로 정치위원회 위원장직을 사퇴한 지 일주일 만이다. 보수적이고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샌퍼드 주지사는 2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애팔래치아 하이킹’에 갔다고 측근에게 말한 것은 거짓이었다고 시인하고, 혼외정사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지난 8년 동안 부인 몰래 이 여성과 혼외정사를 가져 왔다면서, 부인과 네 아들, 자신의 참모진과 지역주민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부인이 혼외정사 사실을 몇달 전에 알게 됐다며 현재 별거 중이라고 덧붙였다. 샌퍼드 주지사는 이날 자신이 맡고 있는 공화당 주지사협의회 의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지사직은 계속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샌퍼드 주지사는 엔자인 상원의원과 마찬가지로 오는 2012년 미 대선의 공화당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히던 인물로 이번 섹스 스캔들로 대통령의 꿈은 날아가게 됐다. 샌퍼드 주지사는 20분 동안 자신의 혼외정사 사실 등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 놓았으며, 간간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는 지난 19일부터 휴대전화를 끈 채 사무실이나 집, 가까운 측근들과 연락을 끊어 버렸고, 주 의회 지도자들은 주지사 권한을 잠정적으로 부지사에게 이양하는 방안까지 논의했다. CNN 등 미 언론들은 샌퍼드 주지사가 애인과 아르헨티나에 갈 때 주민들 세금을 썼는지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그럴 경우 주지사직 유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엔자인 파문’에 이어 ‘샌퍼드 파문’까지 터지면서 지난해 대선과 총선에서 패배한 공화당의 재건 노력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더욱이 잇단 성추문 파문은 ‘가족의 가치’를 최우선 순위로 둬 왔던 공화당의 정책 노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회의를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k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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