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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교 확산 전 건립”…고대 기독교 수도원, UAE서 발견

    “이슬람교 확산 전 건립”…고대 기독교 수도원, UAE서 발견

    이슬람교가 중동 아라비아반도로 퍼지기 전 지어진 기독교 유적이 아랍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발견됐다. AP 통신 등 외신의 3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7개 토후국 중 하나인 움 알쿠와인에 속하는 시니야섬에서 초기 기독교 수도원 터가 발견됐다. 섬은 UAE의 또 다른 토후국인 두바이에서 동북쪽으로 약 50㎞ 떨어져 있다. 고고학자들은 수도원의 기초에서 발견한 표본의 탄소 연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수도원의 건립 시기는 서기 534년에서 656년 사이로 나타났다. 최소 1366년 전에서 최고 1488년 전 사이 수도원이 지어졌다는 뜻이다. 이슬람교는 지금으로부터 1392년 전인 서기 630년 예언자 무함마드의 메카 정복 이후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해당 수도원이 이슬람교 이전에 지어졌으나, 현지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버려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수도원의 구조는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원내 단일 통로 형태의 교회에서 기도했음을 시사한다. 내부 방에는 세례반(세례대)이 있고 성찬식을 위한 제병(빵)을 굽는 오븐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당에는 성찬식 포도주를 위한 제단 등도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수도원 옆에는 4개의 방이 있는 분리된 건물 잔해도 남아 있는데, 이 건물은 당시 수도원장의 집으로 추정된다. 이들 건물이 안뜰을 둘러싸고 있었다고 고고학자들은 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기독교 수도원이 발견된 사례는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수도원은 1990년대 아랍에미리트 최대 토후국인 아부다비의 바니야스섬에서 발견됐다. 처음 발견된 수도원 역시 이번 수도원과 비슷한 5~6세기쯤 만들어졌다.조사에 참여한 티머시 파워 아랍에미리트대 고고학과 부교수는 “대규모 수도원이 있었다는 점은 이 지역에 아주 오래 전부터 번성한 도시가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추가 발굴 작업을 통해 모래 속에 숨겨진 비밀이 더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고학자들은 아랍에미리트 외에도 바레인과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비슷한 수도원들을 발견해 왔다. 역사가들은 초기 기독교 수도원들이 페르시아만을 따라 현재의 오만 해안과 인도까지 퍼져나갔다고 보고 있다.
  • [서울광장] 부석사 안양루에서 이태원을 바라보며/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부석사 안양루에서 이태원을 바라보며/서동철 논설위원

    나이를 먹어 가면서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된다. 불교문화유산에 흥미를 느끼면서 불교 자체에 대한 호기심도 커져 간다. 그런데 근원을 조금씩 배워 가면서 종교의 본질은 서로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섣부른 결론도 내리게 된다. 내가 아는 종교 자체가 몇 개 되지도 않으니 이런 일반화는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불교와 기독교부터가 너무나도 닮아 있는 종교인 것도 사실이다. 불교는 교리의 상당 줄기를 기독교로부터 흡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불교가 기독교보다 시대가 앞선 종교이니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실 분들이 있겠다. 하지만 석가모니시대 불교는, 이 역시 필자가 그 본질을 알 리 없지만 깨달음의 철학이었다. 그런데 당시나 지금이나 깨닫기는커녕 깨달음 근처에 가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산 아래 중생은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 가기도 벅찬데 산 위에서는 나홀로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면 오늘날에도 설득력을 갖기는 어렵다. 지금보다 훨씬 혹독했을 고대 인도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불교가 고달픈 중생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종교로 일종의 다양성을 꾀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세계사 교과서의 기억을 되살리자면 인도의 서북부, 파키스탄 페샤와르 일대는 BC 326년 알렉산더 대왕이 점령한 이후 300년 남짓 그리스 왕국이 지배했다. 그러는 사이 그리스문화와 동방문화가 융합해 헬레니즘문명이 번성하게 된다. 그 틈바구니에서 불상(佛像)이 태어났다. 이전까지 부처의 형상을 새기는 것은 부처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당연히 그리스의 신상 조각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 지역의 옛이름이 간다라다. 그리스문화와 인도문화의 융합이 눈에 보이는 것에 그쳤을 리는 만무하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양상으로 발전한 것은 사상과 이념의 융합이 먼저 확고하게 이루어졌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알렉산더의 간다라 통치는 그리스에서 인도를 잇는 문화의 고속도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중동에서 번성한 유일신 종교도 당연히 간다라 지역에 퍼졌을 것이고, 그 핵심이 기독교계였다는 것이 필자의 추측이다. 불상의 태동은 1세기다. 불교가 이때 기독교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바로 정토신앙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토란 번뇌가 없어 청정한 이상세계라는데 한마디로 극락이다. 불교의 극락은 갖가지 불교적 수사를 덜어내면 그 자체로 기독교의 천국이다. 성심을 다해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아미타불은 예수그리스도와 닮은꼴이다. 사랑으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구한다는 관음보살도 성모마리아가 모델일 것만 같다. 무엇이 무엇에서 배웠다는 필자의 주장은 착각이더라도 이런 게 사람을 살리는 종교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생각을 처음 떠올린 것은 영주 부석사 안양루가 보물로 지정됐다는 얼마 전의 짤막한 뉴스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며칠 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었다. 일찍이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은 부석사를 두고 ‘그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했다. 안양루는 무량수전과 함께 ‘희한한 아름다움’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안양(安養)이란 극락의 다른 이름이다. 아미타불이 좌정해 계시는 무량수전이 극락이라면, 안양루는 극락으로 들어서는 입구가 아닐 수 없다. ‘당신들은 잘못이 없습니다’라고 적은 분향소 글귀가 생각난다. 지금 이태원 희생자들은 극락, 곧 천국에서 안식하고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사고 원인은 냉정하게 가리고 책임은 철저하게 물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 아귀다툼으로 번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아귀는 불교적 개념이지만, 그런 다툼이 벌어지는 곳은 기독교에서도 똑같이 지옥이다.
  • 종교계도 추모 물결 “아픔 나누기 위한 모든 노력 함께하겠다”

    종교계도 추모 물결 “아픔 나누기 위한 모든 노력 함께하겠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각계에서 추모가 이어지는 가운데 종교계에서도 고인과 유족들을 위로하는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31일 유가족에게 10억원의 위로금을 전하기로 한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담임목사는 “성경의 말씀처럼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울며 고통 중에 있는 분들을 위로하고자 우리의 할 바를 다할 것”이라며 “한국 교회가 이 일에 함께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전날 발표한 메시지에서 “우리 사회가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은 청년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고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이 되도록 노력하는 데 전략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전한 바 있다. 한국교회총연합회 전임 회장인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는 이날 서울광장 합동분향소를 찾아 “꽃잎은 져도 향기는 지지 않길 기도합니다”라며 위로의 말을 남겼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전날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라며 “한국교회는 상처 입은 모든 이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번 참사로 희생된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라고 전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하느님의 자비에 맡겨 드립니다. 또한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를 드리며, 아울러 부상자들의 조속한 쾌유와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발표했다. 서울대교구 정순택 대주교는 “이번 참사로 생명을 잃은 모든 희생자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하며 그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라며 “모든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더 이상 이런 비극적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라고 애도 메시지를 전했다.불교계에서도 추모가 이어졌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전날 “뜻밖의 사고로 생을 달리한 꽃다운 영가님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라며 고인들을 위로했다. 조계종은 “하늘 위에 하늘 아래 생명보다 존귀한 가치는 없습니다”라며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을 나누기 위한 모든 노력을 함께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장 호명 스님도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부상당한 분들의 건강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불보살님 전에 기원하며 유가족 여러분께도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라며 “종단 차원에서 희생자 유가족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며, 부상자를 포함한 그분들의 상처가 하루빨리 치유 되도록 기도 발원하겠습니다”라고 전했다. 대한불교천태종 총무원장 무원 스님도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라며 “대한불교천태종은 우리 사회에 안전과 상생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더욱 매진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고인을 위로한 원불교 교정원장 나상호 교무는 “정치권도 모든 정쟁을 멈추고 이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합력해 줄 것을 촉구합니다”라며 “원불교는 교단의 모든 역량을 다해 희생자들의 해탈 천도를 위한 기도와 유가족을 향한 애도와 지원의 손길을 거두지 않고 그들과 함께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이날 “서울 중심가에서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이번 참사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사고였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하며 특히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축제를 즐기려던 젊은이들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참담함을 금할 길 없습니다”라며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7대 종교지도자들은 이번 참사의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유가족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신속한 사태 수습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전했다.
  • 진보 대법원 뒤집은 닉슨… 2년 6개월간 대법원장·대법관 3명 임명 [이상돈 명예교수의 지금의 미국 알려면 1970년대 읽어라]

    진보 대법원 뒤집은 닉슨… 2년 6개월간 대법원장·대법관 3명 임명 [이상돈 명예교수의 지금의 미국 알려면 1970년대 읽어라]

    진보, 美 가치·법질서 훼손 인식 닉슨 ‘엄격한 법해석’ 대선 공약 친분 있던 버거 대법원장에 지명보수 4인·중도 2인·진보 3인 구성 ‘닉슨 대법원’ 생각보다 진보 성향 백인·흑인 스쿨버스 함께 등하교 “사형제도 잔혹·자의적” 위헌 판결 논란의 ‘낙태 자유화’ 7대2로 통과1968년 대선을 앞두고 리처드 닉슨은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헌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법률가를 대법관으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했다. 1953년에 대법원장이 된 얼 워런(1891~1974)이 이끄는 대법원은 매사에 진보적이었다. 워런 대법원은 흑백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형사피의자와 피고인의 권리를 두텁게 보장했다. 선거구 인구 불평등을 위헌으로 판시해서 미국 사회에 큰 변혁을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닉슨을 위시한 보수 정치인과 법률가들은 진보적 대법원이 미국의 전통적 가치와 법질서를 훼손한다고 보았다.●진보 성향 에이브 포터스 대법관 사임 1968년 3월 31일 존슨 대통령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워런 대법원장은 존슨이 후임 대법원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6월 26일, 존슨은 에이브 포터스(1910~1982) 대법관을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예일 로스쿨을 나온 유대인인 포터스는 존슨의 친구로 1965년에 대법관으로 임명됐는데, 모든 사안에 대해 진보적이었다. 워런 대법원장은 포터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했다. 이에 대해 공화당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러던 중 포터스가 고액 보수를 받고 강연을 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포터스는 존슨에게 지명 철회를 요청했고, 존슨은 지명을 철회했다. 이렇게 해서 차기 대법원장은 다음 대통령이 임명하게 됐다. 그해 11월 대선에서 닉슨이 당선됐다. 1969년 5월 라이프지(誌)가 포터스 대법관이 변호사 시절부터 알던 금융계 인사로부터 매년 2만 달러씩 자문비를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폭로했다. 법무부가 조사를 하겠다고 나서는 등 파문이 커지자 워런 대법원장은 포터스에게 사임을 권했다. 5월 19일 포터스는 사표를 제출하고 대법원을 떠났다. 상심한 워런 대법원장도 은퇴를 표명했다. 닉슨 대통령은 대법원장뿐만 아니라 대법관 1인을 추가로 임명할 수 있게 됐다.닉슨 대통령은 워런 버거(1907~1995) 컬럼비아 지구(DC) 연방항소법원장을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버거는 상원 인준을 거쳐서 그해 6월 23일 취임선서를 했다. 미네소타 출신인 버거는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법무차관보를 지내서 닉슨과 아는 사이였다. 닉슨은 포터스의 후임으로 남부 출신 보수 법률가를 임명하고자 했다. 닉슨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인 클레멘츠 헤인스워스 제4연방항소법원장을 지명했으나 과거의 인종차별적 발언 등으로 상원에서 45대55로 인준이 부결됐다. 이에 닉슨은 플로리다 출신인 제5연방항소법원 판사 해럴드 카스웰을 지명했으나 그 역시 인종차별 성향임이 드러나서 상원에서 45대51로 인준이 부결됐다. 닉슨은 남부 출신 대법관 지명을 포기하고 버거 대법원장이 추천한 해리 블랙먼(1908~1999) 제4항소법원 판사를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1970년 6월 상원은 미네소타 출신으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블랙먼을 94대0으로 통과시켰다. 1971년 9월 휴고 블랙(1886~1971) 대법관과 존 할런(1899~1971) 대법관이 건강상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 블랙은 30년 넘도록 진보적 판결을 주도해 온 대법관이었고, 할런은 법률 논리가 탁월한 보수 대법관이었다. 닉슨은 대법관 2명을 또 임명할 수 있게 됐다. 닉슨 대통령은 버지니아 출신으로 미국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루이스 파월(1907~1998)과 법무부 차관보이던 윌리엄 렌퀴스트(1924~2005)를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렌퀴스트는 대법관 후보군을 관리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는데, 그가 적절한 대법관 후보를 찾지 못하자 닉슨 대통령이 그를 대법관으로 지명한 것이다. 파월에 대한 인준은 89대1로 무난하게 상원을 통과했으나 렌퀴스트에 대한 인준은 68대26으로 힘들게 통과했다. 두 사람은 1972년 1월 7일에 취임 선서를 했다. 불과 2년 반 동안 닉슨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3명을 임명하는 기록을 세웠다. 닉슨은 자신이 대법원을 보수 4인, 중도 2인, 진보 3인으로 바꾸었다고 생각했고 언론은 새로 구성된 대법원을 ‘닉슨 대법원’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렇게 구성된 대법원은 닉슨이 기대한 만큼 보수적이지 않았다. 1971년 4월 대법원은 스쿨버스로 학생들을 멀리 통학시켜서라도 백인 학생과 흑인 학생을 통합시켜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많은 백인 학생들이 멀리 떨어진 흑인 학생이 많은 학교로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게 돼서 백인 학부모들의 강력한 저항을 초래했다. 닉슨은 이 문제에 연방법원이 개입하는 데 반대했으나 버거 대법원장은 대법관 전원 판결로 닉슨의 기대를 저버렸다. 1971년 6월 30일 대법원은 6대3 판결로 미국 정부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기밀문서로 분류된 펜타곤 페이퍼를 게재하는 것을 금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버거 대법원장과 블랙먼 대법관 그리고 할런 대법관은 닉슨의 입장을 지지해서 반대 의견을 냈다. 1972년 6월 대법원은 5대4 판결로 사형에 대해 잔혹한 형벌이며 자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이유로 위헌으로 판시했다. 버거 대법원장과 블랙먼, 파월, 렌퀴스트 대법관이 반대 의견을 냈다. 이 판결로 미국 전역에서 사형 집행이 중지됐고 사형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주(州)는 형법을 개정해서 사형 판결 요건을 엄격히 정해야만 했다.●미국을 분열시킨 ‘낙태 자유화 ’판결 1960년대 들어 여권주의자들은 임신은 여성 스스로 판단할 문제라며 원치 않는 출산을 중단시킬 권리를 요구했다. 1970년 뉴욕주가 낙태 요건을 대폭 완화한 법률을 제정했다. 1970년대 초까지 뉴욕, 워싱턴 등 4개 주가 임신 초기의 낙태를 허용해 낙태를 금지하는 주에 사는 여성도 낙태를 허용하는 주에 가서 낙태를 할 수 있게 됐다. 낙태 자유화를 요구하는 여성들은 낙태금지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소송을 연방법원에 제기해서 대법원이 이 문제를 다루게 됐다. 1973년 1월 22일 대법원은 낙태금지법이 헌법이 보장하는 여성의 사생활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결했다(로 대 웨이드 판결). 대법원은 7대2로 판결을 내렸는데, 닉슨이 임명한 블랙먼 대법관이 판결문을 썼고, 바이런 화이트 대법관과 렌퀴스트 대법관은 반대했다. 대법원은 임신 첫 3개월 동안 여성은 자기 의사로 낙태를 할 수 있으며 다음 3개월 동안 주는 여성의 건강을 위해서 규제할 수 있으며, 마지막 3개월 동안은 여성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경우가 아니면 주법으로 낙태를 금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자신들이 낙태를 둘러싼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판결은 복음주의 기독교와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한 생명운동(Pro-Life Movement)을 촉발시켰다. 낙태 반대 운동은 보수 정치에 영향을 주어 1980년대 들어 공화당 정치인은 낙태 자유화를 입에 올릴 수 없게 됐다. 오늘날 낙태에 대한 입장은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정체성 차원의 문제가 돼 버렸다. 낙태 등 여러 사안에서 보수적 입장을 견지해 온 렌퀴스트 대법관은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으로 임명돼 대법원이 본격적으로 보수화하는 계기가 됐다. 2022년 6월 24일 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고 낙태는 각 주가 스스로 규제하도록 했다. 클린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이 판결에 반대했다. 중앙대 명예교수
  • JMS 정명석 여신도 성폭행 혐의 구속기소

    JMS 정명석 여신도 성폭행 혐의 구속기소

    외국인 여신도들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기독교복음선교회(통칭 JMS) 총재 정명석(77)씨가 재판에 넘겨졌다. 대전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외국인 여성 신도 2명을 추행하거나 성폭행한 혐의(준강간 등)로 정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28일 밝혔다. 전자발찌 부착 명령도 청구했다. 정씨는 2018년 2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십여차례에 걸쳐 충남 금산군의 한 수련원 등에서 홍콩 국적 여신도 A씨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8년 7월부터 그해 말까지는 다섯 차례 호주국적 B씨의 허벅지 등을 만진 혐의도 받는다. 피해 여신도들은 지난 3월 고소장을 제출했다. 정씨는 현재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정씨는 신도 성폭행 등의 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2018년 2월 출소했다.
  • 교회의 결혼 가족 강령, 서구 폭발적 발전 낳다

    교회의 결혼 가족 강령, 서구 폭발적 발전 낳다

    일부일처제·친인척 결혼 금지장자 상속 아닌 유언 따른 상속친족관계 해체 교회로 부 쏠려개인의 사고방식까지 바꿔 놔사람들 도시로 몰려 경쟁 심화상업 발전·산업혁명까지 견인“나는 ___이다.” 밑줄을 채워 보자. ‘누구의 아빠’라든가. ‘A대학’을 나온, 혹은 회사 이름을 먼저 말할 확률이 높다. 케냐 마사이족과 삼부루족은 자기 자신보다 집단 안에서의 역할에 대한 언급 비율이 80%에 이른다. 반대로 미국 대학생과 유럽인들은 ‘호기심이 많다’, ‘열정적이다’와 같은 자신에 대한 서술이 극단적으로 높다.조지프 헨릭 미국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는 이런 이들을 가리켜 서구의(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한(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람들, 앞글자들을 따 ‘WEIRD’(위어드, 기이하다)라고 명명했다. 우리가 흔히 ‘서양사람’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이들이자, 오늘날 국제 사회의 주류라는 집단이다. 저자는 이들을 연구하면 서양 문명이 1000년 이후 역사에서 두각을 드러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서유럽 국가들이 1500년경부터 세계 곳곳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라든가, 어떻게 18세기 말 신기술과 산업혁명을 동력으로 삼아 경제 성장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는지 등이 이런 사례다. 저자는 유럽이 두각을 드러내기 전, 혹은 지금까지 영향이 크게 미치지 않았던 아프리카 부족 등에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시작점으로 1000년을 전후로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기독교를 찾았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가장 독특한 부분을 살폈다. 저자가 찾아낸 특징은 일부일처제만 허용하고 친족과 인척과의 결혼과 중매결혼을 금지하고 독립적인 거주를 장려하고 장자 상속이 아닌 유언에 따른 상속을 하도록 한 점, 입양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결혼 가족 강령’으로 요약했다.결혼 가족 강령에 따라 집약적 친족관계가 해체되면서 유대감이 느슨해졌다. 교회의 독특한 기부 문화 덕분에 장자를 남기지 못하면 교회에 땅을 기부하면서 교회에 부가 쏠리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가 개인의 사고방식마저 바꿨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개인주의, 분석적 사고, 높은 죄의식에 반해 낮은 수치심이 모두 설명된다. 많은 이들이 성경을 읽어야 했고, 그러면서 문해력이 높아졌다. 이것이 기독교가 퍼지는 반경과 겹치는 점도 우연이 아니다. 친족관계가 해체되고 개인이 중시되면서 도시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 길드, 수도원, 대학, 사업체 사이의 경쟁이 강해졌는데, 이는 생산성을 급격히 높였다. 사람이 많이 몰리면 창의성이 발현되는 사례도 많아진다. 도시화, 상업의 발전, 산업혁명에 이르는 발전이 이어졌다. 이쯤 되면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떠올릴 법하다. 다이아몬드는 생물지리적 요인들이 농업을 발전시키고 지구 차원의 불평등을 유발하는 까닭은 잘 설명하지만, 1000년 이후 서구 사회의 발전에 대해서는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사실상 지금쯤 중국이나 아랍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000년 이후 교회에서 출발한 각종 장치와 제도가 수백 년 서구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설명은 이 책이 더 설득력 있다. 700쪽이 훌쩍 넘는 ‘벽돌책’이지만, 술술 읽힌다. 무수한 통계와 각종 심리실험 등으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아프리카나 아시아를 오가며 저자가 직접 참여했던 실험은 물론이거니와 공들인 여러 통계가 설득력을 더한다. 문화적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를 압도하고, 지형적인 특징까지 압도한다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인류학과 심리학, 경제학과 진화생물학을 엮어 현대 서구 문명의 번영을 명쾌하게 해설한 저자의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내는 이유이다.
  • “사제·수녀까지 포르노물 노출… 휴대전화서 삭제해야”

    “사제·수녀까지 포르노물 노출… 휴대전화서 삭제해야”

    프란치스코 교황이 온라인 음란물은 “영혼을 약화시키는 것”이라며 그것을 멀리해야 한다고 젊은 성직자들에게 당부했다. 26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교황은 이날 로마에서 공부하는 수백명의 성직자 지망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영성 지도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10가지 질문에 답하던 중 음란물에 대해 말했다. 교황은 디지털과 소셜미디어(SNS)를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이 되는 기쁨을 공유하는 데에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강박적으로 뉴스를 보거나 일을 방해하는 음악을 듣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다. 교황은 이어 “여러분들에게 온라인 포르노물을 경험했거나 유혹을 느낀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며 손을 들어보라고 말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그것은 매우 많은 사람, 매우 많은 평신도뿐 아니라 사제들과 수녀들까지도 노출돼 있는 악덕”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동 학대와 같은 범죄 포르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성적 도착”이라며 “좀 더 ‘정상적인’ 포르노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마귀가 포르노물에서 들어온다. 그것은 사제들의 마음을 약화시킨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휴대전화에서 포르노물을 삭제할 것을 촉구했다.
  • ‘日마코 前공주’ 평민 남편, 삼수 끝 뉴욕 변호사 된다

    ‘日마코 前공주’ 평민 남편, 삼수 끝 뉴욕 변호사 된다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조카인 마코(30) 전 공주와 결혼한 고무로 게이(31)가 미국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21일 일본 교도통신·NHK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마코 전 공주와 결혼한 고무로는 같은달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도전했지만 떨어졌다. 이어 지난 2월 재응시했지만 낙방했고,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었다. 뉴욕주 변호사시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7월 실시된 이번 시험의 합격률은 66%다. 고무로와 같은 재응시자의 합격률은 23%다. 고무로와 마코는 일본 국제기독교대학(ICU) 동기로, 지난 2018년 약혼·결혼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고무로 어머니가 옛 애인에게 돈을 빌린 후 갚지 않았다는 내용의금전 문제가 불거지면서 둘의 결혼에 대한 일본 내 비판 여론이 일었다.이에 고무로는 결혼을 미루고 미국 로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고무로는 지난해 10월 일시 귀국했고, 결혼 후 마코 전 공주와 뉴욕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마코는 일반인과 결혼하면서 공주 신분에서 벗어났다. 당시 마코 전 공주는 부정적인 여론 탓에 왕실 의식을 생략했다. 또한 왕실을 떠날 때 지급되는 최대 1억 5250만엔(14억 6000만원)의 품위 유지비도 받지 않았다. 이들 부부는 현재 뉴욕 맨해튼에서 거실과 방 1개가 있는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마코 전 공주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13세기 일본 미술 전시를 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고무로는 법률사무소에서 조수로 일하고 있다. 일본 언론은 고무로가 첫 변호사 연봉으로 2000만엔(1억 9000만원)을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 한미 FTA 반대 했던 ‘노무현 경제 브레인’ 정태인 전 경제비서관 별세

    한미 FTA 반대 했던 ‘노무현 경제 브레인’ 정태인 전 경제비서관 별세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내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등 노 전 대통령의 참모이자 비판자였던 정태인 전 비서관이 21일 0시 43분쯤 경기 용인시의 한 호스피스 병원에서 향년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날 정 전 비서관의 지인에 따르면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이자 성공회대 겸임교수로 활동했던 고인은 지난해 7월초 쓰러진 뒤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이후 뇌종양 등으로 수술과 입원, 퇴원을 반복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까지도 투병 상황을 알리며 병마와 싸워왔지만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로 손꼽힌다.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땄지만 박사 과정은 수료만 했다. 1985∼1988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간사를 하면서 정치·사회 정세를 분석하는 ‘기사연 리포트’를 작성했다.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창립에 참여해서 학술지 ‘동향과 전망’을 발간하기도 했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일하면서 강단에도 섰다.  이후 2002년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을 시작으로 노무현 정부 2년간 대통령 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기조실장과 청와대 경제보좌관실 국민경제비서관 등을 지내는 등 노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 으로 활동했다. 2005년 5월 말 ‘행담도 개발 의혹’과 관련해 사직했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도입은 지지했지만, 한미 FTA 체결은 반대했다. 이후 2008년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 2019년부터는 정의당 그린뉴딜경제위원회 위원, 2020년 총선공약개발단장으로 활동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도 절친한 사이라 대선 공약 작성을 돕기도 했다. 정종권 레디앙미디어 편집장은 지난 7월 5일 레디앙에 쓴 글에서 “박현채 선생의 마지막 제자임을 자처하고, 심상정 의원의 절친이고, 천재의 면모와 보헤미안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며 “자유주의 좌파의 이념을 고수하는 사람이고 진보정당 내의 소중한 지식인이고 중요한 이념가, 정책가”라고 썼다. 정건하 한신대 교수는 “박현채 선생을 롤모델로 삼아 마르크스 경제학 방법론을 현실에 적용해서 역사 흐름을 파악하는 방법론을 찾아내려고 애썼다”며 “사회주의 붕괴 후에는 조절이론, 제도주의 경제학을 파고들었고, 사회적 경제와 생태적 전환 등에 관심을 쏟았다”고 했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추도문을 통해 “그는 드문 천재이자 경제학자로서의 40년 생애동안 힘들고 억울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으로 일관했다”면서 “못 사는 사람들을 구하는 원칙으로 나라를 경영한다라는 경제의 원래 뜻을 어떻게 정책으로 반영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현채 선생과 정태인 선생 등은 진지한 경제학자의 기백이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신 분들”이라면서 “자기 삶을 주체로서, 용감하게, 또 기쁘게 사신 분들이 50대의 나에게는 부러울 뿐”이라고 덧붙였다. 유족은 부인 차정인(화가)씨와 사이에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3일 오전 8시30분,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 추모공원(수목장) 이다.
  • ‘제7회 한국기독교영화제 KCFF’ 성황리에 개최

    ‘제7회 한국기독교영화제 KCFF’ 성황리에 개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년 만에 개최된 한국기독교영화제(KCFF)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제7회 KCFF는 도약의 의미를 담아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세빛섬 FIC 컨벤션에서 개최됐다. 전일 이효경 감독의 ‘울지마 엄마’ 시사회를 시작으로 당일에는 크리스찬 영화인과의 대화, 시상식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면서 많은 크리스찬 영화인들과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됐다. 1부 행사인 크리스찬 영화인과의 대화에서는 할리우드 촬영감독인 스티븐 오 감독(XM2 Pursuit CEO)과 국내 크리스찬 영화감독인 김상철 감독(파이오니아 21 대표)이 100여명의 관객들을 만나 촬영현장에서의 있었던 다양한 간증과 향후 크리스찬 콘텐츠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들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2부 행사의 시작은 영화인들의 레드카펫으로 알렸다. 이성혜 KCFF 위원장을 시작으로 배우 권오중, 황태환 대표(HUG 대표), 드러머 리노, 가수 범키, 가수 겸 배우 송민경 등이 KCFF를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또 ‘요게벳의 노래’로 알려진 CCM 가수 ‘같이 걸어가기’팀과 가수 ‘범키’가 축하무대를 마련했다. 소망을 주제로 진행된 이번 KCFF 영화제의 대상의 영예는 이가영 감독의 영화 ‘오, 주님’이 받았다. 영화의 퀄리티, 완성도와 함께 복음의 메시지를 담아 많은 이들로 하여금 소망과 복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큰 점수를 얻었다. 최우수상으로는 한세대학교 문화사역 블루파이어팀 김신자 감독의 ‘아르바이트’가 선정됐다. ‘아르바이트’는 한세대학교 캠퍼스 내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시작한 작품으로, 생활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많은 청년들을 위로하는 내용을 담았다.우수상으로는 나무거꾸로서다 팀 서준호 감독의 ‘나무인생’이 선정됐다. 나무인생은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한 노인의 일생을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전날 시사회를 가졌던 이호경 감독의 ‘울지마 엄마’는 특별명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울지마 엄마는 4기암 판정을 받은 엄마들의 삶의 마지막 여정을 담아내어 많은 이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김상철 KCFF 공동위원장은 “콘텐츠가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 기독교만의 콘텐츠를 생산해 내야한다”며 시네마틱 웹드라마, 기독교 시트콤, 로드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기독교 콘텐츠 제작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후보작에는 선출됐지만 수상을 하지 못한 두 편의 영화팀에게도 파이오니아21에서 제작하는 웹드라마의 감독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을 주기로 하였다. 이성혜 위원장은 “KCFF는 영성과 전문성의 균형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양성해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며 “앞으로도 전문적인 기독교인 문화 사역자를 양성해 콘텐츠로 복음을 전하겠다”고 강조했다.
  • “교회 밖에도 구원 있다” 종교 다원주의로 쫓겨난 변선환 박사 학술대회 개최

    “교회 밖에도 구원 있다” 종교 다원주의로 쫓겨난 변선환 박사 학술대회 개최

    30년 전 변선환 박사(1927~1995)는 감리교에서 이단으로 몰려 출교당했다. 중세시대에나 있을 법한 ‘종교 재판’을 통해서였다. 이웃 종교와의 대화 등 개방적인 신학관을 지향했다는 이유였다. 종교 역시 다양성이 당연하게 존중되는 시대지만 그렇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감리교신학대 총장을 지낸 변 박사는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 다원주의의 입장을 취했으나 감리교 내부에선 그를 이단으로 보는 세력이 있었다. 이들은 ‘적그리스도’, ‘사탄’ 등의 막말을 퍼부었고, 변 박사는 종교 재판을 통해 1992년 출교당했다. 감리교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학자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인생 마지막까지 학문에 집중하다 책상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오는 3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종교재판 30년, 교회권력에게 묻다’를 주제로 열리는 학술대회에서는 그의 신학 세계를 짚어보고 왜 출교라는 가혹한 조치가 이뤄졌는지 살핀다. 1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 모인 변 박사의 제자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스승을 추억했다. 송순재 감신대 은퇴교수는 “부끄러운 사건을 공론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학술대회를 통해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앞날이 새로 밝아졌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10년마다 세미나를 개최했지만 이번에는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기자간담회까지 진행하게 됐다.이정배 감신대 은퇴교수는 “이번 행사에서 그때 그들은 왜 종교재판을 일으켰고, 주체 세력들은 누구였는지, 종교재판을 통해 한국교회가 달라졌는지 현실을 바라보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문제를 다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종교재판에 대해 “종교 권력이 학문과 그리고 교회를 접수한 사건”이라고 정의한 그는 “기독교는 자기가 죽어야 사는 종교인데 타자를 죽여왔던 종교가 됐다. 어떻게 스스로 죽을 것인가를 선언하는 종교가 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와 이 교수는 1부 ‘종교재판 30년, 회고와 성찰’의 발제자로 나선다. 2부에서는 한인철 연세대 명예교수, 이호재 전 성균관대교수, 이은선 전 한국신연구소 소장이 ‘종교재판 30년, 그 이후’라는 대주제 아래 발제를 한다. 발제에 이어 한국 종교, 교회의 방향을 전망하는 토론 순서가 마련된다. 도올 김용옥 선생 등은 격려사를 할 예정이다. ‘변선환 아키브’ 등 단체들은 이번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변 박사의 생애와 신학을 담은 평전과 종교재판 30년 사건을 기록한 백서 등도 펴낼 계획이다. 백서 공동 집필자인 최대광 공덕교회 담임목사는 “변선환 박사는 타자에 대해 열린 세계관으로 끊임없이 배우며 나와 하나님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후학들과 인터뷰하고 글을 썼다”면서 “평전이 나중에 하나의 전통이 돼서 한국신학이 좀 더 다채로워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 강승애 ‘상형전’ 자문위원, ‘대한민국기독교미술상’ 수상

    강승애 ‘상형전’ 자문위원, ‘대한민국기독교미술상’ 수상

    강승애 ‘상형전’(象形展) 자문위원이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열린 ‘제57회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회장 방효성) 정기전’에서 ‘제34회 대한민국기독교미술상’을 수상했다. 강승애 작가는 “빈 캔버스에 교회를 먼저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색과 형태를 덧칠해가면서 작품을 만들어간다”며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많은 저를 잘 이끌어 주시기 위해 주신 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표현하고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많이 그리겠다”고 덧붙였다. 강승애 작가의 작품 ‘조화’(harmony)는 논현동 서울영동교회의 권사이기도 한 작가의 신앙을 바탕으로 한 소재들이 세련된 색채 언어를 통해 잘 묘사됐다. 작가는 창조주가 그림 속 메인 의자에 앉아 온 나라와 세상을 조화롭게 지휘하는 모습을 크고 작은 음표로 형상화했다고 설명했다. 또 주변의 자연과 사물을 재해석해 작가만의 독특한 조형언어와 운치있는 색채를 통해 고급스럽게 풀어낸 것이 특색이라고 전했다.원문자 협회 심사위원장은 심사평을 통해 “강승애 작가의 주된 표현 방식인 메타포, 즉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다른 대상에 우회적으로 나타내는 표현 방법은 기독교 영성의 예술적 표현에 큰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며 “그의 메타포는 성경의 풍부한 함의를 해석하는 데 있어 회화의 중요한 기제가 된다”고 시상 배경을 설명했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강승애 작가는 1994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94년부터 국내외에서 25회의 개인전을 연 것을 비롯해 320여회의 그룹전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강 작가는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부회장, 한국여류화가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상형전 자문위원을 포함해 녹미미술협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한국수채화작가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 세계오순절대회 연 이영훈 목사 “세계가 다시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세계오순절대회 연 이영훈 목사 “세계가 다시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12일부터 사흘간 펼쳐지는 제26차 세계오순절대회(PWC)가 ‘다음 세대의 오순절 부흥’을 주제로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시작됐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담임목사는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금의 Z세대에 태어난 젊은 세대들이 모든 면에서 기성세대를 앞서가고 있다”면서 “앞으로 오순절 운동이 젊은 세대가 중심이 돼서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젊은 층이 무너지는 게 한국도 큰 위기”라며 “교회에서 앞으로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장을 열어가게 해주는 게 이번 오순절대회의 주제”라고 강조했다. 오순절은 원래 이스라엘 3대 절기 중 하나로 유월절 이후 50번째 되는 날을 기념하는 절기다. 성경적으로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고 첫 추수를 시작하는 절기이기도 하다. 신약의 시대에 오순절은 예수 부활 이후 50일째 되는 날 성령이 강림해 교회가 탄생한 것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이런 유래를 본따 오순절 교회들은 성령 강림과 방언, 체험의 역사를 강조한다.이 목사와 함께 취재진과 만난 세계오순절협회(PWF) 윌리엄 윌슨 총재는 “오순절주의의 정신은 영적인 갈증을 풀어주는 해답을 제공해줄 것”이라며 “성령님에게는 큰 능력이 있기에 성령의 권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순절 운동을 통해 전 세계가 다시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면서 “하나님의 임재와 예수님의 말씀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오순절대회의 주제인 다음 세대와 함께 강조된 것이 세계평화다. 지금의 세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의 참상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시대다. 분단 체제인 한반도에서 대회가 열리는 만큼 평화에 대한 메시지도 강조할 예정이다. 대회 마지막 날인 14일에는 북녘땅이 보이는 경기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한반도 평화와 다음 세대 부흥을 위한 기도 대성회’를 연다. 이 목사는 “한국이 남북으로 나뉜 걸 모르는 나라가 많다”면서 “전 세계에 생중계하며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와야 한다는 것과 한반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면서 지구가 멸망으로 가는 핵전쟁 길은 절대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리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도회에서는 전 세계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북한을 품고 기도할 예정이다.평화를 위해 이 목사가 강조한 것은 바로 복음이다. 이 목사는 “구한말에 절망이 깊어졌을 때 복음이 들어와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워 병든 사람을 치유하고 젊은 사람들을 교육해서 한국 지도자로 길러냈다”면서 “복음의 힘이 곧 사랑이다. 북한에 병원도 세우고 학교도 세우고 소외된 사람을 섬기면 평화통일에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여의도순복음교회에 평양심장병원을 요청하며 시골까지 인민병원을 세워달라고 요청했고, 이런 병원들을 통해 북한 주민들이 복음에 대해 마음이 열리고 평화가 찾아올 것이란 게 이 목사의 설명이다. 전 세계적으로 오순절 신앙을 가진 기독교 신도 수는 약 6억 5000만 명에 달한다. 최근 남미와 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교세가 크게 성장하면서 교인이 줄어드는 다른 교단과 대비되고 있다. 이 목사는 “오순절교회는 여성에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동등하게 인정하며 기성교회가 제도에 갇혀 문을 못 여는 것을 과감히 열었다”면서 “오순절운동이 기성 교회들이 가는 길로만 가지 않는다면 또 다른 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찬송가는 ‘내 영혼이 은총 입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찬송가는 ‘내 영혼이 은총 입어’

    매일 아침 6시부터 CBS 음악FM에서 한 시간 방송되는 ‘정민아의 어메이징그레이스’가 방송 10돌을 맞아 한국인이 사랑하는 찬송가 100선(選)을 뽑았는데 ‘내 영혼이 은총 입어’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찬송가로 선정됐다. 2012년 9월부터 지난달까지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4만 3000여 곡 가운데 청취자 선호도와 신청 빈도, 방송 횟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뒤로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어메이징 그레이스),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순이었다. 특히 이 프로그램 애청자들은 오슬로 가스펠 콰이어가 부른 ‘내 영혼이 은총 입어’ 버전이 소개될 때 가장 커다란 호응을 보였다. 20대부터 70대까지 거의 모든 연령대에서 높은 선호도를 보이며 신청 빈도, 방송 횟수 등 모든 영역에서 다른 곡들을 크게 앞섰다. 이 합창단은 1988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발족된 유럽 최고의 가스펠 콰이어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은 나나 무스꾸리, 앤 머리,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올드팝 가수뿐 아니라 켈틱 우먼, 일 디보 같은 크로스오버 그룹 등 다양한 버전이 고르게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버전을 따지지 않은 방송 횟수는 ‘내 영혼이 은총 입어’ (500여회)보다 많았으나, 청취자 선호도에서 오슬로 가스펠 콰이어의 ‘내 영혼이 은총 입어’에 못 미쳤다. 정민아 CBS 아나운서는 “이번에 발표한 순위는 청취자들의 압도적인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는 CBS FM이 지난 10여년 축적된 시간과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크다”면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물론 지치고 힘든 일상을 보내는 모든 이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2019년 한국방송대상 아나운서상을 수상했다. 오는 24일부터 30일까지 ‘한국인이 사랑하는 찬송가 BEST 100’ 특집방송이 진행된다. 상세한 순위는 ‘정민아의 어메이징그레이스’ 홈페이지(http://www.cbs.co.kr/radio/pgm/main/?pgm=1059)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사우카 WCC 총무대행 방한 “한국교회의 연대에 감사”

    사우카 WCC 총무대행 방한 “한국교회의 연대에 감사”

    요안 사우카 세계교회협의회(WCC) 총무대행이 한국교회가 세계평화를 위해 연대하는 일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11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사우카 총무대행 방한 특별담화를 개최했다. 이홍정 NCCK 총무를 비롯한 한국교회 관계자들과 각국에서 온 관계자들은 기후 위기와 반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세계평화를 모색했다. 특별히 예멘과 필리핀, 우크라이나 등 국가 폭력의 탄압으로 차별과 배제로 밀려나고 고통받는 이들이 직접 응답자로 나서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사우카 총무대행은 “기후 정의는 평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생존 가능한 미래를 원한다면 우리의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 미얀마 군부의 인권 침해 등을 언급하며 “미얀마 군부의 인권침해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는 기도를 통해 미얀마 국민들과 지속적인 연대를 표명한 한국 교회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WCC의 대외협력과 인권문제를 담당하는 국제위원회 피터 프루브 국장은 제11차 WCC 칼스루에 총회에서 채택된 “한반도 화해와 평화를 위한 의정서” 내용을 공유하며 한국의 평화를 주제로 메시지를 전했다. 사우카 총무대행은 “의정서를 채택한 것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우리 모두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고백할 때 한국교회도 이 순례의 여정에 끊임없이 동참해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한다”고 했다.
  • ‘선우은숙과 결혼’ 유영재 “지난 토요일에는 아들 결혼…지금은 나”

    ‘선우은숙과 결혼’ 유영재 “지난 토요일에는 아들 결혼…지금은 나”

    배우 선우은숙(63)과 결혼 소식을 알린 아나운서 유영재(59)가 쏟아지는 축하 인사에 감사함을 표했다. 유영재는 11일 오후 자신이 진행하는 경인방송 ‘유영재의 라디오쇼’에서 결혼 소식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이날 댓글창에는 유영재의 결혼을 축하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이에 유영재는 직접 글들을 읽으며 화답했다. 한 청취자가 “어릴 때 TV에서 선우은숙씨를 보고 선녀라고 생각했다”라고 하자 유영재는 “제가 그럼 나무꾼이냐”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나무를 하러 간 적도 없고, 계곡에 간 적도 없다”라며 “선녀님을 행복하게 해달라고 하는 예쁜 마음이 메시지에 담겨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댓글 창에는 “축하드린다, 행복해지길 바란다”라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유영재는 “오늘 가입하고 처음 인사하는 분들이 많다”라며 “기사가 났으니까”라고 말해 웃음을 줬다. 이어 “기분이 어떠냐고 하시는데, 글쎄”라며 “제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기사에 날 수 있는 인물도 아니다, 아침에 기사가 쏟아지고 전화도 많이 왔다, 인터뷰 요청도 많이 와서 정신이 없는 하루”라고 말했다. 다른 청취자가 “잠시 영재님 잊고 살았는데 좋은 기사가 나왔다, 지난주에 아드님이 결혼한다더니 지금은 본인”이라고 하자 유영재는 “토요일에 아들 결혼 보내고 지금은 저”라며 웃었다. 한편 선우은숙과 유영재는 11일 결혼 소식을 알렸다. 선우은숙 소속사 스타잇엔터테인먼트는 “두 사람은 기독교 신자라는 공통점 아래 신앙과 신뢰를 쌓아왔으며, 최근 혼인신고를 마치고 양가 상견례를 마쳤다”라며 “선우은숙씨와 유영재씨의 새로운 출발에 따뜻한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라고 밝혔다. 선우은숙과 유영재는 지난 9월 혼인신고를 했다. 1959년생인 선우은숙은 지난 1978년 KBS 특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금남의 집’ ‘춘향전’ ‘이차돈’ ‘토지’ ‘도둑의 아내’ ‘여울목’ ‘행복한 아침’ ‘가을동화’ ‘명성황후’ ‘풀하우스’ ‘부활’ ‘김치 치즈 스마일’ ‘위험한 여자’ ‘귀부인’ ‘황금가면’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선우은숙은 지난 1981년 9세 연상인 동료 배우 이영하와 결혼해 두 아들을 낳고 결혼생활을 하다가 2007년 이혼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2020년 부부 토크쇼 MBN ‘속풀이쇼 동치미’(이하 ‘동치미’), 2021년 2월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에 출연, 이혼하게 된 계기와 과정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선우은숙과 재혼한 유영재 아나운서는 지난 1990년 CBS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이후 CBS ‘가요속으로’ SBS 러브FM ‘유영재의 가요쇼’ 등을 진행했다. 올해 3월부터 경인방송 ‘유영재의 라디오쇼’로 복귀했다.
  • 선우은숙, ‘4살 연하’ 유영재 아나운서와 결혼

    선우은숙, ‘4살 연하’ 유영재 아나운서와 결혼

    배우 선우은숙(63)이 아나운서 유영재(59)와 결혼했다. 11일 소속사 스타잇엔터테인먼트 측은 “선우은숙씨가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이라는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됐다”고 밝혔다. 소속사 측은 “상대는 아나운서 유영재씨로 CBS ‘가요 속으로’와 SBS 러브FM ‘유영재의 가요쇼’를 거쳐 현재 경인방송 ‘유영재의 라디오쇼’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두 사람은 기독교 신자라는 공통점 아래 신앙과 신뢰를 쌓아왔으며, 최근 혼인신고를 마치고 양가 상견례를 마쳤다. 선우은숙씨와 유영재씨의 새로운 출발에 따뜻한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한편 1959년생인 선우은숙은 지난 1978년 KBS 특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이후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81년 동료 배우였던 이영하와 결혼했다가 2007년 이혼했다.
  • 독립운동·의료헌신까지… 초심 찾아나선 교회

    독립운동·의료헌신까지… 초심 찾아나선 교회

    일제 제암리 학살사건 알린 석호필3·1운동 태극기 찍은 정동제일교회한국 근대화에 교회의 헌신 보여줘류영모 “교회 위기… 본질 찾아야”3·1운동의 들불이 전국으로 번져 가던 1919년 4월 15일 일본군은 경기 수원군 향남면(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교회에 15세 이상 마을 남성을 모이게 했다. 앞서 만세 시위를 강경진압한 것에 대해 사과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교회당에 사람들이 모이자 일본군은 출입문과 창문을 잠그고 총을 난사했다. 남편을 찾으러 온 부인까지 포함해 23명이 사망한 이 사건은 ‘제암리 학살사건’으로 불린다. “1980년 제암교회에 부임했을 때 역대 31대 교역자라고 했습니다. 3·1운동을 기념하는 교회의 31대 목사라는 데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게 됐어요. 제암리는 ‘예수 믿다 망한 동네’라는 가슴 아픈 소문이 퍼졌는데도 맥을 이어 오고 있다는 데 고마움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에서 지난 5일부터 3일간 진행한 근대기독교문화유산답사 중에 만난 제암교회 강신범 목사에겐 ‘제암리 학살사건’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느껴졌다. 제암교회 일대는 곳곳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건 당시 여러 선교사가 제암교회를 찾았고, 프랭크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선교사가 일제의 만행을 널리 알린 것은 일제가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독립운동에 교회와 선교사가 큰 역할을 한 것은 제암교회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1887년 서울 중구 정동에 세운 정동제일교회 강단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그 아래 좁은 공간에서 유관순과 동지들은 3·1운동 당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다. 비밀 공간이었기에 일제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었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와 동료 선교사들이 암살 위협에 시달리는 고종을 위해 직접 불침번을 서는 등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들은 자발적으로 헌신하며 한국인들과 운명을 함께했다. 근대 한국에 교회와 선교사가 공헌한 분야로 의료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7일 개관한 전북 전주시 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에서 파송된 7인의 선교사가 의료 혜택을 전혀 못 받고 병들고 죽어 가던 한국인들을 구제하기 위한 헌신을 기억하는 장소다.또 다른 순례지인 광주 호남신학대학교에선 대한간호협회를 창립한 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 숭일학교와 수피아여고를 세운 유진 벨 선교사 등이 묻혀 있다. 김병내 광주 남구청장은 “오늘날 광주정신이라고 하는 것의 모태는 선교사님들의 희생정신”이라고 말했다. 답사의 마지막 장소였던 대구에선 대구제일교회와 YMCA회관, 대구 3·1운동의 중심지였던 청라언덕 등에 뿌린 선교사들의 씨앗이 오늘날 대구 근대문화골목으로 열매 맺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곳곳에서 만난 기독교문화유산은 한국의 근대화에 교회의 헌신이 결코 적지 않음을 보여 줬다. 이런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정치권과 결탁해 이념 논쟁, 세대 분열 등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일부의 행태로 개신교 전체가 비난받는 현실이다. 이번 답사는 이를 반성하고 초심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차원에서 진행됐다. 류영모 한교총 대표회장은 “교회는 지금이 가장 위기”라며 “다시 본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은 종교 없이 살아갈 수 있어도, 종교는 세상 없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초대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교회가 돌아갈 출발점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고 부연했다.
  • 유관순이 숨어서 태극기 찍던 이곳… 독립열망 품은 정동제일교회

    유관순이 숨어서 태극기 찍던 이곳… 독립열망 품은 정동제일교회

    잠겨 있던 문을 열자 작은 다락방 같은 공간이 나왔다. 사람이 있을 곳은 아니되, 몸을 피하고자 하면 또 그런대로 숨을만한 곳이었다. 독립운동을 위해 숨어서 뭔가를 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기도 했다.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서양식 예배당으로 알려진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의 ‘벧엘예배당’은 1887년 미국의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에 의해 세워진 곳이다. 이곳에는 1918년 설치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예배 때 활용하던 이 파이프오르간은 한국전쟁 중인 1951년 폭격에 소실됐다가 2003년 이 교회의 고(故) 이종덕 권사 유족이 마련한 헌금으로 원형대로 복원됐다. 교회의 역사가 담긴 파이프오르간에는 또 다른 숨은 역사가 있다. 파이프오르간 벽면 속에 감춰진 작은 공간인 송풍실은 바로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숨어 있던 곳이다. 이 송풍실에서 유관순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몰래 인쇄하고 기도를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지난 5일 한국교회총연합회가 마련한 근대기독교문화유산답사의 일환으로 송풍실이 공개됐다. 잠긴 문을 열자 복층 구조의 공간이 보였다.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파이프오르간 틈으로 빛이 들어와 환했고, 아래쪽은 빛이 들지 않아 어두웠다. 송풍실 내부로 들어간 한교총 대표회장 류영모 목사는 공간 좌우 폭을 재듯 양팔을 벌리면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몰래 등사한 곳이 바로 이 송풍실”이라며 “뒤쪽 공간이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곳으로 송풍실은 3·1운동 이후에도 독립 관련 자료를 몰래 만드는 장소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정동제일교회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학생, 외교관들과 성경을 공부하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서양식 건물로 완공된 이곳은 이전에 없던 건물 양식에 정동 일대의 명소가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펜젤러가 1902년 성서번역위원회 참석차 인천에서 목포로 가는 뱃길에 올랐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이 교회와 예배당은 독립을 꿈꿨던 이들의 교류 장소로 이어졌다. 파이프오르간 송풍실의 크기는 작지만 이곳에서 벌어진 일은 결코 가볍지 않았고, 이곳에서 꿈꾸던 독립에 대한 열망의 크기 또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독립운동사에 빼놓을 수 없는 장소로서 정동제일교회는 오늘도 독립운동을 펼치던 이들의 기지처럼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술알못’도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맥주를 아시나요? [지효준의 맥주탐험]

    ‘술알못’도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맥주를 아시나요? [지효준의 맥주탐험]

    맥주는 오래 전부터 인간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자리잡았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교류의 중요 매개체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도수는 낮아도 맥주 역시 술이다. 건강을 위해 음주량을 조절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도 책임감 있는 음주 문화와 지속 가능한 음주 습관을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자연스레 맥주 시장에서도 건강이라는 키워드를 중요시하는 소비 문화가 퍼지고 있다. 다른 제품들과 다르게 온라인 구입이 가능하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무알콜 맥주가 주목받고 있다. 현재는 음식점과 대형 마트, 편의점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을 만큼 정도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아이러니하게도 무알콜 맥주는 술을 마시고 싶은 인간에 욕망에서 탄생했다.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제품들은 대부분 미국 금주법의 영향을 받았다. 금주법은 1920년 미국에서 시행됐는데,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에서 술 마시는 것을 규제했다는 사실이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곡물 부족 현상을 완화하려는 취지였다지만 ‘취하지 말라’는 성경 구절을 지상명령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기독교 근본주의자, 노동자들의 과도한 음주로 인한 생산성 저하에 골머리를 앓던 자본가들이 전폭적으로 지지 의사를 표방하면서 ‘사회 보수화’의 신호탄이 됐다. 독일인들이 주도하던 맥주산업을 고사시키는 속내도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이 법은 13년 만인 1933년에 폐지됐지만 미국을 넘어 세계 주류 시장 전반에 변화를 만들었다. 술을 못 만들게 된 양조장들은 냉장 유제품과 탄산수 등 대체품을 개발·판매했고 의료용 알콜을 생산하기도 했다. ‘버드와이저’(Budweiser)를 만드는 엔하이저부시(Anheuser Busch)는 알콜 도수를 당시 법정 기준인 0.5% 이하로 낮춘 니어 비어(Near Beer)를 판매했다. 일부 양조장은 소비자들이 무알콜맥주에 주입기로 알콜을 직접 주입해 마시는 니들 비어(Needle Beer)까지 내놓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명맥을 이어갔다.금주법이 사라지면서 니어 비어 제품들은 맥주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맛이 없는 맥주’, ‘어쩔 수 없이 마시는 맥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1970년대 미 텍사스의 사업가 매니 젤저는 종교적으로 음주가 허용되지 않는 중동 지역 사업 파트너들을 위해 무알콜 맥주를 직접 만들어 선물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지금도 판매되는 ‘텍사스셀렉트’(Texas Select)다. 이때부터 무알콜 맥주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1990년대에는 오둘스(O‘douls)가 미 무알콜 맥주 대중화를 알렸고, 수제맥수 양조 기술 발전에 힘입어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제품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왔다. 우리나라는 주세법상 알콜 도수 1% 이상은 술로, 1% 이하는 음료로 정의한다. 알콜이 전혀 없으면 ‘무알콜 맥주’, 0~1% 사이면 ‘비알콜 맥주’로 분류된다.    요즘은 ‘위드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비자들이 맛과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제품을 찾는 트렌드가 생겨났다. 이에 부응해 수많은 양조장들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무알콜 맥주 제품군을 강화하고 있다. 벨기에의 ‘브뤼셀 비어 프로젝트’(Brussels Beer Project)에서 만드는 피코 벨로(Pico Bello), 영국 ‘빅드롭’(BIG DROP BREWING)의 밀크 스타우트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양조장들이 뛰어난 맛과 향을 지닌 무알콜 맥주를 선보이면서 시장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세계 맥주 시장에서 무알콜 맥주는 아직 ‘주류’(主流)가 아니다. 그러나 양조 및 유통·보관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장 크게 주목받는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맥주에 알콜이 없는데도 맛이 좋다는 것은 건강 음주·개성 음주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에 큰 이점이다. 앞으로 전체 맥주 시장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맥주는 알콜이 들어간 발효 제품이기에 술에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르게 느껴진다. 어떤 이는 아무리 맥주를 마셔도 취하지 않지만, 다른 이는 맥주를 한 모금만 마셔도 취기가 오른다. 그래서 필자는 무알콜 맥주의 발전이 더 반갑게 느껴진다. 언젠가 대한민국에서도 각기 다른 주량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춰 맥주를 골라 마시며 함께 즐기는 미래가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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