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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서초동 ‘검찰개혁’ 촛불집회…‘조국 사태’로 맞대응 집회까지

    오늘 서초동 ‘검찰개혁’ 촛불집회…‘조국 사태’로 맞대응 집회까지

    주최 측 “300만명 예상”…우리공화당·자유연대 등도 맞불집회 검찰 개혁을 지지하는 촛불집회가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있는 서울 서초동에서 5일 또 열린다. 경찰과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사법적폐청산 범국민 시민연대’는 이날 오후 6시부터 서초역 사거리에서 제8차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를 연다. 지난달 21일, 28일에 이어 세번째 열리는 주말집회로, 참가자들은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검찰 개혁을 촉구하고 조국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는 구호를 재차 외칠 예정이다. 이번 집회에는 지난주(주최 측 추산 200만명)보다 많은 300만명이 참석할 것이라고 주최 측은 예상하고 있다. 지난주 200만명이 참석했다고 주최 측이 추산하자 이를 두고 자유한국당에서는 집회 규모가 ‘터무니없이 부풀려졌다’면서 집회 장소와 면적, 그리고 인근 지하철역 하차 승객 수 등을 볼 때 약 5만명이 참석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특히 개천절인 지난 3일 보수 성향의 정당들과 단체, 기독교계 등이 광화문 일대에서 개최한 조국 장관 퇴진 집회가 대규모로 치러진 데 대한 맞대응으로 이날 서초동 검찰개혁 집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초동 집회 주최 측이 경찰에 신고한 인원은 지난주 8000명에서 이번 주 10만명으로 늘었다. 집회 장소도 서초역 7번 출구·중앙지검 정문 근처에서 서초역 사거리로 옮겼고, 집회 신고 면적도 확대됐다. 이번 주에도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부산, 대구, 광주, 강릉 등 전국 각지에서 집회 참석을 위해 버스를 대절해 상경하는 인파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인근에서 조국 장관 반대 측의 ‘맞불집회’도 열린다. 우리공화당은 낮 12시 30분부터 서초경찰서 인근에서 ‘태극기집회’를 연다. 서초경찰서는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과 함께 반포대로를 끼고 있다. 특히 검찰개혁 집회 무대가 꾸려지는 서초역 사거리와는 불과 500m 거리에 있다. 우리공화당은 개천절 도심 집회의 동력을 이어간다는 목표 하에 이번 주말 처음으로 서초동에서 집회를 하기로 했다. 보수 성향 자유연대도 지난주에 이어 오후 5시부터 서초역 6번 출구에서 ‘조국 구속·문재인 퇴진 요구 결사항전 맞불집회’를 연다. 우리공화당과 자유연대는 집회에 각각 5만명, 1만명이 참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데스크 시각] 대한민국 공무원도 하방이 필요하다/류지영 정책뉴스부 차장

    [데스크 시각] 대한민국 공무원도 하방이 필요하다/류지영 정책뉴스부 차장

    한동안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설화(舌禍)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6월 서울 숙명여대 특강에서 ‘내가 아는 어떤 청년’의 취업 성공담을 꺼냈다. 학점은 3.0이 안 되고 토익은 800점 정도이며 스펙도 없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대기업 5곳에 합격했단다. 말미에 황 대표는 “그 청년은 바로 아들”이라고 밝히며 환하게 웃었다. 졸업을 미루고 학원과 도서관 등에서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청년들에게 자괴감만 심어 줬다는 비판이 컸다. 부산상공회의소 조찬 간담회에서는 내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차등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해 구설에 올랐다. 유대인들보다도 더 많은 나라로 나가서 일하는 우리 교민들의 고단한 삶을 역지사지해 보지 않은 듯했다. 근로기준법과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외국인근로자고용법, 유엔인종차별철폐협약 등을 모두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앞서 그가 총리로 재직하던 2016년 3월에는 KTX를 타려고 서울역 플랫폼까지 관용차를 몰고 들어가 논란이 됐다. 역이란 공공시설을 사유화하고 자신의 특권의식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성토가 거셌다. 국민을 섬기는 자리인 대통령을 꿈꾼다는 제1야당 대표의 이 같은 언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단순 일회성 해프닝은 아닌 것 같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공안검사로 살아오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결과라는 생각이다. 여러 정부 부처를 출입하면서 고위공무원에게서 황 대표와 비슷한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무릇 공직자는 약자를 보듬고 좀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자 헌신할 의무가 있다. 사회의 모순을 찾아내 고쳐야 할 책임도 있다. 하지만 일부에게서 현실 진단과 소통 능력에 한계를 본다. 사회 여러 분야의 심층적이고 복잡다단한 갈등 양상을 경험하고 고민해 보지 못해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 정책도 내놓는다. 우리나라에서 공무원이 되려면 적어도 몇 년은 세상과 담을 쌓고 1평 남짓 고시원 방에서 면벽수행하듯 수험서를 외우고 또 외워야 한다. 스스로를 ‘은둔형 외톨이’나 ‘문제풀이 기계’로 만들지 않으면 절대로 시험에 합격할 수 없다. 이들에게 성숙한 공감 능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1990년대 말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에 들어갔다. 내로라하던 대기업에 다니던 엘리트 직장인들이 추풍낙엽처럼 잘려 나갔다. 이때부터 대한민국 젊은이들 사이에 ‘도전과 성공보다 안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공무원 열풍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2030 세대의 공무원 선호를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아쉬운 것은 이들의 공감 능력이다. 다른 사람과 만나 교감하며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울고 웃고 사랑하고 미워하는가’를 정확히 파악할 경험이 부족해 보여서다. 세상을 바꾸는 정책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서 나온다. 하지만 젊은 시절 여기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으면 공무원시험을 통과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가끔 ‘신입 공무원들을 6개월에서 1년씩 지역에 보내 노인복지나 저소득 가정 지원 등 현장 업무를 하도록 제도화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한국판 ‘하방(下放)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방은 중국에서 당원과 공무원, 대학생을 농촌 벽지에 보내 일하게 한 것을 말한다. 공직자들의 관료주의를 극복하려고 시작됐다. 국내 기독교계도 이를 받아들여 전국 각지에서 개척교회 운동을 펼쳤다. 고령화·인구감소로 어려움이 큰 지방을 돕고 젊은 공무원들의 공감 능력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지방에서 일정 기간 헌신한다는 것 자체로도 국민에게 감동을 줄 것이다. superryu@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명성의 부활/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명성의 부활/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한국 장로교의 양 산맥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과 합동(예장합동)은 원래 한 뿌리 공동체였다. 1912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조선예수교장로회를 모태로 한다. 예배를 함께 드리는 한 가족이었지만, 1959년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과 에큐메니컬 운동 수용 문제로 대립하다가 갈라진 뼈아픈 역사를 갖는다. 이 가운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원인 예장통합은 진보 성향의 교단이다. 개혁교회 전통을 계승하면서 교회 일치와 연합을 추구하는 신학적 노선 때문이다. 최근 목회자 세습으로 관심이 집중된 명성교회는 예장통합의 상징이자 한국 장로교 최대의 교단이다. 등록 교인만 10만명인 그 초대형 교회를 있게 한 주인공은 창립자인 김삼환 목사다. 1980년 서울 강동구 명일동 상가 건물 2층에 십자가를 세워 교인 20명으로 첫 예배를 드린 명성교회. 그 교회는 지금 장로교 단일 교회로는 세계 최대의 교세를 자랑한다. 그 교세 성장의 바탕으로 명성교회는 ‘세상에 속한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참교회를 지향한다’고 늘 강조한다. 실제로 명성교회는 복음의 전파와 나눔의 실천 차원에서 그 어떤 교회보다도 앞장서고 있는 공동체로 인정받는다. 그 부러움과 닮고 싶은 모범의 대상이던 명성교회의 위신이 급전직하한 건 역시 세습 때문이다. 창립자 김삼환 목사에게서 아들 김하나 목사로 담임을 넘기는 세속의 대물림 말이다. 명성교회 측은 세습이 아닌, 청빙이라고 강조한다. 예장통합 헌법, 이른바 세습금지법도 위반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김삼환 목사가 은퇴한 지 2년이 넘은 시점에 아들 김하나 목사를 청빙했고, 많은 교인들이 이를 문제삼지 않는다는 점을 그 당당함의 근거로 세워 놓고 있다. 하지만 교회 측의 주장은 이제 별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형편이다. 지난 5일 예장통합 교단 재판국이 명성교회의 청빙을 헌법 위반과 무효로 온 천하에 선포한 터다. 그 엄연한 상황에 명성교회가 택한 건 ‘재판 불복’의 천명이니 딱한 노릇이다. 더구나 다음달 23일부터 시작되는 예장통합 교단 총회에 이번 재판 결과의 근거인 세습금지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여차하면 사안을 사회 법정으로 옮겨 끝장을 볼 태세다. 세습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명성교회. 그 어두운 추락의 한켠에서도 많은 이들은 여전히 명성교회의 밝은 모습을 입에 담고 떠올린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참교회’ 말이다. 그 밝은 교회의 이미지엔 어김없이 창립자 김삼환 목사의 얼굴이 포개진다. “우리 명성교회에는 세습이 없다”고 당당하게 외쳤던 김삼환 목사다. 한국 개신교뿐만 아니라 세계 기독교계에서도 막중한 영향력을 과시해 ‘한국 개신교의 얼굴’로 불리던 김삼환 목사 아니던가. 2013년 부산에서 성대하게 열린 WCC 제10차 총회도 김삼환 목사를 빼놓곤 말할 수 없다. 그 개회식에서 김 목사가 세상을 향해 쩌렁쩌렁하게 던진 세계 평화와 나눔의 메시지는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결국 ‘명성의 부활’은 김삼환 목사의 몫이 아닐까. ‘세상의 참교회’ 명성교회를 조심스럽게 떠올려 본다. 쉽지 않은 기대이겠지만. kimus@seoul.co.kr
  • 반대 332표… ‘트럼프 탄핵안’ 부결

    반대 332표… ‘트럼프 탄핵안’ 부결

    트럼프, 북한 등 종교 탄압 피해자들 초청 재선 앞두고 복음주의 기독교 표심 잡기소수인종 출신 민주당 여성의원들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하며 논란을 자초한 도널드 트럼프(얼굴)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탈북자 등 17개국 27명의 종교 탄압 피해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복음주의 기독교계의 ‘표심’을 잡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종교의 자유 문제를 대표적 외교·인권 정책으로 추진해 왔다. ‘종교의 자유’ 장관급 회의도 트럼프 정부 이후 국무부 주관 연례행사로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로 종교적 탄압을 받고 있는 중국, 미얀마, 베트남, 이란, 터키, 쿠바, 북한 등 17개국의 피해자 27명을 초청했다. 여기에 북한 출신 주일룡씨도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12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탈북자와 만남을 가진 것이다. 또 미국과 무역전쟁 및 무기 도입 등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과 터키 출신도 포함돼 주목됐다. 한편 이날 미 하원에서는 민주당 앨 그린(텍사스) 의원이 제출한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이 찬성 95표, 반대 332표로 부결됐다. 197석의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235석)에서도 과반이 반대 의사를 밝힌 셈으로, 이번 탄핵안 부결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안이 부결된 뒤 기자들에게 “방금 탄핵에 반대하는 압도적인 표를 받았다”면서 “민주당이 다시 일을 하게 하자”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서울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文, 기독교계 靑 초청… “남북 평화에 앞장서 달라”

    文, 기독교계 靑 초청… “남북 평화에 앞장서 달라”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청와대에서 기독교 주요 교단장 12명과 오찬을 갖고 “평화를 만들고 남북 간 동질성을 회복해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에 기독교계가 앞장서 달라”고 했다. 이어 “과거처럼 독재·반독재, 민주·비민주가 아닌 새 시대를 향해 손잡고 나아가는 통합의 민주주의가 필요한데 잘되는 것 같지 않다”면서 “정치가 해야 할 일이지만 스스로 통합의 정치를 못하고 있으니 기독교계에서 더 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했다. 이승희 목사는 “판문점 남북미 정상의 회동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화답했다. 이날 행사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기독교계와 첫 단독 회동으로 진보·보수 교계가 망라됐다. 다만 문 대통령 하야를 공개 촉구하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지지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전광훈 목사)는 제외됐다. 청와대는 “규모와 역사성을 중심으로 선정돼 한기총은 기준에 안 맞는 것”이라며 “초대된 교단도 대부분 보수적 교단으로 한기총의 성향 때문에 빠진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文 “남북 하나되는 데 기독교계 앞장서달라”…‘하야’ 전광훈은 빼

    文 “남북 하나되는 데 기독교계 앞장서달라”…‘하야’ 전광훈은 빼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교회 주요 교단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남북간 동질성을 회복해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에 기독교계가 앞장서달라”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교단장 초청 오찬에서 “기독교에 바라는 점은 지금까지 해 온 역할에 더해 평화를 위한 역할을 해주셨으면 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불과 2017년까지 그때 북한의 핵실험이라든지, 중장거리 미사일 실험 등 때문에 한반도에 조성된 높은 군사적 긴장, 전쟁의 위협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 후 1년 6개월 이상 지속되는 평화와 비교해보더라도 우리가 가야할 길이 어딘지는 자명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기독교에서는 이미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이라든지, 북한과의 종교 교류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기독교계에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사회 통합의 역할도 요청했다.문 대통령은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통합”이라면서 “과거처럼 독재·반독재, 민주·비민주가 아닌 새로운 시대를 향해 손잡고 나아가는 통합된 지혜와 통합의 민주주의가 필요한데, 아시다시피 그것이 잘 되는 것 같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어 “정치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정치가 스스로 통합의 정치를 못하고 있으니 기독교계에서 더 (역할을) 해주시면 고맙겠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사회에서 기독교가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이 아주 크다”면서 “교인들의 수도 많지만 우리 사회가 발전해온 과정에서 기독교가 해온 역할이 그만큼 컸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기독교를 통해 사회가 발전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기독교는 대한민국 독립에 큰 역할을 했고 해방 후에도 우리나라의 근대화, 산업화, 경제발전과 함께 민주주의와 인권 발전에도 큰 역할 해줬다”고 감사를 표했다. 또 “기독교의 복음이 전파된 후 선교사들은 신앙을 전파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학교를 짓고 병원을 지으며 근대 문명을 전해줬다”면서 “하나님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정신을 가르치며 민주주의와 인권도 함께 전해줬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 “3·1 독립선언 대표자의 상당수가 기독교인이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체를 ‘국민들이 주권을 갖는 민주공화정’으로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고 기독교계를 높이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참석자들을 향해 “정부가 성공하는 것이 결국 국민이 잘되는 것”이라며 당부의 말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이승희 목사는 답사에서 “판문점 남북미 정상의 회동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한반도 평화 통일로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점 되기를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교회는 교회의 일을 하고 정부는 정부의 일을 한다는 원칙이 있다”면서 “정부와 교회가 협력해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 더 좋은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힘쓰기 바란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언급했듯 교회가 나눠진 국민 마음을 하나로 묶고 통합하는 일에 정부와 국민 사이의 소통 창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날 회의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이승희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임형석 목사,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이영훈 목사, 기독교 한국 침례회 박종철 목사, 한국 구세군 김필수 사령관 등 12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하야’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는 참석자 명단에서 제외됐다. 전 목사는 주요 교단장이라는 기준에 맞지 않아 참석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 목사는 지난달 5일 한기총 명의로 시국선언문을 내고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종북화, 공산화를 만들고 주체사상을 종교적 신념으로 만들었다”며 연말까지 하야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기자회견을 열어 문 대통령에 대한 공식 하야 요구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 상·하원에 문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전광훈 목사의 정치적 도발이 점점 더 도를 넘어 침묵을 지킬 수 없게 됐다”면서 “한국의 모든 언론이 더 이상 전광훈 목사의 비상식적 발언에 관심을 갖지 않고 무시해 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속보] 문 대통령 “남북 하나되는 데 기독교계 앞장서달라”

    [속보] 문 대통령 “남북 하나되는 데 기독교계 앞장서달라”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교회 주요 교단장들을 향해 “평화를 만들어 내고 남북간 동질성을 회복해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에 기독교계가 앞장서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교단장 초청 오찬에서 “기독교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서 “지금까지 해 온 역할에 더해 평화를 위한 역할을 해주셨으면 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기독교에서는 이미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이라든지 북한과의 종교 교류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전광훈 목사, 교회를 이데올로기 도구로 추락시켜”

    “전광훈 목사, 교회를 이데올로기 도구로 추락시켜”

    보수·진보를 망라한 개신교 원로 30여명이 18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개신교계와 정치권의 참회와 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원로들은 이날 “최근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했다”며 “이들은 정치적 이단 사교를 선포하고 복음을 왜곡하며 정치적 선전·선동을 일삼고 있어 기독교계 반성과 미래 희망을 위해 호소한다”고 밝혔다. 최근 막말 파문을 일으킨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를 향해 “자신의 극단적 적대 이데올로기를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내세우고, 교회와 연합기구를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추락시키려 하고 있다”면서 “교회를 수치의 대상으로 만든다”고 비난했다. 이어 “현실 정치인이 되고 싶다면 정직하게 세속 정치의 욕망을 밝히고 본인의 목사직도 내려놓으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개신교계에 “교회를 정치집단화한다면 그것은 기독교회의 퇴락이고 존재 근거인 복음에 대한 배반”이라며 기독교회는 정교분리로써 구원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원로들은 정치권을 향해서도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정제되지 않은 막말, 험담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후진적 정치 행태를 벗고 국민을 위한 선의의 정책경쟁에 나서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전남 진보시민사회단체, 전광훈 목사 전라도 비하 망언 강력규탄

    전남 진보시민사회단체, 전광훈 목사 전라도 비하 망언 강력규탄

    전남지역 진보시민사회단체가 전광훈 목사의 전라도 비하 망언을 강력규탄하고 나섰다. 전남지역 진보시민사회단체는 12일 전남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광훈 목사가 지난달 5일 실촌수양관 집회에서 “전라도 빨갱이”, “전라북도와 경상도 김천하고를 묶어서 한 도를 만들어야 해”라고 한 발언은 전라도를 비하하고 지역갈등과 이념갈등을 부추기는 망언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전 목사의 ‘전라도 빨갱이’ 발언은 전라도의 명예를 실추하고 깊은 상실감을 준 막말이다”고 규탄하며 “전라도민에 사죄와 법적 처벌”을 요구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호남은 역사의 고비 때마다 분연히 일어서 이 나라를 지켜왔다”며 “호남민이 이 땅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왔음은 대다수 국민들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에 더욱 힘을 모아야할 이때, 좌파·우파·빨갱이 운운하며 시대착오적인 망언을 일삼는 전광훈의 거짓선동이야 말로 반기독교적 행위다”고 지적했다. 전남지역 진보시민사회단체는 “전광훈 일탈에 교회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정광훈의 발언은 목회자로서의 정당한 발언인지 또다른 불순한 저의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이어 “전라도인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망언을 일삼는 전광훈은 즉각 회개하고 전라도민에게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기독교계에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전광훈을 즉각 퇴출할 것을 요구했다. 수사기관에게도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할 것을 강하게 주문했다. 정부와 국회에 대해서도 “지역갈등을 부추기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왜곡 처벌 특별법’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광훈 목사는 “여신도가 나를 위해 속옷을 내리면 내 신자고 그렇지 않으면 내 교인이 아니다”, “여자가 짧은 치마를 입고 교회에 와서는 안된다”는 등 성희롱적 발언과 “마음만 연합하면 문재인을 바로 끌고 나올 수 있다”는 발언 등으로 사회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수단 쿠데타 주역 “물러나겠다”, 시위대는 “군부 물러나라”

    수단 쿠데타 주역 “물러나겠다”, 시위대는 “군부 물러나라”

    30년 동안 집권한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만든 군부 쿠데타 지도자가 쿠데타 성공 하루 만에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아와드 이븐 아우프 수단 국방장관은 12일(현지시간) 국영 텔레비전을 통해 군사위원회 위원장 직에서 물러나며 후임으로 압델 파타 압델라흐만 부란 준장이 승계한다고 발표했다. 알바시르 퇴진에 앞장선 시민들이 쿠데타 지도자들이 알바시르와 너무 가까운 인물들이라며 민간정부에 권력을 넘기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번 결정이 나왔다. 시위대는 군의 통금령 선포에 맞서 수도 하르툼에 있는 군 사령부 앞에서 야영을 하며 해산 명령을 무시하고 있다. 이들은 군부가 민간정부에 권력을 이양할 때까지 시위를 중단하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사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집권할 뜻이 없으며 군은 선거만 관리하고 물러날 생각이며 수단의 미래는 시위자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겠지만 군대로선 공공 질서를 회복하고 정정을 불안케 하는 행동은 묵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알바시르 전 대통령을 추방해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세우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븐 아우프는 2000년대 다르푸르 내전 때 군 정보기관 총수로 2007년 미국의 제재 대상에 포함됐으며 직업군인 출신인 알바시르 대통령은 1989년 6월 민선 정부를 무너뜨리고 국가비상령을 선포한 뒤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30년 동안 집권하며 수단을 이슬람 국가로 전환하고 기독교 세력을 소외시켰다. 다르푸르 내전은 2003년 다르푸르 지역 자치권을 요구하는, 기독교계를 주축으로 한 반군과 정부 간 무력 충돌에서 시작해 사망자 30만명과 난민 200만명이 발생했다. ICC는 2009년과 2010년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알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 동안 알바시르 퇴진 시위가 이어졌으며 지금까지 시위 과정에 적어도 38명이 숨졌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교황 남수단 지도자들 앞 ‘무릎’, 수단 군부-알바시르 축출 시위대 충돌할 수

    교황 남수단 지도자들 앞 ‘무릎’, 수단 군부-알바시르 축출 시위대 충돌할 수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혹한 내전을 겪은 남수단 정부와 반군 지도자들의 발에 입을 맞췄다. 교황은 11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의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이틀 동안 진행된 피정을 마치는 강론을 한 뒤 평소 아픈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이들의 발에 입을 맞추는 유례없이 낮은 모습을 보여줬다. 교황은 “내전으로 돌아가지 말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평화를 위해 나아가라”면서 “여러분 사이에 갈등과 의견 충돌이 있겠지만, 이를 여러분 사이에서만, 즉 사무실 안에만 가둬두고 사람들 앞에서는 손을 잡으라. 그러면 여러분들은 남수단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발언을 마친 뒤 갑자기 남수단 지도자들의 앞으로 가더니, 수행원의 부축을 받아 무릎을 꿇고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과 야권 지도자인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 키르 대통령을 보좌하는 부통령 세 명의 발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이날 남수단과 국경을 맞댄 수단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가뜩이나 불안한 남수단 평화협정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염려가 이런 행동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도가 1200만명의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수단은 2011년 이슬람 국가인 수단에서 독립해 한국인에게는 고(故) 이태석 신부가 헌신적으로 봉사한 곳으로 친숙하다. 이 신부는 2001년 내전과 빈곤에 시달리던 남수단의 오지 톤즈 마을에 정착한 뒤 움막 진료실을 만들어 밤낮으로 환자들을 돌보다가 2008년 대장암 선고를 받고, 2010년 선종했다. 남수단은 2013년 말 키르 대통령 지지자와 마차르 전 부통령의 추종자 사이에 교전이 벌어진 이래 5년 동안 40만명이 숨지고, 수백만명이 터전을 잃는 내전의 수렁에 빠졌다. 키르 대통령과 마차르 전 부통령은 지난해 9월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다음달까지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한편 수단을 30년 통치해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독재자로 꼽혀온 오마르 알바시르(75) 수단 대통령은 군부 쿠데타에 의해 축출돼 구금 중이다. 4개월 가까이 농성을 벌인 수단 시위대는 또 다시 군부가 통치하는 데 대해 반발하고 있어 정국이 안정될지는 의문이다. 수단 부통령이자 국방장관인 아와드 이븐 아우프는 이날 국영TV를 통해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정권을 전복했다”고 선언하며 바시르 대통령을 안전한 곳에 구금 중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AFP통신 등이 전했다. 이븐 아우프 장관은 이어 군사위원회가 앞으로 2년 동안 국가를 통치하고 과도기 말에 공정한 선거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3개월 동안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헌법의 효력을 정지한다고도 발표했다. 아울러 영공을 24시간 동안 폐쇄하고 국경 통행로를 추가 발표가 있을 때까지 폐쇄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수단 정보·보안당국은 이날 전국에서 모든 정치범을 석방한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바시르가 삼엄한 경비 속에 대통령 관저에 있다고 전했다. 또 수단 야당 지도자인 사디크 알마흐디의 아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알바시르와 많은 무슬림형제단 지도자들이 가택 연금 상태”라고 말했다. 군부 쿠데타 과정에서 정확한 인명 피해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 하르툼 거리에서 탱크와 장갑차들이 목격됐으며 국방부 건물 주변에는 군인들이 대거 배치됐다.외신은 군인들이 알바시르 대통령의 집권 여당 ‘이슬람운동’ 본부를 급습했다고 전했다. 군부가 알바시르 대통령의 축출을 발표했지만, 시위대는 민간정부를 요구하며 농성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시위 단체들의 연합인 ‘자유와 변화를 위한 연합’은 이날 국방장관의 발표가 나온 뒤 성명을 내고 “정권이 같은 얼굴들을 떠올리게 하는 군사 쿠데타를 했다”며 “우리는 쿠데타 성명의 모든 내용을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들에게 군 본부 앞과 모든 지역, 거리에서 농성을 계속할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19일 정부의 빵값 인상 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시작한 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로 번졌다. 특히 지난 6일 시위대 수천명이 국방부 건물 주변에서 텐트 농성에 나섰고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 20여명이 숨졌다. 시위를 방관하던 군부가 정권에 등을 돌리면서 알바시르는 권좌에서 밀려났다. 직업군인 출신인 알바시르 대통령은 1989년 6월 민선 정부를 무너뜨리고 국가비상령을 선포한 뒤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30년 동안 집권하며 이슬람 국가로 전환하고 기독교 세력을 소외시켰다. 다르푸르 내전은 2003년 다르푸르 지역 자치권을 요구하는, 기독교계를 주축으로 한 반군과 정부 간 무력 충돌에서 시작해 사망자 30만명과 난민 200만명이 발생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2009년과 2010년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알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3·1독립선언서 ‘신문관 판’은 가짜다”

    “3·1독립선언서 ‘신문관 판’은 가짜다”

    “최남선 신문관 판엔 현대적인 단어 써 ‘보성사 판’과 비교해 활자도 전혀 달라 33인의 명단은 27일 오후 확정했는데 신문관 판에 명단 적힌 건 정황상 안 맞아 선언서 공약 3장 최남선이 쓴 것 확실 임정 ‘민주공화제’ 표현은 세계서 처음”국가기록물로 지정된 독립선언서 2종 가운데 하나가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만해 한용운이 썼다고도 알려진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 작성자가 최남선이 확실하다는 주장도 함께 나왔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자신의 책 ‘1919’(다산초당)의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독립선언서는 현재 ‘신문관 판’과 ‘보성사 판’ 등 2종이 남아 있다. 둘 다 국가지정기록물이다. 이번에 박 교수가 가짜라고 주장한 것은 최남선이 자신의 출판사 ‘신문관’에서 제작했다고 알려진 ‘신문관 판’이다. 독립선언서는 1919년 2월 27일 밤 인쇄됐다. 최남선이 신문관에서 활판을 짠 뒤 발각을 우려해 이를 최린에게 맡겨 두고, 보성사 대표 이종일에게 “최린의 집에 있는 활판을 가져다 대신 인쇄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종일이 이를 보성사로 가져와 인쇄하려 했지만, 활판 위아래가 길어 인쇄할 수 없었다. 이종일은 활판을 다시 짜 인쇄한다. 그런데 이날 저녁 민족대표 명단을 두고 기독교계의 회의가 길어지며 민족대표 2명이 빠지고 4명이 추가되면서 민족대표도 31인에서 33인으로 부랴부랴 바뀐다. 박 교수는 “신문관 판을 보성사에서 인쇄했다면 활자가 같아야 하는데 전혀 다르다. 또 신문관 판에 현대적인 단어가 들어 있고 맞춤법이 수정된 점, 33인의 명단이 27일 오후에 확정됐는데 이보다 앞서 만든 신문관 판에 명단이 적힌 것도 정황상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와 관련, “해방 이후 다시 조판한 것을 한 행사에서 나눠 준 것이 신문관 판으로 잘못 알려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만해 한용운이 썼다는 주장이 제기된 독립선언서 공약 3장 부분에 대해서도 최린의 경성지방법원 예심 진술을 들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박 교수는 “한용운이 선언서를 자신이 짓겠다고 주장했지만, 선언서만은 육당(최남선)이 짓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이 당시 최린의 진술 내용”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또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에 관해 “‘민주공화제´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세계 최초”라고 덧붙였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몰몬교 마크 피터슨 교수 “경찰, 로버트 할리는 무죄” 주장

    몰몬교 마크 피터슨 교수 “경찰, 로버트 할리는 무죄” 주장

    마크 피터슨 미국 브리검영대 교수가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된 방송인 로버트 할리(한국명 하일·60)의 무죄를 주장했다. 피터슨 교수는 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6개월 전 다른 연예인이 마약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은 그 연예인이 잡혔을 때 ‘마약을 한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대면 형량을 가볍게 해 주겠다’며 회유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경찰은 할리가 마약을 했다는 증거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게 지난해 10월에서 11월 사이”라면서 “할리가 의심받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나에게 이야기했다. 할리는 ‘내가 마약 투약 현장에 없었다고 이야기했는데 경찰이 나를 유죄라고 확신하며 진술을 강요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찰이) 할리에게 정말 예의 없이 굴었다. 최근 한국 연예인들의 마약 사건이 다시 터지면서 경찰 고위층이 연예인 마약을 잡기 위해 사건을 찾던 중 할리를 대상으로 잡고 재수사를 지시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한 마약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고 알려진 정황 자체도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피터슨 교수는 “누군가에게 마약 혐의가 있는데 그것을 할리가 뒤집어쓴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그의 아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전했다. 지난 5일 마지막으로 로버트 할리와 만난 그는 경찰에서 할리에 관해 증언해 달라고 한다면 언제든지 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피터슨 교수는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할리는 죄가 없다”며 “그의 아는 사람이 죄인인데 벌을 적게 받으려고 할리를 지목했다. 슬픈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미국 변호사 출신 피터슨 교수는 할리와 같은 몰몬교 신자로 오랜 기간 친분을 쌓아왔다. 몰몬교는 초대 교회를 회복했다고 주장하는 조셉 스미스에 의해 1830년 창시된 기독교계 신흥종교다. 특히 술, 담배, 마약과 함께 커피, 홍차, 녹차 등의 음료를 금하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특징이다. 몰몬교의 본거지인 미국 유타주 출신의 로버트 할리는 한국에 몰몬교 포교를 위해 왔다. 그런 그가 필로폰 투약을 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최후의 1인, 최후의 1각까지 일어나라” 독립 열망 불 지폈다

    “최후의 1인, 최후의 1각까지 일어나라” 독립 열망 불 지폈다

    재심(再審). 확정된 판결의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위법행위나 중대한 하자가 있었음이 확인되면 사건을 다시 심판할 수 있다. 군부독재 시절 불법 감금과 고문에 못 이겨 토해낸 거짓 자백과 거짓 증거로 유죄판결을 받은 국가보안법 관련 피고인들은 반세기에 이르러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일제 치하에서 일제가 만든 법으로 일제 사법부에 의해 내란범·치안방해범·강도 등으로 몰린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재심이 이뤄지길 바라며, 일제의 판결문에서조차 고스란히 드러난 투사들의 독립 의지를 재구성했다.#손병희 외 47명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 일본 형법상 소요죄 “피고인들은 조선이 제국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립국을 형성하는 것을 기도했다. 조선민족 대표자 손병희 등의 이름으로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선언서를 비밀리에 인쇄하여 조선 전 도(道)에 배부했다. 민중을 선동하여 왕성하게 조선독립 시위를 일으켰다.” (1920년 8월 9일 경성지방법원 다치가와 판사가 쓴 판결문에 담긴 공소사실 일부)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민족대표 33인을 비롯해 초기에 ‘3·1운동’을 주도한 48명은 일제의 판결문에 ‘치안 방해를 선동한 자’로 비교적 가볍게 규정됐다. 독립선언을 주도한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 선생은 “한때 친일파에 속했다가 병합(한일합병) 이후 자신에 대한 대우가 정당하지 못하다고 불쾌감이 있던 자로,…(중략) 교당 신축 기부금을 반납하라는 명을 듣자 크게 불만을 품고” 독립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폄하됐다. 그러나 일제는 판결문 속 “독립의 희망을 품은” 48명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불러온 힘을 결코 모르지 않았다. “불온한 문서”로 지목된 독립선언문 한 장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알았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 판사들은 사건 관할에 관한 결정서에서 “독립 사조가 조선에 널리 퍼져 인심이 동요했고, 100만 신도의 추앙을 받는 천도교 손병희의 이름을 거명한 독립선언서는 민중 선동의 커다란 효과로 나타났다”면서 “독립만세의 소리가 도시와 시골을 뒤덮었다”고 두려워했다.●결정·판결문 4건 모두 “최후의 1인” 대목 인용 천도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기획된 독립운동은 순식간에 종교와 계층을 아울렀고, 전국에 만세운동을 촉발시켜 독립의 불씨를 키워냈다. 손병희, 보성고등보통학교장 최린, 도사 권동진·오세창 등 천도교 핵심 인사들은 1918년 말부터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그해 초 미국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이 제안한 ‘새로운 전후(戰後) 질서의 14개조 원칙’ 가운데 ‘민족자결주의’(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를 빌려 세계에 조선의 식민지배 상황과 독립 의지를 밝히고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대중화·일원화·비폭력’의 독립운동 원칙은 손병희가 세웠고 구체적인 실행은 최린이 맡았다.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인 최남선은 “조선은 독립국임과 조선인은 자주민임을 선언한다”로 시작하는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이승훈(판결문엔 본명 이인환) 선생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준비하던 기독교계도 천도교와 함께하기로 했다. 1919년 2월 21일 최린은 이승훈에게 “독립운동은 민족 전체의 문제로 종교가 다르고 같음에 관계없이 합동해야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사흘 뒤 기독교계가 합류하기로 했고, 장로교 길선주·양전백 목사, 감리교 신흥식 목사, YMCA 간사 박희도 등이 이승훈과 민족대표로 참여하기로 했다. 27일엔 강원 양양의 신흥사 승려 한용운과 경남 합천 해인사 승려 백상규(백용성) 등 불교계 인사들도 동참하기로 해 종교계 연합을 이뤘다. 별도로 독립선언을 준비하던 연희전문학교 김원벽, 보성법률상업학교 강기덕 등 학생 대표들도 종교계의 운동에 합류했다. 2월 27일 오후 5시부터 밤 11시까지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 2만 1000장이 인쇄됐다. 48명 가운데 인쇄소 사장 이종일과 공장 감독인 김홍규도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헌법 문란의 문서를 인쇄(또는 방조)한 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인쇄가 끝나자마자 선언서는 서울은 물론 전남, 전북, 충북, 강원, 함경, 평안 등 전국으로 퍼졌다. 48명 중에는 독립선언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서울을 출발한 지 2~3일이 지나 일본 도쿄와 만주에서 체포된 교사들도 있었다. 3월 1일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기로 한 민족대표들은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음식점인 태화관으로 장소를 옮겼다. 29명이 참석한 가운데 독립선언서가 낭독됐다. 이들은 경찰에 자수해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일제는 독립선언서 가운데 “최후의 일각(一刻), 최후의 일인(一人)에 이르기까지 독립의 뜻을 밝혀 완성해야 한다”는 대목에 특히 주목했다. 48명에 대한 법원의 결정문과 판결문 4건에는 모두 이 대목이 인용됐다. 일제는 이 문장에서 조선의 독립 의지를 가늠했다.●일제, 3·1운동 초기 주도자들 극형 시도 일제는 독립운동에 불을 지핀 민족대표 등 3·1운동 초기 주도자들을 극형에 처하려 했다. 이들을 수사한 일제 검사는 보안법·출판법 위반 혐의로 1919년 3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 예심을 청구했고, 8월 1일 경성지방법원 예심판사 나가시마는 일본 형법 77조 내란죄에 해당하므로 고등법원의 특별 권한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나가시마는 “제국 영토의 일부분인 조선을 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할 목적으로 전 조선인에게 교란을 선동하고 헌법을 문란하게 하는 불온한 문서를 공표함으로써 각지에서 조선 독립만세를 게시하게 하고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폭동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건을 심리한 고등법원 판사 와타나베, 요코다, 이시카와, 미즈노, 하라는 1920년 3월 22일 “‘최후의 일각, 최후의 일인’까지라는 표현으로 독립의사를 발표했으나, 폭동을 일으키거나 교사한 문구는 없다”며 내란죄가 되지 않는다고 봤고, 사건의 관할이 경성지법에 있다고 결정했다. 민족대표들을 강하게 처벌할 경우 조선인들의 반감을 키울 것을 우려해 일제 의회 등이 법원에 가벼운 형벌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사건을 맡게 된 경성지방법원 다치가와 판사는 1920년 8월 9일 “공소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고등법원의 결정문에서 이 사건이 경성지법 관할이라고만 했을 뿐 경성지법에 사건을 송치한다고 밝히지 않았다”는 허헌 변호사의 ‘관할 위배’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사의 불복으로 경성복심법원으로 다시 재판이 넘어갔고, 그해 10월 20일 48명 중 37명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손병희·최린·권동진·오세창·이종일·이승훈·함태영·한용운은 독립선언서의 작성과 인쇄, 배포에 주동적 역할을 하고 조선독립만세를 불러 치안을 방해한 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보안법 위반 혐의의 최고 형량이 2년, 출판법 위반이 1년으로 이들은 혐의별 최고 형량을 선고받았다.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최남선은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3·1운동 100년]베이징서 활동 독립운동가 253명 발굴… 유적지 지도로 제작 답사

    [3·1운동 100년]베이징서 활동 독립운동가 253명 발굴… 유적지 지도로 제작 답사

    작년 재중화북항일역사기념사업회 조직 손정도 선생 조선어 설교한 충원먼교회 고려기독교청년회 독립운동 근거지로 김산 전기소설 ‘아리랑’ 쓴 스노 부인 집 ‘중안빈관’에 아리랑 한글 안내판 걸기로 홍성림 회장 “우리의 역사 스스로 찾아야”중국에는 여덟 곳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를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경제 개발에 밀려 독립운동 유적지들이 제대로 조명조차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한국인들은 지난해 3·1절을 계기로 ‘재중화북항일역사기념사업회’라는 시민단체를 조직했다. 아직 회원이 채 100명이 되지 않는 작은 조직이지만 4년 전부터 이어 온 역사 연구에 대한 열정과 내공만은 상당하다. 재중화북항일역사기념사업회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열리는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뒤 3월 한 달 동안 베이징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따라 밟는 답사를 세 차례 진행할 예정이다. 베이징에서 열리는 독립운동가 루트 답사에는 대구 지역의 항일 역사 연구단체도 참가한다. 지난 2일 진행된 답사에서는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된 감리교회인 충원먼교회(崇文門堂)를 찾았다. 여기서 1911년 기독교계 독립운동가의 대표적인 인물인 손정도 선생이 전도사 시절 중국인과 조선인들을 위해 설교를 시작했다. 손 선생이 나라 잃은 조선인을 모아 모국어로 설교한 이래 조선어 설교의 역사는 108년 동안 이어졌으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교회는 손 선생뿐 아니라 1920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감리교회 동아시아 대표총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했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이 회의 이후 고려기독교청년회가 설립돼 베이징 항일독립운동 활동의 근간이 됐다. 올해는 마오쩌둥 주석이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 수립을 선포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로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책을 통해 공산당을 서방 세계에 알린 에드거 스노 부부의 베이징 거주지에는 기념관이 건립됐다. 스노 부부가 1935~37년 살았던 중안빈관(中安賓館)은 2008년 중국 언론 북경만보에 실린 기사를 토대로 이곳이 스노 부부의 옛 집터란 사실이 밝혀졌고, 2011년에는 호텔 한편에 전시 공간이 마련됐다. 하지만 스노의 부인인 님 웨일스가 한국의 독립운동가 김산을 만나 쓴 전기소설 ‘아리랑’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재중화북항일역사기념사업회는 앞으로 한국어와 중국어로 웨일스와 김산, 그리고 아리랑에 대한 안내판을 만들어 벽에 걸기로 중안빈관 측과 협의했다. 사업회가 그동안 발굴한 베이징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253명에 이른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행적지 31곳을 포함해 베이징의 독립운동 유적지는 지도로 제작됐으며 현재도 계속 정보가 새롭게 추가되고 있다. 홍성림(52) 재중화북항일역사기념사업회장은 27일 “우리의 역사를 스스로 찾지 않으면 누가 돌아보겠는가”라며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는 왜 선조들이 독립운동에 헌신했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주제에 대해 접근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나 답사가 개별적인 인물이나 사건 중심으로 이뤄진 것 같다”면서 “역사를 단편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흐름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英성공회, 신자 감소로 全교회 일요 예배 의무 폐지

    英성공회, 신자 감소로 全교회 일요 예배 의무 폐지

    영국 성공회가 신자 감소와 신부들의 과로를 이유로 모든 교회들이 일요일마다 예배를 보는 것을 의무화한 규정을 400여년만에 폐지했다. 기독교계 사상 처음으로 모든 교회가 매주 일요일마다 빠짐없이 예배를 본다는 고정관념이 깨지게 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성공회는 지난 22일(현지시간) 런던에서 회의를 열어 모든 교회들이 일요일마다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되는 변화를 승인했다고 가디언이 23일 전했다. 찬성은 230표, 반대는 2표에 그쳤다. 이러한 규정 변화를 제안한 윌레스덴의 피트 브로드벤트 주교는 “이는 단지 이미 행해지고 있는 일들을 더 쉽게 행해지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관료주의를 타파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1603년 제정된 교회법은 모든 교회의 신부들에게 일요일마다 아침 저녁으로 신자들을 위한 예배를 볼 것을 의무화했다. 성공회가 416년을 이어온 전통에 변화를 준 것은 성직자와 신도 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특히 수십년에 걸쳐 신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많은 신부들, 특히 농촌 지역의 신부들이 여러 개의 교회를 담당해야 하게 됐다. 이에 따라 신부들로부터 모든 교회들이 일요일마다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되도록 허용해줄 것을 주교들에게 요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일부 성직자는 주교의 특별 허가 아래 한 교회에 신자들을 모아 합동 예배를 진행하기도 한다. 결국 성공회는 ‘모든 교회에서 예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각의 성직자 담당 구역에서 최소 1개 교회만 일요예배를 드리는 방안으로 규정을 완화했다. 이번 교회법 수정안은 영국 왕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승인을 거쳐 발효될 예정이다. 그러나 영국 성공회는 교회법 수정이 일요 예배 의미 축소 등 다른 뜻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영국 성공회 대변인은 “일요일 예배는 여전히 영국 성공회 성직자들에게 핵심적인 책무”라면서 “이번 교회법 수정은 여러 교회를 돌며 예배를 진행해야 하는 성직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3·1운동 진원지 서울 한복판서 ‘한성임시정부’ 수립 선포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3·1운동 진원지 서울 한복판서 ‘한성임시정부’ 수립 선포

    <1부> 새 역사 임시정부의 형성 ③서울 ‘한성임시정부’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지자 일제는 헌병을 동원해 주모자를 검거·학살했다. 특히 조선의 수도이자 이번 운동의 진원지인 서울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민족은 대담하게 적지(敵地)가 된 서울 한복판에서 임시정부 설립을 선언했다. 바로 노령정부(러시아)와 상하이정부(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수립된 한성정부다. 이 정부는 인민의 뜻을 수렴하기 위해 민주적 절차를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3·1운동 당시 감리교 전도사 이규갑(1888∼1970)은 평양 대표로 시위에 참석했다가 일제의 검거령으로 친척 집에 숨어 있었다. 3월 5일 오후 9시쯤 그에게 동지 8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이번 시위로 우리나라가 독립이 될 수도 있으니 서둘러 임시정부를 수립하자”고 제안했다. 이규갑은 “정부를 세우는 건 한두 사람의 기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의 총의를 모을 지역 대표부터 뽑자”고 설득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임정이 만들어졌다. 임정 설립 주도자는 검사 출신 홍면희(홍진·1877~1946)와 목사 출신 이규갑 등이다. 이들은 조선 황실 인사나 독립운동가 33인 등과 관계없는 순수 민간인이었다. 17일에는 검사 한성오(생몰연대 미상)의 집에 20여명이 모여 임시정부 준비위원회를 열었다. 정부 명칭을 ‘한성임시정부’로 정하고 민주공화제에 기반한 집정관총재 제도를 택했다. 이들은 보름 뒤인 4월 2일 인천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에서 ‘13도 대표자회의’를 열기로 했다. 각 도 대표들이 모여 민주적으로 결의하면 조선 국민 전체 의견으로 봐도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임정 준비위는 곧바로 전국 각지를 돌며 민족 대표 25명을 모집해 13도 대표자회의를 개최했다. 당시 풍경을 묘사한 이규갑의 증언이다. “당일(4월 2일) 아침 권혁채와 홍면희, 안상덕 등과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인천으로 향했다. 그때는 3·1운동 뒤 각 지역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던 때라 일경(일본 경찰)의 경계가 심했다. 인천역에 내리자 불심검문을 받았다. 홍면희는 변호사여서 무사했지만 나는 검색을 당했다. 그러자 홍면희가 ‘이 사람은 약장사로 우리와 일행’이라고 둘러대 위기를 면했다.” 이날 만국공원에 찾아온 이들은 많지 않았다. 종교계와 서울·경기 지역 대표들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13도 대표자회의 장소를 만국공원으로 정한 것은 당시 이곳이 일본인을 중심으로 외국인이 모여 살던 곳이었기에 조선 독립 의지를 보여줄 좋은 장소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대표자회의 참석자들은 같은 달 23일 서울 종로 중식당 봉춘관에서 총회 격인 국민대회를 열어 임시정부를 선포하고 보신각에서 민중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3·1운동의 여파가 끝나지 않은 때 한번 더 일제의 허를 찌르겠다는 전략이었다. 실제로 이날 종로 일대에는 임시정부 선포문과 국민대회 취지서 등이 뿌려졌다. 집정관총재 이승만(1875~1965)과 국무총리 이동휘(1873∼1935), 내무총장 이동녕(1869∼1940) 등 각료 명단도 나왔다. 이런 내용은 미국의 UP통신(현 UPI)을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됐다. 덕분에 한성정부는 국내외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임시정부가 됐다.●현실적 제약으로 ‘미완의 시도’ 평가도 다만 한성정부가 완전하게 수립된 임정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인천에서 열린 13도 대표자회의는 성원을 채우지 못했고 서울의 국민대회 역시 소수 학생들이 전단을 살포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는 것이다. 노령·상하이정부와 달리 국민 전체의 뜻을 반영해 민주공화정을 탄생시키고자 했지만 일제의 압박 등 현실적 제약이 많아 ‘미완의 시도’에 그쳤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이현희(1937~2010) 전 성신여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한성정부는 13도 대표나 임시정부 준비위원회 위원들을 집행부 임명에서 배제하는 등 공평무사한 인사를 단행하려고 했다. 절차적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이 덕분에 1987년 9차 개헌 당시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의 법통이 (한성정부를 계승한) 임시정부에 있음을 명확히 선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논란의 중심에 선 임정 초대 대통령 “(해방 당시) 대한민국이 갓 도입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정부와 국민 모두 낯설고 서툴렀다. 이승만 정부는 (불가피하게 권위주의 방식으로 통치했지만) 그래도 헌법을 정지시키거나 국회를 해산하거나 언론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훼손하지는 않았다.”(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 “이승만 정권에 대한 평가는 (같은 진영인) 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조차 좋았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독재·반공 이데올로기는 이승만 정권과 연관성이 높기에 그를 치켜세워야 (독재·반공 정치체제가) 합리화된다. 이승만의 재평가 시도는 반대편을 종북이나 용공세력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다.”(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한성정부 집정관총재에 추대돼 훗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오르는 우남 이승만은 지금까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그를 비판하는 이들은 “독립운동의 분열과 남북 분단, 한국전쟁 당시 그릇된 대처, 부정부패, 독재정치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꼬집는다. 하지만 이승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마음놓고 그를 비난하는 자체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한 그의 공로”라며 “과(過)보다 공(功)이 훨씬 큰 만큼 업적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1896년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독립협회가 만들어졌다. 자주독립과 천부인권 존중, 한글 사용 등을 강조했는데, 배후에는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1858~1902) 등 서양 선교사들이 있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만들어 조선인에게 영어와 민주주의를 가르쳤다. 이승만은 이 학당의 학생이었다.●“일단 비위 거슬리면 타인 이해하려 안해” 독립협회는 종종 대중 집회인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배재학당 학생들도 대거 참여했다. 이승만은 여기서 주도적 역할을 하다가 고종 폐위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7년간 옥살이를 했다. 이때부터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조선사회에 환멸을 느꼈다.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면 반드시 기독교 이념에 입각한 미국식 민주주의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믿었다. 배재학당의 경험과 기독교의 이분법적 선악 개념 등이 더해져 훗날 남과 타협하지 않는 특유의 성격이 생겨난 것 같다. 이승만을 가까이서 도왔던 정치인 허정(1896∼1988)은 “평소 장난도 잘 치고 유머러스했지만 일단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조금도 자기 뜻을 굽히거나 남의 사정을 봐주려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한성정부 집정관총재를 시작으로 중국 상하이로 통합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첫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그는 임정 대통령 재임기간 5년 6개월 가운데 상하이에는 반년 정도만 머물렀다. 대부분 기간은 미국에 혼자 머물며 전보를 이용해 ‘원격 통치’를 했다. 이 때문에 이동휘(1873~1935), 안창호(1878~1938) 등과 마찰이 생겼고 훗날 임정 전체가 내분에 휩싸이는 원인이 됐다.●“정부가 단 한 사람 때문에 법을 바꾼 사례” 그는 또 한성정부 집정관총재에 임명된 때부터 스스로를 집정관이 아닌 ‘대통령’(president)으로 칭해 논란이 됐다. 교민 성금 유용 의혹과 윤봉길(1908~1932) 의거 비난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최근에는 1918년 10월 그가 미국에서 작성한 1차 세계대전 징집 카드에 국적을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적은 것이 알려져 비난을 샀다. 당시 미국에서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의도적 오기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주용(53) 원광대 교수는 “원래 상하이정부는 국무총리 제도였다. 하지만 이승만이 끝까지 대통령 직함을 고집해 결국 임정이 1919년 9월 개헌 때 통치제도를 대통령제로 바꿨다. 정부가 한 사람 때문에 법을 바꾼 보기 드문 사례”라고 설명했다. ●루스벨트·윌슨과 인연… 지도자로 급부상 그럼에도 이승만은 1919년 4월 15일 중국 길림성에서 선포된 고려임시정부에서 국무총리로, 17일 평안도에 설립된 신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국방총리로, 19일 인천에서 수립된 조선민국임시정부에서 집정관총재에 선임되는 등 거의 모든 임정에서 1, 2인자로 지목됐다. 조선 사회는 왜 이승만을 새 나라의 최고 지도자로 여겼을까. 그는 31살이던 1905년 8월 기독교계의 주선으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를 만나 한국의 독립을 청원한 경험이 있다. 또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해 약소 민족에게 희망을 준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1856~1924) 역시 이승만이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 학교 총장이었다. 당시 한국인으로서 갖기 힘든 경력이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이승만은 1차 세계대전 뒤 최강국이 된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외교 카드’였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생각나눔] 5·18광장 퀴어축제 ‘광주정신 계승’ vs ‘패륜적 문화행사’

    [생각나눔] 5·18광장 퀴어축제 ‘광주정신 계승’ vs ‘패륜적 문화행사’

    ‘광주, 무지개로 발광(光)하다’를 슬로건을 내세운 광주퀴어문화축제가 21일 오후 1시 광주시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다. ‘인권의 도시’를 표방하는 광주에서 열리는 첫 번째 퀴어축제다. 그러나 일부 기독교계 등이 반대에 나서면서 충돌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광주정신 확대 계승한 것” vs “오일팔 광장 퀴어축제 반대” 광주시는 2012년 처음으로 5·18정신을 계승하는 광주인권헌장을 시민단체 등과 함께 논의해 제정했다. 518글자로 이뤄진 인권헌장 전문은 5개 장과 18개 조문으로 구성돼 있다. 이 인권헌장은 12조는 성소수자의 성적지향을 보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런 점에 비춰 광주 5·18광장에서 퀴어축제가 열리는 것은 광주정신을 계승하는 의미라는 것이다. 나경채 정의당 전 대표는 “퀴어문화축제가 민주인권평화의 도시인 광주, 그것도 5·18광장에서 열린다는 것은 우리 도시의 정체성을 확장하는 일이다”면서 “대구에서 퀴어축제가 10회나 열린 것에 비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광주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혐오문화대응 네트워크’도 “차별과 배제의 고통을 아는 광주야말로 모든 소수자를 아우르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며 “퀴어축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광주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광주시기독교교단협의회는 지난 18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협의회는 동성애자(퀴어)들 또한 인격체로서 존중한다”면서도 “하지만 동성애자들의 축제라는 ‘퀴어축제’를 민주의 성지인 5·18광장에서 여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5·18 구속부상자회 비상대위원회도 “신성하고 빛나는 역사의 현장 민주성지의 중심 5·18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퀴어축제는 오월 영령들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저지르는 패륜적 문화행사”라고 말했다. 이들은 ‘광주퀴어문화축제’ 개최 불허를 이용섭 광주시장에게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에 광주시는 19일 오후 정종제 행정부시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갖고 갈등과 마찰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다. ●늘어나는 지역 퀴어축제와 충돌 올해는 전주, 대구, 서울, 인천, 제주, 부산에서 퀴어축제가 열렸다. 퀴어축제를 앞둔 광주를 포함해 전주, 인천에서는 올해 첫 번째 행사다. 성소수자의 축제가 늘어나고, 반대단체의 반발도 거세지면서 충돌이 잦아지고 있다. 실제 지난 6월 제10회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의 퍼레이드가 사실상 저지됐다. 지난달 29일 열린 제주퀴어축제에서도 반대단체들이 퍼레이드를 30분여 가로막혔다. 지난달 열린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는 축제와 퍼레이드가 모두 무산됐다. 오는 21일 광주 5·18광장에서 열리는 퀴어축제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광주시기독교교단협의회와 5개구 대표단은 21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광주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기도회를 5·18민주광장에서 가질 예정이다. 이에 경찰은 퀴어축제와 기도회가 같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만큼 중간에 25m짜리 완충펜스를 설치하고 병력을 배치해 양측의 충돌을 막을 방침이다. 심기용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는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 행진을 가로막은 것이 유효한 행동이라고 알려진 후 인천에서 더 조직적이고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졌다”며 “모든 시민들이 쓸 수 있는 공간은 성소수자들도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혐오 허무는 사람들] ‘혐오’ 이제 그만… 소통·관심 가지면 편가르기 사라진다

    [혐오 허무는 사람들] ‘혐오’ 이제 그만… 소통·관심 가지면 편가르기 사라진다

    우리 일상 속 깊숙이 파고든 혐오는 항상 이분법적인 대결구도를 만들어낸다. 여성과 남성, 성소수자와 기독교계, 노인과 젊은이는 서로 편을 가르고 ‘혐오’ 대결을 펼친다. 하지만 이런 낡은 구도에 균열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는 목회자,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남성, 노인 봉사에 나선 청년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 만든 혐오를 허물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봤다.●“개신교도도 성소수자에게 관심을”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목사는 성소수자 인권 지킴이다.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대표적 집단인 개신교계에서 무지갯빛 옷을 입고 퀴어퍼레이드에 나섰다는 점에서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이단이라는 논란도 불거졌다. 하지만 임 목사는 “모든 개신교가 성소수자를 거절하진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성소수자 문제를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임 목사는 오히려 “개신교의 성소수자 혐오가 기독교적 가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예수님도 당시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사람들과 함께했고 그것이 바로 기독교적 가치”라면서 “모두를 사랑해야 할 기독교가 오히려 앞장서서 성소수자를 죄인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평등한 삶을 막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 목사는 성소수자 혐오 치유법으로 ‘진짜 관심’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어떤 마음으로 교회에 나가는지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듣고 금기시하기보다는 대화의 장을 열면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여성에 대한 일상적 차별부터 해소해야” 최근 ‘여성 혐오’를 혐오하며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9월 독서 토론으로 시작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남함페)’은 20~30대 남성 8명과 여성 4명을 주축으로 1년간 페미니즘 공부 모임을 해왔다. 반(反)성폭력 스티커를 남자화장실에 붙이는 운동에 나설 준비도 하고 있다. 남함페 회원들은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남성으로서 특권을 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운영진인 A씨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기 전에는 요즘 세상에 성차별이 어딨나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남성으로서 내 삶을 돌아보고 세상을 보는 시선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여자 아이돌 가수는 각종 위협을 받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은 현실”이라면서 “차별과 폭력을 겪는 여성의 경험을 혐오 표현으로 부정하고 왜곡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남함페’ 운영진은 여성 혐오의 원인이 ‘익숙함’에 있다고 봤다. 우리 사회가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에 대한 성희롱과 성차별을 비판하고, 방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여성 혐오를 지우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소통만 하면 사라질 노인 혐오” 국민대 노인 봉사동아리 ‘레오’와 연합동아리 ‘코코볼’ 소속 청년들은 노인 혐오가 ‘소통의 부재’에서 온다고 보고 소통 활동에 나섰다. ‘레오’ 회원들은 격주로 독거노인을 찾아 말동무를 하고 집안일을 돕는다. 이석중(21) 대표는 “일부 노인의 행동을 노인 전체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면서 “틀딱충 같은 혐오 표현은 장난으로라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코볼’ 회원들은 노인복지관과 연계해 손주 역할을 자처한다. 박서연(23) 회장은 “고령화사회에서 노인들이 가장 많은 도움이 필요한 취약층”이라면서 “디지털 매체로 대화하는 게 익숙해진 청년들이 노인과 오프라인에서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두 청년은 “소통이 없으니 노인에 대해 잘 모른다”면서 “노인 봉사를 직접 해 보면 노인들이 뭐든 배우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소통을 거듭 강조했다. 이씨는 “일부 노인의 행동을 전체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면서 “약자인 모습이 노출되는 게 두려워 사회로 나오길 꺼려하는 분들을 교류하도록 돕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노인들이 정보화 시대에 적응해 사회 구성원으로 제 몫을 하도록 정책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이영표 자서전 논란 “출산은 하나님이 주신 고통…아내에게 무통주사 맞지 말자고 했다”

    이영표 자서전 논란 “출산은 하나님이 주신 고통…아내에게 무통주사 맞지 말자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영표 KBS 축구 해설위원의 자서전 내용이 온라인 상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아내에게 출산의 고통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무통주사를 맞지 말자고 권유했다는 대목 때문이다. 이영표 위원은 지난 6월 말 신앙에 대한 소신을 담은 에세이 책 ‘말하지 않아야 할 때: 이영표의 말’을 출간했다. 이 위원이 2014년 1월부터 지난 5월까지 기독교 관련 출판사의 회보에 연재한 글을 묶은 책이다. 이 위원이 축구선수로서, 스포츠인으로서 또 신앙인으로서 삶에서 받은 영감을 써내려 간 것이라고 출판사는 설명했다.논란이 된 내용은 ‘무통주사’라는 챕터에 나온다. 이 의원은 “우리 가정에 셋째가 생겼다.(중략) 간호사가 요즘 거의 모든 산모가 이 주사를 맞는다며 통증을 없애 주는 무통주사 의향서를 가지고 왔다”며 출산 과정에 생긴 일을 소개했다. 그는 “나는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을 주신 것과 남자에게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다고 하신 창세기 3장 16절을 찾아 읽었고, 주님께서 주신 해산의 고통이라면 피하지 말자 이야기했다”며 “첫째와 둘째 모두 무통주사 없이 출산하여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아내는 잠시 고민하더니 내 의견에 따라 무통주사를 맞지 않고 출산하기로 하였다”고 적었다. 이 의원은 이어 “말씀에 따라 살려는 노력은 힘들고 고통스럽다”며 “아내와 나는 앞으로도 쉽게 사는 방법과 말씀대로 사는 방법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다. 그때마다 주님의 은혜로 선한 선택을 함으로 날마다 기뻐하며 살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이런 내용의 자서전은 한 인터넷 기독교 언론사가 지난 1일 기사화하면서 소셜미디어(SNS) 상에 퍼지기 시작했다. 기독교에 대한 혐오 정서가 댓글 등을 통해 터져 나오는 모양새다. 많은 네티즌이 성서의 내용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한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출산 과정에서 무통주사를 맞는 산모들은 ‘선하지 않은 선택’을 한 것이냐는 비판도 제기했다. 기독교계에서는 이 위원이 자서전에서 밝힌 개인적인 의견을 공론화해서 문제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우려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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