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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안녕! 2004/우득정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8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송년 만찬에서 “돌이켜보면 나도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말로 올 한해의 소회를 대신했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에서도 보람과 후회, 기쁨과 절망이 교차한 한해였음을 고백한 것이리라. 언뜻 손꼽아봐도 대선자금 수사와 현역 국회의원 무더기 구속-대통령 탄핵-17대 총선 여당 압승-탄핵기각-신행정수도 위헌결정-4대 개혁입법 대립 등 노 대통령으로서도 굴절과 희비가 점철된 험로를 헤치고 온 것 같다. 그렇다면 서민들은 어떨까. 실업자와 이혼, 교육·통신비가 증가하고 불황의 지표라는 소주 소비가 늘었다는 통계청의 백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올해 대차대조표의 끝머리에 고단했던 한해로 기록할 것이다. 정치권 한 인사의 표현대로 ‘광기’가 난무하는 가운데 사사건건 대립하고 찢기고 발기었다. 상처투성이의 군상들이 양진영으로 나누어져 이전투구식 소모전만 한 꼴이다. 전투중 나뒹군 부상자들에게 긴급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천사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삶에 지친 낙오자들은 어느 날엔가 솥단지를 찌그러뜨리며 ‘SOS’를 타전하고, 개방의 해일이 목젖까지 차오른 농민들은 며느리, 손자 손을 이끌고 서울을 향해 분노의 발길을 내달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간판을 바꿔다는 동네 구멍가게, 길가 두개 차선을 점거한 택시들의 기다림 행렬…. 행락철마다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부자들마저 18억원짜리 아파트에 세금 60만원을 더 붙이려 한다며 난리다. 유영철이 희대의 살인극으로 전 국민을 전율케 하고 노(怒)한 하늘이 지축을 뒤흔들어 수많은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2004년. 없는 사람은 생존의 몸부림으로, 있는 사람은 마음고생만 했다는 2004년. 그렇다고 올해의 행복지수는 과연 ‘0’이었을까. 저울추가 행복보다는 불행쪽으로 다소 기울었다는 사람이 많을지는 몰라도 자포자기해야 할 정도로 완전히 기울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여전히 핏대를 세우며 전의를 가다듬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누구나 인생 전체로 보면 행복지수 총량은 엇비슷하다고 한다. 눈높이를 행복에 맞추면 행복이, 불행에 맞추면 불행이 높게 보일 뿐이다. 새해에는 행복에 눈높이를 맞추고 웃고 싶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30일 TV 하이라이트]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5분) 성형 부작용으로 얼굴을 잃어버린 ‘선풍기 아줌마’ 한미옥 씨. 그녀가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2개월. 크리스마스를 맞아 그녀에게 하룻밤의 외박이 허락되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스무 살 시절 같이 가수 활동을 하던 친구와 함께하는 그녀의 크리스마스를 따라가 본다. ●생방송 쟁점토론(YTN 오후3시10분)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시도와 행정수도 이전 위헌 판결, 이라크 파병에 따른 김선일씨의 안타까운 죽음, 최근 국가보안법 존폐를 둘러싼 문제까지 올해는 여느 해보다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와 사건들이 많았다. 핫이슈가 아닌 2004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책, 내게로 오다(EBS 오후 11시40분) 수도자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삶을 조화시키며 살아온 이해인 수녀.64년부터 40년간 인내와 기다림의 수도생활을 통해 갖게 된 ‘기쁨’. 그 ‘기쁨’을 담아 총 95편의 시와 산문을 엮어낸 작품집 ‘기쁨이 열리는 창’을 잔잔한 영상과 낭독으로 만나본다. ●국토체험 서바이벌(청춘예찬)(iTV 오후 4시20분) 싱그럽고 열정적인 청춘들의 아름다운 도전. 우정과 사랑 사이, 내가 살아남느냐, 네가 살아남느냐의 갈림길에 선 남자 참가자 9명과 여자 참가자 9명의 승부가 펼쳐진다. 제7관문은 민족의 성지 임진각에서, 제8관문은 문화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부천에서 이어진다. ●논스톱5(MBC 오후 6시50분)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혜선. 경준과 승기는 혜선이 화를 낼지, 안 낼지를 두고 내기를 한다. 한편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상한 용만은 지우와 상의 끝에 아이들을 하나 둘 이정의 다락방으로 쫓아낸다. 춥지만 다락방에서 도란도란 다정하게 지내는 아이들. 용만과 지우는 점점 외로워한다. ●용서(KBS2 오전 9시) 순복은 인영에게 짐도 다 싸 놓았으니 세찬을 데리고 나가라고 한다. 형우가 말려 겨우 방안으로 들여 보내지만 순복이 신세한탄하는 걸 보는 형우의 마음도 괴롭다. 하지만 형우가 나간 사이 인영이 나가지 않으면 자신이 나가겠다는 순복의 서슬에 인영은 결국 세찬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고 만다. ●그대는 별(KBS1 오전 8시5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삼키며 술을 마시는 홍기. 밤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는 홍기가 걱정돼서 찾아 나선 미란은 홍기의 술친구가 돼준다. 일기장을 통해 인경의 사연을 알고 있는 미란은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정우가 두 부부 사이의 문제 아니냐며 아는 척을 한다.
  • [내인생의 등대] 김우림 서울역사박물관장

    [내인생의 등대] 김우림 서울역사박물관장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이 우리에게 주는 많은 교훈 가운데 하나는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반이 악마의 이간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에만 열중한 것은 결코 우둔한 것이 아닙니다. 기다림은 악마를 제풀에 꺾이게 만들어 결국 스스로 망합니다.” 지난 10일부터 ‘톨스토이’전을 개최한 김우림 서울역사박물관장은 ‘문학청년’ 시절의 추억담을 털어 놓았다. 고교 2학년때 전날 밤에 미처 다 읽지 못한 ‘죄와 벌’의 뒷부분을 다음날 국어 시간에 몰래 읽다 선생님께 들키기도 했다. “음란서적을 보는 것으로 짐작했던 선생님께서 제가 ‘죄와 벌’을 읽은 것을 알고 ‘죄’에 대한 ‘벌’을 사면해 줬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이 면죄부로 작용한 셈이죠.” 지난해 11월에는 고려대 박물관에서 ‘파평윤씨 모자 미라’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그는 오랫동안 열정을 가지고 준비했다. 그의 노력은 빼곡하게 모인 인파가 보답했다. 그는 “관객이 몰려오는 ‘인파’라는 단어의 실체를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기다림을 모르고 쉽게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일으킨 수능부정 사건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노력하지 않고 빨리 대학에 가려는 자세는 진정 어리석은 태도죠. 요즘 입시 서적 가운데 책 한권을 200자로 원고지 한장으로 요약한 것도 많아요. 당장은 쉽게 쓸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인생을 갉아먹는 책들이에요. 우둔하게 책 한 권을 독파해야 진정으로 인생의 묘미와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미야자키표 러브스토리 ‘하울의 움직이는 성’

    마녀의 저주로 18살 소녀에서 90살 노파가 된 소피, 비밀에 둘러싸인 꽃미남 마법사 하울, 새 다리를 연상케하는 가냘픈 다리로 이동하는 고철덩어리 마법의 성….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그의 이전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관객을 순식간에 팬터지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매혹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시공간적 배경이 불분명한 유럽의 어느 마을. 모자가게에서 일하는 평범한 소녀 소피는 동생을 만나러가던 길에 우연히 마법사 하울의 도움을 받고, 그 때문에 마녀의 마법에 걸려 폭삭 늙은 할머니가 된다. 남들 눈에 띌까봐 몰래 집을 빠져 나온 소피는 황야를 걷다 마법의 성에 다다르고, 그곳의 주인인 하울과 불꽃 악마 캘시퍼, 꼬마 마법사 마르클과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거대한 만년설과 반짝이는 호수, 생동감있는 바닷가 마을 등 정감넘치는 자연 풍광은 지브리 스튜디오가 그간 축적해온 노하우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온갖 잡동사니로 만들어진 성은 곧 허물어질 듯 볼품없지만 문고리를 돌릴 때마다 전혀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는 환상의 공간이다. 하울과 소피가 괴한들을 피해 하늘로 솟구쳐오른 뒤 허공을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황홀한 장면 역시 미야자키표 애니메이션답다. 가장 돋보이는 건 주인공들의 캐릭터. 그중에서도 소피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무채색의 일상에 지루해하던 소피는 할머니로 변하면서 오히려 삶의 활기를 띤다.‘할머니가 되니 잃을 것이 없어 좋다.’는 낙천성과 의연함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소피는 여성의 미에 대한 선입견을 단번에 무너뜨린다. 전쟁에 홀로 맞서는 강건함과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사춘기적 나르시시즘을 동시에 간직한 하울의 캐릭터 또한 인상적이다. 3년간의 기다림,‘미야자키 최초의 러브스토리’라는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면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뛰어넘는 감동과 상상력의 확장을 기대했던 팬들이라면 다소 밋밋하게 느낄 수도 있다. 전체 관람가.23일 개봉.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인사동의 작은 맛집들

    [뒷골목 맛세상] 인사동의 작은 맛집들

    인사동은 흔히 ‘거리의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화랑에서부터 공예품이며 골동품을 파는 가게에 이르기까지 고급스러운 문화의 향취가 풍겨난다. 더군다나 얼마 전부터 관광특구로 지정돼 거리 미화작업이 진행되고, 기다렸다는 듯이 문화자본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인사동은 더욱 세련되고, 멋들어졌다. ●음식점 상호엔 멋들어진 우리말 화가나 도예가, 공예인, 문인 같은 예술인들이 터전을 삼아 노니는 곳에 어찌 멋이 뒤따르지 않겠는가. 그들의 발자취가 두루 머무는 곳에 멋이 빠진다면 그야말로 속빈 강정에 다름 아닐 터이다. 멋스러운 거리에 자리를 잡은 먹고 마시는 맛집들 또한 어찌 멋들어지지 않겠는가. 인사동의 맛집들은 우선 상호에서부터 맛이 다르다. ‘오늘같이 좋은 날,千강에 비친 달, 바람 부는 섬, 소금인형, 황금비늘, 두레멍석, 오 자네 왔는가, 툇마루, 놀부가 기가 막혀, 흥부가 기가 막혀, 북치구 장구치구, 사람과 나무, 우리 그리운 날은, 평화만들기, 달고둥, 보릿고개추억, 조각하늘, 좋은 씨앗, 달새는 달만을 생각한다, 뜰 앞에 잣나무, 아빠가 어렸을 적에, 낮에 나온 반달, 완자무늬, 머시 꺽정인가, 모깃불에 달 끄슬릴라, 풍경소리….’ 얼핏 둘러봐도 가히 그 멋들어짐은 시인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멋들어진 것이 어디 상호뿐이랴. 다양한 먹을거리 또한 멋들어져서, 은정이나 선천, 사천, 이모집 같은 전통 한정식에서부터 재첩 요리만을 전문으로 하는 섬진강, 다슬기 요리만을 전문으로 하는 풍류사랑, 홍어만을 전문으로 하는 홍어가 막걸리를 만났을 때, 홍어천하, 사찰음식 전문의 산촌, 녹차대나무쌈밥이며 녹차너비아니 등 밥이며 요리에 녹차를 이용한 차이야기, 야채 커리나 마살라 같은 인도 요리의 작은 인디아, 된장비빔밥의 툇마루에 이르기까지 불쑥 어느 집에 들어가도 멋들어지지 않은 요리가 없다. 어쩌면, 인사동에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바로 그 멋들어짐이 너무 지나치다는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멋이 멋으로만 머물지 않고 멋 자체가 상품화되어 거리에 넘쳐난다면 그런 멋은 이미 멋이 아니다. 멋들어짐이 지나치면 곧바로 건들거리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건들건들, 건들거리면 자칫 사람 냄새를 잃고 만다. 만약 인사동 거리가 죄다 사람 냄새를 잃고 건들거리고 있다면? 인사동에 언제부터인가 40대 언저리의 중년여인이 있는 듯 없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그이는 인사동 네거리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10미터쯤 오르는 왼편 골목에 역시 있는 듯 없는 듯 조그만 맛집을 냈다. 작은 뜨락(02-739-2218)이라는 상호인데, 원래 건물 옆에 버려진 골목이었던 것을 위는 차양으로 가리고, 건물 벽에 의지해 폭 1미터에 길이 5미터 남짓한 공간을 마련했다. 폭이 너무 좁아 일반 탁자를 놓을 수가 없어서 벽에 긴 나무판대기를 붙이고, 바닥에는 겨우 엉덩이를 걸칠 만한 간이의자를 놓았다. 이 집에서 먹고 마시기 위해서는 한껏 몸을 웅숭그린 채 본의 아니게 면벽을 해야 한다. ●인사동 풍류객들의 ‘참새 방앗간’ 한 마디로 멋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맛집에다가 주인 되는 노인자씨도 멋하고는 아예 담을 쌓은 이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한 주먹 움켜잡아 뒤통수에 질끈 동여맨 꽁지머리, 아무렇게나 차려입은 차림새. 한 술 더 떠, 먹고 마시는 소위 물장사가 난생 처음이어서 음식을 마련하고 상을 차리고 셈을 헤아리는 일도 서툴다.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손님이 “여기 얼마요.”하면 “몰라요. 먹은 만큼 알아서 주세요.”가 대답이고, 대구와 동태라는 생선을 구별하지 못해 대구를 동태로 파는가 하면 손님이 계산을 않고 나가도 숫제 알아내지를 못했다. 멋대가리라고는 없는 작은 뜨락의 진가를 인사동의 눈 밝은 이들이 못 알아볼리 없었다. 툇마루의 바깥주인이자 ‘집도 절도 주민등록증도 없이’ 떠도는 시인 박중식, 동숭동에서 작가폐업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예사롭지 않은 작가 배평모, 누구나 알아주는 시대의 낭만주의자인 시인 김사인, 한국판 비용으로 통하는 시인 김신용, 인사동 화단의 마당발 화가 장경호,588여인들의 사진전으로 이름을 날린 사진작가 조문호, 십수 년에 걸쳐 인도를 헤맨 끝에 ‘우리는 지금 인도로 간다’는 인도 안내서를 내고 아울러 ‘인도로 가는 길’이라는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인도전문가 정무진 등 소위 인사동의 풍류객으로 통하는 이들이 마치 고양이가 생선냄새를 맡고 찾아오듯 차례로 작은 뜨락에 모여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노인자씨는 물장사만 난생 처음인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일 또한 처음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돈이라고는 벌어본 적이 없는 노인자씨는 돈을 쓰는 일에는 누구보다도 화려한 이력이 붙은 이였다. 일찍이 불교계의 내로라하는 큰스님 아래서 포교사 비슷하게 아시아 각국이며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돌아다녔는데, 세 번이나 말라리아에 걸려가며 아프리카를 종단하여 굶주린 현지인들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다. 이를테면 몸과 마음 전체를 바쳐 30년 가까이 중생구제라는 보살행을 해온 셈이었다. 그런 그이가 어느 날 획하고 머리가 돌아 그만 맛집을 차려 돈을 버는 일을 하고 말았다. 인사동의 눈 밝은 풍류객들이 맨 먼저 알아본 것은 다름 아닌 주인 되는 이의 사람냄새였을 터이다. 그런 그이들로서는 적어도 작은 뜨락이 그대로 망하는 꼴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이들은 주인을 대신하여 나름대로 작은 뜨락을 살리는 일에 나섰다. 이를테면 셈이 어두운 주인을 대신해 모자를 돌려 자신들이 먹고 마신 만큼 돈을 거두어 스스로 셈을 헤아리고, 한 접시에 5000원을 넘지 않는 한도에서 입맛에 맞는 안주를 개발해내고, 무엇보다도 작은 뜨락을 연락처 삼아 주인이 있든 없든 하루에 한 두 번은 꼭꼭 들렀다. 그리고 그이들은 마침내 작은 뜨락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술과 안주는 한 사람이 1만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1차를 마감한다. 만일 차수를 변경하여 2차로 넘어가면 다시 모자를 돌려 1만원을 추가하는데, 절대로 외상은 없다. ●사찰음식 전수받은 된장찌개·들깨탕 작은 뜨락은 4000원짜리 우거지 해장국이 있어서 식사도 할 수 있다. 술안주는 서산에서 이틀에 한번 꼴로 택배로 부쳐오는 어리굴젓과 자연산 생굴이 있는데, 배춧속에다가 생굴을 쌈 싸먹는 맛이 신선하다. 그밖에 조기며 자반고등어 같은 생선구이며 생선찌개도 있다. 작은 뜨락에 처음 가는 이라면 마땅히 조심해야 할 것은 자칫 요술 같은 시간의 흐름에 휘말리는 일이다. 우연히 합석하게 된 풍류객들과 잠시잠깐 웃었는데, 낮술 한 잔이 어느 새 2차,3차를 넘어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다. 인사동 네거리에서 종로 2가 쪽으로 몇 걸음 걷지 않으면 덕원 갤러리 옆 골목 깊숙이 고샅길(02-734-3371)이라는 한식 전문집이 역시 있는 듯 없는 듯 멋 부리지 않고 있다. 한옥의 사랑채를 개량한 듯 주방까지 합쳐 10평 남짓한 실내에 대여섯 개의 식탁이 있는 작은 집이다. 출입문 쪽의 벽을 터서 통유리창을 달고 거기에 진열해놓은 종발 같이 앙증맞은 도기들이 무슨 꽃들이라도 재잘거리며 피어나듯이 아름답다. 뿐만 아니라 좁은 공간에 매달아놓은 화분들이며 실내장식들은 어디에서나 주인의 깔끔하고도 섬세한 손길이 그대로 묻어나와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고샅길 주인 되는 이는 박진숙·경숙 두 자매인데, 이중에서 언니 되는 박진숙씨가 도예가여서 이들 종발이며 요리에 쓰이는 접시와 그릇들을 모두 포천에 있는 작업실에서 직접 구워낸 것이다. 동생인 경숙씨는 식품영양학과 출신으로 원래부터 음식 솜씨가 뛰어났는데, 솜씨를 아낀 언니의 권유로 인사동까지 나서게 되었다. 고샅길의 특징은 요리에서 밑반찬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정갈하면서도 깊은 맛이 우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고샅길된장찌개(5000원)와 산사들깨탕(1만원)이 일품이다. 메주를 쓰지 않고 알콩 자체를 띄워 만드는 절에서만 전해오는 비법으로 담근 된장을 원료로 한 된장찌개는 한 입 넣는 순간,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을까 싶게 그 정갈하면서도 깊은 맛에 대뜸 매료된다. 스님들의 보양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산사들깨탕 또한 예사로운 맛이 아니다. 곱게 간 들깨에 배추, 호박, 버섯, 두부, 거두절미한 콩나물을 넣고 약간 되직하게 끓인 산사들깨탕은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특히 별미일 터이다. 얼핏 보면 지극히 평범하지만 먹을수록 감탄사가 나오는 이 두 가지 요리는 실제로 쌍계사에 있던 무산스님으로부터 전수받았다는데 무산스님은 출가하기 전에는 한의사 출신으로 평소에도 사찰음식에는 깊은 조예가 있는 이였다. 이밖에도 5000원짜리 동태찌개와 야채비빔밥이 있고, 술안주로는 버섯전골(2만원)이며 닭매운탕(2만원)이 있는데, 서너 명이서 너끈히 즐길 수 있는 양이다. ■ 인정으로 우려내는 전통찻집 인사동 네거리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한참을 올라와 쌈지박 어름에서 왼편 길로 접어들면 산타페 입구 옆에 초당(02-738-4154)이라는 전통찻집이 또한 있는 듯 없는 듯 멋 부리지 않고 있다. 탁자 세 개가 전부인 작은 공간의 한 쪽에 주인 되는 최정해씨가 평생을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듯 그림 같은 자세로 신비한 미소 지으며 앉아 있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곱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자태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향기와 빛깔이 은근하게 배어나오는 듯한 자태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마치 오랜 세월을 잊혀졌다가 어느 날 불쑥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고려청자나 이조백자처럼 정지된 시간 속에서 깊어진 향기며 빛깔이다. 삶의 무엇이 한 여인을 저렇듯 깊게 만들었을까. 참으로 막막한 무슨 기다림 같은 것은 아닐까. 손님이야 하루에 한 명이 들든 두 명이 들든 별로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바로 최정해씨가 지키고 있는 자리이다. 벌써 20년 가까이 그 자리에서 어쩌다 든 손님들에게 깊은 손길로 차를 만들고 차를 따른다. 아주 잊혀진 듯 참으로 오랜만에 오는 손님이면 연꽃 모양의 작은 촛불을 물이 담긴 자기 잔에 켜서 차와 함께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촛불에 어둑한 실내가 일순 은은하게 밝아지면서, 그것을 지켜보는 손님의 어둑한 마음 또한 어쩔 수 없이 밝아지기 마련이다. 그렇듯 밝아진 마음으로 차를 들어 한 모금 입안에 넣으면 저 안으로 깊이 흘러들어가는 것은 비단 차만은 아니다. 홍삼말차라는 초당만의 특이한 차가 있다. 녹차 가루에 홍삼가루를 섞어서 약간 되직하게 물을 넣은 흡사 맑은 죽 같은 느낌의 차인데, 이것을 사발에 넉넉하게 마시고, 다음에 바위에서 나는 대나무의 어린 순으로 만든 연둣빛 석죽차와 석류빛 오미자차를 마시고, 이어 솔바람차며 매실차까지 마신다. 차를 바꾸는 틈틈이 편강, 쥐눈이콩강정, 오미자 양갱으로 입가심을 해가며 대여섯 가지의 차를 마시고 나면, 삶의 무엇이 우리를 그다지 애면글면 안타까워하게 하랴. 이런 식으로 차를 순례하고 초당을 나설 때 잠자코 1만원짜리 한 장을 식탁에 놓아두는 것을 잊지 말 일이다.
  • 儒林(234)-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儒林(234)-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중국사상 최고의 해학과 비유의 천재였던 장자가 미치광이 접여로부터 질타당한 공자의 모습을 그대로 방관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장자는 접여의 노래를 인용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다. “산에 나는 나무는 유용한 까닭에 베어지니 이는 자기가 자기를 베는 것이요, 등잔불은 불붙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제가 저를 태운다. 계수(桂樹)나무는 그 뿌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베어지고, 옻은 칠하는 데 쓰이기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 어찌된 셈인지 세상 사람들은 다 유용한 곳의 용도는 알면서도 무용한 곳의 용도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가.” 불가능한 일임을 알면서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가시밭길을 가는 공자. 세상을 달관하고 정신적 자유를 즐기며 사는 미친 척하는 광인 접여. 공자의 눈으로 보면 접여는 미친 사람이지만 접여의 눈으로 보면 공자야말로 진짜 미친 사람인 것이다. 사기에 보면 공자는 이 노래를 듣고 수레에서 내려 접여와 얘기를 나누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접여는 피해 달아나버림으로써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어쨌든 접여의 노래를 통해 그 무렵 공자가 가시밭길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위대함은 이 가시밭 속에서도 자신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점이었다. 소왕으로부터도 소외받은 절대 고독 속에서도 공자는 좌절하지 않고 기다렸다. 기다림은 인간만이 가진 최고의 미덕.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야말로 바로 기다림인 것이다. 인내와 기다림은 같은 뜻인 것 같지만 실은 다르다. 인내는 참는다는 자의식을 동반함으로써 고통이 따르지만 기다림은 참는다는 자의식 없이 견딤으로써 인격을 완성시킨다. 헐벗은 나무는 겨울을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봄을 기다림으로써 마침내 꽃을 피운다. 꽃은 인내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접여는 가시나무를 돌아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걸어가는 공자를 어리석다고 비웃었지만 공자가 지닌 위대함, 즉 기다림의 덕은 꿰뚫어 보지 못했던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 공자. 바로 이 무렵 논어에는 공자와 제자 자공이 나눈 대화가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공이 말하였다. ‘여기 아름다운 옥이 있습니다. 스승께서는 이것을 궤 속에 넣어 감추시겠습니까. 아니면 좋은 상인을 찾아 파시겠습니까.’ 이에 공자는 대답하였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그러고 나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을 덧붙였다. ‘나는 상인을 기다리는 사람이다.(我待賈者也)’” 이 말은 공자의 면모를 엿보게 하는 감동적인 말이다. 자공은 얼마 전 스승에게 ‘어째서 도를 약간 낮추어 절충하지 않습니까.’ 하고 절충안을 내놓았던 바로 그 제자. 따라서 자공이 공자에게 아름다운 옥을 궤 속에 넣어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파시겠습니까 하고 양자택일의 질문을 던진 것은 ‘좋은 상인’의 비유를 통해 현실적 타협을 재차 확인하는 의도였던 것이다. 이에 공자는 두 번이나 ‘팔아야지(沽之哉)’라는 말을 반복하여 강조하면서 자신은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공자는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기다림을 잃지 않았던 인격의 완성자였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5)금강산 삼일포의 매향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5)금강산 삼일포의 매향비

    고려 충선왕 원년(1309년). 금강산 삼일포에 강릉도 존무사(存撫使·관찰사) 김천호를 비롯, 강릉부사 박흥수, 판관 김관보 등 동해의 지방관리들이 승려 지여(志如)와 함께 모였다. 의관 정제한 이들이 먼길 마다않고 이른 아침에 모인 것을 보면 필경 곡절이 있을 법하였다. 석수장이가 지게에 비석을 지고 다가왔다. 김천호는 아무 말없이 눈길로 배를 가리켰다. 비석이 먼저 배에 실렸다. 이어 김천호를 비롯해 박흥수 등이 차례로 배에 올랐다. 다행히 날씨는 좋았다. 지여가 “날짜 하나는 참으로 잘 잡았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으나 좌중은 묵묵부답이었다. 응답할 분위기가 아닌 듯했다. 배는 삼일포를 향해 노를 저어갔다.“단서암에 배를 대게나.” 김천호는 단호히 말했다. 삼일포에 있는 4개의 섬 중에서 단서암(丹書岩)을 택한 것이다. 단서암을 선택한 데는 연유가 있었다. ●고려 충선왕 원년, 단서암에 매향비를 세우다 신라 화랑들이 삼일포를 다녀간 기념으로 남겼다는 기록,‘영랑 일행이 남석을 다녀가다.’(永郞徒南石行)는 여섯 글자가 전해지고 있음을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예로부터 미륵의 당래하생(當來下生)을 서원하면서 은밀하게 찾아들던 비밀스러운 곳임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매향비를 세우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 아닌가.“호숫물이 가로막고 미륵도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곳이니, 누군들 이 매향비를 함부로 옮기지는 못하리라.”라고 내심 확신하면서. 이상의 기록은 삼일포 매향비의 40행,369자를 풀어서 매향비 세우던 광경을 재구성해본 것이다. 당시 강원도 각 포구에 향나무를 베어 물 속에 넣은 뒤 그 증표로 삼일포에 매향비를 세웠다. 매향비가 건립된 1309년으로부터 40년이 지난 1349년 가을, 이곡(李穀)이 삼일포를 다시 찾았다.‘죽부인전’의 작가로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올라 있는 이곡은 ‘동문선’에 전해지는 동유기(東遊記)에 이렇게 썼다.‘초사흘에 일찍 일어나 삼일포에 이르렀다. 성에서 북쪽으로 5리쯤에 있는데, 배에 올라 서남쪽 조그만 섬에 이르니, 덩그런 큰 돌이 있다. 그 꼭대기에 돌벽장이 있고 석불이 있으니, 세칭 미륵당이다.’ 이곡이 찾을 당시에는 매향비는 물론 석불까지 있었고 미륵당도 현존해 이곳이 미륵신앙의 ‘메카’였음이 틀림없다. 그 뒤로도 매향비를 직접 보았다는 기록은 곳곳에 있다. 농암 김창협(1651∼1708)은 1671년 여름에 금강산을 유람한 뒤 삼일포에서 배를 타고 호수의 섬으로 들어갔다가 이런 글을 남겼다.‘배를 옮겨대고 사선정 남쪽의 작은 바위 봉우리에 오르니 짤막한 비석이 있는데 마멸되어 글자를 볼 수가 없었다. 이를 세상에서 말하기를 미륵 매향비라고 한다.’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김상성 주관하에 1746년부터 1748년 사이에 그려진 시화첩 ‘관동십경’에는 매향비가 선명하게 나타나며,‘매향비 아래에서 짐짓 배를 돌리네.’라는 시구까지 확인된다. 박종(1735∼1793)은 1767년 경주 구경을 떠났다가 삼일포에 들러서 쓴 ‘동경기행(東京紀行)’에서 이 비를 침향비(沈香碑)라고 하여 향을 묻었음을 분명히 하였다.‘단서암에 올라 침향비를 보고는 배를 타고 오른쪽 언덕에 이르러 걸어서 솔숲을 빠져나와 돌아보니, 중은 노를 저어 돌아가고 있는데 풍경이 한적하기로는 그만이다.’ 이처럼 삼일포 매향비는 후대인들의 인구에 회자되던 비석이었으며 금강산 순례의 필수 코스였다.20세기에는 위당 정인보 선생이 금강산을 다녀오며 기록을 남겼다.‘관동 해안에 향을 묻은 곳이 많으니, 이는 불사(佛事)라. 미륵하생할 때 같이 용화회(龍華會)에 나게 해달라는 발원이라 한다. 호수 위에 매향비가 있었는데 근재(謹齋)의 단갈사제(斷碣沙際)라는 시어가 이를 이름이다.’ ●향 묻고 미륵 오기를 바란 민중들 매향비가 세워지던 충선왕 원년이면 고려가 저물어가던 때가 아닌가. 숫처녀와 내시를 공물로 바치는 등 원나라의 횡포가 자못 극심하였고, 불교의 타락상도 극에 달하고 있었다. 당대 불교가 보여주었던 그릇된 행실을 새삼 탓해서 무엇하랴. 그러한 시대에 동해의 변방에서 지방관리들에 의해 매향의례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당시 민중의 염원을 형식적으로나마 풀어주려는 노력의 일환은 아니었을까. 삼일포 매향비는 1926년에 일본인 등전량책(藤田亮策)에 의해 소개되었다. 그런데 그 뒤로 매향비가 간 곳 없이 사라지고 탁본한 비문만이 전해지고 있을 따름이다. 어떤 경로로 이 매향비가 사라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높이 60㎝에 불과한 작은 비였으니 집어가려고 마음만 먹는다면야 손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박복한 여생을 쓸쓸히 보내고 있든가, 아니면 그 누군가가 미륵의 당래하생을 서원하면서 향을 묻듯 비 자체를 삼일포 깊은 물 속에다 던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서원이 담겨 있는 매향비(埋香碑)란 무엇일까. 매향비란 글자 그대로, 향을 묻고 미륵이 오기를 기원하면서 세운 비석을 말한다. 그러나 그 실체에 대한 해석은 구구하다. 불교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가 하면 금석문의 숨겨진 비밀 혹은 글씨로 새겨진 비밀문서라고 하는 이들도 있고, 미륵세상을 찾아가는 해법이라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 모든 의문의 열쇠가 매향비에 있다. 나라가 좁다보니 비밀스러운 것이 별반 없는데, 매향비만큼은 우리들의 지적 호기심과 궁금증을 더해주기에 충분한 탐구 대상이 된다. 금강산 매향비문을 보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현장을 찾아 나선다면 실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삼일포 매향비문에는 삼척현 맹방촌(孟方村)에 향나무 150그루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맹방촌은 지금의 동해안 맹방해수욕장에 해당되며, 산봉우리가 아름답게 솟고 백사장이 좋아 예로부터 명승지로 알려진 곳이다. 삼일포 매향비에서 지적한 맹방에 가면 지금도 매향의례에 대한 촌로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 그야말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는 매향비의 신화다. ●‘침향’은 새로운 세상에의 희구 상징 매향비는 흡사 해적들이 남긴 ‘보물지도’처럼 미륵신앙의 비밀과 맞닿아 있다. 그들은 왜, 무슨 마음에서 그런 비의(秘儀)를 열려고 했을까. 지금까지 발견된 매향비는 모조리 바닷가, 그것도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대에 자리잡고 있다. 그 비밀은 향을 바다에 묻는 침향(沈香)에 있다. 사찰에서 피우는 향은 그을음이 생기므로 해마다 불상을 닦아주어야 한다. 그러나 침향은 그을음이 없어 귀하게 치며 약재로도 쓰인다. 부적에 영험이 있다고 믿듯이, 침향의 신성성에 기대어 고급 약재로 인정되었던 것 같다. 침향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는 사리함에서 잘 드러난다. 금동으로 감싼 사리함 안에는 옥함이 있는데, 그 옥함 속 사리와 직접 닿는 부분만큼은 침향으로 만들었을 정도다. 명품이라고 부를 만한 불상 중에도 딱딱한 침향을 파서 조각한 것이 다수 있다. 침향을 예사롭지 않게 대한 옛사람의 경외심이 배어나온다. 갯펄에 묻은 향목은 침향이 되면 물 위로 떠오른다고 한다. 이무기가 천년이 되면 용이 되어 승천하듯, 단순한 향목도 침향이 되면 이런 ‘승천의식’을 거친다고 믿었던 것. 미륵하생을 기다리는 민중들에게 침향의 부상은 바로 새로운 세상의 떠오름이 아니었을까. 매향비는 반드시 강물과 바닷물이 합수하는 바닷가에 세워졌다. 한반도 최고의 절경으로 불리는 해금강에 연한 삼일포는 석호의 으뜸으로, 신라시대 화랑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아름다운 삼일포 안에 세워진 매향비는 미륵을 기다리며 집단적으로 서원하던 당대 민중들의 장엄, 그 자체를 웅변해준다. 미륵을 기다리는 민중의 서원은 하나의 운동 양상으로 발전하곤 하였다. 가까운 중국에서도 미륵에 의탁한 ‘동양식 천년왕국운동’이 자주 벌어졌다. 청조를 타도하고자 한 ‘백련교의 난’ 따위가 그것이다.‘천하가 난(亂)하면 미륵불이 강생한다.’,‘미륵불이 바로 천하를 지킬 것이다.’,‘천지를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 반란의 해, 미결(未決)의 해’ 같은 슬로건에서 새 세계의 열망과 미륵신앙과의 관련성이 잘 드러난다. 우리의 경우에도 궁예가 스스로 미륵불을 자칭하였고, 강증산도 미륵불에 의탁하였다. 불교가 시작된 이래로 미륵신앙은 하나의 운동, 미래불의 기다림 그 자체였다. 무슨 확신이 민중들로 하여금 미륵의 당래하생을 서원하게 만들었을까. 그만큼 현실의 고통이 심했다는 증거이리라. ●통일시대 오면 비밀스러운 자태 드러내려나 남쪽 사람들이 연일 금강산 관광에 나선다. 관광에 나선 남쪽사람들에게 삼일포와 해금강은 필수 코스이지만 정작 안내문에는 매향비에 관한 기록이 없다. 남한은 물론이고 북쪽의 안내자들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매향비를 설명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삼일포의 가장 신비로운 대목인 매향비의 내력을 전혀 모르고 돌아오기 마련이다. 마음 속으로만 삼일포를 그리워하다가 실제로 삼일포에 갔을 때, 필자는 삼일포 호수 안의 섬들을 바라보면서 매향비 생각에 가슴이 벅차 잠시 숨이 막혔던 적이 있다. 사라진 삼일포 매향비가 혹시나 말법의 상징처럼 존재하는 분단상황이 종식되고 통일시대가 오면 비로소 그 비밀스러운 자태를 세상에 드러내지 않을까.
  • 기다림…소외감…소수정당 의원들 속탄다

    기다림…소외감…소수정당 의원들 속탄다

    ‘소수 정당은 서러워.’ 국회 본회의의 대정부 질문이 중단된 지 이틀째인 29일 국회 파행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하염없는 기다림과 소외감으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양당은 파행 원인을 제공한 여권과 의사 일정 보이콧을 강행한 한나라당을 모두 비판하는 ‘양비론’을 제기하며 정국 정상화를 촉구했다. 민노당은 국회 파행으로 인해 각종 개혁·민생 법안들이 자칫 좌초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천영세 원내대표는 “양당은 대정부 질문을 정쟁으로 몰고가며 국회를 파행으로 만들었다.”면서 “양당은 조속히 국회를 정상화시켜 개혁·민생 법안 처리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정당 중심으로 국회가 속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한나라당을 배제한 의사 일정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노당은 국회 파행의 주된 책임이 한나라당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열린우리당과 이해찬 총리의 처신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반면 민주당은 이 총리를 먼저 비판한 뒤 한나라당에도 이의를 달았다. 이낙연 의원은 “총리의 본회의 발언은 균형과 절제, 품격을 잃은 채 정부의 조정자 역할을 포기한 것”이라면서 “한나라당 역시 의회 진행을 막는 방식이 아니라 의회에서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특히 대정부 질문을 준비하는 민노당 강기갑·노회찬 의원, 민주당 이낙연·김효석 의원, 자민련 류근찬 의원 등의 조바심은 더욱 크다. 다음달 2일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이 예정된 민노당 강 의원은 “쌀 재협상과 관련한 통상 문제와 학교급식 문제를 집중적으로 짚을 계획”이라면서도 “소수 정당은 배제한 채 기약없이 파행을 계속하고 있으니 대정부 질문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같은 당 노회찬 의원도 29일 용산기지 이전과 관련해 미국 종속적인 협상 문제를 따져 보기 위한 대정부 질문을 준비했으나 무위로 돌아갈 처지에 놓였다. 민주당 이 의원은 전날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 자료는 물론 추가 질문 자료까지 내면서 의욕을 보였으나 속절없이 기회를 날려 버리고 말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儒林(210)-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儒林(210)-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중종이 자신을 우유부단한 영공에 비유하고 있음은 시험문제에서 자신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왕이 될 만한 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종(祖宗)의 기업을 이어 정치에 임하여 좋은 성과를 소망하여 온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으나 아직도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지도 못하였으며, 나라의 법도도 정해지지 못하였다. 그러니 어찌 정치의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었으리요. 이 자리에 모인 여러 성균관 학생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들이므로 모두가 요순시대의 이상적인 정치를 이루려는 포부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개인의 입신출세만을 여기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어려운 시대를 당하여 이 난국을 극복하고 옛 성인의 이상적인 정치를 오늘에 다시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책을 논하라.” 중종의 절박한 심정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유대신앙을 느끼게 한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하나의 선지자로만 여기고 있을 뿐 선택받은 민족인 자신들을 구원할 구세주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끈질긴 기다림은 바로 자기들 앞에 나타난 초라한 목수의 아들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게 한다. 그들이 바라는 구세주는 그렇게 무기력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만큼 나약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 긴 세월을 기다려 온 보람을 봐서라도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일이고, 어리석은 일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종은 자기의 구세주, 즉 공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1년이면 나라를 바로잡고 3년이면 완전한 정치를 이룰 수 있는 공자가 자신의 앞에 나타나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성시에서 2등으로 급제한 조광조는 중종이 그토록 꿈꾸어 오던 공자의 현신이었다. “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사람에 대하여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임금과 백성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예전에 이상적인 임금들이 백성들에게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옛날에 성인들은 하늘과 땅의 큰 것과 수많은 백성들의 무리를 하나로 여기셨으며, 그런 이치에 따라 도를 행하였습니다.”명문중의 명문으로 꼽히는 조광조의 답안이 공자의 현신을 기다려 온 중종의 마음을 사로잡고 조광조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게 된 것이다. 개혁주의자 조광조의 비극은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오직 공자에게만 의지하고 이를 고지식할 정도로, 그리고 과격하게 추진해 나가는 데서 시작됐으나 그보다도 조광조를 공자의 현신으로 믿고 의지했던 중종이 어느 순간 조광조는 조광조일 뿐 공자의 현신이 아님을 자각하고 조광조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철회했던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공자는 영공에게 크게 실망하고 다시 위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 무렵 공자가 얼마만큼 자신의 처지에 초조해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때 위나라의 이웃인 진나라는 한참 내란 중이어서 대부 조간자(趙簡子)가 같은 대부인 범씨와 중항씨를 공격하였으며, 이틈을 노려 조간자가 다스리는 중모(中牟)라는 마을의 수장인 불힐(佛 )이 반란을 일으켰다. 조간자는 자신의 영토 내에서 분쟁이 일어나자 분노하여 중모를 토벌하고 대관(代官)위치에 있으면서도 배반하는 불힐을 죽이려 하였는데, 다급해진 불힐은 사람을 보내어 공자를 초빙하였던 것이다. 이때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 오늘날의 하남성 개봉도(開封道)에 있는 중모현으로 가려고 했다. 이를 지켜본 성미 급한 자로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자로는 따져 물었다. “전에 제가 선생님에게 들은 말인데,‘스스로 자기 자신이 옳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 틈에 군자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불힐은 중모에서 반란을 일으켜 배신했는데 선생님께서는 그에게 가려 하시니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 [시네마 천국]‘비포 선라이즈’ 속편 ‘비포…‘

    유럽 횡단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나 한여름의 오후 햇살처럼 짧지만 강렬한 교감을 나눴던 두 남녀. 해뜨기 전까지 빈을 배경으로 풋풋한 사랑의 감성을 수필처럼 풀어냈던 영화 ‘비포 선라이즈’가 9년만에 속편 ‘비포 선셋’(Before Sunset·22일 개봉)으로 돌아왔다. 사랑이라고 느낀다면 6개월 뒤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며 끝을 내 긴 여운과 아쉬움을 동시에 남겼던 전편의 궁금증을 드디어 모두 풀 수 있는 기회. 제시(에단 호크)는 그 장소에 왔지만 셀린느(줄리 델피)는 할머니의 장례식 때문에 가지 못했다. 그리고 9년. 제시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 홍보차 파리를 찾았고, 환경운동가가 된 셀린느와 서점에서 재회한다. 짧지만 결코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서로에게 새겨진 이들의 만남은, 그 감정의 무게와는 달리 전편 만큼이나 산뜻하다. 삶과 사랑에 대한 생각들을 오랫만에 만난 친구처럼 한바탕 수다스럽게 풀어내는 둘. 언뜻 속내를 비치며 진지하게 다가갈 듯하다가도, 이들은 어느새 긴 시간의 간격을 농담과 다른 대화들로 채운다.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에서 팽팽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하던 영화는 갑자기 그 끈을 놓아버린다. 제시와 셀린느가 재회한 뒤 리얼타임으로 80분간 나누는 대화가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야기 보따리만 풀어내다가 갑작스럽게 끝이 나는 것.9년의 기다림치고는 싱겁다. 카메라는 둘에게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풍경이 낄 틈도 없다. 달콤한 로맨스나 그립엽서 같은 파리의 풍경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실망이 클 작품. 하지만 지적이고도 철학적인 대사의 맛은 전편 못지 않다. 전편에 이어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연출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깔깔깔]

    ●네가 해볼래? 어떤 조직 폭력배 두목이 등에 큰 부상을 입어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의사는 잠시 두목의 몸 상태를 살펴보고는 말했다. “크게 걱정 안 해도 되겠습니다.몇 바늘 꿰매면 되겠네요.” 조직원 한 명이 물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지?” “한… 1시간 정도……?” 의사는 곧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1시간이면 된다던 수술이 무려 6시간이 지나도록 안 끝나는 것이었다.기다림에 참다 못한 조직원들이 우르르 수술실로 몰려가 엄포를 놓았다. “이봐,의사 선생.대체 어찌 된 거야? 아까는 한 시간밖에 안 걸린다더니?” 그러자 의사가 갑자기 손에 든 바늘을 확 집어던지면서 말했다. “야,그럼 너희들 중에 누구든지 등에 있는 용그림 맞춰 가면서 한번 꿰매봐!”
  • [길섶에서] 아버지/심재억 문화부 차장

    추석 장만 날.뒷짐 진 끝자 아버지는 신작로가 굽어보이는 무밭을 종일 서성거렸다.뽀얀 흙먼지 일으키며 버스가 동구밖에 설 때마다 시린 눈자위로 응시하며 하루 해를 다보냈다.사람들과 마주치면 “맛난 거 많이 하나?”라며 건성으로 웃어보이곤 했지만 기약없는 기다림의 무게가 더해 어깻죽지는 더 무거워 보였다. 그 해,추운 정월에 끝자는 서울로 갔다.동무 편에 ‘서울 가서 양장 기술 배워오겠다.’는 전언을 남기고는 보퉁이 하나 챙겨 밤열차를 탔다.늦둥이 딸 애지중지 키워 고작 열여섯에 의지가지없는 대처로 보낸 그의 맘이 오죽했을까.지난봄,‘아버지전상서’로 시작되는 편지를 받아 쥐고는 눈자위에 꼬질꼬질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땅거미가 제법 늘어질 무렵,청주병을 비끌어 맨 보퉁이에 능금바구니와 가방을 챙겨 든 끝자가 버스에서 내렸다.밭두렁에 바라기를 하고 앉았던 끝자아버지는 화들짝 일어서고도 우두망찰 서있기만 했다.끝자가 먼저 알아보고 불렀지만 대답도 못했다.목이 잠기고 눈물이 삐져나와 자꾸 콧잔등만 훔쳤지만 그해 추석은 포근했다.옛적,아버지들은 이렇게 자식을 가슴 속에 담아 키웠다.오로지 끝 모를 사랑으로.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길섶에서] 기다림, 그리고 가을/손성진 논설위원

    늦더위 속에서도 가을빛이 완연하다.푸른 하늘,선선한 바람….올가을도 학창 시절,여름방학을 마치고 새학기를 시작할 때 느꼈던 싱그러움 그대로다.세월은 흘러도 계절의 색깔과 냄새는 변치 않는다.무척이나 땀을 흘린 여름이었기에 어느 때보다 기다린 가을이다.기다림이 있어서 가을은 왔다.가을도 우리를 기다렸을까.무더위에 지친 우리를 보듬어 주고 싶었을까. 기다림은 희망이다.가을의 기다림도 희망이었다.희망이 있어 우리는 기다린다.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퇴근 시간을 기다리고,휴일을 기다리고,애인을 기다리고,가을을 기다리고….기다림이 잇대어 있는 인생은 늘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지금도 무엇인가 기다리는 우리는 행복하다. (박소향의 ‘기다림’중에서)인내가 없는 기다림은 절망이다.많은 사람들은 기다림,기다리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사소한 일로 다투고,앞서가는 차를 곡예를 하며 추월하고,군대 간 애인을 버리고,당장의 생활고를 못이겨 목숨을 끊는다.기다리자.인내하며 기다리는 사람에게 행운은 온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강서구 민원서비스 문예공모전 대상 함정자 주부

    강서구 민원서비스 문예공모전 대상 함정자 주부

    “공무원님들 공부 좀 합시다.” 강서구가 마련한 민원행정서비스 문예작품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가정주부 함정자(60·여)씨는 26일 이렇게 말했다.함씨는 동사무소 직원의 사소한 실수로 미국 대사관까지 헛걸음을 했던 자신의 경험담을 글로 써 대상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돈이 필요해서 미국에 사는 막내아들 명의로 구입한 빌라를 처분하려고 동사무소를 찾았습니다.동사무소 직원은 ‘막내아들의 인감증명을 받기 위해서는 보증인 한 명과 미 대사관 영사관에서 인감 발급서를 받아 동사무소에서 인감신청을 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동사무소 직원 실수로 낭패본 뒤 일침 처리 과정이 내심 이상했지만 의외로 일이 쉽게 처리될 수 있을 것 같아 함씨는 미국 영사관으로 향했다.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영사관 직원은 이런 업무까지 영사관에서 처리하지는 않는다면서 푸대접을 했다.사실 해외에 체류하는 사람의 인감증명을 받기 위해서는 체류자가 보증인과 함께 현지 한국 영사관에서 인감을 위임한다는 증명을 받아 보내면 된다.이것으로 위임장을 신청하면 행정절차는 해결되는 것이다. “공무원도 꾸준한 자기 개발을 해야 합니다.복잡한 세상에 복잡한 행정 처리 절차는 늘어나기 마련이죠.이런 것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업무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한번 공무원은 영원한 공무원이라는 생각은 자신을 후퇴시킬 뿐이죠.” 함씨는 이 밖에도 관공서에서 나태하게 일을 처리해서 피해를 본 사례가 많다고 밝혔다.또 관공서의 건물이 너무 좋아 보이는데 이를 모아서 노인복지시설에 투자해야 한다는 견해도 피력했다. ●여고시절 개근상 빼면 이번이 첫상 “사실 상이라고는 여고시설 개근상을 빼고는 처음입니다.글도 머리털 나고 처음 쓴 것이고요.불친절했다는 것이 아니라 혼선으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쓴 것뿐인데….” 함씨는 공무원들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미국 영사관에서 비자를 받기 위해 당하는 굴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면서 “이에 비하면 우리 공무원들은 친절에 대해서는 한수 위”라고 말했다. “동사무소에 갔다가 우연하게 구청 소식지를 통해 문예작품 공고문을 봤습니다.글을 보내기 이틀 전 일어난 일이어서 솔직하게 쓴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강서구는 함씨 외의 입상작을 모두 모아 ‘구민과 어깨동무’라는 책을 발간,공무원 친절교육 교재로 사용할 계획이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결혼이야기]홍필(28·대한화재 강남보상사무소)·박미연(28·대구 인지초등학교 교사)

    [결혼이야기]홍필(28·대한화재 강남보상사무소)·박미연(28·대구 인지초등학교 교사)

    “포철중학교 2학년 8반 8번과 37번이 결혼합니다.”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요? 까까머리 남학생과 수줍던 여학생,같은 반 친구끼리 결혼한다는 것을….하지만 그 오랜 시간 첫사랑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그녀와 제가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아마 우리 결혼이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정설을 깨고 첫사랑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조금은 거창한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미연이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저에게 이 결혼은 오랜 전쟁에서 얻어진 승리의 기쁨과도 같습니다.왜냐하면 그 친구는 인기도 많고,귀엽고 예쁘거든요.그래서 쟁취하기 힘든 사랑이었습니다. 그녀를 만난 뒤의 제 삶에는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했던 10년이란 세월과 함께 사귀기 전 마음 졸인 1년이란 세월이 함께 범벅된,쉽지 않은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습니다.10년을 아무런 연락 없이 생각만 해오다 저는 포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그녀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다시 만났죠.어찌나 어색했던지요.그날 ‘그녀를 만나기 100m전’의 떨림은 아직도 제 몸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지금도 그 친구랑 싸우면 그 때를 생각하며 화를 삭이곤 하지요. 첫 만남 이후로 저는 억지로 퇴근 뒤에 스터디를 하자고 제안했고,그 친구와 저는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스터디 도중 쉼없이 ‘작업’(?)에 들어갔고 6개월동안의 노력 끝에 진지하게 사귀게 되었죠.스터디는 ‘제3의 물결’ 책 한권으로 소리없이 끝이 나고 말았음은 물론이고요. 복학생으로 4학년 1년 동안 취업 준비에 골몰할 때 아무 말 없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그녀와 9월4일에 결혼식을 올립니다.지금도 신혼방을 어떻게 꾸밀까 설레는 그녀의 얼굴에서 너무나 재미있을 생활이 기다려집니다. 담배 피우지 말고 운동 좀 하라는 다소 걱정 섞인 그녀의 말에서 누군가 나를 챙겨주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그리고 그 사람이 제가 열렬히 좋아했던 그녀라는 것을 생각하며 저는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너무나 행복합니다.이런 게 결혼하는 즐거움 아닐까요.우리가 얼마나 예쁘게 살지 한번 지켜봐주세요.
  • 내 손으로 만든 맥주 시원하게…

    내 손으로 만든 맥주 시원하게…

    시원한 맥주 한컵 들이켜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바람 좀 선선히 불어와 주고,마음 맞는 친구 몇명 있어주면 더욱 좋겠다.시끌벅적한 맥줏집에서 들이켜는 맥주도 좋겠지만 손수 만든 맥주 한 잔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일에 지친 수애에게는 인삼맥주를,진한 삶의 향이 느껴지는 규철이에게는 커피맥주를,톡톡 튀는 경기에겐 생강맥주를,화끈한 진이에겐 고추맥주를….맥주를 나누고,우정을 나누는 기쁨.이런 맛에 맥주 한 잔 추가요∼. ■나만의 맥주 만들어볼까 언제나 그렇듯 강남역의 밤은 사람들로 붐빈다.뻗친 머리의 펑키 청년,탱크톱의 섹시한 여인,각기 다른 넥타이와 다른 양복을 입고 맥주 한잔 걸칠 곳을 찾는 직장인들.나름의 개성이 넘친다.나만의 멋을 추구하는 개성파들이 즐비한 강남역의 한 하우스맥줏집.이곳에서 또 다른 개성,‘나만의 맥주’를 만들어 즐기는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의 모든 맥주를 향해 “업무차 독일에 출장갔을 때였어요.스모그비어라는 맥주를 마셨는데 마치 담배를 피운 듯한 느낌이 나는 거예요. 다른 맥주들도 하나같이 자기만의 맛을 가지고 있었죠.” 100여개가 넘는 맥주가 있다는데 우리는 비슷한 색상에 비슷한 맛만 내는 미국식 맥주를 맛보고 있다는 사실이 억울해지는 순간이었다.독일에서 만난 맥주에 반한 박영규(47·이나에버링 차장)씨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발효통과 원액캔을 사다가 나만의 맥주,‘홈비어(또는 홈브루)’를 만들기 시작했다.실수,실패를 거듭해오면서 지금까지 80여가지의 맥주를 만들었다.이제는 동호회에서도 유명한 ‘양조 전문가’로 손꼽힌다. 주현석(27·호서대 3년)씨가 홈비어를 만들게 된 계기는 살짝 닭살 돋는다.여자친구를 위해서라나.“멋진 와인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와인 만드는 법을 찾았죠.그런데 와인 대신 맥주가 걸려든 거예요.재미있겠다 싶어 만들어 보고는 특별한 매력에 완전히 빠졌어요.얼마전에도 부모님 드리라고 만들어줬죠.”쑥스러운지,맥주를 마신 탓인지 얼굴이 벌게진다. ●정성과 개성을 녹이다 누군가가 직접 만들어온 맥주를 따고 한잔씩 따라주기 시작했다. “오호∼.이거 정말 산뜻한데.뭘 넣은 거야?” “이건 온도를 잘못 맞춘건가? 약간 시큼하군.” 순식간에 분위기가 시음장,토론장으로 변한다. 처음 맛본 향신료인 코리앤더를 넣은 맥주는 ‘톡 쏘는 맛’이 없이 신선한 향이 퍼지면서 부드럽게 넘어간다.썩 차지 않은데도 시원한 느낌까지 든다.가을철 고추 말리는 곳을 지나가는 듯한 매운 향이 느껴지는 고추맥주,진한 맥주맛에 상큼한 계피향이 좋은 계피맥주…,연이어 맥주들이 나온다. 조금씩 맛보는 회원들의 맥주에서 홈비어의 매력이 명확히 와닿는다.색깔부터 거품,향,맛까지 독특하다.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개성이 녹아있다.그래서 개설한 지 2년된 다음 카페 ‘맥주만들기’(cafe.daum.net/icrobrewery)에 1만명 이상의 회원이 몰리고 있나 보다. 만드는 과정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맥주원액을 끓여 효모를 넣고 맥아당(또는 설탕)을 첨가한다.찬물을 넣어 맥주원액의 온도가 20∼25℃로 낮아지면 효모를 넣어 발효시킨다.4∼6일 정도의 1차 발효가 끝나면 압력병이나 탄산용 페트병에 옮겨 2∼3일동안 탄산가스를 만든다.이후 1주일간 선선한 곳에서 1주일간 숙성을 시키면 나만의 맥주가 완성된다.효모의 종류에 따라 ‘에일(Ale)’ ‘라거(Lager)’등으로,첨가물에 따라 다시 ‘드래프트(Draft)’ ‘복(Bock)’ ‘스타우트(Stout)’ 등으로 나뉜다. 여기에 계피,고추,생강,인삼 등을 넣으면 독특한 향의 맥주가 탄생된다.커피처럼 진하고 고소한 거품의 맥주도,초콜릿의 달콤함을 가진 맥주도 가능하다. ●기다림의 미학,나눔의 기쁨 조금 귀찮을 수도 있겠다.나만의 맥주 만들기에 폭 빠진 이들에겐 이것이 바로 맥주의 ‘맛’이다. “맥주는 아이같아요.아이를 키우듯 조심스럽게,어떻게 클까 설렘도 느끼면서 만들어내죠.빨리빨리 만든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꾸준히 관심을 가지면서 기다려야 배신하지 않는 맛을 냅니다.기다림,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요.”(백종훈·39·하늘땅공인중개사사무소 소장) “같은 맥주라도 맛이 달라요.인생의 심오한 맛이라고나 할까.아직은 초보라서 ‘고수’들에게만 만든 맥주를 선보이고 평가받았지만 앞으로는 친구들과 함께 나누면서 우정을 키워보려고요.”(장미·28·간호사) “누군가에게 술을 줍니다.백화점에서 산 비싼 술과 직접 만들어 건네는 술,어떤 게 더욱 값진 걸까요.맥주를 매개체로 나눔의 즐거움,정을 나누는 거죠.”(정영진·30·㈜뉴런 과장) 맥주를 만들고,인생을 나누며,사람 얘기에 취하고….‘나만의 맥주’는 삶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만들줄 몰라? 여기서 즐기면 되지 직접 맥주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말 것.2002년 정부가 소규모 맥주제조장 운영을 법제화한 이후 곳곳에 하우스맥주 매장이 생겼기 때문이다.특히 강남역 근처에는 9곳의 하우스맥주 전문점이 들어서 있다.모두 ‘내가 최고!’라고 자부할 만큼 특별한 맛을 자랑한다.그 중에서도 보다 개성있는 곳,과연 어디일까. 대부분의 하우스맥주 전문점은 맥주의 나라인 독일의 제조 방식을 고집한다.아들러(591-2861)역시 독일식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곳.독일인 브루마스터(Brewmaster)가 직접 제조한다.현지 브루마스터가 1년 안팎의 짧은 기간 동안 기술을 가르친 후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하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경력있는 현지 브루마스터가 만드는 맥주맛을 즐길 수 있다. 200브로이하우스(3481-9062)역시 독일식 맥주를 선보이고 있다.대개의 전문점들이 세가지 혹은 그 이상의 맥주를 판매하지만 이곳에서는 바이젠(밀맥주)과 둥클레스(흑맥주)만을 만들고 있다.독일식이긴 하지만 정통을 고집하기보다는 한국인 입맛에 맞게 현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흔히 맥주하면 독일을 떠올리지만 사실 1인당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체코.‘버드와이저’의 원조가 체코산이라는 것만 보더라도 체코 맥주의 명성을 알 수 있다.캐슬 프라하(535-9925)는 이런 체코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35년 경력의 체코인 브루마스터가 맛을 내는 이곳은 제조설비와 재료는 물론 매장내 소품까지 모두 체코산.내부 인테리어도 체코풍으로 꾸며 주한 체코대사도 즐겨 찾을 정도다.지난 2월부터는 안주로 체코 음식 3가지도 선보이고 있다. 독일,체코 맥주는 물론 영국,벨기에 등 보다 다양한 국가의 맥주를 즐기고 싶다면 플래티넘(2052-0022)을 찾자.지난 2002년 압구정에 먼저 문을 열었고 지난해 7월 강남에도 그 맛을 선보이기 시작했다.7가지의 하우스맥주 중 벨기에 맥주인 ‘벨지안 화이트’는 여성들에게 인기.순하고 깔끔하면서 오렌지의 향과 맛이 난다.맥주 맛으로도 정평이 났지만 다양한 퓨전식 안주는 웬만한 레스토랑과 비교해도 손색없다.압구정점은 전화 540-0035. ■ 하우스맥주와 어울리는 안주 요리조리 안주를 빼놓고 술자리를 말할 수 없다.하지만 어떤 안주를 만들어야 할지 늘 고민이다.냉장고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사계절 즐길 수 있는 안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지현씨가 소개하는 부담스럽지 않고 영양도 생각하면서 맛있는 안주,바로 이것이다. ●오징어 냉채 재료 오징어 2마리,오이1개,당근 ½개,오렌지(또는 레몬) 1개,고추장 양념(고추장,식초 3큰술,물 2큰술,꿀 1큰술,마늘즙 ½작은술,통조림 파인애플 ½개 간 것) 만드는 법 (1)손질한 오징어를 레몬 1쪽과 끓는 물에 데친 뒤 얼음물에 담가 식혀 적당한 크기로 썬다.(2)오이,당근은 껍질을 벗기고 4㎝ 길이로 채썰고 당근도 4㎝ 길이로 채를 썬다.(3)모든 재료를 냉장고에 넣어 차게 한 다음 먹기 직전 고추장 양념과 버무려 먹는다. ●새우와 야채샐러드 재료 새우,치커리,양상추,청경채,무순,오리엔탈 드레싱(올리브 오일 2/3컵,설탕 1작은술,소금·후추 약간,발사믹 식초 ⅓컵,바질) 만드는 법 (1)야채는 깨끗이 씻고 한입 크기로 손으로 뜯어 얼음물에 담가 놓는다.(2)새우는 껍질 벗겨 데친다.(3)접시에 골고루 담고 드레싱을 뿌려 섞어 먹는다. ●닭가슴살 꼬치 재료 닭가슴살,새우,파프리카,홍피망(브로콜리,가지 등을 곁들여도 좋다),데리야키소스(양파,마늘,간장,청주) 만드는 법 (1)닭가슴살은 청주와 레몬즙을 넣은 물에 데친 뒤 3㎝ 크기로 잘라준다.(2)홍피망,파프리카,새우도 잘라 팬에 버터를 두르고 익힌다.(3)재료를 한개씩 꼬치에 끼고 데리야키 소스를 발라 프라이팬에서 앞뒤로 익혀 담아낸다.
  • [삶과 경영이야기](24)‘밀리언셀러 제조기’ 박은주 김영사 사장

    [삶과 경영이야기](24)‘밀리언셀러 제조기’ 박은주 김영사 사장

    서울 북촌 가회동 한옥마을에 자리한 3층짜리 양옥집.서양식이지만 주변 전통가옥들과 어울림이 거칠지 않다.화려함 속에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은 때문일까.무심결에 지나는 사람이라도 눈길 한번 안 주기는 어렵겠다.김영사 박은주 사장이 딱 그런 사람이다.‘밀리언셀러 제조기’로 통하는 비결을 물었더니 “그저 남보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수줍어한다.15년간 국내 최고의 출판사를 가꿔 온 그에게 어떤 특별한 것이 있는 걸까. ●“책은 정성이다” 인생이 무엇이고,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구(窮究)는 어릴 적부터 늘 박 사장이 품어온 숙제였다.국어책의 시를 달달 외우는 것보다는 명쾌한 논리적 풀이가 좋아 선택한 전공(이화여대 수학과)이었지만 그걸로 평생 일터를 가질 생각은 없었다.어차피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 방에서 헤르만 헤세와 니체,키에르케고르를 더 즐겨 읽었던 그였다. 대학졸업 후 친구들은 대부분 기업 전산실이나 중·고교 교사로 나갔지만 박 사장은 출판사를 택했다.그때가 1979년.인생의 전기는 3년 후에 찾아왔다.82년 김영사 창업자인 김정섭 사장을 우연히 만나게 됐다. “김 사장님은 살아 있는 도덕 교과서 자체였습니다.늘 사람들을 정성스럽게 대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지요.거래처 사람들조차 인생상담을 위해 김 사장님을 찾아오곤 했습니다.저 분이라면 평생 같이 일할 수 있을 것 같았지요.” 멀지않아 김영사에 새 둥지를 틀었다.김 사장과 박 편집부장은 매일 오전시간을 인생과 철학에 대한 선문답(禪問答)으로 보냈다.책에 대한 가르침은 자연스럽게 거기서 얻어졌다.언젠가는 서점에 납품한 책을 전량 회수하라는 김 사장의 지시가 있었다.낙장이나 파본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디자인이나 제본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당시 박은주 부장은 “우리 책이 다른 출판사 책보다는 훨씬 더 상태가 좋다.”며 야속해했지만 김 사장은 “다른 회사를 보지 말고 우리 기준대로 하라.”고 말했다. “책은 정성 그 자체입니다.우리는 수천,수만권의 책을 만들어내지만 독자 한사람 한사람에게는 소중한 자신만의 단 한권입니다.” 박 부장도 김 사장의 ‘김(Gimm)’과 젊다는 뜻인 ‘영(Young)’이 합쳐져 만들어진 김영사의 ‘김씨의 젊은이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서른두살짜리 어린 사장 “이제 박은주 부장이 사장입니다.여러분이 저에게 했던 것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새 사장과 함께 멋진 회사를 만들어 나가길 바랍니다.” 89년 김영사의 신년 하례식장은 술렁거렸다.누구보다 놀란 것은 박 사장 자신.그때까지 김 사장으로부터 자신에게 사장을 물려주겠다는 어떤 언질도 받은 적이 없었다.두려움과 설렘이 섞여 가슴이 터질 듯했다. 사장 취임 후 첫 작품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김우중 전 대우 회장 지음)였다.우리나라 단행본으로는 처음으로 6개월 만에 100만부가 팔리면서 밀리언셀러가 됐고 최단기간,최다판매라는 기네스 기록도 남겼다.박 사장은 성공의 밑거름이 돼 주었던 대우그룹과 김우중 전 회장이 잘못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곧이어 출간된 ‘빵장수 야곱’‘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세계는 넓고‘와 함께 베스트셀러 1∼3위를 싹쓸이했다.주변에서 축하인사가 쇄도했지만 책 한권이 더 팔려나갈 때마다 마음에는 하나둘 무거운 돌들이 얹어졌다.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책을 만들라는 창업자의 가르침을 나도 모르게 잊게 되지는 않을까. “대충 이런 책을 만들면 성공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 독자들은 속지 않는다.몇백,몇천번의 생각 끝에 ‘가족과 이웃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결론이 나와야만 한다.그래서 100% 확신이 들면 온몸을 던져라.” 93년 대통령 선거에서 지고 영국에 가 있던 김대중씨를 일면식도 없는 상태에서 찾아가 오랜 기다림 끝에 원고(책이름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를 받아낸 일은 출판업계에서 유명한 얘기다. 귀한 원고를 손에 넣는다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원고에 ‘숨결’을 불어넣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100만부가 넘게 팔려나간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무려 2년이 걸린 책이다.세 번이나 번역을 했다.처음에는 번역자가 내용을 소화하지 못해서,두번째에는 코비의 ‘리더십 워크숍’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작품성이 크게 떨어졌다.결국 코비의 워크숍에 직접 참여한 사람을 수소문한 끝에 원작 수준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뉴욕에서의 깨달음=문화+경영 “마감시간에 대기 위해 부실한 내용을 담은 책이라면 안 나오는 게 차라리 낫지요.지금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였을까.탄탄대로를 달리던 95년,박 사장은 미국으로 훌쩍 유학을 떠났다. “그동안 우물 안에서 당장의 성공에 안주해 주먹구구식으로 책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출판의 중심지 뉴욕에서 출판의 미래를 읽고 싶었지요.” 3년 동안 뉴욕대에서 미디어와 컴퓨터를 공부하고 현지 출판사에서 경험을 쌓은 뒤 한국에 돌아왔다.외환위기의 어려움이 온 나라를 힘들게 하던 때 회사 사정 역시 너무나 안 좋았다.직원을 70명에서 40명으로 줄였다.기획·마케팅 등 출판사의 두뇌 기능만 남겨두고 손·발에 해당되는 교열·인쇄·제본 등은 아웃소싱(외부위탁)을 했다.그때의 구조조정이 밑거름이 돼 현재 김영사의 1인당 매출은 연간 5억원에 이른다. 그동안 집중해 온 실용서 중심의 출판방향도 바꿨다.새 지향점은 ‘마음을 밝히는 책’과 ‘전문지식의 대중화’.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을 시작으로 성철 스님,틱닛한 스님의 책들을 줄줄이 냈다.‘수학이 수군수군’‘물리가 물렁물렁’ 등 톡톡 튀는 제목의 ‘앗! 시리즈’ 100권도 과학의 대중화 차원에서 발간됐다.최근 한 논문에 따르면 김영사는 90년대에만 베스트셀러(대형출판사 판매기준 10위권)를 136종 만들어냈다.연 평균 13.6권의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2000년대 들어서는 총 100권쯤(자체 추산)의 베스트셀러가 나왔다.이 중 ‘세계는 넓고‘는 지금까지 140만부가 판매되고 해외 15개국으로 수출됐으며 에릭 시걸의 ‘닥터스’는 156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며 200만부 가까운 판매를 기록했다. 많은 출판사들이 걱정하는 인터넷서점의 할인판매를 박 사장이 긍정적으로 보는 것도 자신감이 바탕에 깔려 있어서다.싼값으로라도 책을 많이 팔면 그만큼 사람들이 쉽게 책을 접하게 되고 한 권 살 사람이 두 권을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그러면 자연스럽게 시장도 커질 수밖에 없다. ●직장은 행복을 만드는 실험장 박 사장의 꿈은 직원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좋은 책을 만드는 것보다 한 단계쯤 우선하는 소망이다.2000년 주 5일 근무제를 시작한 것도,가회동 사옥에 전문가를 써가면서까지 정원을 가꾸는 것도,회사에서 쓰이는 찻잔 하나까지 직접 고르는 것도 ‘회사의 주인=직원’이라는 뜻에서다.시간나면 직원들과 뮤지컬,연극 등 공연을 자주 본다.책 만드는 사람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낼 줄 아는 트렌드 리더로서 창의성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에서다. 뉴욕에서의 경험은 박 사장에게 기업의 사회공헌에 대한 관심을 안겨주었다.뇌성마비 축구인들의 ‘곰돌이 축구단’,북한 어린이를 돕는 ‘JTS’ 등에 기부를 하고 있다.앞으로도 매출액의 3% 이상은 사회에 기부할 예정이다.또 사옥 3층에 연결된 뒤뜰에 책 박물관을 열어 작가나 지역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다. 당초 김영사를 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킬 생각에 자금(15억원)을 끌어들였지만 ‘소신경영’을 하고 싶은 생각에 포기했다.상장으로 주주 우선경영을 하다 보면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는 상황이 빚어질까봐서다. “한번도 제 자신의 편안함에서 벗어난 일을 해본 것 같지는 않습니다.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누군가는 알아주게 되잖아요.그저 제가 한 일보다 늘 결과가 더 커서 감사할 뿐입니다.”회사를 ‘행복을 만드는 실험장’으로 꾸려가고 싶다는 박 사장은 아직 인생의 동반자를 찾지 않았다.“나 스스로 삶을 설계할 수 있으니 좋다.”는 박 사장은 어지간하면 오후 6시에 불 끄고 퇴근한다.열심히 일하려면 열심히 놀아야 하기 때문이다. ■ 박은주 사장은 김영사 박은주(朴恩珠·48) 사장은 가히 ‘히트상품 제조기’라 부를 만하다.그의 손을 거치는 책들은 웬만하면 국민도서가 된다.사장 취임 이후 15년간 누구나 한번쯤 제목을 들어봤을 만한 베스트셀러(대형출판사 판매기준 10위권)를 무려 250여권이나 탄생시켰다.1982년 김영사에 스카우트된 뒤 89년 사장으로 전격 발탁돼 지금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지난해에는 ‘먼나라 이웃나라’‘이건희 개혁 10년’‘식객’ 등으로 7만달러 규모의 저작권을 일본·타이완 등지에 수출,아시아 출판계에 한류(韓流) 열풍을 일으켰다.취임 첫해 55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240억원으로 커졌다.경기침체로 출판업계 전체가 타는 듯한 한발을 겪고 있지만 김영사만큼은 올해 매출 300억원대로 25% 이상의 고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글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3)물마루의 세계, 바다미륵의 세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3)물마루의 세계, 바다미륵의 세계

    비행기에서 내려서자 후끈 습한 열기가 숨을 막는다.무더위 속에 박제된 듯한 육지와 달리 선들거리는 해풍이 불긴 불었으나 여름이 제주도라고 피해가지는 않는 모양이다.덥다.그러나 제주의 신화 속에 발을 담그면 어느새 더위를 잊게 된다.우선 구전되는 신화에 귀를 열자. 오래 전,북제주 김녕에서의 일이다.이곳에 사는 어부 윤동지가 고기를 낚으려고 물 깊이 천근수를 내렸더니 커다란 돌덩이가 걸려 올라왔다.이상하다싶어 돌을 내던지고 다시 그물을 내렸지만 똑같이 돌덩이가 걸려 올라왔다.장소를 바꿔서 그물을 내려도 마찬가지였다.사흘째도 돌이 올라오더니 드디어 그날 밤 꿈에 현몽하였다.“나를 곱게 모셔주면 자식 귀한 사람들이 자식을 얻도록 해주겠다.” 윤동지는 ‘조상이 내게 오셨구나.’싶어 그 돌을 가져다 미륵으로 모셨다.그러나 애기가 울어대고,강아지가 짖어대는 바람에 미륵을 편히 모실 수가 없게 되자 지금의 미륵당으로 옮겨 따로 모셨다고 한다.말하자면 ‘바다에서 온 미륵’인 셈이다. 이렇듯 ‘바다 미륵’에 관한 전설은 북제주군 곳곳에 남아있다.김녕의 미륵당은 서문 하르방당,윤동지 하르방,미륵보살 하르방으로도 불린다.옛날 김녕에 동·서문이 따로 있었는데,서문 밖으로 미륵당을 옮기면서 서문하르방당이 되었다.윤씨하르방이란 윤씨가 바다에서 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 ●북제주군 곳곳에 하르방 남아 있어 김녕미륵은 일주도로변 아름다운 해변에 좌정하고 있다.바닷가로 흘러내린 용암과 백색의 모래사장이 바닥이 들여다 보이는 파란 바닷물과 조화를 이룬 곳.바람막이 돌담을 거느린 미륵이 바다를 향해 정좌해 있고,작은 나무 두어 그루가 해풍을 막아서 있다.제주도에는 널린 용암 자연석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이를 굳게 미륵이라고 믿고 신봉한다.이 서문하르방은 기자와 미륵신앙이 하나로 결부된 산육신(産育神)인 셈이다. 북제주 삼양에도 비슷한 전설이 남아 있다.김첨지라는 이가 어느날 잠자리에 들었다가 화들짝 잠을 깼다.미륵먹돌이 선몽한 꿈을 꾼 것.이상하다고 여긴 그는 서둘러 꿈에 보인 곳을 찾아가 낚싯줄을 던지니 먹돌 하나가 걸려 올라왔다.김첨지는 먹돌을 품고 집으로 돌아와 알가름의 팽나무 아래에다 미륵으로 모시고 서물날(음력 11일과 26일)마다 제를 올렸다. 그 후 첨지 집안은 우환이 사라지고 복이 넘쳤는데,이를 전해들은 동민들도 그를 따라 미륵먹돌을 모셨다.서물날 이 미륵돌을 건져 서물당이 되었으며,이 때문에 서물 물때에 맞춰 제례를 올렸다.지금도 나무가 우거진 돌담 안에는 제단이 놓여져 있고,미륵먹돌은 제단 밑에 묻혀 있다. 북제주 화북의 미륵 역시 바다에서 태어났으나 약간 다른 점이 있다.바다에서 건져 ‘나에게 태인 조상’이라고 믿고 조상신으로 모셨더니 동지벼슬도 얻고 부자가 된 것까지는 같다.그러나 마을 청년들이 소용없는 짓이라며 미륵을 당 밖에 내버리고 불을 지르려고 했다.그러자 돌미륵이 제 발로 걸어 나왔으며,이 와중에 미륵의 몸 곳곳에 상처가 났다.이 상처는 동민들에게 피부병으로 나타나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뛰늦게 이를 깨달은 동민들이 다시 미륵을 정중하게 모시자 피부병이 씻은 듯 나았다고 전한다.피부병을 다스리는 미륵불인 셈이다. 필자는 10여년 전,작은 책 한권을 준비하면서 민중의 삶에 유전되는 미륵을 ‘마을미륵’으로,특히 제주도 마을미륵을 ‘바다미륵’으로 규정했었다.바다미륵의 출현은 확실히 ‘제주도적’이어서,육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육지미륵의 원조는 역시 백제 무왕이 건설한 익산 미륵사.미륵사 미륵은 삼존불이 솟구치면서 현현하였다.이렇듯 육지의 미륵은 거개가 땅에서 솟구쳤다.미륵출현의 기이(奇異)는 대단히 비의(秘儀)적이라 꿈에 현몽하여 당신의 존재를 알린다.그런데 제주 미륵은 땅이 아닌 바다에서 올라왔다. 알다시피 미륵은 ‘미래불’이다.석가모니 불타가 2500년 전에 중생을 제도하면서 미래의 희망을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도솔천 용화수 아래에서 중생제도를 행할 삼회를 기다리는 ‘마스터 플랜’이 그것이다.불교가 개창된 이래 미륵신앙은 하나의 운동,즉 미래불을 향한 기다림이었다.그 미륵이 천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미래불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이 땅의 민중이 미륵신앙을 대하는 모습은 포괄적이었다.목잘린 불상,목만 남은 불상,내력도 모른 채 밭을 갈다가 얻은 불상,더 나아가 단순한 돌덩이일 뿐인 바위,그것을 민중은 미륵이라고 믿어 왔다.미륵불의 현신이 이처럼 다양한 나라가 또 있을까.제주도 미륵은 이 다양성에다 ‘바다’를 보탰다. 땅과 달리 바다에서 미륵이 출현하는 방식은 해양문화사나 불교문화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녀 가히 ‘물마루의 세계관’이라 이름할 만하다.물마루는 수평선을 뜻한다.수평과 수직의 세계관은 다르다.한국문화의 기본 신앙 격인 산신신앙의 산은 수직적이다.단군 할아버지가 신단수로 ‘내려온다.’고 했을 때,당수나무에 빌면서 ‘설설이 내리소서.’ 했을 때도 수직적 강신은 금방 확인된다.제주도에도 한라산에 오르면 이런 산신이 있다. ●바다에서 올라온 제주미륵 신화 그러나 바닷가는 다르다.바다의 민중은 물마루를 보며 산다.물마루는 희망이자 절망이다.외지 물화를 가득 실은 배도 물마루에 오를 때는 돛대 끝자락부터 모습을 드러낸다.벌떼처럼 들이닥치는 왜구의 선단이 이 물마루에 돛대를 들이밀면 이곳 사람들은 서둘러 산으로 숨어들어야 했다. 이번 여행에서도 느낀 점이지만,바다 위에 뜬 섬은 물마루에 홀연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져 이내 망망대해로 변하곤 한다.거기에 섬 사람들의 희망과 절망이 뒤섞여 있다.이처럼 제주도의 바다미륵에는 평생동안 물마루를 지켜보면서 일상을 시작하고 마감하는 섬 사람들의 수평적 세계관이 층층이 잠복해 있다. 이번 여행에서 확인한 재미있는 점은 제주도의 바다미륵이 모두 북제주 쪽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생각컨대,이는 육지로부터 전래된 불교가 북쪽에 먼저 선을 보인 결과이리라.바닷가에 흔한 해수관음 신앙보다 바다미륵을 받아들임으로써 독자적인 민중적 신앙체계를 구축한 제주사람들의 면모가 새삼 돋보인다.당래하생(當來下生)을 서원했던 제주사람들의 꿈이 바다미륵으로 구현된 셈이다. 살펴 보면,제주 불교는 민간적 토속신앙과 결탁하는 경향이 특히 강하다.‘절 가듯 당(堂)에 가고,당 가듯 절에 가는’ 식이었으니 가히 비승비속(非僧非俗)이요,무불융합(巫佛融合)의 전형인 것이다.수많은 불교신앙 중 미륵만이 유일무이하게 신당(神堂)과 결부돼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물마루의 수평적 질서는 우리나라만의 내림이 아니다.음력 7월14일,올해로 따져 8월29일 일본 오키나와의 하테루마지마(波照間島) 주민들도 어김없이 미륵제를 지낼 것이다.이들은 해마다 풍년을 기원하며 미륵보살을 앞세워 축제를 벌인다.미륵신앙이 멀리 바다를 건너 머나먼 섬까지 파급된 것이다.일본 본토의 이토(伊豆)반도 같은 해안가에도 미륵신앙이 전래돼 풍요와 다산의 주술을 담당한다.오키나와의 수많은 불교신앙 중 미륵이 차지하는 위상은 단연 돋보인다.그 미륵은 엄숙하게 사찰에 모셔지지 않고 마을민의 축제에 불려다니고 있는 중이다.이런 마당에 해상교류 강국이었던 옛 유구국 사람들의 물마루적 세계관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일본 오끼나와까지 파급된 제주 미륵신앙 이런 바다미륵을 말하자면 제주읍성의 동·서문 밖에 1기씩 남아 있는 미륵을 빼놓을 수 없다.바로 지금의 제주시 동편 건입동과 용담동 한두기(大甕浦口)가 그곳이다.마을에서는 이 미륵을 일러 미륵돌미륵,미륵부처,혹은 서자복미륵,동자복미륵 등으로 부른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해륜사(海輪寺)를 일명 서자복사,만수사(萬壽寺)를 일명 동자복사라고 부르고 있는데,여기에서 미륵명칭이 유래됐음직하다.지금은 민가에 둘러싸여 있지만 제주시 한두기포구와 제주항이 굽어보이는 건입동 쪽에 위치해 지금까지 거친 제주 바다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망망대해를 오가면서 배를 기다리다 보면 사람들의 시선은 한결같이 물마루에 모인다.물마루에 배가 떠올라야 그 지루한 기다림이 끝나기 때문이다.누구나 미술시간에 수직과 수평의 구도를 배웠으리라.바다에서는 물마루의 수평선 하나가 다른 모든 구도를 압도한다.그 수평은 평온한 것 같지만,태풍이라도 거느리면 노도로,해일로 거칠 게 없는 ‘파문’을 일구기도 한다. 이런 ‘물마루의 철학’을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바다를 이해하는 첩경이다.세계의 수많은 모험가와 항해자들이 목을 매면서 지켜보았을 그 물마루를 바라보면서 제주민중은 바다미륵을 건지고 있었던 셈이다.
  • [시네 드라이브] 오래 찍는다고 영화 잘나오나

    얼마전 ‘바람의 파이터’의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일본의 여배우 히라야마 아야에게도,지난달 일본에서 만난 ‘역도산’의 여배우 나카타니 미키에게도 “일본영화 촬영 때와 가장 달랐던 점이 뭐냐.”는 질문을 똑같이 던졌다.“일본에선 정해진 시간에 도착만 하면 별로 기다리지 않는데 비해 한국영화는 기다림의 연속이다.”(아야) “일본에서는 보통 촬영이 3주면 끝나는데 ‘역도산’의 첫 촬영 때 태양 각도가 안 좋다며 무작정 기다려서 놀랐다.”(미키) 둘 다 일본영화와 다른 한국영화의 특징으로 유독 긴 촬영기간을 꼽았으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한국영화의 촬영기간은 보통 3개월.회차로는 50∼60회 정도다.일본이 좀 빠른 편이지만,보통 한달반 정도에 걸쳐 30여회로 마무리짓는 외국과 비교해도 약 두 배나 길다.물론 공을 많이 들이다 보니 촬영일수가 길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대부분의 현장 스태프들은 잘못된 관행과 전문성의 부족,비합리적인 제작시스템 등으로 촬영일수가 길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스태프들과의 계약을 주급제로 하는 할리우드를 비롯한 외국의 경우는 촬영일수가 길어질수록 인건비 부담이 늘기 때문에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다.미리 찍을 수 있는 분량과 일수를 조율하고,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책임을 묻는 것.‘남극일기’의 촬영장에서 만난 배우 송강호는 “뉴질랜드 스태프들은 정확한 계획 하에서 오전 5시∼오후 5시에만 일하기 때문에 촬영일수를 고무줄처럼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면 작품당 계약을 하는 한국영화의 제작진들은 촬영일수에 대해 무감각한 편이다.한 스태프는 “적은 인건비를 받는 스태프들이 촬영스케줄까지 빡빡한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제작자들도 빨리 끝내라고 주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정확한 촬영분량을 계산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관행적으로 한국영화는 보통 한 편에 120신의 시나리오를 쓰지만,실제로 한 편의 영화에는 90∼100신 정도밖에 안 들어간다.결국 쓸데없이 낭비하는 필름과 촬영일수가 발생한다는 뜻이다.더욱이 한국영화 편수는 급증하는 데 비해 숙련된 스태프들이 많지 않은 것도 한 이유로 지적된다. 예외도 있다.‘리허설 한 번 테이크 한 번’으로 유명한 김기덕 감독은 개봉을 앞둔 ‘빈집’에서도 거의 보름만에 촬영을 끝마쳤다.물론 그렇게 빨리 찍는 게 좋다는 뜻은 아니다.하지만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남들은 다섯 번에 찍는 장면을 한 번에 찍는다.”는 김 감독의 말을 다른 감독들이나 스태프들이 한 번쯤 곱씹어 볼 필요는 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 전남 신안군 우이도의 ‘산태’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 전남 신안군 우이도의 ‘산태’

    장마가 끝나자 저마다 뒤질세라 해수욕장으로들 달려 나간다.특히나 젊은이들에게는 바다,그 가운데서도 모래사장의 추억만으로도 달려간 수고가 아깝지 않다.그런데 그들의 추억만들기가 신명날수록 모래가 이룬 밭 백사장은 절체절명의 위기로 빠져든다.강변의 모래를 퍼내다가 바닥이 드러나자 돈 좀 벌겠다고 팔 걷어붙인 업자들,바닷모래에 손을 댄지 오래다.금모래 은모래 끝없던 강변의 모래밭이 사라지자 이내 바다로 눈길을 돌린 것.그러나 바다모래는 무한정이라고 믿었던 그들은 마침내 어민의 저항에 맞닥뜨렸다. 알고 보면,바다 모래밭은 물고기들의 산란장이다.바닷모래를 파내 지은 아파트에 아늑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그 뒷전에서는 보금자리를 잃은 물고기들이 뿔뿔이 연안을 떠나는 역설의 변증이 드러난다. 그래서 그 모래의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모래가 지천인 ‘바다 위의 사막’으로 발길을 돌린다.사실,막막하고 황량한 땅은 바로 사막이다.그러나 사막의 척박함을 모르고 사는 우리에게 사막은 그 자체가 ‘낭만’으로 다가온다.방울소리 쩔렁이는 쌍봉낙타를 타고 끝없는 사막을 가로지르다 오아시스를 만나는 꿈을 꾸며 살아온 덕분에 하다 못해 유행가 가락에도 사막예찬은 곧잘 묻어난다.만약에 그런 사막이 바다 가운데 있다면? 그야말로 환상적이지 않을까.전남 신안군 우이도가 그런 곳이다. ●목포에서 뱃길로 200리길 사막 너머로 바다가 굽어 보인다.섬 속에 사막이 있다는 단 한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막은 사구(砂丘)의 과장된 표현.아무렴 어떨까.바다가 굽어보이는 사구까지도 사막에 대한 향수로 노래하려는 나그네의 객기인 것을. 목포항에서 바로 가는 배편도 있지만 도초섬에서 배를 갈아탔다.바다의 시간은 육지의 그것과 달라 그저 ‘기다림’이 일상화되어 있다.기다려야 한다.성급할 것 없으며,서두른다고 해결될 일도 별로 없다.‘바다가 육지라면’이란 노래가 절로 나온다. 바다의 시간은 느긋하지만 도회의 이방인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지척에 드러누운 섬도 배가 없으면 범접을 못한다.하물며 머나먼 외해는 그야말로 언제나 전인미답(前人未踏)이요,고도절해(孤島絶海) 아니겠는가. 목포에서 80㎞,뱃길로 200리길이니 흑산도 항로의 절반이다.바깥바다답게 바람과 파도가 드세어 여름 한철을 빼고는 허구한 날 뱃길이 끊기는 곳이다.반대로 생각하면,사람들의 발길이 그렇게나마 끊겼기에 망정이지 그런 불편조차 없는 곳이었다면 사구가 온전히 남았겠는가.이곳에서는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아 모처럼 ‘완전한 휴식처’에 들었음을 이내 깨닫는다.여객선이 방파제로 접어들자 중앙의 거대한 사구가 한 눈에 들어온다.‘모래언덕’이라기보다는 ‘모래산’이다. 각종 연구보고서에는 이를 풍성사구(風成砂丘)라고 적고 있다.바람이 빚은 사구란 뜻일 텐데,참 어렵고 멋없는 말이다.세상에 바람이 빚지 않은 사구가 어디 있으랴.우이도 사람들은 이를 ‘산태’라고 부르거니와 토착어를 살린다는 뜻에서 부디 이 ‘산태’라는 구전전승어를 기억할 일이다.산사태 같은 모래산이란 뜻일 터이니,짚어보면 참 아름다운 말이다.부디 풍성이란 우스운 말을 빼고 본디말인 ‘산태’로 쓰거나 그게 어려우면 그냥 ‘사구’로 가려 씀이 마땅할 것이다. ●모래언덕 위에 마을 들어서 방파제에서 불과 5분여 거리에 돈목마을이 있다.돈목 방파제에서 보면 건너편에 빤히 성촌이 보이고,돛폭을 펴 바람을 맞듯 돛대바위가 물목을 지키고 서있다.만의 양측 산은 늘 안개에 젖어 있다.그래선지 산길에는 고사리가 지천이다. 돈목은 산의 모퉁이에 터를 일궈 바람의지가 되는 마을이다.이곳에서 30여m를 걸어나가면 돈목해수욕장이라 불리는 해변에 이른다.건너편은 성촌마을이다.말하자면,돈목과 성촌 사이가 온통 사구인 셈.그 중 가장 큰 중앙사구를 보면 산자락 사이의 계곡을 모래가 온통 꽉꽉 채우고 있다.다시 둘러보니 돈목,성촌이 모두 모래언덕 위에 형성된 마을 아닌가.산과 산 사이 협곡을 꽉꽉 채운 높다란 사구로는 이곳이 한반도에서 유일하며,외국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전형적인 연안사구와 해빈(海濱)의 지형을 갖춘 우이도,참으로 소중한 연안생태환경이다. ●북풍에 깎이고 남풍에 쌓이고 일부러 둘러보니 해변은 물론 뭍밑도 온통 모래밭이다.바다 속의 모래가 파도에 밀리고,바람에 날려서 해변에 거대한 모래의 성채를 쌓은 것이다.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이 정도의 사구를 형성하기까지 상상을 절하는 시간이 사구에 잠겨있을 것이다.겨울에는 성촌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온다.겨울의 북풍은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매섭고 강하다.산 정상의 모래가 깎여서 표토의 돌들이 드러날 정도다.여름이 오면 남풍이 분다.다시금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하여 모래가 쌓인다.모래가 다시 산 정상을 덮는다.그런 퇴적의 상호 교체과정이 오랜 세월 반복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바람이 빚은 예술이다.바람은 거침없이 분다.김수영은 그의 시 ‘풀잎’에서,바람이 오면 풀이 바람보다 미리 눕고,바람보다 늦게 일어난다고 했다.그러나 풀과 달리 모래는 바람에 저항한다.바람에 맞서다 끝내는 멀리 날려간다.바람의 힘에 밀린 모래들은 언덕을 만들고,끝내는 모래산으로 오른다. 바람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는 다른 예에서도 알 수 있다.영국 남쪽의 해스팅스(Hastings)마을을 보자.1066년 노르만족이 침입할 당시만 해도 바닷가에 위치했지만,지금은 해안에서 수㎞나 떨어져 있다.거센 겨울 폭풍이 엄청난 양의 모래를 몰고와 퇴적된 결과이다.이렇듯 우이도 사구도 거대한 바람만이 이룰 수 있는 걸작이다. 우이도 사구에서 굽어보면,파도에 으깨지는 모래와 사구의 모래가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똑같은 모래인데도 ‘파도의 지문’과 ‘바람의 지문’이 다르기 때문이다.바람의 지문은 파도의 지문처럼 파문(波紋)이 강하지 않다.끊임없이 움직이며,매우 섬세하고 미세하게 흔들려서 끝내 ‘비단길’ 같은 예술품을 빚어낸다.실크로드가 비단이 오간 데서 비롯되었다고는 하지만,아름다운 모랫길의 비단 같은 질감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그런 점에서 우이도 사구는 한반도에서 매우 드물게 비단길의 품격을 보여주는 곳이다.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관광객들이 찾아드는 것은 전적으로 사구 때문이다.사람들은 수영복만 걸친 채 사구를 걸어 올라간다.한여름에는 사구 정상이 사람들로 빼곡하다.눈썰매 타듯 사구를 미끄러져 내려온다.도시민들의 추억만들기란 고작 눈썰매장의 솜씨를 못벗어나나 보다.그것도 모자라 모 신문사는 아예 ‘해풍 가르는 모래썰매’란,혐오스럽도록 반생태적인 기사를 싣기도 했다. ●생태공원화·해양연구 늦었지만 다행 지금 ‘바람의 예술품’은 몰락하는 기초예술처럼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늦게서야 사구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학문적 대상으로 삼아 본격적인 연구를 하고,사구생태공원으로 삼기 위한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가령 신안군에서 전남대 해양연구소에 의뢰한 우이도 사구연구 따위가 그런 노력의 단면이다. 외국의 경우,당연히 사구는 절대 보호지역이다.태안의 신두리 사구가 늦게나마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일은 만시지탄이다.이웃 일본의 도토리(鳥取)도 사구생태관광지가 널리 알려졌다.미국 미시간호 호변의 호프 마스터 주립공원 내의 질레트(Gillete) 사구,콜로라도 남쪽 크리스토 산기슭의 사구도 절대 보호대상이다.오스트레일리아의 모레톤(Moreton)섬 사구는 높이가 무려 250m에 이른다.또 남아프리카의 알고아(Algoa)만(灣)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모래언덕은 120㎢ 넓이를 자랑한다.해양생태환경의 위대한 유산들이다. 세계 곳곳에서 모래가 사라지고 있다.분별없는 모래채취 때문이다.바다모래의 총량은 절대 불변이다.어디선가 모래를 빼쓰면 그만큼 다른 곳의 모래가 줄어든다.해변의 각종 공사와 모래채취는 물길을 바꿔 해수욕장의 모래를 휩쓸어 낸다.천혜의 백사장이 근래 앙상한 몰골을 드러낸 사례는 한두곳이 아니다.이렇듯 우이도의 모래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모래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관광객들이야 신나겠지만 아무리 막강한 바람의 힘으로도 그 생채기를 복원해 내지는 못한다.바람의 힘을 압도하는 인간의 발길이 산태를 들판으로 만들 요량이다.바람에 맞서는 모래처럼 보다 강인한 방책은 없을까.그 흔한 산책로 하나 만들어줄 수는 없는 것일까.바다가 굽어보이는 모래산 정상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정약전(丁若銓;1758∼1816) 선생이 떠오른다. 일찍이 이곳에서 오랜 귀양살이를 하다가 우이도 바깥바다인 흑산도로 쫓겨가 현산어보(玆山魚譜)란 희대의 수산서를 남기고 떠난 약전.당신께서도 우이도의 사구를 일상적으로 거닐었음이 틀림없다.이곳을 하릴없이 오가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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