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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방후 첫 사형수 시인 兪鎭五(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1)

    ◎詩 낭독 탁월한 분단시대 최고 저항시인/중학생때 일본아이 자주 때려 형사 등살에 渡日/1946년 ‘국제청년데이’ 축시 낭독 10만 군중 갈채/지리산 문화공작대장 활약중 압송돼 사형 언도/‘아내와 월북했다’ 가설 바로잡는일 ‘국민의 몫’ 변혁기 문학은 사회와 역사 발전의 거울로서의 역할을 맡아왔다.해방의 공간에서 또 독재와 민주화의 공간에서 우리 문학이 줄곧 본연의 자리를 지켜왔느냐에는 많은 평가들이 엇갈리고 있다.그 가운데 새로운 세기는 다가오고 이제 우리 문학의 새좌표 설정이 요구되고 있다.이를 위해 그동안 우리 문학에 새겨져온 숱한 갈등과 번뇌의 흔적들을 문학평론가 任軒永 교수를 통해 재조명한다.주1회씩 연재될 任교수의 글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 문단의 비사들이 많이 포함될 예정이어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 시인이,“아아,사랑은/가고 돌아오지 않네!… 허공으로 사라졌네”라고 애절하게 노래하던 한 시인이 총탄의 이슬로 사라졌다.때는 1936년 8월19일,무대는 스페인 그라나다 근교 어느 과수원이었다. ○‘한국판 로르카’ 시인 투사 ‘1927세대의 샛별’이란 별명을 가진 민요시인 가르시아 로르카는 스페인 내전중 38세의 젊음을 피살로 마감했다.이 비참한 최후는 그의 시를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어 일약 세계적인 서정시인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노도 같았던,광풍 같았던,홍역 같았던 우리의 해방 공간과 분단의 틈새에는 ‘한국판 로르카’가 없었을까.독특하고도 마력을 지닌 시 낭독으로 청중을 열광시켰다는 그 로르카에 못지 않게 10만 참석자들을 뜨겁게 달궜던 한 시인이 있었다.바로 유진오(兪鎭五)였다. 활동으로 본다면 유진오가 ‘한국의 로르카’가 아니라 로르카가 도리어 ‘스페인의 유진오’가 됨직할 만큼 28세에 문학적 생명을 총살당한 이 시인은 세계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투사였다. 이제 통일을 향한 민족문학사는 분단의 장막에 가려졌던 문학인과 문학적 사건들을 21세기적 가치관으로 재조명할 처지에 있다 바로 그 첫 대상이 1950년 6월29일 긴급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분단시대 최고의 저항시인 유진오이다. 이 시인의 생애에 대한 연구자료는 문학사가 정영진의 ‘육탄시인 유진오의 비극’(저서 [통한의 실종문인] 게재)과 작가 강준식의 중편소설 ‘어둠을 찾아서’(문학사상 1990.3)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이 어딘지 조차도 미궁에 있었는데,이 두 자료와 증언에 의하면 유진오는 서울사람이라고 보는게 옳을 것 같다.아버지 유치구(兪致九)와 어머니 양만선행(梁萬善行·전주 출신)의 4남중 막내로 논산에서 태어났다.아버지는 노량진에서 서울시내 전체를 공급지로할 규모의 지물포 도매점을 경영했었는데 사업차 잠시 논산에 가있을 때 유진오가 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넉넉한 집안으로 맏형은 검사,둘째는 외교관,셋째는 일본에 귀화,그리고 막내가 시인인데,그는 겉보기에는 얌전했으나 중동중학 시절 음악 미술 스포츠 등 다방면에 재능을 가졌으며 특히 기타를 잘 쳐 부민관의 어떤 음악회에 찬조출연할 정도였다고 전한다. ○사업가 집안의 서울사람 큰 키에 좋은 체격이었던 그는 중학생 때부터 일본사람들을 너무나 증오하여 일본아이들을 때리다가 경찰서에들락날락 했었다고 전한다.이런 행동 때문에 계속 고등계형사의 시달림으로 국내에서의 진학이 어려워 1941년 도쿄로 건너가 와세다(早稻田)에 입학했으나 역시 형사의 등살에 못이겨 메이지(明治)로 옮겼지만 여전해 일본의 저명한 국수주의자가 만든 분카가쿠인(文化學院)에 들어가 동양문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제 말엽 징병기피를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해방직전에 밀입국했다.1945년 9월 그는 오장환의 추천으로 등단,당시 패기있는 젊은 시인들(金光現 金尙勳 李秉哲 朴山雲 兪鎭五)과 ‘전위시인집’(노농사 1946.10)을 내 화제를 일으켰다. 1946년 9월1일,국제청년데이(International youth day) 기념행사가 훈련원 (현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렸다.1915년 10월3일에 제1회 대회를 가진 국제청년데이란 진보적인 청소년들의 세계적 조직으로 이듬해부터는 9월 첫 일요일에 하던 행사를 1932년 이후 9월1일로 바꿔 실시했다. 한국에서는 해방후 처음 열린 이 청년축제에 10만명이 운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이날 식전에서는 평론가김오성(金午星)이 구속되는 등 이미 파란이 예상되었는데,시인 유진오는 축시낭독을 위해 특별초청을 받았다.문장 한토막씩을 띄어가며 격정적으로 특유의 몸짓을 해가며 청중을 사로잡는 것으로 이미 명성이 나있던 유진오로서는 가장 많은 독자 앞에 서게 된 기회이기도 했다. ○친일파를 ‘망령영감’ 야유 “눈시울이 뜨거워지도록/두 팔에 힘을 주어 버티는 것은/누구를 위한 붉은 마음이냐?”고 서두를 꺼낸 유시인은 “왜놈의 씨를 받아/소중히 기르던 무리들이/이제 또한 모양만이 달라진/새로운 점령자의 손님네들 앞에/머리를 숙여/생명과 재산과 명예의/적선을 빌고 있다/누구를 위한/벅차는 우리의 젊음이냐?”고 포효하면서 “썩은 강냉이에 배탈이 나고/뿌우연 밀가루에 부풀어 오르고도/삼천오백만불의 빚을 걸머지고”있다면서 미군정을 정면으로 매도함과 동시에 보수세력(친일파)을 “망령한 영감님”이라 야유하면서 “지옥으로 쫓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여 참석자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그의 시낭독 기교가 탁월하다는 말은 곧 미군정의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여,행사 이틀뒤인 9월3일 미군정 포고령 위반으로 피검,분단문학사의 첫 필화사건의 주인공으로 부각된다.이 낭송의 투사시인에게 문학가동맹측은 ‘인민의 계관시인’이란 찬사를 보내면서 석방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으나 10월 군사재판에서 이 시인은 1년 징역형을 선고 받아 약 9개월 복역한 뒤 석방(1947.5)되었다. 문학가동맹의 문화공작대 제1대 소속으로 경남지방을 순회(47.7)하고 돌아온 이듬해 그는 행운의 해를 맞는다.시집 ‘창’(정음사,48.1)을 낸데 이어 5월,창경국민교 여교사 김금남(金今男)과 결혼,1년 뒤 딸(香濬)을 얻는다.겉보기로는 이 시인에게 가장 행복했던 이 순간은 너무나 짧았다. 그는 조직으로부터 지리산 문화공작대장 파견 지령을 받고 입산(49.2.28), 여순병란(麗順兵亂)사건의 주모자 김지회(金智會)부대에 합세하나 ‘싸우다 쓰러진 용사’란 시를 낭독하는 등 한달간 머물다가 하산명령으로 내려오던 중 남원지역 민보단(民保團)에 피체(49.3.29)돼 서울로 압송,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49.9.30)를 받는다. 집안 어른이 앞장서 안재홍 신익희 등 정계 거물들의 탄원 서명과,시인과 이름은 같으나 전혀 다른 유명한 헌법학자 유진오(兪鎭午)를 동원하여 무기감형(49.11.7)에 성공,서대문교도소에 복역 중 그는 운명적인 전주로 이감된다(50.3).그 석달 뒤 일어난 6·25는 서울의 모든 죄수들이 석방되는 계기가 되었으나 대전 이남지역 교도소 수감자들 중 특수한 사람들은 ‘긴급처형’ 되었는데,유진오는 6월29일 새벽 30여명과 함께 총살당했다고 기록들은 전한다. “아,솔직히 말하면 나는 살고 싶다.살아서 내 생존의 확인인 시를 쓰고싶은 것이다.그렇지 않다면 사시나무 떨리듯 엄습해 오는 이 공포는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어째서 어머니의 자애로운 얼굴이 보고 싶으냐? 어째서 밤이면 두고 온 아내와 딸아이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지는 것이냐?” ○신익희 등 거물 탄원 서명 논픽션에 가까운 강준식의 소설 ‘어둠을 찾아서’에서 인용한 유진오의 옥중수기중 한 부분이다.이렇게 해서 한 시인,민주주의와 자유를 사랑하던 한 시인은 사라졌고,분단체제는 그의 모든 미학과 사랑까지 불온시해 버렸다. 참고로 그의 작품은 평론가 오성호의 노력으로 ‘창’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어 있음을 덧붙인다. “시인이 되는 것은 급하지 않다.먼저 투철한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겠다”던 이 시인의 불온성은 해방공간의 홍역이었을 따름이지 21세기를 바라보는 오늘로 전이될 성질은 아니다.지금은 오히려 역사적 진실의 복원이 절실한 시기가 아닌가.여기까지가 문학평론가의 몫이다.왜냐 하면 아직도 유진오의 이야기는 끝이 안났기 때문이다. 그와 약간의 인척관계에 얽혀있는 작가 강준식의 소설에 따르면 유진오는 처형의 순간을 교묘히 넘겨 살아남아 어린 딸을 형수에게 맡기고 아내와 월북했을 수도 있다는 설득력있는 가설을 제공하고 있다.이쯤되면 대체 비평가의 글이란게 하잘 것 없는 거짓부렁이일 수도 있음을 통감한다.누가 문학사를 바로 잡을수 있는가.국민과 정부와 연구자 모두의 협력이 절실하다면 과장일까.
  • 현대백화점 경품 車 63대

    백화점 경품으로 경승용차 63대가 등장했다. 1일 현대백화점은 2일부터 8일까지 현대 유니콘스의 아토스배 한국시리즈 우승을 축하하는 기념행사로 전국 9개 점포에서 각 점별로 매일 아토스승용차 한대씩 모두 63대를 경품으로 제공한다고 밝혔다.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고 오후 7시 각 점포에서 추첨을 통해 당선된다.
  • 獨 슈뢰더내각 공식 출범/좌파성향 유럽통합 새 외교정책 시사

    ◎티어제 동독 출신 첫 하원의장에 선출 【베를린=南玎鎬 특파원】 독일의 새 정부가 27일 공식 출범했다.사민당(SPD)과 녹색당은 이날 하원(분데스탁)에서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를 총리로 선출했다. 16년 16일간 집권한 정치 거목 헬무트 콜 총리의 퇴장과 동시에 이루어진 슈뢰더 총리 시대의 시작은 유럽내 보수주의가 사라짐을 예고하는 것이고 유럽통합의 진로에 좌파 성향이 지배할 것임을 시사한다. 또 유럽 통합에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경제력에 걸맞은 위상 재정립을 추구해온 독일은 신정부 출범에 때맞춰 거리낌없는 외교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전후 세대인 슈뢰더는 당초 예측대로 최근에 있었던 프랑스의 제1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행사 초대를 거부해 새로운 대외정책이 뒤따를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한편 하원은 이날 볼프강 티어제 사민당 부총재(55)를 동독 출신으론 처음으로 신임 하원의장에 선출했다.8년간의 통합노력에도 심리적 골을 남겨두고 있는 동서독 통일의 완결 작업에 슈뢰더 정부가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둘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金 대통령,성실한 국회 답변 주문/국무회의

    ◎“옳은 일엔 의원과 과감한 논쟁해야할 것” 20일 국무회의는 동절기 실업대책과 국정감사 대책이 중점 현안이었다.金大中 대통령도 이부분에 대해 특별히 당부했다.특히 陳념기획예산위원장은 야당의원들이 국감자료를 통해 구조조정의 부분적인 내용을 가지고 새로운 사실인양 공개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무엇보다도 예산국회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를 강조했다.金대통령은 “이번 새정부 첫 예산국회가 정부에 대한 시험대가 될 수도 있다”며 장관들에게 나름대로 구상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먼저 “선진국에서는 의원과 장관이 일문일답을 하고 있으나 우리는 의원과 장관 비서관들간의 정책질의가 되고 있다”며 우리 현실을 개탄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이어 “장관들이 이제는 메모를 보고 답변을 할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 든 지식으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나아가 장관들의 소신과 설득력,그리고 옳은 것에 대해서는 의원들과 과감히 논쟁을 하라고 지시했다.또 “국회답변때 회피하거나 무책임한 답변을 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라”면서 자료도 성실하게 제출하도록 했다.다만 과거정부와 현정부가 하고 있는 내용을 분명히 구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의원들의 지적이 옳을 때는 받아들이되 무리한 경우나 정부로서 그대로 넘어가지 못할 사항에 대해서는 논쟁을 해야 할 것”이라며 공격적인 자세를 갖도록 강조했다. ○…아울러 金대통령은 “일용직 167만명 가운데 42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며 “겨울이 오면 더 증가할 것이므로 차질없이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특히 부산 영도구청 직원들이 205명을 취직시킨 사례를 적시하며 高建 서울시장에게 노숙자대책과 실업자 직장알선 등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처리된 안건은 다음과 같다. ■법률안 △공기업의 경영구조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 △해외뇌물거래방지법안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 개정안 △중앙행정권한의 지방 이양 촉진에 관한 법률안 △도로교통법 개정안 △지방재정법 개정안 △지방공무원교육훈련법 개정안 △한국교육방송원법 개정안 △잠엄법폐지법안 △화전정리에 관한 법률 폐지안 △산업구조고도화촉진법안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한국석유개발공사법 개정안 △전기용품안전관리법 개정안 △수출품 품질향상에 관한 법률 폐지안 △우정사업 운영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소프트웨어 개발촉진법 개정안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대통령령안 △사립학교법시행령 개정안 △특수학교 시설·설비기준령 개정안 △수도권정비계획법시행령 개정안 ■일반안건 △1999년도 비료계정의 한국은행 차입원리금 상환에 대한 국가보증동의안 △1998년도 국유재산관리계획 변경안 △1998년도 일반회계 예비비 지출(법무부 소관 재소자 수용관리 등 추가 소요경비,동절기 일용실업자 생계대책을 위한 공공근로사업 및 능력개발훈련 소요경비) △국제상거래에 있어서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제공행위 방지를 위한 협약 비준안 △에티오피아와의 문화협정안 △청소년헌장 개정안 ■보고안건 △순국선열의 날 기념행사 기본계획안 ■즉석안건 △외무공무원법 개정안
  • 前·現 외교장관 돈독한 우의 ‘보기 좋아요’

    ◎朴 전 장관 터키 독립기념행사에 대통령 특사로/洪 장관,경력·정치적 비중 높이 평가 적임자 추천 朴定洙 전 외교통상장관의 金大中 대통령 특사자격 터키방문을 두고 관가에서는 전·현 두 장관의 관계를 ‘보기좋은 그림’이라고 평하고 있다. 朴전장관은 오는 29일 터키 독립 75주년 기념일 행사를 맞아 金대통령의 특사로 터키를 방문할 예정이다. 대통령 특사는 물론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지만 주로 외교통상부 장관의 건의를 통해 이루어진다.이번에는 외교부 내 실무진들이 朴전장관을 경력으로나 정치적 비중으로 볼 때 적합한 인물이라고 추천하자 洪淳瑛 외교부장관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朴전장관은 이와 함께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미국 의회를 방문,대북 경수로 지원금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당초 지난달 방미하려 했으나 국회 개원을 둘러싼 진통으로 일정을 연기,재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직 외교통상장관의 경우,의전과 외교지식에 밝아 외국의 경축일 등에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방문하는것이 적격이다.그러나 전직 장관과 현직 장관간에 껄끄러운 관계도 많아 이같은 특사임명이 잦은 일은 아니다.90년대 들어서는 93년 당시 李相玉 전 장관이 당시 韓昇洲 장관의 추천에 의해 특사로 외국을 방문한 정도가 기록돼 있다. 실제로 올상반기 역대 외교통상부 장관간 만찬을 가졌을 때 전직 장관들끼리 의견충돌로 고성(高聲)이 오갈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었다. 따라서 이번처럼 전직 장관을 적절한 업무에 활용하는 것은 보기에도 좋고, 일의 능률면에서도 바람직하다는 의견들이다.
  • 建軍 50돌과 DJ의 軍 신뢰(청와대 취재수첩)

    제9호 태풍 ‘얘니’가 물러가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드러낸 1일은 건군(建軍) 50주년을 맞는 날이다. 이날 아침 金大中 대통령은 우울함과 기쁨이 교차했다. 남부지방의 태풍피해 소식으로 착잡해하면서도 건군 50주년 행사를 번듯이 치를 수 있다는 안도감에서 무척 기분이 좋아보였다고 朴智元 대변인은 설명했다. 金대통령의 마음 속에는 건군 기념행사를 보기좋게 끝냈으면 하는 바람이 깔려있다. 태풍우(颱風雨)때문에 군부대의 오랜 준비가 무위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우려를 했었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50주년 행사를 준비한 장병들의 허탈감을 어떻게 할 것인가’­아마 지난 사나흘동안 金대통령의 뇌리를 떠나지 않은 고민이었으리라. 작은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 군에 대한 金대통령의 신뢰의 싹을 찾을 수 있다. 군은 오래전부터 金대통령과 ‘미묘한 관계’로 인식되어 왔다. 지난 87년 대선 당시 YS(金泳三 전 대통령)와 야권후보단일화 협상 때도 金대통령을 짓누른 것은 군의 향방이었다. 金壽煥 추기경도 군의 반발을 고려,이번에는YS가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낸 적이 있다. 선거 때면 기다렸다는 듯이 기승을 부리던 ‘북풍(北風)’도 그와 무관치 않은 공작이었다. 심지어 몇해 전 계룡대에서 거행된 3군본부 이전 기념행사 때는 ‘그렇게 부탁을 했는데도 단상에 앉지 못한 수모’를 참아야 했던 金대통령이다. 金대통령은 이날 국군 최고통수권자로서 사열과 분열식에서 89차례나 거수경례로 답례했다. 군에 대한 金대통령의 인식 변화를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다만 “이제 더이상 서울을 쳐다보지 말라”는 언급에서 보듯이 공정한 인사와 정치적 인사 배제 의지만은 분명하다. 지난 28일 육군 모부대 화력시범을 참관하고 난뒤 “정말 든든하다”고 토로했다. 최근 육군 중령과 대령 인사 때도 “千容宅 국방장관과 군 수뇌부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외교안보수석실의 관계자는 “심지어 林東源 외교안보수석에게도 일체의 얘기가 없었다”고 전했다.
  • 국군의 날 행사 스케치/“4년만에 보는 위용” 박수갈채

    제 50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1일 오전 10시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기념식이 열린데 이어 오후 3시부터 광화문 등 서울 도심에서 시가행진이 4년만에 펼쳐졌다. 장병들은 이날 행사에서 ‘조국과 함께,국민과 함께’하는 강한 군대의 위용을 한껏 과시,시민들로부터 뜨거운 찬사와 격려를 받았다. ○…기념행사는 식전행사 및 기념식,호국의 불 점화,민군 행진,분열 등의 순으로 2시간여동안 화려하고 웅장하게 진행됐다. 기념식에 이어 C­130,CN­235 등 수송기 8대에 나눠탄 특전사요원 242명이 2,000피트 상공에서 집단강하,적진 침투장면을 연출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어 1만피트 상공에서 여성대원 2명을 포함한 특전사요원 86명이 CH­47헬기에서 뛰어내려 창공에서 오색 연막을 내뿜으며 4,500피트 상공까지 맨몸으로 떨어지다 낙하산을 펼치는 공중묘기를 연출했다. ○…시가행진은 헌병 사이카를 선두로 국군지휘부 군악대 도보부대 등 1만2,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남대문∼시청∼광화문∼서대문로터리 사이 1.2㎞구간에서 1시간여동안 계속됐다. 행진에서는 전국 16개 시·도행진,학생과 어린이를 포함한 각계 각층의 ‘시민행진’과 사물놀이패를 앞세운 ‘한마음 대행진’이 동시에 펼쳐졌다. 대형건물 옥상에서는 색종이가 뿌려졌고 일부 학생들은 군 장병들에게 꽃다발을 걸어주기도 했다. ○…남대문∼광화문∼동대문사이 4㎞구간에서 열린 기계화부대의 행진에서는 155㎜ 자주포를 비롯,포병화력의 핵심인 신형 다연장로켓포(MLRS),장거리지대지 유도탄(ATACMS) 등이 처음으로 선보였다. 하늘에서는 대한항공 제트여객기 2대가 30여분에 걸쳐 오색연기를 내뿜으며 1,500피트의 저고도로 선회비행,축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 내일 국군의 날 民·軍 도심 행진

    ◎오늘∼10월2일 수도권 교통 부분통제 제50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가 10월 1일 3부 요인과 군 관계자,참전용사 등 3만7,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남서울공항과 서울시내에서 열린다. ‘조국과 함께 국민과 함께’라는 제목으로 치러지는 행사에서는 서울공항 기념식에 이어 민·군이 함께 참여하는 시가행진이 도심에서 실시된다. 군 당국은 이에 따라 “30일부터 10월 2일 사이 서울과 경기 일원에서 부분적으로 교통이 통제된다”며 시민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전쟁기념관은 ‘국군의 날 기념행사’가 열리는 1일 하루동안 임시휴관한다.
  • 건군 50주년 국군의 날/‘民·軍 한마음’ 시가행진 거행

    ◎4년만에 도보·기계화부대 도심행렬 선봬/‘호국의 불’ 점화·특수비행 시범 등 행사 다채 제50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가 오는 10월1일 3부 요인 및 군 관계자,참전용사,시민 등 3만7,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과 서울시내에서 거행된다. 건국 50주년을 맞아 ‘조국과 함께 국민과 함께’라는 제목으로 치러지는 이번 행사에서는 서울공항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이어 민·군이 함께 참여하는 시가행진이 94년 이후 4년만에 서울시내에서 펼쳐진다. 기념식은 오전 10시부터 2시간여동안 서울공항 행사장에서 군 취타대 및의 장대 고적대의 식전행사에 이어 특전부대 집단강하,호국의 불 점화,민·군행진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호국의 불’은 건군 이후 처음으로 화랑도 정신의 본산인 경주 통일전에서 오는 26일 채화돼 6일간 전국 각지의 군부대와 전적지를 돈 뒤 식장에 도착,점화된다. 공군 특수비행팀인 블랙이글은 F­16,F­5 전투기 6대로 편대를 이루어 건국50주년을 상징하는 특수 비행시범을 선보인다. 이어 오후 2시∼5시30분남대문과 광화문 등 시내 일원에서는 도보 및 기계화부대의 행진 및 ‘전국 16개 시·도 행진’,각계각층 시민 1만여명이 참여하는 ‘제2건국을 위한 국민과 국군의 한마음 대행진’ 등 시가행진이 동시에 열린다.
  • 샤네 국제사면委 사무총장(인터뷰)

    ◎“韓國 인권 상황 나아졌다 보안법 애매한 조항 손질을”/국제감시단 접근 보장 北에 끈질기게 요구 “한국의 인권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만 양심수와 사형제도 등 인권침해적 요소들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방한중인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 피에르 샤네 사무총장은 1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의 인권 개선 조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샤네 총장은 “지난 9일 金대통령이 내게 멀지않아 개정하겠다고 말했지만 국가보안법의 애매모호한 조항은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기수 석방시 준법서약서를 강요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하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중인 240명 가운데 40년째 옥살이를 하며 노환에 시달리고 있는 17명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했다. 金대통령도 자신을 접견한 자리에서 이들의 석방을 인도적 차원에서 고려하고 있음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샤네 총장은 “金大中정부가 수구세력의 저항과 개혁의 당위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하면서도 현 정부의 인권 개선 의지에 대해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는 북한의 인권 상황과 관련,국제 인권감시기관의 접근 보장과 유엔과의 협력 관계 구축 등 두가지 사항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세계 인권선언 5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인 인권선언 지지 서명식이 이날 하오 7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에서 각계 인사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大田청사 지방 분권 취지 무색/입주기관 각종회의·행사 서울 고집

    ◎핵심부서·청장실 중앙 별도 운영도/간부들 잦은 서울행 업무공백 우려 정부 대전청사 이전이 완료된 가운데 입주기관 상당수가 주요부서를 서울에 남겨두거나 기념행사 장소마저 서울을 고집하고 있어 ‘대전 이전’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다. 대전청사에서 계획됐던 행사조차 막판에 서울로 변경해 개최하는가 하면 과천청사 등에 서울사무소나 별도의 청장 집무실까지 운영하는 곳도 있다. 행사의 성격이나 일정 등을 감안,서울 개최가 불가피한 점도 있겠지만 가능한 한 대전에서 개최하도록 유도하지 않고서는 지방분권을 기한다는 본래의 이전 취지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관세청은 2일 하오 농수축산물 밀수·부정무역 특별단속 대책회의를 서울 강남의 옛 관세청에서 열었다. 통계청도 이전 후 처음 맞은 제4회 통계의 날 기념식을 지난 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졌다.또 같은날 하오엔 서울 종로 통계연수원에서 ‘우리나라 가계의 생활실태 변화의 추이’라는 제목으로 대규모 세미나를 개최했다.4일에는 역대 기관장 간담회를 서울에서 갖기로 했다. 중기청도 지난달 19일 대전청사에서 갖기로 했던 ‘벤처기업인상’ 시상식을 청장의 국회참석 일정을 이유로 갑자기 서울로 변경,실시했다. 이처럼 기관장을 비롯한 관련 공무원들이 ‘서울행’으로 빈번하게 자리를 비움에 따라 업무공백을 초래할 가능성이 많다. 청장집무실 등 중요 정책부서를 아예 서울에 남겨두고 온 기관도 있으며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업무의 효율성을 기한다는 명목으로 없던 사무소를 서울에 새로 설치하려는 기관들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기청은 서울의 과천청사에 사무실을 유지하면서 핵심부서인 중소기업정책국을 그대로 남겨놓았다.청장은 서울에서 중소기업육성 관련회의가 많아 화요일과 목요일은 정기적으로 서울로 올라가고 있다. 이같은 정부 대전청사 입주기관들의 ‘서울 지향’으로 기업의 유입 및 지역 부동산경기 활성화 등 당초 기대됐던 ‘이전 특수’도 미미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말 현재 전체 공무원 4,000여명 가운데 가족과 함께 대전으로 이전한 숫자는 1,327가구에 불과했으며,차량이전도 기대치의 반밖에 안되는 1,000여대에 그쳤다.
  • 오늘 정부수립 50돌 경축식

    ◎경복궁서 개최… 광복회원 등 6,000여명 참석 정부수립 50주년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중앙경축식이 15일 경복궁안 옛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다. 정부는 金大中 대통령이 참석하는 이날 행사에 제헌의원과 광복회원,주한외교사절,해외동포,시민 등 6,000여명을 초청해 정부수립 50주년의 기쁨을 함께 나누도록 했다. 경축행사는 성악가 김상곤씨가 ‘희망의 나라로’,국악인 안숙선씨가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가수 인순이씨가 ‘아름다운 강산’을 노래하고,지난달 17일부터 전국을 일주한 태극기가 입장하는 식전행사로 시작된다. 이어 金鍾泌 국무총리서리가 개식을 선언하고 金擎天 장군 등 4명의 독립유공자와 3명의 교육발전 유공자에 대한 포상,경축사가 끝나면 무용단이 등장해 ‘제2의 건국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경축공연을 펼친뒤 만세삼창으로 행사를 마무리한다. 한편 이날 비가 내리면 경축행사는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으로 옮겨 치러진다.
  • 조촐한 ‘생환 25돌’(청와대 취재수첩)

    金大中 대통령은 다섯번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는 말을 자주한다. 6·25때 북한군에 끌려가 잡혀 있다가 탈옥한 것에서부터 71년 대선뒤 트럭사고,두차례 죽음을 면한 73년 도쿄 납치사건,80년 사형선고 등이다. 金대통령은 이를 차례대로 설명하면서 “남들은 살기가 어렵다는데,김대중은 죽기가 어려운 사람”이라고 유머를 곁들였지만,목소리에는 언제나 비감함이 묻어있다. 이 가운데 73년 납치사건이 金대통령에게 가장 힘들었던 고난의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해마다 8월13일이 되면 생환기념 미사와 오·만찬 행사를 거르지 않았다. 金대통령은 그 이유로 “물에 던져지기 직전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그의 저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에서도 한 장을 할애,그 당시의 정황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올 기념행사는 유난히 소박하다.金대통령 스스로도 밝혔듯이 ‘4반세기가 되는’ 25주년인데도,야당총재때보다 오히려 조촐하다.세종로성당 기념미사에 부인 李姬鎬 여사와 함께 참석한 것을 빼면 아무런 행사가 없다.다른날과 마찬가지로 조지프 프뤼어 미 태평양사령관 접견 등 6개의 공식일정을 가졌다.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金大中 선생 납치사건 기록 사진전’에는 李姬鎬 여사만이 참석했을 뿐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수해 등으로 나라가 매우 어려운 상황인데 이제는 새로운 쓰임을 위해 대통령이 되지 않았느냐”는 반문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이날 세종로성당 미사에서 安秉鐵 주임신부 소개로 제대(祭臺)에 오른 金대통령은 “나라가 가장 어려운 때 대통령이 됐다”고 예의 ‘고생하라는 팔자탓’을 했다.그러면서도 “죽을 고비를 넘기며 대통령을 만들어준 것은 국민을 위해,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큰 일을 하라는 뜻”이라고 생환의 의미를 되새겼다. 金대통령 내외(李姬鎬 여사는 개신교도)는 미사가 끝나자 참석자들에게 볼펜을 선물하고,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손들을 잡으며 “누가 눈도장 찍으러 왔는지,확인을 해야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하자 제단 앞에 앉은 安신부는 물론 참석자 모두가 소리내어 웃었다.
  • 정부수립 50돌 8·15 문화행사 풍성

    ◎한민족 불굴의 정신 집중 재조명/독립기념관 총독부 전시공원 개장/남산 박영효 가옥서 ‘태극기 옛모습전’/진해선 ‘이충무공 추모 해전지 순례공연’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낸 한민족의 저력을 되살리자’ 정부수립 50주년인 올해 8·15를 맞아 전시회 공연 음악회 등 각종 문화행사가 다채롭게 열린다. 이들 행사는 우리 민족의 불굴의 정신을 재조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경제난 뿐만 아니라 갑작스런 폭우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많은 용기를 북돋아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충남 목천 독립기념관에서는 개관 11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을 조성했다. 모두 1,270평 규모인 이곳에는 무게 30t의 첨탑,난간 석조물 등 17종이 전시돼 있다. 독립기념관 측은 “일제 시대의 극복과 청산이라는 의미에서 행사를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0417)560­0114 또 독립기념관 내 겨레의 집에서는 ‘한말,일제시기 한민족 경제투쟁전’이 열린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우리 민족이 펼친 국채보상운동 물산장려운동 등과 관련된각종 자료 신문기사 포스터 등 130여점이 전시된다. 한국 문화재보호재단은 11일부터 태극기를 처음 창안한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朴泳孝 가옥에서 ‘태극기 옛모습전’을 개막했다. 이 전시회는 조국광복에 헌신한 선열의 삶을 다시 보여줌으로써 조국애를 되살려 경제위기의 극복 의지를 다지는데 보탬이 될 전망이다. 비용은 무료이며 휴일없이 날마다 상오 9시∼하오 6시 공개된다. 566­7038 국립국악원은 16∼20일 매일 하오5시 ‘청소년과 함께 하는 음악회’를 연다. 궁중음악과 부채춤 경기민요 사물놀이 등이 선보인다. 580­3333 대구박물관에서는 우리 민족의 익살을 엿볼 수 있는 ‘우리 호랑이 특별전’을 마련했다.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회화 공예 등에 표현된 호랑이 관련 작품 등 150여점이 공개된다. 박물관측은 9월3일과9월15일 각각 호랑이 관련 특별강연을 갖는다. 호랑이띠는 무료. 아울러 충무공 李舜臣 장군 순국 400주년을 맞아 13일 상오 9시부터 하오 8시까지 경남진해와 통영 일대에서 ‘추모 해전지 순례공연’이 화려하게 개최된다. 진해시민회관에서 상오 9시 길놀이 등이 시작되는 데 이어 해군함정 선상과 통영시민회관 등에서 ‘성웅 李舜臣전’ 공연과 통영 승전무 등이 펼쳐진다.
  • “수해예산 부족땐 追豫 반영”/국무회의

    ◎김 대통령 현실에 맞는 복구대책 당부/“경제난 극복 도움되게 예산편성” 강조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는 수해대책이 주된 의제였다.비피해와 관련된 기관의 장관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복구지원 대책을 보고했다.‘수해 국무회의’로 불림직했다. ○…회의는 예정보다 15분 늦게 시작했다.金鍾泌 국무총리서리와 공동여당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수해대책 고위당정회의가 열렸기 때문이다. 金大中 대통령은 金총리서리 주재로 고위당정회의가 열린데다 상오 11시로 예정된 金총리서리와 각부 장관들의 기자회견을 염두에 둔 탓인지,평소와 달리 예산편성과 수해대책만을 간단히 지시했다. ○…金대통령은 진념 기획예산위원장의 예산편성 보고가 끝나자 10일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도 강조한 예산낭비 방지책을 주문했다. 金대통령은 “경제극복에 도움이 되는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며 입찰 담합의 배격,국방·교육비의 효율적 편성,농촌 유통 투자 등을 당부했다. ○…이어 金대통령은 전 국무위원들에게 수해 특별대책을 지시했다.먼저 金대통령은 8·15 정부수립 50주년 기념행사로 준비된 ‘국민한마당’ 행사를 취소하고 예산을 수해대책에 쓰도록 지시했다.朴智元 대변인은 “행사를 취소하면 15억원 정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金대통령은 또 “수해대책에 예산이 더 필요하면 2차 추경예산에 반영토록하라”며 ▲신속한 복구사업을 위해 전 공무원의 적극적인 복구사업 참여 ▲전 국무위원들의 수해현장 방문 및 피해주민 위로 ▲현실에 맞는 복구대책 강구 등을 당부했다. 이날 처리된 안건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령안 ▲외무공무원 임용령 개정령안 ▲검사의 직무를 대리하는 사법대학원생에 대한 실비지급규정 개정령안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시행령안 □일반 안건 ▲공공기관의 재활용제품 97년 구매실적 및 98년 계획
  • 8·15 퍼레이드 등 기념행사 축소/비용 15억 재해대책비 활용

    ◎金 행자 오늘 국무회의 보고 정부는 집중호우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늘어남에 따라 건국 50주년을 기념하는 8·15 광복절 기념행사를 축소하기로 했다. 金正吉 행정자치부 장관은 이같은 축소방안을 오늘 국무회의에 보고할 예정이다. 행자부의 한 관계자는 10일 “시민 및 공무원 15만여명이 참여하고 16개 시·도 고적대가 펼치는 서울시내 퍼레이드 행사인 ‘국민 한마당 축제’를 취소하기로 했다”며 “연예인 대행진도 취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신 행사 비용인 15억원을 모두 재해대책비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태극기 이어달리기 등 식전행사와 경축 기념식은 그대로 진행된다. 한편 서울시 주최로 15일 저녁에 갖기로 한 수상스키 경연 등 한강축전도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 해양 환경 영화제 성황/“바다를 알자… 바다를 살리자”

    ◎서울신문사·행자부 후원/첫날 변산해수욕장서 ‘그린피스 종말론’ 상영/18일까지 해운대·낙산·서울 뚝섬 순회 행사 ‘98 세계 해양의 해’를 맞아 바다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기념행사가 ‘바다를 살리자’라는 주제 아래 8일 전북 부안군 변산해수욕장에서 100만명 서명운동과 해양환경 영화제를 시작으로 개막됐다. 1,000여명의 피서객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첫날 영화제에서는 얼마 전 파리에서 열린 국제환경영화페스티벌에서 우수 환경영화로 선정된 ‘그린피스의 종말론’이 상영됐다. 주최측인 한국환경생태계연구협회(회장 李相喜·여) 회원들은 피서객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고,텐트와 숙박업소를 돌면서 스티커를 나눠주었다. 변산해수욕장에서 승용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고사포해수욕장 옆 원광대 임해수련원에서는 경기도 구리시 초등학교 4·5·6학년생 47명이 참가한 해변캠프가 시작됐다. 서울신문 행정자치부 환경부 문화관광부 해양수산부가 후원하는 이 행사는 8∼9일 변산해수욕장(서해),10∼11일 해운대해수욕장(남해),14∼15일낙산해수욕장(동해)을 순회하면서 열리며 18일 한강 뚝섬 둔치에서의 영화제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한국환경생태계연구협회는 93년 발족한 비영리단체로 전국 4대강 수계에서 경비행기 등 장비를 갖추고 환경감시운동을 펼치고 있다.
  • 교보생명 40돌/보험업계 ‘불혹의 큰나무’로 자리매김

    ◎“4대 핵심과업 혁신으로 거듭나자” 교보생명이 7일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교보생명은 세계 최초로 청소년 교육과 생명보험을 연계한 교육보험제도를 창안해 세계보험총회(IIS)로부터 ‘세계보험대상(83년)’과 ‘세계보험전당 월계관상(96년)’을 수상한 그룹. 교보생명은 이날 서울 종로 교보빌딩 10층 대강당에서 회사직원들만 참석한 조촐한 기념식을 가졌다. 외부인사를 초청해 기념행사도 갖고 직원들에게 감사 상여급도 지급할 예정이었으나 부실 보험사 퇴출이라는 사회적분위기에 맞지 않아 취소했다. 李萬秀 사장은 기념식에서 “표준생산성 돌파, 조직 정착률 향상,계약유지율 절대신장,관리능력 현대화 등 4대 핵심과업 혁신을 통해 계약자가 가장 믿고 선택하는 회사,생활설계사 수입이 최고인 회사로 만들자”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 反독재 희생자 331명 명예회복 범국민운동/‘열사 범추위’ 결성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희생된 민족민주열사들의 명예회복 및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범(汎)재야기구가 출범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 회 등 40여개 재야 및 시민단체들은 3일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약칭 열사 범추위)를 결성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민주화와 분단극복을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운명한 331명의 열사 및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이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왜곡된 민족사를 바로잡고 진정한 국민화합과 민주발전의 길을 열기 위해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범국민운동으로 전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열사 범추위는 명예회복 및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국가보안법과 노동관계법 등의 개폐,범국민적 차원의 열사 추모 및 기념행사 추진 등을 주요사업으로 정했다. 범추위 상임대표에는 전국연합 李昌馥 상임의장,文정현 신부,기독교서회대표 金상근 목사,李海東 목사,원불교 金玄 종무원장,실천불가승가회 공동대표 청화 스님 등이 위촉됐다. 이날 결성식에는 고 全泰壹씨의 어머니 李少仙 여사,고 李韓烈군의 어머니 裴恩深씨,고 朴鍾哲군의 아버지 朴正基씨 등 유가족을 포함,50여명이 참석했다.
  • ‘독도는 우리땅’ 정광태(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6)

    ◎“홀로섬” 사랑이 韓·日 외교에 희생/꼬마부터 노인까지 불러 국민가요 대접/日 교과서 파동에 감정악화 우려 판금/문공부차관에 간청… 넉달만에 ‘복권’ “울릉도 동남쪽/뱃길따라 이백리/외로운 섬하나/새들의 고향/그 누가 아무리/자기네 땅이라 우겨도/독도는 우리 땅”(독도는 우리 땅) 지난 80년대 초반,어눌한 말투와 친근한 인상으로 ‘독도는 우리땅’을 불러 유명세를 탔던 가수 鄭光泰(43)씨. 개그 노래를 처음 소개하며 연예인 생활을 시작해 ‘독도는 우리땅’으로 일약 스타가 됐던 인물이다. 노래명이 전국의 음식점 간판에 즐비하게 등장할 정도로 폭 넓게 불려지던 노래 덕분에 인기의 맛을 톡톡히 보았지만 지금까지도 이 노래 ‘독도는 우리 땅’에 얽힌 끈에 매여 살고 있다. 동네 꼬마부터 칠순 노인까지 부담없이 따라부르던 국민가요가 한 순간 금지곡으로 묶인 충격 탓에 적지않은 좌절을 느껴야만 했다. 1983년 7월말. 독도의용수비대 창설 3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받아 “좋은 노래를 불러 감사한다”는 뜻의 감사패를 받고 한창 들떠 있을 때였다. 방송에서도 앞다투어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내보냈고 鄭씨도 방송 출연 섭외를 감당못할 정도로 인기가 치솟고 있었다. ‘독도 가수’ 鄭光泰는 그 날도 어김없이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 나타났다. 지난해 1월 ‘독도는 우리 땅’ 레코드 취입후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져 있었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방송에 깊숙이 빠져살 만큼 방송국 일은 그야말로 신바람 그자체였다. 녹화에 앞서 담당PD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로 막 들어가려던 순간 사무실 입구 게시판을 보고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창 인기절정이던 노래 ‘독도는 우리땅’이 금지곡 명단 맨 꼭대기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때만 해도 금지곡으로 묶이고 나면 어디 한 군데 하소연할 곳도 없던 시절. 방송에서 일단 금지곡 지정이 되면 항의조차 할 수 없이 그냥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가사에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더군요. 누구나 부담없이 입에 올리던 노래를 갑자기 부를 수 없게 될 때정작 그 노래를 불렀던 가수가 느끼는 좌절감이란…” 그 길로 방송국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10년전 연예인이 되고 싶어 명동의 한 카페에서 시작한 자신의 연예계 생활도 그것으로 끝이 나는 줄 알았다. 鄭씨가 ‘독도는 우리 땅’과 맺어지게 된 것은 10년전인 73년 고교졸업후 명지대 입학전 명동 르시랑스 카페를 찾은데서부터 시작된다. 음악 평론가 李白天씨가 운영하던 이 카페는 가수 宋昌植 어니언스 李秀滿 蔡恩玉씨 등이 고정적으로 출연해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던 곳. 아마추어 무대가 매일 마련됐는데 여기서 토크송 ‘한심이’를 불렀다. 李章熙씨의 노래 ‘겨울 이야기’를 우스꽝스런 가사로 바꿔 부른 노래였는데 李白天씨의 눈에 띄어 주1회씩 사회자로 무대에 서게 됐다. 이후 방송가에 알려지게 돼 최초의 개그프로인 TBC ‘살짜기 웃어예’에 토크송과 개그를 선보였고 78년 새로 만들어진 KBS 개그프로 ‘유머1번지’에서 본격적인 개그맨으로 인기를 누리게 된다. 당시 林河龍 張斗碩 金正植과 함께 포졸 옷을 입고 KBS 朴仁浩 프로듀서가곡을 쓰고 직접 만든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을 불렀던 것. 방송에서 인기를 끌자 대성음반 徐喜德 사장이 레코드 취입을 의뢰해 왔다. 코미디 프로에 함께 출연했던 林씨 등 4명이 약속장소에서 기다리다가 徐씨가 늦는 바람에 鄭씨 혼자 기다려 결국 鄭씨만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르게 됐다. 레코드가 나오면서 이 노래는 계속 상승세를 타 전국에서 불려졌고 鄭씨는 83년 KBS TV ‘젊음의 행진’ 프로에서 독무대를 맡기까지 됐다.. 鄭씨가 금지사유를 알게 된 것은 해금이 되고 한참이 지난 뒤였다. 비록 83년 7월말부터 그해 11월말까지 4개월이란 짧은 기간이었지만 금지의 삶이 너무나 억울했기 때문에 사연을 알고난뒤 허탈감까지 느껴야만 했다. 82년 일본 열도와 한국의 정계·학계를 발칵 뒤집은 일본 중고교 교과서 파동이 그 발단이었다. 84년부터 새로 사용될 교과서에서 한·일 과거사 왜곡이 문제되자 83년 6월,문제발생 1년만에 왜곡 내용을 고친다면서 한국에 시정내용을 알려와 양국간에 긴장감이 돌았다. 국내에서도 이 개선시안을 놓고 첨예한 의견대립이 일었다. 이와 맞물려 83년 8월29일 제12차 한·일 정기각료회담,9월6일 한·일 의원연맹 제11차 합동총회가 예정돼 있어 당국에서 반일감정이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 시점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독도는 우리 땅’이 금지곡이 되자마자 鄭씨는 자연스럽게 방송에서 퇴출당했고 그 때부터 방송국 주변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독도는 우리 땅’이 다시 불려지게 된 것은 83년 11월말쯤이었다. 느닷없이 방송국 간부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쳤다. 許文道 당시 문공부차관이 만나보고 싶어한다는 귀띔이었다. 용기를 내서 문공부로 許차관을 찾아갔다. 이 자리에서 許차관이 “평소 독도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격려했고 鄭씨가 ‘독도는 우리 땅’을 다시 부를 수 있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로부터 1주일뒤 각 방송매체에선 ‘독도는 우리땅’이 다시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독도는 우리땅’은 그렇게 부활했다. 그해 연말 KBS 방송대상에서 신인가수상을 받았고 그 이듬해에는 역시 KBS 가사대상에서동상을 탔다. 96년 鄭씨는 또 한번 ‘독도는 우리 땅’과 연을 맺게 된다. 이번에는 독도 분쟁이 첨예하게 불거졌다. 1960년부터 6년동안 친구가 운영하던 샌프란시스코 한인방송인 ‘한미라디오’ 진행을 맡고 있었을 때였다. 국내 선후배와 레코드사들이 귀국해 노래를 불러달라는 주문을 해왔다. 방송을 중단하기가 힘들었지만 서둘러 돌아왔다. DJ DOC과 함께 옛 ‘독도는 우리 땅’ 리메이크곡을 취입했다. 반응은 별로 신통치가 않았지만 83년 금지곡 사건 때의 악몽이 어느정도 씻어진 것 같아 마음은 편했다. ◎사연들/“독도의 가치 희석” 주장도/‘대마도는 일본 땅’은 잘못/“바꿔 불러라” 항의 받기도 개그 가수 鄭光泰씨가 털어놓는 독도관련 사연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른뒤부터 스타가 된뒤 독도 명예군수 위촉, 느닷없는 금지곡 판정으로 인한 실망, 해금후 신인상 수상, 미국생활중 귀국 등 연쇄적으로 겪은 일들이 극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무엇보다 ‘국민가요’로까지 인식되며 애창되던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이 금지곡으로 전락한 것이나 문공부장관이 금지곡 가수를 직접 만나 해금을 약속한 것이 아이러니다. ‘독도는 우리 땅’이 크게 유행하자 이 노래에 대한 평도 갖가지였다. 팬 레터가 답지하더니 가사를 문제삼은 편지·전화공세가 이어졌다. 광복회와 향토사학자들의 항의도 빗발쳤다. “독도는 당연히 우리 땅인데 왜 노래를 불러 독도의 가치를 희석시키냐”“역사적으로 볼 때 대마도도 우리 땅인데 왜 일본 땅이라고 하느냐” 등 강도높은 항변이 쏟아졌다. 어느 향토사학자는 서울의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 관련자료를 제시하며 鄭씨를 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鄭씨는 96년 귀국해 리메이크한 노래에서 “하와이는 미국 땅,대마도는 몰라도 독도는 우리 땅”으로 바꿔 불렀다.(원래 가사는 “…/대마도는 일본 땅/…”) 대학가와 노동현장에서 현실비판적으로 불려진 ‘독도는 우리 땅’ 개사곡도 적지 않아 이 개사곡들 때문에 금지곡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이 노래들은 대부분 일본의 교과서 파동으로인한 반일감정과 독재정권에 대한 반감,열악한 노동조건 등을 꼬집은 것들. “…일제 패망 이후 임자없는 땅이라고 공짜로 삼키면 정말 곤란해…한반도는 우리 땅”“꼴뚜기가 뛰면은 망둥이도 뛴다고 군국주의 역사왜곡 패망지름길 미국신경 쓰다보니 일본신경 못쓰네 조선사람 조심해”“대한민국 노동자 부지런한 노동자 조출에 잔업에 특근에 철야 장시간 노동에 기아임금 받으며 선진조국 좋아하네…”. 모두 당시 사회상과 정치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길 ▲55년 서울 출생. ▲74년 서라벌고 졸업. 명지대 무역학과 입학. 명동 르시랑스 카페에서 토크송으로 주목받기 시작. TBC TV ‘살짜기 웃어예’ 출현. ▲78년 KBS TV ‘유머1번지’ 출현. ▲82년 대성음반서‘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독도는 우리 땅 수록) 취입. ▲83년 ‘독도는 우리 땅’ 금지곡 지정·해금. KBS 신인가수상 수상. ▲84년 KBS 가사대상 동상 수상. ▲88년 무용가 김일현씨와 결혼. ▲90년 한미라디오 방송 진행맡아 도미. ▲96년 귀국.‘독도는 우리 땅’리메이크. ▲현재 댄스그룹 ‘벅’ 매니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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