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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김동영 전 정무 5주기/자택서 조촐한 추모식

    ◎김 대통령 조화… 민주계실세 대부분 참석/민주화위해 투쟁해온 고인의 업적 회고 고 김동영 전 정무장관의 5주기 추모식이 18일 하오 6시30부터 서울 종로구 명륜동 고인의 자택에서 열렸다. 추모식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조화를 보냈으며 고인과 독재정권에 맞서 군정종식을 외치며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시대를 열게 하는데 고락을 같이해온 김수한 국회의장,신상우 해양수산부장관,김덕용 정무1장관,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서청원 원내총무,박찬종 상임고문,백남치·목요상·박종웅·이강두·이신범·김길환·서훈 의원,유도재 청와대총무수석,최기선 인천시장,대한석탄공사 이상륜 사장,박종율·김태용·김종하·신하철 전 의원,이성헌 부대변인 등 여권내 이른바 「민주계 실세」들이 대부분 참석했다.고인과 함께 김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던 최형우 상임고문은 미국을 방문중이어서 참석하지 못했다.최고문은 공교롭게도 지난 5월 고인의 차녀 희연씨의 결혼식때도 방미중이어서 참석하지 못했었다. 김덕용 장관 등 참석인사들은 『민주화를 위한 고인의높은 뜻을 우리 모두 잊지않고 있다』며 『김대통령도 같은 생각』이라고 미망인 차길자 여사(55)를 위로했다.김국회의장은 차여사를 부둥켜안고서 고인의 업적을 회고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수성국무총리는 차여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고인을 추모했으며 손주환 서울신문사 사장도 참석,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고인의 뜻을 기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정·관계인사를 비롯,고인과 친분이 있는 인사(지인) 등 2백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식으로 간소하게 치러졌다. 참석인사의 면면에서도 드러나듯이 이날 추모식은 정치색이 완전히 배제된 순수한 구민주계의 단합행사였다.고인을 모셨던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을 중심으로 민주화 투쟁에 나서 오늘을 만든 주역들이 한데 모여 고인을 추모하고 앞으로 변함없는 우의를 다지는 자리였다』고 전했다. 참석자들은 앞으로 고인의 높은 뜻을 기리고 꾸준한 계승을 위해 기념사업 등을 추진해 나가기로 하고 저녁 늦게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 「YH사건」 17주년 기념 오찬/김 정무 등 30여명 참석

    79년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됐던 「YH사건」 17주년을 기념하는 오찬 모임이 지난해 발족한 YH사건기념동지회(회장 황낙주 신한국당의원)주관으로 12일 낮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렸다.이날 모임에는 황의원과 김덕룡 정무1장관,신한국당 홍인길 의원,국민회의 정대철 부총재,신한국당 백영기 도봉을위원장 등 당시 신민당 당직자,김용언 경향신문 논설위원을 비롯한 언론인 등 30여명이 참석,당시를 회고했다. 김장관은 기념사업위원장 자격으로 인사말을 통해 『YH사건은 김영삼 대통령이 비폭력 민주화투쟁을 이끌던 과정에서 일어난 가장 처절한 사건이었다』며 『이 사건을 되돌아 보면서 경제난과 집단이기주의 등 오늘의 난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각오를 다지자』고 당부했다.
  • 김구 선생 친필편지 등 첫 공개/세종문화회관서 13일부터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편지,이성용 의병장이 부하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쓴 제문,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사장이던 희산 김승학 선생의 서첩 등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회장 김석원·71)는 광복 51주년을 맞아 이같은 유품을 9일 공개하고 오는 13일부터 10일간 세종문화회관에 전시할 계획이다. 이 편지는 백범이 1919년 상해로 망명하기 전 전남 보성에서 서당 훈장을 하던 시절에 작성,종친회에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 파격에 가까운 환대속 시종 “화기애애”/라모스 대통령 단독회견기

    ◎진지한 대화… 예정시간보다 30여분 길어져 라모스 대통령과 손주환 서울신문사장의 단독회견은 회견시작부터 끝까지 시종 파격에 가까운 환대와 화기속에 진행됐다.그것은 라모스 대통령의 소탈한 성품탓도 있겠고 서울신문과 한국에 대한 그의 높은 관심과 애정에 기인한 것으로도 생각됐다.물론 두가지 다 작용했을 것이다. 회견은 당초 대통령 집무실인 말라카냥궁의 「리잘 룸」에서 1일 하오 5시부터 40여분간 진행키로 예정돼 있었다.그런데 라모스 대통령이 고집해 회견시간은 정확히 1시간10분이 걸렸다.그는 배석한 공보장관이 시간이 다됐다는 눈치를 수차례 주었음에도 막무가내로 회견을 끌고나갔다. 라모스 대통령은 회견시작을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안부와 한국전참전 이야기로 풀어나갔다.그는 『이번에도 김대통령을 다시 만나면 조깅과 농구를 함께 하고 싶다』며 김대통령에 대한 각별한 친밀감을 표시했다.그리고 한국전 참전시절을 회상할때는 「삼팔선」 「철의 삼각지」 「철원」 「중공군」등 당시 지명과 인명 등을 정확한 한국어로 발음해 우리측을 놀라게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자 라모스 대통령은 불을 붙이지 않은 시가를 입에 물었다.그는 담배를 끊은 지가 수년째 되는데 지금도 진지한 이야기를 할때면 자신도 모르게 시가에 손이 가 마른 시가를 입에 무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는 측근의 설명이었다. 진지한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그는 마디마디 농담과 해학을 섞어가며 좌중을 부드럽게 이끌어갔다.그는 지난 86년 마르코스 독재를 물리친 필리핀 피플혁명의 영웅이었다.당시 군참모총장 신분으로 말라카냥궁앞에 진주한 탱크위에 올라가 『우리는 독재자의 군대가 아니라 국민의 군대다』라고 사자후를 토하던 사람이다.인자한 할아버지같은 그의 몸 어디에 그런 무서운 투지가 숨어있었는지 놀라울 뿐이다.그는 퇴임하면 소원이 『골프 핸디를 줄이는 것』이라는 소박한 대통령이다. 무엇보다도 감명깊은 점은 그의 「세일즈 대통령」으로서의 면모.인터뷰를 끝내고 일어선 채로 그는 10여분을 한국기업의 투자유치를 위한 홍보에 할애했다.「필리핀 기업활동을 위한 핸드북」「아·태시대의 필리핀 비즈니스」등 비즈니스 관련 홍보책자와 홍보용 컴퓨터 디스켓까지 준비해와서 보여주며 한국기업의 진출에 서울신문이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20년의 마르코스 독재가 남긴 암흑기를 지나 새로운 필리핀 건설을 위해 그가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그는 인터뷰 말미 인삿말도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끝맺었다. 기념사진 촬영 때 그는 손사장에게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드는 thumbs­up을 제의하며 밝게 웃었다.〈마닐라=이기동 특파원〉
  • 무협 창립 50돌

    한국무역협회는 30일 하오 4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대회의실에서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구평회 무협회장은 기념사에서 『50년전 친목단체로 출발한 협회는 오늘날 6만여 회원사를 포용하는 단체로 성장했다』면서 『다가오는 50년을 위해 협회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준비를 완벽하게 추진하고 회원사 위주로 협회사업을 재편하며 안정적인 재정기반 확보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46년 7월31일 한국산업은행(당시 조선식산은행) 별관에서 1백5명의 회원상사로 창립된 무협은 96년 현재 5만8천41명의 회원을 거느린 대규모 경제단체로 발돋움했으며,우리 수출규모가 당시 4백만달러에서 1천억달러이상으로 성장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박희준 기자〉
  • 황룡사를 복원하자/김호준 논설위원실장(서울논단)

    신라최대의 가람이었던 경주 황용사는 신라불교의 호국도량으로서 국민통합과 삼국통일을 상징하는 곳이었다.진흥왕 14년(서기 553년)에 절을 처음 짓기 시작하여 4대왕 93년에 걸친 대역사 끝에 선덕여왕14년(서기 645년)에 마무리한 황룡사는 신라인의 웅장한 기상이 유감없이 표출된 곳이었다.불국사의 8배나 되는 넓은 경내엔 동양최고의 9층목탑이 하늘을 찌를듯 솟아 있었고 남대문의 9배나 되는 거대한 금당엔 서축 아육왕이 보낸 누른쇠와 황금으로 만들었다는 높이 5m의 장육존상과 두 보살상이 모셔져 있었다.새가 앉으려 했다는 솔거의 그 유명한 소나무 벽화가 그려져 있던 곳이 바로 이 황룡사였다.그러나 불행히도 고려 고종25년(서기 1238년)몽고의 병화로 소실돼 폐허만 남긴채 역사의 어둠 속에 묻히고 말았다. 이 황룡사의 복원을 최근 불국사 주지 설조스님이 정부에 청원하였다.그는 청원문에서 『온 국민이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고 있는 때에 신라인의 호국정신과 통일정신의 요람인 황룡사(와 감은사)의 복원 불사를 성취함으로써 통일의 정신적 기틀을 다져야 한다』고 역설했다.760년전 잿더미로 변해버린 황룡사를 오늘에 다시 살려야 할 이유는 바로 이 황룡사에 각인된 호국이념과 통일정신에 있다. 황룡사가 착공된 서기 553년은 신라가 한반도의 심장부인 한강유역을 장악하여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은 해였다.황룡사의 중심가람인 9층목탑은 신라에 침범을 일삼던 주변의 아홉 나라를 부처님의 힘으로 제압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백제멸망 15년전에,고구려멸망 23년전에 완공됐다.당시 건축공사를 지휘했던 아비지라는 백제 공장이는 탑의 기둥을 세우던 날 꿈에 본국인 백제가 망하는 걸 보고 일을 맡은걸 후회했다고 한다.국찰인 황룡사 강당에서는 자장률사와 원효대사가 강론을 하였으며 나라와 왕실의 태평을 비는 팔관회가 열렸다.국민들의 마음을 불심으로 통합시켜 국력결집과 삼국통일을 이끌어낸 곳이 황룡사였다.고려때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는 『(9층목)탑을 세운뒤에 천지가 형통하고 삼한이 통일되었으니 어찌 탑의 영험이 아니겠는가』라고 적고 있다.황룡사를 복원하자는외침엔 무엇보다도 통일의 영험을 다시 보고자 하는 간절한 기구가 담겨 있다. 황룡사 복원을 바라는 또하나의 사연은 그 규모의 웅장함에 있다.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8천8백평의 경내에 1탑3가람이 들어 앉은 황룡사가 소실될때 그 재가 수십일동안 경주 하늘을 칠흑같은 어둠으로 뒤덮었다고 한다.황룡사 찰주기에 의하면 9층목탑은 높이가 2백25자였다.요새 치수로 환산하면 80.18m,아파트 30층에 해당된다.당시로선 그야말로 아찔한 초고층 건물이었다. 황룡사 9층목탑은 목탑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알려진 중국 산서성의 응현목탑(높이 67m)보다 4백여년 앞서 세워졌으면서도 13m가 높은 것이다.또 일본에서 가장 높다는 흥복사 5층탑(높이 50m)보다 30m가 높다. 황룡사의 규모는 목탑과 함께 소실된 종의 크기로도 유추할 수 있다.삼국유사에 의하면 황룡사의 동종은 49만7천5백근의 구리를 들여 만들었다고 한다.현존하는 우리나라 종 가운데 가장 큰 성덕대왕신종,즉 에밀레종의 4배에 달하는 중량이다.한마디로 말해 황룡사는 우리 건축사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조형물이었다.한반도 동남쪽 구석에 갇혀있다시피한 신라인들이 어떻게 그런 큰 웅지를 품을 수 있었는지 그저 경탄스러울 뿐이다. 중국은 큰 나라였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만해도 스케일면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거대한 문화유산이 적지않다.산덩이 같은 천황릉들도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5세기때 축조물로 추정되는 인덕천황능은 길이가 4백86m에 달해 피라밋과 맞먹는 세계최대의 분묘로 꼽힌다.서기 752년에 개안된 높이 15m의 동대사 대불은 후대에 여러번 보수되어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보잘것 없게 됐지만 그 거대함에 있어서는 세계제일이다. 황룡사가 복원된다면 우리 조상들도 웅혼한 기상의 소유자였음을 실증적으로 확인시켜 줄 것이다.우리 문화재에 대해 후손들이 느끼고 있는 왜소 컴플렉스를 씻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건축물이기 때문이다.빈약한 불거리로 고전하고 있는 한국관광도 새명소 새활력소를 갖게 될 것이 분명하다. 황룡사 복원은 불교계가 지난 50년대 부터 추진해온 숙원사업이다.그러나 오늘에 재조명되는황룡사는 불교계를 넘어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해야할 과제임을 일깨워 준다.돌이켜 보면 지난해 광복50주년 기념사업으로 일제총독부청사철거와 더불어 황룡사 복원에 눈을 돌렸더라면 「철거와 복원」의 멋진 조화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그렇게 못한건 참으로 아쉬웠다.물론 지금 착수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제일 중요한 문제인 경비를 우선 불교계에서 부담하겠다고 자청하고 있으니 말이다.시급한건 황룡사 복원을 국가적 사업으로 확정하고 추진하는 정부의 결단이다.
  • 김구 선생 유품 영구보존/문화재연/백범일지·혈의 손상방지작업

    문화재관리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회로부터 김구선생의 유품인 「백범일지」 1권과 혈의 9점에 대한 보존처리를 의뢰받아 현재 작업중이라고 18일 밝혔다. 문화재연구소의 이번 보존처리 작업은 백범선생의 유품을 영구보존키로 한 기념사업회측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연구소측은 이 유품에 대한 기초조사후 살충·살균처리를 거쳐 비닐필름으로 밀봉,내부를 질소가스로 충전해 유품 재질의 변화와 습기·세균의 유입에 의한 손상 방지작업을 이달말까지 완료키로 했다.〈김성호 기자〉
  • 여·야관계 반영… 분위기 냉랭/제헌절 경축식 이모저모

    ◎“대결정치 안타깝다” 김 의장 경축사 17일 상오 국회의사당 중앙홀에서 열린 제48주년 제헌절 경축식은 여야영수회담 무산위기를 반영하듯 냉랭한 분위기를 보였다. 김수한 국회의장은 경축사를 통해 『상호 반목과 무한적 대결,그리고 법보다 힘과 억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풍조가 가셔지지 않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원장길 제헌의원동지회 회장은 기념사에서 『세계화·선진화의 국제경쟁시대에 승자가 되려면 화합으로 사회불안요소를 극복하고 고질화된 지역감정을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경축식에는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위원,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여야 3당총무가 나란히 배정된 자리에 앉았으나 국회 본회의에서의 상대방 지도부 비난발언파문과 여야영수회담 거부 등으로 인한 경색분위기를 반영하듯 서로를 외면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경축식에 앞서 3당대표는 김의장,오세응·김영배 부의장,원회장 등과 함께 의장접견실에서 5분여동안 만났다.김의장 왼편에서부터 국민회의김대중 총재,이수성 국무총리,신한국당 이홍구 대표위원,자민련 김종필 총재 순으로 앉았으나 이홍구 대표와 김종필 총재가 잠시 몇마디 나눈 것 말고는 서로간에 일체 대화가 없었다. 행사에는 김의장과 오·김부의장,윤관 대법원장,이총리,김용준 헌법재판소장 등 3부요인,3당대표와 신한국당 서청원,국민회의 박상천,자민련 이정무 총무 등 여야총무단,이중재 민주당 상임고문,한영수 자민련 부총재,안택수 자민련 대변인 등이 참석했다. 정부측은 이시윤 감사원장,공로명 외무,안우만 법무,정종택 환경장관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박대출 기자〉
  • 6·25참전 전사자 명예졸업장/서울대 확인작업

    서울대는 개교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6·25때 참전했다가 전사한 서울대생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키로 하고 재학중 전사자를 확인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학적부상 전쟁기간중인 50년 1학기부터 53년 2학기까지 등록을 하지 않아 제적된 학생 가운데 전사했을 가능성이 있는 1천90명의 명단을 뽑았다. 이를 전쟁기념사업회가 갖고 있는 15만5천여명의 전사자명단과 컴퓨터로 대조작업을 펴 성명 및 생년월일·출신지역 등 일부 신상자료가 일치한 11명의 명단을 확보했다.그러나 두 자료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어 출신지 현지조사 등 추가로 확인하고 있다.〈김환용 기자〉
  • 스포츠서울 창간 11돌 기념식/퀸 6돌 함께

    ◎임·직원 1천여명 참석 스포츠서울 창간 11주년 기념식이 22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손주환 서울신문사장을 비롯,임직원 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여성월간지 퀸의 창간 6주년 기념식을 겸해 열린 이날 행사에서 손사장은 기념사를 통해 『스포츠서울은 창간과 동시에 정상을 차지하고 최근 10년동안 정상을 지켜온 최고의 스포츠 전문지』라고 전제,『2002년 월드컵축구 등 스포츠신문이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살려 풍요롭고 활기찬 생활여건을 마련하는데 더욱 매진하자』고 강조했다. 손사장은 이어 『삶의 질에 대한 향상 욕구가 강해지면서 스포치지의 전망이 무척 밝다』고 지적하고 『이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새로운 다짐을 할 때』라고 말했다. 이 날 각계에서는 스포츠서울과 월간 퀸의 창간을 축하하는 화분,화환,축전 등을 보내왔다.〈조현석 기자〉
  • 40세 요절 판화작가 오윤/대규모 10주기 추모전

    ◎첫 작품 「오른손을 든 여인」 등 2백60여점 공개/학고재 등 두 곳서 동시에… 작품마간전도 겸해 지난 86년 전시회 기간중 작고한 당대의 대표적인 판화작가 오윤의 미공개 판화작품들을 공개하는 「오윤 10주기 판화전작전시회」가 21일부터 7월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학고재(736­1714)와 사간동의 아트스페이스에서 동시에 열린다. 이번 유작전에는 오윤기념사업회가 그동안 정리작업을 벌여 새롭게 발견한 「오른손을 들면」등 미공개작이 대거 선보이는데 학고재에서는 이 미공개작 1백20점,아트스페이스에서는 동화판화 60점과 데생·습작 3천점중 판화와 관련된 81점을 5개 시기별로 구분해 전시한다.오윤기념사업회에는 미술평론가 김윤수씨(영남대 교수),주재환 화백,최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원장,미술평론가 성완경씨(인하대 교수),김정헌 화백(공주대교수),김용태 화백(민예총 사무총장)등 선·후배 작가와 동료들이 참여했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사후 10년만의 첫 회고전이란 점 말고도 사상 유례가 없는 작가사후의 첫 에디션 판화전인 「특별기획 한정본」으로 열린다는 것.오윤 자신이 생전 작품에 넘버링을 한 적이 없어 기념사업회측이 유족과 상의해 이번 전시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판을 찍지않는 마감전이기도 하다.상태가 나쁜 작품은 5∼15장 정도만 찍고 양호한 것은 1백장까지 찍어낸다는게 기본 방침이며 모든 판위에는 기념사업회의 철인을 일일이 찍는 「판 변형」을 가해 말그대로 작품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10주기 추모전에서는 그동안 고인의 첫 작품으로 알려져왔던 것보다 훨씬 이전의 것들이 다수 발견돼 선보이게 됐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지금까지 오윤의 작품으로는 1974년도 제작한 「기마전」이 첫 작품으로 알려져 왔지만 이번 추모전 준비에서 대학 재학중인 68∼72년경 만든 것으로 보이는 「오른손을 든 여인」이 첫 작품임이 새롭게 밝혀졌다.기념사업회측에 따르면 이 작품의 인쇄 형태가 서툴고 얼굴에 나타난 오윤 특유의 독특한 정형성이 확연할 뿐만 아니라 스케치북에서 똑같은 밑그림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부산출신인 오윤은 서울대 조소과재학중 일찍부터 민족·민중적인 관점에 눈을 떠 40살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민중과 함께 예술혼을 불태웠던 작가.현실동인등을 통해 현실 인식에 투철했으면서도 보통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꾸준히 관찰,작품에 녹여와 기질과는 달리 편안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작가로도 불린다. 지난 86년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회 도중 갑작스럽게 사망했으며 그동안 방대한 유작정리등의 이유로 추모전이 열리지 못했다. 기념사업회 김윤수 위원은 『오윤은 판화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조각과 서양화등에서도 뛰어난 재질을 보인 「타고난 예술가」였다』면서 『이번 전시는 고인의 본래 모습을 재평가하기 위한 자리로 오윤기념관 건립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김성호 기자〉
  • 「마약퇴치 부산시민 걷기대회」

    ◎“온 국민 힘모아 「백색공포」 퇴치” 다짐/부산시장·시민·학생 등 5천명 참석/부산역 광장서 출발… 3.5㎞ 가두홍보 서울신문사·스포츠서울과 한국방송공사(KBS) 부산방송총국이 공동주최한 「96마약퇴치 국민대회겸 95회 부산시민걷기대회」가 16일 상오 11시 부산역광장에서 열렸다. 유엔(UN)이 정한 세계 마약류퇴치의 날(오는 26일)을 앞두고 열린 이날 대회에는 문정수 부산시장,송정호 부산지검장,이필우 부산지방경찰청장,박광수 부산본부세관장과 본사 이동화 상무이사를 비롯 부산시,부산시약사회,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부산지부,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한국걸스카우트연맹,한국에어로빅협회,선화여상등 10개 사회단체회원 및 청소년·시민·학생등 5천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행사는 마약류퇴치기념식에 이어 마약퇴치 결의를 다지는 부산시민걷기대회를 갖고 참석자들이 동구 범일동 성남초등학교까지 거리행진을 벌이면서 시민들에게 마약과 약물류 오·남용에 대한 주의를 촉구했다. 본사 손주환사장을 대리한 이상무는 대회사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마약류퇴치 성공국가,마약류 안전국가로 명성을 떨쳤지만 지난 몇년동안 국제마약유통의 중간경유지에서 소비지역으로 바뀌면서 마약류사범이 크게 늘고있다』며 『자신과 가정,사회를 병들게 하는 마약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중독자의 재활과 치료를 돕는데 모두 힘을 합하자』고 말했다. 문시장은 기념사에서 『마약사범들은 주로 술집등을 무대로 피로회복과 숙취제거 신경성질환등에 잘듣는 명약으로 유혹한다』며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 청소년들사이에도 본드등 유해화학물질이 성행하고 있어 강력하고 지속적인 퇴치할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념식이 끝난뒤 참석자들은 선화여상 취주악대의 연주에 맞춰 동구 범일동 성남초등학교까지 3.5㎞구간을 행진한뒤 참석자 전원에게 기념품을 나눠줬다.또 추첨을 통해 VTR·TV·자전거등을 경품으로 선물했다. 대회에 앞서 한국에어로빅협회소속 에어로빅시범단은 20여분동안 화려한 율동의 에어로빅시범을 보여 참석자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이기철 기자〉
  • 서울평화상 문화재단 이철승 이사장(인터뷰)

    ◎“권위 있는 상 만들터”/수상자 매년 선발… 투명성 확보 주력 『서울올림픽의 긍지를 담은 이 상의 제정 취지를 되살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상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 7일 서울평화상 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된 이철승 신임 이사장(74)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단체 일을 맡게 돼 개인적으로 영광』이라며 이같이 다짐했다. 이이사장은 제18대 대한체육회장을 지낸 것을 인연으로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90년 창립된 서울평화상의 재단 이사로 관여해 오다 초대 김용식,2대 김덕 이사장에 이어 3대 이사장에 올랐다. 그는 『서울평화상이 제정된 이후 수상자 선정및 기금 조성 등에 대해 투명성이 결여됐다는 이유로 따가운 시선과 함께 상의 존폐시비까지 있었다』면서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큰 상이 되도록 심사위원을 대폭 보강해 투명성 확보에 역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이이사장은 앞으로의 사업계획과 관련,『2년마다 수상자를 선정하는 현행 서울평화상 수상 방식은 연속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매년 수상자를 뽑는 방식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또 수상자 투명성 확보와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부설 평화연구소를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세계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 장학사업도 내실화를 기해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울평화상은 90년 제1회 수상자로 서울올림픽 성공에 공이 컸던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이 선정됐고 92년 제2회는 조지 슐츠 미국 국무장관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재단은 서울평화상 폐지를 주장하는 정부측과 법정투쟁까지 벌이는 바람에 무산됐던 제3회 시상식을 2년 늦은 올 10월11일에 갖는다. 전주고·고려대를 졸업한 이이사장은 오랜 야당의원을 지낸 현대사의 산 증인으로 73년 국회부의장,76년 신민당 당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 반탁반공학생운동 기념사업회 회장과 자유민주총연맹 총재로 활동중이다.〈김민수 기자〉
  • 13개 시·군합창단 열띤 경연/유관순음악제 성료

    ◎서울신문사·서산장학재단 주최 서울신문사와 서산장학재단(이사장 성완종·대아건설 회장)이 공동 주최하고,문화체육부와 유관순열사 기념사업회가 후원하는 「제1회 유관순음악제」가 8일 천안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아우내장터의 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유관순열사의 숭고한 민족혼을 기리기 위해 새로 마련된 이번 음악제에는 시민과 학생 등 1천5백여명이 강당을 가득 메운 채 3시간동안 진행됐다. 충남도내 13개 시·군의 합창단이 참가해 경합을 벌인 음악제에서 주최측은 우열을 가리지 않고 참가팀에게 상금과 기념패를 공동시상해 축제분위기를 자아냈다. 서울대 박인수 교수(테너)의 사회로 진행된 음악제는 시·군을 대표한 합창단들이 다양한 의상으로 무대에 올라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고 주부로 구성된 중·고교 어머니합창단이나 교회 성가대가 출전해 「꽃구름속에」「선구자」「Love Story」등 친숙한 가곡과 영화음악을 2곡씩 불러 청중을 매료시켰다. 청중들은 자기지역의 합창단이 무대에 오르면 힘차게 환호했고 음악제가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않고 성원했다.〈천안=이천렬 기자〉
  • 진각종 창종 50돌/다양한 기념행사/제2성장 위한 디딤돌 마련

    ◎50년사 사진집·종립대 증축 추진 우리나라의 대표적 밀교종단인 대한불교진각종(총인 각해)이 올해 창종 50주년을 맞아 제2의 성장을 위한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오는 14일 창종기념일을 맞는 진각종은 최근 50주년 기념사업단을 발족,▲종조기념사업 ▲50년사 사진집편찬 ▲대구진각회관건립 ▲50주년 기념음악회 ▲종립대학인 위덕대학의 증축 ▲서원가 CD제작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진각종은 1947년 6월14일 회당 손규상대종사(1902∼63)에 의해 창종된 불교종단.1902년 5월10일 울릉도에서 태어난 손규상대종사는 해방후 극도의 혼란속에 국가를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민족의 주체정신을 확립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심성을 바로 찾아야 한다며 47년 6월14일 영일군 기계면에 밀교도량을 열고 진각종을 창종했다. 법당에 불상을 모신 불교를 현교라고 한다면 밀교는 법신 비로자나불을 교주로 하는 종파이기 때문에 사찰에 불상이 없다. 여섯분의 부처님을 모시는 진각종의 기본이념은 밀교중흥·생활불교·현세정화·심인의 구현이라는 4가지로 분류된다. 심인의 구현이라는 이념은 진각종의 핵심이념.심인이란 인간의 마음중 밝고 맑은 부처의 마음을 말하며 이를 실생활에 실천하는 수행이 최대의 덕목이다.때문에 사찰을 심인당이라고 하며 설법을 하는 교역자를 정사라고 부른다.정사는 삭발을 하지 않고 가사와 장삼도 걸치지 않은 일반인 같은 복장을 하며 결혼을 하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부부가 함께 선교와 포교를 한다. 현재 전국에 심인당 1백18개,교역자 2백39명,신도수 61만9천명이다. 창종 당시부터 교화사업과 교육·의료·구호사업등 4개 사업을 시작한 진각종은 교육사업에 비중을 두어 현재 유치원 26개,중학교 2개,고등학교 2개,4년제 종합대학교 1개등을 운영하고 있다.〈김원홍 기자〉
  •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현충일(송정숙 칼럼)

    21년만이다. 『…민족의 얼이 서린 이곳,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도 우리는 선열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현충탑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에서도 우리는 호국영령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우리는 영령들의 외침에 응답해야 합니다.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 보답해야 합니다』 너무 오랜만에 우리는 대통령의 육성으로 읽는 현충일 기념사를 들었다.다 읽고난 끝에 잦아드는 목소리로 「대독!」하고 덧붙이는 소리를 듣지않아도 되는 기념사였다.분초를 쪼개도 감당할 수 없는 많은 행사에 다 대통령이 참석하기를 요구할 수는 없다.그러나 그자리서만은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꼭 보고싶은 자리가 있고 대통령의 육성으로 꼭 듣고싶은 기념사가 있다.현충일은 그런 날이다. 왜냐하면 이날은 국가의 근본을 생각하는 날이기 때문이다.그리고 목숨을 총탄삼아 나라위해 바친 영령들이,빛나게 발전해가는 조국을 못잊어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날이기도 하기때문이다.그러므로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육성으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단순히 추모하는데 그쳐서는 안됨』을 강조하며 그분들의 희생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통일된 세계중심국가를 건설하는 원동력으로 삼자고 호소하는 기념사를 듣게된 올해 현충일은 각별했다. 그래서 『온국민이 진실한 마음으로 국가유공자와 유가족,그리고 아직도 병상에서 고생하는 전상자들을 보살피고 위로하는 것을 나라의 기풍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결의에 뜨거운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56년에 훈충일이 제정된 뒤 꼭 40년이 지났다.70년 북한 공작원의 박대통령 위해폭파사건이었던 현충문사고 이후 현충일 추념제전의 의식은 국무총리 참석을 전례로 해왔다.그 의식이 올해로 격상되기에 이른 것이다.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용사가 밀림에서 전사한 전우를 밤마다 보는 괴로움때문에 정신을 앓는 영화가 있다.불타는 밀림에서 피투성이가 된 전우가 손을 저으며 『나를 여기서 데려가 달라!』고 절규하는 악몽이다.그 역시 베트남 베테랑인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위싱턴에 있는 베트남전 기념공원을 찾아간다.그곳의 그 장엄하고도 비장한 검은 기념비에서 깨알처럼 새겨진 전우의 이름을 확인하고,울며 쓰다듬어보고 그리고 소리높이 이름불러 그 전우가 돌아왔음을 느껴보고 나서야 정신증세를 가라앉히게하는 장면이 있다. 전장에 버려진 전쟁용사들을 위해 조국은,그 이름을 확인하고 울며 쓰다듬어보고 소리높이 불러서 위로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우리는 그런 일에 소홀해 왔다.현충일마저 그저 전몰군경 유가족의 제삿날정도로 생각하거나 더러는 그냥 쉬는날로 생각하여 행락인파가 혼잡을 이루는 날로 여기게도 되었으며 조기같은걸 다는 일은 아예 잊고 지내기도 했다. 무슨 일이든 세월에 퇴색하기 쉬우므로 이런 현상은 적건 많건 나타난다.그러나 제전의 의식이 약해짐으로써 그것을 촉진시키는 허물까지 우리는 저질러온 것이다.게다가 우리는 어쩐일인지 많은 진보연하는 지식인들의 폄하까지 곁들여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싸운 용사」를 기리는 일을 주눅들게 만들기도 한 혐의도 있다. 이런 모든 것이 바로잡혀야 한다.그런 계기를 이번의 「의식 격상」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맛보게 한다.그것은 과거 지향의 것이 아니므로 희망이다.사회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새로운 국가 목표를 향해 가야 할 지금에 바로 맞는 희망이다.21세기 세계중심국가 건설,한민족 통일국가 이룩,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등 나라의 진운을 걸어야 할 하고많은 과제들을 성취하는 원동력을 그곳에서 우리는 찾을 수 있다.국민안보의식과 애국심 고취는 올바른 시민정신 함양의 기저를 이루기때문이다.「바로 세워지는 역사」의 출발점도 그곳에서 비롯된다. 4반세기 만에야 「격하」를 회복하고 『경건히 머리숙여 명복을 빌며 삼가 국민의 이름으로 추념사를』를 올리고 호국영령들앞에 「빛나는 미래」를 다짐하는 대통령을 보는 일은 안도와 기쁨이다.〈고문〉
  • 3국 국경지대 핫산(시베리아 대탐방:74·끝)

    ◎북­중­러 접경 두만강 개발 열기 “후끈”/중국경 잇는 도로·철도 등 SOC건설 박차/일 2천만불 투자… 자류비노항 국제항 육성/한국 세모도 농업합작 진출… 관광휴양사업 추진 블라디보스토크항구앞 태평양함대 사령부 건물과 군함 주변에서 관광객들이 제멋대로 기념사진을 찍는다.개방되기전인 불과 몇년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핫산으로 향하는 보스포르 보스토치니호에 올랐다.배표에는 요금이 8루블로 적혀 있다.예전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가 보다.실제요금은 1만5천루블(약2천5백원). 3시간만에 핫산에 다다랐다. 북한·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극동 시베리아의 동남쪽끝 핫산군.군청 소재지인 슬라비얀카의 1만7천여명을 비롯,10여개 마을의 총인구가 4만7천여명이다.총면적은 4만3천㏊.지리적 중요성 때문인지,아니면 두만강 개발사업 추진에 따른 발전 기대 때문인지 변화의 기운이 활발하다. 작년 11월 크라스키노에 세관이 설립되면서 중국과의 국경이 개방돼 사람과 물자의 통행이 많아졌고 철도·도로 건설공사도 한창이다. ○크라스키노 세관 완공 중국과의 국경에서부터 크라스키노를 거쳐 자루비노항까지 도로를 건설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기존 국도가 있지만 울퉁불퉁하고 총연장이 85㎞나 돼 비효율적이다.러시아 합동도로회사가 12개 교량을 포함,폭 9m 길이 60㎞의 유료도로 건설을 추진중이다.대당 20달러씩 통행료를 받으면 하루 평균 2천대 통행을 기준으로 할 때 연간 2천4백만달러가 걷혀 2년3개월이면 총도로건설비 3천2백만달러를 회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자루비노항을 국제항으로 육성하기로 일본과 이미 계약돼 일본이 2천만달러를 투자,항구확충작업을 벌인다. 철도공사는 시작됐다.산악지대인 국경에서 카미쇼보역까지 편도 3복선 철로를 러시아군이 공사하고 있다.카미쇼보역은 직원수만 1백70여명에 달하는 대형역이다.그러나 왠지 기대만큼 신속히 이뤄지는 것같지는 않다. 이 지역 주민 블라디미르 게라시모프(33)는 『두만강개발사업에 따른 경제발전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가 크다』면서 『단기간내에 투자액을 회수할 수 있을텐데 러시아정부가 돈을 적게대줘 너무 오래 걸린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태평양쪽으로 통하는 항구를 중국에 제공하는데 지나치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발상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태평양쪽으로 직접 맞닿은 항구를 갖고 있지 않은 중국측이 혼춘에서 출발,러시아국경까지 이르는 철도와 고속도로 공사를 일찌감치 끝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중국과의 국경 세관은 블라고비셴스크와 포그라니치니 등 두곳밖에 없었으나 작년 11월 크라스키노 세관 완공으로 세곳으로 늘었다. 블라디미르 세관장은 『중국측은 곡물 원목칩 등을 연간 3백만t까지 실어가길 원하고 한국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상품도 이곳을 통해 들어간다』면서 『초기에는 사회간접자본시설 부족 때문에 화물보다 여행객의 이동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비탈리 벨로제로프 핫산 부군수는 『핫산은 지리적으로 산과 평지,강이 고루 갖춰져 있고 동식물도 여러가지여서 두만강개발사업이 실시되면 경제발전이 급속히 이뤄질 것』이라면서 『한국을 비롯한 외국의 투자가 이뤄지면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한다. 페레스트로이카이후 핫산의 슬라비얀카 선박수리소 직원수는 불과 몇년사이에 3천2백명에서 6백명으로 줄었다.한국 등에 고객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경공업·농어업센터 육성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추로 하고 나홋카와 핫산을 포함하는 광역 두만경제권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핫산만 가지고는 인구가 적어 공업지구 개발에 부적당하다는 판단이다.블라디보스토크는 금융·무역·연구개발·수송·통신센터로 개발,외국인투자를 유치하고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나홋카는 기존항구와 철도망 등을 이용,대규모 토지집약적 제조업과 수송센터를 건립하며,핫산은 접경지대의 이점을 살려 경공업·농어업·식품가공센터로 육성,중국과 동해사이의 무역중심지로 발전시키고 관광객 유치를 위한 레크리에이션지역으로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한인유물 고스란히 보존 한국과 몽골을 포함한 두만강개발사업 5개국 위원회는 한변을 50㎞로 하는 중국 훈춘­북한 라진·선봉­러시아 포시에트를 연결하는 소삼각지역보다는 넓은 범위의 대삼각지역이나 동북아시아 배후지역을 함께 고려해 추진할 계획이다. 중국 방천과의 국경을 지나 동해에 가까운 끄트머리쪽,두만강 5백16㎞중 15㎞가 북한과의 접경이다.국경지대안에는 「쏘·조친선각」이란 현판이 달린 건물이 있다.북한 주석을 지낸 고 김일성도 생존 당시 가끔 이곳에 들르곤 했다고 경비병은 귀띔한다.두만강철교 바로 옆이다.드루즈바(우정)다리로 명명된 길이 8백m짜리 이 철교를 건너면 북한의 홍이역이다. 연해주의 핫산지방은 1937년까지 한국인들이 벼농사를 짓던 곳이다.「땅 바가티(풍요로운 땅)강」 「포도(위노 그라르나야)강」 등 지명에 아직도 한국말이 뒤섞여 불린다. 한강유람선 운영업체인 세모도 작년 8월 핫산군과 농업합작 계약을 체결했다.군전역에 걸쳐 벼농사와 한우·사슴 사육,사냥 등 관광휴양사업을 벌일 계획이다.이곳에서 생산되는 쌀을 북한에 제공하고 그 대가로 물자를 받는 구상도 서있다.부산∼극동간 카페리호 운항 계획도 있다.세모측은 단기수익성을 노린 것이라기보다는 통일에 대비해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사업이란 견해이다.
  • “중국의 5·4운동은 사상과 지식혁명”(해외사설)

    「5·4운동」77주년이 막 지났다.인민일보는 기념사설을 실었고 북경대학에선 「5·4」청년절 기념식이 열렸다.이 기념식에는 북경 65개 대학의 당 및 학생회 간부 2천여명이 참석했으며 정치국위원겸 국무원부총리 이람청은 「조국의 미래와 청년의 역사임무」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청년들은 1919년에 애곳,북경에서 젊은지식인들에 의해 벌어졌던 한 감동적인 운동을 되새겼을 것이다.당시 북경의 학생들은 베르사유조약과 국권상실의 치욕을 반대하는 의거를 시작,시위·파업·철시 그리고 군벌정부의 체포학생 석방과 내정 및 외교정책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했다. 「5·4」운동의 의의는 제국주의 침략에 반대하는 애국주의 운동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더 큰 의의는 사상과 지식 혁명이라는데 있다.대규모 현대화운동이며 전통의 비판과 옛것에 대한 재평가,민주와 과학에 대한 탐구를 통해 현대적이고 문명적인 중국을 건설해 보려는데 더 큰 의의가 있다. 「5·4」운동 전후의 전통봉건 및 유교타파 현상을 놓고 문화혁명과 같은 의미에서 평가하는 시도도 있다.그러나 이같은 시도는 이 운동이 지식사상 혁명이며 이성과 설득,논리적인 추론으로 맹목적 숭배와 교조주의를 대체하려는 운동이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5·4운동정신」의 요체는 전통 반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이성과 지식을 소중히 하고 이를 보편화하려한 노력에 있다.이견과 이의를 포용하고 학생과 지식인이 제기한 당국자와 다른 의견도 포용하는 것이 바로 5·4운동 정신이 지향한 점이다.오늘날까지 이 운동을 기념하고,전진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5·4운동 77주년인 바로 그날,우리는 당국자와 이견을 지닌 북경대 대학원생이었으며 89년 민주운동 기간중 북경의 대학생 자치연합회 지도자였던 한 젊은이가 만기출옥한 뒤 공안의 감시와 핍박으로 집도 직업도 없이 막다른 길에 몰린 끝에 미국으로 탈출했다는 슬픈 소식에 접했다. 북경대의 기념식에 참석했던 학생들이 이 소식을 알았다면 류강,그 자신이 물었던 질문을 똑같이 되풀이 했을지 모르겠다.「중국은 이처럼 거대한데 왜 일개 서생조차도 수용할 수가 없는가」하고.
  • 마산시/경남대에 발전기금 5억 전달

    ◎지역 우수인적자원 양성위해 기탁/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사립대 지원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우수인재양성을 위해 지방사립대학에 5억원의 대학발전기금을 내놓았다. 마산시는 3일 경남대학교에 「개교 50주년 기념사업 및 대학발전기금」으로 5억원을 기탁했다. 이날 상오 10시 이 대학 교무위원회실에서 열린 기금기탁식에는 김인규 시장과 김광수 시의회의장·박재규 경남대총장·시의회 관계자·경남대학교 직원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김시장은 이 자리에서 박총장에게 기금을 전달하면서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무한경쟁시대에 인재양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면서 『시민의 뜻이 담긴 기금이 학교발전을 위해 긴요하게 쓰여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의장도 『시민 한사람 한사람 정성이 담긴 이 성금이 경남대학이 세계속의 명문대학으로 커가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총장은 『시가 기탁한 기금은 지역대학발전을 바라는 50만 시민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성금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며 『시민의 고귀한 뜻을 잊지 않고 인재양성의 책무를 다해 지역발전의 견인차가 될 것을 약속한다』고 시민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20일로 개교 50주년을 맞는 경남대학은 마산시내 하나뿐인 4년제 종합대학으로 그동안 지역발전에 헌신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와 시의회는 경남대학이 그동안 지역발전에 기여해온 데 대한 보답과 지방화시대를 맞아 앞으로도 지역발전에 더욱 기여해달라는 취지에서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학발전기금을 기탁했다.50만 마산시민이 한사람당 1천원씩 분담한다는 뜻으로 기탁금액을 5억원으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교육시장개방 등으로 사립대학 위기론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시민이 낸 세금으로 지역내 사립대학에 발전기금을 기탁한 것은 대단한 일이며 앞으로 교육발전을 위해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마산=강원식 기자〉
  • 부정부패 수사/변협,공정 요구

    대한변협(회장 김선)이 부정부패에 대한 검찰수사의 중립성과 형평성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지난해 발표된 사법개혁방안에 대해서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없이 대중의 정서에 편승,정작 시급한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비난했다. 대한변협 이상혁 부회장은 1일 제33회 법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최근 권력핵심부 주변에서부터 일반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독직사건이 널리 퍼져 있다』며 『부정부패에 대한 검찰의 수사 및 소추권은 법에 따라 중립성과 형평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권력의 속성으로 인해 법이 정한 절차가 준수되지 않거나 경시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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