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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 창립 48돌 기념식

    한화는 9일 서울 장교동 본사에서 김승연(金昇淵) 회장,김연배(金然培) 구조조정본부 사장,이순종(李淳鍾) ㈜한화 사장 등 임직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48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사장 등 19명이 30년 근속상을,구조조정위 홍보팀 정이만(鄭二萬)상무 등 221명이 20년 근속상을 받았다. 김 회장은 기념사에서 “그동안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와 현재 큰 어려움은 없지만 현 상태에만족하지 말고 더욱 내실을 다지고 제 2도약을 위해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가자! 부산서 신의주까지

    ‘가자! 부산에서 신의주까지,철의 실크로드를 향하여’ 스포츠서울과 부산롯데호텔이 공동 주최하는 ‘겨레의 철길잇기 범국민 캠페인 추진위원회’ 발족식이 6일 오전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동 롯데호텔 로비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윤흥렬(尹興烈)스포츠서울 사장,부산롯데호텔 손일권(孫一權)사장,김성조(金星祚)부산방송 사장,방윤현(方允鉉)KBS부산방송 총국장,김영(金榮)부산문화방송이사,김성엽(金成燁)부산시 자문대사,김두현(金斗鉉) 재부 이북5도민연합회 회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손일권 부산롯데호텔 사장은 기념사를 통해 “남북간에 끊어진 철길을 이음으로써 분단 55년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우리시대에 이뤄지게 됐다”며 “이 캠페인이 꽃을 피워 성공적인 행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캠페인 추진위원회는 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올해 말까지 경의선 복원에 필요한 침목과 자갈,레일을 구입하기 위한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새천년 첫 개천절 기념행사 다채

    새 천 년 들어 처음 맞는 개천절인 3일 각 종교·사회·시민단체들이 다양한 기념행사를 갖는다.개천절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상임대회장 윤경빈 광복회장)는 3일 낮12시 사직공원에서 개천절 기념식을 개최하며 세계한민족개천절기념사업회(대회장 이종구 전국방부장관)도 오후2시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개천한민족대축제’를마련한다.현정회도 기념식과 강연회를 준비하고 있다. 개천절 민족공동행사 준비위가 주최하는 개천절 기념식은 김광욱 천도교령의 개회선언,윤경빈 광복회장의 대회사에 이어 민주당 한화갑최고위원의 축사,그리고 8,000만 겨레에게 드리는 글 낭독 순서로 진행된다.개회식이 끝난뒤엔 뿌리패 공연단의 사물놀이공연과 서울시민민속놀이 경연마당 등으로 짜여진 문화축제가 열린다. 세계한민족개천절기념사업회도 이날 기념식과 야외 개천문화축제를여는데 대회장인 이종구 전국방장관의 대회사,전운덕 천태종 총무원장과 이승헌 새천년평화재단총재의 기념사와 개천선언문 낭독,고은시인의 개천축시 낭독에 이어 축하공연이 이어진다.행사에는 재미교포 등 70여명으로 구성된 개천절 축하사절단이 참석하고,힐러리 여사와 바와 제인 유엔세계평화회의 사무총장이 축하메시지를 보낼 예정이다.사랑의 장터,헌혈과 장기기증 행사와 단군상 조각전 등 이벤트도 열린다. 현정회는 오전11시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안 단군성전에서 추계사직대제를 겸한 개천절 기념식을 가진뒤 ‘홍익인간과 선비정신’을 주제로 한 기념강연회를 개최한다. 김성호기자 kimus@
  • [대한광장] 삽질과 삿대질

    개인과 개인 간에 존재하는 우애와 사랑도 단체 대 단체 나아가서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 이르면 철저하게 이익중심으로 바뀌고 만다는것을 밝힌 것은 지식사회학의 한 성과였다. 민족단위를 넘어 교류와교역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바로 그런 패러다임은 우리에게 안일한 태도를 버리고 냉혹하게 사태를 파악하도록 촉구한다. 최근 우리는 주가 폭락이니 걸프전 이후 최고의 유가 행진이니 하는현상들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더구나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격렬하게 대치하고 장외집회를 하니 어쩌니 하면서 민심들을 뒤끓게 하고 있다.그런 정쟁과 혼란의 와중에도 50년동안 대치해있던 남북은 화해와 협력의 상호 공존시대로나아가는 중요한 일들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 지난 18일 있었던 경의선 철도 및 도로 연결공사가 그중 하나이고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적십자회담이 그것이다.철길 위에 영화의 한장면처럼 오색무지개 색깔로 화약이 터지고,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길 위에 엎드려 고사를 지내는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구호 대신 ‘철마야 달려라.겨레의 염원을 싣고’라는 구호를 옆구리에 붙인 기관차는 우리에게 벅찬 감동을 주었다. ‘남북으로 끊겼던 철도와 육로를 다시 묶는 이번 경의선 복원은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잇는 작업’이라는 대통령의 기념사는 우리가 익히 들었던 기념사로만 들리지 않는다.너무나 절실하고 절절하여 그자체만으로도 세상의 큰 비원처럼 들린다.가까스로 IMF터널을 벗어나와 또다시 새로운 비약의 계기로 남북의 화해와 협력사업을 추진하는터에 계속 꼬이기만 하는 일들을 체감하면서 듣는 말이기에 더욱 그렇다. 근거없는 말이겠지만 나는 우리 민족이 서로 화해하고 협력하는 일을 방해하는 조직적인 실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이 환한 세상에 그런 실체가 어디 있겠냐마는 우리도 모르게 마치주술처럼 그런 행동에 빠져들어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우리 민족이 잘되는 것을 바라는 주변국가는 없을 것이다.한 국가의 이익은 분명 다른 국가의 이익에영향을 준다.지난 50여년 동안분단으로 고착된 틀에서 생겨났던 이해관계가 한민족의 통일이라는유동적인 상황으로 변동되면서 새로운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요구하는 형국임이 분명하다. 이에 따라 가능하면 기존의 이익이 보장되는 쪽으로 움직이는 힘이존재할 것인 바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힘들의 자기 이익 확보를 위한 저항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우리 민족의 문제를 중심으로 주변세계를 파악하는 소박한 사람의 단순한 생각이랄 수 있다.하지만 통일이라는 사업이 어느 한 정파나 정치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그것을 방해하고 거기에 상처를 내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들을 보면서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한쪽에서는분명 건설을 위한,아니 도약을 위한 삽질이 진행되는 마당에 한쪽에서는 어느 국가기관에 들어가 삿대질하며 싸우는 풍경을 연출하는 이런 기묘한 일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언젠가 각 민족들의 기괴한 생활양상을 편집하여 제작한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보다도 더 끔찍한 일들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민의’란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정치란 그렇게 무시무시한 것이었던가.또한 정치인들이라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모질고 사특한 사람들이었다는말인가. 자신이 속한 당의 이익을 위해선 청맹과니가 되어 멱살을 잡고 드잡이질을 하는 사람들이었단 말인가.그런 사람도 우리가 뽑은사람들이니 할 수 없다고 참는 것이 민주주의인가.그런 민주주의,참으로 고약하다. 강형철 숭의여대 교수·시인
  • 54년전 한국産표범 사진 첫 발견

    해방 이전 국내에서 서식하던 한국표범의 완벽한 사진자료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 사진은 1944년 경북 영양군 일월산에서 당시 청송경찰서 안덕주재소에 근무하던 김차한(金次漢·당시 30세·사망)씨가 포수들과 함께 잡은 뒤 찍은 기념사진으로 지금까지 김씨의 부인 김순현씨(78·청송군 청송읍)가 보관해온 것을 매일신문이 입수,19일자에 공개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
  • 金대통령, “경의선 통일 큰길 될것”

    남북 교류협력 증진을 위한 경의선 복원과 도로연결 기공식이 18일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과주한 외교사절, 실향민 등 각계각층 대표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열렸다. 김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남북으로 끊어졌던 경의선 철도는 분단과냉전의 상징이자,민족의 화합과 발전을 가로막는 높은 장애물이었다”고 지적하고 “경의선 연결 기공식은 우리민족이 화해·협력과 번영의 새 시대로 나아가는 민족사의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이제 끊겼던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고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잇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며 “경의선을 통한남북간 교류야말로 민족의 평화와 번영은 물론,장차 평화통일로 이어지는 큰 길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경의선이 연결되면 우리 기업들이 이를 통해 북한으로가고 그곳에서 북한의 인력을 활용,제품을 생산해 남한과 전 세계로퍼져나갈 것”이라며 “한반도가 대륙과 해양의 물류 중심축이 되는한반도시대가 열리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남과 북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지뢰제거작업은 동족상잔의 상처를 지우는 일이며 지뢰가 사라진 그 자리에서 신뢰의 싹이 돋아날 것”이라며 “이제 민족의 번영과 화합,그리고 통일을 우리의 정성과 노력으로 이룩하자”고호소했다. 정부는 경의선 연결공사에 총 547억원을 투입해 내년 9월까지 문산∼장단역(잠정) 12㎞ 구간의 공사를 마무리지을 계획이다.북한도 경의선 단절구간인 장단∼봉동역 12㎞ 연결공사에 898억원을 투입,내년9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통일대교와 장단역을 잇는 6㎞ 구간의 왕복 4차선 도로 신설공사도 시작됐다.1,000억원이 투입되는 이 구간 도로개설 사업은내년 9월 초까지 완공하되 기존 자유로처럼 도로 중앙부분에 4차선도로용 부지를 남겨둬 향후 8차선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임진각 양승현 전광삼기자 yangbak@
  • [문화도시 문화거리] (9)인쇄문화의 요람 淸州

    “청주에서 하면 남는다.” 전국 이벤트사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정설이다. 대부분의 중소도시에서 문화행사를 열면 적자를 면하기 어렵지만 교육도시인 청주에서 음악회나 연주회,연극 공연 등을 하면 그런대로재미를 본다는 얘기다. 인구는 57만여명에 불과하지만 인근 광역시보다도 오히려 관객 수준이 높고 관심도가 높다는 게 이들이 빼놓지 않고 지적하는 부분이다. 청주에서는 청주 예술의 전당을 비롯 공군사관학교 성무관 등에서매년 200여건 이상의 크고 작은 음악회,연극공연,연주회,뮤지컬 등이열리고 있다. 올해만 하더라도 연초 신년음악회를 비롯 신파극 ‘아버님 전상서’,뮤지컬 ‘잠자는 숲속의 공주’,‘난타’등 대형 공연이 성황리에치러졌다. 청주지역의 이같은 문화욕구에 대해 충북대 김승환(金昇煥·국문학과)교수는 “전통적인 교육도시인 청주 시민들의 잠재적 문화욕구에다 ‘직지(直指)’라는 걸출한 문화적 자극이 더해져 상승효과를 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주(淸州)라는 이름은 고려 태조 왕건 23년(941년)에 처음 사용됐으니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통일신라시대에는 신라 5경의 하나인 서원경으로,백제시대에는 상당현으로 불렸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국보 제41호 용두사지 철당간(962년 건립)과 직지(1377년),율곡의 서원향약(1571년) 등은 도심을 남북으로 흐르는 무심천을 끼고 사는 청주시민들의 문화적 자긍심의 원천이다. 거의 매일 펼쳐지는 민간 차원의 순수예술 공연 이외에 청주시 주최로 전국적인 주목을 끄는 대형 행사들도 매년 이어지고 있다. 수십억원씩 들어가는 대규모 행사를 너무 자주 치른다는 비판도 따르지만 청주시는 문화진흥을 21세기를 위한 주요 전략의 하나로 삼고있다. 올해 청주시에서 치러지는 가장 큰 행사는 22일부터 한달동안 계속되는 ‘2000 청주인쇄출판박람회’. 요즘 청주 문화계에서는 ‘직지에서 시작돼 직지로 끝난다’는 말이나올 정도다. 이제는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청주는 세계에서 가장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直指心體要節)가 인쇄된 곳이다.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70년이나 앞선 고려 우왕 3년(1377년)에 이곳 청주 인근 흥덕사에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아직까지국제적인 공인을 받지 못한데다 직지 원본은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하권(下卷)만이 소장돼 있어 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청주시는 산업자원부로부터 새천년 기념사업으로인쇄출판박람회를 후원받아 대대적인 행사를 갖게 된 것이다. ‘문자문화의 지난 천년,새천년’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박람회는 청주 예술의 전당을 중심으로 청주 고인쇄박물관,국민생활관 등 5만여평의 부지에서 치러진다. 지난 천년의 문자문화를 되돌아보고 이미시작된 디지털문화의 현주소를 짚어보며 다가올 정보통신사회를 주도하기 위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직지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국제학술회의와 직지한글글꼴 공모전,최첨단 멀티미디어 주제 영상쇼,인형극,고인쇄 시연 등인쇄,출판,정보통신 분야를 총망라하는 세계 최초의 박람회다. 청주의 문화거리는 흥덕구에 있는 청주 예술의 전당과 쌍둥이 체육관을 사이에 두고 곧게 펼쳐진 길 양쪽에 있다.인접한 체육공원과 흥덕사지(사적 제315호) 고인쇄박물관도 모두 예술의 전당에서 걸어서오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박람회는 바로 이곳을 무대로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청주시는 96년부터 지난 6월까지 108억원을 들여 고인쇄박물관 증축공사를 벌여 1,000여평을 늘리고 전시물을 다양화하는 등 준비작업을해왔다. 이밖에 지난해 개최한 제1회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이어 공예디자인센터와 공예박물관,공예상품 생산집적지 조성공사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물론 이 행사도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제작한 조상들의 공예적 우수성을 되살려 다양한 공예산업을 발전시키자는 것으로 직지와 무관하지 않다. 나기정(羅基正) 청주시장은 “선조들의 훌륭한 전통문화를 이어 받아 후손들에게 더 큰 유산을 남겨주는 것이 현세대의 중요한 몫”이라며 “청주는 그 기반이 튼튼해 성장 잠재력이 무한하다”고 자랑했다. 청주 김동진기자 KDJ@Kdaily.com. [이렇게 가꿉시다] “인쇄문화관광도시 보다…” 지역의 문화적 자산을 단순히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데머무는 것이아니라,고부가 가치를 지닌 문화산업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은 가능할까.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낸 청주에서 오는 22일부터 열리는 인쇄출판박람회는 관람객들에게는 다양한 볼거리로 견문을 넓히고 즐거움을 주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지역문화를 가꾸어 가는 각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에게 이 박람회는 모범사례가 될수도,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박람회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렇다. “같은 주제라도 이른바 국가 차원에서 여는 박람회와 지역에서 주최하는 박람회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이번 박람회는 ‘직지와 고인쇄’‘문자 그리고 인쇄출판’‘전자출판과 정보통신’‘디지털 그리고 미래’ 등 4개의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다.우리 인쇄문화의 과거와 미래를 한 자리에서 조망할수 있는 자리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행사라면 칭찬받아 마땅한 이런 기획도 그 주최자가 지방자치단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재정상태가 넉넉지도 않은기초자치단체가 굳이 엄청난 예산을 들여 ‘한국 인쇄문화의 발전’이라는 거대한 주제의 사업을 떠맡을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행사 기획안을 보면 ‘인쇄문화의 발상지’ 청주를 ‘인쇄문화산업의중심지’로 발전시키겠다든가 하는 청사진은 거의 보이지 않는듯 하다.오는 28∼29일과 10월12∼13일 각각 열리는 학술대회의 주제도 ‘금속활자의 발명과 인쇄문화’와 ‘세계인쇄출판문화의 미래’로 거창하기만 하다.박람회 규모가 아무리 ‘세계적’인 것이라 해도 지역발전을 부축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지 않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않다. 조직위원회는 이번 박람회를 계기로 인쇄문화의 발상지로서 이 도시가 지닌 강점을 관광수입으로 연결시키겠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 같다.그러나 박람회에 아무리 많은 외지 관람객이 몰려든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이다.박람회로 높아진 이미지가 장기적으로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된다해도,굳이 ‘인쇄문화산업도시’로의 가능성을 외면하고 ‘인쇄문화관광도시’에 머물 필요가 있을까. 인쇄출판박람회는 앞으로 ‘청주공예비엔날레’‘청주항공우주엑스포’와 연계하여 2년,혹은 4년마다 한 차례씩 열리는 방안이 검토되고있다고 한다.다음 박람회는 다른 지방자치단체가 본 받을 수 있는 지역문화정책의 모범사례로 발돋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서동철기자 dcsuh@
  • 한·미합동 낙동강전투 기념행사

    낙동강전투 기념행사가 13일 오전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한·미 양국 합동으로 열렸다. 행사에는 조영길(曺永吉)합참의장,길형보(吉亨寶) 육군참모총장,김인종(金仁鍾) 2군사령관,토머스 슈워츠 한미연합사령관 등 한·미 고위 장성과 백선엽(白善燁)6·25 5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 등 각계 인사 1,100여명이 참석했다. 낙동강 전투는 1950년 7월말 경북 포항∼왜관∼마산을 잇는 방어선을 구축,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노주석기자 joo@
  • 결혼사진 촬영 “공짜요 공짜”

    “단돈 12원에 결혼사진을 찍어 드립니다” 경남 진해시 평안동 신세계사진관 대표 이석관(李碩官·53)씨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영업을 하고 있다.이씨는 최근 실시된 진해 해군회관 예식부 전속사진업체 선정 입찰에서 결혼식 1건당 12원에 응찰,낙찰된 것이다. 결혼식에 드는 사진값은 신랑·신부의 야외촬영비 70만원을 비롯,결혼식 광경을 찍는 비디오촬영에 15만원,결혼식후에 찍는 가족사진 등기념사진값 70만원을 감안하면 대체로 150만원을 넘는다. 이씨가 뻔하게 보이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공짜(?)로 결혼사진을 찍어 주려는 것은 그동안 불공정하게 이뤄진 해군복지단의 입찰관행에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지역내 21개 영세 사진관들도 앞으로 이씨가입을 손해를 나눠 갖기로 하면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씨는 “그동안 해군복지단측이 결혼사진 촬영 이익금의 30%를 복지기금으로 받으면서 입찰참가 자격을 제한,전속업체가 되기를 희망하는 영세 사진관의 참여를 사실상 막고 있었다”며 “이같이 잘못된관행을 깨고 짓밟힌 영세업자들의 자존심을 되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이씨의 돌출행동에 해군복지단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있다.매년 사진업체로부터 받아온 해군복지기금 3,000여만원이 사라질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다음달 17일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2쌍과 사진촬영 계약을맺었다.그동안 10여쌍의 예비신랑·신부들이 사진관을 다녀갔지만 대부분 12원이라는 가격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발길을 돌렸으나 이씨의 뜻에 공감한 2쌍은 횡재한 셈이다. 진해 이정규기자 jeong@
  • [해외항일전적지를찾아서] (8)美洲 독립운동 전초기지 하와이

    [호놀룰루(하와이)김삼웅 주필] 지금 하와이 한인사회는 이민 100주년(2003년)을 앞두고 행사준비에 바쁘다.하와이 이민 100년사는 바로한민족 이민사와 같고 미주지역 독립운동사와도 맥락을 같이한다. 1903년 1월 13일 대한제국 수민원(綏民院)총재 민영환이 발행한 여권을 소지한 노동이민 97명이 미국상선 갤릭호를 타고 23일 간의 긴항해 끝에 호놀룰루항에 상륙한지 100년이 다가오는 것이다.하와이이민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직전까지 65척의 선박편으로 7,200여명의한인이 하와이섬으로 이민,오아후섬 등 농장에서 사탕수수 재배와 관개사업에 종사했다. 일제시대 미주지역 항일독립운동은 바로 이러한 이민동포들의 힘으로가능했다.그러나 을사조약과 함께 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가 한국인의 해외이민을 봉쇄함으로써 하와이 이민도 중단되었다. 하와이이민 한인들은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근면성을 발휘해 몇년이지나면서부터 일부는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본토로 건너가기도 했다.그러나 대부분이 현지에 정착하면서 역량을모았다. 현지 석간신문 Evening Bulletin지 1903년 2월 26일자에는 “지난 1월 31일 이곳 와이아루아 농장에 도착한 한인들은 몸이 건강하며 농업에 익숙한 사람들이다.그들은 모두 만족해 하며 농장노동일에 힘쓰고 있다.그러나 그들의 임금은 저렴한 것이 현실이다”라고 보도했다.한인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10시간 이상의 노동에 하루품삯이 남자는 69센트,여자는 50센트에 불과했다.교민들은 이렇게 열악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중 일부를 떼어 독립운동자금으로 헌금했다.중국에 세워진 임시정부 운영자금의 상당액이 하와이 한인들이 보낸 돈이었다. 한편 교민들은 1905년 하와이 에바농장에 한인감리교회를 세워서 정신적인 유대를 나누는 한편 애국단체를 만들어 조직적인 항일운동에나섰다.1907년 하와이 각 지방에 분립되어 있던 24개 단체대표 30여명이 호놀룰루에 모여 하와이 한인단체를 총망라하는 ‘한인합성협회’를 조직하고 1909년 2월 1일에 ‘국민회’를 창립했다.국민회는 1910년 명칭을 ‘대한인국민회’로 고치고 조직 강화와 조국해방 사업에 필요한 외교·교육·출판사업 등을 관장할 인재의 필요성을 실감하여 1912년 네브라스카대학 정치학과를 수학한 박용만(朴容萬)선생을 초청했다. 박용만의 출현으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는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고,주정부로부터 경찰권을 부여받는 등 크게 신뢰를 받게 되었다.한인국민회는 1914년 호놀룰루시의 중심가인 밀러 스트리트 1306번지에 회관을 마련했다.초기에는 월세집을 얻어서 사용하다가 김종학 총회장때 회원들의 성금 7,250달러를 들여 목조 2층 양옥을 건축해 1948년현재의 회관으로 이전할 때까지 전후 30여년동안 독립운동과 한인사회 발전의 모태가 되었다. 1층은 상점,2층 회의실,그리고 2층 뒷편의 일부는 국민회 노인들의편의시설로 이용된 회관은 그러나 아쉽게도 하와이 주정부의 토지수용령으로 철거되었다.하와이대학 최영호교수는 국민회관 자리는 현재밀러스트리트의 하와이 주청사와 주지사 관저 사이에 위치한 국기게양대 앞이라고 지목한다. 하와이 지역의 독립운동은 박용만 선생의 등장과 함께 본격화되었다.박용만을 중심으로한 지도급 인사들은 1914년 독립군을 양성하는 사관학교를 세우면서 본격적인 무장투쟁 준비에 나섰다.교포들로 부터의연금을 받아 군용지를 마련하고 대한제국 광무군인 출신의 노동이민을 중심으로 사관학교 간부와 학도 124명으로 ‘조선국민군단’을창설한 것이다. 한인사회에서 ‘산너머 병학교’로 불린 사관학교의 교장은 박용만이었다.그는 조선국민군단 단장도 겸했으며 대대장에 박종수,중대장심세권,소대장 박충식 등의 간부진으로 편성되었다.지금은 주택지로변한 이곳은 호놀룰루시에서 63번 도로를 따라 동북쪽으로 10마일쯤떨어진 해안을 낀 아후이마누언덕에 위치해있다.박용만은 이곳에 조선국민군단 본부와 사관학교를 세워 한때는 311명의 병력을 훈련시켰다.그리고 1909년 헤스팅스에 한인소년병학교를 세우고 국민회의 기관지 ‘국민보(國民報)’를 발행하는 등 독립운동에 열정을 바쳤다. 그러나 박용만 중심의 하와이 독립운동은 국제정세(1차세계대전)의변화와 이승만과의 노선갈등(박용만은 무력독립투쟁,이승만은 외교노선)으로 사관학교도 20마일쯤 떨어진 카후구 사탕수수 농장으로 옮겨졌다가 얼마 안있어 해산되고,박용만은 중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암살됐다. 현재의 대한인국민회 회관은 호놀룰루시 북쪽 룩 애비뉴 2600번지푸노이계곡 언덕위 아담한 스페인풍 2층건물로 자리잡고 있다.1946년현 위치로 이전한 이 건물이 독립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하와이 한인사회를 발전시켜온 상징적 건물이다.300여평의 부지에 2층콘크리트 벽돌 건물의 전시장에는 지금도 국민회의 역사를 입증해주는 각종 문건과 자료가 많이 있다.1910년대에 제작된 태극기와 성조기,국민회 회원들이 납부한 독립운동자금 기록부,독립운동기금을 넣어두었던 두개의 대형금고,1922년 제작되어 각급 회의때 사용한 의사봉 등이 보존되어 있다.그러나 기관지 ‘국민보(國民報)’를 찍었던인쇄기는 본국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졌다. 1918년 12월 이승만 박사와 30여명의 이민신도들에 의해 세워진 호놀룰루시 리리하 스트리트 1832번지의 한인기독교회는 이박사가 하와이 독립운동의 본거지로 삼았던 곳이다.1938년에 4만달러를 들여 신축해 지금까지 사용해온 것을 최근 교회당 재건축을 위해 주정부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교회사무실과 교회예배당,이박사 동상 등은 보존되고 이박사 기념관이 새로 건립중이다.현재 300만 달러의 예산으로1층의 교회당과 2,3층의 광화문 누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이승만박사와 이민 초기 하와이 한인들이 주축이 되어 1903년에 세운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는 그동안 이전을 거듭하여 1948년에 케아우모쿠 1639번지의 현 위치에 2년전 신축돼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와이 항일운동사적지를 살피면서 아쉬웠던 대목은 이승만 전대통령과 관련해서는 상당한 규모로 신축중인 기념관을 비롯해 많은 유적이보존되고 있는데 비해 박용만선생의 사적은 거의 찾아 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하와이 독립운동의 양 날개의 한쪽인 박용만 선생이 너무잊혀지고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박용만선생의 독립운동 역할을상기한다면 지나친 불균형이 아닐 수 없다. 한인회장의 거취를 둘러싸고 교민사회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는것을 빼고는 이민 100주년기념사업을 준비중인 하와이 한인사회는 국권침탈기 하와이 이민 동포들의 고난의 이민사와 독립운동사 발굴·조사·정리에 열정을 모으고 있다.어떤 사람은 이승만-박용만의 뿌리깊은 노선갈등의 잔재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kimsu@
  • 대통령 기념관 법률안 개정 추진 정병국의원

    고 박정희 전대통령 기념관건립을 놓고 정치권에서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정병국(鄭柄國) 의원이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관련 법률안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주목된다.그는 “역사적 평가를 받은 대통령은 기념관을 건립하고 그렇지 않은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기록관을 짓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정 의원과의 일문일답. ●관련 법률안을 개정하는 배경은. 대통령 기념관이나 기록관 건립에 있어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어서는안된다.원칙과 기준을 갖고 기념관과 기록관을 구분해 지어야 한다. ●기념관과 기록관의 차이는 역사적 평가를 받은 대통령에 한해 기념관을 짓도록 해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박정희기념관은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인 만큼 무리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기록관은 전·현직 대통령의 본인의의사에 따라 지을 수 있도록 하되 형식은 자료실과 전시실등 도서관형식으로 짓도록 하는 것이 좋다.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미국의 경우 제퍼슨,링컨 등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은 소수의 대통령만 기념관이있고 이 기념관도 국민적 합의로 정부예산으로 지어졌다.기록관은 1930년대이후 대통령 가운데 닉슨을 제외한 10명의 기록관이 있다. ●관련 법률안의 개정안은 어떤 내용인가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8조에는 필요한 경우 중앙기록물 관리기관 소속 하에 대통령 기록관을 설치 운영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그러나 이 조항은 현직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이를 전직 대통령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기록관의 설립 주체와 예산은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제5조 2에는 전직대통령을 위한기념사업을 민간단체 등이 추진하는 경우 지원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그런만큼 민간차원에서 ‘전직대통령 기록관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정부의 지원을 받아 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최광숙기자 bori@
  • [오늘의 눈] 열광하는 팬 따돌린 서태지

    “안녕하세요.서태지입니다.오늘 비행기 안에서 내다보니 보도진 때문에 팬 여러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TV를 통해 팬 여러분의 예쁜 모습을 보고 마음이 뿌듯했고 고마웠습니다.첫 만남은 아쉬웠지만 9월9일 제 음악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4년7개월만에 팬들 곁으로 돌아온 서태지가 30일 새벽 전용 사서함(152-0911)에 녹음해놓은 인사말이다. 그는 여전히 앳된 목소리로 “오늘만큼은 팬 여러분과 같은 하늘,같은 땅에서 편히 잠들게요”라고 ‘그다운’ 애틋한 표현으로 팬들의아쉬움을 달랬다. 1,670일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동안 단 한번도 국내 언론에 얼굴을 노출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은둔생활을 치러낸 서태지. 지난 11일 서태지기념사업회 홈페이지에 컴백선언을 띄운 것이 고작이었다.자신의거취를 철저히 비밀에 부쳐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 새 앨범의 마케팅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계산이다. 그의 얼굴을 한발치라도 가까이서 보겠다며 새벽6시부터 햄버거와 우동으로 끼니를 때우며 기다린 여학생들은 30초밖에 안되는 짧은 조우에 만족해야 했다.그가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을 펴 공항을 빠져나간 뒤에도 팬들은 한동안 바닥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팬들은 그가 타지 않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승합차 유리창을 두드리며 “오빠 오빠”하고 울부짖었다. 모방송국 연예정보프로그램 진행자는 서태지와 나눈 얘기를 털어놓으라는 팬들의 성화에 이리저리 떼밀리기도 했고 모방송의 중계차는 “뉴스편집 화면이라도 보자”는 팬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공항 한쪽에 조금이라도 민감한 움직임이 보이면 청소년들이 ‘지진이라도 난듯’ 떼지어 뛰어다니는 바람에 우리나라의 관문은 제 이름값을 못했다. 안내데스크에서 외국인들에게 ‘하이’‘곤니치와’를 연발하며 친절한 미소를 짓던 한 50대 여성 자원봉사자는 기자가 반응을 묻자 대뜸“미친 X들”이라고 상소리를 해댔다. 서태지의 가치는 음악산업적 기획력을 갖춘 뮤지션과 그를 추종하고때로는 간섭하는 팬클럽이라는 두 축을 튼튼하게 세운 데 있을 것이다. 서태지는 이 두 축을 더 발전적으로 이끌어야 할 책무의 무거움에 팬들과의 만남을 유보했을지 모른다는 허튼 상상을 해보았다. 임병선 문화팀 기자 bsnim@
  • 9월의 문화인물 ‘시인 김수영’

    궁핍과 혼돈의 60년대에 온몸으로 맞서 4·19 이념을 시에 농축시켰던 저항시인 김수영(金洙暎·1921∼68)이 문화관광부가 선정하는 9월의 문화인물로 뽑혔다. 김 시인은 시의 현대성을 가장 적극적으로,날카롭게 탐구해 ‘시와삶의 일치’를 이루어낸 시인으로 기록된다. 초기 전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난해한 초현실주의적 성향의 시를썼던 그는 4·19를 경험하면서 자유이념과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그리고 소시민적인 비애를 실험적인 형식으로 성찰하는 시들을 창작했다.대표작 ‘풀’ 등. 68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지만 그가 시에서 좇았던 자유 이념은 삶과 문학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예민한 행복의 기준이 됐다는게 문학계의 일치된 평가. 문화부는 그의 업적과 생애를 기리기 위해 다음달 23일 부산 연제문화원 주최로 온천천 시민공원에서 연제백일장(051-759-3113)을 개최하고 9월중 민음사에서 김수영 문화평론 ‘시적 체험과 존재론적 체험’을 발간하는 등 기념사업을 편다. 임병선기자 bsnim@
  • 전남 완도 ‘빛나는 抗日의 섬’

    전남 완도 출신인사들은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신간회,광주학생의거는 물론 일본의 노동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지역안에서도 수의위친계활동,일심단사건,고금학교의거,소안배달청년회 사건 등 주목할만한 항일활동을 펼쳤다. ‘완도군 항일운동사’는 바로 ‘군 단위로는 전국에서 가장 격렬한항일운동을 펼친 곳’이라는 이 고장 사람들의 자부심을 담은 기록이다.완도군항일운동기념사업회가 펴낸 이 책에는 완도의 항일운동과관련한 ▲사진기록 ▲지도자 ▲항일노래 ▲관련논문 ▲재판기록 ▲신문기사가 충실히 담겼다. 국토의 서남단에 자리잡은 고장에서 어떻게 이토록 활발한 항일운동이 펼쳐질 수 있었을까.박찬승 목포대 사학과교수는 “완도는 해태양식에서 비롯된 경제적 기반에,보수적인 양반계층이 적었고,해외와 물적·인적교류가 활발했던 목포항이 가까워 개화사상을 일찍부터 받아들였다”고 말한다.그 결과 다른 어느 지역보다 교육·계몽운동이 활발하여 사립학교들이 다수 설립됐고,이 학교들이 항일운동의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완도에는 1913년 사립소안중화학원을 시작으로 노화영흥학원·조약도 약산학교·신지학교·군외 교인학교·노화대성학교·금당학교·모도학원·완도대신학원·노화중통학원·노화충도학원,하도학원·방축리일신학원·횡간학원 사립학교들이 다투어 설립됐다.특히 1905년 토지조사사업이 실시됐을 때 일제가 소안도 등 여러 섬을 왕실에 넘겨주자 4명의 소안면민대표는 토지소유권 반환청구소송을 냈고,13년 동안의 법정투쟁끝에 1922년 승소했다.이른바 ‘소안면 토지계쟁사건’으로,이 때도 소안면민들은 재판에 이긴 것을 기념하여 1만 400원을 갹출,사립소안학교를 세우기도 했다.당시 사립학교의 설립자와 교사들은 당대의 지도자들이었고,그 명성은 함북지방과 서울·중국으로도퍼져 항일운동을 하던 명망가들이 자원해서 완도로 찾아들기도 했다. 완도의 자생적 항일운동은 1914년에는 소안에 본부를 둔 ‘수의위친계(守義爲親契)’로 이어진다.상부상조의 전통적 계로 포장했으나 실제로는 전남북과 경남북을 범위로 한 항일조직이었다.유능한 인재를뽑아 독립운동의 전초기지인 중국과 일본에 파견하고 군자금을 모금하여 중국의 독립군에게 전달하는 한편 중국에서 육혈포를 반입하여국내조직에 배포했다.1920년 100여명의 회원들로 조직된 배달청년회도 기억할만 하다.이들은 친일면장이나 일제경찰과는 어떤 말도 하지않는 이른바 ‘불언동맹’을 맺어 실천하기도 했다고 ‘완도군…’은기록하고 있다. 서동철기자
  • 金대통령 통일론과 정부 입장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최근 ‘통일의 1단계 실현’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지난 8·15경축사와 18일 CNN과의 회견에서도 자신의 ‘3단계 통일론’ 중 임기 내 1단계의 실현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1단계 강조 배경 김대통령이 강조하는 1단계의 실현은 남북당국간대화통로의 상설화와 수뇌회담 및 각료급 회담의 정례화와 함께 무관세 교역 등 경제 및 문화교류의 공동체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국민의정부는 임기 내 연방제나 기타 무리한 남북관계의 진전을 시도하지않고 두개의 독립정부가 평화공존할 수 있는 틀과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그 선에서 만족함을 의미한다. 29일 평양서 열리는 2차 장관급 회담은 이를 구체화하는 자리다.군사·경협·사회문화교류협력 등 3개 분야의 실천분과위 구성제의와국방장관회담의 정례화 및 군사직통전화 설치 제의도 같은 맥락에서이뤄지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들은 김대통령이 강조하는 통일의 1단계는 체제연합(남북연합)단계라고 말한다.독립된 두개의 정부가 민족이란 커다란 지붕아래 수뇌회담 등 각종 협의체를 만들어 현안을 해결하면서 경제 ·문화적 교류협력의 틀을 제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 통일방안 재정립 필요 김대통령은 야당시절부터 체제(남북)연합-연방-완전통일이란 ‘3단계 통일론’을 주창해 왔다.반면 현재까지 정부의 공식 통일론은 화해협력-남북연합-완전통일이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1단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에 대해 “정부의 화해협력 단계도 남북연합의 초기단계인 제도화의 틀을 일부 포함하는만큼 김대통령이 강조하는 1단계안과 이전 정부의 안과 모순이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민주당 당직자와 일부 통일전문가들은 6·15선언 등 이전에생각할 수 없는 교류협력의 물꼬가 트인 만큼 통일의 단계를 보다 구체화하고 그 시기를 앞당기고 있는 김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을 정부의 공식 통일입장으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역대 정부선 어떻게. 역대 정부는 약간의 편차를 보였지만 72년 ‘7·4 남북공동성명’의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통일방안을 제시했다.한반도 시대상황과 미묘한 국제 역학관계 때문에 모두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5공화국 82년 1월 전두환(全斗煥) 전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을 발표했다.민족자결의 원칙 아래 민주적 절차와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이 성취돼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밝힌 것이다. 통일 헌법을 제정하고 총선거를 통해 통일된 단일 주권국가를 완성시킨다는 것이 기본 골자다.통일국가의 국호와 정치이념 정부형태 총선의 방법과 시기 절차 등은 ‘민족통일협의회의’를 구성,합의토록했다. ■6공화국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은 89년 9월 자주·평화·민주를원칙으로 하는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민족공동체 헌장을 채택하고 과도기적 남북연합을 거쳐 통일헌법을 제정한 뒤 통일헌법에 따른 총선거를 실시,통일 국회와 정부를 구성한다는 내용이다. 6공 정권은 이보다 앞선 88년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 특별선언)을 발표,남북간 인적·물적 교류협력 활성화를위한 실천조치와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문민정부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보완 발전시킨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94년 광복절 경축 기념사에서 제시했다.이 방안은 화해·협력 단계,남북 연합 단계,통일국가 완성 등 3단계를 거쳐 통일 민족국가를 이룬다는 것이다.1단계 긴장완화를 거쳐 남북합의에 따른 연합기구 창설·운영하는 2단계,마지막 3단계는 ‘1국가 1체제 1정부’ 형태의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오일만기자 oilman@
  • 박청수 교무 “내생명 ‘불완전 연소’ 안되도록 최선”

    법정 스님은 그를 보면 천수천안(千手千眼)의 관세음보살을 보는 것같다고 했다.일가기념사업재단과 가나안농군학교가 제정한 제10회 일가상 사회공익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원불교 강남교당 박청수 교무(63). 법정 스님의 말마따나 지구촌 구석구석엔 자비의 나눔을 실천하는 박교무의 따뜻한 발자취가 미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국립맹아 학교시각장애자와 천주교 성라자로마을 나환자들을 25년간 돕고 있으며 저소득층 탁아시설과 소년원 출소자 쉼터를 마련한 것을 비롯해 장애아 시설 협력과 북한에 옷보내기 운동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캄보디아 지뢰제거와 피해자 돕기에 앞장서 한국인 최초로 대인지뢰 제거에 앞장선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이디오피아 르완다 등 아프리카15개국에 의약품을 지원해주었고 북인도 히말라야 라닥엔 기숙학교를세워주었다.그는 이 상은 기독교인들이 주는 상인만큼 종교간 화합과이해 차원에서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수상소감은. 종교간 화해 협력이 강조되는 때에 원불교 교도가 기독교 계통의 상을 받게 돼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오래전부터 일가 김용기 선생의 정신을 존경해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감회가 크다.이번상을 세상 사람들을 위해 더 넓고 큰 살림을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아시아의 테레사로 불릴 정도로 국제적인 봉사일꾼으로 소문나 있다.그 엄청난 봉사의 힘은 어디서 나오나. 사람은 각각 삶의 방향이 있다.각자의 삶의 테두리에서 하루하루 사는 것은 바로 생명의 연소다.내 생명이 불완전 연소되지 않도록 살아있는 동안 내가 갖고있는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을늘상 한다.최소한 ‘삶이 무상하다’는 말을 하지 않도록 충실하게살고 싶을 따름이다. ■평소 삶의 큰 원칙이 있다면. 나는 단지 ‘염원의 종자’일뿐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 않는가.마음을 크게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모든 일을 해 나갈 때는 최초의 한 생각이 좋아야 한다.나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나누어주는 에너지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 ■출가 배경은. 원불교 가정에서 자라 당연히 원불교 정녀가 된다는 생각이었다.어머니로부터 한 가정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일하라는 말씀을 귀에 박히게 들었다.고교졸업후인 19살때 곧바로 원불교 중앙총부로 출가했다.지금도 어머니는 만생명을 계도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들을때마다 마음을 다잡곤 한다. ■종교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바른 가르침이라고 본다.편견과 굴절에 빠지기 쉬운 인간들을 바르게살아가도록 가르치는 것이다.‘선행자(善行者)는 상생의 과보를 받고악행자(惡行者)는 상극의 과보를 받는다”고 했다. 종교는 실천이 밑천이다.실행과 실천이 따라야 사회에서 순기능을 맡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원불교를 포함해 남북 종교교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지금 모든 종교가 앞다투어 북한에 자신들을 전하려고 든다.지금이야말로 종교인들이 인도주의에 따라 묵묵히 자비 사랑 실천에 힘써야할 때라고 본다.순수한 입장에서 어려운 상황의 북한 동포들을 먼저구해놓은 뒤 북한에 종교 수용분위기가 성숙될때 그때 가서 종교활동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평소 생활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항상 외롭다는 생각이다.속마음 알아주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거듭말하지만 나는 염원의 종자일 뿐이다.내가 가진 염원이란 종자를 뜻있는 사람들이 싹틔우고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바란다. ■소망이나 꿈이 있다면. 청소년들에 대한 배려가 모자랐던 것 같다.특히 비행 청소년들이 원만하게 사회와 가정에 수용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한다.폐교된학교를 꾸려 70∼80명 정도 수용해 교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있다.이번 상금도 여기에 쓸 것이다.또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것으로러시아에 기숙사를 갖춘 한글학교를 세웠으면 한다. 김성호기자 kimus@
  • 장지연선생 증손녀 복식부기회계 책 냈다

    “지방자치단체의 회계업무 개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고집필하게 됐어요” 일본의 조선 강점을 앞둔 위기의 시기에 언론을 통해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던 장지연(張志淵) 선생의 증손녀가 정부와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사용하는 단식부기회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복식부기회계의 도입을 강조한 전문 서적을 펴냈다.장계희(張季姬·53)씨의 ‘지방자치단체회계 복식부기 모델(안)’.A4크기 346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4년 전부터 ‘버스도 신문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충북 진천군)에서 살고 있는 그는 상업학교 회계과목 교사,회사 회계담당 업무의 경험을 살려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장씨는 현행법·제도를 그대로 수용하는 복식부기회계제도와 새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업무상의 혼선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회계와 결산을 연계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복식부기회계 도입의 이점을 제시했다.우선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책임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는 점을 들었다.아울러 ▲2중 장부제도 배제로 막대한 국가 예산절감 ▲정책설정,의사결정에중요한 자료 제공 등을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구의 제일여상을 졸업하고 방송통신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아직 독신이다.지난 89년부터 장지연 선생의 기념사업도 참여하고 있다.97년에는 복식부기회계를 기본으로 하는 ‘비영리법인의 회계실무안’을 출간하기도 했다. 장씨는 “다음은 지자체 회계에 대한 장부조직과 부속명세서,복식부기회계를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한 책을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여경기자
  • 농업부문 가토 겐조 산업부문 유한재단…박청수 등 一家賞 수상

    일가기념사업재단은 21일 제10회 일가(一家)상 수상자로 농업부문에일본의 농촌운동가 가토 겐조(加藤源藏·75),산업부문에 유한재단(이사장 연만희),사회공익부문에 박청수(朴淸秀·63) 원불교 교무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가토씨는 농업협동조합의 발전과 아시아 국가간 농업기술교류에 기여한 공로가, 유한재단은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제도 구축에 기여한 공로가 각각 높이 평가됐으며 박청수씨는 30년동안 44개 국가에서 고통받는 인류를 위해 봉사해 온 업적이 인정됐다. 일가상은 가나안농군학교의 창설자인 고 일가 김용기선생을 기리기위해 제정됐으며 올해 시상식은 오는 9월2일 오후 2시 서울 충정로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열린다. 서동철기자 dcsuh@
  • ‘LG 야구 이야기’ 펴내

    프로야구 LG 트윈스는 창단 10주념 기념사업의 하나로 지난해 PC통신에 연재됐던 ‘최단장의 LG야구 이야기’를 17일 단행본으로 발간했다.이 책은 구단 뒷이야기,프로야구단 경영 노하우,프로야구현안 등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담고 있다.저자인 최종준 전 단장은 96∼99년 야구단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안양 LG 축구단장을 맡고 있다.
  • 광복55돌 기념행사 다채

    제55주년 광복절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가 전국에서 펼쳐졌다. 특히 새천년 들어 처음 맞는 이날 광복절 행사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와 맞물려 6·15 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하고 남북화합을 다지는‘민족화해’의 행사로 꾸며졌다. 정부는 15일 오전 충남 천안시 목천면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3부요인,애국지사를 비롯한 광복회원,주한외교사절단,해외동포,해방둥이 등 각계인사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축식을 가졌다. 경축식은 윤경빈(尹慶彬) 광복회장의 기념사에 이어 독립유공자 포상 및 대통령 경축사,축가,광복절 노래 제창,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서울 등 각 지방자치단체도 건국 이래 최대규모의 불꽃놀이와 봉화점화식 등 남북화합을 기원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축하하는 다양한 행사를 가졌다. 이날 오후 8시45분 서울 남산 팔각정에서는 고건(高建)서울시장과이북5도민 대표가 봉수대에 불을 지폈고,한강시민공원 불꽃축제 개막을 알리는 소형로켓을 발사했다.오후 9시부터는 축하공연과 함께 25분간 7,200발의 폭죽이 서울 하늘을 수놓았다.봉화 점화식은 전국 36곳에서 동시에 열렸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는 이날 오후 서울 세종로 특설무대에서시민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통일맞이 대동제’ 행사를 열었다.지방에서도 시·군·구 단위로 경축식을 가졌으며 지역실정에 맞는 경축연회와 타종행사,걷기대회,단축마라톤,무궁화전시회,사생대회 등 200여가지의 문화·체육행사가 펼쳐졌다. 정부는 광복절을 맞아 전국민에게 모든 고궁과 능·원 등 정부관리문화재 구역을 무료개방했다. 노주석기자 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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