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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분석] “밥이 민주주의 되어야” 사회적 대타협에 초점

    [뉴스 분석] “밥이 민주주의 되어야” 사회적 대타협에 초점

    노사정 등 모든 경제 주체가 양보·연대·포용으로 격차 완화 경제 권력구조 개편 해석도문재인(얼굴) 대통령이 6·10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경제민주주의’란 새로운 화두를 던져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라며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천명한 경제민주주의는 헌법에 명시된 경제민주화 개념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으로, ‘문재인표’ 경제정책인 J노믹스와도 맞닿아 있다. J노믹스의 철학적 배경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경제민주화’란 표현 대신 ‘경제민주주의’란 표현을 쓸 것으로 알려졌다.여권도 문 대통령의 ‘경제민주주의’ 일성에 즉각 호응했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원내대변인은 10일 논평을 통해 “정치권은 새 시대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6·10항쟁 기념사에서 “정치민주화뿐 아니라 사회·경제민주화까지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혁명”이라고 말해 경제민주주의가 여권의 주요 화두로 부상했음을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이날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민주주의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며 경제민주주의의 개념을 “더 넓고, 더 깊고,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 압축했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4·19혁명,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 2016년 ‘촛불혁명’을 거치는 동안 사회·정치적 민주주의는 자리를 잡았지만 경제적 민주주의는 미성숙해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나타난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밥이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분배의 정의(正義)’ 실현을 강조한 말로 풀이된다. 경제민주주의가 구현되지 않고 사회 불평등이 지나치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또한 유지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를 두고 재벌개혁,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적폐 청산 등 뿌리 깊은 경제 권력구조 개편을 예고한 대목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를 ‘제왕적 대통령’의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의지도 함께 밝혔다. 경제민주주의를 이룰 핵심적 가치로 ‘양보와 타협, 연대와 배려, 포용하는 민주주의’를 제시했으며 “우리가 도약할 미래는 조금씩 양보하고, 짐을 나누고, 격차를 줄여 가는 사회적 대타협에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6·10항쟁의 중심이 특정 계층, 특정 지역이 아니었듯 경제민주주의의 주체 역시 노사정 등 모든 경제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술적으로 경제민주주의가 바라는 ‘이상 사회’는 완전한 고용과 그에 상응한 사회 보장이 제대로 이뤄진 복지사회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정부의 시장경제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일자리 창출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범여권 총출동…추미애 눈시울 붉히기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범여권 총출동…추미애 눈시울 붉히기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범여권 인사들이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 대거 참석했다.범여권 인사들은 이날 기념식에서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다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 직접 참석해 기념사를 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6·10 항쟁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데 이어 10년 만에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6·10 항쟁 당시 노 전 대통령을 도와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부산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이날 행사에는 국본과 6·10 항쟁의 한 축을 이룬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3기 의장 출신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김수현 사회수석, 하승창 사회혁신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이 함께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문재인 정부는 6월 항쟁의 정신 위에 서 있다. 임기 내내 저 문재인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가진 국민의 한 사람임을 명심하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앞서 문 대통령이 입장할 때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입구까지 나가 영접했다.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당사자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정우택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 등 각당 지도부도 나란히 앉아 기념식을 지켜봤다. 민주당 문희상, 송영길 의원과 안희정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등 여당 인사들도 두루 참석했다.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명동성당 농성에 참여한 ‘87 세대’ 아버지와 촛불집회에 참여한 ‘촛불 세대’ 딸이 서로에게 쓴 편지글을 낭독하자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기념식 도중 눈시울이 붉어진 민주당 추 대표는 손수건을 꺼내 연신 눈가를 닦기도 했다. 기념식 분위기는 참석자 모두가 일어나 손을 맞잡고 ‘광야에서’를 목청껏 합창할 때 최고조에 올랐다. ‘광야에서’는 현재까지도 각종 집회와 시위에서 불리는 대표적인 민중가요다. 한국당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도 이 순간 만큼은 범여권 인사들과 같이 손을 잡고 합창에 동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10 민주항쟁 30주년…문 대통령, 이한열 어머니·박종철 형과 ‘광야에서’ 제창

    6·10 민주항쟁 30주년…문 대통령, 이한열 어머니·박종철 형과 ‘광야에서’ 제창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30년 전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친 시민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촛불집회의 의미를 되새겼다.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이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 박종철 열사의 형인 박종부 씨와 자리에서 일어나 6월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가요인 ‘광야에서’를 제창했다. 문 대통령이 6·10 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2007년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10년 만이었다. 검은색 정장에 감색 넥타이를 맨 문 대통령은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한승헌 전 감사원장을 비롯해 함세웅 신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스님 등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했다. 이번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 내외의 옆자리에는 배은심 여사와 박종부 씨가 앉았다. 4부 요인이나 정당대표 대신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의 상징성을 가진 인사를 예우한다는 뜻을 따른 것이다. 청와대는 앞서 국가 행사의 의전 양식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배 여사와 박 씨 외에도 대통령 주변에는 시민사회 원로 인사와 6·10 항쟁 희생자 유족들이 자리했다. 지선스님은 문 대통령에게 “그간 억눌린 많은 바람이 있으시겠으나 한꺼번에 이를 이룰 수 없는 상황도 함께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엷은 미소를 띠며 이를 들은 문 대통령은 지선스님에게 악수를 청하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6·10 민주항쟁과 촛불집회로 민주주의를 이어온 시민이 역사의 주인공임을 강조했다. 30년 전 부산에서 노 전 대통령과 6월 항쟁을 이끌었던 문 대통령은 “청년부터 원로까지, 제주에서 서울까지, 영호남이 한목소리로 외쳤던 함성,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은 시대의 흐름을 독재에서 민주로 바꿔냈고 국민이 정부를 선택할 권리를 되찾았다”며 “이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라고 덧붙였다. 행사장에 상영된 기념 영상에 30년 전 6월 항쟁 당시 친구인 노 전 대통령과 자신이 함께 거리 시위에 나선 사진이 나오자 문 대통령은 잠시 감상에 젖은 듯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 대통령, 6월 항쟁 30주년에 ‘경제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대통합’ 화두로

    문 대통령, 6월 항쟁 30주년에 ‘경제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대통합’ 화두로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6·10 민주화 항쟁 30주년을 맞아 ‘경제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문 대통령이 정치분야에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성숙단계에 올라섰지만, 국민들의 삶의 질과 방식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내용으로서의 민주주의’인 경제 민주화는 여전히 미숙하다고 본 것이다.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새 정부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경제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핵심 키워드로는 ‘통합’을 제시했다. 지역과 세대, 이념을 뛰어넘는 국민적 통합과 ‘사회적 대타협’이 전제되지 않고는 실질적 개혁과 진전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의미가 기념사에 녹아있다. ‘사회적 대타협’은 문 대통령의 취임사, 5·18 기념사,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사, 현충일 추념사를 관통하는 핵심어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이날 기념사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더는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고,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를 새로운 과제로 천명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4·19 혁명부터 부마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을 거치는 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고, 지난해 ‘촛불혁명’으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경제 민주화’ 대신 ‘경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썼다. 10년 전 이날 노무현 전 대통령은 6·10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사를 통해 “6·10 항쟁은 아직 절반의 승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했는데, 문 대통령은 30주년 기념사에서 “촛불은 미완의 6월 항쟁을 완성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국정농단 사태를 야기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민주적 절차와 제도에 따라 탄핵하고 새 정부를 출범시킨 ‘촛불혁명’으로 미완의 6월 항쟁이 완수됐다는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는 우리 국민이 이룬 그 모든 성취를 바탕으로 출범했고, 문재인 정부는 6월 항쟁의 정신 위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제37주년 5·18 기념식에서도 이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 1987년 6월 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온 민주세력과 문재인 정부가 맥을 같이 함을 강조함으로써 새 정부의 정통성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보다 강조한 대목은 6월 항쟁이 ‘제도적 민주화’를 넘어 ‘실질적 민주화’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6월 항쟁으로 성취한 민주주의가 모든 국민의 삶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며 “민주주의가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질 때,6월 항쟁은 살아있는 현재이고 미래”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실질적 민주화의 방향을 ‘더 넓고, 더 깊고,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 압축 표현했다.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양대 요소인 △제도와 △실질적 내용에 있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와 진전을 가져오겠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의지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후퇴가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헌법, 선거제도, 청와대, 검찰, 국정원, 방송 등 우리사회 시스템을 형성하는 핵심기관들과 제도에서 민주주의를 심화해나가겠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문 대통령이 보다 무게를 둔 것은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한 ‘내용상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경제 민주주의가 구현되지 않고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도 유지하기 함들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일자리 문제를 경제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꼽았다. 경제적 차원의 불평등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시스템을 흔드는 ‘위기적 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위기가 근본 원인”이라며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민주주의는 형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경제의 문제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6월 항쟁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과 소득 분배의 불균형, 청년 실업과 이에 따른 저출산 문제 등을 방치한 민주주의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일자리 정책의 현실적 한계도 고백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어렵다”며 “우리 사회가 함께 경제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바꿔 말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시민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을 잡는 ‘사회적 대타협’을 주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날 기념사는 여전히 ‘통합’이라는 키워드를 응축하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이룬 민주화 운동의 전통과 유산이 특정 지역만의 것이 아닌 모든 국민이 계승해야 할 정신적 유산으로 승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부산의 아들 박종철과 광주의 아들 이한열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며 영·호남의 민주화 열사의 이름을 나란히 열거했다. 지난달 5·18 기념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은 ‘전남대생 박관현, 노동자 표정두, 서울대생 조성만, 숭실대생 박래전’의 이름을 부르며 “5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은 이들도 함께 기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민주화 운동의 유산이 특정 지역의 전유물일 수 없고 시민들이 지역의 틀을 넘어 연대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것이라는 문 대통령 자신과 친구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철학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 대통령 “민주주의 후퇴없다…촛불은 6월 항쟁 완성시키라는 국민의 명령”

    문 대통령 “민주주의 후퇴없다…촛불은 6월 항쟁 완성시키라는 국민의 명령”

    노 전 대통령 이후 10년 만에 6·10 민주항쟁 기념식 참석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후퇴하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인권은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문 대통령은 “이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라며 일자리 정책을 포함해 ‘경제 민주주의’의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새 정부에서 민주주의 제도와 절차를 확대시켜나는 동시에 성장과 대기업 중심으로 치달아온 박정희 시대의 경제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대통령이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10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민주주의가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질 때 6월 항쟁은 살아있는 현재이고 미래”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를 새로운 도전 과제로 제시하고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돼야 한다”며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데 일자리 위기가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제가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고 거듭 말씀드리는 것은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민주주의는 형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일자리는 경제의 문제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어렵고 우리 사회가 함께 경제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한다”며 “6월 항쟁 30주년을 디딤돌 삼아 우리가 도약할 미래는 조금씩 양보하고, 짐을 나누고, 격차를 줄여나가는 사회적 대타협에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결코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해내야 할 과제”라며 “진정한 노사정 대타협을 위해 모든 경제주체의 참여를 당부한다”고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30년, 우리 사회가 이뤄온 모든 발전과 진보는 6월 항쟁에서 비롯됐다”며 “문재인 정부는 우리 국민이 이룬 그 모든 성취를 바탕으로 출범했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6월 항쟁의 정신 위에 서 있다”며 “임기 내내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가진 국민의 한 사람임을 명심하고 역사를 바꾼 두 청년, 부산의 아들 박종철과 광주의 아들 이한열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시작은 해방과 함께 바깥으로부터 주어졌지만,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를 이만큼 키운 것은 국민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 길에 4·19가 있었고, 부마항쟁이 있었고, 5·18이 있었고, 6월 항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은 지난 겨울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며 ”촛불은 한 세대에 걸쳐 성장한 6월 항쟁이 당당하게 피운 꽃이자 미완의 6월 항쟁을 완성시키라는 국민의 명령이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부산에서 6월 항쟁에 참여하며 민주주의는 물처럼 흐를 때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배웠다”며 “독재에 맞섰던 87년의 청년이 2017년의 아버지가 돼 광장을 지키고, 도시락을 건넸던 87년의 여고생이 2017년 두 아이의 엄마가 돼 촛불을 든 것처럼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이어 “그렇게 우리의 삶,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역량이 더 성숙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가자”며 “개개인이 깨어있는 민주시민이 되기 위한 노력은 그것대로 같이 해나가자”고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정치, 사회, 경제의 제도로서 정착하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상에서 민주주의로 훈련될 때 민주주의는 그 어떤 폭풍 앞에서도 꺾이지 않을 것”이라며 “6월 항쟁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는 영원하고, 광장 또한 국민에게 항상 열려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월 항쟁 30년] 이한열 열사 떠나보낸 곳에서…오늘 서울광장서 민주항쟁 기념식

    ‘6·29선언’을 낳은 6·10 민주항쟁의 30주년 정부 주최 기념식이 처음으로 서울광장에서 10일 열린다. 6·10 민주항쟁 기념식은 10년 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지만, 고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이 열렸던 서울광장에서 개최되는 것은 처음이다. 올해 기념식의 주제는 ‘기억과 다짐’으로 6월 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기억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다짐하는 축제의 장으로 진행된다.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롯해 민주화운동 유가족과 민주화운동단체, 전국의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홈페이지를 통해 참가 신청한 일반시민과 학생 등 5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기념식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지선 이사장의 국민에게 드리는 글 낭독, 기념공연, 노래 ‘광야에서’를 제창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87세대와 촛불세대가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된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 외에 주목받지 못했던 황보영국, 이태춘 열사를 기리는 기회도 갖는다. 황보 열사는 1987년 5월 17일 부산상고 앞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며 분신했다. 이태춘 열사는 6월 부산에서 민주항쟁 시위 도중 쓰러져 운명했다. 이날 서울광장뿐 아니라 부산, 성남, 원주, 목포에서도 기념식이 열린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6월 항쟁 30년] 이한열 모친 “촛불 대통령은 민주주의 완성해야”

    [6월 항쟁 30년] 이한열 모친 “촛불 대통령은 민주주의 완성해야”

    “30년간 같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간 우리 한열이의 죽음을 기억해 주신 분들, 매년 이날 여기서 이렇게 추모제를 개최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의 노력은 우리나라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합니다.”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한열동산’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의 30주기 추모제 연단에 선 어머니 배은심(77)씨는 “한열이의 죽음으로 괴로워했던 사람들이 오늘부터 그 아픔을 벗어버리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생이던 만 21세의 이 열사는 1987년 6월 9일 학교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시위 도중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쓰러졌고 ‘6월 항쟁’이 전국으로 퍼지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27일 뒤인 7월 5일 사망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250여명이 모였고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같은 당 문희상·원혜영·송영길 의원 등이 참석했다. 우 의원은 추도사에서 “30년간 매년 추모제를 열었지만 한때는 추모객이 거의 없어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잊는 것이 아닌가 두려움도 있었다”며 “하지만 지난해 겨울 거리를 가득 채운 수십만 명의 국민들을 봤다. 지금은 이 열사도 하늘에서 자신의 꿈이 더 진전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앞으로 이 열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학생운동 역사를 연구하고 이를 책으로 집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학생들은 30년간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크게 발전한 점은 인정했지만 청년들이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을 토로했다. 심산하(23·연세대 국제학부)씨는 “과거 이한열 열사를 비롯한 당시 20대 세대들의 노력으로 지금 우리나라가 그때보다 발전한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감사하고 경외로운 마음이 있다”며 “하지만 투쟁의 대상이 명확했던 30년 전 청년세대와 달리 지금 우리 세대들은 좀더 혼란스러운 시대에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 참가자들은 오후 6시 15분부터 서울광장~광화문 구간에서 ‘이한열 장례행렬 재현 행사’ 및 추모공연을 열었다. 연세대에 이어 서울광장에서 열린 문화제에 참석한 배씨는 “촛불시민 여러분이 큰일을 했다. 촛불 대통령은 앞으로 노동자·농민이 자기 목숨 스스로 끊는 일이 없도록 민주주의를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제에는 이한열기념사업회 관계자와 시민 2000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도망가라니까 왜 여기 있니...”...민주화 운동, 30년 전 바로 오늘

    “도망가라니까 왜 여기 있니...”...민주화 운동, 30년 전 바로 오늘

    꼭 30년 전인 1987년 6월 9일, 6월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된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은 직후 모습의 컬러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사진이 전시된 이한열기념사업회를 찾은 어머니 배은심씨는 사진 속의 아들을 한없이 어루만지다 “도망가라니까 왜 여기 있니...”라고 되뇌었다고 KBS가 9일 전했다. 최루탄을 맞은 이한열 열사 최후 모습의 컬러 사진은 당시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자로 한국에 와 았던 네이션 벤 기자가 찍은 것이다. 그가 제공한 당시 사진에는 거리가 안개 낀 것처럼 최루가스가 자욱하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민주화 30주년을 맞아 6월 민주항쟁 관련 자료를 선보이는 사진전 ‘1987년을 돌아보다’를 야외 역사마당에서 연다고 9일 밝혔다. 전시기간은 10일부터 8월 27일까지다. 이번 전시에는 1987년 1월 벌어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부터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직선제 개헌과 독재정권 타도를 외친 6월 민주항쟁, 그해 12월 개헌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까지 30년 전 모습을 담은 사진 30여 점이 나온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 전시와는 별도로 26일부터 9월 3일까지 민주화 30주년 기념 특별전 ‘民(민)이 主(주)인이 되다’를 열기로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종교 간 화해·민주화운동 한평생…개신교계의 큰 스승을 떠올리다

    종교 간 화해·민주화운동 한평생…개신교계의 큰 스승을 떠올리다

    경동교회 설립자, 크리스찬아카데미 설립자…. 여해(如海) 강원용(1917~2006) 목사는 한국 현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종교 지도자이자 평화운동가로 불린다. 평생 복음의 실천과 행동을 중시하며 교회 연합과 일치, 종교 간 화해와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삶으로 해서 한국 개신교계의 큰 스승으로 꼽힌다.강원용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린다. ‘강원용 인간화의 길 평화의 길’, ‘여해 강원용 목사 평전’, ‘강원용과 한국방송’(이상 한길사), ‘여해 강원용 아카이브북’(대화출판사) 등 평전 시리즈가 출간된 데 이어 강 목사의 삶을 기리기 위한 여해상이 제정됐다. 그런가 하면 강 목사가 설립한 경동교회에서는 오는 12월까지 매월 둘째 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종교개혁 500주년·강원용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 평신도 포럼’이 개최된다. 강 목사의 생일인 9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재단법인 여해와함께 주최로 열릴 여해문화제 ‘여해와 함께’는 개신교계의 큰 관심이 쏠리는 행사이다.함경남도 이원군에서 출생한 강 목사는 1931년 개신교에 입교했고 1935년 만주 북간도 용정중학교에서 윤동주 시인, 문익환 목사 등과 교유했다. 이 무렵 은진중학교 교사였던 김재준 목사를 만나 개신교 신앙에 눈떴으며 1945년 김 목사와 함께 야고보교회(경동교회)를 설립했다. 특히 배타시하던 이웃 종교 간 대화와 소통을 시도한 크리스찬아카데미 설립(1965년)은 한국 기독교뿐만 아니라 종교계에서 거듭 회자되는 큰 사건으로 꼽힌다. 광복과 분단 시절에는 민족의 선각자로서, 혁명과 독재정권의 격변기에선 소외된 자를 위해 살아간 인물로 기억된다. 여해문화제 ‘여해와 함께’는 개신교계의 거목 강 목사의 사상과 실천을 이어받고자 다짐하는 공동체 시간으로 마련됐다. 주최 측인 여해와함께는 행사와 관련, “여해는 가고 없지만 그가 한국 사회에 던진 인간화, 대화, 평화의 메시지는 여전히 오늘도 큰 무게를 지닌 채 우리 곁에 살아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문화제는 제1회 여해상 시상식과 평전 출판기념회, 평전 시리즈 저자와의 대화, 다큐멘터리 영상전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올해 처음 제정, 시상하는 여해상은 고인의 정신을 기려 사회·문화·종교 분야에서 인간화와 평화에 공헌한 인물이나 기관에 수여하는 상이다.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가 본상을, 고인과 함께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설립하는 데 공헌한 독일 출신 노베르트 한스 클라인 목사와 한송죽 경동교회 전도사가 특별상을 받는다. 여해상 운영위원회는 “몽양 여운형은 좌와 우의 갈등을 넘어 민족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며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가 몽양의 사상을 계승 발전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고 본상 선정 이유를 들었다. 이날 시상식에는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부영 이사장이 수상할 예정이다. 한편 노베르트 한스 클라인 목사는 한국의 민주화를 이끈 크리스찬아카데미 설립 과정에 물심양면으로 공헌한 점을, 한송죽 전도사는 그리스도교 복음 전파에 일생을 헌신한 점을 선정 사유로 꼽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정은 옆 모습 드러낸 동생 김여정

    김정은 옆 모습 드러낸 동생 김여정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6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소년단 8차대회에 참석한 뒤 광장에서 소년단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기 앞서 소년단 대표에게 꽃다발을 받고 있다. 8일 노동신문이 공개한 이 사진에서는 김 위원장 바로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여동생 김여정(빨간원)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의 모습도 포착됐다. 연합뉴스
  • 개혁·소통·통합행보에 국민 지지… 인사 ‘삐끗’

    국정교과서 폐지·‘임’ 제창 지시 검찰·국정원 ‘정치적 독립’ 약속 인사 5대 배제원칙에 조각 지연 “‘이게 나라냐고 물으며 촛불을 들었던 국민에게 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취임 30일을 맞았다. 탄핵으로 국정 공백이 길어진 데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해야 했던 탓에 취임 한 달, 그리고 100일의 성과에 정권의 명운이 달린 점을 유념했던 문 대통령은 100m 스프린터처럼 출발선을 박차고 나섰다. ‘대통령 업무지시’란 이름으로 적폐청산 액션플랜을 쏟아내는가 하면, 검찰·국가정보원에 개혁의 칼을 들이댔고, 탈권위적 소통으로 80%를 웃도는 국민 지지를 끌어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많은 어려움을 맞을 것으로 예상했고, 그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나름 성과라고 생각해 보면 이르긴 하지만, 국민이 주인인 나라, 나라다운 나라로 가야 한다는 국정철학에 터 잡아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춰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평했다. 이처럼 취임 30일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개혁과 소통, 통합이다. 지난달 10일, 첫 업무지시인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시작으로 ▲국정교과서 폐지 및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노후 화력발전소 ‘셧다운’ 및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검찰 ‘돈 봉투 만찬’ 감찰 ▲6개보(洑) 상시 개방 및 4대강 사업 감사원 감찰을 지시했다. 또 ‘찾아가는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비정규직 목소리를 듣고자 인천공항을 방문했고, 미세먼지 문제로 걱정하는 초등학생과 부모를 만났다. 개혁을 위해 인사권을 적극 활용했다. ‘돈 봉투 만찬’을 계기로 검찰 지휘부를 쇄신하고 검찰 ‘빅4’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장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친 윤석열 검사를 발탁했다. 서훈 국정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국내 정보담당관(IO)제 폐지를 선언했다. 아울러 5·18 기념사와 고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 인사말, 현충일 추념사에선 “편가르기를 끝내고 통합에 나설 것”을 호소했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순항하는 듯했지만, 스스로 내세운 도덕 기준(5대 비리 고위공직 배제 원칙)에 발목 잡혀 조각(組閣)의 실타래를 풀지 못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은 번번이 ‘위장 전입’ 논란이 불거졌다. 가까스로 이 총리는 인준됐지만, 강경화·김상조 후보자의 운명은 불투명하다. 여전히 17개 부처(현재 직제 기준) 가운데 11개 부처 장관이 지명되지 않았다. 또 안현호 청와대 일자리수석 내정이 철회됐고, 김기정 안보실 2차장은 품행 구설로 경질됐다. 4명의 청와대 차관급 자리가 공석이다. 인사원칙 위배 논란과 맞물려 야권과의 ‘허니문’도 일찌감치 끝났다. 자유한국당 등은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일자리 추경(추가경정예산안)에도 반대한다. 이에 문 대통령은 오는 12일 오후 2시 국회 본회의에서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추경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기로 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맞물린 대미·대중 관계 고차방정식도 여전히 답을 찾는 과정이다. 국방부의 보고 누락 파문으로 촉발된 추가 반입된 발사대 4기의 배치 여부는 환경영향평가 이후로 미뤄졌다. 미·중의 틈바구니에서 해법 찾기에 부심했던 문 대통령으로선 일단 시간을 번 셈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흐트러지고 어긋났던 마디들을 새롭게 맞추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미완의 6월 항쟁이 낳은 촛불… 진정한 성공위해 관심 지속을”

    1987년 6·10민주항쟁(6월 항쟁)과 촛불집회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6월 항쟁과 같이 2차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하지 않으려면 사회적 관심이 지속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7일 행정자치부 산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연 ‘6월 항쟁 30주년 기념 학술토론회’에서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6월 항쟁은 직선제 개헌이라는 1차적 목표는 이루는 데 성공했지만 군부 통치 종식과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2차 목표는 실패했다”며 “촛불 혁명도 1차적 목표(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는 달성했지만 진정한 성패는 지금부터”라고 말했다. 그는 “6월 항쟁과 달리 민주정부 수립에는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6월 항쟁의 경우 학생과 넥타이부대, 노동자 등이 주요 세력이었다면 촛불집회는 여성, 노인, 중고생 등을 포함한 일반시민이 주체가 됐다고 비교했다. 그는 “지금의 촛불시민들이 집단지성으로 무장하고 훨씬 발전된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군사독재에 저항해 시위에 참여하는 위험한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용기는 1987년이 더 컸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6월 항쟁의 경우 6월 26일 하루만 3687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지속기간은 6월 항쟁이 20여일이었고 촛불집회는 5개월이었지만 집회일만 따지면 역시 20여일이었다. 주최 측 추산으로 6월 항쟁의 참가 연인원은 500여만명(12%), 촛불집회는 1684만명(32%)이었다. 87년의 시민들은 공권력에 대항 폭력을 행사했고, 2017년에는 시민들이 비폭력을 고수하고 수호한 것도 큰 차이점으로 들었다. 오제연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6·10민주항쟁을 3·1운동, 4·19혁명과 비교 분석하며 “이들 사건은 약 30년 정도의 주기로 발생했다. 한국에 민주주의가 안착하지 못해 억압의 누적과 폭발이 세대가 바뀔 때마다 반복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튿날인 8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와 과제’라는 주제로 연이어 학술대회를 연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불탄 소방장구 앞에 꿇어앉아…“감동적, 두고두고 귀감”

    문재인 대통령, 불탄 소방장구 앞에 꿇어앉아…“감동적, 두고두고 귀감”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용산소방서를 방문해 새까맣게 타버린 소방관의 보호장구 앞에서 낮은 자세로 꿇어앉았다.문 대통령은 “이게 최길수 소방관 장구입니까. 잘 좀 보존을 해야겠습니다. 정말 귀감으로 두고두고 보여줄 만 합니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용산소방서에서 소방대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소방대원의 노고를 격려했고, 소방관·경찰관·간호사 등 국민의 생명·안전·보건과 관련된 공무원을 늘리기 위한 일자리 추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행사의 슬로건은 ‘소방관이 눈물 흘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였다. 문 대통령은 간담회장으로 이동하던 중 불타버린 소방장구가 복도에 전시된 것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이 장구들은 온몸으로 불길을 막아 시민의 목숨을 구한 최길수 소방교와 김성수 소방위의 것이었다. 두 소방관은 지난달 11일 용산구의 한 다가구주택 화재 현장에 투입돼 불 속에 고립됐던 김모씨 부부가 탈출할 수 있도록 소방장구만 착용한 채 몸으로 불길을 막아냈다. 덕분에 김씨 부부는 목숨을 건졌지만, 김 소방위는 얼굴과 손에 3도 화상을 입었고 최 소방교는 16m 높이의 창문에서 뛰어내려 허리뼈가 골절됐다. 당시 최 소방교는 3주 뒤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지만 입원치료를 받느라 최근에야 결혼식을 올렸다. 아직 신혼여행도 다녀오지 못했다. 간담회장에서 최 소방교를 만난 문 대통령은 “최길수 대원과 김성수 대원 두 분 다 너무 감동적이어서 병문안이라도 가 보고 싶었는데 대선을 앞둔 시기여서 트위터로만 격려하는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이어 “최 소방교는 최근 늦춰진 결혼을 했는데 신혼여행을 가는 대신 그 돈을 모교 발전기금으로 내놓으셨다”며 “신혼여행 안 간 건 잘못한 거다. 적절한 시기에 신혼여행 갈 수 있도록 서장님이 휴가를 내주셔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40여명의 소방관과 일일이 악수하고 직접 소방관들에게 커피를 따라줬다. 문 대통령은 두손으로 공손한 자세로 커피를 따라줬다. 기념사진과 ‘셀카’ 촬영 요청을 받고는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배우 유지태씨도 참석했다. 유씨는 대연각 화재를 소재로 한 영화 ‘리베라 메’에서 소방관 역할을 맡았고, 최근 ‘소방관 GO 챌린지’라는 소방관의 처우 개선을 촉구하는 영상을 촬영했다. 소방대원들은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에게 다양한 어려움을 호소하며 처우 개선을 부탁했다. 한 여성 소방대원이 소방서에 육아시설이 없어 아이 맡길 곳이 없다고 이야기하자 문 대통령은 “보육시설 문제가 왜 해결이 안되느냐”고 최송섭 용산소방서장에게 물었다. 최 서장이 “그것까지 할 재력이나 환경이 아직은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답하자 문 대통령은 “여러 소방관서가 연합해서 한다든지 용산 일대에 있는 다른 공공분야와 함께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대원에게 욕설을 하거나 폭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소방관에 대한 불신이나 미움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더 절실하고 기대가 크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며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간담회에 앞서 용산소방서 4층에 마련된 소방안전체험교육장에서 인근 어린이집 아이들과 함께 소방교육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어린이들과 함께 소화기 호스를 잡고 화재 진압훈련에 참여했고, 화면에 ‘화재 진압 성공’이라는 문구가 뜨자 아이들과 함께 박수를 쳤다. 문 대통령이 용산소방서를 방문한 것은 민주당 대표이던 2015년 9월 이후 1년 9개월 만이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용산서에 왔을 때도 똑같은 대화를 나누면서 소방관에 대한 처우가 부족하다고 했는데 그 이후 달라진 게 전혀 없다”며 “다만 그때는 저도 소방관 여러분과 함께 촉구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책임지고 추진할 수 있는 입장이 됐다는 것이 아주 다행”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소방관과 경찰·군부사관 등 국민 생명·안전과 직결된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 17만 4000명을 늘리겠다고 공약했고, 정부는 이를 포함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이날 11조 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포토] 문재인 대통령, 어린이들과 ‘엄지 척’ 기념사진

    [서울포토] 문재인 대통령, 어린이들과 ‘엄지 척’ 기념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추경 현장으로 7일 오전 서울시 용산구 용산소방서를 방문했다. 어린이 소방안전체험을 참관한후 어린이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展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展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내 메트로미술관에서 6일 시민들이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 역사전시회- 1987, 우리들의 이야기’전을 감상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번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열린 뒤 광주·대전 등 전국 4개 주요 도시를 순회한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발굴 안 된 국군 유해 12만 3000여구 달해

    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충일 기념사를 통해 “아직도 백골로 묻힌 용사들의 유해, 단 한 구의 유골이라도 반드시 찾아내 이곳(현충원)에 모시겠다”며 국군 유해 발굴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힘에 따라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에도 한층 힘이 실리게 됐다. ●유엔군 15·북한군 715·중국군 569구 발굴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국군 유해 발굴 사업이 시작된 이래 지난해 말까지 모두 1만 808구의 6·25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다. 국군이 9508구로 가장 많고, 유엔군 유해도 15구를 찾아냈다. 적군 유해도 다수 수습했다. 북한군 유해 715구와 중국군 유해 569구를 우리 장병들이 발굴했다. 이 중 중국군으로 판정된 유해는 2014년 이후 올해까지 네 차례에 걸쳐 모두 중국 측에 송환됐다. ●유가족 3만 6000여명만 DNA 채취 응해 상당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되지만 아직도 ‘피의 능선’ 곳곳에는 이름 없는 무덤 속에 방치된 국군 유해가 12만 3000여구에 이른다. 10%도 발굴하지 못한 것이다. 막상 유해를 발굴해도 유족들에게 인계되는 경우는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 신원 확인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굴 유해 중 118구, 1.2%만 신원이 확인됐다. 인식표나 사진 등 징표가 대부분 남아 있지 않아 유전자(DNA) 검사를 통해 친족들과 대조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현재까지 DNA 채취에 응한 유가족은 약 3만 6000여명에 불과하다. 수습해야 할 전사자 유해의 22% 수준이다. ●감식단, 올해도 11월까지 발굴 진행 한편 국군 유해 발굴 사업은 당초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 가운데 하나로 육군이 주도하는 한시적 사업으로 착수했으나 2005년 사업 주체가 국방부로 이관되면서 상설 사업으로 전환됐다. 유해발굴감식단이 이때 창설됐다. 감식단은 올해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전역의 6·25전쟁 주요 전투지역에서 11월까지 발굴을 진행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인 이학기 대령은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은 목숨 바쳐 조국을 지켜낸 영웅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영웅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우루과이 동양인 비하 세리머니…FIFA, 진상조사 나서

    우루과이 동양인 비하 세리머니…FIFA, 진상조사 나서

    국제축구연맹(FIFA)이 우루과이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페데리코 발베르데(19)의 세리머니에 인종차별 논란이 커지자 진상조사에 나섰다.우루과의 대표팀의 발베르데는 지난 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U-20 월드컵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골을 넣은 뒤 두 손가락으로 눈을 찢으며 달려가는 세리머니를 했다. 경기 후엔 우루과이 선수들이 단체로 라커룸에서 양 관자놀이에 검지를 대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발베르데의 행동이 동양인을 비하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FIFA는 우루과이 축구협회에 해명 자료를 요청했다. 이날 오전 우루과이 축구협회가 해명 자료를 FIFA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루과이 대표팀 관계자는 이날 “발베르데의 세리머니는 한국인 비하가 아니라”며 “본인의 에이전트에게 한 것으로 발베르데는 몇 년 전부터 이 세리머니를 했다”고 밝혔다. 단체사진 포즈에 대해서도 “우루과이에선 해당 제스처가 ‘나는 잘했다’는 뜻”이라며 “문화적 차이에서 발생한 오해”라고 했다. FIFA는 우루과이 측의 자료와 발베르데의 경기 당시 세리머니 등을 면밀히 파악해 진상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인종을 포함한 모든 차별적 행위를 금지하는 FIFA가 상황에 따라 해당 행위에 대해 중징계를 내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FIFA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유럽예선에서 ‘나치’를 연상시키는 구호를 한 크로아티아 요시프 시무니치에서 10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내린 바 있다. 2013년에 우크라이나 관중들이 월드컵 유럽예선 폴란드와의 홈경기에서 인종차별 응원을 펼치자 우크라이나 축구협회에 월드컵 예선 1경기 무관중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FIFA 홈페이지 우루과이 ‘눈 찢는’ 사진 이틀째 지우지 않아

    FIFA 홈페이지 우루과이 ‘눈 찢는’ 사진 이틀째 지우지 않아

    국제축구연맹(FIFA) 홈페이지에 우루과이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의 ‘눈찢기 세리머니’ 사진이 이틀 가까이 게재돼 있어 문제다. 우루과이의 미드필더 페데리코 발베르데(19·레알 마드리드)는 지난 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득점한 뒤 두 손으로 눈을 찢는 동작을 하며 중계 카메라로 달려갔다. 눈이 작은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행동으로 특히 대회를 개최한 한국과 한국인을 조롱하는 뜻으로 비쳤다. 포르투갈을 승부차기 끝에 제압한 기쁨이 너무 컸을까? 우루과이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라커룸에서 단체로 눈을 찢는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FIFA와 마찬가지로 우루과이축구협회도 이 사진을 트위터 계정에 올린 뒤 삭제하지 않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6일 오전 8시 전했다. 영국 BBC는 이날 “발베르데가 인종차별적인 제스처를 했다”며 “지난달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에세키엘 라베시가 중국 슈퍼리그 허베이와의 경기 득점 후 눈을 찢는 포즈로 사진을 찍혔다가 사과했는데 한 달 만에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논란이 번지자 발베르데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한국어로 “인종차별적 세리머니가 아니라 친구를 위한 개인적인 세리머니였다. 내가 의도한 바는 인종차별이 아니다. 유감이다”고 해명했다. 우루과이 대표팀 관계자는 연합뉴스 보도 뒤에 전화를 걸어와 “발베르데의 세리머니는 아시아인을 비하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에이전트를 향해 한 것”이라며 “자료를 찾아보면 알겠지만 발베르데는 몇 년 전부터 이 세리머니를 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집단 눈 찢기 사진에 대해선 “우루과이에선 관자놀이에 양 검지를 대는 제스처가 ‘난 미치도록 잘했다’는 뜻”이라며 “문화적 차이에서 빚어진 오해”라며 “이것 역시 예전부터 해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FIFA가 우루과이 축구협회에 해명자료를 요구해 오늘 오전 보냈다. 우리는 약간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우루과이는 이날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대전 한밭축구장에서 공식 훈련을 한 뒤 8일 오후 5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베네수엘라와 4강전을 치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포토] 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정상…호날두 ‘어머니와 우승의 기쁨을’

    [포토] 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정상…호날두 ‘어머니와 우승의 기쁨을’

    멀티골 활약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끈 레알 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3일(현지시간) 영국 웨일스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경기가 끝난 뒤 어머니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유벤투스를 상대로 4-1로 승리해 2016-2017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EPA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화그룹, 직급 승진 시 한달간 재충전하는 ‘안식월’ 실행

    한화그룹, 직급 승진 시 한달간 재충전하는 ‘안식월’ 실행

    한화그룹은 창립 64주년을 맞은 지난해 10월부터 안식월, 유연근무제 등을 실행하고 있다.김승연 회장은 당시 창립기념사를 통해 “사업 규모가 커지고 시장 지위가 높아질수록 임직원들의 의식 수준 또한 일류가 돼야 한다”며 “우리 안에 있는 ‘젊은 한화’를 깨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적인 조직 문화 변화를 통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다. 한화그룹은 직급 승진 시 1개월간의 안식월을 준다. 재충천을 통해 만들어진 에너지를 회사와 개인의 발전을 위해 쓸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유연근무제도 도입해 개인별 업무 상황에 따라 미리 신청하면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업무 특성상 유연근무제 활용이 어려운 회사는 점심시간을 2시간으로 늘렸다. 자기 계발 또는 건강 관리 등에 시간을 쓸 수 있게 돼 조직 몰입도가 높아졌다. 팀장 정시 퇴근제, 월 1회 팀장 의무 연차 등도 실행해 일과 가정 양립을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제도는 그룹 내 모든 임직원들의 생각을 모은 결과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3월부터 선호도 조사, 직급별 워크숍, 선진기업 사례 분석 등을 통해 실천 방안을 도출했다. 그 결과물 중 하나로 방위산업 계열사인 ㈜한화는 근무시간에 ‘1일 1시간’ 학습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임직원들이 자기주도적 학습을 통해 직무 전문가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지난 연말에는 직무 관련 자격증 취득, 어학 성적 향상 등 임직원들로부터 학습 우수 동료들을 추천받아 시상하기도 했다. 따로 자기 계발 시간을 마련하기 어렵지만 회사 차원에서 지원해 주는 학습시간을 통해 임직원들의 학습 의욕이 높아지고 업무 성과 개선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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