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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상시인 1주기 추모집 ‘홀로와 더불어’ 출간

    ‘늘 홀로인 것 같았습니다./홀로 식탁에서 감사 기도를 올리고/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을 찾아가시며/스스로의 존재를 응시하듯/물빛 투명함을, 때로는/한강을 고즈넉이 바라보셨습니다.(중략)살아남은 자들 망연해하는 사이/어느 크고 부드러운 손이/당신의 맨주먹을 잡아끌어 주십니다./홀로 가셨지만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신중신 ‘홀로 가셨지만 혼자가 아닙니다’중) 지난해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난 문단의 거목 구상(1919∼2004) 시인을 기리는 추모문집 ‘홀로와 더불어’(나무와 숲)가 출간됐다. 평생을 한치 흐트러짐없는 올곧음과 청빈한 구도자적 자세로 스스로에겐 박하고, 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던 시인. 추모문집에는 문인, 학자, 정치인 등 사회 각계 인사들과 제자, 유족들이 기억하는 고인에 관한 진솔한 글 102편이 실려 있다. 원산에서 살았던 1930∼40년대부터 1950년대 피란지 대구와 시적 고향인 왜관 시절,1960년대 이후 서울 시절과 1970년대 하와이 대학 초빙교수 시절, 이후 작고하기까지 그의 삶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은 시인 개인의 인생뿐 아니라 우리 현대사의 한자락을 펼쳐보인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1974년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문인들을 당국이 ‘문인 간첩단’이란 사건에 연루시켜 재판정에 세웠을 때 시인이 증인으로 출두해 무죄를 증언한 일을 글로 남겼다. 천재화가 이중섭의 후견인 역할을 한 일,‘걸레스님’ 중광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돌팔매질 당할 때 옆에서 힘이 됐던 사연, 박삼중 스님과 사형수 돕기에 나섰던 일, 작고하기 직전 장애인 문학지 ‘솟대문학’에 2억원을 기증한 일 등 참다운 자유인이자 성자와 같은 삶을 살았던 시인의 삶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그런가 하면 생전에 동생처럼 대하던 후배 시인이 부인과 사별하고 홀로 지내는 모습을 안타까워해 ‘문인 과부클럽’을 만들려고 했다는 일화는 고인의 또 다른 일면을 엿보게 한다. 구상기념사업회는 20일 오후 6시30분 서울YWCA회관 대강당에서 ‘홀로와 더불어’ 출간기념회와 함께 한국인물전기학회 주최 ‘구상의 생애와 사상’ 발표회를 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심산 김창숙 선생 43주기 추모제

    유림계를 이끌며 평생 민족운동과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한 심산 김창숙(1879∼1962) 선생의 43주기 추모제가 10일 오전 10시 서울 강북구 수유동 선생의 묘역에서 열린다. ‘심산 김창숙선생 기념사업회’(회장 정범진) 주최로 열리는 이날 추모제에는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과 정종기 서울북부보훈지청장, 성균관 관계자 등 3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경북 성주 태생인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상경, 이완용 등 을사 5적의 참형을 요구하는 ‘청참5적소’(請斬五賊疏)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옥고를 치렀으며, 국채보상운동과 사립학교인 성명학교를 설립해 민족주의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망명생활을 한 선생은 1921년 신채호 선생 등과 독립운동지인 ‘천고’를 발행한 데 이어 박은식 선생 등과 ‘사민일보’를 발간,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또 1926년에는 이동녕, 김구 선생 등과 상의를 거친 뒤 의열단의 나석주를 파견, 동양척식회사를 폭파토록 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 해공 신익희 선생 추모식

    해공 신익희(1894∼1956) 선생 제49주기 추모식이 5일 ‘해공 신익희 선생 기념사업회’(이사장 유치송) 주관으로 서울 강북구 수유동 소재 선생의 묘소 앞에서 거행됐다. 추모식은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민주당 한화갑 대표, 송방용 헌정회장, 국민대 김문환 총장, 이철승 서울평화상이사장, 민관식 조병옥박사기념사업회장,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등 각계 인사와 학생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헌화와 분향에 이어 추모사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선생은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1919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뒤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국호, 관제, 정부관원 및 임시헌장 등을 의결·선포하는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탄생에 기여했다. 광복 후 국민대 초대 총장을 지내다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대의원에 피선돼 1947년 의장이 됐다. 이어 1950년에는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1956년 3대 대통령선거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으나 유세중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총리실 위원회 대폭 축소

    총리실 위원회 대폭 축소

    지난 1976년 설치된 중앙민방위협의회가 기능상실 등의 이유로 30년 만에 해체되는 등 국무총리실 산하 63개 위원회 가운데 19개가 폐지되거나 직급이 낮아지는 등 정비된다. 국무조정실은 3일 이같은 내용의 총리실 산하 위원회 정비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45개 위원회 가운데 4개가 폐지되고,5개 위원회가 장관급으로 격하된다. 국무조정실장이 위원장인 18개 위원회도 3개가 폐지되고 1개는 위원장 직위가 한 단계 낮아진다. 폐지되는 위원회는 총리 산하 물관리정책조정위와 백제문화권개발자원위 등 7개다. 총리가 위원장인 접경지역정책심의위와 정보통신기반보호위 등 6개 위원회는 위원장이 소관부처 장관이나 차관으로 한 단계 낮춰진다.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와 APEC준비위 등 6개 위원회는 관련사업이 종료되는 대로 자동 폐지된다고 국무조정실은 밝혔다. 이번에 폐지되는 위원회의 경우 설치목적이 달성됐거나 운영실적이 저조하고, 행정여건 변화로 존치 필요성이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국무조정실은 설명했다. 실제로 중앙민방위협의회는 1976년 설치된 뒤 평균 5년에 한번꼴로 열려 유명무실한 상황이고, 정보화책임관협의회는 2001년 이후 한번도 개최되지 않았다고 국무조정실은 밝혔다. 한편 참여정부 들어 총리 산하에 신설된 위원회는 주한미군대책위, 일자리만들기위, 한·일수교회담문서공개대책위 등 21개에 이른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언론인 장기봉씨 문집출판 봉정식

    신아일보기념사업회(회장 임승준)는 오는 6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신아일보 사사 및 원로 언론인 장기봉씨의 문집 출판과 봉정식을 갖는다. 장씨는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와 건국 과정때 유엔총회 한국대표를 지냈다. 또한 광복 직후 언론계에 투신, 대동신문 평화신문 연합신문 정치부장, 서울신문 사장, 코리아타임즈 부사장 겸 편집국장, 동화통신 전무 등을 역임했다. 신아일보를 창간해 16년 동안 발행해오다 1980년 언론통폐합 조치로 종간의 비운을 맞기도 했다.
  • 이상설기념사업회 이재정 회장

    이재정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린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제5차 정기총회에서 제2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 [베트남전 종전 30주년] 끝나지 않은 40년전 악몽…반전운동·종교 귀의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흘렀지만 전쟁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한국은 32만여명을 파병, 전사 5099명, 부상 1만 1232명이라는 희생을 안았다. 한국군에게 피해를 당한 베트남 사람들도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두 나라는 1992년 수교한 뒤 서로의 상처를 보살펴 주며 과거의 악연을 씻고 있는 중이다. 베트남전 종전 30주년을 맞아 전쟁 희생자들의 고통 속에서도 돈독해지고 있는 양국 관계를 살펴봤다. ■ 참전 생존자들의 고통 “1년에 몇번씩은 퀴논의 그 지긋지긋한 전략촌을 찾아갑니다. 손에는 M1 소총을 들고 있죠. 그리고는 저의 오발로 밀림에서 죽은 30대 여인의 치켜뜬 두 눈과 목에서 분수처럼 피를 쏟아내던 정 일병이 겹쳐집니다. 소리치며 깨어나면 가슴이 콱 막혀 숨을 못 쉬겠어요.40년이나 지났으면 잊혀질 법도 하련만….” 지난 28일 오후 서울 명동의 커피숍. 떨리는 목소리로 40년 묵은 악몽을 얘기하던 박정익(가명·59·목사)씨의 눈가가 젖어든다.1965년 12월3일. 이 날은 박씨의 가슴에 핏빛 화인(火印)으로 남아 있다. ●밀림 헤매는 ‘김상사’ 박씨에게 베트남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1946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박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거들다 65년 10월 맹호부대 기갑연대 3중대 소속으로 베트남 중부 캄란 땅을 밟았다. 전쟁보다 가난이 더 무섭던 시절.1년만 버티면 집 두 채를 산다는 말에 자원했다. 하지만 전장에 나서기엔 박씨는 너무나 여렸다. 실전 투입 한달도 안돼 퀴논 지역 작전에서 동료를 잃었다.“살아서 소 몰고 고향에 같이 가자.”고 약속했던 친구였다.“그때는 눈이 뒤집혀서 움직이는 것을 보면 무조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저 자신이 점점 ‘짐승’이 돼 갔지요.” 이듬해 11월 무사히 귀환해 수원에서 큰 포목점을 열었지만 전쟁의 악몽은 베트남 해변가의 안개처럼 머릿속을 짓눌렀다. 그를 ‘구원’한 건 신앙의 힘이었다. 뒤늦게 신학대학에 진학해 개척 교회를 열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도 베트남의 상처를 말하지 못했다.“퀴논에서 목회를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짙은 그림자 남긴 베트남의 악몽 강인용(가명·부산)씨는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이 자기와 가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이다. 베트남에서 귀환해 가정을 꾸렸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가지 못했다. 스트레스와 불안에 가족들을 괴롭혔고 결국 아들과 부인이 차례로 목숨을 끊었다. 현재 강씨는 세상과 연락을 끊은 채 살고 있다. ●속죄의 길로 택한 반전 운동 베트남의 기억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다른 쪽으로 바꾼 경우도 많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 김용삼(55)씨는 ‘추악한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왜곡된 현대사 바로잡기에 뛰어들었다. 해병대 5중대 소속으로 68년 7월 전쟁터에 뛰어든 그는 이듬해 4월 최전방이던 호이안 지역 전투에서 오른손에 총알 관통상을 입고 제대했다. 우연찮게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돌보게 됐고 이를 계기로 한국 근현대사는 물론, 베트남 전쟁의 본질 규명에 나섰다. 경남 마산의 시민사회단체 열린사회희망연대 대표 김영만(59)씨는 해병대 포병 3대대 11중대 소속으로 참전했다.67년 2월14일 ‘짜빈동 전투’에서 코에 총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200명의 해병대는 짜빈동 전투에서 월맹군 3000여명을 격퇴했다. 해병 전투사는 이를 ‘베트남전 최고의 해병 전투’로 기록한다. 김씨 역시 ‘학살’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짜빈동 전투 이틀 전 30대 남자 포로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았다. 당시 포로 즉결 심판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죽은 포로의 어머니가 찾아와 ‘아들을 찾아달라.’고 울며 애원했다.“고향에 계신 친할머니 같았어요.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베트남에 오기 전의 정상적인 청년으로 돌아온 거죠.” 김씨는 화랑무공훈장도 보훈 혜택도 마다하고 제대한 뒤 모든 것을 잊고 ‘희망의 땅’ 미국으로의 이민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민 준비를 위해 호텔 견습생으로 들어갔다가 척추를 다쳤다.30대의 대부분을 하반신 불구로 보냈고 부인은 행상에 나섰다. 2003년 3월 그는 배상현씨 등 열린사회희망연대 회원들을 전쟁을 막기 위한 ‘인간방패’로 이라크에 파견했다. 김씨는 “이라크 파병은 우리 민족이 베트남전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잘못된 결정”이라면서 “전쟁을 없애는 것이 베트남에서의 죄갚음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고엽제후유증 8만명 고통 PTSD는 치료도 못받아 “포탄 날아온다. 모두 피하라.” 2003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 LA의 USC 부속병원. 낯선 한국말 고함이 병동의 새벽 정적을 깼다.“여보, 제발 정신 좀 차려봐요.”눈을 뒤집은 채 병상에서 소리치고 있는 목사 김모(58)씨의 손을 잡고 부인 김모(56)씨가 눈물로 애원했다. “여기가 어디야. 또 월남 아니야.”김씨는 결국 꽁꽁 묶여 정신병동으로 갔다. 원인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백마부대 소속으로 1968년 9월부터 15개월을 베트남에서 보냈던 그는 현재 중풍과 PTSD 증세로 대소변도 못 가눌 정도가 됐다.PTSD는 전쟁 등 극단적인 사건에 노출된 뒤 나타나는 불안 장애. 헛것이 보이거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등 충격을 현실처럼 느끼기도 하고 한없이 차가워지기도 한다. 미국은 베트남전에 의한 PTSD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PTSD로 150만여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만여명이 자살을 택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파월 장병들이 PTSD에 시달리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고엽제 환자 280명 중 60%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그러나 보상은커녕 치료마저 요원하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병상 일지에 관련 증세를 보였다는 기록이 있어야 전투와 연관된 상해로 인정받기 때문에 PTSD 전상자는 공식적으로 없다.”면서 “미국처럼 PTSD 환자를 위한 특별한 조치가 없는 한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아버지는 PTSD로 고통받았고, 그 고통이 유영철에게 정신적 외상으로 전이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엽제의 고통도 끝나지 않았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고엽제 후유증 환자와 후유의증 환자는 8만여명. 그러나 판정 조건이 너무 엄격하다. 진단받은 사람 가운데 17.9%만이 후유증으로 판정받고, 이중 58.3%만이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는다. 고엽제는 참전자 2세의 생명도 위협하고 있다.2000년 182명의 부산·경남지역 고엽제 후유증 환자 2세 연구에 의하면 선천성 기형이 15건, 전신 허약이 12건이나 나타났다.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건강 장애를 보였다. 고엽제 피해로 미국뿐 아니라 호주와 뉴질랜드도 2억 4000만달러를 보상비로 챙겼다. 그러나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32만여명을 보낸 한국은 한 푼도 못 받았다. 이두걸 이효용기자 douzirl@seoul.co.kr ■ 당시 주월 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예비역중장 “주한美軍 차출 막으려 파병” “주한미군을 자꾸 나가라고 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패망 직전의 월남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주위로부터 많이 듣고 있어요.” 주월 한국군사령관으로 5년 가까이 파병부대를 지휘한 채명신(80) 예비역 육군 중장은 베트남전 종전 30주년과 관련해 이 전쟁이 주는 교훈이 뭐냐고 묻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반미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사회 일각의 풍조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요즘 그는 베트남참전동지회와 6·25 유공자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강의차 지방출장도 자주 다니고 있으며, 옛 전우들도 자주 만난다고 했다. “올해가 월남전 종전 30주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투부대 파병 40주년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답게 그는 종전보다는 전투부대 파병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듯 했다. 월남 파병을 ‘용병(傭兵)’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자 파병의 불가피성을 들었다. ●朴대통령 “쉽지 않은 전쟁” 고민 “당시 파병은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돼 있었습니다. 미국이 월남에 지상군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혔을 때 주한미군을 빼는 것은 시간문제였지요. 미국 본토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제한적이었거든요.” 당시 우리보다 GNP가 많고 군사력도 월등한 북한이 오판할 가능성이 높았던 만큼 파병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 경제발전과 5·16 이후 불편했던 미국과의 관계 등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파병 직전 박정희 대통령이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이던 자신을 불러 전투병 파병을 논의했었다는 얘기도 털어왔다. 육본 작전참모부장은 전투수행에 관한 한 군의 최고 전문가다. 당시 파병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았던 만큼 박 대통령도 적잖은 고민을 한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박 대통령에게 월남에 파병되면 게릴라전을 수행해야 하는데, 뚜렷한 목표의식과 인간적인 존경을 받는 카리스마의 리더십, 은신과 보급이 가능한 지리적 환경 등을 호찌민부대가 갖추고 있어 싸움은 쉽지 않겠지만 미국을 붙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민간인 무차별 총질 결단코 없었다” 최근 월남전과 관련해 이따금씩 보도되고 있는 베트남 양민학살 문제에 대해서는 참전 의미를 훼손하려는 의도적인 비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주민으로 가장한 베트콩들이 많은 마을에서 수색작전을 하는 과정에 수류탄을 던지고 달아나는 일부 주민들과 교전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아무런 혐의도 없는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총질을 한 적은 결단코 없다고 그는 단언했다.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게 당시 사령부의 지휘방침이었다고도 했다. 실제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의 전과(戰果)를 거론했다. 당시 한국군은 사살자의 절반 가량에 해당하는 무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베트남에 주둔하는 8년간 4만명 이상을 사살했는데 총이나 수류탄도 대략 2만정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베트콩들은 동료가 쓰러지면 시체보다 총을 먼저 챙길 정도로 무기를 생명처럼 여겼는데 이 정도로 많은 무기를 노획한 것은 한국군이 얼마나 알뜰하게 베트콩만 골라서 공격했는지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다. 미군과의 작전지휘권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파병 직전 박 대통령도 현지에서 미군의 지휘를 받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작전 지휘권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고집, 결국 그의 뜻대로 됐다. “미군은 당시 한국군 병력이 2만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미군의 통제를 받으라고 강요했지만, 애초에 미국의 (월남전) 개입이 잘못됐고, 잘못된 군사전략에 우리가 휘말려서는 안된다는 게 내 신념이었습니다.” ●용병 논란 우려 독자 작전권 고집 한국군이 미군의 지휘를 받게 되면 ‘용병 논란’이 생길 게 뻔하고, 미군도 전쟁을 청부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작전권을 가질 때만 이 전쟁의 성격 문제가 해결된다는 논리로 설득했더니, 의외로 미군들도 수긍을 하더라는 것이다. 베트남전이 결국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그는 경제개발을 첫 손에 꼽았다. 파병 이후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점차 인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세계금융기구에서 경제개발계획에 필요했던 차관을 선뜻 내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또 현대건설 등 월남전 특수에 힘 입은 것도 분명한 사실 아니냐고도 했다. 그는 ‘고엽제’ 등 전쟁의 부작용의 대해서도 적잖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실 고엽제 후유증이 그렇게 심한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고엽제 부작용 이렇게 심할줄을” 문민정부 때부터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를 후유증으로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해 왔다. 현재 1만 2,000명이 후유증 판정을 받았으며,3만명은 의증 판정을 받은 상태다. 참전유공자회 책임자를 맡은 만큼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철군한 이후 베트남을 방문하지 않다가 수년전 관광차 하노이만 잠깐 한차례 들렀다고 한다. 또 월남전과 관련해 제작된 각종 영화 등도 관심있게 봤다. 하지만 상당수 작품의 경우 허구가 지나쳐 고개를 돌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요즘 베트남전과 한국군 파병 등에 대해 회고록을 집필중이다. 잘 하면 올 연말쯤이면 책이 나올지도 모른다며 그는 나중에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는 현지 사령관을 마친 뒤 귀국, 군사령관을 마치고 군문을 떠났으며, 이후 스웨덴과 그리스, 브라질 등의 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기업 1000여곳 진출… 한류열풍 한국사람으로서 지금 베트남에 간다면 자신감을 만끽할 수 있다. 이제 한창 ‘성장’의 맛을 들인 이 후발 개도국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경제적·문화적으로 선망의 대상이다. 불과 30년전 총부리를 겨눈 적(敵)이었다는 역사는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2005년 베트남의 정서는 친(親)한국 일변도다. 하노이 도심 곳곳에서는 ‘SAMSUNG’과 ‘LG’와 같은 한국 기업의 간판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마티즈, 매그너스 등의 승용차는 30년전 탱크가 밟고 다녔을 법한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한다. 한국 제품이란 사실이 부각돼야 시장 점유율이 올라갈 만큼 베트남에서 한국의 경제적 이미지는 ‘선진국급’이다. 한국의 베트남 투자는 가속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까지 총투자액이 40억달러를 넘었고 최근 3년간 투자금액은 타이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KOTRA 하노이 무역관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농업을 뺀 베트남 전체 취업 인구의 3%(35만명)를 고용하고, 베트남 수출액의 10% 이상을 기여하고 있다. 베트남에 ‘진주’한 한국 기업은 1000개는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섬유·의류·신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출발한 우리 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90년대 중반부터 철강·통신·사회간접시설을 향해 정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양국간 교류 확대가 ‘돈벌이’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1997년 드라마 ‘의가형제’로 시작된 한류 열풍은 이제 완전한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베트남의 주요 TV채널에선 저녁 황금시간대에 ‘파리의 연인’과 ‘리멤버’ 등 한국 드라마끼리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뉴스도 경제뿐 아니라 스포츠·문화·사회현상과 같은 시시콜콜한 영역까지 보도돼 서울과의 시차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다. 한국 유학이나 한국 기업 취업을 위한 ‘한국어 배우기’ 붐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해외에선 드물게 한국어 인증시험이 치러지는 곳이 베트남이다. 응시생이 월 200∼300명에 이른다.TV에서 한국어 강좌가 방영되고, 호찌민과 하노이의 주요 7개 대학에 한국어 학과가 개설돼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폭탄소리로 고려강산에 봄을…”

    “내년에 봄빛이 오거든 고려 강산에도 다녀가오.4월29일 한발의 폭탄소리로 맹세하세.”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虹口) 공원 의거 이틀 전 작성한 육필 거사가(擧事歌·오른쪽 사진)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윤 의사가 거사 사흘 전인 1932년 4월26일 수류탄을 들고 태극기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진 것과 비교하면 거사가는 햇빛을 보지 못한 셈이다.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는 28일 윤 의사가 1932년 4월27일 상하이에서 작성한 친필 거사가 사본을 공개했다. 윤 의사는 거사 이틀 전 일본군의 ‘천장절(天長節·일왕 생일)’ 겸 전승 축하 기념식 장소인 훙커우 공원을 답사차 들른 뒤 숙소로 돌아와 자신의 수첩에 이 글을 남겼다. 윤 의사의 조카인 윤주씨는 “원본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지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면서 “거사를 앞둔 스물다섯 청년의 감회가 잘 나타난 시”라고 전했다. 윤 의사는 거사가에서 조국의 독립을 봄빛(春色)에 빗대 ‘고려강산’에 ‘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담히 표현했다. 다음은 거사가 전문. 妻妻(처처)한 芳草(방초)여/明年(명년)에 春色(춘색)이 이르거던/王孫(왕손)으로 더불어 같이 오게/靑靑(청청)한 芳草여/明年에 春色이 이르거던/ 高麗江山(고려강산)에도 다녀가오/ 多情(다정)한 芳草여/今年(금년) 四月二十九日(4월29일)에/放砲一聲(방포일성)으로 盟誓(맹서)하세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親日규명위원장 강만길씨

    親日규명위원장 강만길씨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에 강만길 전 상지대 총장을 임명했다. 강 위원장은 광복 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도 맡고 있다. 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에는 노경채 수원대 사학과 교수, 비상임 위원에는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부교수와 성대경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지도위원을 임명했다. 국회 선출을 거친 비상임위원에는 정창렬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 김정기 서원대 교수, 정장현 법무법인 바른법률 변호사,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를 임명했다. 또 대법원장 지명을 거친 박연철 법무법인 정평 대표, 김덕현 법무법인 호민 대표, 최병조 서울대 법대 교수를 비상임위원으로 임명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고성&아산, 충무공 구령맞춰 야야호호

    고성&아산, 충무공 구령맞춰 야야호호

    변함없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존경받는 위인이다. 온갖 시련을 겪고 풍전등화의 조국을 구한 영웅으로, 세계 최초의 철갑선 거북선을 고안한 발명가로, 어린이들의 영원한 우상이자 어른들도 전략가로서 공의 리더십을 본받고자 한다. 독도와 역사왜곡 등 일본의 도발로 민족의 감정이 상한 요즘, 공의 나라사랑에 새삼스럽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28일은 충무공 탄신 460주년 기념일. 충남 아산과 경남 고성의 당항포 등 전국에서는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했다. 어린이에겐 역사체험과 한민족 자긍심을 심어주기에도 좋다. 왜적을 수장시킨 공의 발자취를 따라 아산과 당항포로 떠나보자. 고성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아산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고성 고성읍에서 14번 국도를 따라 10여분 가면 나오는 곳이 배둔. 여기서 오른쪽으로 4㎞쯤 가면 당항포가 나온다. 현지 노인들은 당항포보다 ‘속싯개’로 더 많이 부른다. 꼬불꼬불한 들길과 야트막한 산을 넘어 언뜻언뜻 파란 바다가 길게 보인다. 국민관광지란 이정표가 잘 돼 있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마산에서 같은 국도로 오면 30여분 걸린다. 햇살에 힘이 느껴질 만큼 봄볕이 짙다. 아지랑이처럼 흐릿한, 강인듯 싶은 좁고 긴 S자형 해안선이 따라온다. 차창을 열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청량감이 든다. 바다와 거의 같은 높이의 도로여서 찰랑거리는 물살소리도 들린다. 건너편의 거류산도 녹음이 벌써 짙어진다. 겨울철이면 ‘국민마라토너’ 이봉주가 내려와 훈련하는 곳도 보인다. 당항포 드라이브 코스가 절경이다. 4월 중순 어느날, 마침 고성 은혜어린이집 어린이 40여명이 실물 크기의 거북선에서 현장체험 학습 중이었다. 인솔 교사 황실씨가 “이게 뭐예요?”라고 묻자 어린이들은 “거북선요.”라고 일제히 답한다.“누가 만들었죠?”,“이신순장군요.” 어린이들이 거북선 안으로 들어가 노를 젓는가 하면 함포를 발사하기도 했다.“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왜 만들었죠?”라고 묻자 “나쁜 사람들 혼내주려고요, 일본을 무찌르려고요.”라고 병아리처럼 입을 모았다.“심심해서요”라는 엉뚱한 답도 나왔다. 충무공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숭충사와 함께 전승기념탑도 있다. 충무공 이순신이 이곳에서 왜적을 2차례 격파,57척을 수장시킨 곳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엔 26척 가운데 25척을 격파했다. 왜적들이 상륙해 민간인을 해칠 것을 우려해 1척을 남겨두고 철수하는 척했다. 다음날 왜적 100여명을 싣고 철수하는 마지막 왜선마저 수장시켰다.2년 뒤인 1594년에도 도망치던 왜선 31척을 격파했다. 충무공이 유일하게 2차례 출전, 크게 이긴 대첩지이다. 당항포 해전의 승리에는 흥미로운 설화가 전한다.‘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전하는 기생 월이의 설화다. 대대적인 침공을 앞두고 일본은 밀정을 급파, 조선의 지도를 그려 오게 했다. 이를 눈치챈 무기정의 기생 월이가 밀정을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하게 한 다음 당항만이 바다로 연결되는 것처럼 지도를 조작했다는 것. 실제로 진해만쪽에서 보면 바다로 연결될 것처럼 길게 이어졌다. 이후 왜군을 속였다 해서 당항포를 ‘속싯개’로 부른다. 관과 민이 혼연일체가 된 셈이다. 해전관에는 이같은 설화와 해전 당시의 전략 등을 영상을 소개하고 있다. 또 지구의 역사와 생명의 진화, 조류 및 파충류 등의 자료 1700여점을 전시한 자연사관도 어린이들의 학습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가장 특이한 것은 국내 유일의 자연석 조각공원인 수석 전시관. 세계에서 수집한 자연석이 모두 630여점이 있지만 현재 28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이런 만큼 주민들이 먼저 기념사업회를 결성하는 등 당항포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긍지가 생길 일이 하나 더 있다. 내년 4월14일부터 6월4일까지 고성공룡엑스포가 열리기 때문이다. 당항포는 상족암만큼은 아니지만 공룡발자국 화석이 심심찮게 발견된 곳이다. 인구 5만∼6만의 조그만한 군단위에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여 자부심이 더욱 높다. 당항포의 입장료 어른 40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료 별도. 고성군관광지관리사업소(055-670-2801). 이밖에도 와룡산 향로봉 중턱의 운흥사는 충무공이 승병을 지휘하던 사명대사와 수륙 양동작전 논의차 세번이나 방문하기도 했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055)835-8656. 경남 삼천포항에서 77번 지방도를 따라 10여분 들어가다 오른쪽으로 빠지면 상족암이다. 현지에선 ‘쌍발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당항포가 비교적 최근의 역사현장이라면 상족암은 ‘하늘이 열리’던 까마득한 선사 이전의 유적지다. 꼬불꼬불한 도로를 내려가면 바닷가 제전마을에 닿는다. 바닷가 자갈밭에 파도가 살랑거린다. 옆쪽에는 소나무 분재를 이고 있는 바위층이다. 바위층을 자세히 보니 모두 가로로 일정한 층을 이루고 있었다. 시대별로 형성된 흔적이다. 서재에 책이 켜켜이 쌓인 듯 지구의 역사를 기록한 지층이다. 공달용 공룡박물관 학예사는 “지구의 나이가 46억년인데 여기는 1억년 전의 지구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 ‘자연사박물관’”이라고 설명했다. 나무를 만든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저게, 공룡 발자국 화석”이라며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돌덩이가 둥글면서 움푹 꺼졌다. 조금 더 가니 마치 두 발로 걸은 듯이 발자국 화석이 길게 늘어섰다. 서울에서 새벽에 나섰다는 김상국(강남 청탑학원장)씨가 같이 온 자녀에게 “이게 공룡 발자국이야.”라며 설명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자신의 발과 맞춰보다 공룡들의 이름을 들먹이곤 했다. 상족암 일대에는 이렇게 산재한 공룡 발자국 화석이 2100여개가 있다. 대표적인 공룡은 이구아노돈과 같은 조각류(발톱이 삼지창처럼 갈라진 공룡)와 브라키오사우루스와 같이 네 발로 걷는 용각류(목이 긴 초식공룡)다.2억∼6500만년 전에 지구를 지배했던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 공룡들이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공룡박물관에 들어갔다. 지붕 모양이 특이해서 물어보니 가장 많이 나타났던 공룡 이구아노돈의 몸체를 본떴단다. 진품 공룡 화석 4점을 비롯해 공룡화석 복제품 41점이 있다. 또 삼엽충, 물고기, 상어이빨 등 일반화석도 55종이 전시돼 있다. 공 학예사는 “지금부터 1억년 전인 공룡시대에는 지금은 바다와 산인 이곳이 거대한 호수였으며 공룡의 수도”라고 설명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니 상족암의 진면목은 공룡발자국 화석도, 기암절벽도 아닌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어린이 1500원. 고성공룡박물관(www.goseong.go.kr·055-670-2825). 공룡화석지에서 40여분이면 남해안 천혜의 조망지 문수암이다. 작은 사찰이지만 1400여년 전 의상대사가 세운 고찰이다. 절집은 볼품없다. 하지만 청담 대선사가 수도했던 도량으로 청담스님 사리탑이 안치돼 있다. 꼬불꼬불 산길을 오른 진짜 이유는 조망. 고성 토박이 이경균(42)씨는 “문수암은 남해안 최고의 조망지”라고 추켜세웠다. 왼쪽으론 통영까지 이어지는 고성반도의 산들이 첩첩이 겹쳤다가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오른쪽은 사량도·연화도·욕지도 등 큰 섬 사이에 올망졸망한 섬들, 징검다리같다. 쪽빛 바다가 호수인양 잠잠하다. 오가는 어선들도 한가하다. 문수암(055-672-0877). 이밖에도 울창한 숲과 계곡,10여개의 산봉우리가 연이은 연화산과 옥천사(055-670-2551), 소가야 왕릉인 송학동 고분군(055-670-2221) 등이 있다. ■ 여기도 가보세요 ●부안 ‘불멸의 이순신’ 세트 전북 부안 변산반도에 있는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은 최근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전라좌수영은 궁항, 왜군진지는 성천, 명군진지는 죽막, 조선군 진지는 위도 논금해수욕장, 선박들은 격포항에 각각 자리해 있다. 바다에는 판옥선과 거북선, 왜선, 명나라함 등 6척의 배를 볼 수 있다. 부안군 홈페이지(www.buan.go.kr)에서 드라마 촬영지 안내지도를 프린트해서 갖고 다니면 야외촬영장을 놓치지 않고 둘러볼 수 있다. 부안군청 문화관광과(063-580-4449). ●통영 한산도 ‘한산섬 달밝은 밤에/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깊은 시름 하는 차에/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경남 통영 한산도는 충무공의 고뇌를 느낄 수 있는 곳. 충무공 유적지(사적 113호)는 제승당 일원의 15만 9000평에 조성된 건물, 비석, 문화재, 광장, 조경물이 있다. 충렬사, 제승당, 수루, 한산정을 비롯하여 유허비 2기, 한글 유허비 1기, 통제사 송덕비 7기, 비각 5동과 5개문 등이 있다. 통영시 문화관광과(055-645-0101). ●남해 ‘노량해전승첩제’ 경남 남해군에서는 매년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 승첩을 기원하고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충무공 노량해전승첩제를 연다.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남해대교 등 남해의 경치를 감상하며 충무공의 얼을 기릴 수 있다. 남해대교를 건너 노량마을로 내려오면 충무공 이순신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충렬사와 바로 앞 바다에 떠 있는 실물 크기의 거북선이 있다. 남해 충렬사는 이순신 장군이 3개월간 묻혔던 자리에 아직도 가묘가 남아 있다. 남해군청 문화관광과(055-860-3228). ■ 아산 ●거북선 타고 왜군 격파 현장으로 ‘둥둥둥∼’ 힘찬 북소리가 울리자 충남 아산시 현충사 앞을 흐르는 곡교천에 400여년 전 이순신 장군이 왜군 적선 70여척을 격파했던 그 거북선이 힘찬 물살을 가르며 출현했다. 크기는 길이 4.5m, 너비 2m, 높이 1.8m로 실물의 7분의1로 축소됐지만 당시와 같은 위용을 뿜어냈다. 거북등 위로 뾰족하게 솟아난 창이며, 위용 넘치는 용머리는 주변 분위기를 압도했다. 28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제 44회 성웅 이순신 축제’를 위해 모두 5척이 건조됐으며, 거북선에는 등에 만들어진 출입구를 통해 6명이 승선할 수 있다. 28일부터 충남중소기업센터 앞 곡교천에서 승선 체험이 가능하며, 곡교천 일대를 한 바퀴 도는 승선 체험료는 5000원이다. 축소 모형이어서 다소 비좁지만 직접 노를 저어 나아가는 승선 체험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강 주변에는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병, 왜군 장수 복장을 한 사람들이 퍼포먼스를 벌여 왜군을 무찔렀던 전란 당시로 돌아간 듯 실감나게 만든다. 오디션을 통해 선출돼 축제기간 중 이순신 장군의 역할을 맡은 김한백(26·순천향대 연극영화과 4년)씨는 “최근 독도 영유권 문제와 역사왜곡 등 시기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때 거북선에 승선하면 전란 당시 승전의 쾌감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다.”고 추천했다. 축제기간 저녁 7시부터 곡교천변 무대에서는 순천향대 학생들이 준비한 ‘한산섬 달밝은 밤에’라는 마당극이 열려 당시 군영 내 훈련과 순찰내용, 임진왜란 전투장면, 모함을 당하고 압송되는 광경 등이 연출된다. 인근에는 군영이 조성돼 당시 군영막사 내부를 볼 수 있으며, 거북선 조립체험과 탁본뜨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곡교천변에 조성된 수천평의 유채꽃밭이 조성돼 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면 봄기운도 흠뻑 느낄 수 있다. ●충무공의 발자취를 가슴에 담고 곡교천에서 10여분쯤 걸어 올라가면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현충사를 만나게 된다. 개나리와 벚꽃 등 봄꽃이 활짝 피어 평일에도 가족단위 관람객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현충사는 충무공이 1598년 노량해전에서 순국한지 108년이 지난 숙종 32년 사당을 세우고 현충사라는 이름을 내리면서 만들어졌다. 현충사 본전에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유물관에는 일생기록인 십경도와 국보 76호인 난중일기, 보물 326호 장검 등이 전시돼 있으며, 활터와 정려등, 경내등을 볼 수 있다. 유치원생인 아들과 현충사를 찾은 박상원(35·서울 영등포구)씨는 “충무공의 당시 활약상을 보고 나니 일본의 망언으로 쌓인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람요금은 500원. 현충사 관리소(041-539-4600).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반드시 들러봐야 할 곳은 어라산에 있는 충무공 묘소(사적 112호). 현충사에서 서북쪽으로 9㎞ 거리에 있으며, 아산온천 방향으로 승용차로 10여분을 달리면 음봉면 삼거리에 위치해 있다. ■ 여기도 가보세요 아산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의 휴양을 겸한 나들이에도 손색이 없다. 세계 꽃식물원과 실내외 수영장을 갖춘 테마온천 아산 스파비스, 함상카페와 삽교호 놀이동산 등 놀거리와 즐길거리가 풍부하다. 지난해 문을 연 도고면 봉농리의 세계 꽃식물원(544-0746)은 사시사철 사람들에게 환한 웃음을 선사한다. 관람요금은 어른 6000원, 초등학생 4000원. 아산은 또 온양온천과 도고온천, 아산온천 등 온천 휴양도시로 유명하다. 이 가운데 최근 개발된 온천단지 아산온천 단지 내 아산 스파비스(539-2000)는 수영장 등 실내외 온천풀, 인삼탕 등 20여종의 이벤트 탕이 있다. 인근의 삽교천에는 또다른 재미가 있다. 밤이면 환하게 불을 밝히는 서해대교와 아산방조제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에 최근 문을 연 함상공원(363-6960)과 놀이공원(363-4589) 등은 한껏 재미를 북돋워준다. 함상공원에는 동양최대 군함테마파크로 상륙함과 구축함, 입체영상관이 있다. 어른 5000원, 초등생 4000원이다. ●여행정보 가는 길은 경부고속도로 천안IC에서 나와 1번 국도와 21번 국도를 번갈아 타면 시내로 들어갈 수 있으며,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서평택IC에서 아산호를 건너 39번 국도를 타면 된다. 버스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아산방면 버스가 있다. 아산시청 540-2221. 여행상품으로는 테마21(www.theme21.net)이 이순신 축제가 열리는 아산 당일 여행상품을 내놓았다.27일부터 5월1일까지 서울 덕수궁(시청 전철역 2번출구), 양재역 7번출구(서초구민회관앞)에서 매일 출발하며 도고세계꽃식물원과 아산 현충사의 행사를 관람하고, 아산 스파비스에서 온천욕을 한 후 서울로 돌아온다. 참가비 1인당 3만 9000원.549-9889.
  • [신연숙칼럼] ‘망언’의 자유 제한

    [신연숙칼럼] ‘망언’의 자유 제한

    한승조, 지만원 등의 일제관련 망언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와 함께 반박 글을 쏟아냈다. 그러나 “백범 김구는 빈라덴, 일본경찰을 이유없이 죽인 살인범” “일본 대사관에서 집회를 하는 할머니 가운데 80%는 가짜” “전쟁 중에 여성을 성적 위안물로 이용하는 것은 일본만이 아니며, 그것도 일시적이고 예외적 현상이었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일일이 반박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짜증스러운 일이다. 정말 이런 망언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수는 없을까.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방안을 내놓았다.‘일제찬양 행위자 처벌 특별법’을 제정하여 망언을 처벌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한나라당 원희룡의원도 ‘일제침략행위 왜곡 및 옹호방지법안’제정 구상을 밝혔다. 친일진상규명법에 따라 진상규명위가 친일범죄, 또는 친일 반민족 행위로 규정한 행위를 옹호·찬양하는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별도 법률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은 아직까지 별다른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있다. 반응을 보인 곳은 오히려 반대의사를 표명한 쪽이다. 표현의 자유 침해가 우려되고 폐기돼야 할 국가보안법의 찬양죄 조항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런 법을 제정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전쟁범죄 청산에 철저했다고 알려져 있는 프랑스조차 게소법(Gayssot Law)을 제정해 전범 부인행위를 처벌하고 있는 것을 보면, 친일청산이 되지 못한 우리의 경우 그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망언이 되풀이된다면, 미래세대 역사의 눈은 흐려지고 말지 않겠는가. 프랑스의 게소법은 뉘른베르크 국제 전범재판이 정의한 반인도범죄를 부인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다. 독일과 동맹국이 자행한 잔혹행위와 잔혹행위 혐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공개적 발언, 출판, 방송, 인터넷 유포, 판매자까지 처벌 대상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던 극우 정치인 르펜은 1987년 “가스실은 2차대전 역사에서 극히 사소한 부분”이라고 말했다가 120만프랑(20만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르펜은 10년후 독일에서 열린 한 출판기념회에서 ‘사소한’부분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고 “1000여 페이지의 2차대전에 관한 책에서 가스실은 15줄 정도 된다는 뜻”이라고 망언을 되풀이했다가 투옥과 함께 법원 판결문의 12개 신문 게재비용 20만프랑(5만달러)을 부담하라는 명령을 받기도 한다. 르펜은 이후 스스로 ‘망언’은 다시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밖에 수정주의 홀로코스트 사학자 포리송, 철학자 가로디, 국제법 교수 골니시 등 많은 사람들이 “유태인 학살은 거대한 정치적 사기” “독일군은 보호자”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진짜인가”등의 발언을 했다가 처벌되었다. 게소법은 언론의 자유와 인권침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대자들은 이 법을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소했지만 유엔인권위원회는 인권규약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스위스, 스페인 등도 게소법과 유사한 ‘홀로코스트 부인법’을 제정했다. 언론·표현의 자유는 기본권적 자유지만 무제한의 자유는 아니다. 우리 헌법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고,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했을 경우 피해자는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망언 제한법은 일제 피해자나 순국선열의 명예와 권리 구제를 현행법보다 좀더 확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프랑스처럼 국내에도 일제 식민지를 미화하는 ‘수정주의 사관’이 고개를 들고 있는 요즈음이다. 민족사관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는 이까지 생겼다. 식민 피해자들의 고통을 줄여주고 미래세대에 진실을 바로 알리기 위해 무엇을 할지를 깊이 생각할 때라고 본다.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 “4·19는 광복정신 계승한 민족독립혁명”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18일 4·19혁명 45주년을 맞아 고려대 국제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4·19는 광복 당시 혁명정신을 계승한 미완의 민족독립혁명”이라고 밝혔다. 진보적 사학자로 광복 60주년기념사업회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 교수는 ‘우리 현대사 위의 4·19’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해방 당시 좌·우익을 막론하고 친일파 청산과 대토지·대기업의 국유화를 목표로 했지만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등장으로 이루지 못했던 민족의 혁명과제를 4·19가 계승했다.”면서 “민족독립운동의 연장”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4·19로 무너진 이승만 정권에 대해 “친일파 청산은 상층부를 숙청하고 하층부를 재교육해 투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미 군정이나 이승만 정권 모두 이를 원치 않았다.”면서 “이 과제를 이루기 위해 4·19는 진정한 혁명이 돼야 했지만, 주도세력이 학생이었기 때문에 결국 혁명 주체가 되지 못하고 보수 야당인 장면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다수가 일제시대 관료 출신인 장면 정권 역시 친일 숙청이라는 과업을 이루지 못해 4·19는 ‘미완’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4·19 정신은 이후 평화통일운동으로 전환됐지만, 친일파와 군부, 미국이 이를 불안하게 여겨 5·16 쿠데타로 반전되고 말았다.”면서 “그러나 4·19는 나라를 되찾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겠다는 독립운동의 혁명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박정희 기념사업비 회수 법적대응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는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비 회수와 관련한 정부의 최종결정을 지켜본 뒤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 유양수 회장은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기념사업회관련 이해찬 총리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이 총리가 그간 사업의 진행사업과 관련, 사실관계를 전혀 모르고 발언한 듯하다.”고 밝혔다. 그는 ‘기념사업회가 500억원 모금을 약속했는데 100억원밖에 모금하지 못해 공사가 중단됐다.’는 총리의 답변과 관련,“기념사업회는 모금을 중단한 적이 없으며, 공사중단 역시 사실상 정부의 승인이 나오지 않아 시공업체가 돈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정치플러스] “李총리 ‘박정희기념관 답변’ 엉터리”

    한나라당은 14일 국회 교육·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이해찬 국무총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보조금 회수와 관련해 말한 데 대해 “사실관계가 틀린 엉터리 답변”이라면서 대변인실 명의로 자료를 내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기념사업회가 100억원밖에 모금을 못하고 나머지는 포기해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이 총리의 답변에는 “지난 2002년 행정자치부가 보낸 공문에는 ‘100억원 정도가 모금되면 국고보조금 100억원 집행을 승인하겠다.’고 밝혔지만 100억원 모금 이후에도 보조금 집행이 승인되지 않아 공사가 중단됐다.”고 맞받아쳤다. 또 “기념관은 상암동에 하도록 돼 있는 게 아닌데 기념사업회에서 상암동에 하도록 방침을 정하는 바람에 부지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답변에는 “기념관 건립위치는 2000년 7월19일 청와대가 결정하고 발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부지 선정도 안 됐다.”는 이 총리의 답변에는 “서울시가 기부채납 조건으로 상암동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했다.”고 역공했다.
  • ‘아름다운 철도원’ 臨政대장정

    |상하이 연합|철로변에서 어린이를 구하려다 두 다리를 잃은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씨가 중국땅에서 ‘대한독립 대장정’에 나선다. 김씨는 오는 13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86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뒤 11박12일 동안 임시정부의 이동경로를 따라 의족으로 1만 3000리를 순례한다고 사단법인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이 12일 밝혔다. 임정 수립 86주년 기념식을 주관하는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씨는 일제 강점기, 빼앗긴 주권을 찾기 위해 중국 땅에서 피와 땀을 흘렸던 임정의 역사를 더듬어보기 위해 ‘임정대장정’에 참가하게 됐다. 13일 오전 상하이에서 열리는 임정수립 86주년 기념식에는 상하이 현지교민과 유학생은 물론 ‘임정 대장정’에 나서는 순례단, 광복회원등이 대거 참가해 김구(金九)선생을 축으로 하는 임정의 역사적 숨결을 오늘에 되살리게 되며,‘만세대회’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준비돼 있다.
  • [씨줄날줄] 김일성 빨치산 투쟁/이용원 논설위원

    강만길 광복6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이 김일성 전주석의 빨치산 활동을 독립운동으로 인정한 발언을 두고 새삼 논란이 일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일성이 일제강점기에 동북3성(만주)일대에서 무장군을 이끌고 항일투쟁을 벌인 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 즉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의 40대이상 세대는 학창 시절에 김일성은 가짜다, 진짜 김일성 장군은 연로한 분으로 광복 전에 죽었다, 가짜는 마적질을 하던 자인데 소련이 북한에 괴뢰정부를 만들고자 김일성 이름을 붙여 내세웠다고 배웠다. 당시까지는 역대 정권이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국민을 옥죄던 때였고 사회 전반에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지금보다 널리 퍼져 있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일반 백성에게 ‘김일성’은 금기의 언어일 뿐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학계 일각에서 일제강점기 만주의 독립운동을 연구하면서 ‘김일성’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사회에 민주화가 급속히 진행된 1980년대 후반부터 연구성과가 하나씩 공개됐다. 그 결과 1990년대이후 출간된 근현대사·북한 관련 연구서는 대부분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일종의 ‘역사적 상식’이 된 것이다. 중국과 옛소련 공산당 자료에서 확인된 김일성의 모습은 대략 이러하다. 그는 스무살 무렵 항일운동에 뛰어들어 주로 동북항일연군에서 활약한다.1937년 보천보전투,39년 무산전투를 지휘해 명성을 얻는다. 이 무렵 일제의 보고서에는 ‘김일성 비단(匪團)’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소련 땅에서 종전을 맞은 김일성은 대일항쟁의 공을 인정받아 ‘적기훈장’을 받는다. 그의 활약상은 백범 김구도 일찍이 인정했다. 백범은 1942년 집필한 ‘백범일지’ 하권에서 “정세로 말하면 동북3성 방면에 우리 독립군이 벌써 자취를 감추었을 터이나, 신흥학교 시절이후 3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오히려 김일성 등 무장부대가 의연히 산악지대에 의거하여 엄존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김일성 집단이 항일 무장투쟁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를 인정한다고 해서 6·25 남침과 그후의 북한 테러활동까지 모두 용인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 게다가 강 위원장이 자신의 발언을 ‘사견’이라 밝혔으니 더이상의 논쟁은 이제 불필요할 듯하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김일성 빨치산도 독립운동” 강만길 발언 논란

    강만길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장이 11일 “김일성 전 주석의 항일 빨치산 활동도 독립운동으로 봐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강 위원장은 이날 임시정부 수립 86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두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일성 전 주석의 항일 빨치산 활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은 어디까지나 독립운동”이라며 “그의 항일 빨치산 활동도 독립운동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전 주석이 항일운동을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며 “독립운동은 독립운동 자체로 봐야 하고, 사회주의 등을 따지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강 위원장의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학계와 네티즌 사이에서는 “정부 산하 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는 비난과 “강 위원장의 발언은 이미 역사학계에서 상식이 된 내용”이라는 옹호론이 맞서며 논란을 빚고 있다. 네티즌 ‘지월’은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린 글을 통해 “(강 위원장의 논리대로라면) 6·25전쟁은 통일을 위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며 강 위원장을 비난했다. 반면 네티즌 ‘이정훈’은 “역사는 역사일 뿐”이라며 “이념의 잣대로 역사를 해석해선 안된다.”고 반박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강 위원장은 이날 저녁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을 독립운동으로 보는 것은 역사학계의 상식으로, 해방 전 독립운동은 좌익이든 우익이든 독립이 목표였다는 점에서 독립운동으로 봐야 한다.”면서 “좌익계열 독립유공자를 정부가 포상하는 상황에서 왜 이 발언이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다만 “이같은 견해는 역사학자로서의 사견으로, 기념사업추진위원장 자격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인혁당사건 희생자 30주기 추모제

    인혁당사건 희생자 30주기 추모제

    인혁당 재건위 사건 30주년을 맞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사건은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국가권력에 의한 조작사건이라고 인정했다. 인혁당대책위원회와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관련단체는 8일 서울 명동성당 문화관에서 ‘인혁당 희생자 30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문정현 신부는 “70줄에 들어선 희생자 유가족들이 ‘사법살인’인 인혁당 사건의 법적·제도적 해결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다면 얼마나 죄스러운 일이냐.”고 말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함세웅 이사장도 “피해자 명예회복과 민주주의를 향한 삶의 재조명, 가해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역사바로세우기의 기본”이라며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이날 청와대에 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도 비슷한 내용의 성명을 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1974년 당시 긴급조치 4호가 선포된 가운데 중앙정보부가 ‘북한의 지령을 받고 반란을 기도한’ 인혁당을 재건하려 했다고 발표한 사건이다. 도예종·서도원·하재완씨 등 8명은 대법원이 선고한 지 20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당시 국제법학자협회는 형이 집행된 1975년 4월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최근 국가정보원이 이 사건을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우선 조사대상 7건의 하나로 선정했다.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는 판단을 미루고 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쪽지통신]

    ●분당 자연박물관(www.jbnlife.com) 1일∼6월 30일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준비한 봄 이벤트 ‘90일간의 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마련했다. 봄이면 바다에서 볼 수 있는 물고기 이야기, 봄에 볼 수 있는 곤충과 생물, 봄꽃과 봄나물 알아보기 등 봄과 관련된 화석·곤충·어패류 등 각종 생물의 특징을 알아보는 시간이 마련된다. 매주 화∼일요일 오전 9시30분∼오후 6시 박물관 개관 시간에 맞춰 가면 담당자의 소개를 받을 수 있다.(031)714-5840. ●세계전람(www.educare.co.kr) 제12회 서울 국제 유아 교육전을 14일(목)∼17일(일) 오전 10시∼오후 6시 코엑스 3층 컨벤션홀에서 연다. 학습지·교육프로그램관, 학원·프랜차이즈관, 출판관, 문구·완구·게임관 등 총 9개의 관람관으로 구성된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11일까지 사전등록을 마치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관람료 일반 3000원, 어린이 2000원. ●초·중등 전문사이트 두산에듀클럽(www.educlub.com)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2005년도 1학기 중간고사 특강을 선보인다.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 주요 5개 과목 외에 기술·가정·도덕 등 예능과목도 포함해 12개 과목이 개설된다. 전체 강좌는 마무리 해설강의, 실전문제, 파이널 모의고사 등 총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www.sejongkorea.org) 세종대왕 탄신 608돌을 맞아 제30회 글짓기 대회를 연다. 초등·중등·고등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된다.29일(금)까지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산 1의 157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기획관리국으로 참가신청을 마쳐야 한다. 대회는 30일(토) 오후 2∼4시 청량리 홍릉 영휘원에서 열린다. 글짓기는 산문, 시조, 시 3개 부문이다.(02)969-8851∼3 ●수원 청소년인터넷 방송국(www.suwonyouth.tv) 청소년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서 수원청소년인터넷 방송국의 성격과 내용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명칭을 공모한다. 전국 중·고교생이면 참가할 수 있다.17일(일)까지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334의 1 수원청소년문화센터 미디어 홍보팀 앞으로 작품을 보내면 된다. 당선작은 6월 초에 발표한다. ●성북구(www.seongbuk.go.kr) 성북구 소재 중·고교생과 함께하는 ‘2005 성북유스페스티벌’을 연다. 그룹 댄스, 대중음악, 길거리 농구 3분야로 나누어 진행된다. 참가를 희망하는 단체는 27일(수) 성북구청 가정복지과로 신청하면 된다. 이 행사는 새달 7일(토) 오후 4∼6시 성신여대 정문앞 사거리∼하나로거리 입구에서 열린다.(02)920-3288 ●경기도교육청(www.ken.go.kr) 광명과 동두천, 여주, 화성, 파주, 광주, 연천, 포천, 가평, 양평, 안성, 시흥 등 12개 지역교육청이 7일까지 영재교육원을 설치, 운영한다. 이에 따라 기존에 영재교육원이 설치된 13개 지역교육청을 포함해 도내 25개 전 지역교육청에 영재교육원이 운영된다. 지역교육청 영재교육원은 초등학교 5∼6학년, 중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학년당 20여명씩 모두 2100여명을 교육한다. 또 경원대와 대진대도 부설영재교육원을 올해부터 운영, 아주대(2002년 개설)를 포함해 도내 3개 대학에서도 335명의 영재를 가르치게 된다. 이밖에 경기도과학영재연구원(72명)과 계원예술영재교육원(20명),55개 초·중·고교 영재학급(122개,2300여명) 등 도내에서 모두 4800여명의 학생이 영재교육을 받게 된다.
  • 장기미제 공안사건 잇단 무혐의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의 ‘기회입국설 사건’과 ‘국가정보원 도청의혹 사건’ 등 그동안 검찰의 장기미제로 남아 있던 공안 사건들이 잇따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구본민)는 2003년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를 모종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내로 초청했다는 ‘기획입국설’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박형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 이사장과 방송을 통해 송 교수를 민주인사로 미화, 찬양했다며 보수단체에 의해 고발된 정연주 KBS사장 등 6명을 무혐의 처리했다고 1일 밝혔다. 김수민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박 전 이사장 등이 송 교수의 노동당 입당사실 등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학계 등의 평가를 근거로 송 교수를 초청, 지원했던 것으로 조사돼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임정혁)는 이날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제기해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던 ‘국정원 도청 의혹 사건’과 관련, 신건 당시 국정원장 등을 무혐의 처분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휴대전화 감청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기술적 난이도나 막대한 비용 등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났다.”고 설명했다. 반면 의혹을 제기한 정 의원은 검찰이 법원에 청구한 ‘공판전 증인신문’에도 끝내 응하지 않아 과태료 50만원 처분을 받았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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