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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대가 몸바쳐 사랑했던 우리 땅 독도는 영원하리”

    “그대가 몸바쳐 사랑했던 우리 땅 독도는 영원하리”

    “동해 바다/ 맨 끝 제일 먼저 동이 트는/ 신비의 섬 독도는/ 우리의 땅/ 독도 푸르다 못해 눈물겨운/ 동해 바다 위에 독도를/ 그대는 진정 사랑했네/ (중략)/ 독도 최초 주민 최종덕/ 그대가 평생 몸바쳐/ 사랑했던 독도를/ 이제는 모두 하나되어/ 노래 부르네/ 대한의 아들/ 독도의 아들/ 우리의 아들/ 그대가 몸바쳐/ 써 내려간 독도 사랑은/ 천년만년 나라 사랑이라네/ 우리 땅 독도는/ 영원하리라/ 최종덕 그대는/ 영원하리라” 독도 최초의 주민 고 최종덕씨를 주제로 한 노래가 나왔다. ●윤상섭 작사·양상규 작곡… 오늘 발표 최종덕기념사업회(공동대표 박해선·박영희)는 17일 독도 서도 현지에서 기념사업회 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요 ‘영원한 독도인 최종덕’을 발표한다고 16일 밝혔다. 독도인 최종덕 노래는 경기 성남에서 라이브 가수로 활동 중인 윤상섭씨가 가사를 쓰고, 양상규씨가 곡을 붙였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앞으로 노래를 음반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19일까지 최종덕 생활현장 탐방 행사 한편 최종덕기념사업회는 16일부터 나흘간 울릉도와 독도에서 독도 최초 주민 최종덕 생활 현장탐방 행사를 갖는다. 행사에는 기념사업회 회원 60명과 최종덕기념사업회 본부가 있는 성남시 및 시의회 관계자 40여명 등이 참석했다. 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국정원 50주년… 이상연 전 안기부장 ‘정보기관 숙명’ 논하다

    국정원 50주년… 이상연 전 안기부장 ‘정보기관 숙명’ 논하다

    이상연 전 국가안전기획부장(국가정보원 전신)은 1987년 당시 안기부 제1차장을 맡아 KAL기 폭파 사건의 수사를 총지휘한 인물이다. 이 수사는 인권침해가 없었고 국제공조를 통해 완벽하게 이뤄진 수사로 평가받는다. 이 전 안기부장은 국정원 설립 50주년을 하루 앞둔 9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발전 역사 마디마디에 국정원의 숨결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면서 “정보기관만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 현안에 휘둘리지 않고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져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 전 안기부장과의 일문일답. →국정원의 지난 50년간의 공과(功過)를 평가한다면. -1948년 정부가 수립됐을 때도 북한에서는 이미 지하조직과 빨치산(파르티잔)이 준동하고 있었다. 6·25 전쟁 후에도 공산세력을 척결하는 것이 최대 과제였다. 1970년대 중반까지도 북한은 남한보다 우세했다. 공이라면 국가정보체계를 확립하고 정보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또 경제적으로 산업화, 글로벌화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대한민국 발전 역사에서 국정원 숨결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다. 반면 정보기관이라는 게 어느 나라든 무한적으로 충성심과 사명감을 강요한다. 그러다 보니 제도적인 장치가 매우 빈약했다. 정보기관 50년 역사에서 초기에 이런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국가적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절차상의 에러가 많았다. 공도 있으면 물론 과도 있지만 과만 과장해서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옛날 것을 오늘 기준으로 비판하면 아무리 설명해도 비판받는다. 그러나 미국 FBI 후버 전 국장이 말했듯이 우리는 자랑도, 불평도, 변명도 할 수 없는 특성이 있다. →KAL기 폭파 사건의 수사를 총지휘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KAL기 폭파 사건은 한마디로 현대 역사에서 가장 야만적인 사건이다. 지금도 북한이 테러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8년간 공작을 목적으로 테러범을 키운 사례는 김현희밖에 없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언론에 발표할 때까지 전 과정을 관여했다. 이 사건은 국제 공조 수사였고 완벽한 수사였다. 인권 문제로 지적받은 적도 없다. 김현희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그는 고도의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강압적으로 수사를 할 경우 자결할망정 얘기를 안 했을 것이다. 일주일 만에 범행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머리가 무척 좋은 사람이다. 여전히 조작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2002년 당시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방문했을 때 “KAL기 사건은 아랫사람들이 실수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진실은 하나다. 조작설은 의혹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악용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이 최근 베이징 비밀 접촉을 공개했는데, 이 사건은 어떻게 보나. -한마디로 상식 이하다. 회담에 나서는 성숙된 자세가 아니다. 이런 형태는 앞으로의 회담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무대응으로 대응하고 대꾸할 가치가 없는 사안이다. 북한내 대남라인의 군부와 여러 라인의 갈등이 엿보이기도 한다. →국정원이 지향해야 할 선진국형 국가정보기관이 되려면. -국정원은 고도로 전문화돼야 한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CIA는 특수부대 같은 능력을 갖추고, 특수부대는 CIA 같은 능력을 가졌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처럼 지금보다 더 전문화돼야 한다. 또 국정원은 사회의 화두로 뜨면 안 된다. 중요 현안에 대해 일일이 해명하기보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자세가 정보기관의 숙명이다. 신분 보장도 중요한 이슈다. 정보요원은 어느 정보건 어느 시대건 국가 미래를 위해서 희생과 애국심을 강요당하지만 무조건 강요하기만 하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정치 현안에 휘말리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양지회 회장을 지냈는데 국정원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출세나 공명심이 있는 사람들은 국정원 직원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소명의식과 무명의 헌신을 하겠다는 정의감이 필요하다. 튼튼한 안보와 국가 발전을 정보맨의 자긍심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국정원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 언론에 대해서는 추측기사 때문에 고통을 받는 곳이 정보기관이다. 철저하게 팩트에 기반한 팩트리딩을 해주기를 바란다. 정보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판단과 사용의 문제이고 정책의 문제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국정원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격려와 성원도 해주어야 한다. 정리 오이석·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이상연 前 안기부장은 ▲75세 ▲1963~1981년 국군보안사령부 ▲1981년 서울특별시 부시장 ▲1985년 대구직할시장 ▲1987년 국가안전기획부 제1차장 ▲1988년 국가보훈처장 ▲1990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1991년 내무부 장관 ▲1992년 3~10월 국가안전기획부장 ▲2004년 11월~2010년 12월 사단법인 양지회장 ▲2010년 1~12월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
  •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행사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맞아 기념 행사가 열린다. 국가보훈처는 9일 일제강점기에 독립투사 양성기지였던 신흥무관학교의 설립 100주년 기념 행사를 10일 오후 4시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잔디광장 야외 무대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일반 시민, 학생 등 6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기념식 후에는 장사익, 크라잉넛, 역사어린이합창단 등의 공연이 이어진다.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 3월 신민회의 국외 독립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립 결의로 탄생했다. 신민회 결의 후 이회영 6형제, 이상룡 등 안동의 애국지사들이 망명하면서 1911년 4월 중국 유하현 삼원포 고산자에 독립운동 기지를 마련하고 자치 기관으로 경학사를 설립했다. 2개월 뒤 유하현 삼원포 추가가에 부설 기관인 신흥강습소를 설립했으며, 1912년 통화현으로 이전한 뒤 이듬해 건물을 신축해 신흥중학교로 개칭했다가 각지에서 지원자가 몰려오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배출된 독립군은 청산리전투 등에 참여했으며 3·1운동 뒤에는 지청천, 이범석 등 뛰어난 무관들이 신흥무관학교에 합류했다. 입학 지원생은 계속 늘어났지만 일제의 박해가 심해지면서 1920년 가을에 폐교됐다. 이에 지청천은 생도 300여명을 이끌고 백두산 지역의 안도현에서 홍범도 부대와 연합했고, 김좌진 부대를 뒤따라 대한독립군단 결성에 참가하는 등 이후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시대의 지성 김준엽 선생의 영면 기원”

    “시대의 지성 김준엽 선생의 영면 기원”

    “영원한 ‘시대의 지성’ 고(故) 김준엽 선생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8일 광복군 출신으로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 사회과학원 이사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안암동 고대안암병원 장례식장에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각계각층 주요 인사들의 발길이 이틀째 끊이지 않았다. 고인의 광복회 시절 사진들이 놓여 있는 빈소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등 각계 단체와 인사들이 조화를 보내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빈소에는 아침 일찍부터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김신 백범김구기념사업회장 등 김 전 총장과 생전 각별했던 인사들이 찾아와 고인의 마지막 자리를 지켰다. 이 전 총리는 고인을 ‘존경스러운 광복군 출신 리더’로 돌이켰다. 그는 김 전 총장에 대해 “해방 후 한국 내에 일제의 영향이 남아 있던 시절 후배들이 우리나라의 독자적 발전 방안을 고민하도록 독려하셨다.”면서 “학자로서 민족적 긍지를 갖고 매사 주도적으로 나서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이 전 총리는 “김준엽 선생 덕분에 한국에서 사회과학의 기틀을 제대로 다질 수 있었으며 70년대 북한에 대한 연구가 쉽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공산권연구회를 만드는 등 통일문제에 일찍이 눈뜬 선구자였다.”면서 “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중국통에 머물지 않고 직접 중국 주요 각지에 한국학 연구를 널리 전파하신 분”이라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김 전 총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중국통으로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분”이라면서 “학문적으로뿐 아니라 국제관계에도 큰 공적을 쌓은 분인데 뒤를 이을 후학이 어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밤에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 한승수 전 국무총리, 임종인 전 국회의원,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장호권 사상계 대표이사 등이 빈소를 다녀갔다. 김 전 총장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4일간 치러진다. 영결식은 10일 오전 8시, 발인은 오전 9시이다.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이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항일의병 기념공원 개장

    강점기 일제에 맞서 싸운 의병의 혼을 기리는 전국 유일의 항일의병기념공원이 경북 청송에서 문을 연다. 청송군은 2일 부동면 상평리 항일의병기념공원에서 개관식을 갖고 일반에 공개한다고 1일 밝혔다. 1일은 국가가 정한 제1회 의병의 날이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과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관용 경북지사, 주민 등 600여명이 참석한다. 2007년 착공, 국비 및 지방비 등 총 58억원을 들여 상평리 일대 부지 1만 2000여㎡에 조성했다. 항일의병기념공원은 전시관을 비롯해 건국 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전국 의병 선열 1927인(2009년 독립유공자 인명록 기준)의 위패를 모신 충의사와 선양회 사무실 등이 있는 동·서재, 강당인 창의루, 관리사 등을 갖췄다. 모두 전통 한옥이다. 구한말 청송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항일 의병 봉기인 ‘병신창의’를 토대로 성역화했다. 병신창의는 1895년 일본의 단발령과 을미사변 등의 만행에 격분한 청송지역 유생과 농민 수백명이 궐기, 일본군에 맞선 의병 활동이다. 당시 85일 동안의 활동은 ‘적원일기’(赤猿日記)에 자세히 기록돼 전해지고 있다. 군 관계자는 “1996년 적원일기 발굴을 계기로 청송 의병의 선비정신을 기리고 충혼을 위로하는 각종 기념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항일의병기념공원 조성 사업이 대표적이다.”고 말했다. 청송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항일투사 후손들 고통 뼛속까지 이해되죠”

    “항일투사 후손들 고통 뼛속까지 이해되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외증손자이자 ‘장군의 아들’ 김두한의 외손자, 배우 송일국. 그가 안중근 부자(父子)의 인생사를 다룬 연극 ‘나는 너다’로 앙코르 무대에 다시 섰다. 그는 이 작품에서 안중근 의사와 그의 막내아들 준생 역을 맡았다. 1인 2역이다. 지난해 첫 연극 경험 이후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부쩍 늘었다는 송일국을 지난 1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그는 상당히 유쾌한 사람이었다. 기자를 보자마자 최근 출연한 KBS 드라마 ‘강력반’을 찍으며 겪은 일화를 풀어냈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강력반 형사 박세혁으로 출연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며칠 함께 근무를 섰어요. 체험 차원이었지요. 그런데 어떤 기자 가 저를 봤나봐요. 후다닥 뛰어오더니 문을 쾅 하고 열더라고요. 저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특종을 잡았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경찰에게 ‘송일국, 무슨 사고 치고 왔느냐’라고 묻는 겁니다. 드라마 촬영차 왔다는 걸 알고 무척 아쉬워하던 기자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하하.” ●같은 독립운동가 자손으로 공감 아이처럼 깔깔 웃다가 막상 작품 이야기가 시작되자 이내 표정이 근엄해졌다. 그는 안중근 의사보다 아들 준생을 연기할 때 뼛속까지 더 이해가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독립운동가는 훗날 세상에서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그 이면에 가려진 후손들의 아픔과 고통은 잘 부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후손의 처지라 그런가보다고 했더니 목소리가 한층 높아진다. “생각해 보세요. 제 외증조할아버지와 외증조할머니는 (충남) 홍성에서 99칸짜리 궁궐 같은 집에 서 사셨던 분이세요. 그러다 독립을 위해 전 재산을 팔고 학교를 세우셨죠. 나머지 가족들은 호사를 누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너무 가난해진 거예요.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는 외할아버지 김두한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오죽하면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 안 하셨겠어요(하하). 단 한번도 생활비를 주신 적이 없대요. 어머니는 너무 고생을 해서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눈물 한 방울 안 나셨대요. 장례식날 영구차가 (경기) 의정부를 지날 즈음, 보육원 아이들이 조그만 소반에 제물을 담아 기다리고 있더래요. 외할아버지가 독립연금을 가치 있게 써야 한다며 보육원에 맡긴 사실을 처음 아셨답니다. 보육원 원장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고 하는데 그 아이들이 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가 처음으로 목 놓아 우셨다고 하더라고요.” 송일국은 “자신도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나름대로 고통을 겪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서울 압구정동에서도 가장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 만큼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어머니(김을동)가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일을 시작하면서 자비를 털어넣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나중에는 월세집에서 살았는데 월세를 못 내 보증금까지 다 날리고 거의 쫓겨나기 직전이었어요. 너무 신기한 게 그때 제가 드라마 ‘주몽’에 투입됐고, 시청률이 50%를 넘어서면서 대박이 났죠. CF를 6~7개 찍게 되면서 어머니 빚을 다 갚았어요.” 항일투사의 후손으로서 어려움도 겪었지만 그 조상의 덕을 받아 지금은 잘살고 있는 듯하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연극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기뻤고, 특히 연기에 대한 스스로의 힘을 기를 수 있어 행복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연극무대서 기본부터 다시 시작 “드라마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를 찍을 때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들을 불러 모아 작업했어요. 솔직히 연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멋있게 보일까를 연구했죠. 8개월 동안 몸 만들기에 열중하고 주로 보이는 것에만 치중했어요. 당시 연기력 논란을 겪고 나서 기본으로 돌아가야겠구나 느꼈고, 연극을 하면서 배우로서 정말 많이 배우고 깨우쳤습니다.” 많은 관객이 무대를 찾을 때 보람을 느끼지만 특히 일본 팬들이 연극을 보고 나서 반응을 보일 때 뿌듯하단다. “초연 당시 한 일본인 관객이 일본에 있는 안중근 의사 사당 사진과 가는 길목 표지판까지 전부 일일이 찍어 선물해 주셨어요. ‘나는 너다’ 연극 포스터를 사당에 놓고 온 것까지 인증샷을 찍으셨는데 그 사진첩을 받았을 때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이 작품을 선택하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뷰가 이뤄진 날도 일본팬 10여명이 객석에서 열띤 응원을 보냈다. 이날 공연은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프레스콜’이었음에도 말이다. 기획사 측은 “일본 팬들의 단체 구매가 상당하다.”고 전했다. 다음 달 6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2만~6만원. (02)580-1300.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유럽 간 박근혜 정치엔 ‘침묵모드’ “국내 얘기는 국내서 할 때 있을 것”

    유럽 간 박근혜 정치엔 ‘침묵모드’ “국내 얘기는 국내서 할 때 있을 것”

    “지금은 제가 정확하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지도 못했고요.” 대통령 특사로 유럽을 방문 중인 박근혜 전 대표는 국내에서 달아오르고 있는 ‘박근혜 역할론’과 관련, ‘침묵 모드’를 이어갔다. 지난 30일(현지시간) 네덜란드에서 베아트릭스 여왕을 예방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에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하자고 총의를 모으면 수용하겠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하고 “국내 얘기는 나중에 국내에 가서 할 때가 있을 것”이라면서 즉답을 피해갔다. 국내 정치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유럽 구상’은 한동안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 수행인사는 1일 “공식 임무(행사)를 마치면 (국외 체류 기간에라도) 언급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특사임무를 끝내고 귀국하기 전까지는 관련 발언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럽 3개국 특사활동에 대한 보고를 위해 청와대를 방문하게 되면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자연스럽게 여권 쇄신론에 대한 입장이 공개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박 전 대표는 베아트릭스 여왕 예방 때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를 지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베아트릭스 여왕은 “왕세자가 국제올림픽기구(IOC) 위원이고 평창도 다녀왔는데 좋은 인상을 가졌다고 들었다.”며 “여수박람회에는 하멜 표류기 원본을 가지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박 전 대표는 전했다. 두 사람은 새만금 농업전용용지에 첨단농업 국가인 네덜란드가 협조할 부분이 많은 만큼 양국이 긴밀하게 협조하자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는 이준 열사 기념관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이항기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부터 “이준 열사가 1907년 대한제국 특사로 온 이후 박 전 대표가 104년만에 대한민국 특사로 네덜란드를 방문했다.”는 감사의 뜻을 전달받고 “1907년엔 나라를 빼앗긴 마당에 (헤이그 만국박람회에) 입장도 안 시켜 줘 그분들 심정이 터질 것 같았을 것”이라며 “100년이 지난 후 우리 모습에 여러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과 권오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부소장을 만나 격려했다. 박 전 대표는 1일 동포간담회 등을 시작으로 두번째 방문국인 포르투갈에서의 특사 일정을 시작한다. 헤이그·암스테르담(네덜란드),리스본(포르투갈)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생가터에 달랑 표석 하나… 쓰레기만 수북”

    “생가터에 달랑 표석 하나… 쓰레기만 수북”

    서울 중구 초동 18-5 명보아트홀 앞. 충무공 이순신이 태어난 생가터이지만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맨홀 두 개와 전봇대, 가로등, 그리고 담배꽁초가 가득 담긴 대형 화분 6개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오토바이와 택배 차량, 단속차량까지 충무공의 생가터를 침범했다. 그 흔한 안내 표지판도 없었다. 지나가는 시민 대부분도 이곳이 공(公)의 생가터임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공은 1545년 이곳에서 태어나 소년시절을 보냈던 것으로 전한다.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으로 꼽히는 충무공. 그렇지만 28일 공의 466주년 탄신 차례상은 1평도 채 안 되는 은박 돗자리에 올려진 과일 몇개와 떡, 막걸리 한병이 전부였다. 이를 마련한 이는 서울시도, 중구도, 충무공 기념사업회도 아니었다. 생가터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거리판매점을 하는 이종임(76·여)씨였다. ●거리판매 상인 26년째 관리 이씨는 자비 5만여원을 들여 양초와 막걸리, 떡, 딸기, 토마토, 바나나 등을 직접 마련했다. 바람에 돗자리가 날아가고, 양초에 붙인 불이 꺼지기도 했지만 이씨 외에는 손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중구 소속 쓰레기무단투기 단속요원은 “상이라도 하나 갖다 놓지, 정말 초라하네. 당국이 이런 상황을 왜 모르나.”고 말했다. 이씨는 1985년 높이 1m 가량의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표석이 세워진 이후 26년째 공의 생가터를 지켜왔다고 했다. 그는 “표석에다 가래 뱉고 오줌 싸고 한 것을 혼자서 다 치워왔다.”며 “당국은 아예 관리를 하지 않는다. 어찌 한번도 와보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생가터로부터 100m정도 떨어진 곳에서 중구와 기념사업회가 개최하는 충무공 탄신기념 다례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박노현 중부경찰서장 등을 비롯해 200여명이 공의 탄신을 기렸다. 그러나 정작 공의 생가터는 아무도 찾지 않았다. 한복을 차려입고 행사에 참석한 공의 한 후손은 “비석이라도 좀 큰 걸로 세우지 무슨 애완용도 아니고.”라면서 “중구에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구 관계자는 “생가터엔 돌로 된 표석 하나 있는데 관리하고 말 것도 없고, 배정된 예산도 없다.”며 “서울시가 세웠고 관리도 한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서울시 문화재관리팀 관계자는 그러나 “중구가 관리하며, 훼손되면 보고를 받고 조치한다.”며 중구에 책임을 넘겼다. ●市·중구청은 서로 책임 회피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위인의 생가터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라면서 “아무리 작은 표석이라도 눈에 잘 띄게 표지판도 설치하고 주변관리를 잘하면 사적 가치는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한편 충남 아산시 현충사 경내에 있는 공의 고택은 잘 관리되고 있었다. 이곳은 인근 활터 등과 함께 사적 155호 ‘이 충무공 유허’로 지정돼 있다. 이 고택은 공이 무예수련을 위해 10년간 머물던 처가이다. 부인 방씨가 무남독녀여서 공 후손들이 이 집에서 살았다. 아산 이천열·서울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정부 백남준 기념관 추진… ‘아트센터’ 운영 경기 반발

    정부 백남준 기념관 추진… ‘아트센터’ 운영 경기 반발

    정부가 서울에 ‘백남준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자 이미 용인시에 ‘백남준 아트센터’를 운영 중인 경기도가 반발하고 있다. 25일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와 KBS, 서울시교육청 등은 26일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야외광장에서 ‘백남준 기념사업’을 진행하는 업무 협약을 체결한다. 이들 기관은 곧 추진위를 구성해 세미나 등의 다양한 사업과 함께 경기고 옛터인 정독도서관 부지에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백남준 아트센터를 운영 중인 경기도와 합의 없이 추진되는 것이어서 반발을 사고 있다. 백남준의 장조카이자 법적 상속인인 켄 백 하쿠다(61)씨와 ‘협정’(agreement)을 맺은 경기도는 지난해 특허청에 백남준 아트센터의 상표권 출원을 신청해 둔 상태다. 경기문화재단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 효력이 발생할 상표권은 국내에서 ‘백남준’이라는 명칭을 경기도와 재단만 쓸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문화부가 경기도와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백남준의 이름이 들어간 기념관을 지으면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동학농민운동 기념일 연내 제정”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이 연내 이뤄질 전망이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20일 전북 정읍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교육관에서 동학기념일 제정을 위한 전국 기념사업단체 대표자회의를 갖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연말까지 기념일을 제정하기로 했다. 회의에는 동학농민혁명 유족회 등 전국 동학 관련 25개 단체 가운데 14개 단체가 참여했다. 이들은 객관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로 전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기념일을 결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새달 초까지 추진위를 구성,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추진위는 관련 단체 추천 학계전문가 25명, 유족회 2명, 기념재단 2명, 기념재단 추천 인사 3명 등 30여명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재단은 5월 5일 추진위를 구성하고 18일 1차 회의를 열어 기념일 제정 추진방법 등을 결정하고 6~9월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또 9월 중에 서울에서 공청회를 갖고, 10월에는 기념일추진위 전체회의를 열어 기념일을 정한다는 복안이다. 기념일이 추진위가 확정한 대로 재단이사회에서 통과될 경우 정부는 기념재단이 요청한 기념일을 확정하게 된다. 한편, 동학혁명기념일은 전북 고창군이 주장하는 무장 기포일(4월 25일)과 정읍시가 내세우는 황토현 전승일(5월 10일) 가운데 하나로 정해질 전망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이인수 박사 묘역참배 불발… ‘4·19 화해’ 없었다

    이인수 박사 묘역참배 불발… ‘4·19 화해’ 없었다

    ‘화해’는 여전히 먼 곳에 있었다. 4·19 유족에게 사죄의 뜻을 밝힌 이승만 전 대통령 양자 이인수(80) 박사의 4·19 묘지 참배는 관련 단체 회원들의 반발에 가로막혔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4·19의 연장 선상에 있었고, ‘미완의 혁명’인 4·19의 시각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은 독재의 화신일 뿐이었다. 이날 그가 관련 단체 회원들의 항의에 막혀 참배도 못 한 채 이 전 대통령이 거주했던 이화장에서 주목하는 이 없는 성명서를 낭독해야 했던 풍경에 이런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났다. 19일 오전 9시 서울 수유동 국립 4·19민주묘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4·19혁명희생자유족회, 4·19혁명유공자회 등 4·19 관련 단체 회원 70여명은 행사 전부터 다목적 광장에 모여 이 박사와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 기념사업회의 참배를 비판했다. 4·19 당시 오른손에 총상을 입은 김진태(72)씨는 “51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사과한다니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념사업회 측의 이승만 동상 건립 계획에 대한 강도 높은 성토도 이어졌다. 동국대 재학 시절 4·19를 겪은 박희부(73) 전 국회의원은 “유족들에게 사죄한다면서 이승만 동상을 세우겠다는 것은 유족들에 대한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이 박사와 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을 태운 노란색 버스가 오전 9시 모습을 드러냈다. 4·19 관련 단체 회원들은 묘지 정문으로 달려가 차량을 막아 세웠다. “어딜 들어와, 나가!” “여긴 성지야. 뭘 잘했다고 여길 와?” 등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10분간의 실랑이 끝에 차량은 묘지 밖 삼거리까지 밀려났다. 그 사이 이 박사와 김일주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이 차에서 내렸지만 곧 4·19 관련 단체 회원들에게 에워싸였다.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져 김 사무총장이 넘어지기까지 했다. 이 박사는 정문 앞 도로에 서서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 전 대통령의 건국정신인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4·19혁명의 민주주의 정신은 한뿌리”라면서 “(유족들 중에는) 나를 반대하는 입장도 있겠지만 나에게 사죄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변했다. 결국 이 박사 일행은 참배를 포기한 채 9시 15분쯤 묘역을 떠났다. 이 박사는 오전 11시 서울 이화동 이화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검은 정장과 검은 넥타이 차림의 이 박사는 기자들 앞에서 성명서를 낭독했다. 그는 “더 늦기 전에 역사의 잘못을 사죄하고 화해하겠다는 뜻을 유족들과 국민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면서 “모두가 하나 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이 전 대통령의 뜻이며 4·19 때 숨진 영령들의 숭고한 뜻”이라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바라보는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 전 대통령의 공로를 아는 국민들도 많다. 역사적 진실을 알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굳건히 확립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4·19 관련 단체들에 어떤 화해의 노력을 했느냐는 질문에 기념사업회 김 사무총장은 “워낙 강경한 입장이어서 대화 시도조차 어렵다.”면서 “앞으로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이승만기념사업회 사과 운운 진정성 없다”

    “이승만기념사업회 사과 운운 진정성 없다”

    “그런 사과가 어디 있느냐. 우리로선 총 한방 더 맞은 것이다.” 4·19혁명 51주년을 맞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80) 박사가 처음으로 혁명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사과 입장을 밝혔으나 당사자 격인 4·19 단체는 발끈하는 분위기다. 반세기가 넘도록 사과는커녕 독재 통치 정당화에 골몰했던 사람들이 보도자료를 통해 사과 운운하는 것은 희생자에 대한 결례이고 진정성도 없다는 것이다. 4·19혁명 당시 시위에 나섰던 청년들의 모임인 ‘4·19민주혁명회’ 오경섭(69) 회장은 18일 서울 필동 4·19혁명기념회관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달랑 보도자료 하나 공문 형식으로 보낸 진정성 없는 사과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라면서 “이인수 박사와 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가 51년 만에 사과를 한다고 나섰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정신적으로 총 한방을 더 쏜 것이나 다름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1960년 4월 19일 당시 경동고 3학년이었던 오 회장은 서울 미아리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발포한 총 두발에 하복부 관통상을 입은 뒤 50여년 동안 4·19 희생자와 민주화를 위해 힘써 왔다. 그는 “유족과 희생자들과 교감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사과는 형식적으로도 옳지 않고 내용적으로도 진정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인수 박사와 이승만기념사업회가 사죄의 뜻을 밝혔다. 입장은. -아주 불쾌하다. 사과문이 없는데 무슨 사과를 받아들이라는 거냐. 4·19혁명과 관련해 정부가 공식 인정한 당사자 단체는 우리를 포함해 딱 세 군데밖에 없다(정부가 인정한 4·19관련 공식단체는 4·19민주혁명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4·19혁명공로자회 3곳이다). 그런데 우리 중 어떤 단체에서도 직접적인 사과나 사과문을 받은 적이 없다. 정신적으로 우릴 능욕했다.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는 뜻인가. -사과라는 것은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간에 교감이 있어야 한다. 사전에 어떤 식으로 사과를 하겠다는 말도 없이 먼저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냈다. 우리 사무실로 보낸 공문도 언론사에 보낸 ‘기사 전제 요청의 건’ 공문이다(이승만기념사업회가 지난 15일 4·19민주혁명회 측에 보낸 공문 겉봉투에는 ‘보도자료 재중’이라고 적혀 있다). 당사자에게 직접 말도 없이 언론을 통해 ‘사과하겠다.’고 발표만 하면 그게 사과하는 거냐. →이인수 박사로부터 직접 사과는 없었나. -인터뷰 직전에 이인수 박사가 전화를 걸어 왔다. 대뜸 전화를 해서 한다는 말이 ‘내 나이가 80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내일 민주묘지에서 참배하도록 협조해 달라.’는 얘기만 하더라. 사과 방법도 잘못됐고, 내용에 진정성도 없다. →이인수 박사 등이 19일 오전 수유리 민주묘지를 직접 찾아 참배를 하겠다고 하는데. -받아들일 수 없다. 참배하겠다고 하면 우리가 물리적으로 막겠다.(4·19민주혁명회 등 3개 단체는 이날 오후 ‘이승만 추종자들의 사과는 진정성이 없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내세워 4·19민주묘지를 방문하고 헌화·참배하는 행위는 단연코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목소리도 나오는데, 어떻게 보나.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후대에 역사가들이 평가할 일이다. 이승만기념사업회나 유족들은 이제 와서 ‘이 전 대통령이 3·15 부정선거를 몰랐다.’ 이런 말만 되풀이한다. 역사적으로 큰 죄를 짓고 이제 와 사과하겠다는 사람들 인식이 이것밖에 안 되는지 한탄스럽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내게 올 총탄 학생이 맞았다” 이승만대통령 눈물

    “내게 올 총탄 학생이 맞았다” 이승만대통령 눈물

    4·19혁명 발생 51년 만에 이승만 대통령의 유족이 혁명 희생자 및 유족들에게 사과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이자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부회장인 이인수(80) 박사가 19일 오전 9시 서울 수유리 국립4·19민주묘지를 참배하고 당시 경찰의 총탄에 숨진 학생들에게 헌화한다. 또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죄의 뜻을 밝히는 성명을 낭독한다. 이와 관련해 4·19민주혁명회 광주·전남지부 이승록 사무처장은 “늦게나마 사죄를 한다고 하니 고맙다. 4·19혁명은 한국 민주화의 초석이라는 사실이 더 널리 알려져야 한다.”며 반겼다. 이 박사는 “이 전 대통령은 하야 후에도 4·19를 떠올리면 ‘내게 올 총탄을 학생들이 맞았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제 반세기가 지났으니 유족들에게 사과와 화합의 손을 내밀 때도 됐지요.”라고 17일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4·19혁명 당시 많은 학생이 숨진 데 대해 미안함을 표했다고 이 박사는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사업회와 대통령 유족이 4·19 희생자 묘역을 참배하고 사과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혁명 이후 처음이다. 그간 4·19 혁명희생자유족회 등은 기념사업회 측에 여러 차례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 박사는 4·19혁명의 원인을 이 전 대통령이 제공했다는 역사적 시각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이 전 대통령과 4·19에 대한 반발이 격했던 시기에는 피차간 이해와 화해가 어렵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있고 같은 해 4월 12일 각료회의록을 보면 ‘선거에 무슨 잘못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아버지께서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만일 선거가 잘못됐다면 내가 물러나야지’라고 말하는 게 나온다. 집권 말년에 당신이 얼마나 속았는지 뒤늦게 알았던 것이 확인되는 대목”이라면서 “고령에다 ‘인의 장막’에 둘러싸인 탓이었지만 200명 가까운 시위대가 사살된 사태에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책임을 지려고 기꺼이 물러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당시 현대건설에 근무했던 이 박사는 “4월 18일 외근을 나왔다가 고려대 후배들이 당시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앞에서 흰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하는 현장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 동참한 적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같은 종친인 전주 이씨 양녕대군파로 1961년 12월 양자로 입양됐다. 미국 뉴욕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93년 명지대 법정대학장을 지냈으며, 96년부터 이승만기념사업회 임원을 맡고 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는 17일 4·19혁명 당시 경찰의 총탄에 맞아 숨진 학생과 유족에게 사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업회는 성명서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4·19혁명) 당시 학생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정치적으로 세계 어느 선진국 못지않은 민주화를 이루었으며, 경제적으로는 G20 정상회의를 국내에서 개최할 정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면서 “(이는) 60여년 전 이승만 대통령께서 이 나라를 세우실 때 주창하신 건국이념과 4·19 당시 학생들의 애국충정을 우리 후손들이 잘 받들어 실천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정신과 4·19 당시 학생들의 나라 사랑 정신은 하나’라 생각하고 당시 정부의 잘못 때문에 희생된 학생들과 그 유족들에게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하면서 앞으로 4·19유족회 등 관련 단체와 힘을 모아 당시의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가 발전에 함께 이바지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일주 사무총장은 “희생자 유족들은 그간 기념사업회 측에 꾸준히 사과를 요구했으나 사업회 내부 의견이 갈려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이번 사죄 성명 발표는 지난 2월 기념사업회장으로 취임한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의 의지로 결정됐다.”고 전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성춘향은 신상옥 감독이 혼신의 힘 다한 작품”

    “성춘향은 신상옥 감독이 혼신의 힘 다한 작품”

    “‘성춘향’은 (신상옥 감독) 필생의 작품입니다. 혼신의 힘을 다한 영화예요.” 관절이 좋지 않아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원로배우 최은희(85)씨는 남편 신상옥 감독이 만든 ‘성춘향’(1961년)에 대해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세월 흐를수록 더욱 보고 싶은 분” 12일 오후 서울 낙원동 허리우드클래식. 196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신상옥 감독의 5주기와 그의 히트작 ‘성춘향’ 개봉 50주년을 기념하는 상영회가 열렸다. 개봉 50주년 기념 상영회가 열리는 것은 영화계에서 드문 일이다. 사단법인 신상옥 감독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김수용·이두용·정진우 등 원로감독과 신영균, 고은정 등 당대 배우 300여명이 참석했다. 김태용·변영주·권칠인 등 젊은 감독들과 고(故) 신 감독과 생전에 친분이 있던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 등도 함께 했다. 신상옥 감독-최은희 주연의 ‘성춘향’은 당시 일주일 앞서 개봉한 홍성기 감독-김지미 주연의 ‘춘향전’과 정면 대결을 펼쳐 압승을 거뒀다. 한국영화 사상 가장 극적인 대결로 손꼽힌다. 최은희는 “승부를 걸었으면 이기는 게 당연하다. 좋은 성과를 거둬서 다행”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분들(홍성기 감독 등)에게는 아픔이었을 텐데, 계속 거론되는 게 미안하다”고 했다. 50년 만에 영화를 다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세월이 이렇게 빠르게 흐르다니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서 “그분(신상옥 감독)이 떠나신 지 5년이 흘렀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보고 싶다.”고 말했다. 신상옥-최은희 부부의 아들인 신정균 감독은 “’성춘향‘은 아버님이 애착을 뒀던 작품 중 하나”라며 “납북됐을 때도 ’사랑사랑 내사랑‘이라는 뮤지컬 영화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국 영화산업 첫 불 밝혀준 작품” 신영균 신상옥감독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성춘향’은 1960년대 한국 영화산업의 첫 불을 밝혀준 작품이다. 그 전설을 만드신 분이 이 자리에 계셨어야 하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그 분을 생각하기만 하면 감정이 북받친다.”고 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올림픽 유치보다 경제적 파급 효과 커… 국가 브랜드 가치 높일 기회”

    “올림픽 유치보다 경제적 파급 효과 커… 국가 브랜드 가치 높일 기회”

    “올림픽 유치보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훨씬 클 것으로 기대합니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 투표참여 캠페인으로 대한민국 국격과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세계7대 자연경관 범국민추진위원회에서 만난 양원찬(61) 사무총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강조했다. 오는 24일 뉴세븐원더스(N7W)재단 관계자와 각국 기자단으로 구성된 월드투어단 방문 준비로 눈코 뜰새 없는 그에게 제주가 세계 7대 경관에 선정될 수 있을지 가능성에 대해 들어 봤다. →범국민 조직의 사무실이라 상근 인력이 많은 줄 알았는데. -저를 포함해 고작 4명이다. 사실 밤낮으로 뛰어도 모자란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운영하다 보니 손님을 맞을 소파도 중고시장에서 구입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범국민추진위는 어떻게 결성하게 됐는가. -지난해 10월 우근민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정식으로 부탁했다. 이미 2009년 7월 21일 제주가 세계 7대경관 후보지 28곳에 선정됐다고 발표했는데 그 어느 누구도 발벗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는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데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며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나에게 조언했다. 위원장 자리에 대해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추천했다. 정 위원장은 자정에도 집에 전화를 걸어서 회의를 하자고 할 만큼 열정을 보인다. →주변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많은데. -캠페인의 진정성이 통해 모두가 선뜻 도와주는 것이다.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다. 홍보대사를 맡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장에서 고두심 홍보대사 단장과 정몽준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을 동원한 덕분이다. “마라도나도 후보지인 남미 이구아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데 박지성 선수가 나서 줘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통했다. 박 선수가 홍보대사가 되는 그날 하루 전 세계에서 1만여명이 제주에 투표를 했다. 범국민추진위 출범 전에는 캠페인을 기획사에 맡기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기획사에 용역을 주면 60억원이 들어야 할 판인데, 제주도가 책정한 예산은 6억원에 그친다. →탤런트 현빈이 해병대 입대할 때 제주 투표를 호소하게 된 배경에도 이런 인력망이 동원됐나. -맞다(웃음). 그러나 무엇보다 박 선수도. 현빈도 애국심이 발동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해외 유학생이나 교포들이 더 관심을 보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의 투표 열기는 어떤가. - 뉴세븐원더스재단 홈페이지와 30개국 28곳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캐나다와 호주의 상호공동 지지, 캐나다 의회 지지 결의, 인도와 방글라데시 총리 간 정상회담에서 공동협력 약속 등 다른 나라들은 국가 차원에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도 1년이나 뒤늦게 뛰어들었다. →일부에서 스위스 뉴세븐원더스재단의 장삿속이라는 지적도 받는데. -2007년 ‘세계7대 불가사의 프로젝트’를 선정해 공신력을 얻었다. 이 재단은 유엔의 국제빈곤퇴치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는 유엔의 공식 파트너이다. 재단 정관에 수익금의 50%를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 보전과 복구에 사용하도록 명시했다. →재단 관계자들이 오는 24일 한국에 온다는데. -실사단이 오는 것이 아니라 월드투어단이 후보지 28곳을 방문하는 일정 중 하나다. 현재 성산일출봉에서 인간띠로 제주투표 전화코드번호 ‘7715’ 숫자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계획하고 있다. →세계 7대경관에 선정되면 유럽, 남미권 관광객이 늘어날까.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된 지 6개월 만에 페루의 마추픽추는 관광객이 70%, 멕시코의 마야 유적은 75% 증가했다. 브라질 예수의 상은 언론 노출된 뒤 세계영화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다. 유럽, 미국 등지에서 호화 크루즈선을 이용한 세계 7대 불가사의 순례 관광단 등 관광상품이 잘 팔린다고 재단은 설명한다. →제주의 가치와 경쟁력은 뭔가. -제주는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세계자연유산 등재, 세계지질공원 인증 등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을 받은 천혜환경의 가치를 유엔이 공인한 곳이다. 특히 28곳 중 유일하게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어졌다. 나머지 27곳은 자연과 문명이 확연히 구분된다. →고향 제주 사랑이 남다르다. 제주는 개발과 보전을 두고 갈등이 심하다. 제주의 미래는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야 하는지. -지금은 생태관광이 추세다. 이런 흐름으로 접근해도 환경보전에 무게를 둔 지역경제 활성화가 필요하다. 마구잡이식 난개발을 막아야 한다. 우리의 허파이자 원시림인 곶자왈(세계에서 유일하게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독특한 숲 또는 지형)이 골프장으로 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1억명이 찍어 줘야 7위 안에 들 수 있다고 하는데. -재단에서 그렇게 추정한다. ‘자국 투표 10%, 국외투표 90%’는 의무사항이 아니라 권장사항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5000만명은 무조건 투표를 해야 한다. 글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양원찬 사무총장 ▲1950년 제주 ▲제주제일고, 한양대 의대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팀닥터 ▲현 시너지정형외과병원장 ▲제주도민장학회 이사 ▲서울지역 제주시향우회장 ▲(사)김만덕기념사업회 공동대표
  • 창원, 이원수 기념사업 보류

    경남 창원시가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다 이 선생의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서울신문 3월 12일 자 13면>이 가열되는 바람에 기념사업을 보류했다. 창원시는 이에 따라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기념사업을 계속 추진할지와 기념사업 재정 지원 등에 대한 전화설문 조사를 오는 15일까지 진행한다고 5일 밝혔다. 시는 문화계와 시의회 등 각계각층의 여론 수렴 내용과 전화설문 조사 결과를 종합한 뒤 기념사업의 계속 추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창원시는 지난 1월 24일 이원수 선생 100주년 기념사업 선포식을 열고 학술세미나와 고향의 봄 어린이 큰잔치, 흉상 제막 등 그의 문학 세계를 기리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해 왔다. 이에 대해 창원 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은 이 선생의 친일 경력을 문제 삼아 ‘친일작가 이원수 기념사업 저지 창원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창원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조직적인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독도 상주인구 수 늘려 영유권 강화해야”

    오는 6월 독도 ‘주민숙소’ 확장 리모델링 공사 완공에 맞춰 민간인 상주인구를 늘려 독도 영유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9일 경북 울릉군에 따르면 울릉읍 독도리(서도) 20-2 일대 해발 18m에 총 30억원(국비 21억, 지방비 9억원)을 들여 건설 중인 독도 주민숙소 확장 리모델링 공사가 6월쯤 끝난다. 현재 공정률은 91%. 주민 숙소는 지상 4층에 면적 373.14㎡, 높이 11.86㎡로 종전(2층, 면적 118.92㎡)보다 3배 큰 규모로 지어진다. 숙소는 독도 주민으로 등록된 김성도(71)·김신열(74)씨 부부를 포함해 최대 40명의 동시 거주가 가능한 방 5개와 욕실과 주방(식당 포함), 창고 2개, 기계실(발전기 2대) 등을 갖춘다. 숙소가 준공되면 독도 정주 여건이 크게 개선되는 만큼 김씨 부부 외에 다른 민간인도 거주할 수 있도록 하고 이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경북도가 ‘독도 거주 민간인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을 통해 2007년 1월부터 독도 유일 주민 김씨 부부에게 매월 생활안정자금 100만원을 지원하는 것이 전부다. 정부 차원의 독도 민간인 지원은 단 한 푼도 없다. 이 조례의 지원 대상은 울릉군수로부터 독도 거주 승인을 받은 뒤 이곳에 주민등록을 두고 1개월 이상 산 사람이다. 금액은 가구당 월 70만원이고 가구원이 2명 이상일 때는 1명 초과 때마다 30만원을 추가로 지원한다. 이런 가운데 독도 최초 주민인 고 최종덕씨의 딸 경숙(47·경기 광주시) 부부가 숙소 완공 이후 입주를 적극 추진 중에 있다. ‘독도 최종덕기념사업회’도 최씨 부부의 숙소 입주가 이뤄질 경우 생계유지 지원 등을 위해 2t 규모의 선박을 건조해 제공한다는 것. 최종덕씨는 1965년 독도에 터를 잡고 가족과 함께 23년 동안 살았다. 하지만 울릉군 독도관리사무소는 숙소가 완공되더라도 숙소 여건상 김씨 부부 외에 민간인 추가 입주는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독도 유인화 정책에 미온적이라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독도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현재 30여명인 독도경비대원을 대폭 철수시키고, 그곳에 다가구 마을을 조성, 민간인을 상주시키는 것이 독도 유인화를 도모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종학 경북도 독도수호과장은 “숙소가 준공되면 울릉군과 협의해 민간인 추가 입주를 적극 추진하겠다.”면서 “현재 선발 문제 등에 대한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청바지 입고 함께하는 문화 만들어가요”

    “청바지 입고 함께하는 문화 만들어가요”

    청바지를 입은 청년·장년들이 한데 모였다. 공통 문화코드인 청바지를 입고 ‘새로운 문화’에 머리를 맞댔다. 사회에 만연한 ‘자신만 생각하는 문화’를 넘어 ‘함께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신봉승 작가 강연… 인디밴드 공연 한국청년유권자연맹이 24일 오후 6시 30분부터 3시간동안 서울 홍익대 인근 롤링홀에서 ‘제4회 청연 비전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날 콘서트에는 에세이스트 신봉승 작가가 공개강좌를 진행했다. 인디밴드 ‘좋아서 하는 밴드’의 공연이 이어졌다. 이연주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운영위원장은 “‘제4회 비전콘서트’는 ‘나’만이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청년 리더십을 주제로 한 총 3부작의 콘서트 중 1부에 해당한다.”면서 “추후 6월과 10월에 개최될 비전콘서트에서는 기존의 닫힌 공간을 넘어 현장을 찾아가고 청년문화를 창조하는 더욱 진화된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청연 비전콘서트는 ‘세상을 바꾸는 힘’, ‘우리가 대한민국의 주인입니다.’, ‘청년, 정치에 도전하다.’를 주제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이 강사로 나선 바 있다. ●청년 회원 4000여명… 멘토 100여명 한편, 한국청년유권자연맹은 2004년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산하 청년조직으로 출범해 활동해오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청년들이 책임지는 참여를 통해 사회변혁 및 미래를 창조하는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지난해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창립 4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독립을 추진, 지난해 1월 27일 창립하게 된 청년 시민운동단체다. 현재 20∼30대 청년회원 4000여 명과 40∼50대 각 분야 전문가 100여명이 지도회원(멘토)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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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급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사무처장 심동섭 ■소방방재청 ◇소방정 승진 △충남도 전출 김연상△경남도 〃 김오년△경기도 〃 배덕곤△소방정책국 구조구급과 변수남◇소방정 전보△소방정책국 화재조사감찰팀장 최재선△재난상황실 김홍필△소방정책국 소방정책과 이창섭△〃 소방제도과 이형철△〃 방호과 이선재△〃 소방산업과 김성연△충청소방학교장 백동승△중앙소방학교 행정지원과장 최태영△〃 교육기획〃 조종묵△〃 소방과학연구실장 이창화◇파견△인천광역시 소방학교 김충식△국무총리실 김일수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기획조정본부장 이세구◇연구실장△도시경영 조권중△산업경제 윤형호△복지문화 김경혜△도시교통 윤혁렬△환경안전 유기영△주택도시설계 박현찬△도시계획 이주일◇센터장△도시정보 김순관◇국·단장△행정지원국 장기연△미래정책연구단 변미리◇기획조정본부△연구기획팀장 박광주△홍보협력〃 박홍순◇도시정보센터△서울경제연구팀장(도시자료분석팀장 겸임) 박희석△정보지원〃 강향숙◇행정지원국△총무팀장 이혜련△인사평가〃 박좌진△회계〃 김기정◇개원20주년준비반△반장 홍규찬 ■울산광역시 ◇전보 △복지여성국장 이진벽 ■경북관광개발공사 △감사 김종술 ■대한건설협회 ◇승진 △정책본부장 한창환△회원〃 사상섭◇신규 임용△산업본부장 김재서◇전보△경영지원종합센터장 강영길△건설단체총연합회 실장 진장욱△건설경제신문사 전략기획〃 박희정△서울시회 임성율<실장>△계약제도 최상근△건설환경 김근성△건설진흥 조준현△SOC·주택 강해성△건설정보 김관수△기획조정 안광섭△문화홍보 박흥순△운영지원 이재식△감사 이승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홍보실장 신형식△기념사업국장 박문숙△교육사업〃 이난현△사료관장 이인수 ■MBC <드라마1국>△드라마1부장 한희△드라마2〃 오경훈△드라마3〃 최용원 ■YTN 라디오 △상무이사 강철원 ■신영증권 ◇이동 <본부장>△리테일영업 및 멀티채널사업 신요환△파생상품 엄준흠<부문장>△기업금융 금정호△프로젝트금융 한승우<담당임원>△멀티채널사업 신우성△영업전략 황혁△송파지점 이영대△결제업무 이인수<실장>△감사 이상수<팀장>△영업정보 이민규△고객서비스지원 윤재평△경영지원 손민기△브랜드전략 김동준△경영정보 최승호△상품기획 정종희△고객자산운용 김창연<부장>△법인고객 노형식△WM 김응철△기업금융 명창길△구조화금융 배준성<지점장>△부천 이후철△분당 전익수△명동 김기민△서면 김상기△상인 김재형 ■이트레이드증권 ◇전무 승진 △트레이딩사업부 송맹근◇상무 승진△리테일사업부 정성근△IT지원본부 정훈기◇상무보 승진 <그룹장>△PB영업 김용두△리서치 김봉기△법인영업 여상용△Capital Market 이제원△Marketing 심기옥△자금/리스크 박경근△경영기획 김학훈 ■현대증권 ◇부장 승진 △강남지점 석상열△과천지점 박두현△광산지점 이홍규△무거동지점 고영수△부산지점 정성태△분당남지점 원철희△상주지점 박재철△신탁부 김현우△안산지점 정대모△영업부 윤성현△의정부지점 남현우△일산지점 허병태△재무관리부 이선근△청담지점 윤만철△퇴직연금운영부 박강현△PI부 조경훈△Structured Products부 신민호◇부장대우 승진△감사실 이길수△구로지점 이익우△구미지점 윤창환△구조화금융부 송원강△노동조합 심창기△마포지점 이철희△사당지점 박홍구△삼성역지점 장희열△선물영업부 정진표△시스템운영부 김윤상△쌍문지점 이진영△영통지점 안준수△자양동지점 정재호△주엽지점 성병한△통영지점 장현은△포항지점 김진수△프로젝트금융부 주용국△Equity파생부 이염무 ■대신정보통신 ◇상무이사 승진 △금융사업본부 박종철◇이사 승진△NI사업본부 황민◇이사대우△기획실 양동해△기획(유통)실 이형구△PDA사업본부 박충범△정보통신연구소 김국현 ■일진전기 ◇임원 △중공업사업본부 해외영업담당 신영순
  • [부고] 김수학 前 국세청장 별세

    김수학 전 국세청장이 1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4세. 1927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한 고인은 경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경주군청 공무원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대구시장, 충남·경북도지사를 거쳐 1978년부터 1982년까지 제4대 국세청장을 지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시장, 도지사, 국세청장 등을 역임해 취임 때마다 화제가 됐다. 공직 생활을 마친 후에는 토지개발공사 사장,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장, 환경보전범국민운동추진협의회장 등을 지냈으며 최근까지 사단법인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이사를 맡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주경이씨와 아들 철수(일원BMS 대표)·성수(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씨, 딸 호선씨, 사위 심우영(강동경희대병원 교수)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 20일 오전 6시. (02)3410-6916.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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