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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최고의 학습 방법은 반복해서 떠올리기/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열린세상] 최고의 학습 방법은 반복해서 떠올리기/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수능 시험이 6일 남았다. 오래 기억하는 좋은 공부 방법이 따로 있을까.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은 교재나 노트에서 중요한 대목을 형광펜으로 칠한 뒤 반복해 읽는 것이다. 한편 교육학에서는 ‘개념 매핑’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본다. 말풍선에 세부 사항과 아이디어를 손으로 써 넣고 이 풍선들을 조직적으로 연결하는 도표를 그리는 학습법을 말한다.하지만 다른 모든 방법을 뛰어넘는 학습법의 왕자가 있다. 기억한 것을 그저 떠올려 보는 것이다. 20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요령이 지금도 진리라는 말이다. “어떤 것을 반복해서 떠올리면 그 기억이 강화된다.” 머릿속에 떠올리기와 같은 ‘회상연습’의 효과는 근래 인지과학자들에 의해 분명하게 확인됐다. 2008년 2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기념비적 연구가 발표됐다. 미국 퍼듀대학 심리학과 제프리 카피크 교수팀의 논문이다. 그의 팀은 40명의 학생에게 스와힐리어 단어 40개를 배우게 한 뒤 1주일 후에 평가했다. 그 결과 단어를 공부하고 시험 치르기를 반복한 집단의 성적이 가장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80점을 받았다. 이에 비해 그냥 공부만 한 집단은 평균 36점을 기록했다. 시험 없이 공부만 반복하는 방법은 시간이 지난 뒤의 기억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후속 연구 결과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내용이라도 반복해 떠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2009년 11월 ‘실험심리학 저널: 일반’,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카피크 교수팀은 대학생 150명에게 스와힐리어 단어를 공부하게 만들고 1주일 뒤에 평가를 했다. 공부 방법은 연구팀이 지시하거나 각자 선택하게 했다. 평가 결과 모든 단어를 빼놓지 않고 셀프 시험을 치면서 공부한 집단의 성적이 가장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험에서 맞힌 단어를 그다음 시험에서 제외한 그룹은 그만큼 성적이 좋지 못했다. 연구팀은 “아는 내용이라도 두세 차례 더 떠올리면 장기 기억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회상연습은 ‘개념 매핑’보다 우월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의 연구팀이 2011년 1월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을 보자. 이에 따르면 자료를 읽고 시험을 거듭 치른 학생은 다른 두 방법으로 공부한 학생에 비해 50% 더 많은 지식을 갖는 것으로 1주일 후 평가에서 드러났다. 연구팀은 200명의 학생에게 특정 과학적 주제에 관한 글을 몇 문단 읽게 했다. 주제는 소화기 계통의 작동 방식이나 척추동물 근육 조직의 유형 등이었다. 첫 실험에서 학생들은 네 집단으로 나뉘었다. 처음 두 집단은 5분간, 혹은 5분씩 네 차례 교재를 읽기만 했다. 세 번째 집단은 교재를 펴놓고 지식을 도표로 그리는 개념 매핑을 했다. 마지막 집단은 ‘회상연습’ 시험을 치렀다.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10분에 걸쳐 자유형 에세이를 썼다. 이어 문단을 다시 읽고 또 시험을 치렀다. 1주일 후 네 집단 모두 평가 시험을 치렀다. 사실을 떠올리고 이를 기반으로 논리적 결론을 도출하는 문제를 풀었다. 두 번째 실험에선 회상연습과 개념 매핑 중 한 가지 방법으로만 공부를 하게 만들었다. 초기 단계에서는 개념 도표를 만든 학생들이 세부 사항을 더 잘 묘사했다. 하지만 1주일 후 평가를 하자 회상 시험을 치른 집단이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나타냈다. 심지어 단답형이 아니라 개념을 지도화(매핑)하는 시험에서조차 더 높은 성적을 보였다. 인지과학자와 교육전문가들은 이 결과가 충격적이라고 말한다. “많은 교육자들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개념 매핑과 대비했을 때 회상 시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당시 NYT가 보도한 버지니아대학 심리학과의 대니얼 윌링엄 교수의 평가다. 또 다른 연구에서 초중고생이나 의과대학원생, 인지 재활훈련을 받는 신경질환자 모두에게 ‘기억한 내용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시험으로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각기 다른 모든 상황에서 가장 우수한 결과를 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듀크대학의 앤드루 버틀러 교수가 2011년 1월 ‘인지과학의 동향’에 발표한 리뷰 논문의 평가다. 회상연습이 좋다는 것은 알았으니 실천해 보자. ‘지금까지 읽은 칼럼은 무슨 내용이었을까?’
  • 김정숙 여사, 인도 도착…모디 총리 면담 등 3박 4일 일정 돌입

    김정숙 여사, 인도 도착…모디 총리 면담 등 3박 4일 일정 돌입

    현직 대통령 부인으로서 16년 만에 단독 외국 방문길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4일(현지시간) 인도에 도착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공식 초청을 받고 3박 4일간 인도를 방문하는 김정숙 여사는 이날 오후 뉴델리 팔람 군 비행장에 도착해 신봉길 주인도대사와 카우르 바달 인도 식품산업부 장관 등의 영접을 받았다. 김정숙 여사는 5일 뉴델리에서 모디 총리를 면담한 뒤 람 나트 코빈드 대통령의 부인 초청 오찬에 참석한다. 6일에는 아요디아에서 열리는 허왕후 기념공원 착공식에 참석해 기념비에 헌화한 뒤 디왈리 축제 개막식과 점등행사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디왈리는 인도의 대표적인 축제이자 기념일로 10월 중순에서 11월 중순 사이에 5일간 진행되는 축제다. 산스크리트어로 ‘빛의 행렬’을 뜻하는 디왈리는 ‘빛의 축제’라고도 불린다. 밝은 빛으로 악을 물리치는 의식에서 비롯돼 디왈리 축제기간 집과 건물 안팎을 전구, 초 등으로 장식하는 풍습이 이어져 온다. 모디 총리는 디왈리 축제를 허왕후 기념공원 착공식과 함께 치름으로써 양국 협력과 역사를 기념하는 축제로 삼겠다는 뜻을 전하면서 청와대에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김정숙 여사는 7일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물인 타지마할 방문까지 마치고 나면 귀국길에 오를 계획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2030 세대] 인프라의 소중함/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2030 세대] 인프라의 소중함/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인류 문명 4대 발상지의 공통점은 강을 중심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나일강의 이집트 문명, 유프라테스강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고 인더스 문명과 황하 문명이 그것이다. 강 주변에 거주하다 보니 인류는 고대로부터 수리시설을 만들어 홍수나 가뭄 등의 피해를 막는 일에 힘을 썼다. 중국에서 기원전 2070년경 살았다고 전해지는 하나라 우왕의 헌신적인 치수사업은 현재 샤오싱시의 대우릉(大禹陵)이라는 가묘를 통해 보여 주듯이, 현재까지 존경의 대상으로 추앙받고 있다.하나라 우왕도 다소 전설적인 인물이라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지만, 꽤 오랫동안 인류는 강의 범람을 신의 분노 등으로 해석하고 제사를 지내며 대처해 나갔다. 하지만 16~17세기 동안의 과학혁명 이후 인류는 물의 특성을 파악하기 시작했고 다니엘 베르누이나 클라우드루이 나비에, 조지 스토크스경과 같은 과학자들은 물의 움직임을 수식화ㆍ계량화하는 유체역학이란 학문을 정립해 나갔다. 이후 토목공학자들은 유체역학을 바탕으로 수리학(水理學ㆍHydraulics)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공학적 관점에서 강을 인간에 이롭게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한강의 고수(高水)부지는 수위가 높을 때 잠기는 부지라는 뜻이다. 한강 상류에 다목적댐이 설치되고 고수부지와 같은 한강종합개발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여름철 집중호우는 서울에 늘 큰 재앙이었다. 송파구에 가면 1925년 발생한 을축년 대홍수 기념비가 있는데, 최종 집계된 피해 상황을 보면 사망자 647명, 가옥 침수 4만 6000채 등으로 추산피해액이 1억 3000만원가량이었다고 한다. 1921년 조선총독부의 예산은 1억 3000만원 정도라 하니 그 엄청난 피해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홍수에 취약했던 한강은 해방 이후 팔당댐을 비롯한 9개의 댐과 3개의 보, 그리고 한탄강 홍수조절지를 포함한 2개의 홍수조절지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잠실 인근은 50여년 전과 아주 다른 지형을 보여 주는데, 1934년 35가구 정도가 거주하던 잠실리의 경우 1971년 잠실지구 공유수면 매립공사로 섬에서 육지로 변모했다. 현재 잠실본동에서 잠실7동까지 대략 5만 8000여가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50년이 채 되지 않은 기간에 치수사업으로 과거 한양에 존재하지 않던 대규모 주거단지가 새롭게 출현하게 된 셈이다. 이제 여름철 하루 강수량이 300㎜이든 500㎜이든 한강의 범람을 걱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혹여 국지적인 홍수가 발생하더라도 이는 하수관 용량의 문제이지 강 자체가 범람하는 것은 아니다. 간혹 ‘소양강댐 따위는 더이상 필요 없다’며 인프라의 가치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인프라가 없었다면 여름 장마철과 태풍이 올 때마다 내내 홍수와 범람을 걱정하고 봄·가을·겨울 세 계절에는 가뭄을 걱정해야 했을 것이다. 아파트촌으로 변한 한강변에는 사람이 살지 못했을 것이다. 산소 같은 인프라의 소중함, 가끔 생각해 봐야 한다.
  • “대법, 직설적·전향적 판결에 놀라… 이제 안도감 든다”

    “대법, 직설적·전향적 판결에 놀라… 이제 안도감 든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선고를 듣고 법정을 나선 오두진(45·사법연수원37기) 변호사는 담담한 얼굴이었다. 선고 당사자인 오승헌씨를 비롯해 수백명을 변호하는 등 변호사 생활 전부를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위해 일한 그에게 소감을 묻자 “안도감이 든다”는 답이 돌아왔다. 오 변호사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받아준 성숙한 인권의식에 감사드리고, 그런 한국 사회가 자랑스럽다”며 “무죄 확정 판결까지 할 일이 많지만 일단 안도감이 든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1일 오후 대법원 선고 직후 서울 서초동에서 만난 오 변호사는 처음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과 인연을 맺은 2007년을 회상했다. 법원 시보 당시 옆자리 동료가 관련 사건을 맡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평소 인권 보호에 관심이 많던 오 변호사는 피고인 국선변호를 하고 싶다고 담당 판사를 찾아가 부탁했다. 담당 판사는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자청해 국선변호를 맡은 오 변호사를 배려해 피고인을 법정구속하지 않았다. 오 변호사는 “유죄 판결 뒤 바로 법정구속할 때여서 굉장히 감사했다”면서 “그해 말 대법원에 상고할 때 상고이유서에 ‘공개변론을 열어 달라’고 요구했는데 11년이 지나서야 이뤄졌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을 듣고 놀랐다고 했다. 오 변호사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고뇌한 흔적이 보였고,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직설적이고 전향적으로 판단해준 기념비적인 판결”이라고 말했다. 병역법 위반 형사소송을 변호하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입법부작위 소송까지 제기했던 오 변호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광주지법 형사항소부가 처음으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사건이다. 광주지법 형사항소3부(부장 김영식)는 2016년 10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3명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오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궁극적으로 무죄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며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만 기다릴 게 아니라 법원에서 무죄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지만 그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해당 사건이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는 게 첫 번째 임무다. 오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밝힌 ‘깊고, 확고하고, 진실한’ 판단 기준에 피고인이 해당한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변호인의 역할”이라며 “현재 수감된 양심적 병역 거부자 90명에 대해 다시 사면 청구를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김정숙 여사의 인도 단독방문 키워드 ‘허황후와 디왈리’

    김정숙 여사의 인도 단독방문 키워드 ‘허황후와 디왈리’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다음달 4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인도를 방문한다. 현직 대통령의 부인이 단독으로 외국을 찾는 것은 지난 2002년 고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미국 뉴욕을 방문한 이후 16년 만이다. 김 여사의 인도 방문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간곡한 요청으로 성사됐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김 여사는 문 대통령과 함께 지난 7월 인도를 국빈방문한 바 있다. 인도 정부는 김 여사의 두 번째 방문을 국빈 방문에 준해서 준비할 정도로 각별히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김 여사가 인도에서 소화할 일정도 자못 특별하다. 다음달 4일 공군 2호기를 타고 출국하는 김 여사는 이튿날인 5일 뉴델리에서 모디 총리를 만난다. 이어 람 나트 코빈드 대통령의 부인 초청 오찬에 참석한다. 주요 행사는 6일 진행된다. 김 여사는 인도방문 둘째날인 6일 아요디아에서 열리는 허황후 기념공원 기공식에 참석해 기념비에 헌화할 예정이다. 허황후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가락국 초대 왕인 수로왕(김수로)의 부인이다. 지금의 인도를 뜻하는 야유타국(월지국)의 공주로 오빠인 장유화상 등과 배를 타고 가락국에 왔고 왕후가 됐다.거등왕 등 아들 10명을 낳았다고 전해지며 김해 허씨의 시조로 알려졌다. 일부 설화에는 허황후를 통해 인도의 불교가 가락국에 전해졌다는 내용을 담겨져 있다. 허황후 설화는 한국과 인도의 친교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여서 김 여사의 인도 단독 방문에 의미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김 여사는 이어 힌두교 최대 축제인 디왈리(Diwali) 개막식과 점등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디왈리는 10월 중순에서 11월 중순 사이에 5일간 진행되는 축제다. 산스크리트어로 ‘빛의 행렬’을 뜻하는 디왈리는 ‘빛의 축제’라고도 불린다.밝은 빛으로 악을 물리치는 의식에서 비롯돼 디왈리 축제기간 집과 건물 안팎을 전구, 초 등으로 장식하는 풍습이 전해져 온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번 방문은 모디 총리가 김 여사가 디왈리 축제 행사 주빈으로 참석해달라고 초청장을 보내 성사됐다”며 “인도는 신남방정책의 핵심 협력대상국으로, 김 여사 방문에는 인도와의 관계를 더 발전시키려는 우리 정부의 의지가 담겼다”고 말했다. 고 부대변인은 “올해 수교 45주년 맞는 양국은 오랜 역사적·문화적 유대를 토대로 외교안보·무역투자·지역 및 글로벌 이슈 등 모든 분야에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심화시키고 있다”며 “이번 방문은 양국 국민 간 인적·문화 교류를 확대하고 양국 관계 발전을 더욱 심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의병 홍범도·시인 윤동주가 통탄할 너무 매끈히 덧입힌 ‘그날들의 흔적’

    의병 홍범도·시인 윤동주가 통탄할 너무 매끈히 덧입힌 ‘그날들의 흔적’

    러시아 크라스키노에서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훈춘시로 가려면 러시아, 중국 세관을 차례로 거쳐야 한다. 수백여m를 사이에 두고 두 곳은 극명히 비교된다. 낡고 허름한 러시아 세관에 비해 중국 세관은 최신 지문 인식 기계를 도입했고, 규모 역시 수십 배나 된다. 비포장도로도 중국으로 들어서면 매끈한 아스팔트로 바뀐다. 달라진 중국의 모습을 새삼 느낀다.지난 24일 훈춘시에서 하루를 보내고 투먼시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1시간 정도 더 가면 왕칭현 봉오동이다. ‘봉오저수지’라는 한글과 한자를 함께 적은 간판을 지나 10여분을 더 걸어가니 매끈한 화강암으로 만든 ‘봉오동 기념비´가 나온다. 2013년 투먼시 인민정부가 세운 것으로, 글씨 윗부분에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 별 문양이 붙었다. 그 뒤로 100m 정도 떨어진 흙바닥에 1993년 만든 낡은 기념비가 적벽돌 주춧돌을 그대로 드러낸 채 방치돼 있다.두 기념비는 문구가 조금 다르다. 새 기념비는 봉오동전투에 관해 “중국 조선족 반일무장이 여러 민족 인민들의 지지하에 처음으로 일본 침략군과 맞서 싸워 중대한 승리를 거둔 규모가 비교적 큰 전투”라는 부분을 추가했다. 두 개의 기념비에서 중국의 역사관을 어렴풋이 느낄수 있다. 기념비 왼편 계단을 올라 비탈길을 10분 정도 더 가면 봉오동 전적지를 볼 수 있다. 1970년대 후반에 댐을 만들며 많은 지역이 수몰됐지만, 그나마 저수지 너머로 당시 전투지가 남아 있다.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연해주를 비롯해 간도와 만주에서 수많은 독립군 부대가 일어났다. 이들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나들며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일본 정규군과 싸워 최초로 승리한 전투가 바로 봉오동 전투다. ‘나는 홍범도´로 불리는 의병장 홍범도가 이끄는 부대와 난무의 대한국민회군, 최진동의 군무도독부가 연합한 ‘대한북로독군부’가 산에서 매복하다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을 추격한 야스가와 지로 소좌가 이끄는 일본군 19사단의 ‘월강 추격대대’를 격파했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군 전사 157명, 중상 200여명 독립군 전사 4명, 부상 2명이라고 발표했다. 다만 이 숫자에 관해서는 의견이 여전히 갈린다. 버스를 타고 80㎞를 달려 옌지시로 향했다. 한 식당에서 옌볜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학자로 꼽히는 김성호(67·전 조선력사연구소장) 옌볜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그는 1980년대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에서 근현대사를, 1990년대는 인하대에서 조선근현대사를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이 있다. 그에게 봉오동전투 일본군 사상자 수가 왜 불명확한지 묻자 “하나의 역사를 두고 조선, 미국, 중국, 일본이 다 다르게 말했다. 자기 나라에 맞게 부풀리거나 줄이는 사례가 당시에는 흔했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는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전투’에 관해서도 “당시 독립신문이 일본군 2000명이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장소에 직접 가 봤나. 2000명이 누울 자리 있던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과거와 달리 지금도 정권이 앞장서서 그런 식으로 주장하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남북이 갈라진 지금 역사 인식을 통해 분단 사관을 극복해야 한다”며 “안중근 의사, 일본군 위안부, 항일투쟁 등 남북 역사학계가 함께할 수 있는 주제부터 다뤄야 한다”고 충고했다.옌지시에서 룽징시를 향해 1시간 정도 더 달리면 명동학교가 나온다. 명동학교는 ‘간도 대통령’으로 불린 민족운동가 김약연이 세운 학교다. 그는 1908년 간도 명동으로 이주해 한인 집단 촌락을 건설하고, 명동학교를 세워 인재를 길렀다. 윤동주를 비롯해 문익환, 나운규, 송몽규 등이 이곳에서 공부했다. 1929년까지 모두 1200여명의 졸업생이 나왔다. 졸업생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는 윤동주다. ‘명동’, ‘윤동주 생가’라고 쓰인 큰 안내돌을 돌아 마을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윤동주 생가와 마주한다. 1932년 윤동주가 용정 은진학교에 진학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팔려 허물어졌던 것을 1994년 복원했다. 윤동주는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에 편입해 공부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자퇴해 194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도쿄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교토 도시샤대 문학부로 전학했다.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했지만, 항일독립운동으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하다 옥사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게 살기를 바랐던 민족시인의 향취를 이곳에서 느끼긴 어려웠다. 명동촌은 봉오동 전적지와 마찬가지로 ‘연변조선족자치주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돼 관리 중이다. 집 인근에 윤동주의 시가 적힌 금색 조형물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이곳에서 200여m 정도 떨어진 명동학교는 너무 번듯하게 새로 지어놔 어색하기까지 했다. 명동학교에 들어가니 교실에 윤동주 인형을 만들어 사진 촬영용으로 쓰고 있었다. 준수한 얼굴의 인형을 바라보며 실소가 났다. 명동학교의 옛 모습은 간데없고 인공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값싼 관광지를 찾은 느낌만 들었다. 현지 가이드가 ‘중국은 돈 되는 것이라면 뭐든 한다’며 농담을 건넸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명동학교를 나와 가곡 ‘선구자’의 배경이 된 룽징시 비암산의 일송정으로 향한다. 버스를 타고 산 정상까지 오르며 조잡한 관광물을 계속 마주쳐야 했다. 일송정 역시 울긋불긋한 정자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독립운동가들이 바라보며 울분을 달래고 마음을 다잡았던 해란강이 시야에 들어온다. 흔적만 남은 러시아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중국풍으로 바뀐 중국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돌아보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해를 등지고 산에서 내려오며 ‘우리는 그동안 무얼 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글 투먼·룽징(중국)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깨어나라! 오퍼튜니티”…화성 탐사로봇 결국 사망선고 임박

    “깨어나라! 오퍼튜니티”…화성 탐사로봇 결국 사망선고 임박

    먼 우주 화성에서 수면모드에 들어간 상태로 신호가 끊긴 탐사로봇 오퍼튜니티(Opportunity)에 사실상 ‘사망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화성에서 14년 째 탐사를 이어가던 오퍼튜니티는 지난 5월 말부터 화성에 불어온 거대한 모래폭풍을 만난 뒤 신호가 사라졌다. 당시 모래폭풍은 화성의 4분의 1 가량을 뒤덮을 만큼 강력했고, 이 탓에 오퍼튜니티는 지난 6월 10일 통제센터에 마지막 신호를 보낸 뒤 소식이 잠잠했다. NASA 측은 오퍼튜니티가 모래폭풍으로 태양 빛이 차단돼 에너지원이 사라지자, 전력소모를 줄이기 위해 스스로 휴면상태에 들어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9월말 경 화성의 모래폭풍이 완전히 가라앉고 대기가 깨끗해지자, NASA 측은 오퍼튜니티를 깨우기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약 6주간 오퍼튜니티에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오퍼튜니티가 보내는 신호를 받으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노력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NASA 행성과학부(Planetary Science Division) 소속 로리 글레이즈 박사는 “오퍼튜니티를 깨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일을 곧 멈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퍼튜니티가 재가동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배터리(에너지)를 얻기에는 기온이 지나치게 낮다”면서 “앞으로 1~2주 정도만 더 시도해본 뒤 (반응이 없다면) 오퍼튜니티를 깨우는 작업을 중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NASA의 과학자들은 남은 시간동안이라도 오퍼튜니티를 깨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마이크 슈타브 박사는 “최근 며칠 간 (오퍼튜니티를 떠올리면)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았다”면서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퍼튜니티는 2004년 1월 24일 밤 화성 메리디아니 평원에 도착한 뒤 14년 간 화성의 곳곳의 모습과 생태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기념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기념비만 남긴 항일기지 ‘신한촌’… 핏방울처럼 맺힌 광복의 혼

    기념비만 남긴 항일기지 ‘신한촌’… 핏방울처럼 맺힌 광복의 혼

    3·1절 1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항일독립운동에 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발원지였던 러시아와 중국 지역은 사실상 잊힌 상태다. 통일을 바라보는 지금, 북한 접경 지역인 이곳을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서울신문은 한민족평화나눔재단과 새에덴교회가 주최한 ‘연해주·동북 3성 항일독립 유적지 한민족순례’에 동행해 항일운동의 발자취를 좇았다지난 22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 40분을 날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했다. 10월 중순을 넘겼지만 바람이 선선했다. 먼저 독립운동가들의 근거지였던 ‘신한촌’으로 향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 루스키섬 방향으로 50여분 떨어진 라게르산 정상에 있다. 검은색 철 울타리에 둘러싸인 이곳에는 직사각형 모양 3.5m짜리 기둥 3개와 네모난 돌 8개가 자리한다. 3개의 기둥은 남북한과 재외동포를, 8개의 돌은 조선 8도를 각각 상징한다. 3·1 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1999년 8월 15일 해외한민족 연구소가 한국에서 석재를 가져와 세웠다. 연해주 지역에는 1863년 한국에서 건너온 13가구가 지신허에 자리를 틀며 한인이 점차 늘기 시작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에는 국내외 애국지사들이 이곳에 결집했다. 새로운 한국이란 이름의 ‘신한촌’은 1911년 5월 구개척리에 거주하던 한인들이 블라디보스토크로 와 건설했다. 연해주 한인들의 자치기관이었던 권업회와 한민회, 한민학교 등이 생겨나며 항일독립운동의 전진기지가 됐다.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이주 때까지 연해주에 한인들이 17만명이 넘게 있었고 신한촌에만 1만여명이 거주했다고 알려졌다. 고향을 등지고 이곳으로 와 치열하게 살며 항일운동을 펼쳤지만, 지금은 기둥 세 개짜리 탑만 흔적으로 서 있다. 철 울타리에 걸린 태극기 정도가 이곳에 한인촌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4㎞ 정도 떨어진 곳에는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이 있다. 모스크바까지 꼬박 1주일이 걸리는 전체 길이 9288㎞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시작 역이다. 강제로 낯선 곳으로 향하는 열차에 태워진 채 이주당한 고려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북쪽으로 100㎞ 떨어진 우수리스크로 향하는 밤 동안 머릿속에 당시 풍경이 그려졌다.다음날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연해주 한인 동포들이 우리 문화를 지키고 친선을 도모하고자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을 기념해 2009년 건립한 박물관이다. 입구 오른쪽에 ‘인류의 행복과 미래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라는 글귀가 적힌 추모비가 서 있다. 현지 가이드는 “블라디보스토크 의과대 학장이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해 만들었는데, 학장이 바뀌면서 학교에서 버린 것을 7년 전쯤 가지고 왔다”고 설명했다.고려문화센터를 나와 볼로다르스카야 38번지에 들렀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이 살던 집이다. 고려문화센터에서 3㎞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한국 정부가 10년쯤 전 사들여 현재 기념관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1860년 함경북도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최재형 선생은 아홉 살 때 연해주 지신허로 와 정착했다. 이후 열한 살에 가출했다가 포시예트 항구에서 만난 러시아 선장의 배려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지식인으로 거듭났다. 많은 돈을 번 그는 크라스키노 연추 마을에 첫 한인 자치기관을 설립하고 한인들을 돕기 시작한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때에는 빨치산을 조직하기도 했다. 최재형 선생의 집에서 1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왕바실재 언덕에 다다른다. 최재형 선생은 1920년 4월 5일 일본군의 빨치산 토벌로 이곳에 끌려와 재판 없이 총살당했다. 한인과 러시아인 240여명이 이곳에서 잔혹하게 죽었다. 이른바 ‘4월 참변’이다. 10분 남짓 언덕을 올라 마을을 내려다봤다. 함께한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이 하모니카를 꺼내 아리랑을 연주했다. 동행한 고려인들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하게 젖었다. 소 이사장은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이곳을 유적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별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최재형 선생 집에서 5㎞ 정도 떨어진 수이푼 강변에는 이상설 선생 유허지가 있다. 이상설 선생은 1907년 헤이그 특사, 1914년 결성된 대한광복군 정부 대통령으로 잘 알려졌다. 고종의 밀지를 받아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에 국권회복을 위해 파견됐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에도 활발하게 항일운동을 하던 그는 1917년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병사했다. ‘내가 죽거든 불태워 유해를 강에다 뿌려 달라’던 유언대로 그의 유해는 이곳 수이푼 강변에 뿌려졌다. 연해주에서 190㎞ 정도 떨어진 크라스키노에는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가 있다. 높이 4m 정도 큰 비석에 ‘1909년 3월 5일경 12인이 모이다’, 높이 1m 정도 작은 비석에는 ‘2001년 8월 4일 102년이 지난 오늘 12인을 기억하다’라고 쓰여 있다. 애초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2001년 10월 크라스키노 추카노프카 마을 강변에 기념비를 세웠지만 물에 잠기고 현지인들이 훼손하는 사례가 잦았다. 비석을 옮긴 지역이 국경지대로 편입되면서 러시아 당국의 허가 없이는 출입할 수 없게 돼 지금 위치로 이전했다. 사방이 허허한 벌판에 핏방울 모양의 비석이 홀로 서 있다. 목숨 바쳐 항일운동을 펼친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잊힌 역사인가, 아니면 잊은 역사인가. 중국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차디찬 바람에 가슴이 시렸다. 글 사진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러시아)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JSA 관광객 이르면 새달 자유 왕래…‘민사경찰’ 완장 차고 내부 공동경비

    JSA 관광객 이르면 새달 자유 왕래…‘민사경찰’ 완장 차고 내부 공동경비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라 25일부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의 무기와 초소가 모두 철수되면서 비무장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JSA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Q&A 방식으로 알아본다.→관광객들이 바로 자유로운 JSA 왕래를 할 수 있나. -당장 가능하지는 않다. 비무장화에 따라 월북·월남 등 돌발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만큼 남북·유엔사 3자협의체에서 이에 대한 추가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관련 대책이 마련되고 근무형태에 대한 논의가 완료된 다음 이르면 다음 달부터 자유로운 관광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JSA에서 근무하는 남북 병사는 25일부터 총을 소지하지 않게 되는 것인가. -그렇다. 남북과 유엔사는 26일부터 공동 검증을 통해 상호 무기의 철수 여부를 꼼꼼히 검증할 계획이다. →판문점 남측 지역에 있는 ‘도끼 만행 사건’ 추모비와 북측 지역에 있는 김일성 친필비는 그대로 두나. -두 기념비는 현재의 상태로 보존될 것으로 보인다. JSA 북측 지역 판문각 왼쪽에 세워진 김일성 친필비는 북한에서 상징성을 지닌 것이다. JSA를 방문한 북한 관광객은 이곳에서 반드시 참배를 해야 할 정도다. 남측에는 도끼 만행 사건 관련 미루나무가 있던 자리에 나무의 터와 당시 사망한 미군을 추모하는 비석이 있다. 미군도 아직 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앞으로 양 기념물이 철거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남북의 관광객도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향후 이를 피해 관광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비무장화된 병력은 어떻게 근무하게 되나. -26일부터는 JSA에서 모든 인원이 철수하고 잠시 JSA 바깥에 위치한 초소에서 근무하게 된다. 이어 남북·유엔사 3자협의체가 26~27일 양일간 무기 철수에 대한 공동 검증을 마치고 근무 형태 등에 대한 논의가 완료되면 다시 JSA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공동 경비를 하게 된다. 예정대로 이달 말까지 남한군 초소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 지역에 새로 설치되고 남한 지역 판문점 입구에는 북한군 초소가 새로 설치되면 남과 북의 군인이 인접한 거리에서 근무한다. 협의 진전 여부에 따라 예정보다 시기가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3자협의체에서 경계근무 방식, 임무 등이 구체적으로 결정되면 남북 각각 35명의 장병이 팔에 ‘판문점 민사경찰’이란 완장을 차고 판문점 내부를 돌아다니며 경비를 한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조용필 50주년 기념 메달 공개, 어떻게 생겼나 보니...5050개 한정판

    조용필 50주년 기념 메달 공개, 어떻게 생겼나 보니...5050개 한정판

    가수 조용필 데뷔 50주년을 기념하는 메달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23일 한국조폐공사는 ‘가왕 조용필 데뷔 50주년 기념 메달’ 공개 기념식을 열고, 기념 메달을 공개했다. 조폐공사 측은 이날 행사에서 “한류라는 국가 브랜드 확산에 기여하고자 국내 대중음악에서 기념비적인 역할을 한 조용필을 주인공으로 기념 메달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조용만 조폐공사 사장은 “이번 기념 메달이 ‘한류 문화’ 확산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멋과 문화를 담은 고품격 메달을 선보여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데 힘쓰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조용필도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이날 자리에 함께했다. 그는 “처음에 연락이 왔을 때 너무 놀랐고 의아했던 것 같다. 주화라는 것은 역사에서 특별한 사람들, 세종대왕 같은 분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의 기념 메달을 만든다고 하니 ‘해도 되는 건가’란 걱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데뷔 50주년 소감으로는 “50주년이 긴 시간이지만 너무나 빨리 지나간 것 같다.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남은 시간에 음악을 열심히 하겠다. 감사드린다”고 전했다.한편 이날 조폐공사가 공개한 조용필 50주년 기념 메달은 ‘무대 위의 가수 조용필’을 표현한 것으로, 앞면에는 조용필이 공연하는 모습이 담겼다. 특히 그의 시그니처인 기타, 마이크, 선글라스가 함께 새겨졌다. 뒷면에는 위조 방지를 위한 잠상과 50주년 기념 엠블럼이 담겼다. 해당 메달은 총 5050개 한정 수량으로 제작돼 판매된다. Δ 고급형I(금, 중량 31.1g, 순도 99.9%, 직경 40mm, 가격 275만 원) Δ고급형II(금, 중량 15.55g, 순도 99.9%, 직경 28mm, 가격 143만 원) Δ콜렉션형(은, 중량 31.1g, 순도 99.9%, 직경 40mm, 가격 16만 5000원) 등 3종으로, 디자인은 동일하되 사이즈와 패키지가 다르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는 11월 4일까지 조폐공사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예약 접수를 진행한다. 판매 수익금 중 일부는 문화 진흥 발전에 쓰일 예정이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김정은 위원장에게 최인훈의 ‘광장’ 읽기를 권함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김정은 위원장에게 최인훈의 ‘광장’ 읽기를 권함

    확실히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화법과 태도는 자신의 할아버지나 아버지 같은 이전의 북한 지도자들과는 달랐다. 그것은 스스로 속한 체제의 한계와 부족한 점을 깨달은 자의 시선이자, 남한의 복잡한 정치적 지형을 이해한 자의 자세였다.이를테면, 그가 북한 인프라의 미비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거나 “많은 사람이 답방을 가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가겠습니다. 태극기부대(가) 반대하는 것 조금 있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라며 서울 방문을 수락하는 대목이 그렇다. 적어도 그의 이런 발언에는 역지사지의 정신이 배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상대방의 마음과 입장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면에서는 여느 정치가보다도 비범한 능력을 지녔다. 그의 지난 평양 연설(2018년 9월 19일)은 상대방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평화를 향한 강렬한 소망을 드러낸 기념비적인 시간이었다. 두 사람의 이런 마음과 노력이 2018년 남북평화와 대화의 획기적 진전을 가져온 중요한 요인이리라.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실 ‘역지사지’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있어야 한다. 상대에 대한 어떤 환상도 가질 필요가 없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깊게 각인된 상대에 대한 선입견과 맹목적 분노에서 탈피하는 결단과 용기도 필요하다. 서로 문화적 차이, 전통, 역사에 대한 밀도 깊은 이해, 바로 그만큼만 남북대화와 평화도 진전될 수밖에 없을 테다. 그런 과정에 비약과 공짜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남북한의 지도자에게 올해 여름 밤하늘의 별이 된 이 땅의 귀한 작가 최인훈의 대표작 ‘광장’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북한의 김 위원장에게 ‘광장’을 간곡한 마음으로 추천한다. 이 작품만큼 해방 직후 남과 북의 현실에 대해 서늘하게 성찰하고 깊게 사유한 소설은 달리 없다. 당시 남북의 문화적 차이가 생성되는 역사의 기원과 생생한 풍속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남과 북의 현실에 모두 절망해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중립국행을 선택한다. 그에게 당시 남한은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은 곳이며 친일파가 “인민들을 호령하”는 곳이다. 동시에 그는 북한에서 “잿빛 공화국”을 목도하며 “이게 무슨 인민의 공화국입니까? 이게 무슨 인민의 소비에트입니까?”라고 반문한다. 그곳은 “개인적인 ‘욕망’이 터부로 되어 있는 고장”이었던 것이다. 결국 ‘잿빛 광장’(북)과 ‘부패한 밀실’(남)에 모두 깊은 환멸을 느낀 이명준은 “부드러운 가슴과 젖은 입술을 가진 인간”, 즉 연인과의 사랑에 기댄다. “이 다리를 위해서라면,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모든 소비에트를 팔기라도 하리라”고 되뇌는 이명준의 독백은 남과 북의 현실에 절망해 연인의 품과 육체를 선택한 자의 쓰라린 실존을 참으로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명준의 고뇌와 절망, 저 도저한 개인주의의 표정을 김 위원장이 각별한 마음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은 자신이 속한 체제의 현황과 한계, 남과 북의 차이에 대해 또렷이 인식하는 시간이기도 할 테다. 이러한 상호이해의 도정을 통해 이 땅의 평화는 한 걸음 더 진전하게 되지 않을까. 지난주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 대통령에게 “멈추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서로의 차이에 대한 면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광장’ 읽기는 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창문이 될 수 있다. 저세상에 계신 최인훈 작가가 때로 설레는 마음으로, 때로 불안한 심정으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 방탄소년단 앞에 ‘유럽 장벽’ 없었다

    방탄소년단 앞에 ‘유럽 장벽’ 없었다

    ‘밤샘 텐트’ 등장… 팬 실신 소동도방탄소년단이 북미 투어에 이어 케이팝 불모지로 알려진 유럽에서도 전 세계적인 ‘BTS 신드롬’을 확인했다. 유럽 특유의 배타적 문화 수용이라는 진입 장벽을 방탄소년단이 완벽하게 허물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2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아코르호텔스 아레나에서 ‘러브 유어셀프’ 유럽투어 피날레를 장식했다. 지난 9일 영국 런던 공연을 시작으로 유럽 투어에 나선 이들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독일 베를린 등 유럽 4개 도시에서 7회 공연을 통해 10만 관객을 만났다. 매회 공연 티켓은 예매와 동시에 매진됐다.공연장을 꽉 채운 관중은 한국어 노랫말을 ‘떼창’했고, 파리에선 방탄소년단을 실제 봤다는 감격에 실신한 팬도 있었다. 베를린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 앞에는 미국 뉴욕 시티필드에서처럼 열성 팬들의 밤샘 텐트가 들어섰다. 특히 팝시장 양대 산맥인 영국에서 2만석 규모의 O2 아레나 이틀 연속 공연을 한 것은 기념비적 의미를 갖는다. 이곳은 영국 최고 권위 대중음악상인 ‘브릿 어워즈‘가 열리는 곳이며 프린스, 콜드플레이, 아델, 저스틴 비버 등 세계적인 팝스타가 공연한 무대다. 아시아계 보이그룹에 열광하는 현지 팬들의 모습은 새로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영국 BBC는 방탄소년단을 “21세기 비틀스이자 글로벌 팝 센세이션”이라고 소개하며 “전 세계 음악계에서 가장 큰 존재”라고 평가했다. 가디언 역시 “서양 음악 산업의 최정상에 도달한 첫 한국 그룹”이라며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그들의 심리를 그대로 가사에 담아 그들이 속한 세대를 변호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AFP통신은 이틀간의 파리 공연 티켓이 매진된 것에 대해 “이런 흥행 성적은 롤링스톤스, 폴 매카트니, 마돈나, 비욘세와 같은 앵글로 색슨계 슈퍼스타들에 국한된 것이었다”고 진단했다.방탄소년단은 영국 최고의 심야 토크쇼인 BBC ‘더 그레이엄 노튼 쇼’에 출연해 미국 타임의 글로벌 표지 장식, 유엔 정기총회 연설 등 다양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케이팝 가수의 유럽 진출 가능성이 대외적으로 확인된 것은 2011년 SM엔터테인먼트가 파리에서 ‘SM타운 라이브’를 열었을 때다. 이후 케이팝은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유럽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얻었고 여러 아이돌들의 유럽 공연이 잦아졌다. 그러나 세계적인 톱스타급 ‘티켓 파워’를 과시한 것은 방탄소년단이 최초라고 평가받는다. 유럽 투어를 마친 방탄소년단은 24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리는 ‘2018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화관문화훈장을 받는다. 이어 다음달 13~14일 일본 도쿄돔, 21일, 23~24일 오사카 교세라돔 무대에 오르고 대만, 싱가포르, 홍콩, 태국 등에서 내년 4월까지 월드 투어를 이어 간다. 지난 8월 25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포문을 연 투어는 전 세계 20개 도시 41회 공연 규모로 진행된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세계 최장 해상다리 중국 강주아오 대교 23일 개통

    세계 최장 해상다리 중국 강주아오 대교 23일 개통

    9년 간의 공사 끝에 완공된 세계 최장 55㎞의 해상 다리 및 해저터널인 강주아오 대교의 준공식이 오는 23일 열린다. 중국 홍콩-주하이-마카오 세 개 도시를 잇는 강주아오 대교 준공식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홍콩 명보는 시 주석이 빠르면 20일 준공식이 열리는 광둥성으로 갈 예정이며, 강주아오 대교는 22일 시범적으로 개통될 것이라고 전했다. 시 주석이 참석하는 준공식 장소는 광둥성 주하이항 인공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하이 공안은 지난 2주에 걸쳐 보안 설비를 갖췄다. 시 주석은 준공식 참석과 함께 광저우 명문대인 중산대도 찾을 것으로 관측되지만 중국에서 최고 지도자의 일정은 극비에 속하는 만큼 구체적인 내용은 보도되지 않았다. 2007년 선전에서 열린 강주아오 대교의기공식에는 후진타오 전 주석이 참석했었다. 강주아오 대교는 중국 정부의 대만구(大灣區, Great Bay Area) 프로젝트의 기념비와 같은 사업으로, 홍콩·마카오와 광둥성 9개 도시를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항마로 키운다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강주아오 대교 개통으로 홍콩과 주하이, 마카오는 각각 자동차로 한 시간 안에 연결된다. 덕분에 홍콩 관광산업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주하이 공항에서 홍콩 첵랍콕 공항까지도 자동차로 기존 4시간 거리에서 45분 거리로 단축된다. 강주아오 대교는 홍콩 국제공항에서 시작해 인공섬 2개와 해저터널을 통과하며 마카오까지 이어지며 홍콩에서 마카오까지 배로 한 시간 걸리던 이동시간은 45분으로 단축된다. 해저터널의 깊이는 수심 44m에 이른다. 공사비는 약 17조원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시 주석의 준공식 참석은 1978년 시작된 중국 개혁개방 성과를 과시하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광둥성의 궁벽한 어촌이었던 선전을 첫 번째 경제특구로 지정하면서 시작된 개혁개방은 중국 사회주의 경제를 세계 두 번째 규모로 키워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세계 최장 해상다리 중국 강주아오 대교 23일 개통

    세계 최장 해상다리 중국 강주아오 대교 23일 개통

    9년 간의 공사 끝에 완공된 세계 최장 55㎞의 해상 다리 및 해저터널인 강주아오 대교의 준공식이 오는 23일 열린다. 중국 홍콩-주하이-마카오 세 개 도시를 잇는 강주아오 대교 준공식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홍콩 명보는 시 주석이 빠르면 20일 준공식이 열리는 광둥성으로 갈 예정이며, 강주아오 대교는 22일 시범적으로 개통될 것이라고 전했다. 시 주석이 참석하는 준공식 장소는 광둥성 주하이항 인공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하이 공안은 지난 2주에 걸쳐 보안 설비를 갖췄다. 시 주석은 준공식 참석과 함께 광저우 명문대인 중산대도 찾을 것으로 관측되지만 중국에서 최고 지도자의 일정은 극비에 속하는 만큼 구체적인 내용은 보도되지 않았다. 2007년 선전에서 열린 강주아오 대교의기공식에는 후진타오 전 주석이 참석했었다. 강주아오 대교는 중국 정부의 대만구(大灣區, Great Bay Area) 프로젝트의 기념비와 같은 사업으로, 홍콩·마카오와 광둥성 9개 도시를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항마로 키운다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강주아오 대교 개통으로 홍콩과 주하이, 마카오는 각각 자동차로 한 시간 안에 연결된다. 덕분에 홍콩 관광산업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주하이 공항에서 홍콩 첵랍콕 공항까지도 자동차로 기존 4시간 거리에서 45분 거리로 단축된다. 강주아오 대교는 홍콩 국제공항에서 시작해 인공섬 2개와 해저터널을 통과하며 마카오까지 이어지며 홍콩에서 마카오까지 배로 한 시간 걸리던 이동시간은 45분으로 단축된다. 해저터널의 깊이는 수심 44m에 이른다. 공사비는 약 17조원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시 주석의 준공식 참석은 1978년 시작된 중국 개혁개방 성과를 과시하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광둥성의 궁벽한 어촌이었던 선전을 첫 번째 경제특구로 지정하면서 시작된 개혁개방은 중국 사회주의 경제를 세계 두 번째 규모로 키워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한 권에 담은 ‘1200년 역사’ 하동 야생차 나무 특성

    한 권에 담은 ‘1200년 역사’ 하동 야생차 나무 특성

    재배 역사가 1200년에 이르는 경남 하동지역 야생차 나무의 특성 등을 분석한 연구서가 발간됐다.하동녹차연구소는 17일 ‘우리나라 산림자원 차나무 특성평가 보고서’라는 야생차 연구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화개면 지역 야생차나무를 비롯해 국내에 자생하는 야생차 나무의 잎 색깔과 잎 모양 등 24개 항목에 대한 특성을 연구·분석한 결과다. 보고서에는 형태학적 미세형질 사진, 생태적 특성, 차나무 형태·번식·이용특성·주요성분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차나무 자생지의 생육환경 특성조사를 통해 분석한 일반적인 환경과 기후적 요인, 차나무 수집지의 토양 분석 등도 있다. 연구소는 이를 바탕으로 화개면 지역에서 수집된 특이적 야생 차나무 117개체도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차 역사는 ‘삼국사기’에 ‘(서기 828년) 당나라 사신으로 간 대렴이 차 씨를 가져와 왕의 명령에 따라 지리산에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화개지역은 당시 차나무가 도입된 된 1200여년간 재배되고 있다. 차인들은 화개면 정금리 지역에 차 시배지 기념비를 세우고 매년 헌다례를 지낸다. 하동 차나무는 천년이 넘는 동안 재배·생육되면서 자연 교잡과 돌연변이가 거듭돼 유전적 다양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하동 전통 야생차농업은 지난해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돼 역사적·문화유산 보존 가치가 높아졌다. 황정규 유전자원개발실장은 “이번 연구는 하동 야생차나무의 특성을 보다 실증적으로 연구·분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1200년 재배역사 하동 야생차 연구·분석한 야생차 연구서 발간

    1200년 재배역사 하동 야생차 연구·분석한 야생차 연구서 발간

    재배역사가 1200년에 이르는 경남 하동지역 야생차 나무의 특성 등을 자세히 연구·분석한 야생차 연구서가 발간됐다. (재)하동녹차연구소는 17일 ‘우리나라 산림자원 차나무 특성평가 보고서’라는 제목의 야생차 연구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이 책은 하동녹차연구소가 화개면 지역 야생차나무를 비롯해 국내에 자생하는 야생차 나무의 잎색깔과 잎모양 등 24개 항목에 대한 특성을 연구·분석한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다. 보고서에는 차나무 기본정보와 주사전자현미경을 이용한 형태학적 미세형질 사진, 주요 병충해을 비롯한 생태적 특성, 차나무 형태·번식·이용특성·주요성분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차나무 자생지의 생육환경 특성조사를 통해 분석한 일반적인 환경과 기후적 요인, 차나무 수집지의 토양 분석 등에 관한 자료도 첨부돼 있다. 하동녹차연구소는 이같은 연구·분석 정보를 바탕으로 화개면 지역에서 수집된 특이적 야생 차나무 117개체에 대한 형태적 특성을 연구·분석해 보고서에 소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차 역사는 ‘삼국사기’에 ‘당나라 사신으로 간 대렴이 차 씨를 가져와 왕의 명령에 따라 지리산에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화개지역은 서기 828년 차나무가 도입된 된 1200여년간 재배되고 있으며 최근 한국 차인들이 중심이 돼 화개면 정금리 지역이 차의 시배지임을 알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매년 헌다례를 지내며 기념하고 있다. 하동 차나무는 천년이 넘는 동안 재배·생육되면서 자연 교잡과 돌연변이가 거듭돼 차나무 유전적 다양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하동 전통 야생차농업은 지난해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돼 역사적·문화유산적 보존 가치가 높아졌다. 하동녹차연구소는 2012년 5월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로부터 ‘산림생명자원 관리기관’으로 지정됐다. 황정규 유전자원개발실장은 “이번 연구는 하동 야생차나무의 특성을 보다 실증적으로 연구·분석해 파악했다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황 실장은 “녹차연구소에서 국내육성 차 품종의 경남지역 재배 특성평가 및 하동지역 고유의 제다법을 활용한 가공 특성 등에 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어 국내 자생 차나무 자원의 주권강화와 신품종 육성 등에 널리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삼일공원에 역사체험공간 만든다

    주민참여예산으로 무궁화동산 등 조성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서울 동작구가 삼일공원 재단장에 나선다. 동작구는 사당로에 자리한 삼일공원을 오는 12월까지 역사적 의의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꾸민다고 15일 밝혔다. 삼일공원은 한국 최초의 여기자로 알려진 고 최은희(1904~1984) 기자가 1967년 한 일간지에 독립공원 설립을 제안하는 글을 기고하면서 조성된 곳이다. 1989년 공원으로 지정되며 독립선언서 기념비, 국기 게양대, 어린이 놀이터 등이 설치돼 주민들의 쉼터가 돼 왔다. 구는 내년이 3·1운동 100주년이라는 점에 주목, 당초 공원을 만든 취지를 되살리고 애국의 의미를 퍼뜨리기 위해 주민참여예산으로 재단장을 추진한다. 공원 안에는 무궁화동산이 새로 들어서고 3·1운동에 대한 내용을 공유할 수 있는 회전·퍼즐 안내판, 태극기, 바람개비 등의 설치물들이 세워진다. 이는 지난 7월 주민설명회에서 주민들이 직접 제안한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또 사당3동 남성초등학교 진입로에 해당하는 약 100m 길이의 공원 옹벽에는 3·1운동을 테마로 한 타일 벽화를 꾸며 역사가 깃든 통학로를 만든다. 이를 통해 구는 삼일공원이 인근 주민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이나 학생들에게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체험할 수 있는 테마공원으로 자리할 것으로 기대한다. 김원식 공원녹지과장은 “이번 사업을 통해 삼일공원이 주민들이 산책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나라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 자리매김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文대통령, 146명 기마대 호위 받으며 샹젤리제 1㎞ 퍼레이드

    文대통령, 146명 기마대 호위 받으며 샹젤리제 1㎞ 퍼레이드

    개선문 환영식 뒤 한국전 참전용사 만나 엘리제궁 공원 걸으며 정상간 환담 나눠 2년 만에 한국 대통령 국빈 방문 이례적 같은 시기 닮은꼴 당선 마크롱 의지 반영 김정숙·브리지트 여사 루브르 함께 방문프랑스를 국빈방문(13~16일)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오후 개선문에서 공식 환영식을 갖고 본격적인 정상외교 일정에 돌입했다. 프랑스는 해마다 국빈방문을 2~3개국만 ‘엄선’해서 접수하는데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프랑스를 방문했던 점을 감안하면 한국 대통령이 2년 만에 국빈 자격으로 이곳을 찾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같은 시기에, 닮은 모습으로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프랑스 정부 대표들의 영접을 받은 문 대통령은 의장대를 사열한 뒤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했다. 이어 6·25전쟁 참전용사 기념동판으로 이동해 공식 환영식에 참석한 프랑스의 참전용사와 후손들을 격려하고, 이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6·25전쟁에 참전한 프랑스군은 3421명으로 이 가운데 262명이 전사했다. 문 대통령은 공식 환영식 이후 프랑스 국가헌병대 공화국수비대 기병연대의 호위를 받으며 샹젤리제 거리에서 카 퍼레이드를 벌인 뒤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으로 향했다. 146마리의 말로 구성된 기마대와 경찰 차량 28대가 샹젤리제 거리 1㎞ 구간에서 문 대통령을 호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당초 두 정상은 엘리제궁 이전에 파리 마레지구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비에서 첫 만남을 가질 예정이었다. 100m가량을 함께 걸은 뒤 센강 변의 카페에서 환담을 나눌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남프랑스 오드 지방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1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추모 분위기를 감안해 카페 방문을 취소했다. 대신 엘리제궁 공원에서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이날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와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했다. 김 여사는 프랑스의 대표적 브랜드인 샤넬의 검정색 트위드 재킷을 입어 눈길을 끌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국 전통문화에 호감을 가진 샤넬 수석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2015년 ‘한복에 대한 오마주’를 주제로 서울에서 열었던 무대에 선보였던 의상으로 검정색 바탕에 ‘한국’ ‘서울’ ‘코코’ ‘샤넬’ 등의 한글을 흰색으로 직조한 특별한 원단”이라고 설명했다. 김 여사는 마크롱 대통령 내외의 환대에 사의를 표하고자, 이 재킷을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두 여사는 루브르 박물관이 지난해 전주 한지를 활용해 복원한 18세기 고가구 ‘막시밀리안 2세의 책상’을 관람했다. 과거에는 유사 작업에 일본 화지(和紙)가 사용됐지만, 최근 한지의 우수성이 인정돼 복원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김 여사는 “전주 한지는 닥나무 껍질로 만들어 견고하고 수명이 길다. 앞으로도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분단의 시간을 넘어 돌아오다- 통영 윤이상 기념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분단의 시간을 넘어 돌아오다- 통영 윤이상 기념관

    “나의 아이들아, 나는 스파이가 아니다.” 1969년 윤이상(1917-1995)은 고문실 유리재떨이로 숨을 끊고자 하였다. 머리가 터져 흘러내린 피로 벽에 유언을 적는다. 자살은 실패한다. 동백림 사건, 혹은 동베를린 사건이라고 불리는 간첩단 사건을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다. 말인즉슨 194명의 독일, 프랑스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넘나들며 간첩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처음 사형 선고를 받았던 윤이상은 1967년 12월 13일 1차 공판에서 무기징역, 재심·삼심에서 감형을 받은 뒤 1969년 2월 25일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다. 이후 그는 조국을 떠났다. 그리고 살아서는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죽어서야 맡을 수 있었던 고향의 바다 내음. 2018년 대한민국은 그를 품었다. 통영의 윤이상 기념관이다. 1970년대 유럽에서 윤이상은 이미 세계적인 음악가였으며 생존하는 유럽 5대 작곡가로 꼽힐 정도였다. 윤이상 음악의 시작은 1959년 다름슈타트(Darmstadt)에서 초연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이었는데 이 공연이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유럽 현대음악계에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는다. 그는 동양 음악의 특징인 '주요음(Hauptton)' 기법과 주요음향 (Hauptklang) 기법을 도입하였는데, 이런 방식은 점과 점의 연결을 기본으로 하는 서양 음악과는 달랐다. 한자(漢字)의 획과 부수 개념을 응용한 음의 굵기로 높낮이를 조절하는 그의 음악적 세계는 한계에 다다른 서양 음악 에 새로운 지평을 넓혀준다. 그가 1966년 도나우에싱엔(Donaueschingen) 음악제에서 발표한 <예악>의 '주요음' 기법은 기존 서양 음악 세계에서는 크나큰 충격 그 자체였다. 이후 윤이상은 1969년부터 1970년까지 하노버 음악대학에서 1977년부터 1987년까지는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수상경력도 화려해서 1988년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훈장, 1992년 함부르크 자유예술원 공로상, 1995년 괴테 메달까지 받은 그였지만 조국은 냉정하였다. 대한민국은 그가 작곡한 음악의 국내 연주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결국 1995년 11월 3일 폐렴으로 생을 마감한 윤이상은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23년이 지난다. 2018년 3월 20일 통영 국제 음악당 언덕에 그의 유해는 조용히 이장된다. 그리워하던 통영의 푸른 바다를 맘껏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고단한 생과 사의 이력이 고향에서 끝을 맺었다. 현재 윤이상 기념공원 1층과 2층에 마련된 전시실에는 윤이상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가 작곡하던 방을 본 뜬 공간과 생전에 사용하던 유품들을 통해 관람객들은 인간 윤이상을 만날 수 있고 진본 악보와 악기를 비롯한 귀중한 전시품들을 통해 음악가 윤이상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야외에는 기념비와 아울러 호수 및 정원, 야외 공연장이 마련되어 있어 윤이상 기념공원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작은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윤이상 기념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통영을 들러 시간이 넉넉히 남는다면 2. 누구와 함께? - 가족, 혼자라도 3. 가는 방법은? - 경남 통영시 중앙로 27(도천동 150-4)/644-1210(055) 윤이상 기념공원 내 4. 감탄하는 점은? - 윤이상의 진품 유물들, 악보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조용한 곳이다. 아직은. 6. 꼭 봐야할 장소는? - 전시관 2층에 마련된 윤이상 선생의 유품들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알쓸신잡의 ‘분소식당’, 멍게비빔밥 ‘대풍관’, 물회 ‘통영해물가’, 복어 ‘만성복집’, 시래기국 ‘원조시락국’, 해물뚝배기 ‘통영식도락’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timf.org/memorial/submain_memorial.do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박경리 문학관, 스카이루지, 케이블카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이념과 분단의 시간을 넘어 예술의 혼을 불태운 순수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남아 있는 곳.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文대통령 있게 한 ‘장진호 전투’ 추모식서 “한·미동맹 평화여정 계속”

    文대통령 있게 한 ‘장진호 전투’ 추모식서 “한·미동맹 평화여정 계속”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피로 맺어진 (한·미)양국 국민 간 깊은 인연과 우정이 평화를 향한 동행으로 이어졌고, 평화를 위한 한·미동맹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제3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식에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대독한 추모사를 통해 “저는 오늘 영웅들의 영전에 ‘이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다시 한 번 깊이 추모한다”며 이렇게 밝혔다. 장진호 전투는 6·25전쟁 당시 동부전선의 미 제1해병사단이 중공군 7개 사단 규모가 포위한 장진호 계곡을 벗어나기 위해 1950년 11월 말부터 2주간 전개한 철수 작전이다. 중공군의 함흥 진입을 2주간 지연시키면서 흥남 철수가 가능했고, 미군 제공 선박을 통해 9만여명의 민간인이 남쪽으로 피난하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가능했다. 당시 흥남에 살던 문 대통령의 부모와 젖먹이였던 누이도 미군 LST(병력이나 전차를 상륙시키는 함정)에 타고 경남 거제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은 “장진호 전투는 위대한 승리였고 수많은 피난민을 살려낸 인류애의 현장이었다”며 “고립된 가운데 10배에 달하는 적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10만여 피난민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함께했던 용기 있는 행군이 위대한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만들었고, 오늘 한반도 평화의 첫걸음이 됐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남북정상회담과 역사적인 미·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치러졌고, 지난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전쟁 없는 한반도의 시작을 알렸다”며 “조만간 열릴 2차 미·북정상회담을 통해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고 영원한 평화를 선언한다면 장진호 전투의 희생이 얼마나 가치 있는 희생이었는지 전 세계에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취임 후 첫번째 미국 방문 때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워싱턴의 장진호 전투기념비에 헌화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장진호 전투를 언급하며 “그야말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다”며 “2년 후 미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도착한 거제에서 제가 태어났고, 오늘 이렇게, 미군이 구출했던 피난민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어 여러분과 만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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