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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LA 베벌리힐스선 2021년부터 담배 못 산다

    미 LA 베벌리힐스선 2021년부터 담배 못 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소도시 베벌리힐스 시의회가 담배 및 담배류 제품 판매를 금지하는 조례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고 CNN 등이 5일(현지시간) 전했다. 시의회가 통과시킨 조례는 2021년 1월 1일부터 베벌리힐스시 관내에 있는 주유소, 편의점, 식료품점 등에서 궐련형 담배, 시가, 씹는 담배, 파이프 담배, 전자담배 등의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기존에 베버리힐스에서 이들 제품 판매를 허가받은 28곳 가운데 3곳의 시가 라운지와 호텔을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은 담배 판매 금지로 인한 영업 손실을 이유로 조례에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시의회는 3년 후 이번 조례가 관광업에 미친 영향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베벌리힐스시는 웨스트할리우드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캠퍼스 사이에 자리 잡은 호화 쇼핑가로 상주인구는 3만여명에 불과하지만 관광객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다. CNN은 이런 형태의 담배 판매 금지 조례는 미국에서 처음 통과된 것이라고 전했다. 베벌리힐스 시의원 릴리 바시는 “우리 도시와 커뮤니티를 위한 기념비적 조례”라면서 “베벌리힐스가 건강한 도시라는 명성을 널리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베벌리힐스 시내 소매점 단체는 매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불공평한 처사라며 시의회에 재고를 요청했다. 베벌리힐스 이외에도 맨해튼비치 등 캘리포니아 해안 일부 도시들이 시 전역을 담배 판매 금지 구역으로 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예술의 태양이 지지 않는, 낭만의 도시…전쟁의 아픔 감도는, 잃어버린 도시

    예술의 태양이 지지 않는, 낭만의 도시…전쟁의 아픔 감도는, 잃어버린 도시

    한국은 어느덧 여름의 길목으로 접어든 5월 중순 무렵, 러시아 서쪽 끝 발트해 연안에 자리 잡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이제 막 봄으로 물들고 있었다. 4월까지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고 눈발이 날리던 매서운 날씨는 북극으로 물러가고 한결 따뜻해진 봄바람에 도시 곳곳 꽃나무마다 꽃망울이 움텄다. 밤 10시가 돼야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새벽 4시면 이미 환해진 도시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계절을 만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혹독한 겨울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길고 긴 낮만큼 아름답게 빛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예술과 역사의 흔적을 찾아 걸었다.●‘제정러시아 컬렉션’ 에르미타주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서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관광명소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이다. 화사한 민트색 외벽과 화려한 황금 장식이 눈에 띄는 바로크 양식 건물이 ‘겨울궁전’으로 불리는 박물관 본관이다. 정면 꼭대기에 삼색기가 휘날려 이곳이 러시아의 자랑임을 말해 주는 듯하다. 겨울궁전 앞 궁전광장 한복판에는 높이 50m에 이르는 알렉산드로프 전승기념비가 우뚝 솟아 있어 위엄을 더한다. 러시아에서는 ‘조국전쟁’으로 부르는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34년에 세웠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유럽 미술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세계 최대 미술관 중 하나로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300만점 이상의 소장품이 1000여개의 방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대영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의 많은 소장품이 식민지 약탈품인 반면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컬렉션은 제정러시아 시대부터 이어온 미술품 수집으로 완성됐다는 차이가 있다. 본관 1층에는 고대 이집트부터 그리스, 로마의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2층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돈나 리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루벤스의 ‘바쿠스’ 등 중세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 서유럽 명작들이 빼곡하다. 마티스의 대표작 ‘춤’을 비롯해 모네, 고갱, 피카소 등의 근대 회화 작품은 궁전광장 맞은편 참모본부관에 따로 전시돼 있다. 러시아의 다른 관광지에서는 보기 힘든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유료로 이용할 수 있다. ●10세기~근대 미술품 품은 러시아 박물관 꼬박 한나절을 둘러보고 박물관을 나서니 전승기념비 앞에서 버스킹 공연이 한창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지나던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앉아 귀를 기울인다. 뭉게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에 한결 가벼워진 사람들의 옷차림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봄이 왔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한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수많은 유럽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지만 러시아 본연의 멋을 느끼기엔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도보로 20~30분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러시아 박물관을 찾아가 보자. 알렉산드르 3세의 동생 미하일로프를 위해 지어진 궁전이던 이곳에는 러시아가 비잔틴제국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때인 10세기의 이콘화부터 근대 러시아 화가들의 명화, 각종 민속공예품 등이 전시돼 있다.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가 압도적인 이반 아이바좁스키의 ‘파도’, 제국 시대 말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축제 풍경을 생생히 보여 주는 블라디미르 마콥스키의 작품, 러시아의 전설과 종교적 신비주의를 담아낸 니콜라스 로에리히의 작품 등을 보다 보면 러시아의 옛 시간 어느 한가운데에 뛰어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흔적이 그대로 세계적으로 이름난 러시아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문학이다. 러시아 근대문학의 아버지이자 국민시인으로 불리는 푸시킨 동상이 정문 앞에 서 있는 러시아박물관을 떠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관광지가 몰려 있는 시내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곳 부근에 도스토옙스키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블라디미르성당 맞은편에는 오전부터 꽃과 과일, 직물 등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나와 있다. 전통시장에서 나물을 파는 우리네 할머니 같다. 러시아에는 ‘츠베트이’라고 불리는 꽃집이 곳곳에 자주 보인다. 가판에서부터 고급스러워 보이는 상점까지, 꽃을 파는 가게가 다양하고 꽃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꽃 선물을 많이 한다는 러시아 사람들의 감성이 낭만적인 예술을 꽃피운 원동력 아니었을까.박물관은 눈에 띄는 간판도 없이 나무 문을 닫아 놓고 있다. 반지하 로비에서 시작되는 박물관은 2층 규모로 크지 않다. 작가를 기념해 따로 지어진 박물관이 아니라 그가 말년을 보내면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을 집필한 아파트를 박물관으로 복원했기 때문이다. 작은 박물관에는 그를 좋아하는 전 세계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작가가 생전에 사용했던 필기구와 원고, 흑백사진 등 전시물을 본 뒤 남아 있는 사진을 토대로 그대로 재현해 놓은 방들을 둘러보며 작가의 삶을 상상해 본다. 또 다른 대표작 ‘죄와 벌’의 주무대가 된 센나야 광장을 찾아가 본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집이 있었을 거리와 그가 살해한 전당포 노파의 집 등이 이곳의 오래된 골목에 있었을 거라고 추정된다. 지금은 지하철 3개 노선이 지나는 번화가로 관광객보다는 현지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어스름이 질 무렵엔 주변 옛 건물들에 노란 불빛이 환하게 켜지면서 빛의 광장을 만든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왔다면 발레 공연을 놓치기 아깝다. 모스크바 볼쇼이극장과 함께 러시아 공연예술을 대표하는 마린스키극장이 있다. 구시가지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수로를 사이에 두고 1860년 개관한 본관과 신식으로 지어진 신관이 마주보고 있다. 러시아 발레를 대표하는 ‘백조의 호수’, 고골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코’ 등 공연을 비롯해 클래식, 오페라 등이 매일 다양하게 펼쳐진다. 시기를 맞춰 간다면 마린스키극장 최초 동양인 수석발레리노인 김기민의 공연도 직접 볼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팽창하던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건설된 계획도시다. 도시의 출발은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였다. 표트르 대제는 1703년 네바강 삼각주에 위치한 토끼섬에 스웨덴 해군의 공격을 막기 위한 요새를 짓기 시작했다. 이후 예카테리나 2세 때에 이르러 지금의 형태로 완성됐다. 요새 한복판에는 건물 본채만큼이나 뾰족하게 솟은 첨탑이 인상적인 성당이 있다. 높이 122.5m의 성당은 섬 주변 어디서든 눈에 띈다. 표트르 대제를 비롯한 로마노프 왕조 황제들의 유해가 안장된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다른 정교회들과 달리 외관은 직선 형태의 서유럽 양식이지만 황금으로 치장된 내부는 러시아 정교회 스타일로 화려하다. 요새 내 입장은 무료지만 네바 강가를 따라 조성된 요새 위 산책로는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 성벽 위에 나무데크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강 건너편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성 이삭 성당 등 시가지를 건너다 볼 수 있어 매력적이다. 제국 시절 수도의 화려함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장소는 도시 외곽의 ‘여름궁전’ 페테르고프다. 에르미타주 박물관 앞에서 바로 연결되는 배편을 이용할 수 있다. 지하철 1호선 발치스카야, 아프토바, 레닌스키 프라스펙트 등 역에서 미니버스로 가면 훨씬 저렴하다. 여름궁전의 백미는 발트해를 마주하고 있는 정원의 대폭포다. 궁전 앞에서 계단식 폭포를 따라 물이 흘러내리고 60여개의 크고 작은 분수에서 하늘 높이 물살이 솟구친다. 궁전 자체는 프랑스 베르사유궁전보다 작지만 수로를 따라 바다로 이어지는 화려한 분수만큼은 베르사유궁전이 부럽지 않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국내 여행객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독특한 분위기의 도시가 있다. 핀란드 국경에서 불과 25㎞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항구도시다. 이곳에 가려면 핀란드역에서 열차를 타야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모두 5개의 기차역이 있는데 주요 행선지에 따라 이름이 붙었다. 핀란드역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북쪽 도시로 향하는 열차뿐 아니라 핀란드 헬싱키까지 가는 열차도 출발한다. 핀란드역 앞 넓은 광장에는 레닌 동상이 네바강을 바라보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공산주의 혁명의 시초이자 소비에트연방의 창시자로 러시아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레닌에게 이곳은 각별히 의미 있는 장소다. 반정부 활동을 하다 투옥되고 시베리아 유배를 당한 레닌은 이후 서유럽에서 망명 혁명가로 활동한다. 1917년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동료 혁명가들의 도움을 받아 스위스에서부터 열차를 타고 핀란드를 거쳐 이곳에 도착한다. 8일간 3200㎞를 달린 잠입 여정은 성공했고 열렬한 군중이 그를 맞았다. 세계 역사를 뒤바꾼 볼셰비키 혁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비보르크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느낌이 조금 다르다. 관광객이 넘쳐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에서와 달리 핀란드역에 들어서자 보안검사를 하는 역무원의 눈길이 따갑다. “핀란드로 가는 역인데 제대로 온 것 맞냐”고 묻는 역무원에게 “비보르크까지만 갈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작나무숲이 가로놓은 들판과 러시아 시골 풍경을 따라 1시간가량 달리면 비보르크다. 이곳 역 입구에서도 역무원이 주민이 아닌 낯선 이방인에게 깐깐한 여권 검사를 요구한다. 국내에 출판된 러시아 여행 안내책자에도 없는 비보르크를 일부러 찾아간 것은 1·2차 세계대전 동안 러시아와 핀란드가 여러 차례 쟁탈전을 벌인 아픈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비푸리로 부르던 제2의 도시를 1944년 소련의 침공으로 빼앗겼다. 시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는 해안공원을 따라 시내의 옛 거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내 쪽으로 들어서자 뚱뚱하고 납작한 모양의 우스꽝스러운 탑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 중간에 있던 ‘둥근 탑’으로 사라진 성벽과 달리 지금까지 남아 있다. 1층은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인근에는 노란색의 아담한 성당 두 개가 마주 보고 서 있다. 그중 하나에는 성서를 핀란드어로 번역하면서 핀란드어 철자법을 확립한 16세기 종교개혁가 미카엘 아그리콜라의 동상이 서 있다. 이 성당 어느 곳엔가 그가 묻혔다고 전해진다. 핀란드 사람들이 ‘잃어버린 도시’로 부르며 이곳으로 여행을 오는 데에는 아그리콜라의 흔적을 찾기 위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비보르크 최고의 명소는 조그마한 섬에 자리한 비보르크성과 그 중심의 성 올라프탑이다. 으리으리한 성채는 아니지만 중앙의 초록 지붕 하얀 탑과 그 둘레를 둥글게 에워싸고 있는 성벽에서 중세 분위기가 느껴진다. 러시아보다는 스웨덴이나 에스토니아 등 발트해 주변 나라들과 비슷한 건축물이다. 이곳 전망탑에 오르면 비보르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역시 중세풍의 오래된 시계탑과 라트하우스탑 등을 돌아본다. 유럽의 여느 중세도시들처럼 가지런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지는 않다. 폐허로 남겨진 옛 골목에서는 때때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중세의 낭만, 핀란드의 쓸쓸함, 러시아의 황량한 분위기가 뒤섞인 도시는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이곳만의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타베르나’라는 이름의 음식점에서 중세 평민들과 귀족들이 먹었던 식사를 즐기면 비보르크 여행의 색다름이 배가된다. 글 사진 상트페테르부르크·비보르크(러시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여행수첩 →상트페테르부르크 명소 곳곳을 돌아볼 예정이라면 상트페테르부르크카드를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카드를 구입하면 일정 기간 동안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박물관과 성당을 추가 금액 없이 입장할 수 있다. 다만 관광지 투어보다 비교적 여유로운 여행을 원한다면 카드를 사는 게 손해일 수도 있으니 여행 계획에 따라 꼼꼼히 비교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미리 구매하면 편하다. →비보르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멀지 않은 도시지만 열차편이 자주 있지는 않다. 미리 열차 시간표를 확인해 보고 여행 계획을 짜는 편이 효율적이다.
  • 부시 “노무현, 국익 위해 마다하지 않고 목소리 낸 지도자”

    부시 “노무현, 국익 위해 마다하지 않고 목소리 낸 지도자”

    조지 W.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3일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고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내는 강력한 지도자”였다고 회상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날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통해 대통령 재임 시절 고인과의 인연을 하나씩 소개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저와 노 전 대통령은 기념비적인 새로운 자유무역협정(FTA)을 협상·체결했다”면서 “양국은 세계 최대의 교육국으로서 서로에 의지하는 동시에 자유무역협정으로 양국 경제는 크게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대한민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해준 중요한 동맹국이었다”면서 “미국은 이라크 자유수호 전쟁에 대한민국이 기여한 점을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추도식 참석을 위해 전날 방한한 부시 전 대통령은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권양숙 여사에게 선물했다. 그는 지난 2009년 1월 대통령 퇴임 후 전업 화가로 변신해 재임 중 만난 각국 정치인의 초상화, 자화상, 풍경화 등 다양한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부시 전 대통령은 “(초상화를 그릴 때) 인권에 헌신하면서 친절하고 따뜻한, 자신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내는 강력한 지도자의 모습을 그렸다”면서 “그가 목소리를 낸 대상에 미국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을 그릴 때 아주 겸손한 한 분을 그렸다”면서 “훌륭한 성과와 업적 외에도 그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가치와 가족, 국가, 그리고 공동체였다”고 덧붙였다. 또 “여느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노 전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모든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목소리를 냈다”면서 “물론 우리는 의견의 차이는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차이점들은 한미동맹에 대한 중요성, 그리고 그 공유된 가치보다 우선하는 차이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은 모든 한국인이 평화롭게 거주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며 민주주의가 확산하고 모두를 위한 기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통일 한국의 꿈을 지지한다”며 “인권에 대한 고인의 비전이 국경을 넘어 북에까지 전달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이 생을 떠날 때 작은 비석만 세우라고 했음에도 여러분이 더 소중한 경의의 마음으로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데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 오기 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한 사실을 전하면서 “(노 전 대통령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께 환대를 받았는데, 그 비서실장이 바로 여러분의 현 대통령”이라고 말해 추모식에 참석한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盧, 대통령 첫 4·3 사과… 용기 있는 결정, 특별법 개정 통해 과거사 해결 완성해야”

    “盧, 대통령 첫 4·3 사과… 용기 있는 결정, 특별법 개정 통해 과거사 해결 완성해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주4·3에 대해 국가권력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과거사 문제 해결에 기념비적인 용기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4·3 희생자 배·보상 등 현재 국회에 계류된 4·3특별법 개정 등을 통해 과거사 해결에 남다른 집념을 보인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완성시켜 나가야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하루 앞둔 22일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이렇게 남다른 4·3 유족들의 감회를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첫해인 2003년 10월 31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회 제주평화포럼 개막식에 참석, 제주도민과 간담회를 갖고 정부를 대표해 4·3사건에 대해 유족들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정부 차원의 첫 공식사과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며 4·3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했다. 발언이 이어지는 순간 환호와 박수소리가 쏟아졌고 유족들은 감격에 복받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4월 3일엔 국가수반 가운데 처음으로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4·3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했다. 그는 추도사에서 “국가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돼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며 “오랜 세월 말로 다할 수 없는 억울함을 가슴에 감추고 고통을 견디어 온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다시 한번 사과했다. 송승문 제주 4·3희생자유족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사과는 4·3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됐고 지금도 유족들은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면서 “과거사 문제는 누구를 벌하고 무엇을 빼앗자는 게 아니며 사실은 사실대로 분명하게 밝히고 억울한 누명과 맺힌 한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게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추모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광주 발포자 보고듣던 DJ, 조용히 눈 감더니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광주 발포자 보고듣던 DJ, 조용히 눈 감더니 …”

    ‘도덕성 회복’ 주창하는 허만기 총재가 말하는 ‘도덕과 정치’“역사적 대세가 대한민국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정치권이 국민의 장래에 폐를 주지 않고 꿈과 희망을 주도록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해요. 남북 관계, 경제 문제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자기를 버리고 국가와 민족, 그리고 미래를 보면서 치열하게 논쟁하고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국회를 내팽개치고 장외투쟁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주체성을 상실하고 도덕이 없는 집단인 겁니다. 광주민주항쟁이나 촛불혁명과 같은 민족의 기념비적 정신을 폄훼하고 모독하는 것은 반민주, 반도덕의 극치입니다. 물론 여당도 국정을 책임지는 위치이니 자기주장만 내세울 게 아니라 사리에 맞는 말에는 귀 기울여야 합니다.” 명함을 주고받는 수인사가 끝나자마자 그는 정치권 성토로 말문을 열었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최근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성명서를 낸 허만기 도덕성회복 국민연합 총재를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구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목소리는 쩌렁쩌렁했고, 기억은 어제 일을 말하는 것처럼 총명했다. 허 총재는 정치 원로로서 도덕이 없는 현재의 정치에 대해 신랄하게 일갈했다. “도덕성이 갖춰지지 않는 정치는 권력싸움에 불과하고, 진실이 없는 정치는 위선일 뿐”이라고 꾸짖었다. 그가 정치에 발을 내디딘 것은 1958년 제2대 경남도의원에 당선되면서부터다. 당시 자유당 부정선거를 폭로하면서 이승만 정부와 각을 세우다 구속되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지만 1961년 5·16쿠데타가 발생하면서 ‘구정치인’으로 활동이 묶였다. “건국이념인 홍익인간·광명이세, 최고의 도덕도덕없는 정치, 권력싸움… 성명서 문의 많아” - 성명서를 냈습니다. 반응이 어떻습니까. “도덕성이 타락된 우리 정치가 너무한다 싶어서 성명서를 냈지요. 성명서를 내가 작성해서 아는 사람들과 기업인들에게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반응이 아주 좋아요. 우리 시대의 교과서라거나, 좋고 옳은 말씀이라며 강의를 해달라 곳도 있고, 복사해서 써도 되느냐고 묻는 전화도 많이 옵니다.” - 정치권이 명심할 도덕을 들려주시면.“도덕이 한자여서 중국 것인 줄 아는데, 사실은 우리가 중국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명심할 도덕은 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광명이세(光明理世) 입니다. 한자가 이 땅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에 단군이 벌써 만들어낸 심오한 이념이지요. 사실, 이게 구전으로 전해오다 한문으로, 글로 남겨진 겁니다. 인간은 서로 도와야 하고, 인간 개인으로서의 우월성보다는 전체로서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이 먼저라는 것이지요. 광명은 밝음, 빛, 꿈, 희망, 기대를 의미합니다. 고대국가나 최첨단의 현대나 광명으로 국가와 민족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단군이 선포한 겁니다. 세상 어느 나라에 이렇게 거룩한 건국이념이 있습니까. 기껏해야 실용주의 내지 실리주의에 정직 정도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기념일을 만들어 그 의미를 반추하자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남북문제 잘 풀면, 대륙국가가 되는 기회10대 경제대국 한계 벗어나 G2 압박할 것” - 우리나라에 대세가 왔다고 진단했습니다. “남북문제를 잘 풀면 우리나라가 섬나라에서 벗어나 대륙국가가 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 협력하지 않고 엉뚱한 소리나 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모처럼 붙잡은 기회를 차버리는 행위입니다. 나는 문 대통령이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민족 내부의 문제이니, 이건 우리가 핸들링한다며 밀어붙이면 좋겠습니다. 이것을 두고 ‘김정은 편든다’거나 ‘북한 돕는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북한 김정은도 핵무기에 대해서는 사는 길을 찾는 것이지, 그놈을(핵무기를) 쥐고 있으면 자승자박이란 것을 깨달을 겁니다. 정치권이 싸우더라도 국가와 민족의 생존과 이익, 장래 문제는 별도로 해야 합니다. 국민의 미래를 망쳐서는 안됩니다.” - 섬나라를 벗어나자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우리나라는 대륙국가와 해양국가라는 두 개의 큰 축을 씨줄날줄로 해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 막혀 있지 않습니까. 북한 김정은을 끌어들여 경제공동체를 만들면 부산에서 구라파로, 중동으로, 러시아로 기차를 타고 바로 갈 수 있는 시대가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대륙국가가 됩니다. 그게 안되면 우리는 10대 경제대국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조선, 자동차, 반도체… 이런 것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의 탈출구가 대륙이라고 봅니다.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는 남북 간에 경제협력체가 형성되면 세계의 투자가 몰려올 것이라고, 미국 투자사 골드만삭스는 한국이 수십 년 안에 일본, 독일을 능가하고 G2를 압박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크게 나갈 기회가 왔습니다. 정치권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앉은뱅이, 신세타령이나 하며 살겠습니까.” “김정은 핵무기 한계인식…설득하고 끌고가야한국 공산화?… 우리 국민이 그렇게 머저리냐”- 그런데 북한이 아직 핵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당장 핵을 폐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손을 놓고 중도에서 포기해야 합니까. 어떻게든 김정은을 설득하고, 끌고 가야지요. 핵무기가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김정은도 핵무기를 끌어안고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죽는다는 것을 알 겁니다. 나는 김정일이 그런 선택할 것이라고 보지 않고, 김정은도 자신이 한계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설득해서 핵을 폐기하게 하고, 과감하게 밀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북한보다 국력이 20배나 강한데 북한이 무엇으로 우리를 이기겠어요. 공산화?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 국민이 그렇게 머저리입니까? 공산화에 설득당할 것 같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자신감을 가져야지요.” 올해 구순인 그는 서예인, 정치인, 유학자의 길을 걸었지만, 국민정신 선양과 관련된 일은 놓지 않았다. “1950년대에 심산 김창숙, 담원 정인보 선생을 모시고 정신문화 선양운동을 했습니다.” 이후 1960~70년대에는 노산 이은상 박사,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 박사와 함께 국민사상선양회를 창립했다. 이를 통해 산업화와 민주화, 국제화에 대한 이론적 뒷받침을 위해 정책 세미나와 강연회 등을 68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그런 그가 2007년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지인들과 함께 도덕성회복 국민연합을 만들어 도덕성 회복을 주창하고 있다. “내 나이 90세, 무슨 욕심이 있겠어요. 다만 이 나라를 위해 발자취를 하나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도덕성회복 운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도덕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효·경로사상孝, 유장한 구름 아닌 전화 한 통이면 실천” - 도덕성 회복 운동을 간단히 설명하시면. “오늘날의 타락은 도덕의 상실에서 비롯된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도덕성을 잃어버리면 사람들이 무도하게 되고, 타락하고 패륜과 부정, 비리가 판치게 됩니다. 도덕이 무너지면 결국 인간이 몰락하고,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현대 사회의 인간 상실과 자아 붕괴로 미루어볼 때 도덕성 회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도덕성회복은 이 나라의 시대적 역사적 소명이며, 사람들에게 영혼의 안식과 정신적 평화를 가져다줄 겁니다.” - 젊은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광명이세가 있습니다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효와 경로사상이라 생각합니다. 효는 최고의 선이며, 도덕성의 원초입니다. 한 기자가 석학 아놀드 토인비에게 ‘선생께서는 만일 다른 별에 가서 살아야 한다면 지구에서 무엇을 갖고 가고싶나’고 물었더니 ‘코리아의 효사상, 경로효친과 가족제도를 가져가고 싶다’고 한 일화가 효의 가치를 말해 줍니다. 도덕은 이렇게 유장한 구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실천 가능한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당장 전화 한 통이면 실천할 수 있는 것이 효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이 전혀 아닙니다. 내가 한 백년 가까이 살아서 압니다.” “노 前대통령, 내가 만든 장학회 수혜자, 후배靑비서실장 지낸 文 대통령도 자연스럽게 알아盧, 서거 수일 전 세상사 초월 당부 글씨 써 줘조선대 로스쿨 필요성 전달 … 성사되지 않아”- 문재인 대통령과의 사진이 있는데 어떻게 인연이 됩니까. “그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습니다. 제가 부산상고를 졸업했는데, 경남도의원 시절 부산상고 장학회를 저와 김지태 부산일보 사장 등이 만들었습니다. 그 장학금 수혜자 가운데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도 포함돼 있지요. 13대 국회의 5공비리 청문회에서 같이 활동도 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등을 지냈으니, 자연스럽게 가깝게 지내게 됐고 …. 10년 전 노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서거하기 수일 전, 궁지에 몰렸을 때 동문 골프모임에서 소동파의 적벽부를 한 구절 써주며 세상사를 초월하고, 유유자적하게 살라고 당부했는데…. 내가 조선대 석좌교수로 있을 때 조선대에 로스쿨의 필요성을 구두로, 편지로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습니다만, 성사되지는 않았죠.” -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숨겨진 일화,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12·12 쿠데타 주역 가운데 한 명인 정호용 장군이 1982년 어느 날 나를 급히 만나자고 했어요. 장 장군은 내 서예를 좋아해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였거든. 그가 정색하고 굳은 표정으로 ‘오늘 아침에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름 영어 이니셜, 허 총재는 DJ로 지칭했다)의 생사를 결정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라며 내 의견을 물었어요. 그래서 내가 ‘DJ는 민주화의 상징이자 선구자이다. 그를 죽이면 반인륜적·반도덕적 처사이고, 도덕성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차라리 미국으로 망명하게 하는 것이 어떻냐’고 했지요. 정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지요. 그 후 정 장군은 전두환·노태우와의 3자 회동에서 DJ를 살렸다고 독백처럼 내게 말한 적이 있지요. 그 뒤 13대 국회에서 정 장군을 만났는데 그때 광주민주화항쟁의 발포자로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 정 장군이 나를 찾아와 ‘내 아버지를 두고 맹세하겠다. 나는 발포자가 아니다. 허 의원이 나를 불의한 사나이로 보면 어쩔 수 없고, 올바른 인간으로 믿어준다면 DJ에게 진실을 말해달라’고 했지요. 나는 그의 인격을 믿었고, 그 말을 믿었기에 새벽에 동교동에 갔었지요. 언제나처럼 정장차림으로 나를 맞아준 DJ와 이희호 여사에게 이 사실을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DJ는 내가 보고하는 동안 눈을 감고 조용히 듣기만 할 뿐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너무 정호용 장군을 변명해준 것 같은데….” “12·12쿠데타 주역 정호용, ‘DJ구명’ 내게 말해‘鄭, 광주 발포자 아니다’는 주장 DJ에 전달도DJ, 눈 감고 듣기만 할 뿐… 아무 말도 안 해” 그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원 최고정책결정자(SEP) 과정을 수료했다. 13대 국회의원(1988~1992년)을 지내면서 평화민주당 당기위원장, 국회 5공비리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06년 성균관유도회 총재를 맡았고, 2009년 대한민국 헌정회 원로위원으로 선임됐다. 국회의장이나 당 대표 등을 지낸 이들로 대체로 구성되는 헌정회 원로위원에 초선에 불과한 그가 선임된 것은 다소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서예 전시회도 종종 가졌든 허 총재는 정치권에서도 알아주는 명필이다. “DJ, 선양회 세미나 참석하면서 인연 깊어져13대 국회 비례대표서 자신 앞에 나를 배치인내력, 상상력 뛰어난 초월적 능력 소유자”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1980년대에 내가 주관한 국민사상선양회 세미나에 DJ가 한번 참석하면서 인연이 깊어졌습니다. 아침 7시 강연에 이은상·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백선엽 장관·조영식 경희대 총장·윤일선 서울대 총장 등 기라성같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DJ가 만나고 싶어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DJ는 13대 전국구(비례대표) 후보에 자신의 바로 앞번호에 나를 배치했습니다. 나는 그 보답으로 12권짜리 김대중 전집을 만들어줬습니다. 청평별장에서 먹고 자기를 같이하면서 DJ를 옆에서 보니 이 나라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인내력, 상상력, 추진력이 뛰어나고 실패나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초월적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YS, 사상선양회서 강연도…정무직도 제안YS와 가까우니 안기부, 내집 급습해 쑥대밭국회서 안기부장 유학성 만나 한 대 갈겨YS, 노태우와 야합… 도덕 없어 절교 선언”-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인연도 많다지요. “1980년대에 YS는 정무직을 제안했습니다만 저는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으로 밀고 들어오기도 했지요. 내가 주관한 국민사상선양회에서 YS는 ‘정치발전과 정치인의 자세’라는 주제로 강연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에 내가 YS와 가깝게 지내니 안기부가 내 집을 급습했습니다. 아이들 방까지 수색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서슬 시퍼렇던 안기부장이 유학성이었습니다. 국회 휴게실에서 만나 ‘유학성 이놈!, 나라를 위해 일해야지, 남의 뒤나 캐고 …” 하면서 한대 갈겨버렸습니다. 유학성이 쓰러졌지만 옆에 있던 민정당 의원 몇 사람이 있었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YS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 야합하는 바람에 변절했지요. 일신의 명리를 위해서는 도덕도, 정의도, 원칙도, 국민도 다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YS와 절교를 선언했습니다. 그랬더니 심복인 서석재 의원과 김덕룡 의원을 내 집으로 보내 나를 집요하게 설득하려 했습니다.” - 좋은 인연만 있는 것은 아니겠죠. “전두환과 악연이 생각납니다. 같은 고향이어서 서로 잘 알고 지냈습니다만 11대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 제가 구속됐습니다. 전두환이 광주항쟁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국보위에서 스스로 대장 진급한 그런 부당성을 유세과정에서 비판하다 선거 3일 전에 덜컥 구속됐습니다. 누가 시켰겠어요. 그러다가 제가 13대 국회의 5공비리 특위 청문회에 활동했습니다. 그때 장세동 등을 상대로 일해재단 비리를 심문했습니다. 그리고 전두환의 정치자금 6000억원의 불법조성을 가장 먼저 폭로했습니다. 구체적인 비리를 밝혀낸 겁니다. 큰 기업에 부실기업을 안겨주고 장기저리로 대출해주면서 리베이트를 받은 것이죠. 당 총재인 DJ에게 보고하니 ‘허 의원, 그럴 수가 있나. 어떻게 6000억원을 받을 수 있나‘라며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어떤 기업으로부터 얼마씩 받았는지는 국회 속기록에 다 남아있습니다. 전두환이 돈을 받을 때 재무 공무원을 시키지 않고 최측근들에게 시켰더군요.” “요즘 신문 3개 읽고 독서 활동 꾸준히7시간 수면, 운동화 신고 많이 걸어다녀” - 고령인데도 활동이 많습니다. 건강 비결은. “일을 놓지 않는 게 비결입니다. 신문은 서울신문과 경제지 하나 등 3개를 매일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TV로 뉴스를 한 시간씩 보고 밤 11시쯤 자서 다음날 아침 6시 일어납니다. 책을 꾸준히 읽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책은 안 보면 정신이 갑니다. 영혼을 맑게 하려고 고전을 읽습니다. 그리고 최근엔 좀 많이 걸으려고 합니다. (신고 있는 운동화를 가리키며) 많이 걸으라고 아들이 사 준겁니다. 운동화를 신으니 확실히 발이 편합니다. 고령일수록 꾸준히 일을 해야 합니다. 목숨이 다하는 그날이 은퇴하는 날이지요.”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페더 세베린 크뢰이어는 1888년 파리에 갔다가 같은 덴마크 화가인 마리 트리페크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크뢰이어는 서른여덟 살, 트리페크는 스물두 살이었지만 두 예술가에게 나이 차이는 문제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다음해 결혼식을 올리고 유틀란트반도 끝에 있는 스카겐에 자리잡았다. 한적한 어촌 스카겐은 19세기 말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화가들이 모여들면서 북구 인상주의 운동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인상주의의 핵심 개념인 근대성과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생’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였다. 1874년 파리에서 열린 첫 번째 인상주의전은 악평과 조롱 속에 끝났지만 젊은 화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인상주의의 목표는 역사, 신화, 종교 같은 낡은 주제에서 벗어나 당대 현실의 단면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화가들은 바깥에 나가 거리, 일터, 카페, 기차역에서 소재를 찾았고, 즉석에서 그림을 마무리함으로써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일상생활의 역동성을 포착하려 했다. 북구 화가들은 스카겐에서 삶의 현장을 발견했다. 크뢰이어는 1882년부터 매년 스카겐을 방문했고, 결혼한 뒤에는 아예 이곳에 정착했다. 두 사람은 행복했다. 크뢰이어는 열정적으로 작업에 몰두했다. 이 시기 그는 덴마크 인상주의의 기념비로 남게 될 그림들을 그렸다. 해변에 나가 일하는 어부들을 그렸지만, 사랑스런 아내도 여러 점 그렸다. 코펜하겐에서 손꼽히는 미인이었던 트리페크는 행복과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장미’는 신혼 시절 찍었던 사진을 서너 해 뒤에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꽃이 만발한 장미나무가 뒤편 집채를 가리고 있다. 트리페크는 야외용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다. 발치에는 애완견이 웅크리고 있다. 행복은 짧았다. 1900년대 초 정신질환이 크뢰이어를 덮쳤고 시력까지 약해졌다. 치료를 받느라고 부부는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트리페크는 스웨덴 작곡가 후고 알벤과 사랑에 빠졌다. 크뢰이어는 트리페크를 놓아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1905년 트리페크와 알벤 사이에 아이가 생기자 더이상 어쩔 수 없었다. 크뢰이어는 1909년 스카겐에서 눈을 감았다. 변덕스런 운명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운 자, 어디 있으랴. 미술평론가
  • 경기 옛길 삼남길 ‘의왕 모락산성’ 탐방 프로그램 오는 25일 운영

    경기 옛길 삼남길 ‘의왕 모락산성’ 탐방 프로그램 오는 25일 운영

    경기도가 경기 옛길 테마탐방 프로그램으로 오는 25일 삼남길 3구간 일원 모락산성 탐방을 운영한다고 21일 밝혔다. 이 행사는 역사, 산성, 생태, 예술 등 4가지 주제로 옛길 문화자원을 답사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두 번째인 이번 탐방은 삼남길 3구간 일원인 모락산 정상을 통과하는 ‘의왕의 모락산성 탐방하기’를 주제로 운영된다. 모락산은 한국전쟁 당시 정상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6.25 전승기념비가 있다. 산 정상 주변에는 백제시대에 축조된 모락산성과 정조가 현릉원에 갈 때마다 쉬어 가던 조선시대 행궁터로 현재 의왕시청 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근행궁터가 있다. 박종달 경기도 문화유산과장은 “한국전쟁 당시 승리를 거둔 역사 속 현장인 모락산성을 따라 탐방하며 선조의 얼을 되새길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계원예술대에서 12시에 출발해 의왕의 대표 문화자원인 사인암, 모락산, 오매기마을, 사근행궁터까지 탐방한다. 의왕문화원 관계자가 모락산 전투와 모락산성, 사근행궁터 등에 대한 강의를 진행한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25일 경기옛길 삼남길 산성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할 80명을 선착순 모집한다. 테마탐방 참가는 경기옛길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한편 도와 문화재단은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 선생이 집필한 ‘도로고’의 6대 대로를 바탕으로 삼남·의주·영남길을 조성해 여러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19년 한 해 동안 총 23개의 탐방을 진행한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동영상] 맥주를 사랑했던 밥 호크 전 호주 총리 영면, 러셀 크로도 추모

    [동영상] 맥주를 사랑했던 밥 호크 전 호주 총리 영면, 러셀 크로도 추모

    맥주를 유난히 즐겨 마셨던 밥 호크 전 호주 총리가 89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1983년부터 1991년까지 호주 총리를 지냈으며 호주 노동당 지도자였던 호크가 시드니 “자택에서 편안히 영면했다”고 부인 블랑시 달퓌제가 16일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이었던 고인은 호주 경제를 현대화시킨 주역이었다. 노동당 출신으로 최장수 총리를 역임했으며 네 차례나 노동당을 총선 승리로 이끌었다. 역대 어느 총리보다 지지율이 높았다. 18세이던 1947년 노동당에 입당해 저유명한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옥스퍼드 대학에 1953년 입학했다. 그 뒤 노동조합 운동에 투신해 1969년까지 호주 노동조합 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첫 연방 의원에 당선된 것은 1980년이었으며 3년 뒤 당수가 돼 곧바로 이어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스타일의 지도자였으며 술을 즐겨 마시고 농담도 잘해 이른바 ‘래리킨(larrikin·호주 도시의 빈민가 왈패들)’의 리더로 기억될 것이다. 골치 아픈 정치 일을 즐거운 일로 바꾸는 데도 탁월한 재간이 있었다. 젊었을 때부터 술 실력이 대단했다. 옥스퍼드 2학년이던 1954년 1.4리터의 맥주를 11초 만에 들이켜 기네스 월드 레코드에 등재됐으며 80대 후반 들어서도 크리켓 경주를 마친 뒤 맥주를 원샷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곤 했다. 공개 석상에서도 곧잘 울음을 터뜨렸다. 가장 유명했던 것이 1989년 중국 톈안먼 사태 때 의회 의사당에서 거행된 추모 행사 도중 울음을 터뜨린 일이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면모 뒤에 아주 날카롭고 예리한 정치적 마인드를 감추고 있었다. 재임 8년 동안 연금과 복지 개혁을 성공했고 해외 교역 망을 넓혔다. 호주의 보편적인 건강 돌봄 시스템 ‘메디케어’를 만든 것도 그가 ‘이류 계급 없는 호주’를 슬로건으로 내걸어 이룬 것이었다. 유족들은 성명을 통해 “고인의 자랑스러운 업적 가운데 고교 교육까지 마치는 아이들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난 것,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격리 정책)를 끝내는 데 기여한 것, 남극권의 무분별한 자원 개발을 막는 국제 캠페인을 성공시킨 것, 인종주의를 혐오하고 아시아의 세기가 시작된 것을 내다본 것” 등을 꼽았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창립에도 그의 공헌이 있었다. 같은 당 출신으로 역시 총리를 지낸 케빈 러드는 트위터에 고인을 “호주 정치의 거인”이었다고 적었다. 한때 라이벌로 고인을 축출하는 데 앞장섰으며 중에 노동당 당수를 승계하고 총리까지 지낸 폴 키팅은 고인과 “위대한 파트너십”을 나눴다고 돌아보고 “그 파트너십이 남겼고 앞으로 남길 것들이 현대 호주의 기념비적인 토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호주 출신의 배우 러셀 크로도 트위터에 장문의 추모 글을 올려 눈길을 끈다. 그 역시 맥주를 사랑했던 총리의 면모를 각별하게 언급했다. 한편 달퓌제 여사는 고인의 14세 연하로 1995년 전처 헤이즐 여사와 2녀1남을 키우고 헤어진 호크와 전기 대필 작가로 인연을 맺은 지 10년 만에 재혼해 외아들을 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블랙피플 관객참여… 베니스를 물들이다

    블랙피플 관객참여… 베니스를 물들이다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라는 뜻을 가진 ‘비엔날레’는 베니스비엔날레가 만든 말이다. 미술이란 장르의 특성상 적어도 2년의 시간이 경과해야 전체 흐름의 변화가 파악되리라는 생각에서 유래됐다. 전 세계 비엔날레의 기준인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이 1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일대에서 개막됐다. 오는 11월 24일까지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는 총감독이 직접 큐레이팅하는 본 전시(국제전)와 각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국가관 전시로 나뉜다. 국가관이 개별 국가의 정체성을 앞세우는 올림픽적인 성격을 띠는 반면 본 전시는 현재 미술계의 풍향을 알 수 있는 가장 ‘힙한’ 미술 축제라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올해 총감독을 맡은 랄프 루고프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디렉터가 내세운 주제는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기를’. 흥미로운 시대를 포착한 흥미로운 작품들이 루고프의 선택을 받았다.●세계 미술계를 뒤집어 놓은 블랙 피플 약진 이번 전시에선 세계 미술계를 뒤집어 놓은, 흑인 작가들의 약진이 그대로 드러났다. 흑인 작가가 그린 흑인 회화 작품이 유난히 많았다. 미국 LA에서 활동하는 흑인 작가 헨리 테일러(61)는 ‘무제’에서 아프리카 출신이 지배하는 최초의 공화국인 ‘아이티’를 세웠던 아이티 혁명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렸다. 니데카 아쿠닐리 크로스비(36)는 당대 나이지리아의 디아스포라를 상징하는 인물로,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그림을 선보였다. 그의 그림 속 단색 배경의 흑인들은 무표정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미국의 영화감독이자 작가 아서 자파(59)는 50분짜리 영화 ‘화이트 앨범’과 사슬에 에워싸인 타이어 ‘커다란 바퀴’를 선보였다. 영화에서 그는 백인 패권주의의 징후를 그와 가까운 백인들의 초상화와 병치시켰다.●공기 뿜뿜·영상통화… 대세는 관람객 참여형 아트 황금사자상은 아서 자파에게 돌아갔지만, 주목도가 가장 높았던 건 단연 중국 듀오 위안(47)·펑유(45)의 ‘Dear’였다. 로마 제국의 의자를 모티브로 한 듯한 이 권위적인 실리콘 의자는 5분에 한 번, 고압 공기를 내뿜는 고무호스를 휘둘렀다. 벽에 부닥치며 내는 파열음 때문에 관람객들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그 위압적인 소리에 움찔 놀라는 관람객의 반응은 이들 작품의 필수 구성 요소다. 또 다른 관람객 참여형 작품으로 눈에 띄는 것은 알제리 출신 네일 벨루파(34)의 ‘다양한 작업’이다. 동네 약수터에 있을 법한 운동 기구에 앉으면 세계 각국의 수염 자국이 파르스름한 젊은 군인과의 영상 통화 화면이 뜬다. 축구와 무기를 사랑하던 소년이 축구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군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비가 오는 가운데 15시간 동안 오지 않는 적을 노려 봤다는 한국 군인의 이야기를 보고 듣노라면 시간이 절로 간다. 일견 약수터에 온 것 같은 사람들 풍경이 이 작품의 일부임은 말할 것도 없다.인도의 여성 작가 실파 굽타(43)의 작품 ‘당신의 목소리에 맞출 수 없어요, 나는’을 관람하는 방법은 100개의 시와 100개의 마이크 사이를 유유히 걸어다니는 것이다. 작품은 검열이라는 폭력에 저항하는 100개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이불 ‘DMZ’·강서경 ‘할머니’·아니카 이 ‘과학’ 접목 올해 본 전시에 참가한 한국 작가는 세 명으로 모두 여성이다. 1999년 이후 두 번째로 베니스비엔날레를 밟은 이불(55)과 지난해 스위스 아트바젤 예술상을 받은 강서경(42), 구겐하임미술관 휴고보스상을 수상한 아니카 이(48)가 그들이다.다시 찾은 베니스에서 이불 작가가 선보인 작업은 ‘오바드V’다.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 철거 과정에서 나온 철 600㎏을 녹여 만든 높이 4m의 철탑이다. 탑을 이루는 전구들, 모스 부호, 전광판 글자들은 모두 어떤 질문에든 “네, 그래요”라는 의미를 담았다. 한국인들에겐 의미심장한 작품이지만, 하필 채찍 소리가 요란한 유안·펭유 듀오 옆에 자리를 잡아 주목도가 덜했다. 작품의 크기마저 작아 아쉽다는 기자들 반응에 작가는 “(크기가) 커지면 프로파간다 아니에요?”했다. 그러나 기념비적인 소재에, 기념비적인 맥락을 담은 작품이라면 크기도 기념비적으로 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강 작가가 선보인 ‘그랜드마더 타워’와 ‘땅 모래 지류’ 연작은 역동적인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정적인 공간이었다. 색색의 털실을 감은 철제 구조물은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형상화한 ‘그랜드마더 타워’다. ‘땅 모래 지류’는 작가가 생각하는 회화의 개념을 시각화한 사각의 공간 안에 음높이·박자·동작 등을 담은 정간보(井間譜), 현지 아카데미아 학생들의 퍼포먼스 등을 녹여 냈다. 재미교포 아니카 이의 ‘바이올라이징 더 머신’은 과학기술을 접목한 작업이다. 천장에 매달린 조각은 무정형 유기체의 모습을 상기시켰고, 아래에 자리한 물웅덩이가 그 모습을 거울처럼 비췄다. 글 사진 베니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트럼프 대통령, ‘미중 합의, 가까워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미중 합의, 가까워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미중 무역협상이 합의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페테르 펠레그리니 슬로바키아 총리와 회담에 앞서 기자들에게 “(미중) 무역협상은 매우 잘 진행되고 있다”면서 “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인 합의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역시 괜찮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중 무역협상의 타결을 낙관하는 동시에 오는 8일 막판 고위급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국) 관세로 중국으로부터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중국으로부터 10센트도 얻어내지 못했는데 이제는 수십억 달러를 받아내고 있는 것”이라며 자신의 협상 치적을 강조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도 대중 압박에 나섰다. 펜스 부통령은 이날 CNBC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무역적자 개선뿐만 아니라 기술이전 강요과 지식재산권 침해 등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이 뚜렷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의 ‘관세장벽 철폐’ 요구에 대해선 즉답을 피하면서 “협상을 타결할 수 없다면, 우리는 더 많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면서 “관세를 없애는 방식은 ‘이행조치 메커니즘’의 일부로서 협상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앞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 이끄는 미국 무역대표단이 이번 주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다. 다음 주에는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가 이끄는 중국 대표단이 미국 워싱턴DC를 찾아 고위급 협상을 이어갈 예정이다. 일각에선 오는 10일까지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BMW와 벤츠 등 유럽연합(EU)산 자동차에 고율 관세 부과에 대해 “EU는 우리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관세(검토)는 필요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EU와 자동차 관세에 관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게 될 것”이라면서도 “그것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미래유산 톡톡] 동화약품·활명수, 순화동 5번지의 서울미래유산

    [미래유산 톡톡] 동화약품·활명수, 순화동 5번지의 서울미래유산

    순화동은 조선 시대 ‘수렛골’이었다. 한강으로 이어지는 서소문은 주막이 많아 수레꾼들과 수레들이 쉬어 가던 곳이라서 그렇게 불렸다. 수렛골은 또 추모동이라고도 했는데 조선 후기 서울의 인문지리역사서 ‘한경지략’에 따르면 추모동은 소의문 밖에 있었다. 즉 차동(車洞)인데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 민씨가 탄생한 집터가 있어서다. 영조 37년 ‘인현왕후 탄강구기’라는 여덟 자를 새겨서 비를 세웠다는 기록에 연유한다. 이 순화동 5번지에는 하나와 같은 서울미래유산 두 점이 있다. ㈜동화약품과 활명수다. 활명수는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등극하던 1897년에 민병호 선생이 궁중에서만 복용하던 생약의 비방을 서양의학에 접목해 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이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의 활명수는 4세대에 걸쳐 우리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 온 소화제의 대명사다. 창업 117년의 동화약품은 우리나라 최초의 제약 기업이며, 대한민국 최초로 신약을 개발한 곳이다. 1966년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을 준공했고 1987년에 증축했다. 순화 제1-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본사는 2014년 남대문로로 이전했다. 동화약품 자리는 1919년 7월 10일 상하이 임시정부의 국내 업무 연락과 정보 수집 활동을 펴며, 군자금 모집 등의 목적으로 나라 안에 은밀히 이루어진 지하 비밀조직인 ‘연통부’ 터이기도 하다. 초대 사장 민강 선생이 서울연통부의 책임자였다.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 일부를 독립자금으로 조달해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독립 운동가들은 중국으로 갈 때 활명수를 가지고 가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고 한다. 서울시는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항일 의거 유적지로 선정하고 ‘서울연통부 기념비’를 세웠다. 왕이 마시던 소화제, 활명수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소화제이기도 하다.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
  • 김해 공공조형물 한눈에 본다, 공공조형물 화보집 발간

    김해 공공조형물 한눈에 본다, 공공조형물 화보집 발간

    경남 김해시 지역에 있는 공공조형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화보집이 발간됐다. 김해시는 2일 김해시 도시 디자인 발자취가 담긴 ‘아름다운 문화역사의 도시 김해시 공공조형물 화보집’을 펴냈다고 밝혔다. 시는 가야왕도 김해의 아름다운 경관과 대표 조형물을 한 장에 담아 쉽게 펼쳐 볼 수 있는 ‘경관 & 조형물 김해시 워킹맵’도 화보집과 함께 제작했다. 워킹맵은 가로 60㎝, 세로 39㎝ 크기 지도 형태의 관광 안내서로 해반천을 따라 걸어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연지공원을 비롯해 가야의 거리, 봉황동 유적지 조형물, 서부권과 동부권 대표 관광지인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가야테마파크 등의 조형물이 담겨 있다. 공공조형물 화보집은 116쪽 분량으로 평소 시민들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시민의 종, 연지공원 음악분수 등 김해지역 151개 대표 조형물을 수록했다. 각 조형물 마다 사진과 함께 의미, 건립시기, 위치 등을 소개했다.조형물은 기념비, 경관교량, 경관거리, 진입관문 공공조형물, 상징조형물 및 예술작품, 벽화, 분수시설 등으로 분류해 정리했다. 가야의 거리에 있는 시민헌장비는 미래지향적으로 개정한 시민헌장을 담아 지난해 건립했다. 둥근 모양은 김수로왕의 알을, 날개는 알에서 깨어 힘차게 나아가는 시민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한다. 1981년 시 승격 당시 제정한 시민헌장은 1995년 시·군 통합뒤 계속 사용해오다 2017~2018년 시대상을 반영해 개정했다. 김해 동측 관문인 김해교의 상징 조형물인 금옥문은 수로왕과 허왕후의 복식에서 볼 수 있는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김해시의 역사적 의미를 상징화해 2008년 건립됐다. 금색문은 수로왕, 옥색문은 허왕후, 말 조형물은 신하를 상징한다.쇠뿔 형태의 술잔인 각배를 3m 높이 대형 분수로 제작한 각배분수는 1998년 가야의 거리에 설치돼 가야인의 기상을 느끼며 쉴 수 있는 친수공간이다.가야의 거리에는 조형물이 많다. 가야를 대표할 수 있는 가야기마인물상은 2003년에, 가야인의 용맹한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기미민족 상징조형물은 2011년 건립됐다.삼정동 도심속 오솔길에는 30년간 김해 산해정에서 후학을 길러낸 영남학파의 거두 남명 조식 선생의 조각상(2008년 설치)이 있다. 고속도로 나들목 등 10곳의 관문에는 방문객들에게 김해시 정체성을 알리고 각인시키기 위해 시 브랜드 가야왕도 김해를 알리는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시민모금운동을 통해 설치된 조형물도 있다. 지난해 연지공원 내 조각공원에 설치된 김해평화의 소녀상은 김해시민들의 평화 감수성과 인권의식이 담긴 조형물이다. 김해시는 중앙정부에 앞서 지난 2000년 10월 우리나라 지자체 최초로 도시디자인과를 신설해 국내 도시 디자인 관련 업무을 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성곤 김해시장은 “도시 공공디자인이 그 도시 경쟁력인 만큼 가야왕도 김해 정체성을 담은 아름다운 도시 디자인으로 살기 좋고 살고 싶은 김해로 가꾸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중국 민주화운동 상징 탱크맨 동상 미국에 생긴다

    중국 민주화운동 상징 탱크맨 동상 미국에 생긴다

    30년 전 중국 민주화 운동인 6·4 톈안먼 사태를 상징하는 탱크맨 조각상이 미국에 세워진다. 홍콩 명보는 28일 탱크맨 조각상이 톈안먼 사태가 일어난 6월 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자유조각공원에서 기념행사와 함께 세워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탱크맨을 조각한 사람은 ‘6·4 기념비’라는 대형 조각을 만든 중국인 조각가 천웨이밍(陳維明)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고(故) 류샤오보의 조각상도 이번에 탱크맨 조각상이 들어서는, LA에서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길에 있는 15번 주간 고속도로 옆 자유조각공원에 놓여 있다. 탱크맨은 1989년 6·4 사건이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난 뒤 베이징 톈안먼 광장 창안지에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탱크의 전진을 홀몸으로 막는 모습이 외신기자에게 포착돼 톈안먼 사건의 상징이 됐다. 최근에 세계적인 카메라 제조회사 라이카의 영상 광고에 탱크맨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담기면서 라이카는 중국에서 금기어로 설정돼 검색이 불가능해졌다. 라이카는 약 5분짜리 홍보 영상의 주인공을 전쟁을 취재하는 기자로 삼았는데 톈안먼 사건을 취재하는 외신 기자가 바로 주인공이다. 라이카는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카메라 기능에도 기술 참여를 했지만 중국에서 금기시되는 톈안먼 사태를 건드리면서 바로 중국의 ‘역적’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톈안먼 사태 30주년을 맞아 유럽과 미국 등에서 여러 기념행사가 준비되고 있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6·4라는 숫자조차 철저히 검색이 차단되는 금기어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전쟁기념관 찾은 6·25전쟁 뉴질랜드 참전용사

    전쟁기념관 찾은 6·25전쟁 뉴질랜드 참전용사

    25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찾은 6·25전쟁 뉴질랜드 참전용사와 가족들이 기념비에 추모의 노래를 바친 뒤 슬퍼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임진강·가평지구 전투 68주년 상기행사’ 등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연합뉴스
  • 국기원 ‘러 태권도 대부’ 故 최명철에 명예 단증

    국기원 ‘러 태권도 대부’ 故 최명철에 명예 단증

    88올림픽서 태권도 처음 보고 인연국기원이 지난해 12월 30일 별세한 ‘러시아 태권도계 대부’ 최명철(당시 68·멘체르 초이) 전 러시아태권도협회 고문에게 명예 9단증을 추서했다. 최 전 고문과 지난 30년 동안 러시아 전역에 태권도를 보급해온 경기도태권도협회 임영선 부회장은 24일 “초이가 한평생 불모지였던 러시아에 태권도를 보급하고 대한민국과 러시아 간 민간외교에 크게 기여한 점을 국기원이 높이 평가한 것 같다”며 “오는 30일 러시아태권도겨루기대회가 열리는 하바롭스크에서 초이 유가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려인 2세인 최 전 고문은 지난해 11월 대한적십자사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가 말기암 진단을 받았으며 모스크바에서 별세했다. 가라데 러시아 국가대표 코치 등을 지낸 최 고문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TV중계를 통해 태권도를 보고 자신의 뿌리인 대한민국 태권도와 인연을 맺었다. 이듬해 제자들을 이끌고 방한해 국기원에서 태권도를 배운 후 30년간 러시아 전역에 태권도를 보급했다. 러시아어로 된 태권도 규칙을 처음 출간했다. 임 부회장은 “조금 더 살 수 있도록 한국에 있을 때 수술을 해주지 못한 게 늘 죄스러웠는데 국기원이 그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게 해 줘 감사하다”면서 “초이가 30년 전 제자들과 머물며 태권도를 처음 수련하던 포천시 영북면에 기념비를 세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노장의 경례

    노장의 경례

    23일 경기 가평군 영연방 참전 기념비에서 열린 가평지구 전투 기념행사에서 참전용사들이 경례를 하고 있다. 가평지구 전투는 6·25전쟁 중 영연방 제27여단이 1951년 4월 중공군의 춘계 공세에 맞서 펼쳤던 방어전을 말한다. 이 전투로 중공군의 전선 분할 시도를 막아냈고 서울∼춘천 보급로를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연합뉴스
  • 6·25 참전국 기념비서 식사 논란…전쟁기념관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

    6·25 참전국 기념비서 식사 논란…전쟁기념관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

    지난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한 기독교선교단체가 주관한 행사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있는 6·25전쟁 참전국 기념비를 밥상 삼아 식사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된 가운데 전쟁기념관 측이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지난 21일 전쟁기념관 홈페이지 고객의 소리 게시판에 “전쟁기념관 관리 참담하네요”라는 글과 함께 전쟁기념관 측의 안일한 관리 책임을 지적하는 글이 게시됐다. 해당 글에 대해 전쟁기념관 측은 “전 세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몰상식한 추태 행위에 대하여 행사 대관 책임자가 즉시 위령비의 식음료 등을 제거하도록 조치를 취했고, 전쟁기념관 경비대원이 안전순찰 중 지적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이어 “행사(당일) 주최·주관사 안전요원을 함께 배치하였으나, 많은 인원 참석으로 통제가 불가하여 불미스러운 사례가 발생했다”며 “대관 시 위령비 등 중요한 장소 등에 대한 충분한 교육과 주의를 철저히 하지 않고 소홀히 한 데 대해 관리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했다. 또한 전쟁기념관 측은 “향후 대관업체 책임자 및 참여 관람객에게 전쟁기념관에 대한 설립목적 및 취지, 평화의광장 위령비, 전사자 묘비 등이 있는 회랑 등 추모 공간에 대해 더욱더 세심하고 주의 깊게 행동하도록 사전 교육 등을 철저히 할 것을 약속”하며 “추모공간에 대한 폴리스라인 설치 등 주최·주관사에 추가 안전요원을 배치토록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전쟁기념관 측은 재발 방지 약속과 함께 행사 주관사의 사과문을 함께 올렸다. 해당 단체는 사과문을 통해 “행사 일부 참가자들이 위령비인 줄 모르고, 간식을 먹는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행위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며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끼셨을 모든 분들께 충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단독] “전쟁기념관 관리 참담하네요”

    [단독] “전쟁기념관 관리 참담하네요”

    ‘장애인의 날’인 지난 20일, 한 기독교선교단체가 주관한 행사의 일부 참가자가 전쟁기념관에 있는 6·25전쟁 참전국 기념비를 밥상 삼아 식사하는 모습이 공개돼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1일 전쟁기념관 홈페이지 고객의 소리 게시판에 “전쟁기념관 관리 참담하네요”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몇몇 사람들이 6·25전쟁 참전국 기념비에서 식사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공개됐다. 글쓴이는 “참혹한 광경을 목도하고 글을 올린다. 위령비를 밥상 삼아 밥을 먹는 광경을 사진으로 봤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제가 이탈리아 전쟁기념관에서 실수로 계단에 앉았다가, 기념관을 지키던 의장대에게 호되게 혼이 났던 일화가 있다”며 전쟁기념관 측의 안일한 관리 책임를 지적했다. 글쓴이는 끝으로 “전쟁기념관은 박물관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선조의 영혼을 위로하고 기억하기 위해 만든 곳”이라며 잘못된 시민의식에 안타까운 감정을 내비쳤다. 한편 6·25전쟁 참전국 기념비는 2015년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아 6·25전쟁 참전국에 감사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을 담아 설치한 조형물이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재개발 방식 도시재생은 위험… 설계 절차 혁명적으로 바꿔야”

    “재개발 방식 도시재생은 위험… 설계 절차 혁명적으로 바꿔야”

    “도시는 생물체와 같아서 늘 변한다. 따라서 늘 재생해야 한다.” 국가 건축정책을 총괄하는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승효상(67) 위원장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이로재 건축사무소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목표를 두고 추진하는 도시재생은 재개발 방식과 다를 바가 없어 굉장히 위험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승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도시재생 뉴딜사업부터 서울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까지 각종 국가 건축정책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18일 내놓은 공공건축 디자인 개선 방안도 승 위원장이 주도했다. 그는 “저질 건축으로 생산됐던 설계 절차를 이제는 고칠 때가 됐다”며 “발주, 설계, 허가 등 모든 단계를 혁명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공공건축 디자인을 개선해야 하는가. “삶이 나아지기 위해서다. 우리 삶은 남산서울타워와 같은 도시의 랜드마크 또는 기념비와는 별 관계가 없다. 집을 나가면 만나는 골목길처럼 아주 익숙한 환경들과 관련이 있다. 동사무소, 유치원, 파출소 등이 공공건축의 중요한 요소지만 작기 때문에 무시돼 왔다.” -무엇을 우선적으로 바꿔야 하는가. “건축에는 세 단계가 있다. 발주와 설계, 허가, 그다음 짓는 단계인데 우리나라는 모두 후진국 수준이다. 우리나라 공공건축은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조달청에 발주하는데 설계비를 가장 싸게 써내는 사람에게 돌아갔다. 건축사 면허는 허가를 면하기 위해 받는데 설계할 때마다 허가를 받아야 한다. 어떤 건물을 허가받으려면 최소한 35개 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설계가 폄훼당하고 왜곡되기 마련이다. 설계와 감리도 분리돼 있다. 좋은 건축이 나오기가 만무하다.” -우리는 왜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같은 자산을 갖지 못했나. “그동안의 공공건축 등은 턴키방식(일괄수주계약)을 해왔다. 건설사와 시공사, 설계사가 한 팀이 돼서 들어오라는 것이다. 이건 변호사와 검사가 한 팀으로 법정에 들어오라는 것과 같다. 부정부패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평가하면. “도시재생을 재개발하듯 하면 망할 것이 뻔하다. 시한을 두면 안 된다. 콜롬비아 메데인의 경우 빈민 마을에 도서관, 놀이터 등 공공시설을 하나씩 지었더니 범죄율이 10년 사이에 20% 이하로 떨어졌다. 이런 방법을 ‘도시 침술’이라고 부른다. 자극을 줘서 주변이 되살아나고 생기가 돌게 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 방법을 써야 한다.” -청와대 관저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관저에 한번 가봤는데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 오래 살면 정신·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좋아질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청와대 본관이 있는 북악산 기슭은 역사 이래로 국민에게 내준 적이 없다. 전부 권력자가 잡았던 공간이다.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떠나서 온전히 국민의 축으로 만들자는 주장이다.” -서울의 특징을 어떻게 살려야 하나. “서울은 다른 나라 도시들과 달리 독특한 성질이 있다. 1000년 이상 존재했고, 600년 이상 한 나라 수도로서의 역사가 있다. 산수가 있으며 유라시아 대륙의 동단에 위치한 중요 도시다. 또 1000만 인구가 산다. 이것이 서울의 정체성이다. 다른 도시는 대부분 평지인데 서울은 산이 있어 지형마다 다 다르다. 사대문 안은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메가시티’가 아닌 ‘메타시티’적 방법으로 봐야 한다. 서울은 더이상 확장이 필요한 게 아니라 서로의 커뮤니티 내 연결이 필요하다.” -광화문광장 동상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있다. “광화문광장은 세계 최대 중앙 분리대처럼 돼 있다. 기념비적 광장이지 일상적 광장이 아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수십년 동안 있었고 광화문광장 남단에 있어 광장에 영향을 안 준다. 세종대왕 동상은 한가운데 있고 주변을 압도할 듯이 서 있다. 세종문화회관 옆쪽으로 옮기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승효상 “재개발식 도시재생은 위험…설계 절차 혁명적으로 바꿔야”

    승효상 “재개발식 도시재생은 위험…설계 절차 혁명적으로 바꿔야”

    “도시는 생물체와 같아서 늘 변한다. 따라서 늘 재생해야 한다.” 국가 건축정책을 총괄하는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승효상 위원장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이로재 건축사무소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목표를 두고 추진하는 도시재생은 재개발 방식과 다를 바가 없어 굉장히 위험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승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부터 서울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까지 각종 국가 건축정책에 사령탑 역할을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18일 발표한 공공건축 디자인 개선방안도 주도했다. 승 위원장은 “하급의 저질 건축으로 생산됐던 제도를 이제는 고칠 때가 됐다”며 “설계업무 절차를 혁명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새 광화문광장 조성 공사를 위해 이순신장군·세종대왕상의 이전을 검토하는 데 대해서는 “이순신장군상은 수십년 동안 있었고 광화문 광장의 남단에 위치해 광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세종대왕상은 세종문화회관 옆 쪽으로 옮겼으면 좋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공공건축 디자인을 개선해야 하는가. “건축은 우리 삶의 방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단순히 예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삶이 진보되기 위해선 반드시 바꿔야 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경제 대국이다. 그런데 행복지수로 따지면 아직 선진국에 못 미친다. 국제연합(UN)에서 행복지수에 관한 통계를 낸다. 기준이 10가지 정도인데 반 이상이 건축이나 도시환경과 관련됐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건축도시 환경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떤 건축들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우리 삶은 한 나라, 또는 한 도시의 랜드마크 또는 기념비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살면서 남산서울타워를 한 번 밖에 가본적이 없으니까 내 삶과 관계가 없는 것이다. 집을 나가면 만나는 골목길처럼 아주 익숙한 환경들은 우리 삶과 관련이 있다. 매일 우리 기분을 좌우한다. 이런 것들을 일상적인 건축이라고 한다. 동사무소, 유치원, 파출소 등이 공공건축의 중요한 요소지만, 작기 때문에 무시돼 왔다. 좋은 건물은 좋은 건축가가 설계하는게 마땅하다. 그동안 조달청이 발주하면 설계비를 가장 싸게 써내는 사람에게 돌아갔다. 설계를 싸게 낸 사람은 좋은 건축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하급 건축, 저질의 건축으로 생산됐다. 이제는 고칠 때가 됐다.” -굵직한 대형 사회간접자본(SOC)에서 생활SOC 중심으로 바뀌는 흐름에 동의하는가. “지난 수십년간 국가 건설산업은 토목, 혹은 굵직한 인프라 투자를 많이 해왔다. 지금은 충분할 정도다. 외형으로 보더라도 토목 인프라는 어지간히 갖춰진 형편이다. 이제는 발주 물량을 보더라도 건축 물량이 많아졌다.” -초대 서울시 총괄건축가를 역임했다. 가장 불편했던 점은 무엇인가. “관습이 제일 불편했다. 토건 위주의 행정 체제가 아주 강건하다. 그게 아니라고 설득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대형이 아닌 작은 사업들에 더 많은 관심을 쏟으니 그러한 사업들으로 인해 이익을 보던 업체들과의 관계가 악화됐다. 예를들어 개발업자나 건설업자 등이다. 이들과 전부 ‘적’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넘어가야 할 장애였고 심정적으로는 개의치 않았다.” -공공건축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는가. “건축설계 사업으로 창출되는 일자리가 많다. 종래의 큰 사업은 대기업들이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공건축은 소상공인이 가져가는 것이니까 훨씬 더 생활밀착형 이익을 가져가는 셈이다.” -현재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평가하자면. “도시재생을 재개발하듯 하면 결과는 망할 것이 뻔하다. 그런식으로 하면 안된다고 원론적으로 이야기를 해왔다. 지금도 우려되는 바가 없는 게 아니다. 우선 시한을 두면 안된다. ‘몇 년안에 끝내자’라는 방식은 실패로 가는 첩경이다. 지금의 방식은 굉장히 위험하다. 도시는 생물체 같아 늘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늘 재생을 해야 한다. 어느 한 기간 동안만 재생하고 그다음에 재생을 하지 않으면 도시를 죽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도시는 하드웨어만 있는 게 아니라 사는 사람들이 있다. 주민들이 어떻게 변화되는 지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그러면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대처를 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시간이 굉장이 많이 걸린다. 이번에 (사업이) 끝나면 이제는 도시재생이 없다는 식의 목표 설정은 굉장히 위험하다. 재생의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상업화, 대형화로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옥마을에서 개인에게 직접적인 비용을 지원했는데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했다. 한옥을 지으면 돈을 보수해주는 방식은 타락시킬 염려가 굉장히 크다. 공공시설이 부족하거나 길이 낙후된 곳을 조정해주면 스스로 (주민들이) 따라오게 해야 한다. 자율적으로 환경을 스스로 바꾸게 해야한다. 그래야 자기 것에 애착이 가고 공공과 긴밀하게 소통하려고 한다. 개인에게 돈을 지원해주면 도덕적 타락이 금방 따른다. 그것은 마약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는. “콜롬비아의 메데인이다. 원래 범죄율이 90%로 치솟던 곳이다. 마약으로 유명했다. 이 험악한 도시에 도시재생이란 방법을 꺼냈다. 빈민 마을에 작은 공공시설을 하나씩 지어줬다. 도서관, 어린이 놀이터 등을 지었더니 처음에 주민들이 뜨악하더니 곧 아이들이 놀기 시작했다. 범죄율이 10년 사이에 20% 이하로 떨어졌다. 어마어마한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다. 이런 방법을 도시 침술이라고 부른다. 자극을 줘서 주변이 되살아나고 생기가 돌게 하는 것이다. 우리 도시재생도 그 방법을 써야 한다.” -도시재생에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내몰림) 우려가 잇따른다. “공공에서 아주 전략적으로 개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공에서 개인 영역이 아닌 공공 역역만 건드려야 한다. 광장, 길, 도로 등이 대한 디자인의 질을 높여주고 동시에 시설물을 공공화를 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 개인에 대해 직접적으로 지원하면 위험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경제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임대료만 부추긴다. 따라서 세입자로 살고 있던 사람들을 위한 장치를 공공에서 만들어줘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짓거나 공공시설을 중간 중간 포섭해서 전체적인 지가나 건물 임대료를 낮출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건축을 위해서 어떤 예산을 늘려야 하는가. “건축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발주와 설계, 허가, 짓는 단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세 단계 다 후진적 수준이다. 발주는 싸게 써내는 사람에게 준다. 건축사 면허라는 것은 허가를 면해주는 것이다. 국가에서 자격증(라이센스)를 주면 알아서 설계하라는 것이다. 의사자격증과 같은 성격인데 의사는 수술을 할때마다 허가를 받는 게 아니지 않는가. 건축사는 설계할 때마다 허가를 받아야 한다.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공무원은 심의제도를 만들었다. 어떤 건물을 허가받으려면 최소한 35개의 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심의를 담당하는 이들은 대부분 실무를 잘 모르고 책임도 없다. 그 과정에서 설계가 폄훼당하고 오독되고 왜곡되기 마련이다. 또 설계와 감리를 분리한다. 아기를 낳은 어머니가 아기를 기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런 후진적인 건축에서 좋은 건축이 나오기가 만무하다. 세 단계를 정말 혁명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고쳐야 하나. “우리나라 공공건축의 설계 발주는 대부분의 지자체가 조달청에 발주한다. 심사를 익명으로 하면 부정부패가 반드시 개입되기 마련이다. 서양에서는 심사위원이 누구라고 공고할 때 발표한다. 그러면 이 심사위원의 성향을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응모한다. 공개돼 있으니까 절대 부정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익명성 뒤에 숨어서 비리 부정이 횡횡하고 있다. 이처럼 서양의 선진국의 모범 사례를 따라만 하면 된다. -용산 미군기지 건축물 활용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실시한 결과 전체 975동 중 81동은 존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역사적 가치 때문인가. “우리 설계팀에서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생태 복원, 역사보존, 도시 복원 등이다. 975개 건물 중 아주 소중한 것도 있지만, 정말 형편없는 게 대부분이다. 난개발이 돼 있다. 그런 것을 두고 생태를 복원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 사라지는 건물도 그 건물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게 만드는 장치를 둬야 한다. 용산 미군기지는 대단한 땅이다. 옛날에는 서울의 변두리였지만 지금은 서울의 중앙에 있다. 저는 국방부가 거기 있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국방부도 옮겨야 한다. 세계 어느나라 도시 한복판에 국방부가 있는 도시가 없다.” -청와대 관저 이전을 주장한다. “집무실은 광화문으로 안 나오겠다고 청와대에서 이야기를 했고, 관저는 이전을 해야 한다. 관저에 한번 가봤는데 사람이 살 곳이 못된다. 건축 구조가 그렇다. 빛도 잘 안통하고, 환기도 잘 안 된다. 오래 살면 정신·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결단코 좋아질 까닭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의 건강을 위해서도 관저는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무실은 옮기고 안 옮기고 가 중요한 게 아니다. 청와대 본관이 있는 북악산 기슭이 역사 이래로 국민에게 내줘본 적이 없다. 전부 권력자가 잡았던 공간이다. 우리가 광화문에서 대모를 하면 그쪽을 보고 한다. 방향성이 있다. 중요하는 것은 국민에게 내어주라는 것이다. 서울의 축이고 대한민국의 상징 축이다. 이런 주축을 권력과 비권력,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떠나서 온전히 국민의 축으로 만들자는 게 제 주장이다.” -우리는 왜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같은 자산을 갖지 못했나. “그동안의 공공건축 등은 그동안 턴키방식(일괄수주계약)를 해왔다. 건설회사와 시공 회사와 설계 회사가 한 팀이 돼서 들어오라는 것이다. 이건 마치 변호사와 검사가 한팀으로 법정에 들어오라는 것과 같다. 검사와 변호사가 서로 견제를 해야지 한 팀이 돼면 어떻게 되겠나. 많은 부정부패가 있을 수밖에 없다. 건축설계사무소는 돈이 없다. 시공회사가 돈이 많으니까 시공사가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제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건축가라고 하는데 공공시설을 설계해본 적이 없다. 불륜의 장소라고 생각해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서울의 특징을 어떻게 살려야 하나. “서울은 다른 나라의 도시들과 달리 독특한 성질이 있다. 서울시 총괄건축가를 하며 서울에 5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다. 1000년 이상 존재했고, 600년 이상 한나라의 수도로 역사가 있다. 산수가 있는 도시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단에 위치한 중요 도시며, 1000만 인구가 산다. 이 도시를 합한 것은 서울밖에 없다. 서울의 정체성이다. 다른 도시는 대부분 평지다. 서울은 산이 있어 지형마다 다 다르다. 파리나 뉴욕은 도시 설계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데 서울은 다 다른 원칙을 적용해야한다. 사대문 안은 전혀 다른 풍경을 갖고 있다. ‘메가 시티’(megacity)가 아닌 ‘메타 시티’(metacity)적 방법으로 불린다. 서울은 더 이상 확장이 필요한 게 아니라 서로의 커뮤니티 내에서 연결이 필요하다. 잠실은 산도 없고 이미 롯데월드타워가 들어서 있어 마천루의 도시처럼 만들어도 된다. 하지만 서대문 안은 건물을 지어선 안 된다. 지금이라도 건물을 지으면 안 된다. 세계에서 엄청나게 많은 도시 가봤는데 서울만큼 잠재력이 많은 도시가 없다.” -광화문광장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중요한 공간인데 세계 최대의 중앙 분리대처럼 돼있다. 누구나 쉽게 가야 하는데 지금 광장은 목숨 걸고 건너가야 한다. 기념비적 광장이지 일상적 광장이 아니다. 기념비적 광장에서 일상의 광장으로 바꾸자는 게 서울시에서 하는 것이고 제가 적극 찬성하고 도와주고 있다.” -광화문 광장 동상 논란이 있다. “현상 공모에서 좋은 안을 만들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수십년동안 있었고 광화문 광장의 남단에 위치해 광장에 영향을 안 준다. 세종대왕 동상은 한 가운데 있고 너무 주변을 압도할 듯이 서 있다. 장소를 옮기면 좋겠다고 하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이다. 만들 때부터 문제가 많았다 세종문화회관 옆 쪽으로 옮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교통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교통은 늘 무책이 상책이다. 광화문 광장은 차도나 보도를 전부 같은 자료를 써서 필요할 때 차를 다니게 하면 된다. 서양의 보행전용도로는 대부분 아침엔 차가 다니도록 한다. 오후엔 사람만 다니게 한다. 일부분 한두개 차선은 열어둘 수도 있다. 그런식으로 운영하면 된다.” -을지면옥 철거 논란이 있었다. “을지로 일대가 고통받는 것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만들어진 개발계획 때문이다. 세운상가 주변에 엄청난 개발계획을 세우고 법제화를 시켜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넘겼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도시재생의 방법으로 추진할 것이다.” -세종시에 대한 평가는. “세종시는 맨 처음에 만들 때 추진위원회 위원이었다. 처음엔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가운데를 비우고 환상형으로 평등한 도시 구조다. 작년에 처음 가봤는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새로운 도시를 계획했는데 흔히 보던 도시다. 주된 원인은 옛날 방식 그대로인 아파트 때문이었다. 도시는 아파트가 풍경을 좌지우지한다. 3기 신도시를 만든다고 하는데 옛날 방식대로 하면 큰일난다. 전반적으로 방법을 바꿔야 한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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