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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교통관리실‘두마리 토끼’잡았다

    서울시 교통관리실(실장 車東得) 직원 18명이 그동안 외주용역에 의존해오던 ‘중기교통종합계획’을 직접 수립,계획의 현실성을 높이고 7억5,000만원의 외주용역비도 절감하는 이중의 효과를 달성했다. 교통관리실이 중기교통계획 수립에 나선 것은 ‘인구 30만명 이상의 도시는 10년 단위로 도시교통정비 중기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도시교통정비촉진법 시행령 때문.이에 따라 지난해 8월 계획을 세우기로 하고 외주용역비를 파악해본 결과 7억5,000만원이나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통관리실은 당시 IMF체제하의 예산 초긴축상황임을 고려,계획을 자체적으로 수립했다.외주용역의 결과물은 현실성이 결여되고 학설에만 치우칠 수도있어 직원들도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점도 감안했다. 방침을 세운뒤 곧바로 실장과 과장·팀장 등 10명과 계약직 8명 등 18명으로 ‘중기계획팀’을 구성,작업에 나섰다.이들은 고유업무를 하면서 틈나는대로 자료를 뒤지고 회의를 거치면서 중기계획의 가닥을 하나씩 잡아나갔다.야근도 밥먹듯 했다.특히 현장위주로만 빠질지모른다는 우려에서 외부 전문가들과 끊임없이 회의를 하고 자문을 구했다. 이런 6개월의 노력끝에 최근 총 9개 분야,28개 부문,151개 시책을 포함한 2011년까지의 서울시 교통계획을 담은 ‘서울교통 미래21’이라는 작품을 내놓게 되었다.직원 1명당 4,000만원의 예산을 절약한 것.직원들은 이를 담은컬러책자를 직접 편집,편집비 560만원도 절감했다. 교통관리실은 27일 각계 전문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이를 발표,현실성있는 대안제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 市 ‘미래21’ 교통대책 오늘 공청회

    오는 2011년까지 서울시와 위성도시를 연결하는 궤도버스가 도입되고 전철도 급행 및 고속 그리고 2층열차가 도입된다.또 서울시 지하철의 혼잡도가현재의 201%에서 170%로 완화되고 택시의 실차율(승객이 탄 채 운행되는 비율)도 61.9%에서 55%로 낮아진다. 서울시는 26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총 28개 부문 151개 시책으로 된‘서울교통 미래21’이라는 중기교통종합계획을 마련,27일 공청회를 거쳐 이달말까지 확정짓기로 했다. 종합계획에 따르면 2011년까지 신교통수단으로 궤도버스가 도입돼 교통수요가 많은 수도권 신도시와 서울시를 연결하는 분당∼잠실,군포∼신도림,도농∼청량리,하남∼천호,일산∼신촌 등 5개 노선에 운영된다.시는 분당∼잠실노선에 궤도버스를 시범운영한 뒤 나머지 4개 노선으로 확대할 방침이다.또 지하철을 24시간 운영하며 신설노선에는 급행 완행 고속을 동시에 운행하고 2층차량도 도입한다. 수도권 전철망은 현재의 388.4㎞에서 924.8㎞로 늘어나며 도시철도 수송분담률도 현재의 32.3%에서 50%로 증가한다. 시는 이같은 중기시책을 위해 2011년까지 총 27조3,989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매년 2조1,076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金龍秀 dragon@
  • 굄돌-튀지 않는 시간들

    축구 중계는 항상 공을 따라 움직인다.공을 따라 맹렬하게 질주하는 선수들,떨어져 내리는 공을 머리로 받아 내기 위해 몸을 부딪치며 치솟아 오르는선수들,굴러가는 공을 서로 뺏으려고 몸싸움하는 선수들... 축구 선수의 애인이 경기장을 찾았다고 해 보자.그 여인은 공이 어디로 튀든 자기 애인의 모습만을 지켜 본다고 해 보자.그러면 축구에 대한 매우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축구 선수는 때로는 슬슬 걷기도 하고,때로는 가만히 서서 숨을 고르고 있을 것이다.공을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을 때는의외로 적을 것이다. 예술의 전당이 소장하고 있는 무용 공연의 사진은 수천 장이 된다.그 사진들을 쭉 훑어본 적이 있다.가장 멋진 장면,가장 어려운 기교를 구사하는 순간을 잡은 사진들을 골라서 모아 놓으면 무용은 언제나 그렇게 ‘어려운’몸짓으로만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축구 선수가 가만히 서 있을 때라도 그의 마음은 항상 공의 움직임에 따라긴장되어 있듯이,무용수의 몸이 ‘평범한’ 모습일 때도 무언가 감정을 담고 있다. 춤은 사람의 몸이 자연스러운 모습일 때도 어떤 표정을 담고 있다는 것을알게 해준다.거기서 출발해서 더 힘찬 모습으로,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의 몸이 변할 수 있고,그랬을 때 사람의 몸이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것인지를 감동적으로 일깨워 주는 것이 춤이다. 무슨 일이든 안 그럴까? ‘튀는 순간’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튀는 순간과 튀지 않는 시간들이 사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튀지 않는 시간들’이알차게 채워질 때 ‘튀는 순간’이 터져 나온다.아니,튀려는 욕심을 처음부터 갖고 있지 말아야 정말 튀는 순간이 창조되는 것은 아닐까?
  • 정직한 역사 되찾기-친일의 군상(21회)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가곡 ‘선구자’의 제1절이다.노랫말이 담고 있는 비극적 서사성과 장중한선율,게다가 가사 구절마다 배어있는 조국 광복의 웅지가 어우러져 부르는이,듣는 이 모두를 숙연케 하는 노래가 바로 이 노래다.가히 ‘국민가곡’이라 부를 만하다.일송정(一松亭)에 오르면 멀리 서쪽으로 용정(龍井)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발아래 북쪽으로는 해란강(海蘭江)이 서에서 동으로 유유히 흐른다.이곳이바로 ‘선구자’의 고향이다.그러나 유구한 세월 속에서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말 달리던 선구자도,활을 쏘던 선구자도….‘선구자’의 주인공들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오직 그들이 부르던 노래만 남아 입으로,가슴으로 전해오고 있다. ■시인·작사가 尹海榮‘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가곡 ‘선구자’의 제1절이다.노랫말이 담고 있는 비극적 서사성과 장중한선율,게다가 가사 구절마다 배어있는 조국 광복의 웅지가 어우러져 부르는이,듣는 이 모두를 숙연케 하는 노래가 바로 이 노래다.가히 ‘국민가곡’이라 부를 만하다.일송정(一松亭)에 오르면 멀리 서쪽으로 용정(龍井)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발아래 북쪽으로는 해란강(海蘭江)이 서에서 동으로 유유히 흐른다.이곳이바로 ‘선구자’의 고향이다.그러나 유구한 세월 속에서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말 달리던 선구자도,활을 쏘던 선구자도….‘선구자’의 주인공들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오직 그들이 부르던 노래만 남아 입으로,가슴으로 전해오고 있다. 1932년 10월 어느 날 저녁.만주 하얼빈에 살고 있던 청년작곡가 趙斗南(1912∼1984)에게 낯 모르는 한 청년이 찾아왔다.키가 작고 마른 체격의 청년은조두남에게 시 한편을 내놓으며 곡을 붙여달라고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조두남은작곡을 해놓고 그 청년을 기다렸으나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조두남은 그가 주고간 시의 내용으로 봐 그를 독립군 정도로 여겼다.이 내용은 조두남이 ‘선구자’ 작곡에 얽힌 비화를 소개하면서 작사가 윤해영에 관해 언급한 것이다. 尹海榮의 일제시대 행적이 밝혀진 것은 90년대 초반.한동안 윤해영은 ‘신비의 인물’로 여겨져 왔다.지난 90년 한국을 방문한 연변대학의 權哲교수는 “윤해영은 독립군이 아니라 시인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권교수에 따르면 윤해영은 1909년 함경도에서 출생,소학교 교사를 하다가 시인이 됐다는 것.초창기 그의 시는 ‘선구자’에서 엿보이듯 민족적 색채가 강했다.그러나 그는 식민지 시대를 겪으면서 훼절,친일로 전향하였고 해방후에는 공산주의를찬양하는 시를 썼다고 권교수는 주장하고 있다.권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윤해영은 결국 만주 친일파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는 셈이다. 친일파들 가운데 행적입증이 가장 쉬운 부류는 단연 문사(文士)들이다.곳곳에 친일의 흔적(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윤해영 역시 예외가 아니다.일제하 만주에서 간행된 ‘만주시인집(滿洲詩人集)’(1943년 간행)과 ‘반도사화 낙토만주(半島史話 樂土滿洲)’에 남아있는 그의 친일시 몇 편을 우선 살펴보자. ‘오색기 너울너울 낙토만주 부른다/백만의 척사들이 너도나도 모였네/우리는 이 나라의 복을 받은 백성들/희망이 넘치누나 넓은 땅에 살으리…’(‘낙토만주’ 제1절) 운율과 형식이 가곡 ‘선구자’를 본뜬듯이 꼭 같다.그러나 속생각은 정반대다.우선 ‘오색기(五色旗)’는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의 국기(國旗)를 말한다.만주국은 만주족·몽고족·한족·일본족·조선족 등 오족(五族)으로 구성돼 있었다.만주국 국기의 다섯 가지 색깔은 각 민족을 상징한다.만주국의 통치이념인 ‘오족협화(五族協和)’는 여기서 나온 말이다. 이 무렵 윤해영은 태극기 대신 오색기를 들고 있었다.바로 ‘낙토만주’는반민족 정서의 정수라 할 만하다.당시 만주에는 조선땅에서 건너간 유랑민들이나 독립운동가들의 가족들이 숨어서 은거하던,말 그대로 ‘고난의 땅’이었다.이를 두고 그가 ‘낙토’ 운운한 것은이미 민족의 반대편에 서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시에 흐르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지극히 낭만적이고 평화롭다.‘말달리던 선구자’를 외치던 정신은 온데 간데 없고 선구자들이 말달리던 만주국을 이상향(理想鄕)으로 미화하고 있다.‘유사품’ 한 편을 더 소개하자. ‘흥안령(興安嶺) 마루에 서설(瑞雪)이 핀다/4천만 오족(五族)의 새로운 낙토(樂土)/얼럴럴 상사야 우리는 척사(拓士)/아리랑 만주(滿洲)가 이 땅이라네…’(‘아리랑 滿洲’,‘만선일보’ 1941.1.1) 이 시는 윤해영이 만주국 기관지 ‘만선일보(滿鮮日報)’ 신춘문예 민요부문에서 일석(一席:1등)을 차지한 작품이다.심사평에서 평자(評者)는 이 시의 3연 2행 ‘기러기 환고향(還故鄕) 님 소식(消息)가네’를 두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귀에 익은 ‘아리랑’에다 전통타령조까지 가미한 것이 흥겨운 민요 한 편을 만난 기분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작품이 나온 시기와 장소이다.1939년 10월 조선에는 ‘국민징용령’이 내려졌고 2개월 뒤인 12월에는 ‘창씨개명령’이 공포되었다.그 무렵 만주에서는 ‘선만일여(鮮滿一如)’,즉 ‘만주와 조선은 하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대륙침략에 조선의 물자와 인력을 총동원하고 있었다.이같은 형국에 척사(拓士·개간꾼)들 앞에서 ‘얼럴럴’ ‘낙토’ 운운한 것이 당시 윤해영의 시(詩) 정신이요,민족관이었다.이름이 ‘아리랑’이지우리 전통민요 ‘아리랑’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1940년대 그는 만주국 친일조직인 협화회(協和會)의 간부를 지내기도 했다.친일의식이 행동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한편 윤해영이 1941년에 쓴 시 가운데 ‘발해고지(古址)’라는 시가 있다.이 작품은 윤해영이 발해유적을 답사하면서 민족의 비극을 돌아보는 내용을담고 있다.‘변절자’ 윤해영이 정신적 방황을 거듭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윤해영의 시세계를 연구해온 인천대 오양호교수(국문학)는 “일제말기 우리 지식인들이 운명적으로 겪어야 했던 비극의 편린을 보는 느낌”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지난해 가을에도 해묵은 논쟁으로 나라가 시끄러웠다.바그너 곡(曲) 연주를 둘러싼 찬반론이었다.이스라엘은 아직도 공식 석상에서 바그너 작품 연주를 금하고 있다.바그너가 제공한 반(反) 유태정신이 나치즘의 이론적인 기틀을 제공,민족감정에 배치된다는 것이 ‘연주금지’의 이유다.바그너는 1883년에 사망했다.그러므로 금세기에 자행됐던 유태인 탄압과는사실상 직접적 관계는 없다.그러나 이스라엘은 아직도 바그너의 작품 연주 금지를 풀지 않고 있다.이스라엘 민족이 편협해서일까. 예술작품의 참 가치는 기교가 아니라 정신이다.鄭雲鉉 jwh59@
  • 대한매일 주최 ‘사랑과 우호의 콘서트’를 보고

    ◎이웃사랑 담은 따뜻한 선율 감동적 결식아동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우리 이웃들이 황량한 벌판에 겨울나그네가 되는 아픔을 겪고 있다.고통은 나누면 줄고 즐거움은 나누면 커진다는 말처럼 함께 사는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 그 어느 때보다 그리운 송년이다. 대한매일신보사와 SBS가 공동주최한 이웃돕기 ‘사랑과 우호의 콘서트’는 음악회 형식을 빌린 이웃사랑 행사라 할 수 있다.14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이 음악회는 금난새 지휘의 수원시향이 반주를 맡아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과 뜨거운 교감을 나누었다. 연주회란 단순히 듣는 즐거움 못지않게 보는 만족이 더 클 수도 있는 법인데 금난새의 유연한 지휘 테크닉은 눈으로 보는 음악회의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프로그램은 1부 성악가 출연과 2부 합창과 피아노로 공연장에 낯선 청중들조차 쉽게 음악에 접근할 수 있어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단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의욕 과잉이 적정한 연주회 시간을 초과한 게 흠이었다. 특별 출연한 소프라노 서활란은 현재 이탈리아에서 활동중 일시 귀국해 선을 보인 재원이다.무대의 안정감을 바탕으로 유연한 프레이징과 신선한 음색,명료한 음 각각의 콜로라투라 기교를 선보였다. 테너 김영환은 무대감각이 열려 음폭이 넓어지고 고음에 자신감을 보였으나 음의 밀도나 빛깔이 다소 둔하게 느껴졌다.좋지 않은 컨디션의 영향으로 보여졌다.소프라노 박정원은 테크닉의 완성에 비해 소리표정이 좀더 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노래가 생명력을 지니고 호흡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피로가 누적되어서는 안될 것이다.바리톤 고성현은 특유의 장쾌한 사운드로 가곡 ‘청산에 살리라’,아리아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를 불러 관객의 환호를 이끌어냈다.충신교회 할렐루야 성가단은 무대에서 노래하는 설레임이 전달되었는데 지휘자 김정수의 절제력있는 표현이 요구되었다. 피아니스트 김혜정은 멘델스존의 감미롭고 열정적인 작품을 활달하게 연주하면서도 미학적 탐구에 집착을 보였다.수원시향은 첫곡으로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서곡과 마지막곡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를 선사했다.음악을 통해 이웃을 돌아본 소중한 시간이었고 청중의 거듭되는 앵콜은 마치 저물어가는 한해에 대한 그리움인듯했다.
  • 클래식 선율로 실은 이웃사랑/‘사랑과 우호의 콘서트’

    ◎14일 세종회관… 박정원·고성현씨 등 출연/반주에 수원시향… 수익금 전액 이웃돕기에 ‘감미로운 클래식 선율에 이웃사랑을 실어 전한다’ 98년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웃돕기 송년음악회가 14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다.대한매일신보사와 SBS가 공동주최하고 삼성화재 포항제철 한국담배인삼공사가 협찬하는 ‘사랑과 우호의 콘서트’. 이번 사랑의 콘서트에는 국내 정상의 음악인들이 함께 한다.소프라노 박정원,테너 김영환,바리톤 고성현,피아니스트 김혜정,소프라노 서활란씨 등이 출연하며 반주는 금난새씨가 이끄는 수원시립교향악단이 맡았다. 소프라노 박정원씨는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파리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 등 해외에서 10여년간 ‘디바’로 활약한 중견 성악인.그의 소릿결은 가느다랗고 맑은 리리코 레체로가 특징이다.지난 91년엔 한국성악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의 국립 바스티유무대에 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영환과 고성현은 국내 성악계에서 30대 선두주자로 꼽히는 인물.김씨는 94년 데뷔무대인 베르디 오페라 ‘에르나니’에서 주역을 맡으며 차세대 대표자리를 예약했다.“성악가는 기교음이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음을 들려줘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서정적이고 풍부한 음량의 리리코가 소리 특색이다.이에 비해 고씨는 어느 무대에서나 힘차고 균질하게 뿜어내는 ‘대포’같은 목소리가 트레이드 마크.그는 어둡고 깊이있는 보체 오스쿠로, 밝고 화려한 보체 브릴란테 등 바리톤 음색 모두에 두루 능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줄리아드음악원 출신인 김혜정은 옥사나 야블론스카야,레온 플레셔 등을 사사했으며 14세 때 링컨센터를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한 재원.이번 연주회에서는 멘델스존의 ‘피아노 콘서트 g단조 작품25’를 협연한다. 콘서트는 1부 아리아·가곡 무대와 2부 성가합창 등으로 꾸며진다.1부에서 들려줄 곡은 가곡 ‘내 맘의 강물’ ‘강건너 봄이 오듯이’ ‘청산에 살리라’와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중 ‘칼라프 왕자의 아리아’,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제르몽의 아리아’,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 중 ‘아델레의 아리아’ 등.한편 소프라노 서활란은 특별 게스트로 나와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그리운 이름이여’를 부른다.2부에서는 충신교회 할렐루야 성가단이 출연해 합창곡을 들려준다.베르디의 ‘내영혼아 주를 찬양하라’,비제의 ‘아름다운 주의 동산’,로시니의 ‘우리를 구원하소서’ 등을 통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어 수원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하는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불새’이 울려퍼지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이번 콘서트의 수익금은 모두 소외된 이웃을 돕는데 쓰인다.(02)721­5965.
  • 무용가 조광(이세기의 인물탐구:183)

    ◎‘천상의 희열’ 求道하는 칠순 춤꾼/숙명으로 시작한 춤인생/스페인춤에 또한번 전율/50나이에 유학… 인고의 6년/“올레아 올레” 정열과 절제 그는 영원으로 향한다… 趙洸의 스페인 춤은 조야하고 거친듯한 스페인 민속무곡인 사파테아도(三拍子系)에 맞춰 박자와 리듬, 호흡과 율동이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차양이 넓은 흑색 모자에 흑색 셔츠, 흑색의 긴 바지차림으로 춤을 출때의 프로필은 조명에 드리운 그림자때문에 장면 장면이 흑백 명화의 스틸을 연상시킨다. 구둣발로 마룻바닥을 울리기 시작하면 흥취를 돋우는 ‘올레아 올레’와 감정적인 충격력(衝擊力)이 즉흥적인 선(線)과 형(形)을 강조하여 객석은 일시에 혼도되고야 만다. 그의 ‘원무(圓舞)의 초점은 가슴의 피를 토하는 울부짖음’이며 ‘태양이 정오(正午)에 멈춘듯한 열기와 정열’은 인간 한계가 파괴되는 순간이 아닐수 없다. 그가 스페인 춤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지난 73년, 한국에 왔던 안토니오 가디스의 공연을 보고 나서다. 숨막힐듯한 열기와 액티브의 향연에 빠져 스페인 춤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 없었고 때마침 스페인에서 활동하던 朱莉씨가 끊임없이 격려해 주었다. 그러나 새로운 춤을 배우기엔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었으나 그는 평생의 소망을 실천하기위해 스페인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스페인에서의 4년간은 실로 살을 깎는듯한 인고의 나날이었다. 하나의 안무를 받기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나 춤출수 있는 장소와 기타리스트, ‘칸타(노래)’를 물색하고 한편으로는 캐스터네츠를 익히면서 ‘에르에스 무이’로 일컬어지는 남자무용과 ‘에리아에스 무이 플라멩코’로 불리는 여자무용을 배워나갔다. 한 작품을 떼는데 2개월이상이 소요되었으나 엄청난 레슨비는 그가 조직한 무용단 공연으로 충당했다. 마르틴 바르가스에게 발레 에스파뇰, 토마스데 마드리드에게 플라멩코를 사사했다. 플라멩코를 추는 방법에는 캐스터네츠 대신 손가락을 퉁겨서 소리를 내거나 손뼉을 치는 팔마다 발을 굴러서 박자를 맞추는 다양한 기법이 동원되었고 그옛날 안달루시아 지방의 집시의 한과 정서가 춤의 곳곳에 도사려자유롭고 흥겨운 중에도 짙은 슬픔과 연민의 정이 분출되어 나왔다. 춤을 배우는 동안 발톱이 빠지고 발뒤꿈치에 상처를 입는 수난을 겪었으나 플라멩코의 대표적인 춤으로 일컬어지는 파루카·알레그리아스·솔레아레스·탱고와 세기디야등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을 섭렵했다. 스페인 춤을 추기 전에는 물론 한국춤을 추었다. 경성전기공업에 다니던 18세때 평화극장에서 본 조택원의 ‘가사호접(袈裟胡蝶)’과 ‘소고춤’이 처음이었고 의연하고도 정적인 춤은 숙명처럼 그의 내부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었다. ‘남자도 춤을 출수 있다’ ‘남자도 춤을 추면 아름답다’에 눈뜨면서 무용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불태웠으나 부친 趙秉朝씨(건축업)는 장남의 춤취미를 완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어머니 金萬卿씨는 춤을 정신의 예술로 이해하여 정인방 한국무용연구소에 다니게 해주었고 현대적인 춤을 추기 위해 최승희의 제자로서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던 장추화현대무용소에 들어갔다. 송범 김진걸등이 함께 배웠다. 그때도 가슴속에 들끓는 정열은 정적인 춤보다는 동작선이 넓고 활발한 춤을 추고 싶다는 욕망에 49년에 도일,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무용가인 핫토리 시마다 연구소에서 낮에는 발레, 밤에는 도쿄 사사스카고교에 다녔다. 그의 첫무대는 도일하던 해 도쿄 국제극장에서 가진 핫토리 시마다의 공연에서 솔리스트로 ‘레실피드’를 춘것이 처음이다. 이후 해마다 스승의 공연에 출연하면서 ‘방황하는 초상’과 ‘사랑은 마술사’에서 ‘기교적인 면의 탁월성’을 인정받았다. 6년만에 귀국해서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가진 첫 발표회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당시 이화여대 교수로 있던 현대무용가 박외선씨가 이대 공연에 초청하여 3,000석이 넘는다는 대강당은 여대생 관객들로 대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그가 만든 ‘대각선상의 나상’과 한국 선율에 의한 ‘환희’ ‘애련’등은 황금빛과 흰색을 조화시킨 환상적인 의상과 함께 신문에서 ‘수작’으로 호평되었다. 그의 성격은 서울양반다운 반듯함과 까다로움과 도도함을 지닌다. 춤의 교습과정에서 지켜본 것처럼 빈틈없는 완벽주의자로서 사적인 일과 무용의 일을 철저하게 구별한다. 지난 8년간 그가 경영하는 서울 서초동 카페 체루니는 낮에는 그의 연습장소이고 밤에는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로서 알려진 얼굴들이 고루 모여든다. 한국무용을 하던 부인 韓順玉씨는 80년대 이후 그와 함께 플라멩코 듀엣을 추고 있다. 가족은 최근 결혼한 아들(재현씨)부부가 있다. 체루니의 단골멤버인 동국대 목정대교수(철학)는 조광의 춤을 보고 ‘그것은 몸전체의 율동이 아니라/ 천국(天國)에 들어가려는 사람의 전율(戰慓)/떨림/ 무서움…’이라고 노래부른다. 내년이면 춤인생 50년을 맞는 기념공연을 앞두고 그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쉽게 나타나지 않을 ‘천국의 춤’‘우주의 춤’으로 도약하기 위해 나이를 멈춘채 찬연한 분수로 솟구치고 있다. ◎그의 길 1929년 서울 출생 1947­49년 정인방·장추화무용연구소 사사 1949­55년 일본 핫토리 시마다 발레스쿨 수업,핫토리 시마다 공연참가 1955년 귀국공연(서울 시공관) 1956년 개인발표회(서울 시공관) 1959·61년 이화여대초청 개인발표회(이대 대강당) 1965년 조광아카데미발레단 창단 1966년 창단기념공연(원각사) 1973­75년 스페인체류 1977­83년 스페인유학, 토마스데 마드리드(플라멩코), 마르틴 바르가스(발레 에스파뇰)사사 1979년 일시귀국 조광무용공연(서울 국립극장및 부산 시민회관대강당) 1983년 귀국공연, 조광스페인댄스페스티벌(국립극장) 1984년 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 1994년부터 서울춤아카데미 창립공연(예술의 전당 및 국립극장) 등 1995년 서울춤아카데미 서울 및 부천공연(국립극장·부천시민회관) 1996년 일본 고야바시 유키치·마스코연구소 10주년기념공연(도쿄 마스코회관 대홀), 서울춤 아카데미공연 1998년 김문숙무용인생 50주년 기념공연(국립극장대극장)특별출연 현재 한국무용협회이사, 한국 스페인무용협회 회장,스페인무용단장
  • 해방후 첫 사형수 시인 兪鎭五(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1)

    ◎詩 낭독 탁월한 분단시대 최고 저항시인/중학생때 일본아이 자주 때려 형사 등살에 渡日/1946년 ‘국제청년데이’ 축시 낭독 10만 군중 갈채/지리산 문화공작대장 활약중 압송돼 사형 언도/‘아내와 월북했다’ 가설 바로잡는일 ‘국민의 몫’ 변혁기 문학은 사회와 역사 발전의 거울로서의 역할을 맡아왔다.해방의 공간에서 또 독재와 민주화의 공간에서 우리 문학이 줄곧 본연의 자리를 지켜왔느냐에는 많은 평가들이 엇갈리고 있다.그 가운데 새로운 세기는 다가오고 이제 우리 문학의 새좌표 설정이 요구되고 있다.이를 위해 그동안 우리 문학에 새겨져온 숱한 갈등과 번뇌의 흔적들을 문학평론가 任軒永 교수를 통해 재조명한다.주1회씩 연재될 任교수의 글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 문단의 비사들이 많이 포함될 예정이어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 시인이,“아아,사랑은/가고 돌아오지 않네!… 허공으로 사라졌네”라고 애절하게 노래하던 한 시인이 총탄의 이슬로 사라졌다.때는 1936년 8월19일,무대는 스페인 그라나다 근교 어느 과수원이었다. ○‘한국판 로르카’ 시인 투사 ‘1927세대의 샛별’이란 별명을 가진 민요시인 가르시아 로르카는 스페인 내전중 38세의 젊음을 피살로 마감했다.이 비참한 최후는 그의 시를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어 일약 세계적인 서정시인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노도 같았던,광풍 같았던,홍역 같았던 우리의 해방 공간과 분단의 틈새에는 ‘한국판 로르카’가 없었을까.독특하고도 마력을 지닌 시 낭독으로 청중을 열광시켰다는 그 로르카에 못지 않게 10만 참석자들을 뜨겁게 달궜던 한 시인이 있었다.바로 유진오(兪鎭五)였다. 활동으로 본다면 유진오가 ‘한국의 로르카’가 아니라 로르카가 도리어 ‘스페인의 유진오’가 됨직할 만큼 28세에 문학적 생명을 총살당한 이 시인은 세계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투사였다. 이제 통일을 향한 민족문학사는 분단의 장막에 가려졌던 문학인과 문학적 사건들을 21세기적 가치관으로 재조명할 처지에 있다 바로 그 첫 대상이 1950년 6월29일 긴급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분단시대 최고의 저항시인 유진오이다. 이 시인의 생애에 대한 연구자료는 문학사가 정영진의 ‘육탄시인 유진오의 비극’(저서 [통한의 실종문인] 게재)과 작가 강준식의 중편소설 ‘어둠을 찾아서’(문학사상 1990.3)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이 어딘지 조차도 미궁에 있었는데,이 두 자료와 증언에 의하면 유진오는 서울사람이라고 보는게 옳을 것 같다.아버지 유치구(兪致九)와 어머니 양만선행(梁萬善行·전주 출신)의 4남중 막내로 논산에서 태어났다.아버지는 노량진에서 서울시내 전체를 공급지로할 규모의 지물포 도매점을 경영했었는데 사업차 잠시 논산에 가있을 때 유진오가 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넉넉한 집안으로 맏형은 검사,둘째는 외교관,셋째는 일본에 귀화,그리고 막내가 시인인데,그는 겉보기에는 얌전했으나 중동중학 시절 음악 미술 스포츠 등 다방면에 재능을 가졌으며 특히 기타를 잘 쳐 부민관의 어떤 음악회에 찬조출연할 정도였다고 전한다. ○사업가 집안의 서울사람 큰 키에 좋은 체격이었던 그는 중학생 때부터 일본사람들을 너무나 증오하여 일본아이들을 때리다가 경찰서에들락날락 했었다고 전한다.이런 행동 때문에 계속 고등계형사의 시달림으로 국내에서의 진학이 어려워 1941년 도쿄로 건너가 와세다(早稻田)에 입학했으나 역시 형사의 등살에 못이겨 메이지(明治)로 옮겼지만 여전해 일본의 저명한 국수주의자가 만든 분카가쿠인(文化學院)에 들어가 동양문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제 말엽 징병기피를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해방직전에 밀입국했다.1945년 9월 그는 오장환의 추천으로 등단,당시 패기있는 젊은 시인들(金光現 金尙勳 李秉哲 朴山雲 兪鎭五)과 ‘전위시인집’(노농사 1946.10)을 내 화제를 일으켰다. 1946년 9월1일,국제청년데이(International youth day) 기념행사가 훈련원 (현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렸다.1915년 10월3일에 제1회 대회를 가진 국제청년데이란 진보적인 청소년들의 세계적 조직으로 이듬해부터는 9월 첫 일요일에 하던 행사를 1932년 이후 9월1일로 바꿔 실시했다. 한국에서는 해방후 처음 열린 이 청년축제에 10만명이 운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이날 식전에서는 평론가김오성(金午星)이 구속되는 등 이미 파란이 예상되었는데,시인 유진오는 축시낭독을 위해 특별초청을 받았다.문장 한토막씩을 띄어가며 격정적으로 특유의 몸짓을 해가며 청중을 사로잡는 것으로 이미 명성이 나있던 유진오로서는 가장 많은 독자 앞에 서게 된 기회이기도 했다. ○친일파를 ‘망령영감’ 야유 “눈시울이 뜨거워지도록/두 팔에 힘을 주어 버티는 것은/누구를 위한 붉은 마음이냐?”고 서두를 꺼낸 유시인은 “왜놈의 씨를 받아/소중히 기르던 무리들이/이제 또한 모양만이 달라진/새로운 점령자의 손님네들 앞에/머리를 숙여/생명과 재산과 명예의/적선을 빌고 있다/누구를 위한/벅차는 우리의 젊음이냐?”고 포효하면서 “썩은 강냉이에 배탈이 나고/뿌우연 밀가루에 부풀어 오르고도/삼천오백만불의 빚을 걸머지고”있다면서 미군정을 정면으로 매도함과 동시에 보수세력(친일파)을 “망령한 영감님”이라 야유하면서 “지옥으로 쫓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여 참석자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그의 시낭독 기교가 탁월하다는 말은 곧 미군정의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여,행사 이틀뒤인 9월3일 미군정 포고령 위반으로 피검,분단문학사의 첫 필화사건의 주인공으로 부각된다.이 낭송의 투사시인에게 문학가동맹측은 ‘인민의 계관시인’이란 찬사를 보내면서 석방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으나 10월 군사재판에서 이 시인은 1년 징역형을 선고 받아 약 9개월 복역한 뒤 석방(1947.5)되었다. 문학가동맹의 문화공작대 제1대 소속으로 경남지방을 순회(47.7)하고 돌아온 이듬해 그는 행운의 해를 맞는다.시집 ‘창’(정음사,48.1)을 낸데 이어 5월,창경국민교 여교사 김금남(金今男)과 결혼,1년 뒤 딸(香濬)을 얻는다.겉보기로는 이 시인에게 가장 행복했던 이 순간은 너무나 짧았다. 그는 조직으로부터 지리산 문화공작대장 파견 지령을 받고 입산(49.2.28), 여순병란(麗順兵亂)사건의 주모자 김지회(金智會)부대에 합세하나 ‘싸우다 쓰러진 용사’란 시를 낭독하는 등 한달간 머물다가 하산명령으로 내려오던 중 남원지역 민보단(民保團)에 피체(49.3.29)돼 서울로 압송,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49.9.30)를 받는다. 집안 어른이 앞장서 안재홍 신익희 등 정계 거물들의 탄원 서명과,시인과 이름은 같으나 전혀 다른 유명한 헌법학자 유진오(兪鎭午)를 동원하여 무기감형(49.11.7)에 성공,서대문교도소에 복역 중 그는 운명적인 전주로 이감된다(50.3).그 석달 뒤 일어난 6·25는 서울의 모든 죄수들이 석방되는 계기가 되었으나 대전 이남지역 교도소 수감자들 중 특수한 사람들은 ‘긴급처형’ 되었는데,유진오는 6월29일 새벽 30여명과 함께 총살당했다고 기록들은 전한다. “아,솔직히 말하면 나는 살고 싶다.살아서 내 생존의 확인인 시를 쓰고싶은 것이다.그렇지 않다면 사시나무 떨리듯 엄습해 오는 이 공포는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어째서 어머니의 자애로운 얼굴이 보고 싶으냐? 어째서 밤이면 두고 온 아내와 딸아이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지는 것이냐?” ○신익희 등 거물 탄원 서명 논픽션에 가까운 강준식의 소설 ‘어둠을 찾아서’에서 인용한 유진오의 옥중수기중 한 부분이다.이렇게 해서 한 시인,민주주의와 자유를 사랑하던 한 시인은 사라졌고,분단체제는 그의 모든 미학과 사랑까지 불온시해 버렸다. 참고로 그의 작품은 평론가 오성호의 노력으로 ‘창’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어 있음을 덧붙인다. “시인이 되는 것은 급하지 않다.먼저 투철한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겠다”던 이 시인의 불온성은 해방공간의 홍역이었을 따름이지 21세기를 바라보는 오늘로 전이될 성질은 아니다.지금은 오히려 역사적 진실의 복원이 절실한 시기가 아닌가.여기까지가 문학평론가의 몫이다.왜냐 하면 아직도 유진오의 이야기는 끝이 안났기 때문이다. 그와 약간의 인척관계에 얽혀있는 작가 강준식의 소설에 따르면 유진오는 처형의 순간을 교묘히 넘겨 살아남아 어린 딸을 형수에게 맡기고 아내와 월북했을 수도 있다는 설득력있는 가설을 제공하고 있다.이쯤되면 대체 비평가의 글이란게 하잘 것 없는 거짓부렁이일 수도 있음을 통감한다.누가 문학사를 바로 잡을수 있는가.국민과 정부와 연구자 모두의 협력이 절실하다면 과장일까.
  • 노래로 기원하는 ‘월드컵 성공’/서울신문사 주최 3테너 콘서트

    ◎23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신동호·김영환·김남두씨 ‘뱃노래’·‘남몰래 흘리는 눈물’ 등 열창 2002년 월드컵 성공을 위해 세 명의 테너가 뭉쳤다. 신동호(44·중앙대교수)·김영환(36·삼성클래식스 전속아티스트)·김남두(41). 국내 성악계의 대표적 테너인 이들이 서울신문사가 주최하는 월드컵 성공 기원 ‘3테너 콘서트’ 무대에 함께 선다. 23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신씨는 중앙대 음대를 거쳐 이탈리아에 유학,로시니 음대와 오지모 아카데미아를 졸업했다. 질리·푸치니·파바로티 콩쿠르에서 1위로 입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소릿결은 리리코 레체로. 시원시원한 가창력과 미성이 특징이다. 김영환씨는 국내 성악계에서 30대 선두주자로 꼽히는 인물로 소프라노 조수미·바리톤 고성현과는 서울대 음대 동기동창이다. 94년 데뷔무대인 베르디 오페라‘에르나니’에서 주역을 맡으며 차세대대표자리를 예약했다. “성악가는 기교가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음을 들려줘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 때로 과장된 기교음을 내는 파바로티나 도밍고,카레라스가 아니라 카루소나 갈리아노,마시니같은 초창기 테너를 자신의 음악 스승으로 삼고 있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서정적이고 풍부한 음량의 리리코가 그의 소리특색이다. 김남두씨는 한편의 소설같은 사연을 뒤로 하고 성악가로 입신한 케이스. 전주대 음악교육과를 졸업,당구장·음악학원 등 생활전선을 전전하다 33세에 뒤늦게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라 꿈을 이뤘다. 그의 음색은 스핀토 드라마티코.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살처럼 꽂히는 소리가 뜨겁고도 단단하다. 이들 세 명의 테너가 들려줄 곡은 조두남의 ‘뱃노래’,금수현의 ‘그네’,비제의 ‘카르멘 서곡’,카르딜로의 ‘무정한 마음’,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중 ‘남몰래 흘리는 눈물’등. 한국오페라연구소장인 박명기씨의 지휘로 반주는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주관은 세종예술기획 (02)273­4455
  • 전공관련 시사 질문에 수험생 ‘쩔쩔’/서울대 교장추천전형 면접

    ◎“아들 손가락 자른 아버지 어떻게 생각하나”/유흥업소 선별단속 형평성 질의도/경제학부선 ‘삼성 자동차’ 문제 출제 9일 실시된 서울대 고교장 추천제 면접고사에서는 까다로운 질문들이 쏟아져 수험생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3명의 교수가 1명의 수험생에게 15∼20분동안 실시한 이날 면접에서는 전공과 관련된 시사적인 질문이 쏟아져 대답조차 못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사회복지학과에 지원한 安秉燦군(18·서울 광영고3)은 “생활고에 시달려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아버지에 대해 사회복지학과 지원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무척 당황했다고 말했다. 安군이 “아버지의 심정에 이해가 간다.극빈층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이 있었더라면 막을 수 있었다”고 대답하자 면접교수는 “극빈층이 한두명이 아닌데 수요조사는 어떻게 하고 사회복지 예산확보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곤혹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법학과에 지원한 具賢眞군(18·경남 김해고3)은 “경찰이 유흥업소 단속에 나설 때 몇개 업소만 선정해서 실시하는데 법의 형평성 측면에서 어떻게 보는가” 하는 질문을 받고 말문이 막혔다. 경제학부에 지원한 李한범군(18·전북 순창제일고3)은 면접 10분 전에 A4지 한장 분량의 영문을 건네받고 당황했다.면접이 시작되자 원서의 내용을 요약해 말해 보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삼성의 자동차 진출문제’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IMF 이후 현재의 소비패턴이 바람직한가’(소비자아동학과),‘복제양 돌리의 유전자 복제에 대한 윤리성 문제’(생물학부),‘한자 조기교육에 대한 생각’(국문과),‘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고고미술사학과),‘초중고 한반 학생수 40명이 적당한가’(지리교육과),‘고위층 탈세를 바라보는 봉급생활자의 불만과 법의 형평성’(법학과) 등의 질문도 나왔다.
  • 한국예술종합학교장 이름 총장으로 바꿔(법령공포)

    ◎원주 지방환경관리청에 자연환경과 신설 정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장의 이름을 교장에서 총장으로 바꾸는 내용의 한국종합예술학교 설치령 개정령을 25일 공포했다. 개정령은 이 학교에 두던 운영위원회를 폐지하고,다른 국립대학처럼 학교의 중·장기교육계획 등의 시행과 관련된 총장의 자문기구로 기획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또 대학원 과정에 상당하는 예술전문사 과정의 수업연한을 ‘2년’에서 ‘2년 이상’으로 하여 고등교육법에 의한 대학원 과정과 같게 했다. 이와 함께 교과과정 운영의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하여 교과과정에 2개 이상의 학과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협동과정을 둘 수 있도록 함으로써 2개 이상의 학과에서 연계하여 제공하는 교과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했다. ▲환경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개정)=원주지방환경관리청에 자연환경과를 신설하고,관리과와 지도과를 통합하여 관리과로 한다. ▲재해구호 및 재해복구 비용부담 기준 등에 관한 규정(개정)=지금까지는 2㏊ 미만 농지의 경작자가 홍수 등 자연해재로 피해를 입을경우에만 장기구호,생계지원,중·고생 학비면제 등의 지원을 하도록 규정하고,2㏊ 이상 5㏊ 미만 농지의 경작자가 큰 피해를 입었을 때는 지원규정이 없었다.이들에 대한 지원규정을 신설하고,농경지 복구에 대한 국고 지원율을 일부 상향조정하여 농업의 생산성을 조기에 회복할 수 있도록 한다. ▲국유재산법 시행령(개정)=건물을 10㎡ 이하의 소규모로 사용허가할 경우 그 사용료를 계산함에 있어 감정평가법인의 평가를 받지 않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편익을 도모한다. 정부가 소유한 주식의 처분에 관한 총괄청의 권한을 관계중앙행정기관의 장이나 예금보험공사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부실금융기관의 원활한 구조조정을 도모한다. ▲노동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개정)=노동경제 관련 통계업무와 노동행정 규제개혁업무 등의 효율적인 수행을 위하여 노동부의 5급 및 6급 공무원 정원 가운데 각각 1인을 복수직화한다.
  • 노숙자 이대로 둘순 없다­직업훈련 현장

    ◎“이제 방황 끝” 재기 구슬땀/춘천기능대학 55명 용접기술 등 습득 열올려/새출발 다짐속 수당·취업준비금 부족 호소도 “다시는 거리에서 방황하는 노숙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29일 상오 강원도 춘천시 후평동 춘천기능대학의 ‘노숙자 직업훈련장’. 1평 남짓한 10여개의 용접부스에서는 전기용접을 배우는 10여명의 훈련생들이 용접의 불꽃을 튀기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남루한 차림새에 노숙자 생활의 자취가 남아 있지만 교육에 임하는 눈빛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강렬했다. 현재 이곳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는 훈련생은 모두 55명. 지난 7월초 서울역 등 노숙자 상담소를 통해 이곳에 들어온 뒤 용접·전기·기계 등 3개 직종의 직업훈련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는 교육비와 기숙사 비용,식사,월 8만원의 교육훈련수당 등이 국가에서 지원된다. 6개월동안 800시간의 이론 및 실기교육을 마치고 오는 12월 국가자격증을 취득하면 직장을 알선받는다. 훈련생 崔모씨(45·서울 송파구)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부도가 난 뒤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다가 용접 자격증과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다.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崔씨는 “노숙자로 전락하면서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으나 이곳에 들어온 뒤 희망을 가지게 됐다”면서 “꼭 새 출발을 해 군에 간 아들과 고교 졸업을 앞둔 딸에게 떳떳한 가장으로 다시 서겠다”고 다짐했다. 훈련생들은 최저생계비의 25%에도 못미치는 훈련수당에 대한 불만과 재취업 걱정을 털어놨다. 지난 4월 목포에 있는 H중공업에서 정리해고된 뒤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다 이곳에 온 權모씨(36)는 “모두 빈 손으로 들어왔는데 수당이 적어 속옷조차 제대로 사기 어렵다”면서 “취업준비금이라도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문학과 만화는 닮았다”/임청산 교수 박사학위논문서 연관성 주장

    ◎시·카툰→압축된 단편적 창작표현/소설·장편만화→이야기 전개방식 같아/희곡·애니메이션→배우·캐릭터가 의미 전달 문학과 만화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시는 카툰(단편만화)과,소설은 코믹 스트립스(장편만화)와,희곡은 애니메이션(만화영화)과 공통점이 많다. 공주문화대학장 林靑山 교수는 ‘문학과 만화의 구성요소와 상관성 연구’라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문학과 만화 장르는 이러한 연관성을 갖는다고 밝혔다.그는 시,소설 등 영미문학과 만화를 분석,이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논문에 따르면 시와 카툰은 압축된 단편적 창작표현이라는 점에서 그 형태가 유사하다.한 컷에서 서너 쪽 이내의 단편만화인 카툰은 서정성 있는 시적 표현에 알맞다.구미 선진국에서는 예술적 카툰의 짧은 대사나 제목에 시적 언어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 언어는 정서적·함축적·상징적·주관적이고 난해한데 비해 만화의 언어는 일상적·체험적·구체적·객관적이고 명료한 성향을 보이고 있다.한편 현대시는 리듬을 중시하는 청각적 시에서 이미지를 중시하고 회화성이나 고도의 표현기교를 눈으로 보고 생각하는 시각적인 시로 변하고 있다.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만화는 현대시와 가장 접근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과 코믹 스트릭스는 스토리를 전개하는 측면에서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플롯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물로 소설의 플롯은 발단,전개,위기,정점,결말의 단계로 구성된다.4컷 만화 역시 기승전결로 전개돼 공통점을 지닌다.플롯의 유형에는 단순 플롯,복합 플롯,피카레스크 플롯 등이 있는데 소설이 위기와 복합 플롯을 강조한다면 만화는 정점과 피카레스크 플롯을 강조하는 편이다. 희곡과 애니메이션은 작중 인물의 행동과 대사를 분명히 지시하는 연기연출적 측면에서 연관성이 높다.희곡의 등장인물이나 만화의 캐릭터는 보통 집중화되고 압축된다.두 장르 모두 극중배우 또는 캐릭터에 따라 의미전달의 강도가 달라지는 데다 시간과 무대,화면의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또 희곡과 만화는 소설보다 작중인물에 제한을 받아 한 두 인물에게 중요한 행동을 집중시키고 있다.그들은 대개 전형적이면서도 개성적으로 창조된다. 이처럼 시,소설,희곡 등의 문학과 만화는 구성요소와 표현기법에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그래서 두 분야는 다른 어떤 학문과 예술 영역보다 상관성이 긴밀하고 교류의 폭이 크게 넓혀질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林교수는 결론적으로 “만화의 문학적 접근은 더 훌륭한 창작예술의 승화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장르별 비교 수용단계를 거쳐 장르의 확대 또는 해체 단계까지 도달할 때 문학의 만화화와 만화의 문학화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 언론개혁 선도를 당부한다(사설)

    40여 언론 시민단체가 언론개혁을 이끌기 위한 범국민적 연대기구인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를 결성,오늘 하오 창립대회를 갖는다.모든 부문에서 개혁이 단행되고 있음에도 역사와 민족앞에 많은 폐해를 끼친 언론이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부도덕한 심판관 역할을 하고있다는 문제인식에서 언개연이 출범하는 것으로 안다.언개연은 “남북문제나 노동문제 보도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 우리 언론의 모습은 여전히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이며 권력과 자본에 유착해 곡필과 오보를 남발해왔다”고 밝히고 언론의 불가피성을 천명했다.언개연은 이를 위해 오늘부터 지하철 서울시청역에서 ‘50대 허위·왜곡보도 사진전’을 여는 것을 시작으로 언론곡필집을 펴내고 병든 언론인 청산작업을 위한 청문회 세미나 토론회를 갖는다. 언론피해법률지원본부 발족,불공정보도 감시 등 활동도 벌인다. 어느 부문보다 먼저 서둘렀어야 할 언론개혁운동이 이제라도 시작하는 데 대해 격려와 성원을 보낸다.그동안 일부 언론들은 강경 보수 기득권세력의 선봉이 되어 냉전이데올로기를 증폭시켰고,특정지역과 재계,관료집단,학계 등과 계층적 기반이 같다는 이유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며 지역패권주의를 즐기는 데 앞장서 왔다.균형을 위장한 교묘한 편파 왜곡보도로 국민과 독자의 가치판단을 흐리게 했고,국민 위에 군림하는 오만한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앉기 위해 언론자유를 악용했다. 이들을 개혁하지 않고는 나라의 진정한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뜻있는 인사들의 일치된 견해다.그러나 이들에 대한 개혁은 쉽지 않다.노회하고 현란한 기교주의 문장으로 본질을 호도하면서 상당수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데다 그릇된 기득권을 포기치 않으려는 일부 수구세력과 사회지도층에 속한 추종세력도 두고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이들의 청산을 바라는 인사들마저 이들 소유 매체를 통한 대대적인 반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주춤거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언론청산운동을 벌이는 언개연에 몇마디 당부하고자 한다.엄격한 도덕주의와 진실을 무기삼아 정공법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공명정대한 논리와 증거주의가 필수적이다.이와함께 뜻을 같이하는 매체가 건강한 대항언론으로서 언개연과의 유대를 강화해야할 것이다.그동안 이들 매체들이 언론의 바른길을 강조하는 활동을 벌이긴 했지만 산발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캠페인의 효율성을 높이지 못했으며 국민적 과제로 끌어올리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언론개혁 운동은 역사적 책무 차원에서 펴나가야 한다.적당히 하다 그만두면 더 큰 덜미를 잡힐 우려가 있고,그러다 보면 친일청산운동이 벽에 부딪쳐 끝내 역사가 정리되지 못한 것과 같은 비극성을 또다시 떠안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언론개혁 없이는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 영관장교 진급 속도 늦어진다/국방부

    ◎중령은 임관후 18년·대령은 24년 돼야/千 국방,초과진급 정상화방안 청와대 보고 군 영관장교의 진급 속도가 더뎌지게 됐다.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하기 위한 최소 근무 연한이 현행 소위 임관 후 17년에서 18년으로,중령에서 대령 진급은 임관 후 22년에서 24년으로 각각 늘어난다. 또 법적 근거없이 운영돼온 준장 이상 장군의 조건부 진급제가 폐지되며 임기제 진급 장군의 경우 2년 임기가 끝나면 무조건 전역시키는 등 정원 외 장군 진급이 엄격하게 제한된다. 千容宅 국방부 장관은 13일 金大中 대통령에게 이같은 내용의 장군 등 초과 진급자 정상화방안을 보고했다. 장군 진급억제 방안은 이날부터,영관 장교 인사방안은 빠른 시일 내 군인사법을 개정,시행된다. 이에 따르면 소장 및 중장의 정원 외 진급을 억제하기 위해 사단장(소장 보임) 및 군단장(중장 보임)의 경우 일부 연임을 허용,최대 4년 동안 재임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2년마다 사단장과 군단장을 교체하면서 하위 계급자를 무조건 승진·보직함으로써 소장 및 중장급 장군의 수가 해마다 무조건 늘어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와 함께 군단장 및 사단장의 조기교체에 따른 초과 진급자를 억제하기 위해 이들 보직의 2년 임기를 최대한 보장하기로 했다. 군 관계자는 “현재 중장 7명과 소장 13명 등 장군 20명,대령 76명과 중령 12명 등 영관장교 88명 등 모두 108명이 계급 정원을 초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며 “앞으로 소장 이상의 장군은 계급별로 결원이 발생해야 진급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통일운동 새 구심점 구축/民和協준비위 결성 의미

    ◎국민적 합의로 탄생… 남북 실무회담 제의/보수·진보세력 총망라… 첫 민간 상설기구 분단 이후 처음으로 정부와 정치·사회단체를 포함,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상설 민간 통일기구가 탄생했다. 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준비위원회 결성식을 가진 가칭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에는 정당과 사회,종교,노동,경제단체 등 모두 59개 단체가 참여했다.공동준비위원장에는 韓光玉 국민회의 부총재 등 상임준비위원장 6명과 宋榮大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 등 17명이 선출됐다.宋의장은 남북실무회담 수석대표도 맡았다. 상임위원장단 선출에서도 민화협은 범국민적 통일기구라는 면모를 갖추기 위해 吳滋福 전 민주평통수석부의장 같은 보수계열 인사에서부터 李昌馥 민족회의 상임의장 같은 진보운동권 출신까지 총망라했다.외면상으로는 상임위원장단이 이끄는 공동지도체제 형태지만 여당측 대표라는 무게때문에 사실상 韓光玉 부총재가 수석 상임위원장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韓부총재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이 대북창구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해 이같은 추측을 뒷받침해줬다. 민화협이 가장 먼저 마주칠 문제는 바로 공식 출범일인 오는 15일에 시작될 통일대축전 문제.때문에 이날 결성식에서 민화협은 오는 7일 상오 10시 판문점에서 남북간 실무대표 회담을 열 것을 제의했다. 그렇지만 북한측이 우리가 불법단체로 규정한 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을 민화협에 포함시킬 것을 계속 주장하고 있어 실제로 7일 실무대표 회담이 성사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민화협은 8·15 통일대축전이 남북공동으로 개최될 경우,남북 축구경기교환개최와 남북 민속예술단의 교환 공연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만약 8·15 통일대축전의 공동개최가 무산되더라도 민화협이 앞으로 이뤄낼 수 있는 남북교류협력의 여지는 많다는 것이 통일문제 전문가들의 전망이다.또 그동안 보수,진보세력으로 나뉘어 분열상을 드러냈던 통일운동이 이제 구심점을 찾았다는데 민화협의 큰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다.
  • 도예가 李秀鍾(이세기의 인물탐구:176)

    ◎無心의 경지 빚는 ‘큰 그릇’/容器의 기능 잃지않으며 흙에의 회귀 담아/전통적 형식보다 개성적 색감·형상 추구/물레질만이 낙… 農心처럼 꾸준한 조형 탐색 영국의 미술평론가 허버트 리드는 ‘한민족의 민족정신과 사회기풍은 흙이라는 표현매체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한나라의 예술의 세련미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기(陶器)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했다. 그릇의 조형탐색에 천착하는 도예가 李秀鍾은 ‘한국이 아무리 찬란한 도자기의 나라라고 할지라도 청자나 백자는 어디까지나 고려· 조선의 것이며 오늘날의 도자기는 용적(用的) 기능과 미적 가치를 동시에 수용하는 순수조형’임을 주장하고 있다. ○도예의 진수 아는 匠人 따라서 그의 그릇은 용기로서의 유용성이 파괴되지 않으면서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흙에대한 원초적 회귀’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흙과 불이 가지는 생명력과 가능성을 이해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삶이 근본적인 조화를 보일때 비로소 도예의 본질이 파악된다는 것이다. 미술평론가 이재언은 이수종의 이러한 작업내용은 ‘다채로운 흙의 경험에서 얻어진 흙의 예술가다운 결과이며 그는 도예의 진수를 알고 빚는 장인(匠人)’이라고 평한다. 즉흥적이거나 감각적인 흥취뿐만 아니라 흙자체가 지니는 언어적 인자와 조건들을 세밀하게 탐구한 숙고가 그것이다. 더구나 고금과 동서를 넘나드는 개방적 의식과 줄기찬 창작의지는 실용적인 기물과 순수조형 사이를 부드럽게 ‘자유’하면서 분청의 전통적 형식에 머물기보다 개성적인 색감과 형상의 생성으로 그가 추구하려는 작품에 접근해 나간다. 이수종의 작업실은 10여년전까지만 해도 홍대앞에 있는 빌딩 지하에 있었다. 그러나 건물에서 불을 다루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아 과천시 변두리에 야외 작업장을 마련하여 이사했다. 그때부터 아침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산을 바라보면서 ‘그릇이야말로 한번쯤 도전해볼만한 조형물’이라는 다짐과 함께 ‘산처럼 듬직한 그릇’을 구상할 수 있었다고 돌아본다. 따라서 그의 그릇은 용기가 지닌 고유의 형태미와 표현상의 아름다움을 전제하면서도 담기는 내용에 따라 유(有)나 무(無)에 대한 구실도 달라지는 것이 눈에 띈다.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는 추상공간에다 눈으로 보되 마음속에 와닿는 내면의 든든한 기(器), 당장의 편리함보다는 두고두고 써도 물리지않는 장독대같은 ‘이수종만의 그릇’이 그것이다. 최근의 작품들은 회흑색의 태토(胎土)위에 백토를 분장한 다음 그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도각(陶刻)을 해서 구워낸 ‘거칠고 투박한 흙맛’이 제격이다. 휘돌아가는 물레의 속도감, 그 위에 반응하는 세련된 손맛, 귀얄이나 덤벙기법에 의한 화장의 멋등은 기계화된 현대사회에서 순후한 인간미와 노동의 신선함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여 보는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이수종은 요령을 부릴 줄 모르는 사람이다. 막가내하(莫可柰何)이며 자기 할일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 그래선지 그의 작업은 곧잘 농부에 비유된다. 흙을 선택해서 물을 주고 습도를 유지시켜 형을 만들고 건조를 기다렸다가 적당한 시기에 가마에 넣고 오랜 시간 소성하는 과정은 농부가 씨를 뿌리고수확을 거두는 마음가짐이다. 그래서 자연에 순응하는 농부의 지혜와 순수성으로 흙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도예가의 정신이 투철하게 살아있다. 그러나 열정적인 창작열과 끊임없는 실험정신 이전에 그는 ‘그저 주물럭거려 본것뿐’이라는 것이며 외형에 서투르게 그려넣은 그림이 추상적 의외성을 산출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의도적이 아님은 말할것도 없다. ‘나는 그저 빚었을뿐’ ‘타고난 예술적 재능’따윈 없다고 거부한다. ○“나는 그저 빚었을뿐” 이수종의 작품은 ‘한국의 미’를 논할때마다 흔히 등장하는 ‘무심(無心)의 경지라고 할수 있다. 더구나 무기교(無技巧)의 기교로써 형태에 대한 관심이 없는듯이 형태를 빚어내고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없이 그림을 그리면서 도자기의 내면에 잠재된 자연성 유희성 감수성을 끌어낸다. 간혹 평자들은 최근의 그의 작업과정은 흙이라는 물질에 대한 관념을 표명하는 시기, 흙과 불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기는 시기, 백자기법인 전승을 바탕으로 조형작업을 시도하는 시기등 작업의 끝없는 모색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이른바 위대한 자연의 계곡에서 부유하는듯한 장인적 기량으로 작가의 대담한 사유(思惟)를 은연중에 보여준다. ○말없고 설명 싫어해 그의 작업은 농부에 비유되고 있으나 실은 순 서울토박이다. 청파동에서 장사를 하던 李範奭씨의 3남3녀중 막내. 지난 6월 성곡미술관이 주관한 ‘한국 전통도예 10걸’에 추대되리만치 우뚝한 명장(名匠)의 위치지만 그의 어린시절은 평범한 소년에 불과했다. 다른 예술가들처럼 장래 무엇이 되겠다는 포부도 없었고 부모의 특별한 기대도 받지 않았다. 부친이 일찍 타계한 탓에 누나와 형들에게 학비를 타쓰는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냈고 고3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미술학원에 다닌것이 도예와 관련된 유일한 근거다. 천성적으로 말 없는데다 설명하기를 싫어해서 여러 논쟁에 끼어들지 않았으나 월간 ‘공간’과 계간미술지등에 ‘현대 도자기의 의미’와 ‘전통도예 기법에 의한 현대도예’등 ‘미적탐구가 아닌, 용기로서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발표한것으로 알고 있다. 주변에서는 ‘재미없는 사람’‘멋없는 사람’으로 소문나 있고 잘 팔리는 작가가 아닌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편도 아니다. 홍대후배인 부인 崔惠子씨는 그런 남편을 이해하여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자녀는 남매. 물레질만이 취미이자 낙이며 온힘을 기울여 그릇을 빚는동안 반드시 좋은 그릇이 탄생하리라는 확신에 차있다. 흙의 따뜻한 체온으로 도자기를 성형하고 신비한 불의 마술을 경험한다는 것은 각박한 현대생활에서 아름다운 들꽃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소박한 기쁨일 것이다. 현대도예에서 가장 충실하게 조형탐색을 일관하는 예술가가 있다면 그가 바로 이수종이며 무기교로 일관하는 ‘이수종 그릇’은 그만이 지닌 투박미와 자연미로 한국 현대도예사에 한획을 긋는 비중있는 족적을 남길것임에 틀림없다. ◎그의 길 ▲1948년 서울출생 ▲1971년 홍익대 공예과졸업 ▲1979년 홍대 산업미술대학원졸업 ▲1981년 첫개인전(서울관훈미술관) 1986-88년 개인전(토갤러리) ▲1990년 개인전(토아트 스페이스), 예술의전당 미술관개관기념전, ‘흙놀이’(토탈미술관),한일교류전(교토) 1991년 도예와 조각의 만남(63갤러리),한국현대도예 유럽순회전 ▲1992년 서남미술관개관기념전, 현대분청 2인전(다도화랑), 독일 슈포트벡셀기획 ‘다른것들과의 만남’ ▲1993년 개인전(서울삼풍갤러리·성담아트갤러리),예술의 전당 개관기념전, 한국현대도예전(미국 샌디에이고) ▲1994년 핀란드및 타이베이 국제도예전, 현대도예30년전(국립현대미술관), 부산개인전(갤러리부산) ▲1995년 개인전(토아트 스페이스·우원화랑),한국현대도예전(한가람미술관), 20세기의 東京전(화랑사계) ▲1996년 서울공예대전, 진로도예 벨기에전, 한국현대도예가회 특별전(토탈미술관), 누드웨어전(신세계현대아트) ▲1997년 개인전(토아트 스페이스), 워커힐미술관초대 ‘흙의 정신전’ ▲1998년 성곡미술관초대 한국도예작가10인전 대만시립미술관, 영국 빅토리아 알버트뮤지엄 국제소형도자 트리엔날레 명예상(90년)
  • 구인·취업/방송사·법원 속기사 올 수백명 신규 채용

    ◎컴퓨터 속기사/고졸이상 학력이면 가능 회의,강연,좌담회 및 법정에서 발언내용을 속기부호를 사용해 받아 쓰고 이를 다시 평상문자로 번역해 기록하거나 속기 기계를 이용해 속기록을 작성한 뒤 컴퓨터화면에 띄워 교정·편집하는 일을 한다. 고교졸업 이상의 학력으로 국회 속기양성소 또는 사설학원의 속기사 양성과정을 이수하면 된다. 상공회의소에서 시행하는 한국속기 및 영문속기사 자격과 한국속기교육협회에서 시행하는 컴퓨터속기사 1∼5급 자격시험이 있다. 방송자막 속기사가 올해부터 의무화됐기 때문에 수백명의 컴퓨터 속기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법원의 경우 수백명의 컴퓨터 속기사가 필요한 실정이고,일반기업체의 회의록 담당부서에서도 많은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국회속기양성소 (02)788­2652,한국속기교육협회사무국 (02)672­5731. ◎보험대리인/대리점 직접 운영도 가능 생명보험,자동차보험,화재보험,해상보험 등 각종 보험상품에 관하여 상담,조언 및 판매하는데 관련된 업무를 수행한다. 고객의 수준에 맞는 상품을추천해주고 가입절차,보험료 납입방법,보험료 지급방법을 설명하고 계약서를 작성한 뒤 사후 관리를 한다. 대학 또는 전문대학의 금융보험 관련학과를 졸업하면 유리하지만 대학졸업 정도의 학력이면 전공에 관계없이 가능하다.보험대리점에 취업하거나 직접 운영이 가능하다.대한손해보험협회 (02)739­4161∼9,생명보험협회 (02)275∼0121. ◎손해사정인/교통사고 등 보상액 산정 보험에 가입된 선박,항공기,자동차,운송화물,육상시설물 등이 화재 또는 사고로 인한 손해발생시 사고조사를 하고 피해액을 감정해 보상금액을 산정한다. 대학 또는 전문대학의 보험학,금융보험학,수학,통계학,경영학과 졸업생에게 유리하지만 응시자격에 학력,성별 제한은 없다. 자동차보험,화재보험,해상보험 등 각종 손해보험회사에 취업할 수 있고 개인 손해사정인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다. 보험감독원 (02)399­8000,대한손해보험협회 (02)739­4160∼9,한국화재보험협회 (02)780­8111,보험개발원 (02)782­9611. ◎이벤트 전문가/전시회·공연 등 기획·섭외 전시회,공연,컨벤션,축제,패션쇼,판촉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섭외·준비·실행한다. 전문대학 또는 대학졸업 정도의 학력으로 방송관련,광고,연극,영화관련학과를 전공하면 취업에 유리하다.사설학원의 이벤트 전문인력 양성과정을 이수해도 된다. 공인된 자격·면허는 없다.광고대행사의 이벤트부에 취업하거나 중소이벤트 전문회사에 취업이 가능하다.한국영상연구소 (02)516­6920,한국이벤트개발원 (02)558­3973. ◎기능검정원 및 강사/운전학원 취업전망 밝아 급속히 증가한는 운전기능인을 교육하고 시험을 공정하게 관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고졸이상의 학력으로 경찰청장이 지정하는 전문기관에서 자동차운전기능검정에 관한 연수교육을 이수하면 된다. 경찰청에서 시행하는 기능검정원,학과강사 및 기능강사 자격이 있다. 국가지정 자동차운전전문학원의 기능검정원 및 학과·기능강사로 취업이 가능하다.자동차운전 전문학원에서는 기능검정원과 강사가 반드시 기능검정과 자동차운전에 관한 학과 또는 기능교육을 실시해야 하기 때문에 취업전망이 밝다. 한국자동차학원연합회 (02)571­4477,경찰청 면허계 (02)313­0674. ◎컴퓨터 오퍼레이터/전산업무 정상운영 점검 프로그래머가 짠 소프트웨어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 실행·관리하거나 전산업무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컴퓨터 시스템 전반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고졸이상의 학력으로 사설학원의 오퍼레이팅 과정을 이수하면 된다. 명확한 자격·면허제도는 아직 없으나 국가기술자격법에 의한 정보처리분야의 기능사 자격을 소지하면 유리하다.
  • 순수 국내파 테너 김재형씨/차세대 성악계 頂上예약

    ◎서울시립교향악단 무료공연/3일 ‘세미클래식 산책’ 독창/하루 10시간이상 연습/풍부한 성량·감미로운 음색/내년 6월 독일 유학 예정/스위스 오페라단 가계약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음색에,풍부한 성량으로 국내 오페라 무대를 누비고 있는 테너 김재형씨. 73년생. 만 25세. 입단하기 어렵다는 국립합창단원인데다 최근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에 중견테너 신동호씨와 주인공에 더블 캐스팅되기도 했다. 그는,흔하디 흔한 유학파도 아니고 유명 국제 콩쿠르 우승자도 아니다. 서울서 대학(서울대 성악과)을 졸업한 순수 국내파다. 평범하기 이를데없는 이런 경력을 갖고 동년배중 단연 돋보이는 연주자로 자리매김한 비결은 무엇일까? 풍부한 성량에 따뜻한 감성의 목소리,반듯한 외모도 한몫을 해내고 있지만 하루 10시간 넘게 연습하면서 발성법을 수없이 바꾸는 등 요즘 젊은이 답지않은 끈기 덕분이다. “운이 좋은 편입니다.중앙콩쿠르 우승으로 병역특례를 받아 국립합창단원으로 계속 노래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행운아란 말로 겸손해하는 김씨는 3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처음으로 마련하는 일반 시민을 위한 무료공연 ‘세미클래식 산책’에 독창자로 나선다. 또 서울 예술의전당이 7월24일 올릴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판투테’에서도 페르란도에 캐스팅돼 한창 연습중이다. 꾸준한 연습으로 레퍼토리를 넓히면서 장래설계도 마치 설계도를 보는듯 꼼꼼하게 그려놓고 있다. 내년 6월 병역문제가 해결되면 바로 독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이에앞서 스위스 루체른 시립오페라단이 99년 여름축제기간동안 공연할 ‘코지판투테’와 ‘호프만 이야기’출연을 위해 내년 1월 연습에 합류한다. 이는 지난해 여름휴가기간을 이용해 참가했던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국제 콩쿠르에서 김씨를 눈여겨본 에이전시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루체른 시립오페라단 단원 입단도 가계약 해놓았다. 우리말과 함께 독어로 녹음해 둔 그의 삐삐 인삿말을 들어보면 오늘의 그의 눈부신 활약이 단지 행운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독어 녹음은 유럽에서의 활동에 대비한 작은 실천으로,장래에 대한 치밀함을 엿보게 한다. 고교3년때노래를 시작,본격적으로 성악에 입문한지 이제 7년. 웬만한 가곡은 물론이고 단역을 제외하고도 8개 오페라 무대에 주역으로 섰다. “지난달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시립오페라단의 ‘호프만 이야기’ 공연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20대부터 중년의 목소리를 내야하는데다 다양한 기교까지 가미된 배역이라 힘들었지만 그만큼 배운 것도 많았거든요.” 졸업후 합창단원 월급과 출연료를 꼬박꼬박 모아 유학자금을 스스로 마련했다는 김씨는 틈틈이 축구 야구 스키 등으로 체력관리도 소홀하지 않은 당찬 신세대다. 변성기를 거쳐야하는 음악적 특성때문에 다른 분야에 비해 뒤늦게야 빛을 발하게 되는 성악계에서 이례적으로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은 그의 행보에 기대가 쏠리고 있다.
  • 무용인 趙興東(이세기의 인물탐구:174)

    ◎열일곱분 스승의 춤 계승과 극복/전통춤 섭렵… 가장 많은 춤사위 확보/자신만의 춤제 창안 또다른 원형 만들어/내딛는 보폭마다 백태의 곡선 연출/남성적 매력 넘치는 태평무·한량무 일품 흰색 도포차림에 검은 갓,큰 부채로,얼굴을 가린 趙興東의 ‘회상(回想)’은 한 선비가 자신이 지나온 나날을 청허탄회(淸虛坦懷)로 돌아보는 춤이다.82년 대한민국무용제 전야제에서 선보인후 지난해 봄 문예회관 대강당에서 공연되어 화제를 뿌린 이 작품은 일종의 ‘조흥동류 한량무(閑良舞)’로서 해방전에는 신무용의 선각자인 조택원이 춤추었고 ‘몸은 비록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身老心不老)’는 제목으로 정인방이 형상화한 것을 그가 다시 춤사위를 짜고 악을 정리해서 자신의 춤으로 만들었다. ○현대와 궁중무 조화 본래의 ‘한량무’는 굿거리와 자진모리로 구성된데 비해 조흥동의 ‘회상’은 청송곡으로 시작해서 진양조 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를 거쳐 장(壯)과 한(閑)과 원화(怨和)를 춤속에 용해시키고 다시 청송곡으로 환원하는 수미일관(首尾一貫)이 남다르다.백으로 절제된 조명아래서 어느 때는 독수리처럼 날고 어느 때는 강철같은 번뜩임을 보이면서 내딛는 보폭마다 백태(百態)의 곡선을 연출하는 바람에 ‘모든 장면마다 절륜의 명화를 그린다’는 평을 듣는다.‘회상’뿐만 아니라 그는 어떤 춤이든지 우리 몸짓 가운데 힘이 숨어있는 곳을 꿰뚫어 남성무용수만의 정결하고도 선명한 광채를 흩뿌려나간다.춤사위마다의 변화와 춤의 언어가 정확할 뿐만 아니라 우리민족이 다듬어온 정밀하고 유현한 기백을 살아있는 흥취와 멋으로 개발하고 ‘남성춤의 신기원’을 이룩한 것도 조흥동만의 위업일 것이다. 그의 남성적 ‘태평무’는 스승 강선영의 화려한 겹걸음과 잔걸음등 발디딤새의 기교를 살리면서도 현대무용적인 분방함과 궁중무용의 내밀한 품위를 적절히 조화시켜 나간다.특히 발을 들었다 올리고 차듯이 엇비키는 다양한 율동은 리듬과 동작의 틀을 과감하게 깨면서 열박장단 돌림채로 눈부시게 몰아간다.여기에 조한춘의 꽹과리춤을 개작한 ‘진쇠춤’과 ‘장고춤’ ‘살풀이춤’ 역시 수없이 손질되고 다시 짜여져 시각적인 변화와 함께 호남의 기방적 교태미나 영남의 투박한 맛과는 달리 묵고적(默考的) 미선(微線)으로 정중동의 여백을 유려하게 펼치고 있다. 음악과 무용을 하는 이들이 주로 어울리는 서초동의 카페 체루니에 가면 그는 자신의 특기중의 하나인 ‘살풀이’ 한자락을 언제라도 여한없이 춤추어 보인다.와이셔츠에 양복바지 차림이지만 하얀 수건 하나만으로 한을 다스리고 추스르는 그의 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춤의 심장에 한없이 젖어들게하는 매력이 제격이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는 유세를 부리거나 세련된 티를 내지 않고 언제나 조흥동만의 관옥(冠玉)과 미소를 잃지 않는다.그래선지 남을 칭찬하는데 인색한 강선영 김백봉 이매방씨등 까다로운 원로들로부터 ‘조흥동은 춤솜씨도 일품이지만 인간 됨됨이가 반듯한 무용가’라는 총애를 받고 있다. ○누나들이 무복 불 살라 지난 수년간 국립무용단장 춤의 해 운영위원장 한국무용협회이사장등 탁월한 행정가의 면모를 보이는 중에도 ‘무천의 아침’‘환’등의 대형작품을 만들어냈고 굵직한 직함뒤에 가려져있던 안무가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 보였다.지난해 10년만에 마련한 그의 발표회에 왔던 재미 무용평론가 이병임은 ‘세련되고 정겨운 조흥동의 무대매너는 모처럼 무대에서 귀인을 만났다는 반가움을 준다’고 평한 바 있다. 그는 가장 많은 한국의 전통춤사위를 섭렵한 무용인답게 가장 많은 춤사위를 점유하고 있다.그가 사사한 스승만도 김천흥 한영숙 이매방 은방초 김석출 박송암 스님에 이르기까지 무려 열일곱분이나 되고 유형별 유파나 계보별로도 각양각색의 춤이 망라되어있다.그러나 지난 9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인 ‘태평무’ 이수자가 됨으로써 전통 체득의 긴 여정을 끝내고 지금은 한성준류를 계승하고 있는 강선영에게 정착된 셈이다.그러나 스승에게서 배운 전통춤을 그대로 추기보다 원형을 재해석하면서도 자기식의 춤제를 창출하여 자기 주관을 강하게 주입시킨 또 다른 원형을 만들어내는 것이 조흥동의 춤이다. 조흥동은 숙명적으로 춤출 수밖에 없는 기질로 태어났으나 집안은 예술과는 무관한 봉건적이고유교적인 환경에서 자라났다.경기도 이천의 대농이던 趙泰煥씨(94)는 한학에 능한 학자풍으로 딸 넷을 낳고 백일기도 끝에 얻은 막내아들이라서 ‘눈에 넣어도 아파하지 않을만큼’ 귀하게 키웠으나 그의 유년은 추수때면 동네를 돌던 농악패나 두레패 사당패의 놀이에 흠뻑 빠져있었고 서울에서 경동중고에 다닐 때도 유장한 가락과 우리 춤에 매료되어 집에서 보내온 학비를 모조리 무용수업을 받는데 써버렸다.부모는 공대나 법대에 가기를 원했으나 무용계의 기라성같은 스승들이 모여있던 서라벌예대 무용과에 진학,62년 국립무용단 정기공연에 처음 참여했을때 누나들이 극장에 찾아와 춤꾼이 되어있는 동생에게 실망한 나머지 무복을 불사른 일은 무용계의 일화로 남아있다.당시로서는 남자가 춤추는 것을 같은 학교의 여학생들조차 탐탁해하지 않았고 남성무용수로서의 수모와 설움을 알기 때문에 그는 지금도 배움을 청하는 가난한 춤꾼들을 거절하지 않는다.중견무용수인 김정학 차효영 김남용 문정근등이 그의 제자들이고 가족은 부인 朴商洙씨와의 사에 1남 2녀. ○그윽한 그만의 춤언어 조흥동 춤의 세계는 꾸밀 줄도 수를 쓸 줄도 뒤로 돌아서면 표리가 다른 이중성도 찾아볼 수 없다.그의 춤은 스스로를 위한 축연(祝宴)으로 ‘말없이 자기춤의 실체를 보여준 그를 빼고는 한국무용사를 말할수 없다’는 평론가 정병호씨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그는 지금도 춤사위 하나하나를 허툴게 다루지 않고 진정한 부드러움과 인간미를 객석에 던지는 ‘무위적정(無爲寂靜)을 지킨다.언제 어디서 다시 태어나도 결국 춤꾼으로 살아갈 그의 운명은 그만의 춤언어로 ‘흐르듯’‘스미듯’‘감추듯’ 혜지의 끝없는 향기를 언제까지나 길어올리게 될 것이다. ㅁ그의 길 ▲1962년부터 국립무용단 공연참가 ▲1963년 중앙대 예술대졸업 ▲1966년부터 조흥동무용학원설립 ▲1968년 제1회 무용발표회 ▲1969·71·86·96년 조흥동창작무용발표회(국립극장) ▲1976년 한국무용협회 이사 ▲1977년 한국문예진흥원 심의위원 ▲1979년 대한민국무용제안무·출연 ▲1982년 한국남성무용단창단 ▲1983년 국립무용단 지도위원 ▲1984년 LA올림픽‘도미부인’주역 1985년 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 ▲1986년 아시안게임문화예술축전안무 1987년 국립무용단 중남미순회 ▲1990년 국립무용단 상임안무가 ▲1992년 춤의 해운영위원장,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이수자 ▲1993년 국립무용단예술감독·단장 ▲1995년 ‘태평무’보존회 회장 ▲1997년 조흥동 춤의세계 공연 사단법인 한국무용협회이사장,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이사 ‘제신의 고향’(74년)‘이차돈’(75년)‘춤과 혼’(81년)‘젊은날의 초상’(85년)‘강강술래’(92년)‘무천의 아침’(94년) 대학무용콩쿠르안무지도상(76년) 대한민국무용제안무상(81년) 서울특별시문화상(92년)93’최우수예술가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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