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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라질 살바도르(세계 문화유산 순례:54)

    ◎800여개 유럽 성당·아 사원 한도시에/17∼18세기 바로크·로코크양식 건축물 산재/‘황금성당’ 산 프란시스코·바실리카 대표적 살바도르(Salvador)는 브라질문명의 특이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다.토착 인디오 문화와 식민지시대 유럽문명,그리고 아프리카 토속신앙의 개념이 뒤섞인 복합문명이라고나 할까.어떻든 살바도르는 이 세가지 이질적인 문화적 특성들을 고루 감싸 안았다.그중에서도 3백50만 주민의 거의 대부분이 흑인일 정도로 아프리카 전통이 강했다.이는 365개의 유럽식 성당 말고도 아프리카 전통종교인 칸동블레 사원이 460여개에 이른다는 사실에서 드러났다. 상파울루를 떠나 살바도르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 남짓 걸렸다.번화한 도시를 떠나 갑자기 호젓한 도시를 찾아서인지 다소 나른한 기분마저 들었다.그리고 일부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흑인인 탓에 묘한 이질적 분위기가 감돌았다.하지만 원색의 아프리카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에게서 강렬한 인상이 우러났다.그것은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18세기 중반까지 수도로 브라질 북동부에 자리한 바이아주의 주도 살바도르는 원래 18세기 중반까지 브라질의 첫 수도였다.진화론자인 찰스 다윈이 ‘자연이 만든 풍요로운 온실’이라고 부를 정도로 도시가 아름다운 열대의 자연으로 뒤덮였다.정복자인 프로투갈인들은 1549년 그들의 신세계를 살바도르에서 열고나서 1763년에는 리우 데 자네이루로 수도를 옮겼다.오늘의 브라질리아로 수도를 옮긴 것은 1960년의 일이다. 살바도르는 산토 안토니오 해군기지를 중심으로 해안을 낀 낮은 지대에 형성됐다.도시는 구도시와 높은 구릉지대에 이루어진 신도시로 나누어져 있다.그런데 두 지역은 높이 100m에 가까운 엘레바도르 라 세르타라고 불리는 대형 엘리베이터로 연결됐다.편리한 교통수단이자 희한한 관광상품 구실을 했다. 살바도르를 중심으로 한 바이아주는 당시 남미지역 최대의 흑인노예시장이었다.자연 노예매매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이 많았다.심지어 자신들이 부리는 노예에게도 보석을 주어 노예들이 보석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를 놓고 부를 가늠할 정도였다고 한다.구도시 중심가에 버티고 선 메르카도 모델로는 당시 노예의 실상을 짐작케 했다.용도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 건물은 16년전 대형화재가 났을때 지하의 대형 노예창고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결국 오늘날의 바이아 주민들은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들과 인디오들의 피를 함께 물려받은 후손들인 것이다. 한때 번영을 누렸던 살바도르에는 장엄하고 화려한 17∼18세기의 바로크 및 로코코 양식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우선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펠로링요 광장이 그 시대에 건설됐다.1657년 프랑스인 샤를르 벨레비가 청동 300㎏을 들여 만들었다는 광장 한가운데의 분수가 눈에 띄었다.로코코 양식의 이분수에는 가톨릭 성녀와 아프리카 토속신앙에 등장하는 신성한 여인이 함께 조각돼 있다.크게 네갈래로 뿜어내는 물줄기는 바이아주를 지나는 4개의 강을 뜻한다고 한다. ○신∼구도시 엘리베이터로 광장은 유서깊은 건축물들로 둘러 싸였다.그중 하나가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바실리카 성당이다.포르투갈에서 들여온 돌로 90년에 걸쳐완성했다는 이 성당은 800㎏의 황금으로 성전 내부를 도금했다.초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바로크 양식의 진수 모두가 이 성당에 간직됐다.흥미로운 것은 내부 양쪽 벽면에 세워진 예수상과 마리아상 등의 성상이다.이들 성상의 머리카락은 모두가 진짜 사람의 머리카락이라는 것이다.가톨릭과 칸동블레의 습합 현상을 보여주는 성상의 두발은 당시 귀족들이 죽을때 바친 머리카락이라고 한다.신앙을 향한 깊은 신심을 넘어 섬뜩했다. 광장 한편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갔다.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산 프란시스코 십자가를 지나 50m쯤을 걸어서 ‘황금성당’으로 이름난 산 프란시스코 성당에 다달았다.로코코와 바로크 양식을 혼합한 18세기 건축물인 이 성당은 브라질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통한다.935㎏의 금을 입혔다는성당 내부는 무척 화려했다.그럼에도 성베드로 동상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화려한 성당 내부와 묘한 대조를 이루거니와 어떤 여운을 안겨주었다.폐결핵에 걸린 노예들의 고통을 대신한 것이라는 설명이 그럴듯 했다. ○금 935㎏으로도금 화려 광장 근처의 도로는 돌을 땅에 박아 만들어서 울퉁불퉁했지만 200∼300년전에 만든 길 치고는 여전히 쓸만 했고 정취도 배어있었다.그 길 중간에 갈멜제3성당이 자리했다.외부는 로코코 양식으로 짓고 내부는 네오클래식 양식으로 치장한 성당안에는 유명한 볼거리가 하나 있다.한개의 통나무를 깎아 만든 예수상이 그 것이다.십자가에 못박혀 흘리는 핏물을 2천개의 루비로 표현해냈다. ◎여행가이드/신∼구도시 나눠져 대중교통 보다 렌터카 이용을 상파울루에서 살바도르까지는 국내선으로 4시간 가량 걸린다.비행기편에 따라 다소 다르나 항공료는 1인당 800달러 정도로 비싼편.그러나 국내에 들어와 있는 브라질 항공사의 패키지 상품을 잘 이용하면 500∼600달러로 4∼5개 도시를 여행할 수 있다. 사람들의 인심도 좋은 편이며,주민 대부분이 흑인인 탓에 브라질내 다른지역과는 다른 문화적 특성을 지녔다.그리 많지는 않으나 시내 곳곳의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할 수도 있다.살바도르 특유의 음식을 파는 음식점도 값은 그리 비싸지 않은 편이다.도시 자체가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 보다는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유적들은 좁은 도로를 따라 곳곳에 흩어져 차를 적당한 곳에 세워두고 걸어다녀야 한다.
  • 금융시정 총체적 ‘혼수상태’/5대재벌 계열사도 휘청

    ◎은행들 결제거부·종금사 자금회수/한달새 8조원 만기… 연장도 불가능/사채이용도 자금난 소문날까 주저 금융시장이 총체적인 공황상태에 빠졌다.환율과 회사채 수익률이 급등한 가운데 주식시장은 폭락세를 거듭하는 등금융시장 전체가 혼수상태에 빠졌다.특히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자금 지원을 받기 위한 협상조건 이행의 하나로 지난 2일 9개 종금사에 대한 업무정지명령을 내린데 따른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경제계 전반에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종금사들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보이고 있다.영업정지 대상에서 제외돼 살아남은 종금사들에 대해서도 불안감을 느낀 예금주들의 각종 예금 인출요구가 잇따랐다.주식시장은 개장 초부터 폭락세가 이어졌고 회사채 수익률은 폭등세를 보였다.주식시장이 환금성을 사실상 상실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채권시장에서는 종금사의 영업정지로 중개기관수가 줄어들면서 기업어(CP)은 아예 거래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3년만기 은행보증 회사채 유통수익률은 19%대에 사실상 근접했다. 내실이 가장 튼튼한 것으로 알려진 5대재벌 그룹 계열사들조차 휘청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단기 자금을 조달할 수 없는 캐시 플로우상의 동맥경화현상때문이다.종금사의 무더기 영업정지에 따라 기업의 어음의 연장이 불가능해진데다 이들 종금사의 계좌잔고가 없어 은행들도 자금결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자금담당 관계자들은 2일부터 자금시장이 사실상 ‘신용마비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한다.급전조달에 매달리다 보면 하루해가 짧은 실정이다.5대재벌사 자금난과 관련된 풍문은 이제 증권시장 주변에서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이같은 사정은 대부분의 회사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종전같으면 아무리 자금난이 심하다 해도 안면이 있는 종금사에 전화를 하거나 직원을 보내면 금리가 다소 차이가 날 뿐 어느 정도의 급전조달은 가능했으나 이제는 사정이 급변했다. 영업정지 당한 종금사 발행 어음에 대해 은행들이 마치 휴지조각처럼 취급하는 것은 물론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종금사들도 예금대비 부실대출비율을 IMF가 요구하고 있는 수준으로낮추기 위해 자금회수에 적극 나서고 있어 자금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업무정지당한 종금사가 발행한 어음 가운데 약 8조원 가량이 보름에서 한달 사이에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어음의 연장을 하지 못할 경우 5대재벌 계열사라도 예외가 없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특히 2∼3일안에 기업의 자금난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금담당자 뿐 아니라 사장들조차 나서 ‘대출기간,금리,금융기관’ 등을 묻지 않고 급전조달에 나서고 있다. 그렇지만 금융기관들은 여유자금이 없거나 신용을 고려해 상오에는 대출이 가능한 것처럼 말하다가 하오에는 거절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기업들이 현장에서 겪는 고통은 표현이 어려울 정도다. 단기자금 조달 어려움 때문에 나온 대표적 사례가 A그룹 계열사의 부도설이 대표적이다.종전같으면 이 회사의 부도설에 코웃음을 치겠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입에서 입을 통해 빠른 속도로 소문이퍼지는 등 시중의 자금난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B그룹은 현금으로 결제되는 정유 등 일부 계열사를 빼고는 가장 위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나머지 계열사들은 매일같이 시간을 연장해가며 만기가돼 돌아오는 어음을 막고 있다.자금사정 악화가 사실로 확인된 H그룹보다 오히려 더 나쁘다는 사실이 주거래은행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종금사가 업무정지를 당한 C그룹도 자금난을 겪고 있다. D사의 경우 시멘트와 중공업 등 일부 업종을 관계그룹으로 넘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이같은 사정을 반영하듯 대기업 주변에는 조단위의 거액을 대출해주겠다는 사채업자들이 들끓고 있다. 사채업자들은 대기업 자금담당 임원을 방문하거나 전화를 통해 어음할인제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규모는 1천억원에서 5조원까지 다양하며 금리도 최고 20%까지 천차만별이다. E그룹 관계자는 “사채를 쓸 경우 자금시장에 금새 소문이 나 금융권의 자금회수 압력을 받을 것으로 우려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있다”고 말했다.
  • ‘금융개혁법안’ 회기내 처리 사실상 물거품

    ◎금융시장 안정대책 대수술 불가피/‘금융 빅뱅’추진 계획 새정부서 다시 시작/재경원,대외신인도 개선 묘책없어 고심 금융개혁법안의 회기내 처리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의 반대속에 신한국당이 단독처리를 꺼려 17일 국회 재경위와 본회의에서의 통과는 무산됐다.18일 마지막 일정이 남았으나 185회 정기국회 폐회식만 하고 본회의를 마칠 예정이어서 금융시장 빅뱅은(대개편)은 ‘그림 속의 떡’으로 남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곧 발표할 금융시장 안정대책은 일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금융개혁법안의 통과로 대외신인도를 높이려던 정부의 희망섞인 기대도 산산조각이 났다.구조조정을 통해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인 빅뱅을 추진하려던 정부 계획은 원점에서 재조정해야 할 상황이다.물론 차기정부가 추진해도 되기 때문에 금융개혁이 완전히 물건너 갔다고 볼 수는 없으나 당분간 빅뱅에 따른 신성출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무엇보다도 금융시장 안정대책의 내용이 바뀔 전망이다.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지난 14일 금융개혁법안 통과를 전제로 한 안정대책을 청와대에 보고했다.큰 줄기는 금융기관간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금융시장의 구조개편과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정리방안이었다. 그러나 금융감독기관 통합이 무산되면 이를 전제로 한 예금보험공사 설립도 어려워지고 당연히 부실금융기관을 인수하는 금융기관에 대한 자금지원 방안도 백지화될 수 밖에 없다.은행 종합금융 증권 투신 보험 등 상호간의 업무영역을 허물어 구조조정을 촉진시키려던 계획도 금융감독원이라는 구심점이 없을 경우 효과는 미지수다. 대외신인도 개선도 속수무책이다.그동안 외국 투자자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세부적인 금융시장 안정대책보다 금융개혁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예의주시해 왔다.단기적인 대책보다 장기적인 비젼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정부의 리더쉽을 금융개혁법안의 통과 여부로 판단하려 했다. 때문에 금융개혁법안이 불발로 끝날 경우 정부는 보다 강력한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그렇지만 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다할 묘안은 없다.한은특융지원과 정부의 대외 지급보증,채권시장의 추가개방,금융기관 대출금에 대한 출자전환 등이 거론되지만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따르는 미봉책들에 불과하다.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요청설도 나오고 있으나 한국의 부도를 직접 시인하는 것이어서 섣불리 말할 내용이 아니다. 물론 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되지 않아도 부실채권정리기금을 3조5천억원에서 5조원으로 늘리고 통합 금융감독원을 대신해 금융감독협의체를 만들어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도 있다.어차피 내년 4월에 추진될 사항이었기에 내년 상반기중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처리해도 몇개월 늦춰지는 것 이외에 달라지는 것이 없다.그러나 한국의 금융시장을 위기로 보는 외국의 시각을 잡아두기에 몇개월이라는 기간은 너무나 길다는 것이 재경원의 시각이다.
  • S.T Dupont(패션가 산책)

    S.T.듀퐁(Dupont)은 라이터로 유명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브랜드다.S.T.듀퐁의 제품중 뿌리가 깊은 것은 가죽으로 만든 여행용 가방이다.시몽 티소(Simon Tissot) 듀퐁이 1872년 여행용 가죽가방을 만들면서 듀퐁의 역사는 시작됐다.당시 여행용 가방은 유행의 척도였다.고급 여행용 가죽 가방을 만들어 당시 왕가를 비롯 상류층을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1948년 듀퐁은 에딘버러공과 결혼하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공주를 위해 여행용 가방도 만들었으며 그 뒤부터는 라이터사업에 주력하게 됐다고 한다.2차 대전중인 41년 페트롤륨을 연료로 한 라이터가 나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종전에는 일부 소수 특권층으로 고객이 한정됐지만 대중과 다소 가까와지는 계기가 됐다. 듀퐁 라이터를 명품의 위치로 끌어올린 원동력은 지난 60년대 동양 옻칠기법(자연산 락커칠)을 완벽하게 소화해 금은 세공술과 절묘하게 결합시켰기 때문이다.듀퐁이 수입하는 옻은 중국산이다.자연산 락커 라이터를 만들기 위해 492개의 공정을 거치며 확인 및 검사 회수도 640회나 된다는게듀퐁의 설명이다. 이러한 전문적인 처리과정과 철저한 확인과정을 거친 제품이 고급품으로 인정받는다.가격은 순금으로 도금된 라이터보다도 비싼 편이다.듀퐁 라이터 몸통은 황동이다.황동표면을 조각해 니켈 등으로 특수처리한 뒤 순금이나 순은으로 도금한게 각각 금장라이터,은장라이터다.라이터를 예술품의 경지에 올려 놓았다는 평도 듣는다. 듀퐁은 70년대 들어 라이터에 적용해 성공을 거둔 완벽한 금은 세공기법,옻칠기법 등을 그대로 필기구에 적용해 명품 필기구로도 확고한 위치를 다지는데 성공했다.80년대부터는 시계 가죽제품 남성용 액세서리 남성복 넥타이 선글라스 등을 잇따라 선보이며 토탈패션으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듀퐁이 남성전용 브랜드라며 거부감을 느끼는 여성들을 위해 여성용 필기구와 핸드백도 선보이고 있다.일용품인 동시에 예술품을 만든다는 게 듀퐁이 추구하는 목적이며 이념이다.사용하기에 편하고 변함없는 미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93년부터 국내에도 판매되고 있다.에스제이 듀코사가 수입해 판매한다.현대백화점의 본점과 무역센터점,갤러리아 백화점,분당의 블루힐 백화점 등 16곳에 매장이 있다.락커칠을 한 라이터는 50만∼70만원,금장라이터는 25만∼42만원,은장 라이터는 17만∼30만원이다.
  • 또다른 세상으로 화려한 외출/상품 다양해진 해외 패키지여행

    해외여행 경험이 많고 언어소통이 자유로운 사람은 베낭여행도 좋치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각 여행사에서 실시하고 있는 패키지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빼놓치 않고 즐길수 있다. 각 여행사에서는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다양한 패키지 투어를 선보이고 있다. 지역별 전문 여행사에서 실시하고 있는 패키지 투어를 소개한다. ◎유럽/바이킹 박물관·송네해안 등 북유럽 9일코스 가볼만/호화역객선 실제 타면 “환상” 누비라 세계여행사는 13년간 이탈리아에서 현지여행사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유럽 전문여행사다.이 회사는 4개의 유럽 투어상품이 있다. 우선 이탈리아,스위스,프랑스,영국 등 주요 4개국을 8일동안 여행하는 상품이 있다.출발일은 9일,16일 두차례 있으며 비용은 99만9천원.런던,파리를 거쳐 취리히를 들른뒤 밀라노,플로렌스,로마 등 이탈리아 주요지역을 구경하고 서울로 온다. 오스트리아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스트리아,이탈리아,스위스,프랑스,룩셈부르크,독일을 13일간 순회하는 코스를 이용하면된다.비엔나,짤즈부르크,인스부르크를 거쳐 이탈리아,프랑스,룩셈부르크를 경유한뒤 독일에서 서울로 온다.1백49만9천원. 북유럽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를 9일간 도는 코스가 있다.9일,16일 두차례 출발하며 경비는 2백59만원.헬싱키에서 시벨리우스 공원 등을 둘러본뒤 호화 여객선 실자라인을 타고 스웨덴으로 이동,바이킹배 박물과,송네피요르트 해안 관광코스가 볼만하다. 러시아와 북유럽을 15일간 일주하는 여행은 3백29만원이다.8일,15일,22일,29일 4차례 출발한다.모스크바와 성페테스부르크를 거쳐 헬싱키로 넘어와 핀란드,스웨덴,놀웨이를 둘러본뒤 덴마크,독일을 구경한다.연락처 738­7272. ◎일본/짧은시간 바람처럼 훌쩍/1박2일 온천코스 히트/비용 28만원… 샐러리맨 선호 일본은 온천의 나라다.게다가 우리나라와 지근거리에 있어 짧은 비행속에 실속있게 여행할수 있는 잇점이 있다.엑스포관광은 주말을 이용 둘러볼수 있는 상품과 4박5일간 순회하는 상품 등 다양한 패키지 투어를 선보여 고객들의 호응이높다. 지난해 개발한 1박2일 온천여행 상품은 제주도 여행경비로 온천과 관광지를 둘러볼수 있어 인기를 끈 힛트상품.토요일 상오 10시30분에 출발,큐슈 후쿠오카의 명승지를 관광한뒤 1박하며 온천과 일본 전통요리를 맛보고 다음날 일본 국립공원 아소산 분화구를 관광한뒤 하오 3시에 서울로 돌아온다.비용은 28만원으로 특별히 오랜 시간을 낼수 없는 샐러리맨,자영업자들이 선호한다. 큐슈의 벳부,오이타 등 온천지역을 3박4일간 순회하는 상품은 65만원선으로 매주 화,목,금요일 출발한다.동경에서 하꼬네,아타미,교토,나라,오사카,큐슈지역을 4박5일에 돌아보는 전국 일주코스는 99만원으로 매주 화요일 출발한다.2박3일간 동경,하꼬네,후지산을 둘러보는 코스는 65만원선이고 여기에 일본 신혼부부들의 여행지로 널리 알려진 닛꼬에서의 1박을 추가할 경우 80만원선이다.매주 목,금,토 출발한다.오사카,교토,나라를 3일간 둘러보는 상품은 54만원선이고 4일에 둘러보는 상품은 69만원이다. 이 여행사는 동경,나고야,오사카,후쿠오카의 왕복항공편과 호텔예약을 저렴한 가격으로 대행해주고 있다.연락처 732­5671. ◎호주·뉴질랜드/요즘 늦가을… 피서여행 제격/천혜의 풍광 만끽/번지·급류타기·승마 선택가능 호주·뉴질랜드 등 남반구가 묘한 매력으로 한국인들을 유혹하고 있다.지난해 아시아인중에서 호주여행객들이 한국이 제일 많은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현재 남반구는 계절적으로 가을에서 초겨울로 접어들어 무더위를 피해 여행하기에 적격이다. 자유여행사는 호주·뉴질랜드 상품이 4개 있다.매주 금요일 출발하는 호주 5일 투어는 브리스베인,골드코스트,시드니를 도는 것으로 64만9천원이다.호주 멜버른과 시드니 사이에 있는 케언즈지역을 5일 순회하는 상품은 49만9천원이다.매주 수요일 출발하며 번지점프,급류타기,승마 등의 선택관광은 별도의 요금을 내야 한다.원주민쇼와 스노쿨링,산호관광 등 이색 상품이 많아 인기를 끌고 있다. 8일간 호주와 뉴질랜드를 함께 순회하는 상품은 매주 화,금요일 출발한다.브리스베인,골드코스트,시드니를 거쳐 뉴질랜드 북섬의 오클랜드,로토루아,와이토모 석회동굴을 관광한다.비용은 1백9만원.뉴질랜드 남섬과 북섬을 8일간에 걸쳐 관광하는 상품은 99만9천원이다.매주 화,금요일 출발한다.연락처 7777­114. ◎여행·레저 이런것 준비하세요 여행이나 레저활동을 즐길때에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레저용품으로 장수하고 있는 상품을 소개한다. ▲가제보=계곡이나 해변가에 나가면 따가운 햇빛을 가려주는 차양막이 필요하다.텐트 전문제조업체 버팔로 스포츠는 가제보라는 그늘막을 생산,시판하고 있다.오토캠핑은 물론 콘도,민박,호텔 등에 숙박할 때도 필요한 다용도 품목이다.보조차양막을 이용하면 유사시에는 텐트대용으로도 가능하다.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표면이 코팅처리됐으며 특수 가공원단을 사용,완전 방수다.3m×3m20㎝ 크기의 15인용을 시판중이며 돗자리와 차양막 포함 19만8천원이다.201­0670. ▲멘소래담 로션=영진약품의 멘소래담 로션은 소염진통제의 개념을 붙이는 것에서 바르는 것으로 바꾼 대표적인 레저 장수상품이다.운동선수와 레저활동시 필수품이 된 것은 물론 가정상비약화 됐을 정도다.피부에 붙이는 파스와는 달리 근육통이나 통증이 있는 부위에 바르게 돼 있어 편리하다.또 란트롤이라는 특수기재를 사용,침투력이 강하다.바르고 난뒤 30초정도가 지나면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아 연고류나 젤류와 대비된다.100㎎,75㎎로션이 각각 4천860원,3천630원이며 따운 느낌을 제거한 쿨로션은 90㎎이 4천원.463­8131∼9. ▲성지문화사=승용차로 여행을 할 때 필수적인 것이 지도다.지도 전문제작업체는 전국의 도로,관광지,시가지도,여행정보 등을 수록한 전국도로지도를 출간한데 이어 서울,수도권,대구·경북,부산,광주·전남 등 지역별 도로지도를 잇따라 내놓아 손수 운전자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지역별 도로지도에는 아파트 동번호는 물론 관공서,교육기관 등의 일반 주기명이 상세하게 실려 있고 차량운행에 도움이 될수 있도록 차량회전방향,주차장,로타리이름 등도 담겨 있다.6천원∼2만원까지.795­9941·7200·1700. ▲얼음냉풍기=에어컨은 비싸고 선풍기는 오래 사용하면 더운 바람이 나온다.올 여름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에어컨과 선풍기의 중간 정도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 한은무역이 지난해부터 시판하고 있는 예티 얼음냉풍기다.얼음이 녹으면서 생기는 차가운 공기를 휠터를 통해 실내에 공급하는 것으로 얼음조각 250∼300개를 넣으면 4∼5시간 사용이 가능하다.바람이 깨끗하고 시원해 노약자나 어린이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24만3천원.716­1993.
  • 꿈결같은 추억 만들기/원더풀 허니문

    허니문 시즌이 활짝 열렸다.따라서 허니문투어도 절정을 이룬다.달콤한 꿈을 안고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는 신혼부부들은 마땅히 호텔에서 새 인생의 설계도를 짜게 된다.얼마전부터 웬만하면 해외로 몰리는 경향을 띠고 있지만 알고보면 국내호텔에도 실속있는 신혼여행 패키지가 많다. ◎제주/청옥빛 바다 눈부신 하늘 한라산 정취 흠씬/설레는 환상의 남국여행 ◇제주 신라=제주 중문단지에 있는 「꿈의 리조트」 제주신라호텔은 다양한 허니문패키지 상품을 마련했다.우선 눈부신 청옥빛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남쪽 룸과 한라산의 정기를 흠씬 느낄 만한 북쪽 룸을 선택할 수 있다.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중에 이용할 수 있는 사파이어 패키지는 룸타입에 따라 1박에 21만∼26만원이며 1회의 아침식사가 제공된다.주말 2박3일 동안 꿈같은 나날을 보낼 수 있는 에메랄드 패키지는 48∼61만원으로 저녁식사가 제공된다.신혼부부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루비 패키지는 69만∼87만원. 특히 일요일의 항공편 좌석 및 제주 객실 예약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결혼식날 피로연에 지친 신혼부부를 위해 일요일은 서울 신라호텔에서 1박하고 제주에서 2박,3박을 할 수 있는 다이너스티 패키지를 새로이 선보인다.69만∼1백40만원.(051)465­2427. ◇하얏트 리젠시 제주=본격적 허니문 시즌을 맞아 이달 1일부터 허니문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있다.숙박일과 식사 및 객실 유형에 따라 모두 5가지가 있으며 가격은 지난해 수준에서 동결했다.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로얄 바구니」를 신청하면 샴페인과 꽃,과일,케익 등 선물을 축하메세지 카드와 함께 객실로 전달해 준다.주말 3박4일은 63만∼78만5천원,주말 2박3일 46만∼57만원,주중 1박2일 17만원.(064)­33­1234. ◇홀리데이 인 크라운 플라자 제주=이달부터 내년 3월말까지 허니문 스페셜 패키지를 제공한다.주중(화∼목)에는 1박 11만원으로 40% 할인된 가격이고 주말(금∼월)에는 2박3일에 아침식사 포함해 32만원이며 저녁식사까지 해서 36만원이다.특히 공항에서 호텔까지 링컨 컨티넨탈 리무진을 제공해 신혼부부가 「VIP」 기분을 느낄 기회를 준다.과일과 초콜렛 선물,휘트니스센터와 수영장·사우나 50% 할인,객실 등급 상향조정 등의 부가서비스가 있다.(02)753­9753. ◎경주·부산/고도서 맞는 찬란한 아침/붉은해 마주보며 둘만의 인생설계 어때요 ◇부산 파라다이스비치=지난달 초부터 각종 서비스가 제공되는 허니문패키지를 시행하고 있다.해운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늑한 분위기의 디럭스룸에서의 1박을 포함해 호텔에서 공항까지의 리무진버스 승차권 제공,이·미용실 20% 할인,해운대 관광유람선 30% 할인 등의 혜택이 주어지고 사진촬영,객실 기념케이크와 멜로디양초 및 풍선 장식 등의 이색적인 서비스가 제공된다.1박에 11만원과 13만원 두가지 상품이 있고 주말에는 3만원이 가산된다.(051)742­2121. ◇부산 웨스틴조선비치=신혼부부 및 기혼의 잉꼬부부를 위한 앵콜허니문 패키지를 운용한다.동백섬과 바다가 보이는 디럭스룸에서 2인 조식과 저녁 칵테일을 제공하며 축하 케익과 꽃을 선물하고 실내수영장과 헬스클럽 무료이용,이·미용실 20% 할인 등의 특전이 있다.등급에 따라 3가지 상품으로 1박에 10만5천원부터 21만원.주말에는 2만5천원이 추가된다.(051)749­7410. ◇호텔 현대=신라 천년의 문화와 멋이 흐르는 고도 경주에서 새 인생의 첫 걸음을 시작하려는 신혼 커플을 위해 「잉꼬 허니문 패키지」를 선보인다.해외나 제주보다 싼 경비로 우리의 숨겨진 멋도 찾고 특급호텔의 각종 서비스와 편안한 분위기를 동시에 누리고자 하는 실속파 신혼부부들을 위한 이 패키지는 1박2일에 14∼18만원,2박3일코스가 27∼32만원. 특히 지난 92년 개관과 동시에 자체 개발한 온천수를 이용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개장한 야외온천 수영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스쿼시 또는 라켓볼 등 신종 레포츠도 함께 즐길수 있다.로비라운지에서의 환영 칵테일과 객실 과일이 무료 제공된다.(080)234­2233. ◎서울/쫓기는 신혼여행은 싫다/느긋한 서울1박 여유와 로맨스 즐거볼만 ◇리츠칼튼 서울=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들을 위한 약혼 패키지 프로그램을 마련했다.일생에 단 한번 뿐인 소중한 행사가 특별한 시간이 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주방장 특선 정찬요리,축하 샴페인,고급와인과 주스,주빈석과 내빈석의 꽃장식,2단 축하케익,약혼자의 이름을 넣은 얼음조각,기념사진과 사진틀,호텔 패키지 10% 할인 등의 서비스가 제공된다.1인 기준으로 5만2천원부터 6만2천원까지.3451­8217. ◇서울 프라자=결혼 첫날을 시내 한가운데서 보내려는 신혼부부를 위해 「시티 로맨스 허니문」을 마련했다.공항까지 쉽게 갈 수 있다는 장점과 화려한 도심야경을 즐길수 있는 특별한 로맨스가 있다.유러피안 스타일의 객실을 제공하고 환영 칵테일과 푸짐한 과일바구니를 준다.운동을 하루라도 빠뜨리면 안되는 건강파 신혼부부들을 위해 휘트니스룸에서 운동복 운동화 수건 등도 빌려준다.공항까지 벤츠 승용차를 이용할 수 있다. 18만9천5백원부터 39만1천원까지.310­7155. ◇아미가=신혼부부 및 결혼기념일을 맞은 고객을 대상으로 연말까지 「로맨틱 허니문 패키지」를 실시한다.11만원,22만원,26만원,32만원의 4가지 프로그램이 있다.헬스클럽과 수영장 무료이용,사우나 50% 할인,과일바구니 제공,체크아웃시간 연장 등의 서비스가 제공된다.3440­8010. ◇노보텔 강남=주말에 한해 신혼부부들을 대상으로 12만1천원의 초저가 패키지를 내놓았다.식사와 사우나가 50% 할인되고 수영장과 휘트니스 클럽을 무료 이용할 수 있다.531­6522. ◇쉐라톤 워커힐=건강검진을 함께 받을수 있는 「건강보증 신혼패키지」를 내놓았다.서울의과학연구소에서 24가지 종합검진을 해준다.온통 풍선으로 장식된 객실이 신혼분위기를 더해준다.「도심속의 자연」을 표방한는 워커힐 호텔의 허니문 패키지는 비지니스급 17만원,딜럭스급 27만원,스위트급 40만원이며 온천사우나와 헬스클럽·야외테니스장·골프연습장 특별할인 혜택이 있다.450­4646.
  • “백제 금동향로의 산은 백제 금마산”/중 고고학자

    ◎개국신화의 알 조각… 백제역사 집약 우리나라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높이 64cm)」.역사를 차곡차곡 쟁여놓은 백제의 사고와 다름없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 세상을 다시 한차례 깜짝 놀라게 했다. 금동향로가 백제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으로 본 주인공은 중국 원로고고학자 원위청(온옥성)씨. 그는 서울신문이 긴급입수한 「중국문물보」에 실은 글에서 금동향로를 확실한 백제유물로 결론지었다.1993년12월 충남 부여읍 능산리에서 발굴할 당시 한국학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금동용봉봉래산향로」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 향로뚜껑 꼭대기의 새는 봉황이 아니라, 백제의 특산물인 꼬리가 긴 닭세미계를 모델로 천계(천계)를 표현했다는 것. 또 향로에 삐죽삐죽나온 뫼뿌리 역시 중국에 있다는 이상적 상상의 산인 봉래산을 부정하면서 백제가 마한땅에서 건국할 때 역사기록에 나오는 금마산으로 보았다. 특히 천계가 목에다 끌어안고 발로 밟은 알에 주목한 그는 알을 백제건국자 온조의 아버지인 고구려 동명왕이 태어난 이야기에다결부시켰다. 문제의 글을 실은 「중국문물보」는 중국 중앙정부 문물국이 펴내는 권위있는 고고학전문 주간지.글을 쓴 원위청은 1963년 북경대를 나와 고대조각사에 일생을 바친 원로 고고학자로 지금은 하남성 용강석굴 명예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 금호갤러리/관훈동시대 “마감” 사간동에 “새 둥지”

    ◎대지 210평 연건평 680평 규모/4개전시장 마련… 오는 9일 “오픈”/지역격차 해소·해외작품 중점 소개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개성있는 기획전을 꾸준히 열어온 금호갤러리가 서울의 새 미술거리로 부상되고 있는 종로구 사간동에 둥지를 틀었다. 금호그룹이 운영하는 금호갤러리가 7년간의 관훈동 시대를 마감하고 새 건물을 신축,오는 9일 경복궁 맞은 편에서 「미술관시대」를 개막하는 것. 건축가 김태수씨 설계로 2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새 미술관은 대지 210평에 연건평 680평,지하3층 지상4층 규모.지하1층부터 지상3층까지 4개층에 전시장을 마련한 것과 함께 수장고·세미나실·연구실·사무실등을 갖춰 본격적인 기업미술관의 외형을 지니게 됐다.이와함께 운영방식에도 적지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금호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의 친여동생인 박강자씨가 관장직을 맡은 이 미술관은 기존 젊은 작가 위주의 공간성격을 유지하면서 지역문화 격차해소와 각국의 미술흐름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로 살려나가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예작가 발굴과지역작가전을 통해 미술문화의 중앙집중현상을 해소하면서 ▲미술사적으로 의미있는 기획전 정기 개최 ▲우리 현대미술사의 재점검 대상 작가초대전과 해외작가전 및 미술관·화랑의 공동기획전을 활발히 펼치겠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내년 예산으로 10억원을 책정,이 경향을 살릴 수 있는 전시를 시험적으로 다양하게 준비할 계획이다. 금호미술관은 9일 정식 개관행사를 갖고 이날부터 12월27일까지 2부로 나눠 「한국 모더니즘의 전개 1970∼90년대의 초극」이라는 주제로 기념전을 갖는다. 이 전시는 70년대로부터 최근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과정을 미학적 내용과 계기를 통해 점검,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기회를 갖기 위한 자리.9일부터 12월3일까지 계속되는 1부 「모더니티,사회,매체」에는 한국화·서양화·조각부문에서 모두 53명의 작가가 출품한다.강남미 김병종 김호득 문봉선 민경갑 서세옥 송수남 송영방 숨결새벌 신산옥 안상철 이영석 이응노 이종상 이철량 정치환 홍석창 황창배(이상 한국화),강국진 고영훈 곽덕준 구본창 김구림 김용민 김용익 김차섭 김홍주 문범 박현기 성능경 송번수 신학철 윤동천 이석주 이종구 이호철 조덕현 최병소 최정화 한운성 홍성민(이상 서양화),강은엽 김진영 문주 박석원 박종배 신옥주 안규철 이상갑 이승택 이형우 전국광 홍명섭(이상 조각)씨가 참여작가.국내 화단에서 확실한 위치를 차지한 중진부터 개성있는 작품활동을 벌여 주목받고 있는 30∼40대의 젊은 층이 망라돼 있다. 12월6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2부 「모더니티,대중,표현,」에는 전통적인 매체를 고수하는 평면 경향의 작가 58명의 작가가 출품한다.
  • 태국 아유타야(세계 문화유산 순례:8)

    ◎불탄 왕시·목잘린 불상… 「장엄한 폐허」/무자비한 버마군 약탈·파괴 흔적 그대로/14세기 동서무역 중심 아유타야왕국 수도/“참행에 신체변화” 불상은 하나같이 여체닮아 수코타이가 태국문화의 뿌리를 상징한다면 아유타야는 굵은 줄기라 할 만하다.수코타이왕국에서 싹튼 태국문화는 아유타야왕국(1350∼1767)때 번성했다.그 나라 수도가 방콕 북쪽 72㎞쯤에 있는 아유타야였다.강 세줄기로 둘러싸여 섬과 다름없는 이 소도시에는 지금도 옛날 영화)를 보여주는 유적이 곳곳에 널려 있다. 수코타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유타야의 중심부에는 벽으로 둘러싸인 왕궁단지가 자리잡았다.그곳에 들어서면 바로 왕사 「프라 시 산펫」이 있다.산펫은 그야말로 「장엄한 폐허」였다.불에 타 시커멓게 변한 체디(불탑)들,바닥에 뒹구는 붉은 벽돌들.그러나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못 없는 불상들이었다.경내를 다 둘러보아도 얼굴 있는 부처님은 두엇에 불과했다.미소짓지 않는 불상,팔다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불상을 보노라니 가슴이 저렸다.이처럼 철저한 파괴는 무엇에서 비롯됐을까. 크메르제국이 샴족에게 쫓겨 앙코르를 버리고 달아났듯이 아유타야왕국은 이웃 버마군에게 멸망당했다.아유타야를 점령한 버마군은 산펫을 무자비하게 깨부수고 보물을 약탈했다.당시 이곳에는 1백70㎏의 금을 입힌 불상이 있었는데 이 금을 녹이고자 불을 질러 사원을 불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그렇더라도 같은 불교도인 버마군이 불상의 목을 자른 까닭은 무엇일까. 그나마 우뚝 솟은 거대한 체디 3기가 마음을 위로한다.왕들의 유해를 모셨다는 이 체디에는 사방에 계단이 있다.올라가보았더니 널길(선도)입구는 붉은 벽돌로 막아놓았다.사방을 내려다보고 유네스코가 「아유타야의 폐허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고 한 이유를 터득할 만했다.자연재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역시 사람이 저지른 파기와 약탈이었다. 왕궁단지를 나와 정문앞 「비하라 프라 몽콘보핏」에 들렀다.1956년 복원했다는 몽콘보핏은 사원이라기보다는 예불당에 속한다.그 안팎은 신도로 붐볐다.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사람들은 향과 초를 불상앞에피워놓고 연신 절을 하거나 또는 산통을 흔들며 갖가지 형태로 소원을 빈다.본당에는 태국에서 가장 크다는 청동좌불상이 자리잡았다.왕국 멸망때 버마군에게 약탈당했다가 절을 복원하면서 돌려받은 이 청동상은 마치 은진미륵이 앉아 있는 듯 거대하다. 화교의 절 「왓 프라차오 파난초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온통 한자로 뒤덮인(태국인은 한자를 상용하지 않는다) 이 절에는 크고 작은 불상이 워낙 많아 사람이 꽉 차도 불상의 수효에는 미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주불은 앉은 키 19m인 좌상으로 온몸에 금을 입혀 휘황찬란하다.아유타야시민이 가장 존경한다는 이 불상이 1325년쯤 조성됐으니 파난초엥은 아유타야왕국보다 역사가 오랜 셈이다. 특이한 것은 불상이 하나같이 여체를 닮아 가슴은 봉긋하고 허리는 가늘다는 점이다.그렇다고 불상의 성을 따질 필요는 물론 없다.『수행을 많이 하면 그같은 신체적 변화가 온다』는 이 절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면 누구나 의문이 풀릴 것이다. 아유타야에는 이밖에도 ▲프레스코벽화와 정교한 조각기둥들이 볼만한 「왓 수완다람」 ▲2.5㎏의 황금염주를 꼭대기에 얹은 80m 높이의 「체디 푸카오통」 ▲작은 앙코르 와트인 「왓 차이왓타나람」등 명소가 많았다.아유타야유적은 폐허가 된 곳이건 온전히 남거나 복원된 곳이건 모두 장엄했다.그 이유는 간단하다.당시 아유타야는 세계무역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동서무역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이곳에는 영국·네덜란드·포르투갈등 서양배를 비롯해 중국·인도·아랍·일본배가 들락거렸다.무역선은 샴만(타이만)으로 들어와 차오프라야강을 거슬러 아유타야에 진입했다.역사가들은 그때 아유타야가 런던·파리보다 더 큰 도시였으리라고 추정한다. 아유타야시 남쪽을 흐르는 차오프라야강가로 나갔다.아유타야의 젖줄인 차오프라야강은 오늘도 흐른다.1시간남짓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많은 배가 물길을 따라 오갔다.쇳덩어리를 가득 실은 바지선이 지나간 뒤를 「통통통」소리를 내며 유람선이 따라간다.언제부터인가 고개를 내밀고 이방인을 쳐다보던 새끼악어는 눈길이 마주치자 냉큼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강은 오늘도 흐른다. ◎여행가이드/방콕서 버스·열차 수시로/체증심해 자전거관광 편리 아유타야는 방콕에서 육로로 1시간 거리이므로 방콕에 있으면서 하루쯤 시간을 내 관광할 만하다.에어컨버스와 열차편이 시간마다 있다.다만 교통체증이 심해 여유 있게 계획을 짜야 한다.아유타야시내에서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유적지간 거리가 걷기에는 멀고,그렇다고 꼭 차를 타야 할 만큼 멀지도 않기 때문.자전거대여점이 많이 있다.수코타이관광도 마찬가지. 특색 있는 관광으로는 선상유람이 있다.방콕에서 배를 타고 차오프라야강줄기를 따라 아유타야로 가 그곳에서도 뱃길로 유적지를 돈다.식사·음료를 제공한다.흠이라면 값이 비싸고(3만5천원쯤),유적지를 몇군데밖에 못본다는 점.유명호텔에서 매일 상오8시 출발한다.
  • 작가 박경리(이세기의 인물탐구:88)

    ◎삶과 문학에 당당히 맞선 “대지의 어머니”/암수술·사위구속 시련속 25년만에 「토지」 완간/인기영합 두려워 80년 원주 정착,은둔생활/「일본론」 집필 구상… 체험 바탕의 문학강의 큰 인기 「글을 쓸 때는 살아 있다/바느질할 때 살아 있다/풀을 뽑고 씨앗뿌릴 때/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서쪽에서/빛살이 들어오는 주방/혼자 밥을 먹는 적막에서/나는 내가 죽어 있는 것을 깨닫는다」 지난 88년 「산더미 같은 「토지」에 파묻혀」 다른 잡사를 생각할 겨를이 없을 때 작가 박경리는 자신을 추스르고 위로받기 위해 시집 「못떠나는 배」를 낸 적이 있다. 그때까지 「토지」3부가 「열가닥의 씨올로 짠 피륙」이라면 4부의 무대는 「인간이 소모품으로 파괴되고 영혼과 육체가 참살되는 가공할 전쟁의 광란」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나락같이 깊은 내용과 엄청난 양감」으로 인해 어디서부터 소설을 허물어나가야 할지 망연자실하던 시기였다.그만큼 「토지」는 그를 비웃는 태산이었으나 내면의 아우성과 전진과 기록의 난무속에서」 그는 스스로 황폐해가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천형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사마천) 「우리는 시시각각 자신과도 이별하며 살아간다」(매)는 무명 같은 시들을 남기게 되었다. 평소 「작품을 쓰는 일은 자기속에 있는 악과의 싸움」이며 「쓰기 때문에 살아 있고 살아 있으면 써야 한다」는 그는 「진실을 위해 생명을 버림으로써 생명을 얻는다」는 성서의 잠언을 실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세사잊고 창작 몰두 이른바 한번 쓰기 시작하면 세사와의 접촉을 일체 끊고 몇년이고 칩거하여 창작에만 몰입하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그는 본래 투명하도록 맑고 연약한 인상이지만 「운명적으로 맡겨진 역할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똑바로 해내는 동안 「못 하나 박는 일」도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강인한 성격이 되었다.또 어떤 탁류에도 휩쓸리지 않으면서 만약 작은 상처를 입더라도 이를 창조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줄 아는 섬광의 혜지를 타고났다.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외롭고 참담한 현실 앞에 어쩔 수 없이 견고해졌다고는 하지만 그에게선 끈질긴 여인의 일면이나 풍상에 시달린 마모의 기색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신기하다.오히려 작가로서 준열한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여 「독자에게 영합하려는 붓을 깊이 경계하고」 약자에게가 아니라 강자를 향해 안으로 도도하고 마음속으로 굽히지 않는다.그런 그를 시인 정현종은 「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독한 사람에 틀림없는 것은 한 작품에 25년간이나 매달린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파악된다.남들은 5년에 한번 쓸까말까한 장편을 58년 첫장편 「애가」와 59년 현대문학에 「표류도」 연재를 필두로 「내마음은 호수」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파시」등 어느때는 1년에 두편이상을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처럼 끊임없이 집필하고 있었고 문학지에 발표해온 중단편이 그때마다 평자들의 호평에 오른 것은 작가가 정교하게 책임진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토지」1부를 쓸 때는 암으로 오른쪽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고 2부때는 사위인 김지하시인의 구속사태로 가족이 온통 고통을 겪으면서 그의 눈에 넣어도 아파하지 않던 외손자 원보(군입대중)를 등에 업고 구치소 면회를 다니던 정릉시절이 눈에 선연하다. 「어찌하여 빙벽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가중되는 망상의 무게 때문에 내 등은 이토록 휘어들어야 하는가.나는 주술에 걸린 죄인인가」 그러나 「그것이 죽음보다 더한 가시덤불의 길일지라도」 「무자비하게 나를 묶어버린 그 숱한 정신적 속박의 사슬」을 물어 끊거나 도망치지 않고 밀착되어 떨어질 줄 모르는 삶과 문학에 그는 언제나 정면대결로 마주서 있다.그리고 구약의 욥이 가산도 자식도 다 잃고 악창에 시달려 환부에 흐르는 고름을 사금파리로 긁어내면서도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을 발하지 아니하고 단정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죽기 전에는 내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면서 악마의 시련을 신앙으로 극복한 의인의 발아래 진심으로 무릎을 꿇고 싶어했다.이 자세는 고통과 의지의 절대세계라고 할만한 작가의 구도적 혈흔이 선명히 와닿는 육성으로 그의 문학을 논할 때마다 인용되어지는명문이다. 그는 사람이 행불행을 수월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면 「때론 노여움을,때론 모멸감을」 느끼기도 한다.「무궁무진한 인생의 심층을 상식으로 가려버리려는 것이 비겁」하기 때문이다.또한 「그렇게 분류되는 불행,그렇게 가치지어지는 행복이라면 실상 그 어느것과도 나와는 별인연이 있을 성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외면해버린다. ○7백여평에 농사 지어 그의 주장은 작가의 선민의식을 시속기로 천시하여 「작가는 철저한 에고이스트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그래서 「토지」3부를 끝내고 「인기라는 물결로부터 자기가 썩고 있는 일에 빗장을 지르기 위해」 80년 아무런 연고지도 아닌 원주시 단구동에 정착,정릉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흙을 주무르고 나무를 가꾸고 온갖 새와 동물을 거두어 그의 7백여평의 드넓은 뜨락을 「억조창생」이 머무는 생명의 근원지로 만들어나갔다.그의 생명에 대한 겸손은 길가에 버려진 돌멩이나 배추 한포기라도 갓난아기를 안듯이 정성껏 보듬고 나무를 꺾으면 나무에 깃든 생명이 피를 흘리며 슬퍼한다는 것을아는 심심상인의 경지다.철이 되면 고추를 따서 햇볕에 말리고 날씨가 궂을 듯하면 다시 방에다 군불을 때어 바짝 마른 고추를 하나하나 헝겁으로 닦아내는 그의 정성은 한시도 쉬지 않는 또 다른 창작의 일면인 것은 두말의 여지가 없다.겉보기엔 일부러 사서 고생을 하는 것도 같고 인고를 타고난 것이나 아닌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의 노동은 수확의 기쁨을 아는 농부의 그것일 뿐 그에게 있어 일이란 삶의 확인이자 생명의 신비와 경이에 대한 외경의 표현이다. 이제 그는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의 자신과의 언약에서 결국 「도전함으로써 비약」했다. 따라서 「토지」는 그의 대명사이자 분신 이전에 「우리 민족사에 길이 남을 찬란한 광망」을 그었으나 「진실은 내 심장속 깊은 곳에 유폐되어 영원히 침묵한다」고 그는 심상한 의미를 예감시키고 있다. 「토지」 이후 그는 연세대 강의 외에 일간지에 시론을 쓰고 일본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정리한 일본론을 구상중이다.특히 그의 문학강의는 어디선가 읽은 듯하거나들은 듯하거나 한번 들은 것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생한 체험이 말마다에 살아 있어 대학생 사이에서 명강의로 소문나 있다. ○내년 봄 매지리로 이사 요즘은 단구동일대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는 바람에 그가 살던 집이 헐릴 위기에 있었으나 토지개발공사의 배려로 「박경리기념관」으로 남게 되었고 그는 이른 봄쯤 연세대 원주캠퍼스가 있는 승업면 매지리로 이사할 예정이다.아마 그때도 그는 농부가 될 것이다. 글 한줄도 쓰지 않으면서 「작가」를 자처하는 사람은 많다.글 한줄도 쓰지 않으면서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쓰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문단의 수많은 모임에서 사교적인 활동만으로 문인을 빙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모든 허세는 작가 박경리 앞에서 무색하다.작품의 질이나 분량에서 이미 남에게 비교될 수 없는 그를 두고 「모든 찬사는 미흡하다」는 문단의 평은 옳다.그의 손은 농사 외에도 바느질과 그림과 나무를 조각하고 돌담을 쌓느라고 거북등처럼 갈라졌으나 그의 미소는 작가의 웃음이며 그의 글은 단한번도독자를 배반하지 않는다.범접할 수 없는 결곡한 기상,금과 옥을 품은 거대한 푸른 산 같은 그 앞에 서면 왠지 작아지고 부끄러워진다는 최일남의 말은 한치의 과장 없이 모든 사람의 공감을 산다. □연보 ▲26년 경남 충무 출생 ▲45년 진주여고 졸업 ▲55년 단편 「계산」 「흑흑백백」 김동리 추천(현대문학)데 뷔 ▲58년부터 장편연재 「애가」(민주신보) 「표류도」(59년 현대문학) 「내마음은 호수」(60년 조선일보) 「노을진 들녘」(경향신문) 「가을에 온 여인」(62년 한국일보) 「파시」(64년 동아일보) 「타인들」(67년 주부생활) 「겨울비」(여성동아),69년부터 대하소설 「토지」1부(현대문학) 연재시작,「죄인들의 숙제」(경향신문) 「창」(70년 조선일보) 「단층」(74년 동아일보) ▲80년 원주시 단구동 정착 ▲84년 한국전후문학 30년 「최대의 문제작」으로 「토지」 선정 ▲86년 북경 연길 백두산여행 ▲90년 프랑스어판 「토지」(파리 벨퐁출판사)출간,중국기행 ▲91년 연세대원주캠퍼스 객원교수 ▲94년 민족사에 길이 남을 걸작 「토지」전5부 16권 완간(도서출판 솔),이대 명예문학박사 「김약국의 딸들」(62년 을유문화사) 「내마음은 호수」(63년 신태양사),단편집 「불신시대」(63년 동민문화사) 「시장과 전장」(64년 현암사),수필집 「거리의 악사」(77년 민음사) 「Q씨에게」(79년 풀빛사) 「박경리문학전집」전34권(79년 지식산업사) 「토지」사전(93년 도서출판 솔),시집 「못떠나는 배」(88년 지식산업사) 「자유」(94년 도서출판 솔)등 60여권 현대문학상(57년) 내성문학상(61년) 한국여류문학상(65년) 월탄문학상(72년) 인촌문학상(90년)
  • 경남 하동 쌍계사 목장승(한국인의 얼굴:57)

    ◎주먹코·송곳니의 “사찰 수호신”/눈썹·콧수염은 문양처리… 우스꽝스러/흐트러진 머리칼은 사방으로 뻗친듯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어귀에 서 있었던 목장승 한 쌍.지금은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 와 있는 쌍계사 목장승을 보노라면 지혜로운 솜씨가 엿보인다.그것은 나무를 뿌리째 뽑아다 물구나무 세워 장승으로 다듬은 기발한 착상이다.도끼 목수의 솜씨는 아닌 듯 하다.절집과 인연이 닿은 어떤 도목수가 소박한 영감을 불어넣어 만든 신앙대상물일 것이다. 쌍계사 목장승은 나무 뿌리가 하늘을 향한 특이한 모습을 했다.아름드리 밤나무를 아예 뿌리가 달리게 뽑아다 뿌리를 머리삼아 장승 한 쌍을 깎고 다듬어 냈다.그래서 장승의 머리는 봉두난발한 꼴이 되었다.머리칼이 가닥 가닥 헝크러졌다기 보다는 한데 뭉쳐 사방 팔방으로 흩어졌다.이 때문에 귀신을 형상화 할 때 흔히 그려넣는 뿔처럼 보이기도 한다.머리칼이 아닌 뿔로 여겨도 사실상 무리가 없다. 그 이유는 사람을 닮은 인태신으로 제작 되었다는 점에 있다.쌍계사 목장승은 인태신으로 조각한 신장상인 것이다.높이는 자그마치 3백30㎝나 되어 그야말로 키가 장승이다.왕방울눈과 주먹코에 송곳니를 드러낸 이들 장승은 신장상이 분명하지만,그리 무서운 귀신이 아니어서 공포분위기를 자아내지는 못했다.오히려 전통무늬로 도안화한 눈썹과 수염 등 얼굴 다른 부분들이 우스꽝스럽다. 눈알이 왕방울처럼 둥글게 튀어나온 것은 암수 장승이 서로 닮았다.콧방울은 말 그대로 방울인데,암장승은 콧마루를 사이에 두고 두 개가 붙어있다.수장승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패었고 왕방울 눈위에 당초문으로 눈썹을 새겼다.눈썹이 왜 당초문이가 했더니,웬걸 콧수염은 구름무늬(운형문)다.인중이 길어 바보스러울까봐 구름무늬를 새긴 모양이지만 본래 인상은 끝내 바꾸지 못했다.수염은 댕기머리 가꾸듯 총총 따 내렸다. 무섭기로 말하면 암장승이 더 하다.아랫니를 내놓은 입가에 송곳니를 위로 솟게 올려붙여 윗송곳니가 팔자로 아래를 향한 수장승과 대조를 이루었다.눈썹도 닭벼슬처럼 새겨올렸다.또 할망구 노파의 성난 얼굴을 표현할 요량으로 턱에다 톱니꼴 주름살을 길게 새겼다.그렇지만 험상궂은 얼굴이라고 가슴을 철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엉뚱하기 짝이 없는 익살스러운 얼굴로 다가 설 뿐이다. 이들 쌍계사 장승은 사실상 착한 신장으로 자리매김 되어있다.수장승은 가람선신이고 암장승은 외호선신이다.그러니까 쌍계사 장승은 절 안팎을 지키는 사찰장승기능을 지닌 것이다.또 풍수지리설에 따라 절 주변 사방산천가운데 헛점이 보이는 부분은 채운다는 이른바 비보기능도 공유했다. 사찰장승은 때로 절땅 경계표시물이 되어 바깥 세상과 절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금을 그었다. 지금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쌍계사 목장승 한쌍은 1백30여년 전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 왕·왕비·왕세자 위업 새긴 도장/어보 165점 첫 공개

    ◎오늘부터 궁중유물 전시관서 전시/태조 4대조부터 순종까지 망라/폐위된 연산군·광해군것은 없어 조선시대 후대 왕이 선왕과 그 가족의 이름,위업등을 새긴 도장인 어보가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된다. 문화재관리국 궁중유물전시관은 13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조선어보­5백년 종실의 상징」이란 이름으로 조선시대의 어보 1백65개를 일반인에게 보여주는 기념전을 마련한다. 어보는 흔히 조선 왕실에서 직접 쓰던 도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당대가 아닌 후왕이 역대의 왕이나 왕비,왕세자,왕세자비,왕세손의 공적이나 이들과 관련된 내용을 기록하는 도장이며 대대로 조선 5백년 왕실의 상징으로 종묘에 모셔온 비장품이다. 어보는 10㎝ 안팎의 크고 육중한 금(도금)이나 옥제로 매우 정교한 거북 형상을 띠었으나 고종때부터는 용 조각으로 나타난다. 이번 전시는 목조등 조선 태조 이성계의 4대조부터 마지막 27대 순종때까지의 어보 모두를 보여주는데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의 것만 없다.그 내용은 시호와,왕과 비를 높이 기리는 호인 존호,그리고 왕비를 기리는 호인 휘호를 섞어 새기기도 했다.묘호와 문무,성효롭다는 뜻을 나타내 기린 8자씩의 시호가 나타나 있는 성종어보와 존호와 시호를 새긴 정조어보가 그같은 예다.간단히 세자,혹은 세자빈,왕비라고만 새긴 것도 있다. 어보는 시대가 흐를수록 선대를 기리는 글귀의 존호를 계속 더해 올리며 그때마다 어보가 새겨져 한 왕이나 비에게 여럿이 생겨나 10점을 넘기도 한다.순조는 12점이나 된다.자구에서도 먼저 올려진 존호까지 합해 새겨지므로 문조(23대 순조의 아들·1백16자)의 경우처럼 무려 1백자가 넘는 것도 있다. 한편 이번 전시된 어보 가운데 왕이나 비,황제,황후의 것은 보,세자나 빈은 인으로 구분하고 있고 영조의 장남으로 요절한 진종 세자와 빈은 은제,문종세자빈의 것에는 짐승조각이 없는 네모난 손잡이가 보이는등 시대와 신분에 따른 차이점도 함께 보여준다.
  • “금속 백화점” 노릴스크(시베리아 대탐방:48)

    ◎구리·코발트·백금 세계 최대의 생산지/공장 종업원 15만 넘고 금속 비즈니스 성행/환경투자 전무… 서서히 죽음의 도시로 변모/주거생활 여건 최악… 이주 주민 크게 늘어 세계최대 금속광산 노릴스크 환경투자전무,서시히 죽음의 도시로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북쪽으로 세시간가량 비행기를 타고 가면 북극전초기지인 노릴스크가 나온다.북위 70도에 위치한 이 도시는 「금속백화점」이라고도 불린다.지구상에서 쓰이는 금속이라면 이곳에서 나오지 않는 금속이 없기 때문이다.특히 니켈·코발트·구리·백금·라듐·이리듐은 이곳이 세계최대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구리는 전세계 생산량의 70%,러시아 생산량의 90%를 이곳에서 생산한다.니켈은 전세계 생산량의 5분의 1,러시아 총생산량의 90%를,그밖에 코발트·백금등도 전세계의 50%를 이곳에서 만든다.때문에 이곳은 금속비즈니스가 성행하고 있다.인구 20여만명의 소도시에 모스크바·유럽과의 직항로가 개설돼 있는 것도 「금속비즈니스」가 활발하기 때문이다.이곳 주민들도 스스로 『금속을 캐며 살다가 금속더미에 묻힌다』는 말을 자주 한다. ○거리엔 온통 금속찌꺼기 노릴스크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자동차로 40분쯤 걸린다.도중에는 바로 「러시아금속주식회사」의 각급 금속공장들이 줄지어 서 있다.노릴스크 시내로 향하기 위해 공항에서 출발한 취재팀은 내내 『노릴스크시 중심가를 잘못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을 했다.도시전체는 「쓰레기 더미」였고 각종금속조각과 휘어진 철골더미,목재찌꺼기등이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었기 때문이다.10여년전에 폐쇄해버린 폐공장·아파트가 여러곳에 흉물스럽게 널부러져 있었다.금속을 생산하고 남은 슬러지도 아스팔트위를 더럽히고 있었고 도로·주택단지·강가 할 것 없이 이런 종류의 쓰레기로 「포장」돼 있었다.여기에 취재팀이 참기 힘들었던 것은 공장굴뚝에서 나오는 매연이었다.이 매연은 공장 수십㎞에서도 코를 찌를정도였다.창밖으로 멀리 펼쳐져있는 구름 같은 것은 바로 스모그였다.눈도 아려오기 시작했다.섭씨35도 정도의 날씨에 에어컨도 없는 자동차의 문을 꼭꼭 닫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취재진이 찾은 곳은 노릴스크시내의 러시아금속회사 본사.회사측의 얘기와 노릴스크시를 취재한 결과를 보면 이 회사는 옛소련의 대표적인 주민착취기관이었다.노릴스크에서 만난 비판적인 한 시관리는 『스탈린시대이후 60년동안 주민들을 한 도시에 가둬놓고 오직 값진 금속생산에만 전념한 곳이 바로 노릴스크』라면서 『많은 주민들은 열악한 복지·환경·건강시설속에서 말없이 죽어갔다』고 한탄했다. 어쨌든 이곳은 세계최대의 금속제조공장이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러시아금속주식회사­이곳은 종업원 15만5천명에 3개의 큰 공장을 가지고 있었다.노릴스크에는 본사빌딩을 비롯해 나젤진스키 니켈공장,노릴스크구리공장,노릴스크 코발트·황공장등 3개의 공장이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자체금속연구소가,무르만스크에는 기계·시설공장이,크라스노야르스크에는 금생산공장등이 있는 러시아의 몇안되는 재벌기업이 이곳이다.지난해 매출액은 12억달러.세금등을 뺀 순이익이 3억달러에 이르고 있다.가장 먼저 들어선 나젤진스키공장은 1937년 스탈린시대에 들어섰다고 한다.「나젤진스키」란 이름은 바로 당시 노릴스크 외각지역에서 지질탐사활동을 벌이던 나젤즈다란 20대 부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그녀는 이 일대에서 지질탐사중 산기를 느꼈고 당시 조종사였던 남편이 그녀를 싣고 노릴스크시내로 오는 도중 아이를 낳아버리자 이곳 한 벌판에 그대로 착륙해버렸다고 한다.이 벌판에 지금의 「나젤진스키 니켈공장」이 들어서 있다. ○지하 1천m서 원석 캐내 이 회사의 홍보담당 발레리씨는 『금속의 원석은 이곳에서 40㎞떨어진 탈라흐라는 도시에서 파 온다』고 말했다.그는 『10여년전만해도 원석은 노릴스크 어디서나 땅만 파면 나왔었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수십㎞를 더 벗어나야 원석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그만큼 금속원석이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탈라흐는 시자체가 거대한 금속광산이었다.이곳은 지하 1천4백m까지 들어가 원석을 캐고 있었다. 트럭이 실어온 원석은 전문가에 의해 재분류된다.구리가 많으면 구리가공공장으로 보내진다.원석을 용광로에서 용해시키고비중과 전기분해를 이용해 니켈을 만든다.찌꺼기에는 금과 백금이 많이 섞여 있어 백금은 이웃 부설공장에서 빼내고 금은 크라스노야르스크로 찌꺼기를 보내 생산한다.보통 찌꺼기를 8차례정도 가공하면 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공장관계자들의 얘기였다. 발레리씨는 현재 생산되는 모든 금속을 런던의 금속경매장에 보내고 있으나 곧 해외지사망을 통해 직접 본격적인 세일즈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는 취재팀이 한국에서 온 기자라는 것을 의식,『니켈·구리등을 사가려면 6·7·8월이 가장 좋으며 북극바다를 이용해 아시아까지 쉽게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이 때는 주요수송로인 예니세이강이 녹아있는 상태여서 수송·가격 조건이 아주좋다는 것이었다.현재 완제품들은 노릴스크에서 50㎞떨어진 두진카항구까지 기차로 실어낸다.여기서는 다시 무르만스크를 거쳐 유럽의 최대시장인 런던과 암스테르담으로 보내진다.발레리씨는 『앞으로 동아시아의 시장 잠재력이 큰 만큼 본사에서는 서울·도쿄·홍콩 가운데 한 도시에 지사를 설치할 계획』이라면서『곧 노릴스크­베링해­오호츠크해의 해상루트를 개설해 일본·동남아국가 등으로 금속들을 수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니켈가격은 런던 국제시장에서 형성되고 있는데 가장 비쌀 때가 t당 1만7천달러정도였다.90년도 페레스트로이카가 본격화되면서 이 가격은 한때 t당 4천달러로 폭락했다.생산은 계속됐는데 사가는 나라가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현재는 t당 8천∼9천달러로 비교적 안정상태에 있다고 한다. ○전세계 니켈 20% 생산 전세계 니켈생산량의 20%를 이곳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이곳의 생산량이 국제시세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지난해 겨울 이곳 수력발전소가 일시 가동을 중단,니켈공급이 일시 중단되자 하루에 국제시세가 t당 5백달러씩 올라 폭등조짐까지 일어난적이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금속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80년 노릴스크에 강제 정착한 빅토르 샤포발씨(39·야금공장 노동자)는『노릴스크의 금속원석은 1백년동안 계속 캘 수 있을 정도로 아직 풍부하다』고 말하면서『당국이 환경시설에 적극 투자하지 않을 경우 주민들은 최악의 주거생활 때문에 이곳을 한사람 두사람 떠나고 있는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 제14회 미술대전 대상 황순칠씨 「고인돌 마을」

    ◎우수상 박순철(한국화)·이승아(양화)·배효남(조각)씨 한국미술협회(이사장 이두식)가 주최한 제 14회 대한민국미술대전(2부 구상)에서 서양화가 황순칠씨(39·광주시 남구 월산 4동 925의4)가 작품 「고인돌 마을」로 최고상인 대상을 수상했다. 25일 발표된 심사결과 4개 부문별로 한 점씩 선정된 우수상 수상자로는 ▲한국화 「삶의 표정 Ⅱ」을 출품한 박순철씨(30·서울 마포구 서교동 369의4) ▲서양화 「음양」을 출품한 이승아씨(31·대구광역시 달서구 성당1동 489의28) ▲조각 「성연의 세월」을 낸 배효남씨(26·충남 당진군 고대면 성산리2구 440)가 각각 선정됐다.올해 판화에서는 우수상을 내지 못했다. 이번 미술대전 구상계열에는 한국화 8백92점,서양화 9백6점,조각 67점,판화 64점이 응모해 대상작을 포함,3백23점이 입선 이상의 수상작에 선정됐다. 김형동 심사위원장은 『그 어느 해보다 신인들의 작품이 우수해 반가웠다』고 말했다. 금년도 미술대전 입상작들은 10월 10일부터 24일까지 과천현대미술관에서 일반에 공개된후 강릉(강릉문화예술관)·울산(울산문화예술관)·인천(인천종합문화회관)에서 순회 전시된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은 지난 93년부터 상반기에는 비구상,하반기에는 구상부문으로 나눠 심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인터뷰/대상수상 황순칠씨/“자연과 인간관계 동양적 묘사” 올해 구상계열에서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을 따낸 황순칠씨(40)는 전남 광주의 전업작가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큰 상을 받게 돼 기쁘다』는 그는 순수한 시골정취가 배어있는 양화 「고인돌 마을」로 영예를 안았다. 「고인돌 마을」은 전남 장성 북일면 금곡리에 있는 실제 고인돌 마을을 모델로 제작됐다. 『6년전부터 황소만을 그려오다 어느 날부턴가 땅에 관심을 돌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빠져들면서 고창의 붉은 황톳밭을 스케치하는데 몰두했습니다.고창을 가던 어느 날 처음 보는 비포장도로를 따라가다 의외의 고인돌 마을을 발견했고 그때부터 매일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했습니다.지난 2월초부터 9월까지 였지요』 가로 세로 크기가 1m를 크게 넘는 대작을 그리면서 사실성에 정취를 불어넣기 위해 동양화적 필법도 함께 구사했다.이 작품에는 『소재선택이나 조형성에서 탁월하다』는 심사평이 나왔다. 학업을 마친 지난 79년,당시 국전 때부터 도전해온 그는 수상과 별 인연이 없었다.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명칭이 바뀐 지난 84년 입선을 받은게 고작이었다. 『영양사를 하면서 돈벌이 하나 없는 제 뒷바라지를 해온 아내에게 영광을 돌립니다.그림만 그려오느라고 솔직히 아직 아기도 갖지 못했습니다.조선대 교수님들과 저를 후원해준 친지들께도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새로운 목표를 정해 정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임상자 명단 □특선 ◇한국화 △민양기 △박계수 △김봉빈 △하정민 △장재운 △정영남 △김정숙 △최연정 △김형현 △박세나 △이관성 △황문성 △정미혜 ◇양 화 △장태묵 △유재웅 △구명본 △손영선 △조명호 △정회남 △김정호 △이화자 △박혜경 △김금수 △임정렬 △송상섭 ◇판화 △민경희 △정재형 ◇조각 △김강섭 △김익성 △이경우 △권치규 □입선 ◇한국화 △이태근 △이영환 △이혜연△임영선 △안영희 △진우범 △김태옥 △유도공 △장현재 △김미화 △김덕용 △맹지은 △이영선 △강길자 △김영배 △김영애 △구제형 △한영수 △김효숙 △서세진 △김광식 △신명준 △노인숙 △박봉열 △이지형 △최정혜 △김미성 △조경주 △배정하 △김지연 △이숙희 △정경영 △배교연 △정찬종 △송미화 △우영숙 △박상복 △김호민 △김희남 △박상수 △함용식 △조용백 △신동호 △조 은 △김인선 △김정숙 △손교석 △박묘원 △이철봉 △이기영 △이동일 △조복희 △오유진 △이경란 △한석봉 △김순곤 △이은호 △하영준 △서민원 △양동언 △최 금 △윤평상 △박종걸 △안경준 △주기명 △이창훈 △정성봉 △김석기 △정황래 △배석미나 △장희영 △서일석 △장선아 △안용철 △전호균 △김경희 △안현정 △유미정 △양현정 △이만식 △최혜인 △김경환 △유흥수 △권정식 △김만진 △최종진 △모용수 △방성엽 △김의신 △김범수 △김서근 △서수령 △이순구 △나운희 △이철규 △유근택 △남학호 △이남미 △윤명호 △박병춘 △노승경 △이덕환 △박광자△강정자 △사지혜 △송환아 △한신영 △박운용 ◇양화 △최윤선 △김동원 △장인성 △황순덕 △서은희 △이희권 △양승수 △노경자 △임근재 △김종한 △조정숙 △임태숙 △김윤택 △이재용 △허인회 △이길성 △정동근 △김대하 △방희영 △김인수 △임상진 △천기원 △선종선 △정봉길 △박경실 △공태곤 △박영희 △박광효 △문춘길 △명동수 △강성익 △장철익 △최기철 △허정순 △김현정 △조영철 △공경옥 △최지윤 △이성국 △전운영 △남기종 △이동언 △엄길자 △유영순 △심상철 △손병화 △정창기 △이종아 △이명언 △선희규 △이경화 △지창림 △정태영 △김은주 △김경란 △양희성 △손돈호 △김외숙 △정연호 △정숙진 △박소영 △강동권 △이석보 △고진오 △강정진 △서정련 △서순향 △이강미 △최혜숙 △문창수 △김대욱 △김명순 △이재균 △임종연 △이창규 △김도영 △이현순 △서영숙 △신재진 △배익진 △박마리아 △장광의 △하기임 △박현일 △김인수 △김경수 △강연태 △서수지 △신홍직 △박혜라 △신순복 △박봉춘 △허대용 △이순형 △이명일 △오재천 △이상열 △구만채 △김병남 △송순자 △윤석수 △윤영애 △최혜자 △권영석 △양신현 △조몽용 △이정웅 △김경환 △소영욱 △박종명 △성 희 △신영진 △김용중 △고상준 △박인호 △유현각 △한경숙 △김기화 △한규언 △고기범 △오효석 ◇판화 △홍상곤 △이준규 △김필구 △유시휘 △최수진 △유권열 △이서미 △이경은 △이제경 △홍경한 △호문기 △이동현 △임병중 △전종수 △노덕종 △주옥경 △노은희 △조은휘 △백성혜 △김영민 △임영자 △윤신희 △한소영 △전병준 △박용훈 △오윤희 △서유정 △차재홍 △조혜경 ◇조각 △박경범 △정우일 △강상규 △신현준 △고갑주 △백보현 △이상춘 △전준호 △우 징 △이미숙 △김태일 △전상욱 △장새봄 △마범석 △오주연 △최영림 △천종권 △조성문 △김영호 △이기수 △정기웅 △전신덕 △김택기 △천완식 △심이성 △전덕제 △박민섭 △배승현 △배성준
  • 한국화가 산정 서세옥(이세기의 인물탐구:79)

    ◎스스럼없이 화필 휘젓는 큰 예인/작품마다 영혼이 움직이듯 팽팽한 긴장감/화려한 채색 거부… 발묵·석묵법 자재로이/77년 「한국현대회화 유럽전」때 “동양문화의 진수” 보여 산정의 성북동 무송재는 지금 녹음이 한창이다.큰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벌써 그 짙푸른 녹색으로 인해 집안은 유현한 산곡과도 같다.안채로 통하는 디딤돌 외에 새파란 이끼가 휘덮인 마당은 모든 것이 푸른 가운데 허공에 우러른 첨단에마저 서슬 푸른 냉기가 감돈다.「일편연홍난입문,한조각의 붉은 빛도 문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산정의 말대로 영롱산관 죽리관 수죽원하관 창하헌 등 그의 당호들은 집안에 넘치는 푸른색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화실 창앞에 쭉쭉 뻗어 있는 청청하고 곧고 차가운 대나무며 지금 막 피기 시작한 보랏빛 추국에 이르기까지 추호의 시든 빛을 보이지 않는 영롱한 환경은 서울 한복판이건만 실로 아득한 선경인 듯 감탄스럽기만하다.여기에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과 한옥중의 한채에 온통 중국고서적이 산적해 있어 그의 방대한 독서량이 얼마만한것인가를 미루어볼 수 있다. 그는 성북동 전에는 노송으로 우거진 월곡동에 살다가 대학때의 스승인 근원 김용준을 그리워하여 지금부터 20여년전 스승의 노시산방이 있는 이곳에 한옥을 지어 이사했다. ○회화예술 변혁 앞장 산정은 널리 알려지다시피 서시문화를 두루 갖추고 상식에 안주하려는 회화예술에 변혁과 개혁의 화업을 이뤄낸 동양화 대가다.초기에는 범속과 권위와 형식에 대한 강렬한 저항정신을 앞세워 「고루협애가 없는 방종자일한 표현」으로 개혁의지의 향방을 모색하다가 차츰 「감각의 해방을 원점으 로 되돌린 절제화면」을 이룩하면서 남보다 일찍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평론가 이경성씨는 그의 첫번째 전시 팸플릿에서 그와 같은 유사성을 「명대의 서위나 청초의 석도」에 비유하고 오광수 역시 「수묵화를 감필묘법으로 구사한다는 차원에서 남송의 양해나 선화파의 목계의 화격」에 닿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정병관씨는 「모든 진실한 작품은 침착하다」는 칸딘스키의 말을 인용하여 『산정의 작품은 무한을 생각케 하는활짝 트인 화면공간속에서 「숭고한 형이상학적인 회화」를 구축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과연 그리지 않으면서 그리는 상태,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듯하고 표현하지 않으면서 표현하려는 자기모순을 함축한 그의 작품은 「그 형식과 내용면에서 영혼이 움직이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89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군무」「사람들」시리즈는 「붓으로 그렸다기보다는 붓을 던졌다는 표현이 더욱 옳다」는 정병관씨의 평에 많은 사람이 공감한 바 있다.즉 「붓의 전진하는 속도감과 상하로 누르고 떼는 강약의 압력은 낭만적인 금선의 무쌍한 변화」와도 같으며 「발묵과 석묵법의 자재로운 움직임」은 바로 산정 그림의 즉흥성과 필연성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산정은 「스스럼없이 필력을 구사할 줄 아는 이 시대 재능이 뛰어난 예인」으로서 「흉중의 고고특절한 품성 없이는 문자향과 서권기를 지니지 못한다」는 추사의 지론을 실천시킨 화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20세때 뒤늦게 입문 그가 화단에 등단한 것은 아직 대학재학중이던 20세였으나 뒤늦게 45세되던 해 서울 첫 개인전을 열 때까지만 해도 그의 그림에는 일정한 채색과 반추상의 형태가 깃들여 있었다.그러나 산정 자신은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메마른 구각이나 비좁은 질곡은 싫다」고 천명했고 이후 채색이 없는 검정색의 선묘형상들은 그 기호적인 성격과 힘과 자발성을 채색의 경우보다 한층 강하게 나타내게 되었다. 그는 우리 화단에서 그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언제나 커다란 구심점을 긋고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오늘날 수많은 미술대전에서 동양화가 구상·비구상으로 나눠지게 된 것도 단순히 이 작가의 작용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화단에서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후 산정은 유럽쪽에 눈을 돌려 수많은 해외전에서 한국회화의 독자성을 인정받았다.그중 77년 9개월에 걸친 「한국 현대회화 유럽전」에서는 현지 신문들이 「서세옥의 추상적인 묵화들은 동양화라 일컬어지는 한국 전통미술의 현대적 전모를 집약함으로써 서양인에게 동양문화의 진미를 보여주었다」(르피가로 78년6월28일자)고 쓰기도했다. ○올 11월 개인전 열어 그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고서화가 있는 집안환경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며 자라났다.독립운동을 하던 부친 서장환(석련)공은 세 아들중 일총한 산정을 특히 총애하여 「성동」이란 아호를 내려주었으나 대학시절 영운(김용진) 춘곡(고희동) 소전(소전 손재형)등 그의 스승들이 「세옥」의 옥자와 관련된 「옥출곤강(금과 옥돌은 산에서 캔다)」이란 의미의 「산정」을 지어주었다. 지난해 서울대 정년퇴임후 산정은 무송재 녹음속에 파묻혀 그의 전생애가 그렇게 일관해왔듯이 자유하는 예술가로서의 절제와 생략과 탈속의 묘를 구체화하는 시기일 것이다. 그의 테마는 여전히 인간에 집착한다.세월도 서릿발 같은 그의 의지를 피해가는지 언제나 만년청년 같은 그는 「적진에 뛰어들어 호랑이나 사자를 사로잡듯」 우주의 올바른 기운을 수백호 화면속에 역동적으로 되살려내고 있다. 요즘은 오는 11월로 잡힌 개인전과 그가 발족한 한·중미술협회의 요청으로 그동안 써온 한시를 친필서예로 꾸미는 「산정문집」 출간준비에여념이 없다.그중 연전에 중국 양자강을 둘러보며 지었다는 「단현」이 눈에 띈다. 「비지양현회 농현감금심 고산류수곡 적막실지음 석현호불기 천재거무회 수주아양곡 공류일금대(이땅의 두 현인이 만나 거문고로 서로 마음을 느끼니 이는 고산곡과 유수곡이라,지음이 없으니 적막하구나.옛 현인 불러도 일어나지 않고 천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니 누가 고산 유수곡을 연주할 것인가,속절없이 거문고 튕기던 언덕만 남았구나)」이는 중국 춘추시대의 거문고 명인이던 백아가 그의 거문고소리를 좋아하던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현을 끊어버린 일화를 그린 시로 그들이 거문고를 타던 양자강가에 서자 이런 시를 읊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3∼4년전까지만해도 송죽 우거진 뜰에서 산정은 가까운 이들을 모아 거문고며 가야금연주를 즐기곤 했다.그러나 명고수 김명환씨가 4년전 작고하고 단골손님이던 언론인 예용해씨마저 지난해 타계하자 화가는 혼자 남아 그때의 감흥을 한편의 시와 한점 획(화)으로 남기게 됐나보다. 이제 산정댁의 대나무가 그 놀라운 푸른빛을 뻗치고 소나무향이 온산을 뒤덮어도 이 풍치를 음미할 만한 유장한 현금은 울려지지 않는다.단지 우거진 나뭇닢이 단 한 잎도 시든 기색 없이 싱싱한 생명력을 지니는 것처럼 시들 줄 모르는 산정의 붓끝은 그 탁발한 금선의 선율로 「청청속의 노주」를 결국 성취하게 될 것이다. □연보 ▲19 29년 대구생 ▲49년 제1회 국전서 「꽃장수」로 국무총리상 수상 ▲50년 서울대 미대 졸업 ▲54년 제3회 국전서 「휘월의 장」으로 문교부장관상 수상 ▲54∼95년 서울대 미대 교수 ▲59년 묵림회 창립대표위원 ▲61∼82년 국전 심사위원·운영위원 ▲62년이후 상파울루비엔날레 칸국제회화제 이탈리아회화제 인도트리엔날레 도쿄비엔날레 파리현대미전 등 출품 ▲64년 국제조형예술(IAA) 한국위원회위원장,신인예술상 심사위원장 ▲64∼88년 한국미협이사장·회장 ▲66∼71년 유럽·남북미 34개국 여행,한국현대미술 프랑스순회전 ▲70년 국전 초대작가상,한국미술대상전 심사위원 ▲73년 예총부회장 ▲74년 서세옥전(현대화랑초대전) ▲77∼78년 한국현대 동양화유럽순회전,스웨덴 폴란드 독일 프랑스 ▲79년 서세옥전(도쿄 우에다화랑 초대) ▲82∼85년 서울대 미대학장 ▲83년 서세옥전(뉴욕 퍼시픽아시아박물관초대),전국미대협의회회장 ▲85년 서세옥특별전(뉴욕 바로카레지미술관 초대) ▲89년 서세옥전(현대화랑 초대),뤼턴오브 마르코폴로전(프랑스 파리) ▲90년 한국작가전(중국 북경),한·중미술협회 결성 ▲91년 한·중미술대전(중국 북경)이후 서울·남경·상해 등지서 교류전시 그외 한국회화대전및 아세아현대미술전 한국미술상황전 LA87미술전 조선일보미술관개관기념 현대작가초대전 서울올림픽아트 국제현대미술전 등 다수 출품,국민훈장석류장 서울시문화상 한·중미술협회회장,미협고문
  • 시간대별 상황(삼풍백화점 붕괴)

    ◎가스냄새 진동… 바닥 심하게 요동­하오 5시30분/옥상 균열 발견­상오 7시/식당가 문짝 뒤틀림­상오 8시30분/우동집 「현지」 천당서 물쏟아지고 바닥 꺼짐­상오 11시/5층 식당가 10여분간 3차례 진동 체감­12시50분/에어컨 가동 중단­하오 4시/5층 건물 붕괴­하오 5시50분 29일 상오 7시쯤 여느때와 다름없이 순회근무를 하던 삼풍백화점측 보안담당관이 A동 옥상에 30㎝정도 금이 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불길한 징후였다. 이어 8시30분쯤 건물 5층 식당가의 전주비빔밥 전문집인 「춘원」의 천장이 20㎝가량 내려앉았다.바닥과 문짝이 뒤틀어졌다. 비슷한 시각 건물 2층 매장에는 매케한 연기가 스며들어 왔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대학생 80여명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출근해 직원 1천여명과 함께 고객을 맞고 있었다. 특히 이날에는 특별보석전이 열리고 있어 지하주차장과 1층에는 이른 시간부터 많은 여성 고객들이 쇼핑 가방을 들고 몰려 들었다. 상오 11시쯤 5층 우동집 「현지」와 냉면집 「이전」의 천장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면서 바닥이 꺼져내렸다. 정오쯤 이 건물 5층 신용판매부 사무실 바닥이 5㎝가량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놀란 일부 매장은 문을 닫았고 백화점측에 대책마련을 건의했다. 백화점측은 이날 상오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고 2차례에 걸쳐 대책회의를 가졌다.하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급박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고객들이 불안해 할까봐 전전긍긍했을 뿐 대피를 하라는 안내방송 한번 하지않았다. 오히려 문제가 없는 식당은 영업을 계속하라고 독려했다. 낮 12시50분쯤 5층 식당가에서 뒤늦게 점심 식사를 하던 사법연수원 직원 8명은 식당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진동은 10여분동안 3차례나 계속됐다.물잔이 가볍게 흔들렸다. 천장이 내려앉은 음식점들은 하오 1시30분쯤 입구에 노란 테이프를 두르고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음식점을 찾은 고객들에게 식당주인들은 『가스도 안나오고 천정공사를 하고 있어 영업을 하지 못한다』고 돌려보냈다. 하오 4시쯤 안내방송도 없이 에어컨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직원들은 찜통더위 때문에정문을 열어제치고 부채를 부치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참화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장바구니를 들고 백화점을 찾아드는 주부들이 이를 알리가 없었다.시간이 지날수록 지하 식품부에는 40∼50대 주부들의 발길이 더욱 몰렸다. 하오 5시쯤 문을 닫지 않고 영업을 계속하던 5층 죽집 「송죽」에서 저녁을 먹던 음식점 직원 김서정씨는 갑자기 「쿵」하는 소리를 듣고 음식점밖으로 뛰쳐 나왔다. 하오 5시30분쯤 아르바이트를 평소보다 일찍 마친 대학생 김모군(20)은 저녁을 먹으러 5층까지 올라갔다가 식당가가 폐쇄돼 다시 계단을 통해 내려오고 있었다. 이때 건물전체에서 갑자기 가스와 신나 냄새가 심하게 나고 심하게 멀미가 느낄 정도로 바닥이 흔들렸다. 같은 시각 천장이 내려앉았던 「춘원」의 형광등이 「와장창」 바닥에 떨어지면서 벽이 조금씩 갈라졌다.건물이 내려앉는 서곡이었다. 20분쯤뒤인 하오 5시50분쯤 갑자기 「쾅」,「와르르」 땅을 뒤흔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백화점 건물은 자욱한 먼지에 뒤덮였다. 폭발음과 함께 벽돌과 콘크리트 조각,분진들이 핸드백등 여성용품들과 뒤섞여 백화점앞 도로로 쏟아졌다. 백화점앞 차도는 이내 자욱한 연기,매케한 냄새와 함께 튕겨져 나온 여성용품들이 수북히 쌓였고 그 사이로 간혹 피투성이가 된 여자의 시신도 눈에 띄었다. 순간 신호대기중이던 회사원 최정렬씨는 암면,유리면 등 섬유가루때문에 목과 눈이 따가워 차에서 내려 길바닥에 엎드렸다. 수초뒤 자욱하던 먼지와 분진가루가 걷히면서 백화점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앙상한 뼈대를 드러냈다. 50m쯤 떨어진 삼호가든 베란다의 페어글라스에 금이 가면서 파편이 날아들었고 2백m나 떨어진 한양아파트 건물 유리창 수십여장이 깨졌다.
  • 백제 금동반가상유상(한국인의 얼굴:30)

    ◎앳된 소년… 눈·입가엔 자비의 미소/석가 어릴적 모습… 삼국시대 최고 걸작/깊은 사색 속 손가락엔 생동감 엿보여 백제 금동반가사유상 백제 불교미술이 황금기를 맞는 시기는 7세기에 접어들어서다.이는 불상에도 잘 반영되어 얼굴(상호)표정을 자유자재로 그려냈다.잔잔한 미소 뒤쪽에 스며든 내면의 세계까지를 얼굴에 담았다.대단한 표현력이다.웃음에 가리지 않은 그 내면세계를 고뇌로 보아도 좋을 것이나,구도적 의미를 주어 사유라 일컬었다. 그러한 불교조각의 백미는 국립부여박물관이 소장한 금동삼산반가사유상이다.사람과 맞먹는 크기(등신대)를 한 높이 93.5㎝의 이 사유상은 웃음을 머금었지만 문자 그대로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얼굴에 고뇌스러운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까닭은 어떤 대상을 너무 골똘히 생각한데서 비롯된 표정일 것이다.책상다리 앉음새인 결가부좌에서 한다리를 풀어 대좌 아래로 걸터놓았대서 사유상에 반가를 앞세웠다. 금동삼산반가사유상의 주인공은 보살이다.그것도 다른 보살이 아닌 아미타불로 불리는 석가여래의 어릴적 모습인 태자 싯다르타라고 한다.하지만 백제 반가사유상의 싯다르타는 인도 북부 작은 왕국의 소년이 아니다.불교 발상지에서 천신만고 끝에 중국의 북제를 거쳐 백제에 들어오는 동안 여러번 재창조되었다.특히 북제에서는 20㎝ 안팎의 백옥사유상을 만들었으나 이를 받아들인 백제인들은 청동을 소재로 등신대의 사유상을 조성했다. 그리하여 스케일이 큰 백제의 불심과 예술,또 백제인화한 소년 싯다르타를 여기서 만나는 것이다.의젓하게 삼산관을 머리에 썼지만 얼굴은 앳된 소년이다.눈매와 입가에 어린 미소에는 벌써 자비가 깃들었다.중생을 구제하는 절대자가 아직 아닌데도 부처를 닮아가고 있는 이 싯다르타는 지금 사색을 통해 깨달음의 길에 이르고자 하고 있다.그래서 속기를 벗어 탈속의 경지에 진입이라도 한듯 얼굴이 티끌 한점 없이 맑다. 얼굴은 둥글다는 느낌이 와 닿는다.그럼에도 한편으로 갸름해 보이는 것은 이목구비가 준수한 탓이리라.버들잎 같기도 하고 초승달을 닮은 듯도 한 눈썹이 길다.그 눈썹에 물려 시작한 코가 유난히 오똑하다.깊은 생각에 잠겼다는 사실은 살포시 내리깐은 눈매에 그대로 표출되었다.자그마한 입은 내리깐 눈매와 더불어 잔잔한 미소를 드러내 보이는데 큰 몫을 했다. 오른쪽 손을 굽혀 중지가락을 살짝 뺨에 댔다.오른손가락과 오른 발목에 올려놓은 왼손가락 마디 마디가 생동감에 차있다.대좌에 늘어뜨린 옷자락은 휘날리는 듯 표현되었다.전체적으로 풍부한 양감을 안겨주는 이 금동반가사유상은 한마디로 영원성을 지닌 예술품이다.삼국시대 불상 가운데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되거니와 동양 고대불상의 백미이기도 하다. 이 금동반가사유상은 몇차례 해외 나들이에서 외국인들로부터 경탄의 찬사를 받았다.파리 전시회 때도 전시기간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금동반가사유상을 보러온 학자도 있었다는 것이다.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파리에서 말이다.
  • 남아공 「선시티」(아프리카 기행:11)

    ◎밤이없는 「25시의 도시」… 세계 관광명소로/서구문명 태동기에 화려한 왕궁건설/화산으로 잿더미… 「잃어버린 도시」로 전락/91년 다시 개발… “옛영화 되찾기” 열정 불태워 선시티(Sun City)는 보푸타츠와나의 한 가운데 문명의 손길이 빗겨간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자연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선시티에는 이렇다할 경계선도 없고 밤의 적막도 없는 25시의 도시라 할 수 있다.매일 낮과 밤,고대 화산에서 용암이 분출하듯 아프리카의 정열을 분출하고 있는 도시중의 도시다.아주 옛날,한 두개의 돛을 단 배 이상의 해상교통 수단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서구 문명이 아직 태동기에 있을 때,아프리카 북부로부터 화려한 건축기술을 자랑하는 한 부족이 이곳에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화산의 분출구 주변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이 지역을 「태양의 계곡(Valley of the Sun)」이라 이름붙이고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땅은 비옥한데다 가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한복판 답지않게 물도 풍부했다.더군다나 운좋게 금광을 발견하는데 성공하여 여기서 캐낸 금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그리고 그들을 이끌었던 용맹과 자비를 겸비한 훌륭한 왕이 거처할 웅장하고 아름다운 궁전도 지었다.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들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어느 날 갑자기 다시 시작된 화산활동은 이들이 쌓아올렸던 찬란한 왕궁과 문명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주민들도 엄청난 파괴력 앞에서 뿔뿔이 흩어져 먼 곳으로 도망을 쳐야했다.잡초만이 무성한 옛 영화의 도시의 폐허모습으로 그렇게 버려졌었다. ○금캐내 부를 축적 1991년 문명인들에 의해 다시 햇빛을 보게 돈 「태양의 계곡」은 「선시티의 잃어버린 도시(Lost City at Sum City)」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발되어 오늘 날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잃어버린 도시의 옛왕궁 터 옆에 자리잡은 「잃어버린 도시의 궁전(The Palace of the Lost City)」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텔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 우리는 그 엄청난 규모와 호화로움에 한동안 할 말을 잊어버렸다.삭막한 사막 한 가운데 이런 도시가 들어서 있다니,호화의 극치를 이룬 이호텔은 오늘 날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을 귀빈으로 접대하고 있다.이 호텔의 건물은 복원된 옛 왕궁과 함께 찬란했던 왕국의 영화를 되살려 주는 왕관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3백38개의 호화로운 객실과 대형 실외수영장,세계 각국의 일류요리를 맛볼 수 있는 다섯개의 식당,골프 코스,초대형 무도장이 갖추어져 있다. 팰리스호텔의 내부는 복원된 옛 왕궁의 모습으로 북아프리카의 문화적 유산이 많이 남아있다.그러한 문화유산을 그대로 본떠 지어서인지 수많은 아프리카의 맹수들과 짙푸른 식물들로 장식되었다.야자수 잎이 정교하게 조각된 벽장식의 라운지가 있는가 하면 여러가지 아프리카 야생동물의 머리부분을 하나하나 손으로 조각한 의자등받이 장식이 인상적인 식당도 자리잡았다.25m 높이의 망루에는 코끼리 상아와 야자수 잎을 야자줄기로 엮어 덮은 듯한 모양의 지붕이 있다.그리고 그 지붕 바로 아래에는 횃불을 태울 수 있는 등잔모양의 커다란 그릇이 보였다.밤이면 이 등잔에 켜진 횃불이 새벽까지 밝혀준다.아마도 옛날의 그 끔찍한 대지진이 있기 전에 이곳 왕궁에서도 이런 높은 망루에서 왕실의 경비병이 멀리서 오는 국빈의 도착을 알리거나 사냥감의 움직임을 관찰했을 듯하다. ○펠리스호텔… 큰 자랑 이 호텔에서 가장 인상깊은 예술품은 아마도 중앙 홀의 천장화일 것이다.25m 높이의 둥근 천장에 그려진 이 벽화는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직경이 16m에 달하고 중앙에는 천장이 있으며,모두 여섯부분으로 그림이 나뉘어져 있다.치타,얼룩말,원숭이,영양 등이 아프리카 밀림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이것을 완성하는 데 자그마치 5천시간이 걸렸다고 한다.천장 바로 아래 바닥에 깔린 30만개나 되는 대리석 조각 모자이크가 무척 아름다웠다.팰리스호텔 주변 숲의 넓이는 약 7만5천평으로 대략 22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 구역마다 다양한 나무들이 울창한 열대림을 이루었다.특히 만포기 이상의 야생란이 자라 그 운치는 더욱 대단했다. 옛 왕궁터 안에는 조개껍질을 엎어놓은 모양으로 생긴 파도의 계곡에 파도풀장이 있다.지진이있기전에 이 도시의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던 곳이었다.그러나 지진이 일어난 후로는 매90초마다 건헐온천이 솟아나와서 마치 바닷가에서 깨끗한 모래사장과 함께 해변의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효과를 낸다.이 간헐온천의 파도를 이용해 이곳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파도의 계곡을 지나면 시간의 다리(Bridge of Time)가 있다.이 다리는 옛 왕궁터와 대무도장을 연결해 주는데,다리 난간에는 표범과 코끼리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지각운동이 있을 때마다 다리 아래로부터 뜨겁고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기도 하고 다리가 흔들리기도 한다. ○간혈온천 솟아올라 파도의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는 원숭이 분수광장(Monkey Spring Plaza)은 옛 도시에서 심각한 가뭄이 들었을 때 사람이 올라갈 수 없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 나무열매를 따서 사람들이 가뭄을 견디도록 도와주었다는 원숭이들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네 마리의 원숭이는 각각 동서남북을 정면으로 향하고 앉아 있으며,그들이 앞으로 내뻗은 팔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목마른 인간에게 구원을 주는 듯 하다.지각운동 때문에 땅이 흔들릴 때면 원숭이들의 머리에 얹힌 커다란 그릇에서 물이 흘러 넘친다고 한다.
  • 어린이 유골 추가 발견… 발군 진전/「아현동」 현장검증 이모저모

    ◎옆빌딩서 유리창 쏟아져 한때 긴장/“현장검증 보다 시신 찾아달라” 항의 ○…서울 아현동 가스폭발사고에 대한 이틀째 현장검증과 발굴작업이 계속된 10일 상오 검·경합동수사본부와 도시가스관계자들은 실종자 가족들의 성화에도 불구,시신등이 발견되지 않아 애를 태웠으나 하오부터 시신조각과 유품들이 발견되자 안도. 하오 1시10분쯤 9일 파놓았던 공급관부근에서 검은 하이힐이 나온 것을 시작으로 30여분동안 5∼6개의 시신조각들이 발견. 하이힐은 실종된 김인향(32·여)씨의 것으로,시신은 김씨의 2살난 아들 윤상호군인 것으로 일단 확인. ○…이날 하오8시50분쯤 계기실부근에서 철근상판조각들을 들어올리던 검증반원들이 흙더미속에서 비교적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는 다리부분을 발견하자 현장을 지켜보던 실종자 가족들이 아연 긴장. 검증반은 시신이 손상되지 않도록 포클레인 작업을 중단하고 용접기로 철근을 절단하는등 신중히 작업을 벌였지만 콘크리트가 워낙 단단해 3시간이 지나도록 진척이 없자 실종자가족들은 한시도 자리를 뜨지않은채 애를 태우기도. ○…이날 하오 늦게부터 실종자들의 시신이 한꺼번에 몰려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계기실쪽의 철거작업이 시작되자 실종자 가족들과 주민등 3백여명이 현장에서 밤늦게까지 지켜보는 모습. 야간조명차 3대를 동원해 이틀째 철야작업이 진행된 현장주변에서 실종자가족들은 『사고원인을 밝히는 현장검증도 중요하지만 사고가 난지 3일이 되도록 시신조차 발굴하지 못한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며 강력히 항의. ○…현장검증이 계속중이던 하오2시10분쯤에는 지난번 폭발때 거의 모든 유리창이 깨지거나 금이 간 대우전자빌딩 15층에서 갑자기 유리창이 인도로 비오듯 쏟아져 한때 현장검증주변 사람을 긴장시키기도. 순간적으로 불어닥친 강풍으로 일어난 이 소동은 다행히 당시 지나가던 행인이 없어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수사본부는 철야작업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사체가 발견되지 않자 실종자의 생존 가능성과 공중해체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타진. 한 관계자는 『각종 장비를 동원해 밤새워 현장을 뒤졌는데도 아무런 성과가 없자 수사팀 내부에서도 실종자의 생존가능성에 대한 조심스런 언급이 있었다』고 전하고 『그러나 그동안 실종자 가족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별다른 단서를 발견치 못했다』고 설명. 이에 대해 가족들은 『제2의 서해페리호 백운두선장을 만들려느냐』며 항변. ◎실종 인부7명 어디 있을까/나흘째 밤샘수색 불구 사체 발견못해/기계실에 묻힌듯케 열파산화 가능성도 서울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 나흘째인 10일까지도 정달영(30·서울도시가스 계기관리과 계장)씨 등 당시 인부 7명의 사체가 발견되지 않아 가족들은 물론 검·경과 회사관계자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초 수사본부는 지하가스기지에서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입구 주변에서 실종자 7명의 사체가 발견될 것으로 보고 연일 포크레인을 동원해 밤샘작업을 벌여왔다. 사고당시 급박한 상황에서 인부들이 탈출구를 찾아 계단쪽으로 대피하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경은 또 사고직전 가스관과 밸브주변,기계실 등에 흩어져서 작업중이던 인부들의 사체가 폭발의 충격으로 뿔뿔이 흩어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삽과 곡괭이로 가스관 주변 흙더미를 샅샅이 파헤쳤다. 그러나 계단과 가스관주변의 돌덩이와 철근 등을 해체한 10일 하오까지도 2세쯤으로 추정되는 어린애 사체 1구만 발견됐을뿐 다른 사체는 발굴되지 않아 밤새 작업을 지켜보던 실종자 가족들은 여전히 발을 동동 구를 수 밖에 없었다. 이에따라 가족들의 눈길은 자연히 포크레인 몸체 바로 아래 흙과 돌더미에 파묻힌 기계실쪽으로 쏠리고 있다. 늦어도 11일중으로는 기계실과 그 주변의 해체작업이 마무리될 것이며 그 이전에 온전한 사체라도 수습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기계실은 평소 청원경찰 박범규씨(실종)가 상주하던 곳으로 가스의 압력과 유량·경보 등을 전용회선을 통해 안산 중앙통제소로 송신하는 원격계량통제기(TMTC)와 그 단말기 역할을 하는 경향성기록기(트렌드 레코드)·비상용 전화기 등이 설치돼 있었다. 일부에서는 사고직전 인부들이 뭔가 이상을 감지하고 기계실에서 안산 중앙통제소에 전화로이를 알리는 등 비상대책을 강구하던중 변을 당한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폭발 2분전 사고현장의 진상훈씨(30·서울도시가스 계기관리과 사원)가 회사간부에게 『점검중』이라는 전화를 한 점으로 미루어 이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 애쓰다 안개처럼 뿜어져나오는 가스에 질식돼 뇌기능이 마비되고 끝내 숨졌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다. 수사본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날까지도 사체가 발견돼지 않자 폭발지점에서 가장 근접해 있던 인부들이 엄청난 폭발로 인해 공중에서 산화해버려 온전한 모습의 사체를 발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아파트 지하주차장 균열… 대피 소동

    ◎기둥 속 철근 휘고 콘크리트 떨어져/붕괴 대비 철제빔으로 받쳐 【일산=김명승·곽영완·김현철·박용현기자】 성수대교 붕괴 등 대형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일산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콘크리트기둥의 시멘트조각이 떨어져 철근이 드러나자 주민 5백여명이 한밤에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26일 하오9시쯤 경기도 고양시 백석동 삼호아파트 508동과 510동 사이 화단 아래 지하공동주차장의 가로·세로 각 40㎝,높이 3.5m의 콘크리트기둥 26개 가운데 입구에 있는 첫번째 기둥 윗부분에 금이 가고 60㎝정도의 시멘트조각이 떨어져나가 직경 1.5㎝정도의 철근 10여개가 휘어진 상태로 드러난 것을 509동 경비원 송병태씨(63)가 발견,소방서에 신고했다. 관리사무소측은 방송을 통해 즉각 사고를 주민에게 알리고 주차장의 차량 10여대를 대피시키도록 권유했다.또 고양시측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철제빔을 설치했다. 시공회사측은 『이 주차장엔 차량 70여대를 주차할 수 있으며,주차장 위에는 건물이 없어 아파트가 붕괴할 위험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삼호아파트는 92년8월 일산신도시에서 처음 입주한 아파트로 현재 12개동에 7백82가구가 살고 있다. 주민 이모씨(36·회사원)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최근의 대형사고로 잠재된 불안감 때문에 이같은 해프닝이 벌어진 것 같다』며 『부실시공여부 및 안전점검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호건설측은 이날 밤10시쯤 전문가 4명을 현장에 보내 사고경위를 조사했으며 건설부 김우석 장관과 박병선 도시국장 등도 현장에 나와 지하주차장 설계도면을 검토하는 등 확인작업을 벌였다. 이에 앞서 91년6월 분당 시범아파트 옥상에서 물탱크 설치공사도중 물탱크 설치용 옥탑과 기계실이 한꺼번에 무너져 다시 시공했으며 92년1월에는 평촌신도시 제4차공구에서도 14층 조립식 복도설치작업도중 철제버팀대 1개가 균형을 잃어 무게 2·5t짜리 PC판이 아래층으로 내려앉으면서 6∼13층까지의 복도 PC판 25개가 무너져내렸다. 정부의 「주택 2백만호 건설」계획에 따라 자재부족·공기단축 등 무리한 시공으로 특히 부실의 위험을 안고있는 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등 신도시에는 현재 21만9천여가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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