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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철수­박운서­장석환 트리오/「통상 사령탑」 새 포진

    ◎교섭력­끈기­순발력의 「10년 콤비」/적기에 재회… 무역파고 극복 기대/장관­차관­1차관보로 상공부에 “금의환향” 상공자원부가 통상 3두체제를 갖췄다.김철수장관에서 박운서차관과 장석환1차관보로 이어지는 라인업이 그것이다. 산업쪽에서 줄곧 일해 온 이동훈차관이 물러나고 통상통인 박운서차관이 기용되면서 짜여진 진용이다.통상전문관료가 장·차관에 앉기는 상공부창설이후 처음이다. 「김­박­장」인맥은 일찍이 10년전부터 호흡을 맞춰온 콤비이다.84년 김장관이 민정당전문위원을 마치고 상공부1차관보로 돌아왔을때 박차관은 통상진흥국장으로 1차관보밑에서 통상정책을 맡았다.장차관보는 통상정책국장아래 직급인 통상진흥관. 86년4월 장차관보가 제네바상무관으로 옮길때까지 이들 3인방이 국제협상을 주도했다. 김장관은 90년까지 1차관보로 있다 특허청장,무공사장을 거쳐 지난해 2월 상공장관으로 금의환향했다.박차관은 한때 대통령경제비서실로 나갔다가 새정부출범과 함께 상공부1차관보로 복귀했고 지난 2월 공업진흥청장으로승진한지 3개월만에 차관으로 돌아왔다.장차관보는 주제네바상무관­국제협력관­통상진흥국장­대전엑스포사무차장을 거쳐 지난 2월 1차관보에 앉았다. 이들은 슈퍼301조발동위협 등으로 우리경제가 대외적으로 가장 어려울때 통상파고를 극복한 「통상 1세대」.80년대 컬러TV 등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제소,슈퍼301조 문제,UR협상 등에 이들의 활약이 숨어있다.국제무대에서도 인정받는 한국의 통상전문가들이다. 김장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통상전문가.미국의 슈퍼301발동을 특유의 교섭력과 기품있는 매너,뛰어난 영어실력으로 풀어내 국내보다 국제무대에 더 알려져 있다.매사추세츠 정치학박사출신으로 미 스미스대학에서 교수로 있다 73년에 관료로 특채됐다. 미국과 그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가 깊어 미국관리들로부터 신뢰도가 가장 높은 한국관료로 꼽힌다. 경제기획원출신의 박차관은 81년 상공부로 옮긴 이후 통상분야를 주로 맡았다.극성스러울 정도의 공격적인 스타일로 크고 작은 협상을 처리해 왔고 지난해말 반덤핑과 UR공산품협상을 매끄럽게마무리했다.끈질긴 성품때문에 「타이거 박」이라는 별명이 있고 협상무대에서 미국을 곤궁에 빠뜨려 미국관리들이 「Anti­U·S 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차관보는 김장관과 박차관을 이을 통상전문가.순발력과 유머감각,유창한 영어실력으로 궁지에 몰리기 십상인 다자협상에서 주장을 관철하는 재주를 지녔다는 평이다.최근 한미간에 불거진 자동차시장 개방문제를 무리없이 풀고 있다. 손발이 잘 맞는 「콤비」여서 앞으로 통상문제를 잘 풀어가리라는 기대들이 많다.그러나 한편으론 상공자원부의 수뇌부가 통상쪽에 집중돼 공업과 자원분야가 상대적으로 소홀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 인내와 지성으로 「화합내각」 이루겠다

    ◎이영덕총리가 말하는 「경국론」/위상약화 예단은 기우… 「보수」 규정 말라 이영덕국무총리는 29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화합론」을 내세우며 「보수」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화합은 이회창전총리의 결격사유로 이총리가 총리로 내정된 뒤부터 줄곧 강조했던 사항.보수는 그를 못마땅하게 보는 시각에서 지적하는 대목.이총리의 말에는 이전총리 못지 않은 소신이 배어 있었다. 이총리는 화합을 『구성원 모두가 과정은 다를지언정 목표에서는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정의 했다.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고 서로 존중하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독실한 기독교신자답게 성경구절을 인용한 설명도 덧붙였다.이총리는 상대방이 화합에 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집단간의 갈등을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데는 인내와 지성이 요구될 뿐 아니라 때때로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면서도 『나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과도 화합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그는 문민정부의 3기 내각을 「화합속에서 개혁을 지향하는내각」으로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이총리는 이어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다양한 의견을 토의,이를 종합해 최상의 결론을 낸 뒤 실제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관계된 모든 사람이란 내부의 사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석도 붙였다. 그는 총리로서의 영역이 이전총리 때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에 대해서도 언급 했다.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직무를 수행하는 총리의 관할 대상은 각 부처와 총리실의 참모들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또 『총리실의 위상이 약화될 것이라는 생각은 기우』라고 못박았다. 이총리는 『청와대 참모진들은 물론 외부의 경험 많고 지혜로운 사람들의 생각도 받아들여 결론을 내야 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기 보다는 남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뜻을 밝혔다.그리고는 『언론도 그것에서 빠질 수 없는 한 집단』이라면서 『여러분을 동료로 생각하며 일해 나가겠으니 좋은 의견이 있으면 이야기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총리는 보수적이라는 세간의평가로 말머리를 돌렸다.이총리는 『나는 보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이 자리에서 분명히 해야겠다』고 말해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온 것처럼 보였다.이총리는 보수를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면서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정의 했다.그런 뜻에서 보수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했다.「사람이 살아있다」,「집단이 건강하다」는 증거는 바로 그 개인이나 집단이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이어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계속 변화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총리는 정치적으로도 절대 보수가 아니라고 했다.이총리는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로 구분하자면 나는 합리적 현실주의자』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대북정책에 있어서만은 보수적인 노선을 견지하고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대해 『북한도 같은 민족이라는 점에서 동반자로 여기지만 북한의 실체를 파악해 경계하는 마음으로 통일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총리는 이전총리가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건 때문에 그만두었다는 지적에 대해 『의장으로서 이전총리에게 보고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면서 『그 문제 때문에 사임했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이총리는 이날 부처이기주의 척결을 강조했다.그러나 공무원사회의 복지부동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일하는 분들은 목적의식이 강하고 진실하다고 본다』고 다른 견해를 나타냈다. ◎이홍구부총리가 말하는 「대북정책」/남북문제 대화로 풀수박에 없다 이홍구 신임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30일 앞으로의 통일정책 기조와 관련,『여야간 합의와 국민적 총의를 토대로 통일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외교안보팀과의 호흡은 잘 맞을 것이라고 보는가. ▲한승주외무장관이나 김덕안기부장,정종욱외교안보수석 등과는 비교적 가깝게 일해온 사이다.그동안 외부에 있을 때도 후배교수들이고 해서 응원단장 노릇을 해왔다. 그들이 지금까지 잘해와 팀웍을 이뤄나가는 일이 의외로 쉬울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남북관계가 대치국면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남북관계에는 상황의 2중성이 존재한다.대결적 측면이 있긴 하나 그러면서도 어차피 대화로 문제를 풀 수 밖에 없다.6년전 통일원장관에 취임할 때만해도 구소련이 건재했고 독일도 분단상태였다.이같은 세계사의 엄청난 변화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한반도만 예외지역으로 남을 것인가하는 분수령에 서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어떤 선택을 하리라 보는가. ▲강한 체제를 만들어 놓을수록 역사적 전환점에서는 적응이 어렵다고 본다.때문에 북측이 대단히 어려운 선택을 요구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이 핵무기개발을 과연 포기할 것으로 보는가.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핵무기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따라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폐기해야 하고 개발중이라면 중지해야 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할 방안이 있는가 ▲지금까지 정부에서 잘 대응하고 있다고 본다.구체적인 것은 좀더 업무를 파악한 뒤에 다시 얘기하자. ◎이 부총리 프로필/통일원장관 지낸 대북전문가 6공화국 출범과 함께 2년간(88∼90년) 통일원장관을 역임한 뒤 4년만에 격상된 통일부총리로 통일원에 금의환향한 정치학자출신의 대북 전문가.주영대사로 외교무대에서 활동하는등 국제적인 감각이 뛰어나고 관리능력도 탁월해 문민정부 출범때 총리물망에 오르내렸고 개각때 마다 입각이 점쳐지기도 했다. 14대 통일원장관으로 재직하면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성안하는 과정에서 정연한 논리와 소신으로 보수파의 반대를 무마하고 보다 전향적인 통일정책 수립에 기여한 데다 문민정부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통일문제에 계속 간여한 점등이 부총리발탁의 배경이 됐다는 후문.미 예일대 박사출신의 한국 정치학계 간판스타로 깔끔한 외모에 성격이 원만하고 설득력과 함께 추진력도 강해 작년 모 월간지에 의해 역대 통일원장관중 가장 뛰어났던 장관으로 선정되기도.「정치학 개론」과 「마르크시즘 1백년」이란 저서를 냈으며 부인 박한옥여사와의 사이에 1남2녀.취미는 여행과 등산.
  • 박경호 신임 경기도지사/소신 강한 지방행정 1인자(얼굴)

    주사보로 특채돼 내무부와 일선 시·군수로서 외길을 걸어온 정통 내무관료.대구출신이지만 사무관시절부터 내무부와 경기도 그리고 경기도의 시·군을 오가며 일선행정경력을 쌓은 경기도통으로 경기도백부임은 사실상 금의환향인 셈이 됐다. 온화한 성품에 첫인상은 우유부단해 보이지만 업무와 관련해서는 소신을 관철하고 마는 지방행정의 제1인자라는게 지배적인 평가. ▲대구(54) ▲연세대 법정대 행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경기도 성남·부천시장 ▲대구 부시장 ▲경북 부지사 ▲지방세제국장 ▲지방재정국장 ▲차관보
  • 손홍균 신탁은행장/추진력 탁월…지점장때 3연속 수신고 1위(얼굴)

    지난 91년 수석전무로 재직중 행장자리를 놓고 당시 차석전무인 김준협씨에게 고배를 마시고 대한투신사장으로 옮겼다가 2년반만에 금의환향한 셈. 은행장후보경쟁에서 노조를 앞세운 「올코트 프레싱」전략이 주효해 경쟁자인 신복영한국은행부총재를 제치고 후보로 선임됐다.투지와 추진력이 돋보이지만 호,불호가 뚜렷해 내부갈등을 잘 수습해낼지 주목된다.지난 71년 상도동지점장시절에는 3년연속 수신고 1위를 기록했다. 취미는 테니스로 한창때는 금융단테니스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을 정도.부인 김춘희씨(56)와 1남4녀.
  • 김혁규 경남지사(신임 차관급 프로필)

    ◎대선때 「나사본」 기획실장을 역임 미국 뉴욕한인회장이 고향도백으로 금의환향하는,소설의 주인공 같은 인물.지난 70년 미화 1천달러를 쥐고 이민길에 올라 「혁가방」으로 백만장자가 됐다.지난해 대선때 사조직인 「나사본」의 기획관리실장을 맡아 선거운동에 경영개념을 도입.청와대 민정·사정비서관을 지내면서 사정태풍을 기획,입안했다.부인 이정숙씨(49)와 1녀. 등록재산 15억3천5백만원과 3백87만4천달러. ▲경남 협천(54) ▲부산대 법대 ▲내무부 지방국 주사 ▲혁트레이딩 사장(미국) ▲뉴욕한인회 이사장
  • 박태권 충남지사(신임 차관급 프로필)

    ◎민자 민주계 동국대사단 소장파 민자당 민주계의 동국대사단 소장파.민추협시절부터 YS의 사람으로 활약했으며 지난 대선 때는 민주산악회 중앙본부장으로 공을 세웠다.지난 3월 초대 문화체육부 차관을 맡았다가 이번에 고향의 도백으로 금의환향 한다.일부에서는 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대비한 인사로 점치기도.공직자 등록재산 4억96만여원.부인 신남숙씨(45)와 1남2녀가 있다. ▲충남 서산(47) ▲동국대 정외과 ▲13대 의원(통일민주당) ▲민주산악회 중앙본부장 ▲문체부차관
  • 우명규 경북지사(신임 차관급 프로필)

    ◎기술직서 잔뼈굵은 지하철전문가 칠곡군 건설과장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뒤 31년만에 기술직으로는 드물게 도백으로 금의환향한 입지전적인 인물.지난 72년 서울시 전입 이후 지하철 1·2호선 건설실무자로,89년 초대 지하철건설본부장을 맡은 뒤엔 제2기 지하철건설을 무리없이 추진한 「자하철 전문가」.바쁜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공학·조경학석사와 공학박사학위를 받았고 기술사 자격증도 2개나 땄다.부인 배귀숙씨(52)와 1남2녀.등록재산 18억6천8백22만5천원. ▲경북 의성(58) ▲동아대 토목공학과 ▲서울시 하수국장 ▲〃지하철건설본부장 ▲〃부시장
  • 정재석 부총리겸 기획원장관(두 신임부총리 취임 일성)

    ◎농어촌 부축·간접자본 확충/“농업 자생력 갖추게 적극 지원/수출·경제성장 장애 총력 극복” 『당분간 농림수산부와 교통부의 제2차관이라는 기분으로 일하겠습니다』. 지난 79년 차관으로 경제기획원을 떠난지 14년만에 부총리로 금의환향한 정재석부총리는 21일 UR의 파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어촌문제와 수출과 경제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사회간접자본확충 문제 등 2개 분야에 가장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정부총리는 이날 개각발표 직후 『이미 국제화·개방화시대에 우리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상태여서 오히려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하고 『개방화시대를 맞아 어려움을 겪게 될 농어촌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정부총리는 개혁과 성장과의 조화에 대해 『사회기강이 바로 잡히지 못한다면 경제성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사회분위기 일신을 위해 훈훈하고 활기찬 경제분위기 조성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취임 소감은. ▲뜻밖이다.교통난 해결을 위해 돌파구만이라도 마련하려던 중에 갑자기 중책을 맡게 됐다.짐은 무거우나 꼭 그렇게 어려운 시기라고 보지는 않는다. 우리 경제가 어떤 체질개선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이제 말보다는 실천이 필요한 때다.조용한 가운데 우선순위에 따라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행동장관이 되겠다. ­이회창신임총리와 어떻게 호흡을 맞춰나갈 생각인가. ▲경제활동 전반에 걸쳐 훈훈한 기운이 돋아나도록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겠다.그러나 사정과 경제성장은 모순된다고 보지 않는다.사회기강이 바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성장은 사회마찰과 불균형만 심화시킨다.수레의 두바퀴와 같이 병행돼야 한다.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에 따른 쌀시장 개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들의 기대에는 어떻게 부응할 것인가. ▲개방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경제팀의 최우선 과제다.개방하에서농어촌이 어떻게 자생하도록 만드느냐가 관건이다.부총리로서 당분간은 농림수산부의 제2차관이라는 생각으로 일하겠다. ­60∼70년대 고도성장기의경제관료 경험을 90년대의 국제화시대와 어떻게 연결할 생각인가. ▲정부역할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지금까지는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으나 경제가 성장한 마당에서는 역할분담이 필요하다.수출을 비롯한 성장은 활기찬 민간기업이 주도하고 정부의 기능은 농어촌문제나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으로 한정돼야 한다.
  • 솔제니친,19년만에 “금의환향”/부인 나탈리야여사,“곧 귀국”밝혀

    ◎74년이후 미 산골마을 망명생활/“국민존경 바탕” 러 정국 변수될듯 강렬하고도 확고한 정치적 신념의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74)이 20년 가까운 미국망명생활을 끝내고 곧 러시아로 귀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러시아에 남아 있는 솔제니친의 부인 나탈리야여사는 31일 이타르·타스통신과의 회견에서 그의 귀국이 「몇달안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솔제니친의 망명이 당초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임은 주지의 사실.솔제니친은 지난 74년 옛 소련민중의 참상을 수용소라는 상징적 틀속에 압축시켜 고발한 소설 「수용소 군도」의 출간을 계기로 브레즈네프에 의해 강제추방됐었다.체제를 거부하고 억압을 거부했기 때문이다.그뒤로 그는 지금까지 미국의 버몬트주 산간벽지에서 망명생활을 해왔다. 그의 귀환은 옛 소련에서 공산당이 몰락하면서부터 예견됐었다.여기엔 보리스 옐친대통령의 권유도 한몫을 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옐친 자신에 대한 도덕적 지원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솔제니친은 망명중에도종종 러시아의 정치상황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으며 정치참여의사를 밝히기도 했다.국민투표를 앞둔 시점인 지난 4월에는 연방규모나 민족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러시아에는 미국보다 강력한 대통령제가 필요하다고 정치적 소신을 피력,옐친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귀국후 정쟁당사자 일방을 전적으로 지지할지는 미지수다.그는 마르크시즘과 함께 서구문명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사 그가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더라도 그의 뚜렷한 정치적 신념은 그가 러시아국민들로부터 받는 존경심을 바탕으로 러시아정정에 큰 변수로 작용할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 은행 자율인사 뿌리내렸다/시은 주총 마감… 임원인사 결산

    ◎외부입김 줄고 행장·주주 발언 세져/15명이 신임… 복수전무제 채택 눈길 은행들의 올해 정기주총이 사실상 끝나면서 임원인사가 마무리됐다. 정부의 인사자율화 방침과 정권교체기라는 점이 맞물려 관심을 집중시킨 이번 인사는 어느정도 자율화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와 함께 국제화에 따른 복수전무제의 부활,상근회장제의 도입,은행장및 주주들의 인사입김이 세졌다는특징을 보였다. 또 외부압력이 줄어들면서 서울출신들의 부상이 두드러졌으며 재무부·한은출신인사의 출가가 눈에 띄게 줄었다. 후배를 위해 일부임원이 용퇴,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으나 일각에서는 인사를 둘러싼 잡음과 함께 봐주기식 인사도 여전했다는 평가이다. 24일까지 끝난 11개시중은행의 주총결과 새로 임원이 됐거나 유임된 임원수는 34명으로 이중 15명이 신임이며 11명은 유임되고 8명은 승진했다.오는 27일까지의 지방은행 주총까지를 합치면 신임임원수는 63명에 이른다.은행장급 인사로는 중임임기를 마친 이상근 한미은행장이 상임고문으로 물러앉고 고교동창인 홍세표 외환은행전무에게 바통을 넘겨줘 우애를 과시했으며 윤순정 한일은행장은 재임중의 업적으로 무난히 연임됐으며 이창희 부산은행장도 자행출신으로 대과없이 지내유임됐다. 반면 중임임기를 마친 이상호 경기은행장은 주범국전무에게 자리를 물려줬으며 강병건 강원은행장은 26일 주총에서 퇴진,최종문 한은감사의 금의환향이확실시된다. 3년만에 부활된 복수전무제는 외환·서울신탁·한일은행이 업무의 효율화와 차기은행장의 가시화라는 긍정적 효과를감안,채택했다.외환은행은 지난해 전북·대구은행장을 배출한데 이어 올해 한미은행장을 배출하면서 무려12명에 달하는임원인사를 단행,인사적체를 해소하고 허준감사와 이장우상무를 전무로 승진시키는 인사잔치를 벌여 다른은행의 부러움을 샀다. 조흥과 한일은행의 경우 상층부의 고령화를 막고 차기행장의 인선구도를 고려해 은행장의 의중이 반영된 인사를 단행,우찬목상무와 이관우상무가 전무로 승진했다. 이번 은행인사에서 지난해 8명이던 경북·대구(TK)출신 신임임원이 3명으로 준대신 서울출신이5명으로강세를 보였다. 이번 주총결과 임원인사는 예년과 달리 외부의 간섭없이 은행장과 대주주의 의견이 대체로 반영됨으로써 앞으로 은행인사의 틀을 새로 제시했으며 금융산업개편및 국제화에 따른 은행의 실질적인 자율이 뿌리내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낳고있다.
  • YS 금의환향… 온동네 축제물결/대선후 첫 귀향·축하연 이모저모

    ◎“큰닭섬에 경사났네” 농악대 나와 환영/5백명 초청,가락동연수원서 자축연 김영삼 대통령당선자는 22일 「금의환향」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하루를 보냈다. 김당선자는 이날 대선후 처음으로 자신의 고향인 거제도와 마산을 방문,부친과 동네어른들에게 당선인사를 했다. 이에앞서 그는 이날상오 큰 꿈을 키웠던 모교인 서울대 입시현장에 들러 대학관계자와 학부모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교육대통령론 피력 ○…김당선자는 이날 수험장주변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 수험생들의 입실이 끝난 9시쯤 서울대에 도착,김종운총장으로부터 입시준비현황 등을 설명들은 뒤 『젊은 학생들이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예의 「교육대통령논」을 피력. 김당선자는 입시경쟁률과 도서관실태 등에 관심을 표명한 뒤 『이제 「민주대 반민주」구도는 종식되고 새로운 선거문화도 정착된 만큼 국민 모두가 신한국건설을 위해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 김총장은 『서울대 동문중에서 첫 직선대통령이 나와 참으로 기쁘다』고 축하인사. 이어 김당선자는학부모 5백여명이 기다리고 있는 학생회관 식당에 들러 『1년동안 자녀들과 함께 고3병을 앓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꼭 합격하길 바란다』고 위로해 학부모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기도. ○모친묘소서 눈시울 ○…김당선자는 이날 대선후 처음으로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고향인 경남 거제를 방문,선영에 성묘하고 귀경길에 마산에 있는 부친 김홍조옹을 찾아 인사. 김당선자는 이날 상오9시40분쯤 성남 서울공항을 출발,대통령 전용기인 공군2호기와 공군헬기를 차례로 이용,고향인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 도착,곧바로 모친과 조부모 백부 묘소를 찾아 헌화 참배. 특히 김당선자는 모친 박부연여사의 묘소에서 봉분잔디를 고르며 대통령당선통지서를 바치고 눈시울을 붉힌뒤 한동안 만감이 교차하는 듯 고향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묵상에 잠기기도. 또한 부인 손여사와 김당선자의 여동생들도 『어머니 오빠가 대통령이 돼서 지금 찾아왔습니다』며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오열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김당선자가 생가가 있는 대계마을에 이르자 주민들은 「큰 닭섬에 경사났네 김영삼대통령」「김영삼대통령당선 경축」「대도무문의 크신 뜻을 통일의 시대로」등 플래카드와 애드벌룬을 내걸었고 농악대를 동원,수기를 흔들고 「대통령 김영삼」을 연호하는가 하면 「나의 살던 고향」을 연창하는등 온통 축제분위기. 주민들의 환호속에 생가에 도착한 김후보는 지역유지및 주민대표 20여명과 오찬을 함께 하며 주민들의 숙원사업및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거제발전에 관심을 표명.이어 김당선자는 귀경길에 마산 회성동으로 부친 김홍조옹을 찾아 대통령당선통지서를 내보이며 『아버지 이것을 타기 위해 40년이 걸렸습니다』고 인사한뒤 부인 손여사와 나란히 큰절. 마산 부친댁 인근주민 3천여명이 몰려나와 꽹가리와 북을 치며 김당선자의 마산방문을 열렬히 환호하자 대문 입구로 나와 즉석 연설. ○연예인 대거 참석 ○…김당선자는 이날 하오 김종필대표 정원식선대위원장을 비롯한 소속의원·당직자·선대위관계자등 5백여명을 「정권창출의 산실」이 된 가락동 중앙정치교육원으로 초청,자축연을 베풀고 당선사례. 김당선자는 인사말을 통해 『이제 우리 앞에는 국민 모두를 화합을 통해 하나로 묶고 우리 경제를 되살리는 과제가 놓여 있다』면서 『정권창출의 주역인 우리모두가 고통을 분담하면서 신한국건설을 위해 함께 뛰자』고 당부. 특히 이날 행사에는 김후보의 대선유세에서 큰 역할을 했던 「큰 나래회」소속 연예인들이 대거 참석.
  • “도봉의 긍지 높인 조윤정만세”/주민들,올림픽2관왕 열렬히 환영

    ◎농악대와 거리행진… 격려인파/“산동네사람에 자신감 심어줬다” 18일 하오4시 서울 도봉구 미아7동 동북시장앞. 신명나는 꽹과리와 징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상인들이 일손을 멈추고 한데 모여 덩실덩실 춤을 춘다. 코흘리개 어린 꼬마들에서 부터 칠순이 넘은 할아버지들까지 손을 맞잡고 「윤정이 만세」「산동네 만세」를 외친다. 도봉구 미아7동 주민들이 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양궁에서 두개의 금메달 따내고 금의환향한 조윤정선수를 맞아 환영회를 마련한 것. 조선수의 손을 꼬옥 잡고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잘했다.잘했다』를 연발하며 열심히 등을 두드려 주는 할아버지.좁은 틈을 헤집고 노트를 들이밀며 사인공세를 벌이는 어린학생들. 조선수는 확실히 미아7동의 「개선영웅」이었다. 동장 윤장희씨(57)는 『조선수는 우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줬다』면서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할 일을 다 해낸 윤정이는 바로 우리 어려운 사람들이 서고자 하는 모습이기도 하다』고 감격해 했다.13년무명의 설움을 딛고 마침내 세계정상에 우뚝 선 모습으로 돌아온 딸의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 박순례씨(53)는 『윤정이는 이제 나만의 딸이 아닌 우리동네의 딸』이라고 되뇌이며 눈물을 흘렸다. 조선수는 『대표팀의 맏언니이면서도 항상 후배들에 밀려 남모르게 흐느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울지 않을 것이며 오늘 우리 마을에 울려 퍼진 함성을 영원히 간직하고 더욱 꿋꿋하게 살겠다』고 말했다. 올해는 분명 조선수에게 있어 생애 최고의 해이기도 하지만 미아7동 주민들에게도 결코 잊지 못할 한해가 됐다.형편이 어려운 이곳 주민들에게 『조선수를 통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과 희망이 심어졌기 때문이다.
  • 재일교포가 3천억 장학재단/나카지마씨 어제 “금의환향”(일요화제)

    ◎노벨상 2배… “여생 불우학생 도울터”/빈농서 출생… 19세에 도일 자수성가 일본 제일의 부자이며 세계30대 부호중 한 사람인 귀화 재일교포 나카지마 겐기치씨(71·중도건길·사진))가 충북대 총장의 초청으로 9일 하오 대한항공편으로 우리나라에 왔다. 본명이 정동필인 나카지마씨는 이날 공항에서 『일본최대의 장학재단인 평화중도재단을 설립,한국·일본은 물론 다른 나라의 가난한 학생들을 도울 것』이라면서 『특히 고국의 유학생들이 많은 혜택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나카지마씨는 89년도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지가 발표한 세계30대부호명단에 처음 이름이 실려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일본최대의 빠찡꼬기계제작회사인 「평화」의 창업자로 연간매출액이 7천5백억엔이나 되며 경상이익은 2천5백억엔.동산과 부동산을 합쳐 재산이 2조엔이나 된다. 그는 『청주근교에 있는 선친의 묘에 성묘하고 강연도 하기위해 왔다』며 일본에서 타던 롤스로이스를 미리 배편으로 운반,김포공항에 도착시킬만큼 재력을 과시했다. 1922년 충북청주근교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나카지마씨는 해방되기전인 19살때 일본에 건너가 부두노동을 하며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2차대전뒤에는 빠찡꼬업에 뛰어들어 돈방석에 앉았다. 『저자신이 가난한 농촌출신으로 맨손으로 일본에 건너가 뼈가 부서지는 노동을 해가며 공부를 하며 부를 축적한 사람이니 고국의 뜻있는 젊은이들을 돕고 싶습니다』 나카지마장학재단의 기금은 5백억엔(한화 약3천억원)으로 일본최대이며 노벨평화재단기금의 거의 두배에 이르고 있다. 나카지마씨는 『일본으로 공부하러오는 외국대학생과 대학원생들에게 월10만엔에서 12만엔씩,외국으로 유학하는 일본학생들에게는 15만엔에서 20만엔씩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한명환 대구시장/집념 강하고 강직/차관급 11명의 얼굴

    60년 2월 경북 예천군청에서 주사로 공무원생활을 시작,32년만에 대구시정의 책임자로 금의환향했다. 성품이 부드러우나 집념이 강하고 강직해 내무부 내에서 「미스터 크리너」라는 별명을 듣는 전형적인 내유외강형.대인관계도 원만해 지방관서에 있을때 친분을 맺은 인사들과 계속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고 부인 조귀영씨(52)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 강상원 전북지사/일처리 빈틈없어/차관급 11명의 얼굴

    약 30년간 내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내무관료.지난해 가을 차관보급인 총무처 소청심사위원으로 발탁됐다가 이번에 금의환향.대인관계가 원만하며 폭넓은 인간관계가 장점.한번 일을 맡으면 끝까지 빈틈없이 처리한다는 평을 듣는다. 미샌디에이고대에서 명예인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취미는 등산.부인 홍순덕씨(58)와의 사이에 2남2녀.
  • 이해봉 체육차관/이론전개 뛰어나/차관급 11명의 얼굴

    온건한 성품에 합리적인 논리를 전개하는 지방행정통.22년의 공직생활 대부분을 경북도와 내무부에서 보냈으며 특히 본부근무시절에는 지방행정국의 주요자리를 두루 거쳤다. 90년 12월 대구시장으로 금의환향,지하철건설을 본격추진하는 등 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부인 이선희씨(43·서울민사지법판사)와의 사이에 2남.
  • 도시행정에 조예깊은 노력파/이원종 충북지사(신임차관급 프로필)

    지난 63년 5급을(지금의 9급)공무원으로 시작한지 3년만에 행정고시에 합격해 새출발한 노력파.고향 떠난지 32년만에 도백으로 금의환향. 깨끗한 매너와 특유의 친화력으로 주변에서는 「신사」로 통한다.언행이 부드럽고 부하직원의 말을 경청하며 업무처리가 매끄럽다는 평. 지난 75년부터 청와대 행정비서관으로 부임한 91년2월까지 서울시에서만 재직,내무·교통·보건사회·주택국장 등의 요직과 용산·성동·강동·성북·동대문구청장 등을 두루 거친 정통 내무관료. 도시행정에 조예가 깊어 도시화하는 농촌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위의 기대. 취미는 장기,부인 김행자씨(51)와 4녀.
  • “성공은 앉아서 따먹는 과일 아니죠”(이사람)

    ◎“작업복 경영자” 파란들가구 신태호회장/종업원 6백명 기업에 「회장실」도 없어/연매출 3백40억… 빚·노사분규 “전무”/“「3D」니… 과소비니…” 일않고 노는 풍조 안타까워 시베리아 벌목꾼을 연상케 하는 거친손,투박한 말씨,그리고 소박한 표정.누구나 주식회사 파란들 신태호회장(50)을 처음 대면하는 사람들은 신회장이 어느 작업현장의 책임자 정도로 생각하기 일쑤다. 항상 작업복 차림,단지 작업화대신 구두를 신었다는 점 이외에 다른 근로자들과 다를바 없다. 신회장만큼 바쁜 사람도 그리 흔치 않다. 집무실에서 결제서류나 뒤적이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를 만나려면 공장이나 창고로 가야 한다. 임원회의나 결제를 할때외에는 종업원들과 함께 일을 한다. 인천 도화동에 자리잡은 파란들 본사에는 「회장실」이라고 이름붙은 방조차 없다. ○철도청서 사회 첫발 신회장의 경영스타일이 이러하기 때문에 노사간의 마찰이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 수년동안 노사문제로 홍역을 치른 여타 기업과는 달리 파란들은 노사가 한마음이 돼생산성을 제고시켰다. 이 결과 사업이 급속히 성장,기업으로서의 틀을 갖췄다.자산규모 88억원,종업원 6백여명,1년 매출액은 3백40억원.가구업계에서는 열손가락안에 드는 규모이다. 신회장이 아직도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것은 일손이 달려서도,종업원들을 독려하기 위해서도 아니다.밤을 낮삼아 몸이 부서져라 일하던 참으로 어려웠던 지난날을 잊지않기 위해서다. 고향은 충북 진천군 덕산면 산수리.해방전후 시골의 살림살이가 그랬듯이 입에 풀칠하기 빠듯한 형편이었다. 2남3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덕분에 고향에서 중학교(진천중)를 졸업한뒤 청주로 유학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고향을 떠나보니 고생뿐이었다.청주공고 전기과 재학시절 고향에서 아버지가 부쳐주는 것은 쌀이 고작.방세와 학비등 나머지는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아직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시행전이라 학생신분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힘들었다. 어렵사리 고교를 졸업하고 59년 철도청 용산공작창 견습공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하루종일 기계가뿜어내는 굉음과 기름에 절어 지내야만 했다.서울에 가서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로 고향에 내려가지 않겠다던 다짐도 그때 뿐 고향에 가서 아버지 농사나 거들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곤 했다. 금의환향은 못할망정 낙향할 수는 없었다.배움을 계속하면 어떤 길이 열릴 거라고 판단,서울문리사범대(현 명지대) 야간부에 입학했다.토·일요일에는 봉급만으로 부족한 학비를 벌기 위해 과외선생을 했다. 65년 군복무를 마치고 서울 퇴계로에 있던 천향전기에 취직했다.이 회사는 선풍기를 만드는 소기업.말이 기업이지 가내공업을 겨우 면한 정도였다.성실성을 인정받아 곧 생산책임자가 됐고 얼마후 동신화학이라는 비교적 큰 회사에 스카웃됐다.「동」자표 고무신으로 정평이 알려졌던 동신화학은 타이어에 이어 선풍기와 냉장고등 여름철 가전제품에 손을 대려던 차였다. 동신화학시절은 오늘날 그가 기업가로 자리를 잡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냉장고용 철제선반제작을 맡았던 그는 이때부터 철제생활용 가구를 만들겠다고 마음먹는다. ○철제가구 주 생산품 동신화학은 재벌들의 가전업계 진출로 몇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졸지에 직장을 잃었지만 자기 사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됐다. 시흥 단칸셋방 옆 빈터에서 직공 한 명을 두고 냉장고용 선반을 만들기 시작했다.밑천은 아버지가 보내준 5천원이 전부.월세보증금을 내고나니 남는 것이 없었다.그야말로 맨주먹이었다. 이 무렵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해냈다.냉장고용 선반 도장(도장)에 들어가는 폴리에틸렌을 수지(수지)상태에서 분말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폴리에틸렌분말가격을 수입가의 5분의 1 수준으로 대폭 낮추었다. 그의 제품은 다른 회사제품에 견주어 월등한 경쟁력을 갖게 됐고 그의 신기술을 빼내 가려는 산업스파이들도 생겨났다.노력과 창의성만 있으면 얼마든지 돈을 벌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한편으로는 「돈버는 게 이렇게 쉬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한 사업은 69년12월 영흥산업사를 세우게끔 발전했고 80년 3월 (주)영흥산업으로 본격적인 기업의 틀을 갖추기에 이르렀다.87년 7월에는 파란들이탄생됐다. 현재 파란들은 영흥산업과 영흥물산을 계열회사로 거느린 큰 업체로 성장했다.새장과 자전거용 바구니,화분대,빵 진열대 등 철제생활용품에서 목재가구,그리고 주방가구 등 품목도 다양해졌다. 아직 내수주문이 많아 수출에는 신경을 쓰지 않은탓에 올해 수출은 1백만달러에 그칠 전망이지만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90년 3월 LA에 「파란들아메리카」라는 현지법인도 세웠다. ○카누협회장 3년째 『운도 많이 따랐습니다.하지만 운이란것도 따지고 보면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따르는 것 아닙니까』 웬만큼 자리를 잡은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할수 있는 이 말도 신회장으로부터 들으니 상당한 무게가 느껴진다. 지금도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3D현상」은 그와는 관계가 없다.서울 논현동 전시장에서 직원들과 같이 가구를 나르는가 하면 인천공장에서는 가구포장을 하기도 한다.요즘 요란스럽게 제기된 「30분 일 더하기 운동」은 그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파란들은 빚이 없는 회사다.사채는 물론 은행빚도 없다.한창 사업이 번창할 즈음 남에게 돈을 빌려 사업을 확장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맨주먹으로 시작했으니 끝까지 내 힘으로 해보자며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89년초 비인기종목이라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던 카누연맹회장에 취임했다.끝을 보지 않고는 못배기는 성격때문에 한국카누는 3년도 채 안돼 아시아정상을 넘보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지난해 북경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유일한 3관왕을 배출,투자한 만큼 상도 많이 받았다.앞으로 카누가 국민 모두가 즐기는 인기레저스포츠로 뿌리내릴 때까지 손을 떼지 않을 계획이다. ○“현장서 땀 흘려야” 『흔히 요즘 세태를 일컬어 「돈이 돈 버는 세상」이라고 하죠.자수성가라는 말은 케케묵은 옛날 이야기라고 합니다.정상적인 방법으로 열심히 땀흘려 잘살아 보겠다는 마음가짐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80년대 경제성장에 안주하기 시작한 우리국민들은 90년대에 접어들자 허리띠를 풀어헤치고 자기 목소리만 높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풍조로 국가경제에 균열이 생기자 각계 각층에서 자성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이런 현실 때문에은행문턱을 멀리한채 종업원들과 함께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근검절약으로 실천하는 신회장의 자세가 더욱 돋보이는 것일 게다.
  • 평화가 드리우는 캄보디아/시아누크 “금의환향” 이후

    ◎유엔 감시아래 「후속조치」 가시화/경제복원·35만 난민 송환이 최대 과제로 16년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는 캄보디아 최고민족평의회(SNC)의장인 노로돔 시아누크공의 금의환향과 함께 캄보디아 내전종식과 평화유지를 위한 조치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14일 귀국한 시아누크공은 캄보디아분쟁 당사자인 4개 정파를 모두 포함하는 SNC의장이란 공식직함을 뛰어넘어 그의 실제권위는 평화와 과거 캄보디아왕정의 상징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내전을 치렀던 현프놈펜 정권의 훈센총리 내외가 저항세력의 지주였던 그를 북경까지 날아가 모시고 돌아오는 배려라든지 약 40만명의 인파가 그의 귀국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공항에서 왕궁에 이르는 10㎞구간을 가득 메운데서도 엿볼 수 있다. 이와함께 비공산계 크메르인민민족해방전선(KPNLF)의 대표단이 12일 프놈펜으로 귀환했으며 장 미셸 로리동장군이 이끄는 유엔캄보디아 평화감시선발대(UNAMIC)의 프랑스군병력이 프놈펜에 차례로 도착하는등 지난달 23일 파리에서 체결된 캄보디아 평화협정에 따른 후속조치들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평화감시선발대는 이달말까지 크메르 루주군,두 파벌의 비공산군,정부군 사령부에 각각 연락장교 5명씩의 유엔감시군을 파견할 계획이다.군인과 민간인 2백70명으로 구성된 선발대는 유엔캄보디아 과도행정기구(UNTAC)가 올 연말 프놈펜에 설치되면 UNTAC에 합류하게 된다.UNTAC은 우선 모든 외국원조의 차단,내전에 참가하고 있는 4파군 조직의 70% 감축,나머지 30% 비무장병력의 활동금지등 평화협정 준수를 확인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지난달 파리평화협정 조인후 3주가 지난 현재 캄보디아 전역에서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발생빈도가 훨씬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캄보디아 국방부측이 밝혔다. 시아누크공의 캄보디아 귀환은 새로운 평화시대의 장을 열었으나 태국국경지대에 살고 있는 35만명의 난민송환과 전국도처에 매설돼 있는 지뢰제거문제는 평화정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론상으로만 따져도 이들 난민송환에 6개월이 걸리며 1억9백만달러의 경비가 소요되나 유엔의 지원자금은 9백79만달러에 불과하다. 또한 전국 곳곳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지뢰가 매설돼 있다.최근 들어서만도 한달에 3백명꼴로 지뢰에 의해 손발이 잘려나가는 불구자가 발생하고 있다. 여하튼 내전종식 후의 캄보디아 지도자로 부각되고 있는 시아누크공이 황폐화된 국가경제와 동족간의 살상으로 처참하게 분열된 국민감정을 어떻게 치유해 갈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진념 기획원차관/신임 장차관급 10명의 프로필

    ◎차분한 논리의 정통 「EPB맨」 빈틈없는 논리를 차분한 대화로 풀어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이 탁월하며 일솜씨도 매끄럽다. 해운항만청장 이전까지 26년 동안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EPB맨」으로 이번에 금의환향한 셈. 작은 체구에도 일을 당차게 추진진하고 총명해 똘똘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성신여대 교수인 작곡가 서인정씨와의 사이에 2남. ▲전북 부안(51세) ▲서울대 상대 졸업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 공정거래실장·차관보 ▲재무부차관 ▲항만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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