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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도둑들’에 “진짜 화난다” 직격탄 날린 김기덕 감독

    영화 ‘도둑들’에 “진짜 화난다” 직격탄 날린 김기덕 감독

    “상을 받는 순간 청계천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구리가 든 박스를 들고 다니던 열다섯 살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제가 받은 상이기도 하지만, 1990년대부터 꾸준히 국제 무대에 소개돼 좋은 성과를 올린 한국 영화계에 준 상이라고 생각한다.”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타고 금의환향한 ‘영화계의 이단아’ 김기덕(52) 감독은 수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11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 감독은 “현지에서 영화가 상영된 이후 많은 분들이 황금사자상 수상이 유력하다고 말씀해 주셔서 기분이 붕 뜨고 부담이 컸다.”면서 “이렇게 올라갔다가 추락하면 정말 아프겠다는 생각에 수상 하루 전날까지 힘들었다. 기다렸더니 현실이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실은 각본상까지 내정됐었다고 털어놓은 김 감독은 “이 영화는 극단적 자본주의에 관한 영화이며 가족, 복수 등 다양한 주제를 깔고 있다.”면서 “돈 때문에 인간과 가족이 파괴되고 돈 중심의 사회가 되는 것이 안타깝고, 그런 비극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결론”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감독은 화제를 모은 고가의 의상에 대해 “윗옷이 150만원이고 아래가 60만원짜리다. 방송 녹화를 가는데 입을 만한 옷이 없어 인사동을 헤매다가 옷가게에 들어갔는데, 여자 옷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가격을 알고 놀랐지만, 더 고를 시간도 없고 앞으로 해외 영화제에 1년간 입고 다닐 것을 생각해서 그냥 샀다.”고 말했다. 한편 김 감독은 이 자리에서 대형 멀티플렉스의 폐해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도둑들’ 같은 영화는 좌석 점유율이 15% 미만인데도 기록을 위해 1000회 이상 상영하지만, ‘피에타’는 45%인데 400~500회차에 불과하다.”면서 “돈이 다가 아니지 않나. 편법과 독점, 마케팅에서 불리한 게임에서는 내가 아무리 착해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여우주연상 수상이 불발된 조민수는 “현지에서는 열기가 대단했는데 한국에서는 상영관이 없어 못 봤다는 분들이 있더라. 유럽에서 상까지 받아 왔는데, 많은 분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김기덕, 영화 ‘도둑들’에 “진짜 화난다” 직격탄

    김기덕, 영화 ‘도둑들’에 “진짜 화난다” 직격탄

    “상을 받는 순간 청계천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구리가 든 박스를 들고 다니던 열다섯 살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제가 받은 상이기도 하지만, 1990년대부터 꾸준히 국제 무대에 소개돼 좋은 성과를 올린 한국 영화계에 준 상이라고 생각한다.”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타고 금의환향한 ‘영화계의 이단아’ 김기덕(52) 감독은 수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11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 감독은 “현지에서 영화가 상영된 이후 많은 분들이 황금사자상 수상이 유력하다고 말씀해 주셔서 기분이 붕 뜨고 부담이 컸다.”면서 “이렇게 올라갔다가 추락하면 정말 아프겠다는 생각에 수상 하루 전날까지 힘들었다. 기다렸더니 현실이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실은 각본상까지 내정됐었다고 털어놓은 김 감독은 “이 영화는 극단적 자본주의에 관한 영화이며 가족, 복수 등 다양한 주제를 깔고 있다.”면서 “돈 때문에 인간과 가족이 파괴되고 돈 중심의 사회가 되는 것이 안타깝고, 그런 비극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결론”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감독은 화제를 모은 고가의 의상에 대해 “윗옷이 150만원이고 아래가 60만원짜리다. 방송 녹화를 가는데 입을 만한 옷이 없어 인사동을 헤매다가 옷가게에 들어갔는데, 여자 옷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가격을 알고 놀랐지만, 더 고를 시간도 없고 앞으로 해외 영화제에 1년간 입고 다닐 것을 생각해서 그냥 샀다.”고 말했다. 한편 김 감독은 이 자리에서 대형 멀티플렉스의 폐해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도둑들’ 같은 영화는 좌석 점유율이 15% 미만인데도 기록을 위해 1000회 이상 상영하지만, ‘피에타’는 45%인데 400~500회차에 불과하다.”면서 “돈이 다가 아니지 않나. 편법과 독점, 마케팅에서 불리한 게임에서는 내가 아무리 착해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여우주연상 수상이 불발된 조민수는 “현지에서는 열기가 대단했는데 한국에서는 상영관이 없어 못 봤다는 분들이 있더라. 유럽에서 상까지 받아 왔는데, 많은 분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느닷없이 이메일은 왜, 축구협회 ‘똥볼’ 찼다

    런던올림픽 종합 5위의 성적을 거두고 금의환향한 대한민국 선수단이 14일 인천공항 입국장을 빠져 나온 뒤 화환을 목에 걸고 환영나온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밀레니엄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선수단은 서울 여의도로 이동, 환영행사에 참가했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스포츠외교에서는 국내연맹과 국제연맹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감독들에게 편파 판정과 오심에 대처하는 교육을 실시했는데 선수들에게는 제대로 전달 안 된 게 아쉽다. 다음 대회부터는 불미스러운 일이 안 생기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양궁 2관왕에 오른 기보배(광주광역시청)는 “‘운 좋게 금메달을 땄다.’는 악성 댓글을 보고 너무 속상했다.”며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모기에 뜯기며 고생하며 일군 금메달”이라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대한축구협회가 ‘독도 세리머니’를 해명하는 이메일을 일본축구협회(JFA)에 보냈다가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지난 13일 일본 매체들은 한국 측이 이메일을 보내 독도 세리머니에 대해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다이니 구니야 JFA 회장이 후쿠시마시에서 열린 여자축구 경기를 지켜본 뒤 기자들과 만나 “조중연 축구협회장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는데 ‘미안하다.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하겠다’는 내용이었다.”고 공개한 것을 일제히 크게 보도한 것이다. 파문이 커지자 축구협회는 “영문으로 된 이메일에 사과(apology)란 표현은 들어있지 않다.”며 “문서에 포함된 ‘(경기 도중) 일어난 사건에 대해 유감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to cordially convey my regrets and words for the incident)는 표현은 통상의 외교적 표현으로 이를 확대 해석한 일부 외신 보도는 명백한 오보”라고 해명했다. 한 관계자는 “귀국길에 JFA와 전화 통화를 시도했는데 잘 안 된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귀국 후 협회가 원만한 합의를 도출하려고 편지를 보낸 것이다. 잘 도착했느냐로 시작되는 통상적인 인사말 아래 세리머니가 의도적이 아니라 우발적인 것이었음을 강조한 것인데 JFA 회장이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축구협회는 세리머니의 문제점을 처음 지적한 것이 일본이기에 두 나라가 합의할 경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 측은 자신들이 관여할 바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소명 절차도 축구협회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축구연맹(FIFA) 사이에 진행돼야 할 내용이다. 이를 간과하고 전달한 유감 표명이 국제사회에는 ‘공식 사과’로 비쳐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JFA는 14일 오후 늦게 일본축구협회 다이니 회장 명의의 답장을 협회에 보내 왔다. 이 회신에는 “런던에서 한국 축구가 동메달을 획득한 것을 축하한다.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 직후 발생했던 문제는 불행한 일이었다.”면서 두 나라의 축구협회가 오랜 기간 좋은 관계를 지속한 만큼 앞으로도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바란다는 내용을 담았다. 인터넷에선 박종우 구하기에 나선 축구협회가 뒤로는 일본에 유감부터 표명했다는 점에 분개하는 내용의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오늘의 눈] 박용성, 소신과 비겁함의 사이/박성국 정책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박용성, 소신과 비겁함의 사이/박성국 정책뉴스부 기자

    “도대체 어느 나라 체육회인지 모르겠다.” 국내 누리꾼들이 대한체육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체육회를 향한 날 선 비난은 ‘감정적이고 우매한’ 누리꾼만의 것이 아니다. 체육회가 오죽 한심했으면 김운용(81)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까지 비난 행렬에 동참했다고 한다. 김 전 부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런던올림픽을 통해 드러난 체육회의 무능함에 대해 “체육회장이 어느 나라 체육회장이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체육회를 향한 비난은 당연히 수장인 박용성(72) 회장을 겨냥한 것이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금메달 13개와 종합 5위란 ‘원정 대회’ 사상 최고의 성적(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종합 4위)을 거두고 14일 금의환향하지만 체육계의 ‘어른’인 박 회장에 대한 믿음은 땅 밑에 처박힐 위기에 처해 있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박용성’을 검색하면 ‘사퇴’와 ‘친일파’란 단어가 자동으로 떠오르는 것만 봐도 그를 향한 스포츠팬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박 회장으로선 억울한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 11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선수들의 밤’ 행사 이후 작심한 듯 품었던 말을 뱉어냈을 것이다. ‘신아람 오심’ 사건에 대한 책임은 대한펜싱협회로 떠넘겼다. 펜싱협회가 경기 규정을 몰라 항의할 기회를 날려 버렸다는 것이다. 3, 4위전 출전을 거부하는 신아람에게 대회 출전을 종용했다는 사실은 뒤늦게 인정했다. 체육회는 애초 이 사실이 알려지자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해 왔다. 스물여섯 젊은 선수가 지난 4년 흘린 땀의 결실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도둑맞았는데도 체육회는 선수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노력보다 ‘회장님’과 조직의 안위만 챙기기에 급급한 인상이었다. 런던올림픽은 끝났지만 아직도 국내 팬들의 관심은 그곳에 머물러 있다. 축구대표팀의 박종우가 연루된 ‘독도 세리머니’ 논란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체육회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박 회장이 “사전에 정치적인 몸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을 몇 차례 시켰는데 선수가 흥분해 저지른 일”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선수 개인 탓으로 돌렸다. IOC와 국제축구연맹(FIFA)이 잔뜩 주시하는 가운데 굳이 이 시점에 이런 말을 꼭 해야만 했을까. 귀국하는 박 회장에게 묻고 싶다. psk@seoul.co.kr
  • 사격대표팀 첫 금의환향

    사격대표팀 첫 금의환향

    진종오(왼쪽부터·KT)가 8일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변경수 총감독, 김장미(부산시청)와 함께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격대표팀은 한국선수단 가운데 맨 먼저 이날 귀국했다.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사격대표팀 첫 금의환향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등 역대 최고 성적과 함께 첫 종합우승의 쾌거를 이룬 사격 대표팀이 7일(현지시간) 귀국길에 올랐다. 고의 패배 혐의로 실격, 지난 4일 불명예 귀국한 여자 배드민턴 대표 4명을 제외하면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 가운데 메달리스트가 포함된 첫 귀국이다. 또 애초 폐막 이후인 13일 일제히 함께 귀국하기로 했던 메달리스트들은 10일 자율적으로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다. ●총기 반출기간 때문에 먼저 귀국 사격 대표팀이 맨 먼저 귀국길에 오른 이유는 총기 반출 기간 때문이다. 대한사격연맹 관계자는 “선수들 총기를 일괄 관리하고 있는 대회 조직위원회가 우리 선수단의 총을 이미 한국에 보냈다.”며 “총기 관리 규정상 선수들이 반드시 한국에서 총기를 수령해야 하고 해외 반출 기간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예정대로 귀국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한체육회의 방침 변경에 따라 7일 귀국할 예정이었던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23·SK텔레콤)은 일정을 늦춰 10일 오후 런던을 떠난다. 박태환은 메달리스트는 모두 함께 귀국하도록 하자는 체육회의 당초 방침에도 “여기에서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 도망이라도 쳐서 무조건 한국으로 가겠다.”며 반발했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은 체육회가 경기단체 방침과 선수 개인의 의사에 따라 10일부터 귀국길에 오를 수 있도록 한발 물러났고 박태환도 체육회의 남은 일정을 따르기로 한 것. ●박태환, 내일 세인트 폴 성당 참배 이에 따라 박태환을 비롯한 메달리스트들은 선수촌 등에 머무르며 경기에 나서는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고, 9일에는 6·25 참전 용사비가 있는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을 찾아 참배할 계획이다. 앞서 대한체육회는 귀국 환영 행사 참가 등을 이유로 메달리스트들의 귀국 일정을 제한했고,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는 박용성 회장과 체육회를 비난하는 글이 쏟아졌다. 체육회는 4년 전 베이징올림픽 때도 같은 이유로 메달리스트의 귀국을 막아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커버스토리] ‘男부러운’ 금메달리스트

    [커버스토리] ‘男부러운’ 금메달리스트

    한국 여성 메달리스트는 4년 전 베이징대회까지 모두 69명(금 26, 은 22, 동메달 21개)이 배출됐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서향순이 첫 금메달을 목에 건 지 28년이 흘렀다. 그 뒤 우리 여성 스포츠는 양적, 질적 성장을 거듭하며 메달 수를 늘려 왔다. 1992년에는 역대 최고인 6개의 금메달을 수확하며 남자들(6개)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금의환향한 여성 금메달리스트들. 하지만 이후 행보는 남자들보다 조용한 것이 현실이다. 은퇴 뒤에도 꾸준히 대외활동을 하는 여자 금메달리스트는 베이징올림픽 여자탁구 감독이었던 현정화(43) 대한탁구협회 전무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주인공으로 주목받았던 임오경 서울시청 감독 정도. 지난 4·11 총선에 출마해 금배지를 단 문대성(36·무소속) 의원이나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끊임없이 존재감을 알려온 유남규(44) 런던올림픽 남자대표 감독, 심권호(40) LH스포츠단 코치 등이 메달리스트 경력을 활용하는 것과 상당히 다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탁구 여왕’으로 불렸던 양영자(43)는 기독교 선교사 활동을 하다 최근 청소년대표 후보선수단 감독에 선임돼 20여년 만에 탁구계로 돌아왔다. 양궁 역사에서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김수녕(41)도 가사와 육아를 이유로 활을 놓았다가 지난해에야 대한양궁협회 이사를 맡았다. 이들처럼 체육계로 돌아오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많다. 정치권에 일회용으로 흡수됐다가 버림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은퇴한 여성 국가대표 모임인 한국여성스포츠회 관계자는 여자 금메달리스트 상당수가 사회체육 등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어 존재감이 엷다고 전했다. 뒤집어 말하면 ‘경력 단절’이란 얘기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분데스리가 5골 구자철 “독일서 100점 만점…오늘 다시 0점 시작”

    분데스리가 5골 구자철 “독일서 100점 만점…오늘 다시 0점 시작”

    ‘어린왕자’ 구자철(23)이 금의환향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아우크스부르크에 임대된 뒤 15경기에서 팀 내 최다인 5골1도움을 기록,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냈다. 8일 새벽 귀국해 오후 서울 서초동 아디다스쇼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시즌을 마친 소감은. -볼프스부르크 벤치에 있는 시간을 통해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시즌을 끝내고 웃으면서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다짐으로 버텼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기회를 살릴 수 있어 감사하다. →100점 만점에 점수를 매기면. -5일 경기가 끝난 뒤 스스로 100점을 줬다. 독일에 있으면서 ‘한 골도 못 넣고 한국에 가는 건 아닐까.’ 두려웠는데 그걸 깨고 적응을 마쳤기 때문이다. 오늘 0점으로 돌아와 처음부터 시작하겠다. →새 시즌엔 어떤 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올 시즌 분데스리가에 구자철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렸다. 그 자신감은 엄청난 힘이다. 이제 막 시즌이 끝나 아직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더 큰 꿈과 목표를 갖고 있는 건 확실하다. K리그에서의 공격포인트(2010시즌 5골12도움, 통산 8골19도움)를 분데스리가에서도 올리겠다는 것이다. 발판은 마련했다. 실수하더라도 발전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다. →두 팀 사이에 임대와 복귀 얘기가 있었나. -아우크스부르크에선 임대 연장이나 완전 이적을 원한다. 볼프스부르크는 새 시즌에 같이 가자는 입장이다.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다른 팀의 영입 제의도 있어 시간이 더 필요하다 →런던올림픽을 앞둔 각오는. -중학교 3학년 때 유소년대표팀에 뽑혔는데 다른 선수보다 특별한 게 없다고 느껴 위축됐다. 그때 꿈꿨던 게 청소년대표였고, 2009년 이집트 U-20월드컵을 치렀다. 그 다음 목표가 올림픽인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꿈과 정신을 쏟아붓고 싶다. 펠릭스 마가트(볼프스부르크) 감독이 (올림픽 차출에) 반대하는 건 사실이지만, 내가 얼마나 올림픽을 원하는지 전했으니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올림픽에서 멕시코, 스위스, 가봉과 한 조가 됐다. -생중계로 조추첨을 봤다. U-20월드컵 때 그랬듯 여러 팀들과 겨뤄 8강에 올랐을 때의 기분을 또 느끼고 싶다. 큰 무대에서 여러 선수와 경쟁하다 보니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떤 경기든 내 기량을 완전히 보일 수 있다. 모든 선수가 그렇게 준비한다면 (역대 최고인) 8강 이상도 가능하다. →국가대표팀도 병행할 텐데 각오는. -A매치를 20경기 이상 뛰면서 나름대로 성숙해졌다. (박)지성이형, (이)영표형이 은퇴하며 책임감을 물려받았다. 난 원래 어시스트를 하는 선수였는데 2011아시안컵을 통해 득점이 많아졌다. 어느 순간 어시스트만큼 골 욕심도 커졌다. 30일 스페인 평가전이나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당연히 골을 넣고 싶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사연따라 연예반세기(演藝半世紀)…그시절 그노래(9)

    사연따라 연예반세기(演藝半世紀)…그시절 그노래(9)

     ①능라적삼 옷깃을 여미고 여미면서/구슬같은 눈물방울 소매를 적실 때/장부에 철석간장이 녹고 또 녹아도/한양가는 청노새 발걸음이 바쁘다.  ②금의환향 하실 날 바라고 바라면서/송죽매란 사군자로 수놓아 드릴 때/낭자에 일편단심 참고 또 참아도/해 떨어진 석양길에 솔바람이 차고나  <김능인(金陵人) 작사·문호월(文湖月) 작곡『불사조(不死鳥)』  30년대로 접어들면서 가요계가 얻은 가장 큰 수확으로 이난영(李蘭影)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64년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여년간「가요계의 여왕(女王)」이었고 바로「가요계의 여왕(女王)」이란 용어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불사조(不死鳥)』는 이난영(李蘭影)의「데뷔」곡이다. 31년도에 만들어져 이난영(李蘭影)이 OK「레코드」에서 취입했다.  가사 내용은 남녀간의 애틋한 이별을 그린 것 같지만 제목은 거창하게도『불사조(不死鳥)』.  이난영(李蘭影)은 16살에「태양(太陽)극단」의 막간 가수로「데뷔」했다.「토월회(土月會)」의 후신인「태양(太陽)극단」이 목포(木浦) 공연을 갔을때『가수가 되고 싶다』고 무대 뒤로 찾아온 아가씨가 바로 이난영(李蘭影). 본명은 이옥례(李玉禮)로 작곡가 이봉용(李鳳龍)의 누이동생이었다.  「태양(太陽)극단」의 박승희(朴勝喜)씨는 이 무명의 신인 가수를 그 길로 일본(日本)교포 위문공연에 참가시켰다. 노래를 들어보고는 곧 재능을 인정했고 난초처럼 청초하다고「난영(蘭影)」이란 예명을 지어줬다. 그때 공연「포스터」에는「천재가수(天才歌手) 등장」이라고 자못「스타」취급을 해줬고 끔찍이 귀여움을 받았다.  이난영(李蘭影)의 출세는 이 1개월간의 재일교포 위문공연에서 굳어졌다.「태양(太陽)극단」에는 석금성(石金星) 김연실(金蓮實) 강석연(姜石燕) 최승이(崔承伊) 최은연(崔銀燕) 등 쟁쟁한 연기자들이 있었다. 견습가수 격인 이난영(李蘭影)은 막간에『아리랑』『도라지타령』을 불러 교포들의 인기를 독점했다. 그 무렵은『도라지타령』이 굉장한 인기「넘버」였고 그래서 이 노래는 선배들이 독점했는데 마침내 이난영(李蘭影)도 얻어 부르게 된 것. 비음이 섞인 축축한 목소리로 불러 넘기는 타령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어서 마침내 이난영(李蘭影)의『도라지타령』이 되고 말았다.  16살때 태양(太陽)극단 들어가…일본(日本)공연서 일약 스타돼 일본 공연에서의 인기가 이쯤되자「레코드」사의 손길이 재빨리 작용됐다. 맨 먼저「스카우트」의 손길을 편 게 OK「레코드」의 이철(李哲).  대판(大阪) 공연길에서 이난영(李蘭影)은 그때 그곳에서 음악공부를 하던 강사랑(姜史浪)과 조일(朝日)악기점 주인(성명 미상)을 만났다.  강사랑(姜史浪)은『감격시대(感激時代)』『굳세어라 금순아』등의 가사를 만든 작사가. 강(姜)씨는 그때 마침 대판(大阪)에 와 있던 이철(李哲) 사장한테 이난영(李蘭影)을 추천했고 이철(李哲)은 즉석에서 전속계약을 맺어 버렸다.  여기서 취입한 노래가『불사조(不死鳥)』와『봄맞이』(윤석중(尹石重) 작사 문호월(文湖月) 작곡)다. 문제는 그 다음 일어났다.「태양(太陽)극단」은 애써 뽑아 놓은 유망주를 하루 아침에 OK에게 빼앗기게 됐기 때문이다. 춘강(春崗) 박승희(朴勝喜)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항의를 했지만 이난영(李蘭影) 자신이『OK에 있겠다』고 잘라 말하는 데는 어쩔 수가 없었다.  또 하나의「에피소드」는 OK 전속이 된 줄 알면서도 살짝 다른「레코드」사에서 이난영(李蘭影)의 노래를 취입시킨 사건이다. 그때 송죽(松竹)영화사의 음악전담 겸 태평(太平)「레코드」의 전속 작곡가 김준영(金駿泳)이 이난영(李蘭影)의 재능에 취해서 OK 몰래 취입을 했다. 영문을 모르는 이난영(李蘭影)은 김준영(金駿泳)이 시키는대로「태평(太平)」쪽에도 취입을 하고 귀국.  이난영(李蘭影)의 첫 취입한『불사조(不死鳥)』는 국내에서「클린·히트」를 했다. 이에 뒤질세라 태평(太平)「레코드」에서도 이난영(李蘭影)의 노래(곡목 미상)가 나왔다.깜짝 놀란 이철(李哲)은 태평(太平)을 걸고 고소를 제기. 이것이 가수의 전속 문제를 둘러싼 소송사건 제1호가 됐다. 결말은 물론 먼저 계약한 OK쪽이 이겼지만.  태평(太平)「레코드」는 한동안 이난영(李蘭影)을 납치해서 감시원을 두고 연금했는가 하면 OK측은 사원들이 총 동원돼 변장까지 하면서 이난영(李蘭影) 색출작전을 폈다.  치열한 스카우트 싸움에 전속 소송까지 이난영(李蘭影)의 오빠 이봉용(李鳳龍)은『낙화유수(落花流水)』『아주까리 수첩』(백연설(白年雪) 노래)『고향설(故鄕雪)』(최병호 노래)『목포(木浦)는 항구다』 등을 작곡한 대가였다. 김(金)「시스터즈」숙자(淑子) 애자(愛子) 민자(民子)의 민자(民子)가 바로 그의 딸. 72년도에 미국에 있는 딸의 주선으로 일가족이 모두 미국 이민을 했다.  이난영(李蘭影)의 남편 김해송(金海松)은「하와이언·기타」의 명수였고 타고 난 편곡가였다.(작사가 고명기(高明基)씨의 딸) 장세정(張世貞)의『역마차』『연락선은 떠난다』『코스모스 탄식』(박향림(朴響林) 노래) 등 손꼽을 수 없을만큼 많은「히트」곡을 작곡했다. 이난영(李蘭影)과는 초혼이었지만 염문이 하도 많아서 이난영(李蘭影)의 속을 무던히 썩였다.(신(申)카나리아 말)  『연애를 해도 감쪽 같이 했다. 이난영(李蘭影)과 2년간 연애했는데 아무도 몰랐다. 이철(李哲) 사장은「스캔들」있는 사원은 당장 내쫓았지만 김해송(金海松)·이난영(李蘭影)만은 특별「케이스」로 눈감아 주었다』(조춘영(趙春影) 말)  『한번은 난영이가 소양강에 투신했었어요. 결혼한 지 3년쯤 지나서인데 남편의 바람기가 자지 않았던가 봐요. 뱃사공한테 발견되어 익사 직전에 구출됐는데 이렇게 속 썩고 살아 뭣 하느냐고 서럽게 울더군요』(신(申) 카나리아 말)  김해송(金海松)은 50년 6·25때 공산군에 잡혀 납북되었다. 그의 작곡들은 처남 이봉용(李鳳龍)이 일부「어레인지」했고 문헌에는 거의가 이봉용(李鳳龍) 작곡으로 나와 있다.<조관희(趙觀熙)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3월 4일 제6권 9호 통권 제229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사연따라 연예반세기(演藝半世紀)…그시절 그노래(10)

    사연따라 연예반세기(演藝半世紀)…그시절 그노래(10)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로 시작되는『목포(木浦)의 눈물』은 그 가사가 현상공개모집의 당선 작품이란 데서 또 최초를 기록한다. 이난영(李蘭影)을 얻은 OK「레코드」는 33년도에 충천하는 사세(社勢)를 과시할 겸 유행가 가사모집 광고를 냈다. 약 3천통의 응모 작품이 들어왔는데 그 중에서 뽑힌 게『목포(木浦)의 눈물』이고 작사자는 바로 목포(木浦) 출신인 문일석(文一石)이란 사람. 문(文)씨는 이 가사 하나로 가요사적 인물이 됐지만 작사 활동은 이 한편으로 끝났다.  이 가사가 마음에 들었던지 곡도 현상 모집했으나 마땅한 작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OK 전속 작곡가 손목인(孫牧人)에게 맡겼다.  손목인(孫牧人)은 그때『갈매기 항구』란 곡을 만들어 고복수(高福壽)한테 연습을 시키고 있었다.『목포(木浦)의 눈물』가사를 받고 보니 내용이 비슷했던지『갈매기 항구』의「멜러디」를 그냥『목포(木浦)-』에 붙여 버렸다. 결국 고복수(高福壽)는 이난영(李蘭影)한테 노래를 빼앗겼고 『갈매기-』는 날아가 버렸다.  어쨌든 이난영(李蘭影)은 이『목포(木浦)의 눈물』로 아무도 따를 수 없는「스타」가 되었다. 요즘 말로「슈퍼·스타」라 할까? 그때 돈으로 5백원씩의 월급을 받게 되었다. 일류 월급장이의 1년분 봉급에 해당했다. 당초 별로 넉넉지 못한 가정에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못받은 16살 소녀가 출가 3년만에 거둔 성공이었다. 엄청난 봉급에 OK 전속…월급장이 1년치 한달에  『회현동에 2층 양옥을 샀어요. 가 보면 없는 게 없이 꾸미고 살았어요. 특히「피아노」가 모든 연예인들의 부러움을 샀지요.』  이난영(李蘭影)보다 먼저「데뷔」한 신(申)「카나리아」의 회상이다. 그 때만 해도 가수가「피아노」를 갖는다는 건 하나의 꿈었다고.  신(申)「카나리아」가 이난영(李蘭影)을 처음 만난 것은 이(李)씨가 단성사에서 조선악기단의 막간 가수로 나왔을 때.『귀엽고 똑똑하게 생겼는데 화장할 줄을 몰랐어요. 내가 화장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머리를 빗겨 줬더니, 두고두고 그때 얘길 하더군요. 착하고 눈물 많은 애였어요』  이난영(李蘭影)의 오빠 이봉용(李鳳龍)은 목포(木浦)를 소재로 한 또 하나의 노래『목포(木浦)는 항구(港口)다』를 만들어 동생이 부르게 했다. 박남보(朴南甫) 작사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①영산강(榮山江)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삼학도(三鶴島)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그리운 내고향 목포(木浦)는 항구다/똑딱선 운다.  ②유달산 잔디 위에 놀던 옛날도/동백꽃 쓸어안고 울던 옛날도/그리운 내 고향 목포(木浦)는 항구다/추억의 고향  이 노래 역시 크게「히트」했고『목포(木浦)의 눈물』과 함께 아직도 애창되는 노래다. 이난영(李蘭影) 남매의 고향 목포(木浦)가 그렇게 좋은 곳일까?  사실 그때만 해도 목포(木浦)는 개항장(開港場)이기는 했으나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한산하고 쓸쓸한 항구, 그것이 이난영(李蘭影)의 노래 때문에 일약 정서와 낭만이 깃들인 명승지로「글로즈 업」된 것이다.  창씨개명(創氏改名)이 실시된 뒤 이난영(李蘭影)은「오까광고(岡蘭子)」란 일본 이름으로 이『목포(木浦)의 눈물』을 일본말로 취입했다. 일본말 노래는 20년대에 이미 채규엽(蔡奎燁)이「하세가와(長谷川史郞)」란 이름으로 취입한 일이 있다.  일본 노래로 된『목포(木浦)의 눈물』은 그 뒤에 손목인(孫牧人)이 만든 몇개의 노래와 함께 상당히 많이 팔려 나갔다. 이미자(李美子)가 도일(渡日)했을 때도 이『목포(木浦)-』를 일어로 취입했고 최근엔 남상규(南相奎)에 의해서 다시 일본 노래『목포(木浦)의 눈물』이『리바이벌』됐다.  덕택에 일본서 인세를 받고 생활해 나가는 한국인 작곡가가 탄생했다. 손목인(孫牧人)이 바로 그 사람. 손(孫)씨는 6·25때 도일(渡日)한 뒤 동경(東京)에 정착, 그곳에서 가요학원을 경영하고 있다. 남편 김해송(金海松)의 납북 이후 아들 딸들을 보컬로 키워 가요계의 여왕 이난영(李蘭影)은『목포(木浦)-』다음으로『알아 달라우요』『해조곡(海鳥曲)』『진달래 수첩』『울어라 문풍지』『다방의 푸른 꿈』등 수많은「히트·송」을 계속해서 내놓았다. 가수로서의 그는 누구보다 화려하게 살다 갔다.  그러나 사생활은 항상 외로움에 우는 여인이었다. 남편이 가진 수많은 여자와의 관계가 그렇게 만들었고 그나마 남편이 납북당한 뒤에는 더욱 그랬다. 서대문형무소에 남편 김해송(金海松)이 갇혀 있을 때 이난영(李蘭影)은 얼굴에 숯검정을 바르고 걸인으로 변장하여 형무소 주변을 맴돌았다 한다.  김해송(金海松)이 납북된 뒤 이난영(李蘭影)은 가수 남인수(南仁樹)에 위탁해서 외로움을 달래려 했다. 그러나 그마저 먼저 세상을 떠난 것.  김(金)「시스터즈」와 김(金)「보이스」7남매를 지금의 일류「보컬·그룹」으로 키운 건 이난영(李蘭影)의 노래에 대한 애정 때문으로 해석된다. 생활이 어려워졌을 때도 그는「피아노」만은 팔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6·25때 드디어 모든 세간이 없어진 뒤 그녀는 손바닥으로 박자를 맞추면서 아들 딸한테 노래를 가르쳤다.『가수는 노래를 계속하기 위해 작곡가와 결혼하는 게 옳다』는 주장을 후배한테 얘기했고 평소『자식들을 가수로 키우는 게 남겨진 의무』라고 그녀는 말해 왔다. 70년도에 김(金)「시스터즈」는 미국에서 금의환향하여 서울 시민회관에서 어머니 추모 공연을 열었다.  흘러간 가요계 여왕 이난영(李蘭影)의 노래는 그녀의 분신들에 의해 지금도 계속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조관희(趙觀熙)기자>  [선데이서울 73년 3월 11일 제6권 10호 통권 제230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칼라스처럼,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서겠어요”

    “칼라스처럼,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서겠어요”

    서선영(28). 그의 이름은 아직 대중들에겐 낯설다. 그러나 최근 1~2년 새 그만큼 독보적인 성과를 얻은 한국 성악가는 없었다. 2010년 프란치스코 비냐스 국제 성악콩쿠르(스페인) 우승을 시작으로 지난해 마리아 칼라스 국제성악콩쿠르(그리스)와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러시아)를 휩쓸었다. 이쯤 되면 파죽지세다. “비냐스 콩쿠르는 성악에서 가장 큰 콩쿠르예요. (우승을 했으면) 그 다음부터는 안 나가는 게 보통인데 현실에만 안주하는 것 아닌가 싶더라고요.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나갔어요. 은사인 미하엘라 크라머 선생님이 러시아계여서 속성으로 발음을 익힌 덕을 톡톡히 봤어요.” 예술에 등수를 매기는 데 대한 거부감에도 젊은 음악인들이 피 말리는 콩쿠르에 나서는 까닭은 ‘동아줄’을 붙잡을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어린 시절 천재란 소리를 들었던 이들이 수두룩한 음악계에서 서선영처럼 고교 진학 후 진로를 결정한 늦깎이들이 기회를 잡기란 요원하다. 하지만, 콩쿠르에 입상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 실력을 인정받는 건 물론 유명 지휘자와의 협연, 카네기홀처럼 진입 장벽이 높은 공연장에서의 리사이틀 등이 덤으로 주어진다. 프란치스코 비냐스 콩쿠르에 해마다 1000명 안팎의 지원자들이 몰려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베르디 콩쿠르와 더불어 성악 콩쿠르 중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이곳에는 유럽 주요 오페라극장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든다. 조수미(50·1986년 우승)와 김우경(35·2002년 우승) 등 국내 대표적인 성악가들도 비냐스 콩쿠르를 통해 이름을 알린 경우다. 서선영이 유럽의 ‘A급’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스위스 바젤극장의 오페라스튜디오(30세 이하 유망주를 대상으로 부문별로 1~2명씩 뽑아 운영) 소속이 된 것도 비냐스 콩쿠르 우승 덕이다. 2년 전 서선영을 눈여겨봤던 독일 도이치오퍼 베를린의 관계자가 지난해 바젤극장 오페라 예술감독에게 추천한 것. 지난해 하반기 이후 서선영의 동선을 좇자면 어지러울 정도다. 9월에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 자격으로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런던심포니와 협연했다. 11월에는 마리아 칼라스 콩쿠르 우승 부상으로 뉴욕 카네기홀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오페라 가수의 커리어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다. 12월에는 비제의 ‘카르멘’ 중 미카엘라 역을, 올 1월에는 드보르자크의 ‘루살카’에서 주인공 루살카 역을 소화했다. 특히, 오페라 주역으로 데뷔했던 ‘루살카’는 잊을 수 없다. 총 18회 공연 중 그가 무대에 오른 건 마지막 4회 공연. 이쯤 되면 관객의 관심이 흐릿해졌을 무렵이다. 객석도 듬성듬성 비는 게 일반적이다. 그는 “엄청난 인기 오페라가 아니라면 시들해지는 게 보통인데 1200석 오페라극장이 꽉꽉 찼다. 죽어 가던 공연을 내가 살렸다고들 했다.”며 웃었다. 2009년 독일 유학을 떠난 지 3년 만에 뒤늦게 국내 데뷔무대도 갖는다. 금의환향인 셈. 1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김대진이 지휘하는 수원시향과 함께 바그너의 ‘베젠동크 시에 의한 5개의 가곡’을 부른다. 1848년 스위스로 정치적 망명을 한 바그너는 자신의 후원자 오토 베젠동크의 아내 마틸드와 사랑에 빠졌다. 마틸드가 지어 보낸 시에 바그너가 곡을 붙여 답례한 게 바로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다. 그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가사가 어둡고, 화성도 쉽지 않다. 정서를 가슴으로 이해하기 어려워서 독일에서도 좀처럼 안 하는 레퍼토리인데 이번에 부르게 됐다.”고 밝혔다. 1만~3만원. (02)580-1300.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브레인 리턴 500] (중) 두뇌 유출국은 어떻게 두뇌 유입국이 되나

    “고작 500명 데려온다고 뭐가 바뀌겠느냐. 차라리 그 돈으로 국내 이공계 실업대책이나 세워라.” 정부가 ‘브레인 리턴 500’ 계획을 밝히자 인터넷 게시판에는 비판글이 넘쳐났다. 각 대학이나 연구센터 구성원들도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의 계획은 확고하다.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우수한 인재는 반드시 영입하겠다는 것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관계자는 “1960~70년대 조국 부흥에 앞장서 달라며 애국심에 호소해서 모았던 과학자들이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면, 이번 사업을 통해 모을 과학자들은 겉모습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과학기술 강국이 되기 위한 도약의 디딤돌”이라고 강조했다. 성장에 초점을 맞춰 지나쳐버린 기초과학의 토대를 다시 쌓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中, 4년만에 1500명 귀국 이끌어 과학계 오피니언 리더층에서는 브레인 리턴 사업의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다만 더 이상 애국심만으로 호소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을 한계로 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IBS와 교육과학기술부가 재외과학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는 ‘브레인 리턴’에서 의미하는 ‘리턴’이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경택 IBS 사무처장은 “한국의 수많은 인재가 해외로 유출되고 있지만, 그로 인한 손실은 단순히 인적 자원의 유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기초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마음가짐, 연구과제를 정하고 운영하는 노하우는 물론 그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까지 모두 유출되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인재유출국이었던 중국의 사례를 보면 인재를 영입해야 하는 당위성은 분명해진다. 귀국유학생을 뜻하는 하이구이(海龜)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의 원동력이다. ●中 하이구이, 벤처창업서도 두각 1960년대 문화대혁명으로 교육이 외면받았던 중국은 1980년대 중반 외국 유학을 대대적으로 허용하면서 미래를 위해 투자했다. 유학생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른바 ‘연어 프로젝트’로 알려진 백인(百人) 계획이다. 매년 100명 이상의 유학파를 중국으로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과학자에게는 막대한 지원금이 주어졌다. 중국 유학생들은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서 오랜 노하우를 습득한 채 금의환향했고, 일부는 중국이 다국적 기업을 인수하는 데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중국의 철강, 전자, 생명공학 산업의 대부분은 하이구이들의 노력으로 현재의 수준에 이르렀다. 백인 계획을 통해 성과를 거둔 중국정부는 2008년부터 공산당 주도 아래 좀 더 강력한 ‘천인(千人)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집과 정착금을 제공하고 본인이 연구할 곳을 대학과 연구소, 국영기업 등에서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했다. 불과 4년 만에 이미 1500명이 넘는 하이구이들이 돌아왔다. 이들은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은 물론 벤처창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중국을 이끌고 있다. 세계 최대의 인재유출국이 인재유입국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한 셈이다. ●교과부 “기초과학 대접 선순환 기대”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브레인 리턴 계획이 500명으로 시작하지만,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기초과학이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어 주는 선순환을 뿌리내리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면서 “귀국을 꺼리던 재외 한인과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면 한국과학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MB ‘아바타’ 이동관 ‘경호대장’ 유시민 내일 끝장토론 한다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18일 끝장토론을 벌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바타’ 역할을 한 이 전 수석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었던 유 대표가 맞붙어 이명박 정부의 공과(功過)를 평가하는 첫 자리다. 이들은 이날 밤 방송되는 케이블채널 tvN ‘백지연의 끝장토론’에 출연해 치열한 입씨름을 벌일 예정이다. 이 전 수석은 16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여론이 안 좋은 건 알지만 정부의 공과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평가를 받아야 되는데 너무 일방적으로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 대통령을 모신 참모로서 ‘MB를 위한 변호’에 나서 진솔하게 잘못된 것은 밝히고 제대로 된 것은 평가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전 수석은 특히 “4년 전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는 비판을 듣고 부정 비리에 연루돼 폐족(廢族)됐던 세력이 갑자기 금의환향한 영웅처럼 된 것은 아무리 4년의 굴절이 있었다고 하지만 정치 아노미 현상”이라면서 “이 정부가 노무현 정부에 물려받은 부채와 자산을 따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최근 언론인터뷰를 통해 “해방되고 정부 수립 이후 노무현 정권 때 비로소 완전한 정권교체가 됐다.”면서 “인권도 경제도, 남북관계도 다 한 방향으로 줄곧 왔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뒤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 수립 이후 처음 있는, 이런 역행은 처음 겪어 보는데 화는 나지만 표현할 길이 없고, 표현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혹스럽다.”고 비판했다. 끝장토론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반(反)MB 정서’가 확산된 데 대한 원인을 짚는 것을 주제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롯해 남북관계 및 사회통합 등 각 분야에 걸친 평가로 진행될 예정이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기획]최고경영자=⑥롯데그룹 신격호(辛格浩)씨

    [기획]최고경영자=⑥롯데그룹 신격호(辛格浩)씨

     종양장(種羊場)의 양털깍이 소년이 맨주먹으로 현해탄을 건넌 지 30년- 지금은 부동산만 3천억「엔」(한화 4천억원)어치를 가진 대재벌로 자라났다. 4천억원이면 우리나라 1년 총예산의 절반. 지난 해 2천억원의 매상을 올린「롯데」의 신격호(辛格浩·53)씨는 이 어마어마한 부(富)가 오직『신용과 의리』로 쌓아올린 것이라 했다.  차분하게 외곬 파고들어…신용과 의리로 쌓아올려 『저는 운이라는 걸 믿지 않습니다. 벽돌을 쌓아 올리듯 신용과 의리로 하나하나 이루어나갈 뿐이죠』  「롯데」종업원들은 아직 신(辛) 사장이 웃거나 화내는 것을 본 일이 없다고 한다. 화가 나면 오히려 음성이 낮아지고 차분해지는 것이 신(辛) 사장의 성격. 이런 내성적인 성격이기에 오늘의「롯데」를 만드는 데도 다른 경영자들과는 달리 화려하게 남의 눈에 드러나는 일 없이 차분하게 외곬으로 파고 드는「인·파이팅」전번(戰法)을 써왔다.  재일교포 사회에선『관동(關東)에 롯데, 관서(關西)엔 판본(阪本)』이란 말이 자랑스럽게 쓰여지고 있다. 신격호(辛格浩)씨와 서갑호(徐甲虎)씨가 교포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일뿐더러 일본의 어느 기업과 견주어도 결코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롯데」의 본거지인「도꾜·롯데」는 지난 해 제과부문에서 1천2백억「엔」,「레저」와 부동산부문에서 6백억「엔」을 벌어 들였다.「도꾜·롯데」는 모두 11개의 기업체를 거느리고 있는데 이 중에는「검」「초컬리트」「캔디」「아이스크림」공장이 들어있으며「볼링」「골프」시설을 갖춘「레저·센터」인「롯데」회관,「프로」야구의「롯데·오리온즈」구단 등이 있다.「롯데」소유 부동산의 일본 은행 감정 가격은 총 3천억「엔」.  한편 12년 전부터 시작된 우리나라「롯데」는 지난 해 총 2백억원의 매상을 기록했다. 라면, 새우깡 등을 만들어내는「롯데」「검」「초컬리트」「캔디」공업이 90억원,「검」「캔디」의「롯데」제과가 45억원, 일본에 우리나라산 백삼(白蔘)을 독점 수출하고 있는「롯데」물산이 60억원어치를 팔았다. 다수 산매점 주의로 맞서…콧대센 일본 「하리스」눌러  「도꾜·롯데」에 비교하면 아직 한국「롯데」는 걸음마를 배우는 단계지만 어마어마한「도꾜·롯데」의 후광을 갖고 있는 한국「롯데」의 장래는 밝다.  「롯데」의 경영 방침은 간단하다. 첫째 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낼 것, 둘째 제품이 많은 상점에 진열되어 있을 것, 세째(셋째) 선전에 힘쓸 것.  그러나 신(辛)사장의 경우는 보다 철저하다.  『평범한 속에 의외의「아이디어」가 있는 법입니다. 그「아이디어」를 찾아내고 한번 일에 손대면 철저히 하는 것-그게 성공의 비결이겠죠』  평범한 속에서 의외의「아이디어」를 찾아낸 대표적「케이스」가 바로「롯데·검」이다. 종전 직후 일본「긴자」뒷골목에서 GI들이 던져주는「검」을 줍는 일본 어린이들을 보고「힌트」를 받아「롯데·검」이 탄생된 것.  전후 일본엔 50여종의「검」이 생산되었으나「롯데」가 지금처럼 시장 점유율 65%를 자랑하는「톱·메이커」가 된 건 우수한 품질 때문이었다고 신(辛) 사장은 말한다.  또「롯데」의 평범한 경영 방침이 기업 경쟁에서 이긴 경우가 바로「하리스」와의 싸움이다.「롯데」와 함께 일본의「검」시장을 나누어 갖고 있는「하리스」는 당초엔「롯데」로선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큰 기업이었다. 그러나 도매상 중심으로 콧대 센 장사를 하고 있는「하리스」에 비해「롯데」는 다수(多數) 산매점주의로 맞서 끝내 이기고 말았다.  가정 부인들을「세일즈」에 동원, 시장 개척을 한 것도「롯데」의 기발한 판매「아이디어」의 하나였다. 다음은 선전. 「하리스」가 TV에 30분짜리「프로」를 만들면「롯데」는 1시간짜리로 맞섰다.  지금도「롯데」는 한해에 65억「엔」을 선전비로 쓰고 있다. 결국「검」싸움에서「하리스」는 「롯데」의 평범한 경영 방침에 져 현재까지 주인이 3번이나 바뀌고 말았다.  『팔리는 건 제품이지만 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제 인사 관리는 간단해요. 일단「롯데」에 들어온 사람이면 스스로 사표를 내고 나가기 전엔 절대로 해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잘못이 있으면 감봉 처분이 고작이죠. 직장을 믿고 일할 수 있을 때 일이 제대로 되는 것 아닙니까?』  현재「도꾜·롯데」산하 기업체의 부사장 중 67살이 된 노인이 한분 있다. 하는 일이라곤 출근했다 퇴근하는 것뿐. 그리곤 부사장 월급을 타간다. 신(辛)씨가 종전 직후「크림」장사를 사작할 때 썼던 종업원 10명 중 유일하게「롯데」에 남아 있는 사람이란 이유 때문. 종업원은 해고 않고 전문분야 일만 시켜  한국「롯데」의 경우 이런 인사 방침은 마찬가지지만 또 하나 특징은 종사자의 업무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 이는 신(辛) 사장이『우리나라에선 전문 기술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辛)사장의 과거는 한마디로『배 고팠다』는 것.  언양(彦陽·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서 몇 10리 들어간 경남(慶南) 울주(蔚州)군 삼남(三南)면이 신(辛) 사장의 고향. 바로 이웃 마을이 서갑호(徐甲虎)씨의 고향이다, 신(辛)씨는 울산농업실습학교를 졸업하고 곧 어느 종양장으로 양털깎이 소년으로 취직했다. 농사만 지어서 5남5녀의 10남매를 먹여 살리긴 힘든 일. 신(辛)씨는 장남으로 가장의 역할까지 겸해야 했다.  21살 되던 해『언제까지 양털만 깎고 살 수는 없지 않으냐?』는 각오로 집을 뛰쳐 나왔다. 일본의 종양장을 돌아 본다는 명목으로 현해탄을 건넜지만 신(辛) 청년의 뜻은『배고픔』을 면해 보자는 것이었다,  우유 배달을 하기도 하고 무거운 철판을 져 나르기도 했다, 그 돈으로「와세다」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제2차대전으로 대학도 문을 닫자 어느 군수기름공장의 기술자로 취직했다가 동료의 모함으로 쫒겨났다. 신(辛)씨는「커팅·오일」을 만들어 내는 공장을 차렸다. 꼭 두번 납품하고 나자 공장이 미군기의 폭격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남은 건 빚 5만「엔」뿐.  종전이 됐다. 신(辛)씨는 폐허가 된 일본에서 이제 이길 것은『평화』뿐이라고 생각했다. 소위「평화산업」이란 화장품에 처음 손댄 것도 이 때문이다. 다시 빚을 얻어(어느 일본 의사였는데 오직 신(辛)씨만 믿고 돈을 대준 것. 그 뒤 신(辛)사장은 이 의사에게 병원「빌딩」을 지어 주어 은혜를 갚았다) 종업원 10명으로「크림」이며 머리기름을 만들어 냈다. 수익은「크림」이 2~3배, 머리기름은 10배가 남았다.  화장품으로 중소기업인이 된 신(辛)씨는 다시『평화산업』인「검」생산에 착수했고 오늘의「롯데」를 세워 놓았다. 50년대의 부동산「붐」에서 크게 한 몫을 잡은 것도「롯데」성장의 성장제 역을 했다.  1948년 자본금 1백만「엔」으로 시작한「롯데」가 지금은 그 3백배 이상으로 자라났고「롯데·검」은 6대주 어느 곳에도 수출되지 않는 곳이 없게 됐다.  한국에 금의환향한 것은 5·16 직후. 햇수로는 12년이 되지만 가정 분규로 신장개업을 한 지는 이제 5년째다. 그 5년 동안「롯데」경쟁 기업인 삼양(三養), 해태 등과 맞먹을 정도로 자라났다.  5형제 중 맏이자 총수인 신격호(辛格浩)씨는「롯데」의 회장. 4째인 선호(鮮浩·40)씨가 형님을 도와 일본에 있으며「도꾜·롯데」산하 공장의 전무·상무직을 맡고 있다. 한국「롯데」는 3째인 춘호(春浩·44)씨가「롯데」공업 사장, 막내인 준호(俊浩·33)씨가「롯데」제과 전무로 있으며 4째 매부인 최현열(崔鉉烈·전 부산(釜山)시장 최두열(崔斗烈)씨의 동생)씨가「롯데」물산의 전무로 있다.  시작은 화장품…부동산 투자로 한몫보고 한국「롯데」의 사장인 유창순(劉彰順)씨는 인척 관계는 없으나 유(劉)씨가 한국은행「도꾜」지점장으로 있던 시절부터 신(辛)사장과 막역하게 지내던 사이. 경영의 실무는 동생들에게 맡겨 놓고 있으나 신(辛) 사장은 유(劉)씨의 인품과 경영 수완을 높이 사고 있다고. 한때 말썽을 빚기도 했던 집안의 불화는 이제 말끔히 가시고 신(辛)씨가 한국에 나오면 형제가 모두 모여 술을 나누곤 한다.  『나이 드신 탓인지 요즘은 보다 많이 모국에 투자하고 싶어하십니다. 반도「호텔」애기도 그래서 나온 것 같아요』막내 준호(俊浩)씨가 전하는 말이다, 신(辛)씨는 완전히 기틀이 잡힌「도꾜·롯데」는「레저」산업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부동산을 처분해 한국에 투자할 생각. 반도「호텔」을 인수해 객실 1천개의「딜럭스·호텔」을 지을 단계에 와 있고 74년께는 제철제강 분야에도 손을 댈 생각으로 현재 수익성 등을 검토하고 있다.  『「모리나가」「메이지」등 대「메이커」들과 과자 싸움을 벌일 땐 1주일에 겨우 하루 집에 들어 갈까 말까 였읍(습)니다. 한번 매달리면 철저한 게 제 성격이죠』  오랜 일본 생활로 일본 정계의「기시」(전 수상(首相))「후꾸다」(행정관리청 장관·전 대장성 장관)「오히라」씨(현 외상(外相)) 등 정객과도 교분이 두터워 이따금 한·일 정계의 막후에서 다리를 놓기도 한다.  술은 잘 하는 편이며 즐기는 것은 바둑. 우리나라「아마」2단의 실력으로 같은 급수인 막내 준호(俊浩)씨가 좋은 상대. 일본인 부인과 2남(男)1녀(女)를 두고 있다.  <김창웅(金昌雄)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2월11일 제6권 5호 통권 제226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 [영화프리뷰] ‘초한지:천하대전’

    진나라 말기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대결을 그린 중국의 역사 소설 초한지. 난세를 이겨내는 처세술과 천하를 경영하는 전략,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술 등이 담겨 삼국지, 수호지와 함께 중국의 인기 고전의 하나로 꼽힌다. 이를 스크린에 옮긴 ‘초한지:천하대전’은 중국 대륙을 배경으로 한 거대한 스케일에 천하를 차지하기 위한 두 영웅의 길고도 질긴 대결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영화는 기원전 200년 황제의 실정에 반발해 반기를 든 항우(펑사오펑)와 유방(리밍)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시작된다. 뛰어난 무용을 지닌 항우는 희대의 지략가 범증의 도움을 받아 천하통일의 8부 능선을 넘지만, 덕과 용기를 겸비한 유방이 걸림돌이다. 장량과 한신 같은 뛰어난 책사와 무인들이 유방 곁으로 속속 넘어가면서 위기감을 느낀 항우는 홍문에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준비한다. 이 작품은 진나라 말기부터 패왕 항우와 그의 여인 우희의 이별을 다룬 패왕별희, 유방의 토사구팽(兎死狗烹)까지 초한지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룬다. 영화의 재미는 역사 속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눈앞에서 확인하면서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금의환향(錦衣還鄕), 다다익선(多多益善), 건곤일척(乾坤一擲), 사면초가(四面楚歌) 등 유명한 고사는 이 작품에서 비롯됐다. 이를 바탕으로 귀족 집안에서 자라나 기개를 갖춘 항우와 비천한 출신이지만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해 역사 속 승자로 기록된 유방은 뚜렷한 대립각을 세우고, 그들의 전술 참모인 범증과 장량이 펼치는 지략과 전략의 맞대결 또한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삼국지:용의 부활’을 연출한 리옌쿵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은 중국영화의 미덕 중 하나인 거대한 스케일과 볼거리가 매력이다. 중국 북서부의 산시성 둔황에서 촬영된 해하대전과 홍문연에서 범증과 장량이 한 수 한 수 바둑판을 보지 않고 펼치는 대결은 이전에 비해 세련된 컴퓨터 그래픽 효과를 자랑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규모를 강조한 탓인지 섬세한 매력은 부족하다. 역사를 나열한 듯한 평면적인 구성 역시 밀도가 떨어져 인물들의 내면까지 설득력 있게 풀어내지 못했다. 때문에 항우와 유방, 우희의 삼각 로맨스도 다소 사족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배우들의 호연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다. 리밍은 ‘첨밀밀’, ‘유리의 성’ 등에서 선보인 편안한 로맨티스트의 모습과 달리 한층 살이 오른 얼굴로 영웅의 두 얼굴을 표현했고, 중국의 떠오르는 스타 펑사오펑의 매력도 뛰어나다. 유역비도 비중은 작지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오는 12일 개봉.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파리지앵 열광한 그 뮤지컬을 극장서

    파리지앵 열광한 그 뮤지컬을 극장서

    뮤지컬 ‘십계’(Le Dix) ‘태양왕’(Le Roi Soliel)으로 명성을 쌓은 제작자 알베르 코엔과 도브 아티는 문득 “모차르트는 당대 최고의 록스타였다.”는 엉뚱한 발상을 떠올렸다. 클래식과 팝,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20곡을 만드는 등 기초작업에만 2년이 걸렸다. 기존 뮤지컬과 다른 문법을 원했기에 에디트 피아프(1915~63)의 삶을 그린 영화 ‘라비앙 로즈’(2007)의 올리비에 다한에 연출을 맡겼다. 다한은 학창시절 미술을 전공한 덕에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미장센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2009년 9월 프랑스 파리의 팔래 데 스포르 드 파리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은 150만명의 관중을 모았다. 프랑스 뮤지컬 최고 흥행기록을 고쳐 쓴 ‘모차르트 락 오페라’다. 원정관람도 서슴지 않는 열혈 뮤지컬 팬 사이에 일찍부터 관심은 높았지만, 대부분에겐 그림의 떡. 지난해 현지 공연이 막을 내린 터라 아쉬움은 더 했다. 지난해 12월 20일 팔래 데 스포르 드 파리 극장. 한국과 미국, 영국에서 3차원(3D) 영상 전문가들이 속속 모였다. 화면의 입체감과 깊이를 조율하는 총 지휘자 격인 스테레오그래퍼는 ‘다크나이트’ ‘인셉션’에 참여했던 마크 와인가트너가, 공연실황 연출은 ‘라이브 인 3D 휘성’ 등을 연출했던 정성복 감독이 맡았다. 제작진은 총 4500석 가운데 앞좌석 13줄을 들어내고 크레인을 장착한 특수 촬영장비를 설치했다. 허락된 시간은 단 하루, 2회 공연뿐. 공연실황 DVD로 100여차례 도상훈련을 통해 카메라 동선을 짜놓은 덕에 극장에서 보는 세계 첫 뮤지컬 3D 콘텐츠가 완성됐다. 그리고, 오는 17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한다. ‘모차르트 락 오페라’는 모차르트(미켈란젤로 로콩테)가 유럽 왕실 순회공연을 마치고 금의환향한 시점에서 막을 올린다. 음악적 영감을 얻으려고 떠난 독일 만하임에서 모차르트는 운명적으로 알로이지아(멜리사 마르스)를 만난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는 못마땅해 한다. 하층민 알로이지아와 사귀는 게 인생의 걸림돌이 될 걸로 생각하고, 갈라놓는다. 실의에 빠진 모차르트는 뮤즈였던 알로이지아에게 배신당하고, 경쟁자 살리에르의 시기와 질투에 시달린다. 귀족사회를 비꼰 ‘피가로의 결혼’으로 귀족과 왕실의 탄압까지 받는다. 누구보다 파도가 많았던 모차르트의 삶, 귀에 쏙쏙 달라붙는 20곡의 음악, 화려한 의상과 춤의 향연에 133분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극장에서 보는 공연예술 콘텐츠의 장점은 수십만원을 주고 가장 비싼 좌석에 앉더라도 놓치기 쉬운 배우의 표정과 땀방울 하나까지 보여준다는 것. 3D 영상은 컨버팅(2D를 3D로 전환한 영화)보다 낫고, 뮤지컬 공연장에 비하면 사운드도 월등하다. 단, 제작진이 제시하는 프레임이 아닌 자신만의 눈으로 무대를 보기 원하는 마니아라면 못마땅할 게다. 또 본격적인 반전이 이뤄지는 2막에 비해 1막은 좀 지루한 편이다. 관람료는 일반 3D 영화(1만 3000원)보단 비싸고 메트오페라 공연실황(2만 5000원)보단 싼 2만원으로 책정됐다. 유명 뮤지컬 오리지널팀 내한공연 최고등급 좌석 가격의 10% 수준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14일 TV 하이라이트]

    ●과학카페(KBS1 밤 11시 40분) 2011년 11월, 섭씨 20도를 웃도는 이상기후 등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제 환경을 위한 실천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요건이 되었다. 의식주 전반에서 지구를 살릴 수 있는 그린 사이언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녹색 주거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장을 따라가 본다. ●월화 드라마 브레인(KBS2 밤 9시 55분) 천하대병원 신경외과 전임인 이강훈은 뛰어난 실력으로 고재학 과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인재다. 하지만 김상철 교수는 이강훈을 탐탁지 않아 한다. 한편 응급 환자가 발생하고, 환자가 수술할 상황이 아니라며 VIP 병실을 찾아간 강훈. 그 사이 환자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는데…. ●계백(MBC 밤 9시 55분) 처음으로 전쟁에서 패배한 계백은 스스로를 수레에 가둔 채 서라벌을 찾아가 벌을 청하고 의자는 그런 계백을 하옥한다. 성충과 흥수는 계백의 전략이 신라의 세작이 아닌 은고에 의해 누설됐을 거라 짐작한다. 하지만 계백은 ‘의심은 충심에 어긋난다.’고 일갈한다. 한편 천단향은 패전의 이유가 은고의 은밀한 뒷거래에 있음을 짐작하는데…. ●일일드라마 내 딸 꽃님이(SBS 밤 7시 20분) 열일곱 살 꽃님이는 재혼한 아빠(수철)도, 자신에게 다가서려는 새엄마(순애)도 싫기만 하다. 이렇게 세 사람의 갈등과 마음의 상처는 점점 커져 간다. 유학을 앞둔 준혁은 형 상혁과 우애 좋게 시간을 보낸다. 새 차를 산 오빠 채완이 부러운 채경은 아빠(천만)에게 차를 사 달라고 조른다. ●직업의 세계-일인자(EBS 밤 11시 20분) 손에서 손으로 이어오는 일본의 전통과 역사를 상징하는 화과자. ‘첫 맛은 눈으로 끝 맛은 혀로 즐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계절 어떤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이자 먹거리로 탄생시키는 일본 최고의 화과자 명인 니시오 사토시. 오늘도 새로운 화과자 개발을 위해 고심하는 그의 달콤한 인생을 함께한다. ●명불허전(OBS 밤 10시) ‘명불허전’에서는 한국 농구의 살아 있는 역사, 한국농구연맹 김영기 고문과 함께한다. 공부면 공부, 농구면 농구 무엇 하나 빠지지 않았던 청년 김영기. 득점왕, 아시아 스타로 자리매김하며 선수 생활을 한 지난날과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금의환향했던 감독 시절의 이야기를 나눠본다.
  • 첫 퍼펙트 롯데 이용훈, 1군 무대로 ‘금의환향’

    퍼펙트맨이 다음 주면 프로야구 1군 무대에 뜬다. 한국 프로야구 30년 만에 처음으로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롯데 이용훈 얘기다. 롯데 양승호 감독은 18일 “부첵이 부진하고 불펜진도 좋지 않다. 20일 SK전 직전에 이용훈을 1군에 등록할 계획”이라고 했다. 비록 2군 무대지만 30년 동안 한번도 없었던 대기록을 세운 주인공이다. 그만큼 현재 공이 좋다. 1군 무대에선 어떤 구위를 선보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용훈은 올 시즌 제대로 된 활약을 못 했다. 4월 13일 부산 두산전에서 1이닝 1안타 무실점할 때만 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3일 뒤 잠실 LG전에서 1회에 안타 6개로 4실점했다. 아웃카운트 2개만 잡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후 1군 무대에서 모습을 감췄다. 줄곧 2군에서 선발요원으로 등판했다. 2군 성적은 10승4패 방어율 2.83이었다. 운이 없었다. 한참 구위가 올라왔을 때 다쳤다. 지난 7월 집에서 가구를 옮기다 넘어졌고 왼손 약지가 부러졌다. 이후 8, 9월엔 롯데 마운드가 급격히 안정되면서 1군 복귀 기회 자체가 없어졌다. 선발 5명이 잘 돌아갔고 불펜도 단단해졌다. 이용훈으로선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이제 기회가 왔다. 롯데 투수진에 불안 요소가 커지기 시작한 시점에 마침 이용훈은 최고의 경기를 선보였다. 지난 17일 대전에서 한화 2군팀을 상대로 9이닝 동안 단 한명의 타자도 진루시키지 않았다. 투구 수는 111개. 삼진 10개도 솎아냈다. 이날 직구 최고 구속은 146㎞, 커브-슬라이더-체인지업 등 변화구도 좋았다. 더 이상의 투구는 있을 수가 없다. 이용훈은 “1군 마운드에 서면 공 하나하나에 혼을 담아 던지겠다.”고 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청소년은 세계 공존공영 이룰 미래의 주역”

    “청소년은 세계 공존공영 이룰 미래의 주역”

    “청소년 여러분이 이 나라의 주인공입니다.” 방한 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14일 오전 충북 음성군 원남면의 고향 마을과 모교를 찾아 “우리 세대가 퇴장하면 여러분이 이 나라의 주인공”이라며 “전쟁과 가난, 인권 탄압에 대한 공포를 없애고 빈부 격차 없이 공존공영을 이루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세 번째 금의환향… 90세 노모 만나 2007년 사무총장 취임 후 세 번째 고향 방문이다. 5박 6일 방한 기간 중 마지막날인 이날 오전 9시 30분 상당리 행치마을에 도착한 반 총장은 부인 유순택씨와 함께 선산에 올라 성묘를 한 뒤 생가를 둘러보았다. 이어 오전 10시 30분쯤 군민들이 운집한 평화랜드 야외 무대에 도착해 장한 아들을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 신현순(90)씨와 깊은 포옹을 했다. 반 총장을 환영하기 위해 주변에는 이시종 충북지사와 이필용 음성군수 등 1000여명이 나왔다. 음성·증평 지역 초등학생들로 구성된 음성동요학교 맴맴합창단 20명은 ‘유엔의 노래’ ‘내 고향 행치마을’ ‘반기문 총장의 노래’를 합창하며 반 총장의 고향 방문을 환영했다. 반 총장은 “이렇게 열렬한 환영을 받으니 감격스럽고 감개무량하다.”면서 “여러분들이 세계를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반 총장의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군민들의 환호성이 울려퍼졌고, 간간이 풍물패의 흥겨운 연주도 이어져 행치마을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 지사는 “반 총장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후원자가 되자.”고 말했다. ●매일 행사 20여 건으로 바쁜 일정 소화 반 총장은 이어 모교인 충주고등학교에서 후배 350명과 환담을 나눴다. 우렁찬 박수 속에 등장한 반 총장은 후배들에게 세계를 가슴에 품은 인재가 될 것을 주문했다. 그는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현실을 직시하고 이상을 높게 가지라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난다.”면서 “청소년들은 창의력을 키우고 비판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오후 1시쯤 충주시 후렌드리호텔에서 도내 기관장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숨가빴던 방한 일정을 마무리했다. 앞서 반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 등 각계 인사와의 면담, 초청 강연, 토론회 등 매일 20여 건의 각종 행사를 거뜬히 소화하면서 바쁘게 움직였다. 지난 13일 밤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외교장관 공관에서 김성환 장관 등 전·현직 장관들과 만찬을 가졌다. 반 총장은 1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충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모던뽀이’의 경성역이 되살아났다

    ‘모던뽀이’의 경성역이 되살아났다

    1930년대 어느 날 서울 거리를 쏘다니던 ‘구보씨’의 발걸음은 문득 경성역 3등 대합실까지 미친다. 그곳에서 지게꾼, 유랑민, 노파 등 고독하고 쓸쓸한 이들을 조우한다. 예쁜 여자와 함께 있는 중학 시절 열등생 친구를 만나 강렬한 질투심도 느낀다. 소설가 박태원(1910~1986)의 눈에 비친 일제강점기 시절 경성역(서울역의 옛 이름)은 물질에 대한 욕망과 함께 물질로부터 소외된 비루함이 북적거리며 공존하는 곳이었다. 서울역은 ‘구보씨의 일일’에 묘사됐듯, 식민지 자본주의의 중심 공간으로 민족사의 아픔을 묵묵히 떠안았다. 1925년 9월 처음 세워질 때 한껏 차려입은 모던뽀이와 모던걸들이 전차를 타고 지나며 감탄해 마지않았던 그 서울역이 복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역사(驛舍) 기능은 2004년 새로 지어진 신역사에 물려주고 2009년 7월부터 복원공사에 돌입,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공사비만 200억원이 들었다. ‘문화역서울 284’(사적 284호)로 이름 붙여진 복원 역사는 다음 달 9일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문화재로서 가치를 회복함은 물론 전시·음악회·패션쇼 등이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앞으로 기차역사 본연의 기능도 갖출 예정이다. 개관에 앞서 14일 언론에 공개된 막바지 공사현장은 어수선했다. 중앙홀에는 천장 스테인드글라스 및 지붕 돔 공사를 하느라 비계가 설치돼 있고 1, 2등 대합실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고향을 등지고 밤봇짐으로 상경한 이들이 중앙홀에 발을 내디디며 느꼈을 막막함과, 작은 성취에 기뻐하며 금의환향하는 이들이 3등 대합실에 앉아 들떴을 심장박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복원 공사를 담당한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벽돌, 철근·콘크리트, 석조, 목조 네 가지 구조를 한꺼번에 사용한 르네상스풍 원형 건축물 복원에 주력했다.”면서 “한국전쟁 때 파괴된 돔 아래쪽 스테인드글라스도 재설치한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한반도 평화 체제가 정착되면 이곳은 대륙 철도와 연결되는 시발점이자 종착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조광호 인천가톨릭대 교수의 작품으로 시민들의 협력과 연대, 평화시대를 상징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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