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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기문 조기 귀국설…여야·진영별 신경전

    반기문 조기 귀국설…여야·진영별 신경전

    친박 “국제외교 경험 미래 위해” 비박 “구세주 처럼 치켜세우나” 야권도 “북핵 해결·임기 마쳐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내년 1월 귀국설’에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다. ‘반기문’이란 이름 석 자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두루 회자되는 가운데 진영별로 묘한 신경전도 감지된다. 19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선 반 총장에 대한 언급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반 총장에게 ‘지난 10년간 국제외교 무대의 수장으로서 쌓은 소중한 경험과 지혜를 우리 미래 세대를 위해 써달라’고 부탁했다”면서 “반 총장이 금의환향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친박(친박근혜)계 조원진 최고위원은 “반 총장의 1월 귀국은 모두가 환영할 일이다. 들어오셔서 국내 정치에도 관심을 가지셨으면 한다”며 그의 대권 도전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비박계 강석호 최고위원은 “반 총장이 무슨 구세주라도 되는 양 너무 치켜세운다면 우리 정치사에 부끄러운 부분으로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김무성 전 대표도 기자와 만나 “반 총장이 임기를 성공적으로 잘 끝내야 인기가 올라가지 자꾸 정치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옳지 못하다”면서 “주책 좀 그만 떨라고 해라. 반 총장 말고 그 주변 사람들”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야당도 ‘반기문’으로 술렁였다. 반 총장이 여권 주자로 분류되는 만큼 반 총장에 대한 강한 견제 심리가 야권 전반에 번졌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반 총장에게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임기를 마쳤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했다”면서 “북핵 문제 해결의 기미도 만들지 못한 분이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로 움직인다면 국민들이 그 능력을 검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반 총장이 어느 정당을 선택할지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응전략을 짤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반’(친반기문)을 전면에 내세운 군소 정당들과 ‘반(潘)딧불이’, ‘반사모’(반기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지지 모임도 전국 각지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다. 한편 반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대한 대응과 대비를 잘하고 있다”고 후한 평가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허정민, ‘복면가왕’ 팽이소년에 아쉽게 패 “우리 형 에릭이 칭찬”

    허정민, ‘복면가왕’ 팽이소년에 아쉽게 패 “우리 형 에릭이 칭찬”

    배우 허정민이 ‘복면가왕’에 출연했다. 최근 방송된 MBC ‘복면가왕’ 세 번째 대결에서 ‘금의환향 귀성길’과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팽이소년’은 이재훈의 ‘사랑합니다’를 선곡했다. 두 사람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터프하게 지르는 발성으로 상반되지만 어우러지는 목소리로 한 노래를 불렀다. 유영석은 “‘귀성길’의 목소리는 달콤한 감자칩 같은 느낌이며, 남성미와 함께 여린 여자의 감성까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팽이소년’은 이런 목소리는 사랑이 떠나지 않는다. 절제된 표현법이 너무 좋았다. 가왕 행 열차를 탈 듯”이라고 극찬했다. 투표 결과, 팽이소년이 62대 37로 이기며 2라운드에 진출했다. 복면을 벗은 ‘금의환향 귀성길’의 정체는 배우 허정민이였다. 방송 이후 허정민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내가 다시 무대에서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할 수 있을까 욕만 먹고 퇴장하면 어떡하지 걱정하고 잠 못 이루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녹화 당일도 도망치고 싶어 안절부절 했지만 너무 친절했던 제작진들과 엄빠 미소로 응원해주던 관객느님들 덕분에 큰 용기를 얻고 열심히 부르고 퇴장하는데 눈에서 땀이 찔끔 나이를 숫자로만 먹은 겁쟁이를 또 어른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거망동 안하고 열심히 살겠습니다”고 전했다. 또 tvN ‘또 오해영’에서 함께 출연한 에릭의 문자를 공개하며 “우리 형이 칭찬해줬다”는 글을 남겨 눈길을 끌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복면가왕 귀성길’ 허정민, 에릭 문자 공개 “우리 형이 칭찬해줬다!”

    ‘복면가왕 귀성길’ 허정민, 에릭 문자 공개 “우리 형이 칭찬해줬다!”

    ‘복면가왕 귀성길’ 허정민이 출연 소감과 함께 에릭의 문자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4일 방송된 MBC 복면가왕에서는 현 가왕 ‘에헤라디오’에 도전하는 복면가수 8명의 무대가 펼쳐졌다. 이날 세 번째 대결은 ‘금의환향 귀성길’과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팽이소년’는 이재훈의 ‘사랑합니다’를 선곡했다. 투표 결과, ‘팽이소년’이 ‘귀성길’을 62대 37로 꺾고 승리하며 2라운드에 진출했다. 솔로곡 윤종신의 ‘고속도로 로망스’를 부르면서 밝혀진 ‘금의환향 귀성길’의 정체는 배우 허정민이였다. 허정민은 방송 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내가 다시 무대에서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할 수있을까 욕만 먹고 퇴장하면 어떡하지 걱정하고 잠 못 이루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녹화 당일도 도망치고 싶어 안절부절 했지만 너무 친절했던 제작진들과 엄빠 미소로 응원해주던 관객느님들 덕분에 큰 용기를 얻고 열심히 부르고 퇴장하는데 눈에서 땀이 찔끔 나이를 숫자로만 먹은 겁쟁이를 또 어른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거망동 안하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잘봤니 월아지기들아 힛 데헷”이라는 소감을 덧붙였다. 또한 tvN ‘또 오해영’에서 함께 출연한 에릭의 문자를 공개하며 “우리 형이 칭찬해줬다”는 글을 남겨 눈길을 끌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인비의 金맛도 연재의 눈물도 KB와 빛낸 꿈

    인비의 金맛도 연재의 눈물도 KB와 빛낸 꿈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온 박인비 선수의 금의환향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곳이 또 있다. KB금융이다. 4년째 박인비를 후원해 온 KB금융은 피겨 선수 김연아에 이어 박인비의 활약으로 다시 한번 스포츠 마케팅 명가(名家)로 자리를 굳히게 됐다. ●박인비와 4년째 인연… 메달로 화답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은 여자골퍼 박인비와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등을 후원하고 있다. 올림픽 중에는 공식 후원사가 아니어서 좀처럼 드러낼 수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선수들을 뒷바라지한 보람을 누릴 수 있게 됐다. 특히 박인비가 116년 만에 부활한 여자골프에서 금메달을 따냄으로써 후원사인 KB금융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박인비와 KB의 인연은 2013년 시작됐다. KB금융은 2008년 US여자오픈 최연소 우승 이후 슬럼프를 겪으며 메인 후원사도 없이 경기에 출전하고 있던 박인비와 후원 계약을 맺었다. 평소 후원 선수들을 수시로 챙기며 격려하는 윤종규(위 사진 오른쪽) KB금융 회장은 이번에도 박인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메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결과가 어떻든 라운드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니 부상 없이 경기를 즐기라”고 응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연아 이어… 스포츠 마케팅 명가로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아시아 선수로서 최고 성적을 이룬 리듬체조 손연재 역시 KB가 자랑하는 선수다. 손연재는 2010년부터 KB금융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으며 아시안게임과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융사들은 비인기 종목을 주로 지원하기 때문에 선수들과의 우정이 끈끈하다. 김연아는 2006년 KB와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톱스타가 된 지금도 KB의 대표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최인석 KB금융 홍보부장은 “힘든 상황에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KB의 경영 철학과도 통한다”면서 “비인기 종목이라도 선수들이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지원한다는 사회적 책임 의식이 스포츠 마케팅에서의 성공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진종오 “6.6점 놀라게 해 죄송… 그게 사격 묘미”

    진종오 “6.6점 놀라게 해 죄송… 그게 사격 묘미”

    “6.6점을 쐈을 때 깜짝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진종오(37·kt)가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하자마자 국민들에게 재치 있는 사과부터 건넸다. 진종오는 지난 11일 총 20발을 쏘는 결선에서 9번째 총알로 6.6점을 쏴 탈락 위기인 7위까지 떨어져 응원하던 국민들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 연달아 10점 이상을 얻으며 순위를 끌어올려 마침내 올림픽 사격 첫 개인전 3연패 위업을 완성했다. 그는 올림픽 메달을 6개(금 4, 은 2개)로 늘려 ‘양궁의 전설’ 김수녕과 한국 선수 올림픽 최다 메달 타이를 이뤘다. 또 왕이푸 중국 사격대표팀 감독의 아시아 선수 올림픽 사격 최다 메달 6개(금 2, 은 3, 동 1개)와도 타이를 이뤘다. 진종오는 “그렇게 한 발 한 발 긴장을 풀지 못하는 것이 바로 사격의 묘미”라며 “다음에는 마음 편히 지켜보실 수 있게 더 잘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메달을 따기 위해 아주 많이 노력했고 무엇보다 국민들의 기가 리우까지 전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10m 공기권총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이유로는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많이 연습했는데 부담이 된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는 “지금 일단은 선수촌으로 먼저 가야 한다. (함께 인터뷰 자리에 선 어머니에게) 곧 집으로 갈게요. 기다리세요”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서둘러 마쳤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전종목 석권’ 양궁 대표팀 금의환향

    ‘전종목 석권’ 양궁 대표팀 금의환향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전종목 석권의 위업을 달성한 양궁 대표팀 선수들이 1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환영 나온 시민들 앞에서 금메달을 깨무는 포즈를 취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구본찬, 김우진, 이승윤, 장혜진, 기보배, 최미선.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금의환향’ 양궁 장혜진

    ‘금의환향’ 양궁 장혜진

    1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양궁 장혜진 선수.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미리 보는 리우 라이벌 열전] 안창림 ‘오노 징크스’ 한판으로 날린다

    [미리 보는 리우 라이벌 열전] 안창림 ‘오노 징크스’ 한판으로 날린다

    리우올림픽 한국 선수단 중 유일하게 교포 선수로 ‘태극마크’를 단 안창림(22·수원시청)은 남자 유도 73㎏급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힌다. 하지만 안창림이 ‘리우 드라마’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천적’ 오노 쇼헤이(24·일본)라는 벽을 넘어야 한다. 재일교포 3세인 안창림은 쓰쿠바대 2학년 시절인 2013년 전일본학생선수권대회 73㎏급에서 정상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리우올림픽을 겨냥해 일본 대표팀으로부터 귀화 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조국인 대한민국을 선택했다.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달고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 나서는 그가 이번 대회에서 우승한다면 한국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이원희(현 용인대 교수) 이후 금맥이 끊긴 73㎏급에서 12년 만에 금메달을 배출하게 된다. 유도 종주국 일본에서 익힌 탄탄한 기본기에 한국식 공격 유도를 보탠 그는 2014~15년 제주그랑프리,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 2016년 파리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하면서 올 시즌 국제유도연맹(IJF) 세계랭킹 1위에 오르는 등 일찌감치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안창림의 천적인 오노는 2013·201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일본의 간판스타다. 안창림은 역대 최강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번 한국 남자유도 대표팀에서도 특급 에이스로 꼽히지만, 유독 오노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 오노의 올 시즌 세계랭킹은 4위이지만 안창림은 지금까지 오노와 맞붙어 한번도 이겨 본 적이 없다. 2014년 도쿄그랜드슬램 8강전 패배를 시작으로 지난해 2월 뒤셀도르프그랑프리 준결승, 그해 8월 세계선수권대회 준결승, 지난 2월 뒤셀도르프그랑프리에서 만나 모두 졌다. 역대 전적 4전 전패다. 안창림에게 이번 대회는 ‘오노 징크스’를 깰 설욕의 무대이기도 하다. 오노의 장기는 밭다리후리기와 허벅다리걸기이다. 일본 특유의 기술유도에 힘까지 겸비해 쉽지 않은 상대다. 그러나 이에 맞서는 안창림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그는 원래 업어치기와 안뒤축걸기를 주 무기로 포인트를 따내 승리하는 ‘경기 운영형 선수’였지만 한국에서 고강도의 웨이트트레이닝을 소화하면서 ‘한판승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파워를 끌어올렸다. 오노는 13차례 국제대회에서 총 56경기를 치르면서 49승을 따내 승률 87.50%를 기록 중이고 안창림은 66차례 경기에서 59승을 거둬 89.39%의 승률을 갖고 있다. 안창림이 전체 승률로는 오노를 조금 앞서지만, 한판승 비율은 57.58%로 64.29%의 오노보다 다소 뒤진다. 막상막하의 치열한 승부가 펼쳐질 안창림과 오노의 대결은 사실상 이번 대회 결승전이 될 전망이다. 안창림은 리우에서 반드시 오노를 꺾고 금의환향하겠다는 각오다. 안창림은 “오노가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특히 일본 선수에는 절대 지고 싶지 않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면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이어 “오노는 힘도 좋고 그의 양손에 도복을 잡히면 승산이 없다”며 “오른쪽 업어치기와 오른쪽 안뒤축걸기 등 오노의 오른쪽을 공략하는 기술로 상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창림의 유도 첫 경기(64강전)는 한국시간으로 8일 오후 10시에 열릴 예정이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하나금의환향랩 누적 수익 16%

    하나금의환향랩 누적 수익 16%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선언 이후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금값이 뛰면서 하나금융투자가 지난 3월 출시한 ‘하나 금의환향랩’도 순항 중이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금 가격이 6.65%(원화 기준) 상승하는 동안 ‘하나 금의환향랩’은 15.96%의 누적 수익률을 기록했다. 금과 관련된 다양한 자산 투자를 병행해서다. 주요 투자 대상은 금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금광주 ETF 등이다. 최소 가입금액은 1000만원이다. 500만원 단위로 추가 입금도 가능하다. 수수료는 선취형의 경우 1.0%이고, 후취보수는 연 1.5%(분기별 수취)이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포토] 유로 2016 우승, 포르투갈 국가대표 팀의 ‘금의환향’

    [포토] 유로 2016 우승, 포르투갈 국가대표 팀의 ‘금의환향’

    포르투갈 축구 대표팀이 10일(현지시간) 프랑스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결승전에서 개최국인 프랑스를 상대로 우승컵을 거머쥐고 금의환향했다. 5000여명의 축구팬들이 무리를 이룬 가운데, 대표팀은 버스를 타고 포르투갈 리스본 공항에서 리스본 시내까지 카 퍼레이드를 벌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끼 호랑이’ 키우는 시장·군수?

    “젊고 유능한 인재… 능력 우선 선발” 잠재적 선거 라이벌 견제 인식 바뀌어 ‘요즘 시장·군수들은 새끼 호랑이 키우기를 좋아한다?’ 경북의 시장·군수들이 차기 선거의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 있는 향토 출신 공직자를 부시장·부군수로 잇따라 영입해 관심이 쏠린다. 민선 중반까지만 해도 대부분 단체장이 호랑이 새끼를 키울 수 없다며 이들의 부단체장 영입을 꺼렸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분위기다. 29일 경북도에 따르면 전날 단행된 6월 30일자 정기인사에는 시·군 부단체장 13명도 포함됐다. 이 가운데 안동부시장과 의성부군수로 발령난 최웅(55·기술고시 출신) 농축산유통국장, 김진영(56) 예산담당관은 금의환향한 케이스. 특히 그간 도청 안팎에서 탁월한 근무능력과 원만한 대인관계 등을 인정받아 온 김 담당관은 김주수 의성군수가 1년 전부터 부군수 영입을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재선인 김 군수는 도가 올해 초 의성부군수에 다른 지역 출신 인사를 발령 내려 하자 절대 받을 수 없다며 배수진을 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월과 7월엔 김병삼(48·지방고시 출신) 영천부시장과 김동룡(56) 봉화부군수가 고향 부단체장으로 갔다. 현재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고위정책과정에 교육 파견 중인 송경창(49·행시 출신)씨와 이번 인사를 앞두고 명예퇴직 의사를 밝힌 전화식(59) 문화관광체육국장도 고향인 경산시와 성주군에서 1년 정도 부단체장으로 재임했다. 경북도의 한 간부 공무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장·군수가 자신의 인기 유지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젊고 유능한 고향 출신 도청 간부들을 부단체장으로 받지 않으려는 경향이 심했다”면서 “하지만 이는 인사 재청권의 남용이란 지적에다 단체장들의 인식까지 바뀌면서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경북 단체장은 새끼 호랑이 키우기 좋아한다?…향토 출신 공직자 잇달아 영입

    ‘요즘 시장·군수들은 새끼 호랑이 키우기를 좋아한다?’ 경북의 시장·군수들이 차기 선거의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 있는 향토 출신 공직자를 부시장·부군수로 잇따라 영입해 관심이 쏠린다. 민선 중반까지만 해도 대부분 단체장이 호랑이 새끼를 키울 수 없다며 이들의 부단체장 영입을 꺼렸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분위기다. 29일 경북도에 따르면 전날 단행된 30일 자 정기인사에는 시·군 부단체장 13명도 포함됐다. 이 가운데 안동부시장과 의성부군수로 발령난 최웅(55·기술고시 출신) 농축산유통국장, 김진영(56) 예산담당관은 금의환향한 케이스. 특히 그간 도청 안팎에서 탁월한 근무능력과 원만한 대인관계 등을 인정받아온 김 담당관은 김주수 의성군수가 1년 전부터 부군수 영입을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재선인 김 군수는 도가 올해 초 의성부군수에 다른 지역 출신 인사를 발령내려 하자 절대 받을 수 없다며 배수진을 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월과 7월엔 김병삼(48·지방고시 출신) 영천부시장과 김동룡(56) 봉화부군수가 고향 부단체장으로 내려갔다. 현재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고위정책과정에 교육 파견 중인 송경창(49·행시 출신)씨와 이번 인사를 앞두고 명예퇴직 의사를 밝힌 전화식(59) 문화관광체육국장도 고향인 경산시와 성주군에서 1년 정도 부단체장으로 재임했다. 하지만 그동안 차기 단체장 출마를 꿈꾸는 일부 부이사관·서기관급들이 고향 발령을 원했지만 고향 시장·군수들이 재청을 않는 바람에 좌절되기도 했다. 경북도의 한 간부 공무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장·군수가 자신의 인기 유지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젊고 유능한 고향 출신 도청 간부들을 부단체장으로 받지 않으려는 경향이 심했다”면서 “하지만 이는 인사 재청권의 남용이란 지적에다 단체장들의 인식까지 바뀌면서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에서 부단체장들을 지낸 이들이 적극적이고 부지런한 업무 처리와 원만한 대인관계, 공직 내부 결속, 공무원·주민 간 유대 강화 등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던 것으로 안다”면서 “결국 단체장과 능력 있는 부단체장의 아름다운 협치가 펼쳐지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운빨로맨스 황정음 류준열, 첫 만남 보니 카지노 화장실에서..‘멘붕’

    운빨로맨스 황정음 류준열, 첫 만남 보니 카지노 화장실에서..‘멘붕’

    ‘운빨로맨스’에서 류준열이 황정음과의 첫 만남에 오물을 뒤집어썼다. 25일 첫 방송된 MBC 새 수목드라마 ‘운빨로맨스’에서는 심보늬(황정음 분)와 제수호(류준열 분)의 첫 만남이 그려졌다. 이날 제수호는 멋진 수트를 입고 등장했다. 그는 카지노에서 천재적인 두뇌 회전으로 연속으로 돈을 땄다. 잔뜩 딴 칩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며 “이런 운을 가진 사람의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는 “세상에 행운 같은 건 없어요. 게임은 머리로 하는 겁니다”라고 일침을 놨다. 같은 시각, 화장실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던 심보늬는 자신의 월급을 떼먹고 도망간 사장을 찾고 있었다. 그는 “동쪽인데 왜 없지”라며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는 사장과 비슷한 용모를 가진 사람을 보며 “사장님”을 외치고 돌진했다. 그 옆에 있었던 제수호는 청소 카트를 끌고 돌진하는 심보늬의 옆에 있다가 오물을 뒤집어쓰는 불운을 안았다. 제수호는 넘어진 심보늬 걱정은 하지 않은 채 떨어진 선글라스를 챙긴 뒤 시크하게 사라졌다. 이후 심보늬는 사장을 찾아다니던 중 공원에서 제수호와 재회했다. 심보늬는 제수호를 알아보고 세탁비를 주겠다며 돈을 꺼냈고, 제수호는 한숨을 쉬었다. 심보늬는 “많이 잃으셨어요? 그렇다고 그렇게 한숨 쉬면 있던 복도 다 나가요”라며 조언했다. 제수호는 “세탁비 안 받아도 되니까 가시라고요”라며 발끈했고 심보늬는 “이거라도 받으세요. 금의환향하는 부적이에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해요. 그리고 돈 벼락 바라지 말고 몸을 써요. 관상이 머리보다 몸이 나아요. 힘내라 청춘. 파이팅”이라며 부적을 건넸다. 사진=MBC ‘운빨로맨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中 나가수’ 황치열 9년 만에 첫 싱글

    ‘中 나가수’ 황치열 9년 만에 첫 싱글

    가수 황치열이 오는 26일 신곡을 발표한다. 소속사 하우엔터테인먼트는 중국 후난(湖南)위성TV ‘나는 가수다 시즌4’(我是歌手4)에서 3위를 하고 금의환향한 황치열이 국내 팬들을 위해 스페셜 싱글 ‘너 없이 못 살아’를 선보인다고 21일 밝혔다. 이 노래는 9년의 무명 시절을 거친 그가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후 처음 발표하는 신곡이다.
  • 황정음 류준열, 질투 부르는 ‘다정샷’ 첫사랑 이수혁 끼어든다 ‘운빨로맨스’ 합류

    황정음 류준열, 질투 부르는 ‘다정샷’ 첫사랑 이수혁 끼어든다 ‘운빨로맨스’ 합류

    황정음 류준열의 호흡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운빠로맨스’에 배우 이수혁이 합류한다. 6일 소속사 스타제이엔터테인먼트 측에 따르면 이수혁이 황정음 류준열 주연 MBC 새 수목드라마 ‘운빨로맨스’(극본 최윤교, 연출 김경희)에 출연을 확정했다. ‘운빨로맨스’에서 이수혁이 연기하게 된 최건욱은 어렸을 때 캐나다로 유학 간 후 테니스계의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인물이다.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후 쏟아지는 러브콜과 함께 금의환향 하게되는 그는 귀국 후 어린 시절 이웃사촌이자 첫사랑이던 심보늬(황정음 분)와 재회하게 되며 다시금 심보늬에 대한 마음을 키워나가고, 제수호(류준열)와는 심보늬를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를 형성해 로맨스의 주축을 담당하게 된다. 이수혁 소속사 측은 “상반기 기대작 중 하나인 드라마에 참여할 수 있게 된 만큼 배우 본인도 테니스 연습과 캐릭터 연구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며 “지금까지 보여드렸던 이수혁의 매력과는 또 다른 따뜻한 매력에 기대를 모아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운빨로맨스’는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맹목적으로 미신을 맹신하는 여자 심보늬가 수식과 과학에 빠져 사는 공대 남자 제수호를 만나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내는 로맨틱 코미디. 심보늬 역에는 로코퀸 황정음이, 제수호 역에는 ‘응답하라 1988’로 많은 사랑을 받은 류준열이 출연을 확정해 방송 전부터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황정음 류준열 이수혁이 출연하는 ‘운빨로맨스’는 ‘굿바이 미스터 블랙’ 후속으로 5월 방송 예정이다. 사진=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원윤종 “1위에 올랐지만…” 윤성빈 “1위에 오를 때까지”

    원윤종 “1위에 올랐지만…” 윤성빈 “1위에 오를 때까지”

    “평창에서도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왔다” 올겨울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국민을 감동시킨 썰매 대표팀이 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봅슬레이의 원윤종(32·강원도청)-서영우(25·경기도BS경기연맹), 스켈레톤의 윤성빈(22·한국체대)이 트로피를 손에 든 채 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자 마중 나온 팬들은 ‘겁없는 천재 윤성빈’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로 환영했다. 대표팀은 지난해 11월부터 유럽과 북미에서 열린 국제대회의 메달을 휩쓸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원윤종-서영우는 올 시즌 8차례 있었던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 월드컵 대회에서 금메달 2개, 동메달 3개를 따내며 세계랭킹 1위에 올라섰고 윤성빈도 월드컵 금 1, 은 3, 동 2개를 따내 세계랭킹 2위가 됐다. 원윤종은 “세계랭킹 1위에 올랐지만 부족하다. 마음을 낮추고 보완해 나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영우는 “주변의 도움이 없었으면 못 거뒀을 성적이다. 1년 뒤에는 스타트와 드라이빙 모두 만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연거푸 은메달에 만족했어야 했던 윤성빈은 ‘그래도 잘했다’는 주변의 격려에도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윤성빈은 “2인자는 말이 없다. 1위에 오를 때까지 묵묵히 타겠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썰매 대표팀은 이날 공항에서 곧바로 평창으로 이동해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에서 진행 중인 IBSF 사전인증 절차에 참여할 예정이다. 건설 중인 시설을 점검하기 위해 코스에서 시범주행을 펼치는 것이다. 이후 오는 10일부터는 다시 훈련에 돌입해 평창에서의 금메달을 위한 담금질을 재개한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빙상 남매들 금의환향… 두근두근 평창

    빙상 남매들 금의환향… 두근두근 평창

    금빛 빙속 남매들이 돌아왔다.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2016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합작하며 활약한 한국 대표선수들이 1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것이다. 밝은 표정으로 입국장에 들어선 이들은 한목소리로 평창동계올림픽에서의 선전을 다짐했다. 여자 500m 스피드스케이팅에서 1, 2차 레이스 합계 74초859로 금메달을 딴 이상화(27·스포츠토토)는 “그동안 계속 1등만 해오다가 2위권 밖으로 물러난 적이 있었는데 사실 부담이 많이 됐다. 하지만 다시 정상을 되찾으니 기분이 좋다”며 2013년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이후 3년 만에 ‘빙속 여제’ 자리를 탈환한 소감을 밝혔다. 최근 변경된 현 국가대표 선발 규정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던 그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몰랐던 부분을 많이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이라면서 “좋은 경험이 됐다”고 털어놨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에서 아시아 최초로 금메달을 딴 이승훈(28·대한항공)은 “매스스타트는 레인이 정해지지 않은 오픈 레이스다. 아무래도 쇼트트랙을 하면서 몸에 밴 습관 때문에 외국 선수들보다 유리한 점이 많았다”며 “이번 대회를 앞두고 쇼트트랙 훈련에 집중해 추월할 때 능력이 더 좋아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평창올림픽까지 2년 남았다. 아마 현역 생활도 비슷하게 남은 것 같다”며 “아시아에서 전무후무한 선수로 은퇴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날 인천국제공항에는 네덜란드에서 열린 2015~16 ISU 쇼트트랙 월드컵 6차 대회를 치르고 귀국한 대표 선수들도 등장했다. 여자 1000m에서 이번 시즌 첫 금메달을 딴 노도희(21·한국체대)는 “꼭 따고 싶었다. 컨디션이 잘 맞아떨어지는 등 여러모로 운이 따른 대회였다”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남자 1000m 1차 레이스 결승에서 이번 시즌 첫 금메달을 딴 박세영(23·화성시청)도 “여자 대표팀과 비교해 그동안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내가 남자 대표팀에 금메달을 안겨 줘 다행스럽다”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김현회의 축구싶냐] ‘영원한 청룡의 주장’ 故정병탁을 기리며

    [김현회의 축구싶냐] ‘영원한 청룡의 주장’ 故정병탁을 기리며

    한 명의 위대한 축구인이 세상을 떠났다. 故정병탁 감독이 지난 10일 향년 74세의 나이로 하늘로 간 것이다. 어린 세대들에게는 생소한 인물일수도 있지만 고인이 가는 길에 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한국 축구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던 故정병탁 감독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고인이 걸어온 발자취가 곧 한국 축구의 발자취였다. ‘축구판 실미도 부대’ 양지에 간 정병탁정병탁은 1942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그리 큰 키는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빠른 발을 앞세워 축구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축구 명문인 배재고를 거쳐 연세대학교 1학년인 1964년부터는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이후 정병탁은 한국 축구의 역사와 같이 하기 시작했다. 군팀이 상한가를 쳤던 1960년대 해병대에 입대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간 정병탁은 대표팀에서도 주축 레프트윙으로 활약했다. 그런데 이때 정병탁을 비롯한 한국 축구 역사에 큰 획을 그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북한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며 세계의 주목을 받자 체제의 우월성을 자랑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축구팀을 결성했기 때문이다. 바로 ‘축구판 실미도 부대’였다. 정권 실세인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나선 창단한 이 팀은 강제로 각 팀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이들을 뽑아 들였다. 국가대표팀도 아닌 곳에서 강제로 선수를 빼가는 일이 벌어졌지만 그 누구도 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린다던 중앙정보부의 지시였기 때문이다. 팀 이름도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중앙정보부 슬로건에서 ‘양지’를 따 왔다. 물론 당대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정병탁도 해병대에서 양지로 옮겨야 했다. 정병탁을 비롯해 김호, 김정남, 조정수, 서윤찬, 허윤정, 김삼락, 이회택, 임국찬, 이세연 등 쟁쟁한 선수들이 이렇게 양지라는 한 팀에 모였다. 쌀 한 가마니에 4000원 하던 시절에 무려 매달 2만 5000원이라는 엄청난 급여가 제공됐고 선수단 전원이 중앙정보부가 위치한 서울시 이문동에서 숙소 생활을 하며 천연 잔디 구장을 마음대로 사용했다. 또한 중앙정보부는 양지축구단 활동을 군 복무로 인정, 병역 혜택까지 부여했다. 식탁에는 매일 고기 반찬이 올랐다. 심지어 서독과 프랑스, 스위스, 그리스 등을 도는 105일의 유럽 전지훈련도 떠났다. 물론 이 대단한 팀의 중심에는 정병탁이 있었다. 메르데카컵을 품은 청룡팀의 주장 정병탁은 소속팀 양지의 주축으로 활약하면서 1970년에 출범한 국가대표 1진 청룡의 주장까지도 맡고 있었다. 당시 대표팀은 1진 청룡과 2진 백호로 나뉘어 운영 중이었는데 청룡에 직면한 과제는 바로 메르데카컵 우승이었다. 지금은 그 권위가 떨어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메르데카컵은 아시아 최강을 가리는 최고의 대회였다. 1970년 당시 한국의 청룡을 비롯해 태국, 싱가포르, 일본, 인도네시아, 홍콩 등 만만치 않은 상대 12개 나라가 치르는 이 대회에는 전국민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1차전 태국과의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한국은 두 번째 홍콩과의 경기에서도 비기며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3차전 인도와의 경기 역시 흐름이 좋지 않았다. 먼저 두 골이나 내주며 끌려간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청룡의 주장인 정병탁이 나섰다. 한 골을 따라간 한국은 후반 25분 정병탁의 크로스를 박이천이 동점골로 기록했고 10분 뒤에 마침내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정병탁이 왼쪽 구석에서 올린 크로스를 이회택이 헤딩골로 연결, 극적인 3-2 역전승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정병탁은 이날만 두 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한국 축구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당시 결승 상대는 버마였는데 버마는 예선에서 인도를 2-0으로 완파한 강호였다. 한국으로서는 메르데카컵을 가져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전까지 공동 우승을 한 적은 있어도 단독 우승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한국은 부담감을 안고 경기에 나서야 했다. 3만 5000여 명이 들어찬 가운데 버마와의 결승전이 시작되자 두 팀은 팽팽하게 맞섰다. 0-0의 균형이 이어지던 전반 33분 마침내 이 경기의 유일한 골이 정병탁의 발을 통해 시작됐다. 박이천에게서 패스를 이어받은 정병탁이 이 공을 완벽하게 이회택에게 넘겨줬고 이회택이 날린 슈팅이 버마 골문을 가른 것이었다. 후반 막판 정병탁은 중앙선을 돌파하면서 노마크 찬스를 만들어 슈팅으로 버마 골망을 한 번 더 출렁였지만 아쉽게도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정병탁은 이날 경기에서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감격적인 우승을 확정지었다. 12번이나 메르데카컵에 나서고도 1960년 말레이시아와 공동 우승, 1965년 중국과 자유 중국과 공동 우승, 1968년 버마와 공동 우승을 차지한 게 전부였던 한국의 첫 단독 우승이었다. 그의 충격적인 대표팀 은퇴 발표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기뻐했다. 그리고 시상식이 열리는 순간 ‘청룡’의 주장 정병탁이 말레이시아 라만 수상으로부터 메르데카컵을 건네받더니 번쩍 들어올렸다. 한국이 그토록 염원하던 메르데카컵을 단독으로 품는 순간이었다. 귀국 길에도 수많은 환영 인파가 몰릴 만큼 국민들의 성원 또한 대단했다. 팀의 주장 정병탁은 모든 국민이 바랐던 메르데카컵을 들고 당당히 귀국했다. 지금이야 메르데카컵 우승에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메르데카컵 우승은 아시아 정복을 뜻할 만큼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대회였으니 국민들의 함성이야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또한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세 개나 기록한 주장 정병탁의 인기 역시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소속팀이었던 양지는 김형욱이 1970년 실각하면서 입지가 줄어 들었고 결국 흐지부지 흩어졌다. 정병탁도 양지를 떠나 신탁은행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무려 8년 동안 대표팀 생활을 했고 메르데카컵에만 6번을 출전했던 이 대단한 선수의 미래에 많은 이들이 희망을 안고 있었다. 해외 원정 경기만 18번을 치르면서 경험도 많이 쌓은 정병탁은 한국 축구를 계속 짊어지고 갈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때 정병탁이 한국 축구계가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을 했다. “이제 대표팀에서 은퇴하겠습니다.” 아무리 선수 생명이 짧았던 1970년대라고 하더라도 28세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그의 대표팀 은퇴 소식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람들은 메르데카컵을 들고 금의환향하던 정병탁에게 대표팀 은퇴를 번복해달라고 매달렸다. 고별전 보기 위해 모여든 1만여 팬들그래도 정병탁의 고집은 꺾을 수가 없었다. 대표팀 은퇴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정병탁은 이렇게 답했다. “이제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어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싶습니다. 또한 가정과 직장에 충실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병탁의 말을 그대로 믿는 이들은 없었다. 김용식이 43세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갔고 당시 청룡팀 트레이너를 맡은 우상권 또한 36세까지 현역으로 뛰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28세의 창창한 선수가 체력의 한계를 느껴 대표팀을 떠난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주변의 추측이었지만 정병탁이 한창의 나이에 대표팀을 박차고 나온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청룡팀이 선수들에 대한 기본적인 대우도 해주지 않았던 데 따른 불만 때문이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병탁은 메르데카컵에서 단독 우승을 차지하고 1970년 8월 19일 귀국한 뒤 닷새만을 쉬고 또 다시 청룡팀 합숙훈련에 들어가야 했다.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에다 양지 시절 받던 월급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로지 훈련에만 전념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대표 선수 생활이 끝나면 미래에 대해 그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았고 가정 생활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당시 상황상 애국심만을 강요하며 나머지 모두를 포기해야 하는 분위기에 정병탁이 반기를 든 것이었다. 정병탁은 그렇게 28세의 이른 나이에 대표팀에서 물러났고 주장 완장을 김정남에게 넘겼다. 그가 애국심이 없어 대표선수 자격을 일찌감치 반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병탁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 축구를 위해 양지에 묶여 있고 청룡에 묶인 채 모든 걸 포기해야 했었다. 그는 A매치 통산 39경기 출전에 11골의 기록을 남겼다. 1970년 9월 12일 서울운동장에서 국가대표 상비군 간의 평가전이 펼쳐졌다. 그런데 이 비공식 경기에 모인 관중수만 해도 무려 1만여 명이 훌쩍 넘었다. 이유는 단 하나, 청룡팀을 떠나는 정병탁이 마지막으로 청룡의 유니폼을 입고 고별전을 치렀기 때문이다. “정병탁 보러 가자.” 사람들은 청룡팀의 최초 주장인 정병탁의 모습을 보기 위해 비공식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운동장으로 몰렸다. 이 정도로 정병탁은 현역 생활 내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그렇게 정병탁은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대표팀을 떠났고 이후 신탁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 오랜 시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됐다. 사람들은 새로운 스타들의 등장이 이어지자 정병탁이라는 이름은 서서히 잊어갔다. 지도자가 돼 돌아온 정병탁의 성공시대그런 정병탁이 다시 축구계로 돌아온 건 1984년이었다. 모교인 연세대 축구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병탁 감독은 연세대에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일을 냈다. 부임 후 5개월 만에 치른 제29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 파죽지세로 결승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결승 상대인 중앙대의 수장이 바로 김기복 감독이었다는 점이다. 40대 초반인 정병탁 감독과 김기복 감독은 양지와 청룡에서 3년 가까이 활약했던 둘도 없는 선후배 사이였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정병탁 감독이 이끄는 연세대는 중앙대를 가볍게 2-0으로 제압하고 무려 36년 만의 감격적인 우승을 확정지었다. 대학 무대에 첫발을 내딛은 정병탁 감독은 5개월 만에 지도자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누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잊혀졌던 정병탁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정병탁 감독도 연세대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김봉길 스카우트 작전’이었다. 1984년 첫 우승을 경험한 정병탁 감독은 곧바로 고교 최대어인 부평고 김봉길 잡기에 나섰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팀들의 스카우트 표적이 됐던 김봉길은 사실 고려대행이 점쳐지고 있었다. 부평고 고명수 코치와 고려대 남대식 코치의 사이가 돈독해 김봉길은 당연히 고려대행이 점쳐졌다. 그런데 정병탁 감독이 나섰다. 사실상 김봉길의 고려대행이 유력한 상황에서 정병탁 감독이 김봉길과 그의 부모를 설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김봉길과 그의 부모 역시 고려대로 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정병탁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에 대해 김봉길은 이런 기억을 떠올렸다. “연세대 훈련이 저녁 6시에 끝나면 저녁 8시쯤 감독님께서 꼭 저희 집 앞으로 오셨어요.” 그렇게 무려 한 달 동안 정병탁 감독은 매일 저녁 김봉길의 집 앞으로 가 그의 부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선수층이 두터운 고려대보다는 아들이 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연세대를 선택해 달라”는 진심을 전했다. 그리고 김봉길은 닫혀 있던 마음을 열고 결국 연세대를 선택했고 연세대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정병탁 감독은 아주대 행이 유력했던 거제고의 최청일 또한 이런 식으로 설득해 연세대로 데려올 수 있었다. 김봉길은 정병탁 감독을 이렇게 기억했다. “옷도 잘 입는 멋쟁이셨고 굉장히 화끈하면서 남자다우셨어요. 한 번은 우리가 우승을 한 뒤 뒷풀이를 한다고 선수단 전체를 나이트클럽을 데려가기도 하셨죠. ‘오늘은 내가 쏠 테니 마음껏 놀아라’ 이 말에 다들 반했다니까요. 감독님 모시고 나이트클럽에 갔던 건 참 독특한 추억이죠.”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전남과의 만남정병탁 감독은 연세대에서 지도 능력을 인정받고 이듬해에는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감독까지도 겸하기 시작했다. 정병탁 감독의 지도자 인생도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이때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1987년 1월 개인적인 일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강릉을 떠나 서울로 오던 정병탁 감독의 승용차가 마주오던 고속버스와 정면충돌하는 큰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정병탁 감독은 중상을 입고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정신을 차린 그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내가 그 자리에서 바로 숨졌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가정 생활을 위해 이른 나이에 대표팀까지 포기해야 했던 정병탁 감독에게는 아내의 죽음이 엄청난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곧바로 일어섰다. 그를 기다리는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털고 일어난 정병탁 감독은 1989년 또 다시 정상에 섰다. 제37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그것도 1학년생 김도훈과 강철 등을 앞세워 이뤄낸 대단한 성과였다. 특히나 서울 대신고에서 공격수로 활약했던 강철을 대학 진학 후 정병탁 감독이 수비수로 전환시킨 게 ‘신의 한 수’였다. 아마도 정병탁 감독이 없었더라면 강철이라는 훌륭한 수비수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철 스스로도 “처음에는 달갑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할 정도다. 결승에서는 프로선수 네 명이 포함된 포철 아마팀을 4-1로 꺾는 등 7경기에서 20득점하는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렇게 연세대를 아마추어 최강으로 이끈 정병탁 감독은 1992년 연세대 감독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숱한 스타 플레이어들을 배출해냈다. 그가 다시 돌아온 건 1994년이었다. 당시 전남 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팀 제8구단 창단을 앞두고 초대 사령탑으로 정병탁 감독의 이름이 거론된 것이다. 전남 여수 출신인 그가 고향팀 지휘봉을 잡는 모습이 조금씩 그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연고내에는 차경복 전 경희대 감독과 정태훈 한양공고 감독, 남대식 고려대 감독, 서현옥 중앙대 감독 등 쟁쟁한 인물들이 많았다. 이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전남 진도 출신 허정무 감독이 가장 강력한 경쟁 후보였고 연고는 없지만 지명도가 워낙 높은 이회택 전 포철 감독 또한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넘게 긴 토론이 이어진 후 최종 선택은 정병탁 감독이었다. 허정무 감독이 포철 감독으로 부임하고 있어 빼오는 게 무리가 있었고 나머지 후보군 중에는 정병탁 감독이 가장 적임자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청룡팀 최초의 주장’ 故정병탁을 기리며청룡의 초대 주장이던 그가 이번에는 전남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길조를 상징하는 용을 의인화한 전남의 마스코트가 모습을 드러냈고 팀 이름은 전남드래곤즈로 명명됐다. 전남의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한 정병탁 감독은 박경훈 코치와 여범규 코치를 선임한 뒤 곧바로 선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드래프트를 통해 대졸 신인 9명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훗날 전남의 상징이 된 김도근(한양대)도 포함돼 있었다. 이뿐 아니라 실업팀에서 뛰던 선수들을 대거 발탁했다. 전남의 전설적인 존재인 노상래와 김태영 등도 이때 정병탁 감독이 선택한 작품이었고 기존 프로팀에서 활약하던 김봉길(유공)과 박창현(포철) 등도 데려왔다. 정병탁 감독이 선택이 아니었더라면 노상래와 김태영, 김도근 등 ‘전남맨’들은 역사에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광양전용구장이 광양시민뿐 아니라 여수와 순천 지역 주민들까지 몰릴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정병탁 감독 때문이었다. 여수 출신인 그가 고향에 내려와 프로팀 감독이 되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전남은 1995년 5월 7일 역사적인 K리그 데뷔전에서 전북을 상대로 김봉길의 두 골과 노상래의 한 골을 앞세워 3-1 승리를 따내는 등 신생팀답지 않은 선전을 이어나갔고 결국 8개 팀 중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비록 엄청난 성과는 아니었지만 현재 전남의 토대를 만든 건 정병탁 감독의 공이 컸다. 하지만 정병탁 감독은 1996년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며 이 자리를 허정무 감독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정병탁 감독은 이해 마라도나가 소속된 보카주니어스의 방한 경기 때 잠시나마 한국 대표팀을 지휘한 뒤 주무대에서 쓸쓸히 사라졌다. 이후 정병탁 감독은 과거 양지팀 시절 동료들과 서울시 실버축구단에 속해 사회 공헌 활동을 하기도 했고 경기도 고양시에 ‘정병탁 어린이축구교실’을 창단해 유소년 선수 육성에 힘쓰기도 했지만 축구계 주류 무대에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저께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정병탁 감독이 향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청룡팀 최초의 주장이자 연세대를 아마추어 최정상을 이끈 지도자이면서 전남의 초대 감독을 맡았던 그는 늘 자신의 자리에서 가장 빛이 날 때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故정병탁 감독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고인이 한국 축구를 위해 보여줬던 헌신을 잊지 않겠다. 이제는 故정병탁 감독이 먼저 하늘로 보낸 사모님과 행복하셨으면 한다. 청룡팀 최초의 주장으로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故정병탁 감독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축구 칼럼니스트 김현회 footballavenue@nate.com
  • [서동철 칼럼] 조성진과 문화산업

    [서동철 칼럼] 조성진과 문화산업

    대부분의 청중은 평생 그렇게 오래 환호하고 박수를 친 기억이 없지 않았을까 싶다. 주인공인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처음 경험하는 환대였을 것이다. 전 세계 어떤 연주회장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환호성이었다. 그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의 모습이다. 1등부터 6등까지 입상자가 초청됐지만, 사실상 우승자 조성진의 금의환향(錦衣還鄕)을 축하하는 자리라는 것은 다른 출연자들도 이미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 음악사에서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은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입상했다는 소식 자체는 이제 전혀 놀랍지 않다. 지난해만 해도 조성진에 앞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벨기에의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폴란드의 쇼팽 콩쿠르,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의 하나로 권위를 인정받는다. 그럼에도 조성진의 경우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거창하게 음악사까지 거론한 것은 회사 동료의 말 한마디 때문이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자 조성진의 쇼팽 연주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음악담당 기자를 상당 기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말이 통할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그래도 하는 일이 다른 회사 동료 사이에 피아니스트를 화제로 대화를 나눈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더욱 놀란 것은 그가 ‘조성진의 수상’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조성진의 연주’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동료는 조성진이 아니라도 음악을 좋아하고 자주 들을 것이다. 그래도 그의 입을 열게 한 계기는 조성진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조성진의 음악보다 그의 단아한 외모에 반한 소녀 팬도 왜 그가 1등을 차지했는지 궁금하고 확인하고 싶어 한다.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실황 음반이 벌써 8만 5000장 넘게 팔리고, 갈라 콘서트를 한 차례 추가해도 순식간에 매진되어 암표가 나돈 것도 기존 음악팬에 새로운 ‘조성진 팬덤’까지 대거 가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정부를 대표해 축전을 보냈다. “우리나라 음악인들의 뛰어난 예술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한편 클래식 음악의 저변이 더 넓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앞으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도록 더욱 매진해 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김 장관의 기대는 이미 충족되었다고 해도 좋다. 사실 아담 하라셰비치와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개릭 올슨, 크리스티안 지머만, 당타이손, 스타니슬라프 부닌, 윤디로 이어지는 면면을 보면 조성진은 쇼팽 콩쿠르 우승 자체로 우리 음악인의 예술성을 충분히 세계에 알렸다. 음반 판매고와 갈라 콘서트의 열기를 보면 저변 확대도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당부는 오히려 문체부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문체부는 ‘돈을 잘 쓰는 방법’을 고민하는 부처로 태어났지만, 어느 사이 ‘돈을 잘 버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부처로 탈바꿈했다. 지금 문체부의 관심은 당장 돈이 벌리는 한류(韓流)에 집중된 듯하지만, 한류가 만들어 내는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1월 수출이 지난해보다 18.5%나 감소한 것도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에만 이유를 돌릴 것이 아니라 값싼 물건을 많이 내다 파는 시대가 지났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문체부가 문화산업에 힘을 기울이는 것은 미래 먹거리를 창조하는 차원에서도 당연하다. 하지만 문화산업 자체에만 치중해 문화로 높아진 대한민국의 이미지로 부가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당장 1억원을 넘나드는 현대자동차의 신형 ‘제네시스 EQ900’을 해외 소비자들이 한국의 무엇을 믿고 선뜻 구입할 것인가 고민해 봐야 한다. 이미지를 만드는 마케팅에 조성진보다 좋은 소재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 돈을 잘 써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은 많다. 조성진이나 음악 뿐이겠는가. dcsuh@seoul.co.kr
  • 문형표 국민연금이사장 취임 노조 반발

    문형표 국민연금이사장 취임 노조 반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자 노조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는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늦게 문 이사장의 취임 소식이 알려지자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사옥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문 이사장은 이날 노조의 눈을 피해 취임식장에 들어갔고, 공단 측은 식장 출입문을 봉쇄했다. 이에 조합원 20여명은 새해가 들어서도 ‘문형표는 이사장 자격 없다’, ‘메르스 확산 주범의 낙하산 인사는 안된다’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문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홍준성 국민연금지부 사무부처장은 “메르스 사태의 책임자가 공단 이사장으로 금의환향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문 이사장은 당장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문 이사장은 지난 4일 새해 첫 출근길에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에 막혀 오전 9시가 넘어서야 사무실에 들어갔다. 노조 관계자는 “인력 문제 때문에 계속 출근 저지를 할 수 없지만 지속적으로 피케팅하고 시민단체와 연대해 문 이사장의 사퇴 여론을 형성하겠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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