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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은방서 손님인 척 목걸이 들고 달아난 3인조 검거

    금목걸이를 사는 척 하며 착용한 후 그대로 훔쳐 달아난 10~20대 3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경기 이천경찰서는 금은방에서 목걸이를 훔친 혐의(특수절도)로 A(20)씨 등 3명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6일 밝혔다. A씨 등은 지난 5일 낮 12시쯤 이천의 한 금은방에서 15돈짜리 금목걸이 250만원 상당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동네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손님으로 가장해 목걸이를 착용한 후 가게 앞에 준비해 둔 렌터카를 타고 도주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주변 CC(폐쇄회로)TV 영상 등을 분석해 약 4시간 후 용인시에서 이들을 검거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피의자들을 상대로 사건경위와 추가 범죄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방침이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취업비자 입국,금은방서 절도행각 벌인 우즈베크스탄인 부부 검거.

    방문 취업비자로 국내에 입국한 뒤 금은방을 돌며 귀금속 수백만원 어치를 훔쳐 출국하려 한 우즈베키스탄인 부부가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 부산진경찰서는 절도 혐의로 A(30) 씨를 구속하고 아내 B(25)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지난달 9일 오후 4시쯤 부산진구 귀금속 상가에서 주인 몰래 진열된 160만원 상당의 18K 금목걸이를 훔치는 등 부산과 서울 일대 금은방에서 같은 수법으로 4차례에 걸쳐 700만원대 귀금속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뒤 도주 경로를 뒤쫓아 인천의 한 빌라에서 출국을 준비중이던 이들을 검거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대구·전주 금은방 턴 무서운 10대들

    훔친 차를 타고 다니며 대구광역시와 전북 전주시의 금은방을 턴 10대 4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전북 전주덕진경찰서는 특수 절도 혐의로 A(19)군 등 3명과 B(18)양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23일 밝혔다. 이들은 전날 오후 1시쯤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한 금은방에서 45돈짜리 금목걸이 3개(900만원 상당)를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혼자 금은방에 들어선 A군은 종업원에게 “금목걸이를 사고 싶다. 상품을 보여달라”고 말을 걸었다. 금목걸이를 살피던 그는 재차 “다른 금목걸이도 보여달라”고 요구했고, 종업원이 한눈을 판 사이 금붙이를 들고 출입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때 금은방 앞 도로에서 대기하던 쏘나타 차량에 올라 B양 등 3명과 함께 도주했다. 피해 신고를 받고 용의자 추적에 나선 경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으로 도주로를 파악, 광주 시내에서 이들을 모두 붙잡았다. 같은 학교에 다니다 중퇴한 이들은 비슷한 수법으로 대구 시내에서도 2차례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A군 등이 범행에 이용한 쏘나타는 경기도 이천 지역에서 훔쳤다. 앞서 경북 영덕에서 훔친 모닝 차량은 도롯가에 버렸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범행 동기와 여죄를 추궁하고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BMW 등 고급차 10여대 훔쳐 돌아다니다 기름 떨어지면 버린 중학생 둘 구속

    전국을 돌며 BMW 등 고급차만 훔쳐 타고 돌아다니다 기름이 떨어지면 버리기를 일삼은 10대 중학생들이 구속됐다. 충남 논산경찰서는 17일 김모(14·중 3년)군 등 중학생 2명을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했다. 김군 등은 지난달부터 청주, 익산, 군산, 논산 등을 돌며 BMW, 아우디, 푸조, 기아 K9 등 고급 승용차 10여대를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액은 모두 수억원에 이를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이들은 고급차를 골라 문을 잡아당긴 뒤 열리면 콘솔 박스 등에 보관된 스마트키로 시동을 걸어 타고 다녔고, 기름이 떨어질 때쯤 도로변에 버린 다음 또 다른 고급차를 훔쳐 타고 다니기를 반복했다. 김군 등은 경찰에서 “차를 훔친 건 단순히 이동하기 위해서다. 고급차일수록 차 안에 돈 되는 것이 있을 가능성이 커 그런 차들만 노렸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김군 등은 차 안에 있던 현금과 신용카드 등을 훔쳐 생활비로 썼고, 익산의 한 금은방에서 훔친 카드로 금을 사려다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수상히 여긴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나중에 현금화하기 쉬워 금을 구입하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 모 중학교 친구 사이인 김군 등은 두 달 전쯤 유급을 당한 뒤 모텔을 전전하며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 경찰 관계자는 “둘 다 운전면허증은 없었으나 이 중 한 명이 카센터에서 일할 때 운전해본 경험이 있어 운전이 가능했다”고 했다. 논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하루에 금은방 3곳 턴 여성 절도범 구속

    하루에 금은방 3곳을 턴 20대 상습 여성 절도범이 경찰에 붙잡혔다. 전북 전주완산경찰서는 절도 혐의로 A(26·여)씨를 구속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지난달 29일 오전 4시쯤 전주시 완산구 한 찜질방에서 훔친 신용카드로 목걸이와 반지 등을 결제하고, 금은방 주인이 한눈을 판 사이 다른 귀금속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찜질방을 빠져나와 이날 낮 12시쯤 완산구 평화동의 한 금은방에서 훔친 카드로 46만 8000원 상당의 귀금속을 샀다. 이어 고사동 한 금은방으로 이동, 주인에게 ‘금붙이를 팔려고 한다. 감정해달라’며 시선을 돌리고 1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쳤다. A씨는 곧바로 덕진동 또 다른 금은방으로 가 같은 수법으로 절도 행각을 이어갔다. 피해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분석해 A씨를 붙잡았다. 조사 결과 그는 지난 8월부터 최근까지 전주 시내에서 14차례에 걸쳐 500만원 상당의 귀금속 등을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A씨는 찜질방을 전전하며 생활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편의점과 화장품 매장, 노래방 등에서 닥치는 대로 물건을 훔쳤다”고 밝혔다. 경찰은 A씨를 구속하고 여죄를 조사하고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골목길의 재발견, 부산 유명 골목길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상권으로 변신

    골목길의 재발견, 부산 유명 골목길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상권으로 변신

    부산의 골목들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는 상권으로 변신한다.중구 대청로 99번길은 부산근대역사관 맞은편 골목으로 풍부한 역사콘텐츠가 강점이다. 1924년 건립돼 부산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성공회 부산 주교좌성당이 골목 중앙에 있고 위쪽으로는 부산기상관측소(부산시 기념물),복병산 배수지(등록문화재)가 있다. 지역 주민들의 주 통행로로 이용됐지만, 지금은 쇠락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하지만 슈퍼마켓, 세탁소, 금은방 ,미용실 ,식료품 가게 ,양산공장 ,식당 등 다양한 상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오는 28일 벡스코에서 열리는 부산 골목 마켓 페스티벌에도 참여한다. 이 골목에는 ‘화합하고 서로 행복하기,소망’을 주제로 업소별 특성을 고려한 간판과 외부 인테리어 등 ‘99번길’ 이미지를 강조한다. 또 인근에는 보수동 책방골목, 또따또가 등 역사 인프라 가 있어 시너지 효과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남구 문현동 목공골목은 동서고가로와 번영로 출입구 인근에 있지만, 낡은 외관으로 주변 경관을 해치고 있다. 애초 문짝이 주요 생산품목이었으나 재개발에 밀려 단독주택이 사라지면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 골목은 ‘목공골목 중심에 잠재된 장인의 가� ?� 주제로 노후벽면을 정비하고 건물 특성과 정체성에 맞는 디자인을 입힌다. 도로변에 있는 축대벽에는 골목 스토리 조형구조물을 설치해 포토존과 테마 공간으로 꾸미고 목공산업 활성화 방안도 마련한다. 골목 활력 증진 사업 관련 문의는 부산경제진흥원 창업지원본부(051-600-1856,1867)로 하면 된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우리 문화재, 우리 손으로 파괴한 것 많아 통탄스러워”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우리 문화재, 우리 손으로 파괴한 것 많아 통탄스러워”

    문화재 수난사 연구하는 정규홍씨가 말하는 ‘문화재’“우리 문화재의 과거사를 정리하다보면 ‘정말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가슴 아픈 일이 많아요. 예를 들면 일제 강점기 골동품상 이희섭(李禧燮)은 1934년부터 1941년까지 일본에서 조선대공예전람회를 7차례 엽니다. 전람회 한 번에 우리 문화재 1500점에서 3000점을 도쿄와 오사카에서 전시하고 모조리 팔아치웁니다. 이희섭은 도록을 7권 만들었지요. 도록에 실린 문화재 일부가 일본 국보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7차례 전람회에 진열된 문화재가 1만 4516점입니다. 이뿐 아니라 이희섭은 서울에 ‘문명상회’라는 본점을 두고 도쿄와 오사카에 지점을 개설해 우리 문화재를 상설 전시해 팔아먹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으로 팔려나간 문화재가 최소 3만점에서 5만점에 이를 겁니다. 한 나라의 문화재가 통째로 옮겨진 것인데요, 한 개인이나 상인이 그렇게 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습니다. 통탄할 일이지요.” ●“조씨 문중, 가전 서적 700여권 일본에 스스로 갖다바쳐” 우리 문화재 수난사를 30년째 연구해 정리하는 정규홍(62)씨는 광복절 다음날인 1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알아본 일본이 빼앗아 간 것도 있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스스로 갖다바친 것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이완용(1858~1926)은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갑옷과 투구를 바쳤다는 기록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어느 조씨 가문에서는 일본 도쿄대박물관에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서적 700여권을 아주 싼 값에 넘겼다는 기사가 고고학 잡지에 나옵니다.” 어느 문중이냐고 묻자 정씨는 “기사에서 그것은 언급되어 있지 않고, 한자로 조나라 조(趙)가 적혀 있더라.”고 소개했다.정규홍씨는 1981년 교직 연수를 받으면서 석굴암에 대한 일본인들의 참담한 취급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 후 헌책방 등을 돌아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우리 문화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 문화재 수난일지와 우리문화재 수난사, 유랑의 문화재 등을 펴낸 수난 문화재 전문가다. 문화재 수난사를 깊이 있게 연구하기 위해 중학교 교사직도 그만뒀다. 그동안 정부나 관계당국의 지원은 전혀 없었다. 경북지역 문화재 수난사를 쓰면서 용역 의뢰받은 것이 당국의 지원 전부였다. - ‘돈 안 되는’ 우리 문화재 역경사를 정리하는 이유는.☞ 무슨 엄청난 사명감이나 그런 것이 있어 하는 건 아닙니다. 이 일이라는 게 희한하게도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희열감도 있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자존감이랄까 자존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측면도 있고···. 일종의 중독성이 있어요. 한번 빠져들면 잠자면서도 술마시면서도 그 생각이 들고, 꼬투리가 잡히면 잊으려해도 그게 안돼요. 강단에 있는 사람들은 강의 때문에 중도에 끊기는데, 난 그런 것도 없기에 이것 하나만 파고 들어갑니다. ●“문화재 수난사 정리 이유?···중독성에 희열감이죠”- 많이 힘들겠다.☞ 돈 안되는 일을 하니깐 무엇보다 집사람에게 미안하죠. 교직에 있을 때 월급받아 상당액을 이것 연구에 쏟아부었으니깐. 지방에 한번씩 현지 조사 다니면 교통비에 숙박비도 만만찮죠. 책도 사고, 도서관에서 자료 복사도 엄청 합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때 복사비가 한장에 3원이었는데 이젠 50원으로 16배가 됐어요. 문화재 수난사에 관한 책을 냈는데, 잘 팔리는 분야가 아니라서···. 출판사에서 저자에게 책 몇 권 주고 그걸로 끝이예요. 그래도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하니 시간은 잘 갑니다. - 그만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 이번에 ‘요것만 정리하고 손 떼야지’하는 생각이 들 때도 가끔 있지요. 그런데 한 건을 정리하다 보면 다른 게 파생되어 나오고, 그기에서 또 다른 게 파생되어 나오고···. 그러다보면 숙제처럼 이만치 쌓입니다. 그러니깐 계속 손을 놓지 못하고 이러고 있습니다.- 수난 문화재가 그동안 왜 공식적으로 정리가 안 됐나.☞ 1945년 해방 직후에 박물관 관계자들이 우리 문화재에 대해 정리해 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이 우리 문화재와 관련된 고적조사와 유적연구 등에 한국인의 근접을 못하게 했어요. 일본인들이 독점했거든. 해방 이후 이 분야에 관한 지식을 가진 한국 사람이 없었어요. 일본이 떠나고 나니깐 총독부박물관과 경주박물관에 남은 고적조사, 발굴보고서 등의 정리를 전혀 못한 채 박물관에 쳐박혀 있었던거지요. 아직도 다 정리가 안 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유물 목록과 실물과의 대조가 정확하게 안 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인력 부족 탓이지만 국가적으로 재원을 투입해서라도 빨리 했어야 했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예요. ●“일제시대 한국인 유적연구 차단···유몰 목록과 사료 대조 못 해”- 문화재 수난 분야, 처음 연구는 어떻게 했나.☞ 처음엔 마땅한 자료가 없으니 헌책방을 많이 기웃거렸죠. 1981년 이후 헌책방에 다니면서 문화재 관련 책을 사모았죠. 그리고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 축쇄본을 돋보기로 보면서 자료를 모았죠. 또 일본인이 남긴 조사자료와 잡지 이런 것을 위주로 연관지어 보죠. 연관성이 있으면 메모를 해두는 거죠. 예컨대 발굴사업 보고서가 나오면 이게 당시 신문 기사에도 나옵니다. 기사와 고적조사 보고서가 약간 차이가 날 경우가 있거든요. 무덤 발굴의 경우 일본인들이 1차적으로 유물명을 기록하고 바로 박물관에 수장시키지 않고 1년간은 걔네들이 연구를 해요. 그 기간 유물이 분실될 수가 있어요. 실제로 분실이나 망실 그런 문헌이나 문서가 나와 있어요. 이를 비교해서 불법적인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 당시 일본이 얼마나 우리 문화재에 혈안이 됐나.☞ 일본의 각 대학이 잔치를 벌이듯이 우리문화재를 진열해 놓고 경쟁적으로 전람회도 가졌지요. 낙랑 유물부터 그때까지. 도쿄대 공과대와 문과대가 별도로 진열할 정도였으니. 당시 전람회 도록이나 기록들이 감춘 게 없이 매우 정확해요. 일본이 우리나라를 영구 통치할 줄 알았던 게지. 식민지 정착을 위한 하나의 사료로 삼기 위해 우리 문화재를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수집해 가져갔지. 그때 조선에는 1908년 설립된 ‘이왕가박물관’ 뿐이었거든. 1915년 12월에서야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생기면서 법으로 유물 반출이 금지돼 있었지만 자신들이 보고서 작성을 핑계로 얼마든지 일본으로 가져갔지. 이런 단체로는 조선고적연구회가 대표적이지요. 당시 일본 도굴꾼들이 대거 몰려들어 우리나라 무덤을 다 파헤쳤죠. 1908년 이전에 고려 무덤의 경우 거의 다 파괴됐다고 보면 됩니다. 조선실록을 보면 수시로 어느 무덤이 파괴되고, 어떤 무덤은 4~5회에 걸쳐 도굴됐지요. 심지어 대낮에 총칼을 갖다놓고 후손들이 보는 앞에서 도굴하고···. ●“고려 무덤 마구 도굴···日대학들, 우리 문화재 진열 경쟁도”- 해방이 되면서 문화재 수난이 줄었나.☞ 1945년 9월8일 미군이 인천에 진주합니다. 그리고 9월20일 미군 300명이 부산항에 들어오지요. 미군은 가장 먼저 일본 군인의 무장해제와 퇴출이예요. 미군이 부산에 들어오기 전에 눈치빠른 일본인들이 문화재를 잔득 가지고 일본으로 나갔던 거죠. 미군이 10월 말쯤부터 일본 민간인을 퇴출시키죠. 그때 귀국 일본인에게 돈 1000원과 작은 옷보따리 정도만 허용하고 귀중품은 모두 압수했든거죠. 그러니깐 일본인들은 어선같은 것을 빌려서 밀항을 합니다.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와 이치다 지로(市田次郞), 공주에 있던 가루베 지온(輕部慈恩) 같은 이들이 어마어마한 유물을 가져간 것이지요. 이들에 빌붙어 밀한을 도운 게 한국사림이예요. - 미군에 의한 문화재 유출도 있었나.☞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귀국을 원활히 하기 위해 ‘세화인회(世話人會)’이라는 것을 만들었죠. 일본인들의 물품 같은 것을 맡아서 일본으로 보내는 일을 맡은거지요. 당시 서울역에서 화물을 부산으로 보내면 중간인 대전역에서 미군이 화물을 압수해 물자영단(物資營團)에 넘겨버리는 것이지. 그 물자영단 창고를 미군이 관리했는데, ‘우리 문화재나 귀중품은 박물관에 넘기고 나머지는 P.X에 넘긴다’고 말하지만 미군들이 마음대로 가져가거나 처분해버린 경우도 많았죠. 해방전후 골동계에서 유명한 이영섭이 부산에서 미군들과 친하게 지내며 물자영단에 있는 그림 1000점 이상을 싼 값에 샀지. 그가 샀던 그림들이 어떻게 흩어졌는지 알 수 가 없어. 또 한때 현재 심사정(1707~1769)의 그림으로 잘못 알려진 ‘맹호도’ 출처는 흥미롭지. 1946년 한 미군이 골동품 상인 두명을 일본인 창고로 데려갔지요. 골동품 상인들에게 감정을 요청해 감정해 주니 미군이 그 댓가로 주었던 게 맹호도이지요. 나중이 국립중앙박물관이 거금을 주고 사들였지만 미군에 의해 흩어진 문화재도 부지기수예요. ●“미군정기와 6·25 전쟁서 문화재 수난도 어머어마”- 6·25 한국전쟁 때도 문화재가 많이 파괴·유출되었다.☞ 6·25 때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파괴됐지. 성보문화재(불교문화재) 파괴가 가장 심했지요. 유엔군이 주민 소개령을 내리고 초토화작전을 펼쳤던거죠. 소개령이 떨어지니 사찰에선 중요 유물들을 갖고 나옵니다. 작전이 끝나고 돌아가보면 절은 없어지고 재만 남은 거예요. 그러면 그 유물들이 절로 들어가지 못하고 흩어진 것이죠. 전국을 돌아다녀보면 오래된 절인데 건물만 새로 짓고, 유물이 없는 사찰이 많아요. 또 부산으로 피난 간 문화재는 극히 일부인데, 이마저도 용두산 대화재로 많이 불타버렸지요. 미처 피난하지 못한 우리 문화재는 미군들이 찾아내 저희들끼리 나눠 가졌습니다. 예를 들면 종묘에 있는 옥새와 금보(金寶·선왕이나 선비에게 올리는 추상존호를 새긴 도장) 이런 것이 상당히 분실됐지요. 1952년 신문을 보면 미군들이 옥새와 금보를 금은방에 가져와 감정해달라고 하다가 다른 미군에 의해 검거되는 그런 기사가 몇건 나옵니다. - 그 이후엔 문화재 수난이 더 없었나.☞ 1960~70년대에는 왠 도굴이 그렇게 많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때, 일본인 밑에 따라다니면서 도굴을 배운 기술자들이 그렇게 많이 도굴을 해요. 일재 잔재지요. 심지어는 집 짓는다하고 장막을 두르고 밤에 도굴을 하기도 했어요. 이런 유물은 1970년대엔 이삿짐으로 위장해 미국에 갖다나르다 적발된 경우가 많지요. 유물을 모조품처럼 가장해서 밀수출하다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본 밀수전문가들과 한국의 중간 브로커들하고 짜고 가져간 것도 감당을 못할 정도로 많지요.- 지금까지 수난당한 문화재는 몇 점이 되나.☞ 1981년부터 올 4월까지 조사해 파악한 국외유출 문화재는 17만 2300여점에 이릅니다. 이것은 관공서·도서관·박물관 등 공식기록을 비교 조사한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를 포함한 것으로 낙랑시대부터 구한말까지의 유물입니다. 제 조사는 관공서 위주여서 개인소장은 거의 포함돼 있지 않거든요. 오구라가 반출한 문화재의 경우에는 극히 일부인 1100여점만 도쿄박물관에 기증됐고, 나머지 수천점은 일본 전역에 흩어져 있어요. 이런 식으로 개인이 소장한 것을 포함하면 100만점이 해외에 떠돌고 있지 않겠느냐고 추산합니다. ●“파악된 수난 문화재 17만 2300여점···실제론 100만점 넘을듯”- 국외 유출 문화재를 환수하려면 어떻게.☞ 현재 파악된 17만 2300여점은 물론이고 앞으로 소재가 확인되는 문화재에 대해 정부와 민간단체가 합심하여 경로 추적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개인이 하기엔 너무 벅차지요. 어떤 과정을 거쳐 발굴해 소장했느냐는 경로 파악을 위해 고적 조사자료, 잡지에 실린 논문, 신문기사 한 줄까지도 축적해 종합적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이렇게 계속 쌓아나가다 보면 불법성 드러날 것입니다. 불법성이 드러난 것은 환수 운동을 펼칠 수가 있는 것이지요. 한일협정 때의 ‘청구권 포기 규정’ 때문에 정부가 일본에 공식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 환수 부분은 민간단체가 적극 나서야지요. 정씨는 “문화재는 미래 세대에 전해야 할 귀중한 유산”이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혼이자 공동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남아 있는 문화재 가운데 우리 손으로 파괴하는 것 즉, 함부로 관리하고 방치한 것은 없는지 반성해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흥미진진 견문기] 궁궐 가까이 굴곡진 역사의 장… 그 세월의 고단함

    [흥미진진 견문기] 궁궐 가까이 굴곡진 역사의 장… 그 세월의 고단함

    지난 9일 투어단은 종묘 앞에서 모여 건너편 세운상가로 갔다.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종로 대로변부터 세운상가 건물이 있었고 상가 앞쪽에는 노점들이 즐비했었는데, 지금은 앞쪽에 있던 건물은 없어지고 세운상가로 들어가는 넓은 길이 나 있었다. 안내판을 보니 1층은 세운 광장이라고 돼 있고, 9층에는 서울 옥상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세운상가는 철거되기도 하고, 공중보행로로 연결되기도 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종묘 쪽을 바라보니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기와지붕이 살짝 보였다. 그 뒤로 창덕궁, 창경궁이 잇달아 숲을 이루고 있었다. 종묘 전체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종묘 뒤로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이 보였고 북한산과 아차산도 아스라했다. 서울이 어떤 지형을 가졌는지 새롭게 알게 됐다. 피카디리극장 앞을 지나 옛 피맛길을 걸었다. 금은방들이 모여 있었고 국악 교습소도 있었고 떡집이 있었다. 이런 다양한 상점들이 생긴 이유가 이 동네에 기생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낙원 악기 상가 앞에서 ‘세고비아’라는 악기점 간판을 보았을 때 예전에 낙원상가에 기타를 사러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라는 낙원상가는 건물 아래로 차들이 지나다녀서 아주 복잡했었고, 외진 곳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듯했다. 인사동길에 들어서서 본 통문관 건물은 왠지 낯설었다. 인사동에는 공방들도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념품점과 음식점 차지가 된 것 같았다. 종로구청 자리는 정도전의 집터이기도 했다는데 그 터에 얽힌 역사를 들으니 권력의 다툼에 시달린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궐 가까이 있어 온갖 굴곡진 역사의 현장들을 보아온 세월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자리에 수송국민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58개 학급이 있었다고 하니 그 시절의 학부모들도 종로 중심지의 좋은 학교에 자식을 보내기 위해 애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묘에서 사직공원까지 걸어오면서 본 도로명 중에 돈화문로, 삼봉로, 우정국로, 인사동길, 사직로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이날 미래유산투어에서 걸은 길은 조선과 근대사의 중심 길이었다. 전혜경(독서코칭 강사)
  • [영상] 손님인 척 금은방 턴 10대들 검거

    [영상] 손님인 척 금은방 턴 10대들 검거

    손님인 척 금은방에 들어가 금팔찌를 들고 달아난 10대들이 검거됐다. 부산 북부경찰서는 특수절도 혐의로 A(18)군 등 5명을 검거하고 A군 등 2명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9일 밝혔다. 동네 친구인 이들은 지난 8일 오후 5시쯤 부산 북구의 한 금은방에서 일부는 밖에서 망을 보고 일부는 손님인 척 들어가 금은방 주인이 보여주는 18k 금팔찌 1점(196만원 상당)을 들고 달아난 혐의를 받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A군 등이 택시를 타고 모텔로 이동하는 장면을 포착, 해당 모텔을 덮쳐 이들을 모두 체포했다. A군 등은 경찰 조사에서 “금은방의 업주가 고령이어서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단독] ‘인쇄·홍보 물량 몰아주겠다’ 각서에 MB 캠프 연대서명했다

    [단독] ‘인쇄·홍보 물량 몰아주겠다’ 각서에 MB 캠프 연대서명했다

    2008년 광우병 사태가 한창일 때 미국 시민권자인 50대 초반의 여성 사업가 두 명이 비슷한 시기에 청와대를 찾는다. 한 명은 각서를 들고 와 대선 전 약속했던 인쇄비를 달라고 했고, 한 명은 가타부타 얘기를 안 하고 김윤옥 여사를 만나겠다며 소동을 벌인다.이 둘은 시점도 달랐고 서로 다른 사안으로 청와대를 찾았지만, 미국 교포라는 점과 대선 때 이명박(MB) 후보 지지자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나아가 김 여사에게 전달됐다는 명품 가방 에르메스로도 연결돼 있었다. ●그녀들의 ‘연결고리’ 에르메스 가방 기독교 장로였던 MB는 서울시장 재직 시절부터 국내외로 간증을 다닌다. 미국 뉴욕의 한인 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부터 뉴욕 교민과의 교유가 시작된다. 어쩌면 MB나 그와 연결된 교민 모두 잘못된 만남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사람이 MB의 측근으로 활동했던 김용걸(80) 성공회 신부다. 그 외에 많은 교민이 ‘명박사랑’에 가입해 적극적인 활동을 한다.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김 신부와 두 명의 여성 사업가 중 한 명인 강모(62)씨를 미국 뉴욕에서 각각 만났다. 이들은 2시간 가까이 지난 얘기들을 털어놓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MB의 지지자였던 이들은 한국으로 와 MB의 선거운동을 돕기도 했다. 미국에서 인쇄업을 하던 여성 사업가 강씨도 MB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자비로 구매해 미국 교민에게 나눠 주는 등 열성 지지자였다. 그러다 캠프 내 핵심 관계자와의 협의 끝에 선거 홍보물을 인쇄하기로 하고, 서울 강남에 ㈜비비드마켓이라는 인쇄 및 홍보 회사를 설립한다. 그때 그는 9800만원 상당의 홍보물을 수주했다. 하지만 그에게 건네진 돈은 5000여만원뿐이었다. 나머지는 대선 후보가 되면 인쇄물을 추가로 준다는 조건으로 ‘기부’를 요구받게 된다.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요. 나중에 더 큰 일감을 준다는데….” 강씨의 얘기다.드디어 MB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된다. 이즈음 국내외 인맥을 활용해 MB를 지원하던 김 신부도 한국을 찾아 ‘안국 포럼’을 드나들게 된다. 그는 MB가 서울시장 시절일 때부터 복장 코디네이터를 소개해 주는 등 관계가 돈독했다. MB가 대선 후보가 된 이후 김 신부가 한국을 방문(김 신부는 경선 전이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해 김윤옥 여사와 서울 중구 롯데호텔 중식당 도림에서 점심을 한다. 그 자리에는 김 여사와 김 신부 외에 김 신부의 후배 주모씨, 뉴저지에서 금은방을 하는 이모(61)씨가 함께 참석했다. 이씨는 노란 보자기를 건넨다. 거기에는 3000만원 상당(이씨 주장)의 주황색 에르메스 가방이 들어 있었다. 김 여사와 이씨는 구면이었다. 이씨가 “여사님, 얼마 전 타워팰리스 선교 모임에서 뵀지요” 하니까 김 여사가 “그래요, 어쩐지 낯이 익네요” 했다는 게 김 신부의 증언이다. 이씨는 당시 교민 사회에서 주씨와 한국에서 공무원 상대로 영어교육 사업을 하겠다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 가방은 식사가 끝난 뒤 수행했던 여비서에게 건네졌다. 문제는 그 이후다. 대선 선거전이 치열했던 그해 10월 송영길 의원이 김 여사가 10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에르메스 가방(하늘색)을 들고 다닌다며 문제를 삼는다. 그 가방은 사위가 사 준 것이었지만, 이미 받아 둔 명품 가방이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한 김 여사가 딸을 시켜서 김 신부에게 돌려준다. 김 신부는 이 가방을 어떤 이유에서인지 몇 달 지나고 나서 이씨에게 전달한다. (김 신부는 “이씨가 미국에 있어서 줄 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뉴욕의 한 교민 방송에서 김 여사의 하늘색 에르메스 가방이 한국의 언론에 문제가 됐다는 보도를 한다. 이를 들은 이씨는 자신이 준 가방(주황색)을 문제 삼는 줄 알고 방송사에 전화를 해서 “그 가방을 내가 줬는데 왜 그러느냐”고 따지고, 방송사는 이를 녹음해 내보내면서 교민 사회에 가방 전달 사실이 퍼진다. (김 신부 증언) 대선 막바지인 12월 뉴욕의 교민 신문기자가 한국에 취재를 나온다. 기자가 가방 관련 문제를 한국 언론 등에 알리겠다고 하자 캠프에 비상이 걸린다. 가방뿐 아니라 그 안에 3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는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 전 의원은 결국 김 여사 측근에게 금품 문제를 확인했고, 결국 강씨가 받을 인쇄비 가운데 28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처리한 후 캠프 측에서 그 돈을 교민 신문기자에게 주고 무마했다는 게 강씨의 얘기다. 강씨는 당시 “쇼핑백에다가 돈을 넣어 왔으며, 자신에게는 대선 이후 편의를 봐주겠다는 말에 영수증을 써 줬다”고 말했다. 그는 그다음날인 12월 6일 각서를 받았다.●강씨, 각서이행 요구하며 정두언 찾아가 하지만 강씨는 대선 홍보물도 따내지 못하고, 대선 뒤 편의제공도 받지 못하자 각서 이행을 요구하며 정두언 전 의원을 찾았다. 정 전 의원은 강씨를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소개했지만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정 전 의원 소개로 청와대를 찾아갔고, 거기서 민정수석실 김모 국장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뿐이었고, 다음부터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다른 여성 사업가 이씨는 가방을 건네받았지만, 2008년 광우병 사태가 한창이던 6월쯤 청와대를 찾아가 김 여사 면담을 요청하며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뉴욕의 이씨 지인은 “이씨가 ‘김 여사를 만나서 직접 얘기를 듣고 싶어서 찾아갔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했다. 이처럼 이씨가 김 여사를 만나기를 원했던 것은 가방 안에 3만 달러의 거금이 들어 있었지만, 자신에게는 가방만 돌아왔기 때문이라는 설도 유포됐었다. 이와 관련, 김 여사는 돈과 가방을 돌려 줬지만 중간에서 배달 사고가 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당시 뉴욕 교민 사회에서는 이씨가 김 여사와 여권 관계자를 상대로 수억원을 요구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한다. MB 정권이 끝나고 이 문제를 상세히 보도했던 임종규 뉴욕 뉴스메이커 선임기자는 “이씨가 대가를 요구한 것은 맞다”면서 “이후 경찰청 특수수사대가 이를 강도 높게 조사하고 나서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뉴욕 김성곤 기자 sunggone@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우골탑의 비애/손성진 논설주간

    [그때의 사회면] 우골탑의 비애/손성진 논설주간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은 소를 팔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내다 판 소의 뼈다귀로 세운 탑, 즉 대학을 빗댄 말이다. 지금도 대학 등록금은 학부모들의 큰 부담이 되고 있지만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어떠했으랴. 1957년 지방 소도시에 있는 K사범대학에서는 전교생 850명 중 524명이 등록금을 내지 못해 무더기 제적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농촌 사정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랬을까. 이듬해에는 부산의 S대학에서 같은 이유로 학교 측이 125명을 제적하자 학생들과 교직원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1959년에는 서울의 명문 K대학에서 등록금을 내지 못한 신입생 41명의 입학이 취소된 일도 있었다.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대학에 합격했는데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음을 비관해 자살한 예비 대학생들이 속출한 일이다.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강도 등의 범죄를 저지른 신입생이나 재학생의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시위가 잦아진 1960년에는 비싼 등록금 문제 등을 둘러싸고 학내 분규가 동시에 벌어졌다.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학생들은 시내까지 나와 과격한 시위를 벌였고 연행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경찰서를 습격한 사건도 벌어졌다.(동아일보, 1960년 10월 9일 자)1960년대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1964년 2학기의 재학생 등록률을 보면 서울대, 연세대 각각 42%, 고려대 50%였다. 대학들은 추가등록의 기회는 주었지만 학생들이 요구하는 분납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등록금은 해마다 대폭 올랐다. 1967년 대학들은 등록금은 20%, 수업료는 35~39% 인상했다. 당시 입학금은 6000원, 수업료는 2만원 정도였다. 대학 운영을 등록금에 의존하다 보니 대학과 학생들의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정부대로 등록금을 억제하려 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1969년에 이르면 신입생 등록금은 6만 6000원으로 크게 올랐다. 1967년 기준으로 하면 현재의 대학 등록금은 약 250배 오른 셈이다. 대학 등록금은 고사하고 그보다 금액이 적은 중고교 입학금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신문 사회면에 실렸다.(경향신문, 1957년 4월 8일 자) 대학보다는 적다 해도 당시 중고교 등록금은 대학의 절반가량일 정도로 지금보다는 비싼 편이었다. 대학은 소를 팔아야 한다지만 중고교 입학금은 그보다 적으니 입학철만 되면 붐비는 곳이 전당포였다. 금붙이, 옷, 라디오, 재봉틀까지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변통해 썼다. 등록철만 되면 전당포에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일손이 달릴 지경이었다. 금은방에서는 금붙이를 팔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돌려보내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사진은 교육비 급등을 다룬 1971년 2월의 신문기사.
  • 32억 털린 금은방, 강도단 잡은 경찰에 화끈하게 보상

    32억 털린 금은방, 강도단 잡은 경찰에 화끈하게 보상

    마치 특공대 작전처럼 치밀하게 준비한 초특급 정예 무장강도단에 수십 억 피해를 봤던 금은방이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아준 경찰들에게 통 크게 보답했다. 우루과이의 고급 금은방이 강도단을 일망타진하고 도난품을 찾아준 경찰에 자동차와 고급시계를 선물했다고 현지 언론이 18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특급 관광지 푼타델에스테의 유명 호텔 '카지노 엔조이 콘라드'에 입점해 있는 금은방에 무장강도가 든 건 지난 6일. 복면을 쓰고 기관총으로 무장한 강도 12명이 금은방에 들이닥쳤다. 범행에 걸린 시간은 단 몇 분. 강도단은 자그마치 300만 달러(약 32억4000만원) 상당의 보석과 시계를 강탈해 연기처럼 사라졌다. 강도단이 가져간 시계만도 무려 200여 개다. 즉각 수사에 나선 경찰은 도시 전체를 통제하며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다. 덕분에 사건은 4일 만에 해결됐다. 경찰은 행동대원과 작전 책임자 등 17명을 체포하고 잃었던 물건을 전량 회수했다. 전광석화처럼 사건을 해결한 경찰에 감탄한 금은방은 경찰에 선물을 주기로 했다. 먼저 작전에 참가한 경찰 80명에게 루니녹스 오리지널 네이비씰 시계를 1개씩 선물했다. 시계의 현지 판매가격은 미화 395달러, 우리돈 약 42만6000원이다. 시계가격만 31만6000달러(약 3억4100만원)에 이른다. 경찰에겐 자동차 1대를 기증했다. 차종은 우루과이에서 인기 있는 현대 i20. 이 자동차의 현지 판매가격은 2만4490달러, 약 2640만원이다. 금은방은 "우루과이 경찰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신속하게 사건을 해결한 우루과이 경찰은 전 세계 경찰에 본이 될 것"이라며 경찰에 박수를 보냈다. 한편 강도단은 멕시코에서 원정 온 '외국인 부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지 정보를 제공한 용의자 1명을 제외한 나머지 16명이 멕시코에서 내려간 총잡이 강도들이었다. 사진=피해 업체 (출처=우루과이 경찰)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입금’ 가짜 문자로 귀금속 가로채…페라리 타고 도주한 10대

    ‘입금’ 가짜 문자로 귀금속 가로채…페라리 타고 도주한 10대

    계좌에 입금을 완료했다는 내용의 가짜 문자메시지를 업주에게 보여 준 뒤 귀금속을 챙기고 도주한 1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14일 부산 중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후 3시쯤 중구에 있는 한 귀금속 가게 인근에 A(19)씨가 눈에 잘 띄는 빨간색 페라리를 주차했다. A씨는 금은방에 들어와 내부를 둘러보다 금팔찌 1개와 금목걸이 2개를 고른 뒤 업주에게 돈을 계좌로 이체시켜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귀금속 값인 800만 원 상당이 업주의 계좌에 입금됐다는 내용의 가짜 문자메시지를 사전에 만들어 업주에게 보여준 뒤 “입금이 됐으니 귀금속을 가져가겠다”고 말한 후 자리를 떠났다. 뒤늦게 입금이 되지 않은 것을 알게 된 업주는 이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경찰은 폐쇄회로(CC) TV 영상을 확인해 A 씨가 빨간색 페라리를 타고 도망가는 장면을 확인했다. A씨의 휴대전화번호와 페라리 차주가 다른 점을 이상하게 여긴 경찰은 페라리 차주가 A씨의 지인인 것을 확인했다. 페라리 차주를 통해 광안리 커피숍으로 A씨를 유인한 경찰은 A씨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경찰 관계자는 “눈에 띄는 스포츠카를 타고 도망가 쉽게 동선을 추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해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으라차차 와이키키’ 김정현, 굴욕 이별 3종 세트 “신이 버린 사나이”

    ‘으라차차 와이키키’ 김정현, 굴욕 이별 3종 세트 “신이 버린 사나이”

    ‘으라차차 와이키키’ 김정현의 온몸을 던진 파격 연기 변신이 빈틈없는 빅꿀잼을 선사했다.5일 첫 방송된 JTBC 새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연출 이창민, 극본 김기호 송지은 송미소, 제작 씨제스프로덕션 드라마하우스)에서 짠내 제대로 풍기는 동구(김정현 분)의 이별기가 펼쳐졌다. 이날 방송에서 게스트하우스 와이키키는 수도세를 내지 못해 물까지 끊기며 위기를 맞았다. 게다가 와이키키에 불시착한 아기까지 돌보느라 정신없는 하루가 시작됐다. 동구는 초긍정 준기(이이경 분), 두식(손승원 분) 대신 홀로 걱정과 독박육아에 시달리며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했다. 때마침 걸려온 여자친구 수아(이주우 분)의 연락에 한 줄기 빛을 본 듯 촬영장으로 달려갔지만 수아는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줄줄 읊으며 동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자존심이 상한 동구는 “나같이 찌질한 놈 만나주느라 진짜 눈물 나게 고마웠다”며 커플링을 던지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동구는 이별의 충격에 아파할 틈도 없었다. 준기와 두식은 커플링을 팔면 공과금을 납부할 수 있다며 아쉬워했다. 사나이 자존심을 지키려던 동구였지만 전기세까지 못 내 게스트하우스 영업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이르자 촬영장을 다시 찾아갔다. 촬영장을 뒤지다 수아에게 발각된 동구는 “사드 문제는 언제쯤 해결될까?”라는 말도 안 되는 질문으로 상황을 모면하고 화분 속 커플링을 찾는데 성공했다. 가까스로 금은방까지 오는 데 성공했지만, 수아에게 커플링 매매 현장을 들켜 진퇴양난의 위기를 맞았다. 수아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동구는 우연히 수아를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용서를 빌려는 찰나 수아의 새 남자친구 윤석(설정환 분)이 나타났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동구는 급히 길바닥에 엎드려 얼굴을 숨겼다. 이를 이상히 여긴 수아와 윤석이 도무지 일어나지 못하는 동구를 도우려 구급차를 부르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했다. 결국 동구는 티셔츠를 뒤집어쓰고 제대로 앞도 보지 못한 채 이리저리 부딪치며 도망쳤다. 웃프고 짠내 나는 이별을 겪는 동구였다. 운빨 1도 없는 ‘신이 버린 사나이’ 동구의 상상 초월 이별담은 첫 회부터 웃음을 선사했다. 동구는 뭐라 반박하지도 못하고 여자친구에게 이별 이유 팩트 폭격을 당하는가 하면 커플링을 팔다 발각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릎까지 꿇었지만 이조차도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며 굴욕 이별 3종 세트를 완성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동구의 시한폭탄 같은 행보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지질한 이별의 기억을 소환하며 공감과 웃음을 자아냈다. ‘불운의 아이콘’ 동구의 수난기를 절묘한 웃음으로 살린 김정현의 연기 변신도 빛났다. 다수의 작품에서 연기력을 쌓아온 김정현은 안방극장 흥행작에 연달아 출연하며 대세길을 차근차근 걸어왔다. 탄탄한 연기와 엣지 넘치는 매력으로 눈도장을 찍은 김정현은 멋짐을 버리고 공감을 제대로 입었다. 시니컬한 매력에 아기를 향한 책임감, 연인에 대한 애틋함을 녹여내는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다이내믹한 표정 연기와 차진 대사로 표현하며 웃음을 빚어냈다. 탄탄한 연기력을 기반으로 한 김정현의 활약이 더욱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한편, 망해가는 게스트하우스 ‘와이키키’에 싱글맘 윤아와 아기 솔이가 본격 정착하면서 청춘군단의 예측 불가 고군분투가 펼쳐질 예정. 첫 방송부터 배우들의 연기 변신과 차진 케미, 웃음과 공감을 황금비율로 버무린 에피소드로 신개념 청춘 드라마의 탄생을 알린 ‘으라차차 와이키키’ 2회는 오늘(6일) 밤 11시 JTBC에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제천 금은방 강도 범행 하루만에 검거

    충북 제천의 한 금은방에서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아 달아난 30대가 범행 하루만에 검거됐다. 제천경찰서는 21일 특수강도 등의 혐의로 A(37)씨를 붙잡아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0일 제천시 남천동의 한 금은방에 침입, 여주인을 위협한 뒤 미리 준비한 둔기로 진열장을 깨뜨려 금목걸이 등 40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챙겨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 직후 아내의 차를 운전해 달아난 A씨는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강원도 영월군 석항에 차를 버리고 다른 사람의 차량을 훔쳐 태백으로 도주했다. A씨는 태백의 금은방 등에서 3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팔아 도피자금을 마련한 뒤 도주행각을 이어갔다. 하지만 A씨는 강원 정선군의 한 PC방에 있다가 21일 오전 1시30분쯤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A씨의 거주지는 경남 창원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만취상태에서 검거돼 범행 동기 등 조사가 늦어지고 있다”면서 “조사를 마치면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생활고로 1억원 넘는 금목걸이 100여점 훔쳐 달아난 30대 한달만에 자수

    경남 창원시 한 귀금속 상가에서 손님으로 가장해 1억 2000여만원어치 상당의 금목걸이가 들어있는 목걸이 진열판을 통째로 갖고 달아났던 30대가 범행 한달만에 경찰에 자수했다. 창원중부경찰서는 8일 창원시 성산구 한 금은방에서 지난달 8일 금목걸이 100여점이 들어있는 진열판을 통째로 훔쳐 달아난 혐의(절도)로 최모(32·김해시 진영읍)씨를 붙잡아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이 도난피해를 당한 금은방을 상대로 확인한 결과 최씨가 훔친 목걸이 진열판안에 있던 금목걸이는 총 무게 1500g(400돈)으로 금액은 1억 2000만원에 이른다. 최씨는 이날 오전 부산 사하구에 있는 공중전화를 이용해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창원중부경찰서로 전화를 걸어 불안한 심리상태를 내비치며 범행사실을 털어놓고 자수할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은 부산 사하경찰서와 공조해 사하구 한 공중전화 박스안에 있던 최씨를 검거했다. 경찰조사에서 최씨는 “아기가 곧 태어날 예정인데 집에 돈이 없고 형편이 어려워 범행을 했으며 훔친 금목걸이 가운데 일부는 인터넷을 통해 2000여만원을 받고 팔았고 나머지는 집에 보관해 놓았으며 판매대금은 한푼도 쓰지 않고 은행에 맡겨놓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최씨가 “범행을 하고 난 뒤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해서는 안될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어 금목걸이 판매 대금과 남은 금목걸이를 피해자에게 모두 돌려주기 위해 보관하고 있다”면서 뒤늦게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앞서 최씨는 지난달 5일 한 금은방에서 반지를 사겠다며 계약을 한 뒤 3일 뒤인 지난달 8일 오후 3시 30분쯤 다시 이 금은방을 방문했다. 모자와 목도리 등으로 얼굴을 가린 상태로 금은방을 방문한 최씨는 진열된 제품을 구경하다 계약금을 인출해 갖고 오겠다며 나갔다가 들어와 금목걸이가 진열돼 있는 판을 통째로 들고 달아났다. 경찰은 정확한 사건경위와 피해금액, 최씨를 상대로 자세한 범행동기 등을 조사한 뒤 최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의 ‘금’ 생산법…초신성 폭발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의 ‘금’ 생산법…초신성 폭발

    지구상에서 가장 값비싼 금속인 금. 이 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해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우주 초창기에 별이 벼려냈다는 것 정도는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 태양계에 존재하는 금의 양을 보면 우주 초기 초신성 폭발 등으로 만들어진 금의 양보다 훨씬 더 많다는 계산서가 나와 과학자들의 골머리를 앓게 했다. 이 미스터리에 대한 답이 최근에 밝혀졌는데, 그것은 바로 중성자 충돌이라는 사건이었다.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했을 때, 태초의 빅뱅 우주공간을 가득 채운 최초의 물질은 수소였다. 원자번호 1인 수소는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로 이루어진 가장 단순한 원소다. 이에 비해 금은 양성자 79개, 전자 79개로 이루어진 중원소다. 원자번호 77인 이리듐은 양성자가 77개, 원자번호 80인 수은은 양성자가 80개다. 이론적으로는 이리듐 핵에 양성자 2개를 박아넣거나, 수은에서 양성자 한 개를 빼내면 누런 금이 되는 셈이다. 이런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 연금술이다. 물론 지금까지 연금술로 금을 생산하는 데 성공한 연금술사는 없다. 놀랍게도 최고의 과학천재로 일컬어지는 뉴턴은 연금술사였다. 그가 연금술을 연구하는 데 쓴 시간과 정력은 물리나 수학 연구에 쓴 것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물론 뉴턴도 ‘연금’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뉴턴이 만년에 정신착란을 보인 것은 연금술 연구로 많은 수은을 섭취한 것이 원인이라 한다. 연금술이 실패한 것은 금보다 가벼운 원소의 핵자 속으로 양성자를 박아넣을 수 있는 에너지는 초신성 폭발 같은 어마무시한 힘이 아니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는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그런 에너지를 생산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뉴턴을 비롯한 수많은 연금술사들은 물질의 거죽만 주무르면서 금을 만들겠다고 헛고생만 죽도록 한 셈이다. 하긴 그 덕분에 화학이 발전하기는 하지만. 위의 그림은 두 중성자별이 나선운동을 하면서 충돌 직전에 있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중성자별이란 초거성이 초신성 폭발로 외피를 모두 날려버린 후 별 중심부가 엄청난 밀도로 뭉쳐진 별을 가리킨다. 이 별 물질 1리터의 무게는 무려 1조 톤에 달한다. 2016년 미국 하버드 스미소니언 센터는 중성자별의 충돌로 생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발견하고, 이 과정에서 실제 금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이 증명했다. 초신성 폭발과는 달리 두 중성자 별들 간의 충돌은 금과 같은 귀중한 금속들을 수없이 만들어 낸다. ‘GRB 130603B’로 명명된 폭발 천체는 미항공우주국(NASA) 스위프트 위성을 통해 관측됐으며, 연구팀은 충돌 과정에서 금을 포함한 태양 질량의 약 1/100에 해당하는 물질들이 방출된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에 참여한 하버드 스미소니언 센터 선임연구원 에도 버거는 “이번 중성자별 충돌 과정에서 생겨난 금의 양이 달 질량에 10배 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지금 당신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금반지는 초신성 폭발이나 중성자별의 충돌 결과 만들어진 것으로, 이러한 물질들이 우주공간을 떠돌다 태양계가 생성될 때 지구로 흘러들어 광맥을 이루었으며, 광부의 손에 의해 채취되어 금은방을 거친 끝에 당신 손가락에 끼워진 셈이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과학이다. 그러니까 우리 손가락의 금반지는 수십억 년 전 저 우주공간에서 일어난 초신성 폭발이나 중성자별 충돌의 기념품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이런 기념품을 입 속에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안녕하세요’ 이의웅 “프로그램 재출연, 고향 온 느낌 들어”

    ‘안녕하세요’ 이의웅 “프로그램 재출연, 고향 온 느낌 들어”

    ‘안녕하세요’ 이의웅이 일일 MC로 출연해 화제다.지난 28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안녕하세요’에서는 Mnet ‘프로듀스 101’ 시즌2에서 큰 인기를 얻은 이의웅이 일일 MC로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의웅은 지난해 3월 7일 ‘안녕하세요’에 고민을 가진 일반인 출연자로 출연한 바 있어 더욱 화제를 모았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이의웅은 “부모님께서 가게 일을 많이 시키신다. 문구점, 금은방, 속옷가게 세 군데를 돌면서 출근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의웅은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며 “고향에 온 느낌도 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사진=KBS2 ‘안녕하세요’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창원 골프연습장 주차장 여성 납치살해범, 6년전 두차례 금은방 강도

    창원 골프연습장 주차장 여성 납치살해범, 6년전 두차례 금은방 강도

    경남 창원 한 골프연습장 주차장에서 40대 여성을 납치·살해한 남녀 3인조 피의자 가운데 주범격인 심천우(31·함안군·구속)씨는 6년 전에도 또다른 남녀 2명과 함께 두 차례 금은방에 침입해 강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창원서부경찰서는 6일 A(47)씨 납치·살해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심씨가 2011년 3월 24·30일 공범 2명과 함께 경남 밀양시와 경북 김천시 금은방에 대낮에 침입해 금반지 6개(365만원 상당)와 현금 100만원을 강취해 달아난 혐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심씨는 군에서 제대한 직후이던 2011년 3월 24일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당시 여자친구 변모(28)씨와 고교친구 서모(31)씨 등 2명과 밀양시 한 금은방에 침입해 주인 김모(54)씨를 폭행하고 금반지 6개를 털어 달아났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심씨 등 3명은 6일 뒤인 2011년 3월 24일 오후 3시 15분쯤 경북 김천시 한 금은방에도 침입해 주인을 폭행하고 현금 100만원을 빼앗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당시 금은방 강도 범행에 가담했던 공범으로 경남지역 골프장에서 경기보조원(캐디)으로 일하고 있는 변씨와 서씨를 지난 5일 오후 검거해 이날 강도상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골프연습장 납치 살해 주범, 과거에도 금은방 강·절도 행각 벌여

    골프연습장 납치 살해 주범, 과거에도 금은방 강·절도 행각 벌여

    경남 창원에서 발생한 ‘골프연습장 40대 주부 납치·살해’ 사건의 주범인 심천우(31)가 과거에도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끌어들여 강도 및 절도 행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경남 창원서부경찰서는 6일 강도상해 혐의로 A(31)씨 등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11년 3월 24일 오후 2시 35분쯤 심천우와 경남 밀양의 한 금은방에 들어가 주인 김모(54)씨를 때리고 진열대에 있던 365만원 상당 반지 6개를 가져간 혐의를 받는다. 당시 폭행당한 김씨는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다. 이들은 또 같은 해 3월 30일 오후 3시 15분쯤 경북 김천의 한 금은방 계산대에서 현금 100만원을 훔치기도 했다. A씨는 심천우와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B(28·여)씨는 심천우가 ‘골프연습장 납치·살해’ 공범이자 현재 여자친구인 강정임(36)을 만나기 전 사귀던 사이였다. 경찰은 ‘골프연습장 납치·살해’ 사건을 조사하는 중 심천우가 과거 강도행각을 벌인 정황을 포착해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이들을 추적해 지난 6일 검거했다. 경찰은 지금까지 행적을 볼 때 심천우가 지인이나 연인 등 가까운 사람을 끌어들여 범행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골프연습장 납치·살해’와 마찬가지로 신원 노출, 경찰추적 등을 피하려고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고 덧붙였다. 밀양 강도 사건의 경우 심천우는 범행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 놓고 도보로 이동했다. 범행할 때도 모자와 마스크를 써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막았다. 경찰은 심천우가 비슷한 시기 경남 일대에서 유사한 범행을 한 차례 더 저지른 것으로 보고 관련 수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그는 강절도 행각에도 경찰에 잡히지 않자 이번에도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며 계획을 꾸민 것으로 보인다. 심천우는 “과거 내가 이번과 유사한 범행을 저지른 적 있는데 경찰에 잡히지 않았다”며 ‘골프연습장 납치·살해’ 공범인 6촌 동생 심모(29)씨에게 참여를 회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심천우 등 ‘골프연습장 납치·살해’ 일당 3명은 지난달 24일 오후 8시 30분쯤 창원 시내 한 골프연습장 주차장에서 40대 주부를 납치·살해한 혐의(강도살인 등)를 받고 있다. 경찰은 공범 심씨를 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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