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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물관 속 석탑… 쓰라린 역사 품었네

    박물관 속 석탑… 쓰라린 역사 품었네

    조선 막사발에서 신라 금관까지/손정미 지음/경인문화사/260쪽/1만 8000원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1층 로비에는 13m에 이르는 고려 경천사십층석탑이 있다.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충목왕 시대에 만든 탑으로, 기황후 세력인 강융과 원나라 환관 고용봉의 시주로 세웠다. 안정감을 주는 기단부와 팔작지붕을 얹은 탑신부의 조형미가 빼어나다. 그런데 이 석탑은 왜 경천사가 아닌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을까.일제강점기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아키는 탑의 사진을 접하고 욕심을 냈다. 그는 1907년 1월 ‘고종이 하사한 탑’이라는 거짓 문서를 내밀고 무장 일본군 200여명을 동원해 반대하는 주민을 진압하고 탑을 해체해 자신의 집으로 실어갔다. 당시 대한매일신보 기사로 이런 만행이 외국에 알려졌지만 다나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1916년 하세가와 요시미치 조선총독이 독촉하자 1918년 마지못해 탑을 조선에 보냈다. 1995년 중앙박물관이 복원 작업을 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들어섰다. 책은 일제강점기와 현재까지 8점의 국보급 문화재를 둘러싸고 벌어진 비화를 실었다. 일본의 국보가 된 조선 막사발의 사연을 비롯해 부여 부소산에서 발견된 백제 금동반가사유상에 관한 가짜 판정 소동, 세계 인쇄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귀중한 고려 금속활자(일명 ‘증도가자’) 논란, 고려청자 가운데 창의적인 유약을 사용한 고려 철채청자에 관한 이야기 등이 생생하다. 저자는 “문화재만으로도 아름답고 귀하지만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면 감동이 몇 배가 넘는다”고 말했다.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읽고 나면 문화재를 보는 눈도 달라질 것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조정석 대원문화사 대표 인쇄문화발전 문화훈장

    조정석 대원문화사 대표 인쇄문화발전 문화훈장

    문화체육관광부는 제32회 인쇄문화의 날을 기념해 인쇄문화발전 유공자 23명을 선정했다고 14일 밝혔다. 문화훈장에는 조정석(사진) 대원문화사 대표가 선정됐다. 조 대표이사는 인쇄산업의 국제교류와 수출 증대, 우수 기능인력 양성에 힘썼다. 대한인쇄문화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무료서체 발굴·배포사업, 한중일 통합 한자 서체 개발사업을 추진해 인쇄업계의 서체저작권 문제를 해소하는 데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대통령 표창은 임인영 에스케이씨엔피 대표, 국무총리 표창은 장길호 성일전산정보 대표가 각각 받는다. 김정조 한국이앤엑스 대표이사 등 20명은 문체부 장관 표창 수상자로 선정됐다. 인쇄문화의 날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본인 석보상절을 찍어 낸 1447년 음력 7월 25일(9월 14일)이다. 정부는 인쇄인들의 사기를 높이고자 포상제도를 시행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직지글빵 충북 대표 빵으로 육성된다

    직지글빵 충북 대표 빵으로 육성된다

    청주에서 직지글빵을 생산하는 맥아당과 충북도가 31일 관광분야 협력강화와 상호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들은 이날 관광상품 개발과 직지글빵 홍보를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도 관계자는 “직지글빵을 통해 청주에서 인쇄된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와 충북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을 계획”이라며 “향후 직지글빵을 충북 대표 빵으로 육성하는 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직지글빵은 2011년 9월 맥아당이 직지 활자를 모티브로 만든 빵이다. 2012년 10월 ‘직지빵’에서 ‘직지글빵’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상표를 등록했다. 직지글빵은 웰빙을 추구하는 소비자 기호에 맞춰 합성보존료, 합성착색료, 인공조미료(MSG)가 들어가지 않는다. 국내산 밀과 보리를 재료로 속에 팥앙금을 넣고 겉에는 청, 주, 직(直), 지(指) 등이 양각돼 있다. 가격은 1만5000원(24개입)과 1만원(16개입) 두 종류다. 낱개 포장돼 있어 두고 먹기에도 좋다. 맥아당은 직지글빵 수익금 중 일부를 세계문화직지협회에 기탁하고 있다. 맥아당 나병일 대표는 “직지글빵이 업무협약을 계기로 천안 호두과자나 경주 경주빵과 같은 지역 대표 빵으로 발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맥아당은 1980년 청주시 사직동에서 문을 열었다. 현재도 사직동에 영업장이 있다. 연 매출은 3억원~4억원 정도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한국의 위대한 천문유산, 세계적인 고천문과학관 건립으로/이용삼 충북대 명예교수

    한국의 위대한 천문유산, 세계적인 고천문과학관 건립으로/이용삼 충북대 명예교수

    오늘날 많은 민족들은 자기 민족의 역사에서 전통과학을 자랑하고 있다. 서양 과학의 그늘에 가려있었던 한국의 전통과학의 역사는 한 민족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전통과학으로 첨성대, 금속활자, 고려청자, 한글, 측우기, 자격루, 각종 해시계, 거북선 등 우수한 전통 과학 유물들을 자랑하고 있다. 특별히 하늘을 보면서 우주에 대한 원초적 호기심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우리 민족은 천문에 관한 한 유구한 역사를 일궈 낸 자랑스러운 전통이 있다. 경주 첨성대(瞻星臺)는 우리나라의 천문대의 모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백제의 천문학자들은 일본에 건너가 점성대(占星臺)라는 천문대를 축조하기도 하였다. 적극적인 천문활동을 통해 일월식 외에 오행성의 움직임과 각종 천변현상을 ‘삼국사(三國史)’ 기록으로 남겼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관계를 유기적인 관계로 여기며 당시 제왕과 국가의 안일을 천문현상을 통해 해석하였기 때문에, 천변의 관측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며 신중했고 정확해야 했다. 이러한 천문활동은 과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적 의미도 갖고 있었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천문 관청인 서운관은 1308년에 설립한 천문, 역법, 기상, 지리, 표준시각 등의 관련 업무를 맡아보던 관청이다. 조선시대에 관상감으로 개칭되었던 이 서운관은 오늘날의 과학기술을 총괄하는 부서였던 셈이다. 서운관은 약 600년 동안 지속하면서 고려사 천문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천변등록에 천변현상 등 ‘하늘의 역사’를 기록하고 천문관측기기를 설명한 세계적으로 귀중한 자랑스러운 천문 유산들이다. 조선을 새로 건국한 태조는 하늘의 뜻에 의해 세워진 왕조를 내세우기 위해 고구려의 천문도를 구하여 돌 위에 별자리를 새겨 넣었다. 이른바 천상열차분야지도(1395년)로 알려진 이 석각천문도는 국보 228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편, 세종대왕은 중국과 이슬람의 과학기술을 융합한 원나라의 천문관측기기를 재현했을 뿐아니라 이들을 자동화, 소형화, 다기능화하는 독창적인 관측기기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즉 소간의, 일성정시의, 자격루(보루각루), 옥루(흠경각루), 측우기 등은 조선 천문학의 주요 천문관측기기로 자리잡았고, 이를 통해 수십만 건의 천문관측기록을 남겼다. 천문관측기기의 개발을 통해 새로 완성한 칠정산내·외편은 한양을 중심으로 한 달력이었다. 이 달력을 통해 전국에 농업을 장려할 수 있었고, 해상교통을 통해 국가의 세금을 원활하게 징수할 수 있었다. 조선에는 동아시아의 대표하는 혼천시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세종실록등의 기록을 보면, 혼천의에 수력(水力)의 시계장치를 연결하고 태양과 달과 항성들의 모형을 설치하여 계절과 시간에 따라 자동으로 운행시키게 하였다. 이러한 혼천시계는 조선 기계시계의 전통으로 유럽보다 이른 시기인 오스만제국의 기계시계와 맞먹는 것이다. 현종 10년(1699년)에 이민철과 송이영의 혼천시계가 세종의 기계시계의 명맥을 이었다. 충남 부여 태생인 이민철은 영의정 이경여(李敬輿)의 아들로써, 각종 수차와 혼천의 제작자로 훌륭한 업적을 남겼는데, 우암 송시열이 화양계곡에 은거할 때 제자들을 교육한 혼천의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한편 현존하고 있는 국보 230호의 혼천시계는 송이영이 제작한 것으로 동서양의 전통을 융합한 시계로 평가받는다. 서운관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측후소로 개칭되었다. 광복 후 국립중앙관상대를 거쳐 1974년 국립천문대가 설립되었고, 현재의 한국천문연구원으로 서운관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과학의 모든 것들은 옛 선조들의 과학적 슬기와 연구 정신의 바탕으로 이룩된 것이다. 서운관의 한 지류였던 기상에 대한 과학관과 박물관이 한국에 다섯 곳에나 건설되는 동안, 정작 인류문명의 중심이었던 고천문을 위한 과학관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중국과 일본처럼 선조들이 천문 관측을 통해 전해준 과학기술의 전통을 되살려서, 미래의 주역들이 세계의 과학문화를 선도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자랑스런 전통 과학정신이 깃들인 고천문과학관이 국가의 지원으로 건립하기를 고대해본다.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책 멀리할수록 생기는 난독증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책 멀리할수록 생기는 난독증

    “가장 훌륭한 벗은 가장 좋은 책이다.” 18세기 영국 정치가이자 문필가 필립 체스터필드가 독서와 관련해 남긴 말입니다. 요즘 혼밥, 혼술 같은 말이 흔히 쓰일 정도로 타인과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조차 책과 친구 맺기는 사람과 친해질 때처럼 여러 가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평소 좋아하지만 읽지 못했거나 꼭 찍어 놨던 책을 그냥 집어 들기만 하면 되니까 말입니다. 지난 3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9년 국민 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의 종이책 연간 독서율은 역대 최저 수준이라고 합니다. 성인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디지털 매체 이용 때문으로 나타났습니다.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학교나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기 때문입니다. 사실 ‘손안의 컴퓨터’ 스마트폰만 있으면 수많은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온라인 게임 같은 자극적 놀잇감까지 있으니 굳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책을 가까이할 이유는 없겠지요. 그런데 책을 멀리할수록 점점 글자 읽기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읽은 다음에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뇌가 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국 신시내티 아동병원, 하버드대 의대, 독일 막스플랑크 인지및뇌과학연구소, 핀란드 이위베스퀼레대, 벨기에 루뱅가톨릭대, 루벤대,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동연구팀은 전 세계 어린이의 5~10%가 난독증을 앓고 있으며 책 읽기를 어려워하거나 책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는 난독증 유사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이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서를 하지 않을수록 뇌 구조가 난독증 환자와 비슷하게 변한다고 6일 밝혔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 2~5일 열린 미국 인지신경과학회(CNS) 2020년 연례 콘퍼런스의 ‘신경과학적 측면에서 읽기 능력 개발’ 분과에서 발표됐습니다. 이번 연례 콘퍼런스는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열렸습니다. 연구팀은 140명의 5~6세 어린이에게 책을 읽도록 하면서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했는데 난독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과 일반 아이들의 뇌 구조와 뇌신경 연결 형태가 다르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또 스마트폰을 포함해 영상매체에 자주 노출돼 독서를 멀리하는 아이들 뇌 구조는 난독증을 가진 아이들과 비슷하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장기 추적조사를 통해 난독증이 있거나 책을 읽고도 문장이나 내용을 쉽게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지속적으로 책을 읽도록 하면 난독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도 연구팀은 확인했습니다. 문화사적 관점에서 독서는 1440년대 구텐베르크가 서양에서 처음 금속활자를 만들어 책을 대량으로 싼값에 찍어 낸 ‘인쇄술 혁명’ 이후 시작됐습니다. 이렇듯 독서는 5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발명품이기 때문에 뇌에서 문자를 읽고 인식해 쓸 수 있는 부위가 따로 형성될 정도로 진화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행위이며 그 과정에서 뇌의 여러 부분이 자극될 수밖에 없습니다.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 언제 있겠느냐마는 계절의 여왕인 5월에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들고 매일 30분씩만 투자한다면 디지털로 피로해지고 둔감해진 뇌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edmondy@seoul.co.kr
  • “신라는 무슬림 포용했는데… 지금은 차가운 시선 아쉬워”

    “신라는 무슬림 포용했는데… 지금은 차가운 시선 아쉬워”

    “알라(하느님)의 말씀인 쿠란에는 ‘누구에게도 종교(이슬람교)를 강요해선 안 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아무리 교리가 좋아도 억지로 신앙을 믿게 하면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죠. 무력으로 종교를 이식하려는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은 무슬림이 아닙니다. 그들은 알라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아셔야 해요.”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앞둔 지난 17일. 인천의 명물인 구월동 도매시장 거리의 한 건물에 자리잡은 ‘인천평화성원’에서 조촐하게 무슬림 예배가 진행됐다. 이날은 금요일로 전 세계 이슬람 신자들의 합동 예배일이다. 한국에서는 금요일이 평일이다 보니 무슬림이 예배에 참석하기가 쉽지 않다. 이날 성원에 온 신자는 모두 5명. 머리에 ‘이마마’로 불리는 모자를 쓰고 설교대에 앉아 아랍어로 능숙하게 예배를 이끄는 이가 눈길을 끌었다. 바로 박동신(34) 이맘. 한국인이다. 이맘은 무슬림 종교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로 기독교의 신부나 목사에 해당한다. 최근 이슬람 국가인 이란이 미국과 전쟁 직전 상황까지 치닫는 갈등을 빚고 있던 터라 그의 설교가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그는 지난해 말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이슬람 성원을 열었다. 무슬림이라고 하면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이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는 모습을 떠올리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슬람 신자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는지 궁금했다. 그에게서 직접 ‘무슬림으로 사는 법’을 들어 봤다.●“목사 꿈 접고 이슬람에서 해답 찾아” 기원전 17세기 인류 문명의 중심이던 메소포타미아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생몰연대 미상)에게 자신을 유일신으로 칭하는 ‘야훼’가 나타났다. 유일신은 “고향을 떠나 미지의 땅에서 새 민족을 세우라”고 명했다. 아브라함은 그의 말에 순종해 팔레스타인 가나안 지역에 정착했다. 이 이야기로 시작하는 신앙을 학계에서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라고 부른다. 유대교와 기독교(가톨릭·개신교), 이슬람교가 대표적이다. 세 종교는 모두 같은 신을 믿는다. 신자 수는 기독교 24억명, 이슬람교 18억명, 유대교 1500만명 정도로 전 세계 인구(약 77억명)의 절반이 넘는다. 이 가운데 이슬람교는 선지자 무함마드(570~632)를 신의 마지막 사도로 여기는 종교다. 무슬림은 아담과 이브, 아브라함, 모세 등이 본래 이슬람 신자였다고 본다. 박씨의 하루는 기도로 시작한다. 보통 오전 5시쯤 잠에서 깨 깔개 위에서 절을 하며 “알함두릴라”라고 되뇐다. 아랍어로 ‘찬양한다’는 뜻이다. 다른 무슬림과 마찬가지로 하루 다섯 번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해 기도한다. 그는 ‘함양 박씨 문원공파’로 부산에서 태어난 토종 한국인이다.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존재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아 고민이 컸다고 한다. 오랜 방황 끝에 그 해답을 이슬람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안식교를 믿으셨고 어머니도 장로교 신자셨어요. 친척들의 종파도 다양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기독교 안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성경에는 분명 모순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20대가 돼서도 이 문제가 풀리지 않아 많이 힘들었어요. 결국 ‘나무보다는 숲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들을 차근차근 살폈습니다. 본래의 하느님을 온전히 드러낸 종교는 이슬람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죠. 2009년 12월 한국 이슬람교 중앙성원(이태원)을 통해 입교했습니다.” ●10년 가까이 중동 유학… 어머니도 개종 무슬림이 되긴 했지만 ‘열정만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박씨는 1년 뒤 한국을 떠나 유학길에 올랐다. 터키(2011~2012)를 시작으로 사우디아라비아(2012~2015), 요르단(2015~2017), 이집트(2017~2019) 등을 다녔다. 대학과 모스크 등에서 아랍어와 이슬람 교리를 습득했다. 현지에서 돈을 벌며 공부하다 보니 시간도 길어졌고 어려움도 컸단다. 하지만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반드시 돕는 이가 있다’고 했던가. 마지막 목적지인 이집트에서 만난 한 퇴직군인이 이역만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박씨가 안쓰러웠던지 크고 작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나중에는 자신의 딸까지 소개해 줬다고 한다. 지금의 아내인 올라(28)씨다. “이슬람교를 믿게 되면서 제 삶은 180도 변했습니다. 진정한 한 분의 신을 섬기며 쿠란에 기록된 선행을 행하자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진정한 행복도 느끼게 됐어요. 처음에는 가족들의 걱정이 컸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반대가 특히 심했죠. 하지만 ‘부모에게 최선을 다하며 짜증을 내거나 질책하지 말라’는 쿠란의 구절을 지키며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리자 결국 아버지도 제 종교를 인정해 주셨어요. 어머니는 저를 따라 무슬림이 되셨죠.” 지난해 아내와 한국으로 온 박씨는 어머니가 사는 인천에 터를 잡고 가정 예배를 시작했다. 2013년 그가 개설한 유튜브 채널 ‘한국이슬람방송’ 등을 보고 무슬림 출신 이주 노동자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신자가 많은 날에는 30명 가까운 무슬림이 박씨의 집을 방문했다. 예배 공간이 부족해지자 지난해 말 자비로 조그마한 사무실을 빌려 인천평화성원을 세웠다. 우리나라에 50~60곳의 이슬람 성원이 있지만 한국인이 세우고 직접 운영하는 성원은 거의 없다. 2009년 이슬람교에 입교한 지 정확히 10년 만에 이룬 성과여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그는 자평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도 부자인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천년 넘은 이슬람교와의 역사 원래 이슬람교는 우리 민족과 가까웠다. 845년 중동의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드비가 쓴 ‘왕국과 도로 총람’에는 “상당수 아랍인들이 신라를 동경해 한반도로 이주했다”고 적혀 있다. 고려시대에도 무슬림 수만 명이 벽란도와 개성 일대에 모여 살았는데, 이들은 ‘예궁’이라는 모스크를 짓고 종교 활동도 했다. 고려가요 ‘쌍화점’에도 무슬림이 등장한다. 쌍화란 튀르크계 만두의 일종이다. 고려 여인이 쌍화점(만두 가게)에 음식을 사러 들어갔더니 무슬림 주인이 그의 손을 덥석 잡으며 유혹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의 국호인 ‘코리아’는 당시 무슬림 상인들이 고려를 부르던 아랍어다. 금속활자와 고려 인삼도 무슬림이 전 세계로 퍼뜨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이 수시로 무슬림 지도자를 초청해 쿠란을 낭송하고 기도를 올리게 해 국가의 안녕을 바랐다는 기록이 나온다. 한국 이슬람교 중앙성원 등에서 추정하는 한국인 무슬림은 3만 5000명 정도다. 하지만 하루 다섯 번 예배를 보고 평생에 한 번은 다녀와야 하는 메카 순례를 경험한 ‘진짜’ 무슬림은 몇 백명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 이슬람교에 대한 차가운 시선을 극복하고 신자로 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다. “과거 중동에서 건설 붐이 일었을 때 일부 공사는 무슬림만 참가할 수 있었거든요. 이때 한국인 노동자들이 사업상 이유로 대거 입교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에 와서도 종교 활동을 이어가는 것 같지는 않아요. 이맘은 종교 공동체에서 추대 형식으로 선출되기에 무슬림 수십~수백명당 한 명씩 나오게 돼 있어요. 한국인 무슬림이 3만명이라면 한국인 이맘도 수백명은 돼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한국인 이맘은 저를 포함해 3명에 불과해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죠.” ●세계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 화해 분위기 현재 세계는 조금씩이나마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가톨릭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틈날 때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을 믿는 형제들”이라며 무슬림을 언급한다. 영국에서는 일부 성공회 교회가 금요일마다 이슬람 신자들에게 예배 공간을 빌려준다. 다만 한국에서는 신자 수 기준 세계 2위 종교를 위험하다고만 여기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고 그는 전했다. “진정한 이슬람에는 강요가 없습니다. 헌금도 요구하지 않아요. 이슬람 교계에서도 모두가 힘을 합쳐 테러리즘 근절에 앞장서고 있어요. 한국인들이 이슬람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개인의 선택이자 권리이기에 존중합니다. 다만 이슬람 세계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 등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토론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만큼은 꼭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중동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세계화 시대에서 대한민국이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할 좋은 전략이 아닐까 싶습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고려시대 ‘석가여래행적송’ 상권 보관” 주장 나와

    “고려시대 ‘석가여래행적송’ 상권 보관” 주장 나와

    고려시대 ‘석가여래행적송’(釋迦如來行蹟頌) 상권으로 보이는 고문서를 갖고 있다는 소장자가 나왔다. 장윤석(51·제주시)씨는 6일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석가여래행적송’ 상(上)권을 소장하고 있다면서 진품 여부와 발행 연도 등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연구해 문화재로 등록해달라고 요구했다. 불교서인 석가여래행적송은 고려 후기 승려 운묵이 석가모니의 생애와 불교의 전래과정 등을 해석해 1328년(충숙왕 15년)에 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씨는 “조부가 고문서를 모아왔고 최근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책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책은 공식적으로 원판을 고쳐 조선시대에 다시 발간한 개판본(목판본) 밖에 없다. 서울대 규장각에 개판본과 다른 별도의 석가여래행적송’ 하(下)권이 보관돼 있으나 규장각은 발간 사항과 연도에 대해 미상으로 판단하고 있다. 장씨가 소장한 고문서를 판정한 임홍순 서경대 명예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장에 나와 “규장각이 보관한 하권의 말미에 적힌 ‘천력삼년무진’(天歷三年武辰· 1328년)이란 시기가 장씨가 보관중인 소장본 상권 서문에도 동일하게 나와 있다”면서 장씨 소장본이 진본이고 규장각 하권과 한 질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인쇄상태로 보아 목판본으로만 인쇄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장씨 소장본이 금속활자로 인쇄됐는지 등도 조사 연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규장각 관계자는 “책에 찍힌 서문과 발문 날짜만으로 인쇄 시기를 특정하기 어렵다”면서 “활자전문가의 정밀한 감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장씨의 고문서는 7일 열리는 한 경매 사이트에 매물로 올라왔다가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한국 거주 미국인 ‘직지환수 운동’ 책으로 발간

    한국에 사는 미국인이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 환수 운동 6년을 책으로 펴냈다. 리처드 패닝턴 직지환수추진위원회 대표는 다음달 14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직지와 한 NGO(비정부기구)의 외로운 투쟁’ 출판기념회를 연다고 29일 밝혔다. 그는 서울의 모 로펌에 근무한다. 리처드는 직지 환수 운동 기록과 함께 영국 옥스퍼드대 ‘실크로드와 새로운 역사’을 비롯한 책과 논문, 기사 등을 인용해 직지의 세계사적 의미도 책에 담았다. 그는 “직지 환수 운동에 관심을 갖도록 하려고 책을 출간했다”고 말했다.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2013년 한국사 관련 책을 읽다가 직지의 매력에 빠졌다. 이후 한국인 지인 몇 명과 직지환수추진위원회를 만들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직지 원본 환수 운동에 나섰다. 강남 지하철역 등에서 운동을 벌여 8000여명의 서명도 받았다. 이 직지는 초대 및 3대 조선 공사를 지낸 콜랭 드 플랑시가 1880년 말~1890년대 초 사이 한국에서 구입한 것으로 지금까지 세계 유일의 원본으로 알려졌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北, 2년 전 만월대 조사서 금속활자 하나 더 찾아”

    “北, 2년 전 만월대 조사서 금속활자 하나 더 찾아”

    북한이 2017년 개성 만월대 단독 발굴조사에서 금속활자 한 점을 발굴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광식 고려대 명예교수는 15일 고려대 국제관에서 열리는 ‘고려 도성 개경 궁성 만월대’ 학술심포지엄 기조 강연에서 북한 학술지 ‘민족문화유산’ 2018년 4호에 실린 논문 ‘만월대에서 발굴된 금속활자와 청자꽃모양접시에 대하여’를 인용해 이런 내용을 발표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북한 조사단은 고려 궁궐터인 만월대에서 금속활자 ‘성할 선’ 자를 청자접시 조각과 함께 발굴했다. 활자는 가로 1.17㎝·세로 1.16㎝·높이 0.68㎝로, 기존에 알려진 고려 금속활자와 크기가 비슷하다. 출토는 2015년, 2016년 금속활자를 수습한 곳인 신봉문터 서쪽과 가깝다. 청자접시는 국화무늬를 새겼다. 북한 조사단은 청자접시 제작 시기를 12∼13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최 교수는 “북한 학자들이 금속활자 조성 연대를 고려청자가 제작된 12∼13세기로 확정하고 있다”고 했지만, 정확한 주조 시기는 좀 더 파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북은 2007년 만월대 공동조사를 시작해 지난해까지 8차례 발굴해 건물터 40여 동과 금속활자, 청자, 도자기 등 유물 1만 7900여점을 찾았다. 공동조사 시작 이후 만월대에서 발견한 금속활자는 지금까지 5점으로 알려졌다. 이번 금속활자를 합치면 모두 6점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씨줄날줄] 논란 재점화된 증도가자/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논란 재점화된 증도가자/박록삼 논설위원

    ‘직지심체요절’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만든 책이다.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는 긴 이름이지만, 간단히 ‘직지’로 부른다. 1377년 만들어져 독일 구텐베르크의 42행 성경보다 78년 앞서 우리 전통 문화의 세계적 선진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사례로 꼽힌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다만 인쇄본은 있지만 금속활자 실물이 없다는 점, 그 인쇄본마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가 있다는 점이 많은 한국인들의 가슴 한 구석을 뻥 뚫린 듯 만들었다. 2010년 9월 놀라운 발표가 있었다. 직지보다 138년 앞서는 금속활자 실물 109점이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고려시대 ‘증도가’(證道歌) 인쇄에 사용한 금속활자 실물, ‘증도가자’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세계사적 사건으로 꼽힐 수 있었다. 소장자인 다보성미술관에서 먼저 신청한 것이 아니라 당시 문화재청 정책국장이 소장자를 찾아가 국가문화재 지정을 신청하라고 요구해서 국가문화재 지정이 추진됐다. 하지만 문화재위원회는 7년에 걸친 심의 끝에 증도가자의 국가문화재 인정을 부결했다.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등 결과를 보면 고려 금속활자의 가능성은 있으나 증도가를 인쇄한 활자로 단정할 수 없으며, 출처와 소장 경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문화재의 출처와 소장 경위를 문제 삼지 않는 것은 일반적 관행이었으며, 출처를 제시하도록 한 시행규칙 개정을 소급 적용하는 등 절차의 위법성도 있어 반발을 샀다. 그리고 이후 심의 과정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증도가자는 가짜’라는 식의 언론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어쨌든 일단락된 듯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세균 의원, 이동섭 의원, 안민석 의원 등은 정재숙 문화재청장에게 증도가자 심의와 관련한 질의를 했고, 정 청장은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29일 2020~2022년까지 5억 5000만원을 들여 ‘고려금속활자 가치 규명 조사연구’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에서 논박을 거듭하는 와중에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산하기관이 서지학, 금속학, 인쇄출판 등의 전문가들이 등장한 학술보고서에서 “증도가자는 중국 금속활자”라고 주장하며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진위를 명확히 가리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시간만 지체시킨 채 이해관계 다툼의 모양새로만 비쳐지는 건 곤란하다. 중국이 고구려와 그 역사를 빼앗아 가려고 했듯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실물까지 넘겨주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youngtan@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직지(直指),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 청주 고인쇄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직지(直指),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 청주 고인쇄박물관

    #세계에서가장오래된 #박병선박사님 #프랑스국립도서관 1972년 5월 27일, 파리가 발칵 뒤집혀졌다. 프랑스 파리 BNF(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 도서의 해’ 기념 전시회에 고서(古書) 한 권이 출품된다.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네 귀가 이지러진 책의 제목은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이하 ‘직지’). 책의 말미에서는 너무나도 친절하게 ‘1377년 7월 청주 흥덕사에서 쇠를 녹여 만든 활자로 펴냈다(宣光七年丁巳七月日 淸州牧外興德寺鑄字印施)’라는 글귀가 적혀져 있었다.세계 최고(最古) 금속 활자본이다. 그동안 서구 학계에서는 ‘당연히’ 1450년 고딕 활자를 사용하여 찍은 42행의 라틴어 성서인 ‘42행 성서’만을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으로 인정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무려 78년이나 앞선 책이 파리 한 가운데에 나타난 것이다. 재불 역사학자인 ‘박병선 박사(1923-2011)’의 노력으로 드디어 ‘직지(直指)’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수장고 구석에서 벗어나게 된다. 박사는 출품 3년 전부터 ‘직지’에 대하여 서구 학계 수준에 맞춘 역사적, 과학적 고증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하였기에 유럽 역사학자들도 ‘세계 최고(最古)’라는 타이틀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30년 세월이 지났다. 우여곡절 끝에 ‘직지’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에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으로 지정 등재된다. ‘직지’가 태어난 곳, 청주 흥덕사 터에 세워진 청주 고인쇄박물관으로 가 보자.‘직지’의 정확한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지만 흔히 책의 이름을 줄여서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직지심경’이라고 할 때 불교에서 ‘경(經)’은 불교경전을 뜻하기에 직지는 엄밀한 의미에서 불경이 아니므로 우리가 흔히 쓰는 「직지심경」이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직지’는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흥덕사에서 간행된 금속활자본은 현재 상권은 전하지 않고 하권 1책(총 38장)만이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가 아닌 프랑스 국립 도서관 동양문헌실에 보관되어 있다.#청주흥덕사 #1377년 #구텐베르크 바로 이러한 세계 최고 금속 활자본인 ‘직지’가 탄생한 곳에 1992년 3월 17일 청주 고인쇄박물관은이 개관하였다. 박물관은 크게 본관과 근현대인쇄전시관, 금속활자전수교육관, 사적 제315호인 흥덕사지 터로 이루어져 있다.우선 박물관 본관 1층에는 제 1전시관과 제 2전시관, 홍보영상실이 있다. 제 1전시관에에 들어서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직지’ 관련 자료들을 중심으로 고려금속활자 인쇄술관련 자료를 만날 수 있으며 제 2전시관에는 고려의 목판인쇄술로부터 19세기 말기까지의 우리나라 전통 인쇄문화 전반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홍보영사실에는 ‘직지’에 관한 모든 역사들을 알기 쉽게 설명한 자료들을 상영 전시하고 있다. 본관 2층에 올라가면 제 3전시관이 있는 데 이곳은 동ㆍ서양의 옛 인쇄문화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복제본)를 비롯한 유럽의 다양한 인쇄문화를 만나볼 수도 있어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안겨 주기도 한다.한편 박물관 본관 맞은편에는 ‘근현대 인쇄전시관’ 건물이 따로 세워져 있다. 1층 상설전시실에서는 19세기 말 납활자 인쇄술 도입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한국의 근대인쇄문화를 소개하고 있으며 2층에는 납활자ㆍ전사ㆍ3D인쇄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공간과 기획전시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작은 도서관 및 각종 휴게시설도 갖추고 있어 가족 단위 관람객들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청주 고인쇄박물관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 5개 만점) - 가족 단위 방문 공간으로 추천. 2. 누구와 함께? - 초, 중등 자녀가 있는 경우,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3. 가는 방법은? - 충북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 (운천동) - 버스 831, 832번 고인쇄박물관 앞 하차. 청주는 넓지 않아서 택시 이동도 권유. 4. 청주 고인쇄박물관 방문의 특징은? - 세계 최고 금속 활자본인 ‘직지’가 태어난 곳. 우리나라 선조들의 뛰어난 인쇄 문화와 출판 문화에 새로운 감동을. 5. 유명도는? - 방문객이 그리 많지는 않다. 청주에 방문한다면 필수 방문 코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제 1전시관 직지 역사실, 제 3전시관 구텐베르크 ‘42행성서’(복제본), 근현대 인쇄전시관 7. 토박이들로부터 확인한 추천 먹거리는? - 청주에는 은근히 숨겨진 맛집이 많다. 메밀소바 ‘공원당’, 갈비찜 ‘재건갈비’, 선지해장국 ‘남주동해장국’, 우동 ‘신화당’, 짜장면 ‘대동관’, 장어 ‘금수장’, 돼지부속고기 ‘장군집’, 고추만두 ‘고추만두국집’, 짜글이찌개 ‘대추나무집’, 꽈배기 ‘오성당’ 8. 홈페이지 주소는? - 요금 및 운영 관련 자세한 내용은 https://cheongju.go.kr/jikjiworld/index.do 으로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청주 국립 박물관, 청주 공군사관학교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청주에 위치한 고인쇄박물관은 우리나라 활판 인쇄술의 역사를 잘 보존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가 나온 곳으로 고려와 조선을 아우르는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곳. 안타깝게도 ‘직지’의 원본은 프랑스에 있고 박물관에는 ‘직지’의 영인본(影印本:원본 사진을 바탕으로 똑같이 재현한)을 보관 전시중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이제야 마음의 짐을 조금 덜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야 마음의 짐을 조금 덜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 17일 오전 청주고인쇄박물관 인근 직지원정대 추모비 앞마당. 10년 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히운출리(6441m) 북벽 등반도중 실종됐다 지난달 23일 발견된 직지원정대 소속 고(故) 민준영(당시 36세)·박종성(42세) 대원의 추모제가 끝났지만 박수환(50)씨는 발을 떼지 못했다. 눈물을 참기위해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박씨는 한줌의 재가 돼 이날 귀향한 두 대원과 2008년 히말라야 미답봉 등반에 성공해 ‘직지봉’을 탄생시킨 산악인이다. 직지봉은 히말라야 최초로 한글이름을 가진 봉우리다. 그는 이들이 실종된 2009년 9월 히운출리 북벽 등반 도전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끝까지 동료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 4200m지점에 차려진 베이스캠프를 출발한 박씨는 등반 이틀째인 24일 오전 10시쯤 체력저하로 혼자 하산했고, 두 대원은 등반을 이어가다 25일 오후 7시쯤 베이스캠프와 교신이 끊어지며 실종됐다. 바위와 빙하로 구성된 북벽은 힘든 상대였다. 박씨는 “아침에 등반을 시작해 120m쯤 올라갔는데 컨디션이 너무 나빠 저 때문에 동료들까지 위험할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제 상태를 얘기하자 두 대원이 먼저 하산하라고 해 내려왔는데”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는 현지에서 사라진 동료들을 찾기위해 몸부림쳤지만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철수했다. 귀국후 죄책감이 그를 괴롭혔다. 심적고통을 달래기위해 술을 자주 마셨고, 인생의 전부였던 등산도 끊었다. 박씨는 “이들이 이렇게라도 돌아와줘서 너무 고맙다”며 “10년간 저를 힘들게했던 미안함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한 직지원정대 대원은 “수환이형이 그동안 가장 힘들어했다”며 “이제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다시 산을 다녔으면 좋겠다”고 했다.1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두 대원의 유골은 가족들이 마련한 납골당으로 옮겨졌다. 박 대원은 청주시 가덕면 요셉공원묘지에, 민 대원은 청주시 남이면 가좌리 선산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동료 산악인과 가족 등 100명은 추모제에 참석해 이들의 마지막길을 배웅했다. 시신 발견 소식을 듣고 네팔을 다녀온 박연수(55) 전 직지원정대장은 “히말라야에서 실종된 뒤 10년이 지나 발견된 것은 우리나라 산악 역사상 처음”이라며 “두 대원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간절함이 기적을 만든 것 같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5년이상 빙하속에 있다가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현지 주민에게 발견됐다”며 “대원들이 눈사태와 낙석 등 외부충격으로 추락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두 대원의 활동 등을 알릴수 이는 기록관이 있으면 좋겠다”며 “유품전시 등을 통해 직지원정대의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을 알리면 직지 홍보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박 대원의 형 종훈(54)씨는 “기약도 없던 기다림의 시간이었는데 행복한 만남을 준비해준 종성이, 그리고 종성이가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수 있도록 도와준 많은 분들이 너무 고맙다”고 밝혔다.직지원정대는 1377년 청주에서 인쇄된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를 알리기 위해 2006년 30여명으로 구성됐다. 청주시는 북벽 신루트 개척에 나섰던 두 대원이 실종되자 지난해 11월 시 예산으로 청주고인쇄박물관 직지교 옆에 추모비를 세웠다. 글 사진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히말라야 직지원정대원 유해 송환…문 대통령 “자랑스럽게 기억”

    히말라야 직지원정대원 유해 송환…문 대통령 “자랑스럽게 기억”

    10년 전 히말라야 등반 도중 실종됐던 ‘직지원정대’ 고(故) 민준영·박종성 대원들의 유해가 17일 국내로 송환됐다. 고(故) 박종성 대원의 형 종훈씨는 “우리 가족은 오늘 정말 반갑고 기쁜 만남을 이뤘다”며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행복한 만남을 할 수 있게 도와준 모든 분께 감사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고 민준영 대원의 동생 규형씨는 “참 긴 등반이었고, 10년간 기다리면서 힘들었는데 기적적으로 형이 돌아와서 기쁘다”면서 감사의 뜻을 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유가족과 동료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두 대원이 가족의 품에서 따뜻하게 잠들기를 바란다”며 고인들을 추모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년, 가족들과 동료들은 마음속에서 두 대원을 떠나보내지 못했다”고 말한 데 이어 이날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데 대해 “안나푸르나가 이 간절한 마음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잘 돌아오셨다”고 했다. 이어 “오직 자신들의 힘으로 등반해 우리 금속활자본 직지를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두 대원은 진정한 알피니스트(모험적으로 도전하는 등산가)였다”며 “국민들은 두 대원의 도전정신 및 도전으로 알리고자 했던 직지를 매우 자랑스럽게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히말라야에는 아직 우리 산악인 100여 명이 잠들어 있다”며 “산악인들이 가슴에 품은 열정은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가지게 한다. 두 분 대원이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처럼 언제나 실종 산악인들의 귀향을 염원할 것”이라고 말했다.직지원정대는 2006년 충북산악구조대원을 중심으로 해외원정등반을 통해 현존하는 금속활자 인쇄본 중 가장 오래된 직지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결성된 등반대다. 고인들은 2009년 9월 직지원정대의 일원으로 히운출리 북벽의 신루트인 ‘직지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그달 25일 오전 5시 30분 해발 5400m 지점에서 베이스캠프와 마지막으로 교신하고 난 뒤 실종됐다. 직지원정대는 실종 1년여 전인 2008년 6월 히말라야 6235m급 무명봉에 올라 히말라야에서는 유일하게 한글 이름을 가진 ‘직지봉’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같은 해 7월 27일 이 봉우리의 이름을 직지봉으로 승인했다. 박 전 대장과 유가족들은 지난 12일 출국해 네팔 현지에서 두 대원의 시신 신원 확인을 마쳤다. 이후 지난 15일(현지시간) 카트만두 소얌부나트 사원 화장터에서 네팔 전통방식으로 이들 시신을 화장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히말라야서 발견된 시신 직지원정대 대원으로 확인

    히말라야서 발견된 시신 직지원정대 대원으로 확인

    지난달 23일 안나푸르나 히운출리(해발 6441m) 북벽 아래에서 네팔 현지 주민에게 발견된 시신 2구가 10년 전 실종됐던 직지원정대 소속 민준영(당시 36세)·박종성(당시 42세) 대원으로 확인됐다. 직지원정대는 시신이 안치된 네팔 포카라 병원을 찾은 박연수 전 직지원정대 대장 일행이 이 사실을 확인했다고 13일 밝혔다.DNA검사가 진행중이나 두 대원이 분명하다고 직지원정대는 전했다. 직지원정대는 지난 12일 이미 두 대원의 시신으로 확신했다. 등반도중 박 대원이 자신의 배낭 레인커버에 ‘2009 직지. 히운출리 원정대. 나는 북서벽을 오르길 원한다’는 뜻의 영문 문구를 적었는데, 이 배낭 레인커버가 시신과 함께 발견된 사실을 확인해서다. 네팔등산협회가 보내온 여러 사진 가운데 이 배낭커버 사진이 있던 것이다. 박 전 대장 일행은 현지에서 화장 절차를 마치고 유구를 수습해 오는 17일 귀국할 예정이다. 국내 장례식 절차는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직지원정대는 해외원정등반을 통해 현존하는 금속활자 인쇄본 중 가장 오래된 직지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2006년 결성됐다. 두 대원은 2008년 6월 히말라야 6235m급 무명봉에 올라 히말라야에서는 유일하게 한글 이름을 가진 ‘직지봉’을 탄생시킨 뒤 2009년 9월 히운출리 북벽의 신루트인 ‘직지 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실종됐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10년 전 히운출리 실종 박종성 대원의 배낭 레인커버도 발견

    10년 전 히운출리 실종 박종성 대원의 배낭 레인커버도 발견

    ‘2009 직지. 히운출리 원정대. 나는 북서벽을 오르길 원한다.’ 10년 전 네팔 히말라야 직지원정대 소속 고(故) 박종성(당시 42) 대원의 것이 확실해 보이는 배낭 커버 사진이 12일 공개돼 이번에 발견된 주검이 박 대원과 고 민영준(당시 36) 대원의 것일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이날 오후 2시 35분 유족과 당시 직지원정대 박연수(55) 대장이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 시신이 안치된 네팔 포카라 병원을 찾아 DNA 검사 등 신원 확인 절차를 밟는다. 대원들로 확인될 경우 화장 절차를 마무리한 뒤 이르면 17일 귀국할 예정이다. 배명석 충북산악구조대 대장은 “오늘 오후 네팔등산협회로부터 주검과 함께 발견된 유품 사진을 추가로 받았다”며 “배낭 레인커버에 씌어진 친필 문구 등으로 미뤄 이번에 발견된 시신이 박 대원과 민 대원이 맞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원은 2009년 9월 1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근처 히운출리(6441m) 원정 도중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오르는 길목의 촘롱 지역에서 자신의 배낭 레인커버에 영문 등으로 위 문구를 직접 적어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함께 등반에 나선 윤해원 대원이 증언한 내용이다. 김동화 대원도 “등반 중 박종성 대원이 배낭 겉 커버에 이런 문구를 쓴 뒤 등반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주검 옆에는 한국 식료품 등이 다수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두 대원은 2009년 히운출리 북벽에 ‘직지루트’를 내려다 실종됐는데 당시 이들이 입었던 등산복 브랜드 로고가 이번에 발견된 주검에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직지원정대는 충북산악구조대 대원들이 주축이 돼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히말라야 ‘직지 루트’ 개척 산악인들, 실종 10년 만에 돌아온다

    히말라야 ‘직지 루트’ 개척 산악인들, 실종 10년 만에 돌아온다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를 알리고자 히말라야에 올랐다가 실종된 직지원정대원 2명의 시신이 10년 만에 돌아온다. 충북 청주 직지원정대는 지난 8일 네팔 등산협회로부터 고 민준영(당시 36세)·박종성(당시 42세) 대원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11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 2009년 9월 25일 오전 8시 15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봉우리의 하나인 히운출리(해발 6441m) 북벽에서 신루트인 ‘직지 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해발 5500m 지점에서 베이스캠프(해발 4200m)와 마지막 교신 후 실종됐다. 시신의 등산복이 실종 당시 두 대원의 것과 같고 주머니에서 한국 식량 등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시신은 지난달 23일쯤 현지 양치기 주민이 발견했으며 이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옮겨졌다. 당시 원정대장 박연수(55) 충북도 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은 “꿈과 열정이 넘쳤고 정상 정복보다 정상까지 가는 새로운 등정로를 개척하는 데 주목한 국내 최고의 산악인들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두 대원은 암벽과 빙벽을 오르며 신루트 개척에 전념했다. 실종 당일 아침 두 대원과 베이스캠프가 주고받은 무전에 따르면 “컨디션은?”, “둘 다 좋고 날씨도 좋다. 속도가 빨라 200m 더 올라 6000m 빙하지역에서 잘 수도 있다”, “무리하는 거 아닌가?” “아직 체력이 충분하다. 오늘 등반 끝내고 교신하자”는 말을 주고받은 뒤 다시는 무전이 울리지 않았다. 둘은 실종 1년여 전인 2008년 6월 6235m 무명봉에 올라 히말라야 유일의 한글 이름 ‘직지봉’을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승인받기도 했다. 유족과 직지원정대는 12일 네팔로 출국해 시신의 신원을 확인한 뒤 현지 화장 후 국내로 운구할 계획이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서울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안나푸르나 실종 10년 만에 민준영·박종성으로 추정되는 주검 발견

    안나푸르나 실종 10년 만에 민준영·박종성으로 추정되는 주검 발견

    거의 10년이 걸렸다. 2009년 9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히운출리(해발 고도 6441m)를 등정하다가 실종됐던 직지원정대 고(故) 민준영(당시 36세)·박종성(당시 42세) 대원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 10일 직지원정대 관계자에 따르면 이틀 전 네팔등산협회 관계자로부터 실종된 대원들로 추정되는 시신 두 구가 발견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시신의 등산복 브랜드가 두 대원이 실종될 당시 입었던 옷과 동일하고, 한국 관련 소지품도 다수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시신은 지난달 23일쯤 현지 주민이 얼음이 녹은 히운출리 북벽 아래에서 발견해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대원이 실종된 장소다. 현재 시신은 네팔등산협회 등에 의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옮겨진 상태다. 두 대원의 유족과 직지원정대 관계자는 발견된 시신의 신원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12일 네팔로 출국하는데 13∼14일쯤 정확한 신원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원정대장을 맡았던 박연수(55) 씨는 “이전에 두 대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발견된 적은 있었으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며 “정황상 맞을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신이 발견된 부근에서 실종된 사람은 민준영·박종성 대원 둘뿐”이라며 “두 대원이 맞으면 현지에서 화장 절차까지 마치고 유구를 수습해 돌아오려 한다”고 밝혔다. 직지원정대는 2006년 충북산악구조대 대원들을 중심으로 해외 등반을 통해 현존하는 금속활자 인쇄본 중 가장 오래된 직지를 세계에 알리고자 결성했다. 고 민준영·박종성 대원은 2009년 9월 직지원정대의 일원으로 히운출리 북벽의 신루트인 ‘직지 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같은달 25일 오전 5시 30분 해발 5400m 지점에서 베이스캠프와 마지막으로 교신한 뒤 실종됐다. 이들은 실종 1년여 전인 2008년 6월 파키스탄 카라코람 산군의 6235m급 이름 없는 봉우리에 올라 히말라야 산군에서 유일하게 한글 이름의 ‘직지봉’을 탄생시켰다. 파키스탄 정부는 한달 뒤 이 이름을 승인했다. 지난해 9월 청주 고인쇄박물관 앞마당에 두 사람의 추모비와 조형물이 들어섰는데 1년 만에 주검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소설가 김영하 누른 ‘엉덩이 탐정’

    소설가 김영하 누른 ‘엉덩이 탐정’

    ‘엉덩이 탐정’이 서점가를 독주하던 김영하 작가를 막아서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무려 14주 만이다. 교보문고가 2일 온·오프라인 도서 판매량을 집계할 결과, 7월 넷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추리 천재 엉덩이 탐정.8: 괴도와 납치된 신부 사건’이 출간하자마자 1위에 올랐다. 아동 분야 도서가 주간 종합 1위를 차지한 것은 2010년 ‘마법 천자문’ 시리즈 이후 처음이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설민석의 삼국지’가 2~4위였다. 우리의 ‘직지’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에 영향을 주었다는 내용을 담은 김진명 신간 소설 ‘직지’는 6위로 진입했다. 교보문고 측은 “방학과 본격적인 가족 휴가철을 맞아 휴가 때 읽을 책과 아동 도서가 많이 판매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본, 우리 ‘직지’를 본떴다?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본, 우리 ‘직지’를 본떴다?

    1333년 교황 요한 22세의 편지고려왕에 보낸것으로 추정 주목 활자주조법도 비슷… 상상력 가미‘밀리언셀러’ 김진명(62) 작가가 새 장편 소설 ‘직지’(전 2권·쌤앤파커스)를 냈다. 소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받은 직지심체요절이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본의 뿌리가 됐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1333년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의 왕에게 보낸 걸로 보이는 편지를 주목했다. 당시 교황청과 고려 사이에 왕래가 있었다는 주장에서부터 직지와 구텐베르크 성경의 활자주조법 특징이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하고, 여기에 역사적 상상력을 가미했다. 소설은 대학에서 라틴어를 가르쳤던 전병우 교수가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일간지 사회부 기자 김기연은 살해된 교수의 차량 내비게이션에서 최근 목적지가 청주 서원대임을 알아내고, 그의 휴대전화에서 ‘서원대 김정진 교수’라는 사람을 찾아낸다. 김 교수는 직지 알리기 운동을 펼치는 인물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뿌리가 직지라 확신하고 있다. 그러던 중 바티칸 비밀 수장고에서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 충숙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양피지 편지가 발견된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종종 최고(最古)의 목판본 다라니경,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직지,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꼽는 최고(最高)의 언어 한글, 최고(最高)의 메모리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지식 전달의 수단에 우리가 늘 앞서간다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고 썼다. 작가는 직지에 얽힌 최신 학설에 프랑스 등 현지 취재, 현대 과학의 성과에 소설적 상상력을 더했다. ‘우리가 늘 앞서간다’는 작가의 확신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더라도, 역사의 행간을 메우는 상상 그 자체는 죄가 없을 듯하다. 작가의 전작들처럼 속도감 넘치는 전개가 인상적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日왕실도서관에 있는 우리 最古 의서 보니 콧잔등이 시큰… 유네스코 등재로 반환 설득해야지요”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日왕실도서관에 있는 우리 最古 의서 보니 콧잔등이 시큰… 유네스코 등재로 반환 설득해야지요”

    일본서 향약구급방·의방유취 실물 본 박완수 교수“일본 왕실도서관에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과 의방유취(醫方類聚) 실물 원본을 처음 만났을 때 콧잔등이 시큰거리고 마음이 애잔하였습니다. 궁내청 서릉부(書陵部) 직원이 의방유취를 작은 나무 상자에 받쳐 들고 나왔는데, 한국에 있었다면 국보급 대우를 받았을 텐데 …, 돌봐 드리지 못한 조상을 오랜 만에 뵙는 느낌, 죄송한 마음이 울컥 들었습니다. 슬픈 마음, 안타까운 마음이 든 것은 제가 한국인이거나 한의사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요.” 5월 열람신청에 6월 열람가능 회신, 7월 방문궁내청 서릉부서 2시간 열람… 실물 촬영금지 한일 관계가 사상 최악으로 치닫던 지난 4일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의학 서적을 보고 돌아온 박완수(50) 가천대 한의과대 교수가 1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소감을 털어놓았습니다. “질병과 아픔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치료해주겠다는 애민정신이 들어 있는 귀중한 우리 문화재입니다. 국방이나 안보, 자기애를 과시하는 그런 문화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모든 사람의 고통을 해방시켜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그런 마음이 녹아있는 의학서적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실물 사진을 찍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박 교수는 “서릉부는 사진 촬영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열람실에 입장할 때 카메라와 휴대폰은 두고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진이 없습니다.”고 답합니다. 이어 필사는 허용하고, 소정의 비용을 내고 복사와 마이크로필름 신청은 가능하다고 합니다. “의방유취 252책 가운데 1~4책, 향약구급방 1책을 2시간 동안 보았습니다. 시간이 되면 의방유취 전부를 읽어보면서 시중에 나온 책들과 비교하며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박 교수는 지난 5월에 서릉부에 열람신청을 인터넷으로 했더니 열람 가능하다는 회신은 6월 중순쯤에 왔다고 했습니다. 회신받고 방학이 되자마자 열람하러 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의사이자 한의학 교수였기에 열람이 허용되지 않았나 하고 믿습니다. 서릉부가 이 책들이 비장(秘藏)하고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한의학계는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향약구급방·의방유취 국보급… 대우받지 못해1~2쪽엔 그동안의 소장처 빨간 도장 6개 찍혀백성의 질병과 고통 불쌍히 여긴 애민정신 발로600년 흘러 훼손 시작… 향약구급방 글자 번져”보관 상태를 물었더니 박 교수는 조금 뜸을 들였습니다. “정말 안타까웠던 것은 1~2쪽에 빨간 도장이 6개쯤 찍혀 있었습니다. 제국대학교 등의 낙관 비슷한 소장처의 도장이었습니다.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이력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서릉부에서 비바람과 화마를 피했지만,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고서의 하나로 취급할 뿐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600년 세월의 무게에 훼손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의방유취보다 더 오래된 향약구급방은 더 낡고, 글자는 더 번지고 해서 상태가 안 좋아 보였습니다.” 향약구급방은 고려시대인 1236년(고종 23년) 팔만대장경을 만들던 대장도감에서 처음 간행 한의학 서적입니다. 현재 전해지는 것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습니다만 원본은 안타깝게도 전하지 않습니다. 서릉부가 보관한 향약구급방은 조선시대인 1417년(태종 17년) 중간된 것이지만, 이를 기준으로 삼아도 현존하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한의학 서적입니다. 역사적 가치가 높다는 말이지요. 박 교수는 “이 책의 제목인 ‘향약’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의약을 우리 사정에 맞게 자주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학 자립정신이 녹아있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의방유취, 임진왜란때 왜장이 약탈금속활자… 강화도조약때 조선에 기증“향약구급방, 일본 전래 과정 불투명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우리’ 의학서”박 교수는 한의학 측면에서 의방유취를 더 높게 평가합니다. 세종대왕이 당시까지의 의학 지식을 집대성해 편찬한 책으로 264책에 이릅니다. 첫 발간은 1477년(성종 8년)에 30질을 했습니다. “의방유취가 밝힌 인용도서가 164종입니다. 그런데 현재 전하지 않는 40여종의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사라진 의학서적의 내용을 담고 있기에 의학지식 보존과 전수 차원에서 귀중하지요.” 향약구급방이 목간본이라면 의방유취는 을해자(乙亥字)로 유명한 금속활자본입니다. 실록에도 그 기록이 나온답니다. 문화사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박 교수는 설명합니다. “의방유취는 동의보감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훌륭한 의학 백과전서입니다. 임진왜란 때 서고를 약탈한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평양성에 머물다 철수하면서 가져간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담긴 역사의 아이러니가 가슴 아프게 합니다. 시간이 흘러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본 정부가 조선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에서 만든 의방유취 목간본 2질을 조선정부에 기증하는 것이지요. 현재 서릉부는 252책을 보관하고 있지만 당시 조선에 기증한 목간본은 원본과 같은 264책입니다. 12책이 사라진 것입니다. 일본이 기증한 의방유취 한 질은 연세대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고, 다른 한 질은 북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의방유취 한글판을 북한이 먼저 번역해 냈거든요. 의방유취는 중국 상하이에서도 간자체로 옮겨 쓸 정도로 유용한 의서입니다.” 박 교수의 설명이 계속됩니다. “그런데 향약구급방은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조선 조정이 선물한 것인지, 아니면 임진왜란 때나 일제강점기에 약탈한 것인지는 이를 소장한 일본 측이 그 경로를 밝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해외에 반출된 문화재의 취득 경로는 그 소장자가 규명하는 것이 요즘 국제사회의 규약입니다.” “日, 韓과 기후·풍토 달라 한의학 처방 안맞아日한의학 맥 끊겨, 연구도 상태… 반환 바람직한의학계 ‘반환’ 정치 문제라며 나서기 꺼려해최악의 한일관계에 반환, 휘발유 뿌릴까 조심”“일본도 자기 나라 백성의 고통과 질병을 치유하고자 당시로써는 한의학 지식이 총망라된 이 책들을 가져갔을 겁니다. 그러나 한의학 전공자들은 다 아는 것인데, 일본과 한국의 기후와 풍토가 많이 달라서 약재의 성분도 다릅니다. 이들 책의 처방이나 효능이 일본 사람에겐 잘 맞지 않습니다. 또 현재 일본에선 한의학 맥이 끊어진 상태여서 당연히 의방유취의 연구도 거의 안 되는 거죠. 그래서 한의학 연구가 왕성한 한국으로 돌려주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까요?” “한의학계가 일찍 반환문제에 나섰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동안 한의학계는 연구만 하지 반환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여서 나서기를 꺼렸습니다. 백성을, 더 나아가 인류를 질병에서 구하고자 하는 애민정신이 담겨 있으니 지금이라도 반환받아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설득하면 일본이 응하지 않을까요? 한의학은 중국에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데서 보듯 여전히 인류를 위해 유용합니다. 일본 정부가 2011년 조선왕실 의궤 등 조선왕실 도선 1205권을 반환하였습니다. 당시에 이 두 의학 서적이 빠져 안타까움이 더합니다.” 박 교수는 한의학계가 힘을 모아 향약구급방·의방유취 반환문제를 강하게 주장하고 싶어합니다. “최악인 요즘 한일관계에 오히려 휘발유를 뿌리는 격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습니다만 그래도 반환되어야겠지요.”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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