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금산사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중대장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다득점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아저씨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부모님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11
  • “佛法은 세간에 있다”… 일평생 약자 곁에

    “佛法은 세간에 있다”… 일평생 약자 곁에

    1980년 조계종 총무원장 때 5·18 발발광주서 위령 법회… 정권 눈엣가시 찍혀경실련 대표·나눔의 집 설립·NGO 활동노동·인권·복지·환경·통일 등 사업 추진 총무원장 3선 도전, 종단 파행 원인 돼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 지내고 불교계의 사회 참여에 앞장섰던 태공당 월주스님이 22일 오전 전북 김제시 금산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87세. 법람 68년. 월주스님은 올해 폐렴 등으로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 오다 이달 금산사로 자리를 옮겨 세간(속세)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1935년 전북 정읍시에서 태어난 스님은 현대 한국 불교사의 산증인으로 평가된다. 1954년 법주사에서 금오스님과 사제의 연을 맺어 출가했고, 1961년부터 금산사 주지를 맡아 불교 정화운동에 나섰다. 1980년 4월 17대 총무원장에 선출된 스님은 광주 5·18민주화운동이 발발하자 같은 해 6월 직접 광주 관음사를 방문해 희생자 위령 법회를 올렸다. 스님을 ‘눈엣가시’로 여긴 전두환 정부는 군인을 동원해 전국 사찰을 수색한 ‘10·27 법난’을 일으켰고, 스님은 보안사로 연행돼 고문을 당하고 총무원장에서 물러나야 했다.이후 스님의 행보는 시민사회 단체 영역으로 확대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1989년),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1990)를 맡았고, 1992년에는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나눔의 집’도 설립했다. 스님은 1994년 총무원장 의현스님이 3선 연임을 강행하다 반발에 부딪혀 물러난 뒤 출범한 조계종 개혁회의에 참여해 종단 개혁을 이끌었다. 이어 그해 치러진 총무원장 선거에서 28대 총무원장으로 재선되며 중앙 무대로 복귀했다. 그는 재선 총무원장 때 ‘깨달음의 사회화’를 표방하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등을 맡는 등 노동·인권·복지·환경·통일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1998년 한 차례만 중임할 수 있는 총무원장 3선에 도전했다가 종단이 4년 만에 다시 파행으로 치닫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스님은 총무원장 퇴임 후에도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로 실업 대란이 이어지자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와 함께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실의에 빠진 국민을 위로했다. 2003년에는 비정부기구(NGO) 지구촌공생회를 세워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을 대상으로 식수·교육·지역개발사업을 폈다.스님은 평소 “불법은 세간에 있고, 깨달음은 세간을 떠나 있지 않으니 세간을 떠나 깨달음을 찾는다면 마치 토끼에게서 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법어를 즐겨 읊었다. 2016년 회고록에선 “이제는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할 때”라며 “자신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눌 수 있는 큰 우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임종게(臨終偈)에 ‘하늘과 땅이 본래 크게 비어 있으니/ 일체가 또한 부처이구나/ 오직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가 아닌가/ 할!’이라고 남겼다. 장례는 5일간 금산사에서 조계종 종단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과 다비식은 26일에 거행한다.
  • “불법은 세간에 있다” 불교계 사회 참여 이끈 월주스님 입적

    “불법은 세간에 있다” 불교계 사회 참여 이끈 월주스님 입적

    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 지내고 불교계의 사회 참여에 앞장섰던 태공당 월주스님이 22일 오전 전북 김제시 금산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87세. 법람 68년. 월주스님은 올해 폐렴 등으로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 오다 이달 금산사로 자리를 옮겨 세간(속세)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1935년 전북 정읍시에서 태어난 스님은 현대 한국 불교사의 산증인으로 평가된다. 1954년 법주사에서 금오스님과 사제의 연을 맺어 출가했고, 1961년부터 금산사 주지를 맡아 불교 정화운동에 나섰다. 1980년 4월 17대 총무원장에 선출된 스님은 광주 5·18민주화운동이 발발하자 같은 해 6월 직접 광주 관음사를 방문해 희생자 위령 법회를 올렸다. 스님을 ‘눈엣가시’로 여긴 전두환 정부는 군인을 동원해 전국 사찰을 수색한 ‘10·27 법난’을 일으켰고, 스님은 보안사로 연행돼 고문을 당하고 총무원장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후 스님의 행보는 시민사회 단체 영역으로 확대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1989년),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1990)를 맡았고, 1992년에는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나눔의 집’도 설립했다. 스님은 1994년 총무원장 의현스님이 3선 연임을 강행하다 반발에 부딪혀 물러난 뒤 출범한 조계종 개혁회의에 참여해 종단 개혁을 이끌었다. 이어 그해 치러진 총무원장 선거에서 28대 총무원장으로 재선되며 중앙 무대로 복귀했다. 그는 재선 총무원장 때 ‘깨달음의 사회화’를 표방하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등을 맡는 등 노동·인권·복지·환경·통일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1998년 한 차례만 중임할 수 있는 총무원장 3선에 도전했다가 종단이 4년 만에 다시 파행으로 치닫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스님은 총무원장 퇴임 후에도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로 실업 대란이 이어지자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와 함께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실의에 빠진 국민을 위로했다. 2003년에는 비정부기구(NGO) 지구촌공생회를 세워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을 대상으로 식수·교육·지역개발사업을 폈다. 스님은 평소 “불법은 세간에 있고, 깨달음은 세간을 떠나 있지 않으니 세간을 떠나 깨달음을 찾는다면 마치 토끼에게서 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법어를 즐겨 읊었다. 2016년 회고록에선 “이제는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할 때”라며 “자신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눌 수 있는 큰 우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임종게(臨終偈)에 ‘하늘과 땅이 본래 크게 비어 있으니/ 일체가 또한 부처이구나/ 오직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가 아닌가/ 할!’이라고 남겼다. 장례는 5일간 금산사에서 조계종 종단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과 다비식은 26일에 거행한다.
  • 김제 망해사 가을 비대면 관광지 100선 선정

    김제 망해사 가을 비대면 관광지 100선 선정

    전북 김제시 진봉면 망해사(望海寺)가 ‘2020 가을 비대면 관광지 100선’에 선정됐다. 김제시는 망해사가 한국관광공사의 비대면 관광지 100선에 뽑혀 효과적인 관광마케팅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22일 밝혔다. 망해사는 만경강이 서해와 만나는 절벽에 고군산군도를 멀리 조망하는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름도 ‘바다를 바라보는 절’이라는 뜻이다.절터가 넓지 않고 건물이 조촐하지만 지평선과 수평선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자연환경이 뛰어나고 힐링하기 좋은 숨겨진 명소다. 서해 낙조가 일품이다. 절 뒤 진봉산 낙조대에 오르면 사방으로 탁 트인 호남평야와, 만경 둘레길 갈대밭, 심포항 등이 발 아래 내려다 보인다.망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642년(의자왕 2) 거사 부설이 창건했다는 설과 754년(경덕왕 13) 통일신라의 승려 통장이 창건했다는 설이 내려온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쓰러져가던 망해사는 1624년(인조 2년) 조사 진묵이 중창하였다. 김제시 관계자는 “망해사는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벼랑 위에서 망망대해를 조망하는 천혜의 경관이 아름답고 주변에 새만금 바람길, 봉화산 숲길 등 관광자원도 많아 조용하게 쉬면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고찰”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더워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더워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징게맹갱 외에밋들’이라 부른다. ‘김제 만경 너른 들’이란 뜻의 사투리다. 한자는 약간 다르지만 ‘광활’이란 보통명사가 전북 김제에선 같은 의미의 지명으로도 쓰인다. 얼마나 넓고 평탄한 땅을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평선이 귀한 나라에서 막힘없이 열린 땅은 자체로 진귀한 볼거리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그 어디쯤에선가 벼가 꼿꼿이 몸을 일으키고, 해바라기가 방긋 웃고, 백련은 살그머니 머리를 내민다. 시계추를 조금만 뒤로 돌려도 어느 논배미 하나 일제의 수탈과 탄식의 역사를 비껴가지 못했던 곳. 이제 그 땅 위로 평화와 풍요가 머문다.‘징게맹갱 외에밋들’이 만경강과 만나는 곳에 외줄기로 이어진 길이 있다. ‘새만금 바람길’이다. 만경강 둑방길, 서해를 지키던 초병들이 다니던 오솔길, 갈대숲을 지나는 갯벌길, 봉수대로 오르던 산길 등을 이어붙여 조성한 길이다. 만경강 하류의 진봉면 소재지에서 시작해 새만금 간척지와 만날 수 있는 심포리 거전 갯벌까지 10㎞ 정도 이어져 있다. 코스는 세 개로 나뉘었지만, 갈 길 바쁜 여행자들은 ‘새창이다리’에서 출발해 삼국시대 포구로 사용되던 전선포와 백제시대 창건된 망해사(望海寺)를 잇는 1코스 ‘과거의 길’을 걷는 게 보통이다. 자전거를 타는 이들도 많다. 만경강과 인접한 완주와 김제, 군산 등이 자전거 도로로 연결돼 있다. 다만 ‘새만금 바람길’ 구간만큼은 걷기 전용이다.●둑방길·오솔길·갯벌길·산길 이은 ‘새만금 바람길’ 들머리 구실을 하는 ‘새창이다리’의 옛 이름은 만경대교다. 군산 대야면과 김제 청하면을 잇는 콘크리트 다리로, 1933년 일제강점기에 세워졌다. 조성 목적이야 자명하다. ‘징게맹갱 외에밋들’에서 수확한 쌀을 군산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서다. 1988년 바로 위에 새 만경대교가 들어선 이후 인도교로만 쓰이고 있다. 새창이다리 약 4㎞ 아래엔 노을전망대가 있다. 해발 고도가 2m쯤 되려나. 겨우 둔덕이라 할 정도의 높이지만 사방이 툭 트여 전망대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팔각정과 안도현 시인의 ‘만경강 노을’ 시비 등이 전망대 주변에 조성돼 있다. 저물녘에는 이름만큼이나 환상적인 노을이, 노을전망대에서 망해사까지는 갈대밭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망해사는 지평선의 끝자락, 그리고 막 수평선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400년 이상 살아온 팽나무 두 그루와 작고 소담한 경내 풍경이 인상적이다. 절집 위의 진봉산 꼭대기엔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징게맹갱 외에밋들’과 종착지에 다다른 만경강의 장쾌한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이맘때 청하산 아래 연밭에선 하소백련이 절정을 이룬다. 하소는 새우(蝦) 모양의 늪(沼)이다. 이름을 풀자면 ‘새우 모양의 늪에 핀 하얀 연꽃’이란 뜻이다. 늪이 깃든 산의 이름도, 이 일대의 행정명도 청하, 푸른(靑) 새우(蝦)다. 이름치고는 퍽 독특하다. 벽골제는 김제의 랜드마크 같은 곳이다.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달달 외웠던 삼한시대 3대 수리시설 중 하나다. 약 1700년 전인 백제 비류왕(330) 때 ‘징게맹갱 외에밋들’에 물을 대기 위해 조성됐다. 당시만 해도 최첨단 농수공급시스템이었던 벽골제는 둘레가 44㎞에 달할 만큼 거대한 규모였다고 한다. 현재는 4㎞ 정도의 둑과 비석 등이 남아 있다. 벽골제 관광지 안에 박물관, 미술관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시설들이 조성돼 있다. 차분히 돌아보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밤의 벽골제도 독특하다. 쌍용 조형물 등 여러 시설물에 경관조명이 켜지면서 빛의 정원으로 변한다.●지평선 끝·수평선 시작의 절경 간직한 망해사 김제 동남쪽의 모악산 일대는 어딘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는 곳이다. 그 발치에 불교, 기독교를 비롯해 증산도 등 토착신앙의 성지들이 매달려 있다. 먼저 모악산 바로 아래 있는 대찰 금산사부터. 통일신라 때 창건돼 미륵신앙의 성지로 추앙받는 사찰이다. 절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미륵전(국보 62호)이다. 겉모양은 3층, 내부는 통층인 건물이다. 충남 부여 무량사의 극락전도 통층 구조지만 미륵전보다 한 층 낮다. 미륵전 안에는 높이 11.82m의 미륵불, 8.79m의 협시불 등 거대한 미륵삼존입불이 모셔져 있다. 미륵불 아래에는 거대한 철 좌대가 있다. 만지면 소원을 이뤄 준다는 영험한 좌대다. 현재는 출입이 금지됐지만, 사찰 측에서 일반에 공개할 방법을 모색하는 중이라고 한다. 미륵전에는 층마다 미륵불의 세계를 나타내는 전각명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다. 1층은 대자 보전(大慈寶殿), 2층은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은 미륵전(彌勒殿) 등이다. 미륵전 주변은 문화재의 보고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만나는 불전, 석탑, 석등, 방등계단 등이 모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라고 보면 틀림없다. 본전인 대적광전도 웅장하다. 서울 종묘처럼 단층 구조이면서 옆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개창 시기 이 절집의 위세를 가늠할 수 있는 모습이다. 한때 보물(476호)이었으나 1986년 화재로 전소되면서 안타깝게도 지위를 잃었다. ●문화재의 보고 금산사… 남녀평등의 금산교회 금산사에서 조금 내려오면 금산교회다. 익산의 두동교회와 함께 ‘남녀칠세부동석’의 ‘ㄱ’ 자 건물로 유명한 곳이다. 금산교회에선 유교적 제약이 엄연했던 일제강점기에도 여자와 남자가 함께 예배를 봤다. 비록 출입문이 나뉘었고, 천장 대들보의 상량문도 여자 쪽 언문(한글)과 남자 쪽 한문으로 다르지만, 평등한 공간을 지향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머슴이 목사가 되고 상전이었던 지주가 그를 받드는 동화 같은 이야기도 전해 온다. 더 아래 금평저수지 오른쪽엔 ‘동곡약방’이 있다. 증산교 창시자 강일순이 1908년 약방을 차리고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환자를 돌봤다는 곳이다. 이 일대 농가들이 동곡서원, 황극후비소 등 증산도 관련 건물로 바뀌는 등 성지화되고 있다. 금평저수지 맞은편엔 증산법종교 본부 영대와 삼청전이 있다. 등록문화재(185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증산법종교는 강증산의 외동딸 강순임이 창건한 증산도의 한 교파다. 영대는 강일순 부부의 무덤을 봉안한 묘각, 삼청전은 증산미륵불을 봉안한 건물이다. 글 사진 김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평선장바지락죽은 바지락죽 전문점이다. 회무침과 전 등 바지락 요리를 주로 낸다. 김제 시내에 있다. 수미원우렁쌈밥은 이름처럼 쌈밥만 내는 집이다. 곁들여 나오는 제육볶음 등은 특이할 게 없지만, 김제 쌀로 지은 밥과 싱싱한 채소를 맛보려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다. 만경읍에 있다. 미즈노씨네 트리하우스는 만경읍 시골마을에 터를 잡은 카페다. 마을 당산목 위에 지은 트리하우스를 보려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벽골제 경관조명은 밤 10시까지 이어진다. 오후 5시부터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벽골제농경문화관 등 벽골제 관광지 안의 실내 시설은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 [포토] 형형색색의 연등에 달린 소원지

    [포토] 형형색색의 연등에 달린 소원지

    30일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이 열린 전북 김제 금산사에 설치된 연등에 소원지가 가득히 달려 있다. 뉴스1
  • 서울로 가을 나들이 온 김제 금산사 ‘천년의 문화‘

    서울로 가을 나들이 온 김제 금산사 ‘천년의 문화‘

    천년고찰 김제 금산사의 주요 유물이 서울서 불교 문화와 문화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서울 종로구 불교중앙박물관이 11월 30일까지 여는 특별전 ‘모악산 금산사, 도솔천에서 빛을 밝히다’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17교구 본사인 금산사와 말사에 전해지는 유물 118점이 공개됐다.김제 모악산 금산사는 백제시대인 599년 무렵 자복사(資福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당시 흔적은 남지 않았다. 이후 통일신라시대 승려 진표율사가 이 절에서 출가했다는 기록이 있다. 국내 유일 삼층 법당인 금산사 미륵전(彌勒殿)은 국보 제62호로 지정됐으며, 이 절에는 꽃봉오리 모양 조각상인 노주(露柱), 고려 중기 승려인 혜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혜덕왕사 탑비, 오층석탑 등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도 10건 있다. 이번 특별전에는 금산사와 말사 관련 유물 중 보물 9점, 유형문화재 8점, 등록문화재 1건 등이 포함됐다. 불상 중에는 2012년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에서 나온 금동불감(佛龕·휴대용 법당)과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 금산사 오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 보물 제421호인 실상사 약수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근대 조각가 김복진이 석고로 만든 미륵여래입상이 있다. 박물관은 특별전과 연계해 보물 제1266호 진안 금당사 괘불을 20일부터 10월 4일까지 특별 공개한다. 괘불은 야외에서 법회를 할 때 사용한 대형 불화로, 금당사 괘불은 높이 8.7m, 폭 4.7m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BTN, 호국보훈의 달 특집 다큐드라마 ‘사명대사’ 방송

    BTN, 호국보훈의 달 특집 다큐드라마 ‘사명대사’ 방송

    호국보훈의 달 특집 UHD다큐드라마 ‘사명대사’가 BTN불교TV를 통해 방송한다. 다큐드라마 ‘사명대사’는 호국영웅 임진왜란 승병장인 사명대사의 일대기 및 승병들의 구국활동을 그렸다. 1, 2부로 제작됐으며 1부 ‘일어나라, 조선의 승병들이여’, 2부 ‘승복입은 외교관’을 주제로 이틀에 걸쳐 방영된다. 26일(수) 밤 10시30분에 방송되는 1부 ‘일어나라, 조선의 승병들이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활동한 사명대사의 이야기와 이름 없이 죽어간 수 많은 승병들의 역사적 기록이 다큐 드라마 형식으로 제작됐다. 조선불교를 이끌고 갈 인물로 촉망 받음과 동시에 당대 최고의 유학자들과 교류했던 지성인 사명대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7일(목) 밤 10시30분에 방송되는 2부 ‘승복입은 외교관’에서는 임진왜란 중 일본으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하던 10만여 명의 조선 피로인을 구하기 위한 사명대사의 활약상을 일본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드라마 재연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연출을 맡은 윤정현 PD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활약했던 구국 영웅인 사명대사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름 없이 희생된 승병들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한다”고 밝혔다. 다큐드라마 ‘사명대사’는 경상북도와 김천시, 조계종제8교구본사 직지사의 제작지원으로 BTN불교TV가 기획 및 제작을 맡았다. 1년 여의 기간 동안 김천 직지사를 비롯해 동화사 금산사, 갑사, 흥국사 등 사명대사와 관련있는 사찰에서 촬영됐다. 또 승병들의 활약상과 시대적 상황을 담기 위해 문경새재, 평창, 창원해양드라마 세트장, 군산, 부안, 아산, 담양 등 국내 촬영과 더불어 교토, 구마모토, 우스키 등 일본 현지로케 촬영을 진행했다. UHD다큐드라마 ‘사명대사’는 전국 각 지역 케이블TV과 SkyLIfe, IPTV, BTN인터넷과 모바일 등을 통해 시청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모악산에 캠핑파크 조성

    전북도민들이 즐겨 찾는 모악산에 캠핑파크가 들어선다. 김제시는 모악산 캠핑파크 공사를 연말까지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시범운영에 들어간다고 20일 밝혔다. 캠핑파크는 모악산 관리사무소 옆에 조성됐다. 1㏊의 캠핑파크에 오토캠핑장 11개, 일반 25개 등 36개 사이트가 설치된다. 캠핑장은 인근에 금산사와 모악랜드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고 자연 친화적으로 조성돼 인기가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제시는 다양한 수목을 식재하고 안전시설을 보완해 시범운영을 하고 운영 상황을 분석해 정식 개장 시기를 결정할 방침이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조계종 제36대 총무원장에 원행 스님

    조계종 제36대 총무원장에 원행 스님

    대한불교 조계종 제36대 총무원장에 중앙종회 의장인 원행 스님이 선출됐다. 원행 스님은 28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선거에서 선거인단 318명 중 투표에 참여한 315명의 과반이 넘는 235표를 얻어 당선됐다. 이날 선거는 정우, 혜총, 일면 스님 등 세 후보가 선거 이틀 전인 지난 26일 ‘선거 불공정’을 이유로 동반사퇴해 단독후보 선거로 치러졌다. 원행 스님은 금산사에서 월주 스님을 은사로 출가, 법주사에서 혜정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해인사 승가대학·중앙승가대를 졸업했으며 금산사 주지, 본사주지협의회장, 중앙종회 11~13대·16대 의원, 중앙승가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지구촌공생회, 나눔의 집 상임이사와 16대 중앙종회의장을 맡고 있다. 원행 스님은 설정 스님의 중도 퇴진으로 총무원장이 궐위 상태인 만큼 당선증을 받는 즉시 임기를 시작한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조계종의 행정을 총괄하는 행정 수장으로, 인사와 예산 집행에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총무원 임직원과 전국 사찰 3100여 곳에 대한 주지 임명권, 스님 1만 3000여 명의 인사권을 비롯해 매년 530억 원이 넘는 예산 집행권과 종단 소속 사찰의 재산 감독및 처분 승인권을 가진다. 한편 재가불자 단체로 구성된 불교개혁행동과 설정 총무원장 사퇴및 조계종 개혁을 요구하며 단식했던 전 불국사 주지 설조 스님 등 재야 스님들은 선거 원천 무효와 불복을 선언했다. 따라서 은처자와 사유재산 축적 의혹 등으로 사퇴한 설정 총무원장 탄핵과 맞물린 조계종의 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한국 13번째 세계유산 등재된 산사 7곳의 역사와 특징

    한국 13번째 세계유산 등재된 산사 7곳의 역사와 특징

    한국의 13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Sansa,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은 모두 천년 넘게 불교문화를 지킨 사찰이다. 각 산사마다 다른 창건 시기와 자연환경, 건물 배치, 눈여겨볼 만한 문화재, 설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양산 통도사삼국유사에 따르면 양산 영축산 통도사(通度寺)는 신라 자장율사가 643년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 사리와 금실을 넣고 짠 베로 만든 가사,대장경을 봉안해 창건했다. 통도사 역사를 정리한 책인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에도 비슷한 시기인 646년 자장율사가 연못을 메우고 절을 세웠다고 기록됐다. 통도사는 무엇보다 부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佛寶寺刹)로 유명하다. 대웅전에 불상을 두지 않고,건물 뒤쪽에 금강계단을 설치해 부처 법신(法身)을 봉안했다. 사찰 명칭은 ‘이곳 산의 모양이 부처가 불법을 설파한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 혹은 ‘승려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금강계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문구에서 비롯됐다고 전한다. 신라시대에는 계율을 지키는 근본도량이었다.조선 초기에는 수위사찰로 지정됐고, 경남 사찰 대본산 역할을 했다.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15교구 본사다.대웅전과 금강계단은 국보 제290호이고,보물 18점과 경남유형문화재 50점을 보유한다. ● 영주 부석사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 선생이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극찬한 고려시대 건축물 무량수전(無量壽殿)이 있는 사찰이다. 의상대사가 676년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뒤 처음 지은 절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관련 기록이 있다. 의상대사가 창건 이후 40일간 법회를 연 뒤 대립을 지양하고 마음 통일을 지향하는 화엄사상의 근본 도량이 됐다. 부석사(浮石寺)라는 명칭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이 바위가 아래 바위와 붙지 않고 떠 있다는 사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려 후기인 1376년 중수했다는 묵서가 확인된 무량수전은 13세기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석사 중심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다. 누대인 안양루에서 올려다보는 무량수전 풍경은 한국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무량수전은 물론 무량수전 앞 석등과 전각 안에 있는 소조여래좌상,조사당과 조사당 벽화가 모두 국보로 지정됐다. 절이 있는 봉황산은 지세가 봉황을 닮았다는 곳으로, 소백산 국립공원에 속하나 실제로는 태백산과 이어진다. ● 안동 봉정사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국보 제15호 극락전(極樂殿)이 있다.1972년 건물을 보수할 때 나온 상량문에 따르면 1363년 처음으로 건물을 중수했다. 규모는 작지만 건축미와 품격이 느껴진다. 봉정사(鳳停寺)를 창건한 인물은 기록마다 차이가 있어 명확하지 않지만, 의상대사의 10대 제자 중 한 명인 능인대사가 7세기 후반께 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능인대사가 봉정사가 있는 천등산에서 수행하던 중 종이로 봉황을 접어 날렸더니 오늘날 사찰 자리에 머물렀다는 설화가 전한다. 천등산은 정상 높이가 574m이고 경사가 완만한 산이다.극락전과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화엄강당, 고금당이 한데 모여 있으며, 건물 배치는 전반적으로 일자형이다. 임진왜란 시기에 피해를 보지 않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축물과 불상, 불화가 잘 보존됐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을 방문했을 때 들르기도 했다. ● 보은 법주사속리산 법주사(法住寺)는 조선시대 지리지 ‘동국여지승람’에 의신조사가 553년 창건했다고 기록됐다. 의신조사가 법을 구하러 여행을 떠났다가 흰 나귀에 불경을 싣고 돌아와 머물렀다는 설화가 사찰 명칭의 유래다. 통일신라시대 승려 진표율사가 미륵보살 계시를 받은 뒤 김제 금산사에서 속리산으로 가다 소달구지를 만났는데, 소가 울자 달구지 주인이 출가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역사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에 길상사(吉祥寺),고려시대에는 속리사(俗離寺)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법주사가 있는 산의 이름이기도 한 속리는 ‘속세에서 떠난다’는 뜻이다. 법상종 중심 사찰이었던 법주사 건물 배치는 화엄사상과 미륵사상 영향을 두루 받았다.가장 유명한 건물은 국내 최고(最古) 오층목탑인 팔상전(捌相殿). 팔상전은 정유재란 때 소실됐으나 사명대사가 1624년 복원했으며, 목탑 아래 월대는 통일신라시대 유물로 알려졌다.팔상전 외에도 쌍사자 석등과 석련지가 국보로 지정됐고, 보물 13건이 있다. ● 공주 마곡사사찰 중심에 계곡이 흐르고 풍경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택리지’와 ‘정감록’에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땅으로 기록됐다. 마곡사(麻谷寺) 창건 시기와 과정은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다. ‘마곡사사적입안’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온 뒤 세웠다고 적었고, ‘마곡사연기략초’에 따르면 보조선사 체칭이 지었다. 자장율사는 7세기,체칭은 9세기에 활동했다. 절은 고려시대에 중흥했다.계곡을 경계로 남원과 북원으로 나뉘는 건물 배치도 고려시대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마곡사에 들러 ‘만세에 망하지 않을 땅’이라고 평가했고, 17세기 이후 중창을 거듭했다. 마곡사는 남방화소(南方畵所)로 불릴 정도로 많은 승려화가를 배출했고, 백범 김구 선생이 명성황후 시해에 참가한 일본인 장교를 살해해 옥살이하다 탈옥한 뒤 출가했던 절이기도 하다. 국보는 없지만 오층석탑, 영산전, 대웅보전, 대광보전, 석가모니불괘불탱이 보물로 지정됐다. ● 순천 선암사송광사(松廣寺)와 함께 순천을 대표하는 명찰인 선암사(仙巖寺)는 조계산 자락에 자리 잡았다. 선암사 창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아도화상이 529년 세웠다는 글이 있고, 도선국사가 875년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시대 승려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면서 대찰이 됐으나,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모두 불탔고 1759년에도 화재를 겪었다. 이에 따라 건물 배치가 여러 차례 변했는데, 현재 모습은 1824년에 갖춰졌다.중심건물인 대웅전도 같은 해에 재건됐다. 선암사는 절 입구에 사천왕문을 두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사천왕은 법을 지키는 신인데, 조계산 정상이 ‘장군봉’이어서 사천왕을 굳이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경내에 있는 보물 14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유물은 승선교(昇仙橋)다. 화강암을 다듬은 장대석으로 아치인 홍예를 만들었다.이른 봄에 피는 매화인 ‘선암매’는 천연기념물이다. ● 해남 대흥사한반도 남쪽 해남 두륜산에 있는 대흥사(大興寺)는 창건 시점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늦어도 통일신라시대부터 운영됐다. 선암사처럼 아도화상 혹은 도선국사가 창건 주인공으로 알려졌다. 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이라고도 하는 까닭에 사찰도 대둔사로 불린 적이 있다. 두륜산은 높이가 703m로, 계곡과 편백 숲 덕분에 경치가 수려하다.계곡은 대흥사도 지나가는데, 이로 인해 마곡사처럼 건물이 남원과 북원에 나뉘어 배치됐다. 대흥사가 다른 사찰과 구별되는 점은 호국정신이 깃든 도량이라는 사실이다.대흥사에 대해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이라고 평가한 서산대사의 충정을 기리는 사당인 표충사(表忠祠)도 있다. 차 문화도 대흥사의 특징이다.대흥사가 배출한 대종사(大宗師) 13명 중 한 명인 초의선사는 우리나라 다도(茶道)를 재정립한 인물이다. 조계종 22교구 본사로,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이 국보 제308호다. 보물 8건과 전남유형문화재 5건도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인 아파트 추락 신고한 남편 잠적

    부인이 아파트에서 추락했다고 신고한 30대 남성이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잠적해 경찰이 뒤를 쫓고 있다. 추락한 부인은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20일 전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쯤 정읍시 연지동 한 아파트 12층에서 A(26·여)씨가 추락했다. A씨는 온몸에 골절상 등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중태다. A씨는 추락 도중 나뭇가지에 걸려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다. 부인의 추락을 신고한 남편 B(34)씨는 이후 집을 나와 차를 몰고 김제 방면으로 향했다.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 남편의 행적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은 B씨에게 거듭 전화를 했다. 수차례 통화시도 끝에 전화를 받은 B씨는 “교통사고로 죽으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경찰은 추적에 나서 김제 금산사 인근 한 도로에서 B씨 차량을 찾았지만, 운전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발견된 차량에서는 무언가에 부딪힌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부인의 추락 경위와 남편의 행방은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면서 “우선 남편의 행방을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김제 모악산 축제 4월 6일부터 사흘간

    ‘제11회 김제 모악산 축제’가 오는 4월 6일부터 사흘간 금산사 일대에서 열린다. 전북 김제 모악산의 역사·문화를 탐방하고 다양한 공연을 즐기는 축제다. 이번 축제는 ‘자연이 그려낸 어머니의 산, 모악산’을 주제로 4개 분야 38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6일 생활문화 예술동호회 콘서트와 국악·비보이의 퓨전 하모니 공연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오후 2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이 열린다. 7일에는 모악산 마실길 걷기 대회와 도내 시군 어머니 노래 대회 등이 개최된다. 이어 8일에는 추억의 노래 7080 포크송 공연, 모악산 퀴즈쇼 등이 계획됐다. 이번 축제에서는 19개 읍·면·동 주민들이 농특산품 판매·홍보 부스를 운영한다. 김제를 대표하는 무형문화재 장인들도 각종 시연을 한다. 이후천 김제시장 권한대행은 “금산사∼금평저수지∼청도리를 잇는 드라이브 코스, 모악산 주변의 금구 명품 길도 즐길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불편이 없도록 음식, 교통, 주차 등의 문제에 철저히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국보급 고려 불경 29책 해인사 불상서 찾아내

    국보급 고려 불경 29책 해인사 불상서 찾아내

    경남 합천 해인사의 15세기 조선 전기 불상에서 국보급으로 평가되는 고려 불경이 무더기로 나왔다. 대한불교조계종은 해인사 원당암의 목조아미타불좌상 내부를 조사한 결과 고려 우왕 1년(1375)에 인출(印出)한 서적 ‘성불수구대다라니’와 고려 후기에 고려대장경으로 찍은 ‘대방광불화엄경’ 28책을 찾아냈다고 16일 밝혔다.성불수구대다라니는 소매에 넣어 다닐 수 있게 만든 수진본(授珍本)으로, 국내외에 없는 유일본이다. 변상도(變相圖·불교 경전 내용이나 교의를 알기 쉽게 그린 그림)가 수록된 형식이 독특하고 간행 기록이 분명하다. 때문에 불교 회화사·사상사,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조계종은 목조아미타불좌상과 함께 삼존불을 이루는 관음보살입상과 지장보살입상을 엑스레이로 촬영해 또 다른 불경들도 확인했다. 지장보살입상에서는 고려 후기의 족자형 사경이 발견됐다. 사경 축에 금속 장식이 있는 이런 형태는 일본 금산사가 소장 중인 고려 사경 ‘불설대길상다라니경’(1323년)이 유일하다. 관음보살입상에서는 종이 뭉치와 경전 사이에 병풍처럼 접었다 펼 수 있는 책인 절첩본이 발견됐다. 책은 화려한 보상당초문의 표지 그림에 6행 17자로 구성돼 역시 고려 후기 것으로 추정된다. 조계종은 삼존불과 전적들의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종정을 지낸 혜암 스님의 유지와 방장인 원각 스님의 뜻에 따라 600여년간 신성성을 간직해 온 관음보살입상과 지장보살입상의 복장은 열지 않기로 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견훤 탄생 설화 품은 금하굴… 백제 미륵불교 묻어 있는 견훤산성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견훤 탄생 설화 품은 금하굴… 백제 미륵불교 묻어 있는 견훤산성

    경북 상주나 문경을 여행하다 보면 견훤산성이나 견훤사당처럼 견훤의 이름이 들어간 이정표와 종종 맞닥뜨리게 된다. 토박이들이야 그럴 일이 없겠지만, “후백제를 창건한 인물의 흔적이 왜 신라의 옛 땅에 몰려 있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마련이다. 견훤(867~936)은 무진주를 점령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뒤 완산주로 천도해 후백제 왕이라 칭했던 인물이다. 이후 맏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됐고, 왕건에게 투항한 뒤 신검을 토벌해 달라고 요청해 결국 후백제를 멸망케 했다. 무진주는 오늘날의 광주광역시, 완산주는 전북 전주다. 견훤이 뜻을 세운 이후 상주와 문경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렇다. 상주는 견훤의 고향이다. 상주 출생설에 맞서 광주에서 태어났다는 학설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지금도 상주설의 위치는 굳건하다.●가은 지역에 견훤 집안이 백제 유민이라고 전승 상주설의 근거인 ‘삼국유사’ 기록은 이렇다. ‘견훤은 상주 가은현 사람이다. 근본 성은 이(李)였는데 뒤에 견(甄)으로 고쳤다. 아버지 아자개는 농사 지어 살았는데, 광계 연간에 사불성에서 스스로 장군이라 칭했다. 아들 넷이 있어 모두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는데 견훤은 남보다 뛰어나고 지략이 많았다.’ 광계(光啓)는 당나라 희종(재위 885~888)의 연호다. 경상도(慶尙道)는 잘 알려진 것처럼 고려시대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은 땅이름이다. 상주가 이전 왕조의 수도 경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중요한 고을이었다는 뜻이다. 가은은 오늘날에는 문경 땅이다. 하지만 과거 가은현과 문경현은 상주군에 속하기도 했다. 견훤의 흔적을 따라가는 길은 가은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문경시의 서북단 가은읍은 서쪽으로 충북 괴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소백산맥 줄기를 이루는 1000m급 준봉(埈峰)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지만 가은에 이르면 하늘이 활짝 열렸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넓고 비옥한 땅이 펼쳐진다. 이런 가은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했다면 통일신라 말 상주의 호족이었던 아자개의 세력은 결코 간단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가은에는 견훤의 집안을 백제계로 연결 짓는 전승이 있다고 한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나라가 망하자 백제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중에서 경제력이 있는 일부가 산간벽지인 가은 아차마을로 피란해 살았다는 것이다. 물론 문헌상의 근거는 찾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한다. 갈전리 아차마을은 서남쪽의 속리산 줄기에서 발원한 뒤 동북쪽으로 흘러나가 문경과 상주 시내를 거쳐 낙동강에 합쳐지는 영강을 따라 펼쳐진 속개들이 바라다 보이는 가은읍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아차마을에 닿으면 금하굴(霞窟)을 먼저 찾는 것이 순서다. 금하굴은 견훤의 출생 설화가 드리워진 작은 동굴이다. 일연이 ‘고기’(古記)를 인용해 ‘삼국유사’에 담아놓은 설화의 내용은 이렇다. ‘북촌의 부잣집이 있었다. 어느 날 딸이 아버지에게 “밤마다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왔다 간다”고 하자 아버지는 “너는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 남자의 옷에 꽂아 두라”고 했다. 날이 밝아 실이 간 곳을 찾아보니 바늘은 북쪽 담 밑에 있는 큰 지렁이 허리에 꽂혀 있었고, 이로부터 딸은 태기가 있어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가 곧 견훤이라는 이야기다.●“견훤 모친 찾아온 큰 지렁이가 금하굴에 살아” 금하굴은 견훤의 어머니에게 밤마다 찾아왔던 큰 지렁이가 살았다는 동굴이다. 1000년에 훨씬 넘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에 얽힌 전설과 그 물리적 흔적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문화가 그만큼 풍요롭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견훤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개동이라고도 불리는 아차마을에는 견훤의 집터도 남아 있다. 금하굴 뒤편의 작은 언덕 너머에는 2002년 지은 숭위전(崇威殿)이 있다. 견훤에게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조선은 역대 왕조의 사당을 만들었는데, 환인·환웅·단군을 모신 황해도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와 기자를 배향한 평양의 숭인전(崇仁殿)이 그렇다. 숭인전 옆에는 단군과 고구려 동명왕을 합사한 숭령전(崇靈殿)을 지었다. 조선은 신라 박혁거세, 백제 온조왕, 가락국 수로왕을 각각 배향한 숭덕전(崇德殿), 숭렬전(崇烈殿), 숭선전(崇善殿)도 경주, 남한산성, 김해에 세웠다. 고려의 역대 왕을 제사하는 숭의전(崇義殿)은 경기도 연천에 지었다. 그러니 문경시가 견훤 사당의 이름을 숭(崇)자 돌림을 써서 지은 의미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아자개장터엔 전통문화 체험 시설 만들어 금하굴에서 자동차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은 읍내의 아자개장터도 둘러보면 좋을 것이다. 볼거리가 적지 않은 전통시장 곁에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아자개 세력의 본거지라는 역사성을 살리겠다는 뜻이 훌륭하다. 전통시장 자체가 문화공간인 만큼 아자개장터는 어린이를 위한 체험 시설로 만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이제 상주 견훤산성으로 간다. 견훤산성은 오늘날의 행정구역으로는 상주시에 속하지만, 속리산 자락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속리산 문장대를 수도권이나 충청권 사람들은 충북 보은에서 오르지만 영남권 사람들은 상주에서 오른다. 상주에서 견훤산성을 거쳐 괴산으로 넘어가는 길은 이름부터가 문장로(路)다.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포장도로에서 견훤산성까지는 700m 남짓이다. 산길을 20분쯤 오르면 갑자기 기대보다 훨씬 큰 규모의 석성(石城)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문장대 너머에는 법주사가 있다. 김제 금산사가 진표율사가 주도한 백제 미륵신앙의 본산이라면 보은 법주사 역시 백제불교 계통의 미륵도량이었다.●견훤산성 가까이에는 백제 미륵도량 법주사 한국 근대 조각의 개척자라 할 수 있는 김복진이 일제강점기 금산사 미륵전 주존과 법주사 미륵을 당시로서는 첨단 재료인 석고와 시멘트로 각각 조성하기도 한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견훤산성도 백제불교의 영향이 미쳤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견훤이 훗날 유폐된 곳이 금산사였다는 사실도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상주시 화서면 하송리의 견훤사당은 견훤산성에서 자동차로 30분쯤 걸리니 가깝지는 않다. 견훤사당은 전면 한 칸, 측면 두 칸의 간소한 건물이지만, 단아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견훤을 마을신으로 모시는 사당은 늦어도 19세기 전반에는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청계마을의 동제(洞祭)가 열리는 민속신앙의 구심점이다. 고려 왕조의 시각일 수밖에 없는 ‘삼국사기’는 견훤을 ‘고슴도치 털과 같이 떼지어 일어난 뭇도적 가운데 궁예와 함께 가장 심한 자’로 지목했다. ‘신라의 녹을 먹으면서도 반역의 마음을 품어, 나라의 위기를 요행으로 여겨 도읍을 침탈하여 임금과 신하를 살육하기를 새를 죽이고 풀을 베듯 하였으니, 실로 천하에서 가장 극악한 자’라고도 했다. 그런데 상주와 문경 일대를 돌아보면 민심은 크게 달랐음을 알 수 있다. 글 사진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천년 고찰, 화엄의 목소리…구례 화엄사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천년 고찰, 화엄의 목소리…구례 화엄사

    “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 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 6.25 전쟁 당시 전투경찰대 제 2연대장이었던 차일혁 총경(1920~1958)은 상부의 명령에 불복한다. 이미 정읍의 백제 시대 고찰 내장사(內藏寺)도 작전상의 이유로 소각되었던 터라 금산사, 쌍계사, 백운사, 선운사와 더불어 전남 대표사찰이었던 구례 화엄사도 머지않아 한 줌 잿더미로 내려앉을 운명이었다. 차일혁 총경은 묘안을 낸다. 화엄사에 도착한 그는 부하들로 하여금 각황전과 대웅전의 문짝을 뜯어와 불 지르게 한다. 상부의 명령을 이행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을 만든다. 그는 결국 징계 처분을 받는다. 화엄사는 그렇게 전화(戰火)를 피한다. 시인 고은은 그를 위해 공적비를 화엄사 부도전 앞에 새겨두었다. 봄경치에 있어서는 지리산 노고단 한 자락에 앉은 천년고찰, 화엄사 주변도 당연 이름 내밀만하다. 매화, 벚꽃, 진달래, 산수유, 개나리 등등을 스친 슴슴한 봄바람은 석탄일을 앞두고 절집 찾은 방문객들의 코를 향긋하게 적셔준다. 사월 초파일, 구례 화엄사다. 화엄사의 기초는 백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 승려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한 후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중수하였다. 신라 헌강왕(875) 때에 이르러서는 화엄사는 대총림으로 승격된다. 고려 태조 26년(943)에는 왕명으로 고려 최초로 화엄사를 중수, 보수하였고 조선 세종 6년(1426년)에는 선종대본산으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1592~1598) 시절 구례 석주관에서 승병 300여 명이 화엄사에서 출정하여 이 앙갚음으로 왜장 가등청정은 화엄사를 전소시킨다. 이후 인조(1630~1636)때 절을 다시 짓게 되었고, 숙종(1699~1703)때에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각황전이 건립된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도광대종사의 전면적인 대중수작업으로 현재의 웅장한 가람배치를 하게 된다. 화엄사는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던 우리나라 화엄종의 총본산이자 화엄사상의 상징적인 사찰이어서 불교사적으로 의미가 큰 곳이다. 현재 화엄사 일원은 명승 및 사적 제 7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며, 특히 각황전(국보 제 67호)은 우리나라 불교 목조 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늘 방문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또한 각황전 앞에는 석등(국보 제12호),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이 있어서 천년 고찰의 위의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각황전 앞의 홍매화는 봄맞이 화엄사 방문객들에게 두고 두고 회자되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외에 대웅전, 영전, 원통전, 명부전, 나한전, 영산전 등 천년 사찰의 품격을 화엄사는 그대로 지니고 있어, 지리산까지 다가온 방문객들의 힘든 발걸음을 넉넉히 안아 준다. <화엄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지리산 노고단을 방문한다면 필수 방문지다. 2. 누구와 함께? -도시의 삶에 지친 누구라도 3. 가는 방법은?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구례 시외버스정류장에는 60분 간격으로 버스가 있다. 4. 감탄하는 점은? -운고루에서 내려다보는 지리산의 깊디 깊은 골짜기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명성에 걸맞을 만한 사찰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각황전, 대웅전, 운고루, 보제루, 4사장 삼층석탑, 석등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산채비빔밥 ‘만남가든’(782-9172), 소내장탕 ‘목화식당’(782-9171), 다슬기수제비 ‘부부식당’(782-9113), 족탕 ‘동아식당’(782-5474), ‘수구레국밥’(783-2228) /지역번호 (061)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hwaeomsa.com/index2.ph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운조루, 섬진강 어류 생태관, 수락폭포 10. 총평 및 당부사항 -화엄사는 들어서는 입구부터 큰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지리산 노고단 쪽으로 가는 길이라면 일부러라도 화엄사에는 들릴만하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불법은 세간에 있는데 어찌 세간을 떠나 얻나”

    “불법은 세간에 있는데 어찌 세간을 떠나 얻나”

    “한국불교 지나치게 수행에 치우쳐 수행·실천은 양 날개… 균형 필요” “불법(佛法)은 세간에 있는데 어찌 세간을 떠나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세간을 떠나 깨달음을 찾는다면 토끼뿔이나 거북털을 구하는 것처럼 헛되지 않을까요.”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조계종출판사) 출간에 맞춰 지난 26일 전북 김제 금산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금산사·영화사 조실 송월주(세수 81세) 스님은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뭘 원하는지 살펴 밥이 필요한 사람에겐 밥을 주고 약이 필요한 이에겐 약을 줘야 한다”며 “기본적인 삶의 질을 높여 주고 법을 베풀 때 모래사장에 물이 스며들듯 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월주 스님은 중앙종회의장(5대)과 총무원장(17·28대)을 비롯한 조계종 최고 소임을 맡고도 사회활동에 천착한 까닭에 ‘불교계 시민운동 선구자’로 통한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를 비롯해 지구촌 곳곳에 학교며 우물을 마련해 세상 사람들에게도 친근한 지도자로 꼽힌다. 각국 2307곳에 우물을 파 식수를 공급했고 58곳에 초·중·고교를 건립해 놓았다. 6·25전쟁 직후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뇌하다가 출가 입산했다는 스님은 “법문을 설해서 수많은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이야말로 큰 나무”라며 “이왕이면 작은 나무보다는 큰 나무가 되겠다”는 초발심을 지키려 노력했다고 한다. “자기 내면의 부처를 믿고 부처의 눈으로 바라보고 부처의 마음으로 나누고 스스로 부처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가슴에 새기고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는 지극한 안락을 누리며 영원을 살 수 있습니다.” 그 소신대로 스님은 절름발이 수행으로 비난받곤 하는 한국불교에 대해 “수행에만 지나치게 치우친 측면이 있다”며 쓴소리를 냈다. 특히 선가에서 관습처럼 전해지는 오도송이며 임종게를 향해 날 선 비판을 던졌다. “후학들과 대중의 귀감이 될 만큼 치열하게 수행에 전념해 살았다면 문제 될 게 없지요. 그러지 못했고 오도송을 전한 적도 없고 임종게를 직접 남기지도 않았는데 상좌(제자)들이 대단한 업적인 양 전하는 관습은 부당합니다.” 그 수행 풍토를 반성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했다는 스님은 “누군가 앞장서야 한다면 ‘내가 하자’는 생각으로 살다 보니 번다할 정도로 많은 소임을 맡아 살아왔다”며 웃었다. “지혜의 수행과 자비행의 실천은 수레의 양쪽 바퀴와 같고 새의 양 날개와 같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동체대비의 보살행이 필요하다는 스님은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향해 치우치지 않는 자비심을 베풀라고 당부했다. 세월호를 비롯한 재난 희생자와 유족, 시위의 가·피해자와 관련해서도 치유, 위로의 마음과 실천행이 중요하지만 법과 원칙의 형평성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했다. “종교인은 민족의 향도이자 민중의 보살이 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신뢰를 잃는 게 당연하지요. 종교인들이 먼저 참회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스님은 ‘한국불교 최대의 치욕’이라는 10·27 법난의 가장 큰 피해자다. 1980년 총무원장에 취임, 개혁종단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신군부에 의해 강제 퇴진당했다. 조계사의 견지동 45 주소명을 딴 신군부의 ‘45계획’이 진행되던 당시 스님은 “조사 내용을 발설하지 않고 향후 2년간 모든 공직을 맡지 않는다는 각서를 썼다”고 했다. 그 사건을 놓고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10·27 법난은 신군부가 정권 창출을 위해 정화를 명분 삼아 불교계 길들이기 차원에서 저지른 만행이나 다름없다.” “주는 기쁨과 받는 기쁨은 행복을 만드는 으뜸 요인입니다.” ‘자기 하는 일에 만족을 느끼며 사는 게 행복’이라는 아주 평범한 행복론을 들려준 월주 스님. 그는 “이제 스님이 계실 곳은 어디인가”라는 마지막 질문에 이런 대답을 돌려 줬다. “대중과 함께 사는 나의 삶은 언제나 부족한 진행형입니다. 지금까지 해 온 일을 계속 다듬어 내야지요.” 글 사진 금산사(전북 김제)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몸이 덩실, 침이 꿀꺽, 눈이 번쩍 빠져 볼까…찾아온 축제의 계절

    몸이 덩실, 침이 꿀꺽, 눈이 번쩍 빠져 볼까…찾아온 축제의 계절

    여름의 끝이 반가운 것은 단지 ‘폭염’이 끝났다는 기쁨 때문만은 아니다.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는 축제의 계절이 뒤이어 오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을, 겨울의 문화관광 축제들을 모았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글로벌 축제] 전통과 춤추고 화려한 유등 만나고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www.maskdance.com) 서늘한 바람 부는 날 탈춤판에 열정을 쏟아붓고 싶은 이라면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찾는 게 좋겠다. 고색창연한 도시 안동에서 수준 높은 탈춤의 시각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축제다. 올해 벌써 20회째. 그래서 주제도 ‘스무살 총각탈, 각시를 만나다’이다. 9월 30일~10월 9일 안동시 탈춤공원 일원에서 열린다. ‘잘 노는’ 이라면 탈춤을 몰라도 누구나 공연자가 될 수 있다. ‘탈춤 따라 배우기’ 프로그램을 통해 몸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탈춤 공연, 마당극, 탈놀이 대동난장 퍼레이드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안동의 명소인 월영교나 호반나들이길을 찾으면 촉촉한 가을을 물씬 느낄 수 있다. 하회마을에서 열리는 선유줄불놀이는 꼭 기억해 둘 것. 강물 위로 떨어지는 불꽃들이 현란하고 로맨틱하다. 9월 27일과 10월 4일 일몰과 동시에 진행된다. 안동축제관광재단 (054)841-6397~8. ●진주 남강유등축제(www.yudeung.com) 화려하게 불을 밝힌 유등들이 진주 남강을 수놓는다. 바람에 일렁일 때마다 반짝이는 모습이 고혹스럽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야간 축제인 진주남강유등축제다. 올해는 일정이 늘어 10월 1~16일 진주 시내 남강 일대에서 열린다. 35개에 이르는 다양한 참여형 행사들이 준비됐다. 유등놀이는 임진왜란 당시 3800여명의 병력으로 2만명의 왜군을 무찌른 진주대첩(1592년)과 이듬해 진주성 함락으로 7만 병사와 양민들이 순절한 ‘계사순의’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당시 유등은 군사신호로, 왜군의 남강 도하를 저지하는 전술로,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두루 쓰였다고 한다. 입장료가 있다. 어른 1만원, 학생 5000원이다. 다만 진주시 의회 내부에서 유료화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어 액수는 바뀔 수 있다. 핵심 프로그램 중 하나인 소망등 달기(1만원)와 유등띄우기(3000원) 등도 유료다. 진주문화예술재단 (055)755-9111. [대표 축제] 재즈 선율 느끼고 얼음낚시 해보고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www.jarasumjazz.com) 재즈 마니아들이 손꼽아 기다려 온 음악 축제다. 10월 1~ 3일 경기 가평의 자라섬과 읍내 일원에서 열린다. 초청 아티스트만 해도 해외 25팀 125명, 국내 21팀 160여명에 이르는 초대형 재즈 축제다. 크로스오버 재즈 장르의 개척자로 꼽히는 재즈밴드 오레곤, 노르웨이의 혁신적 재즈 그룹인 부게 베셀토프트’s 뉴 컨셉션 오브 재즈 등이 라인업에 올랐다. 프로그램도 한층 강력해졌다. 메인스테이지인 재즈아일랜드, 파티스테이지(이상 유료)를 비롯해 재즈큐브 등 10개 무대가 운영된다. 재즈 마니아를 위한 수상 스포츠 체험센터 공연장도 첫선을 보인다. 지역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팜파티, 팜마켓 등을 통해 가평의 우수한 농산물을 적극 소개할 예정이다. 사무국 (031)581-2813~4. ●화천산천어축제(www.narafestival.com) 10년 연속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았다는 겨울 축제다. 미국 CNN 방송이 ‘세계 겨울의 7대 불가사의’로 선정할 만큼 국제적인 명성도 얻고 있다. 이 덕에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로부터 ‘글로벌 축제’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올겨울 축제는 2017년 1월 7일부터 29일까지 23일간 열릴 예정이다. 산천어 얼음낚시를 비롯해 세계얼음썰매체험존 등 70여 가지 프로그램과 볼거리가 가득하다. ‘인증샷’ 찍기 좋은 선등거리는 축제보다 이른 올 12월 17일부터 새해 2월 12일까지 운영된다. 다양한 형태의 등이 겨울밤을 밝힌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야간 얼음낚시는 올해도 이어진다. (재)나라 1688-3005. ●김제지평선축제(gjfestival.alltheway.kr) 수확의 계절인 가을 한국의 농경문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축제다. 9월 29일부터 10월 3일까지 호남평야의 중심지인 전북 김제의 벽골제에서 열린다. ‘벽골제 전설 쌍룡놀이’, ‘풍년 기원 입석줄다리기’, ‘벽골제 쌍룡 횃불 퍼레이드’ 등 대표 프로그램 외에도 올해 ‘한민족의 얼! 농악 기획공연’, ‘대한민국 막걸리 페스티벌’ 등을 새로 선보일 예정이다. 아울러 ‘지평선 팜스테이’ 등 농촌마을 체험과 ‘학성강당 예절 교육’, ‘금산사 템플스테이’ 등 유불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축제 기간 내내 운영된다. 10월 1일 서울역과 김제역 간 테마열차도 운행한다. 당일 여행 상품이다. 김제지평선축제 기획단 (063)540-3031~6. [최우수 축제] 가족 건강 챙기고 옛 추억에 빠지고 ●산청한방약초축제(donguibogam-village.sancheong.go.kr) 1000여종의 약초와 침, 그리고 기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축제다. 9월 30일부터 10월 10일까지 경남 산청 축제광장과 동의보감촌 일원에서 열린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한방무료진료, 한방 항노화·뷰티 체험, 한방약초체험, 동의보감촌 둘레길 걷기대회 등이 꼽힌다. 기혈순환 체조와 기 명상 프로그램, 지리산 자생 약초로 만든 약선 음식 체험 등 부대행사도 알차다. 축제장 안에 귀감석, 복석 등 ‘기가 센’ 돌들이 많다. 품에 안으면 기를 받는다고 하니 꼭 경험해 보시길. 산청군 항노화산업과 (055)970-7701~4. ●이천쌀문화축제(www.ricefestival.or.kr) 경기 이천의 상징인 쌀과 농경문화의 백미인 가을걷이를 주제로 열리는 잔치 한마당이다. 10월 19~23일 이천 시내 설봉공원 일대에서 열린다. 어린 세대는 전통 농경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어른들은 옛 향수를 떠올릴 수 있는 축제다. 맛있는 햅쌀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쌀문화 축제의 프로그램은 스케일이 남다르다. 성인 5~6명은 거뜬히 들어가는 가마솥에 2000명이 먹을 수 있는 밥을 지어 2000원에 판매한다. 오색빛 무지개 가래떡도 빚는다. 길이가 무려 600m에 이르지만 순식간에 사라진다. (031)644-4125. ●추억의 7080충장축제(www.cjr7080.com) ‘추억’을 주제로 해마다 가을에 열리는 거리문화 축제다. 올해는 ‘추억을 넘어 미래로’를 주제로 9월 29~10월 3일 광주 금남로, 충장로, 예술의 거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일원에서 펼쳐진다. 축제 개막은 거리 퍼레이드가 연다. 수창초교~금남로공원~문화전당 약 2.1㎞에서 1만여명이 참여해 다채로운 퍼레이드를 펼친다. 상설 프로그램 가운데는 ‘추억의 테마거리’에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린다. 추억의 고고장, 그때 그 시절 먹거리, 추억의 음악 다방, 변사극, 오락실 등 1970, 80년대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다. 축제추진위원회 (062)608-3930~3. [우수 축제] 메밀꽃밭 걸어 보고 젓갈 맛보고 ●평창 효석문화제(www.hyoseok.com)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었던 강원 평창 봉평면의 효석문화마을 일대에서 9월 2~11일 열린다. 야간 영화 상영, 작가와의 만남 등 다채로운 문학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나귀를 타고 메밀꽃밭을 걸어 보는 이색 체험도 할 수 있다. 축제 기간 동안 지정 숙박업소 객실료 할인 등 이벤트도 벌인다. 이효석문학선양회 (033)335-2323. ●순창장류축제(www.jangfestival.co.kr) 장류와 발효 음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축제다. 10월 13~16일 전북 순창의 전통고추장민속마을 일대에서 열린다. 2016인분 떡볶이와 고추장 비빔밥 만들기, 국가대표 매운맛 대회, 인디 밴드 가요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장류제품(고추장, 된장, 장아찌)과 농특산품 할인 행사도 열린다. (063)652-9301. ●논산 강경발효젓갈축제(ggfestival.co.kr) 다양한 젓갈을 맛보고 공연도 감상할 수 있는 축제다. 10월 12~16일 강경젓갈공원과 젓갈시장, 옥녀봉 등에서 열린다. 대표 프로그램은 젓갈김치 담그기다. 조선의 3대 시장 축하 공연과 강경다듬이쇼, 강경포구 마당극 경연대회 등 볼거리가 준비됐고 왕새우 잡기 체험 등 다채로운 체험 행사도 진행된다. 축제준비위원회 (041)746-5662. ●제주들불축제(www.buriburi.go.kr) 제주에선 방목하는 가축을 위해 늦겨울에서 경칩에 이르는 동안 불을 놓아(방애) 새 풀이 돋아나도록 했다. 이 같은 옛 목축문화를 계승 발전시킨 축제가 제주들불축제다. 새 불을 일으켜 새봄을 맞고 한 해의 모든 액을 태워 없애자는 뜻을 담고 있다. 2017년 3월 2일∼5일 제주 새별오름 일대에서 열린다. 제주시 관광진흥과 (064)728-2751~6.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멘트·석고 미륵불 ‘파격’을 담아낸 불상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멘트·석고 미륵불 ‘파격’을 담아낸 불상

    정관 김복진(1901~1940)은 현대적 개념의 조각가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물로 미술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는 카프(KAPF)라는 영문 약칭이 더 익숙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한때 불문(佛門)에 귀의했다는 그는 불모(佛母)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오히려 서양미술에 바탕을 둔 조각 작품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50점 남짓한 작품 가운데 동상은 제2차 세계대전 막판 일제의 쇠붙이 공출로 사라졌고, 목조와 소조의 유작도 동생인 팔봉 김기진의 인쇄소 창고에서 6·25전쟁 때 소실됐다고 한다. ●한국 최초 현대 조각가… 불상 10여점 남아 있어 불상으로는 충북 보은 법주사의 미륵대불이 그의 작품이었다. 미륵대불은 김복진이 머리 부분을 완성하고 전체 비례를 잡아 놓은 상태에서 자금난으로 중단됐다고 한다.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미륵대불은 1963년에야 완성됐다. 이후 흔한 시멘트 조각이라는 이유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김복진으로서는 오히려 시멘트라는 새로운 수입 재료를 거대 불상 조성에 이용하는 실험이었을 것이다. 미륵대불은 1990년 금동상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두 차례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김복진의 체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본존불도 그의 작품이다. 미륵전은 내부가 아래위로 뚫려 있는 3층으로 본존불은 높이가 38척이니 12m가 넘는다. 법주사 미륵대불에 시멘트를 이용한 것처럼 금산사 미륵본존불도 서양조각 재료인 석고를 썼다. 당초의 삼존불은 미륵전을 중창한 인조 13년(1635) 조성한 것이다. 미륵불은 특이하게 커다란 무쇠솥 위에 봉안되어 있다. 참배객들은 삼존불에 배례하고는 무쇠솥과 대좌 사이 공간에 시줏돈을 넣고는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34년 3월 9일 저녁 시줏돈을 거두는 소임을 맡은 동자승이 촛불을 잘못 다루는 바람에 솥 내부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불길은 곧바로 소조상 내부 목재에 옮겨 붙었고 본존불은 무너지고 말았다. 금산사는 미륵본존의 복원불사를 추진했다. 공모에는 김복진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화승들인 보응 문성, 금용 일섭, 이석성이 응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보응, 금용, 이석성은 서울 안양암의 천오백불상도 함께 조성한 적이 있다. 이당 김은호 화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도 눈길을 끈다. 김복진에게 응모를 권유한 것도 이당이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옥살이하며 밥으로 불상 만들기도 김복진은 도쿄미술대학에서 공부한 뒤 1923년 신극운동 단체인 ‘토월회’를 조직한다. 1924년에는 일본 제국미술원전람회, 1925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각각 나체 조각 작품으로 입선한다. 이듬해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나체상 ‘여인’이 특선에 올랐다. 하지만 조선공산당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928년 일본 경찰에 붙잡혀 6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김기진은 감옥살이 당시 형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참담한 감옥살이 중에도 김복진은 먹지 않고 남긴 밥을 주물러 점토처럼 만들고는 인물상과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솜씨에 놀란 간수들이 김복진을 목공소로 보내 작은 목조불상을 깎게 해서 감옥소 직매장에서 팔게 했다는 것이다. 김복진이 불교 조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 기간이었던 것 같다. 금산사 미륵불 조성에 나선 것은 풀려난 직후가 된다. 남아 있는 김복진의 불상 작품은 10점 남짓이다. 금산사 미륵불과 그의 흔적이 남은 법주사 미륵대불, 서울 영도사 석가모니불입상, 충남 예산 정혜사 관음보살좌상, 충남 공주 계룡산 소림원 미륵입상 등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소림원 불상이다. 소림원의 높이 117㎝ 석고 미륵은 금산사 미륵불을 조성하기 위한 축소 모형이라고 한다. 다만 머리 부분의 비례가 소림원 쪽보다 금산사 쪽이 조금 더 커보인다. 참배객들이 고개를 들어 한참을 높이 올려다봐야 하는 대형 불상인 만큼 의도적인 비례 조정이다. dcsuh@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멘트·석고 미륵불 ‘파격’을 담아낸 불상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멘트·석고 미륵불 ‘파격’을 담아낸 불상

    정관 김복진(1901~1940)은 현대적 개념의 조각가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물로 미술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는 카프(KAPF)라는 영문 약칭이 더 익숙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한때 불문(佛門)에 귀의했다는 그는 불모(佛母)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오히려 서양미술에 바탕을 둔 조각 작품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50점 남짓한 작품 가운데 동상은 제2차 세계대전 막판 일제의 쇠붙이 공출로 사라졌고, 목조와 소조의 유작도 동생인 팔봉 김기진의 인쇄소 창고에서 6·25전쟁 때 소실됐다고 한다. ●한국 최초 현대 조각가… 불상 10여점 남아 있어 불상으로는 충북 보은 법주사의 미륵대불이 그의 작품이었다. 미륵대불은 김복진이 머리 부분을 완성하고 전체 비례를 잡아 놓은 상태에서 자금난으로 중단됐다고 한다.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미륵대불은 1963년에야 완성됐다. 이후 흔한 시멘트 조각이라는 이유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김복진으로서는 오히려 시멘트라는 새로운 수입 재료를 거대 불상 조성에 이용하는 실험이었을 것이다. 미륵대불은 1990년 금동상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두 차례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김복진의 체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본존불도 그의 작품이다. 미륵전은 내부가 아래위로 뚫려 있는 3층으로 본존불은 높이가 38척이니 12m가 넘는다. 법주사 미륵대불에 시멘트를 이용한 것처럼 금산사 미륵본존불도 서양조각 재료인 석고를 썼다. 당초의 삼존불은 미륵전을 중창한 인조 13년(1635) 조성한 것이다. 미륵불은 특이하게 커다란 무쇠솥 위에 봉안되어 있다. 참배객들은 삼존불에 배례하고는 무쇠솥과 대좌 사이 공간에 시줏돈을 넣고는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34년 3월 9일 저녁 시줏돈을 거두는 소임을 맡은 동자승이 촛불을 잘못 다루는 바람에 솥 내부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불길은 곧바로 소조상 내부 목재에 옮겨 붙었고 본존불은 무너지고 말았다. 금산사는 미륵본존의 복원불사를 추진했다. 공모에는 김복진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화승들인 보응 문성, 금용 일섭, 이석성이 응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보응, 금용, 이석성은 서울 안양암의 천오백불상도 함께 조성한 적이 있다. 이당 김은호 화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도 눈길을 끈다. 김복진에게 응모를 권유한 것도 이당이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옥살이하며 밥으로 불상 만들기도 김복진은 도쿄미술대학에서 공부한 뒤 1923년 신극운동 단체인 ‘토월회’를 조직한다. 1924년에는 일본 제국미술원전람회, 1925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각각 나체 조각 작품으로 입선한다. 이듬해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나체상 ‘여인’이 특선에 올랐다. 하지만 조선공산당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928년 일본 경찰에 붙잡혀 6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김기진은 감옥살이 당시 형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참담한 감옥살이 중에도 김복진은 먹지 않고 남긴 밥을 주물러 점토처럼 만들고는 인물상과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솜씨에 놀란 간수들이 김복진을 목공소로 보내 작은 목조불상을 깎게 해서 감옥소 직매장에서 팔게 했다는 것이다. 김복진이 불교 조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 기간이었던 것 같다. 금산사 미륵불 조성에 나선 것은 풀려난 직후가 된다. 남아 있는 김복진의 불상 작품은 10점 남짓이다. 금산사 미륵불과 그의 흔적이 남은 법주사 미륵대불, 서울 영도사 석가모니불입상, 충남 예산 정혜사 관음보살좌상, 충남 공주 계룡산 소림원 미륵입상 등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소림원 불상이다. 소림원의 높이 117㎝ 석고 미륵은 금산사 미륵불을 조성하기 위한 축소 모형이라고 한다. 다만 머리 부분의 비례가 소림원 쪽보다 금산사 쪽이 조금 더 커보인다. 참배객들이 고개를 들어 한참을 높이 올려다봐야 하는 대형 불상인 만큼 의도적인 비례 조정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23] ‘카프’ 김복진의 20세기 불상 조각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23] ‘카프’ 김복진의 20세기 불상 조각

     카프(KAPF)라는 영문 약칭이 더 익숙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지도자였던 정관 김복진(1901~1940)은 현대적 개념의 조각가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때 불문(佛門)에 귀의하기도 했다는 그는 불모(佛母)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반면 서양미술에 바탕을 둔 조각 작품은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다. 50점 남짓한 작품 가운데 동상은 제2차 세계대전 막판 일제의 쇠붙이 공출로 사라졌고, 목조와 소조의 유작도 동생인 팔봉 김기진의 인쇄소 창고에서 6.25전쟁 때 소실됐다고 한다.  불상으로는 충북 보은 법주사의 미륵대불이 그의 작품이었다. 미륵대불은 김복진이 머리 부분을 완성하고 전체 비례를 잡아놓은 상태에서 자금난으로 중단됐다고 한다.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미륵대불은 1963년에야 완성됐다. 미륵대불은 흔한 시멘트 조각이라는 이유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김복진으로서는 오히려 시멘트라는 새로운 재료를 거대 불상 조성에 이용하는 실험이었다. 미륵대불은 1990년 금동상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두 차례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도 김복진의 체취는 여전히 남아있다.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본존불도 김복진의 작품이다. 미륵전은 내부가 아래위로 뚫려있는 3층으로 본존불은 높이가 38척이니 12m가 넘는다. 삼존불은 미륵전을 중창한 인조 13년(1635) 조성한 것이다. 서양조각의 재료인 석고로 금산사 미륵본존불은 조성한 것은 특기할 만 하다. 그런데 삼존불 가운데 좌우 협시보살은 제외하고 본존불만 조성했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래선지 그가 본존불을 조성했다는 사실조차 한동안은 묻혀있다시피했다. 미륵전에는 본존불만 조성한 이유를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있다.  미륵전 본존불은 특이하게 커다란 무쇠솥 위에 봉안되어 있다. 참배객들은 삼존불에 배례하고는 무쇠솥과 본존불의 대좌 사이 공간에 시줏돈을 넣고는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34년 3월 9일 저녁 시줏돈을 거두어 가는 소임을 맡은 동자승이 촛불을 잘못 다루는 바람에 솥 내부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불길은 곧바로 소조상 내부 목재에 옮겨 붙었고 본존볼은 무너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금산사는 미륵본존의 복원불사를 추진했다. 공모에는 김복진과 보응 문성, 금용 일섭, 이석성 등이 응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대를 대표하는 화승들인 보응, 금용, 이석성은 서울 안양암의 천오백불상도 함께 조성한 적이 있다. 금산사 미륵불 역시 세 사람이 공동 응모했을 가능성이 큰 것 같다. 이당 김은호 화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도 눈길을 끈다. 김복진에게 금산사 미륵불 복원에 응모를 권유한 것도 이당이었다고 한다.  김복진은 도쿄미술대학에서 공부한 뒤 1923년 신극운동 단체인 ‘토월회’를 조직한다. 1924년에는 일본 제국미술원전람회, 1925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각각 나체 조각 작품으로 입선한다. 이듬해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나체상 ‘여인’이 특선에 올랐다. 하지만 김복진은 카프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던데다 조선공산당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928년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일본경찰에 붙잡혀 6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김기진은 감옥살이 당시의 형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참담한 감옥살이 중에도 김복진은 먹지 않고 남긴 밥을 주물러 점토처럼 만들고는 인물상과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솜씨에 놀란 간수들이 김복진을 목공소로 보내 작은 목조불상을 깎게 해서 감옥소 직매장에서 팔게했다는 것이다. 김복진이 불교조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이 기간이었던 것 같다. 금산사 미존불 조상에 나선 것은 풀려난 직후가 된다.  김복진의 불상 작품으로 남아있는 것은 10점 남짓이다. 금산사 미륵불과 그의 흔적이 여전한 법주사 미륵대불, 서울 영도사 석가모니불입상, 충남 예산 정혜사 관음보살좌상, 충남 공주 계룡산 소림원 미륵입상 등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소림원 불상이다. 석고로 만든 높이 117cm의 소림원 미륵입상은 금산사 미륵불을 조성하기 위한 축소모형이라고 한다. 다만 머리 부분의 비례가 소림원 쪽보다 금산사 쪽이 조금 더 커보이는 것은 높이 올려다 보아야 하는 대형 불상인 만큼 의도적인 조정이라는 것이다.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