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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문의 영광’ 이으려는 2세들

    5일 마감된 한나라당 18대 총선 공천신청에는 ‘정치 명가(名家)’를 꿈꾸는 정치인 2세들도 줄을 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끝내 당규 3조 2항의 덫에 걸려 출마의 뜻을 접었지만 금배지에 도전하는 다른 2세 정치인들은 적지 않다.‘세습 정치’라는 곱지 않은 시선과 ‘검증된 핏줄’이라는 옹호논리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세습정치 vs 검증된 핏줄 엇갈려 우선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아들인 김성동씨가 눈에 띈다. 김성동씨는 서울 관악을 지역에 예비후보로 등록, 출마를 준비해 왔다. 또 다른 ‘국회의장의 아들’로는 박재우(40)씨가 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아들인 그는 방송기자 출신으로, 박 전 의장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통했던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의 차남 제완(38)씨는 부산 연제구에 한나라당 예비후보로 등록해 활동해 왔다.2005년 작고한 김진재 전 의원의 아들 김세연(36) 동일고무벨트 대표도 부친의 지역구였던 부산 금정구에 예비후보 등록을 한 상태다. 김 대표는 한승수 국무총리 지명자의 사위이기도 하다.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의 아들인 장제원(41) 경남정보대학장은 부산 사상구를 지역구로 뛰고 있다. 이미 대를 이어 ‘금배지’를 단 현역 의원들도 가문의 영광을 계속 잇기 위해 나섰다. 남평우 전 의원의 장남인 남경필 의원은 40대에 ‘4선 의원’이라는 기록에 도전한다. 정진석 의원은 정석모 전 의원의 차남이고 이종구 의원은 이중재 전 의원의 장남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인 유승민 의원은 유수호 전 의원 차남이다. 역시 박 전 대표의 최측근인 이혜훈 의원은 한나라당 사무총장 출신인 김태호 전 의원의 며느리다. 정재철 전 의원의 장남인 정문헌 의원도 금배지 수성에 나선다. ●기업인 공천신청도 줄이어 한편 최고 경영자(CEO)출신 대통령 탄생에 맞춰 기업인들의 공천신청도 두드러졌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친 동생인 김호연 빙그레 그룹 회장은 선친의 고향인 충남 천안을에 공천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정욱 헤럴드미디어 회장도 출마를 위해 헤럴드미디어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과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도 공천신청 대열에 합류했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신당엔 ‘권노갑’이 없다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신당엔 ‘권노갑’이 없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의 실력자 권노갑 의원이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김대중(DJ) 대통령의 분신이자 평화적 정권교체의 일등공신인 그의 불출마는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중진 물갈이의 신호탄이었다. 권 의원은 중진들을 집요하게 설득했다. 민주개혁 정권이 계속 집권하려면 참신하고 유능한 인물들을 키워야 하고 우리(중진)들은 물러나야 하지 않겠냐고. 주로 호남 지역구 의원이 대상이었다. 물론 DJ의 뜻이 녹아 있긴 했지만, 먼저 ‘자기를 버린’ 권 의원의 설득에 하나둘씩 동참자가 늘어갔다. 김봉호·채영석·조순승…등등. 유일하게 김상현 의원만 버티다 결국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필자는 당시 권 의원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측은하다는 생각을 했다.40년 이상 온갖 고초를 겪으며 오로지 DJ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했고 그 결실을 봤는데, 금배지를 떼야 한다니…. 그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을 게다. 대선에서 참패한 대통합민주신당이 공천 물갈이로 시끄럽다. 핵심은 호남 물갈이다. 그러나 당의 존망 위기에서 4·9 총선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데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꼴이다. 돌아선 민심을 조금이라도 되돌리기 위해서는 ‘권노갑’처럼 자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나와야 하는데, 현재로선 요원하다. 중진인 김한길 의원이 불출마 선언의 불길을 댕겼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의미 있는 후속타가 더 이상 안 나온다. 김 의원이 권 의원에 비해 정치적 비중이나 역할에서 커다란 차이가 나기 때문일까. 결국 신당엔 ‘권노갑’이 없는 셈이다. 동국대 박명호(정치학) 교수는 “공천 성과의 지표가 호남 쇄신 여부”라면서 “얼마나 개혁성을 보여주느냐가 손학규 대표의 명운을 좌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들은 신당의 달라진 모습을 호남 쇄신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나눠먹기식의 공천이 반복되면 국민들은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 심리마저 미련 없이 버릴 것이다. 손 대표도 이 점을 잘 안다. 총선에서 실패하면 그의 정치인생도 끝이다. 그만큼 절박하다. 의지도 강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호남 쇄신이 그의 확고한 원칙이자 실행 코드이지만, 그는 호남 출신이 아니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원칙과 현실의 괴리라고 할까. 호남 쇄신과 관련해 주목되는 대목이 DJ와의 관계, 즉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공천 여부다. 얼마전 손 대표의 DJ 예방 때 DJ는 박 전 실장을 배석시켰다.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박 전 실장을 공천할 경우 호남 쇄신의 큰 원칙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손 대표의 고민은 쌓여만 간다. 총선을 제대로 치르려면 어쨌든 손 대표가 중심축이 될 수밖에 없고, 그 출발점은 공천심사에서 한나라당보다 더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다. 전제조건이 있다. 손 대표는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초심을 지켜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제기한 ‘새로운 진보’의 구체적인 어젠다를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당을 조화롭게 이끌어가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정동영 전 대통령후보는 ‘독배’를 든 손 대표를 도와야 하지 않을까. 그게 서로 사는 길이다. 탈당 운운은 더욱 더 구렁텅이로 빠지게 할 뿐이다. 또 자기를 버려야 할 일이 있다. 신당은 2004년 총선 때의 ‘박근혜 역할’을 할 리더가 별로 없다. 그나마 손 대표와 정 전 후보, 강금실 전 장관 정도다. 이들 모두 수도권에 출마하고 바람을 일으켜야 하는 당위론은 그래서 나온다. 당을 살리는 게 최우선 순위다. 손 대표의 지도력에 달렸다. jthan@seoul.co.kr
  • 자유신당 깃발에 충청권 의원 ‘흔들’

    자유신당 깃발에 충청권 의원 ‘흔들’

    충청권 ‘금배지’들이 좌불안석이다.4월 총선을 앞두고 물밑 표심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먼저 감지한 듯한 눈치다. 한나라당의 절대 우위 속에서 치러지는 이번 총선에서 유일하게 다당구도의 밑그림이 그려지는 지역이 충청권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가 깃발을 올린 자유신당의 출현으로 바닥민심은 흔들리고 있고,17대 총선에서 탄핵역풍으로 충청을 휩쓴 옛 열린우리당의 주역들은 이미 기세가 눈에 띄게 꺾여버렸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충청 지역 현역 의원들의 움직임은 매우 바빠졌다. 충청권 현역 의원 24명 가운데 자유신당행을 택한 국민중심당 4명을 포함, 줄잡아 8명 안팎이 다른 정당의 옷으로 갈아입기로 뜻을 굳힌 상태다. 이들 외에 3∼4명 안팎의 의원들이 거취를 고심 중이다. 적어도 24명 중 절반 안팎이 총선 이전에 당적을 바꿀 상황인 것이다. 충청권 중에서도 충북 지역의 흔들림이 가장 심하다. 충청 지역 탈당 시나리오에 불을 붙인 대통합민주신당 오제세(청주 흥덕갑) 의원은 이미 탈당 후 자유신당행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오 의원은 “지역 정서는 대선에서 드러났듯 자유신당 쪽에 가 있다.”며 자유신당행 의사를 숨기지 않고 있다. 통합신당 홍재형(청주 상당) 의원도 지역 민심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자유신당과의 직접 접촉은 없었지만 모든 경우의 수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홍 의원측 관계자는 전했다. 같은 당 김종률(증평·진천·괴산·음성) 의원도 자유신당측 김혁규 전 경남지사와의 인연을 강조하면서 자유신당행 의사를 내비쳤다. 다만 “개인적인 인연과 정치적 거취는 다른 차원”이라며 잔류 가능성도 열어 놓았다. 충남에서는 자유신당 창당을 주도하고 있는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와의 인연이 깊은 통합신당의 박상돈(천안을) 의원이 자유신당행으로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심 대표가 충남지사 시절 박 의원이 기획관리실장을 한 인연으로 최근에도 수차례 만남을 갖고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국중당 의원 중에 유일하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공개 지지하고 탈당한 무소속 정진석(공주·연기) 의원은 조만간 한나라당에 입당한다. 구동회 박창규기자 kugija@seoul.co.kr
  • [씨줄날줄] 샤론의 장미/구본영 논설위원

    기업인들에게 공항 귀빈실 문턱을 낮춘다는 소식에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6∼7년 전쯤일까. 일선 기자 시절 인천국제공항 VIP룸인 무궁화실에서 국회의장을 인터뷰했었다. 당시 그 방의 ‘Rose of Sharon(샤론의 장미)’이란 인상적인 영어 문패가 기억의 시계를 되돌리게 했다. ‘샤론의 장미’란 우리의 나라꽃인 무궁화의 영어 속명이다. 무궁화는 ‘Hibiscus syriacus’란 학명에서 보듯이 시리아 등 중동지방이 원산지이지만,‘근방(槿邦·무궁화 나라)이란 말에서 보듯이 고대 때부터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왔다. 일제가 진딧물이 많이 꾀는 볼품없는 꽃으로 덫칠했다지만, 세계적으로는 품격 있는 꽃이다. 말레이시아의 국화이기도 하다. 특히 구약성서 아가에 나오는 ‘샤론의 장미’는 신에게 축복받은 땅의 아름다운 꽃이란 뜻이 아닌가. 이런 ‘꽃 중의 꽃’을 공항 귀빈실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름값에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대통령직 인수위가 기업인들의 인천공항 무궁화실 등 귀빈실 이용을 확대키로 했다니 반길 만한 일이다. 기업인 1000명을 골라 이용자격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최근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공항 귀빈실에 가보니 기업인은 없고 정치인만 있더라.”고 지적하면서다. 일자리 창출과 외화벌이로 국민 생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기업인들을 우대하겠다는 데 누가 나무라겠는가. 최소한 번쩍번쩍하는 무궁화 문양 금배지를 단 정치인들만 귀빈실을 들락거리는 것보다야 나을 듯싶다. 하지만, 내친 김에 좀더 나갔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현행 ‘공항에서의 귀빈 예우에 관한 규칙’과 한국공항공사 내규를 보자. 전·현직 대통령과 3부요인 이외에 원내교섭단체 대표, 주한 외교공관의 장, 장관 이상 공직자, 국회의원, 경제5단체장 등으로 귀빈실 이용대상을 정하고 있다. 이제 그런 규정을 바꾸겠다니, 기업인 이외에 국익에 이바지한 각계 인물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게 어떨까 싶다. 이 땅의 보통사람들에게도 노력 여하에 따라 언젠가는 공항 귀빈실에서 ‘샤론의 장미’ 향기를 맡을 수 있게 하는 게 진정한 ‘생활의 민주화’가 아니겠는가.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씨줄날줄] 정무장관/이목희 논설위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은 관직이다. 별 볼일 없는 이도 장관에 오르면 힘이 붙는다. 거꾸로 ‘인물이 만드는 자리’가 있다. 정무장관이다. 소관업무가 불명확하고, 수하 직원이 거의 없다. 허세(虛勢)가 장관이 되면 그야말로 개점휴업이다. 하지만 실세(實勢)가 부임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소관업무가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은 모든 일에 간여할 수 있는 기회를 동시에 준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정무장관 부활을 예고했다. 초대 정무장관은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이다. 마지막은 김영삼(YS) 정부의 홍사덕씨다. 이후 폐지되었는데 10년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쪽 분위기로는 정무장관을 실세에게 맡길 듯싶다. 차기 정부에서 정무장관실이 북적댈 게 틀림없다. 과거에 정무장관실을 부통령실로 만든 대표 인물은 박철언씨다. 노태우 정부 시절 정무장관을 맡아 대북정책을 필두로 정부의 온갖 정책·인사를 주물렀다. 막후에서 3당 합당을 주도했고, 합당 뒤에는 YS와 치열한 대권 경쟁을 벌였다. 노태우 정권에서는 박씨 외에도 김윤환·이종찬·김동영·최형우씨 등 실력자들이 정무장관을 거쳐갔다.YS 정부에서도 김덕룡·서청원씨 등 대통령의 복심(腹心)이 정무장관에 기용되었다. 김윤환씨는 세차례, 김덕룡씨는 두차례 정무장관을 역임했다. 내각과 국회를 부드럽게 연결시키는 윤활유 역할이 정무장관의 1차 임무다. 대통령의 신임이 얹어지면 청와대, 행정부, 입법부를 종횡무진 누빌 힘이 생긴다. 기본적으로 금배지와 겸직이 관행이므로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자리다. 특히 새정부 출범 직후 총선이 예정된 현 상황에서 정무장관직의 인기는 상한가를 칠 것이다. 정무장관 부활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정무장관이 대통령 위세를 업고 내각과 여당 지도부를 따돌린다면 국가라는 배는 산으로 간다. 여야 정치인들이 정부 예산을 나눠 먹고, 정책을 누더기로 만드는 창구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결국 인사로 풀어야 한다. 호가호위(狐假虎威)하지 않고, 부패하지 않을 적임자를 고를 자신이 있을 때 정무장관을 부활하길 바란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사설] 김용갑·김한길 의원 정계은퇴 본받아라

    대통합신당의 중진인 김한길 의원이 어제 총선 불출마와 함께 정계를 떠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엊그제 같은 3선의원인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이 “박수칠 때 떠나겠다.”고 한 데 이어 두번째 정계은퇴 선언이다. 두 사람의 이런 결단이 4월 총선 공천문제를 놓고 밥그릇 싸움이 한창인 정치권에 큰 메아리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김 의원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치의 실패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면서 사죄하는 심정”이라며 총선 불출마의 변을 밝혔다. 자신의 몸을 던져 책임을 지려는, 평가받을 만한 자세다. 신당 내에서 이따끔 제기됐던, 입에 발린 자성론과는 격이 다른 까닭이다. 신당은 대선 참패 이후 보름이 넘도록 당 쇄신 방향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공천권이 걸려 있는 당 대표 추대론·경선론이 맞서면서부터다. 난파선 위에서 서로 키를 잡겠다고 싸우는 꼴인데, 유권자인들 감동하겠는가. 곧 집권당이 될 한나라당 내부 사정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당선인 측이 ‘취임(2월25일)이후 공천’ 방안을 내놓자 박근혜 전 대표 측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공천 시기에 대한 이견으로 보이지만, 갈등의 본질은 공천 지분 다툼이다. 참신한 인물을 공천해야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한 의석을 얻을 수 있다는 공통의 대의는 실종되고 ‘내편, 네편’만 남은 꼴이다. 국민은 새 정치에 대한 기대를 이미 지난 대선서 표로 보여 줬다. 두 김 의원의 용퇴 선언이 혼탁할 대로 혼탁해진 정치판 물갈이를 촉진하는 기폭제가 되어야 할 이유다. 특히 한나라당은 영남권, 신당이나 민주당은 호남권에서 ‘공천이 곧 당선’이란 등식을 보여 왔다. 지역구도에 기대온 의원들은 별다른 의정실적도 없이 금배지에만 연연해 오지 않았는지 자성해야 한다.
  • 김용갑 “보수원조, 박수칠 때 떠납니다”

    “3선(選)은 환갑과 마찬가지다.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 제가 불출마하면서 다른 의원에게 모범이 되고 싶다.” ‘보수 중의 보수’,‘원조 보수’라는 별명으로 불리길 좋아한 3선(選)의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이 3일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사퇴의 변은 짧았다. 육사 출신답게 ‘3선 명예제대를 신고합니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는 “이제 좌파정권이 퇴진하고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의 이명박 정부가 나라를 이끌게 돼 안심하고 물러갈 수 있게 됐다.”면서 “‘보수원조’ 김용갑은 제 소임을 마쳤다.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1996년 경남 밀양·창녕에서 첫 금배지를 단 뒤 12년 만의 일이다.8선,9선까지 배출한 정치권 정서로도 낯선 일이고, 당에서 현재 4선,5선,6선을 꿈꾸는 많은 중진 의원에게는 어떤 ‘위협’이 될 소식이다. 이를 의식한 듯 김 의원은 “한 지역구에서 한 명이 20년씩 하는 건 지역 주민이 보기엔 지루하지 않겠느냐.”며 은근히 ‘불출마 러시’를 종용했다. 그는 스스로를 보수라는 이념적 성향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김대중(DJ) 정부를 향해 ‘북한 조선노동당 이중대’라는 독설도 마다하지 않았다. 때론 ‘소신’이 지나쳐 설화도 잦았다.2006년엔 ‘광주 해방구 발언’으로 당시 여당의 비난을 샀고 국회 파행의 주범으로 됐다. 평소 소신과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동료가 나오면 A4용지 한 장 분량으로 ‘김용갑 논평’을 내고 매섭게 질책한 걸로도 유명하다. 지난 여름 한나라당 경선 때는 박근혜 전 대표를 적극 도왔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사설] 지자체장은 국회 가는 징검다리 아니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에 출마하려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사퇴 현상이 우려스럽다. 수도권과 영남 지역에서 일부 기초단체장이 사퇴한 뒤 총선 출마채비에 나섰다. 현재의 단체장은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이들이다.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않고 스스로 물러난다는 것은 뽑아준 유권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또 지방행정 공백을 가져오고, 후임을 뽑는 보궐선거 비용을 혈세로 쓴다는 점에서 국민과 국가에 끼치는 폐해가 크다고 본다. 이번에 단체장이 사퇴하면 보궐선거는 내년 6월에 실시된다. 상당한 기간 단체장 공백상태가 되는 셈이다. 부단체장이 권한대행을 한다고 하지만 지방행정이 원활하게 굴러갈 리가 없다. 서울 강동구는 2002년부터 2년에 한번씩 구청장선거를 할 판이다. 서울에서는 한 명의 구청장을 새로 뽑기 위한 보궐선거에 1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고 있다. 단체장이 사퇴하면 보궐선거를 겨냥하는 지방의원들이 연쇄적으로 물러난다. 보궐선거 폭이 더욱 커지고, 국민 부담이 함께 늘어난다. 금배지를 노리고 사퇴한 단체장을 위해 왜 주민들이 돈을 대야 하는가. 단체장을 국회로 가는 징검다리로 여기는 풍토를 근절하려면 법을 고쳐야 한다. 사퇴자에게 보궐선거 비용을 물리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이미 발의됐으나 처리되지 못했다. 국회는 이 같은 내용으로 조속히 선거법을 개정하고, 단체장은 임기 중 사퇴해 의원 출마를 못하도록 쐐기를 박는 입법까지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 등 각 정당은 사퇴한 단체장에게 총선 공천을 주지 말아야 한다.
  • [선택2007 D-14] 내년 총선에 눈독들이는 그들

    [선택2007 D-14] 내년 총선에 눈독들이는 그들

    “이번 대선이야 이제 남은 변수가 있겠나. 사람들은 대선보다 내년 총선 얘기를 더 많이 한다.” 4일 여의도 정치권의 한 관계자가 한 말이다.15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보다는 5개월 뒤에 있을 내년 4월 총선과 5년 뒤 차차기 대권 경쟁에 관심이 간다는 얘기다. 특히 ‘금배지’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멍하니 있다간 ‘밥그릇’ 빼앗긴다는 정치권의 무한경쟁 생리를 보면 그렇다. 우선 전날 이회창-심대평 후보 단일화가 이런 논의에 불을 지폈다. 김종필(JP) 전 총재 이후에는 이렇다 할 ‘맹주’가 없었던 충청권이 이-심 연대로 다시 주목받으면서다. 대선에서 충청권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심 연대의 ‘충청권 신당 창당’이 힘을 받으리라는 전망이 있다. 이회창 후보가 “이번 대선 하나만 어떻게 잘 이겨보자는 생각은 아니다.”고 한 것이 같은 맥락으로 읽혔다. 그가 대선에서 진다고 해도 5년 전처럼 정계 은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다. 이왕 재개한 정치를 어떻게 또 접겠냐는 현실적인 관측도 나돈다. 한나라당이 지난 총선에서 대전과 충남·북을 통틀어 홍문표 의원의 지역구 딱 한 곳만 깃발을 꽂았을 정도로 복잡한 표심을 보였다. 당초 이명박-박근혜 ‘빅2’가 경쟁할 것으로 비쳐졌던 한나라당 내 권력구도도 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전격 입당하면서 복잡해졌다. 현재로서야 정 의원이 혈혈단신이지만 그가 지지세력을 모으고, 이번 대선에서 일정 지분을 확보하면 그 역시도 새로운 세력화의 구심점이 되기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측에서 정 의원의 입당을 ‘박근혜 견제용’으로 불편하게 보는 시각은 바로 그래서다. 한 측근 의원은 “정 의원이 국회의원이나 한 번 더 하려고 입당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면서 “당장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어쨌든 박 전 대표 입장으로는 경쟁자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차차기 대권까지 볼 것도 없이 5개월 뒤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놓고서부터 피말리는 줄다리기가 실현될 수 있다는 거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 창조한국당 등으로 나뉜 범여권의 단일화 문제도 남아 있다. 일단 통합신당 정동영·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어떤 식으로든 후보 단일화를 하기로 합의한 상태이기 때문에 대선 결과에 따라 어느 한 쪽이 책임을 질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제3의 신당 창당 같은 정치세력화도 가능하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당장 하루 앞일도 예측하지 못하는 게 정치인데 어떻게 5개월 뒤,5년 뒤를 논하겠느냐.”면서도 “다만 15일 뒤 대선이 끝나면 복잡한 권력경쟁 구도가 생길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어떻게 지내십니까] 남장 여성정치인 김옥선 前의원

    [어떻게 지내십니까] 남장 여성정치인 김옥선 前의원

    7,9,12대 국회에 등원했던 김옥선(73) 전 의원.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남장(男裝) 여성 정치인으로만 유명했던 게 아니다. 그녀는 서슬 푸른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했다가 금배지를 박탈당했던 이른바 ‘김옥선 파동’의 주인공이었다. 남존여비 풍조가 뿌리 깊은 우리 정치판에서 남자들보다 더 과감한 의정활동으로 이름을 떨쳤던 그녀를 만나 근황을 들어봤다. ●“40세에 정치생명 박탈된 10년을 식물인간처럼 살아” 9대 국회 때인 1975년 10월8일. 김 전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딕테이터(독재자) 박’으로, 유신정권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으로 맹공했다. 당시 여당인 공화당과 유정회 의원들의 야유 속에 정회가 선포돼 발언도 마치지 못했고, 일부 발언은 속기록에서도 삭제됐다. 이상이 ‘김옥선 파동’의 시발로, 그녀는 그로부터 닷새 후에 의원직을 내놔야 했다. 의원직 사퇴 32돌을 며칠 앞두고 만난 그녀는 무척 정정해 보였다.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단정하게 빗어올린 신사풍의 헤어스타일은 여전했다. 그러나 웅변조의 어투에도 불구하고, 여성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는 감지됐다. 특히 “40세에 정치생명을 박탈당해 인생 황금기 10년을 식물인간처럼 살았다.”며 명예회복의 당위성을 설파할 때가 그랬다. 그녀는 유신체제를 비난한 자신의 속기록 복원을 명예회복을 위한 최선의 자구책으로 보는 듯했다. 그러나 “속기록 복원은 사초를 바로잡는 일인데, 후배들이 너무 무성의한 것 같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지난 2005년 국회운영위에 속기록 복원 청원이 제출돼 소위에서 여야가 사실상 합의하고도 위원장 교체 등 이런저런 이유로 전체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는 등 흐지부지됐기 때문이다. 속기록 복원 등을 통한 명예회복은 물론 손해배상 소송(고법에선 기각됐지만, 대법원 계류중) 등 법정투쟁을 계속할 계획이다. 특히 올 하반기에 회견을 통해 여론을 환기한다는 복안이다. ●“어머니가 죽은 오빠 그리워해 남장 하게 돼” 얼마 전 종영된 TV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남장 여자 주인공을 등장시켜 시선을 끌었다. 서구에선 ‘드래그 킹’(남장 여자)이나 ‘드래그 퀸’(여장 남자)이란 속어에서 보듯 복장을 바꿔 입는 사람이 드물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선 파격적이다. 그런 맥락에서 김 전 의원은 퍽 선구적이다.1950년대부터 이미 남장으로 살아왔다는 점에서다. 그녀는 이에 얽힌 비화 두 가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선 “어머니가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가 죽은 오빠를 그리워하는 것을 보고” 1남3녀 중 막내인 자신이 남장을 하게 됐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사회사업과 교육사업에 뛰어들어 환경에 적응하는 방편이었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물들인 군복이나 작업복이 편해서 입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복장은 제쳐두더라도 그녀는 어떤 면에서 남성 의원들보다 더 치열한 정치활동을 펼쳤다.‘김옥선 파동’이 그녀의 의원직 사퇴로 결말이 난 뒤 당시 안국동 신민당사에는 예리한 1회용 면도날을 동봉한 항의 서신이 날아왔다고 한다. 남성 의원들에게 중요한 ‘뭔가’를 자르라는 힐난성 주문이었다. 굳이 이런 일화를 들추지 않더라도 그녀는 남성 지도자에 의해 ‘간택’되는, 정치판의 화초이기를 거부한 여성 정치인이었다. 그녀는 “(정치판에) 속좁은 남성들이 너무 많다.”면서도 “여성이기에 남성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후배 여성 정치인들에게 충고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여권 신장을 주장하면서 지역구 공천이나 비례대표에 여성 프리미엄을 달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였다.“진정한 성 평등은 남성들과 똑같이 경쟁해서 쟁취해야 한다.”고도 했다. 악연을 맺었던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서는 의외로 우호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지난번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거물 정치인 한 사람이 “독재자의 딸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고 했다는 말을 전해듣고 “박 전 대표의 성장과정(유신 전)이 박정희 시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박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YS·DJ 현실정치 훈수 그만뒀으면” 그녀는 2002년 대선에 입후보했다가 포기한 것을 끝으로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공사다망하다. 올 3월엔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 회장 자리를 놓고 거물 정객인 이철승(素石) 전 신민당 대표와 경합했으나, 반탁 학생운동 대선배였던 소석에게 회장 자리를 내줬다. 내친김에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 3김씨에 대한 인물평을 요청하자, 그녀는 “그 사람들은 너무 후배들을 안 키웠다.”고 받아넘기며 말을 아꼈다. 그래도 “그들 나름대로 카리스마 같은 게 있었지 않았느냐.”고 되묻자,“그것도 지역주의에 기반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그만큼 국민을 우려먹었으면 됐지, 이제 현실정치에 대한 훈수를 그만했으면 한다.”고도 했다. 올해 대선에선 누구를 지지할 것이냐는 물음엔 “나중에 후보자의 인물을 검토해 보고 후원할 것”이라며 더 이상의 언급을 자제했다. 인터뷰 도중 김 전 의원은 “‘왜 결혼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느냐?”고 조크를 던졌다. 그러고는 “연애할 나이에 사회사업과 교육사업을 하느라고 경황도 없었다.”고 자답했다. 그러면서 “물론 결혼해서도 사회사업이 가능하다.”면서 “다만, 모자원 아이들 옷가지를 사도 똑같은 것을 샀는데, 아무래도 친자식이 있었다면 좋은 것은 (친자식을 위해) 골라놓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부연 설명했다. 김 전 의원은 요즘 1955년 자신이 설립한 송죽학원을 종합대학교로 발전시키는 프로젝트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즉 중국의 샨시(陝西) 중의학원 및 사범대학과 컨소시엄 형태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보건·복지와 한의학에다 예술 분야까지 망라하는 교육의 전당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김 전 의원은 “하느님이 생명을 연장해 주시는 만큼 나이와 관계없이 이 나라와 사회, 국민을 위해서 기여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할 것”이라면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운 필생의 소망을 토로했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그녀는 누구인가 ‘알파걸’(α-girl)은 미국 하버드대 아동심리학자 댄 킨들런 교수가 만든 신조어다. 똑같은 조건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여러 면에서 남성을 능가하는 여성을 가리킨다. 이석(異石) 김옥선 전 의원은 ‘원조 알파걸’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싶다. 그녀는 19세란 어린 나이에 사회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최초로 에벤에셀 모자원을 설립한 것이다. 한국전이 남긴 상흔인 전쟁 미망인과 고아들의 자생력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21세 때인 1955년엔 고향인 장항에서 정의여중을,1959년엔 정의여고를 각각 설립해 교육사업에도 발을 디뎠다. 특히 서해의 낙도인 충남 보령시 원산도에 원의중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들의 이사장이나 초대 교장을 맡으면서 교장실이나 이사장실을 따로 만들지 않은 사실은 지금도 회자된다.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한다는 지역구 국회의원 배지도 세 번이나 달았다.26세에 정계에 투신한 뒤 7대 국회에서 건국 이래 처음으로 당선무효소송을 제기해 1년만에 당락 번복 승소 판결을 받아내 배지를 달았다.9대 국회에선 당선 1년반 만에 이른바 ‘김옥선 파동’으로 물러난 뒤 10년 동안 공민권이 박탈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1984년 정치해금과 함께 12대 총선에서 3선에 성공했다.1992년 대선에는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 전 의원은 사회사업가·교육자·정치인에다 기독교계 지도자 등 1인4역의 인생을 살아왔다. 부침이 많은 삶이었지만, 신앙과 낙천적인 생활관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보는 듯했다. 그녀는 “IMF 위기를 맞았을 때부터 자가용을 버리고 택시 등 대중교통 수단만 이용한다.”고 귀띔했다. 영업용 택시 기사들이 하루 일당도 못 번다는 얘기를 듣고 그 길로 승용차를 처분했다는 것이다.“이후 택시 이용 총횟수가 8000번은 넘는다.”고 통계까지 제시하며 웃었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정치꾼과 정치인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정치꾼과 정치인

    정치(政治)란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서로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행위다. 정치의 구성원인 정치인들은 따라서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 즉 삶의 질 향상에 가장 큰 가치를 두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정치꾼들만 득실거리고 진정한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에겐 오로지 금배지만 보이는 것 같다. 금도를 넘어선 네거티브 공세에 혈안인 한나라당이나 정권 재창출을 위해 급조 정당을 만든 범여권이나 매한가지다.17대 대선을 4개월여 앞둔 여의도 정가는 과거 어느 때보다 혼탁하고 어지럽다. 몇개월 사이에 당적을 바꾼 의원들은 수십명이다. 보따리 풀기 무섭게 다시 싸는 형국이다. 이들 의원의 지역구민들은 어느 당 소속인지조차 헷갈린다. 분당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한나라당의 심각한 내홍 양상은 이명박·박근혜 두 유력주자 주변에 이러한 정치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줄 선 후보가 이기면 내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당선은 떼어논 당상이란 생각에 같은 당 식구라는 동료의식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군과 적군의 개념밖에 있지 않다. 듣기에도 민망한 정치공작이니 프락치니 하는 말들이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툭하면 상대방 후보의 후보 사퇴를 주장하는 것은 두 진영이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것을 방증한다. 범여권의 움직임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85명의 의원으로 창당한 대통합민주신당은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올드보이부터 몇 달 사이에 여러 번 당적을 바꾼 철새 의원들까지 정치꾼들이 주력 부대다. 여기에 참여한 시민사회단체 인사들도 평소 정치적 성향을 뚜렷이 해온 터라 ‘순수(純粹)’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중론이다. 구성원조차 제대로 읽지 못한 ‘미래창조 대통합민주신당’에서 미래창조를 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명을 급히 바꾼 것은 물론 열린우리당의 당헌과 강령을 베끼다시피 한 일, 창당 전당대회 몇시간 전까지 대표를 정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최고위원 명단을 바꾸는 웃지 못할 일은 급조 날림 정당, 잡탕 정당이란 비판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하드웨어도 그렇지만 소프트웨어도 문제다. 대부분이 열린우리당 출신인 만큼 그간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온 것에 대한 겸허한 반성과 내부 쇄신을 바탕으로, 어떤 이념과 노선으로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 그리고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것이 필수적임에도,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반(反)한나라당 구호와 기치만 내걸고 정권 재창출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 자고로 정당은 이념과 노선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소신과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결코 다른 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대선이나 총선 패배시 사라지고 마는 포말정당에 지나지 않는다.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이나 이인제의 국민신당이 다 그런 경우다. 김성호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대통합신당은 정치공학적 계산에 따라 별로 참신할 것도 없는 일부 시민사회 인사들을 들러리로 내세워 마치 새로운 정치세력인 양 포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정치상인연합회’라는 표현까지 썼다. 국고보조금이나 받으려고 부랴부랴 창당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치를 어지럽히는 정치꾼들이 더 이상 발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국민이다. 표의 심판을 말한다.12월 대선과 내년 4월 총선이 중요한 이유다. 진정한 정치인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jthan@seoul.co.kr
  • “한국경제 매일 0.5㎝씩 침몰”

    국회의원과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고려대 경영대학원 초빙교수가 23일 “한국 경제가 매일 0.5㎝씩 침몰하고 있다.”며 정치권 등의 각성을 통렬하게 주문했다.●“병 헤어나려면 잔인한 선택해야”정 교수는 이날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최고경영자 대상 조찬 특강에서 ‘신한국병과 또한번의 잔인한 선택’을 주제로 강연하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2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직(비례대표)을 그만둔 이후 그가 공개강연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이전의 고비용 저효율과는 또다른 신한국병을 앓고 있다.”며 “병이 깊어 잔인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헤어 나기 어렵다.”고 잘라말했다.●“외환위기 종결 선언 성급했다”정 교수는 “1977년 오일쇼크,1987년 민주화,1997년 외환위기 등 7자가 낀 해를 조심해야 한다.”며 “과거 외환위기가 홍수가 나서 댐이 무너진 것이라면, 다음에 오는 위험은 조금씩 타들어가 말라 죽는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외환위기 종결이 성급했다.”고도 했다. 그는 “2000년대 들어서도 구조조정 노력을 계속했어야 했지만 정치적으로 외환위기 종결을 선언했다.”면서 “이는 성급한 선택이었다.”고 비판했다. 이 바람에 우리 몸에서 아직도 종균이 빠져 나가지 않은 채 잠복해 있다는 것이다.●“한 줌도 안되는 세력이 나라 좌지우지”기업을 기찻길 옆 소에 비유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정 교수는 “기찻길 옆 소는 너무 시끄러워 새끼를 갖지 못한다.”며 “기업도 주위 환경이 불안하면 투자 등 기업활동을 제대로 못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 대목이다.“한 줌도 안되는 세력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분위기의 말도 했다. 현 정부의 386세력을 겨냥한 듯했다.정 교수는 “민주화 운동 정치세력들도 이제는 시장 체제에 맞는 스스로의 문제해결 능력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뱉었다. 또 신한국병의 4대 원인으로 전환기적 관리 실패, 국민욕구 체제의 급속한 변화, 신빈곤층 증가 등에 따른 병리현상, 국가 권위의 실종을 꼽았다.치유 방안으로는 ▲이념을 뛰어넘는 국가비전과 목표 ▲문제 해결을 위한 신권위체제 창출 ▲새로운 기업가 정신 고취 ▲농업 등 취약부문의 조속한 정리 ▲신빈곤층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 등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재정경제부 차관과 산자부 장관을 거쳐 17대 국회에서 금배지를 달았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무소속 돌풍… 한나라 참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민주당 김홍업 후보와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가 각각 전남 무안·신안과 대전 서을에서 당선돼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25일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3곳에서 경기 화성의 고희선 후보만 승리, 지난 2004년 이후 지속된 ‘재·보선 불패’ 행진에 제동이 걸렸다. 국회의원 1곳 등 14곳에 후보를 낸 열린우리당은 전북 정읍시 기초의원 1곳을 제외하고는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오는 연말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지도부 책임론과 열린우리당의 추가 탈당 움직임 등 후폭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이번 선거에서 당초 기대에 비해 참패한 한나라당 임명직 당직자들은 이날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일괄 사퇴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광을 업은 김홍업씨는 부친과 친형인 홍일씨에 이어 금배지를 달게 돼 새로운 기록을 쌓게 됐다. 중앙선관위는 이날 자정 현재 대전 서을에서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가 3만 9858표(60.1%)를 얻어 한나라당 이재선 후보를 1만 5285표차로 앞서 당선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경기 화성에서는 한나라당 고희선 후보가 2만 6408표(57.0%)를 얻어 열린우리당 박봉현 후보를 1만 2107표차로 제치고 당선됐다. 전남 무안·신안(개표율 88.8%)에서 민주당 김홍업 후보가 2만 1227표(49.4%)를 얻어 1만 3987표(32.5%)를 얻은 무소속 이재현 후보를 7240표차로 앞섰다. 이로써 이번 재·보선에서는 한나라당이 1석, 민주당 1석, 국민중심당이 1석을 확보하게 됐다. 이에 따라 원내 의석분포는 한나라당 128석, 열린우리당 108석, 통합신당모임 24석, 민주당 12석, 민주노동당 9석, 국중당 6석, 무소속 12석으로 재편됐다.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 재·보선 선거에서는 무소속 후보들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기초단체장 지역 6곳 가운데 서울 양천과 경기 양평, 가평, 동두천, 경북 봉화 등 5곳에서 무소속 후보들이 당선됐고, 충남 서산에서만 한나라당 후보가 승리했다.9곳에서 치러진 광역의원 재보선에서도 한나라당이 3곳, 무소속이 6곳을 차지해 무소속 약진 현상이 두드러졌다. 한편 이날 전국 55개 선거구에서 치러진 재·보선 투표율은 27.7%로 지난해 10·25 재·보선(32.2%)에 비해 6.5%포인트 낮았고 이는 2000년 이래 실시된 14차례의 재·보선 투표율 가운데 세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국회의원 보선 3곳의 투표율은 30.1%로 잠정 집계됐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손학규의 무(모)한 도전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손학규의 무(모)한 도전

    2000년 5월 손학규는 한나라당 총재 경선에 나섰다.16대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이었다. 당시는 이회창 총재가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제왕적 총재’로 군림할 때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윤환 전 의원과 이기택·신상우 등 쟁쟁한 중진그룹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2·18 피의 숙청’을 단행한 이 총재다. 누구도 이 총재의 재선출을 의심하지 않는 그런 상황에서 손학규는 겁없이 총재 경선에 나선 것이다. 주변에서 그를 극구 말린 것은 당연한 일. 그럼에도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손학규에게는 그런 무모함이 있다. 결과는 고작 3.6%의 득표율로 꼴찌. 일각에선 탈당을 권유하기도 했으나 손학규는 “내가 한나라당의 주인”이라며 당을 나가지 않았다. 손학규는 그 때도 이 총재의 대세론에 온 몸으로 저항했다. 대세론이 안고 있는 위험성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다녔다. 그러나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7년 후 손학규는 주역이 이회창에서 이명박으로 바뀐 대세론의 맹점과 허구를 또 다시 주장했다. 줄세우기 폐해를 강조하면서 이 전 시장측의 의원 실명까지 거론했다. 하지만 이 역시 먹혀들지 않았다. 어찌보면 그에겐 대세론은 뼈에 사무치는 일이다. 손학규는 1997년 신한국당 대권후보 경선 때 이수성 후보측에 가담하면서 비주류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국회의원 2년과 경기도지사를 지내면서 비주류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으나 입지 구축에는 실패했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의 선택은 무모한 도전인가, 아니면 무한 도전인가. 전자는 실패로 귀결되지만, 후자는 온갖 고통 속에서도 결국에는 성공을 거둘 가능성을 내포한다. 손학규는 지금 황량한 벌판에 서 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다. 더욱이 경선 캠프의 핵심 인사들도 하나둘 떠나고 있다.23일에는 박종희 비서실장이 한나라당 잔류를 선언했다. 동행을 거부할 인사가 더 나올 분위기다. 그들에게는 금배지를 다는 것이 더 큰 가치이고 급선무다. 그게 현실이다. 범여권에서도 점차 그를 견제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탈당과 관련한 말바꾸기와, 낮은 지지율 때문에 탈당한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그에겐 커다란 부담이다. 대권병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자칫 손학규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도덕성 훼손마저 우려된다. 그가 언급한 ‘드림팀’ 역시 단순히 기능적 결합에 그친 느낌을 준다. 그래서는 국민들에게 감흥을 줄 수 없다. 현실적으로도 대상자들이 한결같이 손사래를 치는 마당에 더 이상의 진전은 어려운 상황이다. 손학규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는 것도 절박한 문제다. 이명박·박근혜와 너무 비교된다. 그는 싫든 좋든 정치결사체 정도는 이끌어야 할 것이다. 핵심은 조직과 자금인데,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한데 자금에 관한 한 ‘무능력자’에 가까운 게 손학규다. 손학규가 주몽이 될지, 아니면 부여의 영포왕자에 그칠지는 그에게 달렸다. 당장 다음주부터는 그에 대한 주목의 강도가 떨어질지 모른다. 그의 동선이나 진행 과정이 ‘그렇고 그렇네’라는 평가를 받는 순간 존재감은 희미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를 에워싼 환경은 좋은 편이 아니다. 마의 10% 지지율 돌파도 쉽지 않다. 그가 보여줄 정치력에 따라 산적해 있는 먹구름이 걷히느냐, 더 시커멓게 되느냐가 결정된다. 그는 지금 평균대 위에 서 있다. jthan@seoul.co.kr
  • [씨줄날줄] 兩金 신경전/이목희 논설위원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왜 일찌감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손을 들어줬을까. 지지율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지난해 말부터 YS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고 주변 인사들은 전한다.YS는 몇몇에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이유까지 언급했다. 남북분단 상황에서 여성 대통령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감정의 앙금을 내비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YS가 이렇게 된 데는 곡절이 있을 터이다.YS 심기에 밝은 한 정치인은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경쟁심리’를 원인으로 꼽았다.YS는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 전 대표가 테러를 당해 입원하자 병문안에 나섰다. 하지만 얼굴상처로 위문객 대면을 꺼렸던 박 전 대표는 YS를 그냥 돌려보냈다. 큰 마음 먹고 갔던 전직 대통령에겐 결례로 받아들여졌다. 치료가 끝난 뒤 박 전 대표가 상도동으로 YS를 찾아 인사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전화인사로 끝냈고, 올초 신년하례 방문도 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DJ에게는 다른 접근을 보였다. 대표 시절 DJ가 폐렴으로 고생하자 동교동을 방문, 위로하고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이후 ‘박근혜·DJ 연대론’이 끊임없이 나왔다.YS·박근혜 틈새는 이 전 시장이 쉽게 파고 들 수 있을 정도로 이미 벌어져 있었다. 범여권 후보가 불투명한 요즘, 친노(親盧) 진영에서 김혁규 후보론이 번지고 있다. 김혁규 의원은 YS·DJ를 화해시켜 민주세력 통합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누가 되든 YS·DJ가 한 후보를 지지하는 상황이 가능할까. 양김(兩金)의 앙숙관계를 감안할 때 어려운 일 같다. 젊었을 때도 대단했는데, 나이 들어서 노인네 고집이 꺾일 리 없다. 어제 DJ의 차남 홍업씨가 무안·신안 국회의원 보궐선거 무소속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YS의 차남 현철씨는 번번이 국회 진출이 좌절됐고, 다음 총선 출마의사 역시 부인한다. 그러나 DJ의 아들이 둘이나 금배지를 단다면 YS의 오기가 또 발동할 가능성이 있다. 두 정치거두가 이제 자존심을 조금씩 접고 영호남 지역 화합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면 좋으련만….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한승원 토굴살이] 말(言)과 말(馬)에 대하여

    [한승원 토굴살이] 말(言)과 말(馬)에 대하여

    입으로 뱉는 말과 타는 말은 비슷하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 길은 열리고, 말이 끊어진 자리(絶望)에서 새 진리는 싹터난다(言語道斷)고 말하는 선승들은, 말로써 진리가 안 풀릴 때 ‘악(喝)!’하고 소리치며 주장자를 내리친다. 술에 취하여 조는 김유신을 애인 천관녀의 집으로 태우고 갔다가, 깨어난 그의 칼에 목이 잘려 죽었다는 말 이야기는 많은 뜻을 내포한다. 제주도에 취재차 가서, 평생 말과 더불어 살았다는 노인을 만났는데, 그 노인이 “말은 쓸개가 없는 짐승이라 강물도 가시밭길도 무서운 줄을 몰라. 그런데 헛것을 보았다 하면, 주인을 싣고 있거나 수레를 차고 있거나 상관없이 후닥닥 달아나. 그때는 주인이 다쳐.”하고 말했다. 나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동물학자에게 확인해 보지도 않고 ‘말은 쓸개 없는 짐승’이라고 내 사전에 기록해 놓았다. 아마 그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제자들하고 함께 제주엘 갔다가, 모두들 말을 타고 즐기는데 나는 타지 않았다. 내가 마장에 갔을 때, 말을 다루는 기사는 말의 머리를 오랫동안 품에 안은 채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볼을 다독거리기도 하고, 그 볼에 자기 볼을 비비기도 했다. 기사들은 자기의 말과 친해지기 위하여 당근을 숨겨 두었다가 꺼내주곤 한다고 들었다. 그 기사가 말 타기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자기와 자기의 말을 믿고 타라고 권했지만 나는 끝내 타지 않았다. 몸이 강단지고 얼굴이 거무튀튀한 기사의 흑갈색의 눈과, 적갈색 말의 한없이 깊은 검푸른 눈 때문 아니었을까. 그들과 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시퍼런 강물이 나를 절망하게 했다. 동시에 추락의 공포가 나를 말에게서 뒷걸음질치게 했다. 기사가 나를 자기 말 등허리에 태운 다음, 걸으라고 명령하거나 달리라고 명령을 내렸을 때, 움직거리는 말 등허리의 율동과 내 엉덩이의 율동이 어우러지지 않아서 곤욕을 당할 것 같고, 그러다가 땅으로 추락하게 될 것만 같았다. 추락을 예방하기 위해 “천천히 달려!”하고 내가 말을 해도, 말은 내 말을 못 알아듣거나,‘아이고 겁쟁이’ 하고 비웃으며 자기 마음가는 대로 달려 버릴 듯싶었다. 나는 짐승인 말을 믿을 수 없듯이 혀끝이 만들어내는 말도 믿을 수 없다. 내 혀끝이 만들어낸 말로 인해 절망을 한 경우가 한두 번 아니다. 중학시절, 자취를 하던 나는 점심을 굶곤 했는데, 나보고 도시락을 함께 먹자고 말을 한 부잣집 친구에게 도리질을 하며 “너나 먹어라.”하고 말했다가 심하게 다투었다. 불행히도 그 친구에게서는 노린내가 심하게 났는데, 그것을 아는 친구는 유다르게 몸을 청결하게 하곤 했다.“더럽단 말이야?”하고 거절의 이유를 따지는 친구의 말에, 나는 “무슨 소리야? 우리 반에서 너처럼 깨끗한 아이가 어디 있는데?”하고 말을 했는데, 친구는 “이 자식아, 놀리지 마!”하고 말한 것이었다. 내가 뱉은 말이 나를 배반하고, 그 배반한 말을 달래려고 뱉은 말이 더욱 나를 곤혹스럽게 배반했다. 전달기능과 더불어 배반의 기능도 가지고 있는 말은 쓸개가 없는 말을 닮았는지 모른다. 아, 말이 하루 천리를 달려가듯이 입으로 뱉은 말도 천리를 달려간다. 대통령이 되겠다든지, 평생 금배지를 달고 살겠다든지, 지자체의 장을 말뚝 박아놓고 해먹겠다든지 하는 사람들과, 고위 관리들, 판검사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말과 말을 바꾸곤 한다. 잘못을 줄줄이 저지르고 자기를 배반한 간사한 말의 목을 치는, 진짜로 난 사람은 없고, 오히려 그 말들을 감싸주곤 한다. 자기와 세상을 배반하는 말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은 절망을 모른다. 쓸개가 없는 말의 성정을 가진 까닭일 터이다.呵呵呵.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탈당의 궤변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탈당의 궤변

    열린우리당의 탈당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수준 이하의 정치권이라 해도 최소한의 도의(道義)나 금도(襟度)는 있게 마련.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이번에는 그런 게 영 보이지 않는다. 탈당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애써 외면하는 것인지, 진정 모르는 것인지….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최측근 인사마저 탈당 대열에 합류했다. 천정배·염동연 의원이다. 이들의 탈당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천 의원은 어떤 인물인가.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유일하게 현역 의원으로서 노무현 후보 편에 섰던, 그리고 대선 승리 후엔 가장 먼저 신당(지금의 열린우리당) 창당을 역설했던 사람이다. 노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과반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의 원내대표와 법무부 장관을 지내 여권 후보군으로 급부상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수십년, 아니 수백년간 민초들이 피흘리고 싸우고 희생해서 가까스로 만든 정부”라고까지 했던 그다. 염 의원은 어떤가.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던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감으로 생각,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 된 인물이다. 참여정부 출범 후에는 노 대통령의 생각을 전하는 역할까지 맡았던 그다. 그런 그들이 헌신짝 버리듯 당을 떠났다. 그래서 두 의원의 탈당은 노 대통령에 대한 배신으로 비쳐진다.1992년 박철언·이종찬 의원의 민자당 탈당과 1997년 이인제 의원의 신한국당 탈당과는 궤를 달리한다. 세 사람의 탈당은 당 대선후보(김영삼, 이회창)와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이들은 민생개혁세력의 대통합과 통합신당의 정권 재창출을 기치로 내세웠지만, 국민들은 이면에 숨겨져 있는 속뜻을 웬만큼은 알고 있다. 대권후보가 되기 위한 입지 확대용이거나 적어도 차기 총선에서 다시 한번 금배지를 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생명 연장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본다. 특히 염 의원의 탈당의 변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그는 “부여를 떠나 졸본으로 간다.”며 “흩어진 옛 조선의 유민들을 모아 한나라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망해가는 부여의 금와왕이고 국민들은 부여 백성이란 말인가. 또 졸본 백성은 누구이며,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은 다른 나라 백성이란 말인가. 지도층 인사의 발언치고는 참으로 한심하다.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이 시점에서 탈당파들이 청와대와 정부에 일방적으로 이끌려간, 그래서 국민 지지를 잃어버린 열린우리당의 환골탈태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묻고 싶다. 국민들의 불만을 외면한 채 청와대의 독주를 숨죽이고 방관했다면 그들에게도 분명 공동책임이 있다. 탈당을 준비 중인 의원들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얘기다. 탈당파들은 타이타닉호를 자주 언급한다. 문제의 본질은 침몰하게끔 만든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마지막까지 한명의 승객이라도 구출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탄생 과정과 과반의석을 차지한 배경을 이해한다면 더욱 그렇다. 결국 탈당 사태는 수요자 중심의 정치가 되지 못한 탓이다. 국민 입장에서 해법을 찾아야 함에도 여전히 자기들만의 세계, 즉 여야 개념에서만 보고 있다. 제발 이제는 국민들의 생각이 어떤지 조금이라도 알고 하는 정치를 해줬으면 한다. 더 이상 “꼬라지하곤…”이란 개그 유행어가 되뇌이지 않도록 말이다. jthan@seoul.co.kr
  • 黨사수·신당파 ‘성명전·설문조사’ 행보 가속… 양측의원 인터뷰

    黨사수·신당파 ‘성명전·설문조사’ 행보 가속… 양측의원 인터뷰

    열린우리당내 통합신당파와 친노파가 독자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통합신당파가 ‘정계개편 설문조사’를 강행키로 한 가운데 친노파는 당 비상대책위원회 해체와 당 사수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고, 세 확산에 나섰다. 친노파가 중심이 된 ‘당의 정상화를 위한 국회의원 모임’은 11일 기자회견에서 “한시적 특별기구인 비대위는 부여된 소임을 다했다.”면서 “정기 전당대회를 통해 정통성 있는 지도부를 선출, 향후 진로 등 당의 정상화 방향을 조속히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서에는 강혜숙·김선미·김태년·김형주·박찬석·백원우·서갑원·신기남·유기홍·이광철·이원영·이화영 의원 등이 참여했다. 반면 통합신당파는 설문조사 강행의사를 거듭 밝히며 친노파의 비대위 해체 주장에 불만을 표시했다. 김근태 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당 진로 논의는 지도부가 책임있게 이끌고 나갈 것이며, 국회가 끝나는 대로 본격적인 토론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열린우리 사수파’ 김형주의원 “누구와 왜 통합하는지, 통합하면 현 열린우리당보다 어떻게 더 나아질지, 대선에서 이길지, 명쾌한 비전이 없다. 앉아서 죽느니 움직여 본다는 차원이다.” 여당의 대표적 친노(親盧)그룹인 참여정치실천연대의 대표 김형주 의원은 11일 국회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내 통합신당파의 ‘비전 결핍’을 거론했다. 김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께서 우려하듯이 그런 게 결여된 상태에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고건 신당’에서 나온 분들이 통합신당의 대세가 될 것이고, 호남지역당이 될 개연성이 크다. 그런 당을 국민이 지지하겠느냐.”고 잘라 말했다. 내년 대선 승리보다 국민신뢰 회복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했다. 그는 “설령 이번 대선에서 지더라도 당을 계속하면서 새 제안을 내야 국민 신뢰가 우리에게 다시 올 수 있다.”면서 “(창당 슬로건인)‘100년정당’이 ‘100년 집권정당’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김 의원은 “통합신당을 해서 18대 총선에서 당선될 수 있는 의원들은 호남에 기반을 둔 분들뿐”이라면서 “그나마도 장밋빛 환상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여당과 민주당,‘고건 신당’이 합치면 호남의 의석 하나를 놓고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고, 잘해야 현 여당 의원들의 3분의1이 ‘금배지’를 달 것이라는 뜻이었다. 김 의원은 당의 다수인 통합신당파와의 분당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대선은 그 당의 국회의원 숫자가 아니라 어떤 후보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은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선 “같은 당이라도 누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했다.“현 지도부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당의 근간인 기간당원제를 약화시켜 온 점”을 당 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들며, 비대위 해체와 정기 전당대회를 통한 새 지도부 선출을 주장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통합 신당파’ 정봉주의원 “통합신당파 제1의 목표는 정권재창출이다.” 열린우리당내 ‘통합신당파’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정봉주 의원은 신당 창당의 목표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정 의원은 친노 진영과의 대립점은 ‘정권 재창출’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친노 진영은 당 정체성 유지만 주장할 뿐 정권 재창출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면서 “부모가 물려준 유산(정권)은 탕진하고 정신(정체성)만 유지하면 무슨 소용이냐.”며 재창당론에 회의를 드러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대연정’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야당하면 어떻냐.”는 언급이 친노 진영의 방향타를 가늠한다고 내다봤다. 정치적 색채는 비슷하다 하더라도 궁극적인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에 같이 갈 수 없다는 결론으로 들린다. ‘설문조사’를 둘러싼 분란 이면에는 친노 진영이 명분만 갖고 신당창당파를 ‘분당파’로 몰고 싶어 하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정 의원은 비판했다. 그는 설문조사의 핵심인 전당대회 의제로 ‘통합신당 추진여부’와 ‘대선관리형 당의장 선정’을 꼽았다. 그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국민중심당, 고건 전 총리, 시민사회세력 등 모든 중도개혁세력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열린우리당은 이들에 비해 힘이 있기 때문에 먼저 제안하되 형태는 ‘원 오브 뎀’이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치 일정상 내·외부적인 전략이 동시에 가동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내부적으로는 당내 각 정파 대표들이 모여 ‘통합신당추진특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비대위의 정치적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과 맞물리는 대목이다. 외부적으로는 ‘평화개혁세력 통합추진연석(정치)회의’(가칭)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당내 각 정파의 중진급 지도자들이 다른 정치세력과 결합해 통합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동굴’지도자는 나타날까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동굴’지도자는 나타날까

    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훌륭한 지도자의 유형을 이렇게 꼽았다. 국정에서 한발짝 비켜선 뒤 온갖 시련과 고초를 겪으며 심신을 단련한 끝에 다시 한번 전면에 부상하는 지도자가 나라를 발전시킨다고 설파했다. 그러면서 토인비는 핍박받는 이스라엘인들의 출애굽을 이끈 모세를 예로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굴(洞窟) 비유도 이와 비슷하다. 즉,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동굴에서 살다가 동굴 밖 세상에 대한 궁금증으로 동굴을 떠나, 밝은 세상을 보게 된 지도자가 다시 동굴 속으로 돌아와 동굴만이 유일한 생활터전이라고 믿는 무리들에게 화려한 바깥 세상의 존재를 알리고 그들을 각성시키는 일을 차곡차곡 진행시키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라는 것이다. 중국의 오늘이 있게 한 덩샤오핑이 그랬고 대영제국의 기초를 공고히 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그랬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이 일으킨 문화혁명으로 숙청을 당해 10년 이상 야인으로 지내며 개혁 개방에 대한 신념을 더욱 굳게 한 끝에 중국이 나아갈 방향의 틀을 체계화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딸을 낳았다는 단 한가지 이유로 아버지 헨리 8세가 그녀의 어머니인 앤 블린 왕비와의 결혼을 무효로 하고 사형까지 시키면서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졸지에 서출이 된 것도 그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일. 그러나 그는 이복 오누이인 메리 공주와 에드워드 왕자에 이어 왕위에 오른 뒤 영국을 가장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기초를 닦았다. 우여곡절의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끊임없는 자기 성찰로 나라를 잘 이끈 엘리자베스 1세는 이후에도 훌륭한 지도자의 전범으로 추앙받고 있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너무 쉽게 당선되면 끝이 안 좋다.’는 통설이 있다. 처음 치른 국회의원 선거에서 너무도 쉽게 금배지를 단 의원 치고 의정활동 성적이 뛰어난 사람 별로 없고, 이후 연속 당선에 성공한 이도 그다지 많지 않다는 현실을 빗댄 것이다. 내가 왜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고, 의원이 된 후 지역구민과 국민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법안을 만들 것인지 정도는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어떤 경험과 심신 단련을 했는지, 그리고 성과별 자기관리는 확실하게 하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함은 물론이다. 단순히 정파적 이해에 따라 출마하고 특정인 줄서기나 해서는 국민들 뇌리에 오랫동안 기억되는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 이는 곧 ‘정치인’과 ‘정치꾼’의 차이다.17대에서 탄핵 열풍으로 금배지를 단 탓에 ‘로또 의원’이란 비아냥을 듣는 국회의원의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갈라서기 직전에 놓인 여당의 심각한 분열상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차기 대선후보군 가운데 ‘동굴’ 지도자는 과연 있을까. 후보군마다 이런 시련과 저런 고초를 겪으며 나라를 제대로 이끌 안목을 키웠다고 주장할 것이다. 문제는 국가를 운영할 정도의 위치에서 그런 일을 했느냐가 문제다. 변호사나 언론인, 기업인으로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물론 여기에서 남녀의 차이를 두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모세나 덩샤오핑처럼 훌륭한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은 순전히 국민들의 몫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것이다. jthan@seoul.co.kr
  • “내년 대선 한나라 집권에 온 힘”

    “내년 대선에서 당 지도부가 분열되지 않고 집권에 성공하도록 온 힘을 기울이겠다.” 한나라당 이원복(49·인천 남동을) 국회의원 당선자는 25일 집권 여당의 박우섭 후보를 3위로 내려 앉히고,2위 민주노동당 배진교 후보마저 3배 이상 차로 여유있게 누른 뒤 이같은 당선 소감을 밝혔다.15대 총선 때 첫 등원한 뒤 16대와 17대 총선에서 낙선했다가 6년 만에 재등원하게 됐다.이번 공천 과정에서도 처음엔 탈락됐다가 이재오 최고위원의 ‘남다른 지원’으로 어렵사리 재심사 끝에 공천장을 거머쥐고 금배지 탈환에 성공하는 등 인생 역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스스로도 감격스러운 듯 당선이 확정된 직후 부인 김승란씨와 손을 번쩍 들며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으며 1988년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출마, 정치에 입문해 한나라당 중앙연수원장과 인천시당 위원장을 지냈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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