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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우투금 매각연기 요청 기각/정부,산은에 처분권

    정부는 대우조선정상화와 관련,대우그룹이 요청해온 대우투금의 매각기한 연기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산업은행이 대우투금의 주식을 받아 처분토록 결정했다. 상공부는 31일 대우측의 대우투금매각연기요청은 지난해 대우조선정상화와 관련된 산업정책심의위원회의 결정을 위배한 것이라고 결론짓고 당초 이달말까지 매각하지 않을 경우 산은이 처분토록 한 처분위임장에 따라 산은이 처분권을 행사토록했다. 이에따라 산은은 오는 7일까지 대우측으로 부터 대우투금주식을 제출받아 처분을 추진하게 된다. 그러나 상공부는 산은에 구체적인 매각시한을 정해주지 않아 대우투금의 주가가 정상화되는 시기까지 사실상 처분이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 또 대우투금에 대한 자산평가·원매자물색·경양권양도에 따른 영업권의 권리금문제등을 놓고 대우측과 줄다리기가 계속돼 실제로 대우투금이 매각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 “수출늘게 원절하 계속돼야”/손익분기점 섬유업 1불당 7백30원

    ◎전자업1불당7백40원/대엔화 고평가 해소방안도 촉구/22개 수출단체장 정부에 건의 우리나라 수출업계의 손익분기점 환율은 미화1달러당 섬유업계가 7백30원,전자업계는 7백4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따라 수출관련단체장들은 수출채산성확보를 위한 원화의 지속적인 절하는 물론 특히 일본엔화의 절하에 따른 원화의 상대적인 고평가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줄 것을 정부측에 요청했다. 섬유제품 수출조합등 5개수출조합과 전자공업진흥회등 15개 생산자단체·무역협회·무역진흥공사등 22개 수출관련단체장들은 31일낮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회관에서 박필수상공부장관과 수출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건의했다. 수출관련단체장들은 최근의 수출부진은 기술개발의 낙후 등에 근본원인이 있으나 단기적으로는 원화의 대미달러화에 대한 평가절하에도 불구하고 엔화의 약세가 지속됨에 따라 국내업체들의 가격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생산직 근로자의 서비스업종으로의 전업이 크게 늘어나 젊은 주부층 중심의 새로운 근로자확보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임금문제는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을 설정,올해 임금인상폭의 한자리수 억제를 실현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또 정부가 ▲일본엔화에 대한 원화의 상대적인 고평가를 해소할수 있도록 하는 수준의 원화절하 ▲중소기업의 무역금융단가인상 및 대기업에 대한 무역금융제도부활 ▲수출채산성확보를 위해 외환수수료와 환가료인하 ▲노사분규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공권력개입과 적극적인 대응을 건의했다.
  • 임금협상 조기타결 적극 추진/지연되면 「춘투」 동시 다발 우려

    ◎임금 선도기업 53사 오늘 회의 대부분의 주요기업들이 아직 임금협상에 착수조차 못하는 등 올 임금협상이 지연되고 있어 임금문제로 인한 노사분규가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단체들은 29일 최근 선정된 임금선도기업 53개사의 전체회의를 소집,빠른 시일내에 한자리수에서 임금협상을 타결짓도록 독려하는 등 조기임금협상및 타결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28일 상공부ㆍ노동부ㆍ경단협 등에 따르면 정부가 3월말까지 임금협상을 마무리,이른바 「춘투」로 야기될 생산활동의 지장이 없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현재까지 현대ㆍ삼성ㆍ럭키금성ㆍ대우ㆍ선경ㆍ두산 등 30대그룹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임금협상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임금협상이 아직까지 시작되지 못한 것은 노조측에서 지금 임금협상을 할 경우 현재의 사회적인 여건에 비추어 불리하다고 판단,회사측과 협상을 꺼리고 있으며 회사측도 타기업들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 대학가 「등록금 시위」 잇달아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중앙대학생 3백여명은 22일 하오3시 학생회관 뒤뜰에 모여 등록금을 7.3%만 인상할 것과 재단전입금의 완전확보를 요구하는 모임을 가진뒤 하오5시50분쯤 본관2층 김희수재단이사장 사무실로 몰려가 출입문 3개를 부순뒤 책상과 의자 등 집기를 모두 밖으로 끄집어 냈다. 학생들은 모임에서 『학교측이 등록금을 9.5%나 인상한 것은 부당하다』면서 『앞으로 등록금납부 집단연기원을 제출해 학원자주화투쟁을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한양대 서울 및 안산캠퍼스 학생 2천여명은 22일 하오3시쯤 학생회관 앞뜰에 모여 「학원자주화 승리를 위한 궐기대회」를 가진뒤 하오6시쯤 이들 가운데 1천여명이 등록금 한자리수 인상 등을 요구하며 본관ㆍ학생회관ㆍ가정관 등 3개건물을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3백여명씩 나누어 3개건물에 들어가 등록금문제에 대해 토의를 벌였으며,본관에 들어간 학생 4백여명은 철야 단식농성을 벌였다.
  • 48개 사대,등록금 10%이상 인상/27개대는 5∼10% 올려

    ◎동아대 33% “최고”/서울대등 4개대 기성회비 “동결” 등록금문제로 진통을 겪었던 사립대학 가운데 올해 등록금을 10%이상 올린 대학은 경기대 등 48개교이며 27개교가 5∼10% 인상했고 동결한 대학은 부산외대 뿐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기성회비는 자율적으로 책정하고 있는 24개 국립대가운데 서울대 등 4개교가 동결했고 서울시립대 등 3개교가 5%미만을 인상했으며 17개교가 5∼10%를 인상했다. 14일 문교부에 따르면 11개 교육대학을 제외한 사립 80개교와 국립 24개교 등 1백4개 대학 가운데 가장 큰폭으로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은 동아대 의대로 33.3%를 인상했으며 한양대 의대가 30.3%,홍익대가 20.3%를 각각 인상했으며 동국대는 아직 등록금을 책정하지 못했다. 국립대학중 기성회비가 동결된 대학은 서울대,강릉대,부산수산대,한국해양대 등이며 경북대와 부산대가 8.9%,전남대 강원대 전북대 등 3개교가 8.9%,군산대 등 4개대는 7%씩을 올렸다. 이밖에 사립대는 연세대와 한국외대가 11%,고려대가 12%,경희대와 중앙대가 9.5%씩을 인상했다.
  • 「교원지위 향상위」 신설/임금등 중재/교사ㆍ문교부ㆍ법조인 등 참여

    ◎민자,특별법 확정… 곧 국회 제출 민자당은 10일 교원들의 임금문제등을 중재키위해 법조인ㆍ교사대표ㆍ문교부관계자 등으로 구성되는 교원지위 향상위원회를 두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한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을 확정,곧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 제3세력 겨냥,「젊은 야당」 표방/민주당 발기대회의 저변

    ◎현역의원 7명… 교섭단체 구성이 과제/대구등 보궐선거때 지지도가 시험대로 민주당(가칭)이 27일 하오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창당발기인대회를 개최,오는 4월 「제2야당」 구성을 구체화했다. 지난 4일 「신야당추진모임」을 결성한 지 20여일 만인 이날 대회에는 발기인 9백여명과 시민 5천여명이 참석,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이다. 민주당은 3월3일 부산을 시작으로 서울ㆍ대구 등지에서 잇따라 「3당통합 규탄」 대중집회를 열어 신야당의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신야당의 사활은 현역의원 7명이라는 한계와 자금문제등을 극복하면서 대구서갑구와 충북 진천ㆍ음성의 보궐선거,그리고 곧 다가올 지자제선거에서 얼마나 국민의 지지를 받느냐에 달려있다. 외부적으로는 평민당과 재야와의 관계,내부적으로는 이질적인 인적 구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도 관심거리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민주세력 대동단결 ▲체질개선 ▲세대교체 ▲평민과의 통합대비의 원칙 등 창당 4대 원칙을 세워두고 창당작업을 벌여왔다.발기인중 학계ㆍ종교계ㆍ법조계ㆍ문화계 등 비정치권의 인물이 3백78명으로 전체의 42%를 차지하고 있어 이들이 기존 정당의 모습에서 탈피,젊은 정당으로 출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민주당은 당운영을 위해 이기택위원장등 집행위원 11명이 각자 1천만원씩의 사비를 갹출했고 앞으로는 국민성금에 기대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특히 대구등 보궐선거가 국민의 지지 정도를 감지할 수 있는 첫 시험대라는 인식아래 반드시 후보를 내세울 계획이다. 민주당은 이날 창당준비위를 구성,정당으로서의 권리를 갖게 됐으나 4월말 전당대회를 갖고 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나기까지는 평민당과 재야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박정현기자〉
  • 북경 아시안게임 재정지원/중국,한ㆍ일에 요청할 듯/일 통신

    【도쿄 연합】 중국은 북경아시안게임 개최에 따른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관계자를 곧 한국과 일본에 파견,재정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교도(공동)통신이 22일 조직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빌려 북경발로 보도했다. 조직위원회는 『모금및 협찬과 관련된 미결문제들을 해당 기업과 협의하기 위해 관계자를 일본과 남조선(한국)에 파견할 방침이나 대표단 인선과 파견시기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교도통신은 현지에서는 위기중조직위원회부비서장이 곧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전하면서 조직위원회는 방한목적을 「자금문제 해결을 위해」라고만 설명하고 있으나 대회개최에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는 경비 25억원중 1억5천만원(약 2백10억원)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음에 비추어 한국에 재정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전국 공단에 「개방대학」 설치/문교부 업무보고

    ◎빠르면 내년부터 5∼6년제로/실업계고 95년부터 무상교육/「독학학사」 10월이후 교양시험 문교부는 9일 고졸학력산업체 근로자들의 계속교육을 부축하기 위해 빠르면 내년부터 전국의 공단에 5∼6년제의 개방대학을 산업체 부설교육기관으로 신설하기로 했다. 정원식문교부장관은 이날 상오 노태우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이같이 밝히고 『그러나 고등교육인구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4년제대학의 증원과 전문대학 등의 4년제대학으로의 개편은 되도록 억제하겠다』고 말했다. 정장관은 『공단부설개방대학 뿐만 아니라 모든 고등교육기관은 그 지역의 공단연구기관 등과 연계,대학별 특성을 갖추도록 육성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하고 『특히 일부 이공계대학의 교육과정을 지역산업특성에 맞는 산업기술교육 중심으로 개편해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이를 위해 전국의 사립대에 모두 5백85억원을 지원하고 현재 24.4명 꼴인 교수 한사람앞 학생수를 선진국수준인 19.4명꼴로 줄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교원들의 복지향상을 위해서는 무주택교원에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하는 한편 주택마련 및 생활자금으로 2천1백37억원을 대부해 주겠다고 말했다. 정장관은 앞으로 5년동안 실업고를 확충해 실업계 지원희망자를 전원수용하며 장학금도 계속 늘려 95년까지 실업고교의 무상교육을 실현하겠다고 밝히고 「독학에 의한 학사학위취득제도」를 내년부터 시행할 수 있도록 올해 10월이후 첫 단계로 전공시험과 교양시험중 교양시험을 우선 실시할 방침이라고 보고했다. 문교부는 이를위해 빠른 시일안에 관계법령을 정비하고 전담기구를 설치할 계획이며 연구검토중인 대학평가인정제도 91년부터 시행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정장관은 교육환경의 전반적인 개선을 위해 오는 92년까지 해마다 3천7백억원씩 모두 1조1천1백억원을 투자할 것이며 올해안에 초중고교의 낡은 책걸상 1백만6조를 교체하고 읍면이하 지역의 초중고교에 복사기 1대씩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장관은 『최근 대학이 등록금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로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대학의 본질적인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총ㆍ학장의 철저한 책임관리제를 추진하고 순회교육 등을 통해 대학생계도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학생활동을 학술중심으로 전환시켜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 대우조선「호황닻」올리고“적자 탈출”/「불황터널」벗어나는 국내조선업

    ◎자구노력ㆍ수주물량 초과 확보… 내년엔 “흑자기대”/조공ㆍ인천조선도 “금방석”… 발빠른 경영회복 예상/김우중회장,「1년째 옥포살이」성과… 노사안정이 변수로 극심한 노사분규와 막대한 부채 때문에 침몰위기에 섰던 대우조선이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대우의 옥포조선소에서는 지난 87년이래 3년동안 계속됐던 노사분규의 먹구름이 걷히고 25척이나 되는 크고 작은 배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선체들을 조립하는 생산라인은 물량을 대기위해 철야작업이 강행되고 있다. 자정넘어 근로자들의 용접봉에서 튀는 불꽃이 흡사 밤하늘에 수를 놓은 것처럼 보인다. 대우조선이 이처럼 기사회생한데는 무엇보다도 8년여만에 찾아온 세계조선업의 호황이 공헌한 바가 크다. 세계조선시장은 해운시황의 호전에 따른 해상물동량의 증가,원유가 안정에 따른 원유수송량 점증,중고선의 선취매에 따른 가격 급상승,선령의 노후화등 주변환경의 변화에 힘입어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세계 신조선수주량은 88년도를 최저바닥(1천1백만t)으로 지난해 말에는 1천8백만t이상의신조선발주를 기록한 것으로 추계돼 전년도 수주량을 7백만t가량이나 초과했다. 이에 따라 경영부실로 표류하다가 지난해 8월 정부의 조선산업 합리화 대상업체로 지정됐던 대우조선ㆍ조공ㆍ인천조선 등 3개 조선사들도 앞으로 10년동안은 일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금방석에 올라섰다. 또 조선산업 합리화 계획에 따른 대폭적인 금융 및 세제지원으로 대우조선의 지난해 수주액은 8억3천3백만달러로 88년의 3억8천4백만달러 보다 1백16%나 급증했다. 조공도 지난해 1억8천7백만달러 어치나 주문을 받았으며 인천조선은 지난해 상반기동안 2억5천8백만달러 어치를 수주,이미 92년 상반기까지의 업무량을 확보한 상태이다. 이같은 호황의 여파로 한때 전체 빚이 1조1천억원에 이르러 이자만 해도 하루 4억원,연간 1천5백억원을 부담했던 대우조선은 당초 예상보다 빠른 경영개선 실적을 보일 전망이다. 이 때문에 91년까지 손익균형접근,92년 이후 확실한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는 처음의 예상이 적어도 한해 정도는 앞당겨 실현될 것이라는 장미빛 기대가 적지않게 나오고 있다. 조공 및 인천조선의 경우에도 세계조선계의 호황 및 정상화조치의 추진에 따라 늦어도 92년까지는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 조선업계의 화려한 변신은 대표적으로 대우조선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대우조선의 정상화를 향한 움직임은 정부의 조선산업 합리화조치에 따른 자구노력 및 경영개선에서 잘 나타난다. 정부가 공정거래법과 여신관리규정 상의 대기업규제를 완화시켜 주는데 대한 전제조건인 자구노력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말까지 대우조선 출자 및 차입금상환이 2천3백34억원으로 당초 올해 9월까지의 목표 4천억원 가운데 58.35%를 이행했으며 나머지도 기간을 앞당겨 완료하겠다는 것이 대우측의 설명이다. 대우측은 이같은 자구노력을 이행하기위해 김우중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대우증권주식을 두차례에 걸친 매각을 통해 모두 1천1백68억원을 마련한 것을 비롯,제철화학ㆍ풍국정유ㆍ설악개발 매각대금(7백16억원)등을 모두 출자했다. 이와 함께 조선사업 일변도에서 탈피하기 위한 사업다각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지난해 12월 23일 대우조선이 자체 제작한 제1호 굴삭기를 출하한 것을 시작으로 중기제조사업을 본격화했다. 또 경승용차사업과 특수선ㆍ버스ㆍ트럭ㆍ특장차 생산을 추진,현재의 조선전업도 95%를 93년에는 36%로 낮출 계획이다. 이같은 대우조선이 회생하게된 데는 지난해 2월부터 현재까지 1년동안 계속해서 한달평균 20일 옥포 현지에 머무르면서 정상화를 위해 부심해온 김우중회장의 남모르는 각고가 크다는 것이 업계의 얘기다. 김회장은 노사안정이 대우조선 경영정상화의 최대급선무라고 판단,1만2천여명의 전직원이 참여해서 한마음으로 교육을 받고 회장과 대화를 나누는 「패밀리 트레이닝」을 지난해말까지 다섯달동안 실시한데 이어 올해에는 대우조선 전임직원 및 가족들이 참여하는 「희망 90대행진」을 실시중이다. 지난 88년 노사분규 당시 옥포현장에 늦게 내려와 여론과 국회로부터 다소 비난을 받기도 했던 김회장은 옥포상주이래 매일 새벽 자건거를 타고 조선야드와 현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는가 하면 작업시간중에도 틈나는대로 현장을 찾아가 직접 애로사항을 듣는등 현장밀착관리를 해왔다.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쳐 피부로 느끼는 경영관리를 해온 셈이다. 그러나 모처럼 경영정상화의 가닥을 잡은 대우조선의 앞길이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노사분규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걷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측은 지난해 임금협상에서 올해 임금인상 분까지 같이 타결했기에 임금문제를 놓고 노사간에 다툴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영진에 대해 불신감을 갖고 있는 근로자들이 언제 임금문제를 다시 들고나설지 모른다는 관측도 없지 않은 실정이다. 또 노사분규로 말미암은 구속자석방과 해고근로자의 원복직문제도 정리되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해운시황과 직결돼 있는 조선경기가 만일 국제석유파동등 돌발적인 변수와 만나게 되면 모처럼 회생일로에 있는 대우조선을 비롯한 국내조선업계의 흥망을 좌우할 갈림길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다.
  • “임금인상,생산성 범위내로” 노대통령 지시

    노태우대통령은 19일 상오 서울 구로동 한국수출산업공단에서 최영철노동부장관으로부터 올해 업무계획을 보고받고 『금년도 임금인상은 생산성 범위내에서 이루어지도록 지도하고 무엇보다 임금문제가 조기에 타결되어 산업사회가 안정 속에 정상조업을 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또 지금의 경제난국을 이겨내기 위해 노동부 전직원은 산업평화정착과 임금안정을 급선무로 인식해야 할 것이라며 『불법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지도ㆍ조정하고 불법행위에 대해선 노사를 불문하고 엄정히 다스려 법질서를 확립하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특히 경제구조가 바뀌고 수출증가세가 둔화됨에 따라 고용감소가 나타나 실업문제가 우려된다고 지적,『중장기대책을 수립하여 시행하도록 하고 공단지역 등의 필요한 인력을 수시로 파악하여 공급체제를 갖추며 기능인력 양성을 확대토록 하라』고 아울러 지시했다.
  • “어떤 심판도 달게 받겠다”/전 전대통령,서면답변내고 백담사로

    ◎증언 소란끝에 중단,파행종결/「광주」 군 배치ㆍ이동 관여 안했다/정치자금 민정외엔 준일 없어/증언내용 전두환 전대통령은 구랍 31일 재임기간중 정치자금문제에 대해 『개인 또는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기부받은 바 있다』고 말하고 『민정당 이외의 특정인에게 정치자금을 준 일은 없다』고 밝혔다. 전 전대통령은 이날 국회 5공 및 광주특위 연석회의로 열린 청문회에 출석,이같이 말하고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열게 됨으로써 과거청산의 마무리가 아니라 청산의 새로운 시작이 되고 과거의 수렁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될까 두렵다』며 구체적인 정치자금 내역은 밝히지 않았다. 전 전대통령은 6ㆍ29선언에 대해 『6ㆍ29선언은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이 어떻게 실현되고 추진돼 정치발전과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지 경위나 배경을 들추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면서 『정치이면의 얘기는 현실정치에 민감한 영향을 주지 않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서는 훗날 회고록 등을 통해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전 전대통령은 광주사태에 언급,『초동 진압단계에서 계엄군의 강경진압과 악의적인 유언비어에 자극받은 일부 시민의 과격시위가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하고 『본인은 당시 군의 배치이동 등 작전문제에 대해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말해 광주사태진압 및 발포와 무관함을 주장했다. 전 전대통령은 『본인은 광주 무력진압에는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겠고 시민 상대의 사태수습을 군작전 개념으로 한다는 것은 현명치 않다는 의견을 계엄사 지휘관들에게 전달한바 있다』고 말하고 『자위권행사 문제는 군인복무 규율에 따라 불가피한 상황하에서 행사된 것으로 판단되며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5월22일 자위권발동도 가능하다는 계엄사의 작전지침이 하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전 전대통령은 『12ㆍ12사태는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수사도중에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이었을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사전에 준비된 병력출동 계획도 없었다』고 밝히고 『12ㆍ12사태는 시해사건에 대한 수사책임자인 본인이 주도한 것이며 그로 인해 야기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본인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날 청문회는 전 전대통령의 증언 부실 등을 이유로 여야간 야유와 고함ㆍ몸싸움이 속출해 8차례나 정회를 거듭한 끝에 민정당측과 전 전대통령이 불참한 가운데 야3당 의원들만으로 자정을 넘겨가며 파행적으로 진행되다 1일 0시50분에 산회됐다. 이날 저녁 7시30분 5차례의 정회끝에 속개된 회의에서 광주문제에 대해 증언하는 가운데 평민당의원들이 격렬하게 항의,민정당의원들과 격돌을 벌였고 정회가 선포되자 민주당 노무현의원이 전 전대통령을 향해 명패를 던지는 사태가 발생,민정당측이 서면사과를 요구했으나 야당이 이를 거부하자 민정당과 전 전대통령은 증언을 중단키로 결정했다. 이날 파행적인 청문회 결과 야당측이 위증시비를 제기하는 한편 부실답변을 계속 문제삼고 있고 특히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증언에 대해 평민당과 재야 등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어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전대통령은 이날 증언이 중단된 뒤 서류로 제출한 나머지 증언을 통해 광주에서의 발포건의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당시 지휘계통에 있지 않았던 입장에서 건의를 받을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고 부인하고 『광주의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귀속되건 당시 정부와 군의 요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책임 일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고 재임중 상처를 치유,해결하지 못한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책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최규하 전대통령의 하야 동기에 대해 『최대통령이 하야시 발표한 성명내용에 비춰 헤아려 볼 수 있을뿐 다른 동기가 있었는지에 관해 추측해 말하기 어렵다』고만 답변했다.
  • 전두환 전 대통령 국회증언 속기록

    ◎“「6ㆍ29선언」 배경 훗날에 밝힐 터”/「항공사 2원화」 따라 「제2민항」을 인가/언론통폐합,지금은 수긍 어려운 면도 ○이ㆍ장 어음사기사건 이 사건들은 이미 모두 철저한 수사와 재판이 끝났으며 그 과정에서 진상이 상세히 밝혀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철희ㆍ장영자사건이 정치자금과 연관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것인데,꿈에도 없었던 일입니다. 도대체 이철희ㆍ장영자 이 두사람과는 일면식조차 없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둡니다. 그리고 명성그룹의 해체가 본인이 세무사찰을 시킴으로써 이루어졌다는 주장의 사실여부를 물으셨으나,명성그룹은 명성사건 발생과 함께 대표자가 구속되고 대부분의 자산이 적법절차를 거쳐 처리됨으로써 자동적으로 해체된 것이지 세무사찰로 해체된 것은 아니었으며 본인이 세무사찰을 지시한바 없습니다. ○제2 민항 인가 제2 민항문제가 제기된 것은 제5공화국 초기부터 국제교역의 증대와 해외여행자율화 시책으로 항공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87년초부터 교통부에서 실무검토에 착수,그해 11월 항공사 2원화 방침을 보고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운송업 경험이 풍부하고 자본력이 견실한 호남지역 기업 중에서 대상업체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검토한 교통부가 이미 85년경부터 항공운수사업을 추진하고,87년부터 한국공항터미널 주식회사의 일부를 인수하는 등 항공 전문업체로서의 본격적인 발돋움을 하고 있는 금호그룹에 제2 민항 설립을 허가해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장관을 통해 건의해서 이를 재가하였습니다. 재가 시기가 본인의 퇴임 직전에 이루어진 점에 대해 의혹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동 인가문제는 87년초부터 계속 검토되어 왔던 것으로 오히려 늦게 결정된 것으로 생각하며 본인의 재임중에 시작된 일이어서 재임중에 종결짓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서 재가를 하게 된 것입니다. ▷원전ㆍ노스럽 의혹◁ 원전 11,12호기 도입과 관련한 시공업자의 로비설은 경쟁탈락 회사와 관련이 있다고 보여지며 원전 낙찰과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원전 선정은 동력자원부와 한국전력의 주관하에 관계전문가 1백50여명으로 구성된 입찰 평가팀이 다양한 조건을 비교검토한 결과 조건이 가장 유리하여 선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군 주력항공기 선정사업은 공군의 전투력 향상과 항공산업 육성의 측면에서 지난 83년부터 추진되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의 F­16과 노스럽사의 F­20이 경합하게 되었는 바,정부는 공동생산의 경제적ㆍ기술적 실익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생산업체를 선정하여 미국업체와 공동생산 타당성 여부를 검토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84년 10월 수원,85년 5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F­20기가 시험비행과정중 추락하는 등 사고가 있어 노스럽사가 F­20의 개발을 중단함에 따라 정부는 F­20을 검토대상기종에서 제외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로비자금 운운하며 의혹이 있었는 바 이는 본인 또는 정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일입니다. ▷골프장 인가◁ 내인가 골프장 중 일부 기업이 성금ㆍ기금 등을 낸 것이 바로 특혜가 아니냐 하는 의혹이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이해부족에서 오는 낭설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내인가라는 것은 행정의 합목적적인 수행을 위해 쓰고있는 행정관행인 것입니다. 골프장 내인가 권한은 교통부장관에게 있으며 대통령에게는 사전 또는 사후에 보고하는 것입니다. ○「기부」가 오해불러 일부 골프장 인가 과정에서 수십억대의 금액이 사례비조로 오고 갔다는 주장에 대하여 말씀드린다면 골프장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고려해서 공익과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도록 조건을 달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조건은 지역별로 공익시설을 건설토록 하거나 장학금 또는 장학기금을 내도록 하거나 총 골프장 건설소요자금의 10%이상을 국민관광지 조성에 쓰거나 그에 상응하는 기금을 내도록 한 것이 잘못 이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골프장을 설립한 기업중에는 새마을 성금 등 공익법인에 기부한 사례도 있고 지방자치단체의 회관설립기금을 기부한 기업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부행위가 정치자금과 관련된 것으로 잘못 인식된 것이 아닌가 보고 있으며 정치자금 수수는 없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삼청교육ㆍ언론통폐합◁ 삼청교육은 상습적이고 조직적인 폭력ㆍ공갈ㆍ사기ㆍ마약ㆍ인신매매 등 각종 사회악을 제거하여 사회기강을 확립함으로써 국가적 위기상황을 극복하려는 시국수습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것입니다. 삼청교육은 당시 사회혼란을 틈타 난무하고 있던 고질적인 상습범들에 대하여 예방적 차원에서 특별교육을 통해 교정함으로써 민생안정을 도모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들 사회악이 국민에게 많은 피해를 주고 불안을 조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법치주의의 맹점을 이용하거나 법망을 교묘히 피해나감으로써 통상적 방법으로는 다스리기 어려웠기 때문에 성실한 대다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추진된 것입니다. 당시 사회안정을 시급히 회복시킨다는 목적에서 이러한 계획을 추진하다 보니 시행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바,이 점은 매우 유감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해에 있었던 공직자 정화조치는 이권개입 등 부패공직자,공사생활에서 지탄받는 자 등을 정리함으로써 공직기강을 바로 잡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상자 선정은 사정기관의 자료와 각 부처별 대내외 첩보와 여론수집을 통해 엄밀히 심사토록 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정실,또는 개인적감정에 의해 처리된 사례도 없지않았다고 봅니다. 이점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 입니다. 언론인 해직조치 또한 사회각계 정화조치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 대상은 각 언론사에서 자율적으로 선정하는 형식을 취했으나 실제적으로는 계엄당국의 언론관계 담당관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언론통폐합은 건전언론을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그 전부터 몇차례 건의를 받은 바 있었습니다. 본인은 당시 언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으나 결국 80년 11월 언론통폐합 계획을 승인하게 되었습니다. 되돌아 보건데 당시 언론계에는 소위 「사이비기자」 「사이비언론」 등 문제점과 폐단이 적지않아 이러한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충격적 조치가 불가피 하다는 견해가 많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을 것이지만 당시에는 꼭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부정축재 환수◁ 그 외에 80년 당시 있었던 일로서 10ㆍ26 이후 사건수사 과정에서 청와대 비서실에서 발견된 자금문제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총 9억6천만원중 2억원은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5천만원은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에게 주어 이를 활용토록 하고 1억원은 당시 계엄사령관의 승인을 받아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비로 사용하였으며 나머지는 유족에게 전달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정축재 환수 재산처리는 적법절차에 의하여 농어촌후계자 육성기금으로 활용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헌납액에 차이가 있는 것은 환수재산중 일부는 현금이 아닌 서화 토지 등 실물자산으로서 이에 대한 평가액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0ㆍ27불교 법난◁ 소위 10ㆍ27 불교법난으로 알려진 불교계에 대한 정화는 사회전반에 대한 정화조치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특정 종교에 대한 탄압으로 비추어진 점에 대해서는 매우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 다만 이일은 정화조치의 일환이기는 하나 본인의 대통령 취임후 몹시 바쁜 기간이었으므로 중대한 사안인데도 집행기관을 자세히 챙기지 못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정치자금◁ 70년대에는 집권당 간부 중심으로 정치자금을 조달,관리함으로써 정치권의 부패가 여론화 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취임초부터 깨끗한 정치를 위해 나름대로의 의욕을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재임기간중에 집권당이 깨끗한 정치를 구현하는데 앞장서도록 강조해 왔으며 그 결과 재임기간중에 당의 고위 간부중에서 정치자금과 관련된 물의가 거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본인은 기업 또는 개인으로부터 정치자금을 기부 받은 바 있으나 국고보조 확대,선관위 기탁금,후원회를 통한 모금,당원의 당비 납부 등 외부로부터 정치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필요성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정기적 지원 없었다 실제로 민정당 창당시부터 자립정당을 표방하여 평소 당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당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했으며 필요한 자금을 가끔 지원한 적이 있으나 그 금액은 생각하는 것만큼 큰 규모가 아니었으며 본인이 정기적으로 일정액을 지원한 사실은 없습니다. 질의 내용중에 양대 선거와 관련한 자금 문제도 있으나 어느 당을 막론하고 선거때 선거자금을 모금하고 지원을 받아온 것은 비밀일 수도 없는 공지의 사실인 것입니다. 후보자간의 과열경쟁과 유권자의 기대심리가 높은 우리의 선거풍토에서 본인은 정치자금에 대한 이상과 현실간의 괴리에 곤혹스러움을 느낀적이 한두번이 아니며 이러한 고충은 아마 모두가 비슷하였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자금의 내역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도로 과장되게 알려진 측면이 없지않을 뿐 아니라 정치자금에 대한 논란은 자칫 정치불신만을 심화시킬 우려가 큰,매우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민정당 이외의 특정인에게 본인이 정치자금을 준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었으나 그러한 사실이 없었음을 분명히 밝히는 바입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평화적으로 정권을 인계해 주고 나온 어떤 통치자도 정치자금의내역을 공개하여 왈가왈부하는 사례를 본적이 없습니다. 본인도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열기 싫다기 보다는 입을 열게 됨으로써 과거청산의 마무리가 아니라 청산의 새로운 시작이 되고 세기말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과거의 수렁에 빠져 헤어날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강제징집문제◁ 병역법상 대학생은 스스로가 원하면 졸업시까지 징집을 연기할 수 있지만 대학을 그만두거나 휴학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연기혜택을 받을 수 없으므로 휴학한 대학생은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입대하여야 하며 의식화된 대학생이라 하여 예외일 수는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의식화된 대학생이 퇴학된 경우,징집에 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를 강제징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입대한 사람들은 당연히 군부대에서 다른 병사들과 함께 똑같이 병영생활을 영위했을 것으로 생각되나,그중 몇명이 사망하자 사망사실 자체가 의혹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대통령인 본인이 병영내에서 사망자가 발생할때마다 보고받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당시 본인은 그러한 사실에 대하여 물은바가 없습니다. ▷관계기관 대책회의◁ 이른바 관계기관대책회의란 것은 공식적인 정부기구가 아니라 국가 중요 현안이나 업무내용이 여러부처와 관련되는 사안인 경우 관련부처의 책임자 또는 실무자들이 모여 주무부서 책임자 주관하에 서로 의견을 개진하고 대책을 협의하는 비상설회의로 운용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회의는 의결 또는 집행기구가 아니라 단순히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모임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회의는 참석 대상자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해당 안건과 관련있는 부처의 공무원들이 그때 그때 참석하는 것으로서 대통령이 회의소집을 지시하거나 참석자를 지정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평화의 댐 건설◁ 평화의 댐은 북한의 금강산 댐 건설에 따른 국가안보상의 위해를 예방하기 위한 시설이었으며 당시로서는 대응 댐 건설이 정부가 취할 수 있었던 최선의 대응방안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84년 9월께 북한에서 북한강 상류에 80만㎾ 규모의 수력발전소를 건설한다는 사실이 노동신문ㆍ평양방송 등을 통해 수차 보도된 바 있어 저들이 공표한 발전용량을 근거로 저수량을 역산해 본 기술진의 검토결과 최대 저수량 2백억t에 달하는 초대형 댐을 건설하고 있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북측 대응 최선책 북한의 이러한 대규모 댐 건설은 하류에 있는 우리측의 수자원 및 발전량 감소를 초래함은 물론 인위적으로 파괴하거나 또는 자연붕되될 경우에 10여시간 후에는 수도권 일대가 대부분 수몰되는 등 우리 국민의 생존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며 특히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악랄한 반대와 방해공작을 펴오던 북한으로서는 무슨 일을 저지를 지도 모르는 위험하고 급박한 상황이었음은 국민 여러분도 상기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86년 10월께 수차례에 걸쳐 북한측에 국제관례를 무시한 금강산 댐 건설을 중지하도록 촉구하였으나 북한측이 이를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하여 86년 11월께 국가보위를 위한 자위 조치로서 수공을 방지할 수 있는 대응 댐을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국민들의 성금으로 건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평화의 댐은 당시 정부의 정보 판단에 따른 최선의 대응방안이었으며 정권유지 차원에서 금강산 댐의 위험성을 과장한 것이 절대로 아니었음을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이 기회에 분명히 말씀드린다면 우방이 제공해준 항공사진 등 여러가지 정보 자료에 비추어 이 댐은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하여 축소중이었음이 확실하며 그 뒤 북한이 댐 공사를 중단한 것은 우리가 평화의 댐을 축조함으로써 저들의 의도가 사전 봉쇄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 증언자도 듣는자도 모두가 패배자/국회증언 방청석에서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했다. 명패가 날고 욕설이 난무해서만은 아니다. 31일 열린 전두환 전대통령의 「역사적인 증언」을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 모두가 패배자라는 점이다. 증언대 앞에 선 전 전대통령의 모습은 당당했다. 흡사 현직대통령의 국회 국정연설을 연상시킬 만큼 그는 당당하고 또렷한 음성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질문에 답해나갔다. 그는 현직대통령에 버금가는 경호를 받았으며 많은 여당의원으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증인 전두환」일 뿐이었다. 화려한 7년의 대통령 재직에도 불구하고 그는 증언대에 섬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승리자 아닌 패배자로 기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증인이 패배자로 기록된다면 그에게 증언을 요구하고 청취한 여나 야ㆍ국민 어느쪽은 승리자여야 한다. 하지만 어느쪽도 승리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국민이 알고자 했던 새로운 진실은 나타나지 않았고 국민들은 실망감을 더했을 뿐이다. 전 전대통령은 지난 1년반 동안 국회가 집요하게 추궁했던 사안들에 대해「아니다」와 「밝힐 수 없다」로 일관했다. 정치자금과 관련해 그는 『민정당 이외의 특정인에게 정치자금을 준 사실이 있었느냐는 질문이 있었으나 그러한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는 바』라고 말해 12ㆍ16 대통령선거와 관련한 야당에의 정치자금제공설을 공식 부인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나라의 경우 평화적으로 정권을 인계하고 나온 어떤 통치자도 정치자금의 내역을 공개해 왈가왈부하는 사례를 본적이 없다』면서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열기 싫다기보다는 입을 열게 됨으로써 과거청산의 마무리가 아니라 청산의 새로운 시작이 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6ㆍ29선언에 대해 전 전대통령의 답변은 더욱 모호하다. 『어느 시대 어느 정치사회를 막론하고 이면사는 있게 마련이지만 그때 그때 속속들이 알려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6ㆍ29선언에 대해서는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이 어떻게 실현되었으며 어떻게 국가이익에 기여하고 있는가가 중요하지 그 경위나 배경을 새삼스럽게 들추어내는 일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노태우 당시 민정당대표위원이 단안을 내렸다는 지금까지의 정설을 확인해주지도 않았고 6ㆍ29는 「전두환작품」이라는 후설을 부인하지도 않은 것이다. 청문회장에 앉아 있던 여야의원 모두가 정작 「증인 전두환」의 입을 통해 정치자금 모금과 배분이 상세히 밝혀지기를 원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원하기는 했더라도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은 의원도 있었을지 모른다. 6ㆍ29선언에 대한 이면사도 정치자금문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들 사안에 대해 전 전대통령이 「진실」을 밝혔다면 그것은 이름그대로 「폭탄선언」이 된다. 정치권에 「혁명적인 상황」이 발생할 것이란 게 정치권의 공동인식이다. 「폭탄선언」을 하지 않고도 유일하게 여야와 국민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은 「새로운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하거나 증인 자신을 스스로 모욕하는 일밖에는 없다. 그러나 전 전대통령은 진실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거짓말로 자신과 국민을 기만하는 일을 거부했다. 일국의 대통령을 7년이나 역임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더이상 능멸하기 싫었기 때문이든지 역사를 오도하기보다는 「공백」으로 메워두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으로 여겨졌다. 「폭탄선언」을 해도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거짓말을 해도 역사를 잘못 기록하는 진퇴양난 속에서 전두환증인은 서 있었던 셈이다. 또한 그러리란 전망은 책임있는 여야정치인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전 전대통령은 증언 모두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아직 한번의 선례도 없는 전직대통령의 국회출석증언이라는 오점을 우리 헌정사에 남기게 된 것은 저의 씻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과오가 될 것』이라고 밝혔었다. 전 전대통령의 말대로 그것은 「과오」였다. 증언자와 증언청취자가 모두 패배자일 수밖에 없는 「하지 말아야 할」 증언을 한 것이다. 전직대통령의 증언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유일하게도 그를 증언대로 끌어올려 그를 충분하게 모욕해준 것 뿐이었다. 혹자는 그것만으로 청문회의 의미가 있으며 역사적인 교훈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함이 아닌 밝혀낼것으로 기대되지도 않았던 전직대통령의 증언은 유치한 정치보복일 뿐이었다. 증인이 참석해야만 의사진행을 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 증언대를 향해 명패를 날리고 「살인마」를 외쳐대는 야당의원들의 행동에서 청문회의 목적은 분명해졌다. 우리는 아직 하나의 사건을 놓고도 지역마다 쓰는 「역사」가 다르다. 더많은 세월이 흘러야만 「역사」는 지역성을 뛰어넘어 기술될 수 있을 것이고 그때쯤 비로소 증인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미완의 증언… 한풀이 의식/파행적 「청산증언」과 그 파장

    ◎야의 위증고발 움직임이 변수/정치권 수용땐 새 정치촉매 될 수도 전두환 전대통령의 31일 국회증언은 여야의 삿대질과 몸싸움속에 「미완의 증언」으로 끝났다. 이날 증언은 지난해 12ㆍ15 노태우대통령과 야3당총재의 합의에 따라 이뤄졌지만 5공청산의 원만한 대단원을 가져오지 못한 채 한풀이의 한마당으로 막을 내렸다. 8차례나 정회소동을 빚었고 급기야는 야당의원들이 「살인마」를 외치는가 하면 명패를 증인석을 향해 던지는 난장판이 연출됨으로써 정치권이 새해에 「과거의 멍에」를 벗고 미래지향적으로 운신을 할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시된다. 난장판의 사과방법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가 대립한 끝에 야 3당은 야 단독으로 회의를 강행,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증인과 여당을 성토했고 전 전대통령은 나머지 증언을 서면으로 특위에 전달한 뒤 기자들에게 자신의 심경과 입장을 피력하고는 은둔지 백담사로 떠나버리는 것으로 「증언의 행사」는 끝났다. 증언이 이같은 모양으로 끝남에 따라 여야는 새해들어서도 5공청산의 종결문제를 두고 정치적대결을 벌일 공산이 없지 않다. 우선 야당은 전 전대통령의 증언이 위증과 불성실과 교만으로 일관됐다는 주장 아래 위증,국회모독혐의로 사직당국에 고발하면서 정치쟁점화를 시도할 것 같다. 물론 이 과정에서 평민ㆍ민주ㆍ공화당이 완전히 공조체제를 이뤄 행동통일을 할지는 불분명하다. 평민당내에서도 협상파와 강경파의 입장이 서로 다르고 야당 가운데서도 공화당은 5공청산문제의 새해 이월 및 재점화를 그렇게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여권은 노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 전대통령의 증언으로 5공청산 종결을 선언한다는 입장을 견지,답변이 다소 미흡하다고 해도 이 수준에서 과거문제를 매듭짓는데 정치적 노력을 경주할 것으로 보인다. 민정당은 전 전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위증고발을 최대한 방어할 것으로 예상되나 야 3당이 굳이 이를 수의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그것 자체로 5공문제를 마무리짓고 정치적으로 더이상 쟁점화하지 않도록 막전막후 대화를 펼 것 같다. 여권은 또 「미완 증언」에 따른 후유증을극소화하기 위해 정국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생각된다. 가령 민정당내 5공청산 협상을 전담해온 총장ㆍ총무의 교체를 포함한 전면당직개편을 연초에 단행한다거나 지자제정국으로의 전환을 위해 4당구조의 변경 등 정계개편의 애드벌룬을 띄울 수 있을 것이다. 이날 증언은 지금까지 5공청산과 관련한 정치권의 의문점을 다소나마 해소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정치자금 비리의혹과 관련,민정당 이외의 특정당이나 특정인에게 정치자금을 준 사실이 없다고 밝힘으로써 87년 12월 대통령선거 당시 야당 분열을 위해 거액의 정치자금을 평민당측에 제공했다는 항간의 설을 부인했다. 또 일해재단 설립과 기금조성 의혹에 대해 기금조성과 관련해 특혜를 주거나 보복을 했다거나 정치자금을 조달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전 전대통령은 ▲세세대육영회와 심장재단기금 모금과정에서 반대급부가 없었고 ▲해외재산의 도피,은닉사실이 없으며 ▲부실기업정리는 산업합리화차원에서 시행되었고 국제그룹 해체도 정치적 보복이나 압력이 아니라 부실기업 정리작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전 전대통령의 이같은 의혹사항에 대한 부인일변도의 답변은 개별질문에 대한 1문1답식 답변이 아니고 의혹사항에 대한 포괄적인 답변형식에서 연유되는 면도 없지 않으나 의혹의 완전 해소나 사안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얻어내지는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전 전대통령은 ▲공직자 정화조치과정에서 일부 정실 또는 개인감정의 개재 ▲언론인 해직과정에서 계엄당국 언론관계담당관들의 일부ㆍ영향력 행사는 시인하기도 했다. 광주사태와 관련,책임의 일부를 통감한다면서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한다고 말해 광주문제에 대한 책임의 일단을 시인했다. 또 12ㆍ12사태는 자신이 주도했기 때문에 그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고 시인했고 재임중 친ㆍ인척 관리에 잘못한 점이 있음을 인정했다. 전 전대통령의 이날 증언은 대체로 보아 총체적인 면에서 책임통감,개별사안에 대해서는 당시 상황에서 정책결정의 불가피성 또는 타당성을 얘기함으로써 역사 앞에 자신의 통치기간이무조건 부정적으로 기술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할 수 있다. 전 전대통령이 6ㆍ29선언의 내막은 훗날 회고록을 통해 밝히겠다고 한 것이나 정치자금문제를 일일이 공개하는 것은 정치권을 다시 과거의 수렁에 빠지게 할 우려가 있으므로 더이상 언급 안하겠다고 한 것은 이미 이번 증언내용이 이른바 「폭탄증언」은 아니라는 것을 비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권이 다소 미흡한 「증언」이긴 하지만 이를 과거문제의 종결로 수용한다면 새해 정국은 지방의회선거를 전후로 한 정계개편 탐색 등으로 발빠르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되나 야당이 「위증」임을 주장하며 정치쟁점화를 시도할 경우 5공청산의 여진은 정치권을 또 한차례 흔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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