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라운지] 女쇼트트랙 새 간판 조해리
5월의 태릉선수촌은 부산하다. 미래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쏟아내는 ‘단내’로 하루종일 흥건하기 일쑤다. 지난 10일 선수촌에 발을 디딘, 몸집 가느다란 조해리(23·고양시청)의 땀은 누구보다 진하다. 이번이 세 번째 입촌. 그러나 한 번도 올림픽 무대를 밟아본 적이 없다. 뒤편 불암산 등반 코스에서 혹독한 체력훈련을 이를 악물고 견뎌내는 이유다.
지난달 국가대표 선발전을 1위로 끝낸 조해리의 겨울올림픽 진출을 놓고 “2전3기”라고 남들은 말하지만 그에게는 이제 비로소 시작됐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자신도 “그건 내년 2월 밴쿠버 금메달로 향하는 첫 발걸음이었을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TV로 본 쇼트트랙에 매료된 초등생
초등학교 1년 때인 1992년 2월의 어느 늦은 밤. 조해리는 당시 프랑스 알베르빌에서 열리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결승전 TV 중계에 시선이 꽂혔다. 김기훈과 모지수, 이준호, 송재근 등이 차례로 코너를 돌고 있었다. “자빠질 듯 아슬아슬하게 코너를 돌며 얼음판을 내달리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불과 0.04초 차로 캐나다 선수들을 따돌리고 금메달을 따낸 순간 6살 꼬맹이는 자신의 쇼트트랙 꿈이 시작됐음을 직감했다. ‘평생의 스승’ 모지수(38) 코치와의 인연도, 비록 브라운관에서였지만 사실 그때부터였다.
이듬해 본격적으로 얼음을 타기 시작한 조해리는 세화여고 동창인 고기현, 동갑내기 이호석 등과 순탄한 주니어시절을 보냈다. 다만 이들보다 한 발짝 걸음이 늦었다는 게 살짝 아쉬웠을 뿐. “2002년 기현이가 솔트레이크올림픽 금을 따냈을 때 저는 그해 주니어세계선수권 출전이 첫 국제경기였어요. 많이 늦었죠?”
● “너무 안 풀려 한때 자살사이트도 기웃”
사실 그녀는 견디기 힘든 대표팀 탈락의 아픔을 두 차례나 겪었다. 2002년 주니어선수로 올림픽무대를 노크한 조해리는 입촌을 앞두고 국제빙상연맹(ISU)의 나이 제한에 걸려 그만 꿈을 접어야 했다. 동갑 고기현이 5월생이었던 데 견줘 조해리는 7월생. 2개월 차이에 눈물을 뿌려야 했던 셈.
2003~04시즌 세계선수권과 겨울유니버시아드 금메달로 올림픽의 꿈을 다시 부풀리던 조해리는 토리노대회 최종 선발전에서도 탈락했다. 이번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쇼트트랙이란 종목이 부상이 심해요. 저도 그 당시 부러지고 찢어지고 어깨 빠지고, 허리디스크까지···. 심지어는 스케이트화를 세게 졸라 매다 발등을 다쳐 수술까지 했었어요.”
“하나 뿐인 외손녀인데 그만 시켜라.”라는 외할머니 으름장에 온 식구가 난감해할 때도 있었어요.” 부상으로 헤매기를 3년 반. “도대체 왜 나만 안 될까라는 자괴감에 한때 자살사이트를 기웃거린 적도 있었으니 할 말 다했죠.”
●공공의 적, 왕멍을 잡아라
지금 태릉에서 밴쿠버를 준비하는 6명의 여자대표팀에 최대 명제는 ‘왕멍 타도’다. 세계 정상을 위해선 필수라는 것. 특히 그에 대한 조해리의 기억은 특별하다. “2002년 춘천 세계선수권에서 왕멍을 처음 봤어요. 저랑 똑같이 첫 국제무대 출전이었거든요.”라는 조해리는 “근데 엄청나게 얼음을 못 타더라고요.”
“왕멍을 잡아야 밴쿠버 메달이 보여요. 지금은 그저 얄밉게 바라보는 게 전부지만 왕멍의 기량뿐 아니라 코스를 자유자재로 운영하는 경기 능력은 우리가 배울 만해요. 밴쿠버로 가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분석하는 방법밖에 없잖아요. 물론 그건 왕멍뿐만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조해리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10개월이다.
글ㆍ사진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조해리는 누구
■출생 1986년 7월29일 서울생
■학력 신용산초-목일중-세화여고-고려대(체육교육학과)-고양시청
■체격 167㎝, 몸무게는 비밀
■가족 조상구, 유인자씨의 외동딸
■초등학교 1년 쇼트트랙 입문
■성적
-월드컵 3·4차대회 3000m계주 금메달(2002년)
-아오모리겨울아시안게임 3000m계주 금,1500m 은,1000m 동메달(이상 2003년)
-예테보리세계선수권 3000m계주 금메달(2004년)
-겨울유니버시아드(토리노) 1000·1500m 은메달
-아시아선수권(타이베이) 1000·3000·3000m계주 3관왕(이상 2007년)
-아시아트로피(타이베이) 500·1500·3000m계주 3관왕(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