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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비엔날레 개막 D­15/「세계적 미술축제」 마무리 한창

    ◎전시관 준공·행사지원 시설 거의 매듭/외국작가 속속 입국… 출품작 30% 도착 광주라는 한 도시의 축제를 넘어서 「한국이 치르는 최고의 국제예술행사」라는 큰 의미를 둘 수 있는 광주비엔날레의 개막(20일)이 보름앞으로 다가왔다.「경계를 넘어」라는 주제아래 전세계의 이념과 문화등 복잡다단한 경계를 넘어 세계속의 시민정신을 향한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행사는 광주시의 총 투입예산 1백82억원,관람인원 2백만명을 예상하는 범국민적인 기획아래 광주 모든 시민이 「비엔날레」의 팡파르를 위해 몸과 마음의 정성을 아끼지 않고 있다. 광주에 들어서면 서너달전 새로 세워졌다는,비엔날레 표시가 들어가 있는 교통표지판이 광주시의 준비태세를 확실히 확인시켜 준다.비엔날레 전시관이 세워진 중외공원을 찾는 고객을 전시장 입구까지 친절하게 데려다 주는 택시기사의 친절은 미술전문적인 단어인 「비엔날레」의 본뜻을 잘 모르면서도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행사를 치른다는 자부심을 갖는 광주시민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지난8월 31일 용봉동 중외공원 문화벨트내에 있는 연면적 4천15평,전시장규모 2천6백57평의 비엔날레 아트홀이 준공식을 가지면서 비엔날레의 불꽃은 점차 거세게 당겨지고 있다. 현재까지 외국 작가들의 출품작 30%가 국내에 들어온데 이어 외국 출품작가로는 최초로 남미 우루과이의 거장 카를로스 카펠란이 지난 2일 입국하면서 광주시의 비엔날레 관계자들은 더욱 분주해 졌다. 수상(대상 상금 4천만원)을 겨냥하며 태평양권의 최초이자 유일한 국제 미술이벤트인 이 비엔날레에 참가한 작가와 작품은 50개국에서 92명의 작가가 출품한 공동작업이 포함된 88점.연령은 20∼60대로 폭넓게 걸쳐있지만 30∼40대의 작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선정된 인물 대부분이 각 지역에서 실험성강한 떠오르는 작가들이다.한국 작가들은 지난 80년대 현실과 문명상황에 대해 힘있는 예술적 대응을 보여준 민중미술 작가들이 비중있게 포함됐다.안성금 김명혜 김익영 김정헌 임옥상 신경호 홍성담 서정태 우제길등 참여 작가들은 초조한 심정으로 출품작의 마무리작업에 빠져있는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데 평면에 치우쳐온 임옥상씨를 비롯,작가 대부분이 이례적으로 설치나 비디오아트를 준비하고 있다. ◎장외 행사/「광주 통일미술제」 □세부행사 내용 「망월동 영령」 진혼 도보 행진 12개 민족미술단체 작품 전시 금남로선 「거리미술·초상제」 광주비엔날레 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비엔날레와는 별도의 장외미술축제가 준비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광주미술계 일부에서는 「안티비엔날레」(반비엔날레)라고 풀이하는 이 행사는 이 지역의 젊은 미술인그룹인 「광주미술인공동체」(회장 이준석)가 마련하는 「광주 통일미술제」. 참여 작가들은 『동양 한국의 새로운 문화의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한 행사』라면서 『항간에 우리의 뜻깊은 행사가 마치 비엔날레의 의미를 깎아내리고 저지하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매우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광주 통일미술제」는 비엔날레가 개막한 다음날인 21일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 시작되는 데 오는 10월 15일까지 이 지역 미술인들의 문화적 실천역량을 확인시키는 행사로 꾸며진다. 전국에서 제작된 만장(3m50㎝×55㎝)1천2백장이 6m높이의 대나무 장대에 걸려 망월동 묘지 입구 십리길을 메운다.그리고 묘지 제1주차장에 임시로 설치되는 가전시대에는 전국 12개 민족미술단체에서 참여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또한 21일 하오2시부터 만장이 걸린 십리길에서 참여작가들과 시민들이 진혼제 형식의 도보행진을 하고 금남로에서 거리미술제와 초상제를 지낼 계획이기도 하다.
  • 주가조작 감시 증권거래소 전산시스템 탐방

    ◎“D종금주 거래량 폭발” 컴퓨터 경보/이상 매매종목 추적… 불공정 여부 조사/수작업 때보다 작전주 적발 30% 늘어 『딩동댕! D종금 거래량 제한으로 적출됐습니다』 증시 개장 직후인 28일 상오 9시48분 한국증권거래소 주가감시실.시장을 감시중인 컴퓨터 시스템에서 경보음과 함께 거래 이상을 알리는 음성이 흘러 나왔다.7명의 감시요원들은 순간 바쁘게 움직였다.감시요원 최금남 대리(36)는 이 회사가 지난 26일에도 6개월 평균 거래량을 상회한 「거래량 제한」 경보음이 울렸음을 확인,즉시 관련 풍문과 뉴스철을 체크하고 공시부에 조회공시를 의뢰했다.공시부에서는 『거래량이 제한선을 넘었을 뿐 공시상으로는 아직 특별한 불공정거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계속 추적해 보자』는 연락이 왔다. ○감시요원은 7명 증시에 만연한 「작전」이나 내부자거래 등 주가조작에 대한 추적은 이렇게 첨단화된 전산시스템의 철저한 감시로부터 시작된다. 증권거래소 「종합감리시스템」은 미국 뉴욕 및 아메리칸 증권거래소 등의 최첨단 심리시스템(ICASS,SWAT)을 모델로 한국과학기술원(KIST)과 한국증권전산이 60억원을 들여 개발,지난 1월부터 가동됐다.이 시스템은 그동안 B약품·R전기·S피혁·K통신 등 「작전」으로 증시를 어지럽힌 상장사 및 작전세력을 잡아내는 등 불공정거래 및 관련자 색출에 「첨병」역할을 해 오고 있다. ○거래량변동 주시 이 시스템은 크게 매매거래 시간 중 실시간(리얼타임)에 이상 매매를 적출·분석하는 「경보 워크스테이션」과 1주·2주·4주 단위로 일정기간동안의 이상매매를 추적하는 「심리지원 워크스테이션」으로 구성된다.「경보 워크 스테이션」으로는 매일 일어나는 상장·공시,뉴스·풍문,내부자 지분,과거 매매심리내용 등을 분석한다.「심리지원 워크 스테이션」에서는 일정 기간동안 매매양태 및 회원(증권사 지점)관여 여부,특정회원이나 위탁자 등의 불공정거래 상황을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이상 매매적출 종목 중 풍문·보도가 있는 종목은 공시부에 조회공시를 의뢰하고 일정기간동안 주가 및 거래량의 변동상황이 추적된다.또 이같은 주시종목과 감리종목 등에 대한 특정회원이나 지점의 매매관여 비율을 조사·분석해 매매심리 대상으로 선정하고 그 결과를 증권감독원에 통보,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 주가감시부의 박준서 차장은 『작전설 관련 종목은 다수의 증권사 지점 및 계좌가 이용되고 주가상승 1∼2개월 이전부터 은밀하게 매집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투자자의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종합감리시스템을 통해 초기단계에 위험성을 예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비점 계속 보완 매매심리 업무가 전산에 의해 자동화 됨으로써 이전의 수작업때 보다 불공정 거래 적발 건수가 30% 이상 늘었다.특히 지난 7월 「작전설」로 말썽을 빚은 K통신도 4주간 추적 결과 K증권 도곡동 지점에서 상당량의 매집현상이 나타나 최근 증감원에 결과가 통보돼 조사가 진행중이다. 증권거래소는 날로 고도화·지능화되는 「작전」「내부자 거래」 등의 수법을 추적하기 위해 종합감리시스템의 프로그램을 계속 보완하기로 했다.이와함께 현재 회원·지점 중심의 매매 심리방법에서 다수 회원 및지점에 분산된 가·차명계좌 중심의 심리를 집중 실시,불법 시세조종 행위 근절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 「114안내」 남자목소리 듣는다

    ◎올해 한통 전화교환직 공채서 51명 합격/한때 「금남의 영역」 인식탈피/성차별철폐 신세대 사고반영 3개월뒤면 114안내에서 남자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금남의 영역」인 전화교환직에 남성들이 대거 진출했기 때문이다. 18일 한국통신에 따르면 최근 전국 각 지역별로 실시된 7급 교환직 공채에 합격한 5백72명의 전화교환원 가운데 남자가 서울 20명을 포함,51명에 이르고 있다. 한국통신측은 남자교환원의 등장을 두고 『처음부터 사규상 남녀차별은 없었다』며 『이번 신규채용은 업무전산화에 따라 기존의 교환기능자격증 소지자를 정보처리기사2급 소지자로 전환함에 따라 남성들의 지원이 많았던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한국통신의 교환원채용은 지난 82년이후 처음으로 이같은 현상은 그동안 사회전반에 남녀차별분위기가 없어짐에 따라 성별에 관계없이 소신껏 직장에 지원하는 신세대들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로써 1902년 3월 전화의 국내 도입과 함께 「한성전보총국」이 설립돼 본격적인 전신업무를 시작한 이후 통신기술자들이 겸했던 교환원의 업무에 다시 남자들이 참여하게 됐다. 전화교환원이 단일직종으로 자리잡은 것은 지난 1910년대이며 그후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늘어남에 따라 전화교환업무는 여성차지가 됐었다.
  • 시위대가 장갑차 포위하자 장교 첫발표/「5·18」수사 의문점 규명

    ◎21일 전남도청앞 충돌전 장교위주 실탄분배­발포경위/전교사령관­31사단장 계통밟아 군병력 투입­군지휘권/광주시내 시위대처 급급… 병력운용 여유없어­무기피탈 방치/인명피해·뚜렷한 피탄흔적·파편 등 확인안돼­헬기 기총소사/8명의 사체서 자상 발견… 대검 사용 인정­대검등 사용/정지불응 미니버스에 총격… 10여명 사망­광주외곽 피해/「신원·사망경위 불명」 많아 확정 불가능­사망자수 검찰이 18일 「5·18」사건의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의문점들이 밝혀졌다.검찰수사 결과 드러난 발포경위 및 헬기 기총소사 여부,대검과 화염방사기 사용여부,사망자 수,무기피탈 고의방치 여부,광주 파견부대 지휘권의 2원화 여부 등 7가지 의문점을 정리해 본다. ▷발포경위◁ ▲공수부대의 발포는 5월20일 하오11시쯤 광주역 앞에서 시위군중에 발포하면서 계속되었는데 21일 하오1시쯤 도청 앞에서의 집단발포의 형태는 시위대의 차량돌진을 저지하기 위한 자위목적의 우발적 사격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된 명령에 따라 이뤄졌다는 주장. ­광주에서의 최초발포는 5월19일 하오5시쯤 광주고부근에서 있었던 바,당시 사직공원을 수색하고 복귀하던 11공수여단 63대대 배속 장갑차가 이 학교 부근에 이르렀을 때 시위대가 장갑차를 포위공격하면서 불붙은 짚단을 던져 불을 붙이려 하자 장갑차에 타고 있던 한 장교가 장갑차 문을 열고 공포를 쏘고 다시 위협사격하는 과정에서 주위에 있던 고등학생 1명이 총격을 받아 부상당했음. 또 20일 하오11시쯤 3공수여단이 광주역일대에서 시위대와 공방을 벌이던 중 트럭·버스 등 시위대의 차량돌진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수세에 몰리자 3공수여단장은 경계용 실탄을 예하대대에 전달하고 대대장은 이를 장교 위주로 분배해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는 차량을 향해 발포했으며 광주역으로 실탄을 전달하러 가던 특공지원조가 시위대와 마주쳐 진로가 막히자 위협사격을 하는 한편 21일 다시 전남대 앞에서 장갑차·경찰가스차 등 시위대의 차량돌진공격에 대응해 발포,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이는 광주시민의 공분을 고조시킬 목적으로 사전에 계획된 의도적인 발포였다고는 할 수 없음. 이와 함께 21일 전남도청 앞에서의 발포경위에 대해 그동안 국회 청문회 등에서는 시위대의 1차 장갑차공격후 도청에서 철수하던 31사단 병력으로부터 공수부대가 소량의 실탄을 인수하여 장교들에게 분배한 상태에서 다시 시위대가 차량공격을 해오자 장교들이 자위적 차원에서 발포한 것이라고 주장돼왔으나 이번 수사결과 11공수여단 61·62대대는 도청 앞 금남로에서 시위대로부터 차량공격을 받은 후 시위가 소강상태에 들어간 20일 밤 12시쯤 대대장이 대대장 지프 등에 통합보관하고 있던 경계용 실탄을 대대장의 명령에 따라 위급시에만 사용하라는 지시와 함께 중대장이상 장교에게 15발들이 1탄창씩 분배하고 63대대는 21일 상오10시30분쯤 실탄을 분배함으로써 같은 날 하오1시쯤 시위대의 차량공격이 있기 전에 이미 장교 위주로 실탄이 분배돼 있었음이 확인됐음. 또 당일 하오1시쯤 시위대가 장갑차등으로 공수부대에 돌진,공격해오고 병사 1명이 장갑차에 깔려 사망하자 이에 대응해 첫 발포가 있었으며 다시시위대가 장갑차와 버스 등 차량돌진을 계속하자 공수부대 장교들이 집단적으로 발포했고 이와 비슷한 시점에 7공수여단 35대대도 철수하던 31사단 병력으로부터 실탄을 인계받아 이를 장교들에게 분배하는 한편 돌진하는 차량을 피해 인도와 인근 건물로 산개했던 공수부대원중 일부가 도청 및 주변건물 옥상에 올라가 경계를 하고 있다가 접근하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사실이 확인됐음. 따라서 이같은 발포는 대대장이나 여단장이상의 상급지휘관이나 별도의 지휘계통에 있는 특정인의 구체적인 발포명령에 따라 행해진 것이거나 광주시민의 공분을 고조시키기 위해 사전에 계획된 의도적인 것으로 인정할 수 없고 현장지휘관인 공수부대 대대장들이 차량돌진 등 위협적인 공격을 해오는 시위대에 대응해 경계용 실탄을 분배함으로써 이를 분배받은 공수부대 장교들이 대대장이나 지역대장의 통제 없이 장갑차 등의 돌진에 대응해 자위목적에서 발포한 것으로 판단됨. 그러나 그 이후 계속된 발포중에는 비록 시위대가 무장을 했다 하더라도 도로에 나와 단순히구호를 외치거나 총상자들을 구호 또는 호송하려 하거나 심지어는 시위현장 부근에서 구경하기 위해 나타난 경우 등 군에 대해 직접적 위협을 가하지 아니한 상태에까지 발포가 이뤄진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 당시 실탄 및 사격통제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었음이 확인됐음. ▷군 지휘권◁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상급지휘관인 계엄사령관·2군사령관·전교사령관·31사단장의 정상적인 지휘계통하에 있지 아니하고 별도세력의 사전계획에 의해 지휘되고 있었다는 주장. ­7공수여단 2개 대대를 전남대 등 3개 대학에 배치한 것은 소요예방과 진압을 이유로 육본이 전국 92개 대학에 계엄군을 배치하는 조치의 일환으로 취해진 것이므로 이때 이미 군병력의 시위진압투입은 전제돼 있었다고 할 수 있으며 5월18일 하오 7공수여단 2개 대대가 광주시내 시위진압에 나선 것은 계엄확대선포후 전국에서 유일하게 광주시내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경찰이 군의 투입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계엄사령관→2군사령관→전교사령관→31사단장의 계통에서 군병력 투입을 결정한 사실이 인정됨. 11공수여단의 추가투입이 광주시내에서 공수부대원들과 학생들이 충돌하기 전인 18일 하오2시쯤 결정된 것은 사실이나 이는 광주 시위상황을 보고받은 육본에서 군병력의 증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다만 공수여단중 적절한 파견부대의 결정을 위해 특전사령관의 의견을 들어 11공수여단을 증원하기로 결정한 것임. 또 초기에 7공수여단을 시위진압에 투입한 후 5월18일 야간에 공수부대를 광주시내에 거점배치하고 19일 11공수여단의 추가작전통제에 다라 책임지역을 구분해 시위진압에 투입했으며 20일 3공수여단의 추가투입에 따라 다시 책임지역을 구분,시위진압에 투입하고 21일 공수부대를 시외곽으로 철수시키는 등 일련의 부대운용에 관한 지휘를 실제 31사단장과 전교사령관이 행한 사실이 인정됨. 21일 하오4시 31사단장의 2개 공수여단에 대한 작전지휘권이 전교사령관에게 전환된 후 광주 재진입작전은 전교사령관이 계엄사령관의 지휘를 받아 특전사령관 등의 자문과 조언을 참고해 그의 책임하에 수행한 것이 인정되며 군부대간의 오인사격은 전교사와 공수여단 및 전교사 예하 각 부대간에 상호 상황전파 및 통제의 미숙,단위부대 지휘관들의 상황판단미숙과 침착성 부족 등에 기인해 발생한 것으로 이를 두고 지휘권 이원화의 결과라고 할 수는 없음. 물론 광주에 파견된 3개 공수여단이 전교사령관이나 31사단장의 작전통제하에 있었음에도 31사단 등과는 무전교신체계가 상이한 상태에서 특전사 일부장교가 전교사에서 전용 무선 발수신장치를 설치해 각 공수여단과 별도로 교신하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특전사령관이 11공수여단과 3공수여단의 증원결정에 의견을 제시하고 수시로 광주를 방문하면서 공수여단 지휘관들을 격려하고 광주 재진입작전인 상무충정작전을 수행함에 있어 특공부대를 선정하는 데 관여한 사실 등이 인정되나 이를 가지고 당시 공수여단에 대한 지휘권이 이원화됐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임. ▷무기피탈 방치◁ ▲사전에 계획된 시나리오에 따라 광주 재진입작전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시민으로 하여금 무기고를 습격,무장을 하도록 상황을 유도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근거로 광주시민이 광주 외곽지역에서 무기고를 습격하고 무기를 탈취해 광주로 돌아오는 동안 아무 제지를 받지 않았고 이후 외곽도로가 봉쇄되었다는 주장. ­광주에서 시위대에 의한 무기탈취는 19일 하오3시15분쯤 시위대가 기독교방송국을 점거하는 과정에서 31사단 경계병력으로부터 M16소총 1정을 탈취한 것이 처음으로 이 소총은 곧 회수됐으며 그후 20일 하오11시쯤 광주세무서 방화,점거시 지하실 무기고에서 칼빈 17정을 탈취했고 21일 하오1시쯤 광산 하남파출소에서 카빈 9정이 탈취됐으나 시위대가 본격적으로 무기탈취에 나선 것은 21일 하오1시쯤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의 발포가 있은 후로 시위대는 광주 인근지역으로 진출,화순·나주 등 지방의 지·파출소와 화순광업소·한국화약 등 방위산업체 등에서 대량의 무기와 실탄을 탈취했음. 당시 조기진압의지와는 달리 시위가 급격히 확산됨으로써 경찰과 군병력이 광주시내 시위에 대처하는 데만도 급급한 상태였고 지방경찰 병력도 대부분 광주시내로 차출돼 인근지방으로까지 진출해 무기를 탈취하는 시위대를 사전에 막기는 어려웠던 상황이었으며 특히 21일에는 전남대에서 3공수여단이,전남도청 앞에는 7공수여단과 11공수여단이 시위대와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은 전남도청 등을 포기하고 시외곽으로 철수하는 형편이었으므로 군이나 경찰이 병력운용에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무기고 습격을 방치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움. ▷헬기 기총소사◁ ▲광주에서 무장헬기의 공중사격으로 많은 인명피해가 야기됐다는 주장. ­군관계 자료상으로는 21일 2군사령부가 전교사에 수송용 헬기인 UH­1H 10대,무장헬기 AH­1J(코브라) 4대를 지원하고 사태기간중 헬기가 모두 48시간동안 무력시위를 했다는 기록외에 실제공중사격 실시여부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을 발견할 수 없었음. 조비오신부가 헬기사격의 피해자라고 지목한 홍란은 검찰조사에서 부근 건물옥상에 있던 계엄군의 소총사격에 의해 다쳤다고 진술했으며 정낙평은 21일 하오2시쯤 광주경찰서 상공에서 기종미상의 헬기가 기관총 사격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부근 진주다방의 종업원이 옥상에서 헬기가 쏜 기관총을 맞고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으나 진주다방 종업원인 심동선씨(30)에 대한 검시조서에 의하면 사인이 M16소총에 의한 관통총상이고 당시 빌딩옥상에 있던 공수부대원의 사격에 의한 피격이라는 취지의 증언이 있음. 아놀드 피터슨목사는 헬기가 선회하고 상공에서 총소리가 들려 헬기에서 기총사격을 한 것으로 믿고 있으나 헬기사격 자체를 목격하지는 않았다는 것이고 피터슨목사가 사격장면을 촬영한 것을 검찰에 제출한 사진상의 헬기 하단 불빛은 기관총사격시 발생되는 섬광이 아니라 헬기에 부착된 충돌방지등 불빛임이 확인됐음. 이와 함께 광주시내 적십자병원·기독병원·전남대병원의 당시 진료기록부와 응급실 관계자들의 진술을 검토해도 그 당시 각 병원에 헬기총격에 의한 피해자가 들어왔거나 입원·치료를 받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고 광주시위 관련 사망자 1백65명에 대한 광주지검 사체 검시기록에서도 특별히 헬기기총사격에 의한 사망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할 수 없었음. 또한 AH­1J헬기의 장착무기인 토미사일,2.75인치 로켓,20㎜ 발칸포(1분당7백50발 발사),500MD헬기의 장착무기인 2.75인치 로켓,7.62㎜ 6열 기관총(1분당2천∼4천발 발사)에 의한 표적사격의 경우 나타나는 대규모 인명피해와 뚜렷한 피탄흔적·파편 등이 확인되지 않았음. ▷대검등 사용◁ ▲계엄군이 시위진압과정에서 대검과 화염방사기를 사용했다는 주장 ­당시 광주일원에 투입된 계엄군은 착검상태에서 트럭을 타고 위력시위를 하다가 시위대로부터 투석공격 등을 받으면 착검상태로 하차해 시위대를 추적,체포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그 과정에서 대검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음. 실제로 사망자 손옥례·권근립씨등 8명의 사체에서 자상이 발견됐고 부상자 하헌남·최승기씨 등이 자상을 입은 점 등을 종합할 때 당시 시위진압현장에서 지휘관의 의사와 상관없이 공수부대원에 의해 대검이 사용된 사실이 인정됨. 군관계자들은 화염방사기가 토치카 또는 장갑차 공격용이므로 인체에 화염방사기를 직접 사용할 경우 전신 중화상으로 대부분 사망했을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당시 광주에서 화염방사기가 사용되지 않았고 다만 소용진압용 작용제(CS분말)나 소요군중 식별용 유색수를 살포하는 데 화염방사기를 이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계엄군이 화염방사기로 화염을 방사했거나 화염방사기에 의한 화상사망사실을 인정할 만한 자료를 발견치 못했음. 5월21일 광주시청 앞에서 시위대의 장갑차를 몰고가다 화염방사기 공격으로 화상을 입은 것으로 광주민중항쟁사료전집에 기록된 최강식씨(87년 사망)의 보상금지급 관련서류를 조사한 결과 최씨는 당시 광주시 중흥동의 한 건축현장에서 계엄군에 체포돼 전남대·광주교도소·상무대로 이동하면서 전신을 구타당하고 화상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음. 또 같은 날 전남대 앞 시위에서 계엄군의 화염방사로 안면화상을 입은 것으로 기록돼 있는 최병옥씨(당시 21)의 경우 당시 계엄군에 쫓겨 전남대부근 가정집의 화장실에 숨어 있던 중 화장실 환기창문으로 불꽃이 들어와 얼굴에 화상을 입었으나 그것이 화염방사기에 의한 화염인지는 목격하지 못했다고 검찰조사에서 진술하는 등 다른 피해사례나 목격담에 대한 조사에서도 화염방사기 사용사실을 확인하지 못했음. ▷광주외곽 피해◁ ▲5월21일 공수부대가 전남대와 전남도청 앞에서 광주시 외곽으로 철수하여 5월27일 재진입작전을 할 때까지 시외곽 봉쇄 및 도로차단 등과 관련해 여러 건의 민간인 피해사례가 있었다는 주장. ­이같은 주장 가운데 3공수여단 5개 대대는 5월21일 광주교도소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시위대 수십명을 천막등으로 덮은 트럭에 실어 호송하면서 더운 날씨에도 불구,과다한 인원을 탑승시킨 상태에서 최류탄을 터뜨려 화상환자를 발생시켰고 교도소 도착당시 트럭에는 질식 등으로 인해 5∼6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음. 3공수여단은 또 같은 달 22일 하오10시쯤 광주교도소부근을 통과하던 김성수씨일가를 시위대로 오인,총격을 가해 가족 3명에 총상을 입히고 그중 김씨의 처 김춘아씨가 후유증으로 사망케 하는 등 24일까지 광주교도소를 방호하는 과정에서 무장시위대와 수차례 교전을 했고 이같은 교전및 부상자치료,철수과정에서 사망한사체 12구를 교도소부근에 가매장한 사실이 확인됐음. 광주∼목포간 도로를 차단하기 위해 효천역부근에 배치됐던 20사단 61연대 병력은 5월22일 상오5시40분과 9시쯤 2차례에 걸쳐 시위대로 오인하고 민간인에 총격을 가해 왕태경 등 2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했음. 5월22일 하오5시쯤에는 20사단 62연대 2대대가 광주통합병원을 확보하기 위해 민가를 사이에 두고 무장시위대와 교전하는 과정에서 인근주민 이매실·함광수씨 등이 총상을 입고 사망 또는 부상했고 23일에는 해남에 주둔하고 있던 31사단 93연대 2대대와 시위대간의 2차례 교전과정에서 박영철씨 등 민간인 2명이 사망했음. 11공수여단 62대대가 매복하고 있던 주남마을 앞 광주∼화순간 국도에서는 23일 상오10시쯤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미니버스에 총격을 가해 박현숙씨 등 10여명이 사망했고 남자 중상자 2명이 후송도중 다시 총격에 의해 사망했음. 24일 하오1시30분쯤에는 주남마을에서 송정리비행장으로 이동하던 11공수여단 병력과 시위대 10여명이 송암동부근에서 총격전을 벌이던 중 공수부대의 난사로 전재수 등 어린이 2명이 사망했고 또 전교사 보병학교 교도대 병력의 오인사격을 받고 격분한 63대대 병력이 피격지점부근를 수색해 시위대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무장시위대원 1명과 권근립씨 등 주민 4명이 총격을 받고 사망했음. ▷사망자수◁ 정부 관련 자료에 근거한 광주시위 관련 사망자수는 군인 23명,경찰 4명,민간인 1백66명등 모두 1백93이고 이에 광주시위 관련 행방불명자로 인정돼 보상금이 지급된 사람이 47명임. 그러나 광주시위기간에 발생한 사체 가운데 신원및 사망경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목격자 진술 등에 의해 사망자가 확인된 경우에도 당시 사체가 발견돼 확인됐는지 여부와 신원불상 사체와의 동일성 여부 등에 대한 판단이 현재로서는 곤란해 광주시위 관련 사망자수를 확정짓는 것은 불가능함.
  • 5월20일/시위진압때 4명 총격 사망/검찰수사로 재구한「5·18」

    ◎휴교항의 전남대생 18일 공수단과 첫 충돌/21일 무장시민군 도청 접수… 최소 38명 희생/시민군 23일 “무기회수”… 군27일 도청점령 “끝” 상오10시 전남대앞에서 휴교조치에 항의,시위를 벌이던 대학생들과 7공수여단 33대대 병력간에 충돌.하오2시40분쯤 학생·시민들이 금남로로 진출,진압에 실패한 경찰이 군병력 출동을 요청해 7공수 33·35대대가 시위진압에 나섬.이 과정에서 첫사망자 발생.시위대 2천여명으로 불어 시내 중심가에서 산발적 시위.하오5시50분 11공수 61대대 진압에 투입됨. 대검을 착검한 공수부대원들의 강경진압에 분노한 시민·학생들 금남로 일대에서 화염병·투석 시위.상가대부분 철시한 상태에서 11공수 61·62·63대대 학생·시민들을 진압봉으로 무차별 구타,연행함.하오2시 광주지역 기관장회의서 과격진압항의및 연행자 전원석방요구.하오5시 11공수63대대 장교가 M16소총으로 시위대에 첫발포.하오11시 육본이 3공수 5개대대에 추가투입명령. 전남도교위 광주시내 중고교에 임시휴교조치.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17정을 시위대가 탈취.하오4시 금남로일대에 시위군중 2∼3만명 운집하고 택시·버스·트럭 등 차량이 시위에 합세.하오9시45분 진압상황 보도요청을 거부한 광주문화방송국 방화.하오10시30분 진압군에 실탄지급.M60등으로 공포사격.하오11시 전남도청을 제외한 광주전지역을 시위대가 장악.광주역일대 진압과정에서 4명이 총격사망. 20사단 61·62연대 추가투입.시위대들이 광산·영광·함평·화순·나주 등지로 진출,나주경찰서등에서 총기4천9백여정·실탄13만여발·수류탄2백70여발 탈취해 무장.정오 전남대·도청등지에서 수만명의 시위대들이 무장시위 벌임.하오1시30분 공수부대원들이 시위대를 향해 집단발포.하오1시35분 광주 외곽도로망 차단하고 진압군 자위권 발동.하오4시30분 전남도청·도경을 시민군이 접수.최소 38명이 총격사망. 광주외곽지역 총격전으로 수십명 사망.상오9시 지역유지와 학생들을 주축으로 시민수습대책위원회 구성.하오3시 도청분수대 앞에서 시민궐기대회개최. 상오9시35분 수습위 시민군들 상대로 무기회수 시작.상오10시 11공수 62대대 병력이 매복한 주남마을 부엉산아래 광주∼화순간 국도에서 미니버스에 타고있던 여고생등 10여명 총격사망.하오3시 도청앞 광장에 5만시민이 운집해 민주수호시민궐기대회 개최. 상오9시55분 호남고속도로 광주인터체인지 부근에서 전교사 예하 기갑학교 병력이 부대복귀중이던 31사단 96연대 3대대 병력을 시위대로 오인,진압군끼리 총격전을 벌여 사병3명 사망.하오1시55분 효천역 부근에서 전교사보병학교 교도대 병력이 11공수63대대 병력을 시위대로 오인,총격전을 벌여 9명 사망. 강경학생·청년들이 수습위를 대신해 무력대항결의.무기반납도 백지화.상오4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광주재진입작전계획인 「상무충정작전」수립지시해 작성됨.하오5시30분 최규하 대통령 광주방문,담화문발표. 상오10시30분 소준렬 전교사령관 주재로 진압작전 지휘관회의 개최해 27일 새벽 작전개시키로 결정.하오6시 전남도청에서 최후항쟁 주장하는 강경파 2백여명이외에 시위대 해산함. 상오4시 3공수여단 11대대 1지역대 병력이 전남도청 후문으로 들어가 1시간21분만에 도청점령.7공수33대대 8·9지역대 병력도 상오5시6분 광주공원 점령.11공수61대대 4중대 병력은 상오4시46분 도청주변 주요건물 점령.20·31사단은 상오7시15분쯤 광주시내 진입완료하고 10분만에 모든 작전완료.계엄군의 광주재진입작전과정에서 시위대 16명,계엄군 3명 총격사망. ◎고소·고발인 향후 대응방향/「검찰 결성」 불복땐 어찌될까/항고·재항고 기각땐 헌법소원내야/헌법재판소서도 「결정번복」 힘들듯 1년2개월 가량을 끌어온 「5·18」 고소·고발사건이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으로 일단 마무리됐지만 고소·고발인들이 검찰의 결정에 불복하고 있어 앞으로 전개될 법률적 대응이 주목된다. 현행법상 고소·고발인들이 취할 수 있는 법률적 대응방안은 3단계로 구분된다. 우선 해당 검찰청인 서울지검을 통해 상급청인 서울고검에 항고하는 것.항고가 기각되면 대검에 재항고를 할 수 있으며 재항고마저 기각될 경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길이 열려 있다.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고검이나 대검이 1차 결정 당사자인 서울지검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사전조율결과 도출된 결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고·재항고는 헌법소원을 내기 위한 요식절차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건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간다해도 고소·고발인들의 주장이 관철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비록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을 받아들여 「인용」 결정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인용결정이 곧바로 검찰의 기소결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뿐더러 헌법소원을 통해 검찰의 결정을 뒤엎기에는 여러가지 면에서 무리라는 것이다. 우선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사안이 사법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언제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공소시효에 대한 판단자체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헌재가 검찰의 결정을 번복하려면 공소시효부분에 대한 판단을 먼저 내린 뒤 시효만료일 이전에 재기수사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고소·고발인들이 주장하는 내란죄의 공소시효(15년)는 오는 8월15일에 만료돼 27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지배적인 견해인 점으로 미루어 시간상 공소시효와 본안에 대한 판단을 함께 내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사건이 헌재에서 다뤄질 경우 검찰이 유보한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적 판단」여부에 대해서도 심판해야 하므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종래 통치행위는 검찰이나 법원의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으나 헌재의 헌법판단대상이라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헌재의 인적 구성이나 12·12사건 당시 보인 소극적 자세 등을 감안할 경우 헌재가 8월초쯤 헌법소원이 제기되면 공소시효부분에 대한 판단여부로 시간을 끌다가 결국 『소의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결정을 내릴 공산이 크다. 따라서 고소·고발인들의 향후 법적대응은 실익보다는 검찰의 사법적 판단에 대한 「불복」차원에 그칠 것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장윤석 공안부장 일문일답/“어떤 비판 제기돼도 최선다한 결정”/고소인 주장 입증할 증거 발견못해/양민학살한 계엄군 처벌도 어려워 「5·18」고소·고발사건의 주임검사인 장윤석 서울지검 공안1부장은 18일 하오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에 대해 상당한 국민적 반발과 파장이 예상되는데. ▲시를 쓰는 것은 시인이 해야할 고유의 일이지만 시를 감상하고 비평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어떤 비판이 제기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80년 8월 최규하 전대통령 하야과정과 발포경위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입증자료가 없다」고 발표한 것은 검찰수사력의 부족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 아닌가. ▲충분한 자료수집과 검토를 했지만 고소인들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최전대통령이 정권에서 물러날 시기를 전후해 강압과 불법행위는 정말 없었는가. ▲전두환 전대통령은 답변서를 통해 강압이 없었다고 진술했으며 최전대통령은 서면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기 때문에 이를 설명할 자료가 전혀 없었다.또 세간에는 이 과정에서 김정렬 전총리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것이 정설로 돼있는데 김씨 역시 사망해 강압여부에 대해 확인할 수 없었다. ­80년 4월 권정달·허삼수·허화평씨 등이 모여 국보위 설치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정권찬탈등의 의도가 있었다는데. ▲조사결과 4월 당시 그런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80년 8월 최전대통령이 하야하고 간선제를 통해 전전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두사람간에 강압이 없었다는 말인가. ▲최전대통령이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아 알 수가 없었으며 전전대통령의 경우 「당시 최대통령이 스스로 결단했을 것」이라는 답변서만을 냈다. ­광주시민등 양민학살 부분의 책임자들에 대한 개별적 처벌은 가능하지 않은가. ▲공수부대가 광주 외곽지역에서 총격을 가해 주민 2명을 사망케 한 일이 있었으나 발포자와 구체적 경위에 대해 특정되지 않는등 행위자를 가리기 어려워 처벌이 어렵다. ­12·12사건 때는 군형법상 반란죄등 혐의를 인정했는데 5·18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12·12 사건의 경우 소장급 장성이 별넷인 장성을 제거하려 한 것이므로 군형법상 반란죄 인정이 가능했지만 이번 사건은 통치권 찬탈을위한 사전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웠으며 당시 전씨가 모든 과정에서 부단히 최전대통령의 재가를 받으려고 노력했으므로 전혀 다른 성격이다. ­계엄군에 의한 주민학살만이라도 처벌할 수 없는가. ▲공소시효 5년이 지난 것으로 알고 있다.군형법상 군지휘계통을 들어 책임자를 처벌하기도 어렵다.구체적 행위자등 기본적 사실관계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집권을 위한 시나리오가 있었다는데 입수했나. ▲입수는 했지만 당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계획서였을 뿐 정권찬탈 음모는 보이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 “PC 유통업계 가격파괴 대응”/외국기종 공동브랜드로 시판

    ◎용산전자상가업체,「연합PC」 명명/미국산 완제품 월 1천대 수입 시판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이 외국산 개인용 컴퓨터를 대량 수입,공동브랜드로 가격인하 경쟁에 참여한다.용산전자상가 연합상우회는 27일부터 「연합 PC」라는 공동브랜드로 미국산 개인용 컴퓨터 486과 펜티엄 기종을 시판한다고 밝혔다. 연합 PC는 미국의 컴퓨터 유통업체인 리딩에지사에서 전량 수입한 완제품으로 현재 4백대의 물량을 확보해놓고 있으며 앞으로 매월 1천대 가량을 수입키로 했다. 연합 PC는 세진컴퓨터랜드,C&C 컴퓨터클럽 등 가격파괴를 주도하고 있는 컴퓨터 유통업체들의 같은 기종 제품과 비슷한 가격대인 486DX 66급이 1백10만원,펜티엄90급(16M램,8백50M하드,4배속CD롬 등 내장)이 2백10만원에 판매된다. 애프터서비스센터도 운영키로 하고 현재 서울 강남과 용산 등 서울에 5곳을 두며 지방의 전자상가와도 연계해 컴퓨터의 공동구매와 공동판매를 확대할 계획이다.부산의 율곡전자상가,광주의 금남전자상가 등과 접촉중이다. 서울시내 5개 컴퓨터학원과 계약,연합PC를 구입하는 고객에게 8회 강의를 받을 수 있는 수강증도 주기로 했다.
  • 북구(기초장 격전지)

    ◎민자 전구청장인주 전언론인 격돌 행정가와 언론인 출신 재야인사가 격돌하고 있다.민자당의 오병남 후보(60)와 민주당의 김태홍 후보(53)는 모두 지역 발전을 내세운다. 오 후보는 광주시 북구청장·종합건설본부장·기획관리실장 등을 지낸 행정관료 출신이다.온화한 성품과 친화력으로 공무원 사회 뿐 아니라 각계 각층에 지인이 많기로 정평이 나 있다. 또 북구청장을 지냈기 때문에 현안은 물론 원대한 발전대책까지 낱낱이 꿰뚫고 있다고 내세운다.초대 광주시 공영개발 사업단장·종합건설본부장 등을 맡았을 때 영세민 아파트 건립 등 각종 수익사업을 펼친 경험을 최대한 살리겠다며 중장년층 유권자 공략에 총력을 쏟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도로망 확충,북구의 분구추진,영세민아파트 건립과 서비스행정 체계 구축 등 전문 행정가로서의 능력을 집중 홍보하고 있다. 반면 재야 후보인 김 후보는 가시밭길 인생을 헤쳐왔다.주민 참여를 통해 살 맛 나는 공동체 자치구의 시범 지역으로 만들겠다며 지지를 호소한다. 한국기자협회 회장과 한겨레신문이사를 지낸 김 후보는 지난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당시 보통군법회의에서 8년형을 선고 받았고 86년에는 5공의 「보도지침」 폭로사건으로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올 초 북구에 지방문화연구소를 개설하고 단체장 출마를 겨냥해오다 지난 3월 통일시대 국민회의를 통해 민주당에 입당했다. 김 후보는 이번 선거를 단체장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고향발전에 봉사하기 위한 기회로 삼겠다며 젊은 층을 상대로 표밭을 누비고 있다.재야의 경력이 이 곳 정서와 맞아 떨어져 득표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광주첨단과학 산업단지 활성화,관광문화벨트 조성,첨단 농업단지 개발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동구/공직출신 2명과 재야인사 3색전 두명의 공직자 출신과 한명의 재야 인사가 뛰고 있다.민자당의 이광현 후보(59)와 민주당의 박종철 후보(59)가 각각 승리를 장담하며 격돌하는 가운데 무소속의 위인백 후보(47)가 가세하고 있다. 이·박 두 후보는 모두 광주에서 태어나 30년 이상 공직 생활을 함께 한 친구 사이다. 이 후보는 이 곳에서 지난 91년5월부터 구청장을 지냈다.그래서 현안에 대해 누구보다 밝다고 자신한다.전통적으로 야당이 강세를 보이던 분위기가 『이번에는 인물 본위로 찍겠다』는 방향으로 바뀌는데 크게 고무돼 있다. 상가가 밀집한 충장로와 금남로 일대의 교통과 청소 등 주민생활 환경 정비,공개행정 및 재정자립도 제고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시장과 노인정 등을 돌며 얼굴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박 후보는 광주시 문화예술회관장을 끝으로 지난 달 37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야성이 강한 곳이라 민주당 간판만으로 50%는 당선이라고 보고 있다. 땅 한 평 없다는 청렴성,광주에서만 16대가 5백년 동안 살아왔다는 토박이론,야당 후보로 풍부한 행정경험을 갖춘 점 등을 내세우며 표밭을 일구고 있다. 위 후보는 5·18 당시 수습위원으로 활동하다 1년간 옥고를 치른 후 재야에서 활동해 왔다.참신성과 젊다는 것이 강점이다.판공비 내역까지 공개하는 투명행정을 펼치겠다며 젊은 층을 활발히 접촉하고 있다.다만 행정경험이 부족하다는 취약점이 있다. 위 후보는 「5·18 광주민중항쟁 동지회장」을 지내며 5·18문제 해결을 위해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등을 찾아다니며 대통령의 「5·13」 특별 담화를 이끌어냈다며 공직생활로 굳어진 상대 후보들보다 오히려 더 큰 행정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 크렘린의 남침 결단(모스크바 새증언:4)

    ◎스탈린­모택동 비밀회동… “북 남침 지원키로”/김일성,중 공산화에 고무… “개전”고집/스탈린,“전쟁나면 북 지원”전문 보내/소,북 3개 정예사단 창설·「무기구입 차관」제공 약속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최초로 남침허용을 요청한 49년 3월부터 이듬해 1월 만찬장사건이 일어나기까지 10개월여 동안 적어도 표면적으로 스탈린은 전쟁 개시를 원치 않았다.49년 9월 툰킨 대사대리가 김일성의 옹진반도 점령계획을 보고한 것을 시발로 평양의 소련대사관과 모스크바 사이에 오간 전문들은 김일성이 남침 개시를 요청하고 스탈린이 이를 말리는 식으로 계속됐다.49년 10월30일부터 수일간 스탈린과 슈티코프대사간에 오간 전문들을 보면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기도를 막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가를 읽을 수 있다. ○“전쟁기도 못 마땅” 스탈린은 9월24일 당정치국결정을 통해 김일성에게 남침불가를 통보한 바 있다.그러나 슈티코프 대사는 그후에도 김일성이 옹진반도점령,해방구건설 등에 미련을 못버린다는 사실을 계속 보고했다.이 일을 두고 스탈린은슈티코프 대사를 크게 질책하기에 이른다.『10월30일.슈티코프 대사에게 엄중경고함.김일성으로 하여금 남조선에 대해 국지전쟁을 일으키도록 부추긴 대사의 행동은 적절치 못함.그런 도발은 우리의 이익에 매우 위험하고 적으로 하여금 대규모 전쟁을 시작할 빌미를 주는 것임.대사의 행동은 전적으로 무책임한 것임』 크게 놀란 슈티코프 대사는 이튿날 곧바로 해명전문을 스탈린 앞으로 띄웠다.『본인은 북조선 내무성에 파견된 우리 고문관 보두아긴 대령을 통해 북조선이 38도선을 침범치 못하도록 엄중 감시하라고 지시했음.본인은 북조선당국에게 남조선을 무력침공하라는 충고를 결코 한 바 없음』 스탈린은 이 해명에도 불구하고 11월20일 당중앙위 명의로 재차 경고전문을 슈티코프에게 보냈다.『귀하가 제출한 해명은 전적으로 불만족스러움.이는 바로 모스크바가 내리는 지시사항을 귀하가 이행치 않는다는 증거임.38도선에서 어떤 긴장도 발생시켜서는 안된다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대신 귀하는 이 문제를 놓고 토의를 벌였음』 호된 질책을 당한슈티코프 대사는 이후 김일성의 남침계획 관련 보고를 중단했다.대신 남한의 북침기도에 관한 보고만 수차 스탈린 앞으로 더 보냈다. 그렇다면 스탈린이 이러한 초기 입장을 바꿔 김일성의 남침의사에 동조하게된 것은 언제,무슨 계기가 발단이 된 것일까.그것은 바로 중국내전에서 모택동이 승리한 것이다.중국공산당의 승리로 가장 크게 고무된 사람은 바로 김일성이었다.김일성이 만찬장사건을 일으킨 것도 사실은 모택동의 승리에서 얻은 용기의 일단을 보인 것이었다.중국공산당이 중국국민을 해방시켰으니 다음은 자기 차례라고 김일성은 생각했던 것이다.더구나 모택동은 중국내전만 끝나면 북조선을 도울 수 있다는 언질을 여러차례 김에게 했었다.1950년 1월30일 마침내 학수고대하던 답신이 스탈린으로부터 떨어졌다.모스크바에서 면담을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소 차관 전용 허용 이날 스탈린은 전쟁불가를 고수하던 종전의 태도와는 확연히 다른 다음의 전문을 슈티코프 대사 앞으로 보냈다.『…김일성 동지의 불편한 심기를 이해함.그러나 그가 지금남조선과 관련해 도모하려는 중대사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도 이해해야 함.무엇보다 큰 위험부담이 없는 쪽으로 일을 꾸며야 함.그가 이 문제와 관련,나와 이야기하고 싶다면 나는 항상 그를 만나 이야기할 준비가 돼있음.이런 나의 입장을 김일성에게 전달하고 이 문제에 대해 내가 그를 도울 준비가 돼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 김일성과 스탈린 사이에 구체적인 남침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은 바로 이 전문이 되는 셈이다.그러나 마치 면담허락의 조건인 양 스탈린은 이 전문에서 매년 최소한 2만5천t의 납을 소련에 공급해달라고 요구하며 『김일성이 이 요구를 거절하지 말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슈티코프 대사는 전문을 접수한 바로 그날 김일성을 만났다.이날 면담내용은 이튿날 스탈린 앞으로 보낸 보고전문에 상세히 기록됐다.『50년 1월31일.각하의 지시에 다라 김일성 동지를 만났음.김일성은 내가 전달한 내용을 매우 만족스럽게 받아들였음.동지께서 그를 만나겠다고 한 사실과 이 문제(남조선 해방문제)와 관련,그를 지원해 주겠다고 한 사실에 그는 매우 큰 감명을 받았음.김은 스탈린동지의 진의를 한번 더 확인하고 싶어 스탈린동지께서 바로 이 문제와 관련해 자기를 만나자고 한 게 분명하냐고 재차 물었음.본인은 이 전문내용으로 판단할 때 그렇다고 확인해주었음.김은 자기는 언제든지 스탈린동지를 만날 준비가 돼있다고 덧붙였음』 이와함께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소련이 요청한 납을 10∼15일 이내에 약속대로 보내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전문을 보낼 바로 그 시점에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은 모택동과 만나고 있었다.김일성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때 스탈린 모택동 두사람은 북한의 남침시 지원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그렇게도 전쟁을 애원했던 사람은 김일성이었지만 중국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함과 함께 북한의 남침문제에 대해서 스탈린 모택동 두사람이 이니셔티브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2월2일 스탈린은 슈티코프 대사 앞으로 다음의 전문을 보냈다.『…다음 사항을 김일성 동지에게 주지시킬 것.그가 나에게 의논하고자 하는 문제는 현시점에서 완벽한 보안이 유지돼야 함.북조선의 다른 지도자들은 물론 중국지도자들도 알아서는 안됨.이는 적에게 비밀을 유지하기 위함임.…중략…지금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는 모택동 동지와의 회담에서 우리는 북조선의 군사력과 방어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이를 도울 필요성과 방안에 대해 논의했음』 이틀 뒤 김일성이 먼저 슈티코프 대사를 만나자고 요청했다.그리고는 즉각 다음의 문제들을 제기했다.(대통령문서소보관.슈티코프 대사가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전문)『50년 2월4일.김일성은 전군을 10개 사단으로 증강시키기 위해 추가 지상군사단을 편성하고 싶다며 본인의 의견을 물었음.본인은 이것이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답하고 우선 이에 필요한 물질적 자원이 있느냐고 물었음.아울러 이에 대해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했음.김일성은 소련정부가 51년도 분으로 주기로 한 차관을 50년도에 쓸 수 있도록 자기가 직접 스탈린 동지에게 요청토록 해달라고 했음.그는 이 차관으로 3개 지상군사단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무기를 구입하고 싶어했음.본인은 이 요청을 본국정부에 보고하겠다고 답했음』 스탈린은 2월9일자 전문을 통해 이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인다고 답했다.그는 이 3개사단을 엘리트장교,현대식 장비를 갖춘 정예부대로 만들라는 별도주문까지 덧붙여 보냈다.다음은 전문내용.『김일성을 만나 3개사단 창설을 추진하라고 이를 것.이 사단들은 경험있는 장교들과 훈련 잘된 사병,현대무기를 갖춘 정예부대로 만들어야한다는 점을 그에게 유념시킬 것.51년도분으로 책정된 차관을 50년도로 전용시켜 3개사단 창설에 필요한 무기구입에 쓰도록 승인한다는 것도 알릴 것』 ○「무력남침」못 박자 바로 이튿날 슈티코프 대사는 김일성을 만나 이 사실을 통보하고 곧바로 같은날 스탈린에게 그 결과를 보고했다.슈티코프 대사는 『김일성이 이 사실을 듣고 매우 기뻐했으며 원조에 대해 스탈린 동지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몇번이나 되풀이 했다』고 보고했다.이후 김일성은 모스크바 방문준비에 모든 정성을 쏟았다.방문절차와 관련,모스크바와 평양간 수차례 전문이 오갔다.3월20일 김일성은 슈티코프 대사를 만나 방문날짜를 4월초로 잡고 박헌영을 대동하고 싶다고 말했다.아울러 이번 방문을 1946년도와 마찬가지로 비공식(비밀) 방문으로 하고 싶다고 주문했다.방문준비는 모두 마쳤으며 스탈린과의 회담에서 다음의 사항을 논의하고 싶다며 회담의제를 내놓았다. 김일성이 제의한 이 의제는 3월21일자 슈티코프 대사가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전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①남북조선 통일 방안과 방법에 관해 ②북조선의 경제발전에 관해 ③가능하다면 당사업에 관해. 3월23일 슈티코프 대사는 이 의제를 더 상세히 정리해 다시 모스크바로 보냈다.①통일방안 ②경제문제 ③중·조선관계 ④아시아공산당,노동당의 협력문제 등으로 세분한 이 전문에서 주목되는 점은 두말할 것도 없이 ①항의 통일문제이다.그런데 3월1일자 보고전문에서 「남북조선통일 방안과 방법」으로 기술됐던 이 항목이 이틀 뒤의 이 전문에서 『남북조선 통일 방안과 방법.의도는 군사적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는 데 있음』이라는 쪽으로 바뀌어졌다.통일방안을 아예 「무력남침」으로 못박자고 김일성이 요청한 결과였다.
  • 민주 내분/앙금남긴채 수습국면 돌입/경기지사후보경선 파문 임시봉합

    ◎양계파 반목 여전… 「선거책임론」까지 제기/진상조사 결과따라 대위 증폭 가능성도 민주당 경기도지사후보 경선파문이후 계속돼온 이기택 총재와 동교동계간의 내분이 19일을 고비로 수습의 실마리를 찾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이날 총재단회의를 열어 경기도지사후보 선출대회장에서의 돈봉투및 폭력사태에 대해 조세형 부총재 주도로 당차원의 진상조사활동을 벌이기로 했다.이에 발맞춰 동교동계는 진상조사가 끝날 때까지 이 총재의 지원을 받는 장경우 의원의 후보사퇴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내부방침을 세웠다.소모적인 공방을 계속하기보다는 제3자(당)의 진상조사결과를 명분으로 삼아 이번 사태를 봉합하자는 데 양측이 의견접근을 본 셈이다.이에 따라 이번 사태는 3∼4일간의 진상조사활동을 통해 결과가 나오는대로 진정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진상조사결과가 이번 사태로 빚어진 양측의 감정대립까지 해소하기는 어려우리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오히려 사태의 봉합과는 반대로 양측의 대립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당주변에서는 보고있다.이날 총재단회의에서 벌인 이 총재와 동교동계 권노갑 부총재의 설전은 이같은 관측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이 총재는 회의에서 『대의원 합숙과 돈봉투사건을 밖에 알리고 TV를 통해 매일 보도되도록 한 게 누구냐』며 권 부총재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묻고 나섰다.측근들을 통해서는 그의 공개적인 사과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에 맞서 권 부총재는 『내가 폭력을 조장했다고 하는 모양인데 사실이 그렇다면 정치도,의원직도 떠날 각오가 돼 있다』고 흥분했다.「돈봉투사건이 이번 사태의 원인인데도 마치 폭력사태가 본질인 양 이 총재가 호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 있다.권 부총재는 나아가 『금품수수와 호텔투숙·향응제공·폭력사태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관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계를 떠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서로가 정계은퇴까지 들먹이며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양측간에 누적된 앙금은 언제라도 내분을 재연시킬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동교동계가 장 의원 후보사퇴요구를 집어넣은 것도 「백기투항」이 아니라 이 총재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해석이 더욱 유력하다.『끝내 장의원을 고집하겠다면 그를 내세워 선거를 치르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라』는 최후통첩의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지방선거이후 양측의 결별가능성에 여전히 무게를 두고 있다.
  • 「5·18」광주는 경건/민주항쟁 15돌 맞는 「빛고을」표정

    ◎대통령조화속 현직시장 추모사/광주시청·전남도청에 조기 게양 【광주=최치봉 기자】 5·18 광주 민주화운동 15주기를 맞은 18일 광주에서는 망월동 묘역의 희생자 추모식과 금남로의 기념식 등 각종 추모 및 기념행사가 경건한 분위기에서 열렸다. 상오 10시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는 강운태 광주시장을 비롯,조규하 전남지사,김근태 민주당 부총재,조비오 5·18 행사위원장 등 각계 인사와 유족,시민 등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2시간여 동안 열렸다. 추모식은 대회사 및 추모사,5월 시민상 시상,결의문 채택,헌화,분향의 순으로 계속됐다.김영삼 대통령과 김용태 내무장관 등 각계 인사 10여명은 조화를 보내 추모의 뜻을 표했다. 조비오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5·18 책임자들의 반인륜적이고 반민주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와 관계없이 진상규명이 꼭 이뤄져야 역사가 바로 설 수 있다』며 『이들에 대한 기소촉구 운동을 꾸준히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5월 시민상은 5월 정신의 계승에 힘써온 안성례 광주시 의회 의원과 고 김남주시인이 공동 수상했다. 5·18 15주년 기념식 및 5월정신 계승 및 광주학살 책임자 기소촉구 국민대회는 하오 3시부터 전남도청앞 광장과 금남로에서 시민·학생·재야인사 등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잇따라 열렸다. 대회를 마친 일부 참석자들은 도청∼한미쇼핑 4거리∼광주역에 이르는 4㎞ 구간에서 「5월 책임자 기소촉구」를 요구하며 평화로이 행진했다. 광주시와 전남도는 이날 시기와 도기를 조기로 게양,영령들의 넋을 위로했다.이는 지난 93년 5·18 행사때 시민들의 요구에 의해 조기를 게양한 이후 자발적으로 게양하기는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다.
  • “위락용 오피스텔은 별장 취득세 중과 마땅”

    ◎대법「업무용 위장」 건축에 제동/남양주 소유주 4명에 패소판결 오피스텔로 허가받은 건물이라 하더라도 업무용으로 사용되지 않고 휴양이나 피서와 같은 위락용으로 사용됐다면 이는 별장으로 봐야 하며 취득세 중과세 대상이 된다는 새 판례가 나왔다. 대법원 특별2부(주심 박순서 대법관)는 9일 배모씨(서울 용산구 이촌동)등 오피스텔 소유주 4명이 남양주군수를 상대로 낸 취득세 부과처분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별장지역인 북한강변의 오피스텔이 건축허가상의 업무용도가 아닌 주말 별장용으로 사용돼온 점이 인정되므로 이는 취득세 중과세 부과요건에 해당한다』고 판시,별장이 아니라고 원고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 판결은 최근 북한강변등 대도시 근교 농촌지역의 경관좋은 곳을 골라 우후죽순처럼 급증하고 있는 별장용 건물들의 중과세를 피하려고 사업주가 오피스텔로 건축허가를 받는 사례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같은 별장지대 오피스텔들은 말만 사무용이지실제로는 도시지역 부유층의 별장으로 쓰이면서 현지주민들과 위화감을 조성하고 환경오염등의 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문에서 『별장인지 아닌지는 취득목적,위치,주거지와의 거리,건물용도 및 시설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히고 『통상 오피스텔은 교통이 편리하고 업무지원 시설이 갖춰진 도심에 세워지는데도 이 사건의 오피스텔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수영장이 설치돼 있고 전화 및 전기사용 실태를 분석한 결과 주말에만 사용된 사실 등이 인정되므로 별장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배씨등은 지난 90년 3월 경기도 남양주군 화도면 금남리 북한강변에 지은 오피스텔을 각각 구입한 뒤 일반 세율에 따라 취득세를 자진납부했으나 남양주군에서 『업무용이 아닌 별장이므로 중과세 대상』이라고 자진납세한 세금의 7·5배에 이르는 2천여만원씩의 세금을 따로 부과하자 소송을 냈다.
  • 건물철거중 파손/가스 40분간 누출/광주 금남로

    【광주=최치봉 기자】 6일 하오 10시40분쯤 광주시 동구 금남로 4가 55 장흥식당 건물 철거작업장에서 굴착기 기사 이성갑씨(30·광주시 남구 송암동)가 광주 02­7137호 굴착기로 작업하다 도시가스관을 파손해 40여분동안 가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 한강에 기름띠/뚝섬부근… 길이·폭1백m/인근 벽돌공장서 흘러나와

    28일 하오1시5분쯤 서울 천호대교와 영동교 사이 한강에서 석유류 기름띠가 발견돼 한강관리사업소가 긴급방제작업에 나서 하오 7시쯤 이를 완전 제거했다. 천호대교 광장동쪽 하수구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밝혀진 이 기름은 가로·세로 1백미터가량의 기름띠를 이룬채 천호대교 부근에서부터 영동대교방면까지 흘렀다. 한강관리사업소는 사고직후 청소선 3척,순찰선 1척과 방제요원을 동원해 기름이 번진 곳에 오일펜스를 치고 유화제와 흡착제를 뿌렸다. 한편 사고경위 조사에 나선 서울 동부경찰서는 이 기름이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벽돌공장 금남기업(대표 이정범·64)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밝혀냈다. 이 회사 대표 이씨는 경찰에서『벽돌제조기계의 엔진오일을 최근 바꾸었는데 폐기름이 실수로 하수구에 버려졌다』고 진술했다.
  • 공군기 2대 추락/교관·훈련생 4명 모두 사망

    【하동=강원식기자】 5일 상오11시5분쯤 경남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금오산 남쪽 중턱 해발 6백28m지점 KBS무인중계탑 부근에서 공군 5718부대 제3훈련비행단 소속 훈련용 전투기 T­59 호크기 2대가 비행훈련중 추락,탑승하고 있던 조종교관과 훈련생 등 4명이 모두 사망했다. 2대의 사고 비행기에는 손종구(29·공사35기)·김병각대위(29·공사36기) 등 교관 2명이 뒷좌석에,훈련생 정용진(25·학군20기)·김경모중위(24·사관후보생91기) 등 2명은 앞좌석에 각각 타고 있었다.
  • 무차별 징세(최두삼 귀국리포트:19)

    ◎농촌부과 세금·잡부금 2백69종/난집자·난탄파·난벌관의 「3난」이 유행어로 『이 가죽잠바는 한벌에 3백60위안(원·약3만6천원)인데 2백60위안씩에 처분 합니다.방금 부리나케 10개나 팔고보니 이제 겨우 3벌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어서들 사세요.후회를 말고요』 지난 5월5일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서시장에서는 한 옷장수가 목에 핏대를 올리며 소리치고 있었다.바로 그 옆에서는 서너명의 남녀가 똑같은 가죽잠바를 들고나와 『옳아요.우리들이 방금 2백60위안씩을 주고 샀어요』하며 틀림없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한 노인이 『저놈들은 모두 한통속이다.옷판을 벌인지 이제 10분 밖에 안됐고 아직 한벌도 못팔았는데 10벌이나 팔았다니 지독한 거짓말쟁이들이다』라고 중얼거렸다. 이때 바로 옆에 서있던 한 사나이가 호주머니에서 계산기를 꺼내 두드려보더니 영수증을 한장 내밀며 말했다.『저는 세무국에서 일보고 있습니다.방금 잠바 10벌을 2백60위안씩에 팔았다고 하셨는데,총판매액 2천6백위안에대한 5%의 세금 1백30위안을 내십시오』 그러자 당장 이 장사꾼은 『그게 아니다』며 변명을 하려했으나 주변에 모여있던 모든 사람이 『방금 10벌을 팔았다는 얘기를 분명히 들었다』고 증언하고 나서자 어쩔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세금을 내놓고야 말았다. 이 얘기는 흑룡강신문 94년 5월28일자에 『거짓말에 과세』란 제목으로 보도 됐었는데,중국농촌에서는 요즘 각종 세금남발로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예를 들었을 뿐이다. 중국세무원들이 한국의 인천이나 부천에서 처럼 세금을 받아 통째로 삼키는 버릇이 있다는 얘기는 듣지를 못했다.그러나 아직도 가난한 중국 농민들에게 어쩌면 그렇게도 많은 잡부금을 거두고 있는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중국농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3난」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이는 3차례에 걸친 난리를 의미하는게 아니다.모금을 위해 내는 돈을 제멋대로 정해 부과하는 「난집자」,무차별로 균등하게 돈을 거두는 「난탄파」,닥치는대로 벌금을 부과하는 「난벌관」등을 가리켜 3난이라 부르고 있었다. 중국 당국에서는 이같은 3난에 속하는 농촌의 잡부금 또는 잡세의 종류가 무려 93가지라고 밝히고 그중 각종 비용징수가 73가지,갖가지 명목의 모금이 11가지,기금정립 2가지,기타 7가지라고 설명했다. 다른 통계에 따르면 이같은 잡세의 종류가 무려 2백69가지라는 설도 있으니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한국농촌에서도 각종 잡부금을 모으면 그렇게 많아지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 어쨌든 지난 93년 여름 한때 중국농촌 곳곳에서 소요가 발생했었다.그 주요 원인은 이같은 3난이 배경에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됐었다.그래서 당국은 갖가지 대책을 내놓았다.우선 중앙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대책에 따라 농민부담 잡세 37개가 취소됐다.그 내용은 농촌 집터 사용비,농촌음료수 개선 모금,농촌변소 개선 모금,수력발전 건설기금,어선어항관리비,삼림자원 경신비,향촌의사 보조비,향진이하 방송망 보호비,TV중계방송 채널 점용비등을 들수 있다.이밖에 혼인등기비용과 고기배 검사비등 17개 항목은 금액을 조정했으며 알곡구입 판매계약공증과 신문구독등 14개항목은 강제 집행하지말고 주민들의 자유의사에 따라 선택할수 있도록 했다. 그런가하면 해외에서 부쳐온 우편송금도 현금으로 내주지않고 수개월 후에나 교환가능한 「백조」라고하는 일종의 차용증서로 내주고 있어서 불만을 품은 농민들이 우체국을 습격하거나 직원을 다치게하는 등의 소요가 무려 11개 성에서 발생했다고 일부 서방신문들이 보도하기도 했다.이 백조는 우체국 뿐아니라 정부 곡물수매대금이나 학교 교원들의 월급지불에까지 사용된 적이 있었는데 주요원인은 지방정부가 각종 건설사업에 무턱대고 돈을 쏟아넣다 보니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지방고위간부들은 먹고 마시고 도박하며 여자와 놀아나기등 이른바 중국인들의 4대 즐거움을 위해 공공비용을 물쓰듯 하기도 했다.그런가 하면 전국에서 빈곤하기로 이름난 하북성 령수현의 당서기는 모친 장례식때 각기관이나 개인들이 보내온 현금만 30여만위안(약3천만원)에 달했을 정도였다.그는 공무원들 3∼4개월 월급에 해당하는 1천위안미만의 부조금을 낸 사람들은 아예 접대도 하지 않았지만 돈을 많이 낸 사람들은 상등석에 앉혀놓기까지 했다가 결국 반부패 투쟁 때에 걸려 쫓겨나고 말았다.
  • 무악재/고개:하(서울 6백년 만상:61)

    ◎길마재·모래재·추모현으로도 불려/서울 서쪽관문… 이활의 난땐 관·반군격전지/중구사신 맞던 영은문자리에 「독립문」 우뚝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과 홍제동을 잇는 무악재는 왼편에 안산,오른쪽에 인왕산을 끼고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고개다. 지금은 여러차례에 걸친 확장공사로 고갯길이 35m로 넓혀지고 높이도 훨씬 낮아졌지만 예전에는 서울 서쪽 관문의 좁은 길목이었다.명나라 사신 동월은 『천길 이어진 그 기세가 어찌 천군만 누를 수 있으랴.서쪽을 바라보니 좁은 길이 있는데 말 한필 겨우 지나 갈 수 있다』고 당시의 고개를 묘사하고 있다. 서울 시민들에게는 무악재 또는 홍제동고개로 더 알려져 있지만 옛날에는 길마재·추모현·모래재등으로 다양하게 불렸다.길마재는 고개 왼편에 있는 안산의 한자표기에서도 알 수 있듯 산의 형상이 「길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또 모래재는 고개가 흙이 아닌 모래로 덮여 있어서이고 추모현은 영조가 명릉(숙종릉)의 역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이 고개에서 능을 바라보며 추모했다고해서 얻은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무악이라는 명칭은 조선조 태조 이성계가 한양천도를 위해 지금 경복궁·청와대 뒷산인 북악산과 인왕산등과 함께 도읍의 주산을 다투면서 안산을 무악산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또 실학자 이수광이 쓴 지봉류설에는 『아이를 업은 어머니의 모습을 한 부예암(북한산 인수봉)이 밖으로 뛰쳐 나온 형상이므로 이를 어미산 즉 모악』이라고 한데서 유래했다고 적고 있다. 재의 이름이 다양한 만큼이나 이 고개엔 조선왕조의 참담했던 수많은 역사들이 그대로 숨쉬고 있다. 인조 2년(1624)이괄의 난때는 관군과 반군이 맞선 격전지였다. 당시 광해군을 폐위하고 인조를 옹립하는데 앞장섰던 이괄은 중신들의 견제로 말미암아 평안병사로 쫓겨가 분을 삭인다.조정에서는 역모의 조짐이 있다고 해서 이괄의 아들을 볼모로 불러들였으며 이괄이 이에 반발,인조 2년 정예병력 1만2천여명을 이끌고 서울에 난입한 변란이 바로 이괄의 난이다.백성들이 인왕산과 남산 성벽을 따라 빼곡히 들어서 구경을 하는 가운데무악재에 진을 친 금남 정충신등이 이괄이 이끄는 반군과 싸워 대승을 거둔 전승지이면서 내환의 역사현장이기도 했다. 이 고개는 또 초입에 버티고 있던 모화관과 영은문이 말해주듯 중국사신들이 거드름을 피우고 드나들고 조선처녀들이 진상이라는 이름으로 울고 넘던 치욕스런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중국 사신들이 묶던 모화관은 오늘날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지만 독립문 바로 앞에 서있는 영은문을 떠 받치고 있던 두개의 커다란 석주는 오늘날까지 역사의 잔영으로 남아있다. 고종 32년(1895)민족의 수치였던 영은문이 헐린 자리에 자주독립을 상징하는 독립문이 건립되면서 무악재는 민족의 희망이 숨쉬는 고개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고개 밑으로 지하철 3호선이 통과하고 출퇴근길이면 서울의 보통고개들처럼 차량행렬이 홍수를 이루지만 재를 넘어 이어진 국도1호선은 통일로로 내달린다. 조상들이 중국의 5백년 속박에서 벗어나던날 이곳에 독립문을 세웠듯이 민족의 소망을 담은 통일문이 이 고갯마루를 시작으로 활짝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 94과학전/대통령상에 「머리뿔 가위벌의…」

    ◎학생부 홍성 홍남국교 명아람·박인실양 영예/교원부선 서울 원당국교 「치악산 장석…」 제40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상금 5백만원)은 학생부에서 「머리뿔가위벌의 생태 및 사과의 가루받이에 관한 탐구」를 출품한 충남 홍성홍남국교 6년 명아람(12) 박인실양(11)이,교원 및 일반부에선 「치악산의 페그머타이트 정제 및 그 이용에 관한 연구」를 출품한 서울 원당국교 김민균(39)김애애교사(29)가 각각 수상했다. 과기처가 13일 발표한 심사결과에 따르면 국무총리상(상금 3백만원)은 학생부에서 「까치의 지혜에 관한 우리들의 탐구」를 출품한 대구 동인국교 6년 윤영미(11)양이,교원 및 일반부에서는 「경기만 남부 조간대의 갑각류 서식과 퇴적 환경에 관한연구」를 출품한 경기도 수원 수일중 고근식(33)수원여고 김성곤교사(31)가 각각 차지했다. 이번 전국과학전람회에서는 또 특상 75점,우수상 1백12점,장려상 98점 등을 선정했다. 한편 입상작품 2백89점은 오는 14일부터 10월17일까지 34일간 대덕단지내 국립중앙과학관 특별전시장에서 전시되며 수상자들에 대한 시상식은 오는 10월18일에 거행된다. ◎학생부 대통령상 명아람·박인실양/“벌 생육환경 조성 힘들었지요“”/「사과 가루받이」와의 연관성 탐구/2년5개월간 끈질긴 추적 “결실 『머리뿔 가위벌이 농약에도 죽지 않고 자연계에서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것이 신기해 탐구를 시작했습니다.사육상자를 만들어 벌의 생태를 알아볼 때와 꽃을 놓아주면서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제40회 전국 과학전람회 학생부에서 대통령상의 영예를 안은 명아람양(충남 홍성군 홍남국교 6년)과 친구 박인실양은 자연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탐구에 매달리게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아람양의 아버지 명재근교사(39)의 지도로 29개월 동안 머리뿔가위벌을 추적,「머리뿔가위벌의 생태 및 사과의 가루받이에 관한 탐구」를 발표했다.이들은 사과의 가루받이를 전문적으로 해주는 머리뿔가위벌의 생태를 처음으로 자세하게 알아냈으며 특히 농약의 대량살포나 환경오염 등으로 감소된 과수의 수분율을 높이고 과실의 질을 높여 농가소득의 향상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평가됐다. 의사를 지망한다는 아람양과 과학교사를 희망하는 인실양은 『상금으로 학교 교실에 과학문고를 만들어 친구들과 같이 과학에 대한 흥미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교원부 대통령상 김민균·김애영씨/“「기초과학 개척」에 힘 됐으면…/유리원료 전량수입 안타까워 시작/고품위장석 정제기술 개발 “개가” 82년부터 13년간 끈질기게 과학전에 도전해온 서울 원당국교 김민균교사(39)가 동료 김애영교사(29)와 함께 올해 과학전 교원및 일반부에서 대통령상을 탔다.수상작은 「치악산 페그마타이트 정제 및 그 이용에 관한 연구」.일제부터 내려오는 「원주의 돌을 만지면 큰돈을 벌수 있다」는 속설을 추적해온 김민균교사는 2년전부터 국내에 페그마타이트가 풍부하지만 정제기술이 없어 유리,도자기및 타일의 원료인 장석을 1백% 수입하는 현실에 착안해 장석의 경제적인 정제기술을 개발,철성분이 0.06%이하인 고품위 장석을 얻는데 성공해 수상한것.페그마타이트를 잘게 부수어 건식으로 자력선별법을 3회 정도 반복함으로써 고품위의 장석을 얻었으며 이렇게 얻은 장석이 유약시험과 제품성형시험에서 우수한 것으로 확인됐다.이 연구는 「30만t 정도만 있으면 경제성이 있다」는 자원연구소의 의견을 들었는데 치악산 일대의 장석은 매장량이 1백50만t으로 한 개인이 기업화 할 예정이다.『상금의 일부를 학교 실험기자재 보강에 쓰는 한편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도록 지도하는 과학 교사상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뒤진 기초과학의 초석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과학전 수상자 명단 ▷국무총리상◁ ▲윤영미(물리·대구 동인국6년)▲고근식 김성곤(지구과학·경기 수원 수일중·수원여고 교사) ▷특상◁ ◇과기처 장관상▲공혜경 이주형(경북 사방국5년)▲권택환 이종희(경북 도량국6년)▲이정현 이효원(대구 경북사대부국6년)▲이대희(충북 청풍국6년)▲장영미(경북 해동국6년)▲박건택 김기환(부산 연천국5,6년)▲김정미 조정우(대구 이현국5년)▲백승현 김종휘(부산 연천국5,6년)▲권기상 김영봉(충북 충북과학고2년)▲이세중 이형복(대전 대전과학고2년)▲이지영(경북 장산국5년)▲김은미 오광진(충남 신안국6년)▲고지영(인천 가정국4년)▲전재완(충북 학산중3년)▲오주현 정영도(광주경양국6년)▲조지훈 김민욱(부산 성동중3년)▲김향정 최문정(인천 산곡여중3년)▲이미지 송지은(전북 풍남여중3년)▲장윤석 이동호(광주 농성국6년)▲강양제 강희준(부산 하남국6년)▲황민 최원(광주 광주중앙국6년)▲이효은 정은주(전남 진원동국6년)▲박지용 김지홍(전남 산이서국금호분교5년)▲김현우 엄태호(광주 계림국6년)▲임영민 박예인(충남 금남국성덕분교5년)▲김한나 손윤희(인천 만석국6년)▲박명자 한명화(경북삼근국소광분교6년)▲강해중 김진국(부산 여고국6년)▲김연호 배성철(광주 문성고3,1년)▲하길종 우상규(대구 경동국6년)▲박진우 유진혁(인천 용일국6년)▲김상명 백정수(경기 호성국6년)▲김도남 이율(광주 두암국6년)▲김상우 이훈(서울 금북국6,5년) ◇교육부 장관상▲양보영(전남 죽곡중교사)▲김용호(서울 계성여고교사)▲김기대 김정희(경기 안양서국교사)▲윤태영 이경호(인천 인천기계공고교사)▲백낙권 박황순(서울 오주중교사)▲정태주 김영호(부산 창신국교사)▲이근재(서울 고척고교사)▲박종일(전남 전남과학교육원 연구사)▲박재관(부산 문현여중교사)▲우낙현(대구 경북사대부고교사)▲이순녀 손영숙(경북경산중앙국교사)▲민경태 이규삼(대전 변동중교사)▲김순기 정성일(전남 삼호중앙국교사·금정국교사)▲오훈교 박선영(전남보성국교사)▲박명관 김동엽(전남 아산국 송방분교장·아산국교사)▲한창림(서울경기고교사)▲김창현(서울 가원중교사)▲홍삼선 김수남(경기 인창국교사·화접국교사)▲박양래 명두식(대전 탄방중교사)▲손충환 임온철(충북 충북과학고교사)▲김명해 이흥우(서울 신방학중교감·반포고교사)▲장난심(부산 서여고교사)▲백광석 공영식(경남 경남과학고교사)▲이창수 국태주(서울 북성국교사·영도국교사)▲변미량 나동숙(경기 비산국교사·백운국교사) ◇농림수산부 장관상▲차상운 정연주(서울 원당국6,5년)▲이하나 이보배(경북 흥무국5년)▲김성화 정종표(강원 사북중교사·사북고교사)▲김휘룡(경북 점촌북국교사)▲이상희 이승길(전북 정읍농공고교사·부안농공고교사)▲안봉주 김용화(인천 인천수산고교사)▲서상휘(대구 대구농림고교사)▲조명래 김연순(부산 서명국교감·백산국교감)▲이종수 민방식(충북 매곡국교사·황학국교사)▲정상영(충남 대천수산고교사) ◇상공자원부 장관상▲과학반(대전 삼성국교6년)▲박병국 강종구(부산 경남공고교사·부산직업학교교사)▲양재성 김구식(경남 구호국교사 ▲조재관 박영록(광주 광주기계공고교사)▲김춘례 정천숙(전남 황산동국교사·우수영국교사)▲최병숙(경북 영흥국교사)
  • 서울신문·스포츠서울 주최 음악향연/「서울이여 영원하라」 창작가곡제

    ◎서울정도600년주년 기념… 23일 예술의 전당 음악당서/곽신형·신영조 등 정상급 성악가 10명 출연/서울의 명물 소재 신작 20곡 선보여 서울 정도 6백주년을 기념하는 창작가곡제 「서울이여 영원하라」가 23일 하오 8시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펼쳐진다.서울신문과 스포츠서울이 주최하는 「서울이여 영원하라」는 서울의 명승고적을 노래로 남겨 서울을 영원히 기리자는 한국작곡가회(회장 최영섭)와 한국작사가협회(회장 엄원용)의 뜻이 실현된 가곡의 축제이다. 이 가곡제에서는 김동진 김규환 박찬석 이수인 등 20명의 작곡가와 곽금남 김삼환 박남권 장보광 등 20명의 시인이 만든 20곡의 「미래의 애창가곡」이 선보일 예정.또 「그리워」「그리운 금강산」「가고파」「청산에 살리라」「기다리는 마음」「고향의 노래」「님이 오시는지」「떠나가는 배」「산촌」「가을의 기도」 등 10곡의 애창가곡도 함께 불려진다. 음악회의 의미에 걸맞게 연주진도 화려해 곽신형 김향란 박미혜 김학남 장현주 김진원 신영조 임정근 김성길 김요한 등 정상급 성악가 10명이 대거 나설 예정.반주는 최선용이 지휘하는 서울아트오케스트라가 맡는다. 이날 발표될 신작은 모두 서울의 명물을 소재로 한 것.이 음악회의 주제는 엄원용시 최영섭곡의 「서울이여 영원하라」에서 따왔다. 이밖의 신작은 이옥녀시 김동진곡 「서소문 길섶 울타리」,권택희시 김규환곡 「남대문」,김삼환시 조념곡 「노을이 지는 섬」,이영린시 박찬석곡 「보신각 종소리」,장보광시 김국진곡 「광화문을 보면」,김영희시 신귀복곡 「덕수궁」,김기배시 정윤상곡 「대학로」,이한숙시 송재철곡 「남산」,지성해시 안정준곡 「아 광화문」,우회봉시 이수인곡 「관악산」,신태호시 윤상렬곡 「한강」,임승천시 김영식곡 「서울의 아침」,박영원시 정영택곡 「한강타령」,김추인시 김정양곡 「가자 한강으로」,박영만시 고영필곡 「망원정」,정연자시 박격규곡 「그대」,곽국남시 홍권옥곡 「북한산」,전낙표시 윤종혁곡 「파고다 공원에서」,박남권시 정덕기곡 「한강」이다. 한국작곡가협회와 함께 이번 가곡제를 주관하는 한국작사가협회는 마땅한 가사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작곡가들에게 좋은 가사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90년 24명의 문인이 모여 만들었다.현재는 윤종혁 홍윤기 양중해 정대구 등 62명의 시인 소설가 수필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김동진 최영섭 장일남 김희조 등 작곡가들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가곡제 문의는 721­5965.
  • 4중충돌로 6명 사망

    【천안=이천렬기자】 17일 하오 6시30분쯤 충남 천안군 성거읍 정촌리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서울기점 75.5㎞)에서 서울로 가던 서울 1프7564호 엑셀승용차 (운전자 한승희·33세 수원시 장안구 지동 113의 13)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충북 1부6180호 프라이드 승용차(운전자 미상)와 대전 5아3076호 금남여객 소속 고속버스(운전사 김대성·31)를 잇따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엑셀 승용차 운전자 한씨와 함께 타고있던 이범주(40·서울 성북구 정릉동 110의 40),전옥자씨(34·여)등 6명이 숨지고 버스승객 김충옹씨(29·평택군 지탄면 아두2리)와 1살된 김씨의 딸 채윤양등 2명이 크게 다쳐 천안 단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버스승객,검문경찰 살해/청주/만취 40대,연행되자 목졸라

    【청주=김동진기자】 술취한 버스승객이 검문에 불만,파출소로 연행한 경찰관의 목을 졸라 병원에 옮겼으나 숨졌다. 27일 하오3시30분쯤 충북 청주시 청주경찰서 강서검문소에 근무하던 박원규경장(44·청주시 모충동 518의3)은 청주에서 천안으로 가던 금남여객 충남5아 2085호 운전사 노기훈씨(45)로부터 술취한 승객 김상덕씨(44·충남 천안시 성정동124의6)가 난동을 부려 운전을 할 수 없다며 검문소앞에서 정차한 버스에서 김씨를 검문,하차시켰다. 이어 박경장은 김씨를 파출소안으로 데리고 온 뒤 소파에 눕게 하고 『조용히 하라』고 하자 갑자기 달려들어 두손으로 목을 졸랐다는 것이다. 박경장이 김씨로부터 목을 졸리자 함께 근무하던 정지호경장(32)이 달려들어 김씨를 떼어놓았으나 박경장은 이미 얼굴이 창백해지고 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어 곧바로 충북대부속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조치를 받았으나 1시간반 뒤인 5시쯤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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