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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지숙의 미술산책] 지역미술의 재발견

    아시아 미술계의 9월은 비엔날레 시즌이다. 광주-부산-서울로 이어지는 한국 비엔날레 달력은, 중국 광저우-난징-상하이의 비엔날레 및 트리엔날레로 연결되며, 싱가포르 비엔날레와 요코하마 트리엔날레까지 넘어간다. 국가와 도시 그리고 예술과 관광이 서로 두껍게 결합되어 있는 비엔날레 ‘특수’가 굳이 촉각을 세우지 않아도 여러 경로로 감지되는 시즌인 것이다. 그렇지만 어쩐지 비엔날레에 대한 환호도, 또 그에 대한 비판도, 그 어떤 쪽이든 비엔날레에 대한 기대나 실망도 올해는 예전 같지 않은 느낌이다. 흔히 하는 말대로 미술시장이 아시아에서 전례 없이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엔날레에 대한 관심이 약해진 탓인지, 아니면 비엔날레 특유의 관료화와 비대화 속에서 자기 쇄신에 실패한 비엔날레의 예상보다 빠른 노화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다. 중립적으로 말한다면, 아마도 비엔날레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나 허황된 열망이 잦아들고, 이제 비엔날레도 스케일은 클지 몰라도 그 핵심인 즉슨 그저 그런 현대미술의 한 행사나 활동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 비엔날레 핫시즌에 내가 다녀온 비엔날레는 공주에서 열리고 있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11월11일까지)이다. 흐르는 금강 옆, 연미산 자연미술공원 주위에 흩어져 있는 국내외 작가들의 ‘자연미술’ 작품들은 한 달여간 워크숍과 레지던스의 협업 작업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들이라고 한다. 연미산 곰굴 주변에 올해 새로 들어선 전시작들은 2006년도 2회 비엔날레 때 설치된 작품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스러지고 생성한다는 자연미술의 사이클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연미산 맞은편에 산 속으로 난 길처럼 연결된 넓은 데크는 전시를 위해 모인 공동체의 놀이와 작업, 대화와 퍼포먼스를 위한 ‘난장’이 돼 주었고,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과정에 대한 기록과 새로운 제안이 특별전 형태로 전시되고 있는 ‘갤러리 고’는 오래된 방직공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정겨운 ‘사랑방’ 구실을 했다. 반 나절의 짧은 방문이었지만, 한국 미술계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나름의 명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이 비엔날레는 공주를 중심으로 80년대부터 활동해온 작가그룹 ‘야투’가 90년 이후 지속적으로 기획해온 자연미술제의 연장으로, 굳이 비엔날레라는 이름을 달지 않아도 될 만큼 자기 성격과 입지를 뚜렷이 확보해 왔다. 자기 지역작가가 비엔날레에 몇 명 초대되는가가 지역 언론의 주요 관심사인 한국의 다른 국제비엔날레와 달리, 이 비엔날레는 지역미술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자기 존중감과 끈기 있는 성의, 그리고 제대로 된 열정에 기초하여 현대미술의 개방과 환대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어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작품의 크기나 초대작가의 숫자, 프로그램의 양을 보건대, 예산은 앞에 거론한 대표적인 한국 비엔날레의 몇 십 분의 일도 안 될 것으로 추측된다. 확실히, 공주시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서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아르코미술관 관장
  • [주말탐방] 대상중앙연구소 醬 감별사들

    [주말탐방] 대상중앙연구소 醬 감별사들

    “황태구이 맛이 조금 강하지 않을까요? 일반인들은 좀 맵다고 느낄 것 같은데….” “시제품에는 청양초가 그리 많이 들어가지 않았는데요…아마도 효소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면 효소량을 조절한 시제품으로 다시 테스트를 거치죠.” 경기도 이천시 표교리 대상중앙연구소 3층 식품개발실.5명의 연구원과 요리사가 머리를 맞댄 채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며 회의를 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 과제는 최근 개발하고 있는 황태구이용 고추장의 상품화. 시제품으로 만든 고추장을 양념으로 한 황태구이를 직접 맛보고 있다. 고추장의 맛을 살리기 위해 파나 버섯 등 야채는 거의 넣지 않았다. 매운맛 탓에 이들의 콧잔등에는 어느새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그러나 맛의 ‘찰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분주히 음식과 고추장, 그리고 입을 헹구기 위한 물에 연신 손이 간다. 이들은 혀 끝으로 우리 먹거리의 핵심인 고추장과 된장, 그리고 간장을 만드는 ‘장(醬) 감별사’들이다. ●9명의 연구원들 50여가지 장(醬) 만들어 인체의 감각 중에서 가장 민감한 곳은 미각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은 단연 미각이다.‘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옛말은 허투루 나온 게 아니다. 내륙과 해양을 끼고 있는 한반도의 특성상 산해진미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우리 음식을 대표하는 특성은 된장과 고추장, 간장 등 발효 조미료를 쓴다는 점이다. 대상중앙연구소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식품연구소 중 하나이다. 이곳의 식품연구실 식품2팀 9명의 연구원들은 1년 365일동안 ‘맛있는 장’이라는 목표에 매달리는 맛 전도사다. 이곳에서 만드는 장은 고추장 12종류와 된장 7종류, 그리고 간장 11종류 등 모두 50여가지다. 시중에 나오는 장들은 가장 맛있으면서도 빛깔이 좋고 보관도 오래 할 수 있는 제품이다. 식품연구실 김중필 식품2팀 수석연구원(팀장)은 “5,6년 전만 해도 일일이 발품을 팔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명하다고 하는 30여가지의 온갖 장을 찾아 맛보고 성분분석을 통해 장점만 뽑아내곤 했다.”면서 “장에 들어가는 볏짚 안의 발효균을 채취하기 위해 수확이 끝난 가을철 전국의 논을 순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이 가장 맛 좋은 장을 만들 때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 등 4대 미각(味覺)을 다 사용한다. 그러나 음식을 먹고자 하는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감칠맛과 함께 곡물이 발효했을 때 나오는 구수한 맛인 ‘고꾸미’ 등 6가지 미각으로 맛을 구분한다. 그렇다면 가장 맛있는 장맛은 무엇일까. 장 전문가들은 ‘정답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미각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 감각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자신들의 입이 ‘절대적’이다. 식품연구실 정경옥 연구원은 “누구나 ‘어머니 손맛’을 가장 맛있다고 혀 끝으로 느끼기 때문에 맛에는 정답이 없다.”면서 “다만 여섯가지 맛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 느끼하지 않으면서도 매운맛과 구수한 맛, 짠맛 등 장들의 본연의 맛을 풍부하게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서구화 따라 짠맛서 단맛으로 이동 하나의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고추장과 된장은 1년, 간장은 무려 2년가량이다.2개월 정도인 고추장과 된장, 그리고 6개월 정도인 간장의 숙성 기간을 네번 정도 거쳐야 한다. 그 와중에 연구원들은 하루에 수백번씩 맛을 본다. 다른 회사는 물론 일본 등 외국 제품도 비교 대상이다. 성분 분석을 통해 가장 좋은 맛을 찾더라도 곰팡이·세균의 함량과 색깔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일반 소비자들의 입맛이다. 전문가들이 아무리 좋은 맛을 찾아내더라도 대중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소비자 설문·시장 조사를 거친다. 김중필 팀장은 “90년대만 하더라도 장맛의 중심은 짠맛이었지만 이젠 단맛 쪽으로 입맛이 이동하고 있다.”면서 “서구 음식이 대거 들어오면서 깔끔한 맛이 각광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화될 수 있는 우리 맛은 고추장 그러나 우리 장은 이미 ‘세계화’, 정확히 말하면 ‘일본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 시중의 된장과 간장은 대부분 일본식이다. 청국장의 퀴퀴한 냄새의 근원은 바실러스속 균. 세균 냄새를 대중들이 외면하면서 달짝지근한 일본식 된장이 주류로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장 전문가들은 된장과 간장 대신 고추장이 세계화될 수 있는 우리의 맛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본식 간장과 된장은 곰팡이를 쓰지 않고 분해된 아미노산과 당 등을 통해 특유의 맛을 낸다. 때문에 단맛은 강할지 몰라도 발효음식 특유의 맛과 향은 지니지 못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본 업체들이 고추장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대량 생산은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구수하면서도 단맛이 나는 고추장이 국제적인 ‘소스’로 자리잡을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특히 외국인들 역시 멕시코식 타바스코 소스나 중국의 산초 등 매운 소스의 입맛에 길들여져 있어 고추장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여기에 처음에만 입에 불이 나는 것같이 매운 외국 소스와 달리 고추장은 매운맛이 은은하게 올라온다는 차별성도 장점이다. 김중필 팀장은 “비행기 기내식에 우리 고추장이 들어가는 것 역시 고추장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의 결실”이라면서 “특히 비빔밥 등 경쟁력 있는 우리 음식과 함께 진출한다면 세계적인 소스로 부상하는 데 더욱 용이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글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김정일 건강이상 파장]개성공단등 한국인 1000여명… 유사시 ‘무방비’

    [김정일 건강이상 파장]개성공단등 한국인 1000여명… 유사시 ‘무방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수술을 받고 의식을 잃었을 당시 평양과 개성을 비롯한 북한 지역에 모두 1000명이 넘는 우리 국민이 체류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김 위원장의 ‘유고’나 북한 권력체제의 급변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국민 보호에 등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12일 통일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뇌수술을 받은 직후로 추정되는 지난달 18일 북한 지역에는 개성공단 853명, 금강산 114명 등 모두 1011명이 체류하고 있었다. 평양에도 교류협력 목적으로 방북한 14명이 일시체류했다. 이때부터 12일까지 북한지역에는 매일 1000∼2000여명이 체류했다. 문제는 ‘이상동향이 없다.’고 파악될 때까지 관광이나 인도적 지원 등을 위해 매일 수백명씩 간단한 방북교육만 받고 아무런 통제없이 북한 지역을 방문했다는 사실이다. 정보라인을 통해 급박하게 김 위원장의 병세와 북한 정국의 변화 여부를 점검하던 와중에도 매일 평균 1000명 넘는 국민들이 북한 지역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는 얘기다. 남북간 합의로 적법한 왕래자들에 대한 신변보장이 약속돼 있다고는 하지만 급변사태에서 이 합의가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시급히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면 북한 정세의 급변시 북한 내 1000명 이상 되는 국민들의 보호는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 ●2005년 논의 중단… 실효성도 의문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대처 방안은 ‘충무3300’ 등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가 마련돼 있지만 대부분 대량탈북사태 등의 대책을 담고 있고, 북한내 우리 국민에 관한 사항은 ‘개념계획 5029’에 들어 있다. 북한내 한국인 인질사태 등이 발생할 경우의 ‘액션플랜’이 그것. 하지만 어차피 사태발생 이후의 조치인 데다 그나마 2005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관련 논의를 중단시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 ‘무사귀환´ 초점 대비책 정비 이에 따라 정부는 통일부를 중심으로 유관 기관들과 함께 북한의 급변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새롭게 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우리 국민 1000여명이 상시적으로 북한 지역에 체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무사 귀환에 초점을 맞춰 대비책을 정비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남북교류가 활발해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 포착 시기’라고 보고, 북한 관련 정보분석의 ‘순도’를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이 평양과 서울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면 유사시 현지 체류 국민들을 위한 영사기능을 할 수 있지만 북측이 응하지 않고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대통령과의 대화 - 분야별 내용] “너무 서두른 정부… 국민에 실망감 줬다” 소회

    [대통령과의 대화 - 분야별 내용] “너무 서두른 정부… 국민에 실망감 줬다” 소회

    ■ 모두발언 반갑습니다. 온가족이 함께 모여 오순도순 밀린 얘기를 나누며 가족들의 소중함을 느낄 추석이 며칠 안 남았습니다. 이번에는 추석 연휴가 매우 짧고 경기도 안 좋아 고향에 못 가는 분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에 계시든간에 이번 추석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시장에는 장사가 안 된다는 하소연이 많습니다. 일자리를 못 구한 젊은이, 명절이면 더 부담을 느끼고, 어쩔 수 없이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가슴 아픕니다. 경제 살리라고 대통령으로 뽑아 줬는데 형편이 언제 나아질지 모르겠다는 한숨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여러가지로 어렵지만 우리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늘 어려움을 기회로 만들어온 역사가 있습니다. 오늘밤 국민 여러분과 진솔한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 6개월 평가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뒤 6개월 동안 펼쳐온 국정에 대해 스스로 후한 점수를 주지는 않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6개월은 제 자신과 우리 정부가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만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정부가 열심히 하겠다고 해서 너무 서둘렀던 감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국민을 이해하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나 싶다.”고 털어 놓았다. 또 “(저에 대한)기대가 컸고, 경제를 살리라고 뽑았더니 (기대를 충족하지 못해) 실망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자화자찬 평가가 많아 민심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에는 “(지난 6개월에 대한)국민들의 평가와 제 자신의 평가는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경제선방론’에 대해서는 “순조롭게 잘 적응했다고는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지금은 국제환경과 국내 여건에 대해 조직적·시스템적으로 잘 대응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면서 “적극 지지해 주신 국민의 뜻, 약속을 임기 중에 어떻게 해서라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원인을 악화된 국제경제상황으로 돌리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이 대통령은 “정권 교체 이후 뜻하지 않았던 쇠고기 파동, 국제경제 악화 등 우리뿐 아니라 세계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지지율이 10% 초반까지 하락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국제경제 환경이 전례없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경제 부동산 ‘값 안정+복지’ 차원 접근 “정책 대부분 中企 위주” 반박도 최근 어려운 경제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이날 ‘대통령과의 대화’에서는 경제 분야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이 쏟아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우선 경제 위기설에 대해 “IMF와 같은 위기를 맞이해서 경제가 파탄되는 이런 일은 결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대통령은 스스로 위기를 언급한 것에 대해 “공직자들에게 위기감·긴장감을 주겠다는 뜻이었다.”면서 “실제 경제 파탄, 이런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는 공급을 통한 가격 안정과 복지 차원에서의 주택 정책 접근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필요한 곳에 짓는 주택 정책이 필요하다. 도심 재개발·재건축이 신도시보다 효과적”이라면서 “공급으로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고 경기 부양도 되는 두가지 목적을 두고 정책을 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주택을 복지라는 측면에서 공급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무주택자·신혼부부에게는 임기 내 주택을 가질 기회가 분명히 있다.”고 주장했다. 새 정부의 정책이 대기업 위주로 흐르고 있다는 이른바 ‘대기업 프렌들리’ 논란에 대해서는 “대기업을 위한 정책은 사실상 없다. 대기업은 다 독자적으로 하고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규제를 없애는 것이다.”면서 “정부 정책 대부분은 중소기업 정책”이라고 반박했다. 농촌 문제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농촌을 바꾸려고 한다. 농수산식품부가 계획을 세워서 희망을 갖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대통령은 “딸기 농사를 짓는 사람이 딸기 주스도 만들어야 한다. 농촌서 딸기 심는 사람들이 공장도 세우면 사람들이 모이게 돼 있다.”고 설명한 뒤 “문화·교육·주택이 있어야 하는데 흩어진 주택을 한 곳에 모아 시골도 뉴타운처럼 한 곳에 모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 일용직 경험을 언급하면서 “비정규직의 애환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해결 방법으로는 “기업이 생산성을 향상해서라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꿔 주는 아량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뒤 “기본적으로 경제가 좋아져야 한다. 정부는 경제가 좋아지게 하는데 전력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쓰게 될 때 임금 차이(를 해소하거)나 세제상으로 기업에 혜택을 주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옮기더라도 기업에는 손해가 되지 않도록 정부가 지원을 해서라도 (비정규직) 비율을 낮추는 정책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만수 장관에 대한 시장의 불신 문제에 대해 “경제는 강만수 장관 혼자서 책임지고 한다기보다는 총리도 경제와 외교를 경험했고 저도 국내외 실물경제를 많이 해서 경제는 팀이 잘해 나가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정치·외교 “독도 분규화 차단… 차분히 대응”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 문제에 대해 “일본에 말려들지 않으면서 차분하게 강력한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 관계에 대해서는 “대북 인도적 지원은 하겠으나 북한측도 이산가족이나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 해결 등 대안이 있어야 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독도는 국제법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땅”이라며 “일본은 국제분규를 만들려는 것이 목적이고 그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차근차근 세계적으로 힘을 써서 바꿔 나가고 있다.”며 “일본 외무성 인터넷에는 2004년부터 이미 독도는 자기 고유 땅이라고 돼 있고 우리 정부가 가만히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정부는 일본이 뭐라고 했다고 해서 뛰어나와 하는 정도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 영토인, 우리 땅이란 걸 차분히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 등에 해야겠다.”며 “외교가 강한 힘을 가져야만 지킬 수 있다는 뜻에서 앞으로 일본에 항의는 하지만 조용한, 강력한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 들어 단절된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이 대통령은 “70대 이상 이산가족이 9만명인데 1년에 1000명씩 상봉해도 90년 걸린다. 이렇게 해선 해결이 안된다.”며 “우리가 (북한에)인도적 지원을 해주겠다. 북한 동포가 어려운데 우리는 준비됐는데 여러분들도 한국에 인도적 지원에 대한 대안이 있어야 안 되겠나. 그러면서 (우린)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권이 바뀐 뒤 처음 만남은 안면을 꺼리는 조정기간이라 할 수 있는데 올해 부지런히 대화하면 과거처럼 300∼400명 상봉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을 하려 한다.”며 “남북경색이 돼, 또 금강산 사건 이후 더 경색돼 죄송하지만 열심히 해서 70세 넘는 이산가족에 대해선 자유왕래를 최우선 요구 사항으로 해서 남북대화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불교 “종교편향 딛고 국민통합에 역점” 이명박 대통령은 9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종교에 대해 균형 있게) 보지 않은 것은 제 불찰”이라며 종교편향 논란에 대해 국무회의에 이어 다시한번 유감 표명을 했다. 이 대통령은 국회의장단과의 만찬 당시 문희상 부의장과의 대화를 거론했다. 이 대통령은 “문 부의장이 (불교문제와 관련해) 나에게 참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줬다.”면서 “불교 문제는 확고하게 방침을 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강윤구 사회수석이 청와대 불자회장인데 종정 스님을 만나 말씀을 들었다.”고 소개한 뒤 “종정 법전 스님께서 국민통합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면서 국민이 하나되는 통합에 가장 역점을 두었으면 한다고 했다. 또 불교를 포함해 국민 모두가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대통령은 “국민의 통합을 위해 불교도 물론이지만 종교·사회 등의 통합을 폭넓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사회 “불법·폭력 엄단” 법치에 중점 사회분야에서는 촛불집회의 원인이 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촛불집회에 대한 질문이 줄을 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앞으로 법을 어기거나 폭력적인 것, 불법적인 것은 법에 의해 강력히 처리될 것”이라며 법치확립에 대한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촛불집회 때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 시민들은 물러가고 나중에 남은 몇 분들은 불법·폭력적으로 나갔다.”고 밝혔다. 촛불시위가 정부의 협상이 잘못돼 시작됐는데 관용은 없고 처벌만 있다는 지적에는 “중립적 입장을 떠나 보복적 차원에서 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상상도 못하며 그런 공권력을 용납하지 못한다.”고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등에 대한 보복수사 논란을 일축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일을 당한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할지 모르나 국민 대다수는 대통령이 살았느냐, 죽었느냐 불법을 해도 가만두느냐고 한다.”면서 “그것이 여론”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 파동 이후 미국산 쇠고기를 먹기가 꺼려진다는 패널의 지적에 “시간이 지나면 국민이 알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장 구조에 맡기고 질 좋고 값싼 쪽으로 선택되지 않겠느냐.”고 답변했다. 국민과의 소통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질문에는 “쇠고기 파동 이후 제 자신이 적극적으로 국민의 소리를 듣고 있다.”면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진정한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교육정책에 관련해서는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게 평소 생각”이라면서 “중앙 정부의 예산을 10% 줄이는 작업을 내년에 한다.”고 밝혔다. 이어 “(남는) 예산을 갖고 대학생 장학금을 더 늘리는 작업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미래비전 ‘저탄소 녹색성장’ 당위성 강조 국가비전에 대한 질문은 이명박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시한 ‘저탄소 녹색성장’에 모아졌다. 이 대통령은 “녹생성장 시대는 열어도 되고 안 되고가 아니라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는 기후변화라는 대전제가 있다.2050년까지 모든 국가가 탄소를 얼마나 줄여야 한다는 강제규정이 있다.”며 “(규정이)지켜지지 않으면 우리 상품이 해외로 나갈 수 없다.”고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는 또 “현대차나 기아차나 GM대우가 자동차를 만드는데 현대가 엔진을 만들면서, 탄소를 배출하면 앞으로 10년,20년 수출을 못한다.”며 “우리나라도 거기에 참여하지 않으면 종속된다.”고 역설했다. 이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제시한 만큼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이 대통령은 “녹색기술 시대는 소득 분배도 균등해지고 특히 일자리는 정보화 시대보다 세배가 늘어난다. 그래서 일본, 영국, 미국, 호주까지 선두에 갔기 때문에 지금 후발이 되면 21세기에 발을 못붙이는 이류가 된다.”고 강조했다.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치적 접근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현재 기초단위 행정구역은 100년 전 갑오경장 때 개혁해서 만든 것이다.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옛날처럼 냇가나 강을 따라 만든 단위로 행정구역을 삼는 것은 전혀 맞지 않다.”면서 “경제권·생활권·행정서비스 관점에서 보더라도 지금쯤은 행정개편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개편의 필요성을 밝혔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국회의 안을 갖고 그대로 좋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정치적으로 접근하면 해결할 수 없다.” 말했다. 이어 그는 “‘내 지역구, 선거 관할이 어디 갔느냐.’고 물어 보면 여야 간 충돌이 생긴다.”며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 맞게 100년 만에 개편한다면 전문가가 참여해 개편할 필요가 있다. 또 그럴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시청자 반응 “장밋빛 전망 답변 일관” 실망 ‘준비된 질문과 모범 답안?’ 9일 오후 10시부터 5개 방송사에서 100분간 생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는 국민과의 속시원한 대화가 되지 못했다. 이 프로그램은 2만 8000여건이 넘는 질문이 접수될 정도로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방송이 끝난 뒤 시청자들은 대부분 “미리 준비된 질문과 모범 답변이 이어졌다.”는 반응이었다. 한 네티즌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질문에 대통령은 포괄적인 대책과 장밋빛 전망을 읊는 답변으로 일관했다.”며 실망감을 표시했다. 다른 네티즌은 “촛불집회 참가자라는 여대생에 대해 ‘주동자는 아니죠?’라고 답한 대통령의 태도는 부적절했다.”고 꼬집기도 했다.“박정희 시대나 히틀러 시절도 아닌데…. 과거의 관제대화가 부활한 것 같다.”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다. 한편 이날 방송은 지상파 방송사인 KBS,MBC,OBS와 케이블 보도채널인 YTN,MBN 등 5개 방송사에서 동시 생중계되면서 ‘전파 낭비’라는 여론도 거셌다. 같은 시각 드라마 ‘식객’의 최종회를 내보낸 SBS도 당초 ‘대통령과의 대화’를 중계하기로 했으나 8일 오후 갑작스럽게 편성을 변경했다. 대통령과의 대화’는 당초 주관사인 KBS에서만 중계하기로 돼 있었으나 다른 방송사들이 뒤늦게 요청하면서 중계가 이뤄졌다. 이에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비판 논평을 냈다. 민언련의 김언경 협동사무처장은 “시청자 입장에서는 전파 낭비, 방송사 입장에서는 정권 눈치보기나 아부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주관사에서만 방송해도 충분히 접근성이 높은 황금시간대인데 시청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정권홍보성 방송을 내보내는 것은 성숙한 태도가 아니다.”며 방송사간의 합의와 자정 노력을 촉구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北 오늘 9·9절] ‘北 정권60돌’ 최대규모로… 주민은 ‘원조’ 연명

    [北 오늘 9·9절] ‘北 정권60돌’ 최대규모로… 주민은 ‘원조’ 연명

    한반도 남쪽에 대한민국이 세워진 날(1948년 8월15일)로부터 26일만인 같은 해 9월9일 북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수상에 ‘김일성 장군’을 옹립했다. 그로부터 60년, 한 차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남과 북은 체제대치 상황을 지속하면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북한은 5대 국경절 가운데 하나인 ‘9·9절’ 60주년을 맞아 경축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기념 금·은화를 발행하고, 평양 청년거리·강안도로 등의 도시미관 개선공사도 끝냈다. 올해 새롭게 창작한 집단체조 ‘번영하라 조국이여’ 등 각종 문화축전도 성대하게 진행되고 있다. 역대 최대규모의 군사퍼레이드 준비상황도 포착됐다. ●계획경제에서 구호경제로 북한정권 60년사는 철저히 대한민국과의 체제경쟁으로 점철돼 있다.‘적화통일’은 1990년대 초까지 북한이 내세운 최고의 가치였다. 하지만 정치적 구호의 톤이 높을수록 민중의 삶은 피폐해져 왔다. 북한 주민 수백만명이 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처참한 지경으로 굶어 죽었고, 지금도 북한 주민의 3분의2가 두 끼 식사로 하루를 버틴다. 물론 북한 정권이 그동안 경제를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1954년 전후복구 3개년 계획,57년 5개년 계획,61년 7개년 계획,71년 인민경제 6개년 계획,78년 제2차 7개년 계획,87년 제3차 7개년 계획 등으로 ‘계획경제’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북한 정권은 93년 공식적으로 계획경제의 실패를 자인했다. 그리고 95년 이후 국제사회의 원조 없이는 주민들의 식생활을 책임질 수 없는 ‘구호경제’ 체제로 접어들었다. 실제 북한은 올해도 곡물 최소 소요량 520만t 가운데 380만t만 자체공급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족분 140만t은 남한이나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사회의 원조에 의존해야 한다는 얘기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6월 ‘대북 인도지원 10년 평가’ 토론회에서 “북한 경제는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경제로 바뀌었다.”며 “한국으로부터의 자원 유입이 없으면 도저히 지탱하지 못하는 체질로 변모했다.”고 진단했다. 금강산·개성관광이나 개성공단 등 남측과의 협력사업을 통해 들어오는 외화가 그나마 북한경제를 돌리는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경제 실패는 49년 이래 조선노동당 일당독재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정치지형과 무관치 않다. 경제보다 유일지배체제 유지가 지배계급의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수령주의에서 장군주의로 실제 북한은 60년대 말까지 지속적인 숙청을 통해 김일성 유일지배체제를 완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6·25 종전을 전후해 박헌영 등 남로당파를 숙청했고,56년에는 연안파와 소련파를 몰아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종파청산 선언’ 10년만인 67년 ‘갑산파’를 쳐냈고,69년에는 김일성 권위훼손을 이유로 군부 고위층마저 ‘군벌주의’로 숙청했다. 이후 북한에서는 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할 때까지 수령의 교시가 최고 가치인 ‘수령주의’가 뿌리를 내렸다. 20년간의 후계수업을 거쳐 김 주석 사망후 권좌에 오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엄청난 자연재해와 핵위기를 ‘선군(先軍)정치’로 정면돌파해 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김정일 장군만 믿고 따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장군주의’를 통치담론으로 내세우게 됐다. 실제 북한 정권에 ‘선군정치’와 ‘장군주의’는 안으로는 체제 안정과 결속, 경제 재건과 발전을 이룩하고 밖으로는 핵을 무기로 “미국과의 대결전을 승리로 이끌고 있는” ‘보검’으로 인식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 북한은 올해 초 2012년을 ‘강성대국의 문을 활짝 여는 해’로 만들겠다는 내용의 ‘비전 2012’를 발표했다.2012년은 김 주석 출생 100년, 김 위원장 출생 70년이 되는 해이다. 그 때까지 북핵 외교를 마무리짓고 북·미, 북·일 관계개선을 이루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미국, 일본과의 수교는 경제적 돌파구를 찾는 북한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목표점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미래는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20여년간 후계수업을 받은 김 위원장과는 달리 아직 김 위원장의 후계자는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김 위원장의 유고 등 급변이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北 오늘 9·9절] ‘핵검증 수위 낮추기’ 美와 줄다리기 가능성

    9일로 정권 수립 60주년을 맞는 북한이 향후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지 주목된다. 특히 ‘9·9절’을 전후로 두드러지고 있는 선군정치 강화 등 체제 공고화 움직임과,2012년을 목표로 설정한 강성대국 달성 추진은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로 대변되는 북핵문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1990년대 초반 불거진 북핵문제는 북·미간 갈등을 야기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기조를 형성했다. 핵개발을 통해 ‘자력갱생’을 외치던 북한은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미국과 대화에 나섰다.2003년 시작된 북핵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포기 여부를 둘러싼 북·미간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2006년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수차례 고비를 넘은 6자회담은 핵프로그램 신고와 핵시설 불능화를 넘어 폐기로 가려는 과정에서 또다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핵 신고와 테러지원국 해제가 검증문제로 삐걱하면서 북한이 불능화 조치를 중단하고 핵시설 복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테러지원국이라는 낙인을 자존심 문제로 여겨온 북측이 9·9절을 맞아 미국측을 더욱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전망도 불투명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간 기싸움이 이어지면서 당국간 대화가 끊기고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까지 발생,‘상생과 공영’이라는 대북정책이 무색한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 내부의 분위기 변화와 국제사회의 압력 등을 고려할 때 북한이 언제까지나 ‘벼랑 끝 전술’을 쓰면서 한·미와 대립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도움 없이는 자력갱생도, 개혁·개방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미 대선에서 오바마(민주당)가 당선되더라도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전향적 태도 없이는 관계 개선이 어렵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부고]

    김상기(공무원)성기(사업)만기(미래에셋생명 채널영업상무)씨 부친상 7일 청주 참사랑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43)286-9535 진덕용(전 우천농협 조합장)씨 상배 연희(근로복지공단 과장)씨 모친상 이호(강원도민일보 정치부 차장)씨 빙모상 7일 강원도 횡성 장례문화센터, 발인 9일 오전 8시 (033)344-4449 이순배(미국 거주)경배(대한유화공업 상임감사)인배(필리핀 거주)준배(〃)씨 모친상 6일 서울 역삼동성당, 발인 9일 오전 8시 (02)562-7299 박문성(아주대 의대 소아과 교수)씨 부친상 6일 수원 아주대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31)219-4111 차주혁(KNN 보도정보팀 기자)주용(게일인터네셔널코리아)혜주(당리중 교사)씨 부친상 6일 부산의료원, 발인 9일 오전 8시 (051)607-2661 고근택(전북도의회 의사담당관)정택(자영업)봉택(〃)씨 모친상 6일 전북 군산 금강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11시 (063)445-4188 민영기(전 한국일보 특판이사)씨 모친상 7일 서울보훈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30분 (02)478-9099 이주하(삼성물산 부장)승하씨 부친상 박의명(한국자산관리공사 감사)박용재(동부정보 부장)씨 빙부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6시 (02)3410-6915 최산묵(전 산동교역 사장)씨 별세 학규(산동인터내셔널 대표)씨 부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6시30분 (02)3010-2232 김현종(국토해양부 여수세계박람회 국제팀장)씨 모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2)3010-2292 김일겸(A.T. 커니 팀장)선아(아스트로해운 차장)씨 모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10시 (02)3010-2261 오명식(부산외대 데이터경영학과 교수)민식(세륜중 교사)동식(한신대 독어독문학과 외래교수)씨 모친상 박선애(전 대원과학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강승희(프리랜서 번역가)씨 시모상 김희진(우리은행 서울대지점장)씨 빙모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6시 (02)3010-2263 염철호(전 프로농구 장내아나운서)씨 상배 7일 대전 건양대병원, 발인 9일 오전 10시 (042)600-6660 윤정훈(계룡산 후소도예 대표)씨 모친상 7일 대전 유성 선병원, 발인 9일 오전 10시 (042)825-9494
  • 강원, 고성지역 경기 부양 나선다

    강원도가 금강산관광의 중단으로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강원 고성지역 경제활성화에 팔을 걷어 붙였다. 강원도는 7월이후 금강산 총격 사건으로 중단된 고성지역 위축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자리 창출과 수산시장 건립 등에 352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고 3일 밝혔다. 고성지역은 한달 평균 19억 6300여만원 상당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등 경기가 날로 위축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달부터 내년까지 숲가꾸기, 조림, 사방사업, 공공근로사업, 산불감시 등을 통해 9만 3875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기로 했다. 대진항 수산시장 건립 등도 조기에 가시화하기 위해 내년까지 352억원을 투입한다. 또 이달 중 재산세 등 지방세 징수유예 희망자 신청서를 접수해 유예해 주는 방안을 추진한다. 농어촌 주민 소득을 높여주기 위해 내년까지 139억5000만원을 들여 어촌체험 관광마을 조성에도 나선다. 아울러 도청 실과별로 이달부터 각종 회의와 모임의 고성 유치를 추진하고, 고성지역 관광상품에 대한 해외홍보·마케팅을 강화하기로 했다. 오는 11월 열리는 ‘DMZ(비무장지대)통일역전마라톤대회’에 참가자의 가족동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대회홍보도 강화할 방침이다. 5일부터 이틀동안 고성에서 열리는 제23회 강원민속예술축제와 10월 24∼26일 ‘2008 고성왕곡마을 전통민속체험행사’도 적극 지원한다. 공사 중인 DMZ박물관도 내년 상반기에 조기 개장해 관광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할 방침이다. 최흥집 강원도 기획관리실장은 “정부와 국회 등을 대상으로 금강산관광 재개를 적극 모색하고, 접경지역 범위 확대에 대비한 지역활성화 방안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金통일 “北 식량지원 긍정검토”

    金통일 “北 식량지원 긍정검토”

    김하중 통일부장관은 3일 “대북 식량지원을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적극적·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6000만 달러 지원요청을 우리 정부가 받아들이기로 방침을 정했는지 여부가 주목된다. 김 장관은 대북 식량지원 문제와 관련, 그 동안 “(금강산 사건 이후)국민여론이 매우 중요해졌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해 왔다. 김 장관은 이날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결성 10주년 기념식에 참석, 이 같이 밝혔다. 김 장관은 “북한은 우리 측의 전면적 남북대화 제의를 번번이 거부했고, 식량지원 제의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그렇지만 많은 분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대북 식량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한총리, “정부정책 종교편향 없을 것”

    한승수 총리는 3일 “정부의 종교편향적 정책은 없으며 앞으로도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이날 취임 6개월을 맞아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같이 강조하고 “다만 국토해양부가 지도를 제작하면서 사찰을 누락하는 등 한두가지 이유로 불교계 불만이 높아져 총리로서 대단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한 총리는 “종교편향적 정책은 없었지만 불교계 우려에 대해 적절한 대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종교 편향을 막기 위한 입법 검토 등 정부에 대한 신뢰확보를 위한 노력을 계속 기울이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 등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최근 남북관계 경색과 관련해 그는 “지금은 정상적 관계가 아니다. 하루속히 관계가 원만해지길 바란다.”면서 “이를 위해 북한이 이명박정부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불거진 ‘12월 개각설’에 대해 “각료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만큼 총리가 왈가왈부할 사안은 아니다.”면서 “취임 후 수개월이 흘렀고 일부 개각도 있었는데 정부가 일을 잘 하도록 국민과 언론이 분위기를 만들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자원외교 수행, 기후변화 대응 등 미래에 대비한 노력, 전 사회 안전시스템 구축,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규제개혁 등을 지난 6개월간의 성과로 꼽았다. 특히 조류독감(AI)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해 유엔이 한국을 AI 방역보호국으로 지정한 것은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됐고, 미국 쇠고기 협상 관련 초기대응이 불충분해 국민과의 소통 부족을 초래한 점에 대해선 아쉬움을 토로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中 자국민에 北관광 전면개방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은 자국민에게 단체여행을 포함한 북한 관광을 전면 개방키로 했다. 이에 따라 중국 국가여행국은 북한을 해외여행 가능 지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신화사가 3일 보도했다. 중국인 관광객의 북한행이 본격화되면 지난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이후 남한 정부의 금강산 관광 중단 조치로 외화수입에 타격을 입은 북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광총국 두장(杜江) 부국장은 “관리 부문의 왕래와 인력을 확대하고 관련 법규 통계 및 선전 활동을 촉진하겠다.”고 말했다. 북한 관광총국의 강철수 부국장은 “우리는 여행 정책과 선전, 호텔관리, 관련 통계, 교육 훈련 등 방면에서 중국의 협조를 받기를 원한다.”고 환영했다. 중국은 당장 선양(瀋陽)에 북한국제여행사의 판사처 설립을 허용키로 했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로 중국인 관광객이 바로 급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날 베이징의 한 정보통은 “중국인은 그동안 지정된 여행사를 통해 일정하게 할당된 인원만이 북한을 여행할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북한을 여행하는 비용이 낮지 않아 특별한 프로그램 개발이 뒤따르지 않는 한 관광객이 빠르게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큰 것 같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북한은 2009년 ‘북·중 우호의 해’ 등으로 중국과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경제 상황 개선을 도모할 기회가 마련됐다.”고 진단했다.2009년은 북한과 중국이 수교 60주년을 맞는 해다. jj@seoul.co.kr
  • 하늘에서 ‘땅끝’을 내려다보다

    하늘에서 ‘땅끝’을 내려다보다

    해남 ‘폴더’를 연다. 그 안에서 ‘문서’들이 주르륵 쏟아져 나온다. 하나같이 ‘땅끝마을’이다. 해남의 간판스타인 땅끝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삶의 새로운 전기를 찾고자 한다. 그 중엔 세상과 부딪쳐 입은 상처로 남루해진 몸을 추스르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땅끝마을은 고즈넉한 옛모습을 많이 잃었다. 개발바람을 피할 수 없었던 게다. 땅끝을 어떻게 느끼는가는 오로지 여행자의 몫.‘땅끝’이 가진 상징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또다른 명소들을 발로 뛰어 찾아냈다. (1) ‘남도의 금강산´ 달마산과 도솔암 새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땅끝은 또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달마산과 두륜산에 주목해 보자. 각각 도로와 케이블카가 나 있어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달마산은 소백산맥의 한 줄기다. 높이는 489m쯤 된다.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암릉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때문에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산 정상을 따라 등산로가 이어져, 어느 곳에 서더라도 빼어난 풍광과 마주할 수 있다. 그중 도솔암은 현지인들이 첫손 꼽는 명소다. 도솔봉 못미쳐 암릉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고 있다. 안내판에 따르면 창건 연대는 통일신라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유재란 등을 거치면서 소실됐던 것을 현 주지인 법조 스님이 지난 2002년 단 32일만에 중창했다. 법조 스님은 “주변 풍광이 워낙 수려해 수행자가 공부할 곳은 아니고, 중생들이 단 하루라도 불법과 더불어 안식할 수 있게 하려고 조성했다.”고 밝혔다. 도솔암에 올라 서면 땅끝과 다도해가 주르륵 펼쳐진다. 법조 스님은 “석양이 다도해에 쏟아져 내릴 때면 꼭 ‘판화’를 보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도솔암 맞은편에 6∼10명 정도가 묵을 수 있는 요사채가 마련돼 있다.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다. 식수는 삼성각 아래 용샘에서 길어 온다. 간단한 세면 정도는 가능하다. 숙박비는 불전함에 성의 표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숙박을 하려면 사전에 법조 스님(011-9639-1013)과 일정을 맞춰야 한다. 송지면 마봉리에서 도솔암 이정표를 따르다, 중계탑 아래 차를 세워두고 산길로 20분 정도 가면 나온다. 달마산과 이웃한 두륜산은 해발 703m로 바다에 인접한 봉우리 치고는 제법 높은 편이다. 명찰 대흥사와 동다송(東茶頌)을 지은 초의선사가 수행했던 일지암 등이 이 산에 기대어 있다.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정상까지 손쉽게 오를 수 있다. 대흥사 입구 옆에서 출발해 고계봉(638m)까지 이어지는데, 길이가 1600m에 달한다. 국내에서 가장 길다. 정상까지 8분 정도면 닿는다. 정상 전망대에 서면 ‘섬들의 천국’이라는 서남해의 섬들을 가장 멀리, 많이 볼 수 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제주의 한라산까지 관측된다고 한다. 운행시간은 오전 7시30분∼오후 7시. 일출 감상을 하려면 예약을 해야 한다.5000∼8000원. 두륜산케이블카 www.haenamcablecar.com (061)534-8992. (2) 바람과 파도가 만든 조각 ‘비둘기바위’ 황산면 징의마을은 예전엔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을 통해 뭍이 됐다. 마을 이름의 유래가 재밌다. 대흥사 수도승이 무슨 이유에선지 절을 나와 목탁을 던지고(목탁섬), 불단에 올리는 시루를 버린 다음(시루섬), 속옷까지 벗어던졌는데, 그 속옷이 징의리에 떨어져 ‘징의’(澄衣·깨끗한 옷. 스님의 속옷을 뜻함)마을이 됐다는 것. 징의마을의 자랑거리는 ‘비둘기 바위’라 불리는 해식절벽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모양새가 전북 진안 마이산의 타포니 지형과 닮았다. 마을 입구에서 ‘모래미’라 불리는 자그마한 모래사장을 지나면 연분홍빛 ‘신비의 문’과 만난다. 이 마을 이병규(70) 이장에 따르면 “달빛 영롱한 밤이면 마을 처녀총각들이 찾아와 밀회를 즐기곤 했다.”는 곳이다. 얼핏 보면 작은 규모다. 하지만 실망은 이르다. 한 굽이만 돌아서 보시라.‘기골이 장대한’ 해식절벽이 나온다. 파도의 침식 강도에 따라 얼기설기 얽혀 있는 바위들과, 돔 형태로 지붕이 얹힌 바위 등이 적잖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이장은 “절벽에 뚫린 구멍마다 산비둘기들이 둥지를 틀어 비둘기바위라고 불렀다.”고 설명했다. 징의마을로 가려면 마산면 호교리에서 고천암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좋다. 천일염전이 그렇거니와, 둑방길에 흐드러진 갈대들이 초가을 햇빛을 받아 서정미를 물씬 풍겨낸다. 썰물에 가야 제대로 구경할 수 있다. (3) 달마산을 병풍처럼 두른 미황사 미황사는 ‘남도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달마산을 병풍처럼 두른 명찰. 섬을 제외하면 뭍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절집이다. 단청을 입히지 않은 대웅보전이 소박하고 단아하다. 대웅전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에는 게와 거북을 조각해 이채로움을 더하고 있다. 절집 풍광도 빼어나지만 발 아래로 펼쳐지는 다도해를 조망하는 맛이 일품이다. 특히 응진당과 만하당에서 보는 낙조가 장관이다. 경내에서 다소 멀리 떨어진 부도탑도 빼놓으면 서운할 풍경. (4) 명량대첩을 다시 본다 ‘2008 명량대첩축제’(myeongryang.com)가 10월11∼14일까지 명량해협(울돌목) 일대에서 열린다. 하이라이트는 명량해전 재현 행사.200여척의 선박과 1300명의 인원이 동원돼 실전과 같은 명량대첩을 선보일 예정이다.3만여명이 동시에 참여하는 ‘명량어울림 강강술래’행사도 마련됐다. 주최측은 진도대교 위에서 펼쳐지는 이 행사를 기네스북에 올릴 방침이다. 축제 총감독은 영화 ‘동승’ 등에서 메가폰을 잡은 주경중 감독이 맡았다. 주 감독은 “해남 각 지역의 설화가 바탕이 된 공연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연습하고 있다. 지역민들에게 축제는 이미 시작된 셈”이라며 “보여지는 축제가 아닌 참여하는 축제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글 사진 해남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061)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목포나들목→2번 국도 강진방향→성전→13번 국도 해남. 해남 초입 외엔 LPG충전소가 없다. 해남군청 문화관광과 530-5229. ▶맛집 해남 읍내 천일식당은 80년을 이어온 떡갈비로 소문난 집.1인분 2만원.536-4001. ▶잘 곳 유선장여관(534-2959)은 영화 ‘서편제’ 촬영지. 산중에 위치해 운치가 있다. 이밖에 땅끝마을하얀집 534-3223, 가학산자연휴양림 535-4812, 해남유스호스텔 533-0170 등이 있다. ▶주변 관광지 고천암은 겨울철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곳. 장대한 갈대 군락지의 서정성이 뛰어나다. 땅끝관광지, 우항리 공룡화석지, 우수영관광지, 고산윤선도유적지 등도 가볼 만하다.
  • [한가위 선물]금강제화-상품권+기능성 신발… 실용성 두배

    [한가위 선물]금강제화-상품권+기능성 신발… 실용성 두배

    이번 한가위에는 하루종일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발까지 편하게 할 수 있는 가벼운 기능성 신발을 한 켤레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 금강제화는 올해 추석선물로 부모님 발에 맞는 편안한 신발(컴포트 슈즈)을 제안했다. 컴포트(comfort) 슈즈는 신발의 무게 등을 줄여 걷기에 편안한 신발을 말한다. 특히 최근에는 걷기 열풍이 불면서 편안한 신발이 인기를 끌고 있다. 랜드로바 서브브랜드 로렐의 ‘워킹슈즈’는 쿠션감이 뛰어난 신소재를 사용한 초경량 제품이다. 밑창에 스프링을 삽입해 리듬감도 느낄 수 있다. 구두 무게를 줄여 신발을 신지 않은 듯 편안한 초경량화도 인기다. 쿠션감 있는 폴리우레탄을 밑창에 사용하면서도 양복 등에 어울릴 수 있는 디자인으로 만든 비즈니스 워킹 슈즈도 추석 선물로 제격이다. 걷기에 편안한 기능을 살리면서도 겉으로 보기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게 최대 장점이다. 좋아하는 색상을 몰라 직접 신발을 선물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금강제화 상품권을 선물하는 게 한 방법이다. 받는 사람이 직접 자신에게 필요한 상품을 고를 수 있어 직접 선물하는 것보다 더 실용적일 수 있다. 금강제화 상품권은 꾸준하게 인기를 얻는 명절 베스트 선물로 꼽힌다. 금강제화 모든 종류의 제화는 물론 골프웨어, 신사복, 캐주얼 의류 및 핸드백, 컬렉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전국 130개시에 있는 400여 금강제화, 랜드로바, 레노마,PGA 투어, 버팔로 단독매장, 백화점 매장, 대리점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상품권 가격도 5만∼50만원까지 다양해 선택 폭도 넓다.
  • 국정원 대공수사 대폭 강화할듯

    국가정보원은 이번 주 중 1∼2급 부서장 7명 정도를 퇴진시키는 쇄신인사를 단행할 예정인 것으로 1일 알려졌다.이 가운데는 일부 핵심부서 간부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예년의 경우 12월에 연말 정기인사를 했지만 금강산 사건 대응 등에서 문제점이 지적됐고, 여권의 본격적인 국정쇄신 기류 등과 맞물려 인사를 3개월 정도 앞당기게 됐다.”며 “청와대의 최종 재가만 남은 상태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는 또 김주성 기획조정실장이 주재하는 국정원 조직 진단 등과도 맞물려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지난달 말 “국정원 체제 정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앞서 국정원은 지난 3월 1급 이상 고위간부 30여명의 60% 이상을 교체하는 대폭인사를 단행했었다. 이번 인사를 통해 국정원은 대북정보수집 및 대공수사 역량 강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간부급 인사에 이어 실무 직원 재배치를 통해 대북정보 수집 기능을 강화하고, 김성호 원장이 지난 5월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대로 대공수사 파트도 크게 보강할 것으로 보인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씨줄날줄] 민주당 소나무/임태순 논설위원

    소나무처럼 우리 민족과 친근한 나무도 없다. 곧게 뻗은 소나무는 지조, 절개를 상징해 예부터 시나 서화의 중요한 소재였다. 조선시대 성삼문은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리라.”면서 단종에 대한 굳은 마음을 소나무에 빗대 표현했다. 조상들은 또 소나무로 집을 짓고 솔잎을 깔아 떡(송편)을 만들어 먹고 소나무로 만든 관에 누워 먼 길을 떠났다. 소나무는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현실 정치에도 발을 들여놓게 된다. 한자로 소나무 송(松)자는 나무목(木)과 공변될 공(公)자를 합한 형성문자이다. 여기에서의 공은 공평하다는 뜻이 아니라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 등 벼슬을 의미한다. 소나무에 이런 명칭을 부여한 사람은 중국의 진시황이다. 그는 비를 피하게 해준 소나무에 고마움을 느껴 산둥성 태산에 있는 소나무에 공작의 벼슬을 내렸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충북 보은 법주사 가는 길에 있는 소나무도 정이품송(正二品松)이라 불린다. 조선 세조가 법주사 행차에 나섰다가 가마가 처진 소나무 가지에 걸리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그러자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들어올려 세조가 오늘날의 장관에 해당하는 정이품의 높은 벼슬을 내린 것이다. 민주당이 통합민주당으로 새 출발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엊그제 소나무를 당의 새로운 상징물로 선택하고 진녹색 금강송을 로고로 공개했다. 민주당은 “소나무는 기개, 지조, 생명 등을 상징하고 녹색은 50년 정통민주세력의 상징색으로서 통합과 소통, 균형, 평화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현재 정당지지율이 20%대를 밑돌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집권 한나라당이 미국산 쇠고기수입, 종교편향 등 잇단 실정으로 악수를 두고 있는데도 전혀 반사이익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체성 모호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당을 대표하는 간판타자가 없는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소나무의 솔은 ‘으뜸’을 뜻한다. 금강송은 곧게 자라는 소나무다. 당의 중심을 굳건히 하고 국민들의 가슴에 뿌리내리는 금강송 같은 소나무를 키우면 민주당이 으뜸 정당이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하편)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하편)

    ■몽골에서 우리의 옛 모습을 보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오고바흐타의 진단은 몽골에 체류하는 동안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몽골 입성 4일째 되는 날,의료봉사를 마친 일행은 초원으로 야유를 나섰다.말이 야유지 그것은 또다른 고행의 체험이었다.워낙 햇볕이 따가워 일행들은 함부로 초원에 나서기를 꺼려했다.그냥 차안에서 너른 초원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겠다는 투였다.그래도 몽골이라는 나라가 그리 쉽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필자는 작심하고 시원한 차량을 나섰다.더운 바람이 턱 하고 숨길을 막았고,발바닥에 밟히는 초원의 감촉은 뜨겁고 푹신했다.뜨거움은 태양에 달궈진 대지의 체온이고,푹신한 것은 빠삭하게 마른 모래흙이 밟히는 감촉이었다.걸음을 뗄 때마다 풀풀 먼지가 일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몽골과 역사·문화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흔적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어워’였다.초원을 가로 질러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이어진 길(나중에 지도를 보고 그 길이 러시아령 바이칼 호수 쪽으로 이어지는 간선 국도임을 알았다.)을 따라가자니 길가에 익숙한 돌무더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바로 어워였다.우리 식으로 보자면 성황당이다.모양도 성황당과 너무 닮았다.몽골인들은 길을 오가다 어워를 만나면 돌을 세개 쌓거나 주위를 세번 돈 뒤 기원을 하고 지나간다.의례까지도 우리의 성황당 의식과 너무 비슷해 놀랐다.요즘엔 차량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예전처럼 돌이 많이 쌓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몽골에는 토템이나 샤먼적 요소가 우리보다 훨씬 많이 남아 있다.예컨대 차량 운전자도 아워 앞을 지나칠 때면 경적을 세번 울리거나 아예 차로 아워 주변을 세번 돌고 지나가는 식이다.우리에게 익숙한 ‘삼세번 문화’와 흡사한 의식의 발현이다. 우리와 다른 점도 있었다.종교든 생활 관습이든 주어진 환경 조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의 원형 이탈은 불가피한 것이다.우리의 경우 큰 나무에 영성(靈性)이 깃들었다고 보고 그걸 성황당으로 삼는 데 비해 그들은 그냥 평지에 돌무더기를 쌓아 어워로 삼았다.삼림지대가 아닌 망망대해 같은 초원지대에는 나무가 거의 없어 우리처럼 노거수를 토템의 대상으로 삼기가 쉽지 않은 탓일 것이다.이 때문에 우리는 나무 등걸에 색색의 천을 걸거나 금줄과 유사한 기능의 새끼줄을 걸쳐 공간의 신성성을 표시하는데 몽골에서는 돌무더기 가운데 통나무를 박아 장소성을 나타냈다.그들은 이 나무에 예외없이 파란 천을 친친 두른다.물론 다른 색의 천도 걸려있지만 주종은 파란색 천이다. 파란 색 천은 옛적부터 몽골인들이 외경의 대상으로 삼았던 하늘을 뜻한다.그러고 보니 우리가 탄 버스의 운전석 위에도 씨름 샅바처럼 만 파란 천이 가로로 걸쳐져 있다.이런 습속은 일반인의 생활에도 깊숙히 자리잡아 게르나 현대식 주택엘 들어서도 거의 예외없이 출입문 위에 가로로 걸쳐 놓은 파란 천을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이 하늘을 외경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충분히 이해됐다.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태양이 터를 잡은 곳이 하늘이고,철궁으로도 뚫지 못하고,천마를 달려도 다다를 수 없으니 어찌 그들이 하늘을 경외하지 않았겠는가.비록 지상에서는 동과 서,남과 북 천하에 대적할 사람이 없는 대제국을 일궜을지라도 하늘 만큼은 그들의 발아래 꿇릴 수 없었을테니…. 그들이 하늘을 외경의 대상으로 삼은 흔적은 까마귀를 신성시하는 것에서도 확인됐다.그들도 우리처럼 까마귀를 ‘태양의 사자’라고 믿는다.그래서 사냥에 나설 때도 까마귀는 건드리지 않는다.만약 누군가가 까마귀를 해쳤다면 전쟁터로 가는 길이든,결혼식장으로 가는 길이든 모두 포기하고 돌아온다고 한다.까마귀의 영성을 대하는 이들의 시각은 이 정도다. 이런 의식은 우리와도 닮았다.지금이야 까치는 길조이고,까마귀를 그냥 기분 나쁜 새로 여기지만 이는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 이입된 서구적 의식의 영향 탓일 뿐 예전 우리 조상들은 까마귀를 영물(靈物)로 여겼다.몽골과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도 까마귀를 ‘하늘의 사자’라고 여겼으며,이는 우리 신화 속에 깃든 삼족오(三足烏)의 전설이 입증해 준다.혹 어렸을 적에 할머니로부터 이런 얘기 들을 기억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아,글씨 이 망할 구미호(여우)가 어찌나 신통방통한 둔갑술을 가졌는지 도저히 어찌 해볼 요량이 없는게야.그래 그 사람이 이젠 죽었구나 하고 아예 땅바닥에 다릴 풀고 퍼질러 앉았지.그러고는 조상께 하직인사를 올렸지 뭐야.‘인자 죽게 돼 조상님들께 제사도 못 올리게 되었다고….’그랬더니 눈앞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 이렇게 말하는 게야.‘이 눔아,게서 죽으면 못써.얼렁 내가 일러준 주문을 외워봐.그러면 삼족오허고 삼족구가 와서 널 구해줄게다.’ 그래 정신이 퍼뜩 든 이 사람이 그대로 주문을 외았드니 금시 삼족오허고 삼족구가 와서 그 구미홀 쫓아내는거야.” 여기서 삼족오는 다리가 셋인 바로 그 까마귀이고,삼족구는 다리가 셋인 개를 말한다.이처럼 우리 의식 속에서는 둘 다 잡귀를 물리치고 주인을 지켜주는 신성한 영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삼족오를 일본이 잽싸게 건져내 자국의 축구 국가대표팀 문장으로 만들었다.사실 우리 축구대표팀의 문장에 넣은 호랑이는 애당초 우리 의식 속에 늘 있었던 것이어서 놀랄 일이 아니었으나 일본이 삼족오를 내미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 때 내 속으로는 “저들이 언제 우리 할머니 이바구까지 훔쳐 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아까웠었다.생각은 그렇더라도 까마귀에 대한 이런 의식이 동양문화의 중추를 관통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이로써 대륙의 문명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음을 확인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다른 문화의 유사성은 씨름에도 있었다.아워도 그렇지만 씨름도 우리 민족이 중국의 한족과 전혀 다른 문화적 혈통을 가졌음을 확인시키는 결정적 근거가 아닐까.씨름의 민속 벨트가 몽골-러시아 극동지역-한국-일본으로 이어져 중국이 배제되고 있다.인류문화사적으로도 중국은 우리와 전혀 다른 언어 및 인종적 경로를 갖고 있다. 몽골에서 ‘부흐’라고 부르는 씨름은 샅바를 이용하는 우리의 것과 형식적으로는 약간 차이가 있다.그러나 두 사내가 서로 맞붙어 힘과 기술을 겨룬다는 점에서는 똑같다.승패를 가르는 방식,즉 넘어뜨리면 이기는 승패 규칙도 매우 흡사하다.해마다 7월 11∼13일에 몽골 최대의 나담축제가 열리는데,이 축제의 3대 행사가 바로 부흐와 말타기,마상 활쏘기이다.여기에서 그들에게 부흐가 생활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몽골 역사상 올림픽 첫 금메달리스트가 된 유도의 투브신바야르 나이단도 원래는 부흐 선수였다.현지에서 듣기로는,그가 부흐를 배우다가 ‘세상이 바뀌어 이제는 부흐로 먹고 살기 어려우니 유도를 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유도선수가 되었단다.하기야 유도나 씨름이나 근본적인 역동의 원리는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는다. 몽골 체류 중 일행은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가장 큰 곳 중 하나라는 재래시장을 찾았다.소액(50토그르기)이지만 입장료도 내야 했다.뙤약볕 아래 제법 널찍하게 펼쳐진 재래시장은 예의 인파로 북적였다.갖가지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이 보도를 점령한 것도 우리에겐 익숙한 광경이었다.특히 냉차를 파는 노점은 옛날의 우리 모습을 다시 보는 듯 했다.온갖 잡화가 진열된 그곳은 생각과 달리 잘 정리되어 있었고,풍성했고,사람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이 시장은 울란바토르에서도 중산층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또다른 익숙한 광경도 눈에 띄었다.식료품 가게에는 감자와 마늘,양파가 즐비했다.현지 안내원에게 물으니 몽골인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식품들이라고 했다.우리와 다른 점은 어물전이 없다는 거였다.하기야 고비사막을 깔고 앉은 내륙도시 울란바토르에 신선한 생선이 있을리 만무했다.일행중 누군가가 우스개소릴 던졌다.“어디 가서 싱싱한 회나 한 접시 했으면 좋겠구만.” 이 시장이 매력적인 것은 몽골인들의 삶을 가감없이 드러낸다는 점이었다.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거리의 악사’가 눈길을 끌었다.초로의 여인이 짙은 화장을 하고 뙤약볕 아래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아들인 듯 싶은 젊은이는 반주가 담긴 카세트를 켜들고 그 뒤에 물끄러니 서있었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옛날들이 스쳐 지나갔다.일제에 의해 전통적인 우리의 권번이 해체되면서 수많은 기생들이 거리로 내몰렸다.이를테면 그 이전의 관기(官妓)가 중심이었던 ‘공창 시스템’을 자본주의식 ‘사창 시스템’으로 전환시킨 조치였다.하루 아침에 일자리에서 내몰린 기생들이,그것도 ‘애기기생’들을 모두 떠나보내야 하는 늙수그레한 노털 기생들은 천상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전국을 떠돌며 잔치집을 전전하거나 노상에서 술과 웃음을 파는 들병이로 전락했다.이 몽골 여인의 삶의 내력을 알 수는 없었으나 길거리에서 기예를 파는 처지가 딱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양 한마리를 해치우는데 고작 20여분. 몽골을 떠나기 이틀 전,몽골 현지 ACC 책임자가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몽골의 자연형 국립공원인 테일지 초원의 게르로 나가 양고기 오찬을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다.정중한 초청이었기에 거절할 수는 없었지만 일행 대부분은 이미 여러번의 현지식에서 양고기의 누린 맛에 적잖이 질린 터라 서로 마주보고 눈만 꿈벅거렸다.그때 일행중 한 명이 나섰다.“너무 양고기에 기죽은 표정들 하지 맙시다.이미 초청을 받았는데 안 간다는 것도 결례이고 하니 그냥 가볍게 초원으로 산책 나간다는 생각으로 갔다 옵시다.” 그렇게 해서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1시간 쯤을 달려 테일지 자연공원에 도착했다.그곳은 아름드리 삼림이 있고 바이칼호수에서 발원했다는 맑은 강물이 흐르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산의 능선을 타고 펼쳐진 바위가 마치 금강산의 풍광 한 폭을 뚝 떼어다 옮겨놓은 듯 아름다웠다.안타까운 것은 거기에도 개발 바람이 불어 그 울창한 원시의 수림대가 차차 망가지고 훼손된다는 사실이었다.테일지로 가는 길목 곳곳에 베어넘긴 거목의 시체들이 즐비했다.그곳에서 말등에 올라타고 두개의 야트막한 하천을 건너 한참을 가니 광활한 초원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상상해 보라.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원시의 초원을 눈앞에 두고 선 나그네의 가슴 울렁거리는 희열을. 말인 즉 인공이 가해지지 않았다고 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그곳에는 양과 말,야크떼를 거느린 유목민들이 살고 있었다.양털과 젖이 그들의 주수입원이었지만 가끔 게르에서 하루,이틀 묵으며 초원을 체험하려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제법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그곳 유목민들은 땟국에 절은 입성 말고는 어떤 문명의 티도 내지 않았다.예약된 게르에 들어서자 주인 사내가 딱딱하게 말린 양젖 버터를 권했다.마치 고구마 절편처럼 딱딱했다.맛을 보려고 입으로 가져가니 예의 누린내가 확 끼쳐 슬그머니 내려놓고 말았다. 게르 뒷편에서는 젊은 유목민 사내가 때맞춰 능숙한 솜씨로 양을 잡고 있었다.그걸 지켜보자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살아있는 양의 네 다리를 잡고 땅바닥에 누인 뒤 고작 연필만 한 주머니칼을 꺼내 명치 부위에 10㎝ 가량의 칼집을 냈다.그때까지 양은 멀쩡하게 살아 맴맴거리고 있었다.이윽고 사내는 칼집으로 손을 쑥 집어넣더니 검지를 대동맥에 걸어 뚝 하고 잡아뗐다.그걸로 끝이었다.양은 이내 목을 축 늘어뜨렸다.양의 숨이 끊어지자 사내는 손바닥을 밀어 익숙하게 가죽과 몸통을 분리했다.칼은 발목과 목을 분리할 때만 썼다.다음은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는 일.가슴을 갈라 내장을 들어내고,흉곽에 그득한 피를 준비한 그릇에 담아 선지 순대를 만들었다.그의 아내인 듯 보이는 여성이 들어낸 내장을 익은 솜씨로 손봐냈다.순대와 내장,적당한 크기로 나뉜 몸통은 그대로 통속으로 들어가 삶겼다.양 한마리를 잡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여분 정도,그러는 동안 땅바닥엔 피 한방울이 흐르지 않았다.일을 마친 사내는 풀섶에 쓱쓱 문대 손의 피를 닦았다.양 한마리를 그렇게 잡도리했다. 일행이 담소하는 동안 삶은 양고기가 가득 든 통을 든 사내가 게르로 들어섰다.건장한 사내는 순박하게 웃어보이며 통 속에서 막 삶긴 뜨거운 양고기를 꺼내 칼질을 시작했다.익숙한 솜씨였다.통속에는 양고기와 함께 돌과 감자도 들어있었다.게르에 차려진 간이 식탁위에는 금세 맛있게(?) 삶긴 양고기가 그득했다.다릿살이며 내장에 양의 선지를 채운 양순대가 모락모락 김을 피워올리고 있었다.술도 나왔다.말젖을 발효시킨 마유주였다.맛을 보니 시금털털해 아무래도 비위가 얇고 술에도 약한 필자가 감당하기엔 무리였다.일행 중 한 명이 “내 이럴 줄 알고 준비했지.”라며 술 한병을 꺼내 식탁에 올려놨다.몽골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칭키즈칸 보드카였다.독한 술이 돌자 처음엔 양고기 누린내에 고개를 모로 꺾던 사람들이 하나,둘 달려들어 안주 삼아 양고기를 맛보기 시작했다.더러는 “생각보다 먹을만 한데….”라는 후평을 내놓기도 했으나 준비해 간 고추장 맛으로 몇 점 먹어본 것이 고작이었다.30여명이 먹은 양고기가 너댓근에 불과해 보였다.남은 고기가 먹은 것보다 훨씬 많았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맞았다.벌써 며칠째 밥 다운 밥 꼴을 못 본 필자는 그걸로라도 면허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고기덩이 속에서 삶은 감자를 골라냈다.그러나 양고기와 같이 삶긴 터라 감자든 고기든 누리기는 매 한가지였다.양고기와 양순대,간 등이 있었지만 누린내 때문에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그런 필자의 옆구릴 쿡,찌르며 귀엣말을 건넸다.“아직 배가 덜 고팠구만….” ■애들아,말 달리자.저 땅 끝까지. 오찬을 마친 일행은 초원으로 나섰다.초원에서 몽골 말을 타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말을 타려니 연전 터키의 한 시골에서 말을 타다가 엉덩이 꼬리뼈 부위가 벗겨져 곪는 바람에 며칠 혼쭐이 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말안장에 쓸린 상처 부위가 덧나 나중에는 차를 타건 비행기를 타건 한시도 의자에 바로 앉지 못했던 그 끔찍한 여행의 기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그걸 아는 필자로서는 말등에 올라서도 말이 제 멋대로 달리게 할 수가 없었다.말은 과천 경마장에서 내달리는 유럽형 경주마처럼 크지 않았다.키가 작달막해 보였는데 그래도 가까이 다가가니 등이 어른 키높이만 했다.바로 이 말이 옛날 몽골 전사들이 타고 세계를 아우른 그 말이라고 했다.순식간에 내달리는 속도는 유럽산 경주마에 뒤지지만 지구력이 좋아 오래 달린다고 했다.또 먹성도 까탈스럽지 않고 병에도 잘 견딘다니 전쟁터에 타고 나갈 기마용으로는 그만인 듯 했다.그러니 유난히 말을 사랑했다는 당태종이 이곳에서 명마를 골라 준마도,백마도(百馬圖)를 그리고 그 유명한 당삼채로 완성해내지 않았을까. 그렇든 말았든 꼬리뼈의 추억 때문에 고삐를 바짝 당겨쥐어 말이 뛰지 못하게 한 뒤 게르 주변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끝냈다.그렇게 조심했는데도 나중에 보니 엉덩이 가운데 꼬리뼈 끝이 빨갛게 쓸려 있었지만 예전처럼 곪지는 않았다. 농사 유전자를 가진 한국인에게 말을 타는 일이 썩 어울려 보이지는 않았다.거북하고 어색한 몸짓이 우스꽝스러웠는지 그곳 아이들이 바라보며 키득거렸다.태어나 걸음을 떼면서부터 말등을 떠나지 않은 그곳 아이들 아닌가.아닌게 아니라 고작 예닐곱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잽싸게 말등으로 뛰어오르더니 ”츄∼츄∼”하는 입소리를 내며 가죽 고삐로 뱃골을 치자 말은 순식간에 초원 저편으로 질풍처럼 내달려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때 누군가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저 꼬마녀석들에게 뭔가 선물을 줘야 할텐데 그냥 주기도 뭐하니 말타는 모습을 좀 보여달라면 어떨까?” 그런 뜻을 게르 주인에게 전했더니 주인 사내는 한 술 더 떴다.“이 마을(마을이라야 게르 서넛이 멀찍이 자리잡은 것에 불과했다.)에 저 또래 아이들이 모두 여섯인데 그들에게 목표를 정해 말타기 경주를 시켜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모두가 동의했다.하는 김에 5달러씩 걸어 이긴 사람이 본전을 제하고 나머지를 애들 시상금으로 주자고 제안했다.주인이 제안한 터라 딱히 그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여길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자고 동의하자 주인이 초원을 향해 높은 톤으로 소릴 질렀다.멀리 있는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였다.잠시 후 여기저기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그들 뿐이 아니었다.아낙들,젖먹이들도 모두 눈을 반짝이며 게르 앞으로 모여 들었다.꼬마들은 제각각 아끼는 말을 골라타고는 고삐를 바투잡고 나란히들 섰다.그들은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듯 했다.우리야 한번 말등에 오르내리려면 기를 써야했지만 걔들은 가볍게 말등을 오르락거렸다.말에 올라탄 꼬마들은 뭐라고 주문을 외며 우리가 든 게르 주변을 천천히 열바퀴 돌았다.몽골의 전통적인 출정의식이라고 했다.이윽고 목표가 정해지고 모두 출발선에 섰다.목측으로 2000m쯤 되는 거리였다.사내가 신호를 하자 고삐를 꼬나쥔 꼬마들이 초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옛날의 몽골 전사들이 저렇게 내달려 도버해협과 북해의 거친 해안까지 다다랐던 것은 아닐까.그들의 모습에서 영화로웠던 칭키즈칸과 그의 아들 오고타이,손자인 쿠빌라이칸의 시대를 보는 것 같았다.그 모습은 시공을 초월해 그들이 말(馬)을 매개로 엮어진 불가분의 의식공동체임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애들이 말을 몰아 목표를 돌아오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얼굴이 발그레 상기된 아이들은 사내의 지시에 따라 마상에서 뭐라고 몇 번 고함을 지른뒤 훌쩍,훌쩍 뛰어내렸다.그들이 마상에서 내지른 소리 역시 무사히 말을 타게 해 줘 감사하다는 일종의 주문이라고 했다.논의 결과 아무리 애들이 수고는 했지만 직접 돈을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여겨 사내에게 모은 돈을 한꺼번에 건넸다.그렇게 모은 돈이 한 40 달러쯤 됐다.사내는 한 켠으로 아이들을 불러모은 뒤 뭐라고 얘기를 나눴다.아이들이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잠깐 말 타는 것을 보여줬을 뿐인데 돈은 무슨 돈이냐는 투였다.거기까진 우리가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황무지 제국에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구름 한점 없는 하늘 한 켠이 마치 불길이라도 이는 듯 선홍빛으로 타들었다.대륙의 장엄한 노을이었다.타드는 것이 하늘 뿐만은 아니었다.하늘과 맞닿은 대지도 붉게 달아올랐다.그 노을 속으로 누군가가 말등에 지친 몸을 싣고는 하염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그의 뒤를 키 작은 양떼들이 따랐다.유목의 사내일 것이다.그 모습에서 문득 몽골의 전사들을 이끌고 천하를 휘저을 때 남긴 칭키즈칸의 말이 떠올랐다.“성벽을 쌓는 자는 망하고 이동하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랬다.비록 그 말이 옛적 유목의 부정형 삶을 두둔하고 옹호하는 의미였을지라도 우리는 지금 그 의미를 결코 백안시할 수도,도외시할 수 없다.오늘날에도 그 교조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몽골의 거친 황무지,그 황무지와 하늘을 가장 단순하게 구획하는 일획의 지평선 위로 비장하게 물드는 노을.뜨겁게 달아 올랐다가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스러져 가는 그 노을에서 장대했던 몽골의 옛 제국을 보았다.참으로 비장했던 제국의 영화와 끝.그 노을을 응시하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문을 닫았다.자연이 연출한 그 무위의 파노라마 앞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전율 말고 무슨 영탄이 필요할 것인가.몇몇은 풀섶에 가만히 주저앉아 술병을 땄다.보드카였다.독한 술이 목줄기를 타고 넘어가 순식간에 흉금을 적셨다.노을에 함뿍 적신 얼굴 위로 서서히 술기운이 돌았다.노을과 사람이 함께 익어드는 것 같았다. 이윽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한 노래가 거친 풀섶으로 나즈막히 흘렀다.“천등사안 바악딸째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노래는 다시 이어졌다.“아아∼∼ 신라의 바아암이이이여 불국사의 종소리가 들리어온다 지∼나가는 나아그네에에여어 거∼얼음을 머어엄추어라 고오오요오하안 다아알빛아래….” 그 노래가 그 시각,그 자리에서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따지지 않았고,또 생각하지도 않았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장대한 자연의 섭리를 앞에 두고 터져나온 노래야말로 가장 진솔한 정서의 토로 아니었겠는가. 이윽고 맞은 저녁.몽골의 밤하늘은 별들의 천국이었다.장관이었다.요요한 풀섶에서 쳐다보는 밤하늘에는 별들이 촘촘하게 박혀 형용할 수 없는 자태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휘∼ 손을 내저으면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았다.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았던 그 광경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그 모습이 고스란히 몽골의 초원에서 재현되고 있었다.아주 오랫동안 뒤로 고개를 꺾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가슴이 울렁거렸다.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이 주는 설레임 때문이었다. 그 싱싱하고 영롱한 별들이 어느 새 술병 속에 떨어져 잠겼는지 몇 잔을 마신 보드카가 이내 목에 턱턱 걸렸다.그렇게 술과 함께 삼킨 초원의 별들이 훗날 내 속에서 어떻게 되살아날까. 봉사단원들은 모처럼 가진 초원에서의 휴식에 모두 흡족해 했다.ACC 김종구 총재가 일행과 함께 하며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꽃향기는 황홀해 보여도 산 하나를 넘지 못하지만 남에게 베푸는 봉사의 향기는 국경도 넘는다.” 사실 일상에 쫓기며 살아야 하는 갑남을녀가 ‘봉사’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그러나 김 총재의 말마따나 “봉사는 마약”인지도 모를 일이다.그렇지 않고서야 선뜻 사재를 털어 빈민에게 새 게르를 지어주기는 쉬울 것이며,자신의 직장일을 뒤로 하고 1년에 몇 차례씩 해외 봉사활동을 나서기는 또 쉬울 것인가.봉사활동 말미에 가진 한·몽 ACC 자평모임에서 김 총재는 이런 말을 했다.“재산이 많아 하는 봉사는 자선일 수는 있어도 엄밀한 의미의 봉사는 아니다.봉사는 자신의 여건을 초월해 나서는 것이다.세상에 아무 것도 잃지 않고서 할 수 있는 봉사란 없다.” 일행을 이끈 아시아 사랑나눔의 배용민씨는 현지에서 정을 나눈 안내원들과 따로 어울리며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눴다.그가 대뜸 이런 말을 꺼냈다.“고생할 때는 두번 다시 몽골엔 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초원에서 밤을 맞으니 그 생각이 틀린 것 같습니다.이걸 보고 몽골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그랬다.사실 몽골에서의 체험은 매우 특이했다.그러나 누린 먹을거리에 곤죽이 되고,태양에 주눅이 들었어도 그것이 잘 사는 나라에서 항용 겪는 무관심이나 비하와 모욕의 체험은 아니었다.사람들은 순박했고,지혜로웠다.손님을 대하는 태도도 정성스러웠다.그런 정성이 양고기의 역겨운 노린내를 지우고도 남았다. 애당초 봉사하자고 나선 길에 무슨 호의호식을 바라겠는가.그런 생각이 봉사의 취지를 훼손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지며 더 많은 땀을 쏟지 못한 아쉬움이 가슴으로 잔잔하게 배어들었다.밤이 지나면 다시 저 망망한 대지 위로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그리고 그 태양의 순환처럼 이 황무지에도 연대와 공유의 찬란한 세상이 다시 열릴 것이다.그렇게 기원했다. 글·사진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남경필 “대북 식량지원 재개해야”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북한에 600억원 규모의 식량을 지원해 달라는 세계식량기구(WFP)의 요청과 관련,“정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에 조건을 달아서는 안 된다.”며 적극 수용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같은 주장은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과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 중단 발표, 여간첩 사건 등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남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6월 세계식량계획(WFP)과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3주에 걸쳐 북한 전역에서 ‘긴급 식량상황평가’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인구의 60%가 하루 두끼 이하의 식사를 하고, 특히 영유아와 임산부·환자의 영양부족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즉각적인 대북 식량 지원의 필요성을 제기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5) 단옷날 씨름판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5) 단옷날 씨름판

    김홍도의 ‘씨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관중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있고, 그 가운데 두 사내가 맞붙어 한창 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요즘 씨름과 달리 두 사내는 모두 샅바를 매지 않고 있다. 자세히 보면 앞쪽의 사내는 오른 손 팔뚝에 바(삼베로 만든다)를 감고 상대의 왼쪽 허벅다리에 감고 있을 뿐, 허리에는 바를 매지 않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하는 씨름을 바씨름이라 한다. 이 그림에서 보듯 씨름도 여러 종류가 있다. 오른씨름, 왼씨름, 띠씨름, 바씨름이 그것이다. 요즘 하는 씨름이 왼씨름이다(대한씨름협회에서 모든 씨름을 왼씨름 하나로 통일했다). 오른씨름은 그 반대의 자세를 취하는 씨름이다. 바씨름은 이미 설명했고, 띠씨름은 허리에 띠를 두세 번 두른 뒤 그것을 잡고 하는 씨름이다.‘각희’는 김준근의 그림인데, 오른쪽 어깨를 서로 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왼씨름인데, 문제는 허리샅바가 없다(왼씨름이면 허리샅바가 있어야 한다). 혹 가려서 보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9세기 문헌인 홍석모 ‘동국세시기’의 ‘단오’ 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젊은 장정들은 남산의 왜장(倭場)과 북산의 신무문 뒤에 모여 씨름을 하여 승부를 겨룬다. 그 법은 두 사람이 마주 꿇어앉아 각각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허리를 잡고 또 각각 왼손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다리를 잡고 동시에 일어서서 서로 들어서 팽개친다. 쓰러진 사람이 진다. 배지기·등지기·딴족거리 등의 여러 기술이 있다. 그 중 힘이 세고 손이 빨라 여러 차례 승부에서 이기는 사람을 ‘판막음’이라 부른다. 단옷날 이 놀이가 가장 성행하고 서울이나 지방이나 많이 한다. ●18세기 전설적인 씨름스타 김흑 씨름은 단옷날 가장 성행하고, 또 서울과 지방 구분 없이 널리 유행하던 구경거리였다. 단옷날 씨름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자료가 있다.18세기 말의 문인 이옥의 ‘호상관각력기(湖上觀角力記)’가 그것이다. 이 글에 따르면, 매년 오월 단오 때면 호상인(湖上人)과 반인(泮人)이 마포 북쪽 도화동 앞에서 씨름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호상인’은 호숫가의 사람이란 뜻이 아니다. 옛날 한강을 ‘호(湖)’라고 불렀다. 예컨대 마포 쪽 한강을 ‘서호’(또는 서강)라고 불렀다. 동호대교는 그 다리가 놓인 곳을 동호라고 불렀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이옥이 말한 ‘호상’은 아마도 마포 쪽 서호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포는 서울로 들어오는 물자를 부리는 것이었기에 수레를 끄는 차부(車夫), 짐을 나르는 짐꾼이 많이 살았다. 그러니 힘깨나 쓰지 않았겠는가? 반인은 성균관에서 일하는 노복들을 말한다. 성균관을 반궁(泮宮)이라 하고, 성균관 부근 동네를 반촌(泮村)이라 하고, 반촌에 대대로 사는 사람들은 반인이라 한다. 이들은 고려 말 안향이 성균관에 기증한 노비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쓰는 말도 서울말씨가 아니라 개성 말씨였다고 한다. 이들은 성균관에서 노복 일을 하고 살면서 동시에 서울 시내 쇠고기 판매업을 독점한다. 육류 판매란 백정이 하는 일이라, 이들은 사회적으로 천시되었고 그 때문에 내부적으로 굉장히 단결력이 강하였고 또 폭력적인 성향이 있었다. 호상인들의 스타는 김흑이란 사내다. 이 사내 때문에 반인은 호인을 이기지 못한다. 단오를 이틀 남겨 놓은 날 김흑이 새벽부터 묘시까지 백스물 네 마리의 말에 짐을 실었다는 말을 듣고, 반인들은 그가 지쳐 떨어졌을 것이라 짐작하고는 그날 당장 씨름 시합을 벌이자고 한다. 김흑은 “소 잡는 놈들이야 수백 명도 넘어뜨릴 수 있다.”고 호언한다. 반인이 시합할 선수 10명을 뽑으라 하자, 김흑은 자기 혼자 감당하겠단다. 결과는 김흑의 10전 10승이었다. 당시 힘이 세기로 유명한 종친 능창군 이난(李欄)이 그것을 보고는 “정말 장사로다.”라고 하며, 자신이 차고 있던 부채와 향주머니를 끌러 주었다 한다. 씨름판에는 스타가 있기 마련이다. 프로 씨름이 처음 생겼을 때 스타는 단연 이만기였다. 김흑도 그런 스타였던 것이다. 그런데 김흑은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사람도 있다. 김덕령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이몽학과 내통해서 역모를 꾸몄다는 무고를 받고 모진 고문 끝에 죽은 분이다. ●씨름 한판으로 벼슬길 오른 김덕령 송시열의 문집 ‘송자대전’을 보면, 김덕령의 용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전하는 김덕령이 씨름으로 출세한 이야기는 이렇다. 이정귀의 아버지 이계는 장성현감으로 있을 때 단옷날 인근 수령들을 불러 예전부터 하던 대로 관아 마당에서 씨름판을 연다. 그날 어떤 장사가 판막음을 한 뒤 큰 소리를 쳤다.“나와 겨룰 사람이 없느냐?” 이때 김덕령은 관아로 막 들어오는 참이었다. 수령들이 술과 안주를 먹이고 싸우라 권했다.“자네가 저 사람을 이긴다면 정말 통쾌할 걸세.”“저는 본디 글 읽는 선비로 몸이 허약한데, 어떻게 저 장사를 이긴단 말입니까?” 사양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이 강권하여 김덕령은 그 장사와 붙게 되었다. 그의 작은 체구를 그 장사가 놀리자, 김덕령은 “그대는 잔말을 말라. 힘만 겨루면 그만 아닌가.”라고 하였다. 장사가 김덕령을 잡아 돌리다 땅에 팽개쳤으나 김덕령은 쓰러지지 않았고, 다시 맞붙어 장사를 휘둘러 쓰러뜨렸다. 장사가 다시 겨루자 하니, 김덕령은 범처럼 눈에 불을 켜고 소리를 질러 장사를 죽이려 하였고, 좌우에서 겨우 말려 떼어놓았다. 김덕령의 이름은 이 일로 세상에 알려졌고, 이계의 추천으로 벼슬길에 나갈 수 있었다. 씨름 한 판으로 출세를 했던 것이다. 씨름판은 늘 시끄러웠고 사건을 일으켰다.‘세종실록’ 12년(1430) 12월26일조를 보면 안음현(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사람 박영봉은 김부개와 씨름을 하다가 김부개를 죽인다. 이처럼 씨름은 때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싸움도 흔하다. 명종 15년 5월 단오에 일어난 사건을 보자. 동궁전 별감 박천환은 세자빈객 원계검의 집에 동궁전의 하사품을 전하고 돌아오던 중 단옷날 씨름판이 벌어진 것을 보고 구경에 넋을 잃는다. 박천환은 돌아와 유생들이 자기에게 억지로 씨름을 시켰고, 거부하자 옷과 갓을 찢고 원계검이 쓴 감사문까지 찢었다고 시강원에 호소했고, 시강원에서는 유생들을 조사해 처벌하라고 명종에게 요청한다. 명종은 엄격한 조사와 이후 씨름, 도박, 답교를 금지하라고 명한다. 같은 달 28일 사간원에서는 박천환을 처벌하라고 요청한다. 박천환이 심부름을 갔다가 지체 없이 돌아오지 않고 길에서 씨름을 구경하다가 유생 윤명과 시비 끝에 그를 구타하고, 자기 옷과 사례문을 찢고는 윤명에게 뒤집어 씌웠다는 것이다. 사간원의 보고를 들은 명종은 둘 다 똑같이 처벌하라고 판결을 내린다. ●영조때 씨름하면 곤장 100대로 다스려 이처럼 씨름판은 종종 싸움판으로 바뀌고 때로는 사람이 죽기까지 했으므로 조정에서는 자주 씨름을 금했다.‘영조실록’ 47년(1771) 11월18일조를 보면, 영조는 경기관찰사가 보고한 살인사건을 계기로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이후로 시장에서 씨름을 하거나 아니면 싸움을 하는 것은, 살인 여부에 관계없이 해당 관청에서 곤장 100대를 엄하게 치도록 하라. 서울에서 단오에 벌이는 씨름과 보름에 벌이는 석전을 포도청에서 금지시키도록 하고, 만약 하는 자가 있으면 엄중히 곤장을 치도록 하라.” 씨름을 하면 곤장 100대를 맞는다니 정말 가혹한 처벌이다. 하지만 이 금지 조치는 별 효과가 없었다. 지금도 씨름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예전 이만기 선수가 나올 때 씨름은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었다. 체구가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기술로 제압하는 광경은 정말 볼 만하였다. 요즘은 금강급 태백급이 다 없어져 버리고 너무 큰 선수만 나온다. 이따금 티브이로 씨름을 보지만 기술 아닌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것 같아 서운할 때가 있다. 예전처럼 씨름에 관중이 많이 몰리지도 않는 것 같다. 일본의 스모는 제법 널리 알려져 있고, 관중들이 도시락도 싸 가지고 가서 하루 종일 구경을 하던데, 수천 년 역사의 한국인 유일의 전통 스포츠가 이렇게 밀려나다니 정말 섭섭한 일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민주당 새 로고 ‘소나무’

    민주당 새 로고 ‘소나무’

    “푸른 소나무처럼 국민과 늘 함께 하겠습니다.” 민주당이 31일 당의 새 로고로 ‘소나무’를 확정하고, 새 출발을 알렸다. 아울러 ‘민주당은 국민 편입니다’라는 슬로건도 채택했다. 이 로고는 연한 녹색 바탕에 진녹색 금강송을 형상화해 놓았다. 수묵화가 이호신 화백의 그림을 사용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현대아산 돌파구 찾나

    현대아산 돌파구 찾나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이 결국 중도하차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던 그다. 그 자리에는 전직 통일부 고위관료가 들어왔다. 현대그룹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윤만준 사장 교체 왜? 현대아산은 28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조건식(56) 전 통일부 차관을 신임 사장에 선임했다. 윤 전 사장은 현대경제연구원 상임고문으로 옮겼다.‘경질’보다는 ‘읍참마속’ 성격이 짙어 보인다. 금강산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두 달이 다 돼간다. 그런데도 이렇다할 돌파구가 없다. 여기에 사건 초기 북측 주장 앵무새 대변, 고의 여부를 떠나 사고현장 조작 논란 등이 겹치면서 현 회장은 유·무형의 문책 압력을 받아왔다. 결국 내부에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분위기를 쇄신하고 돌파구를 모색하자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강연 개성사업단장(부사장), 임태빈 관리지원본부장(전무) 등 대북라인을 한꺼번에 물갈이한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정부·북한 소통이냐, 자기진용 짜기냐 조 사장은 서울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대통령 통일비서관, 통일부 제1정책관, 남북회담사무국 상근위원 등 통일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이를 놓고 “정부와의 소통을 원활히 하려는 포석”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가 노무현 정권 때 통일부 차관을 지냈다는 점에서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 측면도 있다. 더욱이 조 사장은 현 정부와 썩 편치 않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장관은 윤만준 전 사장과 절친한 학교(경기고, 서울대) 선후배 사이다. 조 사장은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권 시절 북방정책을 추진할 때 알게 된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 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은 내심 조 사장의 북한내 인맥에 기대를 거는 눈치다. 그러나 전직 관료라고는 해도 ‘금강산 사고’ 책임에서 일정부분 자유롭지 못한 통일부 인사를 후임에 앉힌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다소 보수적 성향의 관료와 대북 사업(비즈니스)은 맞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조 사장도 이날 취임 직후 기자들과 만나 “기업경영 경험이 없는 게 치명적 약점”이라며 “(현대의 대북사업)고비 때마다 관직에 있었던 경험으로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현 회장 초기멤버 완전 물갈이 2003년 10월21일 취임한 현 회장은 그 해 연말 대대적인 쇄신 인사를 단행했다. 강명구 현대택배 회장, 조규욱 현대증권 부회장, 장철순 현대상선 부회장, 김재수 그룹 경영전략팀 사장 등 이른바 ‘가신그룹’을 퇴진시켰다. 현 회장을 두고 “여장부”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다. 가신 중 유일하게 살아 남았던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도 2005년 9월 경질됐다. 최용묵(현대엘리베이터), 김지완(현대증권), 노정익(현대상선) 등 당시 재신임을 받았던 사장단도 오래 가지 못했다. 현 회장 취임 초기 멤버 가운데 ‘생존자’는 김병훈 현대택배 사장이 거의 유일하다. 그룹의 두뇌인 전략기획본부(하종선)와 핵심 두 축인 현대상선(김성만)·현대아산 수장은 외부인사로 물갈이됐다. 현 회장이 고(故) 정몽헌 회장의 색깔을 완전히 지우고 자신의 진용을 짠 셈이다. 공교롭게 현 회장은 지난 25일 신설회사인 현대투자네트워크의 지분 20%(2억원 상당)를 사들여 외아들 영선(23)씨에게 전량 증여했다. 이로써 영선씨는 이 회사 개인 최대주주가 됐다. 후계구도보다는 앞으로의 현대건설 인수전이나 경영권 분쟁 등에 대비한 지분 확보 성격으로 보인다. 황현택 현대투자네트워크 사장이 현대아산의 등기이사로 신규 선임된 것도 연장선상에서 풀이된다. 안미현 박홍환기자 hy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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