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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장 배설의 재판:4(대한매일 秘史:4)

    ◎‘日 강압에 못이겨 고종 퇴위’ 호외/裵說 “舊한국군대 해산 당시 참상 목격” 증언 대한매일은 전날에 이어 1907년 7월19일에도 호외를 발행하였다. 「조칙과 대리」라는 제목의 이날자 호외는 고종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순종에게 양위한다는 조칙(詔勅)을 발표했다는 역사적인 내용이었다. 고종의 조칙은 통한에 사무친 어조였다. 4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려왔으나 자주 환란을 겪으매 “다스리는 것이 뜻과 같지 못하여 혹은 사람을 잘못 써서 소동이 날로 심하고,정사가 많이 어그러져 어려운 근심이 급박하야 백성의 곤란과 나라에 위태한 것이 이때에서 더 심함이 없으니 두려운 마음이 깊은 물을 건너고 옅은 얼음을 밟는 듯 한지라…”로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광무신문지법’ 공포 언론탄압 ‘칼날’ 대한매일은 고종의 조칙을 게재한 다음에 이는 고종의 뜻인지 아닌지 일반인민이 주목할 일이라고 의미심장한 촌평을 가했다. 고종의 양위는 일본의 강핍(强逼)과 내각 대신들의 위협에 못이긴 때문임은 세상사람들이 다 아는 바이다. 그러나고종은 차라리 양위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을사조약에 도장을 찍지는 않겠다는 마음에서 이런 결심을 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한매일은 비운의 황제 고종은 비록 황제의 자리를 내놓을지라도 끝까지 을사조약에 날인하지 않았음을 강조한 것이다. 일본의 협박에 못이긴 황제의 퇴위,한해 전에 체결되었던 을사조약도 고종은 결코 승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대한매일이 호외라는 긴박하고도 극적인 수단으로 보도하자 국민들의 감정은 더욱 들끓게 되었다. 대한매일은 7월17일자와 18일자 논설을 통해서도 일본의 침략을 맹렬히 비판했다. 일본이 한국 황실을 강핍하고 대신을 종으로 부리며,백성을 짐승으로 여기는 행동이 극도에 달했기 때문에 원통한 마음을 품은 한국인들의 반발이 어떤 식으로 일어날지 모르며 각국의 공론도 일본의 잔학한 흉계를 더욱 폭로할 것이라고 말했다. 7월20일 하야시는 고종을 황제의 자리에서 몰아낸 뒤에 24일에는 한국의 내정과 사법권을 완전히 탈취한 「한일협약」과 이의 실행에 관한 비밀각서에 강제로 조인했다. 언론탄압을목적으로 ‘광무신문지법’을 제정 공포한 것도 같은 날이었다. 러일전쟁 직후부터 일본 헌병사령부는 강제로 한국 언론에 검열을 실시하고 있었다. 신문 인쇄 전에 미리 조판된 대장(臺帳)을 헌병사령부에 가지고 가서 검열을 받은 뒤에 신문을 발행하는 것이었다. 한국 침략에 방해가 되는 기사는 모조리 삭제하도록 강요하였으므로 삭제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른바 「벽돌신문」이 매일같이 발행되고 있었다. 벽돌신문이란 기사가 깎인 자리가 마치 검은 벽돌을 쌓아놓은 것 같다는 뜻에서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이완용 내각으로 하여금 광무신문지법을 공포하도록 하여 언론통제의 근거를 제도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대한매일에 의병들 격문 밀물 사태는 더욱 급박하게 전개되었다. 8월1일,마침내 일본은 구한국의 군대를 해산하였다. 군대를 해산 당한 나라가 어찌 독립국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에 저항하는 구한국 군대가 일본군을 공격하자 큰 충돌이 벌어져 양측에서 많은 인명 피해가 났다. 대한매일의 사옥은 대한문 건너편현재의 시청 앞에 있었기 때문에 역사의 현장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3층 건물에서는 고종의 거처였던 덕수궁으로 밀고 들어가려는 군중과 이를 막는 일본군의 충돌 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일본 군인과 순사가 시위군중을 향해 총을 쏘면서 진입을 가로막는 생생한 현장이었다. 배설은 이날 군대해산 당시의 참상도 직접 목격하였다고 재판정에서 증언하였다. 일본군은 서소문 안에 있던 구한국 병영을 급습하였다. 졸지에 공격을 당한 군인들은 도망쳤으나 죽은 사람도 많았다. 배설은 미국 의사 에비슨과 함께 현장에 찾아가서 부상당한 사람을 병원으로 실어보냈는데 한 사람은 총검에 찔린 상처가 18군데나 되었다. 이때 도망한 사람들 가운데는 대부분 의병이 되어 일본군에 항전하였다. 의병활동을 보도하는 대한매일의 기사와 논설은 마치 의병대의 창의문(倡義文)처럼 격렬했다. 의병 봉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대한매일이라고 일본은 주장했다. 대한매일을 읽은 의병들이 더욱 격렬한 항일투쟁을 벌인 것은 사실이었다. 배설은 의병들이 대한매일에 보낸 격문들을 재판장에 들고 나오기도 했다. 그 내용들은 너무도 격렬하여 신문에 그대로 실을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각지에서 들어온 투고의 종류도 다양했다. 이등박문과 주한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長谷川好道)에게 보내는 항의문,각 도민들을 향한 격문,주한 각국 영사들에게 보내는 청원서,의병들에 대한 고시(告示),일본 물품의 배척,한국의 고관들을 공격하는 글 등도 많았다. 대한매일은 국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민족언론인 동시에 항일운동의 총 본산이었던 것이다.
  • ‘崔章集 파문’ 월간조선 販禁/법원,가처분신청 수용

    ◎“허위보도로 명예 침해”/조선일보선 “이의신청” 서울지법 민사합의 51부(재판장 申暎澈 부장판사)는 11일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崔章集 교수(고려대 정외과)가 자신의 한국현대사 연구를 왜곡보도했다며 조선일보사를 상대로 낸 ‘월간조선 11월호’의 판매 및 배포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김홍도 목사 보도’와 관련,방송사 프로그램 방영이 금지된 적은 있지만 중앙언론사가 발행하는 월간지의 판매 및 배포가 금지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조선일보측은 월간조선 11월호 가운데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하지 않고는 발행,판매 또는 배포할 수 없다.또 이 부분을 담은 단행본 일간지 주간지 등 정기간행물은 물론 보도자료 광고지 등의 인쇄물을 배포할 수 없고 인터넷 등에도 관련 내용을 게시할 수 없다.그러나 이미 팔렸거나 서점에 배포된 월간조선 11월호는 회수하지 않아도 된다. 재판부가 월간조선 기사에서 명예훼손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 부분은 ‘6·25는 金日成의 역사적 결단’ ‘개전 초기의 한국전쟁은 민족해방전쟁’‘38도선 이북으로의 북진은 가공할 사태이며,중공군 개입을 정당화하였다’등 10군데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앞뒤 문맥을 살펴볼 때 ‘역사적 결단’이라는 문구는 흔히 사용하는 ‘역사에 남을 훌륭한 결단’의 뜻이 아니라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줄 선택’ 정도의 가치 중립적 표현이 분명한 데도 월간조선은 이를 큰 제목으로 부각시켜 崔교수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부여할 수 있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이어 “崔교수는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용어를 ‘북한 당국자들이 생각했던 한국전쟁의 성격’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 명백함에도 월간조선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용어가 崔교수의 생각 그 자체인 것처럼 독자들에게 읽혀지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가공할 사태’ 대목에 대해서는 “崔교수의 글에서 ‘가공할 사태’란 3차대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설령 3차대전이 38도선 이상의 북진으로 인하여 야기될 수 있는 뜻으로 해석되더라도 기사에서처럼 북진 자체가 가공할 사태라는 의미가 아님이 분명하다”고 밝혔다.崔교수측의 소송대리인인 安相云 변호사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할 계획은 없으나 이번주 안으로 언론중재위원회에 반론보도 심판청구와 정정보도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재판부가 명예훼손과 관련,가처분 범위를 너무 넓게 해석했다”면서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 통감부와 대결(다시 태어난 ‘대한매일’:8)

    ◎침탈·탄압에 맞대응/매국노·침략자 규탄/신문지법 등 공포 맞서 논설 통해 간담 서늘케/민족혼 고취·항일 주도 1906년 1월31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초대 통감으로 하는 통감부가 발족되면서 국내 언론은 이전과는 판이한 양상을 띠게 된다. 각국 공·영사관의 철수를 강행,열강의 모든 권익을 빼앗은 통감부는 매국내각을 구성한 뒤 본격적인 한국침탈에 걸림돌이 되는 언론에 대한 탄압에 돌입했다.1906년 4월부터 통감부령 제10호로 언론활동의 통제조항을 둔 보안규칙 시행에 들어간 것을 필두로 1907년 7월24일 李完用 내각으로 하여금 ‘광무신문지법’을 공포토록 해 본격적인 항일 민족지 죽이기에 들어간 것이다.대한매일신보도 1908년 4월 개정된 이 신문지법에 따라 결국 철퇴를 맞고 말았다. 이 시기 통감부는 대한매일에 대해 유달리 집중적인 압력을 가해왔다.대한매일이 을사조약 이후 항일의 필치를 높여간 만큼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이러한 상황에서도 대한매일은 ‘영국인 사주’(裵說)덕에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아 날카로운필봉을 어김없이 휘둘렀고 매국자들을 예외없이 고발했다.그러나 결국 신문지법을 대동한 일제의 탄압에 한껏 타오르던 항일 민족혼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1906년의 보안규칙 시행이나 1907년의 신문지법은 처음엔 국내에서 발행되는 민간신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그러나 통감부는 사사건건 물고늘어지는 명의의 대한매일을 그냥 놓아둘 수 없었다.따라서 1908년 4월29일 신문지법을 개정,대한매일의 기세를 꺾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신문지법은 일본의 통감정책에 저해되는 일체의 언론에 대해 발행정지권을 비롯해 벌금형과 체형,신문 인쇄기기 몰수 등 강력한 처벌조항을 담았다.더욱이 1907년 7월24일 신문지법을 발포한지 닷새만에 집회·결사를 금지하는 보안법이 공포되고 31일 한국군대까지 해산된 것을 보면 대한매일을 비롯한 항일 민족지에 대한 통감부의 탄압이 얼마나 치밀한 것이었나를 알 수 있다. 이 법은 1910년 한일합병이 강행된 뒤에도 계속 발효됐고 해방후 1952년까지 존속한 식민지 악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가장 날카로운 논봉을 들고 나선 것은 역시 대한매일이었다.정부가 허수아비로 전락한 마당에 숱한 애국지사들은 자유로운 필치를 유지하는 대한매일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통감부와 관련한 일련의 논설들은 이같은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통감부 설치 직후인 1906년 2월9일자 1면 논설 ‘통감(統監)’과 3월9일자 1면 논설 ‘이등후(伊藤侯)’는 통감부 설치의 불법성을 비난한 대표적인 예다.“일본이 이웃나라 안에 자기나라 대표를 파견해 권력을 장악함은 옳지 못한 일”(統監),“한국의 내정은 일인이 지휘하고 외무는 동경에서 관할하니 한국의 독립이란 어디 있느냐”(伊藤侯). 또 8월15일자 논설 ‘한국과 일본’에선 “이등박문은 현존 한국의 노예같은 정부 대신을 지휘해 모든 일을 자기가 집행함이 한국을 일본에 정복된 국민의 지위에 떨어뜨리는 제반 악계를 꾸몄다”고 폭로했다.1907년 1월16일자에는 “을사5조약을 승인하지 않으며 열국의 보호를 요청한다”는 고종의 칙서를 발표해 침략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친일정부가 발행하는 관보 게재를 중단한 것도 획기적인 일이다.법령공포와 정부시책 홍보가 내용인 관보는 한일합병 때까지 발간된 대부분의 신문들이 중요 내용을 전재할만큼 큰 뉴스원이었고 신문보급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그러나 일본이 득세하면서 자주성과 독립성을 잃게 됐고 관보기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익어갔다.대한매일은 마침내 1908년 3월6일자 1면 논설 ‘관보정게(官報停揭)’에서 “관보의 내용이 과연 한국사람의 관보인가”라고 쓰고 이날부터 관보란을 폐지했던 것이다. 이처럼 거듭되는 배일 논조에 격분한 통감부는 마침내 裵說 타도를 결의하고 나섰고 대한매일은 일제의 집요한 탄압에 강하게 맞선 裵說과 논진(論陣)이 추방 혹은 구속되면서 서서히 시들어갔다. ◎신문사들의 수난/주요 재원 신문대금 체납 ‘눈덩이’… 경영난/社告로 납부 독촉… 日帝 탄압에 곡필 보도도 통감부의 언론탄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국내 언론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게 된다. 사전검열에 따른 기사삭제,반포금지 및 정간이횡행하자 자연 독자들의 신뢰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따라서 당시의 신문,특히 민족지들은 광고수입이 적은데다 주요 재원인 신문대금의 체납이 많아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따라 자유로운 논조를 펴지 못하는 지경에 빠졌다. 실제로 내부 경무국이 펴낸 ‘고문경찰소지’(1910년 간)에 따르면 통감정치 첫해인 1906년 한 해만 하더라도 황성신문은 7건,만세보는 6건,제국신문은 13건이나 기사를 삭제당했다.또 1909년 ‘경찰사무개요’와 ‘조선통감부 시정연감’은 발매반포금지 및 압수처분의 경우 1908년 64건,1909년은 137건으로 기록하고 있다.대한매일만 하더라도 1909년 한 해 동안 발매반포금지 14건에 모두 1만6,314부를 압수당했다. 이같은 탄압이 전개되자 신문 운영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민족지들은 대중적인 호소에 적극 나섰다.사고와 잡보를 통해 독지가의 성원과 신문대금 납부를 촉구하기에 이른 것인데 그 사정이 매우 급박했음을 알 수 있다. 황성신문은 “신문대금을 빨리 지불하는 사람은 문명인이라”는 이례적인 사고를 냈고 어떤 대신이 체납금을 보내왔다는 사실을 기사로 보도하기까지 했다.사설에서도 “독자가 신문대금을 지불치 않으므로 신문을 발행 못한다”고 쓰고 있다. 대한매일도 사고에 “본사가 이전하겠는데 수리 정돈에 경비가 매우 모자라니 대금을 송치해주기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심지어는 “각 지점에서 본사 대금 체납이 많은데 평양지점은 미납급이 300여원에 달했으니 본사경비를 어떻게 충당할 수 있겠는가”라며 재촉하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한 잡보에는 “재정난으로 휴간한 제국신문의 복간을 위해 각 부인회에서 보조금을 모집하기로 했다”는 글까지 올린 것을 보면 당시 언론이 얼마만큼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 정부 부처 홈페이지엔 비판이 없다/네티즌의 질책 임의삭제 일쑤

    ◎여론광장 이름뿐 각 정부 부처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네티즌들의 글을 마구 삭제해 물의를 빚고 있다.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개설한 홈페이지에는 모두 여론광장이라는 코너가 있으나 부처를 비난하는 글이 올라올 경우 사전고지 없이 삭제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 용인시 홈페이지에는 용인시장이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후 “용인시 공무원은 각성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실리자 시에서 임의로 삭제했다. 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공무원 사회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답변할 가치가 없었다”고 밝혔다. 행정자치부도 홈페이지 ‘열린마당’에 실린 구조조정안에 대한 의견 등을 삭제해 ‘열린마당’의 취지에 맞지 않다는 네티즌들의 항의문이 일제히 올랐다. 서울 송파구청 홈페이지도 마찬가지.제2롯데월드 건설과 관련,교통영향평가가 잘못됐다는 주민들의 비판이 담긴 글이 삭제되기도 했다. 이처럼 정부 부처가 여론을 모으기 위해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의 글들을 무단 삭제하는 것은 또다른 여론조작이라는 비난이 많다.PC통신 등에서도 인신공격성 글이나 광고문구가 오를 경우 삭제하는 일이 있지만 사유를 밝히고 삭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 네티즌은 “정부부처가 입맛에 맞는 여론만 수집하려는 것이라면 홈페이지 개설의 의미가 없다”면서 “심한 비방성 글일 경우라도 삭제사실을 알리고 삭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행자부 열린마당 ‘위험수위’/비방·욕설 점입가경… 폐쇄론 고개

    ‘국무회의에서 군복무 가산점을 반대한 ○○○,△△△은 할복하라’‘혼자 잘난 척 하면서…괘씸하기 짝이 없구만.…혹시 책쟁이 아냐?’‘제 정신이 아닌가봐.바보 아냐?’‘◇◇◇는 철이 없는건지,세상물정을 모르는건지…’ 지난 4월7일 개통 이후 3개월여만에 최대의 공무원 사이버 토론장으로 부상한 행정자치부 홈페이지 ‘열린마당’이 갈수록 비방과 욕설로 오염돼 이용자들의 짜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띄워진 글 가운데 상당수가 공무원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심각한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하이텔,천리안 등 일반 PC통신망의 일부 게시판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정도이다. 한 이용자는 “자기 생각과 다른 의견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보다는 욕설로 매도하는 사람들이 민원인들을 대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할지 정말 우려된다”며 “이런 작태는 건전한 토론 정착을 위해 절대로 묵과해서는 안된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열린마당의 폐지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어떤 이용자는 “남을 비방하는 말만 가득찬열린마당은 더이상 우리가 가야할 곳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아니다”면서 “이곳을 폐쇄하도록 행자부에 압력을 넣자”고 주장했다. 반면 ‘바보 아냐’라는 이름을 쓰는 한 게시자는 “갓 쓰고 도포 입고 점잔 뺀다면 열린마당에는 스산한 바람만 불 것”이라며 “혼자만 이야기 하고 답변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여기를 드나들겠느냐”고 반박했다. 홈페이지 관리자측은 언어폭력의 정도가 심해지자 지난 23일 당초 취지에 어긋나는 글을 게시하면 즉시 삭제하겠다고 공개 경고했다.시범케이스로 28일 의미 없는 욕설들을 담은 글 2건이 삭제됐다. 행자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어지간한 글들은 삭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지만 앞으로는 관리자로서의 다양한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고 말해 욕설과 비방을 몰아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 명심보감에 오류있다/조곤섭 서울 가양7 사회복지관 강사(발언대)

    사회활동에서 은퇴하고 봉사하는 뜻으로 복지관에서 국사·고전 강의를 하는 사람이다. 명심보감은 효사상 고취는 물론 마음을 순화시키고 또 도의교육에 아주 좋은 책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런데 이 명심보감에 몇군데 잘못된 부분이 있어 밝혀볼까 한다. 첫째 순명편 처음에 “자왈 사생유명이요 부귀재천”이라 하였다.이것은 논어의 안연편 5장에 있는 것으로,“사마우가 근심해 말하기를 남들은 다 형제가 있는데 나만 없도다 하니 자하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사생은 명에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 하더라.군자가 조심하여 과실이 없으며 남에게 공손하고 예의가 있으면 세상 사람이 다 형제가 되는 것인데 군자가 어찌 형제없음을 근심하리오”라고 하였다. 이같이 공자가 직접 언급한 것이 아니며,자하도 남의 말을 인용했을 뿐이다.더구나 공자는 운명론적인 말씀을 하실 분이 아니며 이것을 확대해 보면 공자사상에 관한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자칫하면 공자를 운명론자로 오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절 중에 ‘자왈’은반드시 삭제해야 한다. 둘째 근학편 처음에 “자왈 박학이독지…”라는 글이 있는데 이것은 논어의 자장편 6장에 나온다.이 말도 공자께서 하신 게 아니라 자하가 한 것이므로 ‘자왈’을 ‘자하왈’로 고쳐야 옳다. 끝으로 준례편에 “자왈 군자 유용이무례면 위난…”하는 부분은 논어 양화편 23장에 나오는데 ‘무례’가아니라 ‘무의’이다. 잘못된 것을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어 공개하니 학계의 논의를 거쳐 명심보감을 중간할 때는 정정하는 것이 옳으리라 본다.
  • 고영복씨 통장 20개 압수 조사/북 공작금 사용 추궁

    ◎교과서 실린 글 삭제키로 부부간첩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과 안기부는 24일 고정간첩침정웅(55·구속)이 66년부터 7차례에 걸쳐 남파간첩 등으로부터 1천5백여만원의 공작금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고 사용처를 추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서울대 명예교수 고영복씨(69·구속)가 북한의 공작금을 받아사용했는지 여부를 캐기 위해 고씨의 은행예금 통장 20여개를 압수,거래 내역을 조사중이다. 침씨는 공작금의 사용처와 관련,“58년과 66년 2차례에 걸쳐 입북해 공작금으로 미화 1천달러와 3백만원을 받았으나 1천달러는 잃어버렸고 3백만원과 이후 남파간첩들로부터 받은 공작금은 각종 모임에 참석하는 비용이나 부조금 등으로 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러나 침씨가 가입하거나 결성한 모임이 7개나 되고,북한으로부터 “조직을 많이 만들어 결성 상황을 보고하라”는 지령을 수시로 받은 점을 중시,동조세력을 규합하는데 공작금을 썼는지 등을 캐고 있다. 한편 교육부는 중학교 2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 39∼43쪽에 실린 ‘우리 청소년’이란고교수의 글을 삭제하기로 했다.
  • 대선 3파전 세대결 가속

    ◎이회창 총재­3김청산·김 대통령 탈당 재촉구/DJ·JP­단일화 서명… 김대중 후보 추대/이인제 후보­오늘 창당대회… ‘세대교체’ 깃발 국민회의·자민련의 ‘DJP 연대’의 공식출범과 더불어 대선구도가 이회창­­김대중­이인제 후보의 3각구도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이들 후보진영은 3일 지지층을 넓히기 위한 차별화 기치를 내걸며 대선 필승 D­45일의 대장정길에 올랐다. 특히 이날 서명식을 가진 DJP연대에 맞서 ‘3김 청산’을 내건 신한국당 이총재와 ‘세대교체’의 (가칭)국민신당 이후보는 민주당 조순 총재와의 연대가 오는 26일 후보등록전 후보별 지지도 2위를 확정짓는 주요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활발한 물밑 연대 접촉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결과가 주목된다. 이와관련,민주당 조순 총재는 이날 모여성지가 주관한 여성정책토론회에 참석,후보용퇴의 뜻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나라를 위해 대통령이 되는 것은 수단이며,정치발전을 위해 몸을 던질 각오를 갖고 있다”고 밝혀 향후 그의 선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국민회의 김대중·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이날 하오 후보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집권할 경우 향후 5년간 공동정부 구성 및 오는 99년말까지 내각제 개헌 완료를 대국민 공약으로 발표했다.두 김총재는 또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분열정치의 청산과 지역·계층·세대를 넘어 통합과 참여의 정치를 실천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서명식에 앞서 각각 당무회의·의원총회 연석회의와 임시당무회의를 열어 양당의 후보단일화 합의문을 추인했으며,국민회의는 현 강령중 ‘대통령직선제 유지’ 대목을 삭제하는 한편 ‘내각책임제를 추진한다’는 대목을 신설,당론을 내각제로 바꿨다.두 김총재는 4일 박태준 의원이 자민련에 입당하면 5일 3자회동을 갖고 ‘DJT 연대’를 성사시켜 대구·경북세력 확산에 나설 예정이다. 신한국당 이총재는 이날 하오 대전 유성리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3김청산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이총재는 ‘정치혁신을 염원하는 국민에게 드리는 글’에서 DJP연대를 강도높게 비난하고공정선거관리를 위한 김영삼 대통령의 당적 이탈을 거듭 촉구했다.그는 “당의 문호를 활짝 열어 3김정치 청산과 정치대혁신에 공감하는 모든 세력들과 기꺼이 협력하겠다”고 말해 민주당 조순 총재와의 연대 용의를 강력 시사했다. 또 신한국당 오세응 국회부의장과 김중위 김진재 현경대 의원 등 민정계 중진 8명은 이총재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그러나 비주류측의 국민연대는 성명을 내고 반DJP 연합에 반대하는 모든 후보 및 정치세력의 연대를 촉구하면서 의원·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 개최를 지도부에 촉구해 당내분이 장기화될 조짐이다. 국민신당은 4일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중앙당 창당대회를 갖고 이 전 지사를 대통령후보,이만섭 전 국회의장을 총재로 각각 선출한다.국민신당은 창당선언문을 통해 세대교체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방침이다.
  • 웃는 DJ·어색한 JP 대조적/DJP 단일화서명식 이모저모

    ◎DJ ‘희망의 정치’ 역설… 이인제씨 비난/JP “미련없다” 구국의 결단 집중부각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대선후보 단일화 서명식이 3일 국회 내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양당은 DJP 단일화의 정치적 의미부각에 초점을 맞춰 조촐한 행사로 진행했으나 최근 거세지고 있는 DJP 역풍(역풍)을 의식한듯 다소 무거운(?) 분위기가 장내에 감돌았다. ○…양당 총재는 합의문 서명식을 마치고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란 인사말을 통해 각자 입장에서의 비장감을 토로했다. 먼저 단상에 오른 김종필총재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30년 정치 역정 속에 어려운 결심을 했다”며 후보사퇴를 공식 선언한뒤 “대통령이 되고 안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으며 내가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않았다”고 구국을 위한 결단임을 부각. JP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아는 두 힘이 창조적으로 결합하면 가장 바람직한 국가영위가 이뤄진다”며 최상의 정권을 약속.그러나 김총재는 연설말미에 DJ를 겨냥,“분별없고 지킬수 없는 약속은 죄악”이라며 내각제에 대한 DJ의 약속이행을 우회적으로 압박. DJ는 DJP와 박태준의원이 결합한 이른바 DJT 연대의 정권능력을 앞세워 집권후 청사진 제시에 초점.“세사람이 하나로 뭉쳐 분열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화합과 통합의 시대에 맞는 최선의 국정을 펼치겠다”며 희망의 정치를 약속. 그러나 DJ는 연설말미에 김영삼대통령과 이인제전지사를 싸잡아 정면공격을 시도.최근 청와대의 이전지사 지원설을 겨냥,“세로운 당은 제2의 김영삼 정당”이라고 규정한뒤 “그 당이 정권을 잡으면 참담한 실패와 부패가 5년간 지속되는 것”이라며 공격. ○…양당 총재는 ‘본 합의를 승인합니다’라는 문구의 합의문 표지에 준비된 서명란에 나란히 서명,교환 후 두손을 지켜들며 환호에 화답.DJ는 활짝 웃는 표정을 보였으나 JP는 다소 어색한 웃음을 지어 대조.한편 양당은 합의문 전문과 본문을 협상기구 대표인 한광옥,김용환부총재가 각각 나눠 낭독하는 등 서명식에서부터 철저히 ‘동등지분’을 행사해 눈길. ○…이에앞서 국민회의와자민련은 당무위원·의원총회 연석회의와 당무회의를 각각 열어 DJP단일화를 추인.국민회의는 대통령제 당강령을 삭제하고 대신 내각 책임제를 채택하고 당헌·당규도 ‘내각제 시행과 동시에 수정한다’는 조항을 삽입.JP도 “최선을 다해 공동정권을 세우고 보람을 나누자”며 박수로 추인.
  • PC통신에 괌참사 예언/사고6일전 거대한 비행기사고 꿈내용 띄워

    한 PC통신인이 괌에서 발생한 KAL여객기 추락사고를 예견하는 꿈을 꾼뒤 그 내용을 사고발생 엿새전에 PC통신에 실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화제다. PC통신 나우누리 가입자인 박상현씨(love112)가 지난달 30일 ‘불가사의 게시판’코너에 “제가 꿈을 꾸었습니다.아주 거대한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고….제 꿈에서 일어났습니다.비행기 사고….모든 사람이 죽고 소수의 사람만 살 것입니다.아”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것. 글을 띄운지 6일만에 여객기 추락사고가 현실로 나타나자 박씨의 글을 놓고 신기하게 맞았다는 쪽과 우연의 일치거나 무언가 장난을 친 것이라는 엇갈린 반응의 글들이 통신에 올려졌다. 나우누리측은 박씨가 불필요한 논란과 오해를 우려해 뒤에 이 글을 자진삭제했다고 설명했다.
  • “비방·불법행위 조장 PC통신 삭제 정당”/한통노조 패소판결

    서울고법 민사16부(재판장 최병학 부장판사)는 12일 파업기간 중 PC통신 전용 게시판을 무단 삭제한데 따른 정신적 피해를 배상하라며 한국통신 노조가 PC통신망 하이텔의 운영업체인 한국PC통신(주)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유없다”며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PC통신 정보서비스 이용 약관에 특정인을 비방하거나 불법행위를 조장하는 내용 등이 실린 게재문을 통신운영업체가 삭제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따라 한국PC통신이 정당하게 삭제했다”고 밝혔다. 한국통신 노조는 95년 5월 파업을 독려하고 정부와 회사를 비방하는 내용의 글 28건을 노조 전용 PC통신방(CUG)에 게재했다가 한국PC통신이 이를 삭제하자 소송을 냈었다.
  • 후지오카저 「일본에서 가르치지 않는 역사」 베스트셀러에

    ◎끝없는 일 극우 망동/“일제 알려진만큼 나쁘지 않다” 주장/정치인·언론 등 내놓고 지지 【로스앤젤레스 연합】 『일본제국의 죄상은 실제보다 과장되게 알려져 있으므로 일본정부는 역사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우파 지식인의 저서가 일본에서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으며 그의 주장은 각계각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보수파 학자들을 이끌며 일본역사 새로쓰기 운동을 펴고 있는 도쿄대 교육학교수 후지오카 노부카츠의 존재는 일본인들의 상처받은 민족주의를 반영하는 것이며 그의 과격한 주장을 둘러싼 논쟁은 21세기를 맞는 일본이 추구하는 국민적 정체성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후지오카는 2차대전중 종군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남경대학살을 정당화하는가 하면 『종군위안부는 섹스노예가 아니라 보통 매춘부들이다』,『종군위안부로 동원됐었다는 말 한마디로 돈을 받을수 있다면 이는 복권에 당첨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등 극단적 망언을 일삼아 일본내 여성단체들로부터도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 된 인물.그러나 최근 그가 산케이신문에 연재된 보수파 학자들의 글을 모아 펴낸 「일본에서 가르치지 않는 역사」라는 책은 무려 80만권이나 팔렸으며 그를 지지한다고 공언한 사람들도 62명의 자민당 의원과 일부 야당의원,산케이신문,저명작가,비평가,정신분석학자,인기 만화가 등 일본사회 각계를 망라하고 있다. 이를 반영,최근 미야기현 교육위원회가 남경대학살을 기술한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의 사용을 금지했으며 11개 현정부가 교과서에서 위안부 부분을 삭제하도록 중앙정부에 요청하는 등 일부 지방정부들이 그의 견해에 동조하고 나섰다. 후지오카는 호카이도대학 재학중 공산당에 가입하는 등 열렬한 좌파운동가로 활동했으나 70년대 들어 사회주의에 환멸을 느껴오다 걸프전쟁으로 「각성」,극우파로 변신한 교육학자이다.
  • 7월의 소프트웨어상/LG 「종이와 연필 그리고 물감」

    ◎유치원·초등생용 워드프로세서/편지 등 간단한 문서작성에 편리 정보통신부가 우수 소프트웨어제품의 유통을 촉진하기 위해 제정한 「신소프트웨어상품상」 7월의 수상작으로 LG소프트웨어의 어린이용 워드프로세서 「홈워드­종이와 연필 그리고 물감」이 선정됐다. 홈워드는 유치원생 및 초등학생용 워드프로세서로 문서편집기능 뿐 아니라 다양한 조각그림,예쁜 문서틀,그림그리기‘음성도움말 기능을 갖췄다. 편집기능은 편지나 카드,육아일기 등 간단한 문서작성에 적합하며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예쁜 조각그림들이 1천개 남짓 들어 있어 원하는 그림을 골라 쓰기 쉽다. 또 재미있는 그림그리기 기능을 선택하면 하얀 도화지 위에 직접 크레파스를 들고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색깔과 선굵기를 자유롭게 바꿔가며 수정이나 삭제도 할 수 있다. 이밖에 팬시와 편지지 같은 예쁜 바탕그림을 50개 정도 제공하고 있어 원하는 바탕그림을 골라서 문서를 재미있게 작성할 수 있고 윈도95 전용 확장 글꼴이 4개나 들어 있어 예쁜 문서를만들 수 있다.
  • 인터넷에 게시판… 동호회도 국제화/하이텔 동호회 「NET!」개설

    ◎기존과 달리 화상정보 사용/외국서도 회원가업 길 열어 PC통신 하이텔 동우회 「NET!」가 최근 자신들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한국통신 인터넷서비스 Kornet를 이용,게시판을 개설했다. 게시판서비스는 그동안 주로 국내 PC통신에서 소그룹별로 채팅,낙서,신상고백,정보교환 등을 위해 쓰였지만 인터넷에 게시판이 개설된 것은 드문 일이다. 인터넷게시판은 동우회회원의 범위를 외국으로까지 넓힐 수 있어 「동우회의 국제화」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NET!」는 하이텔 고양시 통신애호가들의 모임인 「자유로」회원들 가운데 인터넷에 관심이 많은 10여명이 만든 소모임. 게시판은 이들이 각자의 개인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드는데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개설한 것이다. 이 게시판은 미국 「Matt Wright」사의 게시판프로그램을 인터넷전문가인 김충곤씨(42)가 우리실정에 맞게 수정해 「NET!」의 인터넷 홈페이지인 「자유로」에 설치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Perl Script방식으로 만들어져 텍스트형태의 정보만을 주고받던 기존 게시판과는 달리 화상정보를 보낼 수 있다.또 먼저 통신을 띄운 사람이 설정한 제목밑에 이에 대한 답장이 자동적으로 뜨게 돼있어 매우 편리하다.필요없는 게시판의 글을 삭제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내장돼 있다. 자유로 홈페이지 웹마스터인 김정환씨(36)는 『일부 인터넷전문가들이 외국의 게시판프로그램을 국내 인터넷서비스업체의 망에 연결시킬 수 있도록 수정한 프로그램이 하이텔인터넷에 공개됐다』고 소개하고 『이에 따라 인터넷게시판 개설이 매우 쉬워졌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외국인들과의 동우회활동이 가능해졌으니 이를 통해 식견을 넓힐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인터넷 「자유로」홈페이지 주소는 http://soback.kornet.nm.kr/∼frees/〈김환용 기자〉
  • PC통신 선거법 저촉 여부 논란

    ◎「정치인들의 방」 개인홍보 창구로 전락/선거운동 기간전 폐쇄·존속싸고 설전 4·11총선을 50여일 앞두고 PC통신망에 개설된 정치인들의 방(포럼)이 선거법에 저촉되는지 여부로 논란을 빚고 있다. 비 선거철」에 띄워놓았던 자기 PR성 게시물들이 선거운동 금지기간인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어,사전 선거운동 시비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중앙 선거관리 위원회는 20일 자체 조사결과와 통신망 사업자의 질의에 따라,통신망에 띄워놓은 정치성 게시물들의 위법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결과는 다음 주 발표한다.위법이라는 결정이 내려지면 오는 3월26일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가기 전까지 잠정 폐쇄나 일부 삭제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선관위도 이번 선거가 94년 5월 통신망에 정치인 방이 만들어진 이후,처음으로 치르는 총선이어서 마땅한 선례가 없어 고심 중이다. 이용자수 1백만명으로 추산되는 하이텔과 천리안 등에 방을 개설한 정치인은 최초 개설자였던 민주당 L전의원을 비롯,40여명이다. 정치인 방은 그동안 「전자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기대와 달리 단순한 개인 홍보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자화자찬이 난무하며 경쟁자에 대한 비난도 있다.자신의 저서를 과대 홍보하기도 한다. 선거가 임박한 지금도 『○○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 『○○○는 정계를 떠나라』는 식의 주장과 정치인의 동정소개및 강연회 안내 등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선관위 관계자는 『자신이나 소속 정당에 대한 지지 호소는 엄격히 금지돼 있으며,현역 의원의 경우 의정보고 활동만 가능하다』며 『이런 기준으로 볼 때 게시물 가운데 상당수가 위법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정치인이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이용자가 통신망 이용료와 전화비를 스스로 부담하며 자발적으로 통신망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위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이텔의 한 관계자는 『선관위와 검찰 등에 정치인 방의 위법성 여부에 관해 질의해 놓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위법이라는 결정이 나오면 종전에 띄운 문제의 글을 삭제하기보다는 아예 방 자체를 잠정 폐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 유언비어·특정후보 비방 통신 속출/PC통신망 관리 “비상”

    ◎천리안·나우콤 20여건 삭제소동/경찰 “조직적 불법운동 사법처리” 6·27 지방자치선거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컴퓨터통신망으로 각종 유언비어를 살포하거나 특정정당과 후보를 비방하는 등 타락선거를 부채질하는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통신망에 비상이 걸렸다. 컴퓨터통신망은 선거에 관련된 게시물도 선관위의 사전심사 없이 일반대중에게 바로 전달되는데다 일단 내용이 실리면 수많은 이용자가 한꺼번에 볼 수 있어 그 파급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한국통신의 하이텔,데이콤의 천리안,나우콤의 나우누리,에이텔의 포스서브 등 대형통신망 이용자 1백만명 가운데 60∼70%가 입후보자들의 주된 공략대상인 20∼30대 젊은 부동표층이라는 사실도 이같은 우려를 더욱 깊게 하고 있다.게다가 일부 게시물은 벌써부터 욕설이나 지지·비방 등 선거법을 명백히 어기고 있어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조짐이다. 경찰은 이에 따라 8일부터 컴퓨터통신망에 전담경찰관을 배치,전자게시판이나 전자우편 등을 이용한 조직적 불법선거운동을 가려내 사법처리하기로 했다.이와 관련,정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고발센터에는 이달 들어 이미 20여건의 선거관련 불온게시물이 고발됐다. 천리안은 최근 선거와 관련된 글 가운데 10여건을 통신망에서 지워버렸다.나우누리에서도 10여건이 삭제됐다.그 가운데는 직접 선거와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서울시장후보의 글도 있었다.사전선거운동이라는 이용자의 신고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워버린 게시물은 대개 「○○당후보는 찍지 맙시다」「△△△후보는 거짓말쟁이다.반드시 낙선시켜야 한다」라는 식으로 조직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 감정을 표현한 글이 주류였다.그러나 선거전이 가열되면 횟수도 크게 늘고 조직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하이텔은 지난달 30일 「특정후보나 정당을 지지 또는 비난하는 글을 올리면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공지사항을 모든 사용자에게 전달하고 선거관련 법규와 부정선거사례도 예시했다.10명이던 게시판의 모니터링 요원도 30여명으로 증원했다. 천리안도 비상체제에 들어가 8명이던 모니터링요원 말고도 운영과 직원 40명을 특별감시반으로 편성,선거관련 저질게시물의 적발에 나서는 한편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구체적인 지침이 나오는대로 이를 어기는 사용자에 대해서는 경고 및 사용정지처분을 내리기로 방침을 정했다.정보통신윤리위원회 박민(31) 대리는 『단 5분동안만 통신망에 떠 있어도 무수한 사람이 접하게 되므로 문제를 신속히 발견해 삭제·경고 등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후광 김대중 대전집」 출간/30여년 정치활동 관련 글·연설 담아

    김대중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이 지난 30여년동안 정치활동을 하면서 발표한 글과 연설내용등을 한데 모은「후광 김대중 대전집」이 15권짜리로 최근 출간됐다(중심서원 간). 전집의 구성은 주제·형태에 따라 구분,주제별로는 ▲지난 92년의 모스크바대 박사학위 논문집 ▲대중경제론 ▲통일론 ▲대독재투쟁등을 각각 한권으로 모았으며 대담·토론·기고문·옥중서간·강연·국회발언집들을 각각 1∼3권에 정리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소개된 적이 없는 많은 자료들이 이 전집에서 처음 공개됐다. 미공개 국회발언을 비롯해 ▲유신정권 말기에 발표한 각종 성명서및 외국언론과의 인터뷰 ▲옥중에서 부인·아들·며느리에게 보낸 편지의 삭제되지 않은 내용 ▲국회의원 선거 첫 출마 때부터 13대 총선 지원유세까지의 연설문등이 그것이다. 한편 출판사측은 『전집에 실린 글들은 김이사장이 직접 집필하거나 연설한 내용만을 수록했으며 원래의 뜻을 살리기 위해 맞춤법에 맞게 고친 것말고는 원문을 그대로 실었다』고 밝혔다. 값 18만원.문의(02)325­80 51∼5.
  • 피상적인 통일교육(교육 개혁해야 한다:16)

    ◎“구호만 요란”… 냉전논리 「반공」서 맴돌아/인식바꿔줄 교재도 마련못해/자유총련의 위탁교육에 의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구호는 있어도 초·중·고교에 「통일교육」은 없다. 남북통일이 우리민족의 지상과제라는 목소리만 요란 할 뿐 통일을 성취하기위해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교육은 방치되어 있다. 이때문에 우리나라 학생들은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백지나 다름없고 극히 피상적인 지식수준에 머물고 있다.심지어 아직도 반공이데올로기만이 통일을 위한 최고 덕목처럼 생각하고 있는 실정이다. 각급 학교에서의 통일교육은 종전의 북한에 대한 「적대감 고취교육」에서 탈피해 통일 지향적으로 나아가자하는 의도에서 정부가 10년전부터 새로 도입했다. 그러나 현재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이 통일교육도 내용적으로는 과거의 반공교육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일정한 교재·교육과정이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실시되고 있다. 초·중·고교의 통일교육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장 중요한 과목이 얼마나 소홀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현재 국민교와 중학교는 일주일에 2시간씩 배정된 도덕과목에,고교는 주1시간씩의 국민윤리 시간에 통일교육을 실시하도록 권장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국민학교의 경우는 일정한 교재도 없고 가르칠만한 교사도 없다.중·고교는 각각 도덕·국민윤리 교과서의 맨 끝에 통일관련 단원이 있으나 매학기마다 이 단원까지 가르치는 학교는 거의 없다.한마디로 학교에서의 통일교육은 전무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다행히 한국자유총연맹(총재 최호중)이 전국의 초·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자유민주 통일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연맹측은 지난 67년부터 「1일 반공학교」를 개설,매년 서울시내 고교생 2만7천명 정도를 교육시켜오다 80년 중반부터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각 시·도단위 지부별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체교육을 하고 있다.지난해의 경우 전국에서 1천6백88회의 교육을 실시,48만7천9백명의 학생들을 교육했다. 교육내용을 보면 이론강의 3시간,시청각교육 2시간으로 편성되어 있고 이론과목은 ▲자유민주주의 우월성▲북한의 실상▲통일한국의 미래로 짜여져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체제의 비교,통일을 성취하기위한 북한사회의 실상,통일의 당위성 및 통일을 위해 모색해 나가야 할 방향등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자유총연맹 경기도지회의 경우 지역적으로 가까운 경기지역 학생들에게 전방이나 땅굴을 견학시켜 매년 6만8천여명이 통일교육을 받고 있다. 이밖에도 연맹측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통일웅변대회」 「시·산문등 글짓기대회」를 개최하여 통일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학교에서 담당해야 할 통일교육을 학교가 아닌 다른 기관에서 더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6월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우리 국민이 북한을 「불신 74%·공존공영의 대상 80%」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을 「적」으로 여기면서도 남북통일을 통해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양면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이는 오랫동안 북한을 「타도해야 될 적」으로만 인식했던 풍조에서 상당히 변화된 것이다. 독일이 흡수통일의 방식으로 통일을 이룩한뒤에도 40년이상 분리돼 생활했던 동서 통합의 충격을 덜 받았던 것도 통일에 대비한 꾸준한 학교·사회교육의 덕택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적대의식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융화하려는 노력을 계속 모색해온 결과였다. 하지만 우리의 학교교육은 최근의 남북관계의 변화조차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북한체제와 공산주의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데 치중되어 있다. 그나마 고등학교의 윤리교육은 입시준비로 아예 무시되거나 암기식 교육이 되고 있다. 이런 터에 최근 통일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이를 개선해 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한국민주시민교육 서울시연구회」(회장 양재도오금고교장)는 지난 10월 「환경변화에 따른 효율적인 통일교육방안」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다. 이 세미나에서 일선교사들은 통일교육을 북한을 적대시하고 제압하자는 반공·멸공교육에서 벗어나 통일의 동반자로 받아들이면서 올바른 통일관을 형성하고 통일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쪽으로 개선해야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전제아래 오금고 이태진교사는 현행교과서의 개선방향을 내놓았다. 요약하면 민족분단의 원인과 배경에서는 민족내부 분열양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민족분단의 원인과 과정,역사적 교훈을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며 북한의 현실에서는 북한의 실상을 그대로 제시해 동반자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해 남한체제의 우월성을 스스로 인식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또 남북한의 통일정책을 균형있게 설명함으로써 통일정책을 비교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며 바람직한 민족동일성의 회복이 시급한 과제임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두도록해야한다는 것이다. 통일을 위한 우리의 자세에서는 민족화합을 통한 민족공동체의 실현이 중요한 과제임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통독전의 서독/「정치교육」 통해 통일의지 심어/정·당·단체 유기적 공존체제 형성/양국 병존의 필요성과 방법 제시 통독전의 서독에서는 우리의 통일교육보다 훨씬 넓은 의미의 「정치교육」을 국민들에게 실시했다. 정치교육은 좁은 의미에서 정치 또는 통일에 관한 이해가 아니라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 지식과 태도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따라서 통일에 관한 교육도 정치교육의 일부분으로서 실시돼 온 것이다. 이것은 다만 독일통일에 관한 문제뿐이 아니라 나치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은 경험에서 출발한 것으로 민주주의의 정착에 기여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서독은 60년대부터 정치교육법과 같은 기본법령을 제정,정치교육을 제도화했으며 통일후에도 그같은 교육은 계속되고 있다. 정치교육을 추진하는 주무부서는 서독 내무부이며 정당과 교육기관,사회단체등도 참여해 유기적인 공조체제를 형성해 국가적·범사회적차원에서 교육이 이뤄졌다. 특히 파당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교육본부를 둔 것과 동유럽과 동독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조직과 법제가 일찍부터 정비됐다. 동독 연구의 활성화를 촉진한 서독정부의 정책은 통일후 정책수립에 큰 보탬이 됐다. 72년 동서독기본조약체결 이전의 서독과 동독의 교과서는 서로 상대 체제가 비사회적이고 비인도적이라고 기술하고 있었다.또 상대방 정권은 무력적인 정복을 통해서만 통일을 이루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나 72년 양국이 동등한 입장에서 상호관계의 발전을 모색한 기본조약을 체결한뒤 이러한 비방적 내용은 대부분 삭제됐다. 78년에는 통일의지를 학생들에게 심어주는데 학교가 기여해야 한다는 인식아래 15개항의 독일문제를 교육지침으로 마련했다. 서독은 이 지침을 통해 동독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평화적 통일의 의지를 강조하며 양국 병존의 필요성과 방법을 제시해 학교교육을 통한 독일통일의 장기적인 기반을 조성했다. 정치교육은 단지 학교교육을 통해서만 실시한 것이 아니라 정부주관아래 세미나와 강연회가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수시로 열렸다. 특히 발행부수가 60만부나 되는 통일교육 전문잡지가 있고 1만5천개의 영화가 복사돼 전국 1백50여개의 비상업적인 대여소를 통해 정치교육에 이용되고 있다. ◎민족공동체 의식 높이는 교육을/분단의 고통 극복… 화합당위성 자각하게/실증·사례중심의 탐구방법으로 지도를/신상조·교육부 정신교육 장학관(전문가 의견) 통일은 우리의 소원으로서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취해야 할 현실적 과제이다.따라서 통일을 위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통일을 준비하고 통일 이후의 삶에 대비하도록 미래지향적이며 체계성을 갖춘 통일교육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 먼저 그들이 분단의 현실을 의미있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우리 민족의 분단된 배경과 과정은 어떠하며,이로 인해 우리는 어떠한 고통과 손실을 입고 있는가를 이해함으로써 통일의 의미와 당위성을 자각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통일교육은 민족공동체 의식을 고양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통일교육은 민족공동체 의식을 고양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만일 이질화의 양상이 계속되어 남북 주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민족공동체 의식이 완전히 상실된다면 우리에게 통일은 어려운 과제가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북한실상의 객관적 이해와 민족전통문화의 공유를 통해 민족자존과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통일의지를 함양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또 오늘날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둘러싼 국내외적 상황과 조건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나아가 우리가 이룩하고자 하는 새 통일조국의 바람직한 모습을 그려보게 하며 그러한 통일국가의 형성과정과 장차 통일 조국이 직면하게 될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분야에서의 대내외적인 갈등과 혼란 등에 합리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상황 인식과 대응능력을 신장시켜 통일 이후에도 대비하도록 지도되어야 한다. 이러한 통일교육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현실상황에 적절하고 시의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교육하여야 한다.통일교육의 본질적인 요소는 변하지 않는다.그러나 통일교육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것이므로 통일 관련 사실들의 현실적 전개와 주변 상황의 변화 및 이로 인해 제기되는 문제들에 부합되도록 지도되어야 한다.그리고 북한 및 통일에 관한 전문성 신장을 위해 교원 교육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통일과 관련된 객관적 상황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고,통일 실현에 관한 관점과 사회적 요구가 새롭게 변화되고 있는데도 교원의 관련 지식과 관점이 변하고 있지 않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또 통일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칠 수 없는 교육이므로 실증,사례중심의 토의식,탐구식 방법을 통해 학생이 자율적으로 분석·종합·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한편,통일교육이 통일정책이나 북한 관련 내용만을 교육하는 것이 전부인양 생각해서는 안된다.통일을 강조하되 현실적인 안보의 중요성도 고려할 수 있는 균형된 시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교육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독일의 통일 경험에서 볼수 있듯이 정치적·제도적 통합은 물리적으로 일시에 가능할 수도 있지만 의식과 가치관 등 실질적 민족통합은 분단기간보다 더 오랜 세월이 흘러야 될지 모른다.우리도 이러한 교훈을 터삼아 청소년의 교류 등 교육부문에서의 폭 넓은 교류·협력이 적극 추진될 수 있도록 기반을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8)

    ◎길림시절:7/조선인류길학우회사 날조/“27년 「유길학우회」로 개편 명예회장 취임” 주장/중1때 학생청년조직 최고간부부상은 불가능/안병기 등 지도자명단 일경기록서 삭제 김일성은 1927년 4월10일에 조선인 길림소년회를 조직하고,그 다음달인 5월8일 종래부터 있었던 조선인려길학우회를 조선인류길학우회로 개편했다고 주장한다.회고록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29년 유길학우회로 『우리는 조선인여길학우회 속에 들어가 본래의 합법성을 계속 유지하면서 점차 그 조직을 순수한 친목단체로부터 혁명적인 조직으로 개편하자고 하였다.공산주의자인 내가 명예회장으로 되었지만 표면상으로는 민족주의자들을 끼고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중국군벌당국의 주의도 덜 끌었다.나는 조선인여길학우회를 지도하면서 그것을 조선인유길학우회로 개편하였다.조선인 유길학우회는 조선인청년학생들의 친목을 도모하는 단체라고 표방하였지만 실지로는 ㅌ,ㄷ의 이념을 실현하는 혁명적인 학생청년조직으로 활동하였다』「주①」 여길학우회는 1926년에 실지로 존재하고 있었다.「주②」그러나 이 친목단체가 유길학우회로 개칭된 것은 29년쯤일 것이며 이 조직에서 김일성이 「명예회장」으로 된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이것보다 더한 것은 김일성의 이러한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북한이 일삼는 대대적인 문건 변조작업이다.이 작업은 우상화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죄행인데 그 실태의 일단은 아래와 같다. 북한이 이용하는 유길학우회 문건은 1930년의 일본 길림총령사관 경찰기록이다.여기서는 이 기록을 편의상 3단락으로 나누어 분석해 보겠다. 1)「유길학우회.본회는 길림 지나중등학교 이상의 재학선인 등이 조직하고 있으므로,현재 회원수 등은 불명하나(길림대학생 안병기·김인기·박일파 등이 오이를 잡고①)3·1기념일·국치기념일(한국병합)등에는 기념식을 단독 또는 다른 불령단체와 공동 거행하며, 또 기회 있을 때마다 강연회를 개최하며(민족주의의 고취②),배일선전을 하고 있다」「주③」 이 기록에 필자가 고딕으로 쓴 부분은 「조선전사16」에 나오는 같은 경찰기록의 변조판에서삭제되어 있는 부분이다.「주④」 그런데 삭제된 부분 ①에 따르면 30년 당시 유길학우회의 책임자는 안병기·김인기·박일파였다.당시 안병기는 조선공산당 재건파인 서울상해파의 중앙간부였고 김인기·박일파도 같은 서울상해파의 고려공산청년회 중앙간부였다. 또 29년께,이 유길학우회의 임원으로는 김인기·박일파·신영근·이장청·이석옥등 5명이 문헌에 나온다.「주⑤」 이 중 신영근도 30년에 서울상해파에 들어간 전문학교 학생이고 이장청은 한인 여성교육사업에 종사한 정의부계통의 여성활동가였다.이석옥은 알 수 없으나 이 5명이 유길학우회의 최고지도자였다. ○고작 평회원 자격 그런데 조선전사는 대학생이나 전문학교 학생,그렇지 않으면 사회활동가인 이러한 간부들이 있었다는 것을 모두 은폐하였다.이번 회고록에서는 이러한 은폐작업 끝에 초급중학교 학생에 불과한 김일성을 「명예회장」으로 앉히는 것으로 그 변조작업을 마무리짓고 있는 것이다.그는 27년은 커녕 29년이라도 이러한 간부들을 누르고 학우회의 최고간부는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29년이라도 그는 중학 3학년으로 평회원 이상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②는 유길학우회가 조선공산당 재건파에게 휩쓸려 간 30년 현재라도 표면상은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전술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덮은 것이다. 2)『본년(1930년… 인용자)1월중 선내 학생소요사건에 대하여 지나인 일반의 동정을 구하여③ 대일반항운동을 유리케 전개할 「반일본 제국주의 선언」이라 제한 지나문이로서 과대·날조·중상적 문구를 나열하고④ 중한인 공동으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할 취지의 불온 인쇄물(길림려길한인학우회 명의)을⑤ 지나측 관공서,학생간에 다수 배포하였다』 조선전사는 유길학우회가 중국에서 중국글로 삐라를 쓴 것을 「주체사상」에 걸리는 행동으로 해석하였는지 ③④를 삭제하고 있다. ⑤는 유길학우회가 30년 당시에도 「여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그런데 이것도 김일성이 27년 5월에 여길을 유길로 변경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삭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여길학우회란 명칭이 30년에도 사용되었다는 경찰문건을 가지고 생각하면 이 조직이 유길학우회로 변경된 것은 아마도 29년쯤일 것이다. ○중문전단 배포 은폐 3)『본년 3·1기념일에는 재만한인 반제국주의동맹이 발기하여 각 단체 합동기념일을 거행하였는데 이에 참가하였다.⑥』 ⑥은 1930년의 3·1절이므로 27년에 「유길학우회 명예회장」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김일성으로서는 삭제하지 않을 수 없는 기록으로 된다. 이상 일본기록 중에서 북한이 삭제한 부분만을 분석해 보았다.이 부분들은 유길학우회의 성격과 임무를 잘 보여주고 있고 아울러 이 조직에 망라되었을 때의 김일성의 보잘 것 없는 지위와 사상상태를 여러모로 암시하고 있다. 「주해」 ①「세기와 더불어 1」240면 ②「한국독립운동사 5」659면 ③같은 책 748면 ④조선전사 16,76면 ⑤「한국독립운동사 5」718면
  • 한·소 제주정상회담 막전막후/기자방담

    ◎“일본은 자린고비”… 소측인사들 불만 토로/우호조약 이름 싸고 우리 당국자들 혼선/고르비 일정 변경잦아 아무도 예측 못해 한반도 주변국가들이 초미의 관심을 기울인 가운데 열렸던 한소 제주정상회담이 20일 1박2일의 일정을 끝내고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숱한 화제를 뿌렸던 이번 회담의 막전막후를 특별취재반의 방담으로 알아본다. ­이번 회담은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지만 잦은 일정변경 등으로 인해 의전관계자는 물론 7백여 명의 취재진도 긴장의 연속이었죠. ○의전관계자 긴장연속 당초 4시간 정도의 제주체류로 합의된 것으로 보였던 고르바초프의 일정은 도착 당일인 19일 새벽 4시쯤 1박2일로 연장됐고 양국 정상간 단독 및 확대정상회담이 열린 20일의 일정도 방일 여정의 피로와 전날 만찬행사가 새벽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축소 조정됐죠. ­국가정상의 방문국 체류일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도착 당일 전격적으로 바뀌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인데 이번에 소련측 일정은 너무 자주 변경됐어요. 고르바초프의 이같은 급작스런 일정변경은 소련 외교의 「관행」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이병기 청와대 의전수석비서관은 이를 두고 『소련 대통령의 일정은 마지막 5분 전까지도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라고 밝힐 정도였죠. ­1박2일로 체류일정을 늘리자고 한 것은 사실 우리측이 정상회담 준비단계부터 강력하게 요청해온 것이지요. 그러나 소련측은 바쁜 방일일정과 산적한 자국내 문제 등을 이유로 계속 난색을 표시,도착 하루 전까지도 거의 가망성이 없는 것으로 우리측은 판단했던 거죠. ­일부에서는 소련측이 처음부터 우리측 요구대로 1박2일의 일정을 생각해놓고도 생색을 내기 위해 막판에 전격 수용,극적 효과를 노렸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방일 성과가 미흡한 데 대한 고르바초프의 강한 불만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어요. 소련 국가원수로서는 첫 방일인데도 일본측은 북방 4개 도서 반환에만 신경을 썼지 정작 소련이 제시한 경협이나 동북아 집단안보체제 등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회담에서 「한소 우호협력조약」 문제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요. 당초 양국 외무부관계자들간에 사전 조정된 대화내용 초안엔 이것이 포함되지 않았는데 단독회담 때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전격 제의하자 노 대통령이 원칙적으로 수락하면서 앞으로 양국 외무장관회담을 통해 협의해나가도록 하자고 대답했습니다. ○“언론 앞서간다” 불평도 ­청와대측이 미리 준비한 발표문에는 『두 분 대통령은 모스크바선언과 양국간에 체결된 각종 관련 협정에 따라 양국 관계를 더욱 역동적이고 본격적으로 발전시켜나갈 것을 다짐했으며…』라고 되어 있었지요. 그러나 단독회담의 결과에 따라 「다짐했으며」 다음에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번 발전을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한소 양국 우호협력조약의 체결을 제의했으며 노 대통령은 이를 수락했고 앞으로 양국 외무장관을 통해 협의해나가기로 했다』는 구절을 삽입했습니다. ­그러나 조간신문 등 언론들이 「한소우호협력조약」 체결합의라고 헤드라인을 붙이고 나가자 외무부 등에서는 『아직 「합의」를 한 것은 아니다. 양국 외무장관간에 협의를 해봐야 한다』면서 『언론이 너무 앞질러 보도한다』고 불평을 했지요. ­이 조약의 이름을 놓고 이수정 청와대대변인과 김종휘 외교안보보좌관간에 잠시 혼선을 빚기도 했지요. 김 보좌관은 정상회담 브리핑을 통해 「우호협력」에다 「선린」이란 표현을 추가시켰지요. 그런데 「선린」이라는 문구는 완전한 우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칠 공산이 커 미일 등 우방의 강력한 이의제기를 의식한 이 대변인은 김 보좌관의 발표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곧바로 보도진들에게 「선린」표현의 삭제와 함께 「양국 외무장관간에 추후 논의키로 했다」는 사실을 강조,톤 다운시켰죠. ○“일본선 너무 피곤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노 대통령과 환담,단독회담,산책,작별인사 등 비교적 은밀한 대화시간에 얘기할 때 『일본에 있다가 이곳에 오니까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더욱 인간적인 친근미를 느낀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더군요. ­고르비는 일본의 3박4일간의일정이 매우 피곤했다는 말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고 해요. 일본에서 가이후 총리와 6차례 일소정상회담을 한 것으로 발표됐지만 사실은 8차례나 회담을 했다고 해요. 고르비는 가이후 총리를 두고 하는 얘기같은데… 『하나도 제대로 결정을 못 하더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아마 북방 4개섬 반환과 일본의 대소 경협규모를 두고 어지간히 실랑이를 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 나온 것이 아닐까요.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우리는 결코 원칙을 무너뜨리면서까지 「구걸」을 하지는 않을 것』이란 말로써 영토반환과 원조를 흥정하지 않을 것이란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는 후문입니다. ­소련측 인사들 가운데는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면서 『한국의 30억달러는 GNP를 감안할 때 일본의 4백50억달러에 해당한다』면서 「자린고비 일본」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두 정상 사진찍기 수월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 수뇌의 만남은 상당히 수월했습니다. 왜냐하면 두 정상이 이제 완전한 친구처럼 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나 공식대화에서는 물론 산책대화 때도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해 노 대통령의 모스크바방문 수행취재 때에는 양 수뇌의 만남이 다소 어색하고 서먹서먹해 앵글 맞추기가 무척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모든 행사가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진행돼 양 수뇌의 친숙도가 한층 두터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련 기자들은 대부분 자체풀(POOL)기사에 의존하는 듯 독자적인 취재열의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프레스센터에도 잘 들어오지 않고 주로 자기들끼리 커피숍 같은 데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지요. 글라스노스트정책에도 불구하고 아직 경쟁을 생명으로 하는 우리 언론의 생리와는 거리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일본언론을 비롯해,로이터 AFP 등 세계적인 통신사와 뉴욕타임스지 등 외신기자들을 프레스센터 앞쪽에 자리를 잡고 열띤 취재경쟁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제주시민들은 이번 정상회담으로 제주도가 뛰어난 세계적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며 희색이 만면입니다만 뭐니뭐니해도 회담덕을 가장 많이 본 곳은 제주 신라호텔입니다. 호텔측은 회담 자체로는 6천만원의 적자를 보았지만 홍보효과를 감안하면 약 30억원을 투자한 것과 맞먹는다고 밝혔습니다. ○신라호텔 1백억 번 셈 게다가 오래전에 교통부에 신청했음에도 꿩 구워먹는 소식이던 「특1급호텔지정」 통보가 회담 직전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텔 주변에선 이번 회담으로 제주 신라호텔은 1백억원 이상 번 셈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내외신 기자들이 사용하는 프레스센터에는 현대전자가 관계당국의 승낙 아래 대형 멀티비전을 무료로 설치,현대선전효과를 노렸는 데 삼성그룹 산하인 호텔측이 뒤늦게 이를 알고 『남의 안방에 현대가 웬말이냐』며 철거를 요구하기는 했어요. 그러나 현대측이 이를 거부하자 호텔측은 단전으로 맞섰는데 결국 설치경비 2천만원을 호텔측이 부담하는 대신 현대측은 회사간판을 떼내렸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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