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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삼웅 칼럼] 秋史의 ‘秋思’를 기리며

    시간의 입체성을 말한 이는‘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루스트였던가.어김없이 계절은 바뀌고 세월은 흐른다.잃어버린 시간은 찾을 길 없고 오는 시간 또한 막을 길이 없다. 아침 저녁의 바람결이 상큼하고 한낯의 햇볕도 한층 엷어졌다.늦은 밤 돌담의 귀뚜라미 소리 제법 청량하고 가끔 구름 사이로 나타나는 청자빛 하늘이너무 곱다. 어느 무명씨의 시조 한 편 . 강호에 비 내리듯 마음은 설레고 내 마음은 저절로 저 먼 곳에 떠 있어라 그려도 애닮다마는 하는 수가 없구나. 폭우와 폭염과 폭풍이 심했던 지난 여름의 변덕 속에서도 곡식과 과일은 무르익고 청초한 가을 꽃이 산과 들녘을 수놓는다.그리고 나뭇잎의 색조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가을의 조락이 깊어간다. 이맘 때면 누구보다도 가을을 앓는 추사(秋史:金正喜)와 그의 시를 생각하게 된다.추사의‘추사(秋思)’란 시는 그의 아호와 시제(詩題)가 같은 음이어서인지 옛사람들에게도 많이 읽혔다. 어젯밤 총총한 별,싸늘한 서리남쪽의 가을 생각 끝없이 자아낸다.하늘 바람 사람 말이모두다 가르침이요 글씨 쓰고 시 짓는 데 반드시 법도가 있다네 기러기 한 번 울자 이렇게 한 해가저물다니 잎사귀마다 가을 재촉하는 듯 떨어지기 바쁘네 흰 구름 붉은 단풍 나그네 마음 흔들어 햅쌀 밥에 게장 먹는 고향이 꿈에도 그리워라. (정후수 역) 추사가 이 시를 쓴 것은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이다.‘햅쌀 밥에 게장 먹는’고향을 그리며 깊어가는 가을날에‘가을 생각(秋思)’을 읊은 추사의 처지가 애닯다.누구인들 저문 계절의 애수가 엷을까만 귀양살이 9년을 넘긴 추사의 심사는 남달랐을 터이다.그래서 가을의 노래가 많다.‘추일만흥(秋日晩興)’도 그중의 하나. 가을꽃 수도 없이 뜨락 머리에 환히 피었으니 산집(山家)에 가장 좋은 가을이 돌아옴을 알겠구나 석류꽃 지고 국화 피기 전에 구경거리 계속해주니 장원홍(狀元紅·붓꽃)이 모든 풍류를 도맡았구나. 시인 묵객치고 국화 좋아하지 않는 이 있을까만 추사도 무던하여 그의 문집에는 국화를 노래한 시가 꽤 된다.역시 이맘 때의 작품으로‘중양황국(重陽黃菊)’이 있다. 망울 맺은 노란국화 초지(初地)의 선(禪)인듯이 비바람 치는 울타리 가에 고요한 인연을 의탁했네 시인을 공양하여 최후까지 기다리니 백억의 잡화 속에 널 먼저 꼽을밖에. 뒤꼍의 가랑잎 구르는 소리에 가을은 깊어가고 흐르는 세월과 함께 인생도역사도 흘러간다.4세기 초 중국에 귀화한 인도의 학승 나가르주나는‘중론(中論)’이란 글에서 시간의 논리를 정리했다. 만일 과거 시간으로 인하여 미래와 현재가 있다고 한다면 미래와 현재는 과거의 시간 속에 있으리라. 이제 두달여 지나면 새 천년의 새벽이 열린다.그러고 보니 이 가을도 2000년대의 마지막 추절(秋節)이다.신동엽의 시집‘아사녀’에는‘산에 언덕에’란 빼어난 시가 있다.추사를 기리면서 깊어가는 가을날에 못잊을 송가로 부르면 어떨지.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 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 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국향(菊香) 짙은 만추에 가을걷이 끝난 농부와 함께 추사(秋史)의 ‘추사(秋思)’를 기린다. 김삼웅 주필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車興奉 보건복지부장관

    지난 18일 밤 9시가 넘어서야 국정감사가 끝났다.국감을 끝내고 간부직원들과 함께 국회 앞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나누던 중이었다.한간부가 “장관님,올해는 저희 부부가 은혼식을 맞는 해인데 휴가를 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법에서 보장된 휴가지만 제대로 갈 수 없는 공무원들의 사정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일에 쫓기어 휴가를 반납하거나 차일피일 마루다가 아예 못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나는 그가 나에게 특별히 청원을 한 이유를 안다. 바쁜 줄 알면서 휴가 가기가 미안했기 때문이다.나는 그 간부에게 일 걱정말고 휴가를 다녀오라고 했다.기왕이면 추억에 남을 수 있도록 부부동반으로유럽여행을 가는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은혼식은 결혼 25주년을,금혼식은 결혼 5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니까 부부의해로를 상징하는 뜻있는 행사임에 틀림없다. 나는 몇년 전 은혼식을 맞아 집사람과 단체관광 팀에 끼여 유럽여행을 다녀왔다.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도 가 보았다.우리 두 사람의 모습을 나란히 그린 화가는 그림에다가 ‘은혼식 기념’이라는 글씨를 정성스럽게 적어 주었다.지금도 그 그림을 집에 걸어두고 있다.육로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와 스위스의 루체른을 거쳐 이탈리아 밀라노로 가는 길에 알프스 산을 넘었다.여행 가이드가 버스 안에 설치된 TV로 대학시절에 보았던 영화 ‘사운드 오브뮤직’을 틀어주었다.영화 속에서는 줄리 앤드루스가 아이들과 함께 알프스고개를 넘으며 그 유명한 주제가를 부르고 있었다.나와 집사람은 버스로 영화 속의 바로 그 고개를 넘고 있었다. 즐거움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했는데,집사람과 먼 이국에서 나누는 정취는각별한 것이었다.영화 속의 ‘에델바이스’를 콧노래로 따라 부르며 감흥에젖어 보았다.혼자였으면 과연 이런 감흥을 느낄 수 있었을까.그야 말로 휴가의 여유로움과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공무원도 인간이다.한 집안의 가장이다.가정이 바로 서야 나라도 바로 선다.공무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지만,휴가도 값지고 알차게 보내야 한다.그래야인생이 풍부해지고 활력도 생겨난다. 특히 장년기의 공무원들은 모름지기 휴가를 배우자와 해로의 정을 나누는시간으로 삼는 것이 좋을 듯하다.부부가 행복하게 해로하는 모습은 참으로아름답지 않은가. 차흥봉 보건복지부장관
  • [음악 리뷰] 백혜선 피아노 연주회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지난 13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가졌던 ‘즉흥과 변주’연주회는 음악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시도로 화제를 모았다.그러나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연주회가 끝난 뒤의 기분은 유명한 평양냉면집에 가서냉면(물냉면이라고 부르면 평안도 출신들은 화를 내기도 한다)대신 비빔을먹고 났을 때의 그것이었다. 물론 그 냉면집은 여름이 되어야 붉은 바탕에 흰글씨의 깃발을 내걸거나,귀순동포가 고용한 주방장이 만든 ‘기분만 평양식’이 아니라 이제 몇 남지않은 본포(本鋪)를 말한다.오늘날 전통 평양식 냉면을 만드는 주방장은 훌륭한 피아니스트의 숫자만큼이나 적은 것이 현실이 아닌가. 백혜선을 평양냉면집 주방장에 비유하는 무례를 용서해준다면,이날 연주회는 장기인 냉면 대신 ‘냉면 초보자’와 아이들을 위해 평양식 만두와 빈대떡 등을 한상 가득 차린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그런 만큼 연주회 결과는 냉면을 좋아하는 어른이 아이들을 데리고 냉면집에 갔을 때 나타나는 반응과꼭 같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환호했다.슈베르트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즉흥곡들,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과의 베토벤 ‘터키 행진곡’듀오,바이올린 이경선과 비올라최은식,첼로 양성원과 함께 꾸민 ‘사랑의 인사’‘아 목동아’,앵코르곡으로는 ‘아침이슬’에 ‘젓가락행진곡’까지 등장했다.연주회장을 나오는 얼굴엔 만족감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도 환호하고 싶었다.“우리 음악계가 너무 닫혀 있어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백혜선의 생각에 적극 공감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음악회를 즐기기는 했지만,‘아이’들처럼 환호작약할 수는 없었다.왜 그랬을까.빈대떡도,만두도,비빔도 모두 맛있었다.그러나 오랜만에 ‘진짜냉면집’에 갔는데도막상 냉면은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작은 아쉬움조차도 백혜선의 잘못은 아니다.잘못은 커녕 이번 연주회를 기획한 그녀의 뜻은 찬사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대신 그녀의 뜻처럼닫혀 있는 음악인들의 마음이 열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새로운 시도도의미가 있지만,백혜선처럼 ‘큰 피아니스트’는 ‘큰 음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연주회를 통해 증명됐기 때문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제네바 ‘텔레콤99’ 안팎

    [제네바 김태균특파원]‘꿈의 통신이 눈 앞에 다가왔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지난 9일 개막된 세계 최대의 정보통신박람회 ‘텔레콤99’는 그동안 먼 미래의 일로 여겨져 온 첨단 통신서비스가 얼마나 우리 실생활에 근접해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때문에 참가업체들은 이번 대회에서 ‘미래’(future)나 ‘꿈’(dream)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고 있다.대신‘오늘’이나 ‘내일’을 강조한다. 관심사는 IMT-2000 차세대이동통신인 IMT-2000은 전세계 어디서나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전화하고,고속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어 단연 관심의초점이다.IMT-2000쪽에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정보통신,현대전자 및 에릭슨,노키아,알카텔,루슨트,지멘스,파나소닉,후지쓰 등 대부분 통신장비회사들은넓은 공간을 할애하며 열띤 홍보전을 벌이고 있다.특히 삼성전자는 참가회사 중 유일하게 화상단말기와 기지국,기지국 제어장치를 모두 갖추고 이를 스위스 전화회사(스위스콤)의 교환기와 실제로 연결,관람객이 직접 사용해 볼수 있도록 해 높은 점수를 얻었다.나머지 회사들도 단말기와 시스템 가운데일부를 직접 갖고 나와 최고 전송속도 384Kbps급의 서비스를 시연했다.특히시스템 장비보다 휴대폰 단말기쪽이 더 실용화에 접근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술적으로는 전세계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두가지 방식 가운데 유럽·일본식 W-CDMA가 주종을 이루고 있어서 미국식 CDMA2000방식에 치중해온 우리나라도 이쪽에 더욱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휴대용 단말기도 다양 각종 첨단기술과 편의장치가 적용된 휴대폰 단말기들도 대거 선보였다.경량화가 더욱 가속화돼 일본 산요는 무게 50g대,두께 9.9㎝의 획기적인 미니 휴대폰을 출품했다.인터넷은 물론,개인정보관리까지한꺼번에 해결할수 있는 첨단 스마트 폰도 대거 등장했다.모토로라는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필기체 글씨까지 인식할 수 있는 개인정보단말기(PDA)형 인터넷폰 ‘타임포트’를,알카텔과 노키아도 비슷한 기능의 ‘원터치 포켓’과‘9110’을 각각 선보였다. 인터넷=ADSL 전망 초고속인터넷 부문에서는 광가입자전송망(ADSL)의 약진이 두드러졌다.특히 지금까지 종합정보통신망(ISDN)에 치우쳐 왔던 유럽에서까지 ADSL로 눈을 돌리기 시작해 ‘인터넷=ADSL’의 등식이 자리잡게 될 것으로 전망됐다.특히 이번 대회에서 알카텔·오킷 등은 ADSL의 속도를 이론상의 최고속도인 8Mbps까지 구현해주는 신기술도 선보였다.반면 현재의 음성전화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터넷 음성전화’(VoIP)기술은 노텔,NEC,루슨트,알카텔 등이 출품을 하긴했으나 기존 전화만큼의 통화품질을 확보하는데는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windsea@
  • [21세기 내고장 역점사업] (39) 전북 장수군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산 좋고 물 맑기로 유명한 전북 장수군에는 파란 하늘 아래 빨갛게 익어가는 탐스런 사과밭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무공해 청정지대인 이곳이 전국 최고 품질의 사과 명산지로 새롭게 명성을높여가고 있다. 장수군은 재정자립도 전국 최하위권인 전형적인 산간지역지만 지역 특색을살려 최우수 사과단지를 조성,잘사는 지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사과밭 조성을 주업무로 하는 과원조성계를 설치하고 농업기술센터에서는전문가들이 사과재배에 관한 모든 것을 지도·교육하고 있다. 군 전체 면적의 78%가 산인 장수군의 사과재배면적은 375㏊로 전국 3만1,151㏊의 1%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그러나 장수사과는 고품질을 인정받아 타지산보다 월등히 높은 값을 받으며 공급이 달려 품귀현상마저 빚는 등이미 전국 사과시장에서 ‘태풍의 눈’으로 주목받고 있다.올 추석에도 서울 도매시장에서 조생종인 홍로 15㎏ 1상자가 최고 12만원에 경락됐다.타지산상품 8만원보다 50%나 비싸다.장수군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JS사과’는장수사과의 트레이드 마크로 서울 유명 백화점에서 비싼 값에도 날개 돋힌듯팔린다. ■재배여건 군 전역이 해발 400∼600m의 산간 고랭지로 생육기인 4∼10월의 일교차가 평균 11.1℃에 이른다.이때문에 장수사과는 당도가 높고 색깔이선명하며 맛과 향이 강한 게 특징이다.저장성도 우수하다.무공해 지역으로병충해 발생이 적어 농약을 타지역(17∼20차례)의 절반수준인 7∼10차례만뿌리면 된다. ■경제성 장수사과 재배 농민들은 키가 작고 수확이 빠른 신품종을 재배해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홍로,홍월,츠가루,야다카 등 조·중생종이 71%이고 만생종 후지가 29%로 추석을 전후해 집중 출하된다.10a(300평)에서 2,000㎏을 생산해 조수입 473만원을 올린다.영농비 112만원을 빼도 순소득이 361만원이나 된다.벼 67만원,담배 91만원,고냉지 배추 114만원,고추 137만원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재배면적 확대 사과를 주 소득원으로 육성하기 위해 오는 2050년까지 사과밭 1만㏊를 조성해 전국 시장 점유율을 30%로 높일 방침이다.우선 내년까지500㏊,2005년까지 1,000㏊,2010년까지 2,000㏊를 조성할 계획이다.재배면적확대를 위해 산지를 개간하거나 논·밭에 사과나무를 심어도 ㏊당 750만원씩을 지원한다. ■국제경쟁력 제고 대책 키작은 왜성사과 묘목을 공급해 사다리 없이 관리할 수 있는 ‘보행자 과수원’을 조성한다.사과나무를 심는 밀도도 10a당 160∼300그루로 현재보다 배이상 확대해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대폭 늘릴 계획이다. ■장수사과 관광상품화 지역 특산품인 사과를 관광산업과 연계해 지역 이미지와 장수사과의 명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사과를 소재로 한 테마관광사업을 육성하고 장수읍 두산리에 스피노자사과원을 조성할 계획이다.관내 각종시설물에 사과모형 등 상징 조형물을 넣는다.상가 간판에도 사과 이미지를형상화하도록 권장할 방침이다. ■문자사과 생산 장수사과의 명성을 높이고 타지산이 장수사과로 둔갑하는일을 막기 위해 사과에 글씨를 새겨 넣은 문자사과를 생산한다.사과가 익기전에 글씨가 쓰인 검은색 비닐을 붙였다가 수확기에 떼면 햇볕이 차단된 부위에 자연스럽게 문자가 새겨진다.장수사과를 나타내는 ‘장수’라는 문자외에 소비자가 원하는 문양도 새겨준다. 장수 임송학기자 shlim@ *사과 시험포 사과를 새로운 소득산업으로 집중육성하고 있는 장수군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군 직영 사과시험포를 조성했다.군이 지난 96년부터 22억4,000만원을 들여 장수읍 개정리 일대에 설치한 사과시험포는 15㏊에 사과재배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고 시험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군은 이곳에 10㏊의 새한국형 사과원을 조성하고 11개 품종 1만5,000주의사과나무를 심어 적정 품종개량,체험학습을 통한 새로운 기술보급 등을 하고 있다.추석무렵에 출하되는 장수 추석사과 품종선발 시험구 1㏊도 조성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692평의 유리온실에서는 사과우량묘,화훼,과채류 등을 시험재배하고 있다.새로운 품종의 사과나무를 접붙일수 있는 자근대묘(自根大苗) 생산 시험구 1㏊도 조성돼 유망대목 선발과 증식보급사업도 하고 있다. 군은 앞으로 현장체험 영상교육관 건립과 바이러스 무독묘 생산,사과박물관·테마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해 장수가 명실상부한 사과의 고장이 되도록 할방침이다. *김상두시장 인터뷰 “장수군의 미래를 전적으로 사과에 걸고 있습니다” 김상두(金祥斗) 장수군수는 사과재배면적을 계속 늘려나가 2000년대에는 장수를 전국 최고의 ‘사과 고을’로 육성하겠다고 청사진을 펼쳐보였다. ■장수사과는 언제부터 재배됐나. 대구에서 사과농장을 경영하던 송재득씨(장수읍 동촌리)가 지난 85년 장수로 이사오면서부터다.사과박사로 통하는 송씨가 장수사과 개발의 원조라 할수 있다. ■짧은 기간에 장수사과의 명성을 높일수 있었던 이유는. 산간고냉지인 우리 지역의 기후와 토질이 사과재배에 최적지이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사과를 생산해 높은 값을 받으면서 장수사과의명성이 갑자기 높아지게 됐다. 특히 추석 무렵 타지에서는 덜 익은 사과를 출하하지만 우리 지역은 완숙된조생종 추석사과를 출하해 시장을 석권하게 됐다. ■장수사과의 특징은 무엇인가. 맛과 향이 뛰어나고 당도가 높다.특히 일교차가 큰 지역에서생산된 장수사과는 사과 고유의 신맛과 아삭 아삭 씹히는맛이 일품이다. 색깔도 타지산과 비교 할수 없을 정도로 곱고 저장성도 좋다. 또 장수사과는 대부분 10년 이하의 어린 나무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풍미가뛰어나고 농약도 적게 친 저공해 과일이어서 현대인들의 기호에 맞다. ■장수사과 생산량과 소득은 얼마나 되나. 195농가에서 375㏊를 재배해 5,300t을 생산함으로써 90억원의 소득을 올릴 전망이다. 그동안 우리 지역은 적당한 소득작목이 없어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었으나 앞으로 재배면적을 늘려 농가소득을 높이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방침이다. 장수 임송학기자
  • [지구촌 밀레니엄 준비] 경창헌 주한아르헨티나 대사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아르헨티나는 한반도와 지구상 정반대에 위치해 있다.면적은 한반도의 13배나 된다.남북 길이만도 3,694㎞에 이른다.21세기 세계가 필요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천혜의 자원 보고(寶庫)로 불린다. 2차세계대전 전에는 세계 강대국의 하나였으며 지난 수십년 동안 정치·경제적 곡절을 겪었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에 가깝다.중남미에서 가장잘사는 나라로도 평가된다. 아르헨티나의 21세기 밀레니엄행사는 남반구의 가장 남쪽에 있는 나라로서나름대로의 특색을 갖는다.지난 8월26일 출범한 ‘부에노스 아이레스 2000’이라는 조직이 모든 행사를 기획·추진하고 있다. 밀레니엄행사는 화려하고 장대한 규모 대신 천혜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서민 대중의 정서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주요 테마는 이민의 역사를배경으로 한 통합과 조화다.지향점은 물론 ‘21세기의 선진 아르헨티나’이다. 첫 행사는 지난 11~12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유명한 빨레르모공원에서 치러졌다.‘이민자축제’였다.세계 60여개국 이민사회가 참가해 각국의 전통문화와 음식,풍물을 소개했다.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살고 있는 3만여명의 우리교포들도 참여해 고전 무용인 칼춤,부채춤,사물놀이 등을 소개했다.한국관에서도 한국 전통 음식과 묵화 붓글씨를 현장에서 소개했다.‘2002년 월드컵홍보’도 겸했다. 아르헨티나는 올 연말까지는 온통 문화축제로 꾸며져 있다.지난 21일부터는 전에 없던 기록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9월부터 연말까지 새 밀레니엄맞이 기념 마라톤대회,전통민속인 탱고축제,영화축제,문화의 밤 행사 등도전국 각지에서 행해진다. 금세기 마지막날인 12월31일 축제의 절정을 이룬다.부에노스 아이레스시를비켜 지나며 바다처럼 흐르는 거대한 ‘라 프라타’강에서 모든 요트와 크고 작은 배들이 동원돼 선상축제가 벌어진다.시내 20여개 공원에서는 불꽃놀이도 펼쳐진다. 같은 시기 부에노스 아이레스 북방 1,600㎞에 위치한 살따주에서는 ‘구름기차’의 축제를 갖는다.이 열차는 12월31일 오후 3시 살따시를 출발,2000년 1월1일 0시에 4,220m 고지의 뽈로리야 철교를 지나게된다.2000년 들어 최초의 결혼식이 이 열차 안에서 치러진다.아래에서 보면 하늘로 향하는 듯한철교는 구름이 되어 천상의 축제가 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자랑하는 안데스 관광지인 바릴로체의 봉우리,일명 ‘성당의작은산’은 3만m에 이르는 전등 트리로 조성된다.12월8일 점등되어 뉴밀레니엄의 태동을 축복할 예정이다. 안데스산맥과 접한 멘도사주도 산악인들을 위해 12월31일 출발하여 하늘과가장 가까운 곳에서 2000년 첫 태양을 맞을 수 있는 남미 최고봉 아꽁까구아산(해발 6,962m)을 등정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그 역사가 말해주듯 이민사회로 출발하여 애환을 거듭하고 있다.선진국가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충정도 각별하다.아르헨티나는 서민 대중의 정열과 지혜가 흘러넘친다.새로운 2000년에는 한 걸음 앞선 선진,번영으로 연결될 꿈에 부풀어 있다. [慶昌憲 駐아르헨티나 대사]
  • 서울 가락초등교 김복희교사의 ‘손끝’인생

    평생 배우면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젊을 때는 ‘시간’이 없어서,나이들어서는 ‘이 나이에 배워서 뭐하랴’는 등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게으름을피기 쉽다.그러나 나이를 초월하여 어느 분야든 관심을 갖고 배우려는 열정은 아름답다.그리고 젊게 살아가는 비결이기도 하다. 서울 가락초등학교 김복희 선생님(64)은 무엇이든 배우려는 열정을 갖고 젊게 살아가는 사람중의 하나다.그는 환갑을 넘긴 지금도 관심 있는 분야는 무엇이든 도전한다.단순한 호기심의 차원이 아니라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를때까지 고집스럽게 열심히 배운다. 그의 집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벽에 걸린 액자며 장식물을 비롯 집안을 장식하는 물건들,옷장에 널린 옷들이 대부분 그의 손을 거친 것들이라는 말에 놀라게 된다.그리고 정교한 솜씨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김씨는 입고 있는 호피무늬 옷도 “자신이 만든 것”이라며 “백화점이나시장에서 사려면 몇십만원을 줘야하지만 직접 재단해서 만드는데 6만원이 들었다”고 말했다.옷을 만들기전 백화점에 가서 고급 디자이너 매장을 둘러보고 디자인을 연구한다고 말한다. 젊어서부터 그는 양재·편물·요리·붓글씨 등 시대별로 여성들에게 유행처럼 번졌던 ‘만들기 교실’을 빼놓지 않고 배웠으며 요즘은 6년전부터 시작한 종이접기에 몰두하고 있다. “흔히 종이접기하면 색종이접기로만 생각,단순하게 여길지 몰라도 매우 다양해요” 흔히 볼 수 있는 색종이나 한지 접기를 비롯,종이를 꼬아서 만드는 지승공예,종이 죽을 반죽하여 빚는 지호공예,종이접기,한지를 찢거나 잘라 붙여 만드는 한지그림,종이 특성을 살린 종이조각,종이인형 등 여러 분야가 있다. “색종이 접기만 해도 간단하지가 않아요.지금까지 제가 만든 것만도 1,000여가지가 넘어요.” 해도해도 끝이없다는 설명이다.종이접기에 대한 애착은그가 보관중인 파일을 보면 알 수 있다.종이접기 전과정을 일일이 설명해 놓은 파일이 10권이 넘고 종류는 400여 가지가 넘는다. 김씨는 지난 8월 명퇴,34년간의 긴 교직생활을 마감했다.현재는 ‘기간제교사’(6개월단위로 계약)로 2학년 담임과 방과후 진행되는 ‘종이공작’반을맡고 있다.그러나 내년 2월 이번 학기 계약기간이 만료돼도 ‘종이공작’반은 계속 맡을 수 있게 됐다.취미로 시작한 종이접기 덕분에 정년이후에도 그는 학교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수업이 있기 전날에는 순서를 확인하기 위해 파일을 뒤지며 복습한다.그래야 수업을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산만합니까.그러나 교실이 떠나갈듯 떠들던 아이들도 종이접기 할 때는 진지해요.아이들 집중력을 높이고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됩니다” 지난 82년부터는 방송통신대학을 다니며 6년만에 졸업하는 의욕을 보이기도 한 김교사는 “배움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성별의 차이를 떠나 항상 사회인으로서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생활해 왔기 때문”이라며 “한지그림과 종이조각을 더 배우고 짬을 내 교도소나 고아원을방문,자원봉사를 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강선임기자 sunnyk@
  • 진주名所에 ‘친일파 이름’ 눈살

    ‘진주 8경’의 하나로 꼽히는 진주시 옥봉동 뒤벼리 인근 암벽 위에 새겨진 친일파 3명의 이름 각자(刻字)처리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지역 향토사학자 추경화(秋慶和·48·진주시 신안동)씨는 최근 “진주시 뒤벼리 일대 암벽에 새겨져 있는 이재각(李載覺)·이재현(李載現)·성기운(成岐運) 등은 모두 친일파들의 이름”이라며 “이같은 일제잔재가 해방 54년이 되도록 존치돼 왔다는 것은 민족적 수치”라고 말했다. 암벽은 행인들의 눈에 쉽게 띄는 도로변에 위치해있으나 그동안 이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암벽에 새겨진 글씨는 한자체로,크기는 가로 세로 80㎝ 정도. 이들 중 이재각·이재현은 친형제로 모두 왕족출신이다.이재각은 대한제국관리출신으로 ‘을사조약’ 체결 후 특명일본국대사로 일본을 다녀왔으며 ‘한일병합’ 후 이완용과 같은 급의 후작(侯爵)작위를 받았다.이재현은 경상남도 관찰사와 비서원경을 역임한 자로 ‘을사조약’ 후 의병토벌에 앞장섰던 인물.성기운은 1904년 이후 경남·충북·경기도 관찰사를역임하고 ‘을사조약’ 후에는 농공상부 대신·중추원 부의장·장례원경 등을 역임했으며1910년 한일병합 후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다. 암벽 처리문제를 놓고 추씨는 “그들의 이름을 지우고 그곳에 안내판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 관계자들은 “바위를 깨고 이름을 지울 경우 안전사고 등의 문제가 예상된다”면서 신중한 자세다.한 독립운동가는 “단지 이름만을 새긴 것이라면 사료로서는 별 가치가 없다”며 지워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외언내언] 겸손의 기도

    스페인 출신의 메리델발 추기경이 지은 ‘겸손의 기도문’이 서울 서초구방배동에 있는 자비사에 걸려있다고 해서 화제다.이 기도문은 지난 94년 김희로(金禧老)씨 석방운동을 펴고 있는 박삼중(朴三中) 스님에게 원로시인 구상(具常)씨가 직접 붓글씨로 써서 보낸 것이다.‘마음이 겸손하시고 온유하신 주님’으로 시작되는 이 기도문은 ‘존경받고 싶은 욕망에서 저를 해방하소서’로 이어져 칭송받고 인기를 얻고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천대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잊혀질까,조롱당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벗어나‘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기 위해서 저를 해방하소서’로 된 내용이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시인이 써준 글을 부처님을 모시는 스님이 받은 것도의미가 있지만 기독교의 신께 갈구하는 내용의 시를 벽에 걸어두고 ‘내 마음속의 교만과 오만을 다스린다’는 허심탄회(虛心坦懷)야말로 숭고한 종교의 초월이 아닐 수 없다.더구나 이들 두사람은 교도소에 갇혀있는 수감자들에게 누구보다 큰 관심을 보이면서 삼중스님은 사형수 교화스님,구상시인은무기수 최재만(41)을 의(義)아들로 삼을만큼 어려운 이들에게 힘을 보태고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미담이다.특히 구상시인의 경우 그를 원하는 사회적인 대소사에 빠지지 않지만 사사로운 개인적 불행을 외부에 일체 알리지 않고 막상 자신을 위한 자리는 극단적으로 마다하는 결벽증으로 유명하다.지난해 80세의 몸으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도 남들이 병문안 오는 것은 한사코마다하면서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17년째 대전 교도소에 수감중인 의아들 석방을 위해서는 불편한 몸을 사리지 않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그래서 김희로씨 석방을 바라보는 노시인은 김씨의 석방에 일조를 한 것에는 보람을 느끼지만 석방되지 못한 아들에게는 ‘애비가 무능하고 부실하기만 하다’고 자조한다. 사람은 사는 동안 끝없는 부와 권력과 명예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신이 뜻한대로 모든 것이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그래서 나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타인의 손해를 요구하는 경우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리는 얼마든지 일어난다.자기보다 많이 가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이기심이 팽배한 어지러운 세속에서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기 위해’ 모든 욕망과두려움을 떨쳐버린 그들은 그늘을 비치는 한줄기 빛이자 청량제인 셈이다.그리고 그들같은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절망적이지 않다는 희망을 갖게한다. [李世基 논설위원 sgr@]
  • 韓감사원장, 개원 51돌 기념사

    한승헌(韓勝憲) 감사원장은 28일 “공공부문의 구조개혁을 통해 국가경제를회생시키는 데 감사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원장은 이날 오전 감사원 대강당에서 열린 감사원 개원 51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공공부문의 저효율 고비용 구조를 개혁하지 않고는 경쟁력 강화는 불가능할 것이며 국가경제를 회생시키는 일도 요원할 것”이라며이같이 말했다. 한원장은 “따라서 공공부문의 방만한 조직과 인력,그리고 불합리한 경영관행을 시정하는데 주력하고 국가경제 회생을 위한 각종 지원정책이 실효성 있게 추진되는지를 철저히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이어 한원장은 “세무,인허가 등 취약분야에 대해 지속적이고 강도높은 직무감찰 활동을 전개하고 나아가 구조적 비리요인을 근원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해 공직사회의 기강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밖에 그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고 있는 정보화사업을 지속적으로 점검해 정보화기반이 제대로 구축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며 정보화 추진을 저해하는 걸림돌을 제거하는 데도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감사원은 기념식에 이어 원 상징물인 눈과 귀 문양과 원훈인 ‘바른 감사,바른나라’라는 글씨를 새겨넣은 ‘바른 감사인상’ 제막식과 공공부문 감사업무 종사자들이 지켜야 할 규범 등을 담은 ‘공공감사기준’ 선포식도 가졌다. 서정아기자 seoa@
  • 제18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시상

    6일 발표된 한국미술협회 주최 제18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김경환씨(35·경기대 강사)의 금속작품 ‘회생(回生)’과 심난숙씨(51)의 한글 ‘농가월령가(6월령)’가 각각 공예·서예부문 대상을 받았다.‘회생’은 우리의 어려운 경제현실을 딛고 일어서려는 의지를 형상화한 금속 오브제 작품.“작가의 합목적적이고 창의적인 예술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는 평을 받았다.또‘농가월령가(6월령)’는 “세련미는 떨어지지만 천진스럽고 편안한 느낌의글씨”란 평을 들었다. 공예부문 우수상은 홍성열씨(31)의 금속작품 ‘만남’,홍진식씨(28)의 도자작품 ‘클레이 피겨(Clay Figure)’,김동귀씨(45)의 목칠작품 ‘산사의 아침’,황만조씨(34)의 염직작품 ‘노루의 죽음’이 차지했다.또한 서예부문에서는 장혜자씨(51)의 한글 ‘묵향(墨香)’,최혜순씨(47)의 한문 ‘초서(草書)’,노승환씨(41)의 사군자 ‘추국(秋菊)’,박래창씨(41)의 전각 ‘양신(養神)·가선(嘉善)’이 우수상을 받았다. 공예·서예부문 수상 및 입상작은 11∼21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며 시상식은 11일 오후 3시 국립현대미술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공예 및 서예부문 특선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공예▲금속=진영섭 김광렬▲도자=심재현 최규영 이동구 이유미▲목칠=김남수 박민정▲염직=김은보 강희선 장 영 주연경◇서예▲한글=박정숙 곽봉련 이헤경 류승란 이종선 김정희 최명숙 김영목 박혁남 이윤숙▲한문=박기진 김재봉 김응학 박노종 강덕원문홍수 김재일 김영배 이성숙 양희석 한만평 박태평 정탁균 박병선 권상호김성균 이용욱 황정숙 장주현 윤혜진 김윤식 방양준 장상두 김재일▲사군자=정운기 양시우 김진국 이성순 정금정 박영숙 김명숙 이연재 전현주 김주성장정영 김주성▲전각=조수린 박후상 오희수
  • 교육부 이미지 통합 심벌 새로 개발

    교육부는 13일 부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CI’를 개발,앞으로 간행물 등에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CI는 원형의 심벌마크에 훈민정음 목판본 서체로 ‘교육’이라는 글씨를 넣은 것으로 아랫부분의 ‘ㄱ’은 튼튼한 뿌리를,윗부분의 ‘ㄱ·ㅇ’은 열매를,또 펜은 교육·연구를 각각 상징한다고 교육부는 밝혔다. 주병철기자 bcjoo@
  • 인기있는 홈페이지 만드려면

    소박하고 단순한데도 연일 방문객의 ‘클릭’이 이어지는 홈페이지가 있는가 하면,화려한 그래픽과 알찬 정보로 채워졌는데도 외면당하는 곳이 있다. 매력있는 홈페이지를 만드는 비결은 뭘까. 1.그림은 너무 크지 않게 이미지(그림파일) 하나의 크기가 20KB(킬로바이트)를 넘으면 곤란하다.홈페이지를 띄우는 시간도 많이 걸릴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무겁다’는 인상을 주게된다. 또 나중에 홈페이지를 고치기도 힘들다. 반드시 큰 이미지를 써야 한다면 잘게 나눠서 올리는게 좋다. 2.조급한 ‘준공’은 금물 홈페이지는 첫 인상이 중요하다.자기소개나 게시판 정도만 겨우 만들어 놓고 급하게 손님들을 초청한다면 실망만 안겨줄뿐이다.첫 방문에‘책갈피’(북마크)를 해둘 수 있도록 유도해야 ‘고정 팬’이 생긴다. 3.‘사이트 맵’으로 방문객 배려를 전체 메뉴를 일목요연하게 한 페이지에 정리해 놓은 ‘사이트 맵’은 방문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사이트맵이 어렵다면 어디서든 초기화면으로 돌아올 수 있는 아이콘을 만들어 둬야손님이 길을 잃지않는다. 4.자바애플릿 사용은 손님을 쫓는 지름길 물결무늬 그림,움직이는 글자 등특수효과를 위한 ‘자바 애플릿’은 컴퓨터를 순간적으로 정지시키고 심하면 시스템을 다운시킨다.특수효과가 필요하면 ‘자바 스크립트’로 해결하라. 5.색상은 가급적 밝은 색으로 흰 바탕에 까만 글씨가 가장 무난하다. 특출한 디자인 감각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연두색,하늘색 등 다른 색과 쉽게조화될 수 있는 밝은 색상이 좋다.검은색,빨간색 등은 시각적으로 부담을 주기 쉽다. 6.개인정보 공개는 조심스럽게 학교,주소,전화번호 등 자기 신상정보를 공개하면 나중에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볼 수 있다.벌써부터 관련 피해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7.문패는 개성있게,주제는 집약적으로 ‘이몽룡의 홈페이지’보다는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이야기’가 더 많은 방문객을 불러모으기 마련이다. 또음악,영화,스포츠 등 이것저것 백과사전식으로 욕심을 내다가는 지속적인 관리도 힘들고 방문객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기도 힘들다. 8.웹에디터를 너무 믿지 말라 인터넷 서버 상에서 직접 HTML 태그를 입력해야 할 때도 생긴다. 간편한 웹에디터만을 믿다가는 간단한 것도 못 고치는 ‘돌팔이’가 되기 십상이다.틈틈이 HTML 언어를 익혀두는게 좋다. 김태균기자
  • [굄돌] 작은 것이 아름답다

    초등학교 3학년인 종완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침마다 일어나기 싫어서“학교를 부숴 버리겠다”고 투정을 부렸었다.아직도 가끔은 집에서 공부하고,좋아하는 책을 읽으며,로봇을 친구삼아 놀면 안되냐고 묻는다.수영 교습도 다시는 받지 않겠다,피아노 학원에도 가지 않겠다,태권도도 싫다….단체로 배우는 것은 무조건 싫다고 한다. 경험이 아이의 인식과 태도,그리고 행동을 결정하는데,그의 경험은 단체활동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1학년 때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못가게 하였고,피카소같은 글씨와 그림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수영강습 선생님은 첫날 말안듣는 아이 두 명을 가차없이 물에 빠뜨렸었다. 피아노 학원 원장님은 종완이가 ‘시키는대로’ 열심히 하지 않고,다른 질문을 하며,선생님을 어려워하지 않고 말대꾸를 하는 것이 불쾌하여 날카로운소리를 내곤 했던 모양이다.교사들을 비난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인원이 많으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억압적이지 않으면 안되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수영지도 교사와 면담시 “승급에는 관심없으니,다만 물과 친숙하게 되고즐길 줄만 알게 해달라”고 하니,반색을 했다.그런데 아이들이 즐겁게 놀도록 충분히 시간을 쓰면 진도가 늦어진다고 엄마들이 싫어한다는 것이다.피아노도 “다른 학원에 다니는 누구는 벌써 몇 번 나갔던데…”라는 한마디에교사들은 본래의 교육목적을 무시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성급함 역시 억압을 부추긴다. 종완이의 단체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에 두 가지 예외가 있었다.문화원의 과학교실과,작은 공동체를 지향하는 단체에서 갔던 시골학교의 자연캠프다.과학교실은 열 명 정도가 참가해 실험을 했었는데,아이는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었다.인원이 적어 아이들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을 할 수 있었으니,그가 기억하는 선생님은 아주 친절하셨다는 것이다.캠프에서는 무엇이든지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여 활동하게 했다.여유는 자유를 낳는다.게다가 아이들 수만큼이나 많은 대학생 선생님들이 자원봉사로 나서서 아이들과 뛰어 놀고 격의없이 작업을 하니,왜 안좋았겠는가.6학년형에게 머리를 쥐어박힌 일을 잊지 않으면서도 그 캠프에 또 가고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은 학교들을 없애겠다고…? 안타깝게도 자연캠프는 재정난으로 올해 열리지 않는다.작은 학교는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목표가 아닐까. 최현숙 상지대 교수 사회복지과
  • 채점위원이 본 2차응시요령

    답안을 길게 쓰는 게 좋을까.한자를 많이 써야 좋을까. 행정고시(8∼13일)와 공인회계사(6∼7일) 주관식 2차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의 고민들이다.사법시험 2차시험은 지난달 29일부터 2일까지 치러졌다. 채점위원이었던 Y대 법대의 한 교수는 “시간이 허용하는 한 자세히 길게쓰는 게 좋다”고 말한다.하지만 중언부언하기보다는 핵심 내용이나 중요한논점을 많이 설명하는 것이 좋은 점수를 얻는다고 말한다.글씨가 점수에 미치는 영향은 채점위원에 따라 다르지만 또박또박 쓰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한자는 교수마다 약간 차이를 보이고 있다.어떤 교수는 전문용어 정도는 한자로 쓰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고려대 법대 이선택(李善擇)교수는 “요즘은 교수나 학생들이 대부분 한글세대여서 한글로만 답안작성을 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행정학과 이명석(李明奭)교수는 “시험이 임박해서는 시사적인 내용을 점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예를 들어 최근의 행정개혁에관한 내용을 파악하고 외국 사례와 비교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이교수는 현실적인 내용을 충분한 사례를 곁들여 답안을 작성하는 게 좋다고말했다. 연세대 경제학과 서승환(徐昇煥)교수는 “경제 분야 시험의 경우 시사적인내용도 중요하겠지만 경제이론을 배경에 깔고 명확하게 접근하는 게 필수”라고 설명한다.신문·잡지에 나온 내용만 그대로 쓴다면 좋은 점수를 얻기어렵다는 것이다.서 교수는 “출제자가 바라는 답을 정확히 쓰는 것이 좋고예시를 너무 많이 하는 것은 채점위원을 피곤하게 한다”고 말했다.아예 모르는 문제가 나왔더라도 백지로 제출하는 것보다는 비슷한 이론을 적용해 설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점수를 얻을 수도 있다고 한다. 숙명여대 경영학과 이광재(李光宰)교수는 “주관식에선 핵심 단어를 간결하게 번호를 매겨 쓰면 좋은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계산문제에선 정답만 맞는다면 과정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시간이 없으면 무리하게 과정을 쓰려고 시간을 빼앗기지 말라는 얘기다. 이 교수는 “출제자가 주문한 답을 쓰지 않으면 감점”이라고지적했다.예를 들면 세법에서 표를 그리라는 문제가 있는데도 정작 답에는 표를 그리지않고 과정만 잔뜩 써넣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지저분하게 작성한 답안은 채점위원을 피곤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깔끔한 답안 작성은 고득점의비결이다. 박정현·장택동기자
  • [IOC서울총회 이모저모](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총회 이틀째인 17일 오전 9시부터 신라호텔 2층다이너스티홀에서 첫회의를 개최.이날 회의에는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과 김운용 집행위원,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해 전체 위원 103명중88명이 참석.북한의 장웅 위원 등 12명은 개인사정으로 불참했고 나머지 위원들은 18일까지 입국할 예정이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성원보고에 이어 최근 숨진 루이스 기란도-엔다이예(코트디부아르) 위원에 대한 묵념을 제안.이어 지난 총회때 새로 선임된 위원들의 선서식을 갖는 등 공식일정을 시작. ■IOC 총회가 열리고 있는 신라호텔 구내에 ‘불온전단’이 뿌려져 보안 관계자들이 출처를 확인하느라 소동이 벌어졌다. 17일 오전 11시15분쯤 메인프레스센터(MPC)와 국제방송센터(IBC)가 위치한호텔 영빈관내 중정원에 떨어진 손바닥 크기의 전단에는 앞면에 ‘노동자 천국 이북’이라는 글씨가,뒷면엔 ‘김정일 장군’이 노동자 천국을 이끌고 있음을 강조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 한국서예 옛것을 따르되 옛것을 버려라/송하경 교수 인터뷰

    일본의 미술평론가 오노데라 게이지(小野寺啓致)는 언젠가 “한국의 현대서는 해행초전예(楷行草篆隸) 각 서체의 규범적인 전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또한 한국의 서풍(書風)은 중국 서법사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한국의 현대서예가들이 중국 본토의 화가들보다 더 중국 것을 존중한다는 비꼼으로도 들릴 수 있는 말이다.우리 서단(書壇)의 ‘중국병’은 과연 치유될 수 없는 것일까. 한국에는 18세기 말 자하(紫霞) 신위와 같은 능서가(能書家)가 있었고 아취면에서도 결코 중국에 뒤지지 않았다.그러나 한국 서예는 왕희지풍을 계승한 동기창과 조맹부 등의 서풍에 밀려 새로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이러한 우리 서예사의 구각을 벗게 한 인물이 바로 추사 김정희다.‘서예의 죽음’이 입에 오르내리는 지금,‘제2의 추사 대망론(秋史 待望論)’이 나오고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오늘날 서구에서는 현대서(現代書) 하면 일본 서도를,전통서(傳統書) 하면중국 서법을 으레 이야기한다.한국 서예는 상대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는 셈이다.한국의 현대서는 지난 89년 한국서예협회가 주최한 첫 공모전에 현대서부문이 생김으로써 국내 서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한국의 서예 혹은 현대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부 예술’‘들러리 예술’에 머물고 있는형편이다.전문가들은 그 가장 큰 이유로 서예인들이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한채 스승의 법만을 추종하는 법노(法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그동안의 도제식 서예교육은 스승의 울타리에 갇힌 아류 서예인만을 양산해왔다.일찌기 추사가 “법은 익히기도 어렵지만 버리기는 더욱 어렵다”고 한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편 최근 들어서는 일부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현대 서예미학을 선보이고있어 관심을 모은다.이들은 문자가 전달하는 내용,즉 문학성이 아니라 문자가 지닌 독특한 언어체계,즉 감성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역점을 둔다.또한 공간의 운용과 자획(字劃)의 미,선조(線條)의 미를 강조한다.서예는 이제‘읽는 예술’에서 ‘보는 예술’로 나아가고 있는 추세다. 이들은 위엄있는 서체인전서(篆書)를 쓸 때도 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색화면으로 처리,시대정신과 미감을 외면하는 서단을 풍자한다.또 서예나 전각을 할 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좌행(左行) 방식 대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우행(右行)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그런가하면 너무 작아 미감을쉽게 느끼기 어려운 전각을 확대,재구성한 작품을 내놓기도 한다.이것은 90년대 미국 판화계에 새롭게 등장한 일렉트론 아트(Electron Art)의 영향을받은 것이다.일렉트론 아트는 미세한 사물을 전자기기로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이미지를 추구하는 미술.필묵을 선의 파동으로 해석하는 물파(物波,Neo-Wave)그룹의 창립멤버인 서예가 이숭호씨(44·한국서예협회 이사)의 ‘대도지행(大道之行)’은 그런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이다.이씨는 “서예는 이제 더이상 문자에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말한다.문자는 하나의 약속이자 소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도의 세계화에 본격적으로 나섰다.한국 서예가세계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필묵정신을 구현하고 국제적인 교류를활성화하는 일이 시급하다.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대학에서 열리고 있는 서예가 정도준씨(51)의 초대전은 그런 점에서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정씨는 국전이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바뀌던 첫 해인 지난 82년 ‘조춘(早春)’을출품해 대상을 받은 중견 작가.문자로서의 의미전달 못지 않게 전체적인 조형적 특성을 살리고 있는 것이 그의 서예세계의 특징이다.그는 이번에 ‘철심석장(鐵心石腸)’‘흉중해악(胸中海嶽)’‘호시우행(虎視牛行)’‘무거마훤(無車馬喧)’‘송백(松柏)’ 등의 작품을 냈다. 김종면기자 - [인터뷰] '99세계서예 전북비엔날레 조직위 송하경 교수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지도리는 좀먹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스스로 끊임없이 운동을 해야 건강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죠.서예예술에서의 부단한 운동이란 바로 동화(同化)와 이화(異化)의 작용을 통한 자기갱신을 뜻합니다” ’99세계서예 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인 송하경교수(58·성균관대 동양학부)는 서예예술의 생명은 전통을 계승하는 가운데 새로움을 추구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에 있다고 강조한다. 송교수는 강암체라는 독특한 서풍을 확립한 한국서예의 대가 고(故) 강암송성용 선생의 차남.한국서예학회 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현재 전북 전주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서예 비엔날레를 우리 서예의 현주소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그는 먼저 서예인의 덕목에 대해 언급한다. “서예를 하는 사람은 늘 빙동삼척(氷凍三尺),즉 하루 추위에 석자 얼음이얼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정진해야 합니다.아파트 층수에 따라전망이 달라지듯 자기수련의 정도에 따라 서경(書境)이 달라지죠.서예의 드높은 경지에 도달하려면 명비와 명첩을 많이 관찰하고,다양한 서체와 운필기법을 두루 체득하고,작품 전체가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까지 끊임없이 표현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송교수는 이러한 서예인의 자세가 전제돼야한국 서예는 제 길을 찾아갈 것이라고 밝힌다.그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현대서예의 정체성 문제다.“고암이나 운보,월전 등의 그림을 보면그 바탕이 서예임을 대번에 알 수 있어요.서론(書論)과 화론(화論)은 서로 통합니다.그것이 이른바 서화동원론(書화同源論)이에요.그러나 중요한 것은 서예와 그림이 근원이 같다고 해서 그 한계까지 무너뜨려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전위적이라 할 정도로 탈규범적인 ‘글씨 아닌 글씨’가 현대서예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는 없지요” 한국 서예에 어떻게 시대정신의 옷을 입힐 수 있을까.“요즘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선택하는 재료와 표현기법,장법(章法),문장내용,표구방법 등이 아주 다양합니다.이런 경향은 법고의 측면에서 보면 부정적인 속류(俗類)현상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인 창신현상으로 볼 수있어요.그렇다고 전통계승의 법고성을 절대로 외면해선 안됩니다” 송교수가 이야기하는 전통의 범주에는 한글의 판본체와 궁체는 물론,중국의 갑골(甲骨),이기명문(彛器銘文,옛날 종묘에 갖춰 뒀던 제기에 새겨진 글자)·명가의수적(手迹),역대 서가의 서론격언 등이 모두 포함된다. “서예 인구가 500만이 넘지만 정작 서예교육이나 지원의 측면에서 보면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서예과를 두고 있는 대학이라야 고작 원광대·계명대·대전대·대구예술대 등 4곳 뿐이에요.보습학원이나 속셈학원 수준의 교육으로는 한국 서예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송교수는 “한국 서예가살려면 무엇보다 서예에 대한 학문적인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고 힘주어말한다. 김종면기자 jmkim@.
  • 서양화가 엄정순 열번째 개인전

    “나는 아직도 세상의 모든 대상을 ‘관찰’하는 데 흥미가 있습니다.관찰은 내 그림작업의 시작이에요.곤충이 더듬이를 통해 대상을 관찰하고 느끼고 이해하듯,나는 선(線)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표현합니다.선이야말로 내 그림의 기본도구인 셈이죠” 곤충의 촉수나 식물의 뒤엉킨 뿌리 혹은 잔가지를 연상케하는 가는 선으로 화면을 풍성하게 채우는 서양화가 엄정순(38).10년 넘게 선의 다양한 표현가능성을 모색해온 그가 서울 종로구 팔판동 갤러리 인에서 열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다.97년 ‘꽃속의 선-공간’전이후 2년만이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꽃과 인체,그리고 도형.작가는 사물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때리고 할퀴고 봉합하는’ 고단한 선작업을 무수히 되풀이한다.꽃이나 인체,도형 같은 구체적 대상물은 물론 소리나 그림자 같은 형상화하기어려운 대상조차 ‘선의 마술’을 통해 속성을 드러낸다.“‘전체는 부분의총합 이상이다’라고 구조주의자들은 말합니다.화면을 들여다보면 내 작품은 수많은 점과 그 점에서 잉태된 선의 유희로 이뤄져 있어요.하지만 한 발 뒤로 물러나 전체를 바라보면 선보다는 오히려 형태가 살아날 겁니다.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에게 선은 단순히 그어진 상태가 아니라 인간세계에 대한 경험담이자 작가적 실존의 반영이다. 이런 선묘작업에 대한 남다른 집착 탓인지 그는 유화물감이나 아크릴릭 대신 오일스틱을 주로 사용한다.오일스틱은 크레용과 같은 소재로 화가들이 글씨를 쓰거나 부분적으로 선을 처리할 때 흔히 사용하는 재료.품은 많이 들지만 선으로 화면에 생채기를 내고,또 그것을 다독거리기엔 안성맞춤이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80년대 초 독일 신표현주의 미술 분위기에 이끌려 독일로 건너갔다.뮌헨대학원을 졸업한 뒤 한국에 돌아와 4년동안건국대 교수로도 일했다.그러나 96년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로 나섰다.그에게는 곤충의 더듬이와도 같은 선,우주의 에너지를 머금은 그 선의 주체할 수 없는 매력에 온전히 빠져들기 위해서다.25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는 엄정순이 어떻게 세상을읽고 해석하고 암시하고 꿈꾸는가를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장(場)이다. 김종면기자
  • [제2공화국과 張勉](29)-金대통령 특별회고(下)/사료적 가치

    28회에 이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회고 증언 가운데 장면(張勉)박사를 만나 가톨릭 영세를 받은 과정 등 5가지 질의에 대한 답변을 싣는다. 장 박사를 만나기 전에도 성당에 나간 것으로 압니다.영세를 받은 과정을들려주십시오. 제 전처의 처가가 가톨릭 집안이기 때문에 자주 성당에 나갔지만 정식으로영세를 받은 것은 1957년이었습니다.그때 저는 유명한 신학자이기도 한 윤형중(尹亨重)신부로부터 교리강독을 받았고 노기남(盧基南)대주교의 방에서 김철규(金哲奎)신부라고,그때 우리 민주당과 매우 가까운 신부님으로부터 영세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최서면(崔書勉)씨라고,그때 서울교구 사무국장으로 있던 제 친구가 주선했는데 장 박사를 대부로 소개해준 사람도 그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장 박사하고 영적으로 대부·대자의 관계가 되었고,그 인연으로 저는 신파의 총수인 장 박사 밑에서 젊은 엘리트로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관계로 자연히 장 박사 가족하고도 잘 알게 되었는데 특별히 인연이 깊어진 것은 장 박사가 5·16을 겪고 잡혀갔다가 돌아와서 명륜동 자택에 칩거할 때였습니다.과거에 교류가 있던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장 박사를 외면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6대 국회의원이던 저는 장 박사를 찾아뵈면서 관계를 유지했고,그 분이 돌아가신 후에도 가족과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한번은 장 박사 추도식을 동성고등학교에서 대대적으로 했는데 그것을 제가 전부 주선한 일이있습니다.이런 일들로 해서 장 박사님 가족하고는 더욱 절친하게 되었습니다.제가 1980년 사형 언도를 받아 있을 때 장 박사 사모님께서 제 사형 언도가 풀릴 때까지 매일 그 추운 겨울에 성당에 나가 저를 위해서 기도하셨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경제전문가이기도 합니다.장면정부가 내세운 경제제일주의와 구체적으로 추진한 ‘국토건설사업’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실현가능성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저는 이 문제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당시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김영선(金永善)재무장관이 중심이 되어서 입안했습니다. 그리고 국토건설단은 사상계를 발간해 지식인들에게서 많은 존경을 받던 장준하(張俊河)씨가 맡아줌으로써 큰 활기를 불어넣게 되었습니다.국토건설단에 젊은 청년들이 정말로 나라를 한번 다시 세운다는 의욕으로 적극적으로참여하는 분위기가 크게 일어났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토건설5개년계획이 얼마나 좋은 안(案)이었나 하는 것은 그후 군사쿠데타로 들어선 박정희(朴正熙)정권이 추진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토대가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경제제일주의는 장면정권의 양대 모토였는데 여기에 대해서 당시 우리나라 경제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치며 예산의 절대적 액수를 원조해주던 미국까지 적극적으로 지지한 바 있습니다.미국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받도록합의가 돼 장면총리가 미국을 방문하고자 출발하려는 찰나에 군사쿠데타가일어난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민주당 신파 계열을 지켜온 사실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는다는 표현을 가끔 하십니다.신파의 특성,또는 장점을 설명해 주십시오. 일제시대 관료 출신들이나 은행가들이 해방 후 2대 국회를 중심으로 대거 정계에 등장했습니다.자유당에 의한 사사오입개헌이 일어난 후 이들이 민주국민당과 손을 잡고 민주당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민주당 내에서 민주국민당 계열이 구파를 이루게 되었고 과거의 관료계층이신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과거 관료 대부분은 이승만(李承晩)정권에 협력을 했지만 신파에 참여한 관료 출신들은 양심을 가지고 민주주의와 자유경제,그리고 남북간의 평화적 교류,이런 것을 생각하는 세력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신파는 구파에 비해 개혁적이었고 민주주의에 대해서도더 철저한 면이 있었습니다.실제 이승만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해서 신파는매우 강하게 투쟁했고,이 점에 있어서 구파하고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4·19가 일어날 무렵 구파는 대거 자유당에 입당했고 신파는 자유당정권으로부터더욱 미움과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신파의 반독재·민주화투쟁의 정신을 이어받았고 그리고 시장경제라고 할까,자유경제에 대한 정신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저는 그 후로 일생의 정치생활을 통해서 일관되게 그때 받은 영향을 그대로 견지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5·16쿠데타 발생 후 장 총리는 수녀원으로 도피했고,윤보선(尹潽善)대통령은 쿠데타를 추인했습니다.두 분의 행위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장 박사와 윤보선 두 분에 대한 평가는 역사의 몫이지 제가 여기에서 말할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2공화국 당시의 내각책임제를 어떻게 보십니까.제2공화국,그리고 장 박사에 대해 종합적인 평가를 해주십시오. 정국을 책임지고 잘 장악해 안정을 유지해서,그런 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총리였던 장 박사에게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그러나 거기에는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장 박사가 제대로 정치를 하지 못하도록 괴롭힌 면이 있었습니다.저는 과거에 내각책임제를 열렬히 지지한 바 있지만 5·16을 겪고 나서 내각책임제에 대해 큰 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그 이유는,당시 경험으로 정당과 국회의원이 성숙하지 않고서는 내각책임제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5·16 당시 나라가 공산화 직전에 있었다든가,장정권이 지나치게 부패했다는 쿠데타 명분에 대해서 상당 부분 공정한 주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왜냐하면 5·16 직전 정국은 아주 안정이 되었고 오히려 매일같이 일어나던 시위도 거의 가라앉은 상태였습니다.정치 역시 안정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패 역시 사실이 아니었습니다.5·16 후에 장정권의 부패를 대대적으로 조사를 해가지고 신문 양면에 걸쳐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 채워서 발표를 했지만 재판결과 부패로서 처벌받은 것은 김영선재무장관이 출장 중 중고품 냉장고 하나를 어느 공무원에게서 선물받았다는 것뿐이었습니다.나머지는 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모처럼 학생들이 피를 흘려 이룩한 민주주의를 정치인들이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사분오열해서 가뜩이나 약한 정권을 잡고 흔드는 일을 한 데다 언론까지 가세해 결국 장정권이 유지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 장면정권의 간부였던 한 사람으로서 그 책임을 통감하지만 역시 정치가 안정되고 정권이 성공하려면 많은 사람들의 협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특히 정치인은 스스로가 책임 있는 자세로서 도와줄 것은 도와주고,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그런 건전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당시 뼈저리게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 3·15부정선거 규탄시위 증언 통설 뒤집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증언은 현직 대통령이 신문 연재물에 직접 참여했다는 의미말고도 증언 자체가 갖는 사료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김 대통령은 먼저 장 박사와 관계를 맺게 된 계기를 “장 박사가 1956년 부통령으로 출마했을 때 무소속인 제가 장 박사 지지를 선언한 것이 신문에 보도돼서”(28회에 게재)라고 공개했다.이 말은 언뜻 이해하기에 쉽지 않다.김 대통령은 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으므로 56년 당시에는 일개 정치 지망생에 불과했다.그런 그가 장 박사를 지지했다고 해서 신문에 보도되기란 어려웠으리라고 짐작된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그때 이미 주목받는 논객이었다.55년 9∼10월에만 동아일보에 다섯 차례 ‘시론’을 실었고,당시 지식인 사회를 대변하는 월간지‘사상계’ 55년 10월호에도 장문의 논설을 발표했다.제목은 ‘노총(勞總)분규와 우리의 관심’ ‘한국 노동운동의 진로’ ‘노조는 유해한가’ 등으로모두 노동운동을 주제로 했다.따라서 ‘장면 부통령후보 지지 선언’이 보도될 만한 여건은 충분했던 셈이다. 60년 4월6일 민주당이 주도한 서울 중심가 시위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밝힌 것(28회 게재)도 상당히 소중한 역사적 증언이다.그날 시위의 전개와 이후‘4·19혁명’에 끼친 영향 등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흔히들 제2공화국의 민주당정부를 4월혁명에 ‘무임승차한’정권이라고 하지만 민주당 인사들의 주장은 다르다.민주당이 4월혁명을 일정 부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3·15부정선거’ 당일 마산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지만 막상 서울에서는 3월17일 성남고생 400여명이 거리에 나섰을 뿐 학생·시민의집단적인 움직임은 없었다.이처럼 잠복한 민심을 민주당이 촉발했다는 주장이다.그런데도 그 증거로 ‘4·6민주당 시위’를 내세우고 이 시위를 생생하게 되살린 증인은 여태껏 없었다. 김 대통령의 증언을 보면 학생들이 시위에 동참하는 과정,일단 시위대에 끼자 경무대를 목표로 삼으려고 한 사실들이 명백하게 밝혀진다.학계에서 집중적으로 검토해볼 만한 부분이다. 당 대변인이 된 과정(28회 게재)도 그 무렵 김 대통령의 정치적 위상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60년 ‘7·29총선’에서 민주당은 민의원 172석을 차지했다.그야말로 제제다사(濟濟多士)라 할 만큼 인재가 넘치는 상태였는데 김 대통령은 선거에서 떨어지고도 대변인이라는 중책을 맡았다.유망한 청년 정치인에게 거는 민주당 지도부의 기대와 신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대통령은 장면 박사와 제2공화국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에서 “정치인은스스로 책임 있는 자세로서 도와줄 것은 도와주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건전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당시 뼈저리게 느꼈다”고 결론내렸다.지금의정치권에도 적용되는 주문일 것이다. 이용원기자
  • 이달에도 바이러스 조심

    6월에도 다양한 컴퓨터 바이러스들이 함정처럼 도사리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다음은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정보보호센터가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 6월의 바이러스들. ●키누르기(Key Press).1236(활동일 2일) 실행파일(확장자가 ‘com’이나 ‘exe’)을 감염시킨다.감염된 파일이 실행된뒤 15분이 지나면 ‘SADDAM,the Interiority of the Choas’라는 메시지를 출력시킨다. ●한국변형 크리크리(CriCri).4289(4일) 실행파일을 감염시키는 국산 부트및 파일 바이러스로,감염파일의 크기를 4,289바이트 키우고,메모리는 9KB 줄인다.모니터 중간에 연두색 글씨를 내보낸 뒤 시스템을 정지시킨다. ●VCL.853(11일) ‘com’파일에 감염되며 감염파일을 실행하면 하드디스크의 데이터를 파괴한다. ●6월12일(12일) 실행파일에 감염되고 6월12일 PC스피커로 음악을 연주하며컴퓨터화면에 ‘June 12-the Independence Day of the Phillippines’라는메시지를 띄운다. ●CIH 1.4,1.5(26일) 사상 최악의 바이러스로 평가받는 CIH바이러스의 변종으로 매월 26일 활동을 하며 하드디스크의 데이터를 삭제하고 메모리를 파괴해 컴퓨터를 먹통으로 만든다. 이밖에 ‘탈롱’(18일) ‘나일론’(22일) 등도 주의해야 한다.최선의 대비책은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www.ahnlab.com)나 ‘하우리’(www.hauri.co.kr)등 바이러스 백신제조업체에서 백신프로그램을 구해 진단·예방하는 것이다. 김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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