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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회장 죽음’ 기획자살이다 타살이다 / 네티즌‘음모론’난무

    경찰이 부검 결과 등을 토대로 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타살로 의심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내렸지만 인터넷에는 이를 믿을 수 없다는 네티즌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네티즌은 특히 정 회장이 죽기 전 30분 뒤에 내려오겠다며 운전기사를 대기시켰고,성인이 간신히 빠져나갈 만한 좁은 창문을 통해 뛰어내렸다는 점,유서의 글씨체가 너무 난필이고 내용이 빈약하다는 사실 등을 들어 ‘단순자살이 아닐’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자살 음모론까지 나돌아 일부에서는 정 회장이 갑작스레 죽음을 선택할 만큼 회사 사정이 어렵지 않았고 죽기 직전까지 대북송금과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검찰의 강도높은 수사를 받았다는 점을 들어 “정권 실세가 개입된 기획 자살”이라는 근거없는 음모론까지 나돌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정 회장 추모카페(cafe.daum.netonghun)에는 5일 하루에만 정 회장의 자살에 의문을 제기하는 수십개의 글이 올랐다.‘홍보부장’이란 네티즌은 “운전수 보고 기다리라고 한 뒤 자살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면서 “대기업 총수가 마치 무엇에 쫓기는 것처럼 필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휘갈겨 쓴 이유도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란 네티즌은 “대북 사업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대북사업을 더 강력 추진하고,유해를 금강산에 뿌려달라는 말을 남겼다는 것은 너무 작위적”이라고 밝혔다. ‘안타까움’이란 네티즌도 “어떻게 어른 머리 하나 들어갈까 말까하는 문을 통해 자살을 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네티즌 하모씨는 “12층에서 투신한 정 회장에게서 아무 외상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정 회장이 타살된 뒤 옮겨졌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익논객들은 타의적 자살 주장 일부 우익 논객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정 회장의 자살이 정권에 의해 기획된 ‘타의적 자살’이란 주장을 제기했다.시스템사회운동본부 지만원 대표는 홈페이지(systemclub.co.kr)를 통해 “유서의 필적과 내용으로 미뤄 십만명이 넘는 직원을 지휘하는 총수가 남긴 글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조갑제 월간조선 대표도 홈페이지(www.chogabje.com)에 띄운 2편의 글을 통해 “정 회장의 죽음에 김정일 김대중 세력의 협박이 작용했을 수 있다.”며 ‘자살 배후론’을 제기했다. ●경찰은 각종 의혹 일축 이에 대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정 회장이 뛰어내린 창문은 완전히 열 경우 성인 남자가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크기이며,시신에 외상 흔적이 없는 것은 부러진 소나무 가지와 화단의 흙이 낙하 충격을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필적 논란에 대해서도 “정 회장의 필적이 분명하다는 게 유족과 회사 관계자들의 일치된 견해”라고 일축했다.이동연 문화사회연구소장은 “죽음을 당리당략에 이용하려는 정치세력과 독자를 자극하기 위해 의혹을 생산하는 일부 언론의 주장이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과 결합해 근거 없는 루머를 양산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여전히 불신이 만연한 ‘저신뢰사회’라는 점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세영기자 sylee@
  • 정몽헌회장 자살 / 마지막 행적 재구성

    4일 새벽 투신자살한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마지막 행적을 경찰 조사와 주변 인물들의 진술을 토대로 재구성한다. ●친구 박모씨와 와인 2병 마셔 정 회장은 자살 전날인 3일 낮 12시30분 서울 H호텔에 투숙 중인 보성고 동창 박모(53·미국 워싱턴 거주)씨를 만나기 위해 운전기사 김모(57)씨와 함께 성북동 자택을 나섰다. 오후 1시쯤 호텔에 도착한 정 회장은 호텔 구내 이발소에서 이발을 한 뒤 오후 2시40분 박씨를 만나 1시간여 동안 로비 오픈 바에서 골프 등 가벼운 얘기를 주고 받았다.박씨는 미국 워싱턴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로 수시로 한국을 드나들었으며,한달 전쯤 휴가차 입국했다.박씨는 대학 졸업 뒤 한때 미주 현대지사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4시쯤 H호텔에서 장충동 S헬스클럽으로 이동 중에 정 회장은 부인 현정은(48)씨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을 함께 먹자고 제의했다.정 회장은 S클럽에서 손윗동서 유모씨와 조카딸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고,오후 5시 동창 박씨와 함께 4명이 신사동 도산공원 근처 N식당으로 출발했다. 5시30분 식당에 도착한 정 회장은 부인 현씨와 딸을 만나 6명이 함께 식사를 했다. 부인 현씨는 “식사 자리에서 특별히 자살할 만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면서도 “워낙 말이 없었지만 평소 집에서는 대북송금과 재판으로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2시간 남짓 이어진 저녁식사 후 정 회장은 부인에게 “박씨와 함께 있고 싶으니 먼저 들어가라.”며 돌려보냈다.가족과의 마지막 이별이었다. 그후 정 회장은 오후 8시30분 단골인 강남구 청담동 W바에 들러 1시간 동안 박씨와 함께 와인 2병을 마셨다. 정 회장은 밤 11시40분 박씨를 H호텔에 내려주었다. ●밤 11시52분쯤 사옥 도착 박씨와 헤어진 정 회장은 밤 11시52분쯤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에 도착,12층 집무실로 올라갔다.보안요원 위모(30)씨는 “정 회장과 12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집무실 문을 열어줬다.”고 말했다.정 회장은 위씨에게 “30분 정도 있다 나가겠다.”고 말했다.위씨는 정 회장에게 집무실 열쇠를 건네고 내려왔다. 비서실과 회의실을 거쳐 집무실로들어간 정 회장은 안으로 문을 걸어잠갔다.그리고 가족과 현대 임직원,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등을 떠올리며 유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유서는 흰 봉투에 넣은 뒤 원탁 위에 올려놓았다.술을 마셨고 다소 격한 심경이었는지 유서의 일부 글씨는 읽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흘려 쓰여져 있었다.늘 쓰고 다니던 안경과 시계는 벗어서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부인 현씨는 정 회장이 돌아오지 않자 새벽 1시와 5시쯤 두차례나 운전기사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에 금방 갔다가 온다고 했는데 아직 안 들어왔다.어찌된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집무실에 들어간 지 3∼4시간 지난 뒤 정 회장은 밖으로 밀면 열리는 가로 95㎝,세로 45㎝의 반개폐식 창문을 열고 밖으로 몸을 던졌다.경찰은 발견 당시 시신의 경직 상태로 보아 정 회장이 숨진 시각을 새벽 3∼4시쯤으로 추정했다. 오전 6시쯤 출근한 정 회장의 여비서 최모(38)씨는 건물 미화원 등으로부터 사고 소식을 듣고 화단으로 내려와 숨진 사람이 정 회장임을 처음 확인했다.30분이면 내려온다는 말을 듣고 밤새 주차장에서 기다렸던 운전기사 김씨도 그때서야 비보를 접했다. 구혜영 박지연기자 koohy@
  • “北에 남은 자녀 표정 건강하지만 초조한듯”/ 日가족 “귀환 앞당겨라” 日정부에 촉구

    |도쿄 황성기특파원| “하루빨리 귀국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납치 피해자인 지무라 야스시(48)는 3일 오전 고향인 후쿠이(福井)현 오바마 시에서 부인 후키에와 함께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세 자녀의 조기귀국을 위해 일본 정부가 서둘러 줄 것을 촉구했다. ●편지·사진 보며 “무사해 안심” 지무라 부부를 비롯,하스이케 가오루(45)부부,소가 히토미(44) 등 지난해 10월 북에서 돌아온 피랍자 5명이 이날 일제히 기자회견을 가졌다.그들 자녀를 평양에서 면담한 비정부기구(NGO) 레인보 브리지(사무국장 고사카 히로아키)가 2일 일본 정부를 통해 전달한 자녀들의 사진과 편지를 납치 피해자들이 받아본 뒤 가진 회견이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지무라는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 기쁘지만 아이들이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일본 정부에 조기귀국을 위해 힘써 줄 것을 요구했다.부인 후키에도 “사진이나 편지를 보면 건강한 모습이지만 불안한 기분으로 (편지를)쓰고 있어 그런 쓸쓸함을 빨리 해소해 주고 싶다.”고 혈육의 정을 나타냈다.지무라는 그러나 “우리들이 몇개월이나 돌아오지 않는데 대해 (북한당국으로부터)일본에 가서 억류돼 있는 것으로 들었다고 써 있다.”면서 “그렇지만 아직 (부모들이)일본인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아 안심했다.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식료나 생활비를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스이케 부부도 니가타(新潟)현 가시와자키의 자택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무사하게 지내고 있어 안심했다.”고 감회를 전했다.하스이케씨의 설명에 따르면 편지는 장녀(박영화·21·대학생)가 썼으며 근황보고 외에 생일과 정월의 추억 등을 담았다. ●“北당국 감시아래 자녀들 편지 쓴 듯” 하스이케는 “(출장중으로 믿고 있다면)‘일 열심히 해’라고 쓰는 게 보통이지만 ‘돌아와’라고 썼다.”면서 “(북한측이)부모자식간의 정을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부인 유키코(47)도 “왜 아이들을 이용하는 건지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남편 로버트 젠킨스(63)와 두 딸을 평양에 두고 온 소가는 “오랜만에 큰딸의 글씨를 읽었다.대단히 감동했다.뜨거운 것이 솟아올라 몇차례나 읽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사랑하는 어머니에게’라고 한글로 봉투에 쓴 편지에는 “하루라도 빨리 4명이 함께 살고 싶다.”고 써 있었다고 전했다. 소가는 사진에 대해서는 “두딸 모두 머리카락이 길었다.키도 조금 큰 것 같다.”면서 “일본에 있는 내게 전달될 것을 알고 조금 웃음을 짓고 있으나 본래의 웃는 얼굴을 아니다.”고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marry01@
  • 이집이 맛있대요 / 전주 중앙동 ‘가족회관’

    맛의 고장 ‘전주’하면 으레 비빔밥을 떠올린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가족회관’에는 전통 전주 비빔밥의 진수를 맛보려는 손님들의 발길로 늘 북적인다.계단에 오르면 입구에 전주 비빔밥의 유래와 맛의 비결을 설명하는 초대형 홍보물이 눈에 들어온다.호남이 낳은 선비 강암 송성용의 글씨와 동양화가 걸린 탁 트인 실내는 깔끔하면서도 운치가 넘친다. 손님들이 직접 비빔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개방된 주방에서는 지지고 볶는 구수한 비빔밥 냄새가 식욕을 돋운다.전통미가 물씬 나는 유기그릇에 담겨나오는 비빔밥은 그 절묘한 맛을 눈,코,입으로 모두 느낄수 있다.눈으로 보는 비빔밥은 당근,오이,고사리,도라지 등 각종 나물류의 살아있는 색깔이 정갈하면서 맛깔스럽다.냄새로 느끼는 비빔밥은 고소하면서 상큼하다.30여 가지의 재료들이 어우러진 비빔밥의 맛은 개운하면서 입에 쩍쩍 안기는 감칠맛이 그만이다. 가족회관 비빔밥이 맛을 내는 비결은 주인 김연임(여·66)씨가 정성스럽게 직접 고른 싱싱한 재료와 고집스럽게지켜오는 전통적인 조리법에 있다. 전통 비빔밥에는 콩나물,표고버섯,오이,당근,밤,대추,은행,잣,계란,육회 등 갖은 양념과 나물 등 30여가지가 들어간다.밥은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특미로 짓는다.밥 짓는 물도 한우 사골 육수이기 때문에 밥알에 윤기가 흐르고 쫀득 쫀득한 맛을 낸다.고추장,간장 등도 모두 재래식 방법으로 직접 담근 것이다.콩나물은 쥐눈이 콩으로 재배한 것으로 특허를 받은 무공해다.양념류도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다져 만들어 손맛이 살아있다.밑반찬이 김장아찌,더덕장아찌,계란찜,각종 김치,낙지무침,굴비구이,부추전 등 20여가지나 돼 푸짐하고 후덕한 전라도 인심을 만끽할 수 있다.주 메뉴인 비빕밥 외에 여름철에는 보양식인 삼계탕을 즐길 수 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녹색공간] 붉은귀거북 방기 대책을

    경기도 안성 칠장사는 의상대사가 세운 신라고찰이다.이 절의 중흥기는 혜소국사가 이곳에 머물던 고려 초기이다.혜소는 안성 출신으로,25세때 승과에 급제하고 말년에 문종의 왕사가 된 당대의 고승이다.대웅전 뒤쪽 언덕에 그의 비(碑)가 비각 속에 잠들어 있다. 그의 행장을 기록한 비문에 방생 이야기가 있어 눈길을 끈다.내용인 즉,전국을 운수하던 중 속리산 아래 큰 냇가를 지나게 되었다.마침 사람들이 고기를 잡고 있었다.망태기 속에 담긴 고기들이 헐떡거리며 죽어가는 것을 본 그는 측은지심이 생겼다.해서 그동안 탁발한 식량을 사람들에게 모두 주고 물고기를 얻어 냇물에 놓아주었다는 내용이다.방생(放生)의 전형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방생은 한국불교의 오랜 전통이다.살생은 생명을 죽이는 것뿐 아니라 죽음을 방관하는 행위까지 포함한다.불살생계는 생명을 죽이지 않겠다는 소극적 차원을 넘어 죽음에 이른 생명을 살려내는 적극적인 방생까지 포함한다.경전의 예를 보면 대개 방생물들은 가뭄과 같은 천재지변에 의해 죽어가는 것을 살려준 것이었다.방생은 내적(內的)으로 자기 성찰(省察)과 적덕(積德)의 기회를 주고,사회적으로는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좋은 전통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들어와 숭유배불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재의식(齋儀式)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방생이 기복성(祈福性)이 끼어들어 점차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이다.많은 이들이 복을 빌기 위해 시장에서 물고기와 거북 등을 사다가 놓아주는 것이다.순수무위의 방생이 ‘give and take’의 작위적 방생으로 변질된 것이다. 얼마 전에 경주 감은사 옛터가 있는 대종천을 탐사한 적이 있었다.대종천은 봄이면 큰가시고기와 은어가 올라오는 생명의 젖줄이다.그런데 거기서 등짝에 흰 글씨로 ‘기축생 ○○○’이라고 쓴 붉은귀거북(청거북)을 발견하고는 크게 상심했다.방생의 기복성 측면에서도 ‘이게 아니다.’ 싶었지만,외래종인 붉은귀거북이 세수대야만하게 자라는 동안 대종천의 담수어류 생태계를 얼마나 교란시켰는지를 상상하면 끔찍했다. 최근 방생이 논란이 되는 원인은 방생 자체가 아니라 예전과 달라진시대상황과 환경상황에 있다.붉은귀거북은 1980년대 초 정부의 허가를 얻어 업자들이 애완용으로 대량 수입해 들어온 것이다.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600만마리 가까이 수입되었다고 한다.다행히 지난해부터 수입금지 품목으로 지정되고,불교계에서도 방생지침을 만들어 붉은귀거북 방생을 금지하고 있지만,아직도 시중에서는 애완용으로 판매되고 있다. 어린 붉은귀거북은 처음엔 귀엽지만,몸집이 커지면 집안에 배설물로 인한 악취가 풍기고,관리하기가 귀찮아져서 강이나 연못 등에 몰래 갖다버리는 예가 많다.도시 주변에서 발견되는 붉은귀거북은 모두 그렇게 버려진 것들이다.현재 각 가정에서 기르는 대개의 붉은귀거북은 머지않아 연못이나 하천으로 몰래 버려질 것이다. 정부 당국은 외래종 수입을 무분별하게 허가한 책임이 있는 만큼 애완용 붉은귀거북의 잠재적 방기(放棄)에 대한 대책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다만 과거 황소개구리 때려잡기식으로 붉은귀거북을 무차별 학살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할 것이다.생명경시 풍조를 부추기기보다는 차라리외국에서처럼 붉은귀거북에 대한 불임시술이 더 생명적일 수 있다. 김 재 일 두레생태기행 대표
  • 기고 / 신언서판 그리고 안티 미스코리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별나게 외모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때로는 우리의 지나친 관심에 우리 스스로 의아해 하기도 한다.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결코 이상한 일도 놀랄 일도 아니다.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우리는 사람을 평가하는 데 유별나게 그리고 지나치게 큰 비중을 외형 용모 곧 바깥 생김새의 시비에 두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분히 경험적 동물이어서 자신의 경험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어쩌랴. 소위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잣대가 그 전통을 잘 반영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잣대를 오랫동안 사람을 판별하거나 인재를 등용하는 기준과 척도로 삼았다.신언서판이란 사람을 평가하는 데 우선순위가 용모이고 그 다음이 언변이며 그 다음이 글씨고 그리고 마지막이 판단력이라는 것이다.사람은 모름지기 외형적으로 인물에서 위세를 갖추고 그러고 나서 말솜씨와 문장력이 수준 이상이면 좋을 것이고 그런 다음에야 사리를 이해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좋은 능력을 갖게 되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었다. 급기야는 외모에 너무 매달려 얼굴 뜯어고치기가 한창 유행이다.서울 시내 400여 개에 달하는 성형외과가 성업중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부작용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수술로 외모개선이 가능하다면 그래서 여러모로 자신감까지 갖게 된다면 그것도 능력 아니냐고 성형수술을 지지하는 사람도 꽤 많다.현실적으로 취직이나 임용이며 시험에서 용모중시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열기는 식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나로서는 신언서판의 철학은 참 유감이다.사람의 값어치를 산정할 때 즉 그 사람됨을 저울질할 때 자신의 노력과 의지에 가장 덜 상관적인 자질(deserts)에,여기서는 생김새(身)에,가장 크게 의존하겠다는 것이 신언서판의 본질이기 때문이다.인간평가의 바른 자세는 되레 그 반대여야 하는 것 아닌가.나는 신언서판이 아니라 차라리 판서언신(判書言身)이 사람을 판별하는 잣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과거 우리 선배들도 신언서판해서는 안 된다는 역설(力說)을 신언서판에 빗대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경계하려 했다고 이해하고 싶다. 흑인 인권운동가 킹목사는 “나의 아이들이 그들의 피부의 색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격의 내용에 의해서 평가되는 그 날이 올 것을 꿈꾸고 있다.”고 열변하였다.피부는 부모 탓이고 인격은 제 탓이지 않은가. ‘반(反)신언서판’을 외치는 안티미스코리아(Anti Miss Korea)다섯번째 대회가 지난 5월10일 성대하게 열렸다.미스코리아 선발에 반대하는 운동이다.단순히 선발에만 반대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나아가서 우리의 인간 정신세계에 대한 사랑과 정성과 자부를 과소평가한 채로,미스코리아 진이며 선이며 미 따위가 대한민국 전체의 아름다움을 대변한다고 믿으려 하는 착각과 오만에 대한 항의의 표시일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도 타인으로부터 그냥 주어진 자질이 과도하게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데 대한 또는 인간의 피와 땀과 눈물을 너무 우습게 보는 데 대한 강한 분노이자 거부일 것이다. 사회 전체를 바꾸는 혁명도 처음에는 어느 한 사람의 가슴 속에 있는 작은 생각에 불과했다는 말이 있다.아직은 작은 안티 미스코리아이지만 내일은,세계인의 동의를 얻어서,안티 미스유니버스로 커 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인류사의 혁명운동이다.한참 잘못 간 인간문명의 도도한 흐름의 물줄기를 바로잡는 대역사가 이 작은 운동에서 시작되는 것이다.우리는 한때 월드컵신화의 열기를 가지고 세계무대 앞에 서서 우리의 무한한 잠재력을 선보인 적이 있다.그때는 “대~한민국” 우리들만의 축제였지만 이제는 “지~구촌” 세계인의 축제를 만들어 가는 일이리라.안티미스코리아 만세! 반신언서판 만세! 황필홍 단국대 철학과 교수 명예논설위원
  • [길섶에서] 視界 25㎞

    뭔가 예견이 안 되거나 잘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답답하다.안개속의 희뿌연 물체를 볼 때면 신비함 이전에 짜증이 난다.중학교 시절,언제부턴가 칠판 글씨가 가물가물거렸다.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보던 것도 오래가지 못했다.아버지 손에 이끌려 처음 눈에 맞는 안경을 썼을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긴 터널을 빠져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원함이었다고나 할까. 장마가 이어졌다 끊어졌다 한다.어느 유난히 맑은 오후나절.집 근처 산을 운동삼아 또 올랐다.장대비가 온 뒤끝이어서 그럴듯하게 들리는 계곡 물소리를 즐기며 정상에 다다른다.하던 버릇대로 발 아래 아파트숲을 내려다 보는데 웬걸,한강물과 그 위의 다리들,멀리 남산과 인왕산이 한걸음에 달려온다.오히려 당혹스러웠다.장맛비가 먼지를 쓸어내면서 가시거리를 25㎞로 늘려놓았던 날이었다. 그동안 갇혀진 서울만을 본 것 같다.아쉬움에 세상사를 생각해 본다.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며 탄식을 하며 가슴을 치기도 했었다.막힌 곳은 더 막히기 전에 뚫어야 한다. 이건영 논설위원
  • 6·25 53주년과 휴전 한미동맹 / 참여정부 안보정책

    참여정부 출범 이후 안보분야의 최대 화두는 자주국방이다.자주국방이란 말은 국방부 청사 정면에 큼지막한 글씨로 새겨져 있을 만큼 우리 군의 오랜 숙원이다. ●예산 추가 투입 불가피 하지만 국방부가 지난달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한 자주국방 비전에 따르면 한·미 연합방위의 틀을 유지하는 것이 전제가 돼 있다.즉 참여정부의 자주국방 비전은 한·미동맹에 기초한 ‘신(新) 자주국방’인 셈이다. 한·미동맹을 전제로 한다고 하더라도 자주국방은 ‘돈문제’로 귀결된다.대북관련 정보의 수집과 주요 전력을 주한미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첨단 정보과학군 육성과 전력증강사업은 불가피하다. 올해 국방예산은 약 17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2.7%다.내년도 예산을 GDP 대비 3.2%로 올려달라고 기획예산처에 요구했으나,3%대를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주한미군 계속되는 전력증강 현재 한국에 체류중인 주한미군은 약 3만 7000명. 주한미군은 오는 2006년까지 향후 3년간 약 110억달러(14조 3000억원)를 투입,전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겠다고 이달 초 발표했다.일각에서는 미국측이 주한미군 전력증강 발표를 통해 한국 정부의 전력 증강을 유도하고 동시에 무기구매 압력도 넣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조승진기자
  • 스크린 명대사

    #“무슨 책이 이렇게 무겁냐?”“응,글씨가 많아서 그래.”-‘맛있는 섹스,그리고 사랑’에서.동기와 동거하려고 이사하는 신아의 짐을 날라주던 동기의 질문에 신아가. #“나는 거기가 좋거든요.나 어때요?”“싫진 않네요.”“나랑 연애할래요?”“연애?…순서상 손부터 잡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이제부터 하면 되죠.사랑에도 순서가 있나요.”-‘맛있는 섹스,그리고 사랑’에서.섹스를 나눈 뒤 연애하자고 프로포즈하는 동기와 신아의 대화.
  • 노조위원장이 대구서예대전 대상 수상 / 경북체신청 이동양씨

    “노조활동을 하면서 좀 더 부드러운 마음을 갖기 위해 서예를 시작했습니다.” 대구시와 대구미술협회가 공동 주최한 제 23회 대구서예대전에서 ‘次贈金生亭子韻(차증김생정자운)’으로 대상에 뽑힌 이동양(李東凉·49·경북체신청)씨가 뜻밖에 노조위원장으로 밝혀졌다. 이씨의 작품 ‘차증김생정자운’은 조선 광해군때의 문신인 창주 이형훈 선생이 낙향하여 여행중 김씨집 정자에서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지었던 시를 행서로 쓴 것이다. 현재 전국체신노동조합 대구·경북지방본부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씨는 “노조 활동이 끝난 뒤 매일 밤 10시쯤부터 새벽녘까지 정신수양을 위해 붓을 잡았다.”면서 “앞으로 동양고전과 글씨 공부에 더욱 정진해 전문적인 서예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구서예가협회가 주최한 제22회 영남서예대전에서 ‘매월당 선생시 종죽(種竹)’으로 대상을 받기도 한 이씨는 “내년에는 지역 서예가들의 작품을 기증받아 집배원 자녀들의 장학금을 마련하기 위한 자선 전시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太古와의 대화’ 글씨에 오롯이…/ 김광업 ‘문자반야의 세계’전

    한국 서예사에서 근현대는 사숙을 통한 기법중심의 도제식 교육과 공모전이 지배한 시대다.공모전은 전문적인 서예가 집단을 만들어내며 한국 서단을 이끌어 왔지만 늘 심사의 부작용과 작품의 질 문제가 뒤따랐다.그것은 특히 국전심사가 몇 사람에게만 독점되면서 노골화됐다.이 공모전 시대에 작가로서 생존할 수 있는 길이란 공모전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측에 순응하거나,아니면 극단적으로 저항하면서 자기 세력을 넓혀가는 것 뿐이었다. 운여(雲如) 김광업(1906∼1976)은 이런 시대의 한복판에서 제3자적 입장의 ‘마이 웨이’를 고수한 서예가이자 전각가,화가였다.그렇기에 그의 작가적 개성은 ‘공모전의 무덤’에 묻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20일부터 7월13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운여 김광업의 문자반야(文字般若)의 세계’전은 베일에 가린 운여의 방대한 작품세계를 전면 재조명하는 자리다.은ㆍ주시대의 금문(金文)과 갑골문,진ㆍ한시대의 와전문,해서와 행·초서,대자서(大字書)와 파체서(破體書),전각등 각 장르의 작품들이 250여점의 자료와 함께 전시된다. ●갑골·금문·전각등 250점 재조명 운여는 애초부터 글씨로 세속적인 부와 명예를 얻으려고 한 사람이 아니었다.그는 본업이 안과의사로,생활에 여유가 있기도 했지만 글씨를 그 자체로 즐겼다.그에게 있어 글씨란 ‘오심재태고(吾心在太古)’란 말처럼 역사와 대화하고 태고의 마음을 건져 올리는 통로였다. 운여의 글씨는 시류와는 거리가 멀다.생경한 인상의 그의 글씨는,공모전이나 사숙에서 흔히 보는 전형적인 것과는 획질이나 결구부터 다르다.전서를 비백(飛白)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행서의 필획으로 구사하는가하면,해서와 행서의 경우 잘라내도 좋을만큼 필획을 지나치게 길게 늘인다.그런가하면 한 화면에 전서,예서와 전각의 장법(章法)이 섞여 등장하기도 한다. ●석정스님과 교유… 불교관련 작품 많아 서울 영락교회 장로였던 운여는 역설적이게도 우리시대의 선지식이자 불화의 1인자로 꼽히는 부산 선주산방의 불모(佛母) 석정스님과 유달리 가까웠다.두 사람은 석정이 없었다면 운여가없었고 운여가 없었다면 석정이 없었다고 할 만큼 나이와 종교를 뛰어넘어 각별한 교분을 나눴다.이들은 운여가 197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작고할 때까지 20년에 걸쳐 서로의 작품에 대한 눈밝은 비평가 구실을 했다.이번에 선보이는 ‘운수유유(雲水悠悠)’는 둘 사이에 오간 편지 봉투에 쓴 작품.이밖에 ‘원상(圓相)’‘입불이문(入不二門)’‘범정탈락 성의개공(凡情脫落 聖意皆空)’‘천상천하 유아독존’등 불교와 관련된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띈다. 운여의 전각세계는 매우 특이하다.그의 전각예술은 상식을 깨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그는 대추나무,대나무 뿌리,돌 등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닥치는대로 새겼다.전각하면 보통 정방형을 떠올리기 쉽지만 운여는 둥글면 둥근대로 모나면 모난대로 각재의 인면(印面)에 글자를 집어넣었다.그렇게 평생 새긴 각이 몇 가마니는 족히 될 만큼 그는 전각예술에 심취했다.이번 전시에서는 세속사에 담담하면서도 언제나 세상을 너그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던 운여의 서격(書格)뿐만 아니라 인격까지도 접할 수 있다.(02)580-1511. 김종면기자 jmkim@
  • [오늘의 눈] 경찰의 이중잣대

    “살인범으로 몰려 경찰 수사과정에서 무참히 얻어맞아 얼굴이 엉망이 된 아들을 보는 부모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2000년 8월 전북 익산시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살해사건과 관련,‘억울한 옥살이’ 논란을 빚고 있는 최모(19)군의 어머니 김광례(40)씨는 10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범인이 아니라고 애원하는 아들을 경찰은 끝내 살인범으로 몰아 옥에 가두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기억하기도 싫은 악몽같은 지난 일이지만 김씨는 “이대로 당하고 죽을 수는 없다.”며 아들이 교도소에서 결백을 주장하며 보낸 수백통의 옥중 편지들을 공개했다. 최군은 “보고 싶은 어머님…”“사랑하는 어머님…”이라고 깨알같은 글씨로 써내려간 편지에서 자신의 결백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발생 3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가혹행위로 인한 짜맞추기식 수사’가 도마에 올랐지만 경찰은 의외로 냉담한 반응이다. 연일 계속되는 ‘가혹수사 의혹’ 보도에도 경찰은 “신중하게 수사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경찰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한 나머지 이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더구나 군산경찰서는 자신이 진범이라고 자백한 김모(22)씨와 그를 숨겨준 중학교 동창생 임모(22)씨를 긴급체포했다가 48시간만에 풀어주는 대담함(?)을 보였다.특히 경찰은 최군이 당시 범행사실을 부인했고 증거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속한 반면 김씨는 범인이라고 자백했고 정황을 단정할 만한 참고인의 진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구속 입건했다.한 사건에 두가지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진범 검거라는 개가를 올린 군산경찰서는 자칫 가혹수사 문제로 문책을 받게 될 동료경찰들을 걱정해 몸을 낮추고 있다.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인권경찰’의 모습을 언제 찾아볼 수 있을까. 임송학 전국부 기자 shlim@
  • 월드컵 1주년 특집 / ‘포스트 월드컵’ 어떻게 됐나

    지난해 한·일월드컵축구대회가 끝난 뒤 각계에서는 “월드컵의 에너지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키자.”며 갖가지 방안을 내놓았다.최첨단 경기장 10곳에서는 수많은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유럽 수준의 프로리그가 펼쳐질 것처럼 점쳐졌고,연구소들은 장밋빛 경제효과를 앞다퉈 발표했다.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계획대로 진행된 것은 별로 없다.전문가들은 “실현 가능한 계획을 다시 짜 차근차근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주문한다. ●‘CU@K-리그’는 어디로 지난 3월 23일 프로축구 K-리그 개막전 때만 해도 ‘CU@K-리그’의 약속이 지켜지는 듯했다.이날 그라운드에는 개막전 최다인 14만 3981명의 관중이 몰렸고,대구월드컵경기장엔 K-리그 한 경기 최다인 4만 5210명이 입장했다.그러나 하루짜리 열기였다.이틀째 경기부터 관중석의 빈자리가 늘더니 최근에는 관중수가 2년전 수준으로 떨어졌다.지난해 K-리그 1경기 평균 관중은 1만 5839명이었다.이달 말 현재는 1만 1253명으로 2001년(1만 1847명)에 견줘도 적다.물론 관중 감소만으로 축구 열기의냉각을 단정할 수는 없다.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선수가 2만 934명으로 94년의 갑절 이상 는 것은 고무적이다. 단순한 수적 증감보다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축구계가 더 큰 문제다.‘선수는 4강,행정은 4류’라는 비아냥은 여전히 유효하다.프로구단의 일처리는 아직도 주먹구구식이고,협회와 프로축구연맹도 ‘컨트롤 타워’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축구중흥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월드컵 이후 축구행정은 한마디로 실망의 연속.이해관계 때문에 태극전사들의 발이 묶이기 일쑤였고,특히 국내축구 선진화에 앞장서야 할 구단과 에이전트는 기본적인 업무처리 능력에도 한계를 드러내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기도 했다.협회의 한 관계자는 “행정상의 문제는 대부분 관행에서 연유한 측면이 강하다.”면서 “월드컵의 감동이 또 다른 신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당분간 시스템 정비에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월드컵 경기장은 애물단지? 월드컵을 치른 지방자치단체들은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경기장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축구 전용경기장이라는 한계와 연고구단 부족,경기침체에 따른 임대사업 위축 등으로 수십억원씩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적자는 물론 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된다. 그나마 성공사례는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멀티플렉스와 대형 할인점,스포츠센터가 들어섰다.지난달 8일에는 초대형 오페라 ‘투란도트’가 공연되기도 했다.지난해 29억원의 적자를 낸 서울시는 올해 35억원의 흑자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 최대의 최첨단 축구전용구장이지만 서울 연고 프로구단이 없어 막상 이곳에서 축구경기를 구경하기는 힘들다.축구장이 적자를 땜질하기 위해 쇼핑몰로 전락한 셈이다. 지방은 눈앞이 캄캄하다.서울처럼 대형 공연을 유치할 여력도 없고,임대사업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3200억원을 쏟아부은 인천 월드컵경기장은 지난해 50억원의 운영관리비가 지출됐다.수입은 월드컵 특수까지 포함해 20억원이었다.빅 이벤트가 전혀 계획되지 않은 올해에도 적자는 24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지난달 쇼핑몰 3곳의 임대계약 공고를냈지만 모두 유찰됐다.제주 서귀포경기장은 지난해 태풍으로 경기장 지붕막 6787㎡가 찢겨져 나갔으나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종합관광시설 조성,프로구단 창단,내국인 면세점 유치 등은 모두 백지화될 위기에 놓여 있다. 연고 프로구단을 갖고 있는 경기장도 사정은 엇비슷하다.울산은 지난해 17차례의 프로경기 입장료와 시설사용료,매점운영 등을 통해 14억 8000만원의 수입을 올렸지만 관리비 28억원에도 훨씬 미치지 못했다. 시민들은 “수익성에만 연연하지 말고 경기장을 어떻게 시민들에게 돌려 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그러나 공익성을 잃지 않는 수익사업이 과연 무엇인지,축구전용구장에 어떻게 생활체육을 접목시킬지에 대해서는 아직 답이 없다. ●사라진 ‘비더레즈’ 월드컵 이후 경제적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최대의 히트상품인 붉은색 바탕의 흰 글씨 ‘비더레즈(Be The Reds)’조차 열매를 맺지 못했다. 비더레즈 티셔츠는 대회 기간동안 2000만장이 넘게 팔렸다.단일 품목이 한 달 동안에 이렇게 많이 팔리기는 전무한 일이다.월드컵 당시 프랑스의 한 스포츠 방송에서는 사회자와 패널들이 모두 붉은 티셔츠를 입고 출연할 정도로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난 뒤 비더레즈가 저작권 분쟁에 휘말리면서 상품화 논의가 중단됐다.비더레즈를 디자인한 박영철(41)씨가 지난해 12월 붉은악마 광고대행사인 T사 등을 상대로 저작물 사용정지 및 5000여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으나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의류산업협회는 산업자원부와 함께 중소의류업체의 상품에 비더레즈 브랜드를 붙여 수출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저작권 분쟁으로 흐지부지됐다. 법정 다툼과 상품화 전략의 부재는 비더레즈를 시장에서 사장시켰다.자연히 국민의 관심도 떨어져 월드컵의 함성을 가득 담은 붉은 티셔츠는 옷장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독자의 소리/ 흡연 운전기사 적극 단속을

    택시와 버스를 이용하다 보면 붉은 글씨의 ‘금연’ 경고가 눈에 띈다.요즘 승객들은 대부분 이를 지키는 반면,오히려 운전기사들이 이를 어기는 경우가 많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운전 기사들에게는 이 ‘금연’글씨가 눈에 잘 안 들어오는 모양이다. 택시나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교차로나 사거리에서 교통이 막힐 때나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일부 몰지각한 운전기사들은 승객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담배를 버젓이 피운다. 담배를 피우고 나서 꽁초를 도로에 아무렇게나 버리는가 하면 침까지 뱉는다.자세히 살펴보면 이같은 운전기사들이 과속운행이며 신호무시 같은 횡포를 일삼는다. 운전기사들의 흡연은 규정위반 여부를 떠나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며 승객들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관계 당국이나 택시·버스회사 관계자들이 이러한 운전기사들에 대해 지속적인 교육을 하면서 상습자는 처벌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차형수
  • 전주 강암서예대전 대상 이봉준씨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제4회 전주 강암(고 송성용) 서예대전 휘호대회에서 이봉준(55·전남 장흥서법예술원장·사진)씨가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아마도 글자에 변화가 있고 힘차다는 점에서 남보다 후한 점수를 받은 것 같다.”는 이씨는 올해로 24년째 한문 오체(전·예·해·행·초서) 연구에 몰두한 서예인이다. 그는 현장에서 제시된 중국 소자담의 한시인 ‘족유공권연구’라는 오행시를 해서체(정자체)로 썼다.‘통치자는 백성들에게 여름 바람의 시원함과 같은 선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나눠준 3장의 한지에 3시간동안 이를 원문으로 쓴 뒤 잘된 것 1장을 골라 제출했다.필법은 신라 진흥왕 적성비에 나와 있는 글씨체를 본떴다고 한다. 이씨는 “투명하고 공정한 심사절차로 이름 높은 강암서예대전에서 꼭 상을 타고 싶었다.”며 “이번에 국전 초대작가급 이상의 실력을 갖춘 107명이 본선 경쟁을 벌였다.”고 말했다.상금으로 1000만원을 받았다. 고 강암 선생은 사재를 털어 전주시 교동에 강학서예관을 짓고 작품과 함께이를 전주시에 기증,강암 서예학술재단이 출범했고 해마다 서예문화의 창달과 후진 양성을 위해 휘호대회가 열리고 있다. 장흥 남기창기자 kcnam@
  • [LOOK 아시아]21ㅜ 아시아, 분열되면 서양에 또 당한다 (3)韓·中·日 젊은이 좌담

    “티켓 하나로 한·중·일 3개국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곧 열릴 것이다.”“3국 공동어가 있으면 어떨까.”“동질성도 좋지만,천박한 대중 문화로 젊은이들이 통합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아시아의 동쪽에 나란히 위치,역내 질서 형성에 큰 축을 형성하는 한국·중국·일본 3개국의 젊은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21세기,고국의 울타리를 넘나들며 살아가는 이들에겐 ‘3국 협력’이란 말 자체가 고루하게 느껴지는 듯하다.‘톡톡 튀는’ 젊음 그 자체의 코드로 3국간 상생(相生)의 길은 찾아질 수 있다는 논리다. 베이징대 한국어과 출신으로 평양에서도 8개월간 머문 적이 있는 한반도통(?) 왕옌,고등학교 때 엄마 따라 관광온 한국의 친절에 반해 서울로 유학온 구와바라 요코,세계는 넓고 할 일은 너무나 많다는 한국청년 서정환씨가 20일 대한매일 회의실에서 만났다.먼저 요코가 ‘3국의 섹스 문화’를 다뤄보자며 도발적 제안을 했다. ●굳이 동질성을 찾지 않아도 -요코 솔직히 얘기해 보자.나는 한국 사람들이 혼전 순결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일본과 한국은 시내 간판의 글씨만 다를 정도로 모든 게 비슷한다.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혼전에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섹스를 하는 것 아니냐. -정환 글쎄,고교 때까진 입시 준비에 몰두 하느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별 생각을 하지 않는다.수험생 생활을 하면서 가족과 매우 밀접해 있고,특히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긴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실제로 많이 변했다. -옌 중국도 마찬가지다.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개방되고 발달한 도시들에선 부모들에게 얘기하지 않고 동거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동거 연령도 낮아지고 있다.남녀간에 심각한 채팅도 많다.한국도 비슷하다.한·중·일 모두 동양사상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최근엔 몸으로 다 깨고 있다는 생각이다. -정환 그러나 한가지 공통점은 있다.육체적 접촉에 관한 한 체면을 중시한다는 점이다.2000년 유네스코 청소년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유럽에서 온 학생 둘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키스를 해댔다.눈살을 찌푸린 것은 한·중·일 3국의 참가자들이었다.나머지는 개의치 않았다. -요코맞다.우리가 굳이 동질성을 찾아내려 하지 않아도 너무 비슷한 게 많다.한자를 쓴다는 점,젓가락과 숟가락을 쓴다는 점 등이다.최근 3국에서 비만아들의 증가가 사회 문제화되는 것도,모두 서양음식이 몸에 맞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중국·일본 3각 고리 -옌 사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만해도 일본은 잘 알았지만,한국은 몰랐다.수교가 안됐기 때문이다.1988년 올림픽 때 처음 한국을 인식했다.사실 베이징대에 입학하면서 일본어과는 경쟁이 너무 세 한국어를 택했는데,지금은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코 고등학교에 다닐 당시 어머니를 따라 한국을 여행했다.말이 안통하면 따라오라 해서 길을 가르쳐 줄 정도로 친절했던 사람들이 가슴에 남았고,유학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 자연스레 한국을 택했다. -정환 많은 교류를 통해 서로를 아는 게 중요하다.정신대 할머니들의 문제도 그렇고,내가 아는 일본 친구는 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일본 대사관앞 수요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우리 같은 젊은이들은 직접 피해자·가해자가 아니어서 감정적대립은 없다. -옌 일본인들이 주변국과 역사를 모르는 것은 일본 정부가 가르쳐 주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개인 경험을 얘기해서 미안하긴 한데,나는 원래 과거사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그러나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일본 학생이 내 침대를 사용해 어지럽혀 놓은 일이 있었다.나의 항의는 아랑곳 않았고 아예 무시했다.불쾌했다.그때부터 일본 정부가 한국과 중국에 하고 있는 역사관련 자세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3국이 극복해야 할 과제 -정환 중국의 경우,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中華)사상이 너무 강해 주변국들에 부담을 주지 않나 싶다.지난번 유네스코 캠프에서도 어떤 중국 참가자가 “지금은 경제적으로 한·일에 뒤지지만 결국 중국이 최고로 앞설 것”이라는 주장을 여러번 해서 다른 아시아 사람들이 불편해하곤 했다. -옌 개인적인 차이일 것이다.누구나 자기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자긍심이 있지 않느냐.상대방을 고려해야 하는 부분은 모든 국가들이 함께 새겨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우리 아시아는 유럽연합(EU)처럼 정치·사회 통합을 지향하기는 힘들 것 같다.모두 각기 다른 주권국이다.중국은 정치적으론 사회주의 체제이다. -요코 한국인들도 강한 자의식을 극복해야 한다.외국인들에게 상당히 배타적이다.일본은 섬나라이고,한국도 반도여서 그런 심성이 있지 않을까 한다. -옌 맞다.한국말로 한참 이야기 하다가,옆 친구가 내가 중국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면 그자리에서 입을 다물어 버려 당황한 적이 좀 있다.중국은 원래 다민족 국가니까 그런 부분은 좀 약한 것 같고,한국 일본은 단일민족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미래상은 -정환 한국의 가수 보아가 일본에서 대 인기를 끌고 있고,중국에선 한류 열풍이 부는 것을 보면,한·중·일 3개국 젊은이들의 문화코드는 이미 동질화된게 아닌가 한다.유럽 여러 나라들의 국경이 개방된 것처럼,우리 3국도 티켓 하나로 여행하는 시대가 머지않아 올 것으로 보인다.한·일 해저터널 연결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하지만 저질 오락이나 만화,저급한 섹스 문화 등 천박한 문화로 동질화되는 것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본다. -요코 3국 공용어가 생기면 도움이 될 것이다.같은 한자권이니까 기발한 아이디어도 있을 것 같다.3개국이 서로의 입장을 고려하며 받아들일 때,그리고 자국의 고유 문화정체성을 살리면서 협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옌 지금 현재 하고 있는 ‘베세토’(베이징·서울·도쿄를 잇는 문화 교류 프로그램)행사를 좀 더 자주 하고 청년 교류 프로그램을 늘리면 서로를 진지하게 알고 3국 관계는 더욱 긴밀해질 것이다. 정리 김수정·조승진 기자 crystal@ ●한국 서정환(24) 소속:서울대 영어교육과 3년 장래 희망:유엔 등 국제기구나 국제 NGO 단체 근무 기타:아버지의 해외 근무로 지난 86∼87년 2년간 미국 거주 ●일본 구와바라 요코(桑原陽子·24) 소속:일본 호세이(法政)대 국제문화학부.지난해 8월 연세대 교환 학생으로 내한,오는 6월 귀국 예정 장래 희망:해외여행 관련 사업 ●중국 왕옌(王岩·26) 소속:고려대 국제대학원 국제통상학과.베이징대 한국어과 졸업한 뒤 2001년 8월 내한. 장래 희망:마케팅 분야 전문가
  • 딸 性폭행범 엄마가 잡았다 / 경찰수사 부진하자 40여일 범인 추적

    40대 주부가 초등학교 5학년 딸을 성폭행한 범인을 40여일간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검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김모(47·여)씨는 지난 3월19일 집에 들어오지 않고 연락이 끊긴 딸(11)이 13시간만인 다음날 오전 8시에 피투성이가 된 채 덜덜 떨면서 집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했다.김씨는 딸로부터 “어떤 아저씨가 ‘동네 약도좀 그려달라.’며 다가와 차에 강제로 태운 다음 어떤 아파트로 데려갔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차로 10여분 거리였고 집으로 끌려 들어가면서 아파트 벽면에 적힌 S라는 글씨는 보았다.”는 딸의 진술을 바탕으로 이동거리와 시간을 측정,부천 전 지역을 대상으로 S로 시작되는 아파트와 빌라를 조사했다.그러나 10여일이 지나도록 수사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았다.경찰수사만 믿고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한 김씨는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 하던 일마저 그만두고 딸이 기억하는 S아파트와 S상사 간판등을 찾으러 시흥·안양·부천일대를 이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김씨는 추적을 거듭한 지 한달여만인 지난달 26일 부천시내에서 딸이 말한 내용과 똑같은 지형과 아파트를 찾아내 경찰에 알렸다.결국 경찰은 이 아파트 주변 1500여명의 주민등록 사진을 대조하는 한편 전과기록 등을 조회,지난달 29일 성폭행 전과2범인 신모(47)씨를 붙잡아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김씨는 “40여일 동안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면서 “경찰도 나름대로 애를 썼겠지만 보다 적극적인 수사가 아쉬웠다.”고 항변했다. 시흥 김학준기자 kimhj@
  • [수평사회를 만들자]제2부 학벌타파 (4)함께하는 학벌타파 학벌을 극복한 사람들

    학벌 넘은 5인의 경험담 학벌의 벽은 높고 두껍다.겹겹이 쳐놓은 철옹성 같다.그래서 많은 사람은 학벌을 넘지 못하고 좌절한다.배움이 짧은 탓이 아니라 소위 ‘특정 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하지만 인고(忍苦)하며 끊임없이 노력,학벌의 벽을 깬 사람들도 적지 않다.그들은 말한다.“그 잘난 학벌의 패배자로 전락할 수는 없었다.”라고.사회 각 분야에서 학벌을 극복,나름대로 전문인으로 우뚝 선 5명이 한자리에 모여 학벌에 대한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권이성 대기업 S사에 입사한 뒤 유난히 명문대 출신들에게 피해를 입었다.공고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승진은 물론 사소한 것까지 제약을 받았다.일본에서 조차 해내지 못한 기술을 개발했지만 내게 직접 온 관련 세미나 초청장까지 알려주지 않을 정도였다.노하우가 유출된다는 이유였다.외국 손님이 올때면 내 호칭은 무조건 ‘권군’이었다. 이세정 학벌은 공직사회에서 더 뿌리깊다.이른바 엘리트 공무원들의 학벌은 굉장히 무섭다.바닥부터 출발하는 사람들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벽이다.어떤 공무원들은 능력은 없지만 학벌 하나로 출세하기도 한다.심지어 명문고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출세한 사람도 있다.공직자들의 학력은 은퇴할 때까지 따라간다.인간성이나 능력보다 어디 대학 출신이냐가 중요하다.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고학력자들의 단점은 학력이 낮은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겉으로는 아니지만 폐쇄적이다. 소병량 교육계도 심각하다.서울대 출신이나 지방 국립대 출신이 반 이상이다.개방대(지금의 산업대)를 나와 어렵게 실기교사 자격을 받고 교육대학원까지 나와 2급 정교사 자격증까지 받았지만 명문대 출신에 대한 피해의식은 너무도 컸다.기능올림픽에서 많은 기여를 했지만 명문대 출신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더라.내가 자격증에 매달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박준 중학교 문턱 조차 밟지 않았지만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엄청났다.글씨체가 이상하면 학력을 문제삼을까봐 글씨 연습을 따로 하기도 했고,미용 관련 해외 교육기관을 찾아다니며 경험도 쌓았다.체험 자체가 큰 공부였다.우리나라는 한창 미래를 꿈꿀 나이에 대학 들어가는데만 몰두한다.결국 능력은 사장되고 성공할 수 있는 길도 스스로 외면하게 된다. 김은영 20대에는 못느끼던 학벌을 요즘 느끼고 있다.전문대 출신인데다 여자라는 차별을 느끼지 않기 위해 창업을 했다.사장이 되면 학벌로부터 자유로울 줄 알았다.그러나 투자를 받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사업계획서에 경영자의 학력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데 MBA 출신이 아니면 살펴보지도 않았다.나름대로 회사 경영을 하면서 공부도 하고 경험도 쌓았다고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한때 ‘유력 학력을 가진 간판 경영인을 내세워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 대부분의 기업체에서 사원모집할 때 일반 4년제 대학이 기준이 된다.방송통신대는 아예 배제한다.똑같은 학위를 주는데 정규대학을 나온 사람들과 같은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것은 모순이다. 박 학벌이 없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많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학벌 때문에 사회생활에 스트레스가 많았다.하지만 이를 장점으로 살려나갈 수 있었다.처음에는 나도 외국에공부하러 갈때 이력서에 쓸 말이 없어 동생들의 학교를 적어 낸 적도 있다.그때는 정말 고통이었다.하지만 이러한 스트레스를 장점으로 활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믿는다. 김 회사 직원을 채용하면서 은연중에 학벌을 보는 내 모습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반성한 적도 있다.학벌의 관습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그러나 점점 사람이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사회에서 경험해보니 학벌이 좋은 사람들은 능력은 있지만 그만큼 자기계발에 소홀하더라.동료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학력이 오히려 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소 내가 자격증을 많이 딴 것은 뭔가 차별화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학교에서 국·영·수를 잘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모든 학생들이 다 대학을 지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인문계는 대학을 목표로 하지만 공고나 직업학교는 다르다.그런데도 공고나 직업학교를 가는 이유가 대학에 편입하기 위해 징검다리로 활용한다는 게 문제다.공고나 실업계가 인정받지 못하다보니 학부모들의 인식도 바뀌지 않고 있다. 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적인 모임이 너무 많다.대부분이 지연이고 학연이다.이런 부분에 설움을 느낀 적이 많다.능력을 인정받으면서도 그 분야의 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배척당한 것도 안타깝다.평소 영어를 좋아해 관련 경험을 많이 쌓았다.전공은 아니지만 아시안게임과 올림픽,도자기엑스포,월드컵 등 각종 국제행사에 자원해 의전 실무경험을 쌓았다.영문학 전공이 아니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방송대 영문학과를 다니기도 하고 미국에서 학위도 받았다.지금은 나름대로 경력을 쌓으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권 내가 다닌 S사에서는 석·박사들은 연한만 차면 진급을 한다.이런 분들에게서 내가 받은 요청은 논문을 써달라는 것이었다.학교 과제는 전부 내게 돌아왔다.관련 분야에서 회사 통틀어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회사에서 등록한 특허 25건 가운데 5건은 내 작품이었다.나는 고졸 출신으로 살아남기 위해 그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노력했다.그런데 그 사람들은 연한만차면 곧바로 승진하더라.반면 연봉고과를 실시하면서 고졸자들은 아무런 기준조차 없이 전부 C급을 받았다. 김 구직자들에게 서류상의 학력만이 아닌 한번쯤 만날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열린 기회가 다양해져야 한다.실패만 경험하다 보니 학력이 낮은 사람들은 입사 시험을 치를때 스스로 위축돼 자신감을 잃는다.지방대생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구직자 스스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 학력은 대학 들어갈때 한 번 결정된다.자격증은 평생 살아가면서 인정받는 것이다.자격증은 학력의 대안이어야 한다.국가가 자격 제도를 만들었으면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자격증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한다면 꼭 학력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그런데 이 자격증에 모순이 있다.학력을 기준으로 하는 탓이다.원래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자격 제도가 오히려 학력 인플레를 부추기고 있다.자격 제도가 정상화되면 학벌타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공무원들은 학력이 없어도 전문성을 살리면 얼마든지 보람을 찾을 수 있다.외부 자원봉사가 대표적이다.공직사회나 일반 기업에서도 외부 자원봉사를 유급 휴가로 인정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나는 전문 분야를 살려 교회에서 외국인 예배와 한국문화 소개 가이드 활동을 하고 있다. 박 전문가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학력이 없으면 월급 수준이 낮다.능력과는 상관없이 학력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경제력을 잃게 방치해서는 안된다.전문대 및 대학에 미용학과만 70곳 이상이지만 이곳 졸업자들은 스스로 목에 힘이 들어가 있다.대학을 나왔으니 뭔가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그런 사람들은 적응을 못하고 낙오한다.미용 기술에 학력이 무슨 소용인가. 권 학력은 물론 인정해야 한다.그러나 차별은 없어야 한다.기업체에서도 학력을 인정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간 사람들에게는 똑같이 투자했으면 좋겠다.고졸 실무자의 경우 영어가 무슨 필요 있나.승진 시험에 영어 대신 업무와 관련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그런데도 똑같이 영어 시험을 보고 승진에서 탈락시킨다.업종과 직무에 따라 창의력과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정리 박홍기 김재천 기자 hkpark@ ●권이성(權彛成·56) 지방 공업고 화공과 졸업.항균방취 위생가공 기술 및 섬유제조 계면활성제 분야 전문가로 28개 특허 등록.H사에서 부장으로 정년퇴직한 뒤 대한산자공업㈜에 스카웃돼 현재 R&D담당 부사장으로 활동. ●이세정(李世政·44) 경기도 제2청사 행정관리담당관실 사무관.고졸 검정고시 합격 후 방송통신대에서 행정학,영문학 학사와 미 유타주립대 정치학 석사 취득.뛰어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2001도자기엑스포,2002한일월드컵 등 국제행사에서 의전을 담당한 국제행사 의전 전문가. ●박준(본명 朴南植·51) 국내 최정상급 헤어디자이너.박준 뷰티랩 원장.초등학교 졸업 후 21세에 미용계 입문,미용가위 하나로 전문인,기업가,모델,교수 등으로 맹활약.모스크바,북경,런던,벤쿠버 등지에서 헤어쇼 개최. ●김은영(金銀英·31) 종합콘텐츠 에이전시인 ㈜디컨 대표이사.전문대에서 영화연출 전공.인터넷방송 분야에서 일하다 학력과 성 차별을극복하기 위해 창업에 뛰어든 여장부.창업 2년만에 SK텔레콤과 교육방송,한국언론재단 등으로부터 위탁교육 수행. ●소병량(蘇秉·46) 자격증 최다 보유(46개) 한국 기네스북 등록.현 서울 독산고 교사.개방대 졸업 후 주경야독으로 2급 정교사 자격 취득.명문대 간판이 아닌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자격증에 도전,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한국의 맥가이버’.
  • 한승원 장편 ‘초의’ / 조선 선승 초의선사의 일대기

    중진 소설가 한승원(64)이 조선후기의 선승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 ‘초의’(김영사)를 냈다.초의선사는 시 글씨 그림은 물론 범패,탱화,단청,바라춤에 이르기까지 두루 능했던 다재다능한 선승이었다.옛 문헌과 시를 인용해 차에 얽힌 전설과 효능,차 끓이는 법과 마시는 법 등을 ‘동다송’이라는 노래로 만드는 등 차(茶)문화를 보급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작가는 “작품을 쓰려고 해남 대둔사(대흥사) 일지암과 강진의 다산초당을 수차례 오갔고,다산 시문집과 추사 문집 등 초의 스님과 교유했던 지식인들의 문집을 통해 그의 행적을 간접적으로 추적했다.”고 말한다. 작가의 이런 노력에 힘입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초의선사의 어린시절과,출가후 행자와 사미시절 행적이 오롯이 되살아난다.또 그를 ‘정신적 아버지’로 모신 정약용과 그의 아들 학연·학우,추사 김정희 등 당시 지식인들과의 교유 등도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당대의 정신을 생동감있게 재현한다. 작품은 어린시절 초의의 모습과 입적을 앞둔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초의선사의 일생을 그려나간다.초의에 삶에 대한 단순한 사실 나열이 아니라,작가 특유의 글밭에서 새로 일구어내고 있다. 특히 초의를 짝사랑한 끝에 비구니가 돼 “초의의 향기를 맡으며 정진하다 입적했다.”는 니지현순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소설적 재미를 더했다. 이종수기자
  • [씨줄날줄] ‘29만1천원’

    ‘예금 15만원,14만원,1000원’ 3개의 통장에 달랑 29만 1000원이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 이름의 공식적인 재산의 전부란다.무일푼인 셈이다.대통령 재직시 대기업으로부터 거둔 돈에 대해 지난 1997년 4월 대법원이 뇌물수수 혐의로 추징한 2204억원 가운데 28일 법원이 남은 1890억원을 갚으라고 강도 높게 추궁하자 내놓은 명세서다.그러고는 담당판사와 법정에서 은닉재산 공방을 벌여 새삼 도마위에 올랐다. “현금이 이게 전부냐?-그렇다.” “어떻게 골프치고 해외여행 다니나?-주위에서 도와준다.” “1600억원 어디에 있나?-정치자금으로 다 썼다.” “명의신탁 재산은?-없다.” “추징금은 빌려서라도 내야 한다.-….” 담당판사와 전 전 대통령 간에 오간 설전의 요지다.세간의 평가도 “배 째라-역시”로 극명하게 엇갈린다.사회정의에 반하는 뻔뻔스러움과 통 큰 개성이 교차된다. 전 전 대통령은 그의 정치적 행보를 감안할 때 이성적 평가는 부정적이지만 감성적으로는 대중에게 어필하는 야누스적 이미지를 지녔다.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촉발시킨 책임자이자 12·12 군사반란의 수괴,민주정치를 짓밟은 독재자,비자금 수수를 통한 정경유착 등의 ‘주홍글씨’가 따라다닌다.반면 긍정적 이미지는 지난 정권들의 실패에 따른 반사효과이긴 하지만 개인적 카리스마에서 상당부분 연유한다.의리를 중시하는 성격에서 나오는 당당함이라고나 할까.골프 핸디 18의 그는 캐디들에게 인기가 높단다.일행들과 라운딩하기 전 미리 10만원권 수표 여러 장을 캐디피로 돌리기 때문이다.퇴임후 신년인사를 온 지인들에게 천만원대의 세뱃돈을 줬다거나,지난해 숨진 코미디언 이주일씨를 문병 가서 몇천만원의 금일봉을 전달했다는 ‘손 큰’ 얘기도 있다. 전 전 대통령측은 법원이 재산명시신청을 내자 지난 11일 자발적으로 재산목록을 제출하고 전산조회에도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었다.그것도 국가의 위신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며.그러나 성실히 납부하리란 기대와 달리 무일푼이라고 잡아떼고 있다.법원과 검찰,대다수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그가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은 것이 국민의 뜻을 거스른 때문이란 걸 아직 모르는 것 같다.국민을 우롱하는 전직 대통령의 행태는 언제 그칠까. 박선화 논설위원 pshn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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