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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책들도 나이를 먹는가/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열린세상] 책들도 나이를 먹는가/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몇해 전 ‘꿀벌 마야의 모험’이 새판으로 나온 것을 보고, 문득 오래된 그 책의 판본과 장정을 떠올렸다. 새로 나온 세련된 책은 반갑기는 하되, 익숙하지는 않았다. 오래된 책은 낡기는 했지만 내 몸의 일부 같다. 나와 함께 세월을 보낸 오래된 책들을 보면 그 책에 얽힌 기억들이 필름 돌아가듯 떠오른다. 낡은 표지 위에서 옛날에 내가 쓴 글씨를 발견하는 날에는 어린 시절의 내가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 오는 것만 같다. 그런 날이면 그 책을 다시 읽는 버릇이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 내게는 많은 것일까. 나는 책을 참 많이 버리기도 했다. 아무리 낡고 오래된 책이라 해도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책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책을 버리면서 알았다. 추억이 담긴 책들, 누군가의 내력과 이어지는 책들은 버리려고 빼냈다가도 결국 책장에 다시 꽂게 된다. 나도 나이를 먹어 가고 있다는 것을 가끔 내 서가의 낡은 책들을 통해 알게 된다. 버리지 못할 책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내 인생도 그만큼 많이 지나 왔다는 것이리라. 내가 그때 ‘네루다’를 읽었었지,‘마르크스’를 알고 고민했었지, 연암(燕巖)에 흠뻑 빠졌었지 하며 기억을 되새기는 동안 이미 그 시간들은 모두 지나갔다. 그리고 그만큼 그 책들도 내 기억과 같은 나이를 먹은 셈이다. 책은 출간되면서 세상에 태어나지만,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 손과 닿지 않은 책은 아직 종이 뭉치이다. 최근에 우연히 에밀 졸라의 ‘나나’와 다시 만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읽은 그 책은 내가 처음으로 읽은 ‘어른용 책’이었다. 그때까지 곤충이나 동물 이야기, 보물섬 이야기, 탐정의 세계에서 머물던 나는 ‘나나’라는 여자로 인해 내 정신세계를 옮겼다. 하루종일 읽다가 졸고, 읽다가 얼굴 붉히고, 누군가 옆에 다가오면 팔뚝으로 제목을 가리면서 한꺼번에 다 읽어버렸다.11살짜리 주제에 나는 세상의 모든 걸 봐 버렸고 다 알아 버렸다는 심정으로 이미 어두워진 도서관 바깥으로 나왔다. 그 하루 동안 훌쩍 자란 것인지, 겉멋이 든 것인지, 그 이후에 나는 더 이상 ‘아동용’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을 읽지 않았다. 그해 가을,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서는 학년별로 단체 무용 발표회가 있었고,5학년의 레퍼토리는 개구리 모양의 옷을 입고 추는 개구리 무용이었다. 원하는 사람은 모두 참가할 수 있었지만, 꽤 비싼 옷 값을 내야 했다. 나는 그때 우리 집 형편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다가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오후에 무용 연습을 하는 동안, 집에 가지 않고 도서관으로 도망을 쳤다. 오후 내내 머리 반쪽에는 책의 내용이, 그리고 나머지 반쪽에는 개구리 무용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도서관엘 갔더니 책상과 의자는 다 치워지고 열람실이 낯모르는 사람들로 시끌시끌했다. 하필이면 거기서 무용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재빨리 서가 속으로 숨어서 책 한 권을 빼들고는 책을 읽는 척하면서, 아니 책을 턱 밑에다 대고, 친구들이 개구리 무용을 하는 모습을 슬쩍슬쩍 훔쳐보았다. 그것이 벌써 3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나는 그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그런데 최근에 그 기억을 떠올려 주는 일이 일어났다. 그 공연 모습을 그때 참가한 동기생 중 누군가의 부모가 기념사진으로 찍어 두었던 모양이다. 그걸 누군가 간직하고 있다가, 얼마 전에 초등학교 동창회 홈페이지에다 턱 하니 올려 놓은 것이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그때 내가 무슨 책을 눈 밑에 대고 있었는가를 기억해 내려 했다. 그러나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그 책을 읽지 않았으니. 하지만, 궁금하다. 소년이 읽는 척 눈 밑에 대고 있던 그 책이 무엇이었는지. 그 책도 나이를 먹었는지. 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베이징 올림픽] 8월 10일 오전 11시 21분 박태환 X파일 열린다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베이징 올림픽] 8월 10일 오전 11시 21분 박태환 X파일 열린다

    서울신문 창간 104돌을 맞은 18일 스포츠계의 가장 큰 화두는 베이징올림픽이다.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은 이제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의 영역을 벗어났다. 국가간 선의의 경쟁을 통한 세계 스포츠의 발전은 물론, 다른 인종과 문화의 구성원들이 한데 모여 스포츠를 통해 하나된 세계를 추구하는 종합 축제가 된 지 이미 오래다.29번째 축제인 올해 베이징에서도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난 뒤의 환호와 눈물, 그리고 가슴벅찬 감동이 넘칠 것이다. 스무날 뒤 본격적인 올림픽 메달 사냥에 나서는 태극전사들도 열정을 쏟아낸다. 서울신문은 금메달 기대주 수영 박태환의 각오, 역대 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 김수녕의 조언, 음지에서 올림픽을 돕는 사람들, 그리고 한국스포츠 과학의 현주소와 세계적인 스타들의 드라마 창조 등을 6개면에서 살펴봤다. 아테네올림픽이 끝난 뒤 두 어달 지난 2004년 가을. 잠실수영장에서 처음 만났던 박태환(19·단국대)은 당시 한국선수단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에 올림픽무대를 밟은 ‘소년’이었다. 처음 서 본 올림픽 출발대에서 제대로 된 점프도 해보지 못한 채 실격당한 뒤 화장실에 틀어박혀 펑펑 눈물을 흘렸던 그다. 그러나 4년 뒤 또 다른 올림픽을 코앞에 둔 지금 그는 어엿한 ‘청년’이다. 그동안 그에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아시아신기록과 첫 세계선수권대회 메달 등을 넓적한 두 손에 움켜쥐며 불가능할 것만 같던 일들을 실제로 일궈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작은 기적’을 일궈냈던 두 팔과 두 다리로 하루 평균 1만 4000m를 헤엄치며 물 속에서 소리없이 외치고 있다.“그것들은 모두 시작에 불과했다.”고. ●하루평균 1만4000㎞ 스피드 향상 주력 주춤했던 장맛비가 다시 내리던 지난 2일 오후 태릉선수촌 수영장에 대표선수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선수촌에서 매주 수요일은 오전 훈련이 없는 ‘해피데이’다. 느긋하게 ‘반 공일’의 반나절을 푹 쉬고 나온 선수들 가운데 섞여 있던 박태환은 가볍게 몸을 푼 뒤 부리나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당초 2명에서 곱절인 4명으로 늘어난 파트너가 앞 뒤에서 스트로크를 하는 가운데 박태환은 50m 레인을 두 구간으로 끊어 거리 단위별로 스피드를 높이는 훈련에 열중했다. “훅∼훅∼, 북∼북∼.” 레인을 따라 몇 발자국씩 걸어나가다 한 번씩 내뱉는 뜻없는 노민상(52) 대표팀 감독의 우렁찬 구령소리에 박태환의 스트로크 속도가 달라진다. 특정지점에서 외치는 감독의 목소리는 연습 때부터 습관처럼 몸에 배 실전에서도 선수만이 알아듣는 고유의 신호로 전달된다. 노민상 감독이 내미는 B4용지 크기의 두툼한 책 한 권에는 박태환의 스케줄과 훈련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다. 지난 2월 27일 말레이시아 전지훈련에 합류한 박태환을 위한 일정표다. 알아보지 못할 깨알같은 영어글씨는 일단 8월 10일 오전 11시 21분 끝난다. 베이징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이 시작되는 시각이다. 최근 박태환은 ‘조정기’를 끝냈다. 지구력을 비롯해 순간적인 파워를 응집시키는 훈련이었다. 이제 스피드를 본격적으로 향상시키는 ‘스피드기’에 들어갔다.6월 초까지는 혹독한 지구력 훈련이 계속됐다.1주일에 9만 8000m, 하루 평균 1만 4000m의 훈련이 계속됐다. 이후 약 한 달 동안 박태환은 오전에 7000m를, 오후에 1만m를 헤엄치는 등 잠시 훈련 강도를 조절했다. 그리고 지난 7일부터 2주 동안 훈련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다관왕 프로젝트 차질없이 진행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마지막 3주는 최종 스피드 훈련에 집중하게 된다. 이 시기에 박태환은 체력적으로 완성 단계에 이르러 ‘예비전력’까지도 갖추게 된다. 마치 일정 구간을 비행하는 항공기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구간 외 비행을 추가할 경우에 대비해 비축하는 ‘예비 연료’와 같은 경우다. 훈련 내용도 단순하게 지구력과 스피드를 늘리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박태환의 생리학적 특성을 고려한 치밀한 계산 아래 이뤄진다. 피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젖산의 배출량을 기준 수치와 거리에 따라 적절히 조절한다.“옷에 비유할 경우 ‘재단’이라고 표현하면 딱 맞을 것”이라고 노 감독은 설명했다.“현재 훈련량과 시간은 30분 정도 줄었지만 질적으로는 이 모든 내용을 압축시키는 과정”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사실, 박태환은 대표팀에 합류한 지 넉 달 반 동안 또 한 차례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말레이시아 전지훈련 첫 날 받은 테스트에서 그의 몸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200m 코스를 정해진 시간에 오가는 레이스에서 박태환은 목표시간에 무려 12초나 뒤져 있었다. 지구력과 젖산 내성능력, 그리고 어깨와 발목의 유연성 등 모든 데이터에서 밑바닥이었다. 하지만 불과 열흘 만에 박태환은 본래 자신의 몸을 되찾았다.3월 10일 테스트에서는 매 단계마다 목표 시간에 근접했다. 뚝 떨어졌던 기록은 열흘 만에 6초 차이로 줄었다. 노 감독은 “그때 다시 희망이 보였다.”고 했다. 결국 박태환은 첫 번째 목표로 잡은 4월 동아수영대회 자유형 200m와 400m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아시아 신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웠다. 이제 베이징올림픽으로 가는 길만 남았다. 한국 수영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낼 것으로 가장 기대를 거는 종목은 물론 400m다. 박태환은 “금메달 판도가 만만치는 않지만 메달에 대한 욕심보다는 최선을 다해 헤엄칠 뿐”이라면서 “싸움에 나간 뒤 이기는 게 아니라 철저한 분석을 통한 이기는 싸움을 하기 위해 남은 하루 하루에 충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감독은 “400m가 (달라)붙어야 할 종목이지만 1500m도 포기하지 못한다.”고 다관왕을 위한 프로젝트를 실행중임을 시사했다. 서울서 베이징까지 직선거리는 약 938.5㎞. 당초 박태환은 베이징올림픽 개막 100일 전부터 93만 5000m를 헤엄치며 금메달의 꿈을 부풀리겠다.”고 했다. 남은 시간은 딱 20일. 하루도 쉬지 않고 물살을 헤친 박태환의 눈앞에 이제 막 중국의 땅덩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Local] 초등생 방학특강 수강생 모집

    경북 경산에 있는 경북도교육정보센터는 16일 ‘NIE 통합논술’ 등 초등학생을 위한 여름방학 특강 9개 프로그램을 마련, 수강생을 선착순 모집한다고 밝혔다. 모집 인원은 260여명이며 8월5일부터 22일까지 운영된다. 프로그램은 ▲책읽기와 논술 ▲어린이 동화구연 ▲Fun! Fun! 마술나라 ▲쪼물딱 점토나라 ▲예쁜글씨 POP ▲파워 포인트 ▲발표력과 리더십 등으로 다양하다. 문의 (053)810-9761∼3.경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산에 새긴 ‘대형 올림픽 엠블럼’ 석각 공개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을 28일 앞두고 거대 엠블럼 석각(석벽에 글씨·그림 등을 새긴 것)이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베이징올림픽 엠블럼(휘장)은 사람 인(人)과 문화의 문(文)을 의인화해 ‘중국의 봉인(도장), 춤추는 베이징’ 이라고도 불리며 베이징이 친절과 희망으로 가득하고 세계에 대한 도시의 의무를 수행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람이 움직이는 듯한 역동적인 이미지를 가진 베이징올림픽 엠블럼은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 바탕과 중국 전통의 도장과 서예기법을 기본 형식으로 디자인됐다. 베이징시 미윈(密雲)현 인민정부와 문화사업 위원회가 공동 작업을 통해 제작된 이 엠블럼 석각은 베이징시에 의해 ‘자연보존구역’으로 지정된 미윈현 윈멍(云矇)산에 위치해있다. 해발 968m 지점에 위치한 이 석각은 작업기간만 11개월 이상이 소요됐으며 총 500여명의 인력이 동원돼 완성됐다. 특히 이 석각은 3만㎡의 녹지에 높이 96m·너비 38m의 규모를 자랑해 올림픽 기간동안 베이징을 찾는 전세계 관광객에게 큰 볼거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중국 뉴스 전문 사이트 중궈신원왕(china.com.cn)은 “이 엠블럼 석각은 크고 넓으며 깊은 중국 문화와 올림픽 정신의 완벽한 결합을 뜻한다.”면서 “베이징 올림픽의 목표인 ‘녹색 올림픽’, ‘과학기술 올림픽’, ‘인문(人文)올림픽’의 이념을 실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산업은행 검사부 이영숙(李永淑)양-5분데이트(151)

    산업은행 검사부 이영숙(李永淑)양-5분데이트(151)

    작년에 이대부고를 졸업하고 산업은행에 입행 하자마자 곧바로 검사부에 배치되어 서무를 맡아보고 있는 이영숙양(20). 앳되고 수줍은 얼굴모습이지만 몇마디 나눠보고 함께 거리를 걷는동안 거리낌없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적극적인 활달함을 지닌「영·제너레이션」의 전형 같은 트인 성격의 아가씨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게 한다. 『고등학교 때문인가 봐요. 남학생들과 한반에서 나란히 배웠고 분위기가 그렇게 자유스러울 수 없거든요. 여자고등학교 다니는 친구들처럼 수줍어하고 쭈뼛거린 일은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자랑거리를 있는대로 캐어보니 고등학교 때 열린 교내「사이클」경기의 금「메달리스트」. 학교 행사때면 빠짐없이 기수로 뽑혔던 일, 활쏘기가 제법이라는 등… 너무도 많다. 산에 가면 영숙양의 별명은「악바리」로 통한다. 악착같이 산을 타기 때문. 마른 편이지만 음식은 무엇이나 가리지않고 잘 먹는단다. 산업은행 음악부에 들어 일주일에 두번씩「기타」를 익히고 있는 중. 『여자가 너무 외향적인 것 같다고 엄마의 걱정이 대단하셔요』 엄마의 걱정도 덜어드릴 겸 붓글씨와 꽃꽂이를 배워야겠다고 벼른다. 『영화는 가끔 시간이 나면 보는데요,「벤허」「나바론」같이「스케일」이 큰 것이 좋아요 요즘 읽고있는 책은 고 전혜린번역인『이것이냐 저것이냐』. 아버지 이형선(李亨善)씨(51)는 조그만 철공장을 경영하고 있다. 남동생만 둘. <원(媛)>[선데이서울 71년 9월 26일호 제4권 38호 통권 제 155호]
  • [도시 얼굴 가꾸기] 전통미 깃든 목간판 ‘화룡점정’

    [도시 얼굴 가꾸기] 전통미 깃든 목간판 ‘화룡점정’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이 고무신을 신었다면 ‘불협화음’이 아닐 수 없다. 양복에는 구두가 제격이고, 고무신은 한복에 어울린다. 같은 맥락에서 공공시설물도 그것이 위치하는 공간과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공공디자인이 강조된다. 공공시설물의 하나로 간주되는 간판 역시 공간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조화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필수요소이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옥마을 사례를 통해 그 의미를 짚어봤다. ●전통, 공간을 깨우는 힘 청기와와 솟을대문 등이 낯설지 않은 한옥마을은 방문객들의 눈요기를 위해 ‘껍데기’만 복원한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구미에 맞도록 전통을 재창조한 주거지이다. 앞서 전주시는 1977년 이곳을 한옥보존미관지구로 지정, 건물을 새로 짓거나 개조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때문에 주민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차츰 슬럼화가 진행됐다. 이에 시는 1999년 전통문화특구로 재지정, 본격적인 정비작업에 돌입했다. 건물의 겉모양은 전통 양식을 따랐으나, 내부는 현대식으로 설계됐다.2002년에는 한옥보전지원조례도 제정, 주민들이 한옥으로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전체 700여채의 건물 가운데 90% 이상이 한옥으로 변모했고, 마을을 찾는 방문객 수는 연간 1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처럼 건물이 바뀌자, 거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한옥마을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태조로’는 2002년, 동서를 연결하는 ‘은행로’는 올 초 가로정비사업을 마무리했다. 이중 은행로의 경우 무미건조한 아스팔트 도로를 정감이 느껴지는 돌길로 전환했고, 길 옆에는 실개천까지 조성했다. 태조로도 가로수 주변에 화초를 심은 ‘한뼘 화단’ 등의 아이디어가 반짝인다. ●간판정비, 공간과의 조화 죽어 있던 공간이 새롭게 깨어나자, 태조로·은행로 1㎞ 구간에는 공방과 전통찻집, 음식점, 전통체험·전시관 등 70여개 업소가 줄지어 들어섰다. 임채준 전주시 한옥마을담당은 “처음에는 별다른 제한 없이 간판을 내걸자, 한옥마을 전체의 이미지를 저해하는 옥에 티가 됐다.”면서 “때문에 올 초부터 간판 정비에 착수, 현재 50% 정도 바뀐 상황”이라고 말했다. 간판 정비는 철저히 공간과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고 있다. 한옥은 구조상 건물과 건물 사이의 연속성이 떨어진다.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기 쉽지 않다. 때문에 업소마다 가로형과 돌출형 등 간판을 2개까지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다만 간판이 건물에 비해 ‘배보다 큰 배꼽’이 되지 않도록 가로형 간판의 경우 지붕 크기의 50% 미만으로, 돌출형 간판은 처마 안쪽에 위치하도록 제한했다. 또 땅에 기둥을 박은 지주형 간판을 전면 금지해 모두 철거하고 있다. 또 간판 재질은 한옥에 어울리는 목재가 주로 쓰이고, 다양한 디자인의 목간판은 장인의 손을 거친다. 이곳에서 목간판을 제작하는 공방인 ‘목우헌’을 운영하는 김종연씨는 전통목침 관련 대한민국 기능전승자이기도 하다. 김씨는 “간판의 글자체도 전문가의 작품 글씨에서부터 해당 업소 주인이 직접 쓴 글씨에 이르는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판박이 간판’ 원천봉쇄 이처럼 한옥마을에서는 간판의 재질·형태·디자인 등을 다양화했기 때문에 같은 모양의 간판을 찾아볼 수 없다. 새로 제작하는 간판은 기존 간판과 반드시 차이를 둬야 한다. 특히 올해부터 새로 설치되는 간판에 대해서는 도시계획·건축·한옥보수·디자인·사학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한옥보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고 있다. 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비로소 간판을 내걸 수 있다. 하지만 위원회는 지난달 처음으로 신규 간판 4건에 대해 심의한 결과, 모두 ‘퇴짜’를 놓았을 정도로 심의를 엄격하게 진행한다. 임채준 한옥 담당은 “한옥마을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디자인이어야 간판은 물론, 공간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건축 심의보다 까다롭게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주시는 또 상업 간판은 물론, 안내표지판 등 공공 간판 개선에도 나섰다. 공공 간판에 대한 디자인 공모를 통해 한복의 옷소매와 쇳대, 방패연·가야금·거문고 등 전통적인 소재를 활용하기로 확정했다. 공공 간판에 대한 교체작업은 올해 말이면 마무리될 예정이다. 글·사진 전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7) 우아한 취미 ‘서화 감상’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27) 우아한 취미 ‘서화 감상’

    김홍도의 작품 ‘그림 감상’을 보자. 유건을 쓴 유생들이 둘러서서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워낙 단순한 그림이라 그림 자체에 대해서는 달리 설명할 것이 없다. 작자 미상의 ‘후원아집도(後園雅集圖)’는 연못까지 있는 부유한 양반가의 후원을 그린 것이다. 왼쪽에는 바둑이 한창이다. 그 오른쪽 소나무에 기댄 두 사람을 보기 바란다. 두루마리를 펴서 감상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그림이나 글씨를 보고 비평하는 중일 것이다. ●안평대군 서화 소장품 어마어마 이처럼 서화를 감상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있던 일이다. 하지만 그 농도는 다르다. 이 부분을 약간 검토해 보자. 세조 때 인물인 신숙주의 ‘화기(畵記)’란 글은 안평대군의 어마어마한 서화 소장품에 대한 기록이다.‘화기’를 통해 조선전기 서화의 수집과 감상 풍조가 유행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서화들은 남아 있지 않다. 고려와 조선전기 서화가의 작품도 전해지는 것은 몇 안 된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전쟁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면서 궁중에 소장된 책과 서화, 골동품 등이 모두 소실되었다. 또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판이니, 민간에서도 서화를 챙길 여유가 없다. 이래서 대부분이 망실된 것이다. 서화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다. 이 문제를 조금 살펴보자. 박지원의 글 중에 ‘필세설’이란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시커멓고 우묵하게 생긴 돌덩이 하나를 골동품이라고 하며 팔러 다니는데, 그게 무슨 골동품이냐며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연암의 친구 중 서상수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그 물건을 보더니, 단박에 “이것은 필세(붓 씻는 그릇)다.”라 하고는 그 재질과 생산지를 따지더니, 보물이라면서 거금을 던지고 소유해 버린다. 연암은 이 글에서 서상수의 높은 안목을 칭찬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인즉 “처음 시작한 공로는 있지만 감상안은 투철하지 못했다.”라고 평가한다. ●18세기 서화·골동 수집의 선구자 김광수 그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김광수부터 골동품과 서화의 감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만은 틀림없다. 김광수는 김동필의 아들인데, 김동필은 소론 온건파로서 영조의 탕평책에 협조하고,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이조판서에 이른 인물이다. 김광수는 “감식안이 신묘하여 한 물건이라도 마음에 들면 가산을 기울여 후한 값을 치렀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소장품의 대부분이 중국 수입품이란 것이다.19세기의 서화가 조희룡은 김광수를 두고 “사람됨이 소탈하고 우아하여 집 재산을 기울여서 멀리 연경에서 고서·명화·벼루·먹·골동품 등을 많이 사들여 종일토록 그 사이에서 읊조리고 완상하였다.”라고 했으니, 김광수는 서화와 예술품, 골동품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것을 자기 인생의 유일한 즐거움으로 알았던 사람이었다. 김광수는 1696년 출생이고 사망한 해는 모른다. 대체로 영조 일대를 살았을 것이고, 좀 오래 살았다면 정조의 치세도 경험했을 것이다. 김광수가 서화 골동을 소장하고 또 애호하는 취미의 선구자라면, 조선후기의 서화 골동 취미는 18세기 이후의 산물인 것이다. 김광수에게서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그가 북경에서 서화와 골동품을 수입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 주목해 보자. 조선은 병자호란 이래 청을 섬기게 되어 여전히 북경에 사신단을 파견했다. 청은 조선을 의심하여 조선 사신단을 숙소에 묶어 놓고 내보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18세기 중반에 와서 청 체제가 안정되자 조선의 사신들은 비로소 서적과 서화, 골동의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유리창 거리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거창한 규모의 서화와 골동품이 서울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최초의 대량 구입자가 바로 김광수였던 것이다. 이 수입 서화와 골동은 국내의 생산을 자극했다. 도화서와 선비 화가들의 작품이 쏟아져 나와 감상과 품평의 대상이 되고, 급기야 예술품 수집가들의 소장 대상이 되었다.18세기를 지나면서는 그 풍조를 비판하는 소리까지 나왔다.18세기의 문인 이정섭은 이런 풍조를 “요즘 사람들은 고서화를 많이 소장하는 것을 청아한 취미로 삼아 남에게 비단 한 조각이라도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떳떳하지 못한 온갖 수단으로 기필코 구해 농짝을 가득 채우고 진귀한 보배인 양 자랑을 한다.”라고 비판하였다. 이제 서화와 골동품을 수집하고 그것에 대해 지식을 쌓아, 그림이나 글씨 혹은 골동품을 보면 거기에 대해 진위를 가리고 비평을 하는 것은 양반들의 독특한 문화가 되었다. 서화 수집가이자 비평가인 남공철(영의정을 지낸 인물이다)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멋있게 포장했다.“정자를 용산과 광릉 사이에 지어두고 매화, 국화, 소나무, 대나무를 많이 심어 간소한 차림으로 나가서 한가롭게 거닐었다. 손님이 찾아오면 향을 사르고 단정히 앉아 경전과 역사에 대해 토론하였고, 곁에 고금의 법서(法書)·명화·골동품을 두고 품평하고 감상하였으니, 마음이 담박하여 세상의 영리를 바라지 않았다.” 서화와 골동을 품평하고 감상하는 것을 아주 고상한 삶의 형태로 보고 있는 것이다. ●광통교서 산 그림을 자기 작품이라 속이기도 이런 풍조로 인해 별별 희극이 다 벌어졌다. 다산 정약용이 이정운이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보내주신 신선 그림은 대릉(이정운이 살던 곳을 말함)에 계시는 여러분의 그림은 아닌 듯싶은데 혹 광통교에서 사 오신 것은 아닙니까? 어떤 신선이기에 눈은 순전히 욕심으로 불타 있고 얼굴은 순전히 육기뿐이니 말입니다. 우열을 비교해 봤자 반드시 하등일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림으로 승부를 걸려면 반드시 우리 모임의 벗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대면하여 직접 그린 것만이 시합에 응할 수 있도록 기준을 세워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지로 간사스러운 폐단이 있어 두루 방어할 수 없을 것이니, 우스운 일입니다. 이정운은 다산과 같은 서클에 든 사람이고, 이 서클은 그림을 그려서 서로 돌려보며 품평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위의 그림도 그런 그림 감상, 품평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이정운은 그림에 별 솜씨가 없어 광통교에서 파는 그림을 사와서 자기 그림이라고 남에게 돌려보였던 모양이다. 광통교는 청계천에 놓여 있던 다리다. 추측건대 18세기 후반에 광통교에 그림을 걸어놓고 파는 상인이 생겼고, 서울 시민들은 집치레 그림을 여기서 구입하였다. 이정운은 요즘 말로 하자면 이발소그림을 사서 동료들에게 자신의 것인 양하고 보냈다가 들통이 난 것이다. 다산은 또 윤참판이란 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윤참판이 자신에게 그려 보내준 난초와 매화 그림을 격찬한 뒤 장난조로 다시 이정운을 비난한다.“오사(이정운)께서는 언제나 광통교 위에서 걸어놓고 파는 하찮은 그림을 사다가 사중에서 일등을 하려고 하니 이러한 사실을 시험관에게 알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정말 웃음이 터지는 일입니다.” 이정운의 가짜 그림은, 그림을 그려 동료들 간에 돌려 보이고 품평하는 풍조가 낳은 희극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이발소에 가면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시골풍경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그림을 보며 지루한 이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이발소그림을 굳이 예술사조로 따지면 낭만주의 풍이다. 이발소그림이 다루는 가장 흔한 제재, 곧 목가적 풍경이나 장엄한 풍광이 낭만주의 풍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얼마 전 퇴근길에 보니 길거리에 그림을 잔뜩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이발소그림이었다. 반가운 생각이 왈칵 들었다.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천천히 그림을 보았다. 배운 사람들은 이발소그림을 한 마디로 폄하하지만, 이른바 제대로 된 예술품 대접을 받는 그림은 값이 너무 비싸 구입하기 어렵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발소그림이야말로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이상향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김홍도의 ‘그림 감상’을 보고 절로 떠오른 생각이다. 그런데 ‘그림 감상’ 속의 그림은 어떤 그림이었을까? 궁금하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한석규 “연기란 사랑하는 여자다”

    한석규 “연기란 사랑하는 여자다”

    ‘흥행보증수표’라는 수식어를 오랫동안 달고 다녔던 배우 한석규. 90년대 충무로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한석규다. 성우 출신답게 감미로운 목소리, 그만이 지어낼 수 있는 온화한 미소는 트레이드 마크가 됐고 출연하는 작품마다 홈런을 터뜨리며 한국최고의 배우 자리에 올랐다. 그는 영화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주연이었고 그의 영화는 말 그대로 탄탄대로였다. ‘닥터 봉’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자상을 거머쥐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 그는 ‘은행나무 침대’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다음해 ‘초록물고기’로 주요 시상식의 연기상을 휩쓸며 최고의 남자배우 반열에 올라섰다. ‘넘버3’,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로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은 한석규는 그야말로 ‘흥행보증수표’였다. 하지만 그에게도 공백은 찾아왔다. ‘텔미썸딩’ 이후 3년 만에 ‘이중간첩’으로 돌아온 그를 관객들은 반갑게 맞아주지 않았고, ‘주홍글씨’, ‘그때 그 사람’도 관객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하지만 배우라는 것이 흥행성적표만 가지고 평가될 수 없듯이 한석규는 좋은 영화를 알아보는 안목과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야기에 사람 냄새를 채울 줄 아는 베테랑 배우다. 그가 ‘사랑할 때 이야기 하는 것들’ 이후 2년 만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검거율 100%에 형사 백성찬으로 돌아온 그는 백발로 염색까지 하면서 완벽하게 변신했다.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한석규의 미소는 여전히 따뜻하고 정감있다. 2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제작보고회 현장에서 만난 한석규의 진솔한 인터뷰를 생중계한다. #‘사랑할 때 이야기 하는 것들’ 이후 2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소감이 남다를 텐데? 마치 애를 낳는 심정이다. 벌써 16번째 아이를 낳는 것이지만 관객들이 제가 낳은 아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기대가 된다. 태교에 충실해서 잘 낳아보려고 했는데 관객들의 평가만 남았다. #이번 영화에서 냉철한 성격의 백형사 역을 맡아 백발로 염색까지 했는데? 그동안 멜로에 대한 이미지가 강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변신하는 내 모습을 보면 나 또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사실 백발 염색은 촬영 들어가기 전 분장 헤어팀, 연출팀에게 내가 직접 제안해 탄생한 것이다. 처음에는 제작진이 다소 난감한 반응을 보였지만 연기 변신을 위해 필요했고 연기에도 도움이 됐다. #천재적인 지능범 역을 맡은 차승원이 상대배우다. 차승원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차)승원이를 처음 본 것은 ‘싱글벙글’ 이라는 영화배우 골프모임에서였다. 워낙 성격이 좋고 밝은 모습이라 첫 인상이 좋았다. 승원이를 영화 ‘세기말’에서 관객으로서 처음 봤고 그 후 작품을 계속 보면서 같이 연기해보고 싶었다. 두 명의 주연배우가 함께 하는 작품이 드문데 완성도 높은 작품을 함께 해 좋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있었을텐데? 백형사는 실험에 실험을 거쳐 완성한 인물이다. 촬영 중 가장 힘들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안토니오 역을 맡은 이병준을 때리고 취조하는 장면이었다. 시나리오를 받을 때부터 신경이 쓰이는 장면이었는데 촬영 당일까지 고민을 했다. 계획하고 짜여진 상태로 연기하는 것보다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연기를 할 때 미리 계획하고 연기하면 좋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것이 장점일 때가 있다. #촬영을 마친 소감이 어떤가? 촬영을 끝내면 나면 모든 배우들이 하나같이 ‘과연 내가 역할을 잘 소화했나, 연기를 잘 했나’ 걱정한다. 백형사를 완성해가면서 과연 선을 넘는 연기를 한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한석규에게 연기란 무엇인가? 누군가 나에게 연기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사랑하는 여자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됐고 지금도 그 여자를 가꿔 나가는 중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 모습 그대로 더럽히지 않고 가꾸고 싶은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웃음) #스스로 자신의 연기를 평가한다면? 지난 내 작품을 보면 30대 때는 ‘저놈 참 애쓴다’라는 생각이 든다. 40대에 했던 연기는 한 관객으로서 봤을 때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40대부터는 많은 작품을 해보고 싶다. 40대에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배우에게 가장 좋은 나이인 것 같다. #배우 한석규는 어떤 사람인가? 배우는 외적이거나 내적인 타입으로 분류할 수 있다. 난 후자다. 내적인 타입이라 평상시에는 내 모습이 싫고 지겹기도 하지만 연기를 통해 내면의 쌓인 감정을 분출할 수 있어 좋다. 지금도 내게 가장 큰 스트레스가 뭐냐고 물으면 연기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스트레스는 연기로 푼다. #공식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배우 한석규에 대해 뭔가 가리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그것은 내 행동에 대한 리액션 일테니 사과 드리고 싶다. 하지만 배우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먹고 사는 직업 아닌가(웃음) #자녀가 배우를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내 자녀가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음 좋겠다. 배우라는 직업은 한번쯤은 인생을 걸어볼 만한 일이다. 아이들이 배우를 하게 되면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가 도움도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 큰 애가 10살이고 재능을 보이는 자녀는 없다.(웃음)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중구, 도시 브랜드·로고 확정

    중구, 도시 브랜드·로고 확정

    중구가 새로운 도시브랜드(BI·Brand Identity)를 확정하고,30일 공개했다. 브랜드명은 ‘서울의 중심, 중구’(그림)이다. 로고는 힘있고 역동적인 캘리그래피(손글씨)로 디자인해 한국적 멋을 나타냈다. 디자인 색상도 검정색(글씨)과 빨간색(낙관)의 두 색깔로만 구성해 전통과 미래,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세련미를 첨가했다는 설명이다. 영문으로는 ‘하트 오브 서울, 중구(Heart of Seoul,Junggu)’로 표현하기로 했다. 구는 앞으로 공문서는 물론 모든 행정서식과 시설물, 명함, 공용차량, 기념품, 각종 홍보물 등에 로고를 활용할 계획이다.2000년 개발해 사용하고 있는 중구 CI와 함께 매체특성에 맞게 병행할 예정이다. 구 관계자는 “하이, 다이내믹, 해피 등 외국어 일색인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브랜드와 달리 한글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라면서 “지리적 중심뿐만 아니라 사회·경제·문화의 심장부에 있는 구의 정체성과 장점을 담았다.”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어느 고양이’의 무상 행위

    ‘어느 고양이’의 무상 행위

    노년의 렘브란트가 늙고 병들자, 사정을 딱하게 여긴 한 친구가 돈을 건네며 말했다. 이 돈으로 몸을 보할 음식이라도 사 먹게나. 그러나 렘브란트는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라는 성경구절을 되뇌며 그림물감을 사는 데 그 돈을 몽땅 써버린다.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이 홈페이지 인사말에 이 일화를 인용한 속뜻은 분명해 보인다. 스스로가 가장 원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행복해지기 위한 최선의 선택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인문학관, 문인들의 영혼과 숨결이 느껴지는 곳 2001년에 개관한 영인문학관의 시발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남편인 이어령 선생이 《문학사상》을 창간하면서 문인들의 초상화를 표지에 실은 게 첫 걸음이었다. 문인 초상화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시기, 그러나 문학을 사랑하는 여러 화가들의 동참으로 생소한 그 작업을 가능케 할 수 있었다. 화가들은 수록 대상이 된 작가의 작품 내용과 주제를 반영해 특색 있는 초상화를 그려냈을 뿐 아니라, ‘화가의 말’도 직접 썼다. 현재 전시 중인 100여 점의 초상화가 그 시절에 그려진 작품들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의 문학관은 대부분 기념관 형태였다. 영인문학관은 현대문학관에 이어 박물관의 면모를 갖춘 두 번째 문학관인 셈이다. 개관 당시 강인숙 관장은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병원에서 인후암 판정을 받던 날, 그는 그동안 수집해둔 자료 정리에 들어갔다. 암 선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이 문학관 개관을 서두르는 것이었다니, 어떻게 그리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사명감’이라고 대답했다. 외국과 달리 박물관의 성격을 띠는 문학관이 없다는 것은 문단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속상한 일이라며. 담담한 그의 얼굴 위로 늙고 병약한 렘브란트의 얼굴이 겹쳐졌다. 홈페이지에서 읽은 <나는 왜 문학관을 하게 되었는가>라는 글 가운데 ‘김동인의 낡아빠진 명함이나 글씨도 판독하기 어려운 이상의 초고를 누가 나만큼 사랑하랴’는 문장도 떠올랐다. 병든 몸이 아니라도 버겁고 힘겨운 그 일을, 강인숙 관장은 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해냈다. 서울 평창동에 위치한 영인문학관은 좋은 입지 조건을 갖췄다고 말하기 힘들다. 가파른 오르막을 한참 올라가야 하니 무심히 길 가다 들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약도가 그려진 쪽지를 들고 길을 물어 찾아오는 사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흠뻑 젖어서 들어오는 사람, 부산이나 제주도 같은 원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오는 사람, 그들이 있어 강인숙 관장은 보람을 느낀다. 그렇게 찾아오는 관람객이 하루에 한 명만 있어도 영인문학관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는 강 관장의 말. 이곳을 찾아 발품을 판 사람들이 문학과 예술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장면과 그런 이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강인숙 관장의 모습이 그려졌다. 인연을 통해 본 성찰의 기록, 어느 고양이의 꿈 “딸 많은 집 셋째 딸은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말이 있죠? 제가 바로 그 딸 많은 집 셋째 딸이에요.” 신작 에세이를 보여주며 강인숙 관장이 말했다. 교육열이 대단했던 그의 어머니는 열 살 된 아들을 폐렴으로 잃은 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종용하지 않았다. 살아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그는 성적 경쟁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공부만 하고 읽고 싶은 책만 읽으며 중학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철이 들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공부를 시작했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그는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느꼈다. 남과 겨뤄서 이기기보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살았다고. 그 딸 많은 집 셋째 딸이 최근에 낸 수필집 제목이 《어느 고양이의 꿈》이다. 고양이는 사람 좋아하고 북적대는 분위기를 즐기던 그의 어머니가 내성적인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기도 하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인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영인컬렉션1’이라는 제목이 붙은 1장은 문인들과의 만남과 그 관계에 얽힌 예술품을, 다음 장인 ‘영인컬렉션2’는 한국 민속품과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3장 ‘만남의 11가지 패턴’에서는 넓게 관계 맺지 않는 고양잇과의 인간이 소중하게 여기는 몇몇 사람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보여준다.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과 예술에 관한 조예가 엿보이는 저작이다. 그는 책을 출간할 때마다 판매부수에 연연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특히 수필은 대중 앞에 발가벗고 서 있는 느낌이라 많이 안 팔렸으면, 생각했던 적도 있다고.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어느 고양이의 꿈》을 통해 대중들이 문인을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면 좋겠다고, 그래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주기 바란다는 그의 말에서, 동료와 선후배 문인을 생각하는 살뜰한 마음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문인 초상화전, 상상력과 현실 사이 최근 영인문학관은 이사를 하면서 문인 초상화전 ‘상상력과 현실 사이’를 기획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다양성’이었다. 김삿갓과 신사임당부터 2000년대 들어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는 권지예, 정미경에 이르기까지, 대상 문인을 선정하는 데 있어 활동시기에 전혀 구애받지 않은 듯 보였다. 화풍도 전통기법을 답습한 작품부터 간소화된 선만으로 표현된 추상적인 작품까지,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초상화뿐 아니라 자화상, 캐리커처, 마스크, 흉상, 사진에 이르기까지 작품이 100점이 넘는다. 화가별로 전시하는 새로운 시도도 했다. “초상화는 눈을 그리는 게 가장 까다로운 것 같아요. 특히 작가들의 눈은 더 그렇죠. 눈은 그 사람 내면의 진정성을 드러내요.” 그렇게 말하는 강인숙 관장의 눈도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형형하다. 천생 작가의 눈이구나, 싶다. 너나 할 것 없이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닐 만큼 사진이 보편화된 시기에 초상화전을 하는 의미에 대해 물었더니, ‘진실과의 닮음’이라고 말한다. 사진이 리얼리즘(realism)이라면 초상화는 그리는 이의 상상력이 가미되는 데 변별력이 있다는 것이다. 대상이 가진 개성을 포착하여 창작자 고유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그러면서 대상과의 닮음이 확보되는 것이 창작자가 부여하는 예술혼일 것이다. 시간을 정지시켜 얻어낸 영원. 초상화와 사진의 가장 큰 차이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초상화뿐 아니다. 문인서화, 육필원고, 삽화, 지필묵, 작고한 문인의 유품 등은 물론이고 작가들이 기증한 애장품이 수저집에서 장바구니에 이르기까지 전시관을 가득 메웠다. 그중에서도 부채는 강인숙 관장이 유난히 자부심을 가지는 부문이다. 문인부채와 화가부채를 가지고 예전에 전시회를 한 적도 있단다. 그의 긍지를 입증하듯, 영인문학관이 소장한 부채들은 뛰어난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 부채를 비롯해 소장 물품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강인숙 관장은 문인들이 죽은 뒤 자녀들이 유품을 나눠가지는 과정에서 전시 가치 있는 물건들이 사라지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전시를 하면 도록이라도 남잖아요.” 그 말에, 누군가는 나서서 문학 관련 자료를 모으고 관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느껴졌다. 개인 소장일 경우 자료가 온전하게 관리, 보관되기 힘들다는 것도 그의 안타까움을 더 절박하게 한다. 그토록 지극한 애정이고 보니 기증 받은 자료를 전시하지 않고 사장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일찍이 앙드레 지드는 ‘무상의 행위’에 관해 설파했다. 《교황청의 지하실》이라는 작품에서 도덕을 초월한 절대적 자유를 실험하기 위해 무동기의 살인, 이른바 ‘무상의 행위’로서 살인을 저지르는 주인공 라프카디오를 등장시킨다. 만약 인간에게 순수한 자유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무동기의 무상 행위이리라. 영인문학관은 강인숙 관장에게 문인과 독자에 대한 사랑을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일 뿐 어떤 목적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상의 행위’라 할 수 있다. 글·사진 하재영 소설가     월간 <삶과꿈> 2008년 7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Local & Metro] 최치원 海雲臺석각 조형물 설치

    부산 해운대구는 29일 신라시대 학자인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이 동백섬 남쪽 암벽에 새긴 ‘海雲臺´(해운대)라는 석각(石刻)을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형물로 만들어 해운대해수욕장 웨스틴조선호텔 앞 전망대에 설치했다고 밝혔다. 조형물은 길이 2.3m 폭 0.6m 크기로 원형을 그대로 재현했다. 제작비는 최치원선생기념사업 기금으로 만들었다. 해운대구는 이 석각(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45호)은 최치원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으로 가던 중 해운대의 아름다움에 반해 새긴 글씨로 ‘해운대’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고 밝혔다. 제막식은 다음달에 한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Local & Metro] 최치원 海雲臺석각 조형물 설치

    부산 해운대구는 29일 신라시대 학자인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이 동백섬 남쪽 암벽에 새긴 ‘海雲臺’라는 석각(石刻)을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형물로 만들어 해운대해수욕장 웨스틴조선호텔 앞 전망대에 설치했다고 밝혔다. 조형물은 길이 2.3m 폭 0.6m 크기로 원형을 그대로 재현했다. 제작비는 최치원선생기념사업 기금으로 만들었다. 해운대구는 이 석각(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45호)은 최치원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으로 가던 중 해운대의 아름다움에 반해 새긴 글씨로 ‘해운대’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고 밝혔다. 제막식은 다음달에 한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엄지원, 영화 ‘공중 곡예사’로 시대극 첫 도전

    엄지원, 영화 ‘공중 곡예사’로 시대극 첫 도전

    배우 엄지원이 영화 ‘공중곡예사’(감독 박대민ㆍ제작 CJ 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됐다. ‘공중곡예사’는 구한말을 배경으로 미궁의 살인사건을 쫓는 명탐정 홍진호(황정민 분)과 그를 돕는 의학도 광수(류덕환 분)의 활약을 그린 추리스릴러물이다.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시대극에 도전하는 엄지원은 사대부가의 부인이지만 신분을 감춘 채 여류발명가로 활동하며 탐정 진호의 수사에 필요한 발명품을 만들어주는 숨은 조력자인 순덕 역을 연기한다. 그동안 영화 ‘가을로’, ‘주홍글씨’, ‘스카우트’ 등 여러 편의 영화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엄지원은 순덕 역을 통해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한편 여류 발명가로서 당차고 힘있는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엄지원은 “사대부가의 여인이자 신여성인 순덕은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며, 굉장한 매력을 갖고 있어 개인적으로도 애착이 간다.”고 밝혔다. 한편 엄지원을 비롯해 황정민, 류덕환 등이 출연하는 영화 ‘공중곡예사’는 지난 20일 크랭크인 해 내년 상반기 개봉 예정이다. 사진 = 웰메이드 스타엠 서울신문 NTN 정유진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깔깔깔]

    ●요즘 아이들 1. 교사:“철수야, 지도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보렴.” 철수:“찾았어요.” 교사:“그래, 참 잘했다. 여러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누구죠?”아이들:“철수요.” 2. 교사:“왜 이렇게 학교에 늦었어요?” 아이:“표지판에 ‘학교 앞. 천천히 가시오.’라고 써 있었어요.” 3. 아이:“아빠, 아빠는 불 끄고 글씨 쓸 수 있어?” 아빠:“응, 물론이지.” 아이:“그럼, 불 끄고 여기 성적표에 사인 좀 해주세요.”●서울대 줄임말 서울약대:서울에서 약간 먼 대학 서울법대:서울에서 제법 먼 대학 서울상대:서울에서 상당히 먼 대학
  • “서울의 글씨체를 골라주세요”

    “서울의 글씨체를 골라주세요”

    서울시가 서울의 정체성과 고유 이미지를 담은 ‘서울 서체’ 후보 3종을 공개하고 시민 의견을 묻는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부터 개발해 온 서울 서체에 대해 19일까지 인터넷 등으로 시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13일 밝혔다. 공개된 후보 서체 3종은 각각 모음의 굵기와 자음 ‘ㅎ’의 모양, 자·모음간 여백에 변화를 줘 서체의 고유성과 조형적 가독성 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도안은 폰트개발업체인 윤디자인연구소가 했다. 시 관계자는 “최종안으로 1개 서체를 고른 뒤 이를 바탕으로 각각 굵기가 다른 명조 2종, 고딕 4종, 간판고딕 1종을 서울 서체로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는 디자인서울 홈페이지(design.seoul.go.kr)나 디자인 정글(www.jungle.co.kr), 온한글(www.onhangeul.com)을 통해 선호도와 명칭, 서체 이용 방안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또 시청 앞 서울광장과 신촌 대학가, 동숭동 대학로, 삼성동 코엑스에서 현장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시청과 구청 공무원들의 의견도 조사할 방침이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16) 강원도 평창 능경봉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16) 강원도 평창 능경봉

    영동과 영서를 이어주는 대관령은 백두대간에 놓인 고개다. 백두대간 산줄기를 따라 북쪽으로는 오대산 노인봉(1338m)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고루포기산(1238m)으로 연결된다. 능경봉(1123m)은 대관령과 고루포기산 사이에 솟은 산으로서 고루포기산과는 횡계현 고개를 사이에 두고 있다. 대관령휴게소에서 백두대간 등산로를 따라 1시간30분 남짓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능선에는 신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물푸레나무, 복자기, 피나무 같은 큰키나무들이 섞여 자란다. 능선에서 소나무를 거의 만날 수 없는 것도 이 산의 특징이다. 노린재나무, 시닥나무, 함박꽃나무, 회나무 같은 떨기나무들이 숲의 중간층을 이루어 자란다. 숲 바닥에는 감자난초, 관중, 광릉갈퀴, 노루삼, 눈빛승마, 도깨비부채, 삿갓나물, 선괭이눈, 애기앉은부채, 옥잠난초, 쥐오줌풀, 투구꽃, 큰괭이밥 등의 풀꽃들이 살고 있다. ●골짜기 습지 애기앉은부채꽃 등 희귀식물 많아 횡계현에서 횡계마을 쪽으로 내려서는 골짜기인 왕산골이나 대관령휴게소 일대에서 정상 쪽으로 이어지는 골짜기들에 귀한 식물이 많다. 휴게소 일대의 골짜기 습지에 놋젓가락나물, 애기앉은부채, 제비동자꽃 등의 희귀식물이 살고 있다. 계곡을 따라 곳곳에 습지가 형성되어 있는 왕산골에도 꽃창포, 노루오줌, 붓꽃, 산비장이, 애기원추리, 참좁쌀풀, 초롱꽃, 할미밀망 등이 자라고 있다. 능경봉 산자락이라 할 수 있는 대관령에서 횡계마을로 이어지는 지방도로 주변에도 금꿩의다리, 단풍터리풀, 생열귀나무, 범꼬리 같은 귀한 꽃들이 많다. 도로를 정비하거나 확장할 때에 이런 중요한 식물들이 있는지조차 모른 상태에서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단풍터리풀이나 제비동자꽃은 백두산을 비롯하여 만주, 몽골, 시베리아, 캄차카 등 고위도 지방에 분포하는 북방계 식물로서 남한에서는 이 일대를 비롯하여 강원도 몇몇 곳에서만 발견된다. 이곳에 살고 있는 생열귀나무도 남한에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식물이다. 장미과에 속하는 떨기나무로서 높은 산에 자라는 민둥인가목에 비해서 꽃빛깔이 훨씬 진하고, 열매는 길쭉하지 않고 동글동글하게 생겼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산 중턱 이하에서 드물게 볼 수 있다. 바닷가에 자라는 해당화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능경봉 자락의 자생지 부근에는 심어 놓은 해당화가 근처에 있으므로 헷갈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쥐오줌풀은 길가나 숲 속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길가에 자라는 것은 보랏빛이 도는 꽃을 피우고, 숲 속에서 햇빛을 조금만 받고 자라는 것은 흰 꽃을 피운다. ●5월~6월 하순 함박꽃나무 ‘함박웃음´ 붓꽃은 꽃이 피기 전의 봉오리 모습이 글씨를 쓰는 붓을 꼭 닮았다. 꽃잎 아래쪽에 있는 노란 줄무늬는 곤충들이 잘 앉을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전국의 숲 가장자리, 풀밭 근처 등에서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자생 붓꽃속(屬) 식물 가운데 비교적 흔하다. 숲의 중간층을 이루는 노린재나무는 작은 꽃들이 여러 개 모여서 화려한 흰 꽃을 피운다. 많은 수술이 꽃잎 밖으로 나와서 꽃이 더욱 화려하게 보인다. 줄기를 태우고 나면 남는 재의 빛깔이 노란색이어서 노린재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가을에 남색으로 익는 열매도 볼 만한다. 이맘때 산 속에서 크고 탐스러운 흰 꽃을 피우는 함박꽃나무를 산목련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 식물학적으로도 목련과 같은 속(屬)에 속하므로 일리가 있지만, 학술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리말이름일 뿐만 아니라 큰 꽃이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 함박꽃나무라는 이름으로 통일해 부르는 게 좋을 듯하다. 꽃이 클 뿐만 아니라 잎도 크고 시원스럽게 생겨서 관상가치가 높다. 한라산을 비롯해서 우리나라 전 지역에 자라며, 사는 곳의 해발고도에 따라서 5월 하순부터 6월 하순까지 꽃을 피운다. 북한에서는 국화로 지정하여 도시의 공원에도 많이 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시론] 인사의 삼비와 삼정 원칙/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시론] 인사의 삼비와 삼정 원칙/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인사(人事)는 만사(萬事)임과 동시에 망사(亡事)라고 한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모든 일을 순리대로 풀어나갈 수 있지만 이에 실패하면 실타래 엉키듯 일이 꼬이게 된다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는 정권 출범을 자축하는 승리의 샴페인을 터트리기가 무섭게 내각과 청와대 등 새 정부 주요직 인사 문제로 혼선을 겪었다. 인재를 발굴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권력 내부의 갈등과 불신이 커지고 인사에 관련된 잡음이 꼬리를 이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기대감은 소위 ‘고소영 인사’,‘강부자 인사’라는 신조어를 낳으면서 빠르게 냉각되더니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파동을 겪으며 급기야 얼음장으로 변해 갔다. 얼어 붙은 국민의 마음은 이 대통령이 나서서 녹여야 한다. 엉킨 실타래는 중간이 아닌 처음부터 찬찬히 풀어야 다시 엉키지 않는다. 인사망사로 꼬인 실타래를 인사만사로 바꾸는 감동의 인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인사 원칙을 세우고 유능한 인재를 폭넓게 찾아 나서야 한다. 투명한 인재발굴 절차와 철저한 인사 검증시스템을 통해 윤리성, 전문성, 그리고 정치적 감각을 두루 겸비한 숨어 있는 진주들을 찾아 내어야 한다. 비선조직을 통한 음지 인사는 인사의 편향성과 독단의 위험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권력 내부의 갈등과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키운다. 우리 선조들이 시행한 인사 제도와 인사 원칙도 눈여겨 볼 만하다. 조선 후기 영조는 당쟁을 해소하기 위하여 널리 인재를 등용하려고 탕평책을 펼쳤다. 궁중음식의 하나인 탕평채는 탕평책의 경륜을 펴는 자리에서 나누던 음식이라 탕평채로 불리게 되었다. 탕평채는 청포묵에 여러 가지 야채와 계란 등을 고명으로 섞어 맛을 내는 궁중음식이다. 탕평채의 맛은 널리 인재를 발굴하고 골고루 이들을 등용하고자 하는 탕평책의 인사 원칙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서경이란 제도도 있었다. 서경은 관원의 인사결정이나 법령을 공표할 때 감찰을 하는 대관(臺官)과 왕에게 간언을 하는 간관(諫官)인 대간(臺諫)의 서명을 받는 제도이다. 다양한 검증절차를 제도화하고 혹시 있을 인사상의 잘못된 판단과 독단을 피하려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개방성과 균형성을 지향하고 독단적인 인사를 막으려는 옛 선조들의 인사원칙은 되새겨봄직한 기준이다. 최근 여권 인사가 대통령에게 삼비(三非)원칙을 제시했다고 한다. 비(非)영남, 비(非)고려대, 그리고 10억 이상의 재산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고소영 인사’와 ‘강부자 인사’에 대한 반작용이다. 전직 대통령이 굵은 붓글씨로 젊은 학생들에게 미래의 지도자가 되라고 써준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내용은 정지(正知), 정판(正判), 정행(正行)이었다. 국정을 담당할 인재상이 삼정도(三正道)에 함축적으로 담겨져 있다. 바르게 알고, 바르게 판단하며, 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인재를 찾는 삼정(三正)원칙과 여권 인사가 제시한 삼비(三非)원칙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는 이 대통령의 몫이다. 어쩌면 이 대통령이 삼정도를 먼저 마음에 새기고 탕평채의 오묘한 맛을 음미하면서 엉킨 국정과 인사의 실타래를 풀어 가야 하지 않을까. 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 [6·10 촛불집회] 386 정치인 6·10 항쟁 소회

    1987년 6월 항쟁과 2008년 6월 촛불집회.21년의 간극을 두고 다시 촛불이 타올랐다. 독재타도·호헌철폐를 외쳤던 광장에,42년의 독재를 끝내겠다며 성공회대 꼭대기 종탑에서 42번 울렸던 타종 소리를 기억하며, 다시 광장에 선 사람들이 있다.386 정치인들이다. 거대 담론에 빠진 무능한 세력, 민주화의 성과를 독식한 기득권 세력,386 정치인들의 현주소나 다름없다. 군부독재의 권력 이양식이 치러졌던 21년전 10일,‘귀환’한 이들의 소회는 그래서 남달랐다. ●“대중과의 간극 메우는 중” 통합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의 손을 잡고 집회에 나왔다. 여기저기 모여앉은 386세대 가족들을 보며 민주주의는 결코 물러날 수 없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송 의원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한 사회의 모든 문제를 고민하는 세대로서 무거운 짐을 진 것 같다.”며 화두를 던졌다. 어느샌가 주홍글씨처럼 새겨진 이름,386 정치인. 송 의원은 “주도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과 공감하며 간극을 메우는 과정”으로 2008년 촛불의 의미를 받아들인다.6월 항쟁이 이룬 민주주의 성과들이 역진할 때, 끝까지 지켜내고 진전시키는 것이 스스로의 임무라고 다짐한다.1987년 당시엔 인천지역 노동자로 집회에 참여하면서, 이한열 열사 장례 추진위원을 지냈다. 당시 동국대 ‘호헌철폐와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애국학생투쟁위원회’위원장이었던 민주당 최재성 의원. 수배 중이었던 터라 서울 노량진 뒷골목 자취방에서 6월의 벅찬 열기를 숨죽여 느껴야 했다. 최 의원은 촛불행진 중에 “국민들은 진보하는데 정부는 여전히 답보 상태”라며 말문을 열었다. 정치권도 진화하는 국민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386 정치인에 대한 가혹한 ‘평가’엔 단호하다. 최 의원은 “386 정치인들은 태생적으로 탈권위적이다. 국민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세력”이라면서 “우리 사회에 386을 대신해 진보적인 국민들과 잘 조응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만 대안세력으로 거듭나려면 “스스로 변질되지 않으면서, 정체성을 중심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정당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장 보며 대한민국 에너지 느껴”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은 1985년 11월 서울 미 문화원 점거 투쟁으로 구속돼 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때문에 6월의 현장에 동참하지 못했다. 정 의원은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대한민국의 에너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정권퇴진을 요구했던 87년과는 차이가 있다.”면서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는 것 해야” 우상호 전 민주당 의원은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우 전 의원은 “6월 항쟁으로 민주화를 이루고 나서 다시는 대규모 거리 시위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과 국민이 직접 부딪히는 현장은 386 정치인으로서 각별한 각오를 다지게 한다. 우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위기의 원인을 모르는 것 같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총선 패배 뒤에도 386을 향한 비판은 여전히 따갑다. 우 전 의원은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양보하지 않는 한 국민과 함께 싸우는 게 야당의 역할”이라면서 “386 정치인들은 더 명확하게 싸워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날 이한열 열사 국민장이 재연되자 일각에선 ‘386이 민주화운동 연장선상에서 촛불민심에 편승하려고 한다.’는 우려가 들려왔다. 우 전 의원은 “무슨 소리냐. 그럴려고 했으면 진작에 우리가 집회를 주도했을 것”이라면서 “6월 광장에서 운동권과 비운동권을 가르는 발상 자체가 정파적이고 불순한 시각”이라고 되받아쳤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서울대 법대 새내기 때 겪은 6월 항쟁을 ‘신천지’로 기억했다.‘내 삶의 밑바닥 힘’이었다고 한다.386정치인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인정하면서도 “시대의 주역들이 늘 존중받는 것은 아니다.”면서 “타협하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고, 국민들에게 결실이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우리 세대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구혜영 한상우기자 koohy@seoul.co.kr
  • “53년만에 찾은 아버지… 묘소 지켜드릴래요”

    “53년만에 찾은 아버지… 묘소 지켜드릴래요”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데 53년이 걸렸습니다. 너무 늦게 찾아 오래도록 옆에서 모시겠습니다.” 현충일인 6일 부산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의 한 묘비 앞에 은발의 한 중년신사가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 캐나다인 레오 드메이(55). 그는 작은 목소리로 아버지 이름을 부르며 묘비를 어루만졌다.50여년간 잊고 지냈던 생부 ‘앙드레 아델라드 레짐발드’의 묘비다. ●태어난지 보름만에 의사 집안에 입양 레짐발드는 1952년 9월5일 한국전쟁에 참전한 지 두 달도 안 돼 전사했다. 당시 나이 20세. 이 와중에 드메이는 태어난 지 보름여 만에 의사 집안에 입양됐다. 그의 아버지는 파병 당시 어머니와 약혼한 상태였다. 드메이는 이후 양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고, 공직생활을 하며 가정도 꾸렸다. 하지만 생부에 관해서는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어 잊고 지냈다. 2년 전 어느 날, 캐나다에 살던 그에게 입양기관에서 전화가 왔다. 친어머니가 그를 찾고 있다는 전화였다. 친어머니를 만난 그는 아버지의 이름과 그가 한국전에서 전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生父와의 질긴 인연의 끈 드메이는 곧바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캐나다 국회의사당과 문서보관소를 뒤져 사망일, 군번 등 전사 내역을 찾아냈고 부산 유엔묘지에 아버지가 묻혀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같은 노력 끝에 그는 지난해 4월 캐나다 한국전 참전용사 재방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국을 찾았다. 처음 바라본 유엔기념공원의 아버지 영전에 장미꽃을 바쳤고, 판문점을 찾아서는 아버지가 전사한 ‘355고지’를 먼발치에서 망원경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드메이는 “자신과 아버지간에 보이지 않는 질긴 인연의 끈이 있었다.”며 아버지를 찾은 일화도 소개했다. 우연과 행운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던 중 캐나다의 한 선술집에서 ‘KOREAN WAR VETERANS(한국전 참전용사)’라는 글씨가 적힌 모자를 쓴 70대 노신사를 발견했다. 이끌리듯 그에게 다가갔고, 한국전 참전용사인지, 그렇다면 ‘앙드레 아델라드 레짐발드’란 사람을 아는지 물었다. 놀랍게도 그 노신사는 아버지의 부대 지휘관이었고 아버지 시신을 수습해 후방으로 옮겨 준 은인이었다. 그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유엔공원 옆에서 영어 가르치며 생활 그는 아버지를 지근에서 모시기로 하고 지난해 11월 캐나다 생활을 접고 한국에 들어왔다. 지금은 아버지가 모셔진 유엔공원 인근의 한 영어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생활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는 공원관리처 직원을 도와 영문번역과 교정일을 거들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 5∼6년간 부산에 머물며 묘소를 돌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토록 찾던 아버지를 늦게나마 지근에서 모셔야 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농담속에 담긴 성석제의 진심

    소설가 성석제가 산문집 ‘농담하는 카메라’(문학동네 펴냄)를 내놓았다. 먹을거리 보따리를 풀어놓은 ‘소풍’, 세상의 잡학을 한데 모은 ‘유쾌한 발견’에 이어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농담’이라는 주제로 특유의 구수하고 걸쭉한 입담을 늘어놓는다.“농담 유전자는 인류의 조상이 후손에게 물려준 생존에 불가결한 유전자이다. 농담 유전자는 개인에게는 건강을 선물하고 공동체의 활기를 높여준다. 물론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작가의 말’중에서) 입때껏 소설 속에는 녹여내지 못했던 ‘날것’ 농담의 세계로 이끄는 61편의 산문이 실린 이번 산문집은 시계와 막국수, 생맥주, 햅쌀밥 등 작가의 추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기억의 편린들을 하나하나 꺼내 펼쳐놓는다.“햅쌀밥은 묵은 쌀로 지은 밥과 달리 한 톨 한 톨 밥알이 살아 있다. 꺼내 보면 생김새를 분별할 수 있을 정도다. 후우 불고 다시 밥을 떠넣는다. 볼따구니가 저려온다. 다른 소화기관들이 ‘야 너만 맛보지 말고 어서 씹어, 빨리 넘기라고’ 아우성치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햅쌀밥을 먹는 저녁’중에서) 제주도와 설악산, 중국 저장(浙江)성 사오싱(紹興), 프랑스 파리, 미국 시애틀 등 국내외 곳곳 여행길의 농담도 곁들여진다. 늙은 아버지와 아들이 국립현충원 매점에 들러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의 이야기다.“컵라면 용기에는 커다란 글씨로 ‘희망소매가격’이 적혀 있었다. 희망소매가격은 ‘희망+소매+가격’을 합친 말이다. 희망을 소매한다니? 언제부터 희망이 도매금, 소매가격으로 팔 정도로 흔해졌는가? 그리고 그게 겨우 700원?” 주변생활 속에 카메라 렌즈를 돌려 ‘비경(秘境)’도 포착해낸다. 지하철 속 목소리 큰 사람들, 창구 손님보다 전화 손님을 배려하던 은행직원 등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과 사건을 통해 작가는 농담인 듯 무심한 가운데 깊이 있는 생각들을 전한다. 산문집의 아주 평범한 장면에 달아둔 기상천외한 캡션(사진설명)들도 감칠 맛 나는 읽을거리다. 디카의 사진들은 손쉽게 저장하고 가볍게 삭제할 수 있지만, 삶의 희로애락이 담긴 작가의 디카 속엔 지워지지 않는 ‘농담´들로 가득하다. 1만 2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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