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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날 3제] 최현배선생 손수 첨삭… 한글사랑 곳곳에

    [한글날 3제] 최현배선생 손수 첨삭… 한글사랑 곳곳에

    최현배, 이윤재 선생 등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말큰사전’ 편찬작업에 참여했던 학자들의 한글사랑 혼이 깃든 생생한 원고를 일반인들이 볼 수 있게 됐다. 국가기록원은 563돌 한글날을 맞아 9일부터 ‘조선말 큰사전’ 수고(手稿·손으로 쓴 원고)와 발간에 관한 각종 기록을 나라기록포털(http://contents.archives.go.kr)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제공한다고 8일 밝혔다. 조선말 큰사전은 지난 1929년 조선어학회 학자 108명이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면서 본격적인 발간 작업에 들어갔다. 앞서 조선총독부가 ‘조선어사전’을 발간하면서 국어의 뜻풀이를 일본어로 한 것에 슬픔과 분노를 느껴 우리 글을 우리글로 풀이한 사전을 만들기 위해 한데 뭉친 것이다. 조선어학회는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하는 등 열정적으로 편찬 작업을 진행했지만,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인해 중단됐다. 일제는 당시 조선어학회 학자 31명을 투옥하고, 이들이 손으로 썼던 조선말 큰사전 원고 2만 6000여장을 압수했다. 압수됐던 원고는 행방이 묘연했다가 광복 직후 서울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발견됐다. 이후 후학들이 이 원고를 바탕으로 편찬작업을 계속해 1957년 10월9일 6권이 완간됐다. 조선어학회 학자들이 당초 썼던 원고는 총 17권 분량(각각 200~400쪽)이었지만, 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6권으로 압축됐다. 국가기록원은 이중 25장의 원고를 온라인을 통해 제공할 예정이며, 나머지 부분을 열람하고 싶은 사람은 독립기념관 등에 문의하면 된다. 공개하는 원고에는 당시 학자들의 한글에 대한 애정이 담긴 손글씨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곳곳에서 첨삭을 한 흔적 등을 엿볼 수 있다. 또 순수 우리말에 대한 자세한 연구 흔적도 살펴볼 수 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조선말 큰사전 수고는 일제강점기 때 편찬을 시도한 최초의 한글사전의 원고인 만큼 희귀성 측면에서 가치가 높다.”며 “대중 공개는 한글의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서울광장] 다시 펄럭이는 새마을 깃발/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다시 펄럭이는 새마을 깃발/육철수 논설위원

    일전에 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을 보고 한바탕 웃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고향 포항에 갔다가 ‘아이스케키 통’을 어깨에 메고 있는 장면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지체가 하늘만큼 높아졌는데도 아이스케키 통을 멘 자세가 어쩌면 그리도 잘 어울리던지…. 그래서 그만 웃음보를 터뜨리는 ‘결례’를 저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컥하면서 뭐가 올라왔다. 대통령의 감회어린 표정 뒤에 전쟁통에 유년·청년기를 보내면서 먹고살려고 발버둥쳤던 모습이 어른거려서였다. 가난했던 시절을 잊지 말라며 고향 주민들이 마련했다는 아이스케키 통은, 1970년대 온 나라가 새마을운동 열풍에 휩싸였던 때로 기억을 자연스레 옮겨 놓았다. 대통령과 시대의 역경을 함께한 또래들이 청·장년이 되어 새마을운동 현장의 중추 역할을 한 것도 가난을 어느 세대보다 뼛속 깊이 체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새마을운동 초기에 유년기를 보낸 나도 적잖은 추억을 갖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작사·작곡했다는 ‘새마을 노래’를 입이 아프게 부르고 귀가 닳도록 들었다. 노래가 짧기나 한가. 4절까지 밤새 외워 다음날 선생님 앞에서 ‘씩씩하고 명랑하게’ 불러대느라 고생깨나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당시 ‘새벽종이 울렸네~’는 기상나팔이었다. 매일매일 한 집에 한 명씩 ‘작업병’을 불러내 삽이나 곡괭이, 싸리빗자루를 들고 나가 동네 환경작업에 동원됐다. 철없던 나이라 그저 동네 잡일을 하는 게 고역스러웠을 뿐, 그게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엄청난 환경개선·정신계발 운동이란 걸 알 턱이 있었겠나. 새마을운동이 요즘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나라 안에서 재조명이 활발하고, 나라 밖에서는 그 인기가 폭발적이란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는 아예 한글로 ‘새마을’ 글씨가 뚜렷이 새겨진 초록색 깃발을 마을 한가운데 신주처럼 모셔놓고 벤치마킹이 한창이다. 군사독재나 유신의 잔재로 여겨 내팽쳐 놓은 사이에 새마을운동은 개발도상국에서 환경개선과 정신개조, 빈곤퇴치 캠페인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를 숨막히게 이루며 달려오는 동안 우리는 정말 소중한 것 하나를 잃을 뻔했다. 새마을운동의 뿌리는 우리의 미풍양속인 ‘향약’이나 ‘계’에 있다. 전통적 공동체 정신을 박 전 대통령이 국민정신으로 계승·승화시킨 것이다. 개발과 압축성장 시대에 벌써 지금의 세계적 화두가 된 녹색환경시대까지 내다본 국가지도자의 안목이 참 놀랍다. 며칠전 박 전 대통령의 고향 경북 구미에서 ‘대한민국 새마을 박람회’가 열린 것은 그래서 의미가 남다르다. 경상북도는 박람회를 계기로 새마을운동을 지구촌 빈곤퇴치에 불을 지피는 명품 브랜드로 육성하겠단다. 때마침 농촌진흥청도 ‘푸른농촌 희망찾기’ 운동을 시작한다. 국민의식의 선진화를 최종 목표로 한 제2녹색 새마을운동이란다. 21세기의 농촌은 새로운 희망이다. 전원생활과 제2인생을 꿈꾸고 귀농하는 60~70대 ‘아이스케키 세대’와 젊은 도시 직장인들, 현지 농업인 등이 새로 공동체를 꾸려 살아가야 할 곳이다. 그래서 시대는 염치없이 또 아이스케키 세대의 지혜와 경험과 땀을 요구한다. 여기에 젊은 세대의 창의력,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체계적 지원을 잘만 보태면 새마을운동을 미래의 녹색환경운동으로 또 한번 세계의 자랑거리로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특별한 잔치’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특별한 잔치’

    25일 경기 일산시 흰돌마을 4단지 안 광장.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인 이곳에서 추석을 일주일여 앞두고 특별한 잔치가 열렸다. 4단지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거주민 할머니 3명의 팔순잔치를 벌인 것. 잔칫상에 놓인 색색가지 음식과 함께 재봉틀, 결혼 청첩장 등 할머니들의 손때묻은 삶이 담긴 각종 전시물도 눈에 띄었다. 잔치의 주인공은 김수영(89), 강신수(83), 현경희(83) 할머니. 이들은 분홍색, 옥색 옷이 어우러진 한복으로 갈아입고 모처럼 화장도 곱게 한 채 연신 웃음꽃을 피웠다. 단지 안에 있는 사회복지관이 지난 7월부터 보수공사에 들어가 모일 기회가 없었던 주민들은 처음엔 서먹하게 다가왔지만 이내 잔치떡을 나눠먹으며 한마음이 됐다. 삼삼오오 모여든 4단지 주민들은 강 할머니가 60여년간 보관해온 재봉틀과 현 할머니가 50년 동안 아껴온 작은 장롱 등을 신기한 듯 만져봤다. 김 할머니가 내놓은 남편과의 연애편지, ‘소화(小和) 16년 음력 7월26일’이라는 글씨가 찍힌 결혼 청첩장, 어머니 유언장이 담긴 액자는 평생의 이력이었다. 주민 강은정(52·여)씨는 “70년된 청첩장이면 내 나이보다 많다.”면서 “그동안 자주 보지 못했던 이웃들과 이렇게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좋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사회적 기업인 공공미술 프리즘이 기획하고 일산 거주 어린이 기자단 4명이 도왔다. 어린이 기자단은 지난달부터 할머니들 댁을 방문해 인터뷰를 한 뒤 80여년의 삶을 기록하고 전시될 물품도 수집했다. 내년이면 아흔이 되는 김 할머니는 “흰돌마을이 들어선 1995년 입주했으니 ‘403동 1009호 할머니는 터줏대감’이라는 소릴 듣는다.”고 한다. 402동 1403호 주민인 강 할머니는 “동생 셋을 공부시키느라 17살부터 바느질을 시작해 76살까지 계속했다.”면서 “결혼도 안하고 혈혈단신인 내게 재봉틀은 남편이고 자식이다.”고 돌아봤다. 현 할머니는 “평소 아이들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찾아와 말벗이 돼 줘서 고마웠다.”고 전했다. 어린이 기자단의 변진휘(13) 학생은 직접 낭독한 축하편지를 통해 “이번 기회에 할머니들의 앞서간 삶을 느꼈다.”면서 “앞으로 할머니들을 자주 찾아뵙고 손자처럼 대해 드려야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길이 3.8m ‘세계에서 가장 큰 붓’ 공개

    좋은 작품을 만드려면 이 정도 ‘도구’는 있어야… 중국의 한 남성이 세계에서 가장 큰 붓으로 붓글씨 쓰기에 도전해 화제다. 쓰촨성 난충시에 사는 허원쥔은 대형 붓으로 서예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다. 그는 최근 길이 3.8m, 무게 52㎏의 붓으로 광장을 가득 메운 거대 화선지에 글씨를 쓰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몇 개월에 걸쳐 손수 제작한 이 붓은 말꼬리 수 백개를 합친 것으로, 먹물 45㎏까지 흡수할 수 있다. 그는 최근 세계 기네스 협회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붓’의 타이틀을 거머쥐는데 성공했으며, 중국 각계에서 여는 행사에 초청돼 일약 ‘서예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세계 기록을 가지게 돼 매우 기쁘다.”면서 “나는 매 년 더 큰 붓을 만드는데 열중한다. 붓을 만든 뒤에는 이를 이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어떤 때에는 1년 이상 걸릴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허씨는 올 1월에도 난충시 광장에서 대형 붓으로 서예를 하는 퍼포먼스를 펼친 바 있다. 대형 붓으로 소의 해를 뜻하는 ‘우’(牛)자를 써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그는 2010년에도 신년기념 서예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경북 봉화 청량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경북 봉화 청량산

    청량산(870m)은 낙타의 등처럼 생긴 12봉우리(육육봉)의 웅장한 기상이 일품인 산이다. 중부 내륙의 첩첩산중에서 청량산의 아름다움을 알아본 사람은 퇴계 이황이었다. 퇴계는 청량산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싫었다.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흰 기러기뿐. 기러기가 날 속이랴 못 믿을 건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주자(魚舟子)가 알까 하노라.”라고 읊으며 청량산에 대한 짝사랑을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아예 청량산인으로 고쳐 불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퇴계 덕분에 청량산은 널리 알려져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경북 내륙의 오지 중의 오지였던 봉화가 요즘 뜨고 있다. 예전에는 수도권에서 5∼6시간 걸렸지만 지금은 길이 좋아져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접근성이 좋아진 덕분에 청정한 오지의 자연이 관광자원으로 거듭난 것이다. 매년 열리는 은어축제와 송어축제, 그리고 올해 초에 상영해 큰 인기를 누린 영화 ‘워낭소리’ 촬영지, 또한 5월에 개통한 국내 최대 규모의 청량산 하늘다리를 찾는 인파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청량산은 전체적으로 험하지만 비탈과 봉우리 사이를 부드럽게 타고 도는 산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산행 코스는 입석에서 시작해 응진전, 어풍대, 김생굴을 차례로 거쳐 자소봉(840m)에 올랐다가 능선을 타고 하늘다리를 찍고 청량사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거리는 약 5㎞, 4시간쯤 걸린다. 청량산 입구에서 산으로 들어가려면 낙동강을 건너야 한다. 옛 선비들은 이곳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배 안에 올라 갓끈을 풀어 땀을 닦던 퇴계는 강물에 흔들리며 얼마나 설레었을까. 그러나 지금은 차를 타고 널찍한 다리를 몇 초 만에 건너 버린다. 참으로 분위기 없는 입산이다. 다리 건너 2㎞쯤 떨어진 입석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산길 초반엔 급경사… 10분쯤 지나면 순해져 산길은 초반부터 급경사가 이어지지만 10분쯤 오르면 순해지면서 금탑봉 아래 다소곳이 들어선 응진전이 눈에 들어온다. 응진전 뒤로 보이는 큰 암봉 위에 작은 바위가 올려져 있는데, 이를 동풍석(動風石)이라고 한다. 저절로 움직인다는 전설의 바위다. 예전에 어떤 스님이 이곳에 절을 지으려 했다. 그런데 암봉 위에 바위가 있는 걸 보고 스님이 올라가 떨어뜨렸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그 바위가 도로 올려져 있어 절을 짓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응진전 안에는 특이하게도 16나한상과 함께 공민왕의 부인인 노국공주가 모셔져 있다. 공민왕과 함께 홍건적의 침입 때 피란 온 노국공주가 손수 16나한을 깎아 응진전에 모시고 홍건적 퇴치와 국가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응진전을 지나 모퉁이를 돌면 청량산 최고의 전망대인 어풍대가 나온다. 어풍대는 천 길 벼랑으로 철 난간 쪽으로 가까이 가면 청량산 육육봉이 연꽃처럼 펼쳐지고 그 안 꽃술자리에 청량사가 포근히 안겨 있다. 과연 청량사의 자리는 청량산의 기운이 모이는 기막힌 명당이다. 어풍대를 지나면 신라 최치원이 마시고 머리가 좋아졌다는 총명수, 명필로 유명한 김생이 은거하며 글씨를 썼다는 김생굴을 차례로 지난다. 이어 길은 어풍대에서 보았던 암봉들 사이를 이리저리 부드럽게 휘돌아가며 자소봉에 이르는데, 그 오묘한 조화에 힘든 줄 모른다. 코가 닿을 듯한 급경사 철계단을 오르면 자소봉 정상이다. ●북쪽 멀리 백두대간 소백산 구간이 아스라이… 스님들은 보살봉, 주민들은 탕건봉으로 부르는 자소봉은 청량산의 실질적인 정상이다. 청량산 최고봉인 장인봉보다 40m쯤 낮지만 육육봉의 중심축을 이루며 그 생김새가 수려하기 때문이다. 북쪽 멀리 웅장하게 흘러가는 백두대간 소백산 구간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자소봉을 내려오면 본격적인 능선길이다. 탁필봉과 연적봉을 우회해 급경사 철계단을 내려오면 뒷실고개 삼거리. 여기서 작은 고개를 넘으면 웅장한 하늘다리가 버티고 있다.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이 다리의 고도는 약 800m, 길이 90m, 지상높이 70m로 국내 최대 규모의 현수교다. 다리로 들어서니 워낙 튼튼하게 지어 흔들림이 거의 없다. 가운데 멈춰서니 왼쪽 병풍바위 뒤로 유장하게 흘러가는 낙동강이 장관이다. 하산은 왔던 길을 되짚어 뒷실고개에서 청량사로 내려가는 것이 정석이다. 뒷실고개에서 급경사 계단 800m를 쉬엄쉬엄 내려오면 청량사다. 주지인 지현스님과 신도들은 험한 산비탈에 옹색하게 들어앉은 청량사를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가꿔 놓았다. 길에는 시멘트 대신 침목을 깔았고, 정갈한 장독대, 기왓장으로 만든 수로, 아담한 찻집 등의 모습이 정겹다. 공민왕의 친필이라 알려진 유리보전 건물 앞 의자에 앉으니 기다렸다는 듯, 가을바람이 찾아와 처마 밑의 풍경을 건드린다. 저물어 가는 산사에서 기분 좋게 산행을 마무리한다. 글ㆍ사진 mtswamp@naver.com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으로 나와 영주를 거쳐 봉화에 이른다. 서울에서 3시간쯤 걸린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봉화행 버스가 07:40, 09:40, 11:50, 13:50, 16:10, 18:10에 있다. 소요시간 2시간40분. 봉화에서 청량산행 버스는 06:20, 09:20, 13:30, 17:40. 안동에서도 청량산행 버스가 05:50 08:50 11:50 14:50 17:50에 다닌다. 봉화는 질 좋은 약초를 먹고 자란 한우가 유명하다. 한약우프라자(054-674-3400)는 1++ 등심 200g이 1만 4000원으로 저렴하다. 청량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 (054)673-6194.
  • 양안 핑탄다오 공동개발

    │베이징 박홍환특파원│타이완과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중국 동남부 푸젠(福建)성의 섬 핑탄다오(平潭島·일명 하이탄다오)가 타이완에 완전히 개방된다. 푸젠성 정부는 핑탄다오를 ‘양안 공동건설·공동운영 실험특구’로 중점 개발, 궁극적으로 ‘자유항’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홍콩 문회보(文匯報)가 21일 보도했다. 푸젠성 정부는 이달 이 같은 계획을 공식발표할 방침이다. 면적 271㎢로 중국에서 다섯번째로 큰 섬인 핑탄다오는 1949년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 정부를 타이완으로 몰아낸 이후 타이완 측의 반격을 막는 최전방 기지 역할을 해왔다. 지금도 섬 곳곳에는 지하 참호와 인민해방군 주둔병들이 새겨 놓은 ‘조국 통일, 병사의 소망’ 등의 글씨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핑탄다오의 ‘변신’은 1978년 개혁·개방과 함께 시작됐다.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타이완 북부 신주(新竹)까지의 거리는 126㎞. 푸젠성 성도 푸저우(福州)에서 핑탄다오까지는 승용차와 배를 번갈아 이용해 3시간 가까이 걸리며 핑탄다오에서 신주까지도 배로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2005년에는 핑탄다오에서 신주까지 해저터널을 뚫는 방안도 검토했다. 핑탄다오에 대한 본격적인 개발은 해안선 전체를 ‘해협서안 경제개발구’로 개발하겠다는 푸젠성 정부의 요청을 지난 5월 중국 국무원이 정식 승인하면서 비롯됐다. 푸젠성은 타이완 자본과 기업을 끌어들여 핑탄다오를 공동개발, 중국 내에서 타이완에 대한 최대의 개방 폭을 갖춘 지역으로 키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stinger@seoul.co.kr
  • 거짓말인지 알고싶다면 필적을 보라

    거짓말인지 알고싶다면 필적을 보라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처럼, 상대방의 진심을 알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면, 이스라엘 과학자들이 추천하는 이 방법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의 한 연구팀은 사람의 필적으로 거짓말을 구별할 수 있으며, 이 같은 방법이 특별한 조건의 신용대출을 받거나 보험사기 등의 사례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연구팀은 “사람들은 거짓말 할 때 필적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뇌가 사실을 조작하고 거짓말을 하려고 무던히 애쓰는 사이, 평소 글씨를 쓰는 과정을 방해하고 간섭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피 실험자 34명에게 두 문단씩을 쓰게 했다. 첫 번째 문단에는 쓸 때에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쓰게 하고, 두 번째 문단은 거짓으로 글을 쓰도록 주문했다. 피 실험자들은 글씨를 쓸 때 손에 들어가는 힘을 측정할 수 있는 전자 팬을 이용했으며, 연구팀은 컴퓨터를 이용해 글씨의 스타일과 쓰는 순간의 압력을 기록했다. 그 결과 피 실험자들은 거짓말로 글을 쓸 때 글씨를 더 꾹꾹 눌러썼으며, 글씨와 내용이 늘어지는 경향을 보인 반면,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쓴 글은 간결하면서도 글씨가 반듯했다. 연구팀은 “글로 거짓을 말할 때에는 진실을 말할 때에 비해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면서 “여러 분야에서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사진=데일리메일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장애가 지적 호기심을 이길 순 없죠”

    “장애가 지적 호기심을 이길 순 없죠”

    “장애가 열정과 지적 호기심을 이길 순 없죠.” 중증 시각장애인이 국내 최초로 국가공인 한자 급수자격 최고 단계를 통과했다. 주인공은 이윤동(52·울산 신정1동)씨. 이씨는 지난 22일 실시된 제44회 국가공인 대한민국 한자급수 자격검정시험 사범급에서 100점 만점(합격기준 80점)에 83.5점을 받아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 대학 한문교육학과 석사학위 수준 사범급은 한자 5000자를 자유롭게 쓰고 대학, 논어, 고문진보(중국의 시문선집) 등 고전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며 평균 합격률이 20% 정도다. 대학 한문교육학과 석사학위 정도의 수준이다. 이씨가 ‘한자 정복’에 나선 데는 아내 박순옥(53)씨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지역사회 아이들을 상대로 한자를 가르치는 박씨는 남편이 한번 들은 한문 구절을 쉽게 따라 읽는 것을 보고 자격증 도전을 권했다. 이씨는 컴퓨터 모니터에서 한자 교재를 확대해 읽는 방법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박씨는 작은 글씨로 된 종이교재 내용을 읽어주는 등 남편의 학습을 도왔다. 2004년 한자 3500자를 다루는 한자급수 검정 1급 시험에 합격한 그는 6년을 더 공부해 사범급 자격증까지 얻게 됐다. 시험을 주최한 대한검정회는 이씨를 고려해 글자 크기를 40포인트(일반인용 시험지의 16배)로 확대한 특수 문제지를 제공하고 고배율 돋보기를 쓸 수 있도록 허용했다. 장애를 뛰어넘기 위한 이씨의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탓에 제대로 된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이씨는 독학으로 울산대에 입학해 2006년 행정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에는 시각장애인으로는 국내 두 번째로 100㎞ 구간의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했다. 1998년부터 7년간 울산시 장애인협회장을 맡았던 그는 2006년 정부로부터 ‘장애 극복상’을 수상한 뒤 포상금 1000만원 중 절반을 시각장애인 치료지원비로 써달라고 선뜻 내놓기도 했다. ● “서당 열어 이웃과 지식 나누고 싶어” 이씨는 자신의 선행에 대해 ‘기소불욕(己所不欲)이면 물시어인(勿施於人)’(스스로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뜻)이라는 논어구절을 들며 “의미있는 일은 먼저 나서서 한다는 좌우명을 실천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앞으로 서당을 열어 자신이 익힌 지식을 이웃과 나누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국산원조 ‘中 짝퉁’에 울다

    국산원조 ‘中 짝퉁’에 울다

    중국산 ‘짝퉁’이 활개치는 바람에 국산 원조 제품들이 설 땅을 잃고 있다. 짝퉁이 중국내 유통뿐만 아니라 제3국 수출까지 이뤄지고 있어 국가 차원의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15일 서울 염곡동 코트라 본사에서 진행된 중국 모조품 설명회. 인라인 보드의 하나인 ‘S보드’를 생산하는 슬로비의 강신기 사장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강 사장은 “짝퉁 업체를 찾아 아예 중국 판매권을 넘겨주고 더 이상 짝퉁 제품을 생산하지 않기로 합의까지 했지만 이 업체는 중국내 월마트에 진출하자 안면을 몰수했다.”면서 원조가 짝퉁에 밀리는 비참한 현실을 소개했다. 이어 “2006년 100억원에 이르렀던 매출이 지금은 5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면서 “미국 로열티로 버티고 있지만 중국산 짝퉁 탓에 제품 만들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슬로비는 지난 3년간 소송비로 50억원을 썼다. 50여건의 특허 소송에서 모두 이겼지만 아직까지 피해 배상액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한국산 제품을 베낀 ‘중국산 짝퉁(산짜이)’이 원조 제품을 위협할 정도로 진화하고 있다. 중국 현지엔 이 같은 베끼기가 하나의 혁신 마인드로 확대돼 ‘산짜이 현상’으로 자리잡을 정도다. 박기식 코트라 전략사업본부장은 “상표나 디자인 등을 단순히 모방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더 진짜 같은 가짜 상품이 나오고 있다.”면서 “이는 산업 제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 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전시된 중국산 짝퉁 제품은 다양했다. 의류와 신발, 맥주를 비롯해 LG전자의 휴대전화와 에어컨, 삼성전자 휴대전화, 도루코 면도기와 칼, 락앤락 밀폐용기, 정관장 인삼 등 320점의 짝퉁 제품이 정품과 함께 비교 전시됐다. 영문 로고를 비슷하게 쓴 단순한 짝퉁 제품부터 정품과 자세히 비교하지 않으면 짝퉁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제품들도 적지 않았다. 도루코 면도기의 경우 관계자가 아니면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도루코의 유현상 사원은 “포장 마감의 질이 떨어지고, 상표 글씨체가 다른 것 빼고는 모두 같다.”면서 “짝퉁 제품으로 연간 50억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짝퉁 정관장도 정교했다. 홀로그램 스티커가 부착되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 정품과의 차이가 없었다. 송일영 한국인삼공사 대리는 “중화권내 정품시장 규모가 300억원 정도라면 짝퉁은 56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문제는 짝퉁이 중화권뿐 아니라 미국과 호주 등으로 수출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산짜이’라는 용어가 가장 먼저 붙은 짝퉁 휴대전화는 브랜드 영문 이름을 살짝 비튼 것부터 지적재산권 침해를 거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제품까지 소개됐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현장 행정] 중구 외국인 한국어강좌 “한글 알고나니 한국이 보여요”

    [현장 행정] 중구 외국인 한국어강좌 “한글 알고나니 한국이 보여요”

    “나마스테(안녕하세요)~!” 지난 8일 오전 중구 인제대 한국어문화교육원. 네팔어로 “나마스테!”라며 인사를 주고받은 10여명이 이내 한국어강좌에 빠져들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엮어 글씨를 비뚤비뚤 쓰더니 다시 글자를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강사 이슬비(25)씨는 “네팔, 베트남, 태국 사람들로 이뤄진 중급반을 가르치는데 대부분이 네팔 출신”이라며 “적극적으로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아가려는 태도가 무척 인상적이다.”라고 말했다. 중구가 인제대 한국어문화교육원과 손잡고 시작한 한국어강좌가 호평받고 있다. 15일 중구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처음 시작한 1기 한국어강좌가 8일 마지막 수업을 열고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수강생들은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무척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입을 모았다. 중구는 22일 1기 수강생을 대상으로 8주 과정의 2차 심화강좌를 시작한다. ●‘안녕하세요!’도 못했던 사람들 “저는 빔센이고, 네팔 사람입니다. 8주 간 공부했어요. 한국어 말하기와 쓰기는 정말 어려웠어요. 공부해서 지금은 많이 알아요. 요즘에는 한국 친구도 많고 한국어도 많이 알아요. 다른 네팔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싶어요.” 지난 8일 백병원 별관 인당홀에서 열린 수료식에선 네팔인 빔센 카바(21)가 자신이 쓴 편지를 낭독했다. 33명의 수료생 중 일부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네팔 대사관 요리사로 근무하는 카바의 편지가 왜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을까. 인제대 한국어 강사인 조수현(42)씨는 “그들은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수년간 살면서도 그들만의 영역을 형성해 살아왔다.”며 “‘안녕하세요’라는 말조차 모른 채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해온 이유는 바빠서라기보다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였다.”고 전했다. 이들은 흔한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이름도 모르고 아는 한국 노래조차 한 곡 없는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조씨는 그들과의 첫 만남 이후 강의계획서와 교재를 다시 만들어야 했다.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거나 취업·진학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과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여느 수업과 다름없이 자음과 모음을 기초로 시작한 수업에는 틈틈이 사물놀이 등 문화체험이 곁들여졌다.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학습자들의 표정은 조금씩 밝아지더니 학습태도가 능동적으로 변했다. 조씨는 “고립된 한국생활의 원인인 언어의 장벽을 조금씩 넘어서는 그들에게 아침 강의시간은 희망이었다.”며 “외국인들이 더 이상 이방인으로 살아가지 않기 위해선 다양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역단체와 기초단체의 합작품 이번 프로그램은 서울시가 신소외계층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공모사업에서 시작됐다. 인제대 한국어문화교육원과 중구는 공모사업에 ‘실용 한국어 및 문화교육’을 제출해 당선됐다. 교육원 측은 지난해 11월 개설한 강좌의 내용을 보강해 커리큘럼을 촘촘하게 다시 짰다. 비용은 서울시와 중구가 반반씩 부담한다. 정동일 구청장은 “이번 교육이 외국인 근로자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유대감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시간 지나면 글씨가 절로 지워져?

    시간 지나면 글씨가 절로 지워져?

    보이지 않는 잉크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예수와 동시대를 호흡했던 유대인 저술가 ‘노인 플리니(Pliny the Elder)’는 줄기나 잎에 수분이 많이 함유된 다육식물에서 추출한 잉크로 호기심 많은 눈들에 잘 띄지 않는 글을 썼다.요즘 학교 다니는 아이들도 레몬주스를 이용해 비밀스런 메시지를 남기면 촛불에 비추면 글씨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지난해 이슬람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영국 지부를 조직한 혐의로 기소된 랑지에브 아흐메드는 보이지 않는 잉크로 적힌 협력자들의 전화와 주소책을 갖고 있었다. 앞선 예들은 잘 보이지 않다가 특정한 방법을 동원하면 글씨가 읽히는 공통점이 있다.그러면 반대 경우는? 예를 들어 몇 시간이나 몇 달 동안 사람들로 하여금 읽을 수 있게 했다가 나중에 글씨가 스스로 희미해져 사라지게 되면 어떨까.마찬가지로 비밀스럽게 주고받고 싶은 사연을 사람들은 간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에 있는 노스웨스턴 대학의 바르토츠 그리지보프스키 교수가 거의 그런 류의 잉크,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류의 플래스틱 재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이코노미스트 닷컴이 최근 보도했다.  그리지보프스키 교수팀은 흔히 방풍유리로 불리는 퍼스펙스(Perspex)의 원료인 메타크릴산 메틸(Methyl Methacrylate) 젤에 5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m의 10억분의1) 크기의 금과 은 입자를 주입했다.입자에는 빛에 민감한 아조벤젠(니트로벤젠을 염기성 환원제로 환원한 등적색(橙赤色)의 결정 물)을 코팅시켰다.  자외선에 노출되자 아조벤젠 분자는 재배열됐고 새 이성체(isome)들은 원래 것보다 훨씬 더 전기적 극성을 띠게 돼 다른 분자들을 끌어들여 덩이를 이루게 된다.입자 크기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게 된다.금빛 입자는 붉게 비치고 은빛 입자는 노란색으로 비쳤는데 입자가 덩이로 모이게 되면 금빛 입자는 푸른색으로,은빛 입자는 보라색으로 바뀐다.  그 결과 이 종이 위에 자외선 빛이 발산되는 펜을 사용해 글씨를 쓸 수 있고 같은 빛이 쪼여지는 특정 패턴의 마스크를 이용하게 되면 프린트가 가능하게 된다.이성체 배열은 1000분의 1초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보통 쓰는 속도로 글씨를 쓸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성체 배열이 흐트러지거나 강한 빛이나 열에 쪼이게 되면 글씨가 스스로 사라지게 된다.이 과정은 몇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몇 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사실 그리지보프스키 교수가 절로 지워지는 종이를 처음 개발한 것은 아니다.지난 2006년 제록스사는 16~24시간 뒤에 지워지는 빛에 민감한 종이를 시연한 바 있다.그러나 그리지보프스키 교수팀의 방식은 훨씬 활용 가능성이 높다.글씨는 훨씬 더 오래 가고 질적으로 떨어지지 않은 가운데 수백번이라도 재활용할 수 있다.  그는 다른 크기의 입자를 선택하면 훨씬 다양한 색깔의 글씨를 쓸 수 있다며 다른 재질로 만들어진 입자를 더 많이 개발함으로써 글씨 색깔을 다양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장승을 찾아서/박상재

    [엄마와 읽는 동화] 장승을 찾아서/박상재

    승희는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장승을 보면 울음보를 터뜨리기 일쑤였습니다. 4학년 때까지만 해도 장승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5학년이 되면서 판소리와 사물놀이를 알게 되고, 탈춤도 배우고, 우리 문화재에 대해 배우면서 장승에 대해서도 친근하게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승희 외할아버지는 속리산이 가까운 외딴 산골에서 장승을 만들고 있습니다. 벌써 30년 가까이 장승과 더불어 살아온 장승장이입니다. 외할아버지는 그곳에 장승을 100개도 넘게 만들어 장승공원을 꾸며 놓았습니다. 장승공원에 가면 갖가지 장승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도깨비처럼 험상궂게 생긴 장승도 있지만 저절로 웃음이 나올 만큼 재미있게 생긴 장승들도 많습니다. 우락부락한 인상이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장승이 있는가 하면 시골 할아버지처럼 순하고 어눌해 보이는 장승도 있습니다. 이름도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진서대장군, 북장군, 당장군 등 여러 가지로 불리지만 승희에게는 어느 것 하나 정이 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승희 외할아버지에게는 장승이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친구입니다. 산길을 가다 폭풍우에 쓰러진 나무나 병충해를 이기지 못하고 죽은 나무들을 보면 할아버지의 눈에 생기가 돕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도 있는 게야. 내가 그것을 증명해주지.” 할아버지는 죽은 나무들을 알맞게 잘라 보물처럼 조심조심 옮겨옵니다. 그러고는 톱과 대패, 망치와 끌을 들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합니다. 쓱싹쓱싹 대패질 소리가 나고, 뚝딱뚝딱 망치 소리가 들리고, 쩌억쩌억 끌 소리가 들리면 죽은 고목나무는 살아 있는 장승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엄마는 승희를 데리고 국립 민속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그곳 마당에는 꼴도 보기 싫은 장승 부부가 우두커니 서서 헤벌쭉 웃고 있었습니다. “승희야, 저 장승할아버지 앞에 가서 서 봐. 사진 한 장 찍어 줄게.” “싫어. 내가 사진 찍기 싫어하는 것 엄마도 알잖아요.” 승희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자, 엄마는 승희에게 사진기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그럼 엄마라도 한 장 찍어주렴!” 엄마의 두 눈에는 늦가을 바람결 같은 쓸쓸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승희는 높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장승과 함께 서 있는 엄마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아주었습니다. 엄마가 승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승희야, 지금도 외할아버지가 싫니?” 승희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승희가 입을 열었습니다. “난 그냥 외할아버지는 좋은데, 장승 만드는 외할아버지는 싫었어. 외할아버지는 산신령이야. 긴 머리채를 묶은 채 한복을 입고 장승을 만드는 할아버지는 더욱 싫어.” 승희의 마음이 홀가분해집니다. 언젠가 꼭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 놓고 나니 마음이 개운해졌습니다. 화를 낼 줄 알았던 엄마의 얼굴에 가을 햇살 같은 웃음이 흘렀습니다. “그래, 나도 처음엔 그런 외할아버지가 무척 싫었단다. 망나니처럼 어깨까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질끈 동여매고 나무망치와 끌로 장승 깎는 일에만 골몰하는 할아버지가 왜 그리 싫었는지 몰라. 외할아버지는 장승을 만들 때면 늘 목욕을 한 후 한복을 차려입고 일을 했지. 머리라도 짧게 깎았더라면 땀도 덜 흘렸을 텐데…. 비오듯 흘려대던 그 땀 냄새도 무척이나 싫었어.”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그리운지 눈시울이 젖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 승희는 엄마와 함께 광화문 광장을 찾았습니다. 새로 꾸민 광장을 구경하기 위해서입니다. “광장이 뭔가 좀 허전하지 않니? 그곳에 장승을 세워 놓으면 어떨까?” 엄마는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며 말했습니다. “엄만, 누가 외할아버지 딸 아니랄까봐 장승 타령이에요?” 승희가 밉지 않게 눈을 흘겼습니다. 동작역을 지나 이수역에서 다시 7호선 열차로 갈아탔습니다. 출입문 위에 붙어 있는 열차 노선안내도를 보던 엄마가 말했습니다. “승희야, 오랜만에 엄마가 살던 골목에 한 번 가볼까?” “엄마 마음대로 해.” 승희는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번 정차할 역은 장승배기, 장승배기역입니다.” “승희야, 이번 역에서 내리자.” 안내방송이 흘러 나오자 엄마는 승희의 손을 잡고 내릴 준비를 했습니다. “엄마 살던 곳이 장승배기였어?” “그래, 엄마 어렸을 땐 동네에 커다란 장승이 우뚝 서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구나.” 엄마는 약간 상기된 얼굴이었습니다. 개찰구를 빠져 나온 엄마는 어느 쪽으로 나갈까 망설이다가 역무원에게 물었습니다. “어디로 나가면 장승을 볼 수 있을까요?” 역무원은 승희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고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오른 쪽 6번 출구로 나가세요.” “예, 고맙습니다.” 엄마의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오니 가장 먼저 눈부신 하늘이 반겨주었습니다. 승희 엄마는 두리번거리며 장승을 찾았습니다. 승희도 뚤레뚤레 주변을 둘러보며 장승을 찾았습니다. “장승이 어디 있어? 그 아저씨가 잘 못 알려줬나?” 엄마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 때 승희의 눈에 장승 한 쌍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엄마 저기 있어. 도서관 입구에 서 있잖아.” 먼 발치 도서관 입구에 농구 선수만큼 큰 장승 부부가 헤벌쭉 있었습니다. “애걔, 너무 작다. 기왕에 세워 놓으려면 좀 더 큰 장승을 세워놓지 않고….” 승희는 엄마의 얼굴에서 승희가 전교부회장 선거에서 두 표차로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보였던 섭섭한 표정을 읽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가까이에 가서 한번 보고가요, 엄마.” 승희가 먼저 엄마의 손을 끌었습니다. “천하 대장군, 지하 여장군.” 승희가 장승에 쓰여 있는 한문 글씨를 읽었습니다. “우리 승희 한문 실력이 보통이 아니구나!” “장승배기 이름에 걸맞은 좀더 우람한 장승을 세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다시 한 번 아쉬움을 토해냈습니다. 승희는 장승 앞에 서 있는 안내문을 읽어보았습니다. -장승배기는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참배하러 가면서 쉬었던 곳이다. 당시 이곳은 인가도 없고 행인마저 적었는데 정조가 장승을 만들어 세우라고 지시한 이후 장승배기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덩치 큰 장승들이 제법 많이 서 있었는데, 이젠 장승배기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되었구나.” 엄마의 목소리는 그리움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없어진 거야?” “도로를 넓힌다, 지하철 공사를 한다, 재개발한다 하면서 마구 없애버린 거지. 우상숭배라는 명목으로 뽑아버린 경우도 있고….” “엄마, 진짜 장승을 보려면 외할아버지를 찾아가면 되잖아요.” “그래, 왜 내가 그 생각을 못했지?” 엄마의 눈빛이 능소화꽃처럼 환해졌습니다. “엄마, 그럼 이번 토요휴업일에 꼭 다녀와요.” “장승이라면 무섭다고 까무라치던 네가 웬일이니?” “엄마, 장승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이고 서민적인 민속문화재래요, 학교에서 선생님께 배웠어요.” 승희의 목소리에서 외할아버지의 팔뚝 같은 힘이 묻어났습니다. 승희는 토요휴업일을 맞아 엄마와 함께 속리산 부근에 있는 장승공원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승희 외할아버지가 30여년 동안 피땀을 흘리며 가꿔 놓은 곳입니다. 공원으로 오르는 길가에는 벌개미취, 구절초, 쑥부쟁이 같은 초가을 들꽃들이 승희네를 반겨 주었습니다. 수크령과 억새꽃도 어서 오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습니다. 공원에는 수많은 장승들이 다양한 몸짓과 재미있는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엄마가 저녁밥을 준비할 동안 승희는 공원을 한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장승들에게 승희의 눈길이 오래오래 머뭅니다. 턱이 유난히 긴 ‘주걱턱장승’, 이가 다 빠지고 얼굴이 쭈글쭈글한 ‘노인장승’, 전통혼례를 올리는 ‘신랑 각시장승’, 하나의 나무에 각기 다른 두 개의 얼굴을 가진 ‘한몸장승’, 얼굴이 꼭 닮은 ‘쌍둥이장승’, 수줍은 듯 기둥 뒤에서 얼굴만 빼꼼히 내놓은 ‘처녀장승’ 등 앙증맞은 장승들이 많이 서 있습니다. 장승 외에도 높다란 장대 위에 나무새를 앉힌 솟대도 서 있고, 나무로 지은 정자도 여러 채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한복을 차려입은 외할아버지는 정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여러 장승들의 표정이 참 재미있어서 정다운 느낌이 들어요.” 할아버지의 표정이 구절초꽃처럼 환해졌습니다. “우리 승희가 이제 다 컸구나. 어렸을 때엔 장승을 보고 무섭다며 울음을 터뜨리던 애가 정다운 느낌이 든다니….” “제가 언제 울었어요?” 승희는 엄마한테 들어서 알고 있지만 시치미를 떼었습니다. 조금 머쓱해진 승희가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있던 말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우리 조상들은 왜 장승을 세웠나요?” “장승은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서서 오가는 길손들을 맞이하던 사람들의 친구였단다.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을 꿋꿋이 견디며 경계표나 이정표로, 잡귀나 질병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수호신 역할을 했지. 사람들은 때로 장승을 찾아와 개인의 소원을 빌기도 했단다. 장승은 이렇게 정다운 친구로, 때로는 수호신이나 믿음의 대상으로 우리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고마운 존재란다.” “할아버지, 어떤 장승은 아주 험상궂게 생겨 무섭기도 해요.” “근엄하고 무서운 표정의 장승은 수호신의 역할을 한단다. 잡귀와 재앙을 막아 내려면 무서운 표정을 지어야 하지 않겠니? 그러나 지금은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정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장승을 만들지.” “그래서 재미있게 생긴 장승들이 많군요.” “그래, 장승은 못 생기면 못생길수록 정감이 가고 재미있단다. 넌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맞아요. 할아버지. 제가 장승을 좋아하게 된 것도 할아버지께서 만드신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장승들을 보고나서부터거든요.” “이제 우리 승희와 대화가 통하니 이 할애비는 참 기쁘구나.” “할아버지 이제부터 제가 장승홍보대사가 될 거예요. 친구들이 제 별명을 ”장승“이라고 부르면 활짝 웃을 거구요.” “승희야, 고맙다. 역시 넌 내 손녀야.” 할아버지는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승희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승희는 할아버지 얼굴이 가을 언덕배기에 줄지어 핀 해바라기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 작가의 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다. 장승은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우리의 전통문화 유산이다. 한때 우상숭배라는 미명 아래 장승이 수난을 당하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여 후손에 물려줄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 약력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꿈꾸는 대나무)▲새벗문학상 장편동화 당선(원숭이 마카카)▲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정동아동문학상 수상▲동화집:개미가 된 아이, 원숭이 마카카 등 50여권▲현재, 서울영일초등학교 교사
  • [女談餘談] 매력 없는 도시/최여경 문화부 기자

    [女談餘談] 매력 없는 도시/최여경 문화부 기자

    서울은 외국인을 위한 배려가 넘치는 도시 같다. 종로, 강남, 압구정 등 웬만한 번화가에는 영어 간판이 즐비하다. 얼마 전 강변북로를 지나다가 본 한강공원 공중화장실에는 ‘화장실’이라는 한글 글씨가 사라졌다. 여성용·남성용 그림과 영어로 쓴 ‘위민(Women)’과 ‘멘(Men)’이 있을 뿐. 서울 사람 태반이 사는 도시에 한글은 사라지고 영어 단어만 늘어간다. 하지만 이런 배려가 꼭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가 보다. 최근 버스 안에서 큰 봉변을 당하고 결국 ‘인종차별’에 맞선 인도 출신 후세인 교수의 기사에서 외국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편협한지 읽힌다. 백인에게는 보통 호의적이지만 흑인이 지나가면 ‘연탄’이라면서 키득거리고, 다른 아시아권 사람들은 무조건 ‘외국인 노동자’다. 그럼 그 ‘백인’들은 서울이 점점 좋아진다고 느낄까. 삼청동에 사는 프랑스 친구가 휴가차 고향에 다녀온 사이 서울이 확 변했다. 광화문 광장이 완공된 것이다. 출퇴근하면서 광화문을 지나는 이 친구는 무척 좋아했다. “공사가 끝났잖아. 서울은 공사가 너무 많아서 불편해.” 이 친구에게 서울은 너무 복잡하다. 영어 강사를 하는 미국인 친구는 고국에서 친구가 오면 함께 일본이나 중국에 간단다. 멀지도 않고, 볼 것도 많고, 무엇보다 독특한 문화가 있단다. 항변이랍시고 삼청동, 대학로, 인사동, 압구정, 홍대, 신사동 가로수길 등을 줄줄이 늘어놨다. 고즈넉한 삼청동, 공연문화가 있는 대학로, 최신 유행이 있는 가로수길…. 근데 생각해 보니 위치만 다를 뿐 내용물은 다 똑같다. 어딜 가나 번잡하고, 유명 커피전문점과 옷가게가 즐비한 ‘쌍둥이 거리’가 됐을 뿐이다. 대체 우리가 사는 이 도시의 정체성은 뭘까. 영어를 남발하고, 지킬 것과 버릴 것 구분 없이 ‘정비’를 목표로 뒤집어엎는다. 내세울 만한 문화도, 개성도, 여유도 찾기 힘든 매력 없는 도시가 되고 있다. 한때 삼청동이 왜 그렇게 인기가 많았는지, 외국인들이 고궁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유를 알면, 서울의 매력도 찾을 수 있을 텐데. 최여경 문화부 기자 kid@seoul.co.kr
  • 근대 불교계 큰별 박한영스님 기린다

    근대 불교계 큰별 박한영스님 기린다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1870~1948) 스님은 한국 불교계의 대강백(사찰 강원의 강사)으로 꼽힌다. 근대 여러 고승은 물론 지금의 학승 대부분이 그의 강맥을 이었다고 할 정도다. 거기에다 유불선에 두루 통하고 선지식에도 빠지지 않은 불교계의 대표적인 석학이었다. ●서정주·이광수·정인보·조지훈·홍명희의 스승 올해 열반 61주기를 맞아 스님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조계종 24교구 본사인 전북 고창 선운사는 20일 ‘석전 영호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특별전 등 다양한 행사를 열어 근대 불교계의 큰 별이었던 그를 기린다. 스님은 현 동국대의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장, 조선불교 중앙총무원회 1대 교정을 역임했고, 친일 불교에 맞서 임제종 운동을 벌일 정도로 종단 활동에 열심이었다. 미당 서정주가 “나의 뼈와 살을 데워준 스승”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 이광수, 이병기, 정인보, 조지훈, 최남선, 홍명희 등 많은 문인들이 그를 사사했다. 1980년대 스님의 어록·행장 등이 간행되며 재조명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맥이 끊어졌고 이에 선운사가 나서 다시 스님의 뜻을 잇게 됐다. 선운사는 추사 김정희가 지어 이곳 문중에서 전해오던 ‘석전’이란 호를 스님이 물려받으며 인연을 맺게 된 곳이다. ●불교사상·항일운동·문학활동 등 조명 이번 세미나는 스님의 불교사상과 항일운동, 문학활동 등 전반적인 생애를 모두 아우른다. 전 종립승가대학원장 혜남 스님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주제 발표 후 종합토론이 이어진다. 노권용 원광대 교수가 ‘석전의 불교사상과 그 유신운동’, 운문사 승가대 교수 효탄 스님이 ‘석전의 계율사상’, 오경후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석전의 항일운동’, 김상일 동국대 교수가 ‘석전의 문학관’, 김호귀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원이 ‘석전의 선사상과 관련한 선종사적 배경’을 다룬다. ●19일부터 글씨·편지·축시 등 50여점 전시 스님의 작품을 모은 전시회도 개최한다. 19일부터 11월22일까지 선운사 경내 박물관에서 열리는 ‘석전 영호대종사 유묵 특별전’에는 스님의 글씨를 비롯해 가람 이병기 등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엽서, 축시 등 50여점이 전시된다. 이외에도 선운사 측은 스님의 행장과 어록을 출간했고, 기념관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선운사 주지 법만 스님은 “석전 스님은 불교계뿐 아니라 당대 지식인 사회를 이끌었던 인물”이라면서 “재조명이 늦은 감이 있지만 앞으로 스님의 뜻을 기리고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19~20일 선운사에서는 제2회 선운문화제가 개최된다. 학술세미나와 전시 외에 산사음악회, 청소년음악제, 전통차시음회, 보은염 이운행사, 게이트볼 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전통의 멋 즐기세요

    서울 종로구는 15일까지 인사동 문화거리 일대에서 ‘제22회 인사전통문화축제’를 연다. 축제는 고미술과 화랑, 전통찻집 등이 어우러진 인사동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에게 우리 고유의 멋을 알리기 위해 1987년부터 시작됐으며, 전통문화의 거리 인사동을 대표하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이번 축제는 우리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행사로 꾸며진다. 우선 12일 오후 2시 북인사마당에서 개막식을 알리는 경찰악대의 특별공연을 시작으로 비보이공연, 국당 조성주의 붓글씨 퍼포먼스, 번개 택견 시범과 이경숙 무용단의 진도북춤, 한복 아트쇼 등이 펼쳐진다. 이어 우리 민족의 고유한 민속놀이문화인 택견의 최고수를 가리는 ‘천하제일 본때뵈기 2009 한마당’이 4시간에 걸쳐 진행된다.13일 낮 12시부터 각종 아마추어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밴드그룹의 공연에 이어 전통국악한마당이 대미를 장식한다.한편 축제 기간 동안 인사아트센터에서는 인사동 고미술전, 근·현대 미술전, 한·중·일 공예문화교류전 등 특색있는 전시회가 마련된다. 이 전시회는 문화지구 인사동 일대 1500여개 인사전통문화보존회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한두 작품씩 출품해 이뤄지게 됐다.또 옛날장터 재현과 전통놀이 체험, 삼베·짚풀체험장과 떡메치기, 페이스페인팅 등이 준비되며, 칠보·종이 공예 등 전통미술공예체험 공간도 마련된다.이병호 문화공보과장은 “행사가 인사동을 찾는 많은 관광객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게 될 것”이라면서 “많은 볼거리와 체험행사를 통해 즐거움을 주는 것은 물론 산교육의 현장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접시·머그잔 등 ‘바늘 도둑’ 문화재 약탈 ‘큰 도둑’ 겨누다

    접시·머그잔 등 ‘바늘 도둑’ 문화재 약탈 ‘큰 도둑’ 겨누다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너 그러다가 죽을 때 죄 덩어리가 발목에 묶여서 하늘에 못 올라 가는 거, 그거 아니?” 해외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음식점이나 호텔, 커피숍 등에서 접시, 후추통, 커피컵, 머그잔, 버터나이프, 촛대, 타월 등 잡동사니를 훔쳐와 작업을 하는 작가 함경아(43)에 대해 그의 어머니는 이런 걱정 어린 한마디를 건네곤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걱정은 함 작가의 손끝에서 고스란히 작품이 되고, 작품의 제목이 됐다. 하늘 높이 솟구치려는 젊은 여인의 가느다란 발목에는 발목만큼 굵은 밧줄이 꽁꽁 묶여 있고, 그 밧줄들은 다시 그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훔쳤을 잡동사니들을 꽁꽁 싸매고 있다. 아무래도 함 작가도 죽어서 천당에는 못 가지 않을까 우려한 듯하다. ●佛·英·獨·美 등 여행하며 ‘슬쩍’한 것 전시 함 작가의 개인전 ‘욕망과 마취’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2·3층에서 열린다. 2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첫눈에 대형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하고 있는 접시, 나이프, 컵 등이 보인다. 할로겐 램프 아래서 반짝거리는 이들은 신상품으로 고급 물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어딘지 낡고 깨진 구석도 있고 심지어 ‘○○매장에서만 사용합니다.’라는 글씨까지 써 있다. 이것들은 2000년부터 지난 10년간 함 작가가 한국은 물론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등 전 세계를 여행하며 카페와 호텔, 비행기 등에서 ‘슬쩍한’ 것들을 모아 ‘뮤지엄 디스플레이’라는 작품으로 내놓은 것 들이다. 함 작가는 어머니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작업을 했을까. 함 작가는 영국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미국 뉴욕의 소위 메트로폴리탄 등 소위 대형 미술관을 관람하면서 장소와 소장품 간의 이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67년간 이집트를 통치하며 이집트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한 파라오 람세스 2세를 왜 대영박물관에서 봐야 한다든지, 람세스 2세의 아버지 람세스 1세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는 것 등이 그렇다. 대영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어떠한가.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서는 터키 페르가몬의 ‘제우스 신전’을 통째로 볼 수 있고, 바빌론 최고의 유산인 ‘이슈타르의 문’도 관람할 수 있다. 그러니까 혹시 중동 여행길에 이슈타르의 문을 봤다면 그것은 복제품인 셈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 중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조선시대 ‘직지심체요절’도 사실 마찬가지 상황이다. 대규모의 수장품과 미술품을 자랑하는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3대 박물관은 결국 18~19세기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식민지를 발굴하면서 각국의 보물을 훔쳐서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훔친 물건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전시하면서도 그것이 국가의 힘이라고 자랑하고, 문화적 위상을 높이고 있으며, 대규모 관광 수입까지 벌어들이고 있으니 어찌 아이러니가 아닌가. 권력의 이름으로 이뤄진 약탈에 대응해 함 작가는 개인적·예술가적 차원에서 소소한 물건들을 훔친 뒤 그 물건들을 모아 전시함으로써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박물관을 향해 ‘당신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한국에서 주문한 카푸치노 잔을 훔친 뒤 프랑스에서 카프치노를 주문해 잔을 바꿔 놓고 찍은 사진, 에어프랑스에서 제공한 일회용 컵과 한국에서 가져간 금도금 잔을 바꿔 놓고 찍은 사진, 사무실 기숙사에서 엷은 노란색 잔과 기숙사 근처 사무실에 비슷한 잔을 바꿔 놓고 찍은 사진 등 이런 사진을 모아서 함 작가는 ‘뒤바뀐 훔친 물건들 시리즈’(Switched Stolen Object Series)를 작품으로 내놓았다. 훔친 물건들로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를 흉내낸 ‘스틸라이프(Steal life)’라는 제목의 작품도 있다. 정물화를 나타내는 영어표현 ‘스틸라이프(Still life)’에서 차음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작은 물건을 훔치고도 엄청난 죄의식으로 고통받는데 선진국의 박물관들은 왜 그렇지 않은가 묻고 있다. ●자칭 ‘문화 선진국’ 이면 고발 그는 또한 스틸라이프 연작 중에 이렇게 묻는다. ‘만약 전 세계 모든 약탈 문화재가 일시에 반환된다면?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3대 박물관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하겠지?’ 스틸라이프에서 함 작가는 그리스 정부는 1980년대부터 전 세계 8개 박물관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파르테논 신전 조각을 회수해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전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지만, 대영 박물관은 강력한 반대를 보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한다.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고대 유물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원상회복은 어려운 상황이다. 3층의 영상작업에서 이런 조치를 생각해 보게 한다. ‘사기꾼과 점쟁이’는 17세기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회화 장면을 영상으로 만든 것인데,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기꾼과 부도덕한 점쟁이가 나온다. 투르의 평면은 사기와 부도덕성만 보여 주지만 함 작가의 영상은 여기서 더 나아가 피해자가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이 나온다. 영상에서 사기는 물론 폭력과 살인이 벌어지지만 관객들은 무표정하게 지켜보고 그 현장을 떠난다. 약탈 문화재 반환문제 등에 무관심한 우리들 역시 약탈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이 담겨 있다. 함 작가의 이같은 작업은 전시회를 앞두고 화구들이 도착하지 않아 평면 작업 대신 아이디어를 낸 설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설치는 이제 함 작가의 대표적인 작업이 됐다. 10월25일까지 관람료 3000원. (02)733-8945.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대림사 돌비석/노주석 논설위원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이벤트의 하나인 ‘대한국인 손도장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등 3만명의 손도장을 모아 폭 30m·길이 50m의 초대형 손도장 이미지를 만들어 의거일인 10월26일부터 2주일 동안 서울 광화문 KT빌딩에 내걸 예정이다. 손도장을 모으려고 일본에 간 대학생 동아리 회원들이 미야기현 구리하라시 대림사를 방문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대림사는 ‘재소자의 아버지’ 삼중 스님이 1984년 사연을 처음 알린 이후 명소가 된 곳이다. 뤼순 감옥의 안 의사 담당 일본인 간수가 낙향해 안 의사에게서 받은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란 붓글씨를 대웅전 앞 집채만 한 돌에 새겼던 것이다. 안 의사에게 감화받은 간수는 돌비석을 세우고 영정을 모셨다. 추모는 부인을 거쳐 딸의 대까지 7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대림사도 안 의사가 태어난 9월3일을 기념하는 추도 법회를 28년째 열고 있다. 손도장 프로젝트도 좋지만 ‘한국식’ 반짝 이벤트는 속보인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서울광장] 안중근 의사 재발견/노주석 논설위원

    [서울광장] 안중근 의사 재발견/노주석 논설위원

    지난 2일은 ‘대한국인’ 안중근의사 탄생 130주년이었다. 다음달 26일은 의거 100주기다. 우리에게 ‘10·26’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10·26사태’로 각인돼 있지만 10·26은 본래 100년 전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자랑스러운 ‘하얼빈 의거일’이었다. 중국 저우언라이 총리가 “중국과 조선인민의 진정한 연대는 안중근 의거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말한 바로 그날이다. 한국인 사업가가 중국 하얼빈의 명동 격인 중앙대로에 11일 동안 세웠던 안 의사의 동상을 국내에 들여왔다. 2006년 1월 저명한 중국인 조각가에게 의뢰해 만든 동상은 공안당국의 지시에 의해 철거됐다. 이후 3년 동안 숨어 있다가 이번에 햇빛을 보았다. 동상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사유지에 세운다면 꺼릴 것이 없겠지만, 공공장소에 세우기를 원한다. 서울시내 44개의 공공 동상은 ‘동상·기념비·조형물의 건립기준 등에 관한 규칙’을 통과한 것들이다. 전문가들이 작품성 등을 따져봐야 하겠지만 ‘한·중 합작’ 동상을 공공장소에 세우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입지는 청계천이나 서울광장, 서울역 어디라도 좋을 것이다. 지난해 어느 시사주간지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조사했더니 1위는 세종대왕, 2위는 이순신 장군, 3위는 백범 김구가 차지했다. 역사 속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광개토대왕, 도산 안창호, 다산 정약용이 10위 안에 들었다. 안 의사는 근근이 공동 13위에 이름을 올렸다. 오히려 국가보훈처가 조사한 보훈 인물 중 백범에 이어 2위로 뽑혔다. ‘국민 속의 안중근’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토를 저격한 ‘독립투사’의 이미지가 강해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쯤으로 비치게 한 탓이다. 안 의사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 같다. ‘동양평화론’과 이토를 처단한 대의가 잊혀지고 있다. 동양평화론은 한국과 중국, 일본 3국이 공동군대를 편성하고 공동화폐를 발행하자는 선각자적인 정치사상이다. 국제주의적 민족주의 개념이다. 유럽통합 방식을 100년 전에 주창한 것이다. 안 의사는 학교를 두 개나 세운 육영사업가이며, 200여점의 붓글씨를 남긴 명필이다. 최초의 해외 독립군부대인 ‘대한의군 참모중장’ 신분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한 전쟁영웅이다. 나라 안팎에서 ‘안중근 재발견’이 활발하다. 왜 안중근인가. 뤼순 감옥에서 쓴 ‘안응칠 소회’에 오롯이 담겨 있다. “슬프다! 천하대세를 멀리 걱정하는 청년들이 어찌 팔짱만 끼고 아무런 방책도 없이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옳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생각다 못해, 늙은 도적 이토의 죄악을 성토하여, 뜻있는 동양청년들의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 ‘안중근전쟁, 끝나지 않았다’를 옮겨 엮은 열화당 이기웅 대표는 “위대한 스승 안 의사의 말씀은 그 시대 청년들에게 머물지 않고, 시대를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도 매서운 죽비로 다가온다.”라고 평했다. 그렇다. 안 의사는 사표(師表)가 없는 이 시대의 스승될 자격이 차고 넘치는 분이다. 이 땅의 청년들은 안 의사의 당당함과 논리를 배워야 한다. 불멸의 민족혼을 본받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안 의사의 원혼은 100년째 중국 뤼순감옥 사형수 무덤 주위를 떠돌고 있다. 독립된 고국에 묻어달라던 ‘백년원(百年寃)’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재발견은 유해찾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이메일 대문자로만 작성했다고 해고?

    이메일 대문자로만 작성했다고 해고?

    모든 활자를 대문자로 꾸미고 굵은 글씨체와 붉은 색 글자를 눈에 띄게 만들어 회사 동료에게 이메일을 보냈다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할 수 있겠는가.  컴퓨터 키보드의 ‘캡스 록’ 버튼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는 데 대해 당신은 동의할 수 있겠는가.  야후! 닷컴의 야후! 테크에 지난달 31일(이하 현지시간) 올라온 질문인데 전세계의 많은 사무직 종사자들이 함께 울분을 표시하는 댓글을 올려놓고 있다.  쉽게 믿기지 않는 사례는 지난 2007년 12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있는 ‘프로케어 헬스’란 회사에서 회계원으로 일하던 비키 워커란 여성이 실제로 해고당한 일이다.2년이나 이 회사에 근무했던 그녀는 어느날 회사 동료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이처럼 별 것 아닌 실수를 바로잡지 않은 채 ‘센드’ 버튼을 눌렀다는 이유로 아무런 경고도 없이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다.이유는 ‘적대적인 이메일’을 보내 ‘직장에서의 단합된 분위기’를 해쳤다는 이유를 들이댔다.  그녀는 이메일을 보내면서 적절하게 서류 양식을 꾸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자세히 적은 설명문도 함께 보냈으므로 문제될 게 없다고 고용관계 당국에 항변했고 2년여 투쟁 끝에 지난달 30일 사실상 자신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받아들었다고 뉴질랜드 헤럴드 등이 전했다.  워커는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 받지 못했던 13주치의 임금 6000달러와 온당치 못한 해고 조치 때문에 받은 유무형의 피해에 대한 위자료 형식으로 1만 1500달러 등 모두 17500달러를 보상받게 됐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고이잠든 작가(作家)앞에 다시선 아씨 김희준(金喜俊)

    고이잠든 작가(作家)앞에 다시선 아씨 김희준(金喜俊)

    『아씨』의 작가 임희재(任熙宰)씨 무덤에 아담한 묘비가 세워졌다. 고인의 옛 동료들(방송작가협회)이 세운 것이다. 그 묘비의 제막식에 『아씨』의 「히로인」김희준양이 새 가정의 『아씨』가 된지 6개월만에 나와 하염없이 눈물짓고 있었다. 고인의 옛동료들이 모여 19개월만에 묘비 세우고 『한 인생이/그가 쓰는 작품에/만천하가 보내는 박수소리를 들으며 쓰러졌다/쓴다는 고통에서 영원히 해방된 것이다/비바람은 언젠가 이 비문(碑文)을 지우리라/그러나/우리는 무(無)의 철리(哲理)를 알기 때문에/슬퍼하지 않는다/산에서 사는 새들아/이곳에 와 노래하라』 자연석을 깎아서 다듬은 조그만 묘비. 그 묘비에 새겨진 묘비명이다. 10월 18일 하오 3시,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기독교인 공원묘원. 임희재씨가 간 지 19개월만이다. 이 자리엔 미망인 조옥순(趙玉順)씨를 비롯한 가족과 『아씨』에 출연했던 김희준, 김세윤(金世潤)등 「탤런트」, 그리고 생전에 고인을 아끼던 동료작가, 연출가들 60여명이 단촐하게 모였다. 구름 한점 없이 맑게 갠 하늘에선 늦가을의 햇살이 포근히 내려쬐고 있었다. 작가 김교식(金敎植)씨가 차분한 목소리로 개식을 알리자 고인의 마지막 작품인 『아씨』의 주제곡이 녹음「테이프」를 통해 은은히 울려나왔다. 그 순간 장내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묘비명은 고인의 오랜 친구 한운사(韓雲史)씨가 지었고 글씨도 손수 썼다. 이어 추모작품 낭독. 『아씨』의 「히로인」김희준이 「마이크」앞에 섰다. 「아씨」의 주제가가 흐르면서부터 울음을 삼키고 있던 김희준은 고개를 돌리고 손수건에 얼굴을 묻었다. 추모가(追慕歌)는 『아씨』의 주제곡… 복혜숙(卜惠淑)도 합창하며 울어 추모작품은 고인의 마지막 작품인 『아씨』의 마지막 회분의 「내레이션」부분이다. 작년 1월7일 2백56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아씨』의 해설이었다. 김희준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를 낭독해 나갔다. 『아씨는 공연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친정 부모님이 살아계실 리 만무하지만 변모한 집꼴하며 홀로 계신 오라버니를 뵈오니 가슴이 아파 마주 대할 수가 없었다… 달은 교교하고 밤은 깊어가는데 좀처럼 잠은 오지 않는다. 좀전에 김수만 이란 노신사를 만난 탓일까?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타다 남은 불씨라도 있단 말인가?… 사람들이 아씨를 가리켜 무던하고 좋은 사람이라느니, 혹자는 천치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한평생을 살 수는 없다느니, 또한 그를 통해서 한국적인 여인상을 재인식하며 인종의 미덕을 높이 승화하기까지 하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다. 아씨는 곧 우리들의 어머니며 할머니며 또한 그분들은 다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온 것 뿐이다』 「아씨」김희준은 흐느끼다 읽고 읽으면서 흐느꼈다. 몇번이나 낭독을 중단해야 했다. 추모작품이 낭독되는 동안 미망인을 비롯한 가족들쪽에서 조용한 흐느낌 소기라 들려왔다. 그 자리에 나온 원로 여배우 복혜숙여사의 주름진 얼굴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인 임씨는 위암이란 진단을 받고 자리에 눕는 바람에 『아씨』의 마지막 탈고를 손수 못했다. 2백회를 갓 넘기고부터 병이 나서 더 이상 작품을 쓰지 못하게 되자 극작가 이철향(李哲鄕)씨가「바통」을 이어받아 작품을 마무리 했었다. 병상에 누워서도 임씨는 작품에 대한 집념을 끝내 버릴 수 없었던지 마지막회의 해설만은 자신이 썼다. 연출가 고성원(高聖源)씨가 병석에 찾아가 임씨가 부르는 대로 받아써서 고인의 뜻대로 마지막 회의「내레이션」으로 집어 넣었었다. 그래서 고인의 많은 다른 작품을 제쳐 놓고 이것을 추모작품으로 결정하여 다시 한번 고인에게 들려 주게 되었다고. 추모가도 『아씨』의 주제가로 했다. 『아씨』에 출연했던 김희준, 복혜숙, 김세윤, 여운계(呂運計), 선우용녀(鮮于龍女),등 5명의 「탤런트」가 나와 『아씨』를 합창했다. “친아버지처럼 자상하게 대해 주셨는데…” 젖은 목소리로 합창이 계속되는 동안 김희준은 시종 우느라고 단 한마디도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제막식이 끝나고 일행이 산을 내려와도 그녀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제겐 작가선생님이 아니었어요. 친부모님 같이 느껴지던 분이었어요. 그렇게 말이 없으시고 그토록 착하시던 분이 돌아가시다니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는 군요』 김희준이 임희재씨의 묘소를 찾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탤런트」생활을 청산하고 평범한 아내로 돌아간 그녀는 옛 동료들과 함께 존경하던 분의 무덤 앞에 나선 순간부터 짙은 애수를 느낀것 같다. 『사실 「아씨」는 제 생활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노력을 했던 작품이고 또 제일 맘에 들었던 작품이었죠. 그분은 제게는 퍽 자상하셨어요. 연기를 잘 해 보기위해 저는 시간만 있으면 댁으로 찾아가 말씀을 들었고 그분도 제 얘길 많이 작품에 반영시켜 주셨어요. 어느 딸과 아버지가 그보다 더 친할 수 있을까요…』 『대본을 좀더 일찍 써 주면 연습을 많이해서 보다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재촉을 하며 응석을 부린 일이 지금 와서는 후회가 돼요…』 사실상『아씨』가 2백회를 넘겼을 무렵 임희재씨는 건강이 아주 나빠 있었다. 위암이라는 결정적인 진단이 내렸었는데 병자 자신은 그걸 모르고 있었다고. 김희준은 임씨의 병상을 방문했을 때 『이젠 병이 다 나은 것 같다. 좋은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데…』라면서 김양의 손목을 꼭 잡더라고. 그것이 김양이 임씨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김희준은 『아씨』때문에 누구보다도 화려한「탤런트」생활을 누렸다. TV「드라머」로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이『아씨』는 그때까지 그늘에 묻혔던 김희준을 「톱·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상의 인기를 배경으로 결혼, 은퇴해 버린 김희준. 『「탤런트」생활을 다시 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물음에 김희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 4월21일 신경과 의사 하영수(河榮秀)씨와 결혼한 그녀는 한 사람의 아내로서 충분히 행복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보다 임희재씨와의 추억이 담긴 『아씨』로서 그녀의 연기생활을 조용히 마무리짓는 편이 그녀다운 일이라고나 할까. <오(五)> [선데이서울 72년 10월 29일호 제5권 44호 통권 제 2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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