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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공헌 특집] 농협-농어민 자녀 5300명에 대학등록금

    [사회공헌 특집] 농협-농어민 자녀 5300명에 대학등록금

    올 3월 서울 충정로 농협 사회공헌팀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삐뚤삐뚤한 손글씨로 자신을 충남 당진에서 꽈리고추 농사를 짓는 ‘혜숙아빠’라고 밝힌 농부는 “딸이 고려대 법학과에 합격하고도 지난해 농사가 어려워진 데다 딸린 식구까지 많아 등록금 문제로 고민하던 중 농협 장학금을 받고 대학 진학을 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는 딸을 보고도 뒷바라지를 못해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제야 안심할 수 있게 됐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농협은 이렇게 실력이 있는 데도 경제 사정이 나빠 대학에 들어갈 수 없는 농어민 자녀들을 위해 2002년부터 장학 사업을 진행해 왔다. 농협 장학금을 통해 대학 진학에 성공한 인원만 올해까지 총 5300여명에 이른다. 농협은 또 매년 1000억원의 복지기금을 출연해 각종 사회공헌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농촌사랑운동 차원으로 진행되는 ‘다문화 가정 인연맺기’은 한국 농촌으로 시집 온 동남아시아 여성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읍 단위 농협 회원들을 직접 친엄마, 친동생 등으로 맺어주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음식 만들기, 한국어 학습, 육아 등을 돕는다. 해마다 증가하는 농촌 이주여성의 안정된 한국생활 정착을 위해 진행된 이 사업으로 베트남, 필리핀 여성 등 25명이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 농촌이 의료복지 사각지대인 경우가 많은 점에 착안, 서울대병원 의료진 30여명과 함께 연간 10회씩 진료 봉사활동을 펼치는 공공의료 지원사업도 하고 있다. 각 지역 농협본부와 한방병원 및 지방 대학병원이 연계해 무료 건강검진 같은 의료서비스를 제공, 9월 말까지 2만 1395명의 농민이 의료 혜택을 받았다. 또 도시민과 학생에게 농업의 중요성과 전통 농경문화를 알리기 위해 1987년부터 농업박물관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여는 농업박물관은 농업역사교실, 나는야 꼬마농부, 농촌문화체험교실 등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난해에만 25만 1334명이 다녀갔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사랑해요”…6살 꼬마가 남긴 100여개 메모

    “사랑해요”…6살 꼬마가 남긴 100여개 메모

     ”엄마,아빠 사랑해요.” “사랑하는 그레이시 힘내.”  2년전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6살 꼬마의 메모가 미국에서 화제다.주인공인 엘레나 데저리치는 6번째 생일을 앞두고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의사는 엘레나가 ‘135일 정도’ 밖에 살 수 없다고 말했지만,엘레나는 그보다 120일을 더 살았다.  엘레나가 세상을 떠난 뒤 부모인 키이스와 브룩은 집 구석구석에서 엘레나가 남긴 메모들을 찾아냈다. ‘러브 노트’라고 이름붙인 이 100여개의 메모들은 가족들에게 보내는 엘레나의 메시지였다.  엘레나의 비뚤비뚤한 글씨와 간단한 그림으로 이뤄진 메모는 다음과 같다.  암세포가 계속 확장되자 엘레나는 더 이상 길게 말을 할 수 없게 됐다.메모들은 엘레나가 소통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셈.엘레나는 사망 직전인 2007년 8월 어린 동생 그레이시를 위해 ‘유치원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책을 만들기도 했다.  예술적인 재능이 풍부했던 엘레나의 그림은 신시내티 박물관에 전시됐다. ‘I Love You’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엘레나가 가장 좋아했던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의 바로 옆자리에 걸렸다.  엘레나의 아버지인 키이스는 “이 간단한 그림은 엘레나가 모두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여요.”라며 “그림을 볼 때마다 엘레나가 우리를 꼭 끌어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엘레나의 부모는 엘레나가 남긴 메모와 그림들은 모아 ‘Notes Left Behind’라는 책을 펴냈다.이 책의 수입금은 엘레나처럼 뇌종양으로 투병하고 있는 환자들을 위한 자선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최첨단 갈아입는 PC방

    ‘게임 중독을 양산하는 청소년 유해시설’. PC방에 찍힌 주홍글씨다. 1998년 처음 생긴 이후 인터넷과 게임 산업 확산의 첨병 역할을 했지만 낙인은 지울 수 없었다. 악재만 더해갔다. 초고속인터넷 확산, 등록업종으로의 전환, 게임업체와의 지불액 갈등, 바다이야기 사태, 신종플루, 금연구역 지정….하지만 PC방의 생명력은 질겼다. 2001년 2만 2548개를 정점으로 사양산업으로 인식됐지만 여전히 2만 1496개가 살아 있다. 주인이 3년에 한 번씩 바뀔 정도로 개·폐업 주기가 짧지만 잡초처럼 커온 PC방들이 근원적인 자생력 찾기에 나섰다. 해답은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한 ‘그린 PC방’. 클라우드 컴퓨팅은 서버나 소프트웨어를 구입하지 않고 ‘클라우드’로 불리는 외부 IT인프라에 접속해 필요한 컴퓨팅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천덕꾸러기 PC방이 차세대 컴퓨팅 기술을 맨 먼저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지식경제부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PC 본체를 모니터와 분리해서 별도의 공간에 둘 수 있는 그린 PC방 시스템을 개발해 지난달 13일 공개했다. PC방에서 PC 본체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전력 소비가 30% 이상 줄고 중앙집중식 서버로 매장관리의 효율성과 실내공기 정화 능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업자들은 감격했다. 정부가 처음으로 관심을 가져 준 것 자체가 고마웠다. 지경부는 올해 3곳의 PC방을 선정해 시범운영한 뒤 2012년까지 모두 교체할 계획이다. 시스템 교체 비용은 정부와 지자체가 절반을 부담하고 절반은 업주가 부담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범 업체 선정에 50여개 업체가 지원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전기요금 절약 금액이 투자금액보다 크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PC방이 온라인 직업교육장이나 사이버 마케팅 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도 업주들의 요구다. 한국인터넷PC방 협동조합 김성현 정책이사는 “‘PC방=게임방’이라는 인식을 끊고 싶다.”면서 “IT 인프라의 중추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데스크 시각] 헌재와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문소영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헌재와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문소영 문화부 차장

    이완용,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은 매국노라는 그에 대해 4~5년간 생각이 많았다. 미술관 갤러리를 다니면서 이완용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더 많았다. 가까이는 올 초 상업화랑에서 근대 서화전이 몇 차례 열려 이완용의 글씨가 등장하면 꼼꼼히 살펴보게 됐다. 중국 북송의 시인 소동파가 ‘서당대유가서후’에서 “무릇 글씨는 그 사람을 닮는다. 옛적에 글씨를 논하는 사람들은 작가의 평생도 아울러 논하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완용의 유려하고 맺히는 데 없는 글씨체와 항일독립운동의 군자금을 댔다는 김진우의 단정하고 깐깐한 글씨체, 거칠 것 없이 호방한 안중근의 글씨체를 비교해 보기도 했다. 이완용을 생각할 때 문득 머릿속으로 더듬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이완용은 외교권을 헌납한 을사늑약과, 국권을 고스란히 갖다바친 경술국치를 체결했을 때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스스로의 자각이 과연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완용은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자 예술인, 고위 공무원, 노회한 정치인이었다. 일본·중국 등에서 들어오는 최신 저서를 직접 읽었을 것이고, 국제 정세에 대한 고급 정보도 이런저런 통로를 통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꾼 조국의 운명이, 사실은 풍전등화라고 직감했을 것이다. 그는 메이지 유신을 통해 나라를 일신하고, 청나라와의 전쟁은 물론 서양인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로 서양과 대등하게 올라선 일본과 손을 잡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그의 불행은 일본이 1945년에 그렇게 빨리 패권을 잃어버릴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2009년 11월에 광화문에서 안중근 의사의 얼굴이나, 약지를 단지한 그의 손바닥 도장 대신 이완용의 얼굴이나 글씨를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가정과 상상도 해본다. 정치인이자 고위 공무원인 이완용의 오판을 1905년, 1910년에 막아줄 제도적 장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행정부의 잘못된 결정을 평가해 뒤집을 수 있는, 이를테면 의회라든지, 법적으로 효력을 다투는 사법부 말이다. 그랬더라면 이완용의 판단은 국회나 사법부를 통해 바로잡힐 수 있지 않았을까. 이완용의 처지에서 100여년 전에 절차로서의 민주주의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도 없었던 것이 안타까울 수 있겠다. 요즘 헌법재판소(헌재)를 자주 생각해본다. 헌재는 최근 미디어법과 관련해 국회 본회의에서 대리투표 등 위법행위가 있었지만, 미디어법의 국회 통과는 유효하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라는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 방식에 대해 배우고 자라온 상식선에서 볼 때 의외의 판결이다. 대리시험을 봤지만, 합격은 유효하다, 도둑질은 위법이지만 장물취득은 유효하다, 커닝해도 좋은 성적은 유효하다, 간통을 했지만 기존 결혼은 유효하다는 식의 인터넷 유머가 나돌아다니는 까닭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헌재는 1987년 학생·직장인 등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호헌철폐, 직선쟁취’를 외치고, 꽃 같은 목숨을 여럿 잃어가며 만든 제6공화국 헌법으로 탄생한 기구이다. 그간 사법부가 워낙 행정부(검찰)의 시녀처럼 굴었던 탓에 사법부를 불신하며, 헌법정신을 지켜보자고 대법원 위에 옥상옥으로 만들어졌다. 헌재는 집권당의 통치행위를 옹호하고 국민의 법 감정과 법질서를 교란하는 정치적 판단을 내리라고 만들어진 기구가 아니다. 이번 미디어법 결정을 볼 때 절차로서의 민주주의를 수호하지 못하는 헌재가 존재할 이유를 통 모르겠다. 헌재는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나 수단이 없었던 이완용처럼 핑계도 없으면서 말이다. 문소영 문화부 차장 symun@seoul.co.kr
  • [Healthy Life] 멀리 있는 사물 흐려보이면 의심을

    [Healthy Life] 멀리 있는 사물 흐려보이면 의심을

    백내장의 가장 흔하고 중요한 증상은 멀리 있는 사물이 점점 흐려보인다는 점이다. 정상적으로 노안이 생기는 40세 이후가 되면 책이나 컴퓨터 글씨 등이 흐리게 보여 돋보기를 사용해야 한다. 이는 수정체의 조절력이 떨어져 생기는 현상이며, 이 때 멀리 있는 물체는 정상적으로 보인다. 노안은 근거리 시력이 약해질 뿐 원거리 시력은 정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정체가 혼탁해져 시력이 떨어지는 백내장은 가까운 곳뿐 아니라 먼 곳의 물체까지 흐리게 보인다. 원거리 및 근거리 시력이 동시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실내에서는 잘 보이다가도 햇빛 속에 나서면 시야가 흐려지고 잘 보이지 않는다. 수정체 중심부에 혼탁이 생기면 어두운 곳에서는 동공이 커져 잘 보이지만 밝은 곳에서는 동공이 축소되어 잘 보이지 않는 것인데, 특히 운전 중에 느끼는 불편이 심하다. 그런가 하면 평소 돋보기를 사용하던 사람이 돋보기 없이 신문이나 책을 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수분이 수정체로 흡수되어 수정체가 팽창함으로써 일시적으로 근시가 되는 현상으로, 백내장 진행기에 주로 나타난다. 정상인 눈을 가리고 백내장이 있는 눈으로 볼 때 물체가 둘로 보이는 복시증상도 있다. 복시는 일반적으로 안구운동 장애로 인해 두 눈으로 볼 때 생기는 증상이지만 백내장이 있는 경우 수정체 혼탁으로 물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한쪽 눈으로 보면 물체가 겹쳐보이게 되는 것. 또 밝은 곳에서 눈부심 증상이 생기는데, 이는 혼탁이 균일하지 않은 수정체에서 빛의 산란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물고기 꽃다발/이림

    [엄마와 읽는 동화] 물고기 꽃다발/이림

    “아유, 냄새!” 분홍장미가 찡그리며 말했다. “우후! 냄새!” 줄돔이 벙글거리며 말했다. 서울 명동 노다지 횟집. “사장님, 이 것 잠시 좀 맡아주시겠어요? 지하철 타고 갔다 올 일이 있어서요.” 점심 식사를 마친 초등학교 졸업생 어머니가 계산대에 꽃다발을 내밀며 말했다. 분홍 장미 한 아름에 버들개지 두어 가지, 또 다른 꽃들도 섞여 있었다. 꽃다발 속에는 벌써 봄이 와 있었다. “어이, 주방장!” 꽃다발은 주방 안으로 건네어졌다. 횟감용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는 수족관 위 선반 위에 올려졌다. “아유, 기분 나빠!” 분홍장미는 오후 내내 수족관 위 선반 위에서 코를 쥐었다. 난생 처음 맡아보는 물고기 냄새가 역겨웠다. “우후! 기분 좋아!” 줄돔은 오후 내내 수족관 안에서 코와 입을 활짝 열고 헤엄쳐 다녔다. 난생 처음 맡아보는 장미 향기가 황홀했다. “그 아주머니, 곧 우리를 데리러 올 거야… 늦둥이 아들 초등학교 졸업이라고 얼마나 정성들여 꽃다발을 만들었는데…” 버들개지가 분홍장미를 달랬다. 버들개지는 꽃다발 꽃 중에서 하나뿐인 야생 꽃이다. “코 좀 다물어. 흔적만 남은 코를 벌름벌름, 발름발름… 너, 힘 빠지면 바로 회로 썰어진다는 것 알지?” 볼락이 줄돔을 나무랬다. 볼락은 수족관 물고기 중에서 하나뿐인 자연산 횟감이다. 값비싼 눈요기용 횟감인 줄돔 뒤에 숨어 다니며 뜰채를 피해 다니는 꾀돌이다. 밤이 왔다. 주방 안은 어슴푸레 밝다. 뽀르르 뽈뽈~ 웅~ 수족관 산소 방울 소리에 냉장고 소리가 가끔씩 더해지고 있다. “아유, 냄새!” 분홍 장미는 밤늦도록 코를 쥐고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우후! 냄새!” 줄돔은 코를 벌름거리며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뭐? 수족관에서 물고기 냄새가 올라온다고?… 그만 자. 그 아주머니, 내일은 틀림없이 올 거야.” 버들개지가 분홍 장미 잠을 재촉했다. “그만 자. 잠을 잘 자야 하루라도 더 생생하게 버티지.” 볼락도 줄돔 잠을 재촉했다. 다음 날이 왔다. 사장과 주방장은 하루 내 선반 위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바빠서 꽃다발이 거기 있다는 것조차 잊은 듯했다. 밤이 되도록 졸업생 어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유, 냄새. 훅…” 분홍 장미는 몹시 목이 말랐다. 벌써 겉잎이 다 말라 자줏빛 테를 두르고 있었다. “우후, 냄새. 헉…” 줄돔은 온몸이 나른했다. 까만 줄무늬에 하얀 거품 같은 것이 끼고 있었다. 자정 무렵이었다. “훅! 훅!…” 분홍 장미는 목이 탈 대로 탔다. 속잎까지 꾸덕꾸덕 마르고 있었다. “헉! 헉!…” 줄돔은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뼈없는 물고기처럼 온몸이 흐물거렸다. “좋은 수가 있어!” 버들개지가 말했다. “분홍 장미야, 우리 저 수족관 물에 뛰어들자.” “뭐라고?” “아무리 꽃다발 꽃이라지만 이렇게 날로 말라 죽긴 싫어.” “?” “너처럼 비닐하우스 속에서만 큰 꽃은 모르겠지만, 내 고향 시냇물 속에도 물고기가 많았어! 물고기가 발을 간질러 주면 힘이 막 솟곤 했지.” “저 비린내 나는 물에?… 싫어, 싫어.” 분홍장미는 고개를 저었다. “좋은 수가 있어!” 볼락이 말했다. “줄돔아, 우리 저 꽃다발 속으로 뛰어들자.” “뭐라고?” “어차피 너나 나나 내일을 못 넘겨. 손님들 눈요깃감이 되지 않는다 싶으면 너부터 바로 회로 썰어질 거야! 난 이런 감옥 같은 데서 죽음을 맞긴 싫어.” “?” “너처럼 양식장 속에서만 자라온 물고기는 모르겠지만, 내 고향 바다 속에는 물풀도 많았어. 검푸른 물풀 속을 헤엄치고 있으면 힘이 막 솟아나곤 했지.” “저 고운 냄새 나는 꽃다발 속에?… 좋아, 좋아. 그런데 어떻게 저 높은 곳에 뛰어들어?” 줄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뛰어들어야지 뭐. 아님 내려오게 해서 들든지...” 볼락이 지느러미를 흔들며 말했다. 뽀르르 뽈뽈~ 웅~ 사작사작 삭삭 끙~ (“분홍장미야, 몸을 밀어 봐.” “싫어, 버들개지야. 무서워!” “내려가야 한다니까!”) 뽀르르 뽈뽈~ 웅~ 철버덕 철버덕 슉! 풍덩~ (“돌돔아, 뛰어 올라.” “그렇게 높이? 난 볼락 너처럼 몸이 가볍지 않아!” “그래도 더 높이 뛰어야 해!” “이렇게?” “그래. 그래야 꽃들이 우리 지느러미를 잡고 내려오게 하지.) 밤새 노다지 횟집 주방 안은 수선스러웠다. 늘 나던 수족관 산소막대 소리에 안간힘을 쓰는 소리들이 더해졌다. 날이 밝았다. 삐삐~ 띠띠~ 문이 열리고 사장이 들어왔다. 주방장도 들어왔다. 수족관 앞으로 간 사장이 소리쳤다. “아니, 주방장, 꽃다발이 왜 수족관 안에 떨어져 있어? 선반이 기울어진 것 아니야?” “아닌데요. 똑 바른데요!” “그럼 왜 널따란 선반에서 꽃다발이 떨어져?” “그, 글쎄요… 꽃다발이 발을 달았나? 아님 혹, 혹시 우리 주방 안에 쥐가?…” 사장과 주방장은 주방 안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곧이어 비닐 옷 입은 아저씨가 들어왔다. ‘우주수산’이란 글씨가 새겨진 파란 통을 들고 있었다. “사장님, 오늘 횟감 진짜 좋습니더. 바로 넣겠습니더.” 우주수산 아저씨가 수족관 앞으로 왔다. 물 속에 떨어져 있는 꽃다발을 보고 소리쳤다. “아이, 이게 뭐꼬? 이 꽃들 바보 아이가? 짠물에 뛰어들어서 김치가 될라 카나… 에잇!” 우주수산 아저씨는 꽃다발을 문밖으로 휙 날려버렸다. “사장님, 어제 회 특대 시킨 사람이 있었어예?” “왜요?” “줄돔 큰 것 없앴네예.” “아니, 아직 잡지 않았는데요?” “잔고기들도 거의 다 팔았고요.” “아닌데?… 어젯밤 퇴근할 때만 해도 있었는데?… 가만! 꽃다발 속에?” 사장이 얼른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주방장도 따라 나갔다. “사장님, 그 고기들, 다 꽃다발 속에 숨어 든 게 틀림없어요.” “빨리 꽃다발을 찾기나 해. 큰 돔 값이 얼만데!” “예, 예!” 사장과 주방장은 꽃다발을 찾느라 횟집 앞 주차장을 헤매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꽃다발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꽃, 꽃다발이 어디 갔어?” “정말, 그새 어디로 간 거야? 흔적도 없어.” “…저, 저기!” 뒤따라 나온 우주수산 아저씨가 소리쳤다. “어디?” ”어디요?“ “저기, 저기예!” 대성당 위로 로켓 모양 물체 하나가 올라가고 있었다. 분홍 몸체에 줄무늬 문 같은 게 달려 있었다. 줄무늬 문 안으로 오글오글 바글바글 손님들이 타고 있었다. “비행접시다! 제보해야지.” 징-칙! 지나가던 청년이 디카를 눌렀다. “미사일이다!” 찰칵! 지나가던 초등생도 손전화를 눌렀다. “물고기 꽃다발, 삼각산 너머로 가버렸지요?” “낮달 속으로 들어갔어!” “우주로 날아갔습니더!” 사장과 주방장, 우주수산 아저씨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토바이를 탄 청년 하나가 가던 길을 되돌아와 소리를 질렀다. “누구예요? 남이 싣고 가는 시험용 폭죽에다 꽃다발을 던진 사람이… 폭죽 값이 얼만지 알아요? 오늘 연구소에서 발사 시험을 해야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근데 저 폭죽이 왜 터지지 않고 날아가기만 하지?” ●작가의 말 지난 겨울, 아들 졸업식이 있었다. 2월 하순은 꽃들에겐 추운 날씨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꽃다발 속 꽃들에게 참 미안했다. 축하 오찬을 하러간 횟집 수족관 물고기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에게 찰나적인 즐거움을 위해 바쳐진 그 순간이, 저들에겐 한평생 온힘을 다해 일군 가장 빛나는 순간인 것을. 그들에게 영원한 아름다움을 주기 위해 이 동화를 썼다. ●약력 199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가작. 제13회 계몽사 아동문학상 장편동화 부문 당선. 경남아동문학상 수상. 영남 아동문학상 수상. 제7차 교육과정 5학년 국어교과서에 ‘울타리속 비밀’ 수록. 펴낸 책으로는 ‘아빠는 짜리몽땅’, ‘안녕하세요?’ 등 다수가 있다.
  • [열린세상]‘말’의 가치를 찾아서/이기웅 열화당 대표·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열린세상]‘말’의 가치를 찾아서/이기웅 열화당 대표·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말이 넘친다. 넘쳐서 시궁창이거나 쓰레기 더미를 이뤄 악취를 풍기며 우리 주위에 널브러지고 있다.” 이 같은 묘사를 가능하게 하는 풍경이 도처에 벌어지고 있음을 공감하실 터이니, 나의 이런 무례한 표현을 용서하시기 바란다. 실은 이런 말도 가급적이면 삼가야 할 터이나 어쩌랴. 이 같은 풍경을 아무도 꼬집지 않는다면, 모두들 세상 꼴이 옳게 돌아가는구나 하고 믿거나, 아니면 자포자기하거나 할 것이기에, 저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철없는 어린이처럼 그저 보이는 대로 ‘말’에 관해 소리쳐 볼까 한다. 우리나라에서 종이로 찍어 내는 인쇄물의 양은 엄청나다. 통계로 보면 놀랄 정도다. 간단한 팸플릿에서부터 홍보물, 여러 잡지와 책자, 각종 단체가 만들어 내는 무의미한 인쇄물, 남용되는 일회용 종이 제품과 여러 종류의 휴지들. 참으로 끔찍한 모습 아닌가. 종이 소비량이 그 사회의 문화 수준을 말한다는 말은 이제 허구다. 펄프의 낭비는 말할 것 없고, 그 위에 찍혀 나오는 글이나 정보들의 하찮음을 비롯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디자인들은 그것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막대한 해악(害惡)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데 더 큰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 외국에서 적당히 베껴 온 온갖 것들을 다시 베끼고, 베껴 온 것을 베낀 것을 다시 베끼고, 어느 누군가가 잘못 베낀 것을 이리저리 뜬금없이 모방하고, 그리하여 자신의 창조성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남의 창조성까지도 그 원형을 왜곡하거나 창조의 원천까지도 망가뜨리는 총체적 ‘바보들의 행진’이 이어지는 사회,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올바로 보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나는 독일의 큰 공구(工具)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회장이 직접 우리를 맞으며 자신의 회사를 소개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러 가지 공구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 해에 삼사십만 개 팔리는 아주 대중적인 공구가 있는가 하면, 몇만 개 또는 몇천 개 팔리는 공구가 있고, 몇백 개만이 만들어지는 것도 있지만, 겨우 스무 개 정도밖에 팔리지 않는 공구도 있답니다.” 그러더니 그는 아주 결정적인 이야기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저는 한 해에 스무 개 정도밖에 팔리지 않는 이 공구의 생산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이 공구야말로 ‘공구를 만드는 공구를 만드는 공구를 만드는 공구를 만드는 공구’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다양한 공구의 가장 어미 되는 공구죠. 어머니가 없다면 이 세상의 어떤 사물도 존재할 수가 없다는 원리는 매우 소중합니다.” 스무 개밖에 팔리지 않는 것이란, 만들기도 어렵지만 그만큼 팔기도 어렵다. 그러니 시장논리에 따르면 이런 제품은 만들 수도 없고 만들어서도 안 되는 상품이다. 그럼에도 회장은 이 공구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시장원리를 어기는 무식쟁이란 말인가. 아니다. 긴 안목으로 시장의 원리를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말’이라는 도구도 마찬가지이다. ‘말’이란 인간이 만든 도구 가운데 가장 원리적이고 원형적인 존재다. 문자로 표현되는 ‘글’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 ‘책’도 마찬가지다. 모든 도구의 원천이 되는 존재다. 가장 많이 팔리는 공구들처럼 많이 팔리고 대중적인, 얼핏 보면 가장 시장성이 있어 보이는 말이나 글이나 책의 생산에만 경쟁적으로 몰입한다면 우리는 어찌 되겠는가. 말을 다루는 모든 이들은 독일 공구 회사 회장의 말에 귀 기울여 보아야 한다. ‘말을 만드는 말을 만드는 말을 만드는 말을 만드는 말’ 곧 ‘가장 어미 되는 말’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그리하여 신문, 잡지, 책, 각종 팸플릿, 문서, 간판, 도로표지판, 문패, 명함, 수첩, 글씨 쓰기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온갖 말들의 품격과 고도한 내재적 가치를 생각하는 일이 소중할 터이다. ‘어미가 되는 말들’을 찾아서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생각과 말의 가치를 찾아서 눈을 뜨자. 이기웅 열화당 대표·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 서울 도봉서원일대 문화재지정

    서울시는 경관이 빼어나고 유적이 비교적 잘 보존된 도봉구의 도봉서원 터와 주변 계곡, 글씨가 새겨진 바위들을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30일 밝혔다. 도봉서원은 조선시대 대표 성리학자 조광조와 송시열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사액서원(왕으로부터 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이다. 이항복 등 저명한 시인들이 시문을 남긴 서울의 대표적인 서원 중 하나다.1871년(고종 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유적 대부분이 사라져 현재는 1970년 원래의 기단 위에 복원한 사당만이 남아있다. 특히 이곳은 서울 지역의 다른 서원과 달리 사당의 기단과 14개의 글이 새겨진 바위 11개가 서원 터 앞 계곡에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유적의 경계를 비교적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효종때 북벌주도 이후원 묘역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

    효종때 북벌주도 이후원 묘역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

    조선 효종 때 우의정을 지내며 북벌(北伐) 계획을 주도한 완남부원군 이후원(1598∼1660년)의 묘역이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된다. 서울시는 원형이 잘 보존된 강남구 대모산 동남쪽 자락의 이후원 묘역 일대가 개발과정에서 훼손되지 않도록 시 기념물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이후원의 묘역은 그의 두 아내가 함께 묻혀 있는 무덤과 제물과 향 등을 올려놓는 상석, 무덤 양옆에 세운 망주석 등으로 이뤄졌다. 다른 사대부 묘역과는 달리 봉분을 돌(호석)로 두르고 해치상이 배치된 점이 특징이다. 조선 후기 대표적 성리학자 송준길과 송시열이 각각 비문과 추모의 글을 짓고 명필인 이정영이 비문의 글씨를 썼다. 이후원은 광평대군 이여(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5번째 아들)의 7세손으로 인조 때의 공신이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사각사과 드시고 사각모 꿈 이루세요

    “합격 사과 드시고 대학에 합격하세요.”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0여일 앞둔 27일 충북 충주시 연수동 이종범(60)씨 사과밭에서는 ‘네모난 사과’ 수확이 한창이다. 네모난 사과를 수확하는 곳은 전국에서 충주가 유일하다.충주시 농업기술센터가 2003년 전국 처음 개발한 이 사과는 열매를 맺은 지 40여일이 지났을 때 네모 모양의 투명 아크릴 상자를 씌워 사과열매가 자라면서 육면체 모양을 띠게 한 것이다. 아크릴 상자에다 봉지까지 씌워 농약이 묻지 않게 재배해 친환경 농산물로 인기를 끌고 있다.사과에 ‘합격’이나 ‘고득점’이라는 글씨를 새기고 대학을 상징하는 사각모자 스티커까지 붙여 ‘대학 사과’로도 불리며 수능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이 많이 찾고 있다.네모 사과는 일반 사과보다 3~4배 비싼 개당 8000~9000원씩에 팔리고 있다. 농가에서 생산한 사과는 충북원예농업협동조합을 통해 중·대형 유통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재미있는 모양으로 채소를 재배하는 것을 보고 네모난 사과를 생산하게 됐다.”면서 “한 해 8농가에서 3만개 정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충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함안 성산산성서 신라목간 31점 추가 출토

    경남 함안에 위치한 성산산성(사적 67호)은 국내 최대의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무판) 출토 지역이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1991년부터 학술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이 산성에서는 최근까지 총 246점의 목간이 나왔다. 국내에서 전체 발굴된 목간 500여점의 절반에 달하는 양이다. 국립가야문화연구소는 27일 함안 성산산성 발굴조사현장에서 목간 31점과 자연유물 등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목간들은 6세기 중엽 것으로, 앞서 출토된 것들과 마찬가지로 신라가 이 산성을 축조할 때 여러 지방에서 보내온 식량·물품에 붙어있던 꼬리표였다. 여기에는 ‘仇利伐(구리벌)’, ‘及伐城(급벌성)’ 등의 지명과 ‘稗(패)’, ‘稗麥(패맥)’ 등 피와 보리 같은 곡물명이 대부분 기록돼 있다. 또 이번에는 네 면 모두에 글씨를 쓴 목간이 처음으로 출토됐다. 거기다 부엽공법(敷葉工法·나뭇잎·가지 등을 깔아 기초를 다지는 토목공법) 구간에서 목간·토기 등과 더불어 동물뼈, 조가비, 씨앗 등 자연유물 600여점도 함께 발견됐다. 연구소 이성준 학예연구사는 “보통 다른 지역에서는 일부 저수지 등에서 퇴적된 목간이 우연히 발굴되는 정도지만, 성산산성은 부엽공법 구간에 목간을 재료로 넣었기 때문에 출토량이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 서울·하얼빈 등서 기념식

    26일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국내·외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서울과 중국 하얼빈 현지에서는 각각 기념식이 열렸고 하얼빈에서 철거돼 국내를 떠돌던 안 의사의 동상도 경기 부천에 자리잡았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안 의사가 생전에 남긴 글씨와 그림을 모아 특별전을 개최했다.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 앞 광장에서 ‘백년의 애국, 천년의 번영’이라는 주제로 열린 기념식에는 정운찬 국무총리와 정부 관계자, 시민 등 12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안연호(72·손녀), 토니 안(46·증손자), 황은실(81·외손녀·이상 미국거주)씨와 황은주(78·외손녀·국내 거주), 김영금(71·외조카·중국거주)씨 등 안 의사의 유족 17명도 자리를 함께 했다.행사 참석자들은 기념식을 마친 뒤 남산의 ‘안중근의사기념관’ 건축 현장을 둘러보고 공사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기념관은 공사비 150억원을 들여 지상 2층, 지하 2층의 전체면적 3800㎡ 규모로 건립되며 내년 10월 완공된다.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안중근의사 친필 유묵 34점 한곳에

    안중근의사 친필 유묵 34점 한곳에

    안중근(1879~1910) 의사는 중국 뤼순 감옥에서 사형이 언도된 1910년 2월14일부터 3월26일 순국까지 최후 40여일간 글씨를 써서 남겼다. 유묵의 수신자는 모두 일본인이다. 이에 대해 안 의사는 옥중에서 쓴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서 “법원과 감옥의 일반 관리들이 내 손으로 쓴 글로써 필적을 기념하고자 비단과 종이 수백 장을 사 넣으며 청구하였다. 나는 부득이 자신의 필법이 능하지도 못하고, 또 남의 웃음거리가 될 것도 생각지도 못하고서 매일 몇 시간씩 글씨를 썼다.”고 밝혔다. ●日 류코쿠대 소장품 3점 국내 첫 공개 지금까지 확인된 안 의사의 친필 유묵은 50여점이다. 이 가운데 34점이 100년 만에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공개된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안중근 의사 의거와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26일부터 내년 1월24일까지 여는 ‘안중근-독립을 넘어 평화로’ 특별전에서다. 이들 유묵은 안 의사의 손때가 묻은 유일한 유품임에도 지금까지 한 곳에서 전시되거나 체계적으로 연구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에 전시되는 유묵 34점은 국·공립박물관 및 개인 소장 국가보물 20점과 미공개 작품 5점, 일본 소장품 7점, 중국과 미국 소장품 각 1점 등이다. 서예박물관은 이들 유묵을 내용별로 정리해 ▲독립·평화 ▲의거·순국 ▲인간 안중근 등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독립투사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동양평양론’을 주창한 사상가, 종교인, 선비로서의 안중근을 복원시킨다. 특히 일본 류코쿠(龍谷)대의 소장품 3점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어서 주목을 끈다. 또 안 의사의 유묵 내용 중 가장 널리 알려진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의 실물(동국대박물관 소장)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도 드문 일이다. 서예박물관 이동국 학예사는 “안중근 글씨의 서체 및 서풍은 엄정 단아한 해서와 해행이 주가 되고 있는데, 한 글자 한 글자 모두가 침착 통쾌한 안중근의 성정 기질이 그대로 녹아 있다. 또 유묵의 내용은 안중근의 사상과 실천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안중근 실존의 삶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의거서 순국까지 담은 사진원본도 이번 전시에는 이들 유묵 외에 의거에서 순국까지 5개월간의 과정을 담은 사진 원본 28점과 관련 자료 10점이 함께 공개된다. 1909년 10월20일 이토 히로부미 일행이 뤼순 이룡산에 올라 러시아군 전몰자의 무덤에 참배한 뒤 찍은 사진과 의거 다음날인 1909년 10월27일 하얼빈에 도착한 안 의사의 부인 김아려 여사와 두 아들의 사진은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체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찍은 안중근 의사의 상반신 사진 원본도 전시된다. 전시회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안중근 동양평화학교’특강이 열린다.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김호일 안중근 기념관장, 김우종 중국 하얼빈대 교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강사로 참여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205가지 우리말 상차림

    내가 어쭙잖은 글이나마 몇 줄 끼적거리며 그런대로 먹물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세 뭉텅이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 시작되어 거의 1년 반 동안 지속된 종로서적 시절이다. 나는 저녁마다 그곳으로 출근해 선 채로 몇 시간씩 책장을 넘겨대곤 했다. 주로 시와 소설을 읽었는데, 시는 가영심에서 황명걸까지 가나다순으로 시집 코너에 꽂혀 있는 시집 전부(어느 날 시집 코너에서 버릇처럼 시집을 집으려다 이제는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음을 발견했을 때의 기막힘이라니)를 말 그대로 독파(讀破)했고, 소설도 열 권에 한 권 정도는 좋이 읽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제대하고 나서 복학하기까지 경기도립도서관에서 보낸 세월이다. 군대에 있을 때 내가 늘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은 활자에 대한 허기(虛飢)였다. 언어의 성찬이 뷔페식(그때쯤 도서관 이용 방식이 폐가식에서 개가식으로 바뀌었다)으로 차려진 도서관을 거처로 삼은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람실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엄청난 식욕으로 활자들을 먹어치웠다. 하루에 적어도 두 권씩은 해치웠을 것이다. 세 번째는 복학하고 나서 졸업까지의 세 학기다. 나는 이 1년 반 동안 ‘사창가’에서 살았다. 아, 지금도 그리운 학교 도서관 ‘사층 창가’, 줄여서 ‘사창가’에서 나는 도서관에 있는 사전과 소설책을 뒤지면서 토박이말 낱말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깨알 같은 글씨로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때 인터넷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지만, 그랬더라면 절대로 그렇게 진득하게 작업에 매달릴 수 없었을 것이다. 11년 전에 그 작업의 결과가 ‘한겨레 말모이’라는 책으로 묶여서 세상에 나왔다. ‘말모이’는 ‘사전(辭典)’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전은 가끔 뒤적이면서 ‘발견의 기쁨’은 누릴 수 있을지언정 아무래도 독서의 대상은 아니다. 그리고 국어사전 속에는, 그리고 내가 만든 ‘말모이’ 속에는 그냥 묻어두고 말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말들이 금광의 노다지처럼 숨어서 반짝이고 있다. 국어사전은 싱싱한 횟감들이 헤엄치는 바다이고, 말과 소들이 뛰어노는 농장이며, 온갖 열매와 풀들이 올차게 자라는 들판이다. 나는 이것들을 밑감으로 요리를 만들고 싶어졌다. 이 책 ‘우리말은 재미있다’(하늘연못 펴냄)는 내가 국어사전에서 낚아 올리거나 사냥하거나 캐낸 밑감들을 가지고 있는 솜씨, 없는 솜씨를 다 발휘해서 만든 205가지 요리로 채워져 있다. 한식은 기본으로 있고, 중식이나 일식, 가끔가다 서양식이나 퓨전 요리도 등장한다. 늘 따끈하게 데워져 있으니 그저 숟가락 들고 덤비기만 하면 된다. 먹기 쉽고 소화가 잘 되라고 원고지 다섯 장 낱개 포장으로 되어 있으므로, 부담 없이 하루 세 번씩 마음의 양식 삼아 드시면 두세 달 후에는 ‘우리말 달인’까지는 몰라도 우리말 학사학위 정도는 받은 셈 쳐도 될 것이다.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에서 가려 뽑은 예문은 후식으로 즐기시기를. 장승욱 프리랜서PD·작가
  • [한글날 3제] 최현배선생 손수 첨삭… 한글사랑 곳곳에

    [한글날 3제] 최현배선생 손수 첨삭… 한글사랑 곳곳에

    최현배, 이윤재 선생 등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말큰사전’ 편찬작업에 참여했던 학자들의 한글사랑 혼이 깃든 생생한 원고를 일반인들이 볼 수 있게 됐다. 국가기록원은 563돌 한글날을 맞아 9일부터 ‘조선말 큰사전’ 수고(手稿·손으로 쓴 원고)와 발간에 관한 각종 기록을 나라기록포털(http://contents.archives.go.kr)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제공한다고 8일 밝혔다. 조선말 큰사전은 지난 1929년 조선어학회 학자 108명이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하면서 본격적인 발간 작업에 들어갔다. 앞서 조선총독부가 ‘조선어사전’을 발간하면서 국어의 뜻풀이를 일본어로 한 것에 슬픔과 분노를 느껴 우리 글을 우리글로 풀이한 사전을 만들기 위해 한데 뭉친 것이다. 조선어학회는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하는 등 열정적으로 편찬 작업을 진행했지만,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인해 중단됐다. 일제는 당시 조선어학회 학자 31명을 투옥하고, 이들이 손으로 썼던 조선말 큰사전 원고 2만 6000여장을 압수했다. 압수됐던 원고는 행방이 묘연했다가 광복 직후 서울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발견됐다. 이후 후학들이 이 원고를 바탕으로 편찬작업을 계속해 1957년 10월9일 6권이 완간됐다. 조선어학회 학자들이 당초 썼던 원고는 총 17권 분량(각각 200~400쪽)이었지만, 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6권으로 압축됐다. 국가기록원은 이중 25장의 원고를 온라인을 통해 제공할 예정이며, 나머지 부분을 열람하고 싶은 사람은 독립기념관 등에 문의하면 된다. 공개하는 원고에는 당시 학자들의 한글에 대한 애정이 담긴 손글씨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곳곳에서 첨삭을 한 흔적 등을 엿볼 수 있다. 또 순수 우리말에 대한 자세한 연구 흔적도 살펴볼 수 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조선말 큰사전 수고는 일제강점기 때 편찬을 시도한 최초의 한글사전의 원고인 만큼 희귀성 측면에서 가치가 높다.”며 “대중 공개는 한글의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안중근의사 순국前 사진원본 국내 첫 공개

    안중근의사 순국前 사진원본 국내 첫 공개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의거(19 09년 10월26일) 100주년을 앞두고 안 의사가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다 순국하기 전까지 5개월간의 과정을 담은 사진 원본과 감옥에서 남긴 글씨가 8일 국내에 처음 들어왔다. 이들 사진 27점과 유묵(遺墨·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 3점은 일본 류코쿠(龍谷)대가 소장품을 대여한 것으로, 국내에서는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이들 사진과 유묵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26일부터 내년 1월24일까지 ‘독립을 넘어 평화로’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체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찍은 것으로 보이는 안중근 의사의 상반신 사진은 코트를 입은 가슴에 수형 번호가 적힌 리본을 달고 양손을 가슴에 모아 왼손 약지 단지 흔적이 선명하게 보인다. 서예박물관 이동국 학예사는 “이제까지는 원본을 복제한 희미한 복사본 사진만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 100년 전 안중근 의사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차 고국 땅을 밟은 안중근 의사 유묵 3점은 논어의 경구인 ‘不仁者不可以久處約’(불인자불가이구처약·어질지 않은 자는 곤궁에 처했을 때 오래 견디지 못한다)과 ‘敏而好學不恥下問’(민이호학불치하문·민첩하게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중용의 경구인 ‘戒愼乎其所不睹’(계신호기소불도·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 경계하고 삼간다)를 적었다. 유묵은 모두 사형집행 직전인 1910년 3월에 쓴 것으로 약지의 단지 흔적이 있는 왼손을 눌러 찍은 안 의사의 장인(掌印)이 있다. 27장의 사진 중에는 면회 온 정근·공근 두 아우와 프랑스인 신부 홍석구(조세프 빌레앙)에게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라고 유언을 남기는 모습, 호송마차를 타고 형무소에서 법원으로 재판을 받으러 가는 광경, 의거에 사용한 브라우닝식 연발 권총과 탄환을 찍은 사진 등이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서울광장] 다시 펄럭이는 새마을 깃발/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다시 펄럭이는 새마을 깃발/육철수 논설위원

    일전에 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을 보고 한바탕 웃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고향 포항에 갔다가 ‘아이스케키 통’을 어깨에 메고 있는 장면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지체가 하늘만큼 높아졌는데도 아이스케키 통을 멘 자세가 어쩌면 그리도 잘 어울리던지…. 그래서 그만 웃음보를 터뜨리는 ‘결례’를 저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컥하면서 뭐가 올라왔다. 대통령의 감회어린 표정 뒤에 전쟁통에 유년·청년기를 보내면서 먹고살려고 발버둥쳤던 모습이 어른거려서였다. 가난했던 시절을 잊지 말라며 고향 주민들이 마련했다는 아이스케키 통은, 1970년대 온 나라가 새마을운동 열풍에 휩싸였던 때로 기억을 자연스레 옮겨 놓았다. 대통령과 시대의 역경을 함께한 또래들이 청·장년이 되어 새마을운동 현장의 중추 역할을 한 것도 가난을 어느 세대보다 뼛속 깊이 체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새마을운동 초기에 유년기를 보낸 나도 적잖은 추억을 갖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작사·작곡했다는 ‘새마을 노래’를 입이 아프게 부르고 귀가 닳도록 들었다. 노래가 짧기나 한가. 4절까지 밤새 외워 다음날 선생님 앞에서 ‘씩씩하고 명랑하게’ 불러대느라 고생깨나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당시 ‘새벽종이 울렸네~’는 기상나팔이었다. 매일매일 한 집에 한 명씩 ‘작업병’을 불러내 삽이나 곡괭이, 싸리빗자루를 들고 나가 동네 환경작업에 동원됐다. 철없던 나이라 그저 동네 잡일을 하는 게 고역스러웠을 뿐, 그게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엄청난 환경개선·정신계발 운동이란 걸 알 턱이 있었겠나. 새마을운동이 요즘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나라 안에서 재조명이 활발하고, 나라 밖에서는 그 인기가 폭발적이란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는 아예 한글로 ‘새마을’ 글씨가 뚜렷이 새겨진 초록색 깃발을 마을 한가운데 신주처럼 모셔놓고 벤치마킹이 한창이다. 군사독재나 유신의 잔재로 여겨 내팽쳐 놓은 사이에 새마을운동은 개발도상국에서 환경개선과 정신개조, 빈곤퇴치 캠페인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를 숨막히게 이루며 달려오는 동안 우리는 정말 소중한 것 하나를 잃을 뻔했다. 새마을운동의 뿌리는 우리의 미풍양속인 ‘향약’이나 ‘계’에 있다. 전통적 공동체 정신을 박 전 대통령이 국민정신으로 계승·승화시킨 것이다. 개발과 압축성장 시대에 벌써 지금의 세계적 화두가 된 녹색환경시대까지 내다본 국가지도자의 안목이 참 놀랍다. 며칠전 박 전 대통령의 고향 경북 구미에서 ‘대한민국 새마을 박람회’가 열린 것은 그래서 의미가 남다르다. 경상북도는 박람회를 계기로 새마을운동을 지구촌 빈곤퇴치에 불을 지피는 명품 브랜드로 육성하겠단다. 때마침 농촌진흥청도 ‘푸른농촌 희망찾기’ 운동을 시작한다. 국민의식의 선진화를 최종 목표로 한 제2녹색 새마을운동이란다. 21세기의 농촌은 새로운 희망이다. 전원생활과 제2인생을 꿈꾸고 귀농하는 60~70대 ‘아이스케키 세대’와 젊은 도시 직장인들, 현지 농업인 등이 새로 공동체를 꾸려 살아가야 할 곳이다. 그래서 시대는 염치없이 또 아이스케키 세대의 지혜와 경험과 땀을 요구한다. 여기에 젊은 세대의 창의력,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체계적 지원을 잘만 보태면 새마을운동을 미래의 녹색환경운동으로 또 한번 세계의 자랑거리로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특별한 잔치’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특별한 잔치’

    25일 경기 일산시 흰돌마을 4단지 안 광장.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인 이곳에서 추석을 일주일여 앞두고 특별한 잔치가 열렸다. 4단지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거주민 할머니 3명의 팔순잔치를 벌인 것. 잔칫상에 놓인 색색가지 음식과 함께 재봉틀, 결혼 청첩장 등 할머니들의 손때묻은 삶이 담긴 각종 전시물도 눈에 띄었다. 잔치의 주인공은 김수영(89), 강신수(83), 현경희(83) 할머니. 이들은 분홍색, 옥색 옷이 어우러진 한복으로 갈아입고 모처럼 화장도 곱게 한 채 연신 웃음꽃을 피웠다. 단지 안에 있는 사회복지관이 지난 7월부터 보수공사에 들어가 모일 기회가 없었던 주민들은 처음엔 서먹하게 다가왔지만 이내 잔치떡을 나눠먹으며 한마음이 됐다. 삼삼오오 모여든 4단지 주민들은 강 할머니가 60여년간 보관해온 재봉틀과 현 할머니가 50년 동안 아껴온 작은 장롱 등을 신기한 듯 만져봤다. 김 할머니가 내놓은 남편과의 연애편지, ‘소화(小和) 16년 음력 7월26일’이라는 글씨가 찍힌 결혼 청첩장, 어머니 유언장이 담긴 액자는 평생의 이력이었다. 주민 강은정(52·여)씨는 “70년된 청첩장이면 내 나이보다 많다.”면서 “그동안 자주 보지 못했던 이웃들과 이렇게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좋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사회적 기업인 공공미술 프리즘이 기획하고 일산 거주 어린이 기자단 4명이 도왔다. 어린이 기자단은 지난달부터 할머니들 댁을 방문해 인터뷰를 한 뒤 80여년의 삶을 기록하고 전시될 물품도 수집했다. 내년이면 아흔이 되는 김 할머니는 “흰돌마을이 들어선 1995년 입주했으니 ‘403동 1009호 할머니는 터줏대감’이라는 소릴 듣는다.”고 한다. 402동 1403호 주민인 강 할머니는 “동생 셋을 공부시키느라 17살부터 바느질을 시작해 76살까지 계속했다.”면서 “결혼도 안하고 혈혈단신인 내게 재봉틀은 남편이고 자식이다.”고 돌아봤다. 현 할머니는 “평소 아이들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찾아와 말벗이 돼 줘서 고마웠다.”고 전했다. 어린이 기자단의 변진휘(13) 학생은 직접 낭독한 축하편지를 통해 “이번 기회에 할머니들의 앞서간 삶을 느꼈다.”면서 “앞으로 할머니들을 자주 찾아뵙고 손자처럼 대해 드려야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길이 3.8m ‘세계에서 가장 큰 붓’ 공개

    좋은 작품을 만드려면 이 정도 ‘도구’는 있어야… 중국의 한 남성이 세계에서 가장 큰 붓으로 붓글씨 쓰기에 도전해 화제다. 쓰촨성 난충시에 사는 허원쥔은 대형 붓으로 서예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다. 그는 최근 길이 3.8m, 무게 52㎏의 붓으로 광장을 가득 메운 거대 화선지에 글씨를 쓰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몇 개월에 걸쳐 손수 제작한 이 붓은 말꼬리 수 백개를 합친 것으로, 먹물 45㎏까지 흡수할 수 있다. 그는 최근 세계 기네스 협회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붓’의 타이틀을 거머쥐는데 성공했으며, 중국 각계에서 여는 행사에 초청돼 일약 ‘서예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세계 기록을 가지게 돼 매우 기쁘다.”면서 “나는 매 년 더 큰 붓을 만드는데 열중한다. 붓을 만든 뒤에는 이를 이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어떤 때에는 1년 이상 걸릴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허씨는 올 1월에도 난충시 광장에서 대형 붓으로 서예를 하는 퍼포먼스를 펼친 바 있다. 대형 붓으로 소의 해를 뜻하는 ‘우’(牛)자를 써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그는 2010년에도 신년기념 서예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경북 봉화 청량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경북 봉화 청량산

    청량산(870m)은 낙타의 등처럼 생긴 12봉우리(육육봉)의 웅장한 기상이 일품인 산이다. 중부 내륙의 첩첩산중에서 청량산의 아름다움을 알아본 사람은 퇴계 이황이었다. 퇴계는 청량산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싫었다.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흰 기러기뿐. 기러기가 날 속이랴 못 믿을 건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주자(魚舟子)가 알까 하노라.”라고 읊으며 청량산에 대한 짝사랑을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아예 청량산인으로 고쳐 불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퇴계 덕분에 청량산은 널리 알려져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경북 내륙의 오지 중의 오지였던 봉화가 요즘 뜨고 있다. 예전에는 수도권에서 5∼6시간 걸렸지만 지금은 길이 좋아져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접근성이 좋아진 덕분에 청정한 오지의 자연이 관광자원으로 거듭난 것이다. 매년 열리는 은어축제와 송어축제, 그리고 올해 초에 상영해 큰 인기를 누린 영화 ‘워낭소리’ 촬영지, 또한 5월에 개통한 국내 최대 규모의 청량산 하늘다리를 찾는 인파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청량산은 전체적으로 험하지만 비탈과 봉우리 사이를 부드럽게 타고 도는 산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산행 코스는 입석에서 시작해 응진전, 어풍대, 김생굴을 차례로 거쳐 자소봉(840m)에 올랐다가 능선을 타고 하늘다리를 찍고 청량사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거리는 약 5㎞, 4시간쯤 걸린다. 청량산 입구에서 산으로 들어가려면 낙동강을 건너야 한다. 옛 선비들은 이곳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배 안에 올라 갓끈을 풀어 땀을 닦던 퇴계는 강물에 흔들리며 얼마나 설레었을까. 그러나 지금은 차를 타고 널찍한 다리를 몇 초 만에 건너 버린다. 참으로 분위기 없는 입산이다. 다리 건너 2㎞쯤 떨어진 입석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산길 초반엔 급경사… 10분쯤 지나면 순해져 산길은 초반부터 급경사가 이어지지만 10분쯤 오르면 순해지면서 금탑봉 아래 다소곳이 들어선 응진전이 눈에 들어온다. 응진전 뒤로 보이는 큰 암봉 위에 작은 바위가 올려져 있는데, 이를 동풍석(動風石)이라고 한다. 저절로 움직인다는 전설의 바위다. 예전에 어떤 스님이 이곳에 절을 지으려 했다. 그런데 암봉 위에 바위가 있는 걸 보고 스님이 올라가 떨어뜨렸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그 바위가 도로 올려져 있어 절을 짓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응진전 안에는 특이하게도 16나한상과 함께 공민왕의 부인인 노국공주가 모셔져 있다. 공민왕과 함께 홍건적의 침입 때 피란 온 노국공주가 손수 16나한을 깎아 응진전에 모시고 홍건적 퇴치와 국가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응진전을 지나 모퉁이를 돌면 청량산 최고의 전망대인 어풍대가 나온다. 어풍대는 천 길 벼랑으로 철 난간 쪽으로 가까이 가면 청량산 육육봉이 연꽃처럼 펼쳐지고 그 안 꽃술자리에 청량사가 포근히 안겨 있다. 과연 청량사의 자리는 청량산의 기운이 모이는 기막힌 명당이다. 어풍대를 지나면 신라 최치원이 마시고 머리가 좋아졌다는 총명수, 명필로 유명한 김생이 은거하며 글씨를 썼다는 김생굴을 차례로 지난다. 이어 길은 어풍대에서 보았던 암봉들 사이를 이리저리 부드럽게 휘돌아가며 자소봉에 이르는데, 그 오묘한 조화에 힘든 줄 모른다. 코가 닿을 듯한 급경사 철계단을 오르면 자소봉 정상이다. ●북쪽 멀리 백두대간 소백산 구간이 아스라이… 스님들은 보살봉, 주민들은 탕건봉으로 부르는 자소봉은 청량산의 실질적인 정상이다. 청량산 최고봉인 장인봉보다 40m쯤 낮지만 육육봉의 중심축을 이루며 그 생김새가 수려하기 때문이다. 북쪽 멀리 웅장하게 흘러가는 백두대간 소백산 구간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자소봉을 내려오면 본격적인 능선길이다. 탁필봉과 연적봉을 우회해 급경사 철계단을 내려오면 뒷실고개 삼거리. 여기서 작은 고개를 넘으면 웅장한 하늘다리가 버티고 있다.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이 다리의 고도는 약 800m, 길이 90m, 지상높이 70m로 국내 최대 규모의 현수교다. 다리로 들어서니 워낙 튼튼하게 지어 흔들림이 거의 없다. 가운데 멈춰서니 왼쪽 병풍바위 뒤로 유장하게 흘러가는 낙동강이 장관이다. 하산은 왔던 길을 되짚어 뒷실고개에서 청량사로 내려가는 것이 정석이다. 뒷실고개에서 급경사 계단 800m를 쉬엄쉬엄 내려오면 청량사다. 주지인 지현스님과 신도들은 험한 산비탈에 옹색하게 들어앉은 청량사를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가꿔 놓았다. 길에는 시멘트 대신 침목을 깔았고, 정갈한 장독대, 기왓장으로 만든 수로, 아담한 찻집 등의 모습이 정겹다. 공민왕의 친필이라 알려진 유리보전 건물 앞 의자에 앉으니 기다렸다는 듯, 가을바람이 찾아와 처마 밑의 풍경을 건드린다. 저물어 가는 산사에서 기분 좋게 산행을 마무리한다. 글ㆍ사진 mtswamp@naver.com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으로 나와 영주를 거쳐 봉화에 이른다. 서울에서 3시간쯤 걸린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봉화행 버스가 07:40, 09:40, 11:50, 13:50, 16:10, 18:10에 있다. 소요시간 2시간40분. 봉화에서 청량산행 버스는 06:20, 09:20, 13:30, 17:40. 안동에서도 청량산행 버스가 05:50 08:50 11:50 14:50 17:50에 다닌다. 봉화는 질 좋은 약초를 먹고 자란 한우가 유명하다. 한약우프라자(054-674-3400)는 1++ 등심 200g이 1만 4000원으로 저렴하다. 청량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 (054)673-6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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