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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초 “치매환자 집은 이렇게 꾸미세요”

    서초 “치매환자 집은 이렇게 꾸미세요”

    서울 서초구에 치매환자와 그 가족을 겨냥한 모델하우스인 ‘치매안심하우스’가 문을 연다.서초구는 “치매환자의 집을 어떻게 꾸미면 치매 치료에 좋은지를 안내하는 치매환자 모델하우스를 전국 최초로 오픈한다”면서 “이달 10일부터 시범 운영한 뒤 17일 정식 개소한다”고 3일 밝혔다. 치매안심하우스는 염곡동의 노년층 복합문화시설인 ‘내곡느티나무쉼터’ 4층(81.55㎡)에 마련했다. 치매환자를 잘 돌볼 수 있는 아이디어로 지난해 서울시 주민제안사업에 선정돼 시비 1억원을 지원받아 조성했다. 내부는 환자방, 화장실, 거실, 주방, 기억정원(베란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시가 지난해 2월 국내 최초로 개발한 인지건강 주거환경 가이드북을 적용해 치매환자의 인지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 제작했다. 수납장마다 내부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신발, 그릇, 상의, 하의, 양말 등 글씨와 그림으로 표시된 스티커를 부착했다. 화장실 거울에는 블라인드를 설치해 치매환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거나 혼동하는 일도 없도록 했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지난 3월부터 6주간 치매 증상과 치료, 치매환자 주거환경 등의 교육 과정을 수료한 24명의 ‘안심 큐레이터’와 간호사·사회복지사·작업치료사 등 12명의 직원이 상주한다. 이들은 환자나 가족이 치매안심하우스를 찾으면 환자를 위한 공간 구성의 기본 원칙,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상 프로그램 등을 알려 준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어르신들의 건강한 노후 생활에 기여할 수 있는 치매안심하우스를 개소하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도 세심한 관리로 어르신 복지 체감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 김인숙 실종 사건…언니 집 벽면의 이상한 낙서?

    ‘그것이 알고싶다’ 김인숙 실종 사건…언니 집 벽면의 이상한 낙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김인숙씨 실종 사건’을 집중 조명했다.2004년 5월 7일 보험설계사였던 김인숙씨는 서울 삼성동 소재 호텔에서 투숙했다. 그날 이후 김인숙씨의 행방은 묘연하다. 한 남성과 함께 호텔로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됐지만, 이후 그녀가 나오는 모습은 누구도 보지 못했다. 김씨는 호텔에 연인 남씨와 함께 투숙했다. 남씨는 김씨와 함께 중국으로 떠날 약속을 한 상태였다. 출국 당일 오후 1시쯤 남자와 호텔방에 들어간 김씨. 1시간 후 방을 나선 남씨는 방청소를 거절했다고 한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남씨를 지목하고 조사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남씨에 대해 “3일만 기회를 달라고 했다. 회사도 집도 정리하고 와서 모든 것을 실토하겠다고 했다. 시간을 줬다. 증거가 없어 체포할 방법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때부터 자기가 죽인 것은 사실인데 시체를 원효대교에 버렸다, 탄천에 버렸다, 심지어 토막을 내서 버렸다. 계속 진술을 번복했다”고 밝혔다. 이후 남씨는 경찰 강압에 의한 허위자백이었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남씨가 김인숙 씨의 통장을 마음대로 쓴 혐의로 1년 6개월형을 선고했다. 남씨는 김인숙씨가 먼저 중국으로 갔을거라 생각했다 주장했다. 남씨는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을 홀로 중국에 보냈다는 것이다. 김씨는 두 딸을 둔 유부남인 남씨와 실종 당시까지 근 7년간 내연관계를 유지해왔다. 한편 김인숙씨의 출입국 기록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중국으로 보냈다는 그녀의 여행가방은 하남의 한 물류창고에서 발견됐다. 짐가방을 맡긴 이는 김인숙씨가 아니라 남씨였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직접 남씨와 만나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그는 “내가 김인숙을 죽였느냐가 궁금한거 아니냐. 그 이후에 김인숙이 나타났다는 증거가 있지 않냐. 우체국 직원이 증언하지 않았냐. 김인숙이 그 언니한테 편지를 보냈지 않냐”고 말했다. 이수정 교수는 “치밀하고 기억력도 좋은 자질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은데 기억이 편파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입장을 피력해야 할 땐 열성적으로 기억해서 진술하고 불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한다”고 분석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남씨에 대해 조사하던 중 그가 김인숙씨 실종 4년 전 또다른 사망사건에 연루됐다는 말을 들었다. 남씨의 차에서 남씨의 의붓어머니가 사망한 것. 부검 결과 사망 이유는 경추 7번뼈 골절이었다. 이수정 교수는 “진범이라면 첫 사건에서 얻은 지식으로 두번째도 빠져나갔다. 어떤 빈틈이 있을 경우에 지금 사건을 진행할 수 없는지 매우 잘 알고 있는 입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지선 교수는 “실종사건이기 때문에 살해 방법을 범인이 아니면 누구도 알 수 없는데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회유나 협박에 의해서 거짓으로 진술을 하고 있을까. 상당히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탄천, 한강, 성수대교, 원효대교 이런 식으로 진술이 바뀌는데 바뀌면서도 일관된 지점은 결국 한강다리 근처”라며 남씨의 최초 진술에 대해 분석했다. MC 김상중은 “사라진 김인숙 언니 집 현관문 바로 옆 벽면에서 이상한 글씨를 발견했다”며 “‘김인숙 549-1734, 금강빌라 C-302’. 김인숙씨 가족이 이사온 후에 생겼다는 이 낙서는 우연이라 하기엔 이상하다. 작은 기억과 단서라도 연락달라”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추사 김정희 가문 4대의 글씨 조형 예술 관점에서 조명한다

    추사 김정희 가문 4대의 글씨 조형 예술 관점에서 조명한다

    추사 김정희 가문 4대의 글씨와 추사체의 조형예술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경기 과천시 추사박물관은 다음달 1일 ‘추사 가문 글씨의 위상’ 학술대회를 개최한다고 29일 밝혔다. 추사의 증조부 월성위 김한신, 조부 김이주와 조모 해평 윤씨, 친부 김노경, 모친 기계 유씨, 동생 김명희 등 추사가의 다양한 글씨와 문서, 간찰 등이 소개된다. ‘추사 선대 글씨의 특징’, ‘추사 가문 여성들의 글씨’, ‘디자인으로 읽는 추사의 조형예술’, ‘산천 김명희의 글씨’ 4편의 논고가 발표된다. 심현섭 성균관대 교수는 논고에서 최고의 스승인 아버지 김노경의 글씨는 추사에게 직접적이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김노경·김정희를 중국 서예가 이왕(왕희지·왕헌지 부자)처럼 한국의 이김으로 칭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아시아 첫 인공망막 이식 수술 성공

    아시아 첫 인공망막 이식 수술 성공

    망막색소변성 환자 시력 개선 “1만명 국내 환자 등에 희망”국내 최초로 시력을 잃은 지 10년이 지난 중년 여성이 인공망막 수술을 통해 시력을 회복했다. 아주 강한 불빛 정도만 희미하게 감지할 수 있었던 환자는 수술 후 시력표의 큰 글씨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좋아졌다. 윤영희 서울아산병원 안과 교수팀은 지난달 26일 망막색소변성 환자 이화정(54·여)씨에게 인공망막 기기 ‘아르구스2’를 5시간에 걸쳐 이식하고 시력 회복을 위한 후속 재활치료를 진행 중이라고 29일 밝혔다.망막색소변성은 가장 흔한 유전성 망막질환으로, 태어날 때는 정상 시력이지만 이후 망막 시세포의 기능에 장애가 생겨 실명에까지 이를 수 있는 병이다. 인구 4000명당 1명꼴로 생기는 이 질환은 유전 형태에 따라 발병 시기가 다양하다. 초기에는 야맹증을 호소하다 말기로 가면 중심부 망막이 변성되면서 중심시력을 잃게 된다. 국내 환자는 1만명 수준이다. 이 질환은 약물치료가 불가능해 난치성 질환으로 분류된다. 현재 치료가 가능한 장비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안과연구소의 마크 후마윤 박사가 개발한 인공망막 기기 아르구스2가 유일하다. 후마윤 박사는 이번 수술에도 참여했다. 이 기기는 안구 내부 망막 위에 시각 정보 수신기와 백금칩을 이식하고 안경에 부착된 외부 카메라와 특수 휴대용 컴퓨터 기기를 연동해 시각 중추에 신호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미국, 유럽, 중동 등지에서도 망막색소변성 환자 230여명에게 수술이 시행됐다. 이씨는 “수술 후 도로에 차가 지나가고 있는지, 눈앞에 사람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게 돼 감격했다”고 전했다. 윤 교수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인공망막 이식 수술에 성공함으로써 국내뿐만 아니라 주변국 환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고종이 쓴 ‘한양공원비’… 불행했던 남산을 품었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고종이 쓴 ‘한양공원비’… 불행했던 남산을 품었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한양공원비는 서울 중구 소파로 57 남산케이블카 승강장에서 100여m 올라간 지점에 무심히 서 있다. 차를 타고 남산을 드라이브하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외진 곳이다. 한양공원비의 내력을 설명하는 표석이나 안내문은 없다. 비석보호용으로 보이는 사각 돌기둥 3개가 꼽혀 있다.한양공원은 기억이나 사건 목록에 없는 이름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1908년 남산 기슭 30만평을 무상임대받아 조성한 위락시설이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10년 공원 입구에 표지석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비석의 정체는 표지석이었다. 표지석 앞에 또 표지석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혼자 서 있는 상황이 이해된다. 갑신정변이 일어난 다음 해인 1885년 불과 19가구 89명에 불과하던 국내 일본인 수가 1905년 러·일전쟁 승리 후 1986가구 7677명으로 불었다. 열도에서 건너온 일본인 가족용 놀이터였다. 앞면에 새겨진 한양공원(漢陽公園)이라는 네 글자는 고종의 친필글씨이다. 1910년이면 끈 떨어진 권력이지만 황제의 글씨를 함부로 길거리에 세우지는 않았을 터인데 왜 친필을 내렸을까. 남산땅을 야금야금 잠식한 채 곳곳에 신사와 공원을 세우는 것을 보다 못한 고종이 이곳이 조선땅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지명이 들어간 비석을 하사한 게 아닌가 추측해 볼 뿐이다. 비석은 왜 이곳에 있을까. 한양공원은 공원 구실을 못했다. 일제는 공짜로 얻은 땅에 13만평 규모의 조선신궁을 짓기로 하면서 무성하던 소나무를 송두리째 뽑았다. 해방 이후 행방이 묘연하던 비석은 2002년 케이블카 승강장 근처 철조망 안쪽 풀숲에서 발견됐다. 비석 뒷면은 곰보딱지처럼 무참하게 정으로 쪼여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다. 비석 뒷면을 놓고 말이 많았다. 비석을 세우는 데 돈을 댄 친일 부역자의 명단이라는 설이 난무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가 조선신궁 건립 10주년 기념으로 발간한 사진집인 ‘은뢰’에 실린 비문 뒷면 사진을 통해 문구 대부분이 해독됐다. 전체 내용은 일본인 경성거류민단장이 쓴 평범한 ‘한양공원기’에 불과했다. 한양공원비는 홀로 남산의 불행했던 과거를 품고 비바람 앞에 서 있다.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 전재산 9000만원 기부 서부덕 할머니 ‘복지부 장관상’

    전재산 9000만원 기부 서부덕 할머니 ‘복지부 장관상’

    보건복지부는 29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2017년 행복나눔인’ 시상식을 갖고 보따리 장사로 평생 모은 9000만원을 기부한 서부덕(77) 할머니 등 일상생활에서 나눔을 실천한 개인 43명과 민간봉사단체 10곳에 장관상을 수여한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사는 서 할머니는 25세부터 50년 이상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 모은 돈 8000만원을 지역 인재 육성에 써 달라며 지난해 10월 보성군 장학재단에 내놨다. 올해 5월에는 독거노인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1000만원을 지역 복지관에 내놓기도 했다. 서 할머니와 함께 행복나눔인상을 받는 배우 한지민(35·여)씨는 2007년부터 국제구호단체의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그는 2012년 어린이 암 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기부, 2013년 군 장병들을 위한 책 2만권 기부, 2014년 시각장애인용 영화에 목소리 기부, 2017년 외국인의 한글학습용 앱 개발 시 손글씨 기부 등 재능기부와 나눔을 꾸준히 이어 가고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자살 시도한 20대 여성, 구하고 보니 ‘자살게임’ 이용자

    자살 시도한 20대 여성, 구하고 보니 ‘자살게임’ 이용자

    아르헨티나의 20대 여성이 다리에서 투신자살 시도를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현지 사회를 놀라게 한 것은 자살 소동 배후에 있는 일명 ‘자살 게임’이었다. 최근 아르헨티나 경찰은 북동부 미션 지역의 한 다리 위에서 투신하려는 27세 여성을 목격했다. 당시 이 여성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리 중간 쯤으로 이동한 뒤 오토바이에서 내려 난간으로 향했고, 순찰 중이던 경찰이 이를 보고 다가가 문제가 없냐고 물었다. 이후 여성은 격하게 저항하기 시작했지만, 경찰의 빠른 대처로 투신 직전 그녀를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당시 이 여성의 팔에는 칼로 글자를 새긴 자해 상처가 있었으며, 자신이 ‘대왕고래’ 게임 이용자였다고 고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영국에서 100명이 넘는 청소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혐의’를 받고 있는 대왕고래 게임은 일명 자살게임이라고도 부른다. 러시아에서 시작된 이 게임은 ‘큐레이터’ 혹은 ‘마스터’라고 부르는 게임 관리자로부터 미션을 받고, 24시간 내에 이를 수행하고 미션 인증사진을 보내는 규칙으로 진행된다. 문제는 이 미션에 ‘칼로 몸에 상처를 내고 이것으로 글씨 새기기’, ‘친구 때리기’, ‘공포영화 보기’ 등이 포함돼 있으며 마지막 미션은 언제나 ‘자살’이라는 사실이다. 러시아와 영국에서는 10대 학생들이 달려오는 열차에 몸을 던지거나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등의 방식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대왕고래 게임 주의보’가 내려지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같은 게임으로 자살 지령을 받은 뒤 투신자살을 시도한 이 여성은 경찰 조사를 받은 뒤 곧바로 심리상담가와 심리 치료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영국에 이어 브라질 등 세계 각국에서 유행처럼 번진 대왕고래 게임이 아르헨티나에도 상륙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게임 개발자 중 한 명인 러시아의 필립 부데이킨(21)은 지난해 체포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부안 체육교사, 여고생 40명 성추행 ‘일파만파’

    교사 2~3명 추가 성추행 의혹 트위터 등 제보… 학교 은폐 정황 전북 부안군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50대 체육교사의 여학생 성추행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피해 여학생이 40여명으로 늘고 교사 2~3명의 추가 성추행 의혹까지 더해졌다. 전북도교육청은 특별감사에 들어갔고,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25일 전북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부안여고 체육교사 A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호소한 학생들은 40명을 넘어섰다. 졸업생들의 피해 증언도 쏟아지고 있다. 학생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건 빙산의 일각”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동료 교사의 방관과 동조, 교사 2~3명의 추가 성추행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건은 학생들이 지난 1일 전북교육청 학생인권센터에 A씨가 여학생들의 신체 일부를 고의 접촉하고 성적 노리개로 취급하는 언사를 했다고 신고하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학생들은 A씨가 빈번한 욕설, 각종 기념일 선물 강요, 슬리퍼로 따귀 때리기, 무릎에 앉힌 후 안마 시키기, 수행평가를 이용한 협박 등의 행동을 했다고 진술했다. 학생들이 제보를 위해 개설한 익명 트위터 계정 ‘부안여고를 도와주세요’에도 A씨의 행태를 고발하는 200여개의 제보가 올라와 있다. 학생들은 A씨가 허벅지를 수시로 만지고 ‘사랑해’라는 말을 했다고 올렸다. A씨의 갑질에 침묵해서 미안하다며 손 글씨를 이용해 A씨의 만행을 제보한 졸업생도 있다. 한 졸업생은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진실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다. 혼자 앓지 말고 함께 견디는 선배가 있노라 위로하고 싶다”고 썼다. 학교 측의 조직적인 은폐 의혹도 제기됐다. 지금까지 수년간 피해 학생들이 A씨의 행동을 학교에 고발하면 학교에서는 합의를 종용했고 합의 과정에서 A씨의 협박이 이어지는 일들이 반복됐다. 이번에도 학교 측이 피해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접촉, 경찰에서 진술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A씨에 대한 자체 조사를 마쳤고 7월 초 징계위원회를 열어 파면 등 징계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교육청은 교사들의 추가 성추행 의혹과 학생 성적처리, 금품 수수, 교원 채용 등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한 감사도 착수했다. 전북경찰청은 학부모의 동의를 얻어 피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고 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이천시 여성 공무원의 맏언니 박회자 예산공보담당관 아름다운 퇴임

    이천시 여성 공무원의 맏언니 박회자 예산공보담당관 아름다운 퇴임

    “오늘 하루가 마지막 날이라는 각오로 최선을 다했다. 이천시 발전을 위해 즐겁게 일 해 왔기에 정말 행복했다.” 경기 이천시 여성 공무원의 맏언니 박회자 예산공보담당관이 23일 명예퇴직을 통해 아름다운 마감을 한다. 정년까지는 1년 남았지만 후배들에게 길을 터 주기위해 용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담당관은 23일자로 서기관으로 한 직급 승진 후 바로 퇴임을 한다. 1978년 공직에 첫 발을 내디딘 박회자 담당관은 39년 동안 이천시에 몸담아 오면서 수많은 사업을 추진하고 총괄해온 이천시 공직사회의 산증인이다. 특히 이천시 문화자산의 대부분을 기획하고 만들어 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설봉산 자락에 있는 이천시립 월전미술관 유치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현재 이 미술관은 이천의 명소로 자리매김 했다. 또 설봉서원과 설봉산 별빛축제도 박 담당관 손을 거쳤다. 산수유축제장 부지 매입을 주도하여 지금의 번듯한 축제장이 만들어 지기까지 큰 몫을 했다. 사무관 승진 후에는 큰 포용력과 열정으로 주민의 품으로 다가갔다. 이천시에서 주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증포동장으로 부임하여 2년 동안 주민과 소통하고 섬세하게 보듬는 한편 결단력 있는 행정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 박 담당관은 지난 2015년 지금의 예산공보담당관 자리로 오면서 진가를 발휘했다. 이천시 최초 여성 공보관으로서 언론과 시의 가교 역할을 했다. 박 담당관은 “오늘 하루가 공직생활 마지막 날이라는 각오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왔다” 면서 “훌륭한 선·후배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이천시 발전을 위해 즐겁게 일 해 왔기에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담당관은 “공직자의 덕목 중 하나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것” 이라면서 “역지사지로 민원인의 마음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부 공무원 이었던 박 담당관은 엄마로, 아내로, 공직자로, 1인 3역의 바쁜 가운데에도 붓글씨와 그림을 배우는 등 “다시 태어나도 이보다 더 열심히 살 수가 없다” 며 후회없는 공직생활을 회고했다. 이천시청 공무원 그림 동호회인 ‘가락지’의 회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그린 작품들을 모아서 22~23일 양일간 이천아트갤러리에서 회원들과 퇴임기념 전시회를 갖는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여고생 치마 올리고 ‘사랑해’ 썼다는 주장도…20명 상습 추행한 체육교사

    전북 한 여자고등학교 체육 교사가 학생 20여 명을 성희롱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해당 학교 측은 이런 사실을 몰랐다고 발뺌, 비난을 사고 있다. 21일 경찰과 이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일 학부모들은 교육지원청에 체육 교사 A씨가 학생들을 성희롱했다는 민원을 제기했다. 학부모들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이튿날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A씨가 체육 시간에 자세를 교정해주겠다는 핑계로 자신의 신체를 밀착했다고 진술했다. 1대1 면담을 하다 갑자기 치마를 들치고 신체 일부를 접촉했다는 진술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고생은 방과 후 ‘나와 사귀자’는 문자메시지를 A씨로부터 받았고, 교무실에서 특정 신체 부위에 손을 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치마를 들치고 다리에 ‘사랑해’라고 글씨를 썼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사건이 불거지자 A씨는 지난 5일부터 출근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A씨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피해 여학생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조만간 A씨를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A씨가 장기간 학생들을 상대로 범행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학교는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 학교에는 학생들이 고충을 상담할 전문교사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학교 관계자는 “학부모들의 민원을 받은 교육지원청이 학교로 통보하기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며 “사실상 학생들이 학교에 말하지 않는 이상 모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개성상인의 ‘그 집’ 켜켜이 쌓인 예술사랑… 전통의 멋, 공유하다

    개성상인의 ‘그 집’ 켜켜이 쌓인 예술사랑… 전통의 멋, 공유하다

    1917년에 태어난 인물 중에 한국의 근현대기에 활약한 유명 인사들이 유독 많다. ‘마지막 개성상인’ 송암(松巖) 이회림(1917~2007) OCI 그룹 창업자도 그중 한명이다. 신용, 검소, 성실의 3대 덕목을 생활 신조로 삼아 사업을 일구고 불모지였던 국내의 화학산업을 개척했던 송암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물론 기업의 성장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미술품 수집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개인 송암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송암의 예술사랑의 의미는 우리 전통 예술의 멋을 음미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더욱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었다. 일찍부터 고서화와 도자기 등 골동품 수집을 시작한 그는 사업의 본거지인 인천의 학익동에 송암미술관을 지어 평생 수집한 8400점의 미술품과 함께 인천시에 기증했다. 생전에 본인의 개인 재산을 기부해 설립한 송암문화재단은 그의 장학사업과 예술후원사업을 이어 가고 있다.송암문화재단 산하의 OCI미술관에서 송암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특별기획전 ‘그 집’이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송암의 사저 터에 건립된 송암회관을 전시공간으로 개조해 2010년 개관한 미술관은 그의 예술사랑 정신이 오롯이 살아 있는 뜻깊은 장소다. 전시는 옛 그림과 도자기, 말년에 정성을 쏟아 수집했던 북한 유화 등 송암이 살아생전 수집하고 사랑했던 애장품과 OCI미술관의 프로그램을 통해 육성된 젊은 작가들의 현대미술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문화발전에 기여하고자 했던 송암의 의지가 후대에 이르러 이런 결실을 거두었음을 보여 준다. 석지 채용신과 우청 황성하를 비롯해 박경종, 박종호, 양정욱, 유근택, 이우성, 이현호, 임택, 전은희, 정재호, 한상익, 허수영, 홍정욱 등 작가 14명의 작품과 작자 미상의 책가도, 도자 등으로 구성됐다. ‘OCI 영크리에이티브스’와 OCI미술관 창작 스튜디오를 거쳐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작가 8명이 신작을 출품했다.전시는 1층부터 3층까지 전시장을 따라 올라가며 집의 바깥부터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도록 짜여져 있다. 1층은 바깥세상의 풍경이다. 개성 출신 화가 우청 황성하의 10폭 산수화를 중심으로 현대미술가들이 바라보는 하늘, 숲, 산, 호수의 풍광이 펼쳐진다. 송암이 고향을 그리며 모았던 1500점의 북한 유화 중 공훈예술가 한상익이 그린 금강산 풍경 ‘삼선암에서’(1986)도 걸렸다. 2층은 석지 채용신의 ‘팔도 미인도’ 병풍, 책가도와 도자, 전은희와 정재호 작가가 그린 오래된 집의 풍경, 양정욱의 키네틱 아트 ‘어느 가게를 위한 간판’ 등이 어우러져 북적이는 거리 풍경을 연상하게 한다. 3층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 작가 박경종은 시공간을 넘나들듯 과거 송암이 사용하던 물건과 현대의 일상용품을 뒤섞어 설치해 놓았다.송암의 손녀인 이지현 OCI미술관 부관장은 “할아버지께서는 매일 아침 소공동 사무실에 출근했다가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붓글씨도 쓰고 사람들을 만나곤 하셨다”면서 “벽돌 쌓듯 차곡차곡 모아온 시간과 정성, 인연으로 만들어 낸 공간에서 작가들과 함께 할아버지의 정신을 기려 보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미술관이 된 그 집 5층에는 송암의 방이 예전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수준급 서예가였던 그가 사용했던 다양한 종류의 붓과 벼루, 연습하던 종이 더미가 은은한 묵향과 함께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책상 위에는 돼지저금통부터 ‘정로환’ 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양의 저금통이 놓여 있다. 한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던 송암은 동전이 생기면 무조건 저금통에 넣었다고 한다. 커다란 인삼주 병도 눈길을 끈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겼던 송암은 주변 사람들의 건강이 염려되면 “먹고 힘내라”는 말과 함께 6년근 인삼을 종이에 둘둘 말아 선물하곤 했다. 인삼은 개성의 특산품으로 그의 고향사랑이 담긴 격려품이었다. 송암의 첫 직장인 손창선 상점은 1000여가지의 물건을 취급하는 만물상이었다. 10대의 그는 자전거에 짐수레를 달고 주문받은 물건을 배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낡은 자전거는 성실하게 페달을 밟았던 젊은 송암을 보는 듯하다. 한국 경제사의 1세대 기업가로 부와 명예를 일군 송암은 어떻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사회에 돌려줄 수 있었을까. 책상 뒤 벽에 걸린 누렇게 바랜 액자 속의 휘호가 그 답일 것 같다. 그가 수시로 보고 마음에 새겼을…. ‘空手來空手去’(공수래공수거). 전시는 7월 1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인천시, 저소득 시각·청각 장애인 대상 TV 1500대 무료 보급

    인천시가 방송통신위원회와 함께 시각·청각 장애인용 TV 1500대를 무료로 보급한다. 인천시는 이달 말까지 저소득층 시각·청각 장애인 대상 ‘TV 무료 보급사업’ 신청서를 접수한다고 18일 밝혔다. 신청은 거주지 읍·면·동 주민센터나 시청자미디어센터 홈페이지(tv.kcmf.or.kr)에서 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저소득층 시각·청각 장애인과 국가보훈처 등록 저소득층 눈·귀 상이등급자가 신청 대상이다. 보급되는 TV는 28인치형 발광다이오드(LED) TV다. 시각 장애인용 TV는 모든 설정 메뉴가 음성으로 안내되고 리모컨 버튼은 점자가 새겨졌다. 청각 장애인용 TV는 자막 위치와 크기, 글씨·배경색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지드래곤 USB 상태 불량? YG “의도된 콘셉트” 수작업 사진 공개

    지드래곤 USB 상태 불량? YG “의도된 콘셉트” 수작업 사진 공개

    YG가 지드래곤의 ‘권지용’ USB 앨범의 붉은색 번짐 현상에 대해 의도한 콘셉트라고 설명했다. 지드래곤의 DNA와 모태 등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빨간색이 번지도록 작업한 것. 의도를 모르는 몇몇 사용자들은 “USB 앨범에서 빨간 잉크가 손에 묻어 나온다”, “불량품이다” 라며 불만 사항을 인터넷에 게재하기도 했는데, 음원 사이트에 공개된 USB 앨범 이미지를 보면 색이 번지고 스크래치가 많이 나있는 것이 의도한 콘셉트인 것. YG는 USB 앨범 판매 전 이미 사전 공지를 통해 스크래치가 나거나 색이 지워질 수 있다는 설명을 했다. YG가 얼마 전 USB앨범 제작과 공급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프린트 작업과 달리 GD가 표현하고 싶은 모태 의도와 컨셉은 USB 외관에 붉은색 번짐과 빈티지한 스크래치 등을 만들어 내야 했고, YG는 여러 시도 끝에 수작업으로 붉은색 잉크를 칠해야만 지드래곤이 원하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또한 단순히 USB 안에 음악을 담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링크와 연결해 많은 콘텐츠를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처음으로 시도한 새로운 방식이기 때문이다. USB 외부에 적힌 ‘권지용’이라는 손 글씨는 지드래곤이 태어났을 때 그의 어머니가 직접 손으로 쓴 글씨로 ‘모태’ 라는 콘셉트와 일치하는 지드래곤의 아이디어다. ‘권지용’ USB 앨범은 특정 서비스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로 음악 뿐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USB에 담고 지울 수 있다. 이미 공개된 타이틀곡 ‘무제’ MV 뿐 아니라, 지드래곤이 다른 의상을 입은 다른 버전의 ‘무제’ MV와 MV메이킹 필름 등 다양한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단독] 왜군 순절비가 경북 고령中 교훈비로 둔갑됐다

    [단독] 왜군 순절비가 경북 고령中 교훈비로 둔갑됐다

    경북 고령의 한 공립학교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이 제작한 왜군(倭軍)의 충절을 기린 순절비를 그 학교의 교훈비로 세워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순절비는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내용을 담은 ‘일본서기’를 출처로 한다. 이에 고령군의 향토사학자들은 “교육 현장에 일제 침략 잔재가 버젓이 자리해서는 안 된다”면서 조속한 철거를 요구하고, 역사교훈의 도구로 쓰자고 제안했다.14일 고령의 원로 향토사학자 등에 따르면 고령군 대가야읍의 고령중학교의 교훈비에는 원래 대가야 멸망 당시 왜군 장수였던 쓰키노기시 이키나가 이곳에서 죽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비 앞면의 ‘조이기난순절지(調伊企難殉節址) 남차랑(南次) 서’에서 알 수 있다. 뒷면에는 쓰끼노기시 아내 오오바코의 하이쿠(일본 고유시)가 새겨졌다고 한다. 쓰끼노기시는 일본 학계에서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드는 ‘일본서기’(日本書記)에 등장하는 왜군 장수로, 562년 대가야가 신라의 침략으로 멸망할 당시 출병했다가 전사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 순절비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미나미 지로(南次) 제7대 조선 총독(1936~41)이 고령 대가야읍 연조리 고령향교 인근 옛 대가야 왕궁터에 ‘임나대가야국성지비’(任那大伽倻國城址碑)와 함께 세웠다. <서울신문 6월 13일자 13면 참조> 이런 기념물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과거에 경영했으니 일제의 침략이 당연하다고 강조한 것이다.그러다 순절비는 광복이 되자 고령초교 내 대가야시대 우물터 인근으로 옮겨져 돌다리로 사용되었다. 고령중학교의 관계자가 1947년 11월 개교하면서 이 순절비의 앞면을 모두 깍아내고 교훈을 새겨 교정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앞면에 ‘굳세고 참되고 부지런하자’라는 교훈을 새겼으나 뒷면의 하이쿠는 대충 지운 탓에 일부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향토사학자들은 “비록 비석의 앞면 글씨는 모두 지워 없어졌지만, 근대기 일제 침략의 흔적을 담고 있는 비석”이라며 “새정 부에서 가야사를 연구한다니, 이 비석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일제 침략과 역사 왜곡의 교육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나일본부설은 일제강점기에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정한론(征韓論)의 역사적 근거로 활용됐지만, 일본 역사학자들은 한·일공동역사연구를 하던 2010년부터 이런 주장을 폐기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이낙연 총리 글씨체 화제…네티즌 “낙연체 만들어졌으면”

    이낙연 총리 글씨체 화제…네티즌 “낙연체 만들어졌으면”

    이낙연 국무총리의 글씨체가 소위 ‘낙연체’라 불리며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이 총리는 지난 8일 ‘대한민국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인사를 전했다. 이 총리는 친필로 “국무총리실 페친 여러분, 안녕하세요?. 기회되는대로 이곳을 통해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국민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총리, 가장 낮은 총리가 되어 늘 여러분과 함께 숨쉬며 함께 울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글을 본 네티즌들은 “글씨가 예쁘다. 섬세하고 뭔가 따뜻한 느낌”(gly***), “소녀같은 글씨체”(kgy***) “폰트체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lem***)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낙연 총리의 필체는 일명 ‘낙연체’로 불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둥글고 그림을 그린 듯한 필체가 마치 소녀가 쓴 것 같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컴퓨터에서 쓰면 예쁠 것 같다며 “낙연체 만들어주세요”라는 요청도 눈에 띄었다. 앞서 지난 1일 이 총리가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방문했을 때 남긴 방명록 또한 귀여운 필체로 화제가 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베이징대 자전거로 시작된 中공유경제… 562조원 삼키다

    베이징대 자전거로 시작된 中공유경제… 562조원 삼키다

    요즘 중국 베이징 거리는 형형색색의 ‘공유자전거’로 뒤덮여 있다. 공짜 또는 1위안(약 166원)으로 아무 자전거나 탈 수 있다. 목적지에 도착해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가지런히 세워 놓기만 하면 된다. 인민의 공동 소유를 꿈꿨던 마오쩌둥의 ‘공산경제’가 21세기 ‘공유경제’로 다시 태어나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기자는 지난 2년 반 동안 베이징대 캠퍼스에서 시작된 중국식 공유경제가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다음은 공유경제 혁명 관찰기다.2015년 가을 우연히 베이징대를 찾았다. 몇 달 전 들렀을 때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캠퍼스 곳곳에 널브러져 있던 자전거들이 노란색 유니폼을 말끔하게 입고 있었다. 자전거마다 자전거를 탄 사람을 형상화한 ‘오포’(ofo)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학생들에게 물으니 한 벤처 동아리가 버려진 자전거를 모아 공유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했다. 자전거마다 부여된 고유 번호를 휴대전화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에 입력하면 자물쇠 비밀번호가 전송돼 마음대로 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지각 걱정을 하지 않아 좋고 무엇보다 캠퍼스가 깨끗해졌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그해 겨울 수소문 끝에 벤처 동아리 책임자들의 이메일을 알아냈다. 지금은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가 직접 찾아올 정도로 유명해진 장스딩, 다이웨이, 슈에딩이란 청년들이었다. 2014년 4월 자전거 여행업을 시작했지만, 재미를 보지 못한 이들은 2015년 5월에 오포를 창립했다고 했다. 한번 만나자고 요청했으나, “외국에 있어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학연수를 갔거니 생각했다. 뒤에 안 일이지만, 이들은 펀딩을 받기 위해 해외 로드쇼를 하고 있었다. 2015년 12월 마침내 500만 달러(약 56억원)의 실탄을 마련한 뒤 이듬해부터 중국 전역의 대학에 공유자전거를 보급했다. 과거 인연을 내세워 6개월째 인터뷰 요청을 하고 있으나, 이미 글로벌 최고경영자가 된 이들은 외국언론사 담당 홍보 책임자를 통해 “다음에 보자”는 답변만 하고 있다. 2016년 초엔 상하이에서 주황색 자전거 ‘모바이크’가 출현했다. 오포보다 진화된 자전거였다. 위성위치추적시스템(GPS)과 QR 코드가 내장돼 있어 이용자들은 휴대전화 앱을 작동시켜 가까운 자전거를 찾을 수 있고 자전거에 표시된 QR 코드를 스캔하면 잠금이 풀리는 방식이었다. 오포와 모바이크의 양보 없는 경쟁인 ‘청황즈정’(橙黃之爭·주황과 노랑의 싸움)은 수많은 후발 주자를 탄생시켰다. 지금 중국에는 30여개의 공유자전거 업체가 있다. 5월 말 기준으로 1100만대가 거리에 깔렸다.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400만대였다. 이용자 수는 작년 말 2800만명에서 올해에는 2억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공유자전거는 수많은 공유 상품 및 서비스를 파생했다. 최근 선전에는 우산 2만개가 한꺼번에 거리에 뿌려졌다. ‘E엄브렐러’라는 스타트업이 배포한 이른바 ‘공유우산’이었다. 우산에 새겨진 QR 코드를 휴대전화 전용 앱으로 스캔하면 잠금이 풀리는 이 우산의 사용료는 30분에 5마오(약 83원)이다. 쓰고 난 뒤에는 어디에 놔둬도 상관없다. 선전처럼 강수량이 많은 중국 남부에는 요즘 도시별로 수천, 수만 개씩 공유우산이 깔리고 있다. 대도시 곳곳 농구장에는 지난 3월부터 자판기처럼 생긴 농구공 전용 키오스크(무인 단말기)가 등장했다. 공이 든 칸마다 표시된 QR코드를 휴대전화로 스캔하면 문이 열린다. 농구공의 사용료는 시간당 1위안. 도시 쇼핑몰에는 휴대전화용 공유배터리, 대학가에는 공유세탁기, 건설업계에서는 공유레미콘까지 등장했다. 바링허우(1980년대 출생)와 지우링허우(1990년대 출생)인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공유경제는 이미 일상이 됐다. 제일재경일보는 최근 상하이의 31세 여성 직장인 장밍바오의 하루 일과를 소개했다. 출퇴근 때 지하철역까지는 공유자전거를 이용한다. 점심시간에는 동료들과 메이퇀(음식배달앱)에서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공동 배달을 시켜 해결한다. 퇴근할 때는 데이터 공유 앱으로 집에 설치된 공유기의 와이파이를 연결해 남는 인터넷을 유료로 판매한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했을 때면 공중전화 부스처럼 생긴 공유 KTV(노래방)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낸다. 지난해 중국 공유경제 거래 규모는 2015년의 2배인 5000억 달러(약 562조원)였다. 올해는 그보다 40% 증가한 7050억 달러로 예상된다. 2020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0%를 공유경제가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공유경제 붐을 촉발한 것은 넘치는 돈이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스타트업계가 유치한 투자금은 총 310억 달러(약 35조원)다. 그중 대부분이 공유경제로 빨려 들어갔다. 오포와 모바이크가 2년 만에 투자받은 돈만 130억 위안(약 2조 1000억원)이다. 거대한 인구, 소유보다 임대를 선호하는 신세대 소비자 군단, 거래 규모가 미국의 50배에 이를 만큼 보편화된 모바일 결제 시스템(핀테크)도 공유경제를 이끄는 힘이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혁신’을 모방하던 중국이 공유자전거 모델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오포와 모바이크는 싱가포르,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스페인, 필리핀 등 세계 30여개국에 진출했다. 공유경제의 그림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공유자전거만 하더라도 불법 주차, 파손 및 도난, 교통법규 위반, 보증금 사기, 정보유출, 도로 정체 유발 등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도시의 ‘흉물’이라는 악평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공유경제가 이미 거품이라고 지적한다. 정상적인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비스 요금이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 반면 시설 투자는 계속해야 한다. 공유 농구공 전용 판매대만 해도 대당 수천 위안이 든다. 도난·훼손·방치에 따른 비용도 엄청나다. 투자금이 금방 동날 수밖에 없다. 업체들로서는 사용자들의 보증금이 최후 보루다. 1인당 100위안 안팎이지만 모이면 목돈이다. 이 돈으로 자본 투자 등을 하면서 버티는 셈인데,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로이터통신은 “2010~12년 중국에서 소셜커머스 붐을 일으켰던 그루폰이 출혈 경쟁 끝에 10억 달러 손실을 남긴 채 망했던 것과 같은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용자들의 개인 정보와 동선, 모바일 결제 이력이 고스란히 유출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짝퉁 공유’라는 근본적인 비판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공유경제의 전리품은 오로지 막대한 자본을 보유한 벤처캐피털로 귀속될 뿐이며, 공유기업들은 이용자 정보를 수집하고 판매하는 데만 혈안이 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공유경제를 억제하기보다는 건전한 발전을 유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공유자전거의 경우 사용자 실명제 도입, 사용자를 위한 상해보험 도입, 12세 미만 이용 금지, 지정 공간을 벗어나 주차하면 열쇠가 잠기지 않는 전자울타리 설치, 고객의 보증금을 유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증금 전용계좌 의무화 등 지자체별로 묘수 찾기가 한창이다. 인민일보는 “공유경제는 아래에서 시작돼 위로 향하는 ‘스마트 혁명’”이라면서 “약간의 부작용을 핑계로 공유경제 자체를 말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고령 역사학계 “일제 임나대가야국성지비 제자리로”

    고령 역사학계 “일제 임나대가야국성지비 제자리로”

    1939년 조선 총독 세운 비석 1986년 천안 독립기념관 반출 “주민 서명운동 등 추진할 것”대가야의 도읍지 경북 고령에서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반출된 ‘임나대가야국성지비’(任那大伽倻國城址碑)를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12일 고령군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때인 1939년 미나미 지로 제7대 조선 총독(1936~41)이 고령 대가야읍 연조리 고령향교 인근 옛 대가야 왕궁터에 임나대가야국성지비를 세웠다. 고대 일본이 대가야국을 세웠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고, 일본의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한 의도에서였다. 비석은 가로 103㎝, 세로 210㎝ 크기다. 앞면에는 임나대가야국성지비 남차랑 서, 뒷면에는 ‘소화 14년 4월 29일’이 새겨졌다. 하지만 광복 후인 1947년 비석의 비문 일부가 훼손됐다. 고령 군민들이 ‘임나’라는 글씨와 조선 총독의 이름을 지운 것이다.그러나 이 비석과 받침돌은 1980년대 중반 고령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1986년 5월 당시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이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이 비석을 이듬해 개관할 독립기념관으로 긴급히 철거 이관하도록 조치한 결과다. 문화재관리국은 경북도에 공문을 보내 “임나대가야국성지비는 일제가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고 임나대가야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건립한 역사 왜곡·날조시설로, 독립기념관 일제 침략관에 필수적인 전시자료”라며 이를 철거해 독립기념관에 이관, 전시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고령지역 향토사학자들은 “정부가 고령 주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반강제적으로 비석의 반출을 결정했으며, 비석은 결국 1986년 12월 5일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졌다”고 주장했다. 사학자들은 이어 “현재 비석은 독립기념관 내 건물 환풍기 앞에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복원을 국정과제에 포함시킬 것을 지시한 이후 고령지역에서는 비석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향토사학자들은 “전두환 정권 당시 강압적으로 반출된 임나대가야국성지비를 되찾아 오기 위한 주민 서명운동 등 환수 운동을 적극 펼쳐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종환 대가야박물관장은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더욱 존재 가치가 빛난다는 게 문화유산계의 오랜 금언”이라며 “국가보훈처 산하의 독립기념관은 선의의 반환을 통해 공공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공시 정보] 시험 2주 전엔 실전처럼… 절대 ‘오픈북’ 하지 마라

    [공시 정보] 시험 2주 전엔 실전처럼… 절대 ‘오픈북’ 하지 마라

    338명을 선발하는 국가직 5급 공채 2차 필기시험이 오는 27일부터 진행된다. 올 2월 치러진 1차 공직적격성평가(PSAT) 합격자는 1만 1628명이다. 서울신문은 다가오는 필기시험을 치를 수험생을 위해 올 1월 행정자치부에 수습으로 임용된 박주언(31) 사무관에게 2차 시험 마무리 전략과 3차 면접시험 대비법을 들어봤다. “시험 2주 전엔 실전처럼 시간을 재며 답안 작성을 하는데, 팁이 있다면 절대 오픈북을 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답안을 채우면 당장 기분은 좋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이 무엇에 약한지 파악하지 못하면 실제 시험에서 그 약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니까요.”2015년 5급 공채 일반행정 직렬로 지원해 35.8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 문턱을 넘은 박주언 사무관은 1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년 전 이맘때쯤엔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실전처럼 시험을 치러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취약점을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이 박 사무관의 조언이다. 그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시간을 재면서 기출 시험문제 답안을 써봤다”며 “시험 당일과 비슷한 수준의 긴장감을 경험해 봐야 글씨가 엉망이라든지, 목차를 잡는 데 시간을 지나치게 쏟았다든지 등의 부족한 점을 알고 고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뉴스·신문에 나온 현안, 답안에 녹이는 습관을 서울대에서 법학을 전공하며 사법시험에도 도전한 경험이 있는 박 사무관은 “사시는 하루 2과목을 보는 데다 공부량이 워낙 많아 체력 소모가 심하지만, 5급 공채 시험은 하루에 1과목씩 5일 동안 치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험 전날 공부했던 내용을 정리하는 데 수월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물론 과목별 한 권씩 내용 정리를 해놓는 것을 전제로 한 얘기”라며 “시험 전날까지 반드시 봐야 할 만큼 중요하거나 특별히 자신이 취약한 내용은 중요한 순서대로 표시해 놓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행정법과 행정학은 박 사무관이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었다. 그는 “식사를 할 때 TV뉴스나 신문을 보면서 접한 사안이 행정학의 어떤 개념과 맞닿아있는지 떠올리고 답안을 쓸 때 사례로 녹여야겠다는 생각을 습관적으로 했던 게 비결”이라며 “정치학도 마찬가지로 현안을 꼼꼼히 봐두면 답안에 사례로 쓸 수 있어 유용하다”고 덧붙였다.박 사무관은 특히 선택과목으로 정책학을 택해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는 “정책학, 행정학, 정치학 3과목은 사실 다 연결이 돼 있기 때문에 함께 공부하면 좋다”며 “정책학에서 나오는 개념이 정치학 시험에 나온 적이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경제학은 “문제를 많이 풀었던 것이 주효했다”며 “기본적인 그래프와 수식은 답안을 쓸 때도 눈에 잘 띄는 만큼 마지막까지 정확하게 암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박 사무관은 또 답안 작성 관련 팁으로 “정치학, 행정학, 행정법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관련된 적절한 개념 등 키워드를 답안에 명시해 주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 같다”며 “반대로 잘못된 개념을 빌리면 그만큼 점수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위험도 따른다”고 덧붙였다. # 면접 때 정책학 역할 커… 일관된 답변 중요 박 사무관이 3차 면접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던 데는 2차 시험을 위해 공부했던 정책학의 역할이 컸다. 박 사무관은 “면접 때 주어지는 5~6개의 각종 통계·신문·토론 자료를 읽고 현안에 대해 한 장짜리 종이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정책학을 공부한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자료에 제시된 내용을 이론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답안에는 목차를 비롯해 추진 배경, 현황, 문제점, 대안, 향후 조치 등의 내용이 들어간다. 면접에서는 딜레마를 담고 있거나 함정이 있는 질문이 단골로 등장한다. 박 사무관은 “답변 내용이 일관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자신의 가치관을 충분히 탐색한 후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사무관은 마지막으로 수험생들을 향해 “합격 뒤 부처를 지원할 때에는 부처의 위상이나 근무지보다는 자신의 적성, 관심 분야, 소신 등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고 전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성균관 반촌 代 이은 번화가…근대건축 껴안은 서울대의 본향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성균관 반촌 代 이은 번화가…근대건축 껴안은 서울대의 본향

    마로니에 공원을 품은 대학로에는 근대의 향기가 진동했다. 백년 후의 보물, 서울미래유산이 내뿜는 포스 때문이리라.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서울도시문화연구원 등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회 ‘서울사방 동촌 교육과 예술의 현장, 대학로’편이 지난 3일 대학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그랜드투어 참가자들은 국가대표 건축가 김수근이 남긴 서울미래유산인 아르코예술극장과 아르코미술관, 샘터사옥과 파랑새극장을 차례차례 둘러봤다. 시멘트와 유리, 철골조가 지배하는 회색 도시의 한편에 서 있는 붉은 벽돌 건물 4채에서 ‘힘과 기’를 느끼는 표정이었다. 예술가의 집으로 변신한 옛 서울대 본관과 근대건축의 요람 경성고등공업학교 옛 터에 서 있는 옛 중앙시험소(한국방송통신대 역사관)에서 타일과 목조로 지어진 근대건축물의 매력에 흠뻑 취하기도 했다. 자연형 실개천 개념으로 복원한 흥덕동천의 마른 물길을 돌아 서울대 의과대학 본관과 옛 대한의원, 함춘원 동산에 세워진 정조의 회한이 서린 경모궁, 유신시대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사랑방 학림다방, 옛 백동성당 터에 세워진 근대성당 건축의 모태 혜화동성당 순으로 대학로를 순례했다. 선선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초여름 대학로의 정취를 만끽했다.“이야기가 살아 있는 도시는 흥하고 이야기가 사라진 도시는 멸망한다”라고 했다. 스토리(story)가 곧 역사(history)가 되는 이치다. 대학로는 서울 종로5가역을 시점으로 이화사거리를 거쳐 혜화동로터리까지 이어지는 연장 1.6㎞의 간선도로이지만 우리는 흔히 이화사거리에서 혜화로터리 구간 왕복 6차선 도로 주변을 대학로라고 통칭한다. 누구나 한 번쯤 이곳에서 열리는 문화예술 행사와 공연에 대해 들어봤거나 체험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젊음과 예술의 해방구이다. 대학로에 문화예술혼이 깃든 데는 600년 이상 묵은 곡절이 있다. 조선 유일무이의 대학 성균관과 대한민국 최초, 최고의 국립대학 서울대의 본향이기 때문이다. 중세에서 근대까지, 최고 대학 교육의 발상지가 대학로에서 만난다. 괜스레 대학로가 아니다. 경성제국대학을 거쳐 서울대 법문학부가 머문 시기, 이곳은 서울의 유일한 4년제 대학이 있던 지역이었다. 수식어 없이 이곳을 대학로라고 불러도 이의가 없었다. 대학천, 대학신문도 같은 맥락이다.●근대의학 태동지 연건동·근대건축 뿌리 동숭동 근대의학과 근대건축도 대학로를 사이에 두고 연건동과 동숭동 양쪽에서 나란히 꽃피었다. 광혜원에서 싹튼 근대의학의 전통이 옛 대한의원을 거쳐 지금의 서울대 병원으로 이어졌다. 또 방송통신대 역사관 터에 있던 관립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테크노크라트들이 우리 근대건축의 개척자가 됐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기원을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학설이 힘을 받는 이유는 중세 성곽도시 한양이 초거대 세속도시 서울이 된 무한대에 가까운 팽창의 출발점을 경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학로는 왜 대학로인가. 대학로의 지역 정체성은 무엇인가. 대학로는 1985년 군사정권에 의해 불쑥 급조된 장소가 아니다. 조선시대 한양의 좌청룡 낙산 아래 형성된 동촌(東村)의 역사가 층층이 살아 숨쉰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보면 낙산 아래 연건동을 중심으로 이화동·동숭동·원남동·연지동·충신동이 동촌에 해당한다. 양반이 살던 4곳의 지역색을 뜻하는 사색(四色) 중 동인은 남인과 북인, 대북과 소북으로 갈라졌는데 18세기 후반의 문인 이가환의 ‘옥계청유첩서’에는 소북가문이 동촌에 살았다고 기록돼 있다. 동산(東山) 아래 동촌에 거주하는 동인의 기질이나 지역색은 성균관과 반촌(泮村)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반촌이란 반민(泮民)의 거주지인데, 성균관을 반궁(泮宮)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성균관과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특수신분인 반인들은 성역화된 성균관의 위세를 빌려 소 도살 면허를 독점하면서 부유한 치외법권 주민으로 행세했다. 지금의 대학로 일대가 반촌이다. 400명의 유생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반촌은 대궐 다음으로 북적거리는 번화가였다. 반민들은 사치스러운 차림새와 호쾌한 기질로 유명했다. 성균관 유생들이 함께 어울린 하숙촌 대명거리(혜화역 4번 출구에서 성대 앞까지)는 1895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가 폐지될 때까지 ‘원조 대학로’로 흥청거렸다. ●낙산 아래 동인들 모여 살던 동촌 명승지 이화장 동촌의 정체성은 낙산과 혜화문, 낙산 아래 제일의 명당 이화장, 흥덕사와 흥덕동천, 송시열이 살던 송동 집터와 북관묘 터에서 각각 찾을 수 있다. 낙산 아래 이화장 자리는 동촌 제일의 명승지였다.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석양루 터였으며 신숙주의 손자 신광한의 집 기재(또는 신대)를 거쳐 왕의 관을 만들던 장생전이 깃들었다. 김홍도의 스승 표암 강세황도 이곳 바위에 글씨를 남겼지만 이화장을 지으면서 땅속에 묻혔다. 현재 서울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이 흥덕사와 송동, 북관묘의 옛 터이다. 본래 지명은 숭교방이었으며 오늘의 동숭동은 ‘숭교방 동쪽’이라는 뜻이다. 흥덕사는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머물던 한양 잠저였고, 본부인 신의왕후를 모신 교종의 본산이었다. 송시열의 집도 이 터에 있다. 흥덕동천은 대학로를 지나 청계천 오간수문으로 흘렀다. 오늘의 대학로 40m 도로는 한때 대학천이라고 불리던 흥덕동천을 복개한 덕에 얻은 길이다. 서울대 문리대생들이 대학천과 다리를 빗댄 센강과 미라보 다리를 오가며 ‘제25의 강의실’이라고 불리던 학림다방으로 건너다녔다. 흥덕동천을 되살린다고 요란하게 선전했지만 옛 물길은 땅속에 묻혔고, 작은 개울만 흉내 삼아 만들어 놓았다. 관운장을 모신 북관묘터는 1882년 임오군란부터 1884년 갑신정변, 1895년 을미사변까지 근대사의 비극이 오롯이 담긴 역사의 기억장치이다. 그러나 아픈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며 스스로 지워 버렸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학로의 근현대 유산이 미래세대에게 전해지도록 소중하게 간직해야 하는 이유를 사라져 버린 동촌의 옛 역사가 시리도록 웅변한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백승종의 역사 산책] 외교 비화(秘話) 한 토막 - 역관 홍순언

    [백승종의 역사 산책] 외교 비화(秘話) 한 토막 - 역관 홍순언

    홍순언(洪純彦)은 선조 때의 이름난 역관이었다. 당시 명나라의 역사책에 조선왕조의 계보가 잘못 기록돼 있어 나라의 근심거리였다. 홍순언은 이를 바로잡는 데 공을 세워 광국공신이 됐다(1590년).시작은 우연한 일에서 비롯됐다.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 제9권에 사정을 자세히 기록했다. 홍순언이 사신을 따라 명나라에 갔을 때, 한 번은 아름다운 창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됐다. 그녀는 본래 양가의 처자였다. 원(袁)씨 성을 가진 이 처자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를 제대로 모실 수가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그래서 몸을 팔게 됐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홍순언은 그날 밤 잠자리를 따로 했다. 날이 밝자 거금을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자유의 몸이 된 원씨는 훗날 명나라 대신 석성(石星)이 사랑하는 첩이 됐다. 홍순언이 다시 명나라에 파견돼 조선왕조의 계보를 바로잡으려 하자 원씨는 남편을 움직여 조선의 편을 들었다. 그 얼마 후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홍순언은 조정의 명으로 명나라에 가서 원병을 청했다. 그때도 원씨는 남편을 설득해 조선을 도왔다. 중국 기록인 ‘설부’(說郛)에 따르면 원씨의 아버지는 심유경(沈惟敬)의 친구였다. 그런데 심유경의 벗 가운데 물장수 심가왕(沈嘉王)이 있었다. 심가왕은 왜구의 포로가 돼 일본에서 18년 동안이나 살았기 때문에 일본 사정에 밝았다. 그를 통해 심유경도 일본 사정에 능통했다. 이 사실을 환히 알았던 원씨의 아버지는 사위 석성에게 심유경의 등용을 권했다. 심유경이 유격 장군으로 조선에 파견된 배경이다. 그는 일본과 명나라의 정전협상을 꾀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심유경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그러나 이익의 판단은 달랐다. ‘심유경은 조선을 돕기 위해 정성을 쏟았다’고 평가했다. 심유경은 조선에 오면서 심가왕을 대동했다. 심가왕은 바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를 진중으로 방문해 50일간의 임시 정전협정을 맺었다. 덕분에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선 백성들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이익이 심유경을 호평한 이유는 그 점에 있었을 것이다. 이익의 주장에 따르면 홍순언은 사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원씨가 은혜를 갚기 위해 많은 금과 비단을 가지고 찾아오자 ‘이런 보답을 받으려고 도운 것이 아니었다’며 사양했다. 그때 원씨는 자신이 손수 짠 비단을 펼쳐 보였다. 거기에는 ‘보은단’(報恩緞) 곧 은혜를 갚는 비단이라는 글씨가 새겨 있었다. 성의에 감동한 홍순언은 보은단을 가지고 귀국했다. 후세는 그가 살던 마을을 ‘보은단골’이라 불렀다(서울시 태평로 1가 미장동). 홍순언의 강직한 성품은 김시양의 ‘하담파적록’에도 기록돼 있다. 당시 조정에서는 굵직한 외교 현안이 있을 때마다 뇌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통역관 홍순언은 이를 강력히 반대했다. “차라리 몇 해 더 시간을 끌망정 뇌물을 씀으로써 나라의 체모를 떨어뜨릴 수는 없습니다.” 조정대신의 상당수가 홍순언의 주장에 동의했다. 덕분에 조선은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때 한 푼의 뇌물도 쓰지 않고 명나라에 원병을 청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보면 강대국들과의 외교 관계가 복잡하게 꼬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드 문제든 위안부 협상이든 저들의 요구가 너무 일방적이고 과도하지 않은가. 이처럼 복잡한 현안을 현명하게 해결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현듯 홍순언의 옛일이 떠올라 몇 자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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