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근황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기어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타블로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명의 대여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833
  • (영상) ‘슈가맨’ 량현량하, 학교를 못갔어 열창

    (영상) ‘슈가맨’ 량현량하, 학교를 못갔어 열창

    ‘슈가맨’에 량현량하와 구피가 출연해 추억을 선사했다. 지난 16일 방송된 JTBC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에는 구피와 량현량하가 유재석 유희열 팀 슈가맨으로 각각 출연했다. ‘1990년대 흥의 아버지’라고 소개된 구피는 당시 댄스그룹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날 구피는 ‘많이 많이’로 흥겨운 무대를 꾸몄다. 구피는 팀명을 지어준 사람이 故 서지원이라고 밝혔다. 뒤이어 등장한 슈가맨은 13세 나이로 데뷔해 가요계에 적잖은 충격을 안긴 쌍둥이가수 량현량하였다. 올해 30살이 된 량현량하는 변함없는 외모와 목소리로 등장해 또 한 번 충격을 선사했다. 량현량하는 중독성 강한 ‘학교를 안 갔어’를 열창했다. 이날 량현량하는 부산에서 춤 좀 춘다고 알려진 자신들을 찾아온 박진영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만난 지 보름 만에 초고속으로 데뷔하게 됐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어 현재 강의를 나가고, 의류 사업 또한 준비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이날 유희열 팀은 치타와 강남이 2016년 버전으로 재해석한 ‘학교를 안 갔어’로 3연패에서 벗어나게 됐다. 사진 영상=JTBC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네이버 TV캐스트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월드피플+] “주사 한번에 구슬 하나”…목걸이 1500개 만든 3세 암환자

    [월드피플+] “주사 한번에 구슬 하나”…목걸이 1500개 만든 3세 암환자

    희귀암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3세 아이가 어른도 쉽게 따라하지 못할 용기와 의지를 보여줘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영국 메트로의 15일자 보도에 따르면 영국 링컨셔에 살고 있는 올리버 챔프먼(3)은 생후 20개월 무렵 희귀 암 진단을 받은 뒤 줄곧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올리버가 앓고 있는 병은 랑게르한스 세포 조직구증(LCG)로, 랑게르한스 세포가 지나치게 많이 증식돼 조직과 장기에 침범해 질환을 일으키는 병이지만 더욱 정확한 발병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치료 방법 역시 완벽하지 않은 희귀성 질환 중 하나다. 올리버는 2014년 2월부터 화학요법과 수술, 각종 의료시술 등을 받으며 암세포와 싸움을 시작했다. 어른도 견디기 힘든 고통스럽고 지루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어린 올리버는 웃음과 희망, 용기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화학약물치료나 수술을 한 번 받을 때마다 반짝반짝 빛나고 색깔이 다채로운 구슬을 직접 꿰어 목걸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올리버가 만드는 목걸이의 구슬은 총 17가지 컬러다. 색깔마다 각기 다른 치료를 의미하는데, 주사나 화학요법, 생체검사, 물리치료, 수술 등으로 구분하고 자신이 받은 치료에 해당하는 구슬로 목걸이를 만든다. 이렇게 올리버가 자신과의 싸움을 증명하듯 만든 목걸이는 무려 1500개가 넘는다. 올리버의 엄마인 다니엘 하퍼(33)는 “우연히 올리버와 같은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병원을 찾은 비즈(구슬) 공예 전문가로부터 구슬로 만든 목걸이를 선물받았다. 올리버는 그것을 매우 좋아했다”면서 “올리버는 자신이 직접 만든 구슬들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언젠가는 자신이 얼마나 용감했는지를 보여주는 증표로 쓰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올리버가 있던 병원을 찾은 비즈 예술품 전문가는 일명 ‘비즈 오브 커리지’(Beads of Courage)라는 캠페인을 펼치는 단체의 소속이며, 이 단체는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뉴질랜드, 일본 등을 돌며 암과 싸우는 어린이들과 그들의 가족이 고통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올리버와 가족은 현재 희귀질환연구에 쓰일 기금을 모으는 ‘저스트 기빙’(JustGiving) 페이지를 만들어 활동 중이며, 올리버의 근황과 희귀질환 관련 정보 등을 게재해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류준열 “‘잘생김’을 연기한다구요? 외모 컴플렉스는 없어요”

    류준열 “‘잘생김’을 연기한다구요? 외모 컴플렉스는 없어요”

    “정말 얼떨떨해요. 이전에 영화 무대 인사를 돌 때는 5~10명의 팬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오셔서 제가 근황도 여쭤보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일일이 챙겨드리지 못해 아쉬워요. 얼마 전에는 그게 아쉬워서 차에서 창문을 열었다가 팬들이 몰려서 큰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었죠.”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독립 영화계의 샛별에서 하루아침에 인기 스타가 된 류준열(30)은 갑자기 치솟은 인기에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지난해 영화 ‘소셜포비아’로 얼굴을 알린 그는 채 1년도 안 돼 ‘응팔’에 캐스팅되며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됐다. “영화 ‘소셜포비아’ 때 맡은 캐릭터가 극 중 동룡과 비슷한데 ‘응팔’에서는 정반대 성격인 정환 역에 캐스팅돼서 좀 의아했어요. 주변에서 재밌고 가볍게 저를 보는 사람이 많지만 혼자 있을 때는 말 없고 어두울 때도 많거든요. 신원호 감독님이 오디션 때 그런 제 모습을 보신 것 같아요.” 언뜻 차가워 보이는 첫인상이지만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려고 애쓴다는 류준열. 그는 “저를 만나 본 사람들은 금세 무장 해제가 되는 편”이라면서 환하게 웃는다.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정환 역을 실감 나게 소화한 그는 실제 모습도 캐릭터와 흡사하다고 말했다. “저도 학창시절 때 틈만 나면 친구들과 축구, 농구를 즐기고 게임을 하다가 밤을 샌 적도 많아요. 미팅 한 번 안 해 보고 여자 친구가 별로 없는 것도 정환과 닮았어요. 하지만 저도 공부는 열심히 했는데 그건 좀 결과가 다르네요.(웃음)” 본래 사범대를 준비했던 그는 수능 보기 두세 달 전에야 ‘진짜 원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연기자로 방향을 틀었다. 수원대 연극영화과에 합격한 뒤 수년간 독립 영화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자신감을 갖고 연기를 즐긴 덕에 힘든 줄 모르고 버틸 수 있었다. 전형적인 꽃미남은 아니지만 연기력으로 자신만의 매력을 만든 그에게는 ‘잘생김’을 연기하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만큼 저를 아끼고 공감해 주신다는 표현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사실 저는 외모는 내려놓기도 했고 콤플렉스는 별로 없는 편이거든요. 위축되면 그나마 자신의 매력도 못 보여주잖아요. 시간이 흐르면 외모의 기준도 바뀌기 마련이고 외모는 배우가 대중에게 평가받는 기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팬카페에서 제게 위로를 받았다는 연기지망생들의 쪽지도 많이 받았어요.” 결국 덕선의 남편은 택(박보검)이었으나 인터넷에서는 그를 지지하는 팬들이 적지 않았다. 그는 “그런 응원이 큰 힘과 활력소가 됐지만 (박)보검이와도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주고받지 않았다”면서 “보검이와 라이벌 의식도 없었고 현장에서 서로 멋있다고 격려했다”고 말했다. 상처를 받아도 회복이 빠르고 물 흐르듯 가다 보면 언젠가 될 것이라는 낙천적인 성격으로 뭉친 배우 류준열. ‘응팔’ 직전까지 초등학교 방과후교실에서 연극과 뮤지컬 등 연기를 가르쳤던 그는 나중에 학교를 세워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아이들이 요즘도 학교에 오라는 문자메시지를 자주 보내요(웃음). 따뜻한 감동을 준 ‘응팔’을 하면서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 확실해졌어요. 선행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는데 그게 공인으로서 제가 받은 인기에 보답하는 길인 것 같아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구본영 칼럼] ‘말뫼의 눈물’이 ‘통영의 눈물’ 안 되려면

    [구본영 칼럼] ‘말뫼의 눈물’이 ‘통영의 눈물’ 안 되려면

    설 연휴 중 몇 년째 얼굴을 못 본 친구의 근황을 들었다. 고향을 떠나 통영에서 하던 배 수리 사업을 완전히 접었다는 소식이었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늘 밥 잘 사는, 인심 좋은 그였는데…. 잘나가던 조선업이 불황의 늪에 빠졌음을 실감했다. 오죽했으면 선박 인테리어 전문 중소기업 운영에 반평생을 바친 친구가 공장 문을 닫았을까. 울산에서도, 통영에서도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친 업계의 한숨 소리만 깊다. 대형 조선소의 골리앗 크레인이 멈춰 서면서다. ‘말뫼의 눈물’은 현대중공업에 자리 잡고 있는 대형 크레인이다. 스웨덴 말뫼의 조선업체 코쿰스가 문을 닫을 때 막대한 해체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단돈 1달러를 주고 사들인 것이다. 2002년 이 크레인이 배에 실려 사라질 때 스웨덴 국영방송은 “말뫼가 울었다”며 장송곡을 틀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조선·대우조선 등 세계 3대 조선소가 두 해 연속 영업적자를 냈다. 글로벌 경제 침체에 따른 수주난과 해양플랜트 사업의 부실이 겹치면서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가 자칫 ‘말뫼의 눈물’처럼 통한의 눈물을 흘릴 판이다. 울산이나 거제, 혹은 통영에서…. 더 심각한 건 조선업뿐 아니라 우리의 주력 산업 전체가 위기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자리를 못 구한 청년들이 태어날 때 물고 나온 숟가락을 원망하는 세태에서 그런 징후는 포착된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창조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이 제출된 지 210일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조선업 등 공급과잉 업종의 사업 재편을 돕기 위한 법안이다. 하지만 국내 로펌의 경제법 분야 권위자로 통하는 한 인사는 원샷법이 하등 새로울 게 없는 법안이라고 귀띔했다. 기존 상법·세법·공정거래법 등에 이미 관련 조항이 다 있다는 것이다. 여권이 이를 통해 경제를 살린다고 하니 우습지만, “삼성특혜법”이라는 등 야권의 엉뚱한 반대 논리도 가관이라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총선을 앞둔 정치권 풍경을 보라. 현 여권의 보육 공약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재원 분담 문제로 충돌하면서 보육 대란을 빚고 있다. 이런 판국에 더불어민주당이 청년 10만명에게 월 60만원씩 6개월간 취업활동비를 지원하는 총선 공약을 내놓았단다. 청년 실업자가 40만명에 이른다는 현실에 비춰 볼 때 솔깃해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 금수저와 흙수저를 골라 지급 대상자를 선정해 내고, 일자리가 무더기로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이들을 ‘어디에’ 취업시킬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이 없다면 말뿐인 인기영합 공약(空約)이거나, 청년들에게 달콤한 당의정을 입힌 빚더미를 떠넘기는 꼴이다. 더군다나 지금이 어느 때인가. 지구촌엔 4차 산업혁명의 기운이 꿈틀대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기술 융합을 통해 바야흐로 신천지가 도래할 참이다. 이런 4차 혁명의 물결 속에서 전통적인 제조업 일자리들은 상당수 떠내려가기 마련이다. 조선·철강·자동차 등 우리의 주력 업종에서 영업이익이 감소하고 있는 게 그 전조가 아닐까. 이런 ‘고용 없는 성장’이란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아 지식정보 부문 등 서비스 산업에서 새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별 알맹이도 없어 보이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3년 반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인 사실은 뭘 말하나. 이 법이 통과되면 69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정부의 설명이 미심쩍긴 하다. 하지만 의료산업 영리화로 이어진다는, 더민주 측의 주장은 더 황당하다. 대한병원협회 등도 문제가 없다는데 그나마 국제 경쟁력이 있는 보건 분야의 일자리를 포기하겠다고 몽니를 부리는 격이니…. 이는 어찌 보면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를 골간으로 개헌해 이룬 ‘1987년 체제’가 한계를 드러낸 형국이다. 여야 모두 장기적 국가 역량을 키울 엄두도 못 내고 오로지 정권 획득을 위한 근시안적 정쟁에 골몰하면서다. 성장의 바퀴는 멈추려 하는데 운전대를 서로 잡으려다 온 국민이 탄 수레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게 해서야 될 말인가. 결국 초미의 과제는 후진적인 한국 정치의 일대 개혁이다. 논설고문
  • [이명선 기자가 만난 사람] 김국환의‘타타타’ 원제목은 ‘바람이 부는날은’이었다?

    [이명선 기자가 만난 사람] 김국환의‘타타타’ 원제목은 ‘바람이 부는날은’이었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국민가수 김국환의 국민가요 ‘타타타’의 노랫말이다. “그래, 바로 그거야”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로 양인자씨가 지었다. 24년전 1992년 전국 레코드가게를 지날 때면‘아하하…!’로 호탕하게 마무리짓는 웃음소리는 자조와 낙관의 인생을 표현하듯 우리네 뇌속에 다가왔던 그 시절 그 노래다. ‘타타타’는 1992년 초 최고 64.9%, 평균 59.5% 시청률의 당대 최고 인기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 삽입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김수현 작가가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 발굴한 노래는 ‘난 알아요’의 서태지와 아이들, ‘보이지 않는 사랑’의 신승훈과 함께 김국환을 그해 최고의 가수로 올려놓았다. 또 생뚱맞게도 김국환이란 가수는 ‘은하철도 999’하면 생각나는 만화영화 주제가도 여러곡 불러 어린이들에게도 친근감이 많다. 세월유수라 했던가. 그사이 강산도 두번 넘게 변해 김국환이 이젠 고희를 눈앞에 뒀다. ‘타타타’와 ‘은하철도999’로 기억되는 국민가수 김국환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만나 45년 그의 노래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 무명시절이 꽤 길었다는데?-고교시절 콩쿠르대회에 여러번 나가 상품도 많이 탔다. 어느날 대천극장 무대쇼에 올라가 당시 유행곡인 진송남의 ‘바보처럼 울었다’를 불러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으며 대천일대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상경하여 서울 태평로 아카데미 음악감상실에서 4명이 겨루는 노래부르기 대회에서 대천촌놈인 내가 1등을 했다. 그러고나니 서울사람들도 노래솜씨가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MBC DJ 이종환씨를 알게 됐고 이 인연으로 당시 최고악단인 김희갑악단으로 스카우트됐다. 김희갑씨는 다른 이와 달리 학벌보다는 노래실력을 최고로 여겼다. 한때 펄시스터스, 조영남, 김세레나 등이 출연하는 부산해운대관광호텔서 MC를 보며 일하기도 했다. 이곳에 조영남씨가 있었는데 하루는 나에게 “국환아 너 가수하지 마라. 가수의 길이 얼마나 험한지 아냐”라며 극구 가수하는 걸 말린 적도 있다.  ⇒ 최고의 히트곡 ‘타타타’의 원곡제목이 ‘바람이 부는 날은’이었다?- 김희갑악단이라는 최고악단과 궁합이 잘맞아 일하는중에 어느날 주위에서 김악단에서 나오라고 꼬득였다. 근데 악단을 나온 후 일이 뜻대로 잘풀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김희갑악단과 인연이 돼서 공전의 히트곡 ‘타타타’를 부르게 된다. 애초 받은 곡명은 ‘타타타’가 아닌 ‘바람이 부는날은’이었다. 위일청이란 가수가 처음 이 노래를 어느 단막극에서 “바람이 부는날은” 제목으로 불렀고, 그다음에 조용필이 불렀다. 이후 나한테 기회가 왔는데 이때 ‘타타타’로 노래제목이 바뀌었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땐 어쩜 내가 살아온 인생하고 곡 빼닮았았는지 한번 듣고는 마음에 확 끌렸다. 처음엔 음향장비도 없어 숟가락을 갖고 노래연습을 했다. 2년동안 노래연습만 했는데 녹음하는데 또 2년이 더 걸렸다. 신곡취입하는 데만 모두 4년넘게 걸렸다. 근데 이즈음 저의 아버지가 한 말씀이 “김희갑이 걔는 왜 이렇게 노래취입이 늦냐?”라고 하셨는데 우연찮게도 그러고나서 얼마 안지나 음반이 나오기 전 애석하게도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 ‘타타타’ 노래가 “사랑이 뭐길래” 드라마곡으로 나온 경위는.- 김수현 작가가 어느날 차를 타고 라디오를 듣다가 가수이름은 잘모르겠는데 “옷한벌은 건졌잖소~”라며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기사에게 이 노래음반 좀 사오라고 했다. 근데 기사가 엉뚱하게도 잘못알고는 이진관의 ‘인생은 미완성’곡을 사왔다. 그래서 다시 보내 ‘타타타’를 사왔다는 일화가 있다. 이를 ‘사랑이 뭐길래’ 연출가한테 드라마에 넣어달라고 하니까 대중가요라 편파적이고 오해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거절당했다. 근데 김수현 작가가 끈질기게 넣어달라고 요청한 끝에 결국 드라마 삽입곡이 됐다.  ⇒ 김국환은 매니저가 없는 가수라고 하던데.- 근데 내가 처음부터 매니저를 두지 않았던 게 아니다. 이 무렵 불교방송 행사에 출연했던 적이 있다. 불교방송이라 방송담당자에게 출연료를 안받겠다고 사양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출연료를 매니저가 몰래 꿀꺽했다. 매니저를 한달 만에 아웃시키고 그 이후로 매니저를 두지 않았다. 노태우정부 때 주로 난 정부행사를 많이 했다. 어찌보면 난 대중음악계에서 사생아다. 드라마곡으로 한방에 갑자기 떴다고 연예계 한쪽에서는 이를 시기질투했다. 매니저가 없어 업소행사 출연하는 데 다소 불리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나이트클럽 업소에서도 ‘타타타’ 출연 요청이 거의 없었다. 업소가 춤추고 노는 곳인데 “네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나를 알겠느냐”라고 불러대면 가사가 영 안어울린다는 이유였다. 또다른 히트곡 ’우리도 접시를 깨트리자’ 역시 일부 야간업소 측에서 별로 안좋아했던 곳이 있다.  ⇒ 특히 만화영화 주제가를 많이 불렀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인 당시 마상원 MBC악단장이라는 분이 있었다. MBC일요큰잔치 전속악단장으로 서울 전농동에 살 때 마 단장이 추천해서 만화영화주제가를 불렀다. 우연잖게 ‘은하철도999’를 부르게 됐는데 성인가수인 내가 왜 이런 어린이들의 만화영화 주제가를 불렀는지 후회스러워 마 단장에게 내이름 석자를 지워달라고 한 적도 있다. 얼마전 MBC의 ’능력자들‘이란 예능프로에 나갔는데, 알고보니 내가 그때 부른 만화영화 주제가들이 미래소년코난, 축구왕슛돌이 등 무려 30곡이 넘었다. 종종 나이트에서도 은하철도999, 천년여왕 등 만화주제가를 부른다.  ⇒ 기억에 남는 팬들과의 사연이나 추억이 있다면?- 팬들과의 추억은 헤아릴수 없이 많다. 가장 생각나는 게 있다. 국기원 원장을 역임한 이승완씨가 나를 무척 좋아했다. 미국 뉴욕공연갔을 때다. 이승완 형님의 1년후배로 뉴욕에 거주하는 박동근씨라는 분을 같이 만났다. 뉴욕서 태권도 1인자일 정도로 유명한데 이분이 한번은 나를 보더니 ”내가 90년도 미국에서 먹고살기 너무 힘들어 죽고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옷한벌은 건졌잖소~”라고 흘러나오는 김국환의 ‘타타타’노래를 듣고 다시 용기를 얻어 열심히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고 얘기했다. 또 한분은 캐나다에 사는 교민으로 ‘타타타’CD를 갖고 와서 사인해달라고 부탁했다. 남편과 사별후 딸과 함께 사는데 ‘타타타’ 앨범속에 있는 ‘보랏빛욕망’이란 노래를 듣고 유언을 했는데, “내가 죽으면 김국환노래 CD를 묘지에 꼭 넣어달라”고 부탁했단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가수로서 뿌듯하고 가수되기를 참 잘했다는 묘미같은 걸 느낀다.  ⇒ ‘타타타’ 이후 25년이 지난 요즘 근황은?- 요즘은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가 많이 사라지고 별로 없다. 야간업소 문화가 없고 출연료도 비싼 편이라 노래하기가 쉽지 않다. 야간업소 말고 가요무대 등 방송출연과 지방행사, 산사음악회를 주로 다니고 있다. 최근 ‘달래강’이란 노래 신곡 음반을 냈다. “말이나 한번 해보지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그토록 꼭꼭 숨기면 하늘인 들 알 수 있겠니/ 날마다 그리워 흘린 눈물이/ 강이 돼도 말 못한 미련한 사람아/ 바람도 물새도 서러워 울고 간다/ 달래강 애달픈 사랑” 제13집 타이틀곡으로 ‘달래강’ 노래는 경쾌한 트로트풍이다. 미련할 만큼 말못하고 가슴에 담아둔 사랑이야기를 애잔하게 표현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달래강은 충주지역 강이름이다. 물이 달다고 하여 단냇물, 달물, 달강, 달래강이라 한다.  ⇒ 고희를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바람이 있는지.- 가수돼서 최정상에도 올라가봤다. 이제 고희가 다돼가는 나이에 그동안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조금씩이나마 갚아가며 살아야겠다. 가수가 바람이 뭐 특별한 게 있겠나. 앞으로 꾸준히 신곡발표해서 팬여러분들에게 내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또 지난해 못한 디너쇼도 올해는 꼭 한번 하고 싶다. 낙천적이라 아직은 건강하고 뒷동산에 올라다니는 걸 좋아한다. 산에 다니면서 노래 발성 연습하고 운동도 하고 일석2조다. 요즘 경기불황으로 ‘3포세대’이니 386세대의 무더기 은퇴로 우울한 시절인데 우리 모두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으니 이미 반은 성공한 인생 아닐는지. 25년전 우리네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던 불후의 명곡 ‘타타타’ 노래를 다시한번 불러보며 우리네 인생 별거아니라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찾아보면 어떨까. ■ 가수 김국환은충남 대천에서 1948년 목수집안의 4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불렀다. 1969년 21살 때 김희갑악단에서 들어가며 본격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7년 ‘꽃순이를 아시나요’ 노래가 수만장의 앨범이 판매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나긴 무명생활 끝에 1992년 ‘타타타’로 일약 톱스타가수에 올랐다. ‘타타타’ 노래로 1992년 한국방송 대상, 서울가요대상 수상 등 한국가요상을 휩쓸었다. 그당시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과 함께 김국환은 그해 최고의 가수왕으로 우뚝섰다. 1997년 문화부장관상, 2008년 장한한국인대상 수상했고, 1982년 만화영화주제가 은하철도999, 미래소년코난, 축구왕슛돌이 등 30여곡을 잇따라 불렀다. 1998년 바람같은사람, ‘접시를 깨트리자’ 등 여러 히트곡이 있으며 최근에는 ‘내인생에 후회는 없지만’ 신곡 ‘달래강’ 등을 출시했다.  ■ 이력1969년 김희갑악단 입단, 1977년 김국환-최미나 옴니버스앨범 ‘꽃순이를 아시나요’ , 1978년 ‘바람꽃’, 1982년 만화영화주제가 ‘은하철도999’, 1991년 ‘타타타’, ‘우리도 접시를 깨트리자’, 1995년 ‘아빠와 함께 뚜비뚜바’, ‘옛사랑’, 1998년 ‘바람같은 사람’, 2002년 ‘숙향아’, 2004년 ‘사랑의 기도’, ‘유리부인’,  2005년 ‘주사위’ ‘어머니’,  2008년 ‘인생은 직진이야’, 2012년 ‘웃어버려’, ‘내인생에 후회는 없지만’, 2015년 11월 ‘달래강’  ■ 수상내역1992년 제3회 서울가요대상 대상, ‘타타타’ 노랫말 대상, KBS가요대상, 1993년 MBC 10대가수상, 대한민국영상음반 대상, 1997년 문화체육부장관표창(선행연예인), 2003년 대통령상, KBS 가요대상, 2005년 제7회 한국예술실연자대상 공로상, 2008년 제7회 장한 한국인상 대상, 2008.1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홍보대사, 2011.07 제14회 보령머드축제 홍보대사  mslee@seoul.co.kr
  • 서세원 근황 포착, “용인에서 내연녀와 함께 살아…아기도 있어”

    서세원 근황 포착, “용인에서 내연녀와 함께 살아…아기도 있어”

    서세원 근황 포착, “용인에서 내연녀와 함께 살아…아기도 있어” 서세원 방송인 서세원의 근황이 공개돼 화제다. 5일 일간스포츠는 “서세원이 경기 용인의 한 주택에서 지난해 9월 내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는 여성과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며 여러 장의 사진을 통해 근황을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서세원은 용인에 있는 타운하우스형 주택에 한 여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곳은 산기슭에 위치해 인적이 드물고 소수의 주민 외에는 유동인구도 없어 외부와 접촉이 원할하지 않은 곳으로 알려졌다. 특히 매체는 서세원과 함께 살고 있는 여성이 지난해 9월 서세원이 해외 출국을 위해 공항에 있을 때 함께 있던 여성이라고 전했다. 당시 서세원은 그 여성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고 극구 부인했다. 이 여성은 어린 아기를 안고 있는 사진도 공개됐으며, 보도 내용 중 서세원 측근에 따르면 “이 여성이 지난 연말 출산을 했으며 딸을 낳았다”, “이 여성은 명문대 음대 출신으로 지방의 한 시향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여성은 만 37세의 김모 씨이며 미모의 재원”이었다. 서세원은 서정희와 지난해 8월 21일 합의 이혼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혼 사실이 불거진 뒤부터 서세원 서정희 부부의 불화가 오래 전부터 계속 됐고, 특히 폭행 사실이 알려져 더욱 충격을 주었다. 서정희는 지난 2014년 인터뷰에서 “여자(내연녀)가 제 딸 아이 또래”라면서 “(서세원이) 수도 없이 여자와 문자를 하고 지우고 계속 여자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정희와 이혼’ 서세원 근황 포착, 딸 또래 여성과 갓난아이 낳고… ‘충격’

    ‘서정희와 이혼’ 서세원 근황 포착, 딸 또래 여성과 갓난아이 낳고… ‘충격’

    ‘서정희와 이혼’ 서세원 근황 포착, 딸 또래 여성과 갓난아이 낳고… ‘충격’ 배우 서정희와 이혼 과정에서 내연녀 논란에 휩싸였던 방송인 서세원의 근황이 공개됐다. 5일 한 매체는 ‘서세원이 용인시의 한 주택에서 지난해 9월 내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는 여성과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며 다수의 사진과 함께 근황을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서세원은 용인시의 타운하우스 형의 주택에 살고 있었다. 이 매체는 “서세원은 지난해 9월 해외 출국을 위해 공항에 한 여성과 함께 나타나 내연 의심을 받았다. 당신 여성은 임신 상태였는데, 서세원은 인터뷰에서 ‘모르는 사람’이라고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서세원은 이 여성과 함께 살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또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의 사진과 함께 서세원 측근에 말을 빌려 “이 여성이 지난 연말 출산을 했으며 딸을 낳았다”면서 “명문대 음대 출신으로, 지방의 한 시향에서 연주를 했던 미모의 재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세원은 지난해 8월 21일 서정희와 합의 이혼했다. 이후 그해 9월 8일 공개된 사진에서 ‘내연녀’라고 지목된 해당 여성이 배가 부른 상태였으며 임산부 용 패스트 트랙을 이용했던 정황을 두고 일각에서는 ‘서세원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서정희는 지난 2014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여자(내연녀)가 제 딸 아이 또래”라며 “(서세원이) 수도 없이 여자와 문자를 하고 지우고 계속 여자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정희와 이혼’ 서세원 딸 벌의 여성과 갓난아이와 살아… ‘공항 그 여인’?

    ‘서정희와 이혼’ 서세원 딸 벌의 여성과 갓난아이와 살아… ‘공항 그 여인’?

    ‘서정희와 이혼’ 서세원 딸 벌의 여성과 갓난아이와 살아… ‘공항 그 여인’? 배우 서정희와 이혼 과정에서 내연녀 논란에 휩싸였던 방송인 서세원의 근황이 공개됐다. 5일 한 매체는 ‘서세원이 용인시의 한 주택에서 지난해 9월 내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는 여성과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며 다수의 사진과 함께 근황을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서세원은 용인시의 타운하우스 형의 주택에 살고 있었다. 이 매체는 “서세원은 지난해 9월 해외 출국을 위해 공항에 한 여성과 함께 나타나 내연 의심을 받았다. 당신 여성은 임신 상태였는데, 서세원은 인터뷰에서 ‘모르는 사람’이라고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서세원은 이 여성과 함께 살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또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의 사진과 함께 서세원 측근에 말을 빌려 “이 여성이 지난 연말 출산을 했으며 딸을 낳았다”면서 “명문대 음대 출신으로, 지방의 한 시향에서 연주를 했던 미모의 재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세원은 지난해 8월 21일 서정희와 합의 이혼했다. 이후 그해 9월 8일 공개된 사진에서 ‘내연녀’라고 지목된 해당 여성이 배가 부른 상태였으며 임산부 용 패스트 트랙을 이용했던 정황을 두고 일각에서는 ‘서세원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서정희는 지난 2014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여자(내연녀)가 제 딸 아이 또래”라며 “(서세원이) 수도 없이 여자와 문자를 하고 지우고 계속 여자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세원 근황 포착’ 서정희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

    ‘서세원 근황 포착’ 서정희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

    ‘서세원 근황 포착’ 서정희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 서세원 서정희 방송인 서정희가 전 남편 서세원의 근황이 공개된 데 대한 심경을 전했다. 5일 오전 일간스포츠는 “서정희와 이혼 과정에서 내연녀 논란에 휩싸였던 서세원의 근황을 단독 포착했다”면서 “경기 용인의 타운하우스에서 서세원과 내연녀로 추정되는 여성과 함께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여성이 어린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 포착돼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이와 관련 서정희 측은 이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서세원 관련 보도내용을 인터넷으로 봤지만 이제 서정희는 가슴 아픈 일, 괴로운 일들은 모두 잊고 새롭게 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만큼 크게 마음을 두려하지는 않고 있다”고 밝혔다. 서정희와 서세원은 지난해 8월 21일 합의 이혼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세원 근황 포착’에 서정희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

    ‘서세원 근황 포착’에 서정희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

    ‘서세원 근황 포착’에 서정희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 서세원 서정희 방송인 서정희가 전 남편 서세원의 근황이 공개된 데 대한 심경을 전했다. 5일 오전 일간스포츠는 “서정희와 이혼 과정에서 내연녀 논란에 휩싸였던 서세원의 근황을 단독 포착했다”면서 “경기 용인의 타운하우스에서 서세원과 내연녀로 추정되는 여성과 함께 살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여성이 어린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 포착돼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이와 관련 서정희 측은 이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서세원 관련 보도내용을 인터넷으로 봤지만 이제 서정희는 가슴 아픈 일, 괴로운 일들은 모두 잊고 새롭게 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만큼 크게 마음을 두려하지는 않고 있다”고 밝혔다. 서정희와 서세원은 지난해 8월 21일 합의 이혼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영애,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뷰티화보 공개

    이영애,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뷰티화보 공개

    배우 이영애의 뷰티 화보가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제이룩(JLOOK)은 2월호를 통해 공개됐다. 공개된 사진 속 이영애는 다가오는 봄 여름 시즌을 위한 뷰티 화보답게 어깨를 시원하게 드러낸 의상과 백옥 같은 피부로 그녀만의 매력을 뽐냈다. 이영애는 “지금 드라마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모던하면서도 여성성을 간직한 현대 여성이다. 이번 촬영 역시 그런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며 스타일에 대해 설명했다. 한방 화장품 브랜드 ‘더 히스토리 오브 후’와 함께 포시즌스 호텔 서울에서 촬영된 이번 화보는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한 3편의 뷰티 필름과 함께 제작됐다. 영상에는 이영애의 근황을 알 수 있는 인터뷰와 화보에서 보지 못한 다양한 모습이 담겼다. 3편 중 인터뷰 내용이 포함된 영상은 오늘 공개됐으며, 나머지 두 편의 영상도 곧 만나볼 수 있다. 인터뷰가 포함된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youtu.be/SSoWXIn9LF0 한편, 이영애는 올 하반기 방송 예정인 SBS드라마 ‘사임당, the Herstory’를 통해 11년 만에 드라마 복귀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약왕’ 구스만 수감 근황 공개… “제발 잠 좀 자자”

    ‘마약왕’ 구스만 수감 근황 공개… “제발 잠 좀 자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58)이 수감 뒤 심리적인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최근 멕시코 일간지 라 호르나다는 변호사의 말을 인용해 구스만이 밤새 켜놓은 조명 아래에서 생활하는데다 교도관들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키 작은 사람'이라는 뜻의 애칭 '엘 차포'(El Chapo)로 유명한 구스만은 지난 8일(현지시간) 멕시코 서북부 시날로아주 로스 모치스의 한 가옥에서 체포됐다. 지난해 7월 최고 보안수준을 자랑하는 알 티플라노 교도소에서 탈옥한 지 약 6개월 만. 이후 멕시코 당국은 경비가 한층 강화된 교도소에 구스만을 재수감하고 주위에 탱크까지 배치하는등 보안에 만전을 기했다. 구스만의 변호사인 호세 곤잘레스가 언론에 흘린 그의 수감 상황은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의 공언처럼 살벌하다. 곤잘레스는 "강철 독방에 수감된 구스만이 24시간 꺼지지 않는 조명에서 생활하고 있다"면서 "한밤 중에도 2시간 마다 교도관들의 점검을 받고있으며 경비견들이 감방 밖에서 계속 짖어대 한숨도 못자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구스만이 변호사를 통해 교도관들의 학대를 금지하는 청원서를 법원에 제출했으며 재수감 이후 한 번도 가족 면회와 전화 사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구스만은 코카인 등 마약을 미국에 공급하는 멕시코 최대 범죄조직 시날로아 카르텔을 이끌며 세계적인 마약왕으로 불렸다. 특히 그는 지난 1993년 마약밀매 혐의로 체포돼 20년 형을 받았으나 2001년 탈옥한 바 있다. 또한 13년 만인 지난 2014년 다시 체포돼 수감됐으나 지난해 7월 탈옥해 '마약왕'에 이어 '탈옥왕'이라는 별명도 추가됐다. 현재 구스만은 멕시코 당국의 관할 하에 있으나 조만간 미국으로 추방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사법 당국은 마약 밀매, 살인, 무기 소지 혐의 등으로 그를 수배 중에 있다. 사진= ⓒ AFPBBNews=News1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4분 미스 유니버스’ 착한 미인의 인생역전

    ‘4분 미스 유니버스’ 착한 미인의 인생역전

    2015 미스유니버스대회에서 사회자의 실수로 4분간 왕관을 썼다가 벗어준 미스콜롬비아 아리아드나 구티에레스가 "실수로나마 왕관을 줬던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대회가 끝났지만 아직 미국에 머물고 있는 구티에레스는 24일(현지시간) 방송된 브라질 TV채널 글로보와 인터뷰에서 근황을 밝혔다. 구티에레스는 "어릴 때부터 미스콜롬비아가 되는 게 꿈이었다"면서 "(일 때문에 미국에 있지만) 조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미스유니버스 왕관의 주인이 뒤바뀐 희대의 실수사고에 대해서도 그는 입을 열었다. 구티에레스는 "왕관을 쓴 뒤에 우승자가 잘못 발표됐다는 사회자의 말이 코미디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2015 미스유니버스대회에선 코미디언 스티브 하비가 사회를 봤다. 구티에레스는 "많이 준비한 대회였기에 진짜 우승자인 미스 필리핀에게 왕관을 벗어주면서 한순간에 모든 게 무너지는 것 같았다"면서 "(겉으론 웃었지만) 매우 슬펐다"고 담담하게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어이없는 주최 측의 실수는 구티에레스에겐 행운의 열쇠가 됐다. "4분간 미스유니버스였던 미스콜롬비아"라는 타이틀이 붙으면서 미스유니버스보다 더 유명세를 얻은 것. 덕분에 대회가 끝난 뒤 구티에레스에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일 제의가 빗발쳤다. 구티에레스는 "계약이 넘치고, 함께 일을 해보자는 제의가 끊이지 않는다"면서 "미스유니버스가 됐더라면 결코 지금처럼 많은 기회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티에레스는 "(주최 측의 실수가) 당시에는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었지만 지금와서 보면 감사해야 할 일이 됐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주최 측의 실수는 미스유니버스에 출전하면서 구티에레스가 개인적으로 꿨던 꿈도 이루어줬다. 구티에레스는 "미스유니버스에서 우승하면 조국 콜롬비아를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다는 꿈을 꿨었다"면서 "왕관을 넘겨주는 바람에 세계인이 콜롬비아에 대해 말을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구티에레스는 "(왕관을 넘겨준 뒤로 내게) 정말 많은 문이 열렸다"면서 실수를 한 주최 측에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대회에서 사회자는 구티에레스를 우승자로 발표했지만 4분 만에 "실수로 우승자를 잘못 발표했다"면서 우승자를 번복했다. 사진=에페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김현회의 축구싶냐] 성남 황진성, “포항? 섭섭하면서 고마운 팀”

    [김현회의 축구싶냐] 성남 황진성, “포항? 섭섭하면서 고마운 팀”

    지난해 12월 초, 서울 모처에서 황진성을 만났다. 일본 생활을 마무리하고 국내 복귀를 노리던 상황에서 황진성의 진솔한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듣고 인터뷰 기사로 내려했다. 하지만 쭉 이야기를 듣고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적이 확정되면 그때 다시 인터뷰하자.” 원소속팀인 포항과의 이적료 문제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자칫 민감한 발언을 했다가 K리그 복귀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황진성의 K리그 복귀라는 ‘단독보도’가 눈앞에 있었지만 그래도 선수가 우선이었다. 민감한 사안을 속 시원히 털어놓은 황진성이 피해를 입는 걸 원치 않았다. 그때 황진성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형. 대신 이적이 확정되면 다시 형한테 모든 걸 다 털어 놓을게요.” 그리고 한 달 뒤 황진성은 성남FC 유니폼을 입었고 약속대로 그는 가장 먼저 나에게 그간의 일을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아직도 포항의 ‘검빨 유니폼’이 더 익숙해 보이는 그의 가슴에는 성남의 상징 까치가 새겨져 있었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2012년 포항 유니폼을 벗고 벨기에와 일본 등을 거치며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던 황진성과의 인터뷰를 지금부터 공개하려 한다. 반갑다. K리그 복귀를 축하한다. 고맙다. 나도 한국이 너무나 그리웠다. 성남 유니폼을 입고 이제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전남 순천에서 동계훈련을 하고 있다. 프로에 와서 이렇게 힘든 동계훈련은 처음인 것 같다. 당신과 성남의 조합은 아직 어색하다. 이적 소식이 터졌을 때 당황한 이들도 많았다. 사실 K리그 클래식 몇 구단과 K리그 챌린지 구단 등 여러 팀과 접촉을 했었다. 그런데 성남 김학범 감독님이 나를 원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남을 택했다. 국내 복귀를 원했던 가장 큰 이유가 경기에 많이 나서고 싶다는 점이었는데 김학범 감독님과 함께하면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적료 문제도 잘 풀렸다. 혹시 성남시의 산후조리비 지원을 노리고 성남을 택한 건 아닌가. 그건 아니다. 우리 부부는 아직 아이가 없다. 알겠다. 성남 이적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후 다시 자세히 나누기로 하고 그 동안의 근황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해보자. 좋다. 그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당신에게 털어 놓으려 한다. 사실 그 동안 국내에 복귀하려면 포항에 거액의 이적료를 줘야했고 포항과 적대적인 상황이 되는 걸 원치 않아 최대한 말을 자제했었는데 이제는 일이 잘 풀려 조금 솔직해져도 될 것 같다. 솔직하게 이야기했다가 믿었던 나에게 낚이는 수가 있다. 일단 2012년 포항과 결별하고 벨기에에 갔을 때의 상황부터 이야기 해보자. 2013년 시즌이 끝난 뒤 당연히 포항과 재계약을 할 줄 알았다. 2003년부터 이 팀에서만 11년을 뛰었기 때문에 내가 포항을 떠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당시 군대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상까지 당하고 말았다. 상황이 꼬여 포항 구단과 결별을 해야했고 어쩔 수 없이 다른 팀을 찾아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포항에만 11년을 있었고 유소년 때까지 포함하면 13년 동안 같은 유니폼만 입었는데 포항을 떠나야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포항을 떠나 벨기에 2부리그 투비즈로 이적한 것도 참 생소한 일 아닌가. 내가 서울신문으로 이적한 것보다도 더 뜬금없다. 나는 2003년에 포항에 입단했는데 흔히 말하는 ‘계약금 세대’다. 국내의 다른 팀으로 이적할 경우에는 이적료가 발생한다. 나도 정확한 계산법은 잘 모르지만 뭐 전년도 연봉과 영입할 팀이 제시할 연봉에 몇을 곱하고 여기에 나이를 나누고 이런 복잡한 계산을 하면 내 이 이적료가 10억 원에서 13억 원 사이라고 하더라. 사실 포항과 결별할 때만 하더라도 K리그내 여러 빅클럽과 영입 이야기를 주고 받았었는데 이적료가 너무 컸다. 생각해보라. 당신이라면 나처럼 나이도 있는 선수를 10억 넘는 이적료를 주고 데려가겠는가. 당연히 안 데려간다. 10억이면 차라리 어리고 잘하는 문창진이나 이광혁 같은 선…. 조용히 하고 내 이야기를 더 들어보라. 알겠다. 결국 내가 갈 수 있는 국내 구단은 없었다. 이 이적료라는 게 국내 이적시에만 발생하는 거라서 어쩔 수 없이 해외로 눈을 돌려야 했다. 그때 나에게 연락이 온 곳이 바로 ‘스포티즌’이었다. 스포츠 마케팅과 매니지먼트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는데 처음에는 사기꾼들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런데 직접 그 회사의 심찬구 사장과 통화를 해보고는 믿음이 생겼다. 비전이 명확한 회사더라. 이 스포티즌이 인수해 운영하는 팀이 바로 벨기에 2부리그 투비즈였고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구단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어떤 선수를 영입할 것인가가 뚜렷하고 명확했고 성적도 벨기에 2부리그에서는 선두권을 유지할 만큼 좋았다. K리그에서만, 아니 포항에서만 11년을 뛴 내가 새로운 무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라고 생각하고 투비즈 입단을 확정지었다.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에서 생선구이만 11년을 먹다가 벨기에 와플을 현지에서 먹는 기분은 어땠나. 영일대해수욕장이 어딘가. 처음 들어본다. 아, 2012년에 포항을 떠나서 잘 모르나본데 북부해수욕장이 2013년부터 영일대해수욕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거 참 포항에 대해서 이렇게 모르나. 그런가. 내가 없는 사이 포항도 변하고 있다는 걸 잘 몰랐다. 사실 처음 벨기에에 갈 때는 어느 정도 고생을 예상했다. 외국 생활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장도 한국 분이었고 한국 직원들도 많아 외지에서 외롭게 생활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한국 분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고 현지 선수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그리고 선수는 원래 첫 경기가 굉장히 중요한 법인데 교체로 투입된 첫 경기 첫 터치로 어시스트를 했다. 운 좋게 첫 경기를 잘 치르니 많은 분들이 인정해 주시더라. 그렇게 처음 선수 등록 문제로 벤치를 지킨 두세 경기를 제외하고는 14경기에 나서 3골 4도움을 기록했다. 나에게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내 꿈이 벨기에 여행 한 번 가보는 것이다. 부럽다. 2부리그 팀이었고 경기장도 아담해 관중이 몇 만명씩 들어차는 팀은 아니었다. 하지만 항상 오시는 분들이 꼭 홈 경기마다 찾아오신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그날은 완전히 동네 축제가 열렸고 경기 전부터 다들 모여서 맥주를 마시며 웃고 즐기는 분위기가 대단했다. 경기가 끝나고도 관중들이 바로 집에 가는 게 아니라 구단 스태프, 선수들과 함께 모여서 맥주를 마시며 축구에 대해 대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참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단장님이 브뤼셀 시내에 무척 좋은 집을 구해주셔서 편하게 생활했다. 운동을 하느라 현지에서 여행을 많이 다니지는 못했지만 그 생활 자체가 나에게는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은 짧은 벨기에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떠났다. 교토상가가 다음 행선지였다. 투비즈에 처음 입단할 때도 그쪽에서 나를 위해 모든 조건을 양보했다. 겨울 이적시장이 열리고 나를 원하는 팀이 있다면 조건 없이 이적료도 받지 않고 보내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겨울 이적시장이 열린 뒤 일본 교토상가에서 제안이 왔고 투비즈 구단에 솔직히 말씀드렸더니 “우리 팀에서 몸을 잘 만들어 더 좋은 조건으로 팀을 옮겨 다행이다”라는 말과 함께 흔쾌히 내 이적을 허락해주셨다. 비록 교토가 J2리그 팀이었지만 1부리그를 오가는 실력이었기 때문에 내가 가서 잘하면 함께 승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J2리그행이 다소 자존심이 상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하느냐라고 믿었다. 그런데 희망을 품고 떠난 당신은 정작 교토에서 보여준 게 별로 없다. 휴, 말하자면 길다. 부상 이후 컨디션이 좋은데도 감독이 나를 쓰지 않고 교체로 넣는 것 아닌가. 이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 번이나 감독을 찾아가 면담을 했다. “내가 지금 컨디션이 좋다. 선발로 뛰고 싶다. 보여줄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러면 돌아오는 답변은 항상 같았다. “네가 잘하는 것도 알고 있고 좋은 선수라는 것도 인정한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그러다 나를 전반기 막판 세 경기 정도에 선발로 내보냈는데 전반기가 끝나고 그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이 됐다. 그런데 이후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준비가 돼 있고 잘할 자신이 있는데 교체로나 조금씩 뛰니까 몸 관리도 힘들었다. 15분, 20분, 어쩔 때는 2분, 3분 경기에 나서는데 어떻게 계속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겠나. K리그에서 그렇게 인정받았던 당신이 J2리그에서 그런 대접을 받았다는 건 우리 집 귀한 자식이 남의 집에서 눈칫밥 먹고 고생하는 것 만큼이나 화가 난다. 그래서 지난해 여름에 다시 국내 복귀를 알아봤다. 그런데 역시나 이적료 문제가 큰 걸림돌이었다. 포항과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결국 교토를 떠나 J2리그 파지아노 오카야마로 이적했다. 내가 교토를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카야마 구단에서 제안을 해왔는데 이적료 문제로 국내에 돌아올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오카야마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오카야마에서의 활약은 어땠나. J2리그 소식은 우리나라에서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 좋았다. 잘해보자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고 감독도 나를 잘 챙겨줬다. 그런데 이 팀이 J2리그에서도 그리 강하지 않은 팀이다보니 전술이 상당히 수비적이었다. 공격형 미드필더가 없는 3-4-3 포메이션을 썼는데 그러니 당연히 공격형 미드필더가 가장 잘 맞는 내가 장점을 모두 발휘할 수는 없었다. 윙포워드를 맡게 됐는데 일단은 안정적인 수비를 우선시하는 팀이어서 공격보다도 수비 가담이 더 중요했다. 그 와중에도 비록 공격 포인트로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프리킥이나 슈팅이 골대에 맞고 나오는 등 나름대로 아까운 장면을 많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수비형 전술을 쓰고 공격형 미드필더가 없어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긴 했다. 무려 13년 동안이나 포항에서 살던 당신이 3년 동안 팀을 세 번이나 옮기며 저니맨이 돼 가던 모습은 안타깝다. 이것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힘들기도 했지만 재미있는 생활이었다. 포항에만 계속 있었는데 새 집도 알아보고 차도 좋은 차를 번갈아 타보는 경험은 그 동안 해보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투비즈에 있을 때는 한 달에 한 번씩 렌트카를 구단에서 바꿔주는데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것도 처음이었다. 어느 정도 급의 차를 랜덤으로 한 달에 한 번씩 교체해주는 방식이었고 타보지 못한 차도 바꿔가며 다양하게 타봤다. 이번 달엔 폭스바겐을 타고 다음 달에는 일본차를 타는 식이었다. 운이 좋으면 업그레이드도 해주더라. 투비즈에서 나름대로 여러 차를 타보며 자동차 전문가가 됐다고 생각하는 내가 보기에는 그래도 폭스바겐 골프가 제일 낫더라. 뭐 이런 경험은 저니맨이 아니면 해보지 못할 경험들 아닌가. 폭스바겐이 배출가…. 다음 질문은 뭔가. 반대로 첫 해외 생활이 생소했던 점은 없었나. 벨기에에 있을 때 깜짝 놀랐다. 훈련장에서 감독과 선수가 막 언성을 높이면서 싸우는 일도 종종 일어났기 때문이다. 서로 치고받기 직전까지 막 싸우다가 훈련이 끝나면 감독하고 선수가 어깨동무를 하고 웃으면서 돌아가더라.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운동 프로그램도 한국과 달라 신선했고 일본의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도 인상적이었다. 생소했지만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도 내 몸이 K리그의 시계에 맞춰져 있다는 건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12월 말에 휴가를 어느 정도 보내면 이제 슬슬 포항 가는 비행기 티켓도 끊고 송라 클럽하우스로 돌아갈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10년 넘게 지속된 그 생활을 이제 하지 않게 되자 너무나도 어색하더라. 벨기에는 여름에 시즌을 시작해 그 다음 년도에 시즌이 끝나기 때문에 겨울에도 경기가 계속 있지 않다. 이때쯤이면 연말 연휴를 보내야 하는데 계속 운동을 하고 있는 건 내게 익숙한 경험이 아니었다. 10년 넘게 몸에 밴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거다. 하지만 당신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아예 짐을 다 챙겨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포항과의 이적료 문제 때문에 국내 복귀가 사실상 불가능했던 상황 아니었나. 이전에 몇 번 포항 구단과 이야기를 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는데 그래도 포항과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나이도 있고 연봉도 있어 포항이 나를 영입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적절한 이적료만 받고 나를 풀어주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더라. 사실 정확한 계산대로 해 10억 원 넘는 이적표를 지불하고 나를 데려갈 구단이 있겠나. 포항 구단에서 이적료 문제를 많이 양보해줬고 어느 정도 합리적인 선을 정해줬다.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 구단별로 “이 정도 이적료라면 황진성을 풀어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때부터 몇몇 국내 구단과 구체적인 이적 협상을 벌일 수 있었다. 오카야마 구단 또한 계약 기간이 1년 더 남아 있었는데 처음 계약할 때부터 한국으로 복귀하게 되면 보내주는 걸로 이야기가 돼 있었다. 사실 포항이 재계약 불가 방침을 통보했을 때는 섭섭한 감정도 있었지만 이적료 문제와 관련해 많은 도움을 주고 협조해준 부분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포항의 양보가 없었더라면 나는 국내에 돌아올 수 없었다. 하지만 성남은 정말 의외의 선택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일단 김학범 감독님이 나를 원한다는 게 컸다. K리그 복귀에 대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팀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김학범 감독님이 나를 원한다는 소식을 에이전트를 통해 듣고 확신이 들어 성남행을 결정했다. 이적료 문제는 포항과 성남이 원만하게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직접 만난 김학범 감독은 어떤가. 물론 이미 계약서에 사인했으니 지금 후회해도 이거 빼도 박도 못한다. 사실 포항에 있을 때는 상대팀의 김학범 감독이 무척 무섭고 엄해 보였다. 그런데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같이 훈련해 보니 굉장히 장난도 잘 치시고 유쾌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훈련을 할 때면 정말 엄격하게 변한다. 지금 동계훈련이 프로 입단 후 가장 힘든 것 같다. 성남의 동계훈련을 겪은 이들은 모두 혀를 내두르더라. 도대체 어떤 훈련을 하기에 그렇게 다들 앓는 소리를 하는 건가.성남의 동계 체력 훈련은 K리그 구단의 동계 훈련 중 가장 힘들다고 정평이 나 있다. 체육관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곳곳에 마련된 19가지 훈련을 정해진 숫자대로 3회 연속 쉬지 않고 소화해야 하는데 사이클부터 시작해 트렘폴린, 다섯 가지 스텝 훈련, 모래주머니를 등에 진 채 갖가지 동작을 반복하는 스트레칭과 코스를 반복해서 뛰는 순서로 이어진다. 로프를 양손에 쥔 채 위아래로 흔드는 마지막 코스까지 소화하면 다들 쓰러질 정도다. 지금은 아직 공을 가지고 하는 훈련이 아니라 이런 체력과 근력 운동을 위주로 하고 있다. 여기저기 그동안 팀을 옮기면서 운동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을 벗어나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지금이 몸은 피곤해도 행복하다. 음식도 해외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잘 맞는다. 나같이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효과 만점이겠다. 당신은 아마 한 나절 훈련을 하고 도망갈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은 당신과 김두현의 호흡을 기대한다.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지만 포지션이 겹치는 걸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에서 (김)두현이 형과 처음으로 공을 찰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클래스가 다른 선수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또한 2006년 성남과 수원의 K리그 챔피언결정전 1차전 성남 홈 경기를 치를 때 관중석에서 두현이 형의 플레이를 지켜본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두현이 형이 중원의 장악하면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었다. 아직은 체력 훈련 위주라 함께 공을 차지는 못했지만 예전부터 한 팀에서 꼭 한 번 함께 해보고 싶은 형이었다. 두형이 형과 한 팀에서 뛴다는 건 기분 좋고 설레는 일이다. 일단 지난 시즌 두현이 형과 (황)의조가 공격의 주축이었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다양한 공격 루트를 만든다면 기쁠 것 같다. 두현이 형과 포진션이 겹친다는 지적도 있지만 나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익숙한 반면 두현이 형은 어느 포지션이건 소화가 가능하다.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성남 유니폼을 입은 당신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도 포항과의 맞대결을 벌써부터 상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많은 이들은 당신이 포항을 상대로 어떤 경기를 펼칠지 기대하고 있다. 벨기에와 일본에 있을 때도 포항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은 꼭 챙겨봤다. 결별 과정에서 섭섭한 감정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게는 프로 생활을 처음 시작한 의미 있는 팀이다. 포항에서 젊고 좋았던 시절을 보냈고 이적료 문제도 포항이 잘 풀어줬다. 오는 4월 2일 성남 홈에서, 그리고 6월 15일 스틸야드에서 맞대결이 예정돼 있는데 막상 포항과 경기를 하게 된다면 어떨지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특히나 스틸야드에 서면 어떤 느낌일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전반전이 끝나고 습관적으로 홈 라커룸으로 들어가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포항은 나에게 특별한 구단이지만 이제는 내가 이겨야 하는 상대이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포항 팬들은 당신과의 좋은 추억을 많이 떠올린다. 그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내가 성남으로 이적한 뒤에도 많은 포항 팬들이 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시더라. 그분들한테 보답하는 길은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분한 사랑을 보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이고 포항으로 돌아가 이 사랑을 다 보답해드리지 못하게 된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성남의 선수로서 성남 팬들에게도 한마디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성남 유니폼을 입었으니 성남의 전통에 누가 되지 않도록 멋진 플레이를 선보이고 싶다. 외국에 있으면서 다른 건 다 괜찮았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동료들과 대화하면서 하나의 마음으로 경기에 나서던 K리그 시절이 그리웠다. 외국에서는 내 플레이에만 집중했는데 나는 동료들과 하나로 뭉쳐 뛰는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이제 성남에서 동료들과 하나가 돼 즐겁게 축구하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성남의 오랜 팬 ‘샤다라빠’에게도 한마디 해달라. 포항에서 내가 잘하고 있을 때 좋은 내용으로 만화에 한 번 등장시켜 주셔서 잊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 성남 선수가 됐으니 더 잘 부탁드린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 이제는 살을 좀 뺐으면 한다. 당신을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오래 오래 보고 싶어서 하는 말이다. 황진성은 더 이상 K리그에서 ‘원클럽맨’이 아니다. 11년 동안 포항 유니폼을 입고 스틸야드를 누볐던 그는 이제 성남에서 새로운 축구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그가 포항을 대하는 감정은 참으로 미묘하다. 포항은 황진성에게 처음으로 기회를 준 곳이자 꿈을 키워준 구단이면서도 작별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황진성은 성남 유니폼을 입고 포항을 상대하게 됐다. 이 스토리가 K리그를 더 풍부하게 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돌고 돌아 다시 K리그 무대에 선 황진성의 올 시즌 활약을 기대한다. 축구칼럼니스트 김현회 footballavenue@nate.com
  • 최초 화성인 여자 후보 4명 면면 공개…의사, 해병대, 헬기 조종사 등

    최초 화성인 여자 후보 4명 면면 공개…의사, 해병대, 헬기 조종사 등

    앞으로 15년 뒤 우주선을 타고 화성에 갈 여성 후보 4명의 근황이 공개됐다. 미국 휴스턴에 있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존슨 우주센터에서는 여성 우주 비행사 4명이 최초의 화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고 미 패션지 글래머가 전했다. 4명 중 최소 한 명 이상 화성인에 포함된다. 2013년 NASA 우주 비행단에 최종 선발된 이들 4명은 바로 전투기 조종사인 니콜 오나푸 맨(38) 해병대 소령, 헬리콥터 조종사인 앤 매클레인(36) 육군 소령, 제시카 메어(38) 하버드 의대 교수, 국립해양대기국(NOAA)의 크리스티나 해먹 코흐(37) 국장이다. NASA는 5년에 한 번씩 우주 비행사를 신규 채용하고 있는 데, 2012년 초 우주 비행사 선발 공고 당시 지원한 6100여 명 가운데 이들 여성이 선발된 것이다. 특히 이들은 함께 우주 비행단으로 선발된 합격자 8명 가운데 절반을 차지해 크게 주목 받았다. 이에 대해 NASA는 우주 비행사로서 가장 적합한 인재를 뽑은 결과 이렇게 됐다는 취지의 견해를 발표하기도 했다. 육군 소령 출신 앤 매클레인은 인터뷰에서 “아직도 내가 선택됐는 전화를 받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숨을 쉴 수 없고 말을 할 수 없었다”면서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하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이라크에서 15개월간 헬기 조종 임무를 맡았다는 매클레인 후보는 “의무감에 입대했었지만 우주 비행사가 될 기회를 알고 운명이라 생각했다”면서 “세상엔 너무 많은 갈등이 있지만 우주 탐사는 이를 해소하는 희망의 등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우주에서는 인종이나 종교, 국적의 차이를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우리는 모두 단지 ‘팀 휴먼’(Team Human)의 일원일 뿐이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후보자인 제시카 메어 박사는 하버드 의대 교수 출신으로, 자신은 미 메인주(州)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항상 멀리 떨어진 곳을 꿈꾸며 그리워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화성 탐사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는 것. 반면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 국장 출신 크리스티나 해먹 코흐는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항상 우주 비행사가 될 것을 알았고 NASA를 위해 일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니콜 오나푸 맨 해병대 소령은 “난 아마 어렸을 때 하고 싶은 일을 알지 못한 몇 안 되는 우주 비행사 중 하나일 것”이라면서 “우주 비행사는 억지스러운 꿈처럼 보였었다”고 회상했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그녀는 이라크에서 전투기를 조종하기 전까지 자신은 좋은 후보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NASA는 2030년대 화성에 유인 탐사선을 보낼 계획이다. 지구에서 수천 만 km 이상 떨어진 화성까지 왕복하는 데만 3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화성에 가게 될 4명의 우주 비행사는 먼지 폭풍과 극저온, 암을 유발하는 방사선을 견뎌야만 한다. 하지만 이득은 엄청날 수 있다. 메어 박사는 “화성은 우리 지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이라면서 “그건 놀라운 일이다”고 말했다. 이들 우주비행사는 한 해 6만4000~14만1000달러(약 7720만~1억 7000만원)의 보수를 받으면서 임무 수행에 필요한 훈련과 준비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30] 미로에 갇힌 줄기세포, 이젠 도약을 준비하자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30] 미로에 갇힌 줄기세포, 이젠 도약을 준비하자

    우리가 줄기세포에 관심을 가진 건 그리 오래 전이 아닙니다. 아마 황우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의 연구논문 조작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 전에 줄기세포는 우리 일상과는 먼 거리에 있는 과학 또는 의학 분야의 전문적인 이슈일 뿐이었지요. 황우석(사진) 교수는 신데렐라였습니다. 그의 연구 성과에 온 국민들이 환호했고, 난치질환자들은 치료에 대한 희망을 얻었습니다. 심지어는 그를 통해 우리의 젓가락질이 일군 개가라며 자긍심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 때가 2004년 2월이었습니다. 황우석·문신용 교수팀이 체세포 복제배아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확립했다는 연구 결과가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지에 발표됐지요. 이어 이듬해 5월에는 황우석 교수가 척수마비와 파킨슨병을 가진 환자 11명을 대상으로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를 확립했다는 연구 결과가 역시 사이언스지에 발표돼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일희일비했지요. 그 때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황빠’라고 불렀습니다. 아이돌 가수에게나 있을 법한 오빠부대의 출현이었습니다. 줄기세포라는 낯선 존재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짧은 행복, 긴 어둠 그러나 기대와 기쁨은 한순간에 낙담과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2005년 11월에 방송된 모 방송사의 심층 추척프로그램에서 ‘황우석 신화의 난자 매매 의혹’을 다룬데 이어 논문조작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서면서부터였지요. 연구자와 방송사 간의 공방이 이어졌고, 세간에는 “그럴 수가…”라는 탄식과 “설마…” 하는 기대가 교차했습니다. 세계의 이목이 한국으로 쏠린 가운데 황우석 교수는 ‘연구원 난자 사용’ 사실을 시인하고 모든 공직에서 사퇴한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줄기세포에 대한 희망은 남아있었습니다. 정당하게 얻지 않은 ‘연구원 난자’가 윤리적 문제를 유발한 것이지, 줄기세포 연구 성과는 온전하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해 12월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황우석 교수가 200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밝힌 맞춤형 줄기세포는 없다”고 발표했지요. 이 때문에 그의 연구성과에 환호작약했던 국민들은 쓰디 쓴 실망감을 곱씹어야 했고, 그 때 이미 이 사태의 결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논란 끝에 이듬해 3월 사이언스지가 공식적으로 황우석 교수의 논문을 철회함으로써 사태는 희망으로 시작해 악몽으로 종결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오로지 나쁘기만 한 일은 없는 것인지, 이 사태를 계기로 연구윤리 문제를 제도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아무튼 파장은 오래 갔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손실은 이후 상당 기간 우리의 줄기세포 관련 연구가 마치 동토에 내버려지기라도 한 듯 긴 휴면기로 접어들었다는 점이겠지요. 그 틈새를 비집고 일본과 미국, 영국 등 다른 나라는 연구에 가속도가 붙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고요. 우리와 그들의 연구 격차는 이렇게 커져만 갔습니다. 지난해, 일본의 유력 매체인 아사히신문의 과학 전문기자인 다카하시 마리꼬를 서울에서 만났습니다. 그와는 오래 전부터 친교하는 사이여서 평소에도 스카이프나 메일을 통해 교신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 때의 만남은 좀 달랐습니다. 마리꼬 기자는 대뜸 황우석 박사의 근황부터 묻더군요. 황 박사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져 가던 때라 주로 국내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베리아에서 발굴한 매머드 복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는 것 등등. 그러자 마리꼬 기자는 필자더러 그의 연구실로 안내해 줄 수 없겠느냐고 다시 묻더군요. 그의 연구소가 서울 영등포 어름에 있다고는 들었지만 막상 같이 가줄 수 없느냐는 제안에 난감했습니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취재와 같은 주제로 인터뷰까지 한 터에 혼자 가라고 할 수도 없어 안내만 하기로 했지요. 이 때는 일본 교토대 iPS 세포연구소장인 야마나까 신야 박사가 유도만능세포를 확립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2012년)한 뒤였습니다. 일본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우리로서는 황우석 사태 이후 우리가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일본이 추월했다고 여길만 했고, 더러는 노벨상 하나를 잃어버렸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떻든 우리에게는 이 시간이 ‘짧은 행복의 끝, 긴 어둠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 탄력을 받기까지 어림 잡아 4∼5년은 잃어버린 시간이었으니까요. 연구 분야에서 4∼5년은 세상을 바꿀만큼 중요하고도 긴 시간입니다. ●‘줄기세포 신드롬’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는 줄기세포에 극단적인 알레르기반응을 보이는 사례도 생기더군요. 줄기세포 문제를 잘못 건드리면 골치만 아프다는 희한한 기피증이 그것입니다. 황당한 얘기입니다만, 우리 식약처가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줄기세포 치료술을 부정한 일이 최근에 발생했습니다. 그냥 부정만 한 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줄기세포 치료술을 폄훼하기까지 했지요. 국내 바이오기업인 네이처셀사는 얼마 전, 일본 관계사인 알재팬사를 통해 자사가 개발한 줄기세포 치료제 ‘바스코스템’의 임상 허가를 획득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치료기술은 버거씨병을 포함한 중증 하지허혈성 질환에 적용되는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의 니시하라 클리닉에서 치료가 이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이 치료술을 우리나라에서 허가하지 않은 탓입니다. 아시겠지만, 일본은 전 세계에서 새로운 의료기술 도입에 가장 깐깐한 나라로 꼽힙니다. 그런 일본에서 이 치료가 시행되는데 우리 식약처는 여전히 깜깜이 식으로 ‘나몰라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네이처셀 측은 “버거씨병, 당뇨병성 족부궤양 등 중증 하지허혈성질환 치료를 위해 개발한 치료 기술을 세계 최초로 일본 정부가 허가했다는 게 중요하다”면서 “의료 분야에서 보수적인 일본 정부가 이를 허가했다는 것은 충분한 검증을 거쳐 치료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더군요. 황당한 일은 이 뒤에 일어났습니다. 네이처셀 측의 이 발표가 있자 식약처는 즉시 해명자료를 통해 “일본 후생노동성이 버거씨병 치료제 바스코스템을 국내보다 먼저 허가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이지요. 식약처는 “일본 후생노동성에 문의한 결과, 후생노동성은 ‘바스코스템’을 의약품으로 허가한 것이 아니라 니시하라 클리닉에서 의사의 책임하에 사용하는 것을 승인한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따라서 일본 전역에서 바스코스템 사용을 허가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이 정도로 궁색한 변명을 해야 한다면 어느 나라 식약처인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식약처의 해명에서 사실을 비틀려는 의도가 충분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은 물론 한국인이나 중국인도 니시하라 클리닉을 찾아가면 바스코스템을 이용한 치료를 얼마든지 받을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최종적으로 허가했는데, 한 병원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강변한 것이야말로 ‘눈 가리고 아옹’하는 격이지요. 그러면서 식약처는 좀 저어했던지 “식약처는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치료제를 허가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줄기세포치료제 연구·개발 및 제품화를 선도하고 있다”는 면피성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말인즉, ‘그 치료제가 제대로 된 것이라면 우리(식약처)도 충분히 허가할 수 있으나, 그 수준에는 못 미친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그걸 깐깐한 일본이 덜렁 승인을 해버렸으니 얼마나 부끄럽고 황당했겠습니까. 가뜩이나 약이 오른 네이처셀 측이 “일본에서 새로 제정된 재생의료추진법에 따라 치료계획이 승인됐으며, 이에 따라 일본인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 환자라도 니시하라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어 치료 지역에 제한이 있는 것처럼 발표한 식약처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목청을 높인 것도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 제약사나 랩에서 특정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것은 좁게 보면 한 회사의 명운이 걸린 일이고, 범주를 넓혀 보면 그 약으로 질병을 치료해야 하는 수많은 환자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니까요. 또다른 관점에서는 우리가 개발한 치료제의 부가이익을 상당 부분 일본에 넘겨준 것이기도 합니다. 상황이 이러니 이 일과 무관한 줄기세포 연구자들이 “업무적 관행이나 낡은 기준 때문에 국내 환자들의 치료 기회를 박탈하고도 이를 정당하다고 강변하는 식약처가 정말로 국민건강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지 묻고 싶다”고 역정을 내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마도 식약처는 현행 규정상 이 치료제를 의약품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다른 약제와 달리 이 치료제는 줄기세포를 체외에서 배양해 만들었는데, 당시의 규정이 줄기세포 관련 조항을 세밀하게 만들어 놓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 때문에 관련 공무원들이 애매한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했을 수도 있는 일이지요. 그러나 이는 규정 이전에 정책적 관점의 문제입니다. 아니, 일본은 승인 신청이 들어가자 즉시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해 치료를 허가했는데, 우리는 그걸 못해 결국 꿩도 매도 다 놓쳤으니 안타깝고 답답한 노릇이지요. 돌이켜 보면, 식약처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식의 이같은 대응을 두고 오로지 식약처만 탓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황우석 사태 이후 줄기세포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부류가 어디 식약처 뿐이겠습니까. 그러니 시의적절하게 관련 규정을 만들거나 정비하지 못 했을 것이고, 그런 외중에 줄기세포 치료제를 승인하려니 겁인들 안 났겠습니까. 한 마디로 황우석 사태 이후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를 지배한 ‘줄기세포 신드롬’인 셈이지요.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 줄기세포 줄기세포(Stem cell·사진)란 신체의 여러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세포를 말합니다. 아직 미분화 상태여서 적절한 조건을 갖춰주면 원하는 조직으로 세포 차원의 분화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는 치료가 가능하다고 보고 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하고 있지요. 이를테면 간경변이 심해 기존 치료로는 개선을 기대할 수 없는 환자에게 줄기세포를 이용해 조직적합성이 확인된 간조직을 만들어 이식하거나 기존 간 조직에 같은 세포를 심어 새로운 간조직으로 생육하도록 하는 치료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좀 어렵나요? 여기에서 말하는 분화란 특정 장기의 특성을 갖추지 않은 초기 단계의 세포가 시간이 경과하면서 특정 조직, 즉 간이나 심장, 뇌, 안구 등 특정 조직의 특성을 갖추어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예컨대, 사람의 경우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면 수정란이라는 하나의 세포가 생성되는데, 여기에서 분화가 진행되면 뼈, 심장, 피부 등 다양한 인체 조직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단일세포인 수정란이 자궁 속에서 차츰 사람의 형상을 갖추어 완성된 생명체로 태어나지요. 배아줄기세포니, 성체줄기세포니 하는 말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배아줄기세포는 이런 분화능력이 아주 뛰어난 미분화 세포인데, 이 세포의 경우 필요한 조건만 갖춰주면 다양한 조직세포로 분화합니다. 그러나 배아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해서는 성숙한 여성의 난자가 필요한데, 난자 자체를 원초적 생명이라고 간주하는 가톨릭 등 종교단체에서는 이를 이용한 연구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사회적으로 자칫 심각한 윤리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는 제약이 따릅니다. 이와 달리 성체줄기세포는 분화 능력이 한계가 있어 모든 조직으로 분화할 수는 없지만, 특정 장기나 조직으로는 얼마든지 분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윤리적 시비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연구도 아주 많습니다. 이제 왜 수많은 의학자와 기업이 줄기세포 연구에 몰두하는 지를 아셨을 것입니다. 질병을 고치는 새로운 접근을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할 수는 없지만, 기업적 관점에서 보자면 줄기세포 치료제는 ‘노다지’인 것이 틀림없으니까요. ●‘악몽’에서 ‘희망’으로 황우석 박사는 연구 윤리를 위반했다는 점 때문에 평생 그가 얻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렸지만, 줄기세포에 질병 치료의 미래가 있다는 점을 일찌기 간파한 안목을 가졌고, 이를 위해 행동했으며, 연구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 지를 일깨운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굳이 정리하자면 그는 우리에게 희망을 줬고, 그 희망을 악몽으로 분화시켰으며, 그 악몽이 이제는 우리의 자산이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반면교사(反面敎師)처럼. 그 사이 국내에서는 앞서 거론한 네이처셀(알바이오·R Bio) 말고도 제법 많은 기업들이 줄기세포 연구를 진행해 나름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치료 분야에서 다시 희망을 일구는 것이지요. 또, 각급 병원에서도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에 팔을 걷어부치고 있습니다. 얼른 생각 나는 몇 곳만 들어볼까요. 메디포스트는 자체 개발한 줄기세포 치료제 ‘카티스템(CARTISTEM)’의 지난해 4분기 판매량이 전기 대비 37.1%나 늘었다고 최근 밝혔습니다. 처음 식약처 허가를 받은 2012년 28건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103건을 기록하는 등 누적 판매량이 3000건을 넘어섰으며, 이 치료제를 사용하는 병·의원도 전국 290여 곳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카티스템은 축구 국가대표팀의 히딩크 전 감독이 관절염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면서 유명세를 탄 골관절염 치료제로, 제대혈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바이오의약품 산업의 선두 격인 셀트리온도 눈여겨 볼 회사입니다. 세계 최초의 항체 바이오시밀러인 류마티스관절염 및 강직성 척추염 치료제인 ‘램시마’를 출시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해 있으며,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인 ‘허쥬마’도 이 회사 제품입니다. 아마도 국내 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서는 축적된 연구 역량이 가장 뛰어나며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큰 곳이 셀트리온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 뿐이 아닙니다. 세원셀론텍, 파미셀, 마리아바이오텍, 안트로젠 등도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 주목을 받는 곳들입니다. 일선 병원들의 연구 동향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차병원 그룹인 차바이오텍은 최근 스타가르트병 줄기세포 치료제인 ‘MA09-hRPE’의 1상 임상시험을 완료했다고 밝혔는데, 배아줄기세포를 망막세포로 분화시켜 만든 이 치료제는 황반변성 치료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현재 황반변성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데, 개발 단계에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기도 했지요. 연세사랑병원의 경우 개원가에서는 아마도 가장 먼저 줄기세포 치료를 연구한 곳일텐데, 상당한 연구 성과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들병원이나 바른세상병원 역시 척추 및 관절질환을 정형외과·신경과 중심으로 치료해 두드러진 성과를 거둔 병원들이지만, 최근에는 줄기세포 치료에도 관심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략적이지만 이런 동향을 소개하는 것은 ‘희망’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줄기세포에서 희망을 구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혈관과 신경은 물론 심장·신장·간·면역계·골격·근육·피부 등 줄기세포를 통해 희망을 얻을 수 있는 분야는 특정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냥 우리 몸 전부라고 하는 게 이해가 빠르겠지요. 이런 줄기세포의 질병 치료 원리는 간단합니다. 인체는 60조∼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는데, 사고나 노화, 질병 등으로 이 세포가 훼손되거나 건강상태가 나빠지면 질병이 생깁니다. 이런 상태에서 인체는 자가치유력을 보이지요. 몸이 스스로 망가진 세포를 재생, 복구해 원래의 건강한 몸으로 되돌리는 능력입니다. 이 자가치유력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줄기세포입니다. 줄기세포가 갖는 특성 중에 ‘호밍효과(Homing Effect)’라는 게 있습니다. 풀이하자면 귀소본능 같은 것으로, 줄기세포를 체내에 주입하면 각기 필요한 곳으로 몰려가 조직을 재생하는 효과를 나타낸다는 뜻입니다. 이 호밍효과가 바로 줄기세포 치료의 원천입니다. 이런 줄기세포의 존재는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계기가 되어 우리에게 처음 알려졌습니다. 국내 줄기세포 연구의 기대주 중 한 명인 라정찬 박사의 견해를 빌리면, 이 때 건강한 사람의 골수를 피폭 환자들에게 이식해 치료를 시도한 것이 조혈모세포가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이 때부터 ‘자신과 똑같은 세포를 생산(자가복제 능력)하며, 적혈구, 백혈구 등 혈액세포를 만드는 능력(분화능)을 가진 세포’라고 줄기세포를 정의하게 되었답니다. 이런 내력을 일별하면, 오래 전에 답은 나와있었습니다. 문제는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배양과 이식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두고 전 세계가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전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 엄청난 부가이익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논점을 국부 차원으로 확장하지는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질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며, 부가 이익은 그 다음의 문제이니까요. 우리는 황우석 사태를 거치면서 한동안 줄기세포 연구에 필요한 동력을 상실한 채 허송세월을 했습니다. 연구자들이 낙담해 관련 연구는 발이 묶였고, 필요한 규정은 제때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 때 ‘앗, 뜨거’라며 허겁지겁 만들어 놓은 ‘압박성 규제’들이 지금까지 연구를 방해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비 온 뒤에 땅이 굳을 거라고 믿지만,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해서는 줄기세포라는 엄청난 ‘은총’과 ‘노다지’를 모두 잃고 종국에는 질병 치료의 식민지가 될 지도 모릅니다. 원천기술은 없는데, 병은 치료해야 하니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외국의 원천기술을 사오거나 외국 제품을 구입해 쓸 수밖에 없을테니까요. 그러니 이제는 비상한 각오로 도약을 준비해야 합니다. 과거를 잊고 ‘작지만 강한’ 줄기세포 강국의 꿈을 실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정부는 정부의 몫을 다해 실효성 있는 지원체제를 구축해야 하고, 연구자들은 기탄없이 창의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거기에 있으니까요. jeshim@seoul.co.kr
  • [단독] 노이즈, 완전체 컴백 논의 “‘슈가맨’ 방송 후 천성일 찾아가 만나”

    [단독] 노이즈, 완전체 컴백 논의 “‘슈가맨’ 방송 후 천성일 찾아가 만나”

    그룹 노이즈가 완전체 컴백을 논의 중이다. 한 연예 관계자는 서울신문에 노이즈 멤버 홍종구, 김학규, 한상일, 천성일이 지난 13일 회식 자리를 갖고 컴백에 대해 논의했으며 긍정적인 대화가 오갔다고 전했다. 앞서 12일 방송된 JTBC ‘투유프로젝트-슈가맨’에는 노이즈 멤버 홍종구, 김학규, 한상일이 출연해 추억의 히트송 ‘상상 속의 너’ 무대를 선보였다. 이날 방송은 평균 시청률 4.02%(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가구 광고제외기준), 분당 최고 시청률 4.9%를 기록하며 뜨거운 인기를 입증했다. 방송 다음날인 13일까지 노이즈의 노래와 멤버들의 근황이 온라인을 달궜고, 노이즈 멤버들은 바로 모임을 갖고 이를 자축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녹화에 불참했던 천성일까지 한자리에 모여 완전체 컴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이즈는 1992년 ‘너에게 원한건’으로 데뷔해 ‘변명’, ‘내가 널 닮아갈 때’, ‘상상속의 너’, ‘어제와 다른 오늘’, ‘이젠’, ‘홀로서기’, ‘성형미인’ 등의 곡을 히트시키며 1990년대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지난 1998년 마지막 정규 앨범 발매를 끝으로 대중으로부터 모습을 감춰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노이즈 홍종구는 ‘슈가맨’에서 갑작스러운 활동 중단 이유에 대해 “세대가 갑자기 확 바뀌는 걸 느꼈다. 5집 ‘성형미인’을 발표하고 H.O.T.가 나왔는데 저희 음악과 완전히 달랐다. 그래서 우리가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홍종구는 현재 대학 교수로 활동 중이며 한상일은 미국에서 의류업을 하고 있다. 김학규는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출연하는 등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천성일은 작곡가로 활동하다 현재는 IT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슈가맨’ 이후 노이즈의 노래가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 받으며 완전체 컴백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北, 한국계 미국인 3개월째 억류

    北, 한국계 미국인 3개월째 억류

    북한이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씨를 억류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CNN은 11일(현지시간) 북한에 억류 중인 김씨와 한국계 캐나다인 임현수(61) 목사와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김씨는 올해 62세로 국제 무역과 호텔업을 하는 회사의 사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한국의 보수 계층’을 대신해 간첩행위를 한 혐의로 붙잡혔다”면서 “2013년 4월부터 군사 비밀과 스캔들 관련 장면을 사진으로 찍는 임무를 맡았다.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에게 북한을 혐오하도록 사상을 주입시켰다”고 말했다. CNN은 김씨의 억류가 사실이라면 현재 북한에 억류된 유일한 미국 시민권자라고 전했다. 한편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캐나다인 임 목사의 근황도 이날 CNN방송의 인터뷰를 통해 공개됐다. 임 목사는 평양의 한 회의실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일주일에 6일, 하루에 8시간씩 교도소 과수원에서 사과나무를 심을 구덩이를 파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최고재판소는 임 목사가 특대형 국가 전복 음모 행위를 감행했다며 지난달 그에게 무기노동교화형(종신노역형)을 선고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사육사 애정으로 건강 되찾은 183세 최장수 거북이

    사육사 애정으로 건강 되찾은 183세 최장수 거북이

    영양실조 등으로 한 때 위독했던 영국의 183세 거북이가 사육사의 정성어린 보살핌 덕분에 건강을 회복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19세기에 태어나 21세기인 현재까지 영국령 식민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생존하고 있는 세이셸 코끼리 거북(Seychelles tortoise) ‘조나단’의 근황을 소개했다. 조나단은 지난 2005년 갈라파고스 육지거북 ‘해리엇’이 1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래 ‘세계 최장수 육지동물’의 영예를 이어나가고 있다. 조나단과 같은 코끼리거북(뭍에 사는 대형 거북의 총칭)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150년 정도다. 따라서 조나단은 코끼리거북 중에서도 유독 늙은 셈이다. 이토록 많은 나이 때문인지 조나단은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모두 잃고 후각을 상실하는 등 자연스러운 건강 악화를 겪어 왔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됐던 것은 조나단의 식사 습관이었다. 한 때 뾰족했던 주둥이가 점차 닳아 뭉툭해지자 원하는 식물을 뜯어먹기 힘들었던 조나단은 영양가 없는 잔가지와 나뭇잎만을 주워 먹었고, 결국 영양실조 및 체중감소가 찾아왔던 것. 이런 조나단의 문제를 진단해 낸 수의사 조 홀린스는 이후 조나단의 식단을 완전히 개편해 그의 건강을 되찾아 줄 수 있었다. 홀린스는 “사과, 당근, 상추, 구아바, 바나나 등 칼로리가 높은 야채 및 과일을 먹여준 이후 조나단의 삶은 완전히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조나단의 몸무게는 회복됐으며 이전보다 활동량도 늘었다. 무엇보다 주둥이가 다시 단단하게 자라남에 따라 원하는 풀을 마음껏 물어뜯을 수 있게 됐다. 콜린스는 “최근 조나단은 피하 지방이 증가했기 때문에 앞으로 겨울을 나는데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이미 나이가 많지만 조나단이 앞으로 더 오래 생존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며 희망적인 전망을 내비쳤다. 원래 영국령 세이셸 군도에 살던 조나단은 1882년에 세인트헬레나 섬 총독에게 선물된 이래 지금까지 섬을 지키고 있으며 그 동안 섬을 다스렸던 총독은 총 28명이다. 조나단의 생존기간에 걸쳐 영국 왕좌에 앉았던 왕은 조지 4세부터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까지 총 8명이며, 그 기간 선출됐던 영국총리는 51명이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포토] ‘임신’ 앤 해서웨이, 여전한 미모…화보같은 일상

    [포토] ‘임신’ 앤 해서웨이, 여전한 미모…화보같은 일상

    2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최근 임신 소식을 알린 배우 앤 해서웨이의 근황이 담긴 사진이 스플래쉬닷컴 카메라에 포착됐다. 사진=TOPIC / SPLASH NEWS(www.topicimages.com)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