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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수원 동기생 모여라”

    경기도 과천에 있는 중앙공무원교육원(원장 金炳浩)에서28일 이색적인 모임이 열린다.고시 출신 공무원들이 연수원 수료 10년 만에 ‘홈커밍데이’를 갖는 것이다. 행정고시 34회와 기술고시 26회,외무고시 25회 동기생들100여명은 교육원에 모여 수습사무관 시절과 앞으로의 공직인생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할 예정이다. 또 당시 그들을 가르쳤던 이상국 현 공무원교육원 교수와 김근조 홀트아동복지회장 등 은사를 초빙,감사의 자리도 갖는다. 이 모임을 주선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김의환 서기관은 26일 “일반 학교에서는 졸업 몇주년을 맞아 홈커밍행사를갖는데 교육원 수료생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면서 “수습사무관 시절의 열정과 지금의 공직관 등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눌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기관에서 고참 사무관으로 성장한 이들 동기생들은 모두 252명이었으나 20여명이 공직을 떠나 현재 230여명이 봉직하고 있다.이중 100여명이 해외에서 근무하고 있다. 교육원에서도 이러한 행사가 처음이라 의미있는 모임이되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고있다.이런 모임을 통해 햇병아리 사무관 시절의 순수했던 꿈과 열정 등이 향후 공직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홍성추기자 sch8@
  • 편리한 인터넷우체국

    회사원 이모씨(40·서울 강남구 삼성동)는 얼마전 승진한 친구에게축하전문을 보내려다 전화로 대신했다.우체국 전화번호를 확인,연락을 해야하는 등 절차가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가 인터넷 우체국(www.epost.go.kr)을 통해 축하 카드를 보내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사정이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지난해 12월 이 서비스를 실시한 인터넷우체국은 경조우편카드를 보내는 업무외에 우편물 주소 이전,호적등·초본 등 민원서류를 신청받아 배달하는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다. 회원가입은 무료이며 우편물 주소 이전 신고외에는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이용할수 있다.회원가입시 이메일ID를 받으면 신청때마다 주소를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 우체국을 운영하는 정통부 우정사업본부 사업개발과 황성구씨는 “현재 하루 이용자가 1만 5,000명이 넘는다”면서 “당초 예상보다 이용자가 많아 시스템을 보강하고 있으며 이달말쯤 인터넷상에서 편지를 쓰더라도 수신인은 편지형태의 정감어린 우편물을 받아보는 하이브리드 메시지 서비스도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조우편카드=직접 찾아뵐수 없는 분들께 안부 또는 감사를 전하거나 축하·근조의 의미가 담긴 카드를 전하고 싶을때 이용하면 된다. 전화로 신청할 경우 문구가 정해져 있으나 인터넷을 이용하면 100자범위내에서 원하는 문구를 써보낼수 있다.카드는 축하 감사 근조 등모두 6종류가 있다.비용은 1,000원이며 무통장 입금,사이버 패스카드,신용카드로 결제할수 있다. ◆민원서류= 호적등·초본,토지대장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28가지 민원서류를 인터넷을 통해 신청하고 희망주소지에서 우편으로 받아볼수 있다.비용은 우편수수료 2,000원에 발급수수료를 합한 금액을 온라인으로 입금하면 된다.신청서류를 우편으로 받아볼수 있는 기간이 전화나 팩스를 이용할 때보다 하루정도 단축된다. ◆주소이전=전·출입 등으로 주소가 변경된 경우 주소변경 내용을 신고하면 종전 주소가 기재된 우편물을 3개월간은 이사간 곳에서 받아볼수 있다.그러나 구주소 기재 우편물은 구주소지 담당 우체국으로갔다가 다시 새주소로 배달되므로 우편물을 받아보는 기간은 오래 걸린다.따라서 주소이전 신고후라도 발송인에게 주소 변경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좋다. 이밖에 우체국창구에서 직접 접수·발송한 국내 등기소포와 국제 특급우편 등의 우편물 배달여부도 조회할 수있다. 한편 지난 1월부터 미국·일본에서도 인기 상품을 주문하면 배송하는 서비스(world.epost.go.kr)가 실시되고 있다. 강선임기자
  • [부시행정부 싱크탱크] (4)브루킹스 연구소

    *진보 앞세운 '부시정부 균형타'. 브루킹스연구소는 미국의 많은 싱크탱크들 가운데서도 80년이 넘는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의 싱크탱크다.헤리티지재단이나 후버연구소가 보수적 색채를 띤 반면 브루킹스는 진보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보수 성향의 공화당보다는 진보 성향의 민주당과 더 가깝게지내온 편이다.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집권하자 브루킹스연구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관리로 들어간 것이나 클린턴의 집권 8년간 로널드 레이건부터 조지 부시에 걸친 12년간의 공화당 집권 때보다 활발한 활동을 편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브루킹스연구소는 독립적인 민간 연구기관이며당 차원을 떠난 싱크탱크다.진보적 색채를 띤 것으로 분류되고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공화당 인사들은 물론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과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연구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예컨대 1995년 이후 브루킹스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마이클 아머코스트 소장만해도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무차관을,부시 행정부에서는 주일 대사를지냈을 만큼 공화당쪽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그리고 친분관계를 떠나 효율적인 국가 운영을 위해서는 브루킹스가내놓는 연구 결과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미국의 실정이다.공화당 정부가 출범하면서 후버나 헤리티지 같은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출신 인사들이 부시 행정부에 많이 입각했지만 후버나 헤리티지가내놓는 연구·조사 결과들만 바탕으로 한다면 미국의 정책이 보수 일변도로 흐를 위험이 크다. 때문에 균형잡힌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브루킹스의 견해를 참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국제문제를 다루는 외교분야에서보다는경제문제나 정부조직 개혁,공화당이 민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복지,교육 등 미 국내 문제에서 브루킹스의 의견이 상당부분 수용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브루킹스의 연구 과제가 대부분 정부의 의뢰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브루킹스는 특히 브라운 교육센터에서 정부 고위관리들을 연수시키는일을 하고 있는데 이같은 연수를 통해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정부로 바뀌었지만 브루킹스에 대한 미국정부의 연구 의뢰는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탄생은 ‘국가 운영을 정부 관리들에게만 맡겨도괜찮은가’라는 의문에서 비롯됐다.대답은 ‘안된다’는 것이었다.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당파에 관계없는 민간 분야의 전문가들이국가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전문분야의 연구 결과를제시,정부 관리들이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1916년 일단의 기업가들과 학자들이 ‘정부연구소’(IGR)를 발족시켰다.이 IGR이 브루킹스연구소의 모체가 됐다.그후 1922년과 24년 경제연구소(IE)와 로버트 브루킹스대학원과 제휴관계를 맺고27년 셋이 통합돼 브루킹스연구소로 정식 출범했다. 브루킹스가 가장 자랑으로 꼽는 것은 현재 미국 정부조직의 틀을 브루킹스가 잡았다는 것이다.정부 각 기관의 회계에서부터 인사관리에이르기까지 그 바탕은 브루킹스연구소가 내놓은 연구결과를 기초로하고 있다는 것이다.최근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새 행정부가 출범했는데 현재의 대통령 이·취임과 그에 따른 정권의 인수·인계 절차도60년대 초반 브루킹스가 내놓은 안을 바탕으로 마련된 것이다. 브루킹스는 이와 함께 퇴임한 클린턴 대통령이 임기중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를 재정흑자로 반전시킬 수 있었던 것 역시 1984년 브루킹스의 앨리스 리블린 연구원이 내놓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시작된것이라고 자랑한다. 브루킹스는 8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재정적자를해결하지 못하면 미국 경제의 앞날이 없다고 주장,정부의 지출을 줄이고 세입을 늘려 균형예산을 편성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연구해왔다. 브루킹스는 특히 경제와 교육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브루킹스의 우드로 윌슨 스쿨과 브라운 교육센터는 경제와 교육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유세진기자 yujin@
  • 未堂 영결식 이모저모

    추운 겨울날의 따스한 햇살같기만 한 시어(詩語)의 ‘국민시인’ 미당(未堂)이 고향의 환한 겨울햇살 아래 영원히 묻혔다. 지난 24일 85세로 타계한 한국 현대시의 거목 서정주(徐廷柱)선생의장례식이 28일 오후 고향인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많은 문인·고향사람들의 애도 속에 치러졌다.장례식은 번잡한 형식의 구애를 싫어한 고인의 평소 뜻을 받들어 대시인의 마지막 길 답지 않게조촐하게 행해졌다.문인단체의 추모 이벤트는 물론 흔한 조사나 조시낭독 등이 없어 보통 사람들의 가족상과 똑같았다.그러나 고창군 일대,특히 생가가 있는 선운리에는 ‘문단의 큰별 미당의 명복을 빕니다’‘고향에서 편히 잠드소서’등 근조 플래카드가 여러곳에 내걸려고향으로 돌아오는 미당을 맞았다. 생가 옆에 건축중인 미당문학관 뜰에서 가진 영결식에는 선운사의 원공·법지 두 스님이 참석,“그가 겨울하늘 동천에서 돌이 될는지 연꽃이 될는지 알 수 없으나 그를 깊이 아쉬워하고 그리워한다”“큰시인으로 다시 이땅에 돌아와 많은 사람의 영혼을 맑게 일깨워주기를기원한다”고 조문했다. 꽃상여는 생가 건너편 안흥리 뒷산에 올라 미당은 지난 10월 앞서간부인 곁에 안장됐다.‘미당이 유택에서 왼쪽 질마재,오른쪽 곰소만·장수강과 대화를 나누겠구나’싶을만큼 묘지는 풍광이 뛰어난 곳에자리잡았다.장지까지 함께온 200여 조문객 가운데 한 명이 그의 시‘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조용히 읊었다. /이별이게/그러나/아주 영 이별은 말고/어디 내생에서라도/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연꽃/만나러 가는 바람아니라/만나고 가는 바람같이…고창 김재영기자 kjykjy@
  • [사설] 地自制 개선 함께 나서자

    정부가 민선자치 5주년을 맞아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손질에 나선다고 한다.현행 제도가 민선 단체장의 전횡,방만한 예산 운용,지역 이기주의 심화 등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자치단체의 난맥상에 대한 손질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왔다고 판단한다.하지만 문제점을 분석하고 보완하는 데는 정부의 노력만으론 불가능하다.행자부 관계자가 “모든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문제점을 토론한다면 대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데서도 이같은 한계를 읽을 수 있다.정치권,자치단체가 함께나설 것을 당부한다. 지자제는 그동안 주민 밀착형 재정수요 반영,지역 이미지 사업개발,경영수익 확대 등 주민자치 실현의 이념에 걸맞은 성과를 거뒀다는평가를 받고 있다.그러나 풀뿌리민주주의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일탈과 부작용이 만만찮게 드러나고 있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아울러 지자제의 부작용을 제도적으로 개선하려는 정부와 시민단체의 노력이 일선 자치단체의 반발과 정치권의 눈치보기로물거품이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차기 당선을 겨냥한 선심성 예산집행 남발,무분별한 축제행사,정실인사 등 단체장 전횡은 오래전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다.정부는 이를 견제하는 방안으로 기초단체 부단체장의 국가직 전환을 제기했다. 일부 광역자치단체장이 공개적으로 지지할 만큼 광범위한 공감을 얻고 있는 방안이다.하지만 자치단체장들의 반발에 묶여 난항을 겪고있다.‘표밭’ 단체장의 심기를 건드려 좋을 것이 없다는 국회의원들의 이기심도 한 몫 하고 있음은 선량(選良)의 존재의의를 의심하게한다.단체장 서면(書面) 경고제도 도입도 마찬가지다.단체장의 직무태만과 위법,부당한 명령·처분 등을 차단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하려 하고 있으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지방자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까지 했지만 정기 국회에서는 처리하게 힘들게 됐다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또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의 불필요한 예산낭비를 막기 위해 시민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납세자소송법 제정을 시민단체들이 제안했으나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지방의회 운영 개선,대도시 자치구제 개선,지방행정체제의 합리적 개편,지방재정의 건전성 확보,지방재정 조정제도의 합리적 개편 등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은 접근조차 어렵다고한다.지자제 발전방향 모색은 어느 한 쪽의 노력만으로 불가능하다. 범정부 차원의 지자제 발전기구 구성도 고려할 만하다.고칠 것은 빨리 고치고 발전시킬 것은 발전시켜야만 지자제의 앞날이 보장된다.
  • 대우차 부도 여파/ 인천 현지 르포

    대우자동차 부도 여파가 인천지역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연쇄부도위기에 직면한 협력업체에서는 직원들의 한숨소리만이 예전의 힘찬기계음을 대신하고 있다.21일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지 3년째 되는 날.3년전인 97년 11월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 협력업체와 지역경제계는 대우차 노사가 협력,구조조정을 단행해 회사를 되살려 줄 것을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20일 오후 2시 인천 남동공단내 C업체.평소같으면 작업이 한창 진행중일 시간이건만 공장 내부는 불이 꺼진 채 직원들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 마치 폐업한 공장을 연상시킨다.생산량의 100%를 대우차에 납품하는 이 업체는 대우차가 부도난 다음날인 지난 9일부터 가동을 전면중단시켜 대부분의 직원들은 출근조차 않고 있다. 사장 이모씨(57)는 “지난 10일이 직원들 월급날이었는데 지금까지못주고 있다”면서 “IMF때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정말 힘들다”고 탄식했다. 대우차동차에 연간 180억원 상당의 브레이크 부품을 납품하는 남동공단내 K업체도 다급한 사정은 마찬가지다.지난9월 포드가 대우차인수를 포기하면서부터 어음할인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돈줄이막혀버린 이 회사는 이달 말 돌아오는 만기어음 8억원을 막지 못하면 임직원 180명이 거리에 나앉을 처지다. 현재 인천에 있는 대우차 1차 협력업체 59개 가운데 조업이 전면중단된 곳은 17개,부분중단된 곳은 12개에 달한다. 이들 업체는 매출이 급격히 떨어진 것말고도 대금회수 및 어음할인불가,금융기관의 환매요구 등에 시달리고 있다.정부는 대우 어음을할인해 주고 이미 할인된 것은 일반대출로 전환해 준다는 지원책을발표했지만 ‘정부따로,은행따로’여서 공염불에 불과하다. 한 업체 대표는 “인천시를 비롯한 중소기업청,상공회의소 등이 잇따라 지원책을 발표하지만 대개 허울만 그럴듯한 것이어서 현재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대우차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사정도 이보다 낫지 않다. 대우차 서문 근처에서 설렁탕집을 하는 최모씨(48·여)는 “부도 이후 매상이 70% 이상 떨어졌다”면서 “이대로 가면 장사하는 사람들은 전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대우차는 인천경제의 20% 가량을 차지한다.당연히 인천경제의 활로는 대우차 회생여부에 모아지고 있다.대우차 협력업체 모임인 협신회 조항균(趙恒均·63·대신기계 대표)회장은 “대폭적인 원가절감없이는 난관을 극복할수 없다.이를 위해 인원감축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협력업체들의 공통된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hjkim@
  • 墺스키열차 화재 153명 사망

    오스트리아의 스키 휴양지 키츠슈타인호른에서 11일 오전 9시30분(현지 시각) 승객 180여명을 태우고 터널을 통과하던 케이블 열차에서화재가 발생, 최소한 153명이 사망했다.스키 휴양지 사고 가운데 최악의 사고다. 승객 가운데 독일인 9명만이 탈출했으며 10대 청소년과 어린이 관광객들로 구성된 나머지 탑승객 대부분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희생자 가운데는 터널에 연결된 외부의 승객 대기지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다 연기에 질식사한 3명이 포함돼 있으며 희생자들은 오스트리아인과독일인,영국인 등이다. 화재는 객차의 뒷부분에서 발생,산 아래에서 불어온 불길이 터널로유입되면서 불길이 엄청난 속도로 열차 전체로 번진 것으로 전해졌다.3시간 넘게 계속된 화재는 오후들어 진화됐으나 탑승객들은 유독가스에 질식돼 정신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화재 원인 일단 열차의 기술적인 작동 불량으로 추정되고 있으나오스트리아 국영 TV는 화재 발생 직전 열차를 끌던 케이블이 끊어진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당시 사고 열차에는 늦가을 날씨를 즐기려는관광객들과 스노보드대회 참가자들로 승객이 정원 한계까지 최대한 탑승해 있었던 있었던것으로 알려졌다. 탈출한 독일인 9명만은 객차에 있던 한 남자가 스키폴로 뒷유리창을깨 깨진 유리창을 통해 빠져나와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구조 작업 현재 잘츠부르크 지역의 모든 구조요원들이 비상 대기중이며 헬리콥터 13대와 의료진 등이 현장에 급파됐다.약 150명의 적십자사 구조요원이 현장에서 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이들은 이번 사고를‘대참사’라고 표현하며 “더이상 생존자가 나올 가능성은 없다. ”고 말했다. 볼프강 쉬셀 오스트리아 총리도 이날부터 이틀간을 애도기간으로 선포했다. 사고가 난 터널로 향하는 길은 모두 경찰에 의해 통제됐으며 사고열차 탑승객의 가족과 친지들도 현장에 접근조차 하지 못한 채 사고지점에서 떨어진 리조트에 모여서 공식 사망자 명단이 발표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사고가 난 열차는 케이블에 의해 터널을 따라 해발 3,200m 이상에위치한 키츠슈타인호른 스키장까지 운행하는 열차로,화재 이후 터널입구로부터 600m 지점에서 멈춘 상태.이번 화재로 열차가 뒤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안전 로프가 파괴되면서 불에 탄 열차가 선로를 역행해 터널 아래쪽의 열차역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동미기자 eyes@
  • 사직통팀 ‘권력남용 대명사’ 간판내리다

    비밀 수사·정보기관으로서 권력남용 등의 폐해가 더 부각됐던 ‘사직동팀’이 28년만에 폐지된다. 그동안 여러차례 무소불위의 파행수사가 지적됐지만 지난해 옷로비사건에 이어 올해 신용보증기금 대출외압 의혹 사건 개입이 결정타가됐다. 지난 8일에는 신용보증기금 전 지점장 이운영씨를 영장없이 체포,호텔에 10시간 동안 감금해 조사한 혐의로 이기남 경정(49)이 구속됐다.권력남용의 사례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사직동팀의 역사는 유신 때인 72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김현옥 (金玄玉) 내무장관이 정석모(鄭石謨) 치안본부장에게 “미국의연방수사국(FBI)과 같은 조직을 만들라”고 지시해 발족한 ‘치안국특별수사대’가 사직동팀의 전신이다. 이후 청와대의 특명을 받아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비리에 대한 첩보수집,기업인의 외화 해외도피 등을 수사하며 막강한 힘을 휘둘렀다. 하지만 특별수사대는 권력층 내부로부터도 ‘정부 내 사설정보기관’으로 과도한 권력이 주어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이에 따라 76년 김치열(金致烈) 내무장관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 특명사건을 맡는특수1대,경찰 자체의 기획수사를 담당하는 특수2대로 갈렸다. 특수 1,2대는 80년 신군부가 집권한 뒤 합동수사본부 5국으로 통합돼 김종필(金鍾泌),이후락(李厚洛)씨 등 정치인과 ‘10·27 법난’등을 수사했다. 81년에는 모 재벌그룹 회장 부친의 부탁으로 맹인 안마사를 조사한사실이 언론에 폭로되면서 그 실체가 처음으로 일반에 알려지게 됐다.특수1대는 82년 서울 중구 태평로1가 국세청 건물에서 지금의 종로구 사직동 1의 48 대지 300평,건평 339평의 건물로 옮기면서 사직동팀이라는 별칭을 얻었다.현재 정원은 26명,문민정부 때는 33명이었다. 83년에는 한일합섬 김근조(金根祖)이사를 고문하다 뇌출혈로 숨지게 하는 등 파행적인 수사로 비난의 도마에 오르기 시작했다.91년에는 치안본부가 경찰청으로 바뀌면서 특수수사2대는 경찰청 공식 편제로 흡수돼 경찰청장 지휘 아래 청와대 사칭과 공직기강 해이 사건을맡게 됐고,명칭도 경찰청 수사국 조사과로 바뀌었다. 하지만 특수수사1대는 계속 사직동에 사무실을두고 청와대 직할 조직으로 운영되면서 베일에 가려져 왔다.97년 대선정국을 뒤흔든 ‘DJ비자금사건 ’이 사직동팀의 주도로 2년 동안 준비됐다는 사실이 드러나 폐지론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사직동팀은 형식적으로는 경찰청 조직이지만 실질적 지휘자는 청와대 사정담당인 법무비서관이다.직제상 상급자인 경찰청 수사국장이나경찰청장으로부터는 지시도 받지 않고 보고도 하지 않는다. 총경인 사직동팀장은 임기를 마치면 대부분 경무관으로 승진하는 등혜택을 누렸다.지금까지 2명만 경무관으로 승진하지 못했다.5·6공시절엔 주로 TK 인사,문민정부 시절엔 PK출신,현 정부에서는 호남 출신이 맡아왔다. 송한수기자 onekor@
  • 의료계·정부 27일 대화재개 협의

    26일 오후 재개될 예정이었던 정부와 의료계의 공식 대화는 의료계가 서울경찰청장이 직접 대화장에 나와 사과하지 않았다며 거부해 진통을 겪었다. 의사협회 10인소위 대표들은 윤웅섭(尹雄燮) 서울경찰청장이 서면으로 유감 표명을 한데 대해 “첫 의·정 대화 자리에서 서울청장이 직접 사과하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면서 “처음부터 정부가 신뢰를 깬다면 앞으로 대화는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료계 대표들은 이날 저녁 서울경찰청장의 직접 방문 사과를 요구하면서도 대화 거부에 대한 부담을 의식,27일 오후 4시 의·정대화를 재개키로 정부측과 합의했다. 이날 팔레스호텔 12층 카네이션룸에 마련된 의료계와 정부의 공식대화석상은 의사들의 고압적인 자세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협상장에는 정부측에서는 장석준(張錫準) 보건복지부 차관 등 6명,의료계에서는 김세곤 비상공동대표 10인 소위원회 위원장 등 10명이참석했다. 오후 1시 50분이 되자 의료계 대표들이 ‘근조’(謹弔)라고 적힌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입장했다. 최선정(崔善政) 보건복지부장관의 회의장 도착이 늦어지자 협상 테이블이 술렁거렸으며 김세곤 위원장은 “약속을 이렇게 안지켜도 되느냐”고 항의했다.2시 20분쯤 최장관이 도착해 김 위원장등 대표 10명과 일일이 악수를 하는 과정에서 전공의 대표로 나온 장우영씨는“악수는 거부하겠습니다”며 거절,최 장관이 머쓱해졌다. 최 장관은 협상에 들어가기 앞서 “어렵게 마련된 자리이니 만큼 국민과 환자의 불편을 덜고 의료제도 선진화의 초석을 놓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전공의 대표가 “이 자리에서 의료계와 환자들을 위해 공식적인 사과를 다시 할 수 없느냐”고 요구했으며 최 장관은 “이미 공식유감을 표명했고 의료계는 그것을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았느냐”고말했다. 그러나 의쟁투 중앙위원 주신구씨가 “지난 8월 전공의·전임의 집회를 강경 진압한 서울 경찰청장이 이 자리에 직접 참석해 사과를 하기로 했다”면서 “청장이 나타날 때까지 회의에 들어갈 수 없으며회의가 결렬되면 모두 서울경찰청장의 책임”이라며 목소리를 높여대화는열리지 못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새 내각에 듣는다/ 한갑수 장관은 누구

    한갑수(韓甲洙)농림부장관은 30년 넘게 국회의원,공기업 사장,대학교수,행정관료 등 다양한 직종에서 일해왔다.많은 사람들은 그를 ‘정치인’으로 꼽고 있다.그러나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성공한 전문경영인’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0대때 전남 나주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공화당에 입당했고,그뒤 민정당 민자당에서 지구당위원장(동작갑)과 정책위부의장 등을 역임했다.이번 8·7개각에서도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와의친분관계 때문에 자민련 몫으로 입각했을 것이라는 얘기들이 나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92년이후 어떤 당적도 갖고 있지 않다”면서자민련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 정치인으로서의 경력과 관계없이 그는 농림부에서도 핵심요직을 두루 거쳐 농업행정에 대해서는 환하게 꿰뚫고 있다.이미 70년대농림부 농정국장과 농수산부 유통경제국장을 역임했기 때문이다.환경처차관(91년),경제기획원차관(92년)을 지내는 등 관료로서도 탄탄대로를 걸어 행정경험은 나무랄데 없다. 하지만 정작 주변에서는 한장관이 94년 한국가스공사사장으로 취임,6년간 벌인 경영혁신 활동을높게 평가한다.공무원에서 전문경영인으로 변신한 그는 공기업중에서는 처음으로 학력제한을 없앴고,연공서열 중심의 인사관리를 능력 위주로 바꾸는 등 민간기업도 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일들을 앞장서서해냈다.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한국능률협회가 주최하는 경영혁신대회의 최고경영자상을 3년 연속 수상했다. 그는 취임후 이같은 기대에 부응해 전문경영인으로서의 경험을 농업혁신에 접목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농업경영에도 기업마인드를 도입시키겠다는 각오다. 취임 이후 업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새벽보고를 받는 등 작은것부터 차근차근 실천해나가고 있다.취임 이틀뒤인 9일에는 곧바로 강원도 고성의 산불현장을 찾아가 상황을 점검하고,15일에는 경기도 평택의 수해복구 현장,23일 전북 부안 새만금 현장,25일 전북 익산의 구제역 방역훈련 현장 등을 찾아갔다.정책결정에 앞서 반드시 현장을직접 확인하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요즘도 새벽 4시면 자리에서 일어나 북한산에 오를정도로 부지런한그가 타고난 성실함과 전문경영인으로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농정현안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김성수기자. *통합농협 2차개혁. 통합농협의 개혁은 이제부터가 진짜다.통합농협의 2단계 개혁작업이다음달 초부터 본격화돼 11월초쯤 개혁안이 확정돼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지금까지가 중앙회 통합 및 제도개혁 등 하드웨어적인 것이었다면,2차개혁은 조직과 기능의 축소등 소프트웨어적인 개혁에 치중하게된다. 통합농협중앙회는 다음주 초반 신용대표이사를 위원장으로 21명이참여하는 ‘농협개혁위원회’를 출범시킨다.여기서는 한달여간 개혁과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해 11월초쯤 최종안을 확정해 시행할 방침이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4,500억원에 달하는 축협의 경영부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축협 자본금 2,500억원을 제외한 2,000억원을 국가 재정자금으로 지원해주는 방안을 농협측에서는 원하고 있지만,국민의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쉽게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운 입장이다. 3년이상 적자를 보고 있는 153개 일선조합에 대해실시하고 있는 특별감사가 10월말쯤 끝나면 회생가능성이 있는 조합은 인근조합과 합병되고,회생불가능한 곳은 해산조치를 취하게 된다. 조직과 기능도 대폭 슬림화하게 된다.3개 조합 통합후 1만7,500명에달하는 직원을 1,000여명정도 줄일 계획이다. 그러나 통합전인 98년,99년 각각 두 차례에 걸쳐 농협은 4,382명,축협은 1,443명을 이미 줄인 상태라 노조와의 마찰이 예상된다. 전산분야 등 3개 조합의 업무가 중복되는 업무분야에 대해서도 부서 통·폐합등을 통해 줄여나갈 방침이다.약 3,7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축협중앙회와 인삼중앙회 본부건물,양재동 농협 신사옥등을 팔아 조합활성화 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성수기자
  • 매향리 주민대책委 400명 화성군청앞 도로점거 시위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 미 공군 폭격장 철폐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위원장 최용운)는 28일 오후 화성군청 앞에서 주민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사격장의 철폐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주민들은 이날 오후 2시40분쯤 화성군청 앞에 도착해 ‘근조 매향리’ ‘고은리사격장 폐쇄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만장 9개와 꽃상여를 앞세우고 4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연좌농성을 했다. 최 위원장은 “정부는 매향리 주민들의 50여년간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면서 “국민을 포기하는 이 나라에 살지 않겠다는 의미로 주민 모두사망신고를 낸다”고 말했다. 시위에 참가한 주민들은 정부에 대한 항의 표시로 주민등록증을 모아 우태호 화성군수에게 반납했다. 화성 김병철기자 kbchul@
  • 검찰·린다 김측 표정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서 숨어지내온 재미교포 무기로비스트 린다 김(47·한국명 김귀옥)의 모습이 5일 처음으로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날 린다 김의 집 2층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으나 커튼이 드리워져안을 전혀 볼 수 없었다.3개의 창문 가운데 맨 오른쪽 창문만 50㎝ 정도 열려 있었다. 오후 8시 15분쯤 열린 오른쪽 창문을 통해 린다 김이 휴대전화를 들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방을 오가는 모습이 목격됐다.약 1분 뒤 김씨가 심각한표정으로 통화를 계속하며 방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담장밖에서 잠복하고 있던 카메라 렌즈안에 린다 김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이보리색 반팔 웃옷을 입은 김씨는 마치 외출에 나설 사람처럼 옅은 화장에 머리도 드라이어로 곱게 단장한 모습이었다.전화기를 들고 있는 오른손손톱에는 특유의 흰색 메니큐어 자국이 분명했다.그러나 그동안 마음 고생이심했던 듯 얼굴은 다소 핼쓱했다.김씨의 모습은 약 3초 뒤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때 누군가가 담배를 피우는 듯 연기가 창문 아래서 모락모락 피어 올랐고 5∼6분 뒤김씨가 다시 일어나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며 방 밖으로 나가는장면이 보였다.이 때 린다 김이 나타난 것을 눈치챈 사진기자들이 뛰어와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그러자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여자 조카가 다가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조카는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몸을 낮춰 창문 아래로 접근,창문을 닫은뒤 커튼으로 창을 완전히 가렸다.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재미교포 린다 김의 백두사업과 관련한 로비 의혹은관련자의 연애편지 공개로 공인(公人)들의 윤리 문제만 부각시켰을 뿐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재수사 불가 입장을 밝힌 검찰은 휴일인 5일에는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서울지검 김재기(金在琪) 1차장은 전화 통화를 통해 ‘다음주 초 린다 김에 대한 재수사 여부를 결정,공식 발표할 것’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와 관련,“이미 수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는데 발표는 무슨 발표…”라고 말했다. 모 언론이 다음주 초 백두사업과 관련한 또다른 의혹을 제기한다는 소문에대해서도 “아마 더이상 쓸게 없을 것”이라고 피력했다.◆한편 린다 김은 이날 자택에서 사흘째 출입을 삼간 채 은신했다.대지 138평에 건평 75평인 이 집은 린다 김이 97년 12월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오후 2시쯤에는 린다 김의 둘째 여동생 김귀현씨(43)가 찾았다. ◆미국에 있는 린다 김의 개인변호사 김지영씨(49)는 이날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에는 린다 김이 백두사업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재판이 열리면 린다 김이 법정에서 사실관계를명백히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락 송한수 전영우기자 joo@
  • 여의도 지하공동구 화재 문제점

    ‘한국의 월가’를 한순간에 마비시킨 서울 여의도 교원공제회관 앞 지하공동구 화재사건은 ‘무방비’와 ‘관리 부재’가 함께 빚어낸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였다. 서울의 5곳에 마련되어 있는 지하공동구는 생명체에서 관절 부위에 해당한다.총연장 6㎞에 면적이 3만5,510㎡인 여의도 공동구의 경우 고압선을 비롯,유선방송 케이블,초고속 광통신망,상수도관,난방용 온수관 등 혈관과 신경에해당하는 중요한 시설들이 함께 들어서 있다. 단 한곳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도시생활을 일순 마비시킬 수있는 주요 시설들임에도 방재시설은 아예 없었다.78년에 처음 만들어질 당시 법 규정이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15만4.000볼트짜리 고압선이 지나는데 흔해 빠진 스프링클러 하나 없었다.그러니 케이블의 피복은 불연재가 아니였음은 물론이고 불길이 번지지 못하도록 막아줄 방화벽이나 방화문 하나가 있을 리 만무했다. 불이 난 곳에 소방호스를 집어 넣을 만한 공간이 없어 소방관들이 불 구경을 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 일어났다. 소방법28조는 95년 5월에는 지하공동구를 소방 대상물이라고 보고 연소방지시설을 갖추도록 명문화했지만 서울시는 97년에야 한국전력 등 관계 기관에 시설시정명령을 내렸다.그러나 4년 동안 이마저 철저하게 무시됐다. 94년 서울 동대문 지하통신구 그리고 97년 잠실아파트단지 지하공동구에서불이 나면서 도시생활이 마비되는 대혼란이 있었지만 ‘남의 일’로만 치부해버렸다. 안전의식이 ‘0점’이다보니 관리체계가 제대로 되어 있을 리 없었다.관리책임은 서울시에 있고 시설관리공단이 관리를 대행토록 되어 있다.그러나 실제로 공동구 안의 전력,통신,상수도,지역난방시설 등은 각각의 수용 기관이직접 관리해 왔다.규정상의 관리책임자 따로,실무를 담당하는 책임자가 또따로 있었던 셈이다. 허술한 관리체계는 ‘무방비’를 가져왔고 진화 과정은 ‘원시적’인 수준을 벗아나지 못했다.소방차가 무려 80여대나 출동했지만 전선케이블이 타면서 유독가스를 내뿜는 바람에 소방관들은 현장에 접근조차 못했다.화학차량이 10여대나 동원되었지만 공동구가 너무 좁아 소화포말을 뿌리는 것 이외에는 불길의 저절로 꺼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사건현장을 찾은 전문가들은 “지하공동구 중간에 방화벽을 구획을 설정하고 불연재로 된 피복으로 내화전선을 쓰거나 콘크리트로 겉을 싸 화재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중요 시설의 기본”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증권사-은행등 통신망 거의 복구 '금융대란'없을듯. 한국통신과 한국전력,서울시시설관리공단 등은 서울 여의도 지하 공동구에서 발생한 화재현장에서 3일째 복구작업을 계속했다.이들은 20일 밤까지 증권사와 은행,언론기관,정당 등 주요 기관의 통신망 복구를 끝내 우려됐던 ‘금융대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화재 원인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지난 18일 밤 발생한 여의도 지하공동구 화재가 공동구 안 전력공급선에서 누전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20일 오전 10시15분부터 감식작업을 시작한 경찰과 국과수 관계자는 지하철5호선 여의도역 네거리에서 의사당로를 따라 남동쪽으로 150m 지점(백조아파트 앞쪽)에 있는 2만2,900V짜리 고압선 2m 가량이 완전히 전소돼 잘려 있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과 국과수는 완전히 탄 고압선의 재는 다른 전력선 및 통신선과는 달리흰색이었다”면서 “끊어진 전력선 바로 윗부분 천장 콘크리트가 화재 열기때문에 수분이 빠져 철근이 드러난 점으로 미뤄 가장 유력한 화재 발생지점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과 국과수는 그러나 배전반과 배수펌프 등의 과열이나 방화로 화재가났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감식작업 등을 거쳐 이번 주말쯤 정확한화재 원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복구 한국통신 직원 127명은 19일 밤샘작업을 해 20일 오후까지 불통된 3만3,141회선 가운데 50.6%인 1만6,776회선을 복구했다.또 증권거래소·금융기관·정당·언론사 등 주요시설의 통신망도 20일 밤 복구됐다.가정용 통신망은 빠르면 21일 복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력은 대체 전송망과 지상 임시 전송선을 가설,19일 오후 1시쯤 여의도 일대 전력 공급을 재개,응급 복구를 끝냈다.그러나 화재 원인에 대한 감식작업이끝나지 않은 데다 통신망 복구와 자재 확보에도 시간이 걸려 시설까지 완전히 복구하는 데는 1주일쯤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복구작업 난맥상 서울시시설관리공단,한국통신,한국전력,지역난방공사, 경찰 등 관계 기관은 화재현장에 각각 따로 상황본부를 설치,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구조물 관리를 맡고 있는 시설관리공단과 한국전력·한국통신은 화재 발생지점과 화재 원인에 대해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해명하는 데 급급했다.한편 지하 공동구에서 발생한 불은 17시간 만인 19일 오후1시20분쯤 완전히 진화됐다. 전영우 박록삼기자 ywchun@
  • ‘의정평가위 구성’발표 안팎

    재계가 16일 정치활동 전담기구 설치 등 정치활동의 구체방안을 발표했다. 재계의 전격적인 움직임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 등 최근 재계를 궁지로 몬 노사 쟁점을 둘러싼 대(對)정부 압박카드로 풀이된다.그러나 재계의정치활동 담당기구 상설화가 단순한 ‘일회용’은 아니다.과거처럼 정경유착이 통하지 않게 된 데 따른 재계의 공개적 정치활동 시대의 서막이라는 분석이다. ■재계 무얼 노리나 급한 불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다.정부가 전임자임금지급 처벌규정을 삭제한 법 개정안의 국회처리를 강행하려는 긴박한 상황에서 ‘의정평가위원회’ 구성 자체가 정부와 정치권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다.총파업과 같은 ‘무기’가 없는 재계로선 제시할 수 있는 가장 강도 높은 카드인 셈이다.장기적으론 재계가 의정 평가 등 상시적 활동을통해 노동계에 맞설 정치적 입지를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의도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金榮培)상무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 이외에 노동계의 노동관계법 개정요구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이에 상응한 정치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계,현실인식 달라졌다 재계가 의정평가위원회 발족을 ‘결심’하게 된데는 재계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여건이 과거와 판이해졌기 때문이다.최근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 등에 대해 정부가 보여온 친노동계 태도는 재계에 적지 않은 충격파였다.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창당 등 노동계 정치세력화가 구체화하고 시민단체들의 재계에 대한 비판이 갈수록 거세지는 상황도 재계가 수수방관할 수 없는 이유다. 따라서 재계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 해결여부와 무관하게 의정평가위발족을 강행할 방침이다. ■의정평가위 무슨 일 하나 재계 정치활동의 구심체가 될 전망이다.▲회원사를 상대로 특정 국회의원 후원회 집중 참여 독려 ▲노사문제에 대한 개별 의원 성향 파악 ▲의정활동 평가와 경제단체 정간물 등을 통한 홍보 ▲자체 간행물 ‘정치와 경제’ 발간 ▲여론 매체를 이용한 홍보전 등이 주된 활동내용이다.특히 내년 4월 총선을 겨냥,경제단체의 정치활동이 금지된 선거운동기간을 피해 내년 1∼2월중 의원당락에 영향을 끼칠 조직적인 활동을 벌일계획이다.따라서 당분간 노사정간 ‘샅바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김환용기자 dragonk@
  • [굿모닝 새천년] (16)기업 의사결정방식 변화

    21세기 기업내부의 바람직한 의사결정구조는 무엇일까. 새 천년을 눈앞에 둔 지금 기업들은 글로벌 무한 경쟁이라는 새로운 경영환경에 직면하고 있다.소비자들의 욕구는 날로 다양해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소비자 주권의 시대’가 도래했다.정보통신의 발달은 이같은경쟁과 소비패턴의 급속한 변화를 부추기는 기술적 기반이 되고 있다. 이같은 경영환경속에서 기업들은 창조와 부단한 혁신이 경쟁력의 ‘키워드’가 됐다.같은 제품을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만드는 낡은 틀로는 기업경쟁력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됐다. 때문에 신속한 의사결정,유연한 조직 구조,아래로의 권한 이양 등 회사 구성원의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업내부의 의사결정 시스템 구축이 기업의 생존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대부분 아직도 위계서열을 중시하는 다단계의 수직적 의사결정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직적 의사결정구조의 문제점 전문가들은 기존의 수직적인 다단계 의사결정 구조의 가장 큰 병폐로 관료적 병리현상을 들고 있다. 아주대 경영대학 조영호(趙永鎬) 교수는 “수직적 조직에서는 상부에서 지시한 것 이외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분위기가 조장되기 마련이어서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업무풍토를 찾을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즉 경직된 조직문화속에선 창조를 위한 실험정신이 퇴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그는 “고객의 요구 등 경영환경이 시시각각 변하는 새로운 상황에선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수직적 구조가 모두 그른 것은 아니다.그는 “일부 전통적 산업의 경우 위로부터의 강한 통제가 조직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제고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 왜 필요한가 현대 경제연구원 조직전략실 원상희(元相喜)실장은 “수평적 조직은 밑으로의 권한 이양을 의미한다”고 요약했다. 조직을 사업부나 팀으로 쪼개 사업부장이나 팀장에게 인사권,업무결재권을넘겨주는 팀제,사업부제(소사장제)가 그 예다. 수평적 조직의 장점은 여러가지다.첫째 결재단계가 축소돼 조직의 순발력즉 환경적응능력을 키워준다.둘째 조직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높여준다.팀제도입으로 프로젝트마다 이에 맞는 전문가들로 신설팀을 신속하게 만들 수 있다.예컨대 제품개발을 할 때 마케팅,연구개발,구매,생산 등의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일을 하면 사업오류를 그만큼 줄일 수 있다. 셋째 조직이 투명해져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된다.자기책임하에 업무를 수행하므로 불필요한 자원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제너럴 모터스(GM) 프레몬트 공장의 부활은 이같은 제도의 장점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전통적인 경영방식으로 운영된 이 공장은 지난 81년 경영난으로문을 닫게 된다.GM은 그 뒤 일본의 도요타사와 합작으로 NUMMI사를 설립,이공장을 재가동했다.도요타사는 자율관리팀제를 도입,5∼7명 단위의 350개팀으로 조직을 재편했다.과거 80명의 관리직원들이 하던 일을 팀원 스스로 하고 작업방법도 팀원들이 스스로 개선해나갔다.그 결과 2배이상의 생산성 향상을 이뤘다. ■국내기업의 도입현황과 대책 팀제는 5년전쯤부터 국내기업에 확산돼 상당수의 기업들이 시행중이다.사업부제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국내도입이 활발하다.사업부제를 실시하고 있는 대기업들로 삼성물산,삼성SDS,대우통신,한화,효성,대상,새한,두산 등이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권한 이양이 이뤄지지 않아 시스템이 제대로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경영전략 자문회사 IBS컨설팅 최용주 소장은 “우리의 경영문화가 아직은 관료적인데다 직원들의 인적 능력과 마인드도아직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따라서 경영자의 굳은 의지와 직원들의 능력계발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한결같은충고다. 김환용기자 dragonk@ [밀레니엄 탐방] 인터넷 장비업체‘시스코 코리아’ 서울 삼성동 경암빌딩 7층 시스코 시스템즈 코리아 사무실은 거의 텅 비어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영업중심의 외근조직이라는 특성때문이기도 하지만거의 모든 의사소통이 전자우편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이처럼 전자우편이활성화될 수 있는것은 이 회사가 갖고 있는 단순한 결재구조 덕분이다. 시스코 시스템즈 코리아는 세계적인 인터넷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미국 시스코사의 한국 지사.70여명으로 구성된 이 회사는 미국 본사와는 독립체제로움직인다.인사,영업 등 일체의 회사경영을 홍성원(洪性源)사장이 책임진다. 경비지출과 사업추진 과정에서의 중간결재,최종 계약에 이르는 전결권을 홍사장이 도맡고 있다.말하자면 국내기업들이 최근 도입하고 있는 소사장제와같은 형태다. 회사는 영업팀,사업팀,관리팀 등 7개팀으로 나뉘어져 있다.결재단계는 직원과 임원급 팀장,사장 3단계로 지극히 단순하다.팀원이 상부에 결재를 받아야 할 일은 매우 제한돼 있다.홍사장은 “사장을 포함,임원들이 해야 할 일은직원에 대한 지시가 아니라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한다. 건당 수천만∼수억원에 이르는 계약도 최종단계까지 일선 직원이 거의 모든 일을 알아서 한다.다만 계약과정에서 구매회사측이 값을 지나치게 후려칠경우 상부의 조언을 듣는 정도다. 팀간 교류도 활성화돼 있다.최근 영업팀 한 직원은 모 기업과의 통신장비계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장비 성능시험을 위해 엔지니어가 필요했다.다른팀에 속해 있는 엔지니어를 당겨 쓰기 위해 그는 전자우편으로 자기 팀장과엔지니어 소속팀장,해당 엔지니어에게 글을 띄웠다.팀장들도 즉각 전자우편으로 승인을 통보했고 덕택에 업무협조가 즉시 이뤄져 신속하게 계약을 마칠 수 있었다. 홍 사장은 “국내 기업들도 사내 의사소통수단으로 전자우편을 많이 도입했지만 결재의 신속성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는 복잡한 결재구조와 정보공유 마인드의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아무리 전자우편을 이용한다고 해도 계장-과장-차장-부장-임원-사장 등의 다단계 결재구조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얘기다. 연봉제는 이같은 아래로의 권한이양에 따르는 책임을 지우기 위한 장치다. 이 회사는 사장부터 직원까지 완전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이에 따라 자기관리를 스스로 하게 돼 이 회사의 관리팀 인원은 고작 2명이다.국내기업처럼관리파트가 직원의 근태를 감시하는 부서가 아니라 지원조직의 성격을 갖고있다. 김환용기자 [밀레니엄 인터뷰] 한국리더십센터 韓根泰소장 “기업내 의사결정구조를 바꾸려면 먼저 최고경영진의 리더십이 바뀌어야합니다”. 한국리더십 센터 한근태(韓根泰)소장(43)이 다년간 기업을 상대로 인사및조직 컨설팅을 하며 내린 결론이다.그는 “국내기업 경영진들이 옛 경영문화에 젖어있는 한 경직된 의사결정구조를 개선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그는아직도 우리 경영자들이 직원들의 근태관리 등 일상적인 관리에 지나치게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소장은 “단순 반복적인 작업성격의 전통적 산업에선 직원들의 근무태도를 감시하고 독려하는 일이 경영효율을 높이는 길이었으나 정보통신 등 제품수명이 짧고 창의성이 중시되는 21세기 주력산업에선 이같은 경영행태가 오히려 기업의 효율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그보다는 기업의 현금흐름 등 수익성 제고를 꾀하고 장애물을 제거하는 전략적 고민이 주가 돼야 한다는 얘기다. 근태관리 중심의 경영은 결재폭주,결재단계의 복잡화를빚게 마련이라는 진단이다. 이같은 병폐는 대체로 오래된 기업일수록 심한 경향이 있다.한 소장은 “지난해 국내 유수의 식품회사를 컨설팅 했었는데 최고경영자는 미국 유학파로팀제,연봉제 등을 의욕적으로 도입했다”며 “그러나 주위의 원로 경영진들이 관료적 속성을 버리지 못해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었다”고소개했다.또 짧은 산업화기간에 기업의 규모가 급격하게 커진 것도 우리 기업들이 규모의 대형화에 걸맞는 리엔지니어링(업무 재구축)을 순발력있게 하지 못한 이유로 꼽았다. 팀제나 소사장제가 겉돌면서 이들 제도의 인센티브 역할을 하는 연봉제도조직 수평화를 통한 창의성 유도라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임금삭감을 위한편법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그는 “외국 기업들의 경우 소사장제나 팀제는 물론 연구개발,관리 등 회사의 특정 기능을 전문기업에 아웃소싱(외주)하는 추세”라면서 “이처럼 권한이양을 통한 전문역량의 강화가새로운 세기 기업 경쟁력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김환용기자
  • SBS TV 영화 ‘러브스토리’작가 송지나

    사랑없는 인생이 없듯 사랑얘기를 뺀 드라마도 상상할 수 없다.노골적으로드러내 놓거나 은근슬쩍 감추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모든 드라마는사랑을 이야기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새삼 ‘러브스토리’라니.‘퀸’이후 드라마 전장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SBS가 12월1일부터 ‘크리스탈’후속으로 내놓는 야심작치고는 어쩐지 맨숭맨숭한 타이틀이다.그러나 이를 요리할 작가가 ‘모래시계’‘카이스트’의 송지나(40)라면 한번쯤 기대를 가져볼만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제 작품에서 사랑을 중심에 둔 적이 없었어요.역사적 이야기를하면서 사랑을 이용하기만 했죠.그래서 이번엔 정공법으로 덤벼들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도전적인 탐구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요(웃음)”송씨는 요즘 거의 초주검상태다.아닌게 아니라 조근조근 작품을 설명하는 목소리에 감기 기운이 역력하다.내년 1월 예정이던 방송스케줄이 갑자기 앞당겨지면서 초읽기 집필에 들어간 데다 지난 8월말 끝내기로 했던 일요드라마‘카이스트’가 연장방송되면서 뜻하지않게 겹치기 원고를 쓰게 된 것.한번도 동시에 두 작품을 작업한 적이 없던 터라 이만저만 부담이 되는 게 아니다.‘러브스토리’는 각각 독립적인 8개의 얘기로 구성된 연작 형식의 드라마.서로 다른 상황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마치 한편의 멜로영화처럼 2회 분량의 드라마에 밀도있게 녹여낸다.드라마의 소재를 영화적인 해석으로 풀어간다는 의미에서 ‘TV영화’라는 이름을 붙였다.“16부작 미니시리즈에 담아낼 얘기를 2회로 압축해 보여주겠다”는게 송씨의 생각. 스토커를 주인공으로 한 ‘해바라기’,호출기에 얽힌 에피소드를 그린 ‘메시지’,지하철 유실물센터에서 벌어지는 사랑을 다룬 ‘유실물’등 8편의 드라마는 각각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일상적인 소재를 색다른 접근법으로 풀어간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이병헌 이승연(해바라기)송승헌 최지우(메시지)송윤아 한고은(유실물)이미연 이민우(오픈 앤디드)등 호화 배역진도 시청자의 흥미를 끄는 대목.‘머나먼 쏭바강’‘모델’등을 만든 이강훈씨가연출을 맡았다. 사회성 짙은 작품을 주로 해온 송씨가 어떤 터치로 멜로드라마를 이끌어갈지도 관심거리.첫 시나리오였던 영화 ‘러브’가 보인 기대이하의 성적도 그에겐 적잖은 부담이다.그는 “전에는 영화는 예술이고,방송은 장사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생각이 달라졌다”는 말로 영화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했다. “사랑얘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겠다”는 송씨는 이 작품이 끝나면 내년쯤 김종학PD와 손잡고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무협 사극을 선보일계획이다. 이순녀기자 coral@
  • “97년 KAL사고 승무원과실 탓”

    지난 97년 8월에 발생한 대한항공 괌 사고는 미국 국가교통위원회(NTSB)의조사결과 기장이 착륙을 시도하면서 공항접근 브리핑과 접근조작을 제대로하지 못하고 부기장과 항공기관사도 기장의 접근조작에 대한 모니터와 상호확인을 적절히 수행하지 못한 것이 주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일 항공 관련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미 NTSB의 조사결과 이같은 승무원의과실이 ‘주요 과실’로 작용했으며,미 연방항공청(FAA)이 최저안전고도경보장치(MSAW)를 인위적으로 작동중지시킨 조치도 사고를 발생하게 한 ‘기여과실’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번 항공사고 조사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에 따라 사고 발생국인 미 정부의 주관으로 이뤄졌다.우리 정부는 등록국의 자격으로 사고조사 전 과정에 참여해 왔으며 오는 2일 오전 9시30분(현지시간) 조사결과가 워싱턴에서 공식 발표된다. 괌 사고는 97년 8월6일 대한항공 801편(747-300)이 미국령 괌 ‘아가나’공항에 착륙을 하던 중 공항 인근의 니미츠 언덕에 추락,항공기가 전소되고 254명의 사상자(사망 228명)가 발생한 사고로 그동안 2년여에 걸친 조사가 진행돼 왔다. 건설교통부는 사고 원인이 만약 대한항공 승무원의 주요 과실로 밝혀질 경우 대한항공을 제재할 방침이다. 항공사고에서 ‘주요 과실’이란 사고를 일으키거나 사고규모를 확대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과실을, ‘기여과실’이란 주된 과실로 발생한 사고에기여한 과실을 뜻한다. 박성태기자 sungt@
  • 브레이크 걸린‘남근깎기’대회

    강원도 삼척시가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키우기 위해 공을 들여온 ‘남근(男根) 깎기대회’에 대해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남녀차별의식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제동을 걸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여성특위는 15일 최고 지름 50㎝,길이 3.6m에 이르는 거대한 남근 조각물을 공개전시해 여성을 비하하고 남성우월주의와 남아선호사상을 부추기는 남근 깎기대회(죽서문화제추진위원회 주최)에 삼척시가 예산을 지원하고,남근100여점을 전시해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주는 남근조각공원 조성을 추진하는것은 문제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여성특위는 금명간 삼척시에 공문을 보내대회 사업비 지원 중단과 남근조각공원 조성계획 변경을 권고하고,강원도와행정자치부 등 관련기관에도 공원조성 사업비 국·도비 지원에 신중을 기하도록 촉구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삼척시 관계자는 “여성특위가 지역민속을 특화사업으로 육성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의 목적을 확대해석한 것같다”며 대회를 강행할 뜻을 비췄다. 삼척 조한종기자 hancho@
  • [義烈 독립투쟁](5) 안중근 의사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하자 일제는 이를 ‘암살’이라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안 의사는 공판정에서자신은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이토를 공격, 처단했다고설명했다. 안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의 향반(鄕班)집안에서 태어났다.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06년 3월 안 의사는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에 있는 가문의 재산을 모두 팔아 진남포로 이사한 후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였다.두 학교의 교장이 된 안 의사는 애국교육과 신학문 교육을 통해 애국청소년들을 양성하였다.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안 의사는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를 설치하여 자신이 지부장을 맡고 부인과제수의 패물까지 모두 헌납하는 모범을 보였다. 1907년 7월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고종이 폐위되고 한국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안 의사는 적극적인 무장투쟁을 위해 의병부대를 조직,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러시아령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이범윤(李範允)·최재형(崔在亨)등 연해주 유력자들의 지원을 받아 300여명의 동포 청년들을 모집하여 연추(煙秋·노보키에프스크)에서 의병부대를편성한 안 의사는 당시 이 부대의 실질적 통솔자였다. 안중근부대는 모두 세차례의 전투를 치렀다.1908년 4월 초순 두만강 최하단인 함경북도 경흥군 일본군 수비대 진지를 공격한 안중근부대는 단 한 사람의 부상자도 없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는 귀환하였다.이어 1908년 7월 제2차전투에서는 함경북도 신아산(新阿山) 부근의 일본군 수비대를 수 차례 기습공격,10여 명의 일본군 병사를 생포하였다.청년 휴머니스트였던 안 의사는 일본군 포로들을 ‘국제공법’에 의거,무기만 빼앗고 석방하였는데 이것이화근이 돼 제3차 전투에서는 참패를 하고 말았다.석방된 일본군 포로들이 안중근부대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기습해온 때문이었다.겨우 목숨을 건진 안의사는 부하·동지 몇 명과 연추로 돌아왔다. 한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포신문 ‘대동공보’의 연추지국장으로 일하고있던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분할 협의차 만주로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사를 도모하였다.1909년 10월 10일 대동공보사 사장실에서는 총무 유진율(兪鎭律),주필 정재관(鄭在寬),기자 윤일병(尹日炳)·이강(李剛)·정순만(鄭順萬),연추지국장 안중근,회계원 우덕순(禹德順) 등 7명이 모였다.이자리에서 안 의사는 “특공대를 조직하여 이토를 처단하겠다”고 자원하였고 우덕순도 자원하고 나섰다.특공대는 2개조로 나뉘어 안중근·유동하(劉東夏)조는 하얼빈에서,우덕순·조도선(曺道先)조는 채가구(蔡家溝)에서 거사키로 하였다.그러나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채가구에서 정차하지 않고 그냥 통과함으로써 결국 거사임무는 안중근조에게 넘어갔다. 거사당일인 1909년 10월 26일 오전 하얼빈역 주위에는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안 의사는 러시아 경비병에게 ‘취재차 나온 신문기자’라고 속이고는일본인 환영객 집단 구역까지 깊숙이 진입하였다.이날 오전 9시 이토 히로부미가 열차에서 내리자 안 의사는 여섯발의 총탄을 날렸는데 그 중 세 발이이토에게 적중하였다.거사에 성공한 안 의사는 그 자리에서 러시아말로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연창하였다. 안 의사는 재판정에서 자신의 거사는 ‘암살’이 아니라 한국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특공작전을 전개한 결과라고 누차 밝혔다.안 의사의 의거로 일제의 만주침략은 장기간 지연되었다.중국인들이 만주·중국 관내에서의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방임한 것은 바로 안 의사와 한국인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신용하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안중근 의사 직계후손 근황 안중근 의사는 부인 김아려(金亞麗) 여사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다.장남 분도(芬道)는 6세때 사망해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분도보다 3살 위인 장녀 현생(賢生)씨는 백범 김구 선생 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황일청(黃一淸·작고)씨와 결혼,은주(恩珠·71)·은실(恩實·68·미국 텍사스 거주) 자매를 두었다.은주씨는 남편 이용문(李容文·작고)씨와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남편 작고후 귀국,경기도 용인 수지에 살고 있다.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안 의사의 유일한 직계후손이다. 항주(杭州) 호강대학을 졸업한 차남 준생(俊生·1951년 45세로 작고)씨는 부인 정옥녀(鄭玉女·91년 작고)씨와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두었는데 현재 모두 미국에 살고 있다.안 의사의 장손격인 준생씨의 장남 웅호(雄浩·67)씨는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은퇴,새크라멘토에 거주하고 있다. 간호대학 출신인 장녀 선호(善浩·70)씨는 한국인 2세와 결혼,4남매를 두었으며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다.차녀 연호(蓮浩·65)씨는 시애틀에거주하고 있다.정운현기자*白凡과 안중근家의 인연 19세의 청년 김창수(金昌洙·김구의 아명)는 1894년 양반사회를 타도하고자 황해도 동학농민전쟁의 해주성 전투에 선봉장으로 참여한다.그런데 당시 황해도에서는 반농민군 세력으로 의병이 조직되는데,그 대표적 인물이 안중근(安重根)의 아버지 안태훈(安泰勳)이다. 그는 1884년 갑신정변 당시 박영효(朴泳孝)가 모집한 해외파견 유학생 70명에 선발되었다.그러나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박영효가 일본으로 망명하자 출세의 길을 버리고,대가족을 이끌고 신천군 청계동(淸溪洞)으로 들어갔다.1894년 황해도 동학군이 일어나자 이에 맞서 안태훈은 안중근 등 그의 아들과처자들까지 편입시킨 의병을 일으켰다.그 위력과 명성이 자자하여 황해도 동학군은 안태훈 부대를 두려워하였고,김창수 부대 역시 청계동을 특별히 경계하였다. 그런 안태훈이 청년 김창수에게 밀사를 보냈다.그 결과 두 진영 사이에는서로 공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한 쪽이 불행에 빠지면 서로 돕는다’는 공동원조까지 성립되었다.즉 안태훈은 비록 동학군을 토벌하는 입장이었지만 인재를 아끼고 있었고 개화에 뜻을 두고 있었지만 청일전쟁 전후의민족적 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창수 부대는 점차 토호화하고 있던 같은 동학접주 이동엽(李東燁)부대에의해 해체되었다.얼마간의 잠적 이후 이듬해 김창수가 찾아 간 곳은 청계동의 적장 안태훈 집이었다.청계동에서 ‘적장(敵將)과의 동거’는 청년 김창수에게 중요한 인연과 계기들을 마련해 주었다.안태훈의 각별한 후원으로 김창수는 부모님과 더불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며,안태훈가(家)의 식객인 고능선(高能善)은 동학의 꿈이 깨진 청년 김창수에게 새로운 사상적 지주가 되었다.또다른 식객 김형진(金亨鎭)은 같이 의기투합해 청국원정을 떠나사선을 넘나드는 동지가 되었다. 김창수는 청계동에서 스승과 동지를 얻었을 뿐 아니라,안태훈가와도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안중근의 아우 공근(恭根),조카 우생(偶生)은 임시정부 시절 백범의 측근이 되었으며,질녀 미생(美生)은 백범의 맏며느리가 되었다.또한 안태훈과의 화해,고능선의 교도로 백범은 양반이냐,상놈이냐 하는 계급의식 이상의 차원,즉 조국·민족문제에 눈뜨게 되었다.都珍淳 창원대 사학과 교수*安의사 5촌조카 民生씨 편지 발굴 안중근 의사의 집안은 우리 나라에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가문으로 꼽힌다.그러면 안 의사 집안의 후손들은 해방후 어떻게 살았을까.지난 8월말 학술행사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본사 김삼웅(金三雄)주필이 연변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입수한 두 통의 편지에 따르면,안 의사 집안의 후손들 가운데 더러는 해방된 조국에서 대접은 커녕 분단과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다 ‘한많은 일생’을 마친 것으로드러났다. 김 주필이 중국서 입수한 편지는 지난 88년 한국에 거주하던 안 의사의 5촌조카인 민생(民生·생사불명)씨가 중국 연길(延吉)에 있던 사촌여동생 경옥(京玉)씨에게 보낸 것으로 당시 경옥씨는 70세였다. 88년 1월 27일자 첫 편지에서 민생씨는 “지난 (87년)11월 15일 독립기념관장 춘생(椿生)형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너의 소식을 들었다”며 연락이 닿은 경위를 밝혔다.두 사람은 안 의사의 삼촌인 태건(泰健)씨의 손자녀들로 46년 7월 민생씨가 귀국하면서 서로 소식이 끊겼었다. 민생씨는 편지 서두에서 “해방후 형제·자매들이 귀국하였으나 모두 전재민(戰災民)의 신세를 면할 길이 없어 더러는 눈물을 흘리며 미국으로 떠나버렸다”며 해방후 집안 인척들의 이산을 안타까워 했다. 특히 민생씨는 “1961년 5월(‘5·16’을 지칭함) 조국의 평화통일 이념을주장했다는 이유로 나는 반국가범죄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경근(敬根) 당숙도 7년형을 선고받아 일제때 명근(明根) 당숙이 옥고를 치르시던 서대문형무소 특감(特監)8사(舍)에서 감옥살이를 했다”며 “해방,독립된 내조국에 돌아와서 또 감옥살이를 치러야 함으로써 우리 안씨 가문은 이역과조국에서 선후대(代)에 걸쳐 50여 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고 통탄해 했다. 안 의사 집안 가운데 안 의사의 사촌동생 경근과 5촌 조카인 민생씨는 해방후 유달리 험난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쳤다.두 사람은 이승만 정권하에서 민주구국동지회를 결성,반독재 투쟁에 앞장섰으며,장면(張勉) 정권 하에서는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준비위원회(민자통)에 참여하기도 했었다.5·16후 군사정권의 혁신세력 탄압 때 두 사람은 반국가범죄 혐의로 투옥됐으며 경근은 출옥 직후 작고했다. 민생씨의 경우는 ‘최악’이었다.1933년 만주에서 만주군에 붙잡혀 혹독한고문을 당한 후 도주하다가 다시 붙잡혀 양쪽 발끝을 작두로 절단당한 민생씨는 그 몸으로 감옥살이를 한 데다 68년 가석방으로 풀려났으나,업친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말년에는 지팡이와 의족에 의존해야 했다. 편지를 쓸 때 이미 70고개를 넘긴 민생씨는 “헤어진 동료들과 형제들이 그리울 때면 저 머-ㄴ 북녁(만주땅을 지칭한 듯)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가슴 쥐고 나무밑헤 쓸어진다 혁명군/가슴속에 솟는 피는 푸른 풀에 절벅해’… 이 노래를 부른다”고 적은 뒤 “가마귀도 우름을 멈추고 바람만 스치고지나갈 무덤없는 그들의 핏자죽 위에 한 송이 들꽃이라도 받쳐들고 가서 명복을 빌어드릴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며 눈물지었다.현재 민생씨는 생사가불명이다.광복회·국가보훈처·안중근의사기념관은 물론 사촌형인 안춘생씨마저 민생씨의 생사를 모르고 있다. 5월 28일자 두번째 편지에서 민생씨는 “과거 우리들은 안중근의 집안이라는 이유 때문에 왜놈들에게 죽어야 했고,징역을 살아야 했는데 해방후에는왜놈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주구들이 권력을 잡게 됨으로써 애국자들의 피해는 여전했다”며 역대 권력자 가운데 친일경력자들의 면면을 거론하였다. 정병학(鄭秉學·79)안중근기념관장은 “안 의사 집안의 인사 가운데 민생씨처럼 해방후 불우한 삶을 보낸 인사가 적지않다”며 “이는 해방후 친일·독재정권이 들어선 것이 주원인”이라고 말했다.정운현기자* 안중근家의 독립운동가들 안중근 의사의 가문은 안 의사를 포함,모두 9명이 독립유공 공적으로 건국훈장을 받았으며 현재도 몇 명이 포상 심사중이다. 1909년 한국침략의 원흉 이토(伊藤博文)를 처단한 안 의사는 독립유공훈장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인 대한민국장(1등급)을 받았으며,안 의사의 두 친동생 정근(定根)·공근(恭根)은 각각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공로로 독립장(3등급)을 받았다.또 사촌동생 가운데 명근(明根)은 ‘105인사건’으로,경근(敬根)은 임시정부 활동으로 각각 독립장을 받았다. 안 의사의 조카뻘인 ‘생(生)’자 항렬에서도 여러 명이 훈장을 받았다.대표적으로는 광복군 제2지대 구대장 출신으로 해방후 육사교장·국회의원·독립기념관장 등을 역임한 춘생(椿生·87·독립장)을 비롯해 춘생과 친형제로신민부에서 활동한 봉생(鳳生·애국장),그리고 안 의사의 첫째 동생인 정근의 장남으로 임정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낸 원생(原生·애족장)과 둘째 동생공근의 차남낙생(樂生·애족장) 등이 있다. 이밖에도 납북이나 공적서류 미비 등으로 서훈이 보류된 인사도 여럿 있다. 우선 공근의 장남 우생(偶生)은 중경 임시정부 시절 임정 편집부 과원으로활동했으며 해방후에는 백범의 대외담당비서로 활동했으나 그 후 납북돼 포상이 보류돼있다.또 안 의사의 사촌 봉근(奉根)의 자제인 민생(民生)과 그의형 호생(鎬生) 역시 독립운동을 했으나 해방후 ‘반정부활동’을 했다는 이유나 서류미비 등으로 아직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정운현기자
  • ‘오락가락’ 高承德씨 후보사퇴 파문

    한나라당 서울 송파갑 재선 후보였던 고승덕(高承德)변호사의 후보사퇴가정국에 새로운 불씨로 등장했다.한나라당은 ‘여권의 공작’이라고 주장하며 6·3재선거 보이콧 검토,국회 참여거부 등의 강수를 띄울 태세다.여당은 개인 문제로 일축했다.야당의 ‘트집잡기’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는 자세다. 한나라당은 29일 후보로 확정된 지 이틀 만에 이뤄진 고씨의 ‘공천 반납’사건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하지만 한나라당은 재빨리 고씨의 불출마 선언을 ‘여권의 강압에 의한 조치’로 규정하며 ‘공세’를 폈다. 이틀째 충청권 방문에 나섰던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이날 오후 서둘러 당사로 돌아와 긴급 총재단회의를 열어 대책마련에 나섰다.임시국회 활동을 중단하거나 6·3재선거 보이콧 방안까지 검토하기로 하는 등 초강경 대응 방안까지 논의됐다. 이총재는 “이 시대에 야당이 결정한 후보를 여당 총재가 불러 회유와 협박을 통해 사퇴시킨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한나라당은 고씨의 28일 밤 행적을 상세하게 소개하며‘외압’에 의한 후보 사퇴임을 부각시키려 애썼다.신경식(辛卿植)사무총장은 “고씨는 어젯밤사무실에서 선거대책회의까지 열었다”면서 “하룻밤 사이에 탈당,후보직을사퇴한 것은 본인의 의사에 반한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영입에나섰던 황우려(黃祐呂)의원도 “고씨는 장인인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가 총재직을 사퇴할 정도로 출마에 어려움이 있지만 이제 돌아설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강한 출마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부영(李富榮)총무는 이날 소속 의원들에게 국회의 노사정위원회법 심의중단 지시를 했으나 이수인(李壽仁)·이미경(李美卿)의원이 당명을 어기고 심의에 참여하자 “당을 떠나라”고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당내에서는 고씨의 후보사퇴 파동과 관련,처음부터 잘못된 공천이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이총재의 한 측근조차 “장인과 사위라는 특수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적절치 않은’ 후보 선정이었다”고 말했다.일각에서는 당지도부의 인책론까지 제기하고 있어 주목된다.공천을 주도한 ‘주류’측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국민회의 김현미(金賢美)부대변인은 논평에서 “고씨는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 사퇴한 것”이라며 “출마포기에 대해 납치 운운하는 것은 온당치않은 태도”라고 비난했다. 자민련 이양희(李良熙)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고씨의 후보사퇴는 가족들의 만류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본인이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외압 주장을 일축했다. 최광숙기자 b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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