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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가 철거한 덕수궁 대한문 월대 되살린다

    일제가 철거한 덕수궁 대한문 월대 되살린다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덕수궁 정문 대한문 앞 월대(月臺)가 복원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대한제국 황궁인 덕수궁 대한문의 면모를 회복하기 위해 월대 재현 설계를 시작해 내년까지 축조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월대는 궁궐이나 묘단(廟壇)에 있는 주요 건축물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臺)를 뜻한다. 국보인 종묘 정전과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에 월대가 남아 있다. 경복궁 광화문은 월대 복원 작업이 추진 중이다. 대한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었다. 황성신문과 독립신문에 따르면 대안문 건립 시기는 1898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월대는 1899년에 공사가 시작됐고, 1900년에 새로 고쳤다는 문헌 기록이 있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때 대안문은 불타지 않았지만 보수하면서 1906년에 이름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쳤다.대한문 월대는 1910년대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대에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사진을 보면 월대가 있지만, 1919년 고종 국장 사진에는 월대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월대 끝에 설치한 석수(石獸·동물 형상 석조물)만 존재한다. 대한문은 1970년 태평로 확장때 원래 위치에서 33m 가량 물러선 지점으로 옮겨졌다. 궁능유적본부는 대한문과 월대를 원 위치에 복원하는 방안은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해 원형 고증을 통해 현재 대한문 자리에 월대를 세우기로 했다. 오는 7월까지 설계를 마친 뒤 전문가 자문을 거쳐 내년에 월대 복원을 마칠 예정이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오늘부터 조선왕릉 제향·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잠정 중단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27일부터 조선왕릉 제향과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을 잠정 중단한다고 26일 밝혔다. 조선왕릉 제향은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왕과 왕비 기일에 능에서 지내는 제사로, 다음달에는 구리 동구릉에 있는 혜릉·경릉·목릉과 남양주 광해군묘, 고양 서삼릉 희릉에서 봉행될 예정이었다. 궁능유적본부는 코로나19 확산세를 검토해 추후 제향 일정을 잡기로 했다.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이뤄지는 수문장 교대의식과 파수의식도 중단한다. 수문장은 근정전과 경회루 등지에서 현장 근무로 대체될 예정이다. 앞서 문화재청은 지난 25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전남 목포 해양유물전시관, 전북 전주 국립무형유산원, 경기 여주 세종대왕역사문화관 등 실내 관람 기관을 잠정 휴관하기로 했다. 다만 궁궐과 왕릉 실외 공간은 정상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전통 디자인에 실용성 살린 궁궐·조선왕릉 새 근무복

    전통 디자인에 실용성 살린 궁궐·조선왕릉 새 근무복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궁궐과 조선왕릉 직원들이 입을 새 근무복을 경복궁 근정전에서 18일 공개했다. 동복은 패딩 점퍼, 짧은 재킷, 바지, 조끼로 구성했다. 하복은 짧은 재킷, 바지, 긴소매 티셔츠, 반소매 티셔츠, 조끼를 입는다. 새 근무복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했고, 기능성도 좋다고 궁능유적본부는 설명했다. 한복의 부드러운 깃과 동정(한복 저고리 깃 위에 덧대어 꾸미는 헝겊 오리)의 선을 적용해 목선을 단아하게 표현했다. 주머니는 궁궐 담 모양을 응용해 만들었다. 또 밤에는 빛이 반사되는 재질을 사용했다.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한국문화예술공연팀 의상감독을 지낸 임선옥 파츠파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제작했다. 직원 의견을 수렴한 뒤 전문가 논의를 거쳐 최종 디자인을 선정했다. 궁능유적본부 측은 “궁궐과 왕릉 직원 근무복은 그동안 관리소별로 지급돼 통일되지 않고 관람객과 구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실용성과 관람객 안전을 고려해 새 근무복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경복궁 근정전 일반인에 첫 공개

    경복궁 근정전 일반인에 첫 공개

    관람객들이 21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근정전 내부를 구경하고 있다. 경복궁 중심건물인 국보 제223호 근정전 내부를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번 특별관람은 다음달 21일까지 매주 수∼토요일에 두 차례씩 진행한다. 근정전은 국왕 즉위식과 문무백관 조회, 외국사절 접견 등 중요한 행사를 치르는 데 이용한 건물이다. 1395년 세웠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고종 재위기인 1867년 조선 후기 최고의 기술을 바탕으로 재건해 ‘궁궐건축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경복궁 근정전 일반인에 첫 공개

    경복궁 근정전 일반인에 첫 공개

    관람객들이 21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근정전 내부를 구경하고 있다. 경복궁 중심건물인 국보 제223호 근정전 내부를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번 특별관람은 다음달 21일까지 매주 수∼토요일에 두 차례씩 진행한다. 근정전은 국왕 즉위식과 문무백관 조회, 외국사절 접견 등 중요한 행사를 치르는 데 이용한 건물이다. 1395년 세웠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고종 재위기인 1867년 조선 후기 최고의 기술을 바탕으로 재건해 ‘궁궐건축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역사 예능, 가슴 적시다

    역사 예능, 가슴 적시다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에서 비롯된 한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요즘 TV 속 예능 프로그램에도 역사 바로 알기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18일 첫 방송된 MBC ‘같이 펀딩’은 배우 유준상의 태극기함 펀딩을 첫 번째 아이디어로 내세워 문을 열었다. ‘같이 펀딩’은 스타 PD 김태호의 신작으로 혼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분야의 가치 있는 아이디어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시청자들과 같이 실현해보는 취지로 시작했다. 첫 회에선 초월 스님 이야기가 감동을 줬다. 스님은 일제강점기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덧대 그린 뒤 진관사 깊숙한 곳에 보관했다. 광복을 1년 앞두고 초월 스님이 입적한 것을 들은 유준상 등 출연자들은 눈물을 보였다. 스타 강사 설민석이 들려주는 태극기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영양가를 높였다. 방송 중 네이버 해피빈에 열린 태극기함 펀딩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으로 금세 목표금액을 넘겼다. 같은 날 밤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에서는 ‘서울 다시보기’를 주제로 설민석, 전현무, 유병재, 최희서가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되새겼다. 이들은 광화문, 경복궁, 덕수궁 등을 찾아 곳곳에 새겨진 일제강점기 수많은 수난을 조명했다. 멤버들은 그동안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듣고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설민석은 경복궁 근정전의 일장기 사진을 꺼내 들어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SBS ‘런닝맨’에서는 가족들 몰래 600만원을 가져간 아버지를 찾는 레이스가 펼쳐졌다. 이날 미션은 독립운동가들의 실제 삶과 관련이 있었다. 돈을 몰래 가져간 아버지는, 자신의 재산을 독립자금으로 쓴 독립운동가였다는 설정이다. 600만원은 우당 이회영 선생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지출한 금액이었다. 최종 우승자 지석진은 상금 600만원을 대한독립유공자 유족회에 기부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딱 한 달… 경복궁 근정전 내부, 일반에 첫 공개

    딱 한 달… 경복궁 근정전 내부, 일반에 첫 공개

    궁궐건축의 정수… 재현품 전시도 관람일 7일 전부터 홈피 예약해야조선 제일의 법궁(法宮)인 경복궁의 중심건물이자 궁궐건축 정수로 평가받는 국보 제223호 근정전의 내부가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법궁은 임금이 거처하는 궁을 가리킨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경복궁 정전(正殿)인 근정전 내부 시범 특별관람을 이번 달 21일부터 다음달 21일까지 한 달 동안 매주 수∼토요일에 두 차례씩 진행한다고 7일 밝혔다. 안내사가 정전 기능과 내부 상징물·구조물에 관해 설명하며,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2시 30분에 시작해 20분 정도 진행한다. 근정전은 국왕 즉위식과 문무백관 조회, 외국사절 접견 등 중요한 행사를 치르는 데에 이용했다. 1395년 세웠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고종 재위기인 1867년 조선 후기 최고의 기술을 바탕으로 재건해 궁궐건축의 정수로 불린다. 궁궐 중 유일하게 시간과 공간을 수호하는 십이지신과 사신상으로 장식한 상·하층의 이중 월대(月臺·널찍한 기단) 위에 건립해 법궁으로서 위엄을 드러낸다. 겉보기에는 높은 천장을 받드는 중층 건물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위아래가 트인 통층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웅장하다. 화려하고 높은 천장 중앙의 단을 높여 구름 사이로 여의주를 희롱하는 황룡(칠조룡) 조각을 설치해 왕권을 극대화했다. 북쪽 중앙에는 임금이 앉는 어좌(御座)가 있고, 그 뒤로는 해·달·봉우리 5개를 그린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을 세웠다. 어좌 위에는 정교하고 섬세하게 처리한 작은 집 모양 조형물인 닫집이 있다. 근정전 내부에는 현재 전문가들이 고증을 거쳐 만든 재현품이 전시됐다. 특별관람은 만 13세 이상이면 참가할 수 있다. 관람일 일주일 전부터 경복궁 홈페이지(royalpalace.go.kr)에서 예약해야 한다. 무료이며, 회당 정원은 20명씩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봄철 창경궁과 창덕궁 정전인 명정전, 인정전 내부 관람을 허용한 바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조선시대 궁궐 정전 ‘창경궁 명정전’ 내부 처음으로 개방

    현존하는 조선시대 궁궐 정전(正殿)으로는 가장 오래된 창경궁 명정전 내부가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국보 제226호 창경궁 명정전과 국보 제225호 창덕궁 인정전의 내부 관람을 실시한다고 4일 밝혔다. 궁궐 내 으뜸 전각인 정전은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 접견 등 나라의 중요한 공식적인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정전 내부에는 임금이 앉는 자리인 어좌(御座)가 마련되어 있고 그 뒤로는 임금이 다스리는 삼라만상을 상징하는 해와 달, 다섯 개의 봉우리가 그려진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병풍 등이 있다. 지금까지는 문화재 훼손 우려와 안전관리 등의 이유로 개방하지 않았으나 정전 내부 정비와 안전요원 배치 등을 통해 이번에 관람을 실시하게 됐다. 창경궁 명정전 내부관람은 새달 2일부터 5월 31일까지, 10월 2일부터 11월 29일까지 매주 화∼금요일에 하루 13회씩 운영한다. 참가희망자는 당일 현장에서 바로 참여 가능하며 30인 이상 60인 이하 단체는 최소 3일 전에 전화로 예약해야 한다. 창덕궁 인정전은 지난해 특별관람에 이어 이달 6∼30일과 11월 6∼30일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하루 4회만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참가희망자는 당일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접수를 신청하면 된다. 1회당 입장 인원은 30명으로 제한되며 비가 올 때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내부관람이 취소된다. 궁능유적본부는 앞으로도 경복궁 근정전 내부관람(8월 계획) 등 평소 접근이 제한되었던 궁궐 전각 내부를 지속적으로 개방할 예정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1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1

    서울신문은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호머 허버트(1863~1949), 노골적 친일 행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슨(1851-1908),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대거 등장합니다. 작가가 실제로 조선에 와서 베델 등을 취재해 쓴 이 소설에는 고종의 연해주 망명 시도 등 최근에야 알려진 극비 내용도 담겨 관심을 모읍니다. 서울신문은 이 소설 가운데 하나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12월 출간, 원제 : The cat and the king, 부제 : Billy and Bethell)를 번역해 연재 형태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11회>   나는 어둠을 뚫고 상하이에 도착했을 전보 메시지를 떠올렸다. 소녀가 보낸 3개의 단어(“초상화 성공. 만세!”)가 저쪽에 전달됐을 것이고 이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직접 보고 싶어졌다. 상하이에 있는 러시아 외교의 달인(러시아 극동총독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알렉세예프로 추정)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 낡은 나라(청나라)에 몰래 묻어둔 보트를 출발시키라는 요청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옌타이의 어느 항구로 또 한 번 전보를 보내 발해만에 정박해 있던 배에게 돛을 올려 빠르고 비밀스럽게 서울로 가 조선의 황제를 데려오라고 명령할 것이다. ‘국제정치’라는 이 민첩하고 정교한 기계를 제대로 움직이고자 ‘외교’라는 이름의 엔진 속의 톱니 바퀴와 피스톤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나는 이 차가운 밤하늘 속 별빛을 보며 두 손을 꽉 쥐었다. 하지만 나의 머리는 저 멀리 30㎞쯤 떨어진 어둠의 도시(서울)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빛나는 금발 머리와 보랏빛 눈을 가진 한 여성이 약탈자(일제)의 계략에 맞서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제물포에서 첫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돌아왔다. 세관 문제에 대해 일본 탁지부 고문(메가다 다네타로)과 회의를 하려고 궁으로 갔다. 연로한 조선 황제(고종)의 고문관인 메가타 역시 국제정치라는 기계를 돌리고자 톱니의 나사를 조이는 일에 가담하고 있었다. 회의 시작을 기다리며 나는 내가 조선에서 가장 좋아하는 경복궁 뜰을 걸었다. 지금은 폐허가 되다시피 한 근정전과 법궁을 보며 이 궁의 모습이 지금의 조선 왕조를 상징한다고 여겼다. 이 왕궁이 어떤 이유로 이 찬란한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리게 됐을까를 곰곰 생각해봤다.그 때였다. 시베리아 전나무 그늘에 놓인 왕실 도서관(집옥재) 발코니에 앉아 있었는데,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녀였다. 그리고 명쾌하고 리듬과 운율이 잘 맞아들어가는 그녀의 말솜씨에 곁들여 무겁고 둔탁한 악센트를 구사하는 남성의 목소리도 들렸다. 하기와라(훗날 2대 조선총독이 되는 하기와라 슈이치)였다. 그들은 내 쪽으로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있던 도서관 발코니 바로 아래 멈춰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졸지에 남의 말을 엿듣는 사람이 돼 버렸다. “아니요. 하기와라님” 소녀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께서 저에게 그렇게 세심한 관심을 써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저는 하나도 기쁘지 않습니다. 당신이 서울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다 들었으니까요.” ”잠깐만요. 마담“ 하기와라가 성급히 소녀의 말에 끼어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뭔가 이상하고 음흉한 음색이 느껴졌다. ”잠깐만요...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나는 통...모르겠습니다.“ ”아...네...그러시겠죠.“ 소녀가 일부러 상심한 척 그를 애태우려는 말투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떤 여자라도 당신이 자신을 매력적으로 느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죠. 여자들은 그런 식으로 자기가 관심이 대상이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여자들은 그런 생각을 하며 즐거워하죠.” 소녀의 목소리에는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기운이 있었다.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있는 하기와라의 심장 박동수를 높이려는 계산이 담겨 있었다. “하기와라님, 당신도 늘 내 뒤를 따라 다녔고 단 한가지 이유로 저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잖아요...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요. 이 사실을 부정하실 수 없으실 거에요.”“그게...그 이유는...그 이유는 당신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나는...나는 당신을...” 하기와라가 부끄러운 듯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했다. “그만하세요!” 짧은 말 속에 어떤 명령과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소녀의 눈에서 불꽃이 번득였다. “하기와라씨, 당신은 내가 스파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바른대로 말씀하세요!” 이 일본인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 당황해서인지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울먹이고 있었다. “절대로...절대로...그런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어떻게 그런 일이...말도 안됩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12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포토 다큐] 600년 별빛 따라… 궁으로 숨어든 밤

    [포토 다큐] 600년 별빛 따라… 궁으로 숨어든 밤

    고궁이 새로운 ‘문화허브’로 자리잡고 있다. 역사와 예술을 결합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옛 궁궐 안에서 펼쳐진다.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경복궁 별빛야행’은 한낮의 번잡함을 벗어난 고궁에서 품격 있는 왕실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힐링 프로그램’이다.은은한 별빛이 짙게 드리워진 경복궁. 손마다 청사초롱을 쥔 관람객들이 한껏 들뜬 기분으로 고궁 나들이에 나섰다. 조선 시대 궁중 의상을 차려입은 상궁이 옛 말투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흥례문(興禮門)의 중문이 열리고 동편 회랑(回廊)을 지나 별빛이 비추는 길을 따라가니 왕세자가 글을 읽던 비현각(丕顯閣)이 모습을 드러낸다. 실제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일으킬 만큼 배우들이 당시 세자가 대신들과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었다.본격적인 투어를 하기 전 들른 곳은 궁궐의 부엌인 소주방(燒廚房)이다. “주상 전하께서 여러분에게 특별히 진찬연을 베풀라 하셨지요”라며 수라간 상궁이 맞았고 ‘도슭(도시락의 옛말) 수라상’이 차려진 방으로 안내했다. 도시락이라 하여 요깃거리일 줄로만 알았는데 임금이 즐기던 12첩 반상이었다. 궁중 나인의 수발 속에 즐기는 만찬은 정갈하면서도 담백했다. 더불어 마당에서 열리는 퓨전국악 공연은 먹는 내내 입맛을 돋워 주었다.식사 후 시작된 본격적인 고궁 산책은 이제껏 야간엔 공개하지 않았던 왕비의 처소인 교태전(交泰殿)으로 이어졌다. 금남(禁男)의 구역이었던 궁녀들의 생활 공간을 엿보는 흔치 않은 기회다. 전각에 들어가기 전에 보여 주는 세종과 소헌왕후의 사랑을 샌드 아트로 그려낸 영상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윽고 둘러본 각각의 방은 단아한 고가구와 소박한 꽃들이 아 기자기한 모습으로 조화롭게 자리잡고 있었다. 다른 문양의 창호(窓戶)에서 퍼져 나오는 불빛이 은은하다. 내부 관람이 처음으로 허용된 함화당(咸和堂)과 집경당(緝敬堂)은 경복궁 내전의 침전(寢殿)으로서 우리 한옥의 건축미가 돋보였다.후원을 거쳐서 다시 발걸음을 옮기니 별빛야행의 백미인 경회루(慶會樓)의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연못을 앞에 두고 조명과 어우러진 누각은 고요함 속에 고고한 멋을 발하고 있었다. 사라져 버린 왕조의 순간들이 물위로 아른거리는 듯하다. 낮에는 볼 수 없던 고궁의 비경을 카메라에 담는 관람객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별빛 아래 펼쳐진 왕실 조경의 진수에 모두가 흠뻑 취한 듯했다. 별빛야행에 참가하려고 휴가를 냈다는 회사원 민경배씨는 “낭만적인 감흥을 많이 받았고 특히 늦은 밤에 구경해 보니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신발을 벗고 2층 누각에 오르니 힘 있게 술대로 내려치는 거문고 소리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인왕산과 경복궁의 전각들은 물론 도심 속 빌딩의 야경까지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내려다보는 풍경이 사뭇 색다르다.행사의 마무리는 근정전(勤政殿)에서 진행됐다. 조명으로 꾸민 밤의 근정전은 고즈넉하면서도 화려했다. 2단의 월대(越臺) 위로 세워진 경복궁 정전(正殿)의 자태가 당당하다. 월대를 둘러싼 난간 기둥마다에는 사신(청룡, 백호, 주작, 현무)과 십이지상 등이 배치돼 있다. 관람객들은 이곳저곳 놓칠 수 없는 장면을 둘러보기에 바쁘다. 학원 강사인 서지숙씨는 “조명 불빛 아래 화려함이 더해진 단청이 환상적”이라며 탄성을 터뜨렸다.조선 최고의 건축과 정원을 배경으로 운치를 더하는 ‘시간 여행’을 다녀온 초가을 밤. 600년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궁은 우리 곁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글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별빛 쏟아지는 가을밤... 경복궁에서 즐기는 특별한 ‘야간 산책’

    별빛 쏟아지는 가을밤... 경복궁에서 즐기는 특별한 ‘야간 산책’

    별빛 쏟아지는 밤 ‘비밀의 문’이 열린다. 조선시대 왕이 연회를 즐겼던 연못 위 누각부터 후궁과 궁녀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처소까지. 초대받은 사람들만 야간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 경복궁에서다. 문화재청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재재단이 주관하는 ‘경복궁 별빛야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가 거닐었을 궁궐의 곳곳을 돌아보며 가을밤의 고즈넉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2016년 첫 선을 보인 이후 올해 하반기까지 매회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꾸준히 사랑받는 행사다. 낮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고궁의 화려한 밤풍경이 지닌 매력 덕분이 아닐까. 관람객들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흥례문에 다다르면 마중을 나온 인솔 상궁과 마주하게 된다. 2시간 동안 경복궁 곳곳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줄 안내원이다. 인솔 상궁은 올해 조선 제4대 왕인 세종의 즉위 600년을 맞아 손님들에게 연회를 베풀라는 전언이 있었다며 대궐 안에서 음식을 만드는 소주방으로 안내한다. 소주방으로 가는 길 근정전 바닥에 어슷하게 놓인 울퉁불퉁한 박석을 밟을 때 조심하라고 일러주는 상궁. 비단 가죽신을 신었던 신하들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깔았다는 돌을 밟으며 발걸음을 옮기면 어느새 비현각에 이른다. 세종의 맏아들이자 조선의 제5대 왕인 문종의 집무실이다. 문종과 신하로 분한 배우들이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며 각론을 하는 연기를 보며 그들이 당시 품었을 애민 정신을 짐작해본다. 비현각 뒤쪽에는 ‘경복궁의 부엌’인 소주방이 자리잡고 있다. 경복궁에서 음식을 조리·보관·제공하던 공간으로, 100여년 만에 복원되어 2015년 5월부터 일반에 개방됐다. 관람객들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가 먹었던 일상식인 12첩 반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도슭수라상’을 맛볼 수 있다. ‘도슭’은 도시락의 옛말로 새우냉채, 육포 장아찌, 광어잣찜, 탕평채, 어알탕, 전복만두, 안심구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식사를 하는 동안 국악 실내악그룹의 구성진 연주를 감상하며 맛과 풍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본격적으로 경복궁 탐방이 시작된다. 궁궐 한가운데 자리잡은 교태전은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거처하던 곳. 왕비의 휴식 공간인 동시에 공식적인 업무가 이뤄졌던 공간이다. 인품이 남달랐던 왕비를 지극히 아꼈던 세종의 애틋한 사랑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별빛야행 관람객들은 교태전 북쪽에 자리잡은 함화당과 집경당의 내부를 둘러보며 당시 궁녀들의 일상도 엿볼 수 있다. 산책로를 걷다보면 경복궁 별빛야행의 백미로 꼽히는 경회루에 다다른다. 조선시대 사신을 접대하거나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다. 큰 연못에 비친 웅장한 경회루의 모습은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평소에는 관람이 허락되지 않는 경회루 누상에 올라 대금 연주가의 독주를 들으며 ‘밤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올해 ‘경복궁 별빛야행’은 예년과 달리 경복궁이 품고 있는 옛 이야기가 더해져 더 풍성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하반기 행사는 더 많은 관람객이 야행을 즐길 수 있도록 2부제로 운영된다. 9월 2일부터 15일, 10월 6일부터 20일까지(매주 화요일 제외) 총 50회 진행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별별 이야기] 1만원권 안의 천문학/김종수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별별 이야기] 1만원권 안의 천문학/김종수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2021년 8월 부산에서는 제31회 국제천문연맹(IAU) 총회가 열린다. 100여개국 약 1만 3000명 천문학자로 구성된 국제천문연맹은 3년마다 총회를 열어 새로운 연구 결과와 동향을 발표한다. 부산 총회 국내 준비위원회는 총회 엠블럼을 공모했고 4개의 후보작 중에서 최종 엠블럼을 결정했다. 엠블럼은 ‘일월오봉도’와 부산을 상징하는 광안대교를 소재로 디자인됐다. 이 엠블럼을 보면서 일월오봉도가 새겨져 있는 1만원권 지폐 도안이 떠올랐다.필자는 외국 천문학자들이 한국에 오면 경복궁에 데려가 소개한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박상진 교수의 ‘궁궐의 우리 나무’라는 책 덕분에 민간 문화와 나무 해설사 역할을 쉽게 할 수 있다. 특히 경복궁 근정전 어좌 뒤편에 있는 일월오봉도를 설명할 때는 지갑에서 1만원권 지폐를 꺼내 앞면의 세종대왕 초상, 용비어천가, 일월오봉도를 보여 준다.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훈민정음을 알기 쉽게 풀이한 해례본을 집필해 한글을 창제, 공표했다는 점과 새로 만든 한글을 활용하기 위해 집현전 학자들과 용비어천가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또 세종대왕은 과학자들에게 천문관측기기, 해시계, 물시계를 만들고 역법을 정리하게 하는 등 한국 역사상 가장 과학이 발달한 시대를 이끌었다는 점도 빠뜨리지 않는다. 사실 우리나라 1만원권 뒷면은 천문학을 주제로 디자인돼 있다. 혼천의,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우리나라에 설치된 가장 큰 망원경인 보현산 천문대의 1.8m급 망원경이 조화롭게 도안됐기 때문이다. 혼천의는 고려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국보 제230호 ‘혼천시계’의 일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와 달, 행성의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기기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태조 때 고구려 천문도(圖) 탁본을 비석에 새긴 천문도이다. 조선 숙종 때는 태조 석각본을 다시 비석에 새겨 두었다. 태조와 숙종 때 만들어진 석각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경복궁 고궁박물관에 각각 국보 제228호와 보물 제837호로 지정돼 보관 중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구려 시대 전체 하늘의 별을 표현한 지도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별자리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보현산 천문대 1.8m 망원경은 1996년 경북 영천시 보현산에 설치된 직경 1.8m 광학망원경으로 국내 천문우주과학의 위상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경복궁 사정전 앞에 설치된 해시계 앙부일구의 원리를 설명하고 고궁박물관에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보여 주면서 이런 설명을 이어 가면 외국 천문학자들은 세종 시대 천문학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1만원권 뒷면 디자인이 매우 흥미롭고 이례적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600년 역사 깨운다 광장의 울림 퍼진다 ‘서울의 찬가’ 울린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600년 역사 깨운다 광장의 울림 퍼진다 ‘서울의 찬가’ 울린다

    서울신문이 지난 12일부터 서울시 및 서울도시문화연구원 등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를 시작했다. 올해로 세 번째다. 미래유산이란 아직 문화재로 등록되진 않았지만 미래 세대에 물려줄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서울 근현대 문화유산이다. 지난해 투어와 비교할 때 유형의 유산에서 무형의 유산으로, 사대문 안에서 사대문 밖으로 답사 영역을 넓힌 게 특징이다. 투어는 지난해 참가자들이 재체험을 희망한 사대문 안 주요코스 6개, 문학과 영화를 중심으로 새로 선정된 무형 서울미래유산 6개, 그리고 지역별·어젠다별·계절별 코스 23개 등 총 35개 코스로 편성했다. 오는 12월 말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 동안 열리며 혹서기인 7, 8월 두 달 동안은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5회 동안 야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22일(토)과 마지막 날인 9월 26일(수) 2회는 ‘한가위 특별투어’로 운영한다. 전문성을 갖춘 18명의 베테랑 해설자가 투입되며 매회 3명 이상의 진행요원이 안전한 투어를 보장한다. 국내 도보답사 프로그램 중 처음으로 오디오 가이드시스템을 도입했다. 소음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뿐더러 해설사 앞에 있어야만 들리던 불편도 해소할 수 있어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편안하게 답사여행을 할 수 있다. 이르면 7월부터 서울시 각 중학교에서 추천, 선발된 ‘미래청소년 기자단’도 동행해 탐방 분위기를 풋풋하게 띄울 예정이다. 참가 신청은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kr)에서 참여하기, 탐방, 접수 순으로 하면 된다. 매주 월요일 오전 9시부터 그주 참여자를 선착순으로 30명 받는다. 대기자도 10명 선착순 모집한다. 무료다.# 도로원표·광화문지하보도…걸음마다 미래유산 2018년 첫 투어가 시작된 5월의 두 번째 토요일인 지난 12일 온종일 비가 내렸다. 이날 10시쯤 종각역 4번 출구 앞에서 집결해 오디오 가이드시스템을 지급한 뒤 사용법을 시연할 예정이었지만 빗줄기가 굵어져 역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등행사 등으로 광화문과 종로 일대 차량 진입이 통제돼 불참 및 지각자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우였다. 답사용 단체 카톡방에서 교통통제 및 집결지 변경을 알리는 긴급 메시지를 수신한 예약자 30여명이 예외 없이 시간을 지켰다. 형형색색 우산을 받쳐 든 참가자들은 진행자들의 ‘철통 호위’를 받는 가운데 이기훈 해설사와 함께 정시에 보신각을 출발했다. 지난달 새로 설치한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을 보고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서울 공인 맛집인 청일집, 미진, 청진옥을 둘러봤다. 중학천을 따라 고종즉위40년기념 칭경비전과 교보문고 앞 벤치에 편안하게 모신 ‘3대’의 작가 횡보 염상섭도 만났다. 도로원표와 광화문지하보도, 충무공 동상, 세종대왕 동상을 차례차례 누볐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 옥상에서 비에 젖은 백악산과 경복궁의 운치를 만끽한 뒤 세종로공원에 서 있는 ‘서울의 찬가’ 노래비에 얽힌 해설과 세종문화회관 40년사를 들으면서 비에 젖은 세종로 투어를 마무리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처음 지급된 고감도 오디오 가이드시스템 덕분에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큰 불편 없이 낭만적인 투어를 즐길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참가자 단체 카톡방에서 바로바로 찾아볼 수 있는 해설 자료는 덤이었다. ‘한국의 얼굴’이자 서울의 중앙인 광화문광장과 세종로의 지층은 현재 아스팔트 지상보다 무려 8m 아래에 있다. 태조 이성계와 삼봉 정도전이 활보하던 최초의 인공도로면 위에 조선 중후기 도로 층이 쌓이고, 또 19세기와 일제강점기 때 지층 등 모두 11개의 지층이 겹겹이 덮여 지금의 표면을 이뤘다. 광화문 8m 지층 속에 600년 묵은 역사가 차곡차곡 쌓인 셈이다.# 서울의 주축은 백악~경복궁~숭례문~관악 서울은 산과 성곽의 도시이다. 유교와 풍수의 원리가 겹겹이 에워쌌다. 성곽으로 둘러싼 경계에 내사산이 있고 외곽에 외사산이 있다. 내사산 북쪽의 백악산(북악산)은 현무, 동쪽의 낙산(낙타산)은 청룡, 서쪽의 인왕산은 백호, 남쪽의 남산(목멱산)은 주작이 각각 수호신이다. 외사산 북쪽 삼각산(북한산)은 백두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조산(祖山·풍수설에서 혈에서 가장 멀리 있는 용의 봉우리)이요, 지리산에서 뻗은 관악산은 아침마다 임금을 알현하는 조산(朝山)이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은 북악을 조산으로 자리를 잡았다. 근정전은 도시의 중앙에서 서쪽으로 쏠린 상태에서 남향을 바라보고 앉았고 남북 간 축선인 주작대로는 삼각산과 관악산 축선상에 놓였다. 도시 중앙에 동서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종로(운종가)이다. 오늘의 세종로사거리에는 황토마루(黃土峴)라는 나지막한 언덕이 있었다. 관청가인 육조거리와 운종가가 만나는 지점이다. 육조거리에서 숭례문에 이르는 주작대로는 직통으로 연결하지 않았다. 광화문광장 끝자락에서 왼쪽으로 꺾어 종로 보신각까지 간 뒤 지금의 남대문로를 통해 숭례문까지 이르는 이른바 정(丁)자형 길이다. 서울의 주축(主軸)은 백악~경복궁~숭례문~관악이었다. 서울 중앙의 매력에서 음식을 뺄 수 없다. 서울음식이란 무엇일까. 명물 음식점은 도심재개발로 옛 터를 잃고 빌딩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 투어단은 이날 빈대떡의 청일집, 해장국의 청진옥, 메밀국수의 미진을 순례하면서 서울음식의 정체성에 대해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미래유산 목록에 오른 42개의 음식점 중 종로구에는 이들 3곳을 포함해 이문 설농탕(설렁탕), 진아춘(중식), 형제추어탕(추어탕), 열차집(빈대떡), 원조할머니 기름떡볶이(떡볶이), 유진식당(냉면) 등 모두 9곳이 포진한다. 중구에는 용금옥(추어탕), 은호식당(꼬리곰탕), 문화옥(설렁탕), 우래옥(냉면), 안동장(중식), 명동 할매낙지(낙지볶음), 부민옥(해장국), 오장동 함흥냉면(냉면), 고려 삼계탕(삼계탕), 유림면옥(메밀국수), 산골막국수(막국수), 진주회관(콩국수), 라 칸티나(양식), 무교동 북어국집(북엇국), 전주중앙회관(비빔밥) 등 무려 15곳이 선정됐다. 종로·중구 2개 구에만 전체의 절반이 넘는 24곳이 집중돼 있다.# 궁중요리 등 서울 전통음식은 잊혀져 가 한결같이 서민음식이다. 궁중요리와 반가음식의 고향인 서울에서 살아남은 미래유산은 서울의 전통요리가 아니라 지방과 외국에서 온 이방인들이 퍼뜨린 팔도요리와 외국음식이란 점이 특징이다. 보통 서울음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궁중요리와 설렁탕, 빈대떡, 민어탕, 불고기에서 서울음식의 지평이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서울음식은 종로의 설렁탕과 빈대떡, 신당동 떡볶이, 을지로 평양냉면과 골뱅이, 동대문 닭 한마리, 오장동 함흥냉면, 신림동 순대, 마포 돼지갈비, 왕십리 곱창, 장충동 족발, 성북동 칼국수처럼 특정 지역에 몰려 있는 특정 음식이 손꼽힌다. 서울로 모여든 이북 사람, 영호남 사람이 음식과 함께 서울이라는 문화공동체 안에 두루 섞였다. 비빔밥 문화이다. 안타깝게도 서울토박이 음식은 뒷전으로 밀렸다. 글 노주석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이원석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사방 동촌(대학로 일대) ●일시 및 집결장소 : 5월 19일(토) 오전 10시 혜화역 2번 출구 마로니에공원 좋은공연안내센터 앞
  • 고궁의 절정… 경치를 잠시 빌리다

    고궁의 절정… 경치를 잠시 빌리다

    새봄이 되면 고궁마다 봄맞이 행사를 엽니다. 행사는 대개 금지된 영역의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창덕궁 낙선재 후원의 쪽문을 열고, 경복궁 경회루로 오르는 계단의 문도 활짝 엽니다. 이런 행사들의 핵심은 왕의 눈높이에서 궁궐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바야흐로 고궁들의 화양연화가 시작됐습니다. 다 돌아볼 수는 없더라도, 한 곳쯤은 찾아 물오른 봄 풍경을 만끽하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계단식 화단·꽃담… 창덕궁 낙선재의 백미 ‘뒤란’ 낙선재는 조선의 24대 임금 헌종이 1847년 서재 겸 휴식 공간으로 지은 건물이다. 후궁인 경빈 김씨를 위해 지은 석복헌과 순조의 정비인 순원왕후가 머물던 수강재도 딸려 있다. 석복헌은 단청이 없다. 소박하고 단아하다. 호리병, 포도 등 다산을 기원하는 문양도 건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맘때 낙선재 구역의 백미는 뒤란이다. 매화가 흐드러진 화계(계단식 화단)와 각종 무늬로 치장한 꽃담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뒤란에서 눈여겨볼 것은 괴석이다. 화강암 받침대에 특이하게 생긴 돌을 받쳐 놓았다. 받침대 중 하나엔 소영주(小瀛洲)라고 씌어 있다. 영주는 신선 세계다. 그러니 받침대의 주장은 이 공간이 곧 선경이라는 것일 터다. 뒤란의 위는 야트막한 산자락이다. 낙선재 구역에 딸린 전용 후원이다. 평소에는 출입이 금지된 영역이다. 바로 이곳에 발을 딛는 것이 특별 관람의 핵심이다. 취운정에서 작은 쪽문을 오르면 곧 한정당이다. 건물 주변엔 담장이 둘러쳐 있다. 이 담장을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 반드시 까치발을 하고 봐야 한다. 그래야 담장 너머로 펼쳐지는 완벽한 진경산수화를 눈에 담을 수 있다. ●인왕·백악·낙산·남산 한눈에 볼 수 있는 ‘상량정’ 작은 쪽문을 하나 더 지나면 제법 너른 터에 육각형 정자와 긴 창고형 건물이 나온다. 정자는 ‘상량정’이라 적힌 편액을 달고 있다. 한데 편액이 매우 작다. 어른이 배냇저고리를 입은 것처럼 어색하다. 글씨를 왼쪽부터 쓴 것도 그렇다. 상량정의 옛 이름은 평원루다. 상량정 위로 오르면 인왕과 백악, 낙산, 남산 등 한양을 에워싼 4개의 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출입이 금지돼 있어 이 모습을 볼 수 없다. 아쉽기 짝이 없다. 기껏해야 열댓 개 정도의 계단만 오르면 천하의 절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데 말이다. 상량정 옆의 묵직한 건물은 예전 장서각이다. 여기서 무수히 많은 한글소설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를 따로 ‘낙선재본’이라 부른다. 상량정 옆 담장에 새겨진 무늬가 인상적이다. 부(富) 자와 수(壽) 자를 형상화한 문양이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담장을 지나는 문은 만월문이다. 보름달처럼 둥근 형태다. 문 자체도 예쁘지만, 안에 담기는 풍경은 더 예쁘다. 이제 막 꽃잎을 연 돌배나무와 창덕궁 전각의 기와지붕, 그리고 멀리 백악의 봉긋한 봉우리가 함께 담긴다.●왕이 정사 살피던 ‘인정전’ 내부 관람도 감동 인정전(국보 225호) 내부 관람도 낙선재 못지않은 감동을 준다. 인정전은 왕이 정사를 살피던 공간이다. 20분 남짓 왕이 된 기분을 낼 수 있다. 인정전에 들면 여러 시각에서 살펴보길 권한다. 왕뿐 아니라 신하, 내시 등 자리를 바꿀 때마다 사뭇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인정전은 밖에서 보면 단층이지만 안에서 보면 중층 구조다. 그 압도적인 공간감은 신하의 자리에 서서 볼 때 최대치를 이룬다. 사실 가장 재미없는 것은 왕의 시선이다. 왕이 앉은 자리가 곧 풍경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어좌와 일월오봉병,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금강송 기둥, 천장의 화려한 봉황 조각 등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은 외려 말석의 신하 자리다. 전등, 유리창, 커튼 등 근대적 요소가 가미된 전환기의 궁궐 모습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게 좋겠다. 궐내각사 특별 관람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궐내각사는 궁궐 안에서 활동하는 관리들의 활동 공간을 복원한 곳이다. 상시 개방되지만 해설사의 설명이 곁들여지면 감동이 한결 깊어진다. ●풍경을 액자처럼 보는 ‘낙양각’… 경복궁 경회루의 백미 경복궁에선 경회루 개방 행사가 준비됐다. 경회루는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지어 올린 누각이다. 경회루 2층은 바닥의 높이가 각각 다르다. 중앙부가 가장 높고, 가운데 공간이 한 뼘 남짓 낮다. 바깥 공간 역시 또 한 뼘 정도 낮다. 높이가 다른 경계 구역엔 분합문을 달았다. 문을 내리면 폐쇄된 공간이 되고 열면 터진 마루가 된다. 참고할 것 하나. ‘인증샷’ 찍은 뒤 휴대전화를 잘 챙겨야 한다.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마루 틈으로 소지품이 빠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빠진 소지품은 ‘이번 생’에선 찾을 방도가 없다. 아주 먼 훗날 경회루를 중수할 때나 가능하다. 낙양각은 경회루의 백미로 꼽힌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독특한 문양을 새겨 바깥 풍경이 액자처럼 보이게 했다. 옛사람들은 한옥의 창을 단순히 창으로만 보지 않았다. 풍경을 담는 액자로 봤다. 이처럼 밖의 풍경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차경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경치를 빌린다는 뜻이다. 소유하지 않고 잠시 빌려서 즐길 뿐이다. 이 덕에 붓질 한 번 하지 않고도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수백 장의 풍경화를 내걸 수 있다. 낙양각은 네 방향 모두 절경을 품고 있다. 특히 남쪽 방향이 인상적이다. 근정전과 수정전 등의 전각들이 낙양각을 채운다. 수정전 옆은 잔디밭이다. 잔디밭은 ‘궁궐의 눈물’과 같은 것이다. 오래전 빼곡했던 궐내각사가 사라진 흔적이기 때문이다.●덕수궁 내 유일하게 단청 없는 건물 ‘석어당’ 덕수궁에선 석어당 개방이 봄 행사의 백미다. 석어당은 덕수궁 안에서 유일하게 단청이 칠해져 있지 않은 건물이다. 유일한 2층 목조건물이기도 하다. 원래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살던 집이었는데 임진왜란 뒤 선조가 15년을 지내면서 덕수궁의 모태가 됐다. 병에 걸린 선조를 위해 허준이 분주히 오가고, 선조가 승하하고, 대청마루에 앉은 인목대비가 뜨락에 광해군을 꿇린 채 호되게 꾸짖었던 곳이 바로 여기다. 석어당 2층에서 굽어보는 살구꽃 핀 풍경이 아름답다. 문을 열면 사방의 풍경이 쏟아져 들어온다. 곧바로 여성 참가자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고, 줄곧 무게만 잡던 중년 남성들의 입가에도 배시시 미소가 걸린다.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창덕궁 낙선재 특별 개방은 오는 28일까지 매주 목~토요일 오전 10시 30분에 진행된다. 창덕궁누리집(www.cdg.go.kr)에서 예약해야 한다. 다만 거의 모든 날짜가 매진이어서 아쉽다. 낙선재는 화계 위 공간만 진입이 제한된다. 후원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낙선재 구역의 화양연화가 이제 막 시작된 만큼 이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게 좋겠다. 인정전 내부 관람은 10월까지 매주 목~토요일 1일 4회( 오전 10시 30분, 11시, 오후 2시, 2시 30분) 운영된다. 당일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신청받는다. 1회 입장 인원은 30명이다. 우천 시엔 취소된다. 궐내각사는 상시 볼 수 있지만 특별 관람 기간엔 전문 해설사가 동행한다. 10월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2시에 운영된다. 역시 예약해야 한다. 덕수궁 석어당, 함녕전 개방은 5일까지다. 밖에서는 언제든 둘러볼 수 있다. 석어당과 ‘한 세트’인 살구꽃은 지난달 29일쯤 피기 시작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더니 벌써 절정을 지나 낙화하고 있다.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 내부 관람은 화·토요일 오전 9시와 오후 4시에 각각 진행된다. 덕수궁관리소 누리집(www.deoksugung.go.kr)에서 예약해야 한다. 현재 진품으로 전시 중인 일월오봉병은 이달 중 교체된다. 서둘러 봐 두는 게 좋겠다. 경회루(국보 224호) 특별 관람은 10월 말까지 주중 3회(오전 10시, 오후 2시, 4시), 주말 4회(오전 11시 추가) 진행된다. 소요 시간은 30~40분이다. 회당 최대 관람 인원은 70명(`내국인 60명, 외국인 10명)이다. 경복궁 누리집(www.royalpalace.go.kr)에서 예약제로 운영된다. 1인당 최대 4명까지 예약할 수 있다.
  • [역사 속 행정] 조선판 ‘靑비서실’ 승정원의 위계

    [역사 속 행정] 조선판 ‘靑비서실’ 승정원의 위계

    비서관 격 ‘6승지’ 품계는 같지만 최상위 도승지·최하위 동부승지 말 한마디도 서열 엄격하게 지켜오늘날 청와대 비서실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승정원은 국왕을 보좌하는 일을 했기에 늘 그의 지근거리에 청사를 뒀다. 조선 전기에는 경복궁 근정전 서남쪽 월화문 밖에 있었다. 조선 후기 경복궁이 복원되기 전까지 창덕궁이 정궁으로 쓰이자 승정원도 이곳에 있었다. 승정원에는 오늘날 청와대 비서실장 격인 도승지를 비롯해 좌승지·우승지·좌부승지·우부승지·동부승지를 뒀는데, 이를 ‘6승지’라고 불렀다. 이들은 모두 같은 품계인 정3품 당상관이었지만 도승지와 나머지 승지의 예우가 달랐고, 5승지 역시 위계질서에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19세기 전반에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승정원 업무지침서 ‘은대편고’에 따르면 도승지가 청사에 나와 앉아 있을 때 다른 승지들이 청사를 벗어나야 한다면 반드시 도승지에게 예를 행한 뒤 나가야 했다. 도승지 앞에서 다른 승지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부채를 부치지도 못했다. 휴가나 숙직 규정에도 차이가 있었다. 승정원 승지는 국왕의 시신(侍臣·임금을 바로 곁에서 모시는 신하)이므로 숙직은 필수적이었다. 도승지와 좌승지·우승지가 4일에 1번씩 숙직을 한 반면, 최하위인 동부승지는 3일 연속 숙직을 했다. 1477년(성종 8년) 7월 조씨 성을 가진 한 과부가 김주라는 사내와 결혼을 했다. 과부의 재산이 넘어갈 것을 우려한 그의 오빠와 매부가 김주를 강간 혐의로 허위신고했다가 무고죄로 처벌받을 상황에 놓였다. 왕과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동부승지 홍귀달 등이 “이들을 무고죄로 다스리는 것은 지나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자 동석했던 도승지 현석규가 갑자기 화를 내며 소매를 걷어올리고 눈을 크게 부릅떴다. 그는 “도승지가 있음에도 다른 승지가 위계를 넘어서 먼저 말을 하니 옳지 못하다”며 승정원 질서가 무너진 책임을 들어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왕 앞에서 지나치게 감정을 드러내 불경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왕의 이해로 이 일은 곧 유야무야됐다. 그럼에도 이는 당시 6승지들이 말 한마디조차도 차례에 따라 해야 할 정도로 엄격한 위계질서 아래에 놓여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승정원 소속 승지는 국왕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기에 손꼽히는 요직이었다. 뛰어난 관료들은 거의 모두 그 자리를 선망했다. 승지는 대개 명문가 출신으로 뛰어난 개인적 능력과 화려한 사회적 배경을 동시에 갖춘 이들이었다. 승지는 승정원 고유 업무 외에도 경연관이나 사초 작성 등에 참여했다. 국왕과 왕실에 관련된 핵심 임무를 맡았기에 승지들은 매우 중요한 위상을 갖고 있었다. 조선의 왕들이 승정원 승지를 6명으로 둔 것은 경국대전이 규정한 6전 체제에 상응하는 비서조직을 갖추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중국의 이상적 예법 질서를 담고 있다고 말해지는 ‘주례’의 6관 체계에서 기원하는데, 중국 대부분 왕조에서 6부(部) 체제로 정착돼 통용됐다. 우리의 경우 고려시대 때 6부 체제가 처음 등장했다. 조선의 국가 체계를 설계한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6전 체제를 선보였다. 통상 6승지는 분방(分房)이라 해 역할을 나눠 업무를 담당했는데, 오늘날 청와대 비서실과 행정부 간 유기적 기능과 같은 시스템이다.현재 대한민국 청와대 비서관들에게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만약 외교안보 담당 비서관이 교육문화 비서관을 겸하거나 서로 업무를 바꿔 맡는다면 당장 여론의 뭇매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승지들은 그것이 가능했다. 이는 조선의 정치 체제나 국정운영 방식에서 자칫 발생할 수도 있는 국정운영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로 여겨진다. ■한국행정연구원 ‘역사 속 행정이야기’ 요약 이근호 연구교수 (명지대)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이성계 때 고려 강역도 계승…‘철령~공험진’까지 엄연한 조선 땅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이성계 때 고려 강역도 계승…‘철령~공험진’까지 엄연한 조선 땅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살펴보니 세종 압록강~두만강 확장은 가짜 4군6진 설치 일부 신도시 세운 것 현 국정·검인정교과서 ‘기재 오류’국정·검인정을 막론하고 현행 국사 교과서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조작한 역사, 즉 ‘가짜 역사’를 추종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조선의 북방강역도 마찬가지다. 현행 교과서는 모두 세종 때 최윤덕과 김종서가 4군 6진을 개척해서 조선의 북방강역이 압록강~두만강까지 확장되었다고 쓰고 있다. 세종 전까지 조선의 국경선은 압록강~두만강까지도 아니었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권 때 만든 중학교 국정교과서는 “세종 때 최윤덕과 김종서에게 4군6진을 설치하게 하고 충청·전라·경상도의 주민을 이주시켜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영토를 개척하였다”라고 쓰고 있다. 현행 검인정교과서도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삼화출판사)는 “세종 때에는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을 확정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출판사만이 아니라 모든 검인정 교과서가 마찬가지다. 교과서 편찬 기준이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조선의 북방강역에 대한 1차 사료는 ‘조선왕조실록’이다. 실록은 조선의 북방강역에 대해 어떻게 서술하고 있을까. ‘태조실록’은 태조 4년(1395) 12월 14일자에서 “의주(義州)에서 여연(閭延)에 이르기까지의 연강(沿江) 천 리에 고을을 설치하고 수령을 두어서 압록강을 경계로 삼았다.…공주(孔州)에서 북쪽으로 갑산(甲山)에 이르기까지 읍(邑)을 설치하고 진(鎭)을 두어…두만강을 경계로 삼았다”라고 쓰고 있다. 태조 이성계 때 이미 압록강~두만강 연안에 읍과 진을 두어 다스렸다는 뜻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세종 때 압록강~두만강까지 국경을 확장했다는 현재의 교과서 내용에 대해 ‘가짜 역사’라고 수없이 말하고 있다. 세종 때 최윤덕이 개척한 4군의 끝이 여연(閭延)이고 김종서가 확장한 6진의 끝이 경원(鏡源)이다. 그러니 현행 교과서의 논리대로라면 최윤덕, 김종서의 북방 개척 이전까지 여연과 경원은 조선의 강역이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앞서 인용한 ‘태조실록’ 4년 12월조는 여연이 이미 태조 이성계 때 조선 강역이었다고 쓰고 있고 같은 ‘태조실록’ 재위 7년(1398) 2월 3일자도 ‘경원부는 부사(府使) 1명을 두고 영사(令史) 10명, 사령 20명 등을 둔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원은 태조 이성계 때부터 이미 부사를 파견해 다스리던 조선 강역이었다. ‘태조실록’ 7년(1398) 2월 16일자는 동북면도선무사 정도전이 경원부에 성을 쌓았다고 기록하는 등 태조 때 이미 조선 강역이라고 거듭 말하고 있다.●태종과 영락제의 국경조약 더 중요한 것은 조선의 북방 경계가 압록강~두만강도 아니라는 점이다. 태조 이성계는 재위 1년(1392) 7월 28일 즉위 조서에서 “국호는 그전대로 고려라 하고 의장(儀章)과 법제(法制)는 한결같이 고려의 고사(故事)에 의거한다”고 말했다. 고려의 의장과 법제를 계승했다는 말은 고려의 강역도 계승했다는 뜻이다. 태조 이성계를 비롯해서 정종·태종·세종 등은 모두 고려의 북방 강역이 현재의 요령(遼寧)성 심양(瀋陽) 남쪽 철령(鐵嶺)과 흑룡강(黑龍江)성 목단강(牧丹江)시 남쪽 공험진까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특히 태종은 이 국경선을 명나라 영락제로부터 다시 확인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종은 재위 4년(1404) 5월 19일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김첨(金瞻)과 왕가인(王可仁)을 명나라 수도 남경에 보내 두 나라 사이의 공식적인 국경선 획정을 다시 요구했다. “밝게 살피건대(照得), 본국의 동북 지방은 공험진부터 공주(孔州)·길주(吉州)·단주(端州)·영주(英州)·웅주(雄州)·함주(咸州) 등의 주(州)인데, 모두 본국의 땅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태종은 명나라 영락제에게 공험진 남쪽 땅에 대해서 설명했다. 고려 고종 45년(1258) 12월 고려의 반역자 조휘와 탁청 등이 압록강 북쪽~두만강 북쪽 땅을 들어 원나라에 항복하자 원나라에서 그곳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했지만 공민왕이 재위 5년(1356) “공험진 이남을 본국(本國·고려)에 다시 소속시키고 관리를 정하여 다스렸다”는 것이다. 이후 명나라가 심양 남쪽 지금의 진상둔진(陳相屯鎭)에 철령위를 설치하려 하자 고려 우왕이 재위 14년(1388) 밀직제학 박의중(朴宜中)을 명 태조 주원장에게 보내 “공험진 이북은 요동에 다시 속하게 하고 공험진부터 철령까지는 본국(고려)에 다시 속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명 태조 주원장이 “철령 때문에 왕국(고려)에서 말이 있다”면서 철령~공험진까지를 그대로 고려 강역으로 인정했다는 설명이었다. 태종은 김첨에게 압록강 북쪽 철령과 두만강 북쪽 공험진이 본국(本國·고려 및 조선) 강역이라는 시말을 자세히 적은 국서와 지도까지 첨부해서 영락제에게 보냈다. ●여진족들의 귀속권 문제는 압록강 북쪽~두만강 북쪽에 사는 여진족들의 귀속 문제였다. 여진족들이 세운 금(金)나라가 원나라에 붕괴된 이후 국가가 없었으므로 명나라에서 여진족들도 사는 이 지역을 자국령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이 지역에는 삼산(參散) 천호(千戶) 이역리불화(李亦里不花) 등 여진족 10처 인원(十處人員)이 살고 있었다. 처(處)란 여진족들로 구성된 집단 거주지역을 뜻한다. 이역리불화는 이화영(李和英)이란 조선 이름도 갖고 있었는데 조선 개국 1등 공신이자 이성계의 의형제였던 이지란(李之蘭)의 아들이었다. 태종은 이 여진족들은 조선에서 벼슬도 하고 부역도 바치는 조선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삼산 천호 이역리불화 등 10처 인원은 비록 여진 인민의 핏줄이지만 본국 땅에 와서 산 연대가 오래고…또 본국 인민과 서로 혼인하여 자손을 낳아서 부역(賦役)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그곳에 살고 있는 여진의 남은 인민들을 전처럼 본국(本國·조선)에서 관할하게 하시면 일국이 크게 다행입니다.” 국서와 지도를 가지고 명나라에 갔던 김첨이 돌아온 것은 다섯 달 정도 후인 태종 4년(1404) 10월 1일이었다. 김첨은 영락제의 칙서를 받아 돌아왔다. “상주(上奏)하여 말한 삼산 천호 이역리불화 등 10처 인원을 살펴보고 청하는 것을 윤허한다. 그래서 칙유한다.” 삼산 천호 이역리불화 등 10처 인원이 사는 요동땅이 조선 강역임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로써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선도 철령과 공험진이라는 사실이 영락제에 의해 재차 확인되었다. 태종은 조선과 명의 국경선이 심양 남쪽 철령부터 두만강 북쪽 공험진까지로 확정된 사실을 크게 기뻐하고 계품사 김첨에게 전지(田地) 15결을 하사했다. 세종도 마찬가지였다. 세종은 재위 8년(1426) 4월 근정전에서 회시(會試)에 응시하는 유생들에게 내린 책문(策問·논술형 과거)에서 “공험진 이남은 나라의 강역이니 마땅히 군민을 두어서 강역을 지켜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 서술하라고 명령했다. 세종 때에야 조선의 국경선이 압록강~두만강까지 확장되었다는 현행 국정·검인정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이라면 100% 낙방했을 것이다. ‘세종실록’ 21년(1439) 3월 6일자에 명 태조 주원장이 “공험진 이남 철령까지는 본국(조선)에 소속된다”고 했다고 기록한 것처럼 조선의 국경은 압록강 북쪽 철령부터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까지였다. 최윤덕, 김종서 등은 조선 강역 내에 일부 신도시를 세운 것이지 강역을 확장한 것이 아니다. 아직도 이케우치 히로시가 조작한 고려, 조선의 북방강역을 교과서로 가르치는 나라, 역사학자가 아니라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도 크게 부끄러워하고 분노해야 할 일이다. 국사편찬위원회와 교육부 등 당국자들의 책임은 말할 것도 없다.
  • 강변길 옆 소확행

    강변길 옆 소확행

    촉촉한 봄바람이 귀밑머리를 날릴 때면, 우리는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집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경기 양평의 강변길은 수도권에 사는 이들이 가장 빠르게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지요. 아담하고 예쁜 갤러리와 박물관 등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강을 따라 문화의 향기를 솔솔 피우는 갤러리들을 찾아가는 여행은 어떨까요. 요즘 소소한 행복이 화두라지요. 거창한 갤러리는 아니지만 소소한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캐보는 것도 남다른 즐거움일 듯합니다.양평에서 남한강 너머에 있는 강하면 쪽으로 먼저 간다. 이름을 날리는 갤러리가 밀집돼 있다고 해서다. 이 가운데 기흥성 뮤지엄은 예술의 경지에 이른 축소 모형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설립자 기흥성 관장이 50여년간 제작한 모형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기흥성 뮤지엄은 매우 독특하다. 지하에서 우연히 보물 창고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랄까. 난데없는 눈의 호사에 횡재를 했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기흥성 뮤지엄은 한국 전통의 고건축과 근대 건축물의 모형이 전시된 지하 1층 주전시실과 세계 유명 건물 등의 모형이 전시된 2층 기획전시실 등으로 이뤄졌다. 1층은 레스토랑이다. 지하 1층의 문을 열면 황룡사 9층 목탑이 객을 맞는다. 우리나라에 단 한 점 있다는 고증 모형이다. 4m가 넘는 모형의 규모도 대단하지만 우아한 자태가 무엇보다 압도적이다. 긴가민가하던 눈이 미륵사지 9층 목탑 등 이어서 전시된 모형들을 둘러보고 나면 막사발만큼 커진다. 역사학자들의 고증을 토대로 제작됐다는 모형들은 그야말로 디테일이 ‘문화재급’이다. 어찌나 정교한지 그래픽을 보는 듯하다.경복궁 모형도 인상적이다. ‘어마어마한’ 규모가 특히 그렇다. 근정전, 교태전, 경회루 등 몇몇 이름난 건물 외에도 수많은 전각들이 궁궐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박물관 큐레이터는 “경복궁 규모가 자그마치 중국 자금성의 5분의3에 달했다”고 했다. 동방의 작은 나라 궁궐이 대륙의 강대국 궁궐에 견줘 조금도 뒤지지 않았던 거다. 현재 남은 경복궁의 몇몇 건물만 보고 자금성과 규모를 비교했던 행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기흥성 뮤지엄 바로 옆은 강하예술공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름만 예술공원일 뿐 다수의 설치미술 작품들이 방치돼 있다. 겨우 목재 덱을 활용해 산책이나 즐기는 정도다. 강변을 끼고 있는데다 주변 풍경도 수려해 관리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꽤 많은 이들이 ‘즐겨찾기’할 듯하다.정크아트 작품들도 종종 눈에 띈다. 특히 강상·강하면의 강변도로 주변에 유난히 많다. 길가에 내놓은 단순 철제 구조물조차 설치미술 작품으로 오인할 지경이다. 마나스아트센터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독특한 조각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실외의 쇼나조각 공원과 실내의 마콘데조각 전시장으로 이뤄져 있다. 쇼나는 짐바브웨 인구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부족의 이름이다. 대를 이어 돌조각 기법을 전승하고 있다. 이들 부족이 만든 돌조각을 쇼나조각이라 부른다. 마콘데는 나무로 만든 조각 작품이다. 모잠비크의 마콘데족이 흑단 등의 목재를 이용해 만든 것을 일컫는다. 둘 모두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조각 작품이다. 현장에서 소품 등의 작품 판매도 이뤄진다. 서종면 쪽으로 넘어오면 구하우스가 볼 만하다. 건물 자체가 콘셉트인 곳이다. 독특한 외관의 건물도 인상적이지만 전시 작품들은 한술 더 뜬다. 구하우스는 ‘열린’ 수집가의 집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매매와 동시에 개인의 집 안으로 자취를 감추는 것과 달리 예술 작품에 갈증이 난 이들을 위해 집의 문을 활짝 열었다. 물론 입장료는 받는다. 1만 5000원이니 그리 적은 금액은 아니다. 한데 둘러보고 나면 ‘본전 생각’은 들지 않는다.건물은 ‘ㄷ’ 자 형태다. 2층 건물로 외벽에 창이 별로 없어 실제 규모보다 작게 느껴지지만 안으로 들면 생각이 확 바뀐다. 대체 이 많은 작품들이 어떻게 자리를 잡았을까 의아할 정도다. 영화 ‘해리 포터’의 마법 텐트처럼 공간이 끊임없이 확장되는 듯하다. 전시 콘셉트는 ‘리빙 위드 아트’다. ‘집 속 미술관’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 거실, 침실은 물론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집 구석구석으로 미술을 끌어들였다. 침실에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가구 디자이너라는 장 프루베의 침대가 놓이고 벽면을 따라 앤디 워홀과 ‘포스트모던 키치의 왕’이라는 제프 쿤스 등의 팝아트 작품이 걸려 있다. 너른 거실 천장에는 프랑스 작가 자비에 베이앙의 설치 미술 작품 ‘모빌’이 매달렸다. 관람객 누구나 ‘스티브 잡스 의자’로 유명한 조지 나카시마의 벤치에 앉아 내 집처럼 편안하게 책을 들춰 볼 수도 있다.각각의 전시물도 인상적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사진작가 어윈 올라프의 ‘더 키홀’(열쇠 구멍)은 꼭 들여다 보는 게 좋겠다. 타인의 사생활을 궁금해하는 현대인의 관음증을 은근히 꼬집는 작품이다. 이어폰을 끼고 열쇠 구멍에 눈을 대면 야릇한 영상물이 상영된다. 등장인물들의 숨소리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귀에 좀더 신경을 집중하면 열쇠 구멍 너머를 살피는 이, 그러니까 ‘나’의 거친 숨결도 나지막하게 들린다. 스릴러 영화에서 흔히 쓰이는 범인의 숨소리처럼 욕망을 잔뜩 감춘 소리다.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면 따뜻한 차 한 잔이 기다린다. 관람객 모두에게 무료로 제공된다.잔아문학박물관은 문학과 테라코타(점토를 구워 만든 조각)가 어우러진 곳이다. 책을 만지기만 해도 절반은 읽은 것이란 게 설립 모토다. 현재 활동을 하고 있는 문인들과 세상을 뜬 유명 문인들의 테라코타, 오래된 책 등이 전시돼 있다. 작은 왕자 등의 이벤트 공간도 마련됐다. 인증샷 찍기 딱 좋다. 대지는 넓어도 박물관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책이 사람들 곁에서 멀어져 가는 시대인데다 커피숍 등 크고 화려한 건물 틈바구니에 끼어 더욱 왜소해 보인다. 봄이 되면 스토리북 만들기, 생활 공예 강연 등의 이벤트도 열린다. 서종타워 카페는 전망이 좋다. 말 그대로 서종면사무소 뒤에 타워처럼 불쑥 솟은 건물이 인상적이다. 갤러리는 지하 1층에 소규모로 마련됐다. 수능리 쪽엔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 마을이 있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모티브로 조성됐다. 3층 규모의 황순원 문학관과 소설 속 소년, 소녀의 오후 한때를 재현한 수숫단 오솔길 등의 체험 공간으로 구성됐다. 수능리에선 운 좋게 달집태우기 장면과 마주할 수 있었다. 정월대보름에 열리는 행사다. 문화를 좇다 보면 이렇게 보기 힘든 풍경이 운 좋게 얻어걸리는 법이다. 올해 달집태우기 행사는 지나갔지만 메모해 뒀다가 내년에 꼭 찾길 권한다. 매달 셋째 주말, 문호리 강변에선 리버 마켓이 열린다. 일종의 벼룩시장이다. 유기농 재료를 활용한 음식, 옷, 수공예품 등 다양한 상품들을 판다. 매장에 나온 물품의 종류엔 제한이 없지만 ‘반드시 손으로 만든 것’이라야 한다. 가래떡에 조청을 얹은 ‘가래떡 콘’ 하나 사들고 설렁설렁 장 구경하기 딱 좋다. 글 사진 양평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31) →가는 길:기흥성 뮤지엄은 매주 화요일 휴관이다. 현재 무료 입장이지만 추후 유료로 전환될 예정이다. 그전까지 부지런히 가서 봐 두길 권한다. 강상·강하면 일대의 갤러리들 가운데 한시적으로 문을 닫은 곳들이 꽤 많다. 닥터박 갤러리, 갤러리 와, 갤러리 서종 등은 수리 중이거나 휴관 중이다. 마나스아트센터는 병산리에 있다. 무료로 야외, 실내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맛집:문호리 리버 마켓에서 ‘가래떡 콘’ 등의 주전부리와 유기농 재료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옥천면옥(772-9693)은 평양식 냉면집이다. 굵고 쫀득한 면발이 맛있다. 국수리 국수집(772-2433)은 된장 칼국수로 이름난 집이다. 양수추어탕(773-5995)은 진한 남도식 추어탕을 내는 집이다. 두물머리밥상(774-6022)은 유기농 음식점이다. 세미원에 인접해 늘 사람들로 붐빈다.
  • 전라도 일제강점기 지적원도 오늘부터 공개

    일제강점기에 생산된 전라도 지역 지적원도 422만건이 공개된다. 이로써 당시 만들어진 남한 지역 전체 지적원도에 대한 원문이 제공된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국민이 많이 찾는 기록물인 지적원도를 포함해 공개기록물 약 447만여건을 26일부터 국가기록원 홈페이지(www.archives.go.kr)에 공개한다. 전라권 지적원도를 비롯해 분배농지상환대장, 국무회의록, 문화재 건축도면 등도 같이 공개된다. 지적원도는 1910년대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것으로 마을마다 토지의 지번·지목·소유자명을 기록하고 있다. 토지대장 분실로 토지소유권을 증빙하기 어려웠던 지역에선 소유권을 증빙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전라도의 지적원도가 공개되면서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남한 지역 전체 지적원도 1470만건에 대한 원문 제공이 가능해졌다. 2014년도에 서울·경기(약 194만건) 지역 원문을 공개한 데 이어 2015년 강원·충청(약 341만건), 2016년 경상(511만건) 등을 제공해왔다. 1970~2000년대 생산된 문화재 관련 도면류 기록물 8071건도 함께 공개된다. 왕릉·궁궐·사찰·서원 등 문화재 복원·보수와 관련된 자료다. 경복궁 근정전의 종단면을 상세히 그려놓은 도면이 눈에 띈다. 주택임대차시행령개정안 등 1949~2000년대까지 외교·산업 등 주요 정책과 관련한 국무회의록 2만 7936건도 제공된다. 1948~1980년대까지 만들어진 분배농지상환대장이나 1980년대 정부행사 등의 모습을 담은 시청각 기록물도 있다. 국가기록원은 디지털화된 공개기록물을 내년에 100만건 정도 추가 제공해 총 2021만건의 기록에 대한 원문 공개 서비스를 운영할 방침이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사드 이후 유커 첫 단체관광

    사드 이후 유커 첫 단체관광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3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파빙한국 수발단’(한국 단체 관광을 처음으로 다시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앞서 중국은 지난달 28일 자국의 일부 지역에 한해 한국행 단체 관광을 허용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경복궁에서 골든벨을…

    경복궁에서 골든벨을…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열린 ‘2017 궁중 골든벨’ 행사에 참가한 고등학생들이 조선시대 유생들이 쓰던 유건과 도포를 착용하고 역사·문화유산 퀴즈를 풀고 있다. 앞쪽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가 강풍에 넘어지면서 행사가 15분가량 중단되기도 했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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