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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논쟁] 이석기 의원 제명

    [이슈&논쟁] 이석기 의원 제명

    여야가 내란 음모 혐의로 구속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제명안 처리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석기 의원의 제명을 확정판결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라면서 제명안을 즉각 처리하자고 주장한다. 나아가 진보당에 대해서도 스스로 해산하지 않으면 국회 차원에서 해산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이 의원의 발언과 인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법원의 판결이나 적어도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뒤에 검토하고 논의하자고 반박하고 있다. 정당 해산도 검찰의 기소 등 최소한의 사실이 있어야지 지금 드러난 것만으로 정당 해산을 말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정당의 자유, 사상·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贊]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 “대한민국의 적 감쌀 이유 없어…문제 근원인 진보당도 해산을”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수사하고 있으니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 된다. 특히 정치권에서 너무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재판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려면 아무리 빨라도 1년이 더 걸린다. 그러는 동안 이석기(필자는 전부터 그를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존칭을 생략한다)는 의원직을 유지하게 된다. 세비를 받는 것은 물론 보좌진을 통해 정부에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석기는 그러지 않아도 미사일 배치 현황,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현황 등 중요한 군사현황 자료를 요청해 왔다. 그래서 국회에 제명 요구안을 제출했다. 종전에 제출했던 것은 자격심사안으로서 국회의원이 될 때 부정 경선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은 것이 문제였다. 이번에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인 것이 문제다. 이석기의 종북 행태에 대해서는 온 국민이 일찌감치 분노했다.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라고 했다. 기자들과 만나면 ‘보도일꾼’(기자의 북한식 표현), 인터뷰를 하면서도 ‘입말’(구어체의 북한식 표현), 그 밖에도 위원장 동지, 사업작풍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본 의원은 이런 사태를 진즉에 예견하고 국회에서 그를 대한민국의 적으로 규정해 즉시 제명 처리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그를 포함한 종북 성향의 의원들이 더 이상 대한민국에 적대행위를 하지 말고 그들의 조국 북한으로 떠나라고 일갈했던 것이다.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북한은 애국, 대한민국은 반역 집단이라고 하더니 북한의 총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한순간에 폭동할 것을 지시했다. 사제폭탄 제조법을 연구하고 유류저장소, 전화국 공격 계획을 수립했다. 국회의원이 되면 국민 앞에 선서를 하는데 그 선서문이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라고 돼 있다. 그런데 이석기는 대한민국 헌법을 공격하여 조국의 ‘적화 통일’을 위해 노력해 온 것이다. 혹자는 이석기가 제명되더라도 더 심한 원조 종북 인물이 의원직을 이어받게 되니 굳이 힘들게 이석기를 제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나? 범죄자가 자꾸 생겨난다고 앞서 잡은 범죄자를 처벌하지 말고 그냥 풀어 줘야 하나? 드러나면 드러나는 대로 처벌하고 제명하고, 법대로 원칙대로 하면 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문제의 근원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해야 한다. 정부에서도 통진당에 대한 해산 법리 검토에 착수했다고 한다. 통진당은 수많은 간첩사건에 연루돼 있고 간첩죄로 형을 살고 나온 사람을 등용하는 정당이다. 통진당 비례대표 후보 20명 중 11명이 국가보안법 혹은 시국사건 전과자다. 통진당은 강령에서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한·미 동맹 해체를 주장하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민중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이 정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포함될 수 없는 정당이다. 민주당은 이런 정당과 지난 총선에서 이기고 보자는 식으로 ‘묻지마 야권 연대’를 했다. 종북세력이 국회를 ‘혁명 교두보화’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이제 결자해지할 때다. 만약 이번 제명안에 반대한다거나 시간끌기 전략으로 일관한다면 국민들은 분노할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 앞에 종북과 결별할 것을 선언하고 제명안에 대해서도 적극 협조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절대 ‘도마뱀 꼬리 자르기’ 식으로 마무리돼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적이 국회의원이고 정당이란 이유로 제명, 해산시킬 수 없다면, 대한민국은 자유의 적에게 반역의 자유를 주는 셈이다. 반역 세력을 처단하지 못하는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 [反] 문병호 민주당 의원 “내란음모·여적죄 입증 아직 안돼…1심 판결 본 뒤 결정해도 안 늦어” 지난 6일 새누리당이 통합민주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제출했다. 제명안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는 이 의원이 “애국가 부르기를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다”라고 말하는 등 일반 상식으로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에 면죄부를 주는 논리인데, 이 의원이 과거에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송두율 선생의 내재적 접근론에 공감하는 편이다”라고 발언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그동안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의 내용이 서술돼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논란의 여지는 되겠지만 현역 국회의원을 제명해야 하는 충분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결국 녹취록이 핵심인데, 이 녹취록만으로는 국가정보원이 제기한 내란 음모죄와 여적죄의 혐의를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따라서 국정원의 수사 결과 발표와 검찰의 기소를 통해 사건의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난 뒤에 객관적인 증거와 사실관계를 토대로 국회가 제명안을 검토해도 늦지 않다.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인 만큼 입법부도 법적인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과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새누리당은 ‘강용석 사건’을 들며 1심 판결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관계를 호도한 것이다. 강 전 의원에 대한 1심 판결은 2011년 5월 25일 이루어졌고, 국회도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난 것을 확인한 뒤인 5월 30일 윤리위원회에서 제명안을 통과시켰다. 새누리당이 요구하듯이 강용석 사건처럼 처리하자면 최소한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새누리당은 ‘내란 음모의 혐의를 받은 것 자체가 국민의 대표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새누리당엔 그런 주장을 하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2·12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에 의해 ‘북한의 사주를 받아 내란 음모를 계획했다는 혐의’로 사형 선고까지 받았지만 독재정권 몰락 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재판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새누리당은 신군부가 창당한 민주정의당을 한 뿌리로 하는 만큼 이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법은 실체적 진실뿐만 아니라 절차의 정당성도 중요시한다.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된 증거에는 증거 능력을 부여하지 않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과거 중앙정보부나 안기부가 대대적으로 수사했던 많은 간첩단 사건 대부분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국정원도 대대적인 수사와 광범위한 압수수색 그리고 떠들썩한 언론 보도로 종북 몰이를 확대해 왔지만, 대부분 재판 과정에서 혐의가 축소되거나 무죄가 선고됐다. 2008년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시기에 국정원이 대대적으로 들고나왔던 부녀간첩단 사건도 녹취록을 수사기관이 조작했다는 사실을 재판부가 밝혀내면서 아버지에게 무죄가 선고됐고, 최근에는 탈북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에게 씌워졌던 간첩 혐의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 의원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국회도 신속하게 제명안을 처리하고, 법적인 처벌도 엄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혐의가 입증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제명안을 처리하자는 것은 과도한 대응이다. 국회의원 제명 동의안의 가결 기준을 헌법 개정과 동일하게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한 이유는 그만큼 제명안 처리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을 만드는 입법부의 위상에 맞게 이번 제명안 처리도 사법 처리 과정과 행보를 맞추면서 진행돼야 한다.
  • [열린세상] 관치 금융 청산, 제재권 남용 방지에서 찾아야/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관치 금융 청산, 제재권 남용 방지에서 찾아야/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나라 금융 산업의 후진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말이 ‘관치(官治) 금융’이다. 정부와 금융감독 당국의 영향력이 큰 금융 산업을 말한다. 과거 정부가 경제 개발을 주도하면서 금융 산업 분야에도 나타난 현상이다. 다른 분야에서는 관(官)의 영향력이 많이 사라졌으나 금융산업 분야에서는 아직도 관치금융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강한 규제 산업이다 보니 더욱 그러하다. 이제는 관치를 넘어 ‘정치(政治) 금융’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주요 금융기관장 선임에 있어서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이 많이 작용하고 있다. ‘낙하산 인사’가 대표적이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주요 금융지주회사 회장에 정부 관료 출신이 선임되면서 관치 금융 논란이 다시 일어났다.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는 은행 등 주요 금융기관의 상임 감사위원 자리에는 금융감독 당국 출신이 차지하였다. 이제는 감사원 출신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요 금융지주회사 회장 자리에 ‘코드 인사’가 이루어지면서 한동안 잠잠하던 관치금융 논란이 다시 일어난 적이 있다. 전문가를 선임해야 할 민간 금융기관의 인사가 관치와 정치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금융감독 당국 고위 임원의 BS금융지주회장에 대한 사퇴 압력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관치금융이 작동되는 근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정부와 금융감독 당국이 갖고 있는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권한에 있다. 구체적으로는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권과 제재권이다. 이것은 마치 검찰 권력이 수사권과 기소권에서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검사권과 제재권은 남용되지 못하도록 적절하게 통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행 법체계는 이러한 남용 가능성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미흡하다. 대표적으로 금융기관과 그 임직원에 대한 제재 사유를 들 수 있다. 금융위원회가 제정한 감독규정(規程)인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에는 제재 사유의 하나로서 ‘부당·불건전한 영업 행위나 업무 처리를 한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 어떤 업무 처리가 부당·불건전한 행위에 해당하는지가 애매하다. 감독당국이 부당·불건전하다고 판단하면 금융기관이 방어하기가 쉽지 않다. 명백히 법령에 위반한 행위를 한 경우에 제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이런 추상적인 규정을 이용해서 감독당국이 제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감독을 받는 금융기관으로서는 이것을 무시할 수 없다. 이렇다 보니 금융기관으로서는 감독당국의 보이지 않는 ‘압력’을 무시하지 못한다. 바로 관치금융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제재 절차에 관한 사항은 법이 아닌 감독규정에 마련되어 있다. 감독당국이 스스로 만든 내부 감독규정에 넣어 놓았으니 가능하면 제재 절차를 감독당국에 유리하게 만들어 놓을 것은 당연하다. 현행 제재 절차는 제재 대상자에게 충분한 방어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시비를 가릴 수 있는 청문 절차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의 신청도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제재 처분을 한 감독당국에 이의 신청을 하니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금융감독 당국의 제재권 남용을 막지 못하고 있는 현행 법체계를 고칠 필요가 있다.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국회의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제재 사유를 명확하게 하고 제재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감독당국의 감독권 행사에 있어서 재량권 남용을 막을 수 있다. 관치 금융을 막을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지난 8월 민주당 민병두 의원실이 주최한 관치 금융 방지 토론회가 있었다. 바로 제재권 남용을 관치 금융의 근원으로 파악하고 검사 및 제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타당하다. 금융감독 당국의 제재권 남용에 대한 통제가 관치 금융을 청산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법률이 시급히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관치금융 청산 없이는 금융산업의 선진화는 요원한 일이다.
  • 가을이 온다, 깊고 풍성한 연극과 함께

    가을이 온다, 깊고 풍성한 연극과 함께

    가을의 문턱에서 연극 무대가 어느 때보다 풍성해졌다. 역사와 사회, 인간의 내면을 치열하게 파고드는 작품들이 쏟아지고 세계적인 작품들을 새롭게 무대에 올리는 시도가 뜨겁다. 더러는 지극히 사실적으로, 더러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인간과 사회를 무대 위에 재현한다. 9월 첫째 주부터 현대사를 조명한 작품 3편이 연이어 무대에 오른다. 6~1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말들의 무덤’은 한국전쟁 중 일어난 양민 학살 사건을 목격자의 ‘말’로 되살려낸다. 배우 13명이 양민 학살 목격자들의 인터뷰와 녹취록을 재현하며 전쟁 중 사라져 간 이들의 영혼과 학살을 목격한 이들의 기억을 무대 위로 불러낸다. 이에 앞서 3~15일 용산구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되는 ‘알리바이 연대기’는 아버지와 두 아들의 일대기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들여다보며 개인의 삶이 정치와 무관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거창 주민 학살 사건을 전면으로 내세워 100페스티벌2013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이 땅은 니캉 내캉’은 앵콜 공연으로 3~29일 중구 세실극장에서 공연된다. 사회와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작품들도 눈에 띈다. 3~22일 중구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되는 ‘천개의 눈’은 영웅 서사, 미궁 신화 등 동서양의 신화와 설화를 바탕으로 인간이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질투와 수치, 진실과 거짓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객들은 ‘천개의 눈’이 돼 인물들의 수치와 치욕의 역사를 지켜본다. 3~22일 대학로 예술공간SM에서 공연되는 ‘어른의 시간’은 일본의 극작가 가네시다 다쓰오의 희곡으로 학교 폭력 피해자와 가해자, 교사의 20년 뒤에도 계속되는 상처를 사실적으로 그린다. 서울대연극동문회 부설 극단 관악극회는 5~14일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의 ‘시련’을 공연한다. 17세기 말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있었던 마녀사냥을 모티브로 거짓 편견에 사로잡힌 집단적 광기, 신념과 생존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또 세계적인 희곡의 한국 초연 무대도 기대를 부른다. 7일부터 두 달간 대학로 해피시어터 무대에 오르는 ‘퍼즐’은 스릴러 영화 ‘아이덴티티’의 작가 마이클 쿠니의 ‘포인트 오브 데스’가 원작으로, 사고 후 기억을 잃은 남자가 기억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벌어지는 사건이 긴장감을 선사한다. 4~15일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공연되는 ‘엄마가 절대 하지 말랬어’는 영국 극작가 샬럿 키틀리의 작품이다.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딸 등 4세대의 여성을 복합적인 시점으로 바라보며 여성의 삶과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3년 만에 재공연되는 세계적인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9월 13일~10월 13일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광부화가들’은 평범한 광부들이 그림을 배우면서 화가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다. ‘빌리 엘리어트’의 작가 리 홀의 희곡으로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묻는다. 12월 1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시어터 무대에 오르는 ‘클로저’는 네 남녀의 아슬아슬한 사랑과 그 속의 집착과 탐욕, 소통과 진실을 가감 없이 그린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2부] 삼성전자·LG전자·GS홈쇼핑 등 ‘형제의 나라’서 사업 활발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2부] 삼성전자·LG전자·GS홈쇼핑 등 ‘형제의 나라’서 사업 활발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터키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터키의 근원이 튀르크족, 즉 고구려 북방 유목민이던 돌궐족과 이어진다는 인류학적 근거 외에 터키가 6·25 전쟁 당시 참전국으로 한반도에서 피를 흘렸다는 데 대한 고마움이 담긴 표현이다. 반면 터키에서는 다른 것보다 오히려 ‘2002 한·일 월드컵’ 3, 4위전 때 있었던 응원전의 감동으로 한국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12~16일 이스탄불에서 만난 터키인들도 대부분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꺼냈다. 그러나 긍정적인 국가 이미지와는 별개로 10여년 전까지도 국내 기업의 터키 진출은 활발하지 못했다. 불안한 정치·경제 상황 탓에 기업 활동의 제약이 컸기 때문이다. 터키는 1970년부터 2003년까지 소비자물가가 연평균 50%씩 상승하는 지독한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이에 2005년 화폐 가치를 100만분의1로 절하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해 올해까지는 대부분 한 자릿수 물가상승률로 선방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터키 진출은 최근 부쩍 늘었다. 경제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이른바 브릭스(BRICs)를 잇는 이머징 마켓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터키는 인구 8000만명에 육박한 시장으로서는 물론 유럽, 중동 진출의 교두보로서의 매력도 크다. 재터키한국기업협회에 따르면 5월 기준 협회에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를 포함해 총 72개 업체가 가입해 있다. 여기에는 SK건설, 삼성전자, LG전자 등 건설·제조업체뿐 아니라 GS홈쇼핑, CJ오쇼핑 등 유통업체도 포함돼 있다. 또 지난 5월 한·터키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돼 국내 기업들의 터키 진출은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재터키한국기업협회장인 도중섭 SK터키 지사장은 “터키는 인구 구조, 위치, 천연자원에 강점이 있는 데다 근래에는 성장에 대한 국민들의 의지까지 강하다”고 평했다. 다만 그는 “과다한 에너지 수입으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가 크고 최근 국내 정치 상황이 시끄러워진 점은 감안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스탄불(터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도봉구, 층간소음 제로도전…‘30세대이하’ 기준 첫 마련

    층간소음이 이웃 사이를 파괴하며 사회를 좀먹고 있다. 주택법에 따른 사업계획승인 대상인 아파트 등 대규모 공동주택은 2005년 층간소음 개선을 위한 제도적 기준이 부족하나마 마련됐다. 하지만 건축허가 대상인 30가구 이하 중·소규모 공동주택은 관련 기준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층간소음 문제에서 이웃 간 배려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사각지대인 것이다. 도봉구가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중·소규모 공동주택 층간 소음 제로화에 도전한다. 구는 중·소규모 공동주택에 대한 층간소음 개선 기준을 세워 건축 심의 및 건축 허가 단계부터 적용하고 있다고 26일 밝혔다. 건축물 용도 및 규모에 따라 합리적으로 바닥판을 설계하고 시공 기준을 수립했는지 확인한다는 것이다. 구가 도입한 기준에 따르면 20~30가구 사이 연립주택이나 다세대주택 등은 국토교통부 기준 표준바닥구조 공법으로 시공해야 한다. 또 층간 바닥충격음 권장기준 적합 여부를 인증 기관에서 의무적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20가구 미만인 다세대주택 등은 이 같은 기준을 적용하도록 권장받는다. 구는 오피스텔의 경우 30호실 이상은 의무 적용토록 하고, 20호실 이상은 권장 적용키로 했다. 이동진 구청장은 “층간소음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해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하고, 이웃 간 분쟁을 줄여 더불어 사는 공동체 문화 조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의료 현실 파헤친 ‘개념 의료’ 저자 박재영

    [저자와의 차 한잔] 의료 현실 파헤친 ‘개념 의료’ 저자 박재영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4대 중증 질환 100% 보장’은 이행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환상적인 얘기일까? 또 온 국민이 낸 보험료로 조성된 건강보험 재정을 암, 심장·뇌혈관·희귀 난치성 질환 등 4대 특정 질병에 걸린 환자들에게만 치우쳐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배분일까? 4대 질환 외에도 큰돈 드는 질병이 많은데? 의사 출신으로 건강 및 의료 전문 주간신문 ‘청년의사’의 편집주간이자 작가인 박재영(43)씨가 쓴 ‘개념 의료’(청년의사 펴냄)는 이런 문제를 포함해 한국 의료의 현실을 심도 있게 파헤친 책이다. “10여년 전 의약분업을 실시하면서 소위 ‘의료 대란’이 일어났을 때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됐는지 갈등을 일으키는 근원을 충분히 이해한 뒤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우리 의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면 문제 해결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입니다.” 저자는 “의료 대란이 남긴 후유증으로 의사와 정부는 상대방을 믿지 않고 국민들은 의사도, 정부도 믿지 않는다”면서 “보건의료 정책을 입안하거나 집행하는 공직자들, 의사나 관련 학자들, 보건의료를 담당하는 언론인이나 법조인들, 보건의료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 읽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들이 보건의료 분야의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된다면 미래의 대한민국이 더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비용 대비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하는 나라로 꼽힌다. 평균수명은 길면서 의료비 지출이 적다. 국민 1인당 연간 의료비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3233달러(약 363만원)인 데 비해 한국은 1879달러(약 211만원)로 OECD 평균의 58%에 불과하다. “의료비를 적게 쓰는데도 국민 1인당 연간 진료 횟수는 13회로 세계 두 번째입니다. 또 특정 의사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전문의의 진료를 거의 ‘즉시’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취약점이 없겠는가? 그가 꼽는 대표적인 약점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다는 것이다. “우리는 의료비 총액의 42%를 환자가 부담합니다. OECD 평균치는 28%죠. 또 중증 질환보다 경증 질환에 대한 보장에 더 치중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가령 감기 치료에 1만원, 백혈병 치료에 1억원이 든다고 칠 때 감기 환자는 4200원을, 백혈병 환자는 4200만원을 부담하게 하면 과연 공평한 것일까요?” “의료 민영화가 나쁜 것이라고 단정하면 보건의료 분야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아보려는 시도는 진전될 수 없습니다. 의료보험이 민영화되면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현재에서 멈춘 채 민간 의료보험이 활성화될 가능성은 있겠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끝으로 저자는 국민건강보험 출범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준다. “1977년 7월 1일 의료보험 출범 직전까지도 당시 보건복지부는 보험 재정이 워낙 빈약하니 의료보험 가입자들에게 치료비(보험수가)를 ‘절반’만 받으라고 설득했으나 의사들은 말도 안 된다고 한사코 거부했습니다. 어떻게 해결했느냐고요? 의료계 대표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 그런 의사를 전달하라고 보건사회부가 최후통첩했지요. 그때가 어떤 시댑니까? 유신시대인 데다 긴급조치가 연이어 발동되고 의문의 죽음이 꼬리를 물고…. 차마 그 말을 대통령에게 대놓고 하기 무서워 의사들이 굴복했습니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김종면 칼럼] 역사지식 없이 역사인식 없다

    [김종면 칼럼] 역사지식 없이 역사인식 없다

    다시 꺼내어 말하기도 민망하다. 요즘 청소년들 중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독립운동가를 안중근이 아닌 안창호로 알고 있고, 3·1절을 ‘3점1절’로 읽는가 하면, 야스쿠니 신사를 ‘야스쿠니 젠틀맨’이라고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개그가 아니라면 그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수백만명의 동족이 희생된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인 줄 모르는 고등학생이 태반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현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근현대사에 대해 이처럼 까막눈인데 고대나 중세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한국사 교육을 홀대한 업보라고 하지만 꼭 맞는 말은 아니다. 한국사 교육이 강화된 1977년 3차 교육과정부터 한국사가 고등학교에서 필수, 선택, 또다시 필수로 30년 넘게 공깃돌 신세를 면치 못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청소년의 역사인식 부재는 한국사 교육이 형식과 내용에서 부실했고, 더 결정적으로는 모든 것이 입시로 통하는 척박한 교육 현실 탓이 크다. 2011년 한국사를 고교 필수과목으로 바꿀 때 이미 대입수능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국사 교육의 한계는 충분히 예견됐다. 집중이수제라는 이름으로 한 학기에 벼락치기로 몰아 가르치고 무슨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겠는가. 2005년도 수능부터 한국사가 선택과목이 되면서 그해 전체의 27.7%였던 한국사 선택 비율은 2013학년도에는 7.1%로 떨어졌다. 인문계 대입에서 자국사를 필수로 하는 중국이나, 일본사의 대입 선택 비율이 40%나 되는 일본과 대비된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으로 비치지 않을까 두렵다. 한국사 수능 필수 문제는 이 같은 맥락에서 접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기조 가운데 하나가 문화융성이다. 이를 위해 인문학의 중요성을 유독 강조한다. 기업들도 인문경영에 나섰다. 가히 ‘인문학 르네상스’다. 그런데 정작 인문학의 핵심인 역사에 대한 대접이 초라하다. 청소년들은 ‘역사문맹’ 증상까지 보이니 이 무슨 조화인가.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한국사가 수능 선택으로 남아 있는 한 아무리 역사교육을 강화한들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사를 수능 필수로 지정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수능 필수가 한국사 교육을 암기식으로 흐르게 해 역사의식을 키우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암기가 악인가. 어떤 학문이든 암기해 놓은 기초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더 넓은 응용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경(經)과 사(史)를 외우는 것이 흠이 아니듯 우리 역사의 사실을 암기하는 것이 잘못일 이유가 없다. 자잘한 지식의 조각들이 다 인문학적 상상력의 모태요 역사인식의 근원이다.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역사인식 지수를 재어 본다면 수능 필수를 가외의 부담으로만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다른 사회 과목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한국사를 사회탐구 영역에서 떼어내 필수과목으로 하는 선에서 정리해야 한다. 국가적으로 명분이 있는 일이라면 사회적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뿌리 내린 역사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런 만큼 잘 가르치고 잘 배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끝없는 역사교과서 정치편향 논란에 학생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른다. ‘정권사관’에 따라 근현대사 교육의 내용이 오락가락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좌·우 편향 논란을 빚고 있는 개정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최종 검정 결과가 곧 나올 예정이다. 또다시 2008년 금성교과서 사태와 같은 ‘사관전쟁’이 재현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 몫이다. 한국사 수능 필수화의 참뜻은 역사교육의 정상화를 통해 세계인식의 지평을 넓혀 보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사’ 교육은 일국사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세계사까지 아우르는 ‘역사’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사 수능 필수의 결단을 빨리 내려야 한다. 그 이후에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jmki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막걸리에 인문학 옷을 입히는 막걸리학교 허시명 교장

    [김문이 만난사람] 막걸리에 인문학 옷을 입히는 막걸리학교 허시명 교장

    술을 마시며 수업을 한다고? 그렇다. 대개 수업이라고 하면 엄격한 분위기가 연상되겠지만 술을 마셔 가며 토론을 벌이고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는 파격이 벌어진다. 더러 취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걸 행동으로 나타내는 사람은 없다. 만약 술주정이라도 한다면 당장 퇴교를 당한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에 있는 막걸리학교에서는 술을 마시되 술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수업하는 곳이다. 전국에서 빚어지고 있는 다양한 막걸리를 맛보면서 맛의 차이와 근원을 가늠하고 느끼게 해 주는 학교이다. 생막걸리와 살균막걸리, 전통막걸리와 개량막걸리, 감미료 막걸리와 무감미료 막걸리 등과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다. 막걸리와 함께 살아왔던 날들, 그리고 살아갈 날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술을 빚었던 우리 민족의 애환을 되새긴다. 지난 15일 오전 막걸리학교에서 허시명(52) 교장을 만났다. 허 교장은 여행작가이자 술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술의 여행’, ‘막걸리 넌 누구냐’, ‘풍경 있는 우리술 기행’ 등 막걸리 관련 저술만 7권을 펴내 이 방면에서 유명인이 됐다. 특히 5년 전에는 막걸리학교를 설립, 우리의 전통 막걸리에 인문학의 옷을 입히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 매월 ‘힐링 술기행’ 또한 활발히 펼치고 있다. 막걸리학교 입구에는 ‘우리술 교육훈련기관’(농림수산식품부 선정)이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고 문을 열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서자 ‘술의 인문학원’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한쪽 벽면에는 전국에서 생산되는 막걸리 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상표가 전부 다른 것들이어서 우리나라 막걸리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허 교장에게 막걸리 종류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전국적으로 양조장이 850곳이 되고 이름을 달리한 막걸리는 2000여개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도시와 시골의 막걸리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시골 막걸리는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약간 무거운 농주가 많고 도시는 젊은 세대를 겨냥해 가볍고 경쾌한 막걸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는 대표적으로 ‘청향막걸리’가 있는데 알코올 도수가 12%로 우리보다 2배가량 높다고 한다. 이어 막걸리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을 물었다. 먼저 알코올 도수는 왜 6도일까. “현재 주세법상으로 탁주는 알코올 도수가 3% 이상이면 됩니다. 시중에 나오는 제품 가운데 알코올 도수가 16%인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6~8%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알코올 도수의 변화가 조금씩 있었지만 통상적으로 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으면 알코올 도수가 14~16%로 생성됩니다. 맑은 청주는 떠내고 술지게미에 물을 부어 가며 거르면 알코올 도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게 바로 알코올 도수가 6~8%인 막걸리가 되는 것이지요.” 탁주와 막걸리는 어떻게 다를까. 한 가지 일화를 들려주면서 설명한다. 2009년 여름 막걸리 바람이 한창일 때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을 대표하는 양조장 사장들을 청와대로 불렀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 “막걸리가 맞습니까, 탁주가 맞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막걸리가 맞다”는 의견이 나왔고 대통령은 “그럼 앞으로 막걸리라고 부르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허 교장은 “막걸리와 탁주는 어느 게 옳고 그른 게 아니고 똑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다른 술을 지칭한다”고 말한다. 우선 탁주(濁酒)는 한자어이고 막걸리는 순우리말이라는 점이 다르다. 뜻 그대로 풀면 탁주는 탁한 술이고 막걸리는 막 걸러낸 술이라는 것이다. 그는 “막걸리의 ‘막’에는 ‘방금’이라는 뜻도 있고 ‘함부로’, ‘거칠게’라는 뜻도 있는데 대체로 후자의 의미로 쓰인다”면서 “막걸리라는 표현이 술 빚기의 마지막 단계인 여과의 특징을 형상화한 말이라면 탁주는 술의 맑고 흐린 정도를 보고 판단한 용어”라고 설명한다. 또한 동동주에 대해서는 “탁주와 약주, 소주처럼 법적인 자기 영역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동동주는 쌀알이 동동 뜬 상태의 청주(약주)를 의미한다. 술지게미도 거르지 않고 쌀알만 동동 뜬 상태의 동동주를 빚기 위해서는 거친 누룩을 하룻밤 물에 담가 두었다가 그 물을 사용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막걸리라는 말은 언제부터 나왔을까. 옛문헌에서 탁주나 막걸리의 유래를 정확히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한다. 다만 탁주와 관련된 오래된 문건을 뒤적여볼 수밖에 없는데 1123년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했던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고려 사람들은 술을 즐긴다. 그러나 서민들은 양온서에서 빚은 좋은 술을 얻기 어려워 맛이 박하고 빛깔이 진한 것을 마신다.’ 이 글로 보아 고려 서민들은 ‘탁한 술’을 마셨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허 교장은 말한다. 술이 없이는 시를 지을 수 없을 만큼 술을 좋아했던 이규보는 막걸리와 관련해 백주시(白酒詩)를 남겼으며 조선 초기 청백리의 대명사로 알려진 맹사성은 ‘강호사시사’에서 ‘강호에 봄이 드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탁료(濁?) 계변(溪邊)에 금린어(錦鱗魚) 안주 삼고~’라고 읊었다. 탁료는 막걸리이고 금린어는 맛잉어를 뜻한다. 대체로 20세기 이전에는 주로 요(醪), 앙(醠), 탁료, 탁주 등 한자로 표기돼 왔으며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막걸리의 한글 표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춘향전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에 ‘콩나물 깍때기 목걸리 한 사발 나왔구나~’ 하는 대목에서 막걸리를 뜻하는 ‘목걸리’(전라도나 경상도 발성)를 엿볼 수 있다고 허 교장은 말한다. 화제를 바꿔 막걸리학교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막걸리는 최고의 인간 접착제입니다. 그것을 실감하는 곳이 막걸리학교이지요. 양조장을 운영하시는 분, 금융업계 종사자, 교직자, 음식업 관련 종사자,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으려는 퇴직 준비자 등 그동안 700여명이 저의 학교를 거쳐 갔지요. 재일동포, 재미동포, 한국계 독일인 등 해외에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오고 있습니다. 술을 빚고 토론하는 인간적인 교류의 장입니다. 전국에서 공수해 온 5~6종의 막걸리를 시음하면서 맛과 인문학을 얘기하는 것이 막걸리 수업의 핵심이지요.” 술도 다니고, 사람도 다니는 학교이자 특별한 문화공간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한국에서 가장 멋지게 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이고 한국 술들이 어떤 문화의 옷을 입고 있는지, 또 어떤 문화의 옷을 입어야 하는지 함께 시음하고 가늠하는 공간이라고 거듭 역설한다. 월1회 막걸리 문화콘서트도 진행되는데 그림과 막걸리, 트로트와 막걸리, 군인과 막걸리, 대금연주와 막걸리 등 다양한 주제로 펼쳐진다. 요즘 막걸리의 인기가 주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동안 막걸리 수출 물량의 90% 가까이를 일본으로 수출했는데 최근 일본 내 한국 막걸리 소비가 줄어들어 수출물량 또한 감소하고 있다”면서 “단순한 생산 위주에서 벗어나 이제는 막걸리에 대한 인식과 문화의 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막걸리 인기가 시들었다기보다는 지난 4년 동안 수출 확대 등 많은 국민적 관심을 가졌던 막걸리에 대한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단계라고 설명한다. “그동안 막걸리를 통해 한국 전통문화를 재인식한 것이 아니라 유행상품 목록 하나가 추가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막걸리 업체끼리 저가 경쟁을 벌여 막걸리의 가치를 향상시키지 못한 것도 되짚어봐야 하고 제값 또는 더 좋은 가격으로 팔기 위해서는 한국 막걸리업체들 간의 수출 연대전략이 팔요합니다. 또한 김치와 ‘기무치’의 경쟁구도가 막걸리와 ‘마코리’ 사이에서 재현되지 않게 하려면 막걸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일본 양조장들이 무감미료 막걸리를 만들어 내면서 감미료 막걸리의 약점을 지적하는 것 또한 경쟁의 시작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무감미료 막걸리가 국내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만큼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어떤 게 좋은 막걸리인지 물었더니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게 좋은 술이며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아야 좋은 재료의 맛도 볼 수 있다”고 대답한다. 술은 생활의 일부, 그렇다면 어떻게 마시는 것이 좋을까. 다음은 그가 전국 방방곡곡 천리를 돌고 얻은 ‘주당천리 10계명’이다. 주는 대로 마시지 말고 골라 마시자, 주신을 섬겨라, 약주로 효도하라, 한국 와인의 족보를 찾아라, 감미료 술을 마시지 말라, 숙취를 무릅쓰고 기발한 술을 찾아라, 100일 동안 숙성시킨 백일주를 마셔라, 자기만의 주안상을 차려라, 술이 떡이 되지 말고 술이 덕이 되게 하라 등이다. 폭염이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기다려지는 계절에 한번쯤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선임기자 km@seoul.co.kr ●허시명은 196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 중앙대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전공했다. 일본주류총합연구소에서 청주 제조자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1989년부터 4년 동안 ‘샘이 깊은 물’ 기자로 근무했다. 이후 여행작가로 나서 전국을 돌며 전통주 기행을 했다. 문화부 전통가양주실태조사사업 책임연구원(2005년), 농림수산식품부 전통주 품평회 심사위원(2009~2012년), 사단법인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2009~2012년),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강사(2004~2010년), 삼성세리CEO와 옥답CEO ‘주유천하’ 동영상 강좌(2011~2013년) 등을 거쳤다. 현재 막걸리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여행작가와 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막걸리학교는 우리술교육훈련기관(2012년, 농림수산식품부), 창조관광기업(2012년, 한국관광공사)으로 지정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술의 여행’, ‘막걸리 넌 누구냐’, ‘풍경 있는 우리술 기행’, ‘비주, 숨겨진 우리술을 찾아서’, ‘조선문인기행’, 일본어판 ‘막걸리의 정체’ 등이 있다.
  • 우리는 에너지의 주인일까? 노예일까?

    우리는 에너지의 주인일까? 노예일까?

    전력예비율 5.91%. ‘마(魔)의 3일’ 동안 전력위기와 사투를 벌인 이 땅의 시민들은 과연 석유·석탄·원자력과 같은 에너지를 지배하는 주인일까, 아니면 노예일까. 저자는 해답을 위해 2009년 4개의 침실이 딸린 영국의 한 가정에서 이뤄진 별난 실험을 제시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 구성원 4명은 어느 일요일 언제나처럼 전원 스위치를 올린다. 순간, 바로 옆집에 마련된 ‘인간 발전소’가 가동된다. 100명의 지원자들이 자전거 페달을 밟아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 것이다. BBC 방송팀은 하루가 저물 무렵, 온종일 페달을 밟느라 지쳐버린 ‘에너지 노예들’을 무심히 전기를 소비한 가족 구성원들에게 소개했다. 토스트 2장을 굽기 위해 한꺼번에 11명이 페달을 밟았고, 오븐이 열을 내도록 24명이 구슬땀을 쏟았다. 실험에 참가한 지원자 중 몇 명은 며칠간 걷지도 못했다. 캐나다 출신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인류가 1900년 이전 1000년간 사용했던 에너지의 10배를 20세기에 써버릴 만큼 에너지 과소비에 흠뻑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몸무게 50㎏의 여성이 불과 500g짜리 다이어트 음료를 사기 위해 500㎏의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현실이 그렇다. 그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벼락과 헬리오스의 태양광을 에너지의 근원으로, 신들의 대장간에서 불(에너지)을 훔쳐 인간에게 건네준 프로메테우스를 에너지의 시조로 각각 꼽는다. 하지만 인류는 화석연료를 통한 기계문명을 누리며 위기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에너지를 노예에 비유했다는 점이 신선하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노예제를 불가피한 임시변통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화석연료 사용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꼬집는다. 마치 17세기 영국의 노예상인들처럼…. 인류는 인권이 부각되면서 노예제의 굴레를 벗기 위해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을 필요로 했다. 이렇게 등장한 것이 화석연료다. 연료를 소비하는 기계 노예는 생태계를 파괴했고, 사회 시스템이 에너지에 종속되는 모순을 불러 왔다. 해법으로 6세기경 로마 외곽에서 시작된 베네딕트 수도회의 공동체 운동을 조망했다. 수도회는 신분의 높낮음을 떠나 소규모 단체 생활을 지향하며 육체노동을 통한 자급자족을 추구했다. 저자는 “분수에 넘치는 에너지는 생명력을 약화시킨다”며 ‘에너지 노예 해방운동’을 촉구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생략·침묵으로 전하는 삶의 근원

    생략·침묵으로 전하는 삶의 근원

    손보미(33)의 경이로운 첫 번째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문학동네)의 표제작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길광용이라는 스타 감독이 5년에 걸쳐 ‘댄스, 댄스, 댄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뒤 자살한다. 맥락 없이 잡다한 춤이 뒤섞인 영화는 혹평을 받는다. 몇 년 뒤 ‘댄스, 댄스, 댄스’의 조감독을 맡았던 문정우가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라는 영화를 내놓는다. 처음에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평론가 성일정과 감독의 오랜 팬 윤주윤이 두 영화의 기묘한 공통점을 지적하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성일정은 ‘그들에게 린디합을’이 알려지지 않은 길광용의 유작이며 ‘댄스, 댄스, 댄스’에 대한 주석일지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윤주윤은 두 영화에 동일한 스윙 댄서가 출연한다는 점을 발견한다. 작가는 표면적 사실을 설명할 뿐 진실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다. 문정우는 기자회견을 자청한다. 여기에는 놀랍게도 길광용의 전 아내이자 ‘그들에게 린다합을’의 공동 연출자로 오른 허지민이 참석한다. 허지민은 길광용이 죽기 전 자신에게 필름과 콘티를 주면서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라는 영화를 완성해 달라 부탁했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창작자는 길광용일까 문정우일까. 작가는 답하지 않는다. ‘댄스, 댄스, 댄스’의 모호한 결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댄스홀에 들어온 남녀가 서로를 바라본다. 여자가 남자의 귀에 무언가 속삭이고 춤을 추려는 순간 영화는 끝난다. ‘그들에게 린디합을’은 책에 실린 9개의 단편 중 작가의 세계가 가장 압축적으로 제시된 작품이다. 여기에는 불가해한 세계를 돌파하기 위한 소설가의 근원적 고민이 담겨 있다. ‘린디합’이라는 스윙 댄스에 대한 인용문으로 시작하는 보르헤스 풍의 단편에는 가짜 인터뷰와 주석, 기사 등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 심지어 길광용을 인터뷰하는 ‘손보미’라는 소설가가 등장하고, 정성일 평론가를 연상시키는 성일정의 글이 제시된다. 거짓과 진실, 허구와 현실이 교차할 때 독자는 소설이란 무엇인지, 그것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필연적으로 되묻게 된다. 작가는 결정적 순간 진술을 중단함으로써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댄스, 댄스, 댄스’의 남녀가 누구인지, 그들이 무슨 말을 나누는지 독자는 끝내 알 수 없다. 대신 작가는 성일정과 ‘손보미’와 화자의 글을 통해 대상을 해석하고, 인터뷰하고, 다시 쓴다. 소설집의 마지막 단편인 ‘애드벌룬’이 첫 단편 ‘담요’를 다시 쓴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작가는 “이 두 소설은 서로 다른 우주를 살아간 동일 인물의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이해되지 않는 세계를 쓰고, 또 쓰고, 그것을 읽는 행위를 통해서야 우리는 심연 같은 우주를 가까스로 짊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2009년 등단(계간 21세기문학)해 지난해 ‘과학자의 사랑’으로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받았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2013 공직열전] 기획재정부 (상)실장급 이상 역할과 면면

    [2013 공직열전] 기획재정부 (상)실장급 이상 역할과 면면

    박근혜 정부에서 기획재정부는 명실상부한 경제팀의 총괄부처가 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폐지됐던 경제부총리제가 부활하면서 5년 만에 장관이 부총리를 겸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에 수반되는 각종 중장기 정책과제와 활력 잃은 우리 경제의 회생이라는 당면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지난 6개월간 동분서주해왔다. 기재부의 고위직 인맥에는 옛 경제기획원(EPB) 출신과 옛 재무부(MOF) 출신이 두루 포진하고 있다. 기재부 사람들은 합쳐진 지 이미 20년이 다 돼가는 과거 양대 부처 시절을 아직까지 거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하지만 이건 공식적인 언급일 경우에 한해서다. 현실에 존재하는 출신의 근원을 떼어놓고 인재와 인맥을 말하기 곤란할 뿐 아니라 두 부처가 합쳐진 1994년 이후 들어온 직원들도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는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이와 무관하게 성장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방 조직이 없는 기재부는 현오석 부총리 이하 근무 인원이 1206명(파견·휴직 포함)에 이른다. 장·차관 이하 6명의 실장급(1급)이 각자 3~4개의 국(局)을 거느리고 있다. 차관은 두 명이다. 추경호(53·행시 25회) 제1차관과 이석준(54·26회) 제2차관이 공룡부처를 이끌고 있다. 경제정책국, 정책조정국, 장기전략국 등을 지휘하며 투자활성화, 서비스산업 선진화 대책 등 대형 경제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정은보(52·28회) 차관보는 2011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으로 있을 때 ‘관치’ 논란이 일 정도로 강한 메시지를 시장에 보낸 소신파로 유명하다. 반면 부처 내 후배들에게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이다. 올 초 금융위 사무처장 재직 때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에 파견돼 새 정부 금융정책의 밑그림 구상에 참여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은성수(52·27회) 국제경제관리관은 꼼꼼한 업무 스타일이 특징이다. 국제금융 분야 전문가로 국제금융정책국, 국제금융협력국, 대외경제국을 이끌고 있다. 2010년 국제금융정책관 시절 국제회의에서 장관 수행을 탁월하게 해 ‘의전의 달인’으로 불렸다. 만약을 대비해 호텔에서 회의장까지 장관의 동선을 3안까지 마련했다고 한다. 지난달 모스크바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선진국 출구전략(경기부양책을 거둬들이는 것)의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을 공동합의문에 넣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고국, 재정관리국, 공공정책국 등을 이끄는 김상규(52·28회) 재정업무관리관은 국세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예산·세제·재정 분야에서 다양한 보직을 두루 거쳤다. 으레 고위직에 오르면 나타나는 ‘승진병’이나 줄서기 등의 모습을 보이지 않아 후배들 사이에 사심 없는 선배라는 평을 들어왔다. 조용한 성품에 꼼꼼하게 자기 일을 해내는 스타일이라는 평을 받는다. 안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최원목(53·27회) 기획조정실장은 후배 직원 사이에 ‘성군’(聖君)으로 통한다. 실무 중심의 조직 운용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런던 재경관 시절 방문했던 정·관계 인사들이 그의 세계사 설명에 반해 박학다식한 공무원으로 기억하고 있다. 음식점에서 ‘최원목 메뉴’를 만들어 줄 정도로 미식가다. 나라살림의 지출을 책임지는 방문규(51·28회) 예산실장은 기재부 실·국장급 중 유일한 인문학 (영문학과) 전공자다. 사무관과 직접 업무를 논하며 문답법으로 잘못을 깨우치게 해 합리적이고 온화하다는 평이 많다. 대변인으로서 뛰어난 친화력을 보였던 것으로 출입기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김낙회(53·27회) 세제실장은 보고서의 작은 실수 하나하나까지 모든 것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완벽주의자로 통한다. 그러다보니 후배들 사이에서 쉽게 넘어갈 수 없는 까다로운 상사로 통한다. 세제 전문가로 국무총리실 산하 조세심판원 원장을 지냈다. 나랏돈의 씀씀이(세출)를 맡고 있는 방 실장과 나랏돈의 벌이(세입)를 담당하는 김 실장은 앞으로 큰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쓸 돈은 부족하고 쓸 곳은 많은 현 상황에서 국민과 국회를 어떻게 잘 설득해 연말 세법 개정안과 내년도 예산안을 연착륙시킬지 이목이 쏠린다. 당장 지난 8일 발표된 정부 세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종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소리를 찾아 피아노 만든 피아니스트…좋은 소리, 결국 악기와 상관 없더라

    소리를 찾아 피아노 만든 피아니스트…좋은 소리, 결국 악기와 상관 없더라

    “톱과 대패로 나무를 깎아 피아노를 만들어본 피아니스트가 또 있을까요?” 피아니스트 이진상(32)은 지난해 ‘공장에 간 피아니스트’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난해 9월 독일 함부르크의 스타인웨이 본사에 출퇴근하며 피아노 제작에 참여한 것. 지난 4월 예술의전당에서 새로 사들인 피아노 2대도 그가 함부르크 공장에서 골라낸 ‘물건’들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쾰른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친 그는 2009년 200여개의 연주회 기회가 주어지는 것으로 유명한 게다 안다 콩쿠르(스위스)에서 우승했다. 현재 오스트리아 빈에 살며 유럽 무대를 바삐 오가는 그가 오는 21일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2년만에 리사이틀을 연다. “말하는 것보다 글쓰는 걸 즐긴다”는 연주자의 취향에 맞춰 이메일 인터뷰로 미리 만나봤다. 그가 피아노 제작에까지 손을 뻗은 건 소리의 근원을 파헤치고 싶은 ‘갈증’ 때문이었다. “연주자라면 자신이 주무르는 악기에서 어떻게 소리가 만들어지는지 알고 싶고 또 만들어보고 싶은 갈증이 누구에게나 있어요. 연주자는 수많은 레슨과 음반에서 얻는 다양한 해석의 홍수에서 결국 마지막에 작곡가가 남긴 유일한 메시지인 악보에서 결론을 얻어요. 그처럼 피아노란 악기는 어떻게 소리가 나고, 또 어떻게 소리가 나야 하는지 ‘근원의 답’을 찾고자 여행을 떠나본 거예요.” 공장에서 그는 ‘좋은 소리는 악기와 상관이 없다’는 역설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어떤 악기라도 그 가능성을 최대화하면 좋은 소리를 찾을 수 있어요. 연주자와 조율사가 최선을 다하면 그 노력이 청중들에게 전달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죠.” 하지만 지난 3월 그는 6개월 만에 피아노 제작에서 손을 뗐다. 설계·제작·조율 과정 등을 거치며 악기 구조와 소리에 대한 이해는 깊어졌지만 연습 시간이 절대적으로 모자랐다. 장인들의 기술은 경이로웠지만 음악적인 소통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그는 연주자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실은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많아서 다른 연주자들에겐 제작을 배우는 걸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번 연주에서 그는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속 배경음악으로 주목받은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순례의 해, 두번째 해: 이탈리아, 혼례)를 들려준다. 유명해진 것을 염두에 둔 선곡이냐고 묻자 그는 “몰랐는데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관심을 보였다.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 작품 142’와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등도 영리하게 배치했다. 악기의 속내를 밑바닥까지 들여다본 연주자의 손끝에서는 어떤 연주가 빚어질까. “공연이 완성되려면 기승전결과 클라이막스가 있는 스토리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지닌 그는 “슈베르트 곡의 시적 함축성과 서정성이 무소르그스키 곡의 회화적 붓 터치와 색채감을 입고 절정에 다다를 것”이라고 귀띔했다. 4만~5만원. (070)8879-8485.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정치인 체험 다큐 ‘최후의 권력’

    정치인 체험 다큐 ‘최후의 권력’

    정치인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안방 극장을 찾는다. SBS는 오는 11월 창사특집 4부작 다큐멘터리 ‘최후의 권력’을 방송한다고 지난 31일 밝혔다. 원시 권력 체험에 나선 정치인의 모습을 통해 권력의 근원을 탐사한다. 안철수 의원의 공보를 맡았던 금태섭 변호사,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 손수조 새누리당 중앙미래세대위원장,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 정은혜 민주당 전 부대변인, 차명진 전 새누리당 의원, 천호선 정의당 대표 등 7명이 주인공이다. 지난 29일 코카서스 산맥의 산악 지역인 그루지야 스바네티로 떠난 이들은 원시 사바나와 유사한 환경에서 ‘빅맨’ 체험에 나선다. 빅맨은 사바나 시대 소규모 부족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진화심리학 용어로,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통해 원시 권력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미래 권력의 대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 [정전협정 60년] 중국, 北·中 혈맹 대신 평화에 방점

    중국은 정전협정 체결 60주년 행사를 맞아 북에 파견한 특사단을 통해 ‘혈맹’ 대신 ‘평화’를 강조했다. 정전협정 체결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 중인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국가부주석은 지난 27일 “조선전쟁(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기념하는 취지는 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더욱 잘 수호하고 지역의 번영과 발전을 추구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고 신화통신이 28일 보도했다. 그는 이날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을 비롯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 전사자들의 유해가 안장된 평안남도 회창군의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릉’을 찾아 참배하고 이같이 밝혔다고 통신은 전했다. 리 부주석의 메시지는 피로 맺어진 ‘혈맹’인 북·중 관계의 중요성보다 ‘평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의 대북 목표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핵화임을 주지시키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 언론들은 “한국과 미국, 북한이 조선(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을 맞아 모두 행사를 개최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중국은 정전 기념일에 10년 단위로 민간 차원에서 관련 활동과 행사를 벌였으나 올해는 조용한 분위기다. 2003년 50주년 당시 유력 포털들은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을 돕다)전쟁 정전 50주년’이란 이름을 내걸고 네티즌들로부터 관련 원고를 공모하는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대신 자국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재자 역할에 나서겠다며 나머지 국가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신화통신은 논평에서 “한반도 불안의 근원은 북한과 미국의 대립에 있다는 점에서 열쇠는 이 두 나라에 있다”며 양국을 비난한 뒤 자신들은 구경꾼이 아닌 적극적인 대화를 위한 중재자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韓·日 양국, 이젠 사실 그대로를 공유해야”

    “韓·日 양국, 이젠 사실 그대로를 공유해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언과 함께 일반인들 사이에 유적 답사 붐을 일으킨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의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이번엔 나라 밖으로 발길을 돌렸다. 일본 문화의 근원과 그 속에 깃든 한국 문화를 특유의 입담과 안목으로 조명한 일본편(창비)을 출간했다. 유 교수는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원래는 국내편을 모두 마무리한 뒤에 쓸 생각이었는데 올 초부터 일본의 우경화가 심화되는 것을 보면서 일본의 풍토와 역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해 보자는 생각에 서둘러 내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규슈 방문 때 수학여행 온 한국 고교생들을 만났는데,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관광코스만 도는 걸 보고 안타까웠던 경험도 일본편을 내게 된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일본편은 1권 규슈편, 2권 아스카·나라편, 3권 교토편, 4권 오사카편 등 총 4권으로 기획됐으며 이번에 1, 2권이 동시에 나왔다. 규슈편 ‘빛은 한반도로부터’에서는 일본 고대문화 형성에 한반도가 미친 영향, 조선 도공들이 일본에서 눈부신 자기 문화를 만들어 낸 이야기 등을 담았다. 아스카·나라편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에선 아스카와 나라 지역의 옛 절을 답사하면서 한반도와 일본 문화의 관계, 일본이 자생적으로 꽃피운 일본 문화의 미학을 다뤘다. 유 교수는 “요즘의 한·일 관계와 국민 정서를 생각할 때 두 나라 국민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할 이야기를 많이 했다”면서도 “이제는 있는 사실 그대로를 드러내 한·일 양국이 공유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일본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 문화를 무시한다”는 유 교수는 양국 서로가 이제는 일방적 시각에서 벗어나 쌍방적 시각으로 역사와 문화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1993년 강진·해남의 문화유산을 소개한 ‘남도답사 1번지’로 시작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는 지난해 제주도를 답사한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까지 7권이 나왔으며, 총 330만부가 팔렸다. 차기 작으로 남한강 편이 나올 예정이다. 올해 정년 퇴임하는 유 교수는 “가야편과 정선, 영월편 등을 기획 중이며 마지막은 독도를 다룰 생각”이라면서 “전부 예정이지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며 웃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사설] 盧·金 회의록 미스터리 檢 수사로 진상 가려야

    마땅히 국가기록원에 있어야 할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존재가 오리무중인 상황이 벌어졌다. 국회 운영위 소속 여야 의원 10명이 15일과 그제 이틀에 걸쳐 관련 자료 목록을 열람했으나 회의록을 찾지 못했다. ‘남북 정상회담’ 등 여야가 정한 7개 항목을 포함해 10여개의 관련 키워드를 입력해 국가기록원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했으나 핵심자료인 정상회담 회의록과 녹음파일 등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국가기록원은 이미 “회의록이 없다”고 자료 열람위원들에게 밝혔다고 한다. 너무도 황당하고도 위중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정상회담 회의록이 행방불명된 지금의 정황은 크게 세 가지 가능성으로 정리될 것이다. 회의록이 국가기록원에 있는데 찾지 못했을 가능성, 아니면 관련 자료가 아예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지 않았을 가능성, 그도 아니면 보관돼 있던 자료가 중도에 사라졌거나 파기됐을 가능성이다. 이 가운데 아직 못 찾았을 가능성은 국가기록원이 “(추가 검색 결과) 해당 자료(정상회담 회의록)는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확인한 이상 희박해 보인다. 전산화된 자료를 열이틀간 핵심 키워드로 검색하고도 찾지 못했다면 회의록이 정상적 형태로 현재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다고 볼 수는 없을 듯하다. 다만 “찾지 못한 것을 두고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느냐”는 민주당의 항변처럼 관련 파일이 훼손돼 있을 가능성은 열어둬야 할 것이다. 남은 두 가지 가능성, 즉 회의록이 애당초 이관되지 않았거나 중도에 망실(亡失)됐다면 이는 노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발언의 진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근원적이고 중차대한 국가적 문제다. 후대에 남겨 길이 보존해야 할 사초(史草)가 사라졌다는 것은 국가라는 틀을 갖추고 있는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한심한 일이다. 현실적으로도 향후 남북 간 논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사안이다. 여야는 NLL 공방을 넘어 회의록 존폐 공방에 돌입했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가 자료를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파상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 2008년 초 노 전 대통령 측이 청와대 전산시스템인 ‘e지원’ 자료 일체를 봉하마을로 갖고 가 논란을 빚은 전례 등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가 관련 자료를 파기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다 부질없는 짓이다. 목소리를 높인다고 하나뿐인 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국기(國紀)의 문제다. 검찰이 나서야 한다. 그 어떤 가능성에 대한 예단도 삼가고 철저한 수사로 진실을 캐서 밝혀야 한다. 그 진상에 따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여야는 공방을 접고 즉각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야 한다.
  • [시론]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으며/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시론]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으며/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7월 27일 우리는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을 맞는다.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뀐 60년 세월, 정전협정 당시 갓 태어났던 아이가 회갑을 맞기까지 하루도 전쟁 위협에서 벗어나 보지 못하고 살아온 허망하고 억울한 세월 60년, 그 세월을 뒤로하고 또다시 60년의 ‘생의 주기’를 시작하는 지금, 우리는 아직도 이 땅에서 전쟁을 끝내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60년간 우리가 겪은 수많은 사건들과 고통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최근에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을 겪었고, 지난 3~4월 키리졸브와 독수리훈련 기간에는 최근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고 실질적인 전쟁 위기를 경험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가 정전체제하의 삶에 익숙한 탓으로,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못된 짓을 하는 북한을 처벌하는 정책’에 국민들이 길들여져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정치적으로 손쉬운’ 정책인 ‘압력과 제재’를 선택한 탓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됨으로써 우리는 아직도 이 땅을 서성이는 전쟁의 유령과 함께 살고 있다.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한반도 문제’라는 ‘병’ 때문이고, 이 병의 연원은 강대국들이 한반도를 분단시킨 데 있다. 이 병의 ‘근원’은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구조, 즉 전쟁의 구조, 불신의 구조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 미사일 문제, 로켓 문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싸고 생겨나는 남북한 충돌, 연례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이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인한 전쟁 위협 문제, 심지어 제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문제 등은 모두 병의 ‘증후’일 뿐이다. 따라서 모든 병의 치료가 그렇듯이, ‘한반도 문제’라는 병도 완치를 위해서는 대증요법만으로는 안 되며, 반드시 근치요법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는 군사안보적 성격 등 여러 성격을 갖고 있지만, ‘정치적’인 성격의 문제가 압도적이다. ‘아직도 전쟁 중’이라는 것보다 더 정치적인 성격이 어디에 있겠는가. 따라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관련국들의 최고지도자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리더십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동안 그렇게 되지 못했다. 고도로 정치적인 성격의 문제가 테크노크라트의 손에 맡겨짐으로써 전혀 문제 해결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는 이 땅에서 전쟁을 끝내고 평화 정착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정부차원에서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걸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북한 길들이기’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시동조차 걸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들과는 달리 ‘6·25 종전’과 ‘평화체제 수립’을 공약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달 초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모 재단이 개최한 정책포럼에서 설명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보면, ‘우선 추진과제’와 ‘중장기 추진과제’ 그 어디에도 평화체제 수립은 들어 있지 않다. 기본적으로, 평화체제 비전이 결여된 정책이 남북 간 신뢰 구축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추동에 큰 공헌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우리가 박근혜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평화 정착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구나 정부가 바뀌면 정책도 바뀌는 민주정치 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차기 정부들이 모두 평화체제 수립에 노력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시민사회와 정치사회가 일종의 사회협약을 맺어 차기 대선에서는 여야 후보들이 모두 ‘평화체제 수립’을 공약하도록 할 수 있다면, 이는 이 땅에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하나의 구체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 [창조경제의 첨병은 기업이다] 두산그룹

    [창조경제의 첨병은 기업이다] 두산그룹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연초에 “저성장 시대 이후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현재를 ‘도전적 시기’로 규정했다 이를 위해 근원적 경쟁력 강화와 업무의 선진화, 과학화를 제시했다. 이는 선도기업을 따라잡는 수준을 넘어 그들보다 앞설 수 있도록 후진적 프로세스나 방식을 과감히 뜯어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창조경영의 핵심이 담겼다. 두산중공업은 올해 기술과 원가 부문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부문별로 다수의 1등 제품군을 확보, 시장 회복기에 글로벌 리더로 한발 앞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11월 영국의 워터 업체 엔퓨어를 인수한 것도 근원적 경쟁력 확보 차원으로 평가된다. 역삼투압(RO) 기술의 안정화로, 담수설비 발주의 비중이 증가하는 가운데 물 사업 관련 전문 역량과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다단효용방식(MED)의 담수플랜트 수주를 토대로 영업력을 넓혀 나가고 있다. 주력인 발전설비 부문에 있어서는 올해도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인도, 동남아 시장 진출을 강화할 방침이다. 인도 시장은 쿠드기와 라라 지역에서 두 차례에 걸쳐 총 1조 5000억원에 이르는 벌크오더Ⅱ 석탄화력발전소의 발전설비 공급 프로젝트를 수주한 실적과 인도 첸나이의 현지 생산설비를 활용해 올해 적극적인 시장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 차세대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신재생 발전에도 기술개발 및 사업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제주 월정 앞바다에 3㎿급 해상풍력 실증 플랜트를 성공적으로 설치한 이후 영흥(24㎿), 탐라(30㎿) 풍력을 수주한 바 있다. 김경운 기자 kkwoon@seoul.co.kr
  • [사설] 성수기 ‘전세대란’ 특단대책 있어야 한다

    전셋값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잖다. 이사 수요가 뜸한 여름철 비수기인 데다 집값이 떨어지는데도 전셋값은 뛰는 이례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어서다.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주까지 47주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강남구가 올 상반기 3.49% 오르는 등 서울·수도권의 이른바 인기 주거 지역이 전셋값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심상치 않은 전세 시장의 과열을 막을 근원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전셋값이 오르는 것은 일시적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변화인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주택 보유자들은 저금리로 인해 전세에 비해 월세를 선호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반면 세입자들은 월세 부담이 있는 데다 주택 소유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전세 물건만 찾고 있다. 지난 5월 기준으로 전국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63.5%로, 10년 전인 2003년 5월 63.7% 이후 가장 높았다. 부산 일부 지역은 전세가가 매매 가격의 76.3%까지 올랐다. 서민들의 주거 안정이 위협받는 원인이 무엇인지 세밀하게 점검하기 바란다. 주택 시장의 이상 기류와 달리 정부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지역에서만 전셋값이 오르는 국지적인 현상으로 해석하면서 2010년이나 2011년과 비교하면 지금은 전세난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오히려 전셋값이 오르면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바뀌어 시장 정상화를 꾀할 수 있을 것으로 진단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서민층이 체감하는 고통과는 동떨어진, 안이한 자세라고 판단된다. 전셋값이 매매가의 65%를 넘으면 매매 수요가 생긴다는 속설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주택을 재테크 수단으로 여기는 이들은 줄어들고, 렌트족이 늘어나고 있는 게 큰 흐름이기 때문이다. 소유 중심 주택 정책의 궤도를 과감하게 수정할 필요가 없는지,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조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그제 전월세 상한제 관련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지난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는 반영되지 않고 유보됐다. 국회는 주택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하루빨리 논란을 매듭지어야 한다.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2개월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행복주택사업도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갈등 조정 능력을 발휘할 것을 당부한다. 사업을 맡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 방안도 시급히 제시돼야 한다.
  • [책꽂이]

    그림을 보는 즐거움(이윤옥 지음, 학고재 펴냄) 문학평론가의 눈으로 바라본 화가와 그들의 작품에 관한 책. 문학과 미술사조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중견화가 서용선, 정종미, 박성태, 서용, 김선두 등 작가 5명의 예술관과 인생을 소개한다. 304쪽. 2만 3000원. 여행, 인생을 유혹하다(이석연 지음, 까만양 펴냄) 전 법제처장 이석연 변호사의 지구촌 역사문화탐사기. 안달루시아의 흥망성쇠를 찾아 떠난 스페인 여정, 풍요와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미얀마 여행, 가족과 함께한 북유럽 인문탐사기행 등이 실렸다. 360쪽. 1만 5000원. 왕과 나(이덕일 지음, 역사의 아침 펴냄) 역사학자 이덕일이 쓴 권력의 2인자, 왕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 김유신부터 홍국영까지 킹메이커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이끈 11가지 핵심 코드를 짚는다. 376쪽. 1만 6000원. 에코 크리에이터 디자인(김대호 지음, 아이엠북 펴냄) 먹을 수 있는 커피 잔 ‘쿠키 컵’, 물에 녹는 쇼핑백 ‘클레버 리틀 쇼퍼’, 휴지 낭비를 줄이는 화장지 ‘스퀘어드 토일릿 페이퍼’ 등 인류와 지구의 아름다운 조화를 꿈꾸는 착한 디자인 혁명을 소개한다. 268쪽. 1만 4000원. 창조적 지성(브루스 누스바움 지음, 김규태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디자인 혁신으로 유명한 브루스 누스바움 파슨스 디자인스쿨 교수가 문화의 필수 요소로 거론되는 창조성의 실체를 분석했다. 지식 발굴, 틀짜기, 즐기기, 만들기, 중심 잡기 등 창조적 지성의 다섯 가지 능력을 소개한다. 464쪽. 2만 5000원. 국제유대인,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헨리 포드 지음, 김현영 옮김, 리버크레스트 펴냄) 포드 자동차 회사의 창립자 헨리 포드가 1922년 출간한 책으로, 자신이 소유한 주간지에 2년간 연재한 유대인에 대한 글들을 묶었다. 반유대주의를 선동하는 그의 글들은 아돌프 히틀러가 애독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800쪽. 4만 2000원. 연백(함동선 지음, 작가세계 펴냄) 원로시인인 함동선(73) 중앙대 명예교수의 신작 시집. 황해도 연백군에서 제목을 따온 표제시를 비롯해 연작시 ‘백두대간’ 등 생태주의적 역사의식이 담긴 시 50여편이 수록됐다.122쪽. 9000원.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철학아카데미 지음, 동녘 펴냄) 사르트르, 레비나스, 바르트부터 라캉, 알튀세, 데리다, 들뢰즈까지 12명의 프랑스 철학자들을 국내 상황에 맞춰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소개한 철학 입문서. 대안철학 학교인 철학아카데미가 지난해 주최한 프랑스 현대철학 강의 내용을 정리해 엮었다. 416쪽. 1만 8000원. 달나라 소년(이언 브라운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 앤드 메일의 기자이자 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희귀성 유전병을 안고 태어난 아들 워커를 키우는 외롭고 고단한 여정에서 인간의 존재 이유와 근원적 가치를 묻는다. 2010년 캐나다 3대 문학상을 석권했다. 376쪽. 1만 4800원. 앙드레 씨의 마음 미술관(크리스토프 앙드레 지음, 이세진 옮김, 김영사 펴냄) 렘브란트, 모네, 홀바인 등 화가들이 그린 명화를 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는 명상서이자 심리치료서. 프랑스의 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치료사인 저자는 26점의 명화를 통해 불교식 명상과 심리 치유 방법을 소개한다. 344쪽. 1만 5000원. 공자전(바오펑산 지음, 이연도 옮김, 나무의철학 펴냄) 중국의 공자 연구가 바오펑산(鮑鵬山) 상하이 카이팡대 교수의 공자 연구서. 공자의 생애와 사상은 물론 인격 등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실증적, 입체적으로 들여다본다. 400쪽.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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