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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박 꿈꾸다 쪽박 차기도… 장기 투자 철학이 답이었다

    대박 꿈꾸다 쪽박 차기도… 장기 투자 철학이 답이었다

    국내 증권사 1위(자본금 기준)로 지난해 12월 출범한 NH투자증권의 김원규 사장의 첫 직장은 럭키증권이다. 이어 LG증권, LG투자증권, 우리투자증권, NH투자증권으로 바뀌었다. 김 사장이 회사를 옮긴 것은 아니다. 그는 가만히 있었는데 잦은 인수합병(M&A)으로 회사 이름만 바뀌었다. NH투자증권에는 헤지펀드의 대가로 알려진 조지 소로스가 한때 투자했던 세종증권도 포함돼 있다. 2위 증권사인 KDB대우증권이 최근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모(母)기업이었던 대우가 외환위기 이후 해체되면서 산업은행(KDB)에 인수된 지 15년 만에 매물로 나오는 것이다. 현대증권은 모기업인 현대상선의 자구계획에 따라 일본계 자금인 오릭스에 팔려 대주주 변경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증권사를 둘러싼 합종연횡이 다시 진행되고 있다. M&A를 끝내고 ‘3강’(KEB하나, 신한, 국민은행), ‘2중’(우리, 농협은행) 구도를 확립한 은행권에 비해서는 늦은 편이다. 은행보다 회사의 부침도 잦았다. 대박을 꿈꾸다 성공한 투자자도 있지만 쪽박을 찬 투자자도 많다. 스스로 멈출 줄 아는 것, 그게 증권업계 생존의 필수 전략이다. ●최근 2~3년간 증권사 합종연횡 진행 국내 첫 증권사는 1949년 문을 연 대한증권(현 교보증권)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1세대 증권사이기도 한다. 서울증권(유진투자증권), 신영증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증권사는 예금과 대출이 주요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설립 규제가 은행보다 훨씬 적다. 그 결과 10년 사이에 증권사가 49개까지 늘어났다. 1956년 서울 명동에 증권거래소도 세워졌다. 지금은 증권사라고 하면 주식 거래를 떠올리지만 당시는 국채(건국국채) 거래가 대부분이었다. 정부가 발행한 국채는 많았고 상장사는 적었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쏠린 국채를 두고 1958년 증권사가 매수 세력과 매도 세력으로 양분돼, 한바탕 공방을 치렀다. 정부가 그해 1월 국채를 발행하느냐의 여부를 두고 벌어진 ‘투자 전쟁’이었다. 정부가 미발행을 결정해 매도 세력이 이겼다. 이어 정부가 각종 논란 끝에 다시 발행으로 선회하면서 국채값이 급등락을 거듭했다. 이 와중에 대규모 결제대금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재무부 이재국(현 금융위 금융정책국)이 ‘1월 16일 국채 거래를 무효로 한다’는 폭탄 선언을 1월 17일 새벽에 했다. 거래소가 휴장하고 10개가 넘는 증권사가 문을 닫은 첫 거품 사례다. 과열과 폭락을 거듭하던 증시는 1970년대 들어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를 잡는다. 거래소가 1979년 여의도로 옮겼다. 한강개발계획에 따라 여의도에 조성된 증권타운으로 이전한 것이다. 현재 거래소 본사는 서울이 아닌 부산국제금융센터에 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선물거래소가 부산에 세워졌던 것이 근원이다. 여의도로 옮겨 왔던 일부 증권사 본사도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가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이 청계천 근처 중구 수하동에 자리를 잡았고 대신증권이 본사를 2017년 명동으로 옮길 계획이다. ●외환위기 때 ‘슈퍼 개미’ 등장 “위기는 기회” 자금을 모아 증권에 투자하는 투자신탁도 1970년대 들어 설립됐다. 투자신탁은 지금의 자산운용사와 비슷하다. 한국투자신탁(1974년), 대한투자신탁(1977년), 국민투자신탁(1982년)이 ‘3대 투신’으로 불렸다. 3대 투신은 외환위기 이후 투자한 국내 주식과 채권의 폭락으로 각각 한국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 한화투자증권으로 인수합병됐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외환위기는 ‘슈퍼 개미’(큰돈을 굴리는 일반투자자)를 낳았다. 당시 대신증권 목포지점에 근무했던 장기철씨의 별명은 ‘목포 세발낙지’다. 장씨는 선물시장 거래의 40%가량을 차지했고 미국의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에도 소개 기사가 날 정도였다. 하루 중개금액 9000억원으로 목포에서 증시를 쥐락펴락한다고 해서 ‘목포 세발낙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1999년 퇴사한 장씨는 개인 사무실을 차리고 주식에 투자했으나 막대한 손실을 입고 사라졌다. 2011년 다시 나타났으나 투자자로부터 고소를 당해 지난달 사기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선물 투자라면 윤강로 전 KB선물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의 친동생이기도 한 그는 서울은행에 근무하다가 선물시장에 개인투자가 허용되자 투자자로 변신했다. 선물 시장의 위험을 미꾸라지처럼 잘 피해 다닌다고 해서 ‘압구정 미꾸라지’로 불렸다. 2004년까지 1400억원의 수익을 거둬 KB선물을 인수했으나 이후 실패를 거듭, 지난달에는 자택이 경매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선경래 지앤지인베스트 사장 성공한 개미 표본 이들은 ‘슈퍼 메기’로도 불린다. 선물에 투자해 증시 전반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선물 시장과 현물(주식)시장이 연결돼 있어 선물 시장의 큰 매도나 매수가 주식시장 전체를 흔들곤 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왜그더도그)는 현상을 뜻한다. 구설수에 오르지 않은 인물도 있다. ‘전주 투신’이라 불리던 박기원씨다. 2002년 하이닉스, 2003년 삼성전자, 2006년 대한방직 등에 차례로 투자했다. 2006년 대한방직을 21.6%까지 인수했으나 이후 그 해 주식을 팔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성공한 개미도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대표 펀드인 ‘인디펜던스’를 운용했던 선경래 지앤지인베스트 사장이다. 선 사장은 박현주 회장, 최현만 부회장 등과 함께 미래에셋 창업 멤버다. 2002년 독립, 10억원의 종잣돈을 2000억원으로 불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속옷업체인 좋은 사람들을 인수, 이사로 활동 중이다. ●요즘은 선물보다 수백억원씩 주식에 투자하기도 요즘은 선물보다는 수백억원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개미들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주식농부’로 불리는 스마트인컴의 박영옥 대표가 대표적이다. 증권사 출신인 박 대표는 2005년 전업투자사인 스마트인컴을 설립, 보유 주식의 가치만 2000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봉수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 손명완 세광 대표 등도 상장사의 지분 5% 이상을 보유했다고 공시하는 슈퍼 개미다. 수억원의 투자로 수백억원, 수천억원대의 주식 자산을 보유한 이들의 투자 철학은 장기 투자다. 주식은 기업이 성장하면서 이룬 성과를 나눠 갖기 위해 사서 갖고 있는 투자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제 증권사들도 주식매매로 얻는 수수료가 아니라 고객의 자산 증식에 따른 수수료에 승부를 걸고 있다. 주식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사설] 노동개혁, 정부 입법 앞서 노동계 결단하라

    노사정 대타협이 절충점을 찾지 못하면서 정부가 독자적인 노동개혁에 나섰다. 노사정 4인 대표는 정부가 제시한 시한(10일)까지 최대 쟁점인 취업규칙 변경과 일반해고 요건 완화에 대해 의견을 조율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어제 최경환 부총리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등은 최후 통첩 성격의 ‘노동개혁 향후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정부가 노사정 대타협과 별도로 노동개혁 관련 5개 법안의 입법과 함께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와 관련된 가이드라인(행정지침) 마련에 착수하기로 한 것이다. 최 부총리는 “노동계와 경제계에 조속한 결단을 내릴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고, 새누리당 역시 노동개혁 입법을 위해 오는 14일 당정회의와 16일 정책 의원총회를 열어 당내 의견을 수렴한 뒤 노동개혁 관련 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하기로 했다. 정부의 독자적인 노동개혁 추진 계획은 당장 노동계와 야당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강압적인 압박으로 판을 깨지 말라는 볼멘소리들이 터져 나왔지만 다행히 노사정위 대표자회의는 정부의 독자 입법 추진과 상관없이 12일 논의를 재개해 최종 이견 조율을 시도할 예정이다. 정부가 노동계의 반발을 무릅쓰면서 독자적으로 노동개혁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데서는 노동개혁의 시급성에 비춰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없다는 긴박성이 읽힌다. 노동개혁을 통해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고 비정규직 차별 해소로 사회 갈등의 근원을 제거하는 일은 반드시 이뤄야 하는 우리 사회의 숙원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정부의 지나친 압박으로 자칫 역작용이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은 그제 협상 도중 브리핑을 통해 “어려움은 있지만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고 밝혀 당정과 다른 시각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화는 우리 계획대로 갈 것이며 쓰러질 때까지 대타협을 시도할 것”이라며 강한 타협 의지를 보였다. 노사정위 주변에서 협상을 지원하고 중재해야 할 정부가 역할은 하지 못하면서 쓸데없이 노동계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많다. 노사정 대타협이 없는 정부와 여당의 일방적인 노동개혁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 노사정 위원회가 다시 결렬되고 정부가 단독으로 개혁 입법을 추진하더라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노동계와 야당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여당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회선진화법이 정착돼 노동 관련 법안을 개정할 경우 야당의 합의를 우선 얻어야 한다는 점도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는다.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해 다시 대화에 나선 것은 노동개혁의 당위성을 공감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국가의 미래가 걸린 만큼 한국노총은 시간을 끌면서 노동개혁을 무산시키려 한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줘서는 안 된다. 노동개혁을 통해 우리 사회와 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점에서 노동계의 대승적 결단을 기대한다. 정부 역시 독자 입법 추진은 최후의 보루인 만큼 무리한 강행으로 대화의 장을 깨서는 안 될 일이다.
  •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그리스-로마-르네상스의 주두와 상징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그리스-로마-르네상스의 주두와 상징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동서양 세계 미술사에 관한 개설서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건축이다. 건축은 그저 막연한 공간이 아니라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우주 공간을 형성하면서 조각, 회화, 공예 등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자체로 그 모든 장르를 표현한다. 즉 건축이란 건축과 조각과 회화와 공예 등 모든 장르의 통합체라는 것을 깨닫고 건축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목조건축의 안팎을 빈틈없이 장엄하게 그린 단청(丹靑)의 참된 의미를 밝히고 기둥, 공포, 지붕의 갖가지 기와의 상징을 올바로 밝히고 나니 건축은 사상과 종교를 실현한 위대한 조형언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됐다. ‘건축의 탄생’이다. 건축에서 생생한 사상사(思想史)를 읽어낼 수 있다. 그러려면 신전이든 성당이든 모스크든 주두의 주된 장식을 올바로 해독해야 한다. 독자 여러분은 과거에 배운 지식은 일단 모두 옆으로 치워 놓고 잊어버리기 바란다. 이 연재는 빙산의 일각 밑의 무한히 거대한 부분을 해독함으로써 우리가 봐 오고 연구해 온 일각의 오류를 발견해 고치는 것이다. 그리고 수천 년 동안 보이지 않았던 조형은 용어조차 없었으므로 필자가 새로이 만들어 쓰고 있다. 처음 시도하는 해석이므로 처음에는 어렵게 보이나 실은 어려운 것이 아니고 낯설 뿐이다. 그리고 필자가 세계조형예술을 공부해 ‘영기화생론’을 정립해 나가면서 크게 깨달은 것은 “조형예술에 현실에서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진리다. 현실에서 본 것이 똑같은 모양으로 있다 해도 영기화생으로 인해 고차원의 전혀 다른 존재로 돼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조형들에 대해 현실의 사물 중 비슷한 것을 찾아 설명하고 있으니 무량한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2년 동안 연재한 ‘틀린 용어 바로잡기’(http://www.kangwoobang.or.kr)를 참고하기 바란다. ●에레크테이온 신전의 제1영기싹과 보주는 우주의 기운 밖으로 끌어내 표현 이제 서양의 주두를 살펴보자. 원래 기능상 공포라고 해야 하나 혼란을 막기 위해 서양에서 쓰는 주두라는 용어를 그대로 쓰기로 한다. 다음에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콤퍼짓식(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을 합친 것) 주두, 이 세 가지를 다룰 것이다. 주두로 건축 양식을 분류할 만큼 주두의 조형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첫째, 이오니아식 주두 신전은 BC 421~406년에 세워졌다(①). 에레크테이온은 그리스신화에서 아테네를 최초로 세운 왕으로 기록돼 있다. 파르테논 신전 서쪽에 있는 에레크테이온 신전은 바로 에레크테우스왕을 모시는 성전이다. 주 무늬는 서양에서는 ‘소용돌이’ 혹은 ‘양의 뿔’이라고 부른다. 서양 건축학자들이 쓰는 용어로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윗부분에 양의 뿔 혹은 소용돌이 모양이 있으며 그 바로 밑에 ‘달걀’이 있다. 그 사이에 뾰족하게 나온 것은 ‘화살촉’이고 그 밑부분에는 ‘팔메트’ 무늬가 있다.” 그러고는 아무 말이 없다. 필자는 달걀과 화살촉이란 용어를 보고 크게 웃었다. 모두가 현실에서 본 사물의 용어로 전혀 맞지 않으므로 아무 해석도 할 수 없다. 필자의 영기화생론에 입각해 조형언어를 문자언어로 설명해 보기로 한다. 채색 분석한 것을 자세히 보면서 천천히 읽어 주기 바란다. 글만 읽으면 무슨 말인지 모른다. 무늬는 만물 생성의 근원인 제1영기싹이 두 개 연이어 있는데 끝에 원이 있고 이것이 보주다. 제1영기싹과 보주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보주 안에서 우주의 기운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내 표현한 것이다. 주 무늬인 두 개의 제1영기싹 영기문은 매우 정교하게 여러 갈래로 이어졌으며 두 영기싹 사이 안쪽에 영기문 띠가 있고 바로 아래 보주들이 화생한다. 그 아래에는 작은 보주들과 원반 같은 보주의 측면이 번갈아 가며 연이어 큰 띠를 형성한다. 그 밑의 넓은 띠는 맨 밑에 뉘어진 S자 영기문, 즉 제1영기싹을 두 개 엇갈리게 이은 것이고 각각 끝에서 제2영기싹을 이루는데 각각 오른쪽 제1영기싹에서는 제1영기싹이 연이어 올라가 맨 위에서 보주꽃을 피워 좌우대칭을 이룬다. 그 갈래 사이에서 번갈아 가며 다른 형태의 영기문이 솟아 나오는데 모두 ‘팔메트’라 부르지만 ‘좌우로 확산하는 영기문’이라고 해야 한다. 참으로 화려하고 정교한 주두의 조형이다. 그 전체를 종합해 보면 엄청난 영기문들이 집약되어 표현돼 있으며 크고 작은 보주, 그리고 앞으로 무량하게 발산할 보주꽃들이 피어나고 있으니 주두가 함축하고 있는 상징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다. 두 가지 설명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너무 크다. ●로마시대 마르스 신전의 주두 기둥 ‘우주목’은 영기잎과 함께 잘 어울려 둘째는 로마시대의 코린트식 주두다. BC 2세기에 건조된 복수와 전쟁의 신, 마르스 신전의 주두다(②). 종래 서양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아칸서스가 이중으로 있고 ‘뿔잔’이 두 개 나와 각각 아칸서스에서 두 갈래 ‘덩굴손’들이 나온다.” 다음에 필자가 그 조형언어를 문자언어로 설명한다. 작은 잎의 조형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영기잎’이며 빨갛게 칠한 부분은 잎들을 영화시키는 방법으로 필자가 빨갛게 칠한 것이다. 맨 아래 네 개의 영기잎이 있으며 사이사이에서 다시 영기잎들이 솟아 나온다. 그 갈래 사이로 뿔잔이 아니라 기둥, 즉 ‘우주목’이 나오는데 우주목 역시 만물 생성의 근원이므로 영기잎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 그 우주목 기둥에서 덩굴손이 아니라 다시 ‘제2영기싹 모양의 영기잎’이 각각 나오며 그 갈래 사이에서 다시 길고 짧은 영기싹이 제2영기싹을 이루며 솟아 나와 긴 제1영기싹에서 다시 제2영기싹이 뻗어 나간다. 중앙에서 만난 제1영기싹 사이로 밑으로부터 솟아난 줄기를 따라 위에서 나오는 영기잎이 화려하게 펼쳐지며 중앙에서 강력한 제1영기싹 영기문이 절묘한 조형을 만들며 무량한 보주가 발산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대리석으로 조각하면 흰색 한 가지이므로 파악할 수 없으나 채색 분석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영기문이라는 생명 생성의 단계적 전개 과정을 알고 있어야 실제로 채색 분석하는 능력이 생긴다. 셋째, 아테네의 ‘리시크라테스 기념비’는 아크로폴리스 동쪽에 있는 고대 그리스의 기념비로 높이 7m, 너비 2.75m다. BC 334년에 거행된 디오니소스제(祭)의 경기에서 리시크라테스의 합창단이 우승한 것을 기념해 세운 원통형 건물이다. 매우 복잡한 코린트식 주두지만 영기문의 전개 원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필자의 이론에 따라 조형언어를 함께 읽어 보자(③). 기둥 자체가 밑으로부터 ‘영기잎’에서 연속으로 영기잎이 화생해 올라간다. 즉 우주목인 기둥의 연속적 화생을 가리킨다. ‘영기잎’이 다섯 개 솟아 나오며 사이사이에서 ‘보주꽃’이 피어난다. 실제로 아칸서스는 이런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리고 그 위에서 다시 영기잎에서 작은 영기잎이 나오며 제1영기싹들이 제2영기싹을 아름답게 내며 그 갈래 사이에서 반복하는 영기문을 내는데 말하자면 제3영기싹을 이룬 셈이다. 마침내 중앙의 제3영기싹에서 확산하는 빨간 영기문이 화생해 역시 제3영기싹을 맺으니 전체적으로 장대한 만물 생성의 근원을 이루는 상징을 띠고 있지 않은가. 그리스 주두의 조형적 구성은 한국의 조형에서 발견한 영기문의 조형 원리와 똑같다. ●그리스 주두 조형적 구성은 한국 조형에서 발견한 영기문과 원리 똑같아 넷째는 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이 합쳐진 콤퍼짓식이다. 르네상스시대의 건축가 팔라디오의 작품이다(④). 단지 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 두 가지를 합친 것에 불과하지만 화려하며 더욱 풍부한 장식성을 띠고 있다. 필자의 이론으로 해독해 보겠다. 아랫부분은 코린트식이어서 중층의 영기잎들이 있으며 중앙부에서 씨방이 마주 보며 무량한 보주를 쏟아내는 놀라운 조형은 한국의 조형에서 밝힌, 씨방에서 무량한 보주가 쏟아져 나오는 광경과 같다. 여기에는 서양인이 말하는 덩굴손, 즉 제1영기싹들은 생략됐다. 왜냐하면 그 윗부분의 이오니아식에 있기 때문에 반복할 필요가 없다. 크고 작은 빨간 보주들로 이뤄진 부분에서 제1영기싹이 양쪽으로 뻗치면서 끝에서 각각 보주꽃을 피운다. 그리고 연이어 화생하는 영기잎들이 동반하며 각각의 끝 씨방에서 보주가 줄줄이 나오는 광경은 놀랍다. 흥미롭게도 시대가 내려올수록 주두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그리스·로마시대에는 이렇게 씨방에서 보주가 나오는 주두는 없었지만 주두에 수많은 크고 작은 보주의 표현이 가득하다. 왜 서양 주두의 상징이 풀리지 못했는지 원인을 찾아보면 결국 제1, 제2, 제3영기싹의 전개 원리나 상징성을 모르고 보주를 몰랐기 때문이다. 동양과 마찬가지로 서양의 건축학은 물론 미술사학자들 가운데 보주를 아는 학자가 아무도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보주라는 개념은 지식으로 전해지지 않고, 오랫동안 인식의 깊이를 더해야 보주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아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쁜 현대 생활에서 그런 과정을 몇 년 동안 체험해 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무색의 주두를 채색 분석해 보니 수천 년 죽었던 주두 상징 되살아나 다섯째다. 지난 회에서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규모가 컸던 제우스 신전을 잠깐 언급했는데 줌으로 당겨 보니 여러 가지 주두가 있는 가운데 파르테논 신전으로 가는 길 폐허에서 제우스 신전 것과 비슷한 폭 1.5m의 우람한 주두를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⑤). 그려서 채색 분석해 보니 아칸서스는 아칸서스가 아님이 분명해졌다(⑥). 주두 아래 양쪽의 영기잎이 주두를 화생시킨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만물 생성의 근원인 제3영기싹이 있다. 즉 보주들 사이에 만물을 상징하는 뾰족한 모양이 있다. 즉 영기잎과 보주와 제3영기싹이 주두를 만들고 있으니 기둥 위의 주두 전체가 우주목 혹은 생명수 혹은 보주목이라는 필자의 학설이 성립한다. 이 위로 양쪽으로 제2영기싹이 솟아나는데 그 끝은 보주다. 그리고 그 사이의 네모난 공간에서 다시 아래 양쪽에 제2영기싹 모양의 영기잎이 있고 그 갈래 사이에서 영기잎들이 연이어 생겨나서 색을 달리했는데 그 끝에서 보주꽃이 핀다. 그리고 중앙의 영기잎에서 줄기가 올라가서 마침내 정상에서 보주꽃을 피워 우주에 보주를 가득 차게 만든다. 필자의 설명은 완벽하다. 무색의 주두를 채색 분석해 보니 수천 년 죽었던 주두의 놀라운 상징이 되살아나 감격스럽다. 아칸서스가 왜 아칸서스가 아닌지는 아직은 충분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주제는 중요한 것이므로 다음 회에서 다른 장르에서 쓰이는 조형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로 한다. 아칸서스는 아칸서스가 아니다. 로마의 비트루비우스가 그의 책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했음을 알았을 때 서양미술사의 많은 문제들이 풀렸다. 아칸서스의 질곡에서 벗어나면 자유가 온다. 아칸서스, 양의 뿔, 달걀, 화살촉, 덩굴손, 꽃, 뿔잔 등의 용어는 질곡이다.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규모가 컸던 제우스 신전, 주두의 조형과 상징이 풀리지 않으면 그저 돌집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목의 숲을 건축화한 것이 신전이고 성당이고 사찰이다. 우리의 시선은 항상 저 아득한 기둥 끝의 주두, 즉 위대한 상징이 응집된 주두에 머문다(⑦).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 [한자로 된 한국속담 이야기] 근원 벨 칼이 없고 근심 없앨 약이 없다

    [한자로 된 한국속담 이야기] 근원 벨 칼이 없고 근심 없앨 약이 없다

    근원 벨 칼이 없고 근심 없앨 약이 없다. =源割无刀(원할무도)고 忧除无葯(우제무약)이다 = 源割無刀 憂除無藥 사랑이 시작되는 근원(源)을 단칼에 가를(割) 수 있는 칼(刀)은 세상 어디에도 없고(无) 사람의 근심(忧)을 없앨(除) 수 있는 약(葯)도 없다(无)는 뜻으로 사랑의 근원인 부부간의 금실은 끊을 수 없으며 사람이 살아가는데 근심 걱정은 언제나 따른다는 말.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7] 5색 과일과 채소, 몸 어느 장기와 맞을까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7] 5색 과일과 채소, 몸 어느 장기와 맞을까

    몇 년 전 미국에서 5가지 색의 과일과 채소를 매일 조금씩 먹자는 캠페인(Five Colors a Day)이 대중적 호응을 받았다. 성인병과 비만이 걱정인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실천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 등 영양소가 함유된 음식을 꾸준히 즐기려면 비타민과 호르몬, 효소 등 생리활성물질이 많은 과일과 채소도 함께 챙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만병의 근원이라는 활성산소(찌꺼기 산소)를 줄이고 항산화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제철 과일과 채소에는 몸에 좋은 성분이 더 많다. ●빨간색 노화, 노란색 소화, 초록색 피로, 보라-검정 면역력 효과 ... 5가지 색이란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보라색, 검은색을 말한다. 단순히 껍질이나 겉모양의 색이 아니라 그 본연의 색깔이 중요하다. 빨간색 과채류에는 토마토, 사과, 수박, 고추, 대추 등이 있다. 노화를 방지하고 혈액을 맑게 해준다. 혈관과 관련된 고혈압이나 동맥경화에 좋다. 노란색에는 바나나, 오렌지, 당근, 단호박, 노란 파프리카 등이 있다. 강력한 항산화력을 지녀 건강한 피부에 좋고 소화력도 돕는다. 눈을 맑게 하는 효능도 있다. 초록색에는 양배추, 상추, 브로콜리, 시금치, 키위 등이 있다. 풍부한 비타민C 덕분에 몸속 노폐물을 배출하고 간의 피로도 풀어준다. 보라색에는 포도, 오디, 블루베리, 가지 등이 있다.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효능이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검은색에는 검은콩과 깨, 김, 미역 등이 있다. 면역력을 향상시켜 허약한 체질을 개선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과거 서양 의학은 과일이나 채소의 색이 번식을 돕는 동물의 눈길을 끌기 위해 화려한 것일 뿐, 주목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나 동양의 전통 의학은 오래전부터 5가지 색이 제각각의 고유한 약효는 물론 우리 몸의 장기와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겼다. 서양에서 갈수록 동양 의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색깔별 과일 채소, 몸의 각 장기와 찰떡 궁합 전통 의학은 빨간색 식품이 심장병 환자에 좋은 것으로 봤다. 피가 단순히 붉기 때문이 아니다. 동양은 현대 의학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과 똑같은 의학적 지식을 이미 터득하고 있었던 셈이다. 심장이란 혈관 운동의 중심이다. 심장이나 혈관 질환이 의심되면 대추, 오미자, 구기자 등을 약재로 썼다. 노란색은 위장과 관련된 것이다. 위장병 환자에겐 호박죽이나 노란 벌꿀로 소화 기능을 향상시키는 처방을 했다. 초록색은 간장과 쓸개에 작용하는 것으로 본다. 동물의 쓸개즙이 초록색인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초록색 채소의 엽록소는 간의 해독에 좋고 피부를 맑게 한다. 검은색 식품은 신장(콩팥)을 건강하게 한다. 남성의 전립선이나 여성의 자궁 질환에 관련된 것이다. 성 기능을 높이고 자궁암 등을 예방한다. 뼈까지 모두 검은색인 오골계를 강장 식품으로 여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은쌀과 콩 등은 탈모에도 좋다. 여기서 전통 의학은 검은색과 보라색을 하나의 색으로 봤다. 실제로 안토시아닌 성분은 보라색 채소와 검은색 식품에 공통적으로 함유돼 있기 때문에 굳이 분리될 이유가 없다. 대신에 전통 의학은 흰색을 5가지 색에 포함했다. 흰색은 폐와 기관지에 작용하는데 식품으로는 무, 양파, 파, 마늘, 도라지, 배 등이 있다. 기침이 심하면 도라지를 약재로 썼고 무즙이나 배즙을 먹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꼭 챙겨야 하는 과일과 채소의 5가지 색은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검은색 그리고 흰색이다. ●5색 과일 채소 외에 필요항 또 하나의 색은 흰색 그런데 한국인은 육류를 즐기는 서양인에 비해 김치 등 채소를 많이 먹어서 건강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리가 많이 먹는 식품이 너무 흰색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빨간색의 경우 토마토를 아무리 많이 먹는다고 해도 서양인처럼 각종 음식에 토마토를 쓰지는 못한다. 토마토는 지용성 채소라 과일처럼 날것으로 먹는 것보다 올리브오일 등을 넣거나 불에 살짝 익히는 게 좋다. 또 초록색과 검은색 식품은 어느 정도 먹는다고 해도 노란색의 바나나나 보라색의 포도 등을 그리 많이 섭취한다고 볼 수 없다. 반면 서양인의 보라색 식품 섭취량이 많은 이유는 포도로 담근 와인을 매일 조금씩 즐기는 덕분이다.  <능금> 시인 김춘수  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한국대표 藥이야기] 광동제약 ‘우황청심원’

    [한국대표 藥이야기] 광동제약 ‘우황청심원’

    ‘한국의 우황청심원을 먹고 골프를 치면 3~4타를 줄일 수 있다?’ 광동제약의 우황청심원은 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 골프 명약으로 통했다. 확인되지 않은 ‘낭설’의 근원에는 당시 일본 니토 약품공업의 기타오 세이지로 회장이 있었다. 국내 우황청심원 시장은 2000년대 중반까지 솔표로 알려진 조선무약과 거북표 광동제약이 1, 2위를 다퉜다. 광동제약이 후발 주자다. 뒤늦게 우황청심원 개발에 뛰어든 광동제약의 창업주 가산 고 최수부 회장은 1973년 12월 우황청심원 제조 허가를 취득해 1974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다. 좋은 재료만 고집한다는 ‘최씨 고집’이 통했던 걸까. 좀처럼 수출의 기회를 잡지 못했던 최 회장은 1980년대 초반 약사회 민관식 회장을 통해 기타오 회장을 만난다. 가산은 미리 준비해 간 우황청심원을 건넸다. 얼마 후 가산을 다시 만난 기타오 회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우황청심원을 먹었더니 ‘골프 샷이 부드러워지고 라인도 잘 보여서 평소보다 4~5타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였다. 그는 90세의 나이에도 주말마다 라운딩을 즐기는 골프광이었다. 니토 약품과 수출 얘기가 오갔고 ‘한국 우황청심원=골프 명약’이라는 입소문도 났다. 순탄치는 않았다. 당시 일본은 우황청심원의 주재료인 사향(사향노루의 향주머니인 향낭을 말려 만든 생약 제제)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사향이 함유된 우황청심원도 당연히 수입이 불가능했다. 니토의 배신도 뼈아팠다. 니토는 우황청심원의 수입이 여의치 않자 광동제약에 일언반구 없이 중국 기업의 우황청심환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중국이나 홍콩의 우황청심환과 자주 혼용해 쓰이고 있지만 우황청심원은 이들과 재료도 효능도 판이하게 다른 순수 우리 약이다. 우리 약에는 사향을 비롯해 소 쓸개에 병이 생겨 뭉친 우황을 중심으로 30여개의 생약 제제가 들어간다. 반면 중국, 홍콩산 등은 우황 외 5종, 당귀 외 9종 등이다. 급기야 최 회장은 일본 후생성 고위 공직자들을 비롯해 약정 국장을 찾아다니며 직접 우황청심원을 건넸다. 그리고 1년 8개월 만인 1990년 7월. 마침내 광동제약은 거북표 우황청심원의 정식 수입 허가를 받는다. 판매는 1992년 2월부터였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우황청심원을 생산해 왔던 조선무약은 90년대 중반 ‘제비 몰러 나간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야’라는 고 박동진 명창의 구성진 소리를 앞세워 우황청심원의 전성기를 열었지만 2001년 경영 악화로 인한 첫 부도에 이어 현재 기업 청산 수순을 밟고 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우황청심원의 효능 우황청심원의 역사는 4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613년 발간된 동의보감 잡병편 풍 항목을 들여다보면 입과 눈이 비뚤어지고 손과 발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할 때, 가래가 끓고 졸중풍이 왔을 때 쓴다고 돼 있다. 최근에는 중요한 시험 등 거사(?)를 앞두고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우황청심원을 먹고 마신다. 고혈압, 협심증에도 도움이 된다. 크게 씹어 먹는 환과 마시는 액제 타입 두 종류가 있는 데, 효능은 비슷해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된다. 다만 약재의 효능이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복용 시 신경이 과도하게 안정되면서 졸음이 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 [언론인 김호준이 본 유라시아의 들꽃, 고려인의 파노라마] (상) 대륙 개척의 전위

    [언론인 김호준이 본 유라시아의 들꽃, 고려인의 파노라마] (상) 대륙 개척의 전위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 8월 ‘유라시아 친선특급열차’가 아시아·유럽 두 대륙을 달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2년 전 발표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따라 미리 가 보는 길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횡단 철도를 거쳐 베를린까지 이어지는 장장 1만 4400㎞의 대장정이었다. 150년 전부터 우리 동포들은 그 길을 따라 디아스포라의 수난을 겪으면서도 근면과 교육열로 다시 일어섰다. 대륙 곳곳에 똬리를 튼 우리 동포들의 어제와 오늘을 ‘유라시아고려인 150년’의 저자이자 이 특급열차에 동승했던 언론인인 김호준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의 집필로 3회에 걸쳐 조명해 본다. 고려인은 구소련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를 가리키는 말이다. 고려인이란 호칭은 한민족의장혈통을 지니고 있지만 남한의 한국인도, 북한의 조선인도 아니라는 함의가 크다. 과거엔 주로 ‘조선인’이라고 불렸던 이들은 냉전 종식 후 자신들의 호칭을 ‘고려인’으로 통일시켰다. 양분된 조국과 관련해 그들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호칭이다. 고려인은 우리 민족사에서 ‘북상(北上)개척’을 선도한, 대륙 진출의 선구자다. 고구려·발해 멸망 이후 비좁은 한반도에 갇혀 살던 한민족의 지평을 저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으로 넓힌 주역이 바로 고려인이다. 고려인의 러시아 이주는 제국주의 시대인 1863년에 시작되었다. 그때 기근과 봉건적 탐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선의 콜럼버스’ 최운보 양응범이 이끈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두만강 너머 연해주로 이주해 정착했다. 1902년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로 태평양을 건넌 하와이 이민보다 39년이나 앞선, 우리 근현대사 최초의 국외 진출이다. 구한말 연해주고려인 사회는 만주, 용정과 함께 항일 구국투쟁을 선도한 해외기지였다. 조선 강점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한 곳이, 1919년 3·1운동 후 최초로 임시정부를 세운 곳이 연해주다. 고려인들은 연해주에서 70여년간 민족공동체를 운영하며 블라디보스토크를 주도(州都)로 하는 고려공화국 건립 운동을 벌였다. 비록 소련의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이 운동 역시 역외 건국운동의 효시다. 1937년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는 해외 한인이 겪은 시련 가운데 가장 큰 아픔이다. 강제 이주에 앞서 스탈린은 고려인의 저항을 막기 위해 지도층 2500명을 무더기로 체포, 일본 간첩이란 누명을 씌워 처형했다. 적성(敵性)민족으로 몰린 고려인 18만명은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에 내던져졌다. 그때 처형, 기아, 질병 등으로 희생된 고려인은 총 1만 6500여명에 달했고 그들이 원동에서 살던 606개 촌락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이런 참담한 역경 속에서도 중앙아시아고려벌들은 근면을 바탕으로 농업의 성공 신화를 쓰며 소련 제1의 소수민족으로 우뚝 섰다. 당시 소련이 세계에 자랑한 모범농장 폴리트오트젤과 김병화 농장 등은 모두 고려인이 운영한 집단농장이었다.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탄생한 15개 민족공화국의 소수민족 차별은 고려인의 이동을 촉발했다. 이슬람 문화권인 중앙아시아에 살던 고려인 10만 명이 슬라브 문화권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 이주했다. 그 결과 최대 20여만명을 헤아리던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수는 13만명 수준으로 격감했다. 내전이 터진 타지키스탄에선 고려인 사회가 무너져, 한때 1만 3000명에 달했던 인구가 이젠 60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현재 고려인 최다 거주국인 러시아의 고려인 인구는 공식통계상 15만명이다. 무국적자와 불법체류자를 포함하면 2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 카자흐스탄에 10만 3000명, 키르기스스탄에 1만 7000명, 우크라이나에 1만 2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총 48만명에 달하는 고려인은 유라시아 대륙의 대표적인 분산민족이다. 고려인은 대륙의 어디든 없는 곳이 없다지만 그렇다고 민족자치를 거론할 만큼 다수파로 밀집해 사는 곳도 없다. 광활한 대륙에 마치 하늘의 별처럼 점점이 흩어져 살고 있는 것이 고려인이다. 고려인들은 19세기 말 이래 시베리아철도를 따라 서진(西進)을 계속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꾸준히 넓혀 왔다. 최근에는 러시아 남부와 볼가 강 유역으로 뻗어나가 그곳에 새로운 고려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모스크바 등 대도시 지역의 고려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사안이다. 이렇게 우리 동포의 생활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려인들은 기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국 해방을 위해, 또 탄압과 차별 때문에 유랑을 계속했지만 그것만이 동인(動因)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려인에겐 일찍부터 글로벌시대에 걸맞은 진취성, 모험성, 개방성 등이 있었다. 그것이 고려인들로 하여금 광활한 유라시아를 떠돌며 한민족의 영역을 넓혀 나간 저력의 근원이 아니었을까.
  • [심재억기자의 헬스토리-13] 건강검진을 위한 네 개의 팁

    [심재억기자의 헬스토리-13] 건강검진을 위한 네 개의 팁

     우리 국민들의 건강 상태가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나아질 것입니다. 이는 의문의 여지없이 우리 의료 수준의 향상과 궤를 같이 합니다. 특히 국가 정책으로 자리잡은 건강검진의 기여가 크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 일반 수검자 입장에서 보면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국민 건강 수준에 맞춰 검진 내용을 좀 더 충실하게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일반 의료기관의 검진도 마찬가지입니다. 개개인이 일상적으로 체크하는 항목은 필요한 사람만 검사하되, 질병의 발생 추이나 바뀐 생활패턴에 맞춰 필요한 항목을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언입니다.  우리 국민은 기준 연령이면 누구나 매년 무료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생애 주기에 따라 정밀검진도 가능합니다. 건강검진이 부모님께 드리는 선호도 높은 효도선물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막상 건강검진을 받으려고 하면 검사하는 병원이나 검사 비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검사항목이 다양해 헷갈리기만 합니다. 연령과 성별, 신체적 특성, 생활 방식이나 가족력 및 병력 등을 고려해 특정인에게 어떤 검사가 필요한지를 가리는 일이 간단하지 않다는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사실, 가장 바람직한 건강검진이라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일률적 검진보다 개인별 특성을 고려한 검진 설계가 먼저 이뤄져야 하겠지요. 또 일반적인 건강검진 항목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세상의 변화에 맞춰 반드시 짚어야 할 점도 있습니다. 고령화 추이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수명은 빠르게 늘어가는데, 사는 일이 ‘골골 칠십’이라면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노후가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검사항목을 네 가지만 짚어보겠습니다. 물론, 이런 제안이 건강검진의 충실도를 더해 건강한 삶의 초석을 다지자는 의도이지 지금까지 받아온 건강검진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 덧붙입니다.    ●심장을 살리는 ‘NT-proBNP검사’  나이가 들면 당연히 심장 기능에 문제가 생깁니다. 스스로 알던, 모르던 노화 등 다양한 요인으로 심장의 수축력, 즉 펌핑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지요. 이런 문제 중에 심부전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이 있습니다.  온몸을 돌아 심장으로 모이는 피를 다시 뿜어내는 일은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핵심적인 생리활동입니다. 그런데, 심장이 혈액을 제대로 뿜어내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전신에서 심장에 응급신호를 보내 산소와 영양분의 빠른 보급을 독촉할 것이고, 다급해진 심장은 더 빠르게 박동하게 됩니다. 그렇게 심장의 운동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면 심장이 커지는 비대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해 혈액순환 부조에 빠지게 되고, 이 때문에 정체된 체액이 폐조직으로 스며들어 폐부종을 유발합니다. 이런 상태를 심부전이라고 하지요.  심부전의 유병율은 보통 1∼3% 정도이지만, 일단 심부전이 온 상태에서는 관상동맥증 위험율이 70%까지 높아집니다. 만약 협심증 등 심혈관질환을 가진 사람이라면 심부전으로 발전할 확률이 무려 60%나 되지요. 그렇다면, 답은 간단합니다. 심장질환자나, 고혈압·비만 등 위험 요인을 가진 고위험군이라면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어떤 일이 있어도 심부전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관리를 해야 합니다.  의료 용어 중에 바이오마커(biomarker)라는 게 있습니다. 단백질이나 DNA, RNA, 또는 대사물질 등을 이용해 체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인데, 이걸 활용하면 인체의 병리적인 상태를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어 암이나 뇌졸증, 치매 등의 진단은 물론 신약 개발에도 두루 활용되고 있지요. 이 방법으로 심혈관질환 고위험군의 건강 상태를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제시되고 있습니다.  특히, 심장질환과 관련해 바이오마커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지질검사 목적으로 시행하는 고지혈증검사는 물론 ‘NT-proBNP’라는 검사법을 활용해 심장의 기능을 정확하게 측정, 평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장의 심실에서 혈관으로 방출되는 물질인 NT-proBNP는 심장이 약해져 기능에 문제가 생길 경우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많은 양이 방출됩니다. 다시 말해, 심장이 과부화 상태가 되면 혈액 속의 NT-proBNP 양이 늘어나는데, 바로 이 특성을 이용해 심부전을 조기에 찾아내는 것이지요.  따라서, 혈액 속 NT-proBNP의 양을 측정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쉽게 심장 기능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중장년 연령대에 심혈관질환이 의심되거든 주저하지 말고 NT-proBNP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합니다. 간단한 혈액검사로 이뤄져 번거롭지 않고, 비용 부담도 크지 않습니다. 이런 간단한 검사로 심부전을 잡아낼 수 있다면 이후의 삶이 달라질테니까요.    ●난소암 조기진단과 표지자 ‘HE4’  2012년 국가 암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사망률 기준 10대 암 중에서 난소암과 자궁경부암은 각각 3.3%를 차지해 8위와 9위에 올라 있습니다. 또 2013년의 여성 10대 암 사망분포를 보면 난소암과 자궁경부암이 각각 3.7%와 3.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발생률과 사망률에서 8∼9위의 뒷자리에 있지만, 어쩌면 그것이 더 치명적인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앞 순위의 암은 경각심이라도 일으키지만, 뒷쪽 암들은 그런 경계의식마저 피한 채 야금야금 영역을 넓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암은 병기에 따라 1∼4기로 구분했지만, 최근에는 1기보다 더 이른 상태인 0기를 따로 넣어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진단기술의 발전과 ‘조기 발견, 조기 치료’의 중요성을 감안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0기 암이 문제입니다. 암은 암인데, 아직은 전이도 없고, 크기가 워낙 작아 CT나 MRI, PET 등 첨단 영상진단으로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의료계에서 0기를 주목하는 것은 비록 조기 상태이지만 틀림없는 암이고, 이를 암으로 특정한 진단 방법을 신뢰하기 때문이지요. 이렇듯 0기 암의 확인을 가능하게 한 진단방법이 바로 혈액학적 진단입니다.  의료인들의 일치된 견해는, 암을 이른 시기에 찾아낼 수 있다면 대부분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조기 발견이야말로 암을 이겨내는 가장 중요한 접근법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진단이 가능한 범주에서 보자면, 0기 상태에서 암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어려움이 따릅니다. 난소암의 경우 ‘침묵의 살인자’라고 할만큼 조기 진단이 어렵습니다. 특별한 자각증상 없이 은밀하게 병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환자의 절반 가량이 완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3∼4기가 되어서야 병원을 찾습니다. 뒤늦게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을 때는 이미 암이 복막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경우가 많아 그만큼 치료가 어렵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모든 암은 병기가 늦을수록, 즉 말기로 갈수록 생존률이 크게 낮아집니다. 초기인 1기에 발견됐다면 5년 후 생존할 확률이 76∼93%로 아주 높습니다. 하지만, 2∼3기가 되면 이 확률은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게다가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의사들이 평소에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라고 권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은 피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모든 암이 그렇듯 난소암 역시 조기 진단이 최선의 치료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런 난소암을 찾아내기 위해 많은 여성들이 건강검진 때 질 초음파나 혈액 속 종양표지자인 ‘CA125’의 수치를 확인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CA125 검사로 모든 난소암을 찾아내기는 어렵습니다. 특이도가 낮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이를 보완할 다른 종양표지자들을 찾아내는 연구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지요.  지금까지의 국내외 연구를 종합하면, 종양표지자인 CA125의 수치 확인 방법에 ‘HE4’ 검사를 병용하는 것이 최선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HE4와 CA125의 조합해 사용했더니 폐경 전후 여성의 골반 종괴(혹)의 악성 여부를 보다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CA125가 가진 검사상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두개의 표지자를 각각 따로 사용할 때보다 악성 종양을 훨씬 정확하게 감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만큼 난소암을 찾아낼 가능성을 높였다는 뜻이지요.  권위있는 해외 연구에 따르면, 이들 표지자를 조합해서 난소암을 검사할 경우 95%의 특이도와 86%의 민감도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정도면 악성종양의 진단과 치료에 HE4와 CA125를 병용해야 하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정확한 당뇨 진단과 당화혈색소  당뇨병은 정말 무섭습니다. 일단 합병증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성난 들소처럼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족부 궤양으로 다리를 절단하는가 하면 누구에게서는 시력을 앗아가고, 또 어디에서는 치아가 우수수 주저앉거나, 혈관병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2012년 국내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를 살펴보니, 당뇨병으로 인한 사망이 인구 10만 명당 23명이나 됩니다. 이는 질환 사망원인 중 5위에 해당되는 수치입니다.  잘 알려져 있지만, 당뇨는 췌장의 인슐린 분비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인슐린 기능이 이상해 혈당이 치솟고, 이 상태를 통제하지 못해 이런 저런 합병증을 만드는 질환이지요. 당뇨병의 중요한 합병증으로 꼽히는 망막 및 신장질환, 심혈관질환의 발생은 평소의 고혈당 상태, 그리고 유병 기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당뇨병 환자라면 꼼꼼한 혈당 조절을 통해 심혈관질환은 물론 망막질환으로 인한 실명, 신부전으로 인한 콩팥 기능 상실, 말초동맥 폐색에 의한 족부 절단 등 심각한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물론 자신의 몸이 당뇨병 상태로 진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임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당뇨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혈당 수치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혈당계에 찍히는 혈당치가 항상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 하면 변화의 폭이 큰 혈당치를 잘못 측정했다가는 자신의 몸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당뇨의 진행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혈당은 무엇을 먹었는가, 신체 활동은 어떻게 했는가 등에 따라 변화의 진폭이 큽니다. 이 때문에 정확한 당뇨 진단을 위해서는 검사 전 8시간 이상 공복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당에는 많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어느 한 시점의 혈당이 아니라 당뇨 진행 상태를 알아내기 위해 정확한 혈당을 측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하고, 또 어렵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최근에 주로 활용하는 당뇨 진답 방법이 바로 당화혈색소(HbA1c) 측정입니다. 당화혈색소란, 체내 적혈구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혈색소에 당이 결합된 형태를 뜻하며, 혈당이 높으면 당화혈색소 수치도 높아지지요. 이 당화혈색소를 검사하면 많은 요인들에 의해 변동이 생길 수 있는 혈당 변화의 추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진단 목적의 당화혈색소 검사에서는 최근 2∼4개월간의 평균 혈당치를 반영하기 때문에 장기간의 혈당 조절 상태를 파악하는데 아주 유용하지요. 다시 말해, 혈당검사는 측정 시기와 상황에 따라 측정치 차이가 있지만, 당화혈색소는 이런 요인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에 신뢰도 높은 결과를 얻을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당뇨 진단이든, 관리 차원이든 공복 및 식후 혈당치 검사만 믿어서는 곤란합니다. 여기에 당화혈색소 검사 결과를 더한다면 가능한 편차를 보정한 진단이 가능해 훨씬 간편하고 정확하게 당뇨를 관리, 치료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비타민D의 위력 그리고 결핍  이 칼럼을 통해서도 얘기했지만, 적당한 햇볕을 받고 사는 일이야말로 몸과 마음 모두에 탁월한 선택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기를 쓰고 햇볕을 피하곤 합니다. 이런 현상이 물색없이 백인의 흰 피부를 열망하고 동경해서 생겼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냥 더워서라거나, 아니면 햇볕 알레르기 등 납득할만 한 이유도 없이 단 몇 분 정도 햇볕에 드러내는 일까지 꺼린다면 건강을 잃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가끔 공원이나 강변에 나가보면 마치 중세 기사의 투구처럼 얼굴을 감싼 마스크를 하고 운동을 하는 여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햇볕을 피하기 위해 두껍게 선크림을 바르고, 선글라스에 모자와 긴팔 옷을 입는 등 거의 중무장 수준입니다. 물론, 개인의 선택이고, 나름 이유가 있을테지만, 보편적으로 우리 국민들의 햇볕 기피현상은 유별납니다.  이처럼 햇볕을 피하는 이유는 자외선 때문일 것입니다. 기미를 만들어 미용 부담을 키우고, 피부 노화를 촉진하며, 드물게는 피부암을 유발하는 주범이 자외선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라면 확실히 지나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피부암은 가장 위험한 요인이 유전이며, 우리나라는 서구와 달리 햇볕 때문에 피부암이 생긴 사례가 흔치 않습니다. 또 설령 피부암이 생겼다고 해도 과다한 햇볕 노출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특정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유전성에다 환경 요인 등 복합적인 인과성을 가진 병증을 두고 햇볕 때문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있을까요?  기미도 그렇습니다. 오랜 세월 멜라닌 색소가 침착돼 기미가 된다는 것은 알지만, 햇볕을 즐기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며, 설령 햇볕에 의해 기미를 얻을지라도, 햇볕에서 얻어야 할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바로 비타민D 때문입니다.  비타민D는 햇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이 중에서도 인체 생리작용과 관련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D2, D3의 경우 전구물질, 즉 비타민D로 합성되기 직전의 상태로 체내에서 대기하다가 자외선을 받으면 비로소 D2와 D3로 바뀌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체내에 아무리 전구물질이 많아도 필요한만큼 햇볕을 쪼여주지 않으면 말짱 ‘꽝’인 것이지요.  비타민D는 칼슘 흡수에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하고, 뼈를 구성하는 칼슘과 인의 결합을 촉진하며, 체내 면역력을 높이는 게 핵심적인 기능입니다. 또, 최근 제시된 연구 결과를 보면, 폐암 전립선암 대장암 난소암 췌장암 등 각종 암의 발병을 억제한다고 알려져 새삼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아마 비타민D가 가진 면역력 강화 기능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비타민D는 음식물을 통해 섭취하는 양이 매우 적은 대신 햇볕을 받아야만 체내 합성이 되는 아주 특이한 영양소입니다. 실제로, 인체가 하루에 필요로 하는 비타민D는 4000IU 정도인데, 이 중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양은 이의 10%인 400IU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0%는 햇볕을 받아야만 합성이 됩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현대인들의 비타민D 결핍상태는 심각합니다. 특히 골다공증을 가진 폐경기 이후의 여성 중 절반 이상이 비타민D 결핍으로 조사돼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의사의 처방을 받아 따로 비타민D 제제를 복용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근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햇볕 속으로 나서야 합니다. 어렵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피부의 햇볕 감수성이나 노출 넓이 등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얼굴과 목덜미, 팔목이 드러난 상태에서 30∼40분만 햇볕을 쪼여도 필요량을 합성할 수 있다니 귀담아 들을 대목이지요.  문제는, 최근 들어 비타민D 결핍 문제가 중요한 건강 이슈로 부각되고 있고, 덩달아 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건강검진에서 이를 정확하게 체크하는 병원이나 검진기관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아직 필요가 수요를 창출하지 못한 단계라고 해야 할까요.  따라서 중년을 지나 갱년 단계로 접어드는 연령대라면 건강검진 때 일부러라도 비타민D 수치를 확인해 볼 것을 권합니다. 비타민D 결핍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25-하이드록시 비타민D’의 혈중 농도를 측정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측정은 혈액검사로 가능합니다.  노후의 건강이 걱정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이 들어 찾아오는 병은 병이 아니라 저승사자’라는 말도 있지만, 그렇게 체념하거나 포기할 일은 아니지요. 장수 시대, 살아갈 날이 아직도 많이 남았습니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혈당이나 혈압, 콜레스테롤 체크하듯이 비타민D 혈중 농도도 주기적으로 체크할 일입니다. jeshim@seoul.co.kr
  • 추석 상차림 걱정되네

    추석 상차림 걱정되네

    추석을 앞두고 농축수산물 가격이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째 0%대를 이어 가고 있지만 8월 농축수산물값은 1년 전보다 3.4% 올랐다. 지난 7월에도 3.7% 상승했다. 통계청이 1일 내놓은 8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0.7% 올랐다.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1년 전보다 2.1% 상승해 8개월째 2%대를 나타냈다. 품목별로는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양파가 무려 74.2%나 급등했다. 반면 등유(-26.4%)와 자동차용 LPG(-22.5%), 경유(-20.1%), 휘발유(-16.0%) 가격은 저유가 영향으로 많이 떨어졌다. 전셋값은 3.9%, 월세는 0.3% 올랐다. 공공서비스 요금도 1.9% 상승했다. 김보경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가뭄 영향은 거의 사라졌고 무더위 영향으로 채소값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감염병 긴급상황실 24시간 운영… 대형병원 음압병실 의무화

    감염병 긴급상황실 24시간 운영… 대형병원 음압병실 의무화

    신종 감염병에 무방비로 당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교훈 삼아 24시간 연중무휴 감염병 정보를 수집하고 감시하는 긴급상황실이 질병관리본부에 설치된다. 질병관리본부장은 차관급이 맡아 감염병 발병 시 방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 정부는 1일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메르스 후속 대책의 일환으로 이런 내용의 국가방역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메르스 후속 조치 일환으로 마련 개편안은 신종 감염병 국내 유입을 차단하고 감염병이 퍼지더라도 조기에 종식되도록 즉각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질병관리본부를 개편해 무너진 방역 체계를 바로 세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우선 정부는 방역 당국 내 감염병 정보를 분석할 전문가가 부족해 메르스 유입 가능성을 낮게 봤으며, 한정된 정보만 접한 탓에 ‘2m 이내 1시간 이상 접촉’이란 협소한 기준으로 메르스 접촉자를 선정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진단했다. 이를 개선하고자 질병관리본부에 국제협력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해외 전문기관과의 인적 교류를 제도화해 국제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검역관도 확충한다. 검역관 1명이 1600명에 대한 검역을 책임지는 현재의 인적구조로는 신종 감염병을 유입 단계에서 제대로 차단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감염병 위협에 신속히 대응하고자 365일 24시간 운용하는 ‘긴급상황실’(EOC)도 질병관리본부에 설치한다. 긴급상황실은 평시에 감염병 정보를 수집·감시하다가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즉각대응팀을 현장에 보내고 관련 기관에 상황을 전파하는 지휘통제소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장에 파견된 즉각대응팀은 시·군·구 보건소 공무원과 감염병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현장방역본부를 지휘한다. 현장방역본부는 현장에서 전결권을 갖고 필요하면 병원과 교통을 통제할 수 있다. 감염병이 들어와 확산되면 격리가 확실하게 이뤄지도록 각 시·도는 의무적으로 임시격리시설을 지정해야 한다. 메르스 사태 때는 방역 당국이 격리 시설을 지정할 법적 근거가 없어 메르스 접촉자 대부분이 자택 격리됐다. 그러다 보니 격리 중 골프 여행을 가거나 동네 의원을 전전하는 사례도 있었다. 국립중앙의료원을 중앙감염병전문병원으로 지정하고, 권역별로 전문치료병원을 두는 방안도 포함됐다. 전문치료병원 설립비와 운영비는 국가가 지원하되 신종 감염병이 발생하면 즉시 동원한다. 300병상 이상 대형 병원은 일정 수의 음압격리병실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감염병관리실 설치 병원 확대 감염병 관리를 전담하는 ‘감염병관리실’ 설치 대상 병원도 현행 200병상 이상에서 150병상 이상으로 차츰 확대한다. 전국에 191명뿐인 감염병전문의사도 늘릴 계획이다. 또 응급실 과밀화를 막고자 진료비 부담을 높여 경증 환자가 손쉽게 응급실을 찾지 못하게 하고, 응급실 입구에서부터 감염위험 환자를 선별 진료하도록 했다. 응급실을 통해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퍼진 삼성서울병원은 응급실 과밀화 지수가 133.2%였다. 병상은 100개뿐인데 환자는 133명이 몰려 복도나 의자에서 대기한다는 의미다. 질병관리본부의 모습도 달라진다. 우선 본부장은 현행 실장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되고 인사권과 예산권을 갖는다. 질병관리본부 내에 국제협력, 대외협력, 기획을 담당하는 부서도 설치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조직체계상 복지부에서 독립하지는 않지만 감염병을 통제할 실질적인 권한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학조사관도 늘리고 정규직 비중도 확대한다. 역학조사관은 현재 34명뿐인데 이마저도 정규직은 2명뿐이다. 32명이 공중보건의사다 보니 의무복무 기간이 끝나면 떠나 전문성이 쌓이기 어려운 구조였다. 정부는 앞으로 3년간 매년 20명 이상을 정규직으로 채용해 정규 역학조사관 64명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위기소통 전담 부서도 신설한다. 질병관리본부 예산 규모도 늘릴 계획이다. 문제는 예산 확충, 인력 확대를 위한 복지부와 행정자치부, 기획재정부 등의 협의가 아직 진행 중이란 것이다. 복지부는 이날 정부 합동으로 개편안을 발표하긴 했으나 예산을 얼마나 늘리고 인력을 얼마나 확충할 것인지 구체적인 수치까지 밝히진 않았다. 협의 과정에서 축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질병관리본부장이 감염병 관리 시스템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기획 조정·국제협력·대외협력 등 조직관리 권한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면 인사권과 예산권이 있어 봤자 지금처럼 허약한 조직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질병관리본부의 역량을 강화해야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의료계 “실질적 조직관리 권한 부여해야” 엄중식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메르스 전파의 근원이었던 병원 내 감염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의료기관을 조사·감시하고 지원·육성하는 권한이 질병관리본부장에게 있어야 하는데, 정부안에는 질병관리본부 내에 병원감염 관리 전담 부서를 둔다는지 하는 구체적 내용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연말까지 개편안 추진을 위한 법안 정비를 마무리하고 하반기 중 음압격리병실 설치에 따른 수가(의료행위에 대한 대가)를 정비할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가능한 것은 연내부터, 적어도 내년부터는 상당 부분 시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물 알러지’에 고통받는 소년...‘물리 두드러기’ 아시나요

    ’물 알러지’에 고통받는 소년...‘물리 두드러기’ 아시나요

    흔히 알려진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아니라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목욕물이나 추운 날씨 등 지극히 평범한 자극에도 고통 받는 소년의 이야기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3년 전, 생후 겨우 3개월이었던 영국인 남자아이 해리 플로이드는 어느 날 새벽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난 채 울며 깨어났다.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어머니는 해리를 의사에게 데려갔지만 약 한 시간 사이에 증상은 모두 사라져 있었고 의사로서는 이에 아무런 진단을 내릴 수 없었다. 어머니는 별 수 없이 집에 돌아와 한동안 스스로 해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관찰 결과 목욕을 할 때마다 해리에게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 분명했다. 처음에 리사는 샴푸나 비누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물로만 씻었을 때도 해리의 두드러기는 여전히 일어났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물에만 반응했던 해리가 추운 날씨 및 더운 날씨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 걱정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리사는 많은 돈을 들여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찾았다. 진료를 받을 때 마침(?) 해리에게는 또 발진이 일어난 상태였다. 해리의 심각한 상태를 눈으로 확인한 전문가는 해리가 ‘물리 두드러기’(physical urticaria)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물리 두드러기는 만성 두드러기의 일종으로, 더운 날씨, 추운 날씨, 과격한 운동, 피부에 가하는 압력, 물, 햇빛 등 수많은 원인에 의해 촉발될 수 있다. 반응이 일단 일어나면 아주 작고 가려운 두드러기가 나타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겨 의사에게 진단을 받지 않는다. 또한 반응을 일으키는 요소가 지극히 일상적인 까닭에 많은 환자가 엉뚱한 곳에서 원인을 찾기 일쑤다. 해리의 진단을 처음 맡았던 의사도 바이러스 감염이나 음식 알레르기 등에 의한 것이라는 오진을 내렸었다. 해리는 다행히 항히스타민제를 처방받아 꾸준히 복용한 결과 현재는 병세가 많이 호전된 상태다. 다만 해리의 부모는 급성 발진이나 쇼크 상황에 대비해 스테로이드 약제 및 아드레날린 주사기를 항상 들고 다녀야 한다고 전했다. 영국 현지 피부외과의사 카스텐 플로어는 “물리 두드러기 등의 만성 두드러기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방해하는 요소” 라고 말한다. 런던에 위치한 의료재단에서 일하는 그는 “두드러기 때문에 생업을 도중에 중단하고 병원을 찾아온 사람을 매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플로어에 따르면 아직 의사들은 물리 두드러기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많지 않다. 그는 “그동안 물리 두드러기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취급돼 왔지만 다행히 최근엔 그러한 추세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며 “이 질병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이 촉구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데일리메일 캡처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파리 노트르담성당의 무량보주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파리 노트르담성당의 무량보주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서양 미술에는 로제트(rosette)라는 국화같이 생긴 조형이 있다. 문양집에는 ‘장미’항(項)에 로제타 조형이 들어 있다. 실제로 로제트라는 말은 장미(rose)의 축소형이지만 무늬에만 쓴다. 그런데 장미와 로제트는 조형이 전혀 다른데 왜 이런 오류로 혼란을 일으킬까. 로제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1. 장미꽃 모양의 다이아몬드 2. 땅 위에 붙어 방사상으로 퍼져 나는 잎. 또는 잎이 그러한 모양으로 나는 식물 3. 꽃잎을 방사상으로 그린 둥근 모양의 장식 등의 뜻이 있지만 장미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세계 학자들이 로제트라고 부르는 조형을 살펴보면 ‘꽃잎을 방사상으로 그린 둥근 모양의 장식’을 일컫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화나 연꽃 모양에 가깝다. 그런데 꽃의 모양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국화 모양이고 연꽃 모양이다. 그런데 왜 이런 조형이 세계 곳곳에 보편적으로 있을까. 그렇다면 로제트의 순수 조형은 어느 특수한 식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보편적인 상징을 띠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로제트라는 조형은 고대 아시리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인도, 한국 등에 널리 퍼져 있다. 그 가운데 고딕 성당의 거대한 투명 원형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로제트 창’이라 부르지 않고 ‘장미 창’이라 잘못 부르고 있다. 즉 장미와 로제트는 전혀 다른데 이처럼 큰 오류는 어찌 된 것일까. 동양에 이르면 같은 조형을 보고 ‘국화’라고 부른다. 그 조형이 만일 보편적인 상징을 띤다면 특정한 장미가 아니듯 특정한 국화가 아닐 것이다. ●고대 아시리아, 이집트, 그리스에 널리 퍼진 ‘로제트’ 조형 어느 날 ‘꽃잎을 방사상으로 그린 둥근 모양의 장식 무늬’를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침내 채색 분석을 하다가 이렇게도 시도할 수 있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용기와 결단성이 없으면 어렵다. 위아래 조형은 다르나 같은 개념이다①. 즉 로제트나 국화 모양은 중앙에 보주가 있고 주변에 보주가 둘려 있는 무량보주가 된다. 그런데 동양에서와 마찬가지로 BC 700~600년 그리스 항아리에 그려진 신화 배경에 중앙에 보주가 있고 주변에 보주가 둘려진 무량보주들을 보고 놀랐다②. 조선 불화의 검은 하늘에 있는 무량보주와 똑같았기 때문이다③. 즉 로제트의 채색 분석에서 중앙의 보주와 주변의 보주들만 남기면 무량보주가 되는데 그저 정적인 상태가 아니고 주변으로 무한히 확산하는 역동적인 보주의 무량한 확산이 된다. ●채색 분석에서 중앙·주변 보주만 남기면 ‘무량한 확산’ 우리 교육 과정은 지식의 수집에 익숙해 인식의 문제는 등한시하는 것 같다. 인식은 끝없는 체험의 과정이다. 이 연재는 학교 교육 과정에 배우는 것처럼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조형의 인식 과정을 쓰지 않을 수 없으므로 간혹 중대한 것을 발견할 때마다 감성적 표현을 아니 할 수 없다. 특히 조형예술 분야는 요즘 에피소드 중심의 답사기가 유행하면서 인식 면에서는 오히려 퇴보해 가는 것 같다. 위대한 조형예술 작품을 대하면 놀라기도 하고 감동을 느낀다. 인간은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감성이라는 것을 지니고 있지만, 상대 개념인 이성과 균형과 조화를 지키지 않으면 미술사학은 연구할 수 없다. 감성이 결핍돼 있는 사람은 작품 앞에서 아무 느낌이 없어서 감성적 표현을 부정하기까지 한다. 놀라거나 감동을 받지 않으니 작품의 진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성과 이성의 분별이 어디 있으랴. 만물생성의 근원인 ‘무량보주’라는 용어는 필자가 만들었으나 요즈음 ‘보주의 무량한 확산’이라고도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새로이 느낀다. 처음에 이른바 로제트의 조형언어를 채색 분석하기 시작하면서 직감이지만 방사선으로 뻗어나간 긴 잎은 잎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긴 잎 모양의 끝 부분 안에는 완벽한 원이 내재돼 있다는 확신이 들어 원을 그려 채색 분석해 보니 과연 완벽한 원이며 보주였다. 그리고 보니 중앙의 보주에서 많은 보주가 사방팔방으로 확산하는 조형이 아닌가. 그런데 과연 이렇게 해독해도 될까.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경이를 느꼈다고 해도 증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분명히 증명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 있었다. ●크노소스 궁전 천장에는 백제 동하총과 똑같은 연꽃 크레타의 수도 헤라클리온에서 5㎞ 남동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크노소스 궁전은 BC 1700년 건축됐으며, BC 1400년까지 이용됐다. 그 스타코 천장에는 놀랍게도 백제의 수도 웅진(공주) 능산리 왕릉 군 가운데 하나인 동하총(東下塚) 천장과 똑같이 연꽃같이 보이는 무량보주가 영기문과 하나가 돼 소용돌이치고 있다④, ⑤. 그리스 것은 양식화됐고, 백제 것은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이되 영기문은 형태는 다르나 모두 제1영기싹의 변형일 뿐이다. 크노소스 궁전이나 백제의 무덤이 모두 영기문에서 무량한 보주가 확산해 소우주인 궁전에 대생명력이 가득하고, 역시 소우주인 백제 왕릉 안에서 우주의 대생명력이 보주로 형상화돼 가득 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 놀랍다. 고구려 무덤벽화 천장에는 대부분 큰 연꽃이 그려져 있다. 왜 천장에 연꽃이 그려져 있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으며 아무도 의문을 제시한 사람도 없었다. 일본 학자들은 천장에 그려져 있으니 하늘에 있는 연화, 즉 천연화(天蓮花)라고 불렀고 아무 설명도 하지 못했으며 우리도 그 용어를 따랐다. 그러나 그 조형들을 수없이 그려 보고 채색 분석하면서 보주의 무량한 확산이라고 해독하고 나니 이 소우주인 무덤 안에 대우주의 대생명력을 보주가 가득하도록 천장에 조형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연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기와를 연구한 필자는 의문점이 많았다. 조형상의 연꽃잎에서는 한 개 혹은 두 개의 타원체 혹은 구체(球體) 모양이 생겨나고 있는데, 일본학계에서는 돌기가 하나 있으면 단판(單瓣·하나의 꽃잎)이라 부르고⑥, 두 개가 있으면 복판(複辦·많은 연꽃잎)이라 부른다⑦. 그런데 그 얇은 연잎에 그런 팽만감 있는 돌기가 따로 한 개 혹은 두 개가 있을 리 없으며, 그대로 쓸 것이면 복판도 쌍판(雙瓣)이라 불러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돌기는 하나이거나 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기와 연구가 가장 활발하다. 한국의 기와 전공자는 일본의 엄청난 연구 성과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기와의 조형과 상징의 본질이 새로이 밝혀진 지금 수백 년 연구 성과는 물거품이 돼 버리고 만다. 그런 가운데 한국의 와당 가운데 통일신라 월지 출토 수막새 조각은 연잎이 아예 없고 중앙에 보주가 있으며, 주변이 보주들로만 이루어진 것을 보고 놀랐다. 중국 북제의 와당을 보고는 더욱 그런 조형이 완벽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이것은 불교미술 연구의 대전환점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이런 기와들로 단판이나 복판이라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됐다. 더 나아가 넓은 잎 전체가 풍만해지면서 보주화하는 조형도 눈에 새로이 인식하게 됐다. 연꽃의 씨앗들만 보주가 되는 것이 아니고, 뜻밖에 연잎들도 모두 보주화해 가는 과정을 찾아내면서 큰 놀라움에 흥분했다. 이것은 세계미술사학 연구사에서 중대한 발견이기 때문이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도 같은 조형 중국 수나라 석불의 연화대좌를 보면 넓은 연잎에서 각각 두 개의 보주가 생겨나는 듯하다. 이것을 복판이라 했으니 그 말 자체가 틀리다. 필자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공부하면서 높이 5m에 이르는 드높은 석등을 매일 대하면서도 하대의 연잎에서 큰 반구형 보주가 생겨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것이 보주로 보인 것은 보주가 무엇인지 밝히고 난 다음이었다. 지난봄 건축학회 발표차 프랑스에 갔을 때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경악했다. 1190년 완성된 초기 고딕 양식의 웅장한 대성당 천장 바로 밑 부분에 화려하고 큰 영기창의 조형은 거대한 보주의 무량한 확산이었으며, 보주마다에서 성스런 조형들이 화생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다⑧. 그 조형을 단순화해 채색 분석하여 보니 와당에서 일어나는 보주의 무량한 확산과 똑같지 않은가⑨. 그 성당의 여러 장미창(Rose Window·실은 ‘보주창’이라 불러야 한다)은 조금씩 다를 뿐 모두가 보주의 무량한 확산을 보여 주는 조형이었다. ●그리스 문명 이전의 미케네 문명 발굴품, 한국 와당과 유사 그러면 서양에서는 언제부터 무량보주 혹은 보주의 무량한 확산의 조형이 만들어졌는가. 지난해 여름 아테네 국립박물관에서 그리스 문명 이전의 미케네 문명 발굴품을 보면서 완벽한 금제 무량보주 조형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런 금제 조형이 만들어진 곳은 그리스 남부 아르골리스의 선사시대 도시 티린스다. 이 문명은 BC 1400~1200년 절정을 이루었는데 출토품에서 눈을 의심할 만큼 우리나라 와당의 무량보주와 똑같은 조형을 보았다10. 연꽃의 꽃잎이 씨앗과 더불어 보주화돼 갈 뿐만 아니라 보주의 무량한 확산이라는 개념을 얻어 가는 과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동서양의 작품들을 발견할 때마다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세계 조형예술의 많은 부분이 풀리는 감동적인 시간들이었다. 대우주에 가득 찬 보주를 ‘보주에서 무량하게 확산하는 조형’으로 표현한 것은 동서양이 같았으나, 수천 년 동안 이 모든 무지와 오류들이 축적돼 온 것은 지금까지 보주의 개념을 알아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용에서 알아낸 보주이기에 용의 본질을 모르면 세계 조형예술은 풀리지 않는다. 서양에는 동양에서와 같은 용은 그리 많지 않으나 용성(龍性)을 지닌 조형들은 많기 때문에 ‘세계의 조형예술, 용으로 읽다’라는 연재의 표제가 가능했던 것이다. 서양에는 서양인들에게 보이지 않았던 용성을 지닌 조형들이 너무나 많아서 필자가 하나하나 소개해 나가는 동안 여러분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놀라움이란 철학의 시작이며, 인식의 극치에서 큰 놀라움을 체험한다.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 ‘물리 두드러기’ 아시나요?’물 알러지’에 고통받는 소년

    ‘물리 두드러기’ 아시나요?’물 알러지’에 고통받는 소년

    흔히 알려진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아니라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목욕물이나 추운 날씨 등 지극히 평범한 자극에도 고통 받는 소년의 이야기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3년 전, 생후 겨우 3개월이었던 영국인 남자아이 해리 플로이드는 어느 날 새벽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난 채 울며 깨어났다.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어머니는 해리를 의사에게 데려갔지만 약 한 시간 사이에 증상은 모두 사라져 있었고 의사로서는 이에 아무런 진단을 내릴 수 없었다. 어머니는 별 수 없이 집에 돌아와 한동안 스스로 해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관찰 결과 목욕을 할 때마다 해리에게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 분명했다. 처음에 리사는 샴푸나 비누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물로만 씻었을 때도 해리의 두드러기는 여전히 일어났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물에만 반응했던 해리가 추운 날씨 및 더운 날씨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 걱정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리사는 많은 돈을 들여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찾았다. 진료를 받을 때 마침(?) 해리에게는 또 발진이 일어난 상태였다. 해리의 심각한 상태를 눈으로 확인한 전문가는 해리가 ‘물리 두드러기’(physical urticaria)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물리 두드러기는 만성 두드러기의 일종으로, 더운 날씨, 추운 날씨, 과격한 운동, 피부에 가하는 압력, 물, 햇빛 등 수많은 원인에 의해 촉발될 수 있다. 반응이 일단 일어나면 아주 작고 가려운 두드러기가 나타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겨 의사에게 진단을 받지 않는다. 또한 반응을 일으키는 요소가 지극히 일상적인 까닭에 많은 환자가 엉뚱한 곳에서 원인을 찾기 일쑤다. 해리의 진단을 처음 맡았던 의사도 바이러스 감염이나 음식 알레르기 등에 의한 것이라는 오진을 내렸었다. 해리는 다행히 항히스타민제를 처방받아 꾸준히 복용한 결과 현재는 병세가 많이 호전된 상태다. 다만 해리의 부모는 급성 발진이나 쇼크 상황에 대비해 스테로이드 약제 및 아드레날린 주사기를 항상 들고 다녀야 한다고 전했다. 영국 현지 피부외과의사 카스텐 플로어는 “물리 두드러기 등의 만성 두드러기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방해하는 요소” 라고 말한다. 런던에 위치한 의료재단에서 일하는 그는 “두드러기 때문에 생업을 도중에 중단하고 병원을 찾아온 사람을 매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플로어에 따르면 아직 의사들은 물리 두드러기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많지 않다. 그는 “그동안 물리 두드러기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취급돼 왔지만 다행히 최근엔 그러한 추세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며 “이 질병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이 촉구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데일리메일 캡처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열린세상] 오락가락하는 에너지 정책/강태혁 한경대 교수·전 한국은행 감사

    [열린세상] 오락가락하는 에너지 정책/강태혁 한경대 교수·전 한국은행 감사

    지난 3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청정 에너지 계획’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앞으로 15년간 탄소배출량을 2005년 기준으로 32% 줄이고, 풍력이나 태양광 등 청정 재생에너지 비중을 28% 증대시킨다는 것이다. 에너지 소비는 인류 생존과 발전의 절대적인 요소다. 복지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이기도 하다. 그런데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면서 에너지 자원은 급속히 고갈돼 가고 있으며, 다른 한편 가장 중요한 에너지 자원인 석유·석탄의 소비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 반향으로 국제사회는 화석연료 사용 감축, 청정 재생에너지 생산 등 지구 살리기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시설이 됐든 가정생활이 됐든 에너지 소비 패턴은 매우 관성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에 한 번 길든 소비 패턴을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니 미국 정부는 탄소배출량 3분의1을 줄이는 데 15년이라는 장기간을 계획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에너지 정책이 소비 패턴을 바꾸려는 근본적 구조개혁보다 겉으로 나타난 현상을 뒤쫓아 임시방편적 대책으로 고비를 넘기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니 매년 반복되는 에너지 대책이 엄포성에 그치고 이렇다 할 성과 없이 겉도는 것 아닌가. 사례 하나. 지난 5일 서울시의 발표는 가히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진수였다. 서울시는 고급 택시제도를 시행하기로 하고 시범운영 차종을 발표했다. 놀라운 것은 시범운영 차종 2개가 모두 외국 고급 승용차라는 것이고, 그 이유는 국산차는 연비가 나빠서 탈락했다는 것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 자동차 생산 5대 강국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시의 교통정책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기름 값이 너무 오른다고 정부가 정유회사의 원가 분석을 하겠다고 한 일까지 있지 않았나. 에너지 정책이 소비구조 개혁이나 효율 증대를 위한 기술개발보다는 엄포만 놓기를 반복한 것 아니냐는 말이다. 사례 둘. 지난 7월 한여름 무더위를 앞두고 정부는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예년 같았으면 반소매 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는 에너지 절약대책 회의 모습이 TV 뉴스를 채우고 ‘엄포 반 사정 반’의 에너지 절약 시책 홍보활동에 열을 올렸을 법한데, 전기요금을 깎아 준다고 했다. “수요 증가와 여름철 기상 불확실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석연치 않은 배경을 설명했다. 그런데 그 시혜적 베풂은 끈적끈적한 장마철 바람만큼이나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사례 셋. 우리 경제의 에너지 원단위가 너무 높다. 소득 1단위를 벌어들이는 데 소비되는 에너지양을 에너지 원단위라고 한다. 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에너지 원단위는 한국을 100이라고 할 때 일본 70, 영국 50, 미국 9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80 수준으로 조사되고 있다. 한국이 국민소득 1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전기량 100을 소비한다면 일본은 70밖에 안 쓴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일본 회사와 경쟁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코미디다. 에너지 정책의 근원적 함정은 왜곡된 전기가격 구조에 있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이웃 일본의 3분의1 수준이다.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쓰는 전기는 가정의 4분의3 수준으로 싼값에 공급한다. 값싼 전기를 수십 년 쓰다 보니 산업계는 에너지 절약의 유인이 없다. 그러니 우리나라는 전기생산량의 60%를 산업시설이 소비하게 됐고 에너지 고소비 산업구조가 고착화됐다. 이런 전기 수요에 맞추려다 보니 발전소 건립이 더 많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왜곡된 에너지 가격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매번 반복되는 정부의 변명은 산업 경쟁력 걱정이다. 그러나 산업의 경쟁 체질을 구조적으로 키우는 길은 에너지를 절약하는 기술 개발에 있다. 기술 개발 대신 일자리를 볼모로 에너지 가격 특혜가 너무 길어졌다. 특혜에 안주한 산업은 경쟁력을 키우려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 국제 유가가 안정적인 요즈음 같은 절호의 기회는 두 번 세 번 오지 않는다.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것이 만성적인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 [지금 혁신도시에서는…] 전북혁신도시는 악취와의 전쟁

    전북혁신도시에 입주한 공공기관 임직원과 주민들이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 24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만성동과 완주군 이서면에 걸쳐 있는 전북혁신도시 입주민들에 따르면 악취가 수시로 도시 전체를 뒤덮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악취는 혁신도시 서쪽인 이서면 쪽이 더 심하고 동쪽인 전주시 쪽으로 갈수록 정도가 낮아진다. 혁신도시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저기압인 날씨나 바람이 부는 날이면 악취가 더욱 심해져 더운 여름날에 창문을 열지 못할 정도라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1년 전 혁신도시 아파트로 입주한 최모(39)씨는 “저층일수록 냄새가 더 심해 두통, 메스꺼움 등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며 “여러 차례 악취 소동을 빚어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혁신도시 악취는 이곳으로부터 3~5㎞ 떨어진 김제시 용지면 축산농가에서 나오는 것으로 지적됐다. 용지면에는 30여개 농가가 돼지 5만 5000여 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또 축분자원화 시설 10곳에서 심한 악취를 내뿜고 있다. 그러나 이들 농가의 악취를 근원적으로 방지할 방법이 없어 혁신도시 입주민들만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북도와 농촌진흥청, 전주시, 완주군 등은 여러 차례 악취 근절 대책을 논의했지만 축산농가 이전 외에는 근본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북도와 축산과학원 등이 축산농가 단속과 모니터링 강화, 미생물 보급 등으로 악취 발생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는 정도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B52 전략폭격기, 北전역 핵공격 가능… 추가 도발 원천 봉쇄

    B52 전략폭격기, 北전역 핵공격 가능… 추가 도발 원천 봉쇄

    군 당국이 24일 B52 전략폭격기를 포함해 북한이 두려워할 만한 미국의 전략 자산 투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대북 압박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남북 고위급 접촉이 진통을 겪는 가운데 강력한 무력시위를 통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전략 자산은 막대한 파괴력으로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힘의 근원을 파괴하는 무기로 항공모함, 핵잠수함, 전략폭격기 등을 의미한다. 한·미 군 당국은 이 가운데 괌에 배치된 B52 전략폭격기의 투입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이날 “양국이 이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을 이뤘고 전개 시점도 탄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남북 고위급 접촉의 향방에 따라 배치 시점 등을 조율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하늘을 나는 요새’로 불리는 B52 폭격기는 길이 49m, 폭 56m에 최대 속도는 시속 957㎞이고 최대 항속 거리는 1만 6000㎞에 달한다. 이에 따라 미 본토에서도 한반도까지 공중 급유 없이 출격할 수 있다. 폭탄·미사일 등 무장을 2만 7200㎏ 이상 탑재할 수 있어 전투기 60여대가 동시에 출격할 때의 전투력과 맞먹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B52는 핵탄두를 탑재한 공중발사 순항미사일(ALCM)을 탑재해 북한에 핵공격을 가할 수 있다. 한·미 군 당국은 이 밖에도 일본 요코스카에 정박한 미국 원자력추진 잠수함의 투입도 검토하고 있다. 북한 재래식 잠수함이 배터리 충전을 위해 1~3일 간격으로 수면 위로 떠올라야 하는 데 비해 원자력추진 잠수함은 2~3개월에 한 번씩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어 보다 은밀한 기동이 가능하다. 한편 군 당국은 지난 10일부터 재개한 대북 확성기 심리전 방송도 매일 하루 8시간씩 불규칙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대북 확성기 방송은 FM 라디오를 통해 전파되는 자유의 소리 방송과 동일하게 우리 국민의 행복한 삶과 대한민국 발전상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면서 “아이유, 소녀시대, 빅뱅 등 한류 스타들의 가요들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갤러리에선 미니멀리즘의 향연

    갤러리에선 미니멀리즘의 향연

    대구가 한국현대미술사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구상과 추상의 양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화랑들의 역할도 매우 컸다. 실험적인 작가들이 이끌어가던 대구현대미술제는 1977년부터 79년까지 3년간 대구지역 화랑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실내와 실외 전시가 상호보충하는 방식으로 열렸다. 구상 혹은 형상회화와 단색화로 대변되는 추상미술과 함께 개념미술, 실험미술이 더해져 명실상부한 한국현대미술의 메카로 자리잡게 된다. 명문 경북고등학교와 대구상고 등이 자리잡았던 대봉로, 백년 가까이 된 오래된 은행나무가 마당에 시원한 그늘과 운치를 선사해 주는 갤러리 신라는 미니멀리즘 전문화랑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1992년 개관 당시 단색화전을 열었던 이곳에서는 25일부터 일본 모노하(物派)운동을 이끈 중심작가로 현재 가장 활발히 활약하는 스가 기시오의 개인전이 열린다. 이광호 대표는 “스가 기시오는 왜 이런 형태의 작품이 나오는가, 왜 거기서 작품이라는 것이 성립되는가와 같은 미술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하는 모노하의 중심적인 존재로 자신의 방법과 사고방식을 엄수하며 일관되게 작업하는 유일한 작가”라고 설명했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재료는 서정성을 배제한 시멘트, 모래, 톱밥, 돌, 판자 등 일상적인 사물들로, 이들 사물 간의 조합과 배치를 통한 작업으로 관계성을 보여 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8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나무를 공간에 배치하거나 변화를 준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9월 20일까지. 갤러리 신라의 A, B홀에서는 미국 미니멀리즘의 대표작가 프레드 샌드백의 판화전이 31일까지 열리고 있다. 예일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대학원에서 조각을 공부한 샌드백은 장소특정적인 작품으로 명성을 날리던 중 2003년 60세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40년의 작업기간 동안 일관되게 채색된 아크릴 실과 탄성이 있는 노끈, 금속 와이어 등을 사용해 공간을 드로잉하고 공간을 점유하는 설치작업을 해 왔다. 이번 전시에는 70년대와 80년대의 주요 석판화 시리즈 20여점이 소개된다. 캔버스 위의 작업처럼 단순한 갈색, 푸른색, 검은색의 두꺼운 한지 위에 신중하게 배치된 날카로운 직선들, 점과 점을 잇는 선이 묘한 긴장감을 연출한다. 평면 위에 그려진 1차원 직선들로 3차원을 그려내는 솜씨가 놀랍다. 석판화 기법으로 가느다랗게 그려진 단단한 선은 건축적 엄격함과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053)422-1628. 봉산동 우손갤러리에서는 한국 미니멀리즘의 대표작가 이강소 화백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 화백은 대구 출신으로 대구현대미술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한국화단의 현대미술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성을 아우르며 회화에서 조각, 사진, 영상, 설치예술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심도 있게 탐색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작품 20여점과 사진 10여점을 만날 수 있다. 기운과 여백, 생성과 소멸이라는 동양적 주제가 담긴 무채색의 굵고 힘찬 붓자국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전시는 9월 25일까지. (053)427-7736. 글 사진 대구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지금 혁신도시에서는…] 전북혁신도시는 악취와의 전쟁

    전북혁신도시에 입주한 공공기관 임직원과 주민들이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 24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만성동과 완주군 이서면에 걸쳐 있는 전북혁신도시 입주민들에 따르면 악취가 수시로 도시 전체를 뒤덮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악취는 혁신도시 서쪽인 이서면 쪽이 더 심하고 동쪽인 전주시 쪽으로 갈수록 정도가 낮아진다. 혁신도시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저기압인 날씨나 바람이 부는 날이면 악취가 더욱 심해져 더운 여름날에 창문을 열지 못할 정도라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1년 전 혁신도시 아파트로 입주한 최모(39)씨는 “저층일수록 냄새가 더 심해 두통, 메스꺼움 등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며 “여러 차례 악취 소동을 빚어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혁신도시 악취는 이곳으로부터 3~5㎞ 떨어진 김제시 용지면 축산농가에서 나오는 것으로 지적됐다. 용지면에는 30여개 농가가 돼지 5만 5000여 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또 축분자원화 시설 10곳에서 심한 악취를 내뿜고 있다. 그러나 이들 농가의 악취를 근원적으로 방지할 방법이 없어 혁신도시 입주민들만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북도와 농촌진흥청, 전주시, 완주군 등은 여러 차례 악취 근절 대책을 논의했지만 축산농가 이전 외에는 근본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북도와 축산과학원 등이 축산농가 단속과 모니터링 강화, 미생물 보급 등으로 악취 발생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는 정도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서울광장] ‘맥도리아 청춘’과 로스쿨 엘리베이터/황수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맥도리아 청춘’과 로스쿨 엘리베이터/황수정 논설위원

    학원가 근처에 살고 있어 주변의 밤 풍경을 자주 본다. 밤 10시 언저리면 학원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로 일대가 한낮처럼 북적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은 패스트푸드점. 출출해진 학생들이 삼삼오오 몰려 야식을 찾는다. 또래의 아이를 두고 있어서인지 패스트푸드점의 아르바이트 청소년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주문을 받고, 패티를 굽고, 감자를 튀기고, 포장을 하고. 능숙한 손놀림도 있고 딱 봐도 초보티가 나는 친구도 있다. 늦은 밤 학원 공부를 하고 나온 또래에게 (어떤 이유에서건)공부 대신 알바를 선택한 또래들이 서비스를 해 주고 있다. 턱걸이 최저임금, 시급 5580원. 이 대목에서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여당의 거물 정치인이 일자리를 걱정하는 청년들에게 위로라고 했다는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란 말은 더더구나 하고 싶지 않다. 교육의 기회균등 차원에서 따지면 한밤의 알바 청년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우스개가 있다. “어서 오세요, 맥도리아입니다!” 패스트푸드점을 전전하는 알바생이 지금 일하는 곳이 맥도날드인지 롯데리아인지 헷갈려 둘을 섞어 외쳤다. 유머일 수 없는 유머다. 시간을 쪼개 알바로 학비를 벌어도 결국 빚쟁이로 전락하는 청년들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취업 스펙을 하나라도 더 쌓겠다고 허드레 알바를 견디는 청춘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잘 안다. 여야 국회의원들의 아들 딸이 아버지 후광으로 누렸다는 취업 특혜에 국민적 분노가 걷잡을 수 없는 까닭이다. 아버지의 권세로 좋은 자리에 취업했다는 아들 딸은 모두 로스쿨 출신이다.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그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있었다. 이번 문제들은 우연히 겹쳐 터진 일이 아니라고 본다. 입학, 변호사 시험, 채용 과정까지 모두 깜깜이로 이뤄지는 로스쿨 제도의 한계가 동시다발로 드러났을 뿐이다. 깜깜이 장치의 뇌관이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는 것이다. 그 주장들이 어느 때보다 지금 설득력이 커졌다. 몇년 전 출입처의 차관급 공직자는 문학을 전공한 아들이 유명 대학의 로스쿨에 진학했노라며 자부심이 그득했다. 순수문학 전공자가,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로스쿨 제도가 요구하는 다양한 스펙까지 쌓아가며, 그 방대한 법리를 터득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도 수수께끼다. 3년을 매달려도 민법 한 과목조차 제대로 섭렵하기 벅차다는 법조계 안팎의 회의론은 여전히 높다. 성적과 등수를 일절 공개하지 않은 변호사 시험은 어떤가. 기초 과목인 민법 시험을 직접 채점한 중견 법조인에게서 “100점 만점으로 치면 10점이 안 되는 답안이 수두룩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해 합격률은 90%에 육박했다. 법무부는 대체 실력 아닌 무엇을 따져 법조인을 뽑아 양성하는지, 근원적 불신을 떨칠 수 없다. 등수가 노출될 걱정이 없으니 실력자 아버지는 얼마든 자식을 위해 ‘기획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다. 특혜 취업은 물론이고 판검사 임용에까지 입김을 미치지 못할 게 없다. 사법시험 제도에서는 시험 합격 점수와 등수, 사법연수원 졸업 성적과 등수가 환히 공개돼 꼬리표처럼 붙어다닌다. 그런 상황에서는 짬짜미 취업, 깜깜이 임용은 원천적으로 힘들다. 감사원마저 특혜 채용 잡음을 빚고 있다. 원내 변호사를 전직 국회의원과 간부의 로스쿨 출신 자식들로 계속 채우자 청년 변호사들이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은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처지다. 이런 코미디를 지켜보면서 그 고위 공직자의 아들은 지금쯤 어디서 일하고 있을지 왜 궁금해질까. “실력 앞에 부모 있다.” “취업하는 것보다 금수저 물고 환생하는 게 더 빠르다.” 인터넷 공간을 달구는 청년들의 분노와 자조는 안쓰럽다. 금배지 음서제 논란에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 자녀의 취업 현황을 공개하도록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입법청원하겠다고 한다. 낯부끄럽고 졸렬한, 궁여지책이다. 자율로 이뤄질 수 없는 정의는 타율로 강제될 수밖에 없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성난 청년들은 기다렸다는 듯 답하고 있다. “억울하면 금수저 내려놓고 환생하라”고. sjh@seoul.co.kr
  •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루브르 박물관의 만병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루브르 박물관의 만병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조형언어에 대해 이제 말할 때가 됐다. 조형언어는 문자언어에 대응하는 용어다. 문자언어는 지역마다 다르나 최초의 문자는 대개 BC 3000~2000년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중국에서 쓰기 시작했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인간은 문자언어로 역사를 쓰고 문자언어로 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마다 문자언어가 다르므로 문자언어 소통에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지구상에는 인류가 창조한 엄청난 조형예술품이 광대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건축-회화-조각-도자공예-금속공예-복식 등 인류는 조형예술을 끊임없이 창조해 왔다. 조형언어로 쓴 것이 조형예술품이다. 그 ‘조형예술의 조형언어’를 해독하고 나니 조형성과 상징성을 지나치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음을 알게 됐다. 미술사학 연구는 대체로 작품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접근이 대부분이었다. 작품 자체의 순수 조형언어를 해독한 지 10년째다. 필자는 이 연재에서 조형언어를 해독해 문자언어로 설명하는 매우 어려운 과제 속에서 분투하고 있다. 조형언어란 말은 이미 학계에서 쓰고 있는데, 선·면·입체 등을 조형언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말하는 조형언어는 전혀 다르다. 인류는 40만년 전부터 조형예술을 창조해 왔는데 놀랍게도 처음부터 조형언어 문법의 엄격한 전개 원리에 따라 조형을 구성하고, 그 구성 요소인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 보주 등으로 우주의 영원한 생명 생성의 깊은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런 모든 조형예술은 샤머니즘,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종교의 세계 건축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러한 조형예술을 지금 독자들과 함께 해독하며 조형성과 상징성을 밝혀 나가고 있다. 고등종교의 고차원 신앙과 사상을 파악하기를 강조한 것은 바로 조형언어로 신앙과 사상을 조형예술로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깊이 잠들어 있었고, 오랫동안 오해로 작품의 가치가 폄하돼 시련에 허덕이던 조형예술을 올바로 해독해 고귀한 자태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인류 문화의 신기원을 여는 일이라 항상 새로운 기쁨과 흥분으로 매일 새로운 태양이 뜨는 듯하다. 이 작업은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고, 인류의 역사를 새로 밝혀내는 작업이며, 새로운 미래의 창조 기틀을 마련하는 일이다. 인류의 문화가 새롭게 다시 씌어져야 하는 까닭이다. 문자언어의 시대는 가고 조형언어의 시대가 오고 있다. 필자는 2000년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열기 시작했다. 문자언어에 대한 절대적 신앙은 깨지고, 조형언어에 대한 절대적 신앙이 시작됐다. 문자언어는 조작이 가능하고, 거짓말로 쓸 수도 있으며, 사실을 왜곡해 고칠 수도 있지만 조형예술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 조형언어를 해독함으로써 인류 문화의 지평이 무한대로 넓어진다. 인류는 국제적으로 공통의 조형언어를 지니어 왔음을 알게 됐으며 인류를 평등하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선다. 인류의 조형언어는 같으므로 각 나라에 맞게 조형언어를 번역할 필요가 없으므로, 배우기 쉬운 조형언어로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다. 조형예술에 관한 한 2000년은 신기원의 전후가 될 것이다. 용과 보주와 연꽃을 거쳐 마침내 만병(滿甁)을 만난다. 포항 보경사의 법당 불단에는 용의 입에서 연이은 제3영기싹이 양쪽으로 나오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용은 보주로 대치해 양쪽으로 연이은 제3영기싹 영기문이 생겨나는 것으로 단순화했다(①). 연꽃으로 알고 있는 그 바로 아래는 보주를 머금은 영기꽃 양쪽으로 역시 같은 영기문이 생겨나는 것을 보주로 단순화한 것이다(②). 결국 용과 보주와 연꽃(영기꽃)은 하나가 된다. 실제로 용의 입에서 만물이 나오는 조형을 모두 보여 주기는 어렵다. 보주도 마찬가지고 연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보주와 닮게 만든 것이 만병이다. 보주는 구멍이 있으므로 입을 만들고 굽만 붙이면 항아리, 즉 만병이 된다. 만병은 보주와 마찬가지로 우주의 대생명력이 가득 찬 병이다. 이때 병이란 항아리나, 병이나, 정병이나, 승반이나 모든 그릇 형태를 포함하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조형언어는 생명생성 상징성 나타내 용과 영기꽃에서 나오는 영기문을 보주로 대치해 단순화시켜 보았다. 그런데 좀 더 분명한 증거로 설득할 조형이 필요하다. 문득 서울 강남구 봉은사의 판전(板殿)을 떠올렸다. 대장경판이 봉안된 전각으로 추사 김정희가 71세 병중에 쓴 절필(絶筆) 현판이 있어서 유명하다. 사람들에게 판전 현판이란 걸작품은 보이나 그 양쪽으로 평방위에 만병이 각각 두 개가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기세 있게 잎으로 전개한 것을 선으로 간략화해 보니 보경사 것과 똑같다(③). 살인적으로 무더운 여름 그 만병을 촬영해 채색 분석하고 보니 이제 마음 놓고 만병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가장 오랜 만병은 인도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얻는다. 즉 산스크리트어로 푸르나 가타, ‘가득 찬 병’이라 했을 뿐 무엇이 가득 차 있는지 명시하지 않았다. 우주의 대생명력, 혹은 영기, 혹은 그것을 가시화한 성스러운 물 등 여러 가지로 인식하도록 상징적·조형적 여유와 자유를 둔 것이다. 이 밖에 어느 나라에도 용어는 없다. 이름이 없으니 알아보지 못하고 동서양 모두 꽃병이라고 부른다. BC 2세기 산치 제2탑의 난간에 조각된 인도의 만병을 분석해 보기로 한다(④). ●만병은 우주 대생명력이 가득 찬 병 색이 한 가지인 사암에 조각했으므로 조형을 파악하기 어려우나 채색 분석하면 명료히 밝힐 수 있다. 즉 만병에서 활짝 핀 연꽃과 연봉과 연잎 등이 좌우대칭으로 전개하고, 중앙에 무량보주를 나타냈으며 중앙 맨 위에는 영기문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만병에서 화생하는 것은 현실에서 보는 것이 아니고 모두 보주를 발산하는 영기꽃과 관련 있다. 즉 만병에서 무량한 보주가 화생한다는 것을 BC 2세기부터 분명히 보여 준다. 같은 대탑의 다른 예를 보자(⑤). 만병에서 좌우대칭으로 영기꽃, 영기 봉오리, 연잎 등이 뻗어 나오고 있다. 만병 양쪽의 영조(靈鳥)는 만물을 상징한다. 실은 영수(靈獸)나 영조가 표현돼 있지 않더라도 만물이 화생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고대인의 정신적 수준이 얼마나 고차원적인가. ●서양도 영기문 알았지만 명칭만 없어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만병을 보유하고 있는데 다양하기 짝이 없다. 같은 맥락에서 용의 입에서처럼 인도인이 창조한 만물 생성의 근원인 영수 마카라나 영화된 코끼리의 입에서 영기문이 생겨나는 예도 많다. 중국에도 만병이 많지만 중국화해 인도 것과는 다르다. 베이징 중심에 있는 명·청의 궁궐인 자금성 벽에 놀라운 모습의 거대한 만병이 있다(⑥). 부분을 확대해 보면 더이상 석류가 아니고 제1영기싹의 무수한 변주로 영기문을 전개시키고 있다. 씨방 안에는 보주가 가득 차 있다. 매우 절묘한 조형이라 감탄을 금할 수 없다(⑦). 중국에도 용어가 없으니 모두 꽃병에 석류를 가득 꽂아 놓았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씨방의 보주가 가득 찬 영기꽃이다. 만병에서 엄청난 보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인도의 만병과 맥을 같이한다. 그것을 단순화해 보았다(⑧). 만병에서 제3영기싹 영기문이 세 갈래로 뻗어 나가고 있으며, 각각 끝에 영기꽃이 있으나 그 밖의 만물이 화생할 수 있으므로 특정한 사물을 정할 필요가 없어 만물이라 적어 넣었다. 아름다운 곡선의 영기창에는 제3영기싹 영기문이 연이어져 있는데 이 영기창 안은 무한한 우주 공간을 보여 준다. 그 안의 만병은 우주에 충만한 영기를 상징한다. 우리나라에도 고구려 무덤 벽화 이래 통일신라-고려-조선에 무수히 많지만 같은 맥락이어서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로마시대 그림 네 귀서 영기문 전개 그러면 서양에도 만병이 있을까. 6세기 로마시대의 것으로, 레바논의 성 크리스토퍼 대성당의 바닥 중심에 모자이크로 만들었던 510X410㎝ 크기의 거대한 만병이 있다(⑨). 현재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전시하고 있다. 역시 이름이 없으니 꽃병이라 한다. 꽃병에서 영기문이 나오면서 만물이 화생하는데, 왜 이런 조형이 성립하고 있는지 루브르 박물관의 전공자들은 설명하지 못한다. 네 귀에는 만병이 있는데 각각 색을 달리해 연이은 제1영기싹 영기문을 내고 있는데 덩굴 모양으로 표현했으나 자세히 보면 작은 제1영기싹이 곳곳에 있으며 에너지의 파동이 있다. 서양인들도 영기문을 알고 있었지만 다만 명칭이 없었을 따름이다. 작품을 단순화하니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었는데, 중국 자금성 것과 원리가 똑같지 않은가(도 10). 주어진 공간과 중심을 향한 영기문 전개로 서로 만나지만, 제1영기싹 영기문이 끝나는 곳마다 온갖 영수와 영조와 인간이 영기 화생하는 장엄한 광경을 보여 준다. 중앙은 십자가, 즉 예수가 부활하는 것을 상징한다. 용의 입에서 나온 보주가 만병에 영기문을 내어 만물을 화생시키는 도상은 동서양이 똑같다. 우리는 이 중대한 진실을 수천 년 동안 알지 못했으므로 가장 근본적인 미술사학의 문제를 문제조차 삼을 수 없었다. 만병에서 만물이 화생하는 것은 용의 입에서 만물이 화생하는 것과 같다. 비록 서양에는 용의 입에서 보주가 나오는 도상은 없지만 동양 못지않은 갖가지 보주가 문명의 발상기부터 등장하며 무량보주도 창조하는 놀라운 조형도 있다. 만병은 용이다. 용의 입에서처럼 만병에서 만물이 화생하는 것은 동서양이 똑같다.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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