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극찬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독일 2부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AI 자동화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적자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당무위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595
  • “한국은 세계서 가장 영어를 적게 쓰는 나라”

    ◎소 바자노프 박사(외교아카데미 부원장) 본지에 체한기 기고/적극적 경쟁이 가능한 민주주의에 깊은 인상/한국노동자들은 동구보다 더 나은 생활 즐겨 지난 8월7일 방한,열흘동안 한국에 머물며 국내 산업시설을 둘러보고 돌아간 소련 외무부산하 외교아카데미부원장 페트로비치 유진 바자노프박사(47·국제정치학)가 최근 서울신문사에 방한기를 보내왔다.바자노프박사는 이 글에서 한국의 놀라운 경제·사회발전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앞으로 한국이 동북아에서 주요국가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러시아 속담에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다.나는 이말을 얼마전 내생애 첫 한국여행을 통해 몸소 실감했다.꽤 오랫동안 한국을 연구해온 나로서는 이번 한국체류를 통해 책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수많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지금부터 기술하는 나의 방한기는 그러나 내가 받은 인상과 느낌을 모두 피력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몇가지 사항을 중심으로 소감을 밝히려고 한다. 한국을 방문하기 하루전 나는 모스크바에서 소콜로프 주한대사와 만나 한국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소콜로프대사는 그당시 한국인들의 친절에 대해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우호적이며 친절한 국민』이라고 극찬했다.한국체류기간 9일동안 나는 이말이 절대적 사실임을 체험했다.내 친구 김영만씨(서울신문기자)는 방한기간중 매일 상오9시면 나를 찾아와 그날의 일정을 차질없이 준비해 주며 한국체류에 불편이 없도록 섬세하게 배려해줬다.서울신문사 초청으로 이루어진 방한이었기에 서울신문의 각별한 배려가 있었다는 점을 십분 감안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대단한 친절이었다.때문에 이 자리를 빌려 무엇보다도 먼저 서울신문사측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얼마전 나는 구한말 소련인이 쓴 19세기 조선사를 읽은적이 있다.그 책에서 저자는 『조선인들은 그 어떤 물건도 만들지 못하며 또한 만들 능력도 없다』고 규정했으며 『때문에 그들은 필연적으로 보다 산업화된 나라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고 기술했다. 또 2차대전 직후 미국학자들은 한국의 즉각적인 독립에 대해 『한국인들은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회의론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위에서 언급한 소련인 저자나 미국학자가 오늘의 한국을 보게된다면 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국내에서 디자인되고 조립된 물건이 홍수를 이루고,세계시장에서도 결코 손색이 없는 상품들이 한국인들의 손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자체가 믿기지 않을 것이다. 뉴욕에서 근무하는 한 소련인외교관은 최근 한국의 이같은 경제성장과 관련,『미국에서 사용되는 소비품 가운데 약80%정도가 한국산』이라고 말한바 있다.소련의 기업들은 요즘 경쟁적으로 한국상품과 기술을 얻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며 한국이 세계최고의 건설·조선·섬유기술을 보유한 나라라고 믿는다.모스크바에서 큰 플랜트사업을 벌이고 있는 나의 한 지우는 방한전 나에게 『서울에 가면 꼭 한국인 기업가를 알아보라』고 부탁하면서 『한국이야말로 가장 최선의 파트너』라고 극찬했다. 나는 한국사회 내부에 소득불균형으로 인한 갈등이 존재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그러나 이문제와 관련해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불균형문제는 세계 그 어느곳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며,심지어 공동분배를 강조하는 공산사회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소련·동독·북한등 사회주의국가는 불균형문제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어 자본주의의 중요요소와 긍정적인 측면을 무시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결론부터 말해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동유럽의 노동자들보다 더 나은 생활을 즐기고 있다.나는 광양제철소를 둘러보면서 소련의 여느 제철소와 비교하지 않을수 없었다.광양제철소에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봉급은 소련의 철강노동자들보다 월등히 높았으며 그들이 향유하는 교육,의료시설등은 부끄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또 공해방지시설 때문인지 주변의 대기오염도 소련에 비해 10배정도는 적은 것 같았다.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역사는 일천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비해 많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한국의 정치는 매우 적극적인 경쟁이 가능하다.이러한 정치적 조건은 사회의 기본적 틀이 위협받지 않는한 건강하고 생산적인 요소가 된다.한국의 정치형태를 동유럽및 소련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한국은 장기간의 정치적 혼란이나 큰 유혈참극등을 경험하지 않고 비교적 순탄하게 현체제를 구축했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무도 독재로 회귀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한국인들은 민주주의의 활성화를 기회가 있을 때면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적 안정­물론 학생들의 데모는 존재하지만­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을 다녀가기전 나는 한국은 과거에는 중국문화의 영향권 아래에,현재는 미국문화의 영향권 아래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같은 내판단이 전적으로 잘못이었음을 이번 방한을 통해 깨달았다. 한국은 과거 중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을 액면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한국적으로」변형시켜 소화했다. 한국의 건축·문화·예술등에서는 중국의 그것과는 다른 한국적 취향을 그대로 드러냈다.그리고 음식은 전적으로 한국의 독창성을 반영했다. 한국은 아마도 세계 그 어느나라보다도 영어를 적게 사용하는 나라중의 하나일 것이며 국내상품을외제보다 선호하는 국민들일 것이다.
  • 노 대통령 멕시코방문 이모저모

    ◎“꼬레아 연호”… 멕시코 시청은 축제장/“한국 문화회관 건립 지원” 즉석 약속/여 가수 「베사메무초」 노래에 노 대통령도 합창/명예시민증 받곤 “우의의 증표로 간직하겠다” ▷교민초청 만찬◁ ○…노태우대통령 내외는 26일 하오(한국시간 27일 상오) 숙소인 카미로 레알 호텔에서 멕시코 교민대표 50여명을 초청,만찬을 같이하며 격려. 노대통령 내외는 교민들이 박수로 환영하는 가운데 만찬장에 입장,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좌정한뒤 『대통령으로 처음 중남미국가를 방문한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말하고 『동포여러분의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보니 기쁘며 앞으로도 여러분의 건강과 발전을 빈다』며 건배를 제의. 노대통령은 만찬이 끝난뒤 격려사를 통해 『86년전 이곳에 처음 이민을 왔던 한인의 후손여러분을 만나게 돼 뭐라고 말할수 없는 감격을 느낀다』고 전제,『조국은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발전을 이루고 있는 자랑스런 나라가 되었다』며 『동포 여러분들도 더큰 긍지를 갖고 멕시코와 조국의 발전을 위해 훌륭한 일을 많이 해달라』고 당부. ▷김옥숙여사 박물관 방문◁ ○…대통령 부인 김옥숙여사는 26일 하오 3시(한국시간 27일 상오 6시)부터 약 1시간동안 멕시코시티 시내 「인류사박물관」을 방문. 김옥숙여사는 박물관장 세라푸체여사의 안내로 메소아메리카문명관으로부터 아즈테카문명관·마야문명관 순으로 박물관을 관람하며 스페인정복이전 멕시코문명의 발달사에 깊은 관심을 표명. ▷애국용사탑 참배◁ 노대통령은 26일 상오 11시25분(현지시간) 차플테팩공원안에 있는 애국용사탑을 참배하고 헌화. 노대통령은 카마초 멕시코시장의 안내로 애국용사탑에 도착,헌화한뒤 군악대가 멕시코국가와 애국가를 연주하는동안 잠시 묵념. 노대통령은 이어 방명록에 「멕시코 애국용사들의 호국정신에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1991.9.26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라고 서명. 노대통령은 애국용사탑참배를 마치고 떠나기전 행사기간동안 도열해있던 멕시코소년군사학교 소속 어린학생들과 전문기술학교소녀들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격려. 이날 노대통령의 애국용사탑참배에는 우리측 공식수행원과 멕시코시장및 관계공무원들이 자리를 함께했고 때마침 공원을 찾은 관광객과 주민들이 행사를 지켜보면서 노대통령이 떠날때 박수로 환송하기도. ▷멕시코시청 방문◁ ○…26일 상오(한국시간 27일 새벽)노태우대통령에 대한 명예시민 증서전달및 행운의 열쇠증정식이 있은 멕시코시청은 축제장을 방불. 상오 10시30분 노대통령이 카마초 솔리스 멕시코시티시장의 안내로 시청청사로 들어서자 2층제단에 자리잡은 악단은 경쾌한 멕시코선율의 환영음악을 연주했고 청사내는 박수의 물결로 가득. 카마초시장은 명예시민증서와 행운의 열쇠,기념수장을 차례로 노대통령에게 전달한 뒤 『모든 시민의 이름으로 다시한번 각하의 방문을 환영한다』고 환영사. 노대통령은 답사에게 『멕시코시티 시민과 서울시민은 인류화합의 축전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숭고한 올림픽정신을 꽃피운 무한한 긍지를 갖고 있다』며 멕시코의 찬란한 문화를 극찬하고 『오늘 받은 명예시민증서와 행운의 열쇠는 한국민에 대한 멕시코국민의 우의의 징표로 소중히 간직하겠다』고인사. 노대통령이 이어 2층복도로 나서자 지붕없이 설계된 1,2,3층 복도 테라스를 가득메운 남녀중학생 수백명이 양국기를 흔들며 「멕시코」「코레아」를 연호,청사내는 갑자기 축제장분위기로 변모. 환호속에 파묻힌 노대통령내외가 카마초시장과 함께 1층홀로 내려와 간이무대앞에 서자 멕시코 제일의 란초음악(농가음악) 여가수인 마리아 데 루르데스가 민속의상을 차려입은 남녀중창단의 백코러스속에 「과달라하라」라는 축하노래를 열창. 노래가 끝나자 청사내는 「와」하는 함성속에 파묻혔고 노대통령내외가 간이무대에 올라 여가수의 손을 잡고 감사의 뜻을 전하는 순간 악단은 갑자기 노대통령의 애창곡인 베사메무초를 연주했고 여가수는 노대통령내외와 마주서서 다시 베사메무초를 열창하기 시작. 여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도중 간간이 마이크를 노대통령과 김여사앞으로 내밀었고 노대통령이 이에 몇소절 노래를 부르자 청사내는 박수와 환호로 가득했고 1,2,3층 복도테라스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학생들도 양국기를 흔들며 베사메무초를 합창,환영분위기는 절정에 도달. 노대통령내외가 여가수및 악단과 인사를 나누고 퇴장하자 청사내는 다시 「멕시코」「코레아」의 연호속에 파묻혔고 노대통령내외는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며 몰려드는 남녀학생들의 손을 잡아주느라 분주. 이같은 열광적인 환영분위기때문에 노대통령은 예정보다 12분이나 늦은 상오 11시22분에서야 다음행사장인 애국용사탑으로 출발. ▷한국경제인 조찬간담회◁ ○…살리나스 멕시코대통령은 26일 상오 노태우대통령을 수행중이거나 한국상품전시회관계로 멕시코를 방문중인 한국경제인들을 대통령관저로 초청,조찬을 함께하며 한·멕시코경제협력 증진방안들에 관해 의견을 교환. 이날 조찬간담회에는 이봉서상공부장관,한·멕시코민간경제협력위원회 한국측위원장인 김상응삼양사사장과 정세영현대·김우중대우·최종현선경회장,조중건대한항공사장,신명수동방유량회장,최동규극동정유사장,금진호무역협회고문,최광수수출입은행장,김철수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사장등 30여명이 참석. 살리나스대통령은 『한국과 멕시코간의 상호협력가능성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다』면서 『특히 투자부문에서 많은 협력사업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언급. ◎노 대통령 교민초청 만찬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처음 멕시코를 방문하게 된 것은 뜻깊은 일입니다. 오늘 저녁 동포여러분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이곳에서 뵙게 된 것은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기후와 풍습,언어와 문화… 모든 것이 낯설기만한 머나먼 이국땅에서 이 분들이 겪은 고난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를 생각합니다. 우리겨레의 지난날은 시련과 수난의 세월이었지만… 여러분의 조국은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발전을 이루고 있는 자랑스런 나라가 되었습니다.한국은 이제 광섬유와 컴퓨터로부터 자동차와 거대한 선박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상품을 만들어 온 세계에 내다파는 나라가 되었습니다.10년후면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1만5천달러의 선진국이 될 것입니다.한국은 6·29선언이후 자유와 자율이 넘치는 진정한 민주주의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이제 독일이 통일되고 동서의 세계가 하나가 되는 이 변혁속에 우리의 통일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한반도가 통일을 향해 나아갈 큰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저와 살리나스대통령은 긴밀한 동반자로서 우리 두나라 관계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습니다. 한국과 멕시코는 정치·경제·문화… 모든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가속화해 나갈 것입니다. 교역과 경제협력이 더욱 확대되고 특히 한국기업의 멕시코 진출은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자유·번영·통일의 축복이 넘치는 밝은 내일에 대한 희망에 차 있습니다.동포 여러분도 더 큰 긍지를 갖고 멕시코와 조국의 발전을 위해 훌륭한 일을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기념관 방문 일 의원 표정

    ◎“일제 36년 침탈 부끄러울뿐”/생체실험 「마루타」 앞선 말 못잇고/「역사의 진실」 깨우쳐 한·일 새 관계의 책임절감 방한중인 일본 사회당의원등 일행 13명이 17일 충남 천안군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방문,자신들의 선조가 저지른 역사의 죄악상을 「목격」하고 『참회와 부끄러움 뿐』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북한만을 한반도의 공식국가로 인정해오던 일본 제1야당인 사회당이 한국정부를 인정한뒤 한반도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을 현실화한 상황에서 가진 이번 방문은 그들에게 한일관계의 새로운 개안을 가져다주는 듯했다. 내한한 사회당 의원은 모두 11명이었으나 이가라시 코조(오십강광삼)의원등 3명은 다른 일정때문에 동행하지 못하고 센고꾸 요시토(선곡유인),이토 히데코(이동수자)의원등 나머지 8명의 의원과 비서관 5명등 모두 13명일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2시간동안 독립기념관을 둘러본 이들은 한 목소리로 지나간 한일 양국의 과거사를 통탄하며 선조들의 잘못에 대해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배정책을 그대로 재현해 만들어 놓은 「일제침략관」에서 고문과 학대를 받으며 숨져간 수많은 한국민의 모습을 보고 몸서리쳤으며 생체실험에 동원됐던 한국인 「마루타」들의 사진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참회했다. 『우리 선조가 36년의 침탈기간동안 얼마만큼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그 실상을 정확히 목격했다』고 방문소감을 밝힌 센고쿠 요시토(선곡유인)의원은 일본이 한국에 대해 행한 참혹한 행위가 상상을 초월했는지 『뼈저리게 가슴아프다』는 말 이외에는 더이상 말을 못했다. 사회당의원 일행의 단장이기도 한 그는 『일본교과서에서는 전혀 언급도 되지 않았던 역사의 진실을 여기서 알게 됐다』며 부끄러워 했다. 지난 64년부터 89년까지 25년동안 NHK­TV 정치부기자를 역임했던 이케다 모토히사(지전원구)의원은 『과거 일본이 한국에 대해 저지른 만행은 그 어떤 사과로도 충분치 않다』면서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갚아야 할 빚은 국가대 국가간의 배상만으로 결코 해결될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일본 사회당은 사할린거주 한국인들과원폭피해자들에게 개인적 배상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대통령이 지난해 일본을 방문했을때 일왕이 「통석의 염」이란 표현으로 미흡한 대한사과를 한데 대해 못마땅해 하는 그는 『한국에 대한 과거사 사과는 단계적으로 조금씩 하기보다는 화끈하게 매듭짓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회당 강제연행문제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쓰쓰이 노부다카(통정신육)의원은 『한일간의 과거사 문제가 우선 백일하에 공개되고 해결돼야 양국관계가 원만해 질것』이라며 『일본이 아시아에서 공존하기 위해선 한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지역 국가들에도 대동아전쟁 당시 일본이 자행했던 만행들에 대해 사과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시아 주변국들이 일본의 재무장과 군국주의부활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의 장래를 주변국들과 상의해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1운동관」과 「독립전쟁관」에서 독립선언서와 피에 젖은 태극기를 둘러보며 한국인의 독립정신과 불굴의 민족정기를 체험한일사회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앞으로의 한일관계에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득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독립기념관 방문을 마친뒤 센고쿠의원은 『새로운 한일관계는 이 자리에서 벌써 시작됐다』고 말한뒤 『한국인의 저력은 독립의지 뿐만아니라 예술적 능력에서도 드러난다』면서 독립기념관에 존치하고 있는 모든 조형물까지 극찬했다.
  • 북방외교의 결실 설명…교민들 뜨거운 박수(노 대통령 북미순방여로)

    ◎“한미유대 깊을수록 동포위상 높아져”/“한국의 정치적 기적 이룩한 분” 극찬/슐츠 ○페어몬트호텔서 첫밤 ◎…방미 첫날밤을 샌프란시스코시내 페어몬트호텔에서 보낸 노태우대통령은 30일 상오8시(한국시간 1일0시)호텔로 교민대표들을 초청해 아침식사를 함께 하며 격려. 노대통령은 격려사에서 『작년 6월 고르바초프소연대통령과 회담을 하러 이곳에 왔을때는 워낙 일정이 촉박해 여러분을 만날수 없어 서운했는데 오늘 아침 이처럼 편안한 자리를 함께 하게되어 기쁘다』고 한뒤 『이지역 10만명의 우리 동포들이 화합과 결속으로 미주지역에서도 모범적인 동포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감사를 표시. 노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는 우리겨레가 이 대륙으로 처음 이민을 왔던 곳이며 나라를 잃은 어둠의 시기에 선열들이 몸바쳐 독립운동을 벌이는등 우리의 역사와 깊은 유대를 맺고 있는 친근한 도시』라고 지적하고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한소정상회담을 시발로한 국교수립등 양국간 관계개선과정과 북방정책의 결실부분을 소상하게 설명. 노대통령은 『이러한 관계위에 소연과 지난날의 북한동맹국들이 우리의 통일정책을 지지하고 북한에 대해 우리와 함께 유엔에 가입하고 국제핵사찰을 받으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세계가 유전벽해의 변화를 하는 상황에서 북한도 변하지 않을수 없다』고 단언. 노대통령은 『저의 이번 방미는 3년반동안 4번째로 매년 한번씩 미국에 온 셈』이라면서 『한국과 미국 사이는 그만큼 긴밀해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중요한 나라가 되고 있다』고 말하고 『두나라의 관계가 깊을수록 우리 동포사회의 위상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 노대통령은 또 6·29선언 4주년에 대해 언급하면서 『대학생들이 스승이자 공직자인 총리에 폭행을 한 사건을 뉴스를 통해 보시고 여러분도 모두 개탄하셨을 것이고 저도 해외동포들의 질책과 걱정의 소리가 많았다고 보고 받았다』고 피력한뒤 『그러나 성숙한 국민들의 정치의식과 언론의 자유가 있고 참고 자제할 줄 아는 정부가 있는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 대하여 여러분은 더이상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역설. 이날 조찬에 참석한 교민대표들은 노대통령이 「모범적인 샌프란시스코 교민사회」라고 감사를 표시한 대목과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북방정책」및 「조국의 민주화 진전 상황」등을 설명할 때에는 여러차례나 박수로 환영의 뜻을 표하는등 시종 밝고 화기넘친 분위기. ○슐츠 전국무 즉석 질문 ◎…29일하오1시(한국시간 30일새벽5시)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샌프란시스코의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 오찬장에 입장한 노태우대통령 내외는 슐츠전국무장관 내외와 레이지언 소장내외등과 헤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한시간여 오찬을 나눈뒤 슐츠전장관의 소개로 연설을 시작. 슐츠전장관은 인사말에서 『경제적 기적에 이어 6·29선언을 통해 한국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정치적 기적을 이룬 노대통령의 훌륭한 리더쉽과 넓은 안목을 접하기위해 노대통령을 초청한 것』이라고 소개. 동시통역으로 약 35분동안의 연설이 끝나자 교수 학생등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로공감을 표시했으며 슐츠전장관은 참석자들을 대표해 한국의 학생운동문제와 북한의핵사찰 수용가능성에 대해 즉석 질문. 노대통령은 한국학생운동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뒤 『금년봄 격렬한 시위가 있었으나 시민들이 호응하지 않아 확산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여당에 표를 몰아줘소요를 잠재우는 선택을 했다』고 말하고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 북한의 핵개발을 막아야겠지만 북한이 핵사찰에 응할 것을 기대한다』고 대답. 연설이 끝난뒤 슐츠전장관은 세계지도가 그려진 어항을 노대통령에게 선물하면서 『한국이 세계의 일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를 지닌 선물』이라고 설명했고 노대통령은 『연설한 대가로 한국의 지도를 크게 그려준데 대해 감사한다』고 조크. ○취재진들의 이목 집중 ◎…휴게실에서 슐츠전장관,레이지언소장등과 잠시 환담을 나눈 노대통령은 오찬참석자들을 위한 옥외칵테일장과 오찬장을 잇는 복도입구에서 슐츠전장관등과 함께 참석자들을 일일이 접견. 공식수행원등 우리측 40여명과 미국측 80여명의 참석자중 국내 취재진의 카메라가 집중된 것은 노대통령이 정호용전의원과 만나는 장면. 지난해 4월 대구서갑보궐선거에 출마했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방미, 1년3개월째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샌프란시스코에 머물고 있는 정전의원은 이번 노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 방문에 따른 단독대좌로 향후 거취가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 리셉션 라인에서 정전의원을 만난 노대통령은 어깨를 감싸고 두드리며 『반갑습니다』라고 악수를 나누었고 정전의원은 웃음으로 답례. 노대통령이 리셉션장에 도착하기전 양측 참석자들이 칵테일을 나눈 자리에는 정전의원의 육사 11기 동기생인 안교덕청와대 민정수석과 나란히 서서 정담을 교환. ◎…경호용 헬리콥터가 스탠퍼드대 캠퍼스상공을 선회비행하는 가운데 이날 낮12시40분쯤 모터게이트편으로 후버연구소 후버타워 앞뜰에 도착한 노대통령 내외는 슐츠전국무장관과 레이지언 후버연구소장 내외의 영접을 받고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 □특별취재반 △김호준 워싱턴특파원 △홍윤기 LA특파원 △이경형 정치부차장 △김영만 모스크바특파원 △김윤찬 사진부기자 △김종원 사진부기자
  • 광역선거 D­2… 뜨거운 막판 득표전

    ◎표 굳히기… 바람몰이… 숨가쁜 여·야 행보/백중지역 지원에 수뇌급 총출동/민자/수도권 「녹색돌풍」 일구기 안간힘/신민/민주/합당 비판… “야도부산의 긍지 찾자” 호소 이틀 앞으로 다가온 광역의회선거의 정치적 승패를 가름하는 수도권표를 공략하기 위한 여야의 막바지 선거지원유세가 17일 일제히 시작돼 열기를 더했다. 민자당은 이날 김영삼 대표 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과 김윤환 사무총장을 수도권 일원에 투입,지지표 굳히기 작업에 나섰으며 신민당은 「수도권바람몰이」를 위해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대규모 당원단합대회를 개최했다. ○…수도권 지역 지원유세에 나선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은 이날 상·하오에 걸쳐 경기도 안양시 갑·을과 과천 지구당 당원단합대회를 비롯,서울의 강서갑·을 관악을 송파갑 강동갑·을 당원단합대회 등 모두 7곳의 당원단합대회에 참석하는 등 강행군. 서울에서의 첫지원유세 지역인 강서갑·을 당원단합대회에 참석한 김 대표는 『막바지 방심이 선거를 망칠 수도 있는만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하며 안정의석 확보를 거듭 역설. 김 대표는 남북청소년축구 단일팀 코리아가 세계 최강 아르헨티나를 격파한 사실에 언급,『남북이 통일되면 거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뚜렷한 증거』라고 극찬하고 『따라서 우리는 통일 이전에 안정 속의 발전을 이뤄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 김 대표는 이어 관악을 당원단합대회에서 『이 지역이 재정자립도가 서울에서 가장 낮다』고 지적하며 『앞으로 상업지역을 확대하는 등 주민들의 소득증대와 함께 재정자립도를 서울의 평균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하겠다』고 다짐. 이에 앞서 이날 상오 안양시 민방위교육장에서 열린 안양갑·을 당원단합대회에서 김 대표는 ▲안양천 하수종말처리장 완공 ▲안양시의 구제실시 ▲경수산업도로 완공 ▲주거환경 개선 등 지역개발 공약사업을 제시하며 이번 선거의 승리와 이에 따른 안정의석 확보를 당부. ○…3일 동안의 충남지역 순회유세를 마치고 16일 저녁 상경한 김종필 최고위원은 이날 상·하오 서울 도봉갑·을,노원갑,성동갑지구당단합대회에 참석한 데 이어 노원을·성동을 지구당사를 방문,주요당원들과의 간담회를 주재하는 등 수도권 공략에 합세. 김 최고위원은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서울과 서울주변지역의 안정 없이는 대한민국의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역사와 시국에 대한 철학도 없이 시세에 아부하고 주사파니 뭐니하는 시시껄렁한 사상을 지닌 철부지들이나 두둔하는 야당에 서울시 의회를 맡기면 서울시는 매일 난장판이 될 것』이라며 『누가 뭐래도 믿고 국가경영을 맡길 정당은 민자당뿐』이라고 주장. 김 최고위원은 이날 단합대회 등에서 부동표 흡수를 위해서는 여성유권자들의 공략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의식,『여성들은 남자들보다 심지가 굳어 한 번 마음을 정하면 왔다갔다 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전제하고 『여성당원 여러분들은 남편들에 대한 설득은 물론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주변 유권자들을 적극 파고들어 수도권에서도 우리 당이 압승하는 데 앞장서 달라』고 당부. ○…박태준 민자당 최고위원도 이날 양천갑·강남을·서대문을 등 서울지역에서 득표지원활동을 전개. 박 최고위원은 양천갑지구당 당원단합대회에서 격려사를 통해 『민주주의란 경쟁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할 줄 모르는 사람을 뽑는다면 지방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지역발전을 위해 민자당 후보를 지지해주도록 호소. 박 최고위원은 『어떤 사람은 「나는 평생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몸바쳐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나는 평생을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말보다 행동으로 나라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 박 최고위원은 또 『신민당과 민주당은 이쪽 저쪽 눈치나 보고 한쪽을 밀어주는 척하면서 안 밀어주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고 야당을 싸잡아 비난. 박 최고위원은 이어 이태섭 의원의 구속으로 사고지구당이 된 강남을과 서대문을 지구당을 차례로 방문,후보자들과 당원들에게 최선을 다해 승리하도록 독려. ○…김윤환 민자당 사무총장은 이날 야권의 후보단일화로 민자당 후보가 고전중인 인천지역을 방문,이곳의 7개 지구당과 후보들의선거사무소 등 20여 곳을 잇따라 돌며 당원들에게 막바지 분발을 독려. 김 총장은 『이번 선거전은 지방의 경우 현 정치권의 세력분포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이나 수도권에서는 힘겨운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수도권에서 제1당이 되는 것은 확실하나 아직 과반수에는 미달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마지막 피치를 올려 반드시 과반수 선을 넘도록 해 달라』고 당부. 김 총장은 이날 연설의 대부분을 야권 후보단일화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데 할애하면서 『당선만 목적으로 색깔로 노선도 다른 야당끼리 지역을 분할해서 후보를 내세우는 것은 주민을 무시한 처사』라고 맹공. 김 총장은 『이번 선거에서 이런 야당에 진다면 인천발전은 포기하는 것』이라면서 『더구나 재정자립도가 40% 남짓한 인천은 국가예산을 따올 수 있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같은 당의 지방의회의원을 뽑아야 지역발전을 기할 수 있다』고 강조. 이날 김 총장은 선거운동원으로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순방을 하면 선거법 위반이라는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을 듣고 시장을돌지 않고 시장입구에서 후보자를 격려하고 당원들과 악수 나누는 것으로 지원유세를 대체. 김 총장은 또 오찬을 남구을 지구당의 당직자 3백여 명과 함께 하기로 했으나 「향응제공」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이들에게 격려연설만 하고 식사는 장소를 옮겨 따로 하는 등 막바지 「몸조심」에 안간힘. ○…지난 15일부터 수도권 바람몰이에 나선 신민당은 이날 하오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그 동안의 당원단합대회의 「결정판」격인 서울시 연합당원단합대회를 갖고 막판 「연두색 돌풍」을 일으키기 위해 총력전. 김대중 총재는 이날 집회에서 『이번 선거는 노 정권 3년의 실정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기회』라고 규정한 뒤 새로운 대안제시보다는 특유의 「이분법」 논리로 개혁입법·내각책임제개헌·3당통합·민주화문제 등 모든 현안을 총망라해 대여공세. 김 총재는 특히 『경부고속전철 건설에는 다음 선거에 쓰일 막대한 정치자금이 개입돼 있다』고 여권에 맹공을 퍼부었으나 구체적 물증제시나 자세한 정황설명은 생략. 김 총재는 또 중앙선관위가 무소속 후보와 정당후보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선거기간중 정당단합대회의 고지방송 등을 금지토록 유권 해석을 내린 것을 겨냥,『참으로 중앙선관위는 자유선거에 대한 암적 존재』라면서 『중앙선관위는 마치 정당이라는 것은 공명선거의 적인 양 주장하고 있으나 헌법8조는 엄연히 정당에 대한 보호육성을 규정하고 있다』고 맹비난. 이날 신민당의 잠실집회에는 거당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정했던 집회시작 시간인 하오 5시30분까지도 청중들이 체육관(수용규모 1만3천명)의 반도 차지 않아 집회시작이 30분 가량 늦춰지기도. 주최측은 대회장 벽면 곳곳에 「제1야당 밀어주어 공안통치 분쇄하자」 「영구집권 꿈꾸는 내각제개헌 분쇄하자」는 등 각종 현수막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했으나 청중수가 기대에 못미치자 일부 당직자들은 『선거일에 임박해 대규모집회 날짜를 잡은 것부터 잘못됐다』고 한숨. 한편 신민당은 막판 선거전략의 초점을 부동표를 흡수하는 데 맞추고 김 총재의 특별기자회견을 통해기권방지캠페인을 계획하는 한편 당부정선거 고발센터를 통해 연일 여권 및 무소속 후보의 부정선거사례를 수집,「폭로전」을 전개.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는 이날 상·하오 영도·동·해운대지구당 등 7곳의 당원단합대회 참석과 시장방문을 통해 막판 표밭갈이에 분주. 특히 이 총재는 그 동안 민자당의 김영삼 대표에 대한 소극적인 비난태도에서 벗어나 이날 연설에서는 「변절자」 등 원색적인 용어까지 구사하며 김 대표를 집중 공격. 이 총재는 부산일보 강당에서 열린 동구지구당단합대회에서 『김영삼씨가 3당합당 후 사회가 안정되었다고 하는데 정신병자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면서 『부산 서구가 뽑아서 키워준 민주주의의 지도자는 대권욕에 눈이 어두워 군사독재정권의 찌꺼기와 야합하고 있다』고 신랄히 비난. 이 총재는 『3당합당 이후 침묵해온 부산시민의 자존심이 되살아나고 있으며 부산시민이 일어날 때면 반드시 정치변혁을 몰고 왔다』며 부산지역의 야성을 부추기며 지지를 호소.
  • 부시,왜 「최혜국대우」 연장했나/홍콩=우홍제(특파원코너)

    ◎미,「무역카드」로 중의 대소접근 견제/철폐 땐 반미감정 촉발… “득보다 실 크다”/북경,10억불 구매단 파견 등 미소작전/미 의회·인권단체 반발 심해 귀추 주목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예일대학교에서 한 연설을 통해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Most Favoured Nation Status)는 중국내의 인권문제개선 등 아무런 부대조건 없이 연장 적용할 방침』이라고 확고하게 말했다. 그는 또 중국을 고립시키는 것은 미국으로서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며 최혜국대우 철폐는 중국뿐 아니라 홍콩·대만 등 동남아지역의 경제발전에도 큰 타격을 주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이러한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북경당국은 다음날 성명을 발표,『현실적이며 현명한 결정』이라고 극찬을 한 것은 물론이다. 그렇잖아도 중국은 최혜국대우 연장여부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최종 결정시한인 6월3일을 크게 의식해서 지난 5월 초순 미국에 10억달러어치 상품구입을 위한 구매사절단을 보낸 데 이어 1일에는 유럽 쪽에도 같은 규모의사절단을 파견했다. 미측에 대한 미소작전과 함께 유럽에도 중국의 시장개방 의지가 뚜렷함을 보여주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또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부시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주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기도 했다. 평균 관세율 3%가 적용되는 최혜국대우의 덕분으로 중국은 지난해 대미무역수지 흑자가 1백억4천만달러에 이르렀고 올해에는 1백50억달러의 흑자가 예상되기 때문에 중국에겐 이 대우조치의 존폐문제 만큼 비중이 큰 경제현안이 없는 실정이다. 미·중 양국은 지난 79년 국교수립 이후 80년도부터 1년마다 경신하는 조건으로 상호최혜국대우를 적용하기 시작했으며 중국측이 대미수출급증의 효과를 보고 있는 반면 미국은 중국의 수입규제정책 등으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대우조치가 미·중간의 현안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 89년 「6·4천안문사태」에서 비롯된다. 미 의회와 인권단체 등은 민주화요구 시위를 무력진압한 북경정권을 응징하는 의미에서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철폐를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의경우에도 부시 대통령은 『중국 수출상품의 70%를 재수출하는 홍콩경제가 억울한 희생양이 될 수는 없다』는 이유로 대우조치의 존속을 선언했었다. 올해에도 부시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이 조치의 철폐가 홍콩·대만 등 대중 투자국들에 악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도 미국으로선 득보다 실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 행정부측은 중국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중국의 동조없이는 한반도 문제를 비롯,수많은 국제정치상의 난제를 해결하기 힘든 것으로 보고 있다. 걸프전 때 이라크에 다국적군을 파견하려 했을 때에도 중국으로부터 끝까지 강한 반대가 있을까봐 크게 걱정했던 미국이었다. 게다가 최근의 국제질서재편 과정에서 미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중·소 접근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선 최혜국대우 철폐로 북경당국의 반미감정을 더욱 촉발시킬 입장은 아닌 것이다. 이 대우조차가 철폐되면 중국의 대미 수출은 결정적 타격을 입게 되며 대륙 남부 광동성 등지에선 약2백만명의 실업자가 생길 것으로 예측됐다. 한편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미국내 여론형성에 영향력이 큰 하원의 스티븐 솔라즈 의원(아시아·태평양담당 분과위원장) 등 인권을 중시하는 의회세력과 민간 인권단체,해외망명중인 중국의 민주인사들은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으며 대우조치 철회를 위한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특히 미 의회는 걸프전으로 드러난 중국의 대중동 무기수출에 강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 의회는 중국이 아랍권에 핵관련 기술을 수출,이들 가운데 한 나라가 이미 원자탄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른 2개 국가도 멀지 않아 개발할 것이란 정보보고에 충격을 받고 중국과의 관계 재정립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 정보기관은 또 중국이 최근 파키스탄·시리아 등지에 M11미사일을 대량수출한 것으로 밝혀냈다. 한편 부시 대통령도 이 같은 중국의 무기수출 전략을 사전에 의식,최혜국대우 연장 적용 의사를 밝히면서 『그러나 중국에 무기제조와 관련된 첨단기술 수출은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최혜국대우 연장에 대한 미 의회 등지의 거센 비난과 반대움직임을 누그러 뜨리기 위해 부시 대통령이 미리 머리를 써서 이 같은 카드를 제시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어쨌든 현시점에서 미 의회는 일단 부시 대통령이 밝힌 최혜국대우 연장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부시는 또 이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맞설 것으로 전망된다. 부시는 특히 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온 하원의 지지를 포기하는 대신 앞으로 있을 90일 동안의 협의기간 안에 상원 99명의 의원 가운데 3분의1을 초과하는 34명의 지지를 획득,그의 거부권이 효력을 발휘해서 미·중 관계가 원만히 유지되도록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 외언내언

    프로야구 선수들의 히로뽕 상용 구속은 다시 한 번 마약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경기력의 향상이나 압박감 해소를 위해 손을 댔다는 이들의 핑계를 멀쩡한 선수들이 흉내나 내지 않을까 두렵다. 유명선수들의 관련이 드러나게 될 경우 청소년들에게 미칠 파문이 걱정이다. ◆구속된 장명부씨는 그가 재일교포 출신인데다 한때 화제의 인물이었다는 데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일본 프로야구계에서도 한때 날리던 선수가 성적 부진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히로뽕을 가까이 하게 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어렵지 않다. 한 일본 TV와의 인터뷰에서 『프로선수는 스스로 자신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프로정신」의 중요함을 누누이 강조하고 『머물고 있는 곳이 바로 고향』이라고 서울에서의 새 삶을 자랑했던 그가 그 프로정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김일융 투수와 비교된다. ◆현재 일본 프로야구의 다이요 훼일스팀에서 일본명 니우라 히사오(39)로 통하는 김은 바로 그 프로정신에 투철해 재기에 성공한 좋은 실례. 대담하지 못해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져 대성하지 못한다는 평을 듣던 그가 한국에서 돌아간 뒤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등장함으로써 팬들을 열광시켰던 것. 당시 일본 매스컴에서는 『니우라는 프로정신을 몸에 익혀 돌아왔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김 자신도 『프로정신은 바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뤄진다』고 말해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그런 프로의 세계에 히로뽕 침투는 막아야 한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엄청나고 스타급 선수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우상처럼 되고 있다는데서 오히려 이들 선수들은 건전한 생활로 모범을 보여야 할 책임이 있다. 그것을 소홀히 할 때 프로 스포츠의 존재이유가 없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각 구단에서도 다시 한 번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마약의 확산을 막는 것. 지속적인 단속과 계도로 뿌리를 뽑아야 하는 것이다.
  • “미국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강대국”하버드대 나이교수 저서서 주장

    ◎“쇠퇴론은 학문적 오류/정보화사회 선도 확실”/미 전역서 “새 전성기 비전 제시” 격찬 소련의 쇠퇴로 인해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이란 지위를 누리고 있는 미국은 쇠퇴하고 있는가. 아니면 걸프전쟁에서의 압승이 보여주고 있듯이 미국은 이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려 하고 있는가.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이 발간된 이래 미국의 쇠퇴에 대해선 수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발간된 「Bound to Lead:The Changing Nature of American Power」(조제프 S 나이저)라는 책은 미국이 2차대전 직후와 같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유지하지는 못하겠지만 여전히 세계최대의 영향력을 갖는 유일한 지도국가로 존속할 것이란 데에는 한치의 의혹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미국이 쇠퇴할 것이란 주장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 달라진 상황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학문일변도의 그릇된 견해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미국사회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미 하버드대 부설 국제안보문제연구소 교수로 재직중인 나이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과거와는 달리 ▲정보에의 의존이 무엇보다도 큰 비중을 갖는 정보화시대로 바뀌었다는 점 ▲각국 상호간의 의존성이 점점 더 심화돼 가고 있는 점 등 현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과거와 같은 기준으로 어느 한 나라의 흥망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주장이라는 것. 나이 교수는 미국이 지난 40여 년 간 초강대국으로서 발휘해온 지도력이 「쇠퇴론」으로 인해 지금 사그러들 위험에 처해 있다면서 현재 미국이 무엇보다도 빨리 회복해야 할 것은 세계의 지도국으로서 과거와 현재 사이의 상황변화를 정확히 파악하고 또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이 새로운 세계질서 창조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또 이를 선도해 나가려는 의지를 과연 갖고 있는지를 해명하는데 이 책만큼 적절한 책은 없으며』 『미국의 쇠퇴는 피할 수 없다는 비관론자들에 대해 시의 적절하고도 강력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미국내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나이 교수의 견해가 꼭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강대국이 국제적 안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견해는 충분히 귀담아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나이 교수의 이 책은 현재 한국경제신문사의 이사 겸 주필로 있는 박노웅씨가 번역,「21세기 미국파워」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 「수서특혜」 파헤칠 대검 중수부의 진용

    ◎「검찰의 정예」 총집합… 「의혹」 척결 기대/「명성사건」등 굵직한 사건 처리/보스기질 강하고 꼼꼼한 「공안통」/최명부부장/발넓은 정보통… 고위층 자문도/제갈1과장 수서지구택지 특별분양사건의 진상규명에 나선 「대검중앙수사부」에 국민의 눈길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고수사기관임을 자부하는 대검중앙수사부가 이번 의혹을 과연 얼마만큼 철저히 파헤칠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수사결과에 따라 「깨끗한」 정부를 주장해온 제6공화국 정부에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고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게까지 정치적인 부담을 줄 소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수사를 떠맡은 대검중수부는 명실상부한 검찰의 중추수사기관으로 검찰총장의 지휘아래 인지수사는 물론 대형경제사건,고위직공무원의 뇌물수수사건,대학입시부정사건,부동산투기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도맡아 처리해 왔다. 이번 사건말고도 중수부가 파헤친 사건들은 80년대의 「이·장사건」 「명성사건」 「범양사건」 등 그 수를헤아릴 수 없으며 6공들어서만도 「5공비리」 사건을 비롯,서울시·건설부·철도청 고위공직자의 뇌물수수사건,한성대 및 동국대 입시부정사건 등을 꼽을 수 있다. 이같은 중수부의 조직은 검사장이 맡는 부장아래 수사 1,2,3,4과로 구성돼 있다. 각 과의 과장은 부장검사이며 거느리고 있는 직원은 수사관 등 모두 70여명에 이르고 있다. 부장인 최명부 검사장은 작달막한 체구에 보스기질이 강하고 매우 꼼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시 16회로 신건 법무부 교정국장,김도언 검찰국장,전재기 대구지검장과 동기생이며 지난 89년 김기춘 전 검총장때 청주지검 검사장에서 발탁돼 중수부를 진두지휘해 왔다. 서울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한 최검사장은 본래 「공안통」으로 서울지검 공안부검사·서울지검 제1차장검사를 역임,중수부장에 발탁되기전 한때 대검공안부장 물망에도 올랐었다. 과장가운데 수석이라 할 수 있는 수사 제1과장 제갈융우 부장검사는 이른바 「TK」 출신으로 경북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사시 11회에 합격,고시동기생이자 같은 「TK사단」인 김경한 서울지검 공안1부장,이명재 서울지검 특수1부장과 함께 이른바 「3총사」로 불리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제갈부장은 특히 TK그룹의 신망이 두터워 정부고위층의 자문역할도 가끔 맡고 있다는게 주변사람들의 전언이다. 한 평검사는 제갈부장에 대해 『검찰과 관련된 일뿐만 아니라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정보가 많아 TK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날카로운 첫 인상과는 달리 겸손하고 진솔한 사람』이라고 호평했다. 제2과장 한부환 부장검사는 경기고·서울법대출신의 이른바 「KS마크」로 검찰안에서 알아주는 수재. 사시 12회 출신인 한부장은 수사는 물론 기획능력도 탁월해 전 감사원 감사관 이문옥씨의 직무상 기밀누설사건 등 주요한 사건을 처리하는데 기민성을 발휘해왔다. 이번 사건에서는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한보의 뇌물제공 등 로비의혹에 대해 집중 수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3과장 김대웅 부장검사는 광주일고·서울법대·사시 13회 출신으로 서울지검 특수부검사·광주지검 특수부장을 거치는 등 전형적인 「수사통」이다. 정홍원 4과장은 초대 대검강력과장을 맡아 민생치안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1월 이번 자리에 전격적으로 발탁됐다. 이들 중수부과장과 함께 이번 사건수사에서 주역을 맡게될 검사로는 김성호·박주선 대검검찰연구관과 서울지검 문세영·김성준검사 서부지청 소병철검사 등 이른바 「외인부대 5인」을 들 수 있다. 이들가운데 김·박연구관과 서울지검 김검사 등 3명은 지난번 「5공비리」 사건 수사때에도 차출돼 맹활약을 보였었다. 또 문검사는 광주지검 특수부에 있을 때 조선대학생의 변사사건을 무리없이 깔끔히 처리해 검찰수뇌부 등으로부터 극찬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특수부중의 특수부」로 불리는 서울지검 특수1부검사로 자리를 옮겨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어 이번 수사에서도 그의 기대가 크다.
  • 지휘자 정명훈씨(’90인물)

    ◎유럽 음악계 놀라게 한 “30대 거장” 웅비의 90년대,그 서막을 장식한 경오년의 한해가 저문다. 유달리도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내며 지난 한해 화제를 모았던 각계의 인물들을 간추려 당시의 행적을 재조명해본다.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인 오페라하우스인 파리의 바스티유오페라단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 정명훈씨(36). 그는 지난 3월17일 자신의 데뷔무대이자 프랑스정부가 만든 바스티유오페라단의 개막공연 작품인 「트로이 사람들」을 훌륭히 지휘해 내 한국인의 이름으로 파리음악계를 정복한 「마에스트로」(거장)가 됐다. 오페라 최대 난곡으로 꼽히는 베를리오즈의 대작을 장장 6시간30분에 걸쳐 완벽하게 재현해내면서 그는 「정명훈 신화」를 창조했던 것. 정씨는 최근 발행된 프랑스 종합교양지 「로피시엘 옴므」가 선정한 「90년의 영웅 16명」에 포함됐는데 이 때 이 잡지는 정씨에 대해 『7살 때 이미 서울교향악단과 독주회를 가졌으며 그 뒤로 많은 월계관이 이 젊은이의 머리위에 얹어졌다』고 극찬했다. 지난 7월엔 대규모파리 바스티유 국립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고국을 찾아 세계정상에 우뚝 선 그의 모습을 고국팬들에게 보여주었다. 늘 온화하고 진중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지휘대에 오르면 맑은 영혼속에서 솟아나는 광염에 찬 눈빛으로 청중을 매료시킨다.
  • 가네마루의 「두얼굴 외교」/한종태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북한 김일성주석과의 묘향산회담 및 일ㆍ북한간 8개항의 공동선언 등에 대한 배경과 경위설명을 위해 8일 서울에 왔다 돌아간 가네마루 신(금환신) 일본 전부총리의 언행을 보면서 다시한번 일본의 약삭빠른 「2중적 실리외교」를 실감한 느낌이다. 가네마루씨는 노태우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예상했던 대로 『북한에서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 구구절절 사과와 해명발언으로 일관했다. 또한 일본의 자민당과 사회당,그리고 북한 로동당간에 합의한 공동선언은 3당간의 교류차원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밝힌 그는 『결국 당입장에서 얘기한 것이므로 그 결과는 일본 정부가 책임질 성질이 아니다』고 언급,우리측의 국민감정에는 아랑곳없이 오히려 일본 정부를 두둔하는 「각별함」을 보이기도 했다. 더욱이 가네마루씨는 우리정부와 국민이 불쾌하게 생각하는 「하나의 조선」표현 명기,「11월중 일ㆍ북한간 수교협상개시 합의」「전후 45년 배상」 등에 관한 해명에 이르러서는 구차스럽고 불분명한 태도로만 이어나가 오히려 그의 진의를 더욱 의심케 했다.급기야 가네마루씨는 자신이 방북한 것은 일ㆍ북한 관계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함이지 한국에 누를 끼친다는 차원에서 북한에 간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한일 관계를 중시하는 나의 인품을 믿어달라』며 예의 인품론을 들먹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노대통령이 일ㆍ북한 관계진전에 대한 5개항의 기본원칙을 천명하자 『전적으로 동감이며 당연히 그렇게 할 생각』이라고 다짐하면서 『일ㆍ북한 관계개선이 한미 양국의 발목을 잡아당기겠다는 뜻은 추호도 없다』고 극구 해명,의구심을 더해 버렸다. 결국 그는 경직된 북한태도(본인이 직접 언급)로 말미암아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한국민에게 피해를 끼치게 됐다는 사실을 주장한 셈이다. 그러나 평양 김일성 스타디움에서 학생 5만명이 펼치는 매스게임을 관람하면서 김일성을 「훌륭한 지도자」라고 극찬했고 김일성과의 회담에서는 감격의 눈물까지 흘린 그다. 그러니까 가네마루라는 일본의 노정객은 북한에 가서 북한측 입맛에 맞는 얘기만 하고 우리측에 와서는 우리가 듣고 안심할수 있는 말만 잔뜩 늘어 놓았다는 얘기 이외에는 다름 아니다. 오자와 자민당 간사장,도이 사회당 위원장 등 일 정계거물들이 10ㆍ10 북한 로동당 창건기념일에 참석하는 만큼 이제는 일본이 「두개의 한국」사이에서 교묘하고도 약삭빠른 「양다리 외교행각」을 그만두고 솔직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밝힐 때라고 본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노대통령의 지난 5월 방일 이후 아직까지 해결짓지 못하고 있는 재일 교포의 법적지위 개선문제에 대한 일본측의 보다 성의있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외언내언

    서독이 한달동안 지구촌을 뜨겁게 했던 90년 월드컵을 제패했다. 서독팀의 우승은 16년 만의 것이고 월드컵사상 3번째라는 데서 정말로 값진 것이다. 더욱 감격적인 것은 통일독일의 해에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는 것. 90년은 정녕 독일의 해인가. ◆서독팀은 이번 대회에서 줄곧 힘에 넘친 유럽식 축구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축구장을 쉴새없이 치고 달리며 문전으로 대시하는 활기찬 축구를 벌였다. 마치 독일의 통일을 밀어붙이는 그 박력과 비슷했다. 통일의 골문을 향하는 「그 세」가 운동장을 압도했다는 비평가의 지적이 새롭다. 진작부터 서독의 우승은 이래서 점쳐졌는지도 모른다. 82년 스페인,86년 멕시코대회의 연속 준우승에서 벗어나 우뚝 섬으로써 통일의 감격을 더했다. ◆서독의 승리는 또하나의 멋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베켄바워감독을 세계 최고의 선수에서 최고의 감독이 되게 한 것. 그는 결승전야 『월드컵에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는 앞으로 40년의 휴식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해 그가 얼마나 우승을 위해 애썼는가를 짐작케 했다. 서독축구의 황제로,세계 최고의 스위퍼로 극찬을 받아온 그는 마침내 감독으로 정상에 올라 자신은 물론 통일된 조국에 영광을 안긴 주역이 됐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은 못했어도 전 지구인들에게 감동을 가져다 준 팀ㆍ선수가 한둘이 아니다. 예상도 못했던 팀이 돌풍을 일으키는가 하면 후보선수가 월드스타로 부상했다. 대표적인 팀이 카메룬이고 이탈리아의 「떠오르는 별」 스킬라치는 세계적인 명성을 거머쥐게 됐다. 스포츠는 그래서 재미있고,드라마가 있고,열광케 한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었다. ◆오는 94년 미국월드컵에서도 독일의 우승이 벌써부터 예상되고 있다. 스포츠의 강국 동독과 서독의 단일팀은 더욱 막강해질 것이기 때문. 통일독일은 이렇게 더욱 그 세를 뽐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서독의 승리가 남의 일로만 여겨져서는 안된다. 오늘의 독일의 감격ㆍ기쁨이 언젠가는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날이 기다려진다.
  • “북방성과 내치로”… 민생안정 총력전/당정ㆍ국무회의,후속조치 토론

    ◎물가잡기ㆍ치안에 모든 노력 경주/대공산권 당대당 교류 통한 측면 지원도 정부와 민자당이 한소 정상회담등 노태우대통령의 일련의 정상외교가 대북문제를 포함한 북방정책의 진전뿐 아니라 내치에 있어서도 좋은 방향으로 결실을 맺게 하기 위해 발빠른 행보를 계속 하고 있다. 정부ㆍ여당은 11일 상오 노대통령 주재의 확대당정회의를 가진 데 이어 강영훈국무총리 주재로 임시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의 정상외교에 따른 후속조치를 철저하게 추진키로 하는 한편 경제ㆍ치안 등 당면 국내현안 해결에도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영빈관에서 전 국무위원과 민자당 당무위원등 89명의 정부ㆍ여당 고위관계자가 참석한 맘모스 당정회의를 주재하고 한소,한미 정상회담의 후속조치등 향후 당정이 해야 할 일들을 1시간20여분에 걸쳐 논의. 이날 회의는 강총리ㆍ김영삼대표최고위원의 인사말에 이어 최호중외무장관및 이승윤부총리ㆍ안응모내무장관ㆍ박준병사무총장 등의 소관업무보고를 들은 뒤 토론,노대통령 지시의 순으로 진지한분위기아래 진행. 강총리는 『성공적인 외교성과를 거둔 것을 전 국민과 함께 경하하며 이번 성과를 관리키 위해 전 내각이 총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고 김대표도 노대통령의 정상외교를 「최상급 수사」로 평가하며 인사말. 김대표는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의 획기적 계기를 마련하신 노대통령의 노고와 훌륭한 성과에 대해 전 당원을 대표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인사하고 『지구촌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큰 도움이 되었다』며 「역사적 업적」 「아ㆍ태시대의 주역으로 세계무대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된 자랑스러운 기념비적 업적」등의 표현으로 회담성과를 극찬. 김대표는 또 『노대통령께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대통령으로 역사와 국민앞에 평가받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합심단결해 밑받침을 할 것』이라고 다짐. 이어 최외무장관등 관계국무위원과 박총장의 보고가 있은 뒤 노대통령은 다른 의견도 개진해달라고 자연스레 토론을 유도. 첫번째로 이태섭의원이 『노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로 당에 대한 신뢰도와 인기가 크게 올라갔다』고 말하자 노대통령은 『외교성과도 있었겠지만 당의 인기가 높아진 것은 전당대회이후 화합ㆍ단결해 일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풀이. 황병태의원은 『노대통령의 방미성과는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세계사ㆍ인류사적 일』이라면서 『앞으로 대소관계에 있어서는 정부의 공식채널도 중요하지만 의원협의회나 당대당 교류등 정치권의 협력강화도 필요하다』고 강조. 황의원은 또 『앞으로 북한이 개발을 회피키 위해 대남 선전공세와 분열공세를 강화할 우려가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해야 하며 대내적으로는 물가등 경제ㆍ치안문제의 해결에 진력해야 한다』고 요청. 이에 노대통령은 『소련의 경우에도 당과 외무부및 연구기관의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지만 결론을 내리는 것은 통치권자와 외무부』라고 전제,『북방외교에 있어 당과 경제계가 많은 역할을 하고 있으나 역시 창구는 단일화되어 외무부에서 결론이 나야 한다고 본다』고 피력. 홍성철통일원장관은 『북한은 현재 군축등 여러 제의를 하고 있지만 뚜렷한 방침없이 우왕좌왕하는 듯한 인상』이라면서 『특히 책임있는 당국자간이 아닌 민족대표간 대화주장은 우리의 내부 분열을 노린 선전책동』이라고 경고.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소대통령과 만났을 때 북이 어떤 말을 하는가고 물었더니 별다른 대답을 않았으며 북의 핵개발에 대한 우려에는 고르바초프도 동감을 표시하더라』고 소개. 마지막으로 나창주의원이 『한소관계에 앞서 한중 관계개선이 앞서는 것이 순리이며 노대통령의 연내 중국방문을 과감히 추진,북한과의 대화에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고 노대통령은 『중국과의 외교는 남아있는 제일 과제』라고 지적. ○…이어 이날 상오 정부종합청사에서 약 1시간30분간 진행된 임시국무회의에서 한소 정상회담의 경과를 보고한 최호중외무장관은 『정부의 기본방향은 한소 연내수교』라고 말하고 『대소관계에 있어 경제관계가 매우 중요하며 소련측에서도 「양이 늘어나면 질적 변화가 올 것」이라고 강조하더라』고 소개하며 구체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할 것이라고 보고. 이날 국무위원들의 발언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이상훈국방장관의 「군비통제조정위원회 설치검토」 발언. 이장관은 『앞으로 있을 남북 군비통제문제와 관련,정부차원에서 본격적인 토의를 위해 군비통제조정위의 설치가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강총리에서 곧 별도 보고하겠다』고 해 정부차원의 남북 군비통제문제에 대한 공식입장발표가 임박했음을 시사. 이부총리는 『대소경협은 좋으나 성급하게 서두르거나 기업들의 과당경쟁은 없어야 한다』면서 『정부가 재벌들의 협조체제가 이뤄지도록 교통정리를 해주고 진출기업들이 국익 우선차원에서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강조. 강부총리는 특히 정상회담 성과를 내치로 연결시키는 방안으로 물가안정을 꼽으면서 『어떻게 해서든 올해 물가는 10%가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정부미대량방출 ▲지하철요금등 공공요금억제 ▲정부미를 현 9분도에서 12분도로 도정하는 방안등을 거론. 이희일동자부장관은 소련의 자원개발협력과 관련,『자원협력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시작은 빨리 하는 게 좋다』면서 『현재 민간부문에서 무질서하고 산발적으로 자원조사를 하고 있는데 정부에서 조속히 종합적인 자원개발협력방안을 마련,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보고. 회의말미에 강총리는 『사실 우리는 소련을 너무 모르고 있다』고 지적하고 『대학등 관련 연구기관을 총동원해서라도 소련 관련자료들을 입수해 활용하고 국내연구기관들이 협조체제를 이뤄 나갈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
  • 「신사고」 앞세워 동서데탕트시대“견인”/고르바초프 집권5년의 평가

    ◎새로운 「자결원칙」 제시,동구 대변혁 “촉발”/강력한 대통령제 신설,개혁 가속화의 기틀 다져/“발등의 불”경제난ㆍ민족분규등 현안 “첩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겸 최고회의의장이 11일로 집권 5주년을 맞았다. 고르바초프는 그동안 사고의 대전환을 통한 대담한 개혁정책 추진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소연방내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민족주의 물결과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경제난 때문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르바초프는 12ㆍ13일 열리는 인민대표대회에서 비상대권 등 막강한 권한을 지닌 소련 최초의 서방식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취임 5주년 기념일인 11일에는 리투아니아공화국 최고회의가 독립국가를 선포하기 위한 표결을 준비하는 등 그에대한 도전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이같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는 개혁정책과 신사고외교를 성공리에 추진,소련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아니라 끝없는 군비경쟁으로만 치닫던 냉전체제에 종지부를찍으며 국제적인 데탕트 기류를 몰고 온 장본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대담하게 개혁 추진 지난 85년 체르넨코 서기장 사후 그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고르바초프는 지난 88년말 유엔총회연설에서 일방적인 국방비삭감과 50만명의 소련군 감축을 선언,세계의 군비경쟁에 결정적 브레이크를 걸었다. 또 소련의 동구개입을 뜻하는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폐기하고 이른바 시내트러독트린(프랭크 시내트러의 히트곡「My Way」처럼 각국이 제갈길을 찾아가라는 의미)이라 불리는 새로운 자결원칙을 제시,지난해 동구의 민주화변혁을 가능케 했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가 없었다면 베를린장벽의 제거와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몰락도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함께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을 철수시키는등 지역분쟁 해결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ㆍ재편)와 글라스노스트(개방ㆍ정보공개)를 세계적인 유행어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평화의 위협자에서 수호자로,동구제국의 지배자에서 해방자로,혁명수출국에서 분쟁중재국으로 소련의 역할전환을 이룩해낸 것이다. 시사주간 타임지는 고르바초프를 지난 8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플라톤의 정치의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고 극찬하면서 「80년대의 인물」로 선정했다. 지난달 미CNN방송이 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설을 보도하자 뉴욕ㆍ도쿄등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증권시장에서 주가폭락을 초래했을 정도로 그는 이미 전세계의 기대와 희망을 한몸에 받고 있다. ○군비경쟁에 쐐기 국내에서도 국제무대에서 만큼 가시적인 효과를 얻어내지는 못했으나 나름대로 소련의 정치체제를 뒤흔드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성공리에 추진하고 있다. 볼셰비키혁명이후 70년이 넘도록 유지돼온 공산당 권력독점을 포기,고질적인 관료제를 타파하고 정치적 다원주의의 물꼬를 텄다. 강력한 대통령직을 신설,개혁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기틀도 마련했다. 인민대표대회의 권한을 강화,자유로운 토론의 장으로 변모시켰는가 하면 각급 선거를 복수후보경쟁에 의한 비밀투표로 실시토록 했다. 정치범 석방,언론ㆍ종교ㆍ출입국 자유화 등의 민주화 조치도 취했다. 경제적으로도 관료적인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의 비능률성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의 독립채산제를 채택하고 협동조합기업(코페라티브)설립과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허용하는등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침체의 늪에 빠져든 소련 경제를 소생시키지는 못했다. 생산수단 사유화및 임금노동과 토지의 개인영구임대 및 상속을 허용하는등 보다 실질적인 조치들이 곧 입법화될 예정이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물자부족등 피부에 와닿는 경제혼란으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과 급진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팽배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정보의 공개와 언론자유에 힘입어 소수민족공화국들의 민족적 자각과 그에 따른 분리독립요구가 높아져 연방해체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같은 페레스트로이카와 신사고에 대해 고르바초프는 관료체제를 타파하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발전을 위한 제2의 혁명이며 「보편적 인간 가치」를 위한 자본주의 국가와의 협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역 분쟁해결 앞장 일부 서방전분가들이 지적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마르크스­레닌주의의 포기」「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의 재생이라는 주장이다. 개정된 공산당 강령은 레닌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여도 안되지만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국유 또는 사회소유에 반하는 사적소유와 인간노동의 착취행위로 금지돼왔던 임금노동을 허용하는 문제들을 놓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던 것처럼 아직도 사회주의적 「사회정의」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상반된 개념중 어느 것을 취할 것인지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소련과 동구의 변혁이 일방적이 아닌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것처럼 소련내의 개혁도 집권층과 국민들간의 상관관계속에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에측불허인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개혁작업이 어떤 동기에 의해 추진됐건간에 전임자들도 똑같이 느꼈던 문제를 고르바초프만이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단 그의 대담한 실천력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고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제 대통령으로서 집권2기를 맞으며 앞으로 4년의 임기동안 실각의 우려를 덮어둔채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게 된다. ○부분적 시장경제로 개혁을 가속화시켜 국민들로부터 계속 지지를 받게될지 아니면 일부의 우려처럼 독재자로 변신할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오는 94년의 2대 대통령은 국민들의 직접비밀투표에 의해 선출된다는 점에서 스탈린식 강권통치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자유의 맛을 느낀 소련국민들도 두번다시 과거행 타임머신에 동승하기를 거부할 것이다. 강제이주 이전 거주지인 크림반도로 돌아가겠다는 타타르족등의 단순한 요구로부터 발트해연안 3국의 즉각 분리독립요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족문제들이 고르바초프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또 루블화의 태환성 부여,가격ㆍ금융제도의 개선,완전자유시장의 도입등 근본부터 흔들어 놓아야 할 경제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세기의 영웅 고르바초프가 70년동안 타율성과 의욕상실증에 찌들대로 찌든 국민들을 다독거려 이같은 난제들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취임5돌 고르바초프 공과 ■외교 정책 ▲동구 각국에 대한 불간섭정책을 선언함으로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등 동유럽에 엄청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핵전쟁 발발 가능성의 공포와 유럽 및 중국에 대한 소련의 선제공격 우려를 현저히 불식. ▲국방비를 삭감하고 병력 50만명과 탱크 1만대 감축을 일방적으로 선언 ▲중부유럽 주둔 병력의 철수를 미국과 잠정적으로 합의 ▲미국과 중거리핵미사일 폐기를 합의한데 이어 오는 90년까지 장거리 핵미사일도 절반으로 삭감한다는 목표를 협상중.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 11만5천명을 철수. ▲앙골라ㆍ나미비아ㆍ캄보디아ㆍ니카라과 등 분쟁국에 대해 협상을 종용 ■민주화 ▲지난 89년 경선제를 도입하고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지도부를 설득,동의얻어냄. ▲강력한 대통령제 도입을 제안. ▲언론ㆍ집회ㆍ종교의 자유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법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 ▲정치범 수백명을 석방하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에 대한 탄압을 종식 ■경제정책 ▲일반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생화수준 개선을 위한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 ▲당지도부가 공장의 개인소유제도를 받아들이게 하는데 성공 ▲개인이 토지를 임대차하는 것은 물론 이 권리를 상속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으나 개인의 토지소유는 거부.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대폭 완화. ▲90년도 적자가 1천5백억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함으로써 재정적자를 처음으로 공개. ■국내정책 ▲발트해연안 3개 공화국의 독립요구 운동을 묵인.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등 일부 공화국에서 민족분규가 발생해 진압군 수십만명을 파견. ▲관료들의 부정 근절 실패,폭력범죄도 계속 증가. ▲환경보호주의자들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환경개선에는 아직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음.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성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았음.
  • 양당 국회 난기류… 극한대결 우려

    ◎평민의원 임시국회 개회식 퇴장의 파장/정책다툼보다 명분 집착 “힘 겨루기”/보안법ㆍ광주보상 등 첨예대립 예상/급박한 민생현안등 처리도 불투명 20일 개회된 제148회 임시국회가 벽두부터 국회의장 개회사ㆍ운영방법 등 비본질적 문제로 삐꺽거리고 있어 임시국회 운영의 파란은 물론 민자ㆍ평민 양당이 극한대결로 나가지 않나 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합당으로 거대여당인 민자당이 출범,여소야대의 4당체제가 무너진 뒤 처음으로 열린 이번 임시국회는 거여소야 정국운영의 시험무대라는 측면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출범이후 민자당측은 『다수 여당이 되었다 해서 결코 오만하거나 독주하지 않고 대화와 타협,인내와 아량으로써 성숙한 민주정치상을 보이겠다』고 다짐해왔다. 평민당측도 이번 임시국회를 앞두고 『과거와 같은 강경투쟁은 자칫 국민지지 기반을 잃게 할 우려가 있다』면서 『합리적 정책대결을 통해 평민당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3당통합의 반민주성과 비도덕성을 밝히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막상 정치의 실천무대인 임시국회가 열리자 양당은 평소의 다짐과는 다른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김재순국회의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4당 병립체제가 해체되고 국민에게 신뢰와 희망을 줄 수 있든 다수여당과 소수야당으로 양립된 모습을 갖추게 됐다』 『국정에 책임지는 정부ㆍ여당이 다수가 되고 이를 비판,견제하는 소수야당이 존재하게 된 것은 그만큼 우리 정치가 성숙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국운영에 대한 일반적 언급」이란 김의장 측근의 해명도 일면 수긍되는 면이 있지만 가뜩이나 3당통합에 「알레르기성」 부정반응을 보이고 있는 평민당측을 자극할 소지는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김의장의 발언이 여권의 국정독주의사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김의장은 개회사 초고를 썼다고 밝히고 문제가 될 대목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여권 수뇌인사들중 일부는 『않아도 될 말을 해서 평지풍파를 일으켰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김의장 발언에 대한 평민당측의 「과격한」 실력행사도 칭찬받을 일은 못된다. 평민당은 김의장이 다소 귀에 거슬리는 언급을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꺼번에 고함을 질렀으며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국민이 뽑은 선량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 본회의장을 뛰쳐나갈 때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김의장의 몇마디 발언이 국정운영의 동반책임자인 제1야당의원 전원이 퇴장하고 국회를 공전시키기에 충분한 원인을 제공했느냐에 대해서는 상당수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즉 평민당측이 「건전한 정책대결로 제1야당으로서의 위치부각」을 구호로는 외치면서 실제로는 어떤 구실만 주어지면 파행정치상황을 만들어 자신들의 뜻과는 달리 만들어진 양당체제에 「흠」을 내보자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 의혹이 일고 있다. 이날 임시국회 개회에 앞서서도 민자ㆍ평민 양당은 임시국회 운영일정및 방법을 놓고 이견차를 해소못해 구체적 의사일정조차 짜지 못했다. 민자당은 자신들의 의석이 평민당의 3배에 달하고 있음을 들어 대정부질문 발언자수를 3대1로 하자고 주장한 반면 평민당측은 3대3으로 하자고 맞섰다. 양쪽이 적절히 양보,절충점을 찾아 나가겠지만 자기 몫을 모두 찾고야 말겠다는 「거인」과 무조건 동등대우를 받아야겠다는 「소인」이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때 합의에 의한 정국운영은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보여진다. 어찌보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문제를 둘러싼 민자ㆍ평민간의 신경전을 볼 때 국가보안법ㆍ안기부법ㆍ광주보상법 등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협의가 시작된다면서 더욱 대립이 첨예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보안법의 경우 민자당 내부에서도 개정의 폭에 이견이 있으나 평민당이 보안법 폐지후 대체입법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여야간 「타협」의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안기부법의 경우도 민자당측이 국회정보위원회 설치로 안기부 권한 남용을 감시하자는 주장인 반면 평민당측은 안기부의 국내 수사권의 전면삭제를 요구하고 있다.결국 국가보안법ㆍ안기부법 등 두 법안은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미처리로 넘어가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대두하는 실정이다. 지방의회선거법ㆍ광주보상법ㆍ경찰중립화법 등과 국방참모총장제 신설을 골자로 하는 군조직법 개정문제등에 있어서도 민자ㆍ평민당은 상당한 이견차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번 회기내에 지방의회선거법ㆍ광주보상법 등 2개 법안은 반드시 통과시킨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민자당측은 지방의회선거법은 의원정수를 대폭 상향조정하고 광주보상법은 보상금액을 당초 안보다 상당히 높이는 등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들 법안에 대한 절충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낙관적 견해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평민당측이 개회식 퇴장사태에서 시사했듯 이번 임시국회를 3당통합에 대한 공격,나아가 의원직 총사퇴및 내각불신임 요구 등 정치공세의 장으로만 이용하려든다면 「여야합의로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국회」가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민자당측은 「꼭」 처리하고자 하는 지방의회선거법ㆍ광주보상법 등에 대해서 표결통과를 시도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파란」과 「파행」이 점철되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거여」의 힘을 과시않겠다는 민자당의 성숙된 자세,정책대결로 국민 심판을 받겠다는 평민당의 진지한 자세가 이번 임시국회의 성공적 운영을 위해 필수적이란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집단퇴장 소동… 임시국회 이모저모/김 의장 통합당위성 발언에 야서 발끈/평민의원들 고함치며 의장에 삿대질/“문제될 것 없다”… 의장은 평민항의 묵살 20일 상오 정계개편이후 처음 열린 제148회 임시국회는 김재순국회의장의 개회사 내용에 항의,평민당의원들이 퇴장함으로써 개회 벽두부터 파란을 빚어 앞으로 국회운영이 평탄치 못할 것임을 예고. 더욱이 평민당은 6인의 항의단을 구성,사과할 것을 요구했으나 김의장은 이들의 면담마저 거부해 이번 임시국회가 여야의 힘겨루기 장으로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대두. ○김대중총재 사인 보내 ○…임시국회 개회식은 김재순의장이 개회사를 읽기 시작했는데도 의원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느라 시끌벅적하고 평민당 의석에서는 『조용히 해』라는 고함이 터져나오는등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출발. 이날 소란은 김의장이 『여소야대의 4당병립체제가 해체되고 국민에게 신뢰와 희망을 줄 수 있는다수여당과 소수야당으로 양립된 모습을 갖추게 됐다』며 3당통합을 극찬하는 대목에서 촉발. 김의장이 정계개편의 당위성을 주장해 나가자 평민당 의석에서는 『뭐가 국민의 뜻이야』 『왜 쓸데없는 소리해』 『황금분할은 어디 갔어』라는 등 고함이 터져나왔고 김덕규수석부총무등 평민당부총무단이 의장석쪽으로 나와 삿대질을 하며 거칠게 항의. 그러나 김의장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준비된 개회사를 계속 읽어 내려가자 의석 앞으로 나온 김영배총무가 김대중총재의 「사인」에 따라 전원퇴장을 지시해 평민당의원들이 한꺼번에 퇴장. 김의장은 평민당의원들이 퇴장한 후에도 준비된 개회사를 끝까지 낭독했는데 민자당 의석에서는 『잘했어』라고 성원. ○…한편 김재순의장은 평민당측이 개회사 내용을 문제삼아 퇴장한 후 「김의장의 사과없이는 김의장이 사회를 보는 본회의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항의한 데 대해 이동복비서실장을 기자실에 내려보내 해명. 이실장은 『총무회담등 국회운영이 이런 일로 인해 영향을 받아서는 안되다는 취지에서해명하게 된 것이지 개회사 내용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오해가 있다면 본회의에서 부연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취소 또는 사과할 대목은 전혀 없다』며 김의장이 평민당의 항의단을 만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통보. ○“공연한 트집” 비아냥 ○…민자당의원들은 정계개편후 첫 임시국회 개회식이 평민당의원들의 퇴장으로 막을 내리자 군데군데 모여 「울고 싶던 차에 뺨을 때린격 아니냐」 「별거 아닌 것 가지고 공연히 트집잡는 구태의연한 방식」이라고 비아냥. 김영삼최고위원은 『세계가 다 변하고 있는데 우리 의회도 변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신사고를 해야 하는 때에 생트집만 잡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불만을 표시. 박준병사무총장도 문제가 된 김의장의 연설문을 검토한 뒤 『별 내용도 아닌 걸 가지고 왜 문제를 삼는지 모르겠다』며 『평민당이 사전에 전략을 세워 퇴장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평민당의 고의성을 지적. ○강경대응 발언 잇따라 ○…김재순의장의 개회사 내용에 반발해 퇴장한 직후 격앙된 분위기에서 열린 평민당의원 총회에서는 김의장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3당통합에 대한 강경대응 발언이 속출. 그러나 3당통합 저지를 위해 단판승부보다는 장기적 대응전략을 짜놓고 있든 김대중총재등 지도부는 일부 의원들의 강경발언을 제어하며 ▲김의장의 발언을 비난하는 성명서 채택 ▲항의단 파견 ▲김의장이 사과하지 않을 경우 향후 의사일정 보이콧 등 단계적 대응방안을 유도. 유준상의원은 『13대국회 개회시 4당구조를 「황금분할」이라고 지칭했던 김의장이 3당통합의 마각을 드러내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고 비난한 뒤 『의장의 사과가 없으면 모든 의사일정에 응하지 말자』고 제의. 박실의원은 『여권은 소수의 평민당을 회의장 퇴장등 분통이나 터뜨리고 다수결의 원칙하에 깽판이나 부리는 집단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면서 『저쪽의 대야합 구조를 분쇄하고 규탄하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총사퇴해야 한다』며 평민당의 독자적 사퇴를 주장. 그러나 김총재는 『투약이 과하면 병에는 오히려 나쁘다』 『국민의 내일을 생각하면 자살해서는 안된다』며 강경발언을 누그러뜨리며 김의장의 사과가 없을 경우 의사일정 보이콧의 시기와 방법을 지도부에게 일임해달라고 요청. 이날 총회는 김의장과 3당통합을 규탄하는 성명을 채택하는 한편 당3역과 김봉호ㆍ유준상ㆍ박실의원 등 6인으로 항의단을 구성. 이 항의단은 하오 2시 국회 2층 의장실로 올라갔으나 김의장이 끝내 나타나지 않자 김동복비서실장에게 김의장의 소재를 따지며 의사일정에 혼선이 초래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철수. ○의석배치에도 못마땅 ○…이날 첫 임시국회에서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본회의장의 각당별 의석배치. 4당시절에는 의장석에서 볼 때 오른쪽부터 무소속ㆍ공화ㆍ민주ㆍ민정ㆍ평민당순으로 배치,마치 민정당이 야3당에 포위돼 위축된 형국이었으나 이번에는 민자당이 중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좌우에 각각 평민당과 무소속을 거느리는 형국으로 변모. 평민당으로서는 의석배치가 종전과 변동이 없으나 민자당이 중앙의 의석을 차지한 데 대해 「거대여당의 비민주성을 드러내주는 독선」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토로. 민자당내에서는의석배치 기준을 전현직 당직자및 4선이상 의원을 뒷줄에 우선 배정하고 나머지는 상임위별ㆍ가나다순으로 의석을 배열. 이에따라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박태준최고위원대행,김재광국회부의장이 뒷줄 중앙에 나란히 자리잡았고 그 좌우에는 박준규 전민정대표위원,채문식고문,이춘구ㆍ김윤환ㆍ최형우ㆍ김용채ㆍ최각규ㆍ이한동ㆍ정동성의원 등 전직 3당 당직자들과 김동영총무,박준병총장,김용환정책의장,박철언정무1장관,정창화수석부총무 등 현 당직자들이 차지. 민주당(가칭) 추진세력등 무소속은 이기택ㆍ박찬종의원이 뒷줄에 나란히 앉고 나머지 의원들은 민자당 왼편에 한줄로 배치돼 외로운 모습.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