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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中학자 공동 심포지엄

    한국 임시정부 수립 80주년 기념 국제학술토론회가 12일부터 이틀 일정으로 20여명의 한·중 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 베이징(北京) 복단대에서 열렸다.이들은 ‘한국임시정부와 항일무장투쟁’,‘조선민족혁명당과 한국임시정부’,‘상하이에서의 한국해외독립운동’ 등 10여개의 주제를 놓고 상하이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미와 평가를 재조명하면서 열띤 토론에 들어갔다. 한국측에선 이원순(李元淳)국사편찬위원장과 박영석(朴永錫)건국대명예교수,유준기(劉準基)총신대교수,이현희(李炫熙)성신여대교수,김승일(金勝一)동국대교수,조규태(曺圭泰)국가보훈처 연구원 등이 주제발표자로 나섰다.김준엽(金俊燁)사회과학원이사장은 축사를 했다.중국측은 오경평(吳景平)복단대 교수와 석원화(石源華)복단대 한국연구센터 부주임,마장림(馬長林)상하이문서국연구원,패민강(貝民强)상하이임시정부 사적지관리처주임 등 11명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다음은 이현희교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성 연구’의 주요 내용. 1919년 4월 임정의 선포는 혁명적 민간 정통의 공화정부 수립을 알리는 신호탄이다.우리가 군주제를 청산하고 민주공화제의 자유민주주의 개시를 전세계에 알린 것이다. 이동녕 초대임시의정원 의장(국회의장)이 1919년 4월13일 상하이에서 “지금부터 이 나라는 대한제국이 아니라 민간인이 주도하는 대한민국입니다”라며 눈물로써 임정을 선포할 때가 바로 우리나라 법통의 시초인 것이다.그후임시정부는 45년까지 27년간 끈질기게 유지됐다는 점에서 세계인의 독립운동과 차별화해도 좋을 것이다.당시 인도와 월남,아랍국가들이 임시정부를 수립했으나 몇년 지속되지 못하고 좌절 또는 자진 철수했던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중국의 대표적 문호인 루쉰도 “한국인의 희생적인 투쟁은 일제 침략자를 무색케 했고 임시정부의 투쟁은 그 나라 법통을 지킨 쾌거였다”고 극찬했을 정도다. 1919년 4월 임정수립 이후 80년을 맞는 우리는 3·1 정신과 임정의 법통정신인 통일,민족,민주와 자유,정의,진리가 국가발전의 근본 원리임을 새롭게인식해야 할 것이다.
  • 일본차의 국내진출

    - 수입선다변화 해제 업계에 미치는 영향 '당장은 쾌청,장기적으로는 구름 오락가락’ 7월 수입선다변화 해제에 따른 일본차의 국내진출이 우리 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기상도다.일본차가 들어오더라도 당장은 큰 영향이 없겠지만 2∼3년 뒤에는 적잖은 타격도 예상된다는 뜻이다. 현재 일본 자동차업계는 도요타가 한국 직판체제를 준비하는 정도를 빼고는 적극적인 ‘한반도 상륙’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투자액만큼 이익을뽑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한때 연간 150만대에 이르던우리나라 내수가 지난해 80만대에 이어 올해도 90만대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보이는데다 뿌리깊은 반일(反日)정서도 꺼림칙하다. 또한 고급차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수요층이 적은 대형차 시장에 먼저 뛰어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소형·중형차는 가격경쟁력에서 국내업체에 많이 뒤떨어진다.급속한 시장잠식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이유들이다. 하지만 우리경제가 안정기조에 접어들어 소비가 활성화되면 무서운 기세로파고들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특히 일본업체들이 파격적인 저가(低價)정책을 펴거나 연합전선을 구축할 경우,상황은 예측하기 힘들어진다.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부품공급이 용이하고 미국·유럽업체들보다 탄력있는 시장정책을 펼수 있다는 점도 이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때문에 현재 국내시장의 1%도 채 장악하지 못한 미국·유럽업체와 달리 최고 10%까지 시장을 확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종렬(崔鍾烈)대우자동차판매 마케팅팀장은 “2년 이상 쓰는 내구재인 자동차의 특성상 애프터서비스나 고객관리면에서 우리업체와 대등한 상황이 된다면 이 부분에 철저하게 단련돼 있는 일본업체들이 좀더 유리해질 수도 있다”면서 “특히 일본이 초기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80년대 중반 미국시장에들어갈때 했던 것처럼 덤핑식 출혈판매에 나설 경우,시장잠식이 더 빨라질수도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연간 시장규모가 1,000만대가 넘는 미국과 달리 국내시장은 규모가 작아 섣불리 저가공세를 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김성익(金成翼)통상협력팀장은 “현재 자동차 시장이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호황이 아니기 때문에 한꺼번에 유입되지는 않을것”이라면서 “적어도 2∼3년 가량은 국내업체들이 큰 위협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우리 자동차업계 대응전략 오히려 우리가 간다. 수입선다변화에 막혀 그동안 시기만을 노려오던 일본 자동차가 7월 이 제도의 완전 해제로 전자제품과 함께 한국에 상륙한다.이에맞서 현대·기아 자동차와 대우자동차등 국내 업체들은 일본진출을 적극 검토하는 등 공격적인 전략으로 맞설 태세다.자신이 있다는 증거다. 한 가족이 된 현대와 기아는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전략을 세웠다.이미 시장조사는 끝낸 상태로 조용히 출진준비를 하고 있다.내년말을 D-데이로잡았다.비슷한 성능일 경우 동급의 일본차보다 15%이상 싸다면 해볼만한 게임이라는게 현대의 분석이다. 일본내 외국차 시장 점유율은 8%정도.현대 이유일(李裕一)사장은 “일본은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시장”이라면서 값싸고 질좋은 차라는 인식만 심어주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공략은 소형차로 할 생각이다.5월 출시예정인 엑센트 후속모델을 선봉에 세울 계획이다.대신 일본이 집중공략할 국내 대형차시장 방어의 최일선에는 빠르면 이달말 내놓는 4,500㏄급 초대형 승용차 에쿠스를 내세운다.중대형은방어,소형은 공격이다. 기아는 일본업체들이 1단계로 레저용 차(RV)를 갖고 공략해 올 것이지만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카니발과 곧 나올 카렌스 카스타로 맞선다면 일본 RV들이 발 붙이기 힘들 것으로 본다.일본진출도 노린다. 대우도 마찬가지다.성능면에서 벤츠E시리즈보다 낫다는 평가까지 받은 체어맨이 있는 한 대형차 시장 잠식 걱정은 하지 않는다.일본차 진출로 대형차시장이 커진다면 오히려 득이 될 것으로 본다.여건만 된다면 소형차 중심으로 일본진출도 고려해 보겠다는 심산이다. - 韓·日자동차 7월 '정면충돌' 7월이면 국내에서 국산차와 일본차가 맞붙는다.격돌 가능성이 높은 중·대형급을 중심으로 국내차들과 일본차들의 대결현장을 미리 가본다. [체어맨-렉서스] 일본 대형차중에서는 세계적인 명성의 도요타 렉서스가 최대 강적.대우의체어맨은 벤츠 E시리즈를 벤치마킹했지만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평가마저 듣고 있어 멋진 승부가 예상된다. 스포츠카처럼 날렵한 이미지를 갖고있고 국내 동급차중 최대의 전장 전폭전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충돌시 충격이 탑승자의 상하 좌우로 분산 흡수되도록 하는 피라미드 구조의 프레임을 벤츠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채택,안전성은 물론이고 완벽한 주행성을 갖췄다. 렉서스는 도요타가 세계고급 시장 석권을 위해 만든 야심작.지난 94년 첫선을 보인 4,000㏄급 LS400은 벤츠를 제치고 미국 소비자 만족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EF쏘나타-캄리] 국내 중형차의 대표주자인 EF쏘나타는 이미 미국 언론으로 부터 잇따라 찬사를 받으며 한국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을 바꿔놓은 차.최근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에서 특집으로 다뤄진데 이어 미국 최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USA투데이’와 유력 자동차 전문지들로부터도 극찬을 받았다. ‘카 앤드 드라이버’는 “현대가 드디어 일본 도요타의 캠리나 어코드와대적할 수 있을 만한 차를 내 놓았다”고 썼다.그렇다고 일본 중형차의 자존심인 캠리가 쏘나타보다 성능면에서 못하다고 단정짓는 것은 실례다.캠리는미국에서도 한등급이 위인 차로 보는 이들이 많다.소비자만족도에서도 항상1∼2위를 차지해왔다.따라서 국내에서 쏘나타와 경쟁은 불발 가능성이 높다. 체어맨,다이너스티 등과 경쟁할 것 같다. [카니발-일본밴] 기아 카니발은 국내 레저용 차량(RV)의 자존심.매달 4,000대 이상이 팔리는 등 소형차보다 많이 나간다.9인승과 7인승 두종류.IMF(국제통화기금)한파에 경기 침체와 RV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 고조 등 시판시기가 적절했던 점도 있지만 자체 경쟁력으로 베스트셀러카 반열에 올랐다. 국내상륙을 예상할 수있는 일본 미니밴들은 모두 7종.이가운데 일본의 베스트셀러카인 혼다 스텝왜건·오딧세이,미쓰비시 샤리오등이 더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스타일이나 성능면에서 카니발을 앞선다.그러나 가격면에서는비교조차 안돼 승부는 뻔하다.일본내 시판가격만도 카니발의 10배 수준.대개1,900만∼2,400만엔이다.카니발은 1,190만∼2,048만원. 김병헌기자
  • 새영화

    봄기운이 완연해진 4월의 첫주말을 맞아 마음이 따뜻한 영화 ‘바로워즈’와 ‘패치 아담스’가 관객을 손짓한다. ?바로워즈 집에서 평소 쓰던 사소한 물건이 갑자기 없어지거나,분명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든 적이 없는가.누구나 한번쯤 그같은 느낌을 가진 적이 있을 것이다.영화는 이에 착안,기발한 상상력으로 조그만 벌레 크기의 인간인 바로워즈를 탄생시켰다. 바로워즈는 주택 마루 밑에서 사는 조그만 인간들.이들은 천조각이나 아이스크림이나 완두콩 등 인간의 물건과 음식을 빌려 생활한다는 뜻에서 ‘Borrowers’로 이름지워졌다. 제작진은 바로워즈의 크기를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보통 물건보다 무려 14배나 큰 소품과 세트들을 만들었다.사람 키만한 1.5볼트 건전지,단추 등 하나하나 마다 엄청난 크기였다. 고객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악덕 변호사가 벽속에 숨은 바로워즈를 ‘터뜨려 죽이기’위해 망치로 벽을 때리며 수색하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또 수백 명의 바로워즈들이 그 변호사를 실로 칭칭 동여 매 꼼짝 못하게 하는장면은 영화의 압권이다.월트 디즈니의 ‘톰과 허크’를 연출한 피터 휴이트 감독의 첫 작품으로 ‘코엔형제’와 ‘고인돌가족 플린스톤’ 등에 나온 존 굿맨,‘101마리의 강아지’의 마크 윌리엄스 등이 출연한다. ?패치 아담스 유쾌함과 행복이 넘치는 코미디물.지난 연말 미국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자 “재미있고 극적이다”는 칭찬이 쇄도했다. 사람의 마음을 읽으며 육체 뿐아니라 정신을 치료하려는 ‘어릿광대’의사패치 아담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국내에서도 개봉소식을 듣고 의사들이 단체관람을 신청하는 등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 평론가는 미국 아카데미 3개부문의 상을 받은 ‘인생은 아름다워’에 못지 않은 영화라고 극찬했다. 헌터 아담스(로빈 윌리엄스 분)는 불행한 가정환경을 고민하다 정신병원에입원한다.동료로부터 상처를 치료한다는 뜻의 ‘패치(patch)’라는 애칭을얻은 그는 퇴원 후 의대에 진학한다.아직 정식의사도 아니지만 하루빨리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은 욕심에 허름한 집을 무료진료소로 개조,진료에 나선다.그는 이 곳에서 익살스런 행동으로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려 하지만 오히려 괴짜로 소문난다. 朴宰範
  • [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의 군상(30)

    ◆前한성은행장 韓相龍2,3년전 평소 알고 지내는 고서점에서 일제말기에 출간된‘창남수장(暢楠壽章)’이라는 문집 한 권을 구입한 적이 있다. 문집 이름에 ‘수(壽)’자가 들어간 것은 흔히 문집 주인공의 환갑잔치를 기념하여 만든 것이 보통이다. 일제 당시 환갑잔치에 문집까지 낼 정도라면 고관대작이나 후학이 많은 거유(巨儒) 정도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다. 이 문집 역시 그런 정도로 생각하고 첫 장을 넘겨 보니 당시 미나미(南次郞)총독의 축하 휘호가 나타나더니 뒤 이어 일본인 육군대장의 글씨와 궁내부대신을 지낸 민병석(閔丙奭)의 서문이 곁들여져 있었다. 다시 축하시 모음란에는 당대의 명사들이자 유명한 친일파들이 대거 운집해있었다.황족 친일파인 윤덕영(尹德榮)·좌옹 윤치호(尹致昊)·후작 이항구(李恒九·李完用 아들)·중추원 참의 김사연(金思演)·은행가 민규식(閔奎植)등등. 이런 수준의 인물들이 문집 주인공의 환갑잔치를 위해 시를 보낼 정도였다면 그의 수준·성향도 짐작이 간다.알고 보니 문집의 주인공은 일제당시 경제계의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한상룡(韓相龍·1880∼?)이었다. 한때 ‘조선 금융계의 황제’로 불렸던 한상룡은 1880년 규장각 부제학 출신 한관수(韓觀洙)의 3남으로 태어났다.17세때 관립외국어학교 입학을 계기로 신학문에 눈뜬 그는 미국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밀항을 하였으나 외숙 이윤용(李允用)의 주선으로 대신 사립 성성(成城)학교에 입학(1899년)하면서군인의 길을 택하였다. 이듬해 그는 한국정부의 관비유학생으로 선발되었으나 장티프스로 학업을중단하고 1901년 귀국하였다.귀국후 그는 사립 중교의숙(中橋義塾)의 영어교사로 일하다가 이 해 경부철도 기공식에서 고종의 종형인 이재완(李載完)의영어통역을 담당한 것이 인연이 돼 공직(평식원 총무과장)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의 공직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그는 자신을 둘러싼 ‘좋은 여건’을 배경으로 야심을 키워가고 있었다.당시로선 근대문물에 대한 견문과 영어·일어 구사능력을 갖춘 인재였던데다 그의 뒤에는 당대 제일의 권력자인두 외숙(이윤용·이완용 형제)이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1903년 12월 그는 한성은행(漢城銀行) 총무 취임을 계기로 금융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한일병합’ 직후인 1910년 9월 이 은행의 전무취체역으로 취임한 그는 일제당국에 로비를 하여 당시 조선인 합방공로자에게 지급한 은사공채(恩賜公債)를 흡수,자본금을 300만원으로 10배나 증자하면서 비약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성은행이 조선 귀족들의 은행이라는 소문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며 3·1의거 당시 민중들의 표적이 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이 무렵 그는 40여년 동안 일본 제일은행의 최고책임자로서 일본 재계의 거두로 군림해온 시부자와(澁澤榮一)를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었다. 그는 정치에서는 이토(伊藤博文),경제에서는 시부자와,건설에서는 통감부시절 재정고문을 지낸 메가타(目賀田種太郞)를 ‘조선에서 영원히 기억해야할 3대 은인’이라고 하면서,특히 시부자와에 대해서는 ‘일본은 물론 동양에서 공전 절후의 위인’이라고 극찬하였다.그는 시부자와의 좌우명 ‘일생일업(一生一業)’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기까지 했다.그가 대부분의 친일파들 처럼 정계로 나아가지 않고 실업계로 진출한 것은 시부자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가 매국에 가담한 친일파들에게 준 공채를 토대로 발전을 도모한 한성은행은 1923년 그가 두취(頭取,현 은행장)로 취임한 직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관동대지진의 여파에 이어 영업부진·경영악화가 계속됐다.이듬해 총독부는 이 은행을 정리대상으로 지목하였으며 28년 마침내 조선식산은행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나의 한성은행인가,한성은행의 나인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며 ‘한성은행에서 나고,자라고 그로써 거기에서 죽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한성은행을 잃게 되자 그는 병석에 눕고 말았다.식민지 예속자본의 말로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밖에도 그는 한성은행 재직시절 금융계 내에서의 지위를 이용하여 조선내 각종 기업·회사 설립에 중개자로 참여하였는데 실권은 전혀 가지지 못한채 명목상의 감투만 여럿 쓰고 있었다.이런 그를 두고 정신문화연구원 김경일 교수는 “‘한상룡의 경력은 반도 재계사의 축도(縮圖)’라는 표현처럼그는 제국주의 권력과 식민지 예속경제 사이에서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했던 정상배”였다고 평가했다.금융계에 평생을 바치고자 했던 그의 포부는 한성은행의 경영권 양도와 뒤이어 신탁회사 운영에서 배제되면서 날개를 접고 말았다. 한편 그의 친일이 겉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가 한성은행에서 물러나 사회활동을 본격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우선 그는 조선에 업적(?)을 남긴 주요 일본인들의 동상·기념비 건립을 시작으로 친일대열에 본격 합류하였다. 첫 사업은 통감부시절 재정고문을 지낸 메가타의 동상을 제작,1929년 10월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에서 제막식을 가졌으며,이 해 12월에는 이토(伊藤博文)기념회의 조선측 발기인 총대를 맡기도 했다.33년 2월에는 평소 자신이 숭배해온 시부자와의 기념비 건립을 추진,12월 장충단에서 제막식을 가졌는데 이는 전적으로 한상룡의 발의와 주동에 의한 것이었다. 또 35년 5월에는 ‘조선개화의 은인이자 일한합병의 공로자’인 데라우치(寺內正毅)의 동상건설회 발기인 및 실행위원으로 참여하여 총독부 청사내홀 우측에 그의 동상을 건립하였으며,이듬해 2월 소위 ‘2·26사건’으로 사이토(齋藤實) 전조선총독이 사망하자 부민관에서 추도회를 개최하고 39년 4월 그의 동상을 총독부 청사내 홀 좌측에 건립하였다.이밖에도 그는 러일전쟁 당시 한국주재 일본공사 하야시(林權助),정무총감 출신의 시모오카(下岡忠治) 등의 동상건립에 참여하면서 식민통치자들의 업적 찬양에 열을 올렸다. 한편 한상룡이 군국주의 일제통치하에서 40여년간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보다 군부와 밀월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한성은행에서 물러난 후 그는 군부관련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였다.31년 일제의 만주침략 이후 조선내 각지를 돌면서 강연·담화 등을 통해 그는 일제의 침략전쟁을 옹호하였다. 또 33년 4월 경성국방의회에 발기인으로 참가한 것을 비롯해 조선국방의회연합회 설립준비위원 및 감사(34.4),조선국방비행기헌납회 고문(34.12),해군협회 조선본부 창립위원(35.4)등을 맡아 활동하였다.37년7월 중일전쟁 발발 직전에는 관동군사령부 사무촉탁(칙임관 대우,근무기간 37.7.1∼40.7.1)으로 임명돼 군사령부를 방문,조선실업구락부 및 자신의 명의로 국방헌금을 하였다. 당시 그는 후방 전쟁지원단체인 경기도군사후원연맹 부회장이자 경성군사후원연맹 고문으로 있으면서 ‘애국금차회’ 창립을 주도,조선여성들에게 전쟁물자로 노리개 금붙이마저 내놓으라고 강요하였다.41년 태평양전쟁 개전으로일제의 인력·물자동원이 거세지자 그는 이 역시 전면에 나서서 협력하였다. 특히 43년 징병제가 실시되자 그는 ‘훌륭한 군인이 되자’라는 글에서 “반도에 불타는 애국심과 적성(赤誠)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약진 반도의 통치사상에 획기적인 징병제도가 실시되었다”며 조선청년들을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모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27년 중추원 참의(칙임관 대우)에 첫 임명된 이래 해방 때까지 그는 만18년 4개월동안 줄곧 중추원의 참의·고문을 지냈다.해방 1년전인 44년 4월 그는 윤치호·박중양(朴重陽·중추원 참의)·이진호(李軫鎬·총독부학무국장)·이기용(李琦鎔·황족·백작) 등과 함께 일본 귀족원 의원에 선임됐는데 마지막까지 일제에 협력한 결과이자 끝까지 일제에 끌려다닌 형상이라고도 할 수있겠다. 그는 한성은행 경영권 양도를 비롯해 일제로부터 수 차례에 걸쳐 의도적 배제를 당했지만 그 때마다 변신과 일관된 친일노선으로 버텨냈다.한마디로 일제하 그의 생존논리는 철저한 예속과 굴종이었다.그를 ‘친일 예속 자본가의 전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해방후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鄭雲鉉 jwh59@
  • [오늘의 눈]李총재 ‘쉬리’ 극찬 속내

    국산영화 ‘쉬리’가 온통 화제다.한국영화사에서 한 획을 그을 작품이라는평가답게 관객이 들끓고 있다. 반면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낡은 장롱 속에 개켜놨던 ‘반공 이데올로기’를 느닷없이 꺼내들어 극우 보수심리에 편승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정부의 포용정책을 흘겨보는 보수 중산층의 심리를 자극,‘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식의 맹목적인 이념편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논리다. 정치권에도 ‘쉬리 바람’은 불고 있다.지난달 28일 영화관에 들른 한나라당 李會昌총재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그 자체를 시비삼으려는 것은 아니다.국산영화에 정치인이 애정을 보인 것은 어찌보면 뒤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쉬리’의 작품성을 극찬했다는 후문에서 보듯 한나라당 지도부의대북관이나 안보논리는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답습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한나라당은 걸핏하면 “포용정책이 북한의 외투를 벗기는 게 아니라 우리를 발가벗기고 있다”며 정부의 대북(對北)정책을 문제삼고 있다.李총재도“햇볕론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정부의 ‘일괄타결식’ 대북정책에 사사건건 토를 달고 있다. 야당으로서 정책 비판은 본연의 임무다.그러나 문제는 대안이 결여된 비판은 현실성이 결여된 정책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점이다.정부 정책이 왜 잘못됐는지,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명확히 밝힐 때 야당의 비판은 비로소 합목적성을 갖는다.더구나 민족의 명운(命運)이 걸린 대북문제를 만에 하나 정략적이해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불행은 한나라당 자체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당내 보수 우파들이 TV카메라 앞에서 마치 제 세상을 만난 듯 “정부의 비료지원 방침은 친북(親北)정책”이라고 비난하고 당 지도부가 과거 徐敬元전의원에 대한 鄭亨根당기획위원장의 고문의혹을 “야당의원 죽이기”로 몰아가는 형국이 워낙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이 3·30재보선 등 정치상황을 고려,의도적으로 안보문제를 부각시키려 한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마당이다. 적어도 화해와 통일의 21세기를 지향하는 시대 상황이 야당의 정치논리로역풍(逆風)을 맞는 일은 없어야 한다.아울러 李총재의 불명확한 이념적 정체성(正體性)이 정치적 손익계산에 의한 것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박찬구 정치팀 팀장
  • [외언 내언] 금강산 사찰 복원

    금강산관광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현대가 금강산 사찰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금강산 외금강 지역에 한국전쟁으로 소실돼 터만 남아 있는 신계사(神溪寺)를 비롯해서 내금강의 장안사(長安寺),유점사(楡岾寺),정양사(正陽寺)등 4개 사찰에 대한 복원사업이 그것이다.오는 31일에는 남북한 불교대표들이 4년 만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회담을 갖고 현대가 추진중인 신계사 등 금강산 사찰복원문제를 논의한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인 조계종고산 총무원장과 북한조선불교도연맹 박태호위원장 등이 만나 금강산 사찰복원문제를 비롯,부처님 오신 날 남북한 공동법회 개최 등 양측 불교계 현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남북한 불교계가 현대에서 추진중인 금강산 사찰복원사업을 적극 지원키로 한 것은 매우 의미 깊은 일로 평가된다.금강산지역사찰문화재에 대한 복원사업을 실시키로 한 것은 민족의 흥망성쇠와 함께 이어진 불교문화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금강산은 본래 불교 화엄경사상에서 나온 이름이며 가장 높은 비로봉은 비로자나불에서 연유되었듯 불국정토의 상징이며 108개의 크고 작은 사찰과 암자들이 심산유곡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가히 불교의 성지(聖地)라고 할 만하다. 고려 이후 금강산은 우리 민족의 명산으로 시인 묵객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관동별곡(關東別曲) 같은 가사로,노래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들려지고 있다.금강산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한번 다녀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신의 조화라는 극찬을 받아왔다.“고려국에 태어나 금강산을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라는 송나라의 유명한 시인 蘇東坡의 금강산 회자도 그래서 나왔다.이같은 금강산의 문화유적들이 대부분 전쟁 중 불에 타 없어진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금강산 주변의 사찰을 복원하면 이는 앞으로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를 것으로 기대된다.또 해방 전 남북이 하나였던 시절의 금강산 사찰 원형을 재현해내는 작업이야말로 전쟁으로 인한 민족의 상처와 분단의 아픔을 씻어낸다는 상징적 의미도 크다.금강산 사찰복원사업 같은 비정치적 분야의 협력확대는 민족의 동질성과 신뢰회복을 증대시키는 데도크게 기여할 것이다.남북관계 개선의 획기적 기여는 물론 민족통일의 주춧돌이 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이러한 맥락에서 현대의 금강산 사찰복원사업이 하루속히 실현돼야 하며 이를 통해 남북 화해시대를 여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장청수 논설위원
  • 은반요정 나리-예지 황홀한 묘기 펼친다

    비엘만 스핀-.‘세계적 은반요정’ 남나리(13)와 국내 최고의 피겨스케이트 선수 신예지(15경희여중 3년)가 한 무대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를 선보인다. 두 요정의 묘기는 5일 오후 7시 그랜드 하얏트 호텔 특설링크에서 펼쳐진다.남나리와 신예지는 피겨 스케이팅에서 최고의 고난도로 불리는 ‘비엘만 스핀’ 등의 연기로 팬들을 매료시킨다. 비엘만 스핀은 한쪽 다리를 등뒤로 머리끝까지 들어올린 상태에서 8번 회전하는 것을 말한다.허리가 반원을 그릴 정도로 몸의 유연성을 지녀야 가능한기술이다.80년대 스위스의 피겨스타 비엘만이 처음 시도,성공해 붙여진 이름이다.지금도 이 기술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선수는 남나리와 타라 리핀스키등 손으로 꼽을 만큼 극히 일부다. 남나리는 지난 전미주니어선수권에서 ‘비엘만 스핀’을 완벽하게 연출,준우승을 차지하면서 그 모습이 미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화제를 모았다.미국대표팀코치 존 닉스씨는 “인체의 아름다움이 극치에 달한 표현”이라고 극찬한다. 우연치고는 묘하게도 신예지의 특기도 비엘만 스핀이다.신예지는 지난해 3월 전국종별선수권 등 3개 대회를 석권,더 이상 국내에는 적수가 없다는 평을 듣고 있다.지난해 11월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는 발목 부상에도 불구하고12위에 올라 국내 피겨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남나리는 5살때 외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스케이트장을 처음 찾은 뒤 닉스씨의 손에 키워졌고 신예지는 6살때 대표팀 코치인 고모 신혜숙씨(41)의 권유로 스케이트를 신었다.12살때에는 ‘천재요정’이라는 화제속에 사상 최연소 나이로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남나리는 3일 고국에 도착한 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 미국대표로 출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신예지는 4일 “올림픽에 꼭 출전해 나리와 금메달을 겨루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운 kkwoon@
  • 배구계의 ‘카라얀’ 이희완… 독일여자대표팀 감독됐다

    [프랑크푸르트 남정호 통신원] 독일에서 배구 클럽팀 지도자로 활약중인 재독 한인 이희완씨(44)가 독일 여자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됐다. 독일배구협회의 베르니 폰 몰트케 회장은 3일 독일 남자배구 1부리그 소속의 SV 바이에르 부퍼탈팀 감독인 이희완씨를 여자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밝히고 “이감독이 지도자로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며 독일 배구계에서큰 신임을 얻어왔다”고 선임 이유를 설명했다.이감독은 이로써 오는 6월부터 2년 동안 연봉 12만 마르크(8,400만원)를 받으며 독일 여자대표팀을 이끌게 됐다.한국인이 독일 여자 배구대표팀 감독을 맡기는 70년대 박대희씨(63)에 이어 두번째다. 감독 선임 발표가 나온 뒤 독일 언론들은 이감독의 지휘능력을 ‘전설적’이라고 극찬하고 있으며 한 배구잡지는 그를 세계적인 명지휘자 헤르베르트폰 카라얀에 비교,‘배구계의 카라얀’이라고 찬양했다. 대신중고-성균관대-상무-금성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75∼81년 국가대표 세터로 활약한 이감독이 독일에 첫발을 디딘 때는 81년.파더본팀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뒤 레버쿠젠 바이에르팀(현 부퍼탈팀)으로 스카우트돼 선수로 뛰다가 코치를 거쳐 91년 감독으로 승진했다.이감독은 같은해 팀이 연고지를 레버쿠젠에서 부퍼탈로 옮긴 뒤 93시즌 준우승,94시즌 우승을 이끌었고 현재소속팀을 분데스리가 10개팀 중 수위에 올려놓았다.이감독은 지금까지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4번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특히 97년 분데스리가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 도중 소속팀의 패색이 짙어지자 선수(세터)로 나서 역전승을 이끌어냄으로써 독일 배구계의 신화적존재로 떠올랐다. 이감독은 94년 제2회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서울시리즈를 앞두고 독일대표팀 기술담당 코치로 선임돼 독일 여자대표팀과 첫인연을 맺은 뒤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당시에도 이감독은 독일배구협회의 강력한 권유를 받았을정도로 일찍부터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다. 이감독은 쾰른체육대학에서 스포츠의학과 트레이닝학을 전공했으며 91년 ‘한국과 독일의 배구트레이닝 비교연구’란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학구파이기도 하다. 이감독은 독일로 가기전까지 김호철(이탈리아 클럽팀 감독) 강만수씨(현대자동차 감독) 등과 함께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했다.
  • 현대 EF소나타 美서 ‘고속질주’

    미국에서 현대자동차 EF소나타의 선풍이 거세다.워싱턴 포스트에 이어 이번에는 뉴욕 타임스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신문은 현대자동차의 99년형 쏘나타가 그동안 미국에서 최고의 보증과낮은 가격으로 인기를 끌어 온 도요타 ‘캠리’ 등 일본 중형차들의 대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난달 28일 보도했다. 신문은 99년형 쏘나타를 자동차섹션의 주요 기사로 다루면서 “현대측은 86년 미국시장에 진출하면서 내놓은 엑셀의 심각한 하자로 원하지 않는 명성을 얻었지만 최근 낮은 가격대의 차량을 판매하면서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현대자동차 판매량이 지난 1월 54%나 급격히 늘어난 점을 지적하며 자동차 딜러들이 수년이래 처음으로 현대측에 차량을 더 많이 공급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신문은 “99년형 쏘나타는 현대측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현대는 캘리포니아 디자인 센터가 독자적으로자동차 모델을 개발해냄으로써 아시아 자동차 기업의 수준을 뛰어 넘었다“고 평가했다.
  • ‘쉬리’서 북한 특수군단요원역 맡은 최민식 인터뷰

    배우 겸 탤런트 최민식(37)이 한국영화의 한석규 박신양 투톱에 도전장을내밀었다.영화 ‘쉬리’에서 북한 특수8군단 요원인 박무엽으로 나온 그는“최민식 밖에 안보이더라”는 칭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변함이 없다.연극 ‘햄릿’(극단 유)의 공연을 앞두고 펜싱을 배우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갑작스런 인기에 들뜨지 않고 차분한모습이다. ▒연기를 그렇게 잘하는 줄 몰랐다고 전부 깜짝 놀라고 있는데. “맡은 역이 ‘튀기’때문이죠.또 터프한 연기가 잘 맞아서 그렇습니다.” 살을 빼 홀쭉해진 얼굴에 겸연쩍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한국의 게리월드만이라는 새 별명답게 눈빛은 살아있다. ▒요즘 최고 스타인 한석규 박신양과 비교되기까지 하는데. (아예 손사래를 치며)“그렇지 않습니다.강제규 감독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최상의 앙상블을 이뤘어요.또 제가 그들의 대학(동국대 연극영화과)선배인데 둘다 ‘최고’입니다.한석규의 경우 성실성,세밀한 표현 등에서 탁월하지요.둥글둥글한 성격이라 직선적인 저하고 호흡이 잘맞습니다.서로 배우고 있습니다.배역이 배우를 결정할 뿐이지요.” 그는 사실 영화배우로서 신인과 중견 사이의 중간층에 속한다.이번 극찬이싫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인기란 일장춘몽’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를 정도는 아니다. 81년 연극무대에 선 이후 90년 KBS TV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쿠숑’역으로 시청자에게 첫선을 보이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맛봤다. ▒‘쉬리’가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두 가지를 들고 싶습니다.우선 천편일률적인 반공프로와 달리 북한군을 사상과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다루고,남북한 젊은이의 첨예한 대립을 그린 것이 공명을 얻은 것 같습니다.또 사실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습니다.절대 할리우드나 중국 느와르의 액션을 흉내내지 말자고 모두 다짐했습니다” 특히 귀순용사를 면담한 결과를 토대로 북한군 훈련과정을 재현했다.처음 10여분의 북한군 훈련장면은 이렇게 탄생했고 이를 본 관객들은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앞으로는 평범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학교에서 배운 대로 제대로 연기해보자는 생각입니다”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그리는 것이 연기의 본령이라면서 의욕을 내비친다. 朴宰範 jaebum@
  • 현대車 북한진출 293대…金正日도 극찬

    “현대자동차,정말 좋습네다” ‘통일소’지원,금강산 관광 등 현대의 활발한 대북사업 바람을 타고 북한에 간 현대자동차들이 남한을 알리는 ‘이동 광고판’역할을 톡톡이 해내고있다. 21일 현재 북한에 보내진 현대차는 모두 293대.지난해 ‘통일소’를 운반한 트럭 100대와 鄭周永 명예회장 방북때 납품한 승용차 70대 등 170대.이외에 에어로타운 35인승 버스 70대 등 102대가 금강산 관광용으로,트럭 21대는장전항 부두공사 등 각종 건설 공사용으로 쓰이고 있다. 승용차로는 엑센트가 24대로 가장 많고 아토스 20대,EF쏘나타 15대,아반테14대,다이너스티 10대 등이다. 북한 사람들이 “이게 정말 남한에서 만든 차가 맞냐”며 놀라워하고 있다는 게 현대측의 설명.심지어 金正日 국방위원장도 지난해 10월 다이너스티리무진을 직접 몰아본 뒤 “정말 훌륭하다”고 극찬했으며 지난해 12월15일鄭명예회장의 4차 방북때 다이너스티 리무진을 공식의전차로 제공하기도 했다.북한은 최근 완성차 5,000대를 보내달라고 현대쪽에 요청했다. 덕분에 현대가 평양 인근에 짓기로 한 연산 1만∼3만대 규모의 자동차조립공장 협상도 활발해지고 있다.현대는 이 공장을 중국·러시아 시장공략의 전초기지로 삼을 방침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용 차량의 출입문 등 눈에 잘 띄는 곳마다특수제작한 ‘現代’ 로고를 부착해 홍보효과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 [화제의 책]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과학적으로 살았을까

    鄭雲鉉 언제부턴가 우리는 조상들의 지혜가 농축된 ‘우리것’을‘진부하고 비과학적이고 불결하고 믿을 수 없다’고 치부해버리지는 않았는지. 근대화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뒤 민속촌이나 박물관에서 박제화 된 채 밀려난 ‘우리것’의 진면목을 탐구한 책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과학적으로 살았을까’가 출간됐다.황훈영 지음,청년사 발행.저자는 ‘학교에서 배우지못한 조상들의 생활과학 27가지’를 예로 들어 우리조상들의 소박하면서도 과학적인 생활양식에 애정의 눈길을 던지고 있다. 1972년 중국 호남성 장사시의 ‘마왕퇴고분’에서는 약 2,500년 전에 죽은 자의 시신이 발굴되었는데 발견당시 시신은 죽은지 나흘 정도의 상태였다.이유는 무덤 위에 덮힌 ‘숯’ 때문이었다.일찍부터 우리 조상들은 습기를 없애는데 숯을 사용해 왔다.팔만대장경을 보관한 해인사 장경각 지하와 석굴암 바닥에는 다량의 숯이 묻혀있다. 뒷간 분뇨통에서 사랑방 필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쓰여온 옹기를 저자는 ‘생명의 그릇’이라며 극찬한다.흙으로 빚은 옹기는 미세한 구멍을 통해 호흡을 하는데 옛날 할머니들이 아침저녁으로 항아리를 닦아주던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밖에도 저자는 방풍·방부효과가 뛰어난 옻칠,음양의 조화를 이룬식품 메주,천년을 숨쉬는 닥종이,배탈을 낫게하는 황토물,우리민족 고유의 합금 놋쇠 등의 신비와 과학성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소개하고 있다. 7,000원. 鄭雲鉉 jwh59@
  • 金대통령등 창조적 지도자 20세기 후반 민주주의 이끌었다

    코라손 아키노 전필리핀대통령이 필리핀 유력 영자일간지인 ‘투데이’지 8일자에 金大中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기념하는 기고문을 실었다.‘金大中,역사의 창조자’라는 제하의 이 기고문에서 아키노전대통령은 독재를 양산했던 20세기 마지막 25년동안 민주주의를 이끈 것은 거대한 세력이 아니라 폴란드의 바웬사,체코의 하벨,동독의 마수어,그리고 한국의 金대통령과 필리핀의 니노이 아키노 같은 지도자”라고 ‘창조적 소수론’을 폈다. 그녀는 이어 “金대통령과 필리핀 민주화에 기여한 나의 남편 고(故) 니노이 아키노 상원의원은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특별한 인격과 신념을 가진 인물들”이라고 평하고 “이들은 공산주의를 주창한 혐의로 자신들을 체포하고 재판에 회부해 형을 언도한 사람들보다 더욱 진지하고 열렬하게 공산주의와 싸웠다”고 역설했다. 또 “이들 두 사람은 상이한 이념을 가진 정적과 다투는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진정으로 헌신했다”고 극찬했다.
  • 金永旭씨 모친 李賢卿여사 별세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金永旭씨(51)의 어머니 李賢卿여사가 24일 새벽 서울 운니동 자택에서 별세했다.향년 90세. 고인은 우리 음악계에 영재교육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일깨운 인물로 金씨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4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명교수 이반 갈라미언의 조련을 거쳐,명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진정한 천재’라고 극찬하는 입신의 경지에 올랐다. 고인은 특히 李承晩 전대통령의 주치의였던 남편 金承鉉씨(93년 별세)가 50년전 구입한 운현궁 별채 영로당(永老堂)의 안주인으로 외국의 저명음악가들이 내한하면 자택으로 초대해 손수 만든 궁중음식을 대접해 온것으로 유명하다.金씨는 국내 연주회가 있을때면 꼭 이 고옥에 머물며 어머니 곁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곤 했다. 고인은 “진정한 교육은 개인의 개성을 최대한 발현시키는 것”이라는 지론에 따라 엄격하면서도 개인의 자유의지를 중요시하는 가정교육을 실천,슬하의 4남2녀를 인재로 키웠다. 막내 永旭씨 외에 장남 永軾씨(66)는 미국 UC버클리대 교수,차남 永琦씨(63)는미국 미네소타대 교수,3남 永珷씨(57)는 국내 대표적 법률회사인 김&장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1주일전 모든 연주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해 임종을 한 金씨는 “영로당이란집의 현판처럼 어머니가 영원히 늙기만 할 줄 알았는데 큰 스승을 잃어버렸다”며 오열했다.발인은 28일 오전 7시.(02)765-0021.
  • 朴贊守 목아불교박물관장

    자랑많은 목아불교박물관에서 첫번째 ‘명물’은 단연 朴贊守(52)박물관장이다. “포청천,도사,산신령을 거쳐 작년부터는 임꺽정으로 불려요.도적이라도 한국 족보를 찾았으니 좋습니다” 상투 틀어올린 머리에 긴 수염이 예사롭지 않은 朴관장은 많은 별명 중에서도 ‘걸어다니는 토종박물관’이 제일 맘에 든다고 한다. 목아(木牙)라는 호에서 알 수 있듯 나무에 싹을 틔우는 것을 업(業)으로 삼은 박관장은 96년 국가지정 중요문화재 제 108호,목조각장 1호의 기록을 가진 이 시대 최고의 장인(匠人)이다.일본 NHK에서 다큐멘터리로 그를 소개하기도 했다.NHK는 ‘일본 가정의 불상 중 10%는 한국 의 조각가 박찬수의 작품이며 이러한 사실은 불교가 백제로부터 전래되어온 것을 또 한번 증명하는 것’이라고 극찬했다. 화전민의 많은 자식 중 하나로 어렵게 살았던 유년시절을 하나도 잊지않은박관장은 경제적 풍요를 즐기는 대신 불교유물과 전통유물을 수집했고 이 보물들을 ‘문화를 알리기 위해’ 박물관에 전시했다.불교전래 후 1,600년은불교유물을 빼고는우리 문화자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박관장은“불교박물관이니 볼 필요없다면서 박물관 문앞에서 돌아서는 사람들이 답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대별 박물관이 완전히 들어서는 10년 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물론 외국 관광객까지 필수적으로 다녀가는 날이 올 것으로 박관장은 믿고있다.
  • 99강원 동계AG 24개국 참가 30일부터 열전

    앞으로 10일.36억 아시아인이 한마음으로 펼치는 ‘눈과 얼음의 제전’ 제4회 동계아시안게임이 강원도 일원에서 30일부터 2월6일까지 8일간의 열전에들어간다. ‘영원한 우정 빛나는 아시아’를 모토로 내걸고 설원의 고장 평창,전통의 예향 강릉,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분산 개최되는 이번 동계아시안게임은 21세기를 1년 앞두고 열리는 첫 아시아권 종합대회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7개 종목(43개 세부종목)에서 24개국 선수단 800여명이 참가해 사상최대가 될 전망이다.▒경기시설 용평 알파인스키장 강릉 실내빙상경기장 등 7개 경기장 공사는총 1,493억원(국비 99억 지방비 304억 민간자본 1,090억원)을 들여 지난해 11월 모두 끝냈다. 특히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은 11.25㎞ 전구간에 인공눈을 만들 수 있는 제설관로를 완비,국제 스키관계자들로부터 극찬을 받는 등 4계절 전천후 시설로자부심을 갖게 됐다.이 경기장은 바이애슬론 코스 3.75㎞ 사격장 등을 갖춰국제무대 최고수준으로 손색이 없다. 개·폐회식 행사장이자 쇼트트랙 피겨 경기가 열리는 용평 실내빙상장은 연면적 3,820평 규모로 새단장됐다.관람석은 4,000석. 스키 슈퍼대회전 대회전 회전경기를 치르게 되는 용평리조트에는 민자 856억원을 들여 슬로프 3개면을 새로 꾸몄다. 아이스하키 경기가 벌어지는 강릉 실내링크는 연면적 5,180평에 관중 3,400명을 수용할 수 있다.스피드스케이팅을 치르는 춘천빙상장은 1,000명 규모. 동계아시안게임에 앞서 열리는 프레대회를 통해 미비점을 계속 보완,거의완벽에 가까운 대회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운영계획 조직위는 지원인력으로 조직위 관계자 자원봉사자 등 모두 1,852명을 이미 확보,원만한 대회운영을 자신하고 있다. 총 4,000여명으로 예상되는 각국VIP 선수단 운영요원 보도진 등 참가인원의 안전관리 대책도 마무리됐다.특히 군경 1,870명을 안전요원으로 투입해 이틀에 걸쳐 대테러 모의훈련을 깔끔하게 치렀다. 조직위는 또 TV방영권과 관련 국내 방송사,일본 NHK와 지원협약 및 계약체결을 마쳤으며 중국 CCTV 홍콩 CABLE TV와는 협의중에 있다.보도진 800여명이 몰려 아시아축제를 타전할 메인프레스센터와 국제방송센터는 용평리조트타워콘도에 설치된다.▒행사준비 23일 오전11시에 있을 개촌식을 위해 정부·지역인사 등 각계 400여명을 초청해 놓았고 대관령 눈꽃축제를 포함 지역 문화행사와 연계한 각종 민속공연 채비도 물샐 틈이 없이 진행중이다.종합 청사진 아래 시나리오를 짜 연습공연까지 마친 상태. 개회식은 30일 오후3시,폐회식은 2월6일 오후6시 용평 실내빙상경기장에서이뤄지며 2차례 연습을 거쳐 마지막 리허설을 남겨 놓고 있다. 그밖에 용평 ‘눈마을’에서 벌어질 선수촌페스티벌,참가국 민속공연 등에쓸 공연물 제작에만 3개월 동안 노력을 기울였다.▒기반조성 영동고속도로 소사휴게소∼횡계 유천간 49.4㎞가 4차선으로 임시개통돼 교통소통이 원활해졌다.횡계∼용평리조트 구간 진입로는 3.6㎞를 확장했고 춘천 실외빙상장 진입로 1.6㎞를 새로 포장했다. 숙박대책을 살펴보면 용평 드래곤밸리호텔 타워콘도 춘천 공무원교육원 강릉 도립전문대학 등 기존시설 재활용에 역점을 뒀으며 아파트 1동(64실)을신축했다. 용평리조트를 비롯해 3개 지역으로 나눠지는 선수촌은 23일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손님 맞이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미지 관리.입국에서 출국하는 날까지‘원더풀 코리아’를 심기 위해 한국의 관문 김포와 강릉에 공항영접센터를설치,10일부터 운영에 들어간다.기상이변 등 돌발사태에 대비하여 세부계획도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송한수 onekor@daehanmail.com
  • 정직한 역사 되찾기-친일의 군상(21회)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가곡 ‘선구자’의 제1절이다.노랫말이 담고 있는 비극적 서사성과 장중한선율,게다가 가사 구절마다 배어있는 조국 광복의 웅지가 어우러져 부르는이,듣는 이 모두를 숙연케 하는 노래가 바로 이 노래다.가히 ‘국민가곡’이라 부를 만하다.일송정(一松亭)에 오르면 멀리 서쪽으로 용정(龍井)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발아래 북쪽으로는 해란강(海蘭江)이 서에서 동으로 유유히 흐른다.이곳이바로 ‘선구자’의 고향이다.그러나 유구한 세월 속에서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말 달리던 선구자도,활을 쏘던 선구자도….‘선구자’의 주인공들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오직 그들이 부르던 노래만 남아 입으로,가슴으로 전해오고 있다. ■시인·작사가 尹海榮‘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가곡 ‘선구자’의 제1절이다.노랫말이 담고 있는 비극적 서사성과 장중한선율,게다가 가사 구절마다 배어있는 조국 광복의 웅지가 어우러져 부르는이,듣는 이 모두를 숙연케 하는 노래가 바로 이 노래다.가히 ‘국민가곡’이라 부를 만하다.일송정(一松亭)에 오르면 멀리 서쪽으로 용정(龍井)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발아래 북쪽으로는 해란강(海蘭江)이 서에서 동으로 유유히 흐른다.이곳이바로 ‘선구자’의 고향이다.그러나 유구한 세월 속에서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말 달리던 선구자도,활을 쏘던 선구자도….‘선구자’의 주인공들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오직 그들이 부르던 노래만 남아 입으로,가슴으로 전해오고 있다. 1932년 10월 어느 날 저녁.만주 하얼빈에 살고 있던 청년작곡가 趙斗南(1912∼1984)에게 낯 모르는 한 청년이 찾아왔다.키가 작고 마른 체격의 청년은조두남에게 시 한편을 내놓으며 곡을 붙여달라고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조두남은작곡을 해놓고 그 청년을 기다렸으나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조두남은 그가 주고간 시의 내용으로 봐 그를 독립군 정도로 여겼다.이 내용은 조두남이 ‘선구자’ 작곡에 얽힌 비화를 소개하면서 작사가 윤해영에 관해 언급한 것이다. 尹海榮의 일제시대 행적이 밝혀진 것은 90년대 초반.한동안 윤해영은 ‘신비의 인물’로 여겨져 왔다.지난 90년 한국을 방문한 연변대학의 權哲교수는 “윤해영은 독립군이 아니라 시인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권교수에 따르면 윤해영은 1909년 함경도에서 출생,소학교 교사를 하다가 시인이 됐다는 것.초창기 그의 시는 ‘선구자’에서 엿보이듯 민족적 색채가 강했다.그러나 그는 식민지 시대를 겪으면서 훼절,친일로 전향하였고 해방후에는 공산주의를찬양하는 시를 썼다고 권교수는 주장하고 있다.권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윤해영은 결국 만주 친일파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는 셈이다. 친일파들 가운데 행적입증이 가장 쉬운 부류는 단연 문사(文士)들이다.곳곳에 친일의 흔적(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윤해영 역시 예외가 아니다.일제하 만주에서 간행된 ‘만주시인집(滿洲詩人集)’(1943년 간행)과 ‘반도사화 낙토만주(半島史話 樂土滿洲)’에 남아있는 그의 친일시 몇 편을 우선 살펴보자. ‘오색기 너울너울 낙토만주 부른다/백만의 척사들이 너도나도 모였네/우리는 이 나라의 복을 받은 백성들/희망이 넘치누나 넓은 땅에 살으리…’(‘낙토만주’ 제1절) 운율과 형식이 가곡 ‘선구자’를 본뜬듯이 꼭 같다.그러나 속생각은 정반대다.우선 ‘오색기(五色旗)’는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의 국기(國旗)를 말한다.만주국은 만주족·몽고족·한족·일본족·조선족 등 오족(五族)으로 구성돼 있었다.만주국 국기의 다섯 가지 색깔은 각 민족을 상징한다.만주국의 통치이념인 ‘오족협화(五族協和)’는 여기서 나온 말이다. 이 무렵 윤해영은 태극기 대신 오색기를 들고 있었다.바로 ‘낙토만주’는반민족 정서의 정수라 할 만하다.당시 만주에는 조선땅에서 건너간 유랑민들이나 독립운동가들의 가족들이 숨어서 은거하던,말 그대로 ‘고난의 땅’이었다.이를 두고 그가 ‘낙토’ 운운한 것은이미 민족의 반대편에 서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시에 흐르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지극히 낭만적이고 평화롭다.‘말달리던 선구자’를 외치던 정신은 온데 간데 없고 선구자들이 말달리던 만주국을 이상향(理想鄕)으로 미화하고 있다.‘유사품’ 한 편을 더 소개하자. ‘흥안령(興安嶺) 마루에 서설(瑞雪)이 핀다/4천만 오족(五族)의 새로운 낙토(樂土)/얼럴럴 상사야 우리는 척사(拓士)/아리랑 만주(滿洲)가 이 땅이라네…’(‘아리랑 滿洲’,‘만선일보’ 1941.1.1) 이 시는 윤해영이 만주국 기관지 ‘만선일보(滿鮮日報)’ 신춘문예 민요부문에서 일석(一席:1등)을 차지한 작품이다.심사평에서 평자(評者)는 이 시의 3연 2행 ‘기러기 환고향(還故鄕) 님 소식(消息)가네’를 두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귀에 익은 ‘아리랑’에다 전통타령조까지 가미한 것이 흥겨운 민요 한 편을 만난 기분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작품이 나온 시기와 장소이다.1939년 10월 조선에는 ‘국민징용령’이 내려졌고 2개월 뒤인 12월에는 ‘창씨개명령’이 공포되었다.그 무렵 만주에서는 ‘선만일여(鮮滿一如)’,즉 ‘만주와 조선은 하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대륙침략에 조선의 물자와 인력을 총동원하고 있었다.이같은 형국에 척사(拓士·개간꾼)들 앞에서 ‘얼럴럴’ ‘낙토’ 운운한 것이 당시 윤해영의 시(詩) 정신이요,민족관이었다.이름이 ‘아리랑’이지우리 전통민요 ‘아리랑’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1940년대 그는 만주국 친일조직인 협화회(協和會)의 간부를 지내기도 했다.친일의식이 행동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한편 윤해영이 1941년에 쓴 시 가운데 ‘발해고지(古址)’라는 시가 있다.이 작품은 윤해영이 발해유적을 답사하면서 민족의 비극을 돌아보는 내용을담고 있다.‘변절자’ 윤해영이 정신적 방황을 거듭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윤해영의 시세계를 연구해온 인천대 오양호교수(국문학)는 “일제말기 우리 지식인들이 운명적으로 겪어야 했던 비극의 편린을 보는 느낌”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지난해 가을에도 해묵은 논쟁으로 나라가 시끄러웠다.바그너 곡(曲) 연주를 둘러싼 찬반론이었다.이스라엘은 아직도 공식 석상에서 바그너 작품 연주를 금하고 있다.바그너가 제공한 반(反) 유태정신이 나치즘의 이론적인 기틀을 제공,민족감정에 배치된다는 것이 ‘연주금지’의 이유다.바그너는 1883년에 사망했다.그러므로 금세기에 자행됐던 유태인 탄압과는사실상 직접적 관계는 없다.그러나 이스라엘은 아직도 바그너의 작품 연주 금지를 풀지 않고 있다.이스라엘 민족이 편협해서일까. 예술작품의 참 가치는 기교가 아니라 정신이다.鄭雲鉉 jwh59@
  • 유로머니紙‘능력있는 아시아관료’/재경부 邊陽浩 국제금융과장 선정

    유럽의 유력 경제전문지인 유로머니가 최근 아시아지역 위기국가의 능력있는 관료,금융,기업인들을 소개하는 특집기사에 재정경제부 邊陽浩 국제금융과장(44)을 포함시켜 화제다. 유로머니는 아시아 위기가 새 세대의 관료 등을 탄생시켰으며 이들은 서양에서 교육받고 개혁·투명성 등의 논리에 정통한 것은 물론 매력적이고 개방적이라고 극찬했다.
  • 金 대통령 영문기고문 외국 언론 관심

    ◎LA타임스 등 18개국 21개 신문서 게재 金大中 대통령이 지난달 5일 영자지 ‘코리아타임스’에 ‘보편적 세계주의를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영문 기고문이 미국 LA타임스,홍콩 HK스탠더드 등 18개국 21개 신문에 전문 또는 발췌문으로 게재됐다고 청와대 공보수석실이 10일 밝혔다. 특히 인도의 더 이코노믹타임스는 지난 5일자 신문에 金대통령의 기고문을 전문 게재한 데 이어 8일엔 ‘브라보 金大中 대통령’이라는 제목으로 사설까지 썼다고 전했다. 이 사설은 “한국의 金대통령이 보편적 세계주의라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효율성의 극대화라고 말한 것은 정곡을 찌른 것”이라며 “인도에도 이러한 자질을 갖춘 정치지도자가 있었으면…”하는 아쉬움으로 맺는 등 극찬했다.
  • 시일야방성대곡 전재(대한매일 秘史:8)

    ◎‘시일야…’ 영문 번역 호외 발행/을사조약 전말도 폭로… 日 침략 서방에 알려/황성·제국신문 정간 횡포/일제 언론 탄압 날로 기승/장지연 구속·신문과정 보도/대한매일 항일 강도 더해 한국주차 일본군 사령관 하라구치(原口兼濟)가 ‘군사경찰훈령’을 공포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1904년 7월20일에 공포된 이 ‘훈령’은 “집회나 신문이 치안을 방해한다고 인정할 때에는 그 정지를 명하고 관계자를 처벌”함은 물론 “신문은 발행 전에 미리 군사령부의 검열을 받게 하도록”(제2항) 하였다.8월20일에는 황성신문과 뎨국신문의 대표를 불러 검열을 통보하였고,10월9일에는 ‘군정시행에 관한 내훈(內訓)’을 시달하여 집회 신문 잡지 광고 등이 치안을 방해한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해산·정지 또는 금지시킬 수 있도록 했다.바로 이튿날인 10월10일 헌병사령부는 뎨국신문에 무기정간 명령을 내렸다.이는 한국언론사상 처음 내려진 강제 정간이었고,일본군이 한국 신문에 정간을 명령한 첫 탄압이기도 하였다. 이듬해 1월8일에는 한국주둔 사령관하세가와(長谷川好道)가 ‘고시군령(告示軍令)’19개항을 공포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집회 결사 신문 잡지 광고 등 언론에 관한 규제를 강력하게 실시하도록 돼있었다.또한 군령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사형 구금 추방 과료(過料) 또는 태형에 처하도록 하는 엄격한 벌칙이 마련되어 있었다. 장지연은 이와같이 엄중한 일본의 군령을 어기고 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한 황성신문을 검열받지 않은 채 아침 일찍 배포한 다음에 일본 순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아침 5시가 되자 일본 순시(巡視)와 순사가 신문사로 와서 장지연을 체포하고 신문은 정간시켰다.따라서 이제 그에 대한 후속기사는 대한매일신보가 알리게 되었다. 대한매일은 11월21일자 1면 머리에 ‘황성의무’라는 제목의 논설을 싣고 장지연의 용기를 극찬하였다.“실로 대한 전국 사회신민의 대표가 되어 광명정직한 의리를 세계에 발현(發顯)하리로다.오호라 황성기자의 붓은 가히 해와 달과 더불어 그 빛을 서로 다투리로다.”고 찬양했다.같은 날짜에 ‘사장피착(社長被捉)’이라는 기사를 실어 장지연의 구속과 황성신문의 정간 사실을 보도하였다. 22일자에 실린 논설 ‘위재한일관계(危哉韓日關係)’는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한국의 국권을 탈취하고 가옥과 토지를 강탈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인명을 참살하고 재정을 고갈케 하며 학무를 감축하여 교육이 날로 쇠퇴하도록 만든다고 비판하였다.을사조약의 체결도 황제를 비롯,정부관리들과 국민이 모두 반대하자 일본은 병사를 궁궐에 끌고 들어와서 이의 체결을 강요하였다고 논평했다.한국은 비록 작은 나라지만 인구가 2천만인데 2천만이 모두 이에 복종하지 않으면 군대를 가지고 국민을 모두 도륙할 것인가.이날부터 대한매일은 정간 당한 황성신문에 실렸던 「오건조약 청체전말」을 3회에 걸쳐 다시 전재했다. 23일자에는 장지연이 경무청에 구속된 후 일인 경무고문의 심문에 의연히 맞서서 항변한 내용을 게재하였다.일인 경무고문이 “무슨 이유로 검열을 받지 않고 멋대로 신문을 배포하여 치안을 방해하였는가.”라고 심문하니 장지연은 “이른바 치안방해는 내가 알 바 아니다.대저 나라가 있은후에야 치안 여부가 있는 것인데 지금 나라가 없으니 치안을 논할 수 있겠는가.내가 붓을 잡은지 7∼8년에 세상의 공론을 주장하다가 오늘 국가가 없어지게 된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린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이에 경무고문이 할 말을 잃었다고 보도했다.(1905.11.23,‘사장항변’) 대한매일은 25일자 논설 ‘황성긍린(皇城矜隣)’에서도 정간 당한 황성신문을 속간시키라고 촉구하였고,26일자에는 장지연은 무죄인데도 법률을 어겨가며 구류 중이라고 경무청을 비난했다.법률에 따르면 장지연을 24시간 이내에 평리원이나 한성재판소로 이송하도록 되어있는 데도 이와같이 여러날 동안 가두어 두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1905.11.26,‘시하율법(是何法律)’,또 1906.1.12,‘탄(歎 ),황성구폐(皇城久閉)’에서도 황성신문의 복간을 촉구했다.) 대한매일의 반일 논조는 날이 갈수록 더욱 날카롭고 강도를 더해갔다.11월27일자에 순한문과 영문으로 된 호외를 발행하여 을사보호조약의 부당함을 폭로하였다.이 호외는 한쪽 면에는 한문으로 ‘한일신조약청체전말(韓日新條約請締顚末)’을,다른 한 면은 영문으로 ‘시일야방성대곡’을 번역하고 이등박문의 강요로 을사조약이 체결된 전말도 실었다. 이렇게되자 일본에서 영국인이 발행하던 재팬 크로니클(Japan Chronicle)은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가 영문으로 번역한 시일야방성대곡 전문을 게재,일본의 한국침략 사실을 일본에 거주하는 서양사람들과 서방 여러나라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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