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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영 “당 진로는 당이 결정”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이 일주일간의 방미활동을 마치고 3일 귀국했다. 정 전 의장은 “당의 기사회생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며 적극적인 행보를 다짐했다. 정 전 의장은 최근 당·청 갈등에 대해 “대통령은 경제와 안보에 전념하고 당은 협력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당의 진로는 당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문제와 관련, 감정적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당의 진로에 대해서는 “창당정신을 이어가되 국민의 새로운 요구를 담아내야 한다.”면서 “극좌와 극우를 제외한 진보적 중도노선을 지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녹색공간] 핵으로 살 수 있는 평화는 없다/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원래 생태주의는 좌파나 우파라고 하는 고전적 분류방식에는 잘 맞지 않는다.‘만가지 색깔의 생태주의’라는 표현이 있듯이, 녹색을 하나의 이념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다양한 흐름이 공존한다. 이념의 지형상 무정부주의자들은 극좌파보다 더 왼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정부와 국가의 해체가 인류가 나아가야 할 궁극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 개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고 잊을 만하면 친서를 보내는 브리지드 바르도를 비롯한 동물애호가단체 중 일부는 극우파로 분류되기도 한다. 자연 혹은 생태라는 이름만으로 수많은 생각을 하나로 묶기에 그 흐름은 너무도 다양하다. 과학적 접근을 부정하거나 신비주의와 영성을 내세우는 것도 엄연히 생태주의의 한 흐름이고, 또 극단적으로 기술을 통해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기술중심주의도 생태진영의 한 축을 형성한다. 이런 다양성 속에서 대체적으로 공통적인 측면이 한가지 있는데, 핵폭탄과 핵개발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이 전세계적으로 생태주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공유하는 대체적인 공통점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뒤로 우리나라 좌파에 쉽지 않은 질문이 던져졌는데, 우파들은 우리나라 좌파 진영을 한마디로 ‘전근대적’이며 ‘비합리적 사유’를 하는 ‘친북집단’으로 한번에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1992년 동구 붕괴 이후에 새롭게 형성된 우리나라 좌파는 역사적 뿌리도 깊지 않을뿐더러, 워낙 극우파에 가까운 우파 전통이 강한 사회에서 생각을 형성하기 위해 나름대로는 대단히 유연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 좌파에 비해서 비교적 생태주의나 여성주의의 시각을 일찍 받아들인 편이고, 그래서 1970년대 냉전시대의 유럽 좌파나 남미 좌파에 비하면 훨씬 유연한 우리나라 좌파는 그 기본이 ‘신좌파’에 가깝다. 이중 생태주의자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북한핵에 대해서 반대하는 진영을 형성한다. 원래 생태주의자들은 핵폭탄만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치유하기 어려운 핵폐기물을 대량 발생시키는 ‘평화적 핵발전’에 대해서도 반대하기 때문에, 당연히 여하한 종류의 핵에 대한 의존에 반대하는 최전선에 서 있게 된다. 그래서 당연하게 북한의 핵실험과 핵무장에 대해서 반대하는 ‘절대 평화’ 혹은 ‘무조건적 평화’의 입장에 서게 된다. 그런데 평화라는 단어가 현실에서 이렇게 다양하게 쓰이게 될지는 미처 몰랐다. 북한도 ‘평화’를 위해서 핵실험을 했고, 잠재적 핵무장을 염두에 둔 일본도 ‘평화’라는 말을 사용하고, 북한의 파트너 격인 미국도 ‘세계평화’라는 말을 사용한다. 심지어 우리나라 전쟁주의자들 역시 ‘한반도 평화’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국지전을 각오하자고 한다. 그야말로 ‘힘 위에 세우는 평화’ 혹은 ‘전쟁 없이는 지킬 수 없는 평화’라는 냉전 독트린이 전면 부활한 듯하다. 그러나 평화는 핵폭탄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생태주의자들은 미국과 북한·일본 그리고 한국의 전쟁주의자들에게 똑같은 기준을 들이대면서 비판하는 것이다. 핵으로 자신을 지키고 체제를 지킬 수는 없다. 전경들로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영세중립국인 스위스가 핵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평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코뮌’의 정신은 직접민주주의와 자치의 정신인데, 이게 사라진 억압체계가 결국 핵폭탄을 요구하게 된 셈이다. 과연 북한이 핵으로 평화를 살 수 있을까? 이 거대한 실험은 결국 실패할 것 같다. 그리고 한반도 녹색화의 길이 그렇게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세계적 규모의 거대 자본 앞에서 ‘폐쇄된 섬’으로 떠 있던 한 국가가 선택한 ‘평화의 길’, 그러나 핵으로 살 수 있는 평화는 세상에 없다. 미국이 평화로운가? 미국은 40년 전부터 언제나 전쟁 중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40)명분주의와 속물주의를 넘어서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40)명분주의와 속물주의를 넘어서

    좋은 나라를 일구는 데는 반드시 그런 나라를 가꾸게 하는 정신문화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바다. 좋은 정신문화의 밑바탕이 없이 좋은 나라를 이루었다는 것은 사상누각처럼 불가능하다. 우리도 우리 나라를 좋은 나라로 가꾸기 위하여 그 바탕이 되는 정신문화의 터전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조선조 500여 년을 지탱해 온 주자학적 정신문화가 더 이상 21세기적인 정신문화의 기틀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그 주자학적 정신문화의 뿌리는 깊이 땅에 박혀 있어서 주자학이 심어 놓은 순수주의적이고 도덕주의적인 흑백적 사고를 특히 한국의 지식인들이 대체로 은연중에 내리고 있는 것 같다. 그와는 정반대로 경제와 기술을 전담하고 있는 기업과 실업계에서는 주자학적 도학사상보다 실용적이고 실사적인 실학적 사고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한국사회에서 좌파적 도덕주의가 높이 흔들고 있는 깃발로 상징되고 있고, 후자는 우파적 실용주의를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프랑스의 파리가 센 강을 끼고 좌안에는 대학가를 지배하는 좌파적 사상이, 우안에는 금융실업가를 석권하는 우파적 사상이 각각 우세하고 있는 것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그 사회에는 우리보다 격돌이 훨씬 덜하다. 좌파든 우파든 정신문화가 깊어야 고요히 사색하면서 좋은 세상을 창조하기 위한 지혜가 나오지, 철학적 사유를 결여한 감정적인 이데올로기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것은 세상을 더욱 불행하게 한다. 좌파는 우파를 미워해 극좌적 공산주의와 한 통속이 되거나, 우파는 좌파를 싫어해 극우적 파시즘을 동경해서는 안 된다. 나는 한국의 좌파와 우파의 사상적 근원이 외래적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주자학적 도학(道學)과 반(反)주자학적 실학(實學)의 유학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다. 도학사상의 원조는 맹자(孟子)고, 실학사상의 원류는 순자(荀子)라는 데 이의가 없겠다. 나는 우리의 정신문화가 21세기에는 맹자류의 도학적 도덕주의와 순자류의 실학적 실용주의를 넘어서는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여긴다. 여기서 나는 19~20세기에 걸친 독일의 사회학자 베버의 이론(프랑스의 사회학자 쥘리앵 프뢴드의 저서 ‘막스 베버의 사회학’에 의거)에 잠시 의존하고자 한다. 맹자의 도덕주의는 베버가 말한 가치합리성(rationality of value)에 연관되고, 순자의 실용주의는 목표합리성(rationality of goal)과 관계되는 것으로 보인다. 목표합리성은 돈벌기의 목적, 승진하기 위한 목적, 집짓기의 목적 등과 같은 결과에 성공적으로 이르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행위를 분명히 조직하고 자각하고 있는 합리성을 말한다. 가치합리성은 자기의 합리적 행위의 결과에 따라 가시적 결과를 얻으려고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동기적 가치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는 행위다. 즉, 행위자가 자기의 신념을 집행하기 위하여 어떤 어려움도 불사하는 행위다. 죽어가는 부모를 살리기 위하여 단지를 한 옛 효자의 행위나,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기꺼이 바친 애국열사의 행위가 가치합리성이다. 이것은 목표합리성에서 보면 비합리적인 행위처럼 보이나, 행위자 당사자의 판단에서 보면 자기가 믿고 있는 신념의 가치에 합리적으로 봉사했을 뿐이다. 맹자의 사상이 가치합리성이라는 이유는 ‘차마 하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不忍人之心)인 측은지심(惻隱之心)에 바탕하여 모든 행위를 도덕적으로 발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정치마저도 측은지심과 연관되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정치함’(不忍人之政)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맹자의 도학사상과 도덕주의는 인의충신(仁義忠信)과 같은 ‘하늘의 벼슬’(天爵)을 버리고, 세속적 인간의 벼슬(人爵)을 탐하는 인간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면서 저 ‘하늘의 벼슬’을 불변의 황금률로 마음에 간직할 것을 권장한다. 그런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도심이고, 그런 마음으로 정치를 하는 것을 그는 도학정치라고 여겼다. 이것은 순자의 사상과 전혀 맞지 않는다. 순자도 유가이므로 인의충신의 덕목을 귀하게 여기지만, 그 덕목이 내면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그 덕목들이 유효한 사회적 결과를 낳게 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덕목들은 현재의 인고(忍苦)를 통하여 결과적으로 각 개인과 사회에 이익이 되는 결과의 목표성취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즉, 부모에게 효도하여 노후에 편하게 모시려는 목표가 인간에게 각자의 일에서 현재를 참아가며 열심히 일하려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자는 내면적 도덕가치의 계발보다 사회적 제도를 예법(禮法)의 이름으로 잘 만들어 제도의 목표합리적 경영으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익을 제공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맹자와 순자의 각각 다른 합리성은 다른 윤리의식을 심어준다. 이 다른 윤리의식은 합리성의 차이만큼이나 이율배반적이다. 베버에 의하면, 맹자적인 도덕이상주의는 가치힙리성의 정신을 잇는 신념윤리(ethics of conviction)에 상응하고, 순자적인 현실실용주의는 목표합리성의 정신을 존중하는 책임윤리(ethics of responsibility)와 상관적이다. 그리고 이런 각 윤리의식의 극단적이고 상징적인 대표자로서 베버는 신념윤리에 칸트를, 책임윤리에 마키아벨리를 대입시켰다. 마키아벨리는 고향 피렌체 도시의 위대한 영광을 위하여 신념윤리로서 비난받을 수 있는 수단을 사용했다. 이것은 행동인에게 필요한 목표달성적 책임윤리의 의미를 수행하기 위함이다. 칸트는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타인에게 해서는 안 되는 가장 높은 도덕적 신념을 설파했다. 칸트의 신념윤리는 사회적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행동인의 윤리라기보다 오히려 개인의 도덕적 양심의 차원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베버는 이 두 가지 윤리의식이 극단적으로 이율배반적이지만 서로 대립적으로만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에는 두 가지 종류를 다 적절하게 병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 두 가지 합리성과 윤리의식이 불가양립적인 모순은 아니지만, 그러나 서로 궁합 좋은 일치를 이룩하는 것은 아니라고 베버가 이미 밝혔다. 가치합리성과 신념윤리가 너무 넘쳐나 조선조 도학 정치시대처럼 실용적인 현실주의가 거의 숨을 죽이고 살았을 때에는, 순수성이란 선의 탈을 쓴 악마가 세상을 지배한다.‘순수성의 악마’라는 말은 프랑스의 가톨릭 철학자인 무니에가 쓴 말로서, 순수의 명분으로 사회를 도덕적으로 지배하려는 사회의 도덕화 사상과 상통한다. 도덕주의자들은 이런 도덕주의적 지배의지가 얼마나 악마적인가를 모른다. 그냥 순수한 도덕적 선의지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도덕적 동기의 순수성이 인의(仁義)라는 가치를 지키는 도심 자체가 되어서 국가사회를 살리기 위한 거짓말과 변칙을 자행하는 것을 불순하고 잡스러운 것으로 비난한다. 조선조 중종 때의 조광조는 가치합리성과 신념윤리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그는 조선 유학사에서 올곧은 선비로 높이 숭앙받는다. 그러나 그는 여진족 추장 막고내가 침략해 오는데, 위계를 써서 그를 생포하려는 군사전략을 맹렬히 비난한다.‘어찌 군자의 나라에서 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거짓부리인 위계를 쓸 수 있는가?’ 하고. 이 조광조의 고사를 ‘순수성의 악마’와 같은 이야기로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사색당쟁의 대부분이 나의 순수가 상대방에게 악마로 둔갑하여 나타난 결과가 아니겠는가? 20세기 프랑스의 토미즘 철학자인 마리탱은 그의 ‘인간과 국가’에서 맹자적인 도덕이상론과 왕도사상을 ‘정치의 도덕적 양식’이라 명명했고, 순자적인 실용현실론과 패도사상을 ‘정치의 기술적 양식’이라고 언명했다. 전자의 특징은 국가사회를 물질적으로 번영케 하기보다 정신적으로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도록 하여 인류의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국민정신을 유도해나가는 정치형태라고 규정하고, 후자의 특징은 국가의 대외적 외교성공과 안보역량 강화, 국민생활의 물질적 향상을 가져오는 정치에 주력하지만, 그 성공을 가져오는 수단이 도덕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에는 별로 개의치 않는 정치형태라고 마리탱은 설파했다. 그는 전자의 형태는 과잉도덕주의(hypermoralism)의 위험성을 늘 안고 있고, 후자의 형태는 사리사욕의 부패와 그 위험성을 은닉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잉도덕주의는 독선주의의 표독한 독재를 초래하기 쉽고, 사리사욕의 부패는 금권정치의 타락상을 가까이 하게 된다. 순자의 철학은 자연의 본능을 대신한 친본능적 인간지능의 경제기술적 능력과의 연결마디에서 세상과 인간을 보았고, 맹자의 철학은 자연의 본성을 대신한 인간의 반본능적 도덕주의와의 연결마디에서 인간과 세상을 보았다. 경제주의와 도덕주의는 다 철저한 지성주의(39회 글 참조)의 작품이고, 인간중심주의의 산물이다. 경제기술적이거나 사회도덕적으로 인간이 이 우주의 지배자라는 의식이 그 기본에 깔려 있다. 순자적 예법주의나 맹자적 도덕주의는 이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인간지성의 두 가지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는 그 동안 두 가지 지성주의의 택일로 세상을 다스리려 했다. 두 사상이 서로 이율배반적인데, 그나마 서로 덜 배척적으로 동거시키는 나라는 흥융했고, 우리처럼 수화불상용(水火不相容)으로 적대시하는 나라는 위기를 맞았다. 영국이 프랑스보다 근대화의 시작에서 훨씬 상호 덜 배척적인 정신문화의 길을 갔기에, 영국이 프랑스보다 후발국이었는데, 드디어 프랑스를 능가하는 선진국이 되었다고 프랑스의 문인 사학자 모루아가 그의 ‘프랑스사’에서 통탄의 슬픔을 안고 기술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도덕적 명분주의가 지나치게 공허하여 내용이 없는 형식적 사고방식의 형해(形骸)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정반대로 현실주의는 너무 맹목적으로 타락하여 속물주의적 사고방식에 천착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한다. 공허한 명분주의와 맹목적 속물주의의 두 극단을 피하는 것은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양극단에 젖지 않는 것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여긴다. 한국의 정신문화는 묘용(妙用)을 존중하면서도 극단적인 쏠림 현상을 동시에 노출하고 있다. 최근의 경향은 쏠림 현상을 더 많이 표출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 정신문화의 자기 함정이겠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열린세상] 높이 나는 새가 좌우를 다 본다/강지원 변호사

    한가위다. 휘영청 밝은 달을 쳐다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소원을 빌어보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기도 할 것이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쪽에서 쳐다보는 달은 저러한데 저 쪽에서 내려다 보는 이 쪽은 어떠할까. 얼마나 커 보일까. 아마도 그리 커 보일 것 같진 않다. 그저 쟁반같이 둥근 달처럼 한 눈에 보일 것이다. 작다. 손바닥만 하다 해도 그만일 것이다. 그런데 이 손바닥만 한 지구 안에서 또 무슨 쪼갤 일이 있어 쪼개고 또 쪼갤까. 핏줄이 다르다 하여 따로 살고, 나라도 달리 하여 경계선을 긋고, 한반도도 반으로 쪼개져 산다. 또 그들간에 오순도순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법도 한데, 왜 이리도 허구한 날 싸움박질에 아귀다툼일까. 한반도만 해도 그렇다. 최근세사 수십년만 하더라도 별의별 희한한 일들이 다 있었다. 반쪽으로 쪼개져 한 쪽은 극좌적색독재가, 한쪽은 극우백색독재가 횡행했다. 이 나라 백성이 무슨 죄가 그리도 많은지 남북에서 온통 독재탄압이 판을 쳤다. 북쪽은 아직도 저 모양이지만 남쪽은 산업화도, 민주화도 앞섰다. 그래서인지 남쪽은 지금 새로운 노선투쟁이 한창이다. 신물이 나도록 좌파, 우파, 진보, 보수 논쟁에 영일이 없다. 그런데 이 논쟁에서 가장 개탄스러운 것은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지 않은 위장세력이 설쳐댄다는 것이다. 먼저 좌파부터 보자. 한국의 좌파에는 북한정권 추종자에서부터 사민주의자와 민사주의자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문제는 친북독재파다. 이들은 대체로 드러내놓고 북한정권을 두둔하지 않는다. 우회적으로 ‘한민족은 하나’라든가 ‘평화 공존’이라든가 하는 등등의 고상한 언어들을 구사한다. 속이는 것이다. 이런 이들 때문에 보통의 좌파들까지 색깔논쟁에 휘말린다. 모조리 빨갱이로 매도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좌파들도 좌파라는 용어를 싫어하는 기색이다. 우리 국민은 극좌독재파에게 요구해야 한다. 회개하라고, 그리고 생각을 바꾸라고. 왜냐하면 그것은 독재이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말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엔 우파를 보자. 한국의 우파에도 과거의 개발독재추종자로부터 자민주의자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문제는 역시 과거독재찬양파다. 이들은 가급적 독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그저 ‘경제성장’이라든가 ‘한강변의 기적’이라든가 하는 유의 유혹적인 언어들을 구사한다. 솔직하지 않은 것이다. 이들 때문에 보통 우파들까지 과거신봉자로 매도된다. 그래서 그냥 우파라고 하기 싫어 신우파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요즘 좌파의 실패를 보고 우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 와중에는 이런 극우독재찬양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그들에게도 촉구해야 한다. 어디 과거의 잘못을 단 한번이라도 회개한다고 말해 본 적이 있느냐고, 그러니 하루바삐 반성대회부터 열고 나서라고. 우리가 극좌파나 극우파를 배척하는 까닭은 그들의 편파적·적대적 속성 때문이다. 좌파도, 우파도 있을 수 있으나 존재양식이 편파적이고 적대적이면 ‘극’자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건강한 좌파와 우파는 편파성과 적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대를 존중하고 서로에게서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러면 높이 올라 멀리 보고 중앙을 향해야 한다. 전라도 새와 경상도 새가 있다고 하자. 전라도 새가 전라도 지방만 날면 전라도밖에 보지 못한다. 그러나 좀더 높이 날아 멀리 바라보면 경상도도 보이고 충청도도 보이고 제주도도 보인다. 경상도 새도 마찬가지다. 경상도 새가 낮게 날아 시야가 좁으면 경상도밖에 보지 못한다. 그러나 좀더 높이 날아 멀리 바라보면 더 넓은 세상이 보인다. 높이 나는 새는 그렇게 멀리 좌우를 다 보고, 그래서 중앙도 향하게 된다. 높이 나는 새처럼 휘영청 밝은 달에서 내려다 보는 지구촌은 그만큼 작지만 아름다울 것이다. 강지원 변호사
  • [씨줄날줄] 뉴·뉴 대결/이목희 논설위원

    한국의 정치·경제 발전이 속성이긴 하지만, 너무 한다 싶을 때가 있다. 뉴라이트, 뉴레프트 논란이 그 중 하나다. 광복 이후 50여년간 정치세력으로서 변변한 좌파가 없었다고 본다. 그렇다고 제대로된 우파가 존재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시장을 무시하고, 정부가 경제계획을 주도했던 과거 정권을 정통 우파라고 부르기 쑥스럽기 때문이다. 좌·우파의 개념이 모호한데 신(新)자를 붙인 세력이 마구 생겨나니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뉴라이트의 범주에 드는 단체가 또 생겼다. 박세일 서울대 교수가 이사장을 맡은 한반도선진화재단이다. 박 이사장은 한때 한나라당에 몸담았고, 보수파의 대표 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지낼 무렵 그는 개혁파의 선봉이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에 취재차 들르면 박 수석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대단했다.“이상을 추구하는 젊은 학자가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견제를 뚫고 사법개혁을 포함, 정치·교육·노동개혁의 기초를 쌓은 이가 박 이사장이었다. 한반도선진화재단만큼은 다른 뉴라이트 단체들과 달랐으면 한다. 이념적 정체성은 제쳐둔 채 정파연합을 주도하는 식은 곤란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국민중심당이 합쳐지는 게 뉴라이트라고 한다면 웃음거리밖에 안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고건씨 세력간 연합을 뉴레프트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왕 우파·좌파를 뛰어넘어 ‘뉴’라는 말을 붙이려면 열심히 연구해야 한다. 고개가 끄덕여질 이론적 토대가 필요하다. 뉴라이트에 비해 뉴레프트 운동은 약한 편이다. 뉴레프트쪽에도 쟁쟁한 이론가들이 결집해 활발한 토론 대결을 벌였으면 한다. 토론에 앞서 양쪽은 몇가지 전제에 합의했으면 좋겠다. 극단을 배제하는 것이 가장 먼저다.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극우·극좌 인사는 참여시키지 말아야 한다. 특정 정당의 대선승리만을 목표로 해서도 안된다. 중도 표방이 여야를 모두 혐오하는 유권자 흡인을 위한 일회용이어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차별성을 흐트리지 말아야 한다. 내년 대선 후보검증 기준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대북 햇볕정책, 재벌정책 등 몇가지 어젠다가 유용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세계의 싱크탱크] (5) 美 헤리티지 재단

    [세계의 싱크탱크] (5) 美 헤리티지 재단

    ■ 에드윈 풀너 이사장 인터뷰 |워싱턴 이도운특파원|“현재 미국의 주류는 보수이며, 보수의 주류는 헤리티지이다.” 에드윈 풀너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헤리티지는 27만 5000명에 이르는 풀뿌리 지지자들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그 때문에 정부, 의회, 기업과 협력하면서도 우리의 독립성과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헤리티지가 다른 싱크탱크보다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첫째, 명확한 타깃이 있다.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 말하자면 의회와 정부의 스태프들이 우리의 고객이다. 둘째, 헤리티지는 단기 정책보고서(Short Position Paper)에 중점을 둔다. 의원들이나 정부 고위관리들은 다른 연구소가 발간하는 긴 보고서들을 읽을 시간이 없다. 셋째, 우리는 연구 방향을 공동으로 결정한다.‘슈퍼스타’ 한 사람에 의존하지 않고 연구소 전체의 의견을 만들어낸다. 넷째, 매우 광범위한 지원자층을 갖고 있다. 특정한 기업이나 산업이 아니라 미국의 전반적인 보수층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헤리티지는 공화당을 지지하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어느 당파에도 속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시장과 자유무역, 강력한 국방, 미국의 전통적 가치, 법치를 신봉하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지지한다. 보수주의 안에서도 다른 생각들과 다른 정책적 해법들이 존재한다. ▶연구원들을 뽑을 때 특별한 기준이 있나. -똑똑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기본적으로 헤리티지의 임무에 동조하는 인재들을 선발한다. 우리는 세계가 어떤 식으로 ‘가야한다.’가 아니라 실제로 어떤 식으로 ‘가는가.’를 연구한다. 따라서 좌파적 진보주의자가 헤리티지에서 일한다면 결코 편하지 않을 것이다. ▶워싱턴의 다른 보수적 싱크탱크들과는 경쟁관계인가, 협력관계인가. -양쪽 측면이 다 있다. 개인적으로 케이토(CATO)나 미국기업연구소(AEI), 스탠퍼드대학의 후버연구소를 후원한다. 헤리티지는 이들과 공동으로 연구도 진행한다. 그러나 보수적 싱크탱크 사이에도 특정 사안을 놓고 경쟁적으로 서로 다른 해결책들을 내놓기도 한다. ▶극좌를 1, 극우를 10이라고 할 때 헤리티지는 어디쯤 서있는가. -우리는 주류 보수주의자들이다. 아마 7이나 8쯤일 것이다. ▶미국에서도 정치적, 경제적 양극화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헤리티지의 연구활동에 진보적 시각은 어떻게 반영되는가. -우리는 이념을 떠나 올바른 정책적 해법을 제시하는데 집중해 왔다. 따라서 우리는 7이나 8이지만 4,5,6도 수긍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1,2,3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쪽으로 오지 않을 것이다. ▶정부나 대기업과의 관계는 어떻게 유지하는가. -지난해 헤리티지가 받은 기부금은 3500만달러(약 350억원)다. 이 가운데 정부로부터는 받은 돈은 전혀 없다. 기업들로부터 온 기부금도 200만달러, 즉 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개인이다. ▶한국에 헤리티지와 같은 싱크탱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기부 전통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우선은 기업의 힘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 재벌기업들이 사회에 많은 돈을 환원하고 있다. 그 돈을 서너개의 싱크탱크에 집중 지원하면 될 것 같다. 서울에도 싱크탱크가 어떤 식으로 운영돼야 하는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그 돈을 맡겨서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연구자들을 초빙하면 좋은 연구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특정기업도 5% 이상을 기부하면 안 된다. 독립적인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앞으로 헤리티지를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가. -혁명 대신 변혁을 할 생각이다. 우리가 하는 일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 그러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장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현재 헤리티지 연구의 75%는 인터넷 사이트에 먼저 올라간다.4년전 상원에 독극물 배달 사건이 발생한 뒤 우편물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젊은 세대는 우편보다 이메일로 정보를 받기 원한다. 기술 발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며칠전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가 이곳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됐다. 우리는 24개월마다 웹사이트를 대폭 개편한다. 사용자들의 요구에 맞춘다. 또 삼성이나 도요타 등 글로벌 기업이 실시하는 마케팅 기술을 재단 운영에 적용하고 있다. dawn@seoul.co.kr ■ 부처 정책에서 인사 방향까지 제시 |워싱턴 이도운특파원|헤리티지 재단은 미국의 정치권과 매우 가까운 기관이다. 물리적으로도 근접해 있고 심리적으로도 친밀하다. 미국 의회 의사당에서 북쪽으로 5분쯤 걷다 보면 곧바로 매사추세츠 애비뉴 214번지에 자리잡은 헤리티지 재단의 8층짜리 건물에 도착하게 된다. 재단의 로비에 30분만 앉아 있어도 미 의회와 정부 관계자 여러명과 마주치게 된다. 헤리티지 연구원들은 정책 보고서를 만들 때 정부나 의회 담당자들과 협의를 거친다. 예를 들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담당하고 있는 다니엘라 마크하임 연구원은 미 무역대표부(USTR)의 한국 담당자들과 거의 매일 만나고 전화 통화를 한다는 것이다. 헤리티지는 ‘학생없는 대학’이라는 기존의 싱크탱크 개념을 ‘정부의 자문기구’로 바꾼 기관이다. 그런 만큼 헤리티지가 정부 정책결정 과정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특히 1981년 발간한 ‘리더십 지침 (Mandate for Leadership)’은 싱크탱크 역할에 ‘혁명’을 가져온 것으로도 평가받는다. 무려 1000쪽에 이르는 이 지침서를 통해 헤리티지는 모든 정부 부처의 예산과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들을 내놓았다. 또 정부 고위직에는 반드시 정치적 인사들을 임명하라는 요구도 담았다. 헤리티지의 이같은 제안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전폭적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1990년대까지 헤리티지는 레이건 행정부 대외정책의 길잡이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헤리티지는 1994년 공화당이 의회에서 수십년만에 민주당을 제치고 다수당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의 ‘미국과의 계약’을 탄생시키는 데도 핵심적 역할을 하는 등 국내 정치 및 정책에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해왔다. 헤리티지는 1973년 쿠어스 맥주 창업자 조지프 쿠어스가 기탁한 50만달러를 종자돈으로 삼아 설립됐다. 쿠어스는 정치적 보수주의자였다. 헤리티지는 재단 임무를 ‘자유로운 기업활동과 제한된 정부, 개인의 자유, 전통적인 미국의 가치, 강력한 국방의 원칙에 따라 공공정책을 제안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1977년에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에드윈 풀너는 헤리티지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로 성장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레이건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리처드 앨런, 이라크 전 당시 미 행정관을 맡았던 폴 브레머, 현 노동장관인 일레인 차오, 국방부 대변인인 로렌스 디 리타 등이 대표적인 헤리티지 출신 인사들이다. dawn@seoul.co.kr ■ 이사장 비롯 ‘한국통’ 수두룩 현대·한화등 기부금 내기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헤리티지는 워싱턴에서 한국과 관계가 가장 ‘끈끈한’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다. 우선 에드윈 풀너 이사장부터 한국을 잘 안다. 풀너 이사장은 지금까지 100번 넘게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과 교분을 가져왔다. 풀너 이사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였던 시기에 워싱턴의 싱크탱크 및 정부 전직 관리들과 함께 플라자호텔에서 만나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과 관련한 정책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현재 헤리티지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는 발비나 황 동북아정책분석관이다. 황 분석관은 한·미동맹과 남북관계, 미·북관계는 물론 한·미간 경제 현안도 관심있게 다뤘다. 황 분석관은 국무부 크리스토퍼 힐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특별보좌관으로 내정된 상태다. 경제분야에서는 한·미 FTA를 담당하는 다니엘라 마크하임 연구원이 있다. 이와 함께 안보 및 테러 전문가인 피터 브룩스 선임연구원도 한국 및 한반도와 관련한 정책 보고서를 내거나 언론 기고 등을 통해 한·미관계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브룩스 연구원은 올해 헤리티지의 ‘정주영 펠로’로 선정됐다. 정주영 펠로는 고 정주영 전 현대회장의 기부금을 통해 설치된 연구직이다. 현대 말고도 한화 등 많은 한국 기업들이 헤리티지에 기부금을 냈다. 삼성은 지난 1995년 40만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도 국제교류재단을 통해 지금까지 100만달러(10억원)가 넘는 기부금을 연구 용역 형태로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 보수세력의 한국 정부에 대한 공격이 심해진 탓인지 올해 들어 국제교류재단의 지원 목록에서 헤리티지는 빠졌다. 헤리티지에는 다른 싱크탱크에서 만나기 어려운 한국인 연구원들도 적잖게 찾아볼 수 있다. 발비나 황 분석관과 국제무역경제센터의 앤서니 김 연구데이터담당자는 한국계이며, 아시아연구센터의 신지혜 연구조교는 한국인이다. 또 올해부터 이기호 전 노동부 장관이 헤리티지에서 초빙연구원으로 한·미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dawn@seoul.co.kr
  • ‘조봉암과 진보당’ /정태영 지음

    7월31일은 47년 전 진보당 당수였던 죽산 조봉암이 ‘진보당사건’으로 사형당한 날이다.1950년대 이승만에 맞서는 거물 정치인으로 대통령 선거에 두 번이나 나섰던 그가 간첩 혐의로 사형된 후 학계에선 정권 사주에 의한 대표적 ‘사법살인’이라고 비판해왔다.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진보당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이 이루어지는 등 조봉암과 진보당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문제가 활발히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조봉암의 삶을 재조명한 책 ‘조봉암과 진보당’(정태영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이 출간됐다. 조봉암은 일제시대 조선공산당을 주도한 핵심인물이었으나 해방후 박헌영과의 논쟁을 거쳐 공산당과 결별하고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지낸 인물이다.1956년 ‘반자본’‘반공산’의 중도파 노선을 표방한 진보당을 창당, 제3대 대통령선거에 나서 216만표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대항해 ‘평화통일론’을 내세우며 각종 혁신정책을 내놓았던 그는 간첩 혐의를 받고 1959년 사형됐다. 책은 한국 현대사에서 최초로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했던 조봉암과 진보당의 역사적 실험과 좌절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저자 역시 당시 사건과 관련 조봉암과 나란히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로 풀려났던 인물. 그는 “여운형을 포함해 진보계열의 정치 지도자 대부분의 명예가 회복되었는데 조봉암은 여전히 대한민국 공식문서에 범죄자로 남아 있다.”며 “조봉암의 억울한 죽음과 불명예가 방치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무슨 민주주의냐.”고 항변한다. 책은 특히 조봉암이 해방정국에서 중간노선을 지향했던 이유와 의미를 강조한다. 친미·친소, 극좌·극우의 양극화를 달리던 상황에서 민중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노선이 무엇이냐는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민족통합을 이루어내기 위한 실사구시적 의미로 한국적 사회민주주의를 꿈꾸었던 조봉암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1만 9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 ‘北미사일 日에 맞장구’ 한국 신문 맞나”

    “ ‘北미사일 日에 맞장구’ 한국 신문 맞나”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이 작심하고 국내 일부 극우 언론과 한반도의 긴장 파고를 높이는 일본 정부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 비서실장은 21일 서귀포 롯데호텔에서 가진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이라는 주제 강연에서 “북한 미사일 사태에 대한 극우 언론의 태도를 보면 이게 대한민국 신문인지, 일본 신문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분통이 터진다.”면서 “극우 언론은 한반도 내 전쟁을 부추기는 일본 정부보다 참여정부가 더 싫은 모양”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본 정부의 태도도 참으로 고약하다.”면서 “미사일 사태를 빌미로 일본 정부는 군사대국화를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자국 정치에 정파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 ‘미사일 사태’와 관련,“북한이 미국이나 일본과 전쟁하자고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런 ‘정치적인 사건’을 갖고 벌집을 쑤셔놓은 듯 야단법석을 떠는 일본 정부나, 연일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고립됐다거나 (한·미·일)삼각동맹에 이상이 왔다는 극우 언론의 보도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참여정부가 ‘미사일 사태’에 대해 대북 강경론에 동참하지 않고 일본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며 “일본에 맞장구치는 것은 한반도 평화를 저당잡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도 발사 이유가 무엇이든 규탄받아야 하며, 또 (미사일 발사로)일본에 빌미를 준 것은 더 더욱 이해할 수 없다.”면서 “북한은 하루 빨리 6자회담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실장은 “극좌·극우 세력들은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을 저주·왜곡·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있으며, 매일 2건 이상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지 않으면 소화가 안 되는 듯한 여론 지형을 만드는 언론도 있다.”고 비난했다. 특히 “극단 세력들은 모든 것을 반미냐 친미냐, 친북이냐 반북이냐, 자주냐 동맹이냐, 반정부냐 친정부냐, 친노냐 반노냐, 분배냐 성장이냐로 양분하고 참여정부를 공격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때문에 참여정부는 3년반 동안 맷집도 커졌지만 속으로는 골병도 많이 들었다.”면서 “극우 세력은 참여정부를 태어나서는 안될 정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그로 인해 맞고 멍드는 것은 참여정부의 숙명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서귀포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열린세상] 문혁 40년과 우리의 숙제/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일어난 지도 벌써 40년이 된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가 전국에서 문화혁명을 시작한다는 이른바 ‘5·16 통지’를 채택한 것이 1966년 5월16일의 일이었다. 이날 이후 지난 40년 동안 중국이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문화혁명이 계속되는 동안 중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혼란과 무질서와 파괴를 경험했고 이런 상황은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하고 4인방이 타도될 때까지 사실상 1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문화혁명은 권력에 대한 마오의 욕심에서 시작됐다.60년대 초 대약진과 인민공사운동이 실패로 끝나면서 중국은 류사오치(劉少奇)와 덩샤오핑(鄧小平)이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마오는 뒷전으로 물러나야 했다. 마오 자신의 말대로 아무도 그를 찾아오지도 않았고 그를 고물상의 물건처럼 쳐다만 볼 뿐 만져보지도 않았다. 권력에 대한 집념이 유난했던 마오를 부추긴 것이 4인방의 극좌 세력이었고 그가 동원한 수단이 어린 홍위병들이었다. 마오가 내세운 명분은 실종된 사회주의 혁명의 구원이었지만 실상은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는 것이었다. 중국의 인민들이 바라는 것은 혁명의 완성이 아니라 부강한 국가의 건설이었지만 마오는 이를 외면했다. 뛰어난 혁명가였지 유능한 행정가는 아니었던 마오가 자신의 어설픈 이상을 앞세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모조리 때려 부쉈다. 파괴가 없이는 건설이 없다(不破不立)고 외쳤지만 건설은 없었고 오직 파괴만 있었다.10년의 공백은 10년의 파괴였다. 대외 관계에서도 자주 자립을 내세워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됐다. 한 사람의 오도된 집념이 낳은 무서운 결과였다. 덩샤오핑의 업적은 개혁 개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은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대치하고 닫혔던 문호를 활짝 열어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서 중국이 경제대국의 반열에 진입할 수 있게 했다. 그의 보다 더 큰 업적은 부서진 중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면서 희생을 최소화했다는 점이다. 문혁 기간 중 파괴에 앞장섰던 사람들에게도 관용을 베풀었고 경제건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인재들을 골고루 기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했다. 이념의 장벽을 넘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다자적 국제협력체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리고 인치를 법치로 바꾸고 과거 정치 불안의 원인이었던 지도층의 교체를 제도화했다. 천안문 사태에 대한 그의 책임은 언젠가는 역사적 평가를 받겠지만 덩샤오핑이 없었더라면 중국이 동구를 휩쓴 사회주의 몰락의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없었을 것이고 오늘과 같은 강대국 중국의 부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중국의 성공적 부상을 위협하는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역과 계층 간의 불균형, 피폐해진 농촌의 재건, 에너지와 환경 문제, 공산당의 권력 독점에 대한 정치적 불만의 축적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는 중국의 꿈이 실현되기 어렵다. 이들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앞으로 10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때까지는 중국은 미국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미·중협력이 적어도 10년 동안은 유지될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관리하고 유도하느냐 하는 것이 21세기 국제사회, 특히 동북아와 한반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의 부상에서 한국의 미래를 설계하고 중국을 한국의 미래 대안으로 보려는 인식을 다시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바로 문화혁명 40주년을 맞아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라 할 수 있다.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사설] 민주노총 이대로는 안된다

    민주노총이 총체적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해체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정파간 대립과 갈등이 툭하면 폭력과 물리력 동원사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3차례에 걸쳐 대의원대회가 난장판이 되더니 지난 주말에 열린 대의원대회도 안건조차 상정하지 못하고 무산됐다. 지도부 공백상태가 5개월째 지속되고 있음에도 오는 21일 다시 열기로 한 보궐선거도 불투명하다. 자신들의 요구와 맞지 않으면 ‘깽판’내는 게 어느새 조직문화인 양 치부되고 있다. 이 때문에 김대환 전 노동부장관은 지난 10일 퇴임식에서 “정부와 기업은 변하는데 노조만 변하지 않고 있다.”며 강도높은 노동계 내부혁신을 촉구했다. 이용득 한국노총위원장은 싸움을 위한 싸움만 하고 있는 민주노총내 극좌파들을 강하게 비판했으며, 이수호 전 민주노총위원장은 폭력으로 얼룩진 대의원대회가 민주노총의 현실이라며 ‘깽판’을 치려고 준비하는 세력의 존재를 폭로했다. 민주노총을 바로보는 대내외 시각은 이처럼 부정적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상층부는 외부의 싸늘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부 권력다툼에만 골몰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가입과 더불어 제1노동단체로 부상했음에도 구태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실망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총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1970,80년대 암울한 시기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다. 그토록 열망했던 합법성과 정당성을 쟁취한 지금, 스스로 그 가치를 짓밟고 있다. 이러고도 비정규직 보호에 앞장선다고 공언할 수 있겠는가. 민주노총은 자본의 횡포를 탓하기 이전에 자체 비민주성부터 타파해야 한다. 그리고 조합원들이 위임한 책무를 다하기 위해 노사정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 노동계의 ‘민노총 비판’

    노동계를 대표하는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한자리에 앉았다.10일 사용자 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한 제29회 전국 최고경영자 연찬회의 집중 릴레이 대담에서다. 주로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용득 위원장은 “한국노총이 투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민주노총처럼) 투쟁을 위한 투쟁을 해선 안 된다.”면서 “경제현실과 정치현실이 민주화된 만큼 노동운동도 순수 노동운동 차원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극좌파들을 제거하고 조직을 정비하면 한국노총과의 통합은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면서 “이수호 전 위원장과 나하고라면 통합할 수 있지만 지금 상태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은 당초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무조건적으로 요구해 왔다.”면서 “민주노동당까지 동의한 법안을 놓고 사용사유 제한을 포기했다고 맹공격하며 거부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위원장에서 물러나 대의원으로 돌아온 이수호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현재 너무 경직돼 있다. 좀더 유연하게 진행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민주노총 내부가 불안하고 혼란스럽지만 중요한 노동 현안을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자칫 수렁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수 있다.”고 ‘정상화’를 당부했다. 이 전 위원장은 노선 갈등으로 내홍을 겪는 민주노총에 대해 “심정이 착잡하고 괴롭다.”면서 “제 잔여임기를 맡을 새 위원장을 뽑는 오늘 대의원대회를 ‘깽판’치려는 사람이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그는 “지난해 대의원대회를 TV로 보며 ‘요즘도 저런 장면이 있구나.’하고 느꼈을 텐데 그것이 우리 현실이고 숨길 수 없는 모습”이라면서 “옳다 그르다고 판단하기 이전에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월드이슈] 이주자 급증…흔들리는 유럽

    [월드이슈] 이주자 급증…흔들리는 유럽

    |파리 함혜리특파원|‘소요, 범죄…공화국의 적들.’프랑스의 대도시 외곽 저소득층 집단거주지역에서 발생한 소요사태가 이어지는 동안 파리의 곳곳에는 자극적인 붉은 글씨로 이같은 내용을 담은 포스터가 나붙기 시작했다.‘공화국 수호연합’이란 극우단체가 제작한 포스터는 이민자들을 배척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프랑스 소요사태를 계기로 극우단체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들은 과거 사회당 정권은 물론 현 중도우파 정부의 정책이 모두 실패했음을 강조하며 공화국의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업과 경기침체로 고전하는 독일에서는 신자유주의 노선에 반대하는 좌파연합이 지난 9월 치러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러시아에서는 국수주의를 고취하는 극우파들이 외국 혐오증과 반유대주의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안정과 평화’의 상징이던 유럽사회가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 이민자 문제, 가속화되는 세계화 등으로 혼란을 겪으면서 극단주의가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목소리 높이는 극우세력 이민자들의 차별과 소외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프랑스 소요사태를 계기로 극우세력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장마리 르펜 당수는 14일 저녁 파리도심 팔레롸얄에서 대중 집회를 갖고 “지난 30년간 좌·우파 정부를 막론하고 추진한 이민자 정책이 실패했음이 이번 소요사태로 입증됐다.”면서 “외국인들에 대한 모든 사회보장 혜택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날 뉴스전문채널 LCI의 토론프로그램에서도 “경찰에 돌을 던지고 학교를 불태우는 극단적인 폭력행위로 사회 신고식을 치르는 이민 2·3세들은 장차 테러리스트로 성장할 것”이라며 “이들이 바로 시라크가 공들여 키운 자녀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자동적으로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지만 자신들이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 프랑스를 적으로 여긴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프랑스인으로 대우받아서는 안된다.”고 유화책을 비판했다. 역시 이민자 수용에 반대하는 다른 국수주의 우파정당인 ‘프랑스운동’(MPF)의 필립 드 빌리에 당수도 사태 초반부터 “20세 미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통금령을 실시하고 파리 교외 지역에 군대를 투입해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했었다.FN과 MPF는 지난 5월말 프랑스의 유럽헌법 국민투표 당시 프랑스를 보호하기 위해서 EU헌법이 부결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투표결과가 부결로 나타나면서 힘을 얻은데다 이번 소요사태로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정치분석가들 사이에 이번 소요사태로 시라크 대통령과 정부 입지가 약화된 틈을 타 극우정당이 다시 세를 얻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지난 2002년 대선 1차 투표에서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후보 대신 르펜 당수를 선택, 르펜이 2차 결선투표에서 자크 시라크 후보와 맞붙는 이변이 발생했었다. ●뿌리내리는 유럽의 신좌파 한편 여야 정당간 뚜렷한 승자없이 끝난 지난 9월18일의 독일 총선에서 최대의 돌풍을 일으킨 정당은 좌파연합이었다. 좌파연합은 구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PDS)과 사민당의 우경화에 반발해 분리해 나온 사민당 좌파와 노조 지도자들이 만든 ‘선거대안’이 통합한 정당이다. 좌우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지난 60년대 중반∼70년대 초반 이후 독일에서는 각 주 단위로 반급진주의 조례를 채택, 정치적인 극단주의를 지양해 왔다. 따라서 지금까지 극우·극좌파는 의회내 교섭단체 구성에 필요한 5% 이상의 지지를 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총선결과 좌파연합은 총 54석을 확보하면서 8.7%의 지지를 받으며 의회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다. 독일의 한 언론인은 “좌파연합의 정책들은 대부분 재정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실현가능성과 현실성이 거의 없지만 경제가 어렵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달콤한 약속’에 이끌리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럽정치 지형에서 신좌파를 표방하는 정치운동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전했다. ‘개혁이냐 사망이냐.’의 문제로 고민해 왔던 유럽공산주의가 그동안 우파 정책노선을 포용하는 개혁을 추구해 왔으나 영국의 노동당과 독일의 사민당이 우파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생긴 커다란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신좌파 운동이 새로이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특히 반전운동과 반세계화운동, 반 신자유주의의 토양에서 독일의 좌파연합과 같은 신좌파 성향의 정당이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의 네오-코뮤니스트들과 신좌파들이 모여 지난해 조직한 유럽좌파정당(ELP)은 지난 달 29·30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첫 총회를 갖고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유럽의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와 민주주의, 인권의 가치를 재정립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채택했다. lotus@seoul.co.kr ■ 양극을 이끄는 대표적 인물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의 장마리 르펜과 독일의 오스카 라퐁텐은 극우·극좌 양 극단으로 치닫는 유럽정치상황을 상징한다. 갈수록 커지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가 곧 유럽 정치상황의 변화 방향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 신자유주의 맹비난…신좌파 상징 오스카 라퐁텐 독일의 좌파연합을 이끌고 있는 오스카 라퐁텐(62)은 유럽에서 태동하고 있는 신좌파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꼽힌다. 골수 좌파인 그는 신자유주의가 유럽 위기를 불러왔다며 비판한다. 대학생 때인 1966년 사민당에 가입하고 1976년 32세에 프랑스 접경 산업도시 자르브뤼켄의 최연소 시장이 된 그는 68세대 스타급 정치인으로 한때 게르하르트 슈뢰더, 루돌프 샤르핑(94년 사민당 총리후보)과 함께 독일 사민당 3두체제를 이루면서 당내 좌파를 이끌었다. 그는 우파에 가까운 중도좌파 성향의 슈뢰더와 정책적인 대립으로 1999년 3월 모든 정치적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슈뢰더 총리의 노선에 실망한 당원들과 노동계를 규합한 뒤 옛 동독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까지 끌어들여 좌파연합을 결성했으며 지난 9월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 노골적 인종주의…극우파 수장 장 마리 르펜 극우파 정치인으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장마리 르펜(77) 당수.1972년 이후 FN당수를 맡고 있는 그는 지난 2002년 대선에서 프랑스 정치사상 처음으로 극우파가 대통령 자리를 놓고 맞대결을 벌인 정치 파란을 일으켜 프랑스와 세계를 함께 놀라게 했다. 노골적인 인종주의와 국수주의를 기초로 한 극우파의 부상은 평등·박애·자유를 이념으로 하는 프랑스 민주주의의 위기론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르펜은 최근 AP통신과의 회견에서 파리 교외 폭동이 시작된 이래 당으로 지지 e메일과 당원으로 가입하겠다는 요청이 넘치고 있으며 자신의 ‘제로 이민’ 정책에 대한 지지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2007년 대선에도 출마할 것이라고 밝힌 그가 또 다시 극우돌풍을 일으킬지 관심사다. lotus@seoul.co.kr ■ ’배우자 이민’도 언어시험 통과해야 유럽에서 무슬림들의 이민은 복지 제도의 부담 가중, 기독교 문화와의 충돌 등으로 오래전부터 논쟁거리였으나 이제는 사회안정을 위협하는 문제거리가 되고 있다. 7·7 런던 테러와 프랑스 소요 사태 및 무슬림 청년의 네덜란드 반 고흐 영화감독 살인사건 등으로 무슬림은 유럽에서 위협적인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서유럽 국가들은 1960년대 이후 경제 활황으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북아프리카나 가난한 인접 이슬람 국가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경제가 침체하자 본국으로 돌아갈줄 알았던 이민자들은 도심 밖에서 그들만의 거주지나 ‘접시 도시’를 형성하면서 냉대와 차별의 대상이 됐다. 접시 도시란 이슬람 커뮤니티에서 아랍 위성방송을 보기 위해 접시 모양 안테나를 집집마다 달아 붙여진 이름이다. 해마다 유럽연합으로 가는 합법 이민자는 130만명쯤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700만명 가량이 불법이민을 시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모로코나 튀니지 등에서는 매년 수천명이 스페인 카나리 제도나 이탈리아 람페투사 섬 등으로 밀입국을 시도한다. 때문에 유럽연합에서는 이들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공동경비정을 띄우는 지중해 해상 작전을 계획 중이다. 유럽의 이민은 망명, 가족의 재결합, 결혼이란 크게 세가지 법적 형태로 이뤄진다. 망명 조건은 까다로워져 해마다 탈락자가 증가추세다. 가족 결합이나 결혼도 네덜란드에서는 언어 시험을 통과해야 가능하도록 하는 등 점점 관문이 좁아지고 있다. 친척이나 배우자를 데려오기 위한 나이와 연봉 조건도 높아지고 있다. 영국은 유럽연합 시민이 아니거나 기술이 없을 경우 자국에 정착하는 길을 막는 이민 법안을 추진 중이다. 오직 투자자나 기술이 있을 경우에만 영국 시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도 시민권을 따기 위한 시험을 의무화할 예정이다. 시민권을 받게 되면 미국처럼 국가를 연주하는 의식도 마련할 예정이다. 높아지고 있는 유럽의 ‘이민 장벽’은 미국 등 다른나라에까지 영향을 주면서 세계적인 추세로 확산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한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미국 여자 / 수전 최 지음

    재미 한국계 작가 수전 최의 두 번째 장편소설 ‘미국 여자’(전2권, 유정화 옮김, 문학세계사 펴냄)가 번역출간됐다. 한국인 아버지와 유대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수전 최의 첫 소설 ‘외국인 학생’은 아시아계 미국인 문학상을 받았고,LA타임스의 ‘98년 가장 좋은 소설 베스트 10’에 선정된 바 있다. ‘미국 여자’는 1974년 미국 언론재벌 허스트가의 상속녀 패티 허스트가 극좌파 도시게릴라 단체 공생해방군(SLA)에 납치됐던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이 사건을 소설화한 것은 수전 최가 처음이라고 한다. 소설은 작중 폴린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재벌 상속녀보다 일본계 미국인 제니 시마다에게 주목한다. 제니는 베트남전에 항의하는 뜻으로 자신의 애인과 징집 사무소를 계획적으로 폭파한 뒤 FBI에 쫓겨 은신하다가 폴린과 살아남은 납치범들을 보살핀다. 시간이 흐르면서 폴린과 제니의 관계가 변질되는데, 인질이 자신을 납치한 범인에게 애정을 품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생겨난 것. 작가는 폴린과 제니가 대륙을 횡단하는 여정을 매혹적이고, 감동적으로 펼쳐보인다. 1970년대 미국 사회를 특징짓는 사건 가운데 하나인 납치사건을 소재로 인종, 계급, 전쟁과 평화 등 미국 사회의 모순된 심리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9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中 문혁4인방 장춘차오 사망

    중국의 문화혁명을 주도했던 4인방 가운데 한 명인 장춘차오(張春橋) 전 국무원 부총리가 지난달 21일 지병인 암으로 숨졌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10일 보도했다.88세. 산둥성(山東省) 출신인 장 전 부총리는 1930년대 지난(濟南)과 상하이(上海)에서 문예활동을 하다 38년 옌안(延安)에서 중국 공산당에 입당,54년에는 상하이 해방일보사 사장에 취임했다. 그는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부인 장칭(江靑·91년 옥중 자살)과 야오원위안(姚文元·1931∼) 상하이 당위원회 서기, 노동자 출신의 왕훙원(王洪文·92년 사망) 등 소위 4인방의 한 사람으로 66년 문화혁명을 일으켜 76년까지 10년 동안 중국을 극좌파 노선으로 이끌어왔다. 4인방은 66년 8월18일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열린 이른바 백만인 집회를 주도하면서 중도적인 실용주의파들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하고 중국을 혼란에 빠뜨렸었다. 그는 마오가 죽은 직후 문화혁명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81년 사형과 함께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가 83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그뒤 97년에 18년형으로 감형받은 뒤 이듬해 신병 치료를 위해 출감해 병원에서 지내왔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클릭이슈] 우경화 비판세력 부활 조짐

    |도쿄 이춘규특파원|세계적 공영방송의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는 일본 NHK가 직원들의 잇단 비리, 뒤이은 정치권의 외압 파문으로 흔들리고 있다. 특히 NHK의 위안부 프로그램 외압 의혹은 NHK와 집권 자민당의 유착 논란을 확산시키고 있다. 여론도 NHK사태로 인해 편가르기가 진행되며 급격히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사회가 ‘우경화 일로냐, 주춤이냐’의 고비를 맞았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정권에 비판적인 아사히신문이 지난 12일 1면에 “자민당 아베 신조 간사장 대리와 나카가와 쇼이치 경제산업상이 2001년 1월 종군위안부 특집 프로그램 방영을 하루 앞두고 NHK 간부를 불러 압력을 행사,44분짜리가 40분으로 축소, 수정편집됐다.”고 폭로한 뒤 아사히와 NHK의 진실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비판세력의 대반격 신호탄? 아사히 보도 직후 문제의 프로그램 담당 PD도 “내부고발했지만 진상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정치권의 압력이 일상화돼 있다.”고 눈물로 양심선언을 했다.NHK와 정치권, 특히 자민당 핵심우파 세력과의 유착 의혹이 파상적으로 제기된 것이다. 이후에는 일본 내 여론도 아사히를 지지하는 쪽과 NHK 및 아베 간사장 대리를 지원하는 쪽으로 갈라지면서 “아사히로 상징되는 비판(양심)세력이 우경화되는 일본 사회에 제동을 거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그렇지만 24일 현재까지 진실 규명 여부는 오리무중이다. 핵심 쟁점은 명확하다.‘당시 아베 관방부장관이 NHK 관계자를 불렀는지, 나카가와 현 경제산업상이 당시 프로그램 방송 전에 NHK에 압력을 가했는지, 압력이 있었기 때문에 프로그램 내용이 정말로 바뀌었는지‘ 등의 최초 의혹의 진위 여부를 가려내는 일이다. ●우경화 핵심 아베에 십자포화 아사히·NHK 공방의 핵심 인물인 아베 간사장 대리는 현재 일본 우익 정치세력의 상징 인물이다. 아베 대리가 이번 NHK외압 의혹을 대북 경제제재, 교과서 검정 등에서 우파세력의 핵심 역할을 하는 자신에 대한 ‘정치적 음모’로 주장하면서 NHK사태는 정치쟁점으로 급격히 비화되고 있다. 아사히와 일본 내 비판세력들로부터 십자포화를 당하고 있는 아베 간사장 대리는 이번 사건의 해명에 정치적인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그는 2차대전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다.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의 아들로 아버지의 비서로 정계입문한 정치귀족이다.50세의 젊은 나이에 차기 총리 후보 1순위로 꼽히는 차세대 정치인의 선두주자로 대접받고 있다. 사태 여하에 따라 아베 대리나 아사히는 중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따라서 언론들은 신중하다. 도쿄신문은 공론화 1주일이 지나 NHK의 자민당 편향을 비판하는 특집을 실었다. 신문은 “NHK는 에비사와 회장을 필두로 인사권을 가진 간부 중 정치부 기자 출신이 많다.”면서 “NHK 정치부 기자들이 자민당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분주하다.”라는 증언들을 실었다. 요미우리나 마이니치신문 등은 신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아사히 보도에 비판적이고, 주간지 신조는 “아사히 극좌 기자와 NHK의 편향적 프로듀서가 만들어낸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NHK 사태 향배와 일본의 앞날 일본 사회는 2002년 9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일본인 납치 인정 이후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이른바 ‘비판세력’이 숨을 죽이는 상황이 됐다. 이후 중의원·참의원 선거에서 사회민주당과 일본 공산당은 급격히 위축됐다. 특히 북한과 활발하게 교류했던 사회민주당은 회복불능의 궤멸적 상처를 입었다. 언론이나 지식인사회도 비판세력이 크게 위축되며 침묵에 빠져들었다. 이번 NHK 사태가 비판세력들의 대반격 신호탄이란 해석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즉 NHK는 단순히 거대 공영방송사만이 아니라 일본 보수세력, 특히 자민당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그 핵심에 정치부 기자 출신인 에비사와 회장과 간부들이 있고, 일련의 NHK 사태는 이들 지도부로 상징되는 일본 우파에 타격을 주려는 흐름이란 해석이다. 도쿄의 정가소식통은 “NHK 사태 전개 여하에 따라 숨죽였던 일본 비판세력의 부활 여부가 가려질 것”이라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본이 너무 우경화되면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 있다. 북한과의 국교정상화, 우경화 비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다.”고 NHK 사태가 갖는 상징성을 풀이했다. 결국 NHK가 아사히의 지적 이후 자민당과 유착을 단절하거나 완화하면 일본 사회에서 비판세력이 되살아날 전기를 마련할 것이란 얘기다. 이와 함께 NHK 민영화 요구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분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taein@seoul.co.kr
  • 中 사상교육 ‘고삐’… 당간부 농촌으로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중국의 공산당원 하방(下放·농촌 보내기) 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도농간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뿌리째 흔들리는 농촌의 당조직을 재건하는 동시에 사상 강화에 초점을 맞춘 포석이다. 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지난 14일 ‘당 선진성 교육’을 제창하며 6800만명 당원에 대한 사상 강화를 지시, 중국사회에 불고 있는 ‘이념 회귀’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중국 최대의 경제기지인 광둥(廣東)성이 스타트를 끊었다. 광둥성 당위원회는 당 하부조직 강화를 목표로 당 간부·당원 4만 9000명을 농촌으로 보내는 ‘구번창지(固本强基·근본을 공고히 하고 기초를 강화한다)’를 시작했다고 인민일보가 최근 보도했다. 구번창지 운동은 앞으로 3년간 계속될 예정이다. 인민일보는 “최고의 경제발전 지역인 광둥성에서 시범적으로 농촌 건설사업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구번창지 운동이 광둥성에서 성공할 경우 중국 전역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농촌 하방 운동은 과거 극좌 노선을 신봉했던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하방운동과 유사하다.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 당시 우익으로 몰린 지식인과 당간부들의 정신개조 운동을 ‘당 건설’로 원용하고 있다는 것이 중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 간부 등은 1년간 자신이 지정된 농촌에 입주, 농민들과 똑같이 생활하면서 농민들을 교육시키는 한편 수입 증대 등의 농촌 건설사업에도 투입된다. 이와 함께 후진타오 당총서기의 사상투쟁은 6800만명 당원 전원과 ‘미래의 동량’인 대학생들의 사상·도덕성 교육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올 1월부터 당 선진성 교육이란 이름으로 시 이상 당정기관 등은 6월까지, 향·진급 이하는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씩의 강도높은 사상강화 스케줄을 소화한다. 중국 언론들은 이번 사상교육의 목표는 ▲당원 자질 향상 ▲하부조직강화 ▲인민 대중과의 연계 강화 등 세가지라면서 연일 사상투쟁을 독려하고 있다. 교육의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 31개 성·시와 115개 당 중앙직속기관 등에서 선발한 핵심 당원을 중심으로 58개 감찰반도 편성했다. 중국의 한 소식통은 “농촌 하방과 당원 사상투쟁 강화는 시장경제 도입 이후 불고 있는 자유민주화 바람을 잠재우고 공산당 장기집권을 위한 마스터 플랜의 일환으로 입안됐다.”고 설명했다. oilman@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 정감록에 미국이 나온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 정감록에 미국이 나온다?

    1945년 8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다. 그러나 미처 봄날을 음미할 새도 없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자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진출해 38선을 그었다. 그 때 어느 유명한 신종교 지도자가 신도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선포했다.“미소의 두 힘이 서로 상대하여 버티나 태양이 중천에 오르면 밝은 세계가 되리라.” 태양은 누굴까? 중천에 오른다 함은? 전후 맥락 없이 튀어나온 이 선언에 신도들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메시지만은 분명했다. 미국과 소련이 이 땅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것은 잠깐이고, 곧 민족의 구세주가 등장하여 외세를 물리치게 된다는 것! 누가 구세주일까? 김구, 여운형, 조만식, 이승만, 박헌영…. 아니면 김일성? 세상 사람들은 거물 정치가들을 놓고 누가 믿을 만한 민족지도자인지를 점쳤다. 극좌파, 중도파, 극우파의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각자 선택의 폭은 넓었으나 민심의 합일점은 없었다. 지난한 시기였다. 그 때 정감록의 신봉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국난을 뚫고 나갈 진인은 어디 있는가. 계룡산에서 도를 닦았다는 진인, 지리산에서 뛰쳐나온 진인, 주역에 능통한 진인, 부처, 예수, 공자의 영이 내린 진인이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고대해 마지않던 진인은 나오지 않았다. 해방정국은 갈수록 꼬이더니 남북분단은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정감록’에 보이는 6·25전쟁 제2차대전 이후 전세계는 미소를 정점으로 한 냉전질서에 편입되었다. 양측의 긴장이 팽팽해지더니 1950년 마침내 6·25전쟁이 터졌다. 한국이 안고 있던 내부 문제가 곪아 터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미소 양측의 대리전쟁이라는 설도 있다. 원인이야 어떻든 전쟁이 장기화될 때 괴로운 건 민중이다. 그들은 난리가 언제 끝날지, 살아갈 방도는 무언지 필사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정감록 신봉자들은 가족을 이끌고 병화불입지지(兵火不入之地, 난리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땅)를 찾아 숨는 사람도 생겼다. 정감록 예언에 따라 충북 단양군 영춘면 삼풍리로 숨었던 사람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긴데, 전쟁 내내 인민군은 커녕 국군도 본 적이 없었단다. 그들은 정감록의 영험을 믿는 듯했지만 그곳은 어느 편 군대도 진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지독한 오지였다. 꼼꼼히 정감록을 살피던 민중의 눈엔 요거다 싶은 예언 몇 구절이 눈에 띄었다.‘호랑이와 토끼해를 당하여 남북이 서로 솥의 발 같이 대치하리라.’ 우연히도 전쟁이 터진 1950년은 호랑이해인 경인년이었다. ‘금강산 서쪽과 오대산 북쪽은 12년간 도둑의 소굴이 된다.’는 구절도 있어 강원도 북부에 있는 금강산과 오대산을 경계로 남북이 무력 대치한다는 예언으로 볼 수 있었다. 다만 12란 숫자는 논란거리가 되었다. 남북의 대치기간이 글자 그대로 12년인가, 또는 갑자, 을축 이런 식으로 12지를 10간과 조합한 1갑자 60년인가? 총성이 멎은 지 벌써 52년째, 글자 그대로의 12년은 이미 지났고 60년 한 갑자가 되려면 8년이 남았다.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을 상징한다는 대목도 회자(膾炙)되었다.‘인천과 부평 사이 밤중에 배 1000척이 정박한다.’고 했다. 수도권에 ‘시체 더미’가 쌓인다고도 했다. 맥아더 장군이 수많은 전함을 거느리고 인천에 상륙했고 서울을 탈환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럴 듯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 구절은 19세기 후반부터 민중을 떨게 했던 전쟁공포증의 흔적 또는 청일전쟁이 남긴 집단적 기억이 재현된 것이라고 나는 판단한다(연재 제1회 참고). ‘정감록’의 또 다른 구절도 민중의 눈길을 끌었다.‘두 서쪽 땅 곧 황해도와 평안도는 3년간 천 리 안에 사람과 불 때는 연기가 없을 것이요, 또한 동쪽 골짜기, 즉 강원도는 심히 꺼릴 땅이라.’ 사람들은 이 구절을 전쟁이 3년 동안 지속된 까닭으로 봤고, 뺏고 뺏기는 육박전이 벌어진 장소가 강원도였다는 예언으로 해석했다. 중공군의 개입,1·4후퇴도 예언되어 있었다.‘백두산 북쪽에서 오랑캐의 말이 긴 울음소리를 내면 평안도와 황해도 하늘에 원한 맺힌 피가 넘칠 것이다.’ 오랑캐라,1950년 한겨울 급작스레 대거 투입된 중공군으로 해석됐다. 중공군은 물밀듯 남하를 계속, 평안도 황해도를 삽시간에 휩쓸었다. 인해전술이란 말은 정감록에 안 보였지만 그 신봉자들에겐 1·4후퇴를 할 수밖에 없던 사정이 이해될 듯 했다. ●미국대통령을 ‘정도령’으로 착각? 그런데 ‘정감록’ 예언에 대한 기발한 풀이는 따로 있었다. 전쟁 당시 미국의 원수(元首) 트루먼! 트루(true)는 참 진(眞), 먼(man)은 사람 인(人)! ‘정감록’에 예언된 진인(眞人)은 다름 아닌 트루먼이라는 해석이다. 트루먼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의회의 자문도 받지 않고 미군의 파병을 결정했다. 트루먼이 아니었으면 공산군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어났다. 일제 식민지 후반, 특히 1937년 7월 중일전쟁 이후 민중의 살림살이는 참 고단했다.1945년의 해방도 반쪽짜리였고 민중의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전쟁까지 터지자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바로 그런 시점에서 미국은 각종 구호물자를 한반도에 대량으로 투입하였다. 수만의 병력과 현대식 무기를 동원하여 전쟁도 수행했다. 사람들은 새삼 미국의 위력을 실감했다. 어떤 이들은 이처럼 구차히 살 바에야 차라리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기를 바랐다. 국회로 보내주기만 하면 미국에 가 달러를 더 많이 동냥해 오겠다며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도 있었다. 그런 판국이라 미국 대통령을 진인, 정 도령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심지어 1953년 미국 대통령이 아이젠하워로 바뀌자 그가 진짜 정 도령이란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말을 주고받은 민중도 많았다.“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그리고 일본은 일어난다!” 미국-믿다, 소련-속다, 일본-일어나다. 다소 장난스러워 보이는 말투지만 미소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란 인식이 확산된 결과 생긴 민중의 구호였다. 비록 패전국이긴 해도 일본을 조심해야 한다는 다짐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오래 전부터 민중은 일본뿐만 아니라, 서양 강대국들을 경원시했다.1894년 동학농민군이 내건 4대 구호 중에 ‘축멸양왜(逐滅洋倭, 서양놈들과 왜놈을 내쫓는다)’란 구절이 있어 그런 분위기를 잘 설명해준다. 그러다가 일제 말기 조상 전래의 성, 말까지 빼앗기자 민중은 주변국가인 중국과 소련에 다소 기대를 걸었다.‘조지로 목친다.’ 이 말이 민간에 퍼졌다. 조지란 남성의 성기를 뜻하는 남부지방 사투리다. 그것으로 어떻게 목을 자를까? 조(조선), 지(지나, 중국), 로(로서아, 소련)가 힘을 합해 목(목인,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벤다는 예언이었다. 민중의 소망을 담았지만 꽤나 섬뜩한 내용이다. 누구나 한 번만 들어도 절대 잊을 수 없게, 그러나 아무도 그 뜻을 눈치 챌 수 없게 은어에 담았다. ●‘황해도서 난리 발생’ ‘삼국분기설’ 들먹 ‘정감록’으로 6·25전쟁의 참혹함과 미국의 개입을 읽었다니 얼핏 이해가 잘 안될 수 있다. 예언서에 보이는 오랑캐는 만주족 같은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경고하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고려 때는 북쪽으로부터 거란족, 여진족, 몽고족의 침입이 잇따르고 홍건적의 난도 있었다. 조선 초에는 여진족의 침입이 만만치 않았다. 인조 때는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이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일으켰다. 서북지역은 이민족의 침입로가 되다시피 했고, 그 지역 민중은 외침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기도 했다. 외침의 기억은 민중들에게 잊지 못할 일이 되었고, 이것이 ‘정감록’에 ‘백두산 북쪽에서 오랑캐의 말이 긴 울음소리를 내고’ 라는 식으로 정착된 것이다. 오랑캐의 말울음 소리는 현대에 와서 중공군의 남하로 이해되었다. 이런 변화는 ‘정감록’을 처음 전파시킨 조선시대 술사(術士)들로서는 전혀 예측 못할 일이었다. ‘정감록’에는 외침과 무관하게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에서 발생할 난리가 예고되어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서북지방에 대한 차별이 무척 심해서 그 지역 사람들의 불만이 컸다. 순조 연간에는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여러 고을을 휩쓸었고, 그 와중에 많은 인명이 살상됐다. 사실 서북지방은 18세기 이후 과거시험에서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다. 그럼에도 푸대접을 받았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정감록’이 가장 먼저 등장한 곳도 서북지방이었다. 대다수 서북지방 사람들은 조선왕조의 종말을 마다할 일이 없었고 그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할 때, 북쪽에서 반란이 재발해 남북에 두 나라가 대치한다는 남북분국설이 정감록에 기록된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기왕 분국설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몇 마디 보태보겠다.‘정감록’에는 삼국 분기설도 나온다. 나라가 세 동강 난다는 예언인데, 이런 말은 특히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 유행했다. 우리 역사에 삼국시대도 있었고 후삼국시대도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고려 때도 이의민은 신라를 부흥시킨다는 구실로 경주일대를 소란케 했다. 이런 역사적 기억이 있어서겠지만, 민중은 나라가 혼란에 빠질 때면 3국 분기설을 들먹였다. 그런데 3이란 숫자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다. 미륵이 하생할 장소도 산이나 물이 셋으로 나뉘는 곳이었고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길지(吉地) 중에도 3도봉 같은 곳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알아 본 역사적 배경은 아랑곳없이 현대의 정감록 신봉자들은 ‘정감록’에 보이는 서북지역의 혼란상을 국토분단,6·25전쟁의 참상, 또는 1·4후퇴를 예언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민중의 예언 해석에는 시대적 맥락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할아버지 세대가 그 구절을 뭐라 해석했든, 나는 내 시대의 문제를 푸는 새 해석을 좇겠다는 식이다. 이런 태도에서 예언 문화엔 층위랄까 나이테가 보태졌다. 현대의 민중이 미 대통령 트루먼을 ‘정감록’에 언급된 진인으로 본 것은 어떤가. 진인이란 새 왕조를 열 국왕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정씨 성을 가진 이가 나타나 계룡산 아래 도읍을 정한다고 보는 것이 사실상 정설이다. 우리 역사에서 진인의 도래설이 처음 나타난 것은 17세기였다. 그 때부터 오랫동안 해도진인설(海島眞人說, 섬에서 진인이 나온다는 예언)이 인기를 끌었다. 역모를 꿈꾼 사람들은 늘 진인의 출현을 주장했을 정도다. 어쨌거나 진인은 기존질서에 대항해 싸울 영웅이었다. 그런 진인이 1950년대에는 세계 최강대국을 이끄는 지도자, 기존질서의 사령관인 트루먼으로 둔갑했다. 합리적·체계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한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정감록’ 신봉자들의 해석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논리적으론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시의에 맞기만 하면 민중은 꽤 엉뚱한 해석에도 환호한다. 수백 년 동안 ‘정감록’이 생명을 이어온 까닭은 그것이 시대상황에 맞게 새로 해석될 여지가 많아서다. ●예언서는 민중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 해방 이후 미국의 중요성은 국가 차원에서든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든 날로 커졌다. 민중은 ‘정감록’에서 미국에 관한 구절을 찾느라 열심이었다. 도대체 미국이란 나라가 이 세상에 있는 줄도 모르던 아득한 시절에 만들어진 ‘정감록’에서 미국에 관한 기록을 찾는다? 여간 우스운 일이 아니지만 필요는 때로 발명이나 발견을 낳는다. ‘정감록’에서 꺼낸 트루먼 진인설과 인천상륙작전설은 억지스러운 발견이었다.1970년대 이후 민중은 미국에 대한 그 이상의 예언을 요구했던지 새 예언서가 등장했다.‘격암유록’,‘율곡비기’,‘송하비결’ 등이 새로 나온 예언서다. 그 중 어떤 것은 특정 종교단체가 배후 조종하여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 계통의 신종교 단체도 예언서를 빌려 지도자에게 절대권위를 부여한 흔적이 있다. 새 예언서에는 한·미관계가 자주 나온다. 어느 책에는 9·11사태(2001년 9월11일 발생한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도 언급되어 있다. 더욱 경악할 내용도 있다. 미국은 2004년 북한을 폭격하기 시작해,2005년까지 공격을 계속한다. 그리고 2004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는 재선에 실패하고 이슬람교도의 저격으로 사망한다는 등등의 예언이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은 북한을 폭격하지 않고 있으며, 부시는 보란 듯 재선에 성공해서 백악관에 건재하다.2004년의 예언은 완전히 빗나갔다. 내 관심사는 한국 민중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빗나간 예언에도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근 친미와 반미를 둘러싼 논쟁이 한국 사회의 중요 이슈로 등장했는데 민중의 다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지배질서에 반감을 품고 있다. 민중은 부시의 대북 강경노선을 못마땅하게 여겼기에, 부시의 낙선과 암살을 예언한 것이다. 민중은 부시를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부시의 북한 폭격설까지 예언으로 등장한 것이다.50년 전엔 현직 미 대통령을 진인이라 일컫던 것을 생각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있다. 민중이 직접 예언서를 저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중은 예언의 내용을 결정한다. 노스트라다무스든 ‘정감록’이든 사정은 똑같다. 민중의 심리를 정확히 반영한 예언서는 민중의 사랑을 받고 그 생명도 길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예언서는 곧장 버림을 받는다. 민중은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정감록’을 해석해왔다. 시대가 바뀌면 그 해석은 늘 달라졌다. 한 시대의 해석은 다른 시대가 되면 효력을 상실한다. 그러나 내가 정감록을 바라보는 관점은 통시대적이다. 미셸 푸코가 말한 지식의 계보학에 가까운 입장이다. 푸코의 말처럼 시공간이 바뀌면 지식과 기억은 변화된다. 요컨대 변화된 사물의 의미를 계보로 정리하는 것이 지식 계보학이다. 나의 정감록 산책도 그렇다. 정감록에 담긴 의미의 변천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것, 이것은 한국 역사와 문화의 나이테를 읽는 새 방법일 것이다. 백승종(푸른역사연구소장)
  • [씨줄날줄] 자학사관/이기동 논설위원

    위태위태하게 대치하던 이 땅의 진보·보수진영이 엉뚱하게 ‘자학(自虐)사관’을 매개로 공개 일합을 겨루었다. 뉴라이트(New Right)운동을 내건 자유주의연대가 창립선언문에서 “노무현정권은 자학사관을 퍼뜨리며…과거와의 전쟁에 자신의 명운을 걸고…”운운하자, 한 친노(親盧)인터넷 매체가 곧바로 “자학사관 운운하는 자유주의연대는 일본 극우파와 쌍둥이…”라고 반격하고 나선 것이다. 자유주의연대가 자학사관을 언급한 취지에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과거사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를 논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하나 ‘자학사관’이란 단어를 쓴 것은 분명 잘못이다. 일본 극우파들은 과거 일제가 자행한 난징학살, 위안부 등에 대해 사죄하자는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자학사관이라고 반박한다. 자유주의연대는 자신들의 진의를 왜곡한 사이버테러라고 항변하나, 한치의 허점도 용납되지 않는 전장에서 이런 용어를 쓴 것은 큰 실수다. 신지호 교수 등 운동권 출신 486지식인들이 모여 극우와 극좌를 모두 배격하고, 여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다원주의 사회건설에 이바지하겠다며 나선 게 뉴라이트운동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지적풍토는 이들이 추구하는 중간을 용납하지 않는다.“내 눈에는 올드(old)라이트와 구분이 안 된다.”는 열린우리당 유시민의원의 반응은 일찍이 예견된 수순이었던 셈이다. 급기야 뉴라이트를 한국판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라고 부르는 목소리까지 등장하자, 자유주의연대는 인터넷 매체를 향해 이달말까지 공개토론에 응하라고 요구했다. 한바탕 이념전이 눈앞에서 벌어지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좌우와 진보·보수, 여기에 민족주의와 반미친북, 친노·반노까지 가세해 피아구분도 안 되는 일대 혼전이 벌어질 것 같다. 자유주의연대는 일제와 6·25를 겪은 이 땅에서 순수한 이념논쟁이 가능하다고 진정 믿는 것일까. 자유주의연대는 출범 일주일이 채 못돼, 이렇게 진보세력의 최대 공격목표가 되고 말았다.‘보수는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치부하는 진보의 오만은 배격돼야 하지만, 이런 척박한 지적 풍토까지 포용하는 것은 뉴라이트운동의 과제다. 하지만 아직 이들의 내공이 여기에는 못 미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치권 친위대들의 천박하고 비열한 궤변을 보고 싶은 게 아니다. 진지한 지적 토론속에서, 유연한 대안 이념의 출현에 대한 기대가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 홍위병/沈汎 지음

    “홍위병에게 명하노니, 곳곳에 숨어 있는 적들을 찾아내 처단하라!” 1966년 5월17일 인민일보에 실린 마오쩌둥의 이 말 한마디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미래를 예측불허의 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중 일부는 ‘극좌적 오류’의 산물이라는 치욕을 감수하면서도 살아남아 오늘날 제5세대 지도부처럼 중국을 이끌어가는 중추로 성장했다. 하지만 용도폐기된 대다수의 홍위병은 전국의 궁벽한 시골로 하방돼 돌아오지 못한 채 과거를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시대의 사생아’인 것이다. 홍위병 출신인 션판(沈汎·미국 미네소타 로체스터 커뮤니티 기술대 교수)이 쓴 ‘홍위병’(이상원 옮김, 황소자리 펴냄)은 중국 문화대혁명 안팎에 스며들어 있는 아픔을 담담하게 풀어놓은 일종의 자기 고백서다. 문화혁명과 홍위병은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 키워드. 그것은 중국인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응어리진 채 시퍼렇게 살아 있다. 혁명의 현장인 베이징에서 나고 자란 저자가 걸었던 길은 대다수 홍위병들이 겪어야 했듯이 고난의 여정이었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어딘지도 모르는 시골 마을로 하방된 소년은 너무도 많은 세상 풍파를 겪었다. 수많은 죽음을 강요한 혁명은 디너 파티도 아름다운 그림도 우아한 자수도 아니었다. 막막하고 적막한 세월, 그는 아이로니컬하게도 홍위병 시절 자신이 불태워버린 ‘고전’에서 위안을 찾았다. 가혹한 운명은 그에게 ‘붉은 마음’ 대신 개인적인 야망을 갖게 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마침내 교수가 돼 중국출신 이민 1세대 미국인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책은 거대한 피의 역사를 유머와 위트를 섞어가며 풀어놓는다. 그러나 아무래도 중국은 우리에게 여전히 커튼 뒤에 가려진 실루엣이다. 중국인들의 응어리진 과거는 그들의 가슴을 돌처럼 차갑게 식혀 놓았고 지독한 열병은 그들의 말문을 막아버렸다.1만 87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열린세상] 좌우는 색깔이 아니라 방법이다/임현진 서울대 사회학 교수

    현대축구를 ‘토털 사커’라 한다.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이 특징이다. 예전처럼 공격과 수비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주로 연결수(링커)들을 활용하여 전술을 마련한다. 좌우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볼 때, 극좌(레프트 윙), 중도좌(센터 레프트), 중도(센터 포드), 중도우(센터 라이트), 극우(라이트 윙)라는 다섯 명 공격수의 위치는 무의미하다. 지금 세계는 어떤가.‘좌’와 ‘우’는 있지만 유연하다. 마치 링커들이 수시로 왼쪽과 오른쪽을 바꿔가며 공격과 수비 연결을 하듯, 좌우의 거리는 좁혀져 있다. 좌파 정부도 시장의 논리를 받아들이고, 우파 정부도 국가의 역할을 거부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시장을 중시하면 우파요, 반시장이면 좌파란 고정관념을 갖지 않는다. 국가주의와 시장주의는 국가발전의 이질적 전략 요소이지만 좌파나 우파 정부는 그것들을 탄력적으로 받아들인다. 냉전 체제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는 지구를 하나로 묶어가고 있다. 바로 세계화다. 세계화의 도전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라마다 대응 전략이 서로 다르다. 국가주의와 시장주의를 적절히 섞는다. 물론 배합의 기준은 역사 경험과 정치문화에 따라 다르다. 영국의 신(新)자유주의적 제3의 길이 시장주의를 선호한 것이라면, 네덜란드의 신사회민주주의적 제3의 길은 국가주의를 도입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다소 혼돈스럽다. 국민의 정부 아래에서 영국식 신자유주의 발전 모델이 거론되었다면, 참여정부아래에선 네덜란드식 신사회민주주의 발전 모델이 운위된 바 있다. 물론 논의 이상의 적용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혼돈스러운 이유는 현실 적합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식 공동체 발전 모델의 ‘기초’ 위에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발전 모델을 ‘기둥’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영국의 신자유주의 발전 모델이나 네덜란드의 신사회민주주의적 발전 모델의 ‘지붕’을 얹으려 하니 집이 삐거덕거릴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좌우 개념이 남용되고 있다. 정부 정책을 둘러싸고 정부가 간섭하거나 규제하면 좌요, 시장의 자율과 규칙에 맡기면 우라고 말한다. 오죽하면 지난 주말 국정감사에서 성매매특별법을 ‘좌파적 정책’이라고 비난한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김현미 의원은 ‘우파들의 준동’이라고 대응하고 있다. 색깔 칠하기나 다름없다. 여성의 인권 보호와 신장을 위한 법을 좌우로 재단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회의적이다. 도대체 좌와 우란 무엇인가. 좌와 우의 기원은 프랑스 혁명의회에서 연유한다. 당시 급진파는 왼쪽에, 수구파는 오른쪽에 자리를 잡고 격론을 벌였다. 이를 계기로 좌는 진보, 우는 보수의 상징어가 되었다. 결국 알맹이는 진보와 보수의 정의다. 선발 발전국들의 경험은 만들어 놓은 것을 지키려고 하는 보수와 그것을 바꾸려고 하는 진보 사이의 갈등과 타협을 보여준다. 진보가 신선한 것은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와 달리 보수는 만들어 놓은 것을 지키려 하니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계를 갖는다. 기득권을 둘러싼 현상 유지와 타파가 그 귀결이다. 한국의 역사는 진정한 좌우 대결과 공존의 역사를 갖지 못했다. 일종의 ‘이념 콤플렉스’를 갖게 된 배경이다. 극우가 보수를 대변하고, 극좌가 진보를 독점하는 시대에서 건전 보수와 합리 진보는 설 땅이 없었다. 보수와 진보 사이의 대립이 타협보다 반목으로 이어져온 까닭이다. 진리는 쉬운 데 있다. 새는 두 날개로 난다. 왼쪽으로 돌려면 오른쪽 날개가 필요하듯, 오른쪽으로 돌려면 왼쪽 날개가 긴요하다. 바람직한 미래 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좌우 날개의 이치를 잘 살펴봐야 한다. 좌우를 목표 도달을 위한 이념이자 또한 방법으로 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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